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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OCMASC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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概要

Chapter 11

10년 후에 지구가 멸망한다.

멸망급 재난을 막을 사람들이 현대에서 죽기 전에 구해야 하고,

필요한 기업들을 대비시켜야 하며,

멸망에 개입할 빌런들을 미리 제거해야 한다.

지구 멸망을 막을 사람이 나밖에 없다.

#먼치킨 #각성자 #판무회귀물 #재벌

지구 멸망을 막을 사람이 나밖에 없다 / 황규영

1. 멸망

폐허 한복판에서 차우진이 적의 머리에 총알을 박아넣었다.

금속 탄피가 부서진 콘크리트 바닥에 떨어져 날카로운 쇳소리를 냈다.

등 뒤에서 새로운 살기가 느껴졌다. 곧바로 차우진이 서 있던 곳에 총알이 쏟아졌다.

반자동권총을 든 적이 방아쇠를 미친 듯이 당겼다.

"해치웠…."

적은 텅 빈 곳에 총을 난사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차우진이 보이지 않았다.

"블링크 스킬?"

적이 즉시 몸을 뒤로 돌렸다.

이미 적의 뒤로 공간을 도약한 차우진이 방아쇠를 당겼다.

두 발의 총탄이 돌아서는 적의 가슴과 이마에 꽂혔다. 심장을 노린 건 방탄조끼에 막혔지만 적의 반격을 저지하는 효과는 있었다.

이마로 날아간 총탄은 방탄헬멧 아래에 제대로 박혔다.

적이 뒤로 나자빠졌다. 적이 발사한 마지막 총탄이 하늘로 날아갔다.

이제 주변에는 적대적인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 잡은 놈이 마지막이었다.

차우진이 그놈을 지나 박창수에게 뛰어갔다.

"창수 형. 나 왔어."

박창수는 무너진 콘크리트 잔해에 등을 기대고 반쯤 누워 있었다. 그의 입가에서 피가 흘렀다.

"늦었잖아."

"미안. 저쪽에도 하이에나들이 매복했더라고."

"살아서 도망친 놈은?"

"없어."

"잘했다."

저쪽에 매복한 놈은 다섯이었다. 그놈들은 모두 총알 밥으로 만들어주었다.

문제는 이쪽이었다. 이곳에서 열 놈이 박창수를 습격했다.

차우진이 도착하기 전까지 박창수가 다섯을 죽였다. 차우진은 이곳에 도착한 후에 남은 다섯을 잡았다.

박창수가 피를 흘리며 물었다.

"나 살릴 수 있냐?"

차우진이 심각한 얼굴로 박창수의 상처를 확인했다.

박창수는 총탄을 많이 맞았다. 수류탄 폭발에도 휩쓸렸다. 살아있는 게 기적인 상태였다. 멸망 이전의 세계에서 이렇게 당했으면 이미 예전에 죽었어야 했다.

"미안."

이 폐허 속에는 그를 살릴 수단이 없었다. 간단한 상처라면 방법이 있지만, 그걸로 박창수를 살리는 건 불가능했다.

"방법이 없어."

박창수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는 멸망한 세상에서 싸우면서 수많은 죽음을 목격했다. 방법이 없다는 걸 너무 잘 알았다.

"씨발. 담배 있냐?"

두 사람에게는 없다.

"저 새끼들 주머니를 뒤져볼게."

박창수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됐다. 못 필 거 같다. 이제 숨쉬기가 힘들어."

박창수가 하늘을 보며 말했다.

"죽기 전에 옛날에 먹던 국밥 한 그릇 다시 먹어보고 싶었는데. 후우."

박창수가 숨을 몰아쉬다가 움직임을 멈추었다. 눈은 여전히 하늘을 보고 있었다.

차우진이 그런 박창수를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손으로 눈을 감겨주었다.

"저 하이에나 새끼들은 마지막 한 놈까지 찾아내서 죽일 테니까, 형은 이제 좀 쉬어."

***

차우진이 눈을 떴다.

익숙한 천장이다.

"꿈을 꾸었구나."

차우진은 10년 후에 지구가 멸망하는 꿈을 꾸었다.

그 꿈에서 현대 문명은 무너지고 아포칼립스 시대가 도래했다. 그는 그곳에서 생존하기 위해 오랫동안 치열하게 싸우며 살았다.

그런데 갑자기 눈을 떠보니 그의 방에 누워 있었다. 체감상으로는 어제 자고 오늘 일어난 느낌이었다.

스마트폰의 시계를 확인했다. 실제로 시간은 하룻밤밖에 지나지 않았다.

"지구 멸망이라니. 말도 안 되지."

그가 침대에 걸터앉아 손과 팔을 확인했다. 상처나 흉터가 없었다.

"현실이 아니었어. 그게 다 꿈이었어. 와. 다행이다. 진짜 지구가 망한 줄 알았네."

평소라면 침대에서 일어나기 힘들어 꿈틀댔을 텐데, 지금은 잠이 오지 않았다.

차우진이 욕실로 가서 옷을 벗고 거울을 보았다. 배가 통통하게 나오긴 했지만 피부는 깨끗했다. 손가락으로 몸 여기저기를 꾹꾹 눌렀다.

"여기에 칼자국도 없고, 여기 총에 맞았던 자국도 없잖아."

배가 나온 것도 마음에 들었다.

"배가 나올 정도로 식량이 풍족하다니."

얼굴에도 흉터가 없었다.

"살이 통통하게 오른 매끈한 얼굴을 다시 보니까 진짜 좋다."

거울 속에는 그가 어제까지 보던 바로 그 얼굴이 바보처럼 웃고 있었다. 그가 정신을 차렸다.

"아니지. 원래 난 이 얼굴이었지. 그건 다 꿈이야. 꿈."

***

차우진의 누나 차유리는 밤샘 근무를 마치고 돌아왔다. 그런데 현관문을 열자마자 라면 냄새가 났다.

"나도 라면이나 먹을까?"

그녀가 안으로 들어와 주방을 보았다. 차우진이 라면을 먹고 있었다.

그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차우진은 평소에도 라면을 좋아했다.

그런데 냄비가 아니라 국을 끓이는 솥에 라면을 끓여서 먹는 건 이상했다.

그녀가 다가갔다. 솥에는 라면이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싱크대 위에는 빈 라면 봉지 다섯 개가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봉지도 대충 뜯은 것이 아니라, 마치 그 봉지를 다시 쓰기라도 할 것처럼 살살 잘 뜯어서 정리해놓았다.

이렇게 깨끗하게 정리하는 건 차우진답지 않았다.

그녀가 물었다.

"뭐지? 드디어 미친 건가? 다섯 개를 다 먹을 수는 있냐?"

차우진이 라면을 먹으며 대답했다.

"먹을 수 있을 때 최대한 먹어둬야 해."

보존이 가능한 식량은 아껴야 하고, 가져갈 수 없는 건 먹어서 처리해야 한다. 지금처럼 보급품이 남아도는 상황이라면 배가 가득 찰 때까지 먹어둬야 한다.

차유리가 말했다.

"배고플 때 적당히 먹어야지."

"항상 배고프잖아."

"그게 무슨 소리야?"

차우진은 멈칫했다.

지금 그의 행동은 멸망 이후의 세계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정상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아. 그렇지. 이제는 이렇게 먹을 필요가 없지."

"당연하…. 너 그렇게 말하면서 왜 계속 먹는데? 그러다 배 터진다?"

차우진이 오른손으로 라면을 먹으며 왼손을 흔들었다.

"내가 꿈을 좀 오래 꿨더니 아직 적응이 덜 돼서…."

그의 손이 멈췄다.

"어?"

차유리가 물었다.

"왜? 진짜 배 터졌냐?"

"왜 어젯밤에 꾼 꿈이…."

"꿈에 숫자 여섯 개라도 나왔어?"

차우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왜 꿈이 계속 선명하게 기억나지?"

단순히 꿈이 기억나는 차원이 아니었다.

"마치 내가 그 시대를 살았던 것처럼…."

차유리가 물었다.

"무슨 꿈이었는데?"

"지구가 멸망하는 꿈."

차유리가 코웃음을 쳤다.

"개꿈이네."

그녀가 솥을 보며 물었다.

"꿈속에서 쫄쫄 굶었냐? 라면도 하나 못 먹을 만큼?"

"라면이 정말 그리웠어."

"그래서 그렇게 처먹냐? 개꿈 하나 꾸고 참 대단하다. 그러니까 그렇게 배가 나오지."

꿈에서는 10년 후에 지구에 멸망급 재난이 터졌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의 멸망급 재난이 연달아 터졌다.

그 초대형 재난들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사망했다. 일부가 생존하긴 했지만 현대 문명은 붕괴했다.

현대 문명이 무너진 세계에서는 식량 확보가 어려웠다. 라면처럼 공장에서 만드는 가공식품은 더 구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오랜만에 먹는 라면이 너무 맛있었다.

"오랜만?"

이상했다.

"그건 다 어젯밤 꿈속에서 겪은 일인데, 오랜만이라고?"

잠에서 깨어나 라면을 끓여 먹는 지금까지도 꿈속 기억은 사라지지 않았다. 마치 직접 겪은 일처럼 선명했다.

"이게 말이 되나?"

차유리가 잔소리했다.

"먹으면서 헛소리하지 말지?"

차우진이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눈앞에 먹을 게 있다 해도, 말이 안 되는 것을 봤다면 상황파악부터 해야 한다. 전투를 앞두고 있다면 더 그렇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

"아니, 이런 전술 판단도 꿈속에서 하던 건데…."

그가 스마트폰을 찾았다. 꿈속의 기억이 어제처럼 선명하지만, 어제의 기억도 역시 선명하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건 익숙했다.

"인터넷도 오랜만이다."

"내 동생이 드디어 돌았구나? 아니지. 원래 또라이였지."

차우진은 10년 후 지구에 멸망이 다가왔을 때 그 시대 언론에서 수없이 떠들었던 이야기들이 생각났다.

그중에는 그 멸망을 막을 수 있었던 사람들에 관한 것이 많았다.

"그게 만약 모두 꿈이었다면, 그 사람들이 현실에 존재할 리 없어."

그중 한 명이 떠올랐다.

"이선정 박사."

그녀가 살아있었으면 지구를 덮친 멸망급 재난 중 하나는 막을 수 있었다. 많은 전문가가 그렇게 주장했다.

그가 스마트폰으로 이선정을 검색했다. 사진이 포함된 기사가 하나 나왔다.

"헉! 진짜 있다!"

차유리가 물었다.

"왜? 얹혔냐? 물 마셔."

물론 차유리는 물을 떠다 주지는 않았다.

차우진이 이선정의 사진을 확대했다.

"맞아."

사진 속 그녀는 꿈속 뉴스에서 많이 봤던 모습 그대로였다. 심지어 복장도 같았다. 그는 멸망 이후에 굴러다니는 신문지나 잡지에서 그 사진을 여러 번 보았다.

"내가 이 사람의 얼굴을 알고 있다는 건, 그 꿈이…."

옆에서 차유리가 말했다.

"이선정 박사님이네?"

"어?"

"왜?"

차우진은 당황했다.

"누나가 이 사람을 알아?"

"나야 알지. 이 박사님이 나를 몰라서 그렇지."

"어떻게?"

"전에 수연이네 팀에 신고가 들어와서 나도 찾아봤었어."

차유리가 차우진의 스마트폰에 뜬 기사를 손으로 가리켰다.

"여기 이 인터뷰 기사도 내가 저번에 너한테 검색해서 보여준 거잖아."

"아…. 생각났다."

꿈속에서는 10년 후에 이선정의 사진을 다시 본 것이라 차유리가 보여준 기사를 기억하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기준으로는 얼마 전의 일이라 기억이 났다.

지금 이 사진도 차유리가 그때 검색해서 보여준 것이었다.

차우진이 말했다.

"역시 어젯밤에 내가 꾼 건 그냥 꿈인가?"

차유리가 찬장을 열었다.

"개꿈 그만 꾸고…. 아이. 씨. 라면 다 먹어버렸잖아. 나도 먹으려고 했는데."

차우진이 솥을 가리켰다.

"라면이라면 아직 많이 남았는데? 이거 먹으면 되잖아."

"네가 먹다 남긴걸? 그것도 네가 솥에 젓가락 집어넣고 퍼먹던걸? 너 돌았냐?"

"식량을 남겨줬으면 고마워해야…. 아니지. 꿈속에서나 먹던 걸 줘도 괜찮았지."

차유리가 혀를 찼다.

"쯧쯧. 백수 생활을 좀 하더니 아직도 잠에서 덜 깼냐?"

차우진이 반박했다.

"나 백수 아니라고. 요즘은 잠깐 휴식기를 갖는 거라고. 좋은 프로젝트 잡으면 다시 일할 거라고. 나 전기 전문가라고!"

"그래. 차 백수. 말 나온 김에 로봇 청소기나 고쳐."

"그건 내 전문분야가 아니라고."

***

차우진이 방으로 돌아와 이선정 박사의 인터뷰 기사를 제대로 검색했다.

"새로운 치료제를 연구 중이라는 기사는 이미 나왔구나."

그 기사에는 꿈속에서 얻은 정보와 비슷한 내용이 들어 있었다.

"이선정 박사가 그렇게 일찍 죽지만 않았어도 오메가 바이러스의 치료제는 더 일찍 만들어졌을 거야. 그러면 멸망급 재난 중 하나는 막을 수 있었겠지."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내가 저번에 이 기사까지 읽어봤었나?"

그때는 대충 봤었기 때문에 확신이 들지 않았다.

대신에 꿈속에서 수없이 들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이선정 박사는 그때부터 딱 10년 전에 사망했다고 했으니까…."

그가 꿈속에서 본 멸망은 10년 후에 일어난다. 꿈속 멸망의 시작 시점보다 10년 전이면 지금쯤이다.

"꿈속에서 들은 이야기대로면, 이선정이 이맘때쯤 사망한다는 건데."

의자에 앉아서 궁리해봤자 결론은 나지 않는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선정을 직접 보고 개꿈이 맞는지 확인해야겠다."

차우진이 거실로 나와 신발을 신었다.

차유리가 옆구리를 긁으며 물었다.

"어디 가?"

"세상이 진짜로 망할까 걱정이 돼서."

"너 배 나온 거나 걱정해라."

2. 이선정 박사

이선정은 작은 민간 회사 연구소에서 일했다.

차우진은 그 회사의 이름은 안다.

"화선 바이오."

회사의 이름을 검색했더니 주소가 바로 나왔다.

차우진이 그곳으로 찾아갔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화선바이오가 입주한 건물의 모습은 익숙했다. 꿈속에서 사진이나 뉴스 영상으로 여러 번 본 곳이다.

"이 회사에서 원래 하는 일은 따로 있고."

화선바이오는 다른 회사의 의약품 관련 실험과 검사를 대신해주는 일을 주로 한다.

"그 치료제 연구는 이선정 박사가 개인적으로 시간을 내서 따로 했다고 했는데."

그가 꿈속 뉴스 내용을 떠올렸다.

"그러다 이 시기에 사망하는 바람에, 오메가 바이러스가 터질 때까지 10년 동안 연구 결과가 주목받지 못했다고 했지."

오늘은 토요일이다.

"그러니까 개인적인 연구는 오늘 같은 주말에 할 텐데…."

차우진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이건 다 꿈속에서 본 이야기잖아. 나 왜 이걸 현실처럼 이야기하고 있냐."

꿈속에서 겪은 모든 일이 마치 그 시대를 직접 살았던 것처럼 생생하게 기억났다.

"꿈이 너무 생생하지만, 그래도 꿈은 꿈이지."

그가 오늘 잠에서 깨어난 장소는 분명히 그의 방이다. 꿈속에서 본 멸망은 10년 후에 시작된다. 그가 겪은 많은 일은 멸망 당시와 그 이후 아포칼립스 세계에서 일어났다.

"그래. 난 그게 다 꿈이라는 것만 확인하면 돼."

차우진은 그러기를 진심으로 원했다. 그가 아는 미래가 실제로 찾아온다면 10년 후에는 지옥이 펼쳐진다.

"밥은 먹어야 할 텐데, 얼마나 더 기다려야…. 나왔다."

건물 정문에서 이선정이 걸어 나왔다.

차우진은 꿈속에서 이선정을 직접 본 적은 없다. 뉴스에서 10년 전에 사망한 이선정의 사진과 짧은 영상만 봤을 뿐이다.

그래도 그녀를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옷만 다를 뿐 영상에서 보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진짜 이선정이다."

이제 이선정이 그가 아는 모습으로 현실에 존재하는 건 확인했다.

이건 그가 바라지 않던 결과였다.

"환장하겠네."

이선정이 대로변 인도를 걸어갔다.

정보가 더 필요했다.

차우진은 골목길을 이용해 모습을 숨기며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

고등학생 네 명이 으슥한 골목에서 서 있었다. 남자 둘, 여자 둘이었다.

남자 고등학생이 제안했다.

"술이나 마시러 가자."

"술값 좀 있냐?"

제안한 놈이 옆쪽을 힐끗 보았다.

차우진이 그들이 있는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놈이 히죽 웃었다.

"저기 우리 술값 오잖아."

차우진은 이선정이 걷고 있는 대로변 인도가 아니라 근처 골목을 이용해 그녀를 따라갔다. 그런 식의 미행은 꿈속 미래에서 흔히 하던 일이다.

"저 이선정 박사가 정말 그 이선정 박사인지 좀 더 지켜보자."

그런데 그가 지나가는 골목에 고등학생 네 명이 있었다. 그중 한 명이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아직 불은 붙이지 않았다.

차우진이 그들과 눈이 마주쳤다.

한 놈이 바닥에 침을 뱉으며 말했다.

"아저씨. 담배 피우는 거 처음 봐?"

"많이 봤지. 하던 거 많이 해라."

지금 그의 관심은 고등학생의 흡연이 아니라 지구 멸망과 이선정이다.

차우진이 그들을 지나가려 했다. 그런데 침을 뱉은 놈보다 조금 뒤에 있던 놈이 손을 옆으로 뻗었다.

"어이. 배 나온 아저씨. 그냥 가면 어떻게 해?"

차우진이 걸음을 멈추었다.

"불은 네가 알아서 붙여라. 난 라이터 없다."

"그게 아니라! 학생이 담배를 피우려는 걸 보면 할 말이 있을 거 아냐!"

차우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담배가 왜? 어차피 너희 같은 애송이들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는데 그거 좀 피운다고…. 아니지."

차우진이 생각을 바꾸었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건 10년 후 현대 문명이 붕괴한 후에나 일어날 일이다.

"앞으로 최소한 10년은 괜찮겠네. 운 좋으면 몇 년 더."

"뭐라는 거야?"

"아니면 더 일찍 죽겠지."

두 놈이 생각하던 그림은 이게 아니었다. 그들은 차우진이 겁을 먹기를 바랐다. 그런데 돌아오는 반응이 예상과 너무 달랐다.

"이 아저씨가 돌았나!"

한 놈이 종이 자르는 데 쓰는 커터 나이프를 꺼내 칼날을 뺀 후에 차우진을 향해 내밀며 말했다.

"헛소리 말고, 돈 있으면 좀 나눠쓰…."

차우진이 그놈의 오른팔을 왼손으로 잡아 확 잡아당겼다. 그러면서 오른쪽 팔꿈치를 위로 들었다.

모든 동작이 너무나 익숙했다. 팔꿈치가 상대의 턱에 정확히 꽂혔다.

"켁!"

턱을 맞은 놈이 힘없이 무너졌다.

조금 뒤에 서 있던 놈이 깜짝 놀라 앞으로 뛰어왔다.

"이 새끼가!"

달려온 놈이 주먹을 크게 내질렀다.

차우진이 상대를 적으로 인식했다. 적이 주먹을 뻗기 전부터 팔과 몸의 자세 변화를 관찰했다.

적의 다리 각도, 허리와 어깨의 움직임이 디테일하게 보였다. 적이 공격할 때 신체의 무게중심이 어디로 이동하는지도 알았다.

그 정보를 수많은 전투 경험으로 분석하면, 적의 주먹이 어디로 날아올지를 주먹을 휘두르는 놈보다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

차우진은 상대의 동작이 느려졌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상대가 느리게 움직여줄 리 없다.

차우진의 모든 반응속도와 동체 시력, 감각이 순간적으로 빨라졌다. 그만큼 상대의 움직임이 느릿하게 보였다.

'시간 가속?'

꿈속 세계에서는 이렇게 적의 움직임이 느려진 듯한 감각 속에서 싸울 때가 있었다.

'설마 아니겠지. 아드레날린 때문에 이런 느낌이 드는 거겠지.'

분석은 충분히 했다.

차우진이 옆으로 슬쩍 움직였다.

꿈속 기억의 몸과 지금의 몸은 다르다. 그래서 이질감이 있긴 했다.

어차피 지금 몸도 그의 몸이다. 이 몸을 움직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당연히 잘 안다.

그의 전투 센스가 기억과 현재의 신체 오차를 순식간에 수정했다.

몸을 슬쩍 움직인 것만으로도 적의 주먹이 빗나갔다.

단순히 피하기만 한 게 아니다. 적의 공격 타이밍을 정확히 잡을 수 있고 반응할 능력이 있으면, 적의 팔을 손쉽게 잡아챌 수 있다.

차우진의 적의 팔을 잡았다. 그러면서 다리를 툭 걷어찼다.

"으악!"

정강이를 얻어맞은 적이 중심을 잃고 앞으로 엎어졌다.

차우진은 적의 오른팔을 놓지 않았다.

적은 몸만 앞으로 엎어지고 붙잡힌 오른팔은 뒤쪽으로 돌아갔다.

오른팔이 부러질 것처럼 심하게 꺾였다.

고등학생이 비명을 질렀다.

"으아악! 파, 팔! 팔!"

차우진이 말했다.

"이게 되네."

꿈속 미래에서 쓰던 근접전 기술이 현실에서 너무 잘 먹혔다.

차우진이 오른팔이 꺾인 놈을 내려다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상대의 전투력을 못 알아보고 덤볐으면, 죽어야지."

아직 차우진의 전투 모드는 해제되지 않았다. 그 목소리에 살기가 깃들었다.

그 고등학생은 살기를 감지할 능력은 없지만, 차우진이 진심이라는 걸 눈치챘다.

겁이 덜컥 났다.

"사, 살려주세요!"

차우진은 그 말을 듣고 멈칫했다. 그가 왼손으로 자기 얼굴을 쓰다듬었다.

"아. 내가 예전 습관이 아직 남아 있어서 실수를 좀 했네? 지금 시대에는 이 정도 일로 사람을 죽이고 그러면 안 되는데."

"히익! 그,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차우진이 뒤로 꺾었던 팔을 풀어주며 말했다.

"살려 준다고. 이 새끼야."

"가, 감사합니다!"

엎어졌던 놈은 팔을 놓아주자마자 다리를 절뚝거리며 도망쳤다. 턱을 맞은 놈도 정신을 차리고 골목 바깥으로 비틀거리며 뛰었다.

차우진이 골목 벽에 바짝 붙어 서 있는 여학생 두 명에게 물었다.

"너희들도 한패냐?"

깻잎 머리가 화들짝 놀라 손을 흔들었다.

"아뇨! 우린 저 새끼들이랑 하나도 안 친해요! 오늘 여기서 우연히 만났어요!"

그 옆에 있던 곽민지도 급히 말했다.

"저, 저희 미성년자인데요?"

"그게 뭐. 고삐리 몸에는 총알이 안 박히냐?"

깻잎 머리가 겁먹은 소리를 냈다.

"히익!"

"고삐리도 방아쇠 당길 손가락은 있잖…. 아. 요즘 고딩은 총을 안 쏘지."

세상이 망하면 나이가 어려도 무기를 들어야 하는 시대가 온다. 총알이 부족해 보통은 칼이나 창을 가지고 다니지만, 총을 쓰는 청소년도 드물지 않았다.

"그래. 지금은 아직 그런 시대가 아니잖아."

차우진이 손으로 이마를 짚고 잠시 진정했다. 달아오르던 피가 차분해졌다.

그가 손을 아래로 내렸다. 두 사람을 보는 눈빛은 여전히 서늘했다.

"보내줄 때 가라."

"꺄악!"

깻잎 머리와 곽민지가 겁을 집어먹고 허겁지겁 도망쳤다.

차우진이 손을 보았다.

"꿈속에서 쓰던 근접 전투 기술이 현실에서도 통하네?"

상대의 움직임이 훤히 보였다. 적이 어디를 공격할지가 보이고,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도 알았다. 모두 꿈속에서 배우고 쓰던 기술들이다.

"안 되겠다. 이선정 박사와 대화를 해야겠어."

***

이선정이 늦은 저녁을 먹기 위해 도로변 인도를 걸어갔다.

"머리 많이 썼더니 배고프다."

이 길로 가다 보면 그녀가 자주 가는 식당이 나온다.

갑자기 앞쪽 골목에서 차우진이 걸어 나와 그녀의 앞을 막았다.

그녀가 놀란 소리를 냈다.

"꺅?"

"이선정 박사님?"

그녀가 살짝 경계했다.

"누구시죠?"

차우진이 대답하려 했다. 그러다 머뭇거렸다.

"어….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하려나."

꿈에서 그녀의 뉴스를 봤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녀가 곧 죽는다고 말할 수도 없다.

차우진이 둘러댔다.

"팬?"

꿈속에서 이선정의 영상과 사진을 워낙 많이 봐서 그녀가 연예인처럼 보이기는 했다.

그녀가 눈을 깜빡였다.

"제 팬이요? 저는 일반인인데 왜 팬이 있어요?"

"워낙 미인이셔서."

"네?"

"아니, 이게 아니라…."

이선정은 예전에도 번호를 달라고 해서 거절했더니 졸졸 따라오는 남자를 몇 번 경험했다. 그중에 선을 넘기려는 사람이 있어서 경찰에 신고한 적도 있다.

지금까지 그녀에게 팬이라고 말한 사람은 없지만, 이번에도 비슷한 상황이라고 판단했다.

그럴 때 쓸 수 있는 핑계를 하나 알고 있다.

그녀가 말했다.

"저 결혼했어요."

"예?"

차우진은 당황했다. 그의 기억 속 이선정은 미혼인 상태로 사망했다.

"그럼 이만."

이선정이 휙 걸어갔다. 걸음이 조금 빨랐다.

차우진이 머리를 긁었다.

"꿈속에서 본 상황과는 디테일이 다른데?"

그가 알던 것과 다른 정보를 보니 마음이 조금 놓였다. 어젯밤 꿈이 그냥 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지구 멸망은 그냥 개꿈이었나?"

차우진이 진심을 담아 말했다.

"다행이다. 그냥 꿈이라서."

이선정이 걸어가다가 뒤를 힐끗 보았다. 차우진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이선정이 슬쩍 웃었다.

"언니 말대로 유부녀라고 뻥을 치니까 쉽게 떨어지네?"

잠시 긴장했던 것도 풀어졌다.

"스토커는 아닌가 보다. 그냥 무작정 찾아왔나 봐."

스토커라면 그녀가 결혼하지 않았다는 걸 모를 리 없다.

그녀가 다시 앞을 보며 걸음을 옮겼다.

"내가 안 꾸며서 그렇지 예쁘긴 한가 보…."

갑자기 근처 도로를 지나가던 승용차의 타이어가 터졌다. 그 소리가 마치 총소리처럼 들렸다.

그녀가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리며 소리가 들린 방향을 돌아보았다.

소리가 문제가 아니었다. 차가 옆으로 기울어지며 그녀를 향해 돌진했다.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그녀가 이번에는 진짜로 비명을 질렀다.

"꺄악!"

3. 스킬

자동차의 타이어가 터진 건 갑자기 일어난 일이다. 그 결과로 차가 그녀를 덮치는 상황은 미리 알고 대비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아포칼립스 시대에는 돌발상황이 많았다. 멀쩡해 보이던 콘크리트 바닥이 무너지는 일은 흔했다. 어디선가 총알이 날아올 때도 있었다.

차우진은 사건이 터지자마자 반응했다. 일단 이선정을 향해 달렸다. 그녀를 구하는 게 먼저였다.

반응은 빨랐지만, 그래도 너무 늦었다.

이선정은 이미 저만큼 걸어간 상태였다. 그가 아무리 빨리 뛰어도 차가 그녀를 덮치는 게 더 빨랐다. 그가 도착하기 전에 이선정이 차에 치이게 생겼다.

차우진이 이선정을 향해 손을 뻗었다. 닿을 리가 없었다.

급했다. 이선정을 살리려면 어떻게든 해야 한다.

'오메가 바이러스 치료제의 유일한 개발자를 여기서 잃을 순 없어!'

꿈속 미래에서라면 방법이 있었다. 그때는 전투 도중에 이 정도 거리를 단숨에 이동하는 일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이건 현실이다.

'꿈속 그 감각 그대로 한다고 해도 될 리가 없잖아!'

그건 안다. 그런데 그는 조금 전에 시간 가속으로 의심되는 상황을 겪었다.

뭐라도 해야 한다.

차우진이 꿈속에서 스킬을 쓰던 그 느낌 그대로 행동했다. 합리적으로 생각해서 한 건 아니다. 이선정을 구하려면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니까 일단 시도했다.

갑자기 이선정과 차우진 사이의 거리가 사라졌다. 차우진이 달리던 곳에서 사라져 이선정의 바로 뒤에 나타났다.

차우진은 깜짝 놀랐다.

'이게 왜 되지?'

이미 차가 근처까지 달려들었다. 이게 무슨 일인지 고민할 때도 아니고 망설일 때도 아니다.

게다가 그는 이 능력이나 이런 상황을 꿈속에서 익숙할 정도로 많이 겪어봤다.

차우진이 즉시 이선정의 허리를 잡고 바닥을 박차며 앞으로 점프했다.

발끝에 차의 사이드미러가 스쳤다.

그들이 방금 서 있었던 곳을 정확히 지나간 차가 매장 유리 벽에 충돌했다.

대형 유리가 요란한 소리와 함께 부서지면서 차가 매장 안으로 뚫고 들어갔다.

차우진이 그녀의 허리를 안은 상태로 바닥에 착지했다. 이선정이 다시 비명을 질렀다.

"꺄아악!"

차우진이 차량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제 괜찮습니다."

"네? 네?"

차우진의 마음은 복잡했다.

"피했으니까."

이선정이 고개를 돌려 옆을 보았다.

자동차가 매장의 유리 벽을 부수고 반쯤 박혀 있었다. 알루미늄으로 만든 유리 벽 지지대들이 수수깡처럼 부러지고 구부러져 있었다.

"아…."

그녀의 눈에 바닥에 흩어진 날카로운 유리 파편들이 보였다. 차우진이 구해주지 않았다면 그녀는 저 차에 부딪힌 채로 유리 벽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저 잔해에 베이고 찔렸을 게 뻔하다.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저…. 방금 죽을 뻔한 거예요?"

"안 죽었습니다. 다친 곳도 없어 보이고."

"그, 그렇죠? 앗! 운전한 사람은…."

운전석에서 사람이 내렸다. 에어백이 제때 터져 크게 다치지는 않은 상태였다. 대신에 충격을 꽤 받아 정신이 없었다.

영업시간이 끝난 후라서 매장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이선정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휴우."

그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쉰 후에 차우진을 돌아보았다.

"고맙…."

얼굴이 너무 가까웠다.

"아. 저기 제 허리…."

"아. 그렇죠."

차우진이 그녀의 허리에서 팔을 풀었다.

그녀가 자세를 잡고 고개를 꾸벅 숙였다.

"고맙습니다."

그녀는 조금 전에 차우진을 박대한 게 미안해졌다.

"덕분에 살았어요. 진짜 고마워요."

"뭘요. 당연한걸."

그녀를 구해야 인류의 절반을 살릴 수 있다.

"그런데, 저기요."

이선정은 이해가 가지 않는 게 하나 있었다. 그녀가 뒤쪽을 가리켰다.

"조금 전까지 저기 서 계셨는데, 어떻게 여기에…."

차우진도 그 문제로 마음이 복잡해진 상태였다.

'블링크가 발동됐어.'

블링크나 점멸 등으로 불리는 그 단거리 공간도약 능력은 꿈속 미래에서 쓰던 스킬이다.

그런데 방금 그걸 현실에서 사용했다.

'어째서?'

그 스킬 덕분에 차에 치여 죽을뻔한 이선정을 살렸다.

'꿈속에서 익힌 스킬을 현실에서 쓰는 건 말이 안 되잖아.'

그런데 그 말이 안 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게다가 이런 일은 지금이 처음이 아니다.

블링크가 가능하다면, 조금 전에 양아치들과 싸울 때 느꼈던 감각도 착각이 아니라는 뜻이다.

'시간 가속 스킬도 발동됐어.'

그때는 겨우 일 초 남짓, 두 배의 속도로 시간이 가속됐다. 그때 적의 주먹질은 그만큼 느리게 보였다.

이제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내가 꾼 건 개꿈이 아니야. 그건 실제로 일어날 일이야."

꿈에서 겪은 멸망급 재난들이 현실에서 일어날 예정이다.

마음이 복잡해졌다.

'10년 뒤에 지구가 멸망한다고?'

이선정이 물었다.

"개꿈이라는 게 무슨 말씀이신지…."

차우진이 이선정을 빤히 쳐다보았다.

다른 문제도 떠올랐다.

'이선정은 차에 치여서 죽는 게 아니야.'

꿈속에서 본 그 많은 분석 기사에 이선정의 사망 이유가 나왔다. 그건 차 사고가 아니었다.

그가 심각한 표정으로 이선정의 얼굴을 보았다.

'이선정 박사는 연쇄살인마에게 살해당한다.'

이선정은 차우진이 빤히 쳐다보는 게 부담스러웠다. 팬이라면서 따라온 사람이라서 쳐다볼 때 부담이 안 갈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생명의 은인에게 함부로 말할 수도 없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제 얼굴을 그렇게 보시는지…."

차우진이 둘러댔다.

"다친 곳은 없나 해서요."

"아! 그러시구나!"

그녀가 얼른 손거울을 꺼내 얼굴을 확인했다.

"괜찮아요. 말짱해요."

차우진이 부서진 매장과 타이어가 터진 차를 보았다.

'이 자동차 사고는 어차피 일어날 일이었다.'

차량의 타이어가 터지는 건 차우진이 개입해서 일어난 일이 아니다. 차우진의 행동은 이번 사고의 원인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그의 행동이 영향을 끼친 건 차가 아니라 이선정 쪽이다.

조금 전에 차우진이 이선정에게 말을 걸었다. 그때 이선정의 시간이 조금 지체됐다.

'하필 이때 이선정이 이 앞을 지나갔기 때문에 차에 치일 뻔했던 거야.'

차우진이 심각한 얼굴로 설명했다.

"제가 조금 전에 말을 걸지 않았다면, 저 자동차 사고는 이선정 씨가 이 장소를 지나간 후에 일어났겠지요. 그랬다면 이선정 씨가 위험해질 일은 없었을 겁니다."

"아. 그게 그렇게 되나요?"

그녀가 살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에이. 그래도 저를 구해주신 건 맞잖아요."

"그렇죠. 구했죠."

원래라면 이 사건으로는 그녀가 위험한 상황에 놓일 일이 없어야 한다.

그런데 꿈속에서는 알려지지 않은 사건이 그녀를 죽일 뻔했다.

'내가 개입해서 미래가 바뀌었다.'

그게 중요했다.

작은 변화였지만, 꿈속에서 본 미래가 바뀌었다.

'그러니까 지구 멸망도 확정된 미래는 아니야.'

그건 정말로 중요했다.

그가 미래의 멸망급 재난들을 떠올렸다. 한두 개가 아니다.

'멸망 중 하나, 오메가 바이러스.'

오메가 바이러스 하나만으로도 인류의 절반은 사망할 수 있다. 실제 사망자는 절반보다 훨씬 적었는데, 그건 다른 재난으로도 사람들이 워낙 많이 죽어서였다.

차우진이 이선정을 보며 생각했다.

'오메가 바이러스의 치료제를 미리 개발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 이선정 박사. 이 사람을 살리면, 멸망급 재난 중 하나는 막을 수 있다.'

그러려면 정보가 필요하다.

'정보를 얻으려면 대화가 더 필요해.'

이선정이 물었다.

"제가 정말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차우진이 제안했다.

"우리 밥 먹읍시다."

"네?"

"밥 사요. 같이 밥 먹읍시다."

이선정의 가슴이 살짝 두근거렸다. 방금 죽을 뻔한 사고를 겪어서 두근거리는 건지 아니면 밥 먹자는 제안이 반가워서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그녀가 속으로 생각했다.

'데이트 신청인가?'

"저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밥 먹는데 각오가 필요하신 분인가?"

차우진의 시선이 조금 아래로 내려갔다.

"다이어트 합니까?"

이선정이 재빨리 겉옷을 움직여 허리를 가리며 말했다.

"아니거든요? 저 다이어트 안 하거든요? 할 필요 없거든요?"

차우진의 시선이 그녀의 가려진 허리를 향했다가 물러났다.

"아. 그러시구나."

이선정이 차우진의 눈빛을 보며 생각했다.

"내 말을 안 믿는 거야. 하나도 안 믿는 거야. 자기는 배 나왔으면서.'

차우진이 말했다.

"그런데 말이죠. 난 진짜로 밥을 먹어야 해서 그런 건데."

"네?"

이선정은 차우진의 말이 데이트 제안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괜한 생각을 한 것 때문에 조금 부끄러웠다.

"네? 아. 네. 그, 그렇죠. 그럼 밥은 언제…."

"지금?"

"식사하러 가던 중이긴 했는데…."

"잘됐네요. 가시죠."

***

차우진은 이선정을 근처 국밥집으로 데려갔다.

이선정은 당황했다. 목숨을 구해줘 고맙다고 밥을 산다고 했더니, 차우진은 그녀를 국밥을 파는 곳에 데려왔다.

'내가 사는 건데? 내 팬이라더니? 왜 국밥집이지?'

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걸로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이렇게 푸짐한 고깃국은 진짜 오랜만입니다."

"네? 고깃국이요? 혹시 북에서 오셨어요?"

"아. 맛있을 거라고요. 이 집이 유명한 집이거든요."

현대 문명이 붕괴한 아포칼립스 시대를 살아갈 때는, 고기 한 조각만 구해도 물을 많이 넣고 끓여서 먹곤 했다. 거기에 먹을 수 있는 곡식 낱알이나 풀을 같이 넣고 끓여 양을 최대한 불렸다.

지금 먹는 국밥에는 흰 쌀밥과 고기가 들어 있었다.

차우진이 국밥을 한 숟가락 먹은 후에 감탄했다.

"크으. 이 맛이지."

"맛있긴 한데 그 정도는…."

"창수 형이 생각나네. 국밥 이야기 참 많이 했었는데."

"네?"

박창수에게 배운 전투 기술이나 생존 기술은 멸망 후의 세계에서 살아남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별거 아닙니다. 어차피 다 꿈속에서 있었던 일이니까, 창수 형도 지금은 멀쩡하게 살아서 국밥 많이 먹고 있을 겁니다. 아니다. 국밥은 이제 질렸다고 욕할 시기겠네."

"그게 무슨…."

차우진이 말을 돌렸다.

"이선정 씨. 저를 스토커라고 생각한 겁니까?"

이선정이 즉시 사과했다.

"네? 아. 죄송해요. 제가 요즘 신경 쓰이는 일이 좀 있어서요. 결혼했다고 거짓말한 것도 미안해요. 언니가 그러면 효과 있을 거라고 해서요."

차우진의 눈이 가늘어졌다.

'결혼한 게 아니었어?'

상황이 조금 변했다. 이제 그가 꿈속에서 봤던 정보와 그녀의 상황이 일치했다.

그렇다면 그가 아는 그녀의 미래도 그대로라고 봐야 한다.

'이선정은 연쇄살인마에게 살해당한다.'

그걸 막아야 한다.

4. 지구 멸망을 막을 사람이 나밖에 없다

차우진이 물었다.

"그 신경 쓰이는 일이 스토커 이야기라면, 더 들을 수 있을까요?"

이선정이 머뭇거렸다.

"그게 별로 좋은 이야기가 아닌데…."

"아까 제가 얼마나 빨리 뛰는지 보셨지요?"

직접 달린 게 아니라 블링크로 공간을 건너뛰었다. 이선정은 그 순간은 보지 못했지만, 그가 순식간에 다가와 그녀를 구해줬다는 건 안다.

"그쵸. 정말 빠르시던데요."

"제가 운동을 좀 합니다.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까 말씀해주시죠."

"웅…."

그녀가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어차피 비밀로 해야 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예전처럼 경찰에 또 신고해야 하나 하는 생각하던 중이다.

"요즘 자꾸 누가 절 감시하는 느낌이 들어서요. 미행당하는 느낌을 몇 번 받았거든요."

차우진이 조금 전 상황을 다시 생각해보았다.

'이 주변에서 내 감각에 걸린 놈은 없었어.'

그는 조금 전에 꿈속에서 각성한 블링크 스킬를 사용했다. 근접 전투도 익숙했다.

그렇다면 멸망한 세상에서 단련된 감각도 남아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오늘 그녀 주변에서는 딱히 수상한 느낌은 받지 않았다.

"흥미로운데요. 더 듣고 싶군요."

"아. 그게 그러니까요. 자꾸 시선 같은 게 느껴졌거든요?"

이선정은 말을 하면서 마음이 조금 편해지는 걸 느꼈다.

'이런 이야기를 할 사람이 있으니까 좋다.'

차우진은 이선정과 식사를 하며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어느새 국밥 그릇이 비었다. 차우진은 국물까지 모두 마셨다.

이선정의 이야기는 그리 길지 않았다. 스토커가 존재한다는 증거는 없었다. 그저 요즘 그런 느낌을 받았다는 정도였다.

식사를 마친 후에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산은 이선정이 했다.

"제가 살게요."

"당연하죠. 살려드릴 건데."

그녀는 그 말을 잘못 이해했다.

"네? 아! 그렇죠! 방금 살려주셨죠."

식당에서 나온 후에 차우진이 말했다.

"댁이 어디이십니까? 바래다 드리죠."

"그럼 제 차가 있는 곳까지만 부탁드려요. 오늘은 일을 그만하고 집에 가야겠어요."

"이미 밤인데 뭘 얼마나 더 할 생각이었습니까?"

"토요일이잖아요. 이런 날은 원래 밤늦게까지 연구해요. 내일 늦잠 자면 되니까."

아포칼립스 시대에는 토요일이 없다.

"토요일이라. 정말 듣기 좋은 단어군요."

차우진은 이선정을 그녀의 차가 있는 곳까지 바래다주었다.

이선정이 물었다.

"댁이 어디세요? 제가…."

"버스 타고 가면 됩니다."

"아. 네."

차우진이 물었다.

"연락처 좀 받아도 될까요?"

"네? 네! 당연하죠!"

차우진은 이선정의 명함을 받은 후에 그녀를 먼저 보냈다. 이선정은 몇 번이나 인사한 후에 차를 타고 출발했다.

혼자 남은 차우진이 건물 밖에서 위를 올려다보았다.

"여기서 이선정 박사가 오메가 바이러스 치료제를 개발할 뻔했다는 거, 이젠 인정해야겠다."

오메가 바이러스는 10년 후에나 나타난다.

꿈속에서 본 10년 후 뉴스에 의하면, 이선정도 완전한 치료제를 개발하고 사망한 건 아니다. 게다가 그 치료제의 목적은 원래는 다른 질병에 적용하는 것이었다.

"미래의 오메가 바이러스 치료제는 이선정 박사가 이 시기에 연구한 것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어."

정식 치료제는 10년 후에 개발된다. 그런데 치료제가 개발된 때는 이미 다른 멸망급 재난이 터진 후였다.

그러면 너무 늦는다. 10년 후에는 치료제를 양산하고 지구 전체에 보급할 시간도, 시설도, 공급망도 다 부족해진다.

"만약 이선정이 살해당하지 않았다면, 오메가 바이러스가 발견되기 훨씬 전에 치료제를 개발했을 거라고 했지. 그 치료제는 다른 병에도 쓸 수 있으니 이미 충분히 생산돼 보급된 상태였을 거라고도 했고."

의료 시스템이 멀쩡하고 치료제가 이미 존재한다면, 오메가 바이러스는 초기에 잡을 수 있다. 그러면 그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뒤덮기 전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런데 이선정은 이 시기에 연쇄살인마에게 살해당한다. 그녀의 연구는 사장됐다가, 오메가 바이러스가 지구 전체에 창궐한 10년 후에나 알려진다.

차우진이 길을 걸었다. 황폐한 미래가 아니라 밝은 도시의 불빛이 좋았다.

"전기를 이렇게 사방이 다 환해질 정도로 넉넉히 쓰다니. 정말 좋은 세상이다."

그는 이 좋은 세상이 망하는 걸 원하지 않았다. 세상이 망하면 그가 아는 모든 사람과 그가 모르는 사람까지, 인류 전체가 죽거나 시궁창에 처박힌다.

그가 꿈속에서 본 미래는 지옥이다.

"젠장."

이젠 확실히 알 수 있다.

"그건 그냥 꿈이 아니야."

그게 문제였다.

이선정의 이름과 얼굴은 인터넷이나 잡지를 보고 알 수도 있었다. 그 기억이 남아 꿈에 나타났을 수 있다.

하지만 스킬은 다르다. 자고 일어났더니 공간을 건너뛰는 능력이 생겼다.

"그건 꿈속에서 쓰던 스킬인데."

스킬을 왜 쓸 수 있는지는 안다.

"스킬 각성은 깨달음의 영역이니까."

블링크 같은 초능력을 가지려면, 그 힘을 어떻게 쓰는지 '알게 되는' 것이 필요하다. 미래에는 그걸 깨달음 또는 각성이라고 불렀다.

스킬은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이해하고 알게 되면 쓸 수 있다.

하지만 스킬 사용법을 남에게 가르칠 수는 없다. 그 깨달음은 말로는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꿈속 미래에서 스킬을 남에게 가르치려고 시도한 사람은 많았지만 성공한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스킬이…."

지금 시점에서 사용 가능한 건 좀 이상했다.

"지구 멸망급 재난들이 터지지도 않았는데 쓸 수 있는 거였나?"

멸망급 재난 중 하나인 오메가 바이러스는 치사율 50%의 치명적인 전염병이다. 전염력도 굉장히 높다.

다른 재난들도 심각한 것들뿐이다. 오메가 바이러스보다 더 치명적인 재난도 있다.

"스킬은, 멸망급 재난들이 연달아 일어난 상황에서, 인류가 전멸을 피하려고 본능적으로 찾아낸 힘이라고 알려졌는데."

미래에는 그 이론이 대세로 취급받았다. 그렇게 각성한 능력을 스킬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지금은 오메가 바이러스가 없다. 다른 멸망급 재난들도 터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는 블링크 스킬을 사용했다.

"그런 일들을 겪지 않아도 쓸 수 있는 거였거나."

어차피 그건 가설이다. 각성 원리가 충분히 연구되기 전에 현대 문명이 멸망해 진실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차우진이 새로운 가설을 생각해냈다.

"나는 그 모든 재난을 꿈을 통해 이미 겪은 상태라서 스킬을 쓸 수 있는 건가?"

그 이유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어쨌든 그는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

"그러니까 세상이 10년 후에 멸망하는 것도, 개꿈이 아니라 현실이겠지."

그는 멸망한 세상은 바라지 않았다. 그 세상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절대로 원하지 않았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아직 세상은 멸망하지 않았다.

"이선정 박사가 나와 접촉해서 죽을 뻔했어. 내가 구하지 않았다면 죽었겠지. 원래는 그런 방식으로 죽는 게 아니야."

오늘, 꿈속 미래에서는 일어나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

"내가 개입해서, 미래가 변했다."

차우진이 도시를 보았다.

사람들이 바쁘게 지나가고, 거리에는 불빛이 환했다. 곳곳에 있는 식당에서 사람들이 웃고 떠들며 밥을 먹고 술을 마셨다.

그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10년 후에는 이 모든 것이 사라진다.

차우진이 현대 문명이 살아있는 화려한 세상을 보며 말했다.

"지구 멸망을, 내가 막아야 하는구나."

***

이선정 박사는 집으로 가서 오늘 일을 떠올렸다.

"나 아까 진짜 죽을 뻔했나 봐."

그 순간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리고 그때 그녀를 구해준 차우진이 생각났다.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같이 밥을 먹으며 이야기할 때도 마음이 편하고 즐거웠다.

그녀가 스마트폰을 보았다.

"잘 들어갔는지 안 물어봐 주나?"

그녀는 명함을 주기만 했을 뿐 차우진의 전화번호를 받은 건 아니다. 그러니 먼저 연락할 방법이 없다.

그녀가 침대에 누워서 스마트폰을 보며 말했다.

"이상하다. 내 팬이라고 했는데, 왜 톡이 안 오지?"

***

차우진은 집에서 오늘 일을 분석했다.

꿈에서 경험한 것이 실제로 일어날 미래라는 건 이제 확신했다. 꿈에서 하던 방식 그대로 블링크 스킬을 사용할 수 있는데도 의심하는 건 바보짓이다.

"내가 꾼 건 예지몽이겠지."

예지몽 속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이선정이 차에 치일 뻔한 건 차우진과 접촉하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아직 이선정 박사가 살해당할 거라는 건 바뀌지 않았어."

오늘 차에 치일 뻔한 이선정을 구했는데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예지몽에서 본 그녀의 사망 원인은 연쇄살인마에 의한 살인이다.

"그 살인마 새끼의 얼굴이…."

뉴스나 잡지에는 이선정의 사진은 많이 나왔다. 하지만 그녀를 죽인 살인자의 얼굴은 어쩌다 한 번, 잠깐 나오는 정도였다. 그녀의 사건은 10년 후 기준으로는 10년이나 지난 옛날 사건이기 때문이다.

차우진은 연쇄살인마의 얼굴을 방송에서 몇 번밖에 보지 못했다. 그것조차도 대역배우가 연기할 때가 있어서 헷갈리기까지 했다.

게다가 멸망 후의 세계에서 오랫동안 살아남은 그의 기준으로는, 그 뉴스는 아주 오래전에 본 것이다.

그래서 문제가 생겼다.

"그 살인마의 얼굴이 기억이 안 나네."

***

폐업한 지 오래된 낡은 창고에 사람들이 모였다. 주로 경찰들이고 119구급대원도 있었다. 근처에는 노란색 경찰 차단선이 처져 있었다.

관할 경찰서 형사팀장이 피해자의 모습을 보며 인상을 구겼다.

"젠장."

피해자의 발목은 빨간 끈으로 묶여 있었다.

먼저 현장에 도착해 상황을 파악한 형사가 설명했다.

"목격자가 신고했을 때는 이미 이런 상태였습니다. 최소한 보름은 방치된 것 같습니다."

"이 모습은…."

"남부서 관할에서 발견된 피해자와 비슷합니다. 그 새끼 짓입니다."

팀장이 욕을 했다.

"씨발. 그 연쇄살인마 새끼가 우리 관할로 넘어왔어."

"어떻게 할까요?"

"뭘 어떻게 해? 빨리 잡아야지. 이 새끼 살인 간격이 더 빨라졌다. 아마 지금쯤이면 다음 피해자를 노리고 있을 거다."

***

창문에 암막 커튼을 쳐놓은 방에서 남자가 벽에 붙어 있는 사진을 노려보았다.

"이선정 박사."

그 사진 옆에는 이선정의 개인정보나 회사 위치, 출퇴근 경로 등이 적혀 있었다.

그 자료를 살펴보던 남자가 이선정의 사진에서 가느다란 발목 부분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예쁘네. 마음에 들어."

5. 살인마

이튿날 점심 때쯤에 이선정이 집을 나왔다.

오늘은 일요일이지만 개인 연구는 이럴 때 하지 않으면 시간이 나지 않는다. 평일 낮에는 회사의 다른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

그녀가 차를 몰고 회사로 향했다. 그러다 룸미러를 힐끗 보았다.

"진짜 누가 나를 미행하는 거 같은데…."

요즘 그런 느낌을 종종 받았었다. 그녀가 차의 속도를 높였다. 뒤따라오던 차가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겁을 먹었다.

"어떻게 해! 진짜 미행인가 봐!"

***

차우진이 이선정의 차를 쫓아가며 말했다.

"오해했나 보다. 혹시 몰라서 지켜보려던 것뿐인데."

그는 꿈속 미래에서 그녀가 이 시기에 살해당한다는 기사를 봤다.

하지만 정확한 날짜는 모른다. 멸망급 재난은 오메가 바이러스 외에도 많았다. 기사에 그녀의 사망 일자가 나오긴 했는데, 정확한 날짜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서 기억에 남지 않았다.

"이 상황을 뭐라고 설명해야 하려나."

이선정이 회사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차우진의 차는 주차장 옆 길가에 섰다.

이선정이 차에서 내린 후에 숨을 몰아쉬었다.

"진짜 여기까지 따라왔어."

일요일이라 지나다니는 사람은 별로 없었지만, 건물에는 경비 직원이 있다. 그녀가 얼른 회사로 뛰어들어가려고 했다.

차우진이 차에서 내리며 그녀를 불렀다.

"이선정 씨."

그녀가 뒤를 휙 돌아보았다.

"어머. 차우진 씨?"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미행한 사람이 차우진 씨였어요?"

"오해가 좀 있는데, 미행한 게 아니라…."

"설마 어제 나랑 마주친 것도…."

차우진이 다가가며 말했다.

"그건 우연이고요."

이선정은 안심할 수 없었다. 얼마 전부터 누군가 감시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가까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선정 씨가 위험할 것 같아서 그럽니다."

"어제 일은 우연이라면서요!"

"그렇죠. 앞으로 일어날 일은 우연이 아니지만."

그녀가 바짝 긴장했다.

"혀, 협박하는 건가요?"

차우진이 머리를 긁적였다.

"아. 그렇게 들릴 수도 있겠군요. 협박이 아니라 경고인데."

"겨, 경고요?"

그녀가 뒤를 보았다. 건물 입구가 보였다. 안에는 경비원이 있다. 회사 사무실은 카드키가 없으면 출입할 수 없다.

그녀가 빠른 속도로 말했다.

"저기요. 어제는 정말 고마웠어요. 그래도 이런 미행은, 안 하셨으면 좋겠어요!"

그녀가 거기까지만 말하고 건물을 향해 뛰어갔다.

차우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조만간 연쇄살인마에게 살해당할 거라고 말할 수도 없고."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 설명할 방법이 없다.

오히려 그녀가 그 이야기를 들으면 차우진이 연쇄살인마와 한패가 아닌지 의심할 수도 있다. 만약 경찰에 신고라도 하면 앞으로의 일이 꼬인다.

"환장하겠네."

***

이선정은 회사에서 개인 연구를 진행하다가 잠시 창밖을 보았다.

"아까 내가 너무 했나?"

미행당해서 불안한 건 사실인데 어제 차우진이 그녀를 구해준 것도 사실이다.

"아. 몰라. 나도 무서웠단 말이야."

게다가 지금은 연구의 중요한 단계를 진행하는 중이다.

"지금은 여기 집중하자."

***

이선정이 두 시간 후에 회사를 나왔다.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연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녀가 지상 주차장에 세워둔 차 앞에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차우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갔구나."

살짝 아쉬우면서 동시에 마음이 조금 놓였다. 지금까지 기다렸다면 그건 그것대로 걱정해야 할 일이다.

"전화해서 왜 나를 따라온 건지 물어나 볼까?"

그럴 수가 없다. 차우진의 전화번호를 모른다. 그녀가 잠시 고민하다가 마음을 바꾸었다.

"아니다. 이제 안 찾아오겠지."

그녀가 차에 탔다. 오늘은 충청남도에 볼일이 있다.

이선정이 차를 몰고 충청남도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다양한 식물을 취급하는 약재상이 있었다.

그런데 약재 중에 전부터 찾던 것이 있었다.

그녀가 환한 얼굴로 말했다.

"사장님. 이것까지 구하실 줄은 몰랐어요. 이건 국내에는 없는 줄 알았거든요."

약재상 사장이 자랑했다.

"산삼 캐러 다니는 심마니가 가져왔더라고요. 전에 주고 간 사진 중에 이게 있다는 게 생각나서 바로 연락했지."

"고맙습니다."

"나야 뭐 돈 받고 하는 일인데. 그런데 그게 원래는 국내에 없는 거라면, 심마니가 어떻게 가져온 걸까? 수입했나?"

"직접 수입할 정도로 흔히 쓰는 식물은 아니에요. 지구의 환경이 계속 변하는 중이니까 옮겨온 거겠죠."

그녀는 그곳에서 다양한 식물을 챙겨 차에 실었다.

약재상에서 생각보다 시간을 오래 보냈다. 이미 해가 질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밥이나 먹고 가야겠다."

그녀가 이 지역에 오면 곧잘 가던 식당이 있다. 그녀는 그곳으로 걸어갔다.

"음?"

그녀가 뒤를 슬쩍 보았다. 누군가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뒤를 돌아보아도 길 위에는 사람 자체가 보이지 않았다.

적막한 길을 보니 조금 겁이 났다.

그녀가 식당으로 조금 더 빨리 걸어갔다.

***

김준배는 마스크를 쓰고 그녀의 뒤를 조용히 따라갔다. 그는 그녀가 뒤를 돌아보려고 하는 순간에 엄폐물 뒤로 숨었다.

"감이 좋은 여자인데? 그래도 설마 눈치챈 건 아니겠지."

이선정이 다시 걸어갔다. 김준배도 조용히 이선정을 미행하며 히죽 웃었다.

"이선정 박사. 이곳에 오면 꼭 들르는 식당이 있다더니, 이번에도 마찬가지군."

그의 뒤에서 차우진이 말했다.

"그러게. 얼마나 맛있는지 궁금하네. 나도 꼭 먹어봐야지."

김준배는 화들짝 놀라 뒤로 휙 돌아섰다. 차우진이 그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김준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누구냐."

"누구겠냐?"

김준배가 인상을 쓰며 물었다.

"혹시 이선정 박사의 경호원?"

"팬이라고 해두자."

"경호원을 둘 줄은 몰랐는데. 뭔가 눈치챈 건가?"

"팬이라니까."

김준배가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너. 끼지 말아야 할 일에 끼었구나."

"그러게 말이다."

"응?"

지구 멸망을 막으려면 이선정이 살아야 한다.

"나는 이선정 박사의 연구가 무사히 끝나는 걸 원해. 지금 세계에는 그 연구 결과가 꼭 필요하거든. 그런데 네가 이선정 박사를 죽이러 왔네?"

차우진이 김준배를 보며 말했다.

"그걸 알면서도 놔둘 수는 없지."

김준배의 눈이 허옇게 번뜩였다.

"너. 뭘 알고 있지?"

"네가 살인자라는 거?"

"그럼 너도 죽어야겠어."

차우진은 김준배의 기세에서 익숙한 살기를 느꼈다.

"너 그 말 진심이구나?"

"이제야 후회가 되나?"

차우진이 히죽 웃었다.

"아니지. 이렇게 나와야지. 그래야 나도 마음이 편하지."

김준배가 주머니에서 손을 꺼냈다. 손에는 접이식 칼이 쥐어져 있었다. 칼날이 제법 길었다.

김준배가 시퍼렇게 갈린 칼을 앞으로 겨누며 말했다.

"저승에 가거든 일감을 잘못 받아서 죽었다고…."

차우진이 말을 끊었다.

"새끼 거 말 많네."

김준배에게 말을 많이 시킨 건 차우진이다. 상대가 살인마인지 확인하려면 그럴 필요가 있었다.

"네가 살인자인 건 확인했고, 이게 첫 살인이 아니라는 것도 알겠는데."

그럼 김준배를 잡아야 한다. 그런데 걸리는 게 있었다.

장소가 맞지 않았다. 그가 아는 곳은 여기가 아니다.

"너는 오늘 이선정 박사를 죽이려고 작정한 건 아닐 거야. 계속 따라다니면서 완벽한 상황이 오기를 기다리는 중이냐?"

김준배의 표정이 굳었다.

"너 이 새끼. 어디까지 아는 거야!"

"맞네."

차우진이 손을 흔들었다. 소매에서 빠져나온 작은 칼이 손바닥 위에 올라왔다.

그 칼은 너무 작아서 단검이라고 부르기도 어려웠다. 칼날의 길이가 손가락 하나 정도로 짧았다.

이 작은 칼은 황학동 벼룩시장에서 상인이 좌판에 늘어놓고 팔던 것을 샀다. 더 큰 무기는 눈에 뜨이거나 판 사람의 기억에 남기 때문에 살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이 칼이 장난감은 아니다. 칼날의 소재는 구리가 아니라 진짜 강철로 만들어져 있다.

문제는 칼의 크기다.

칼날의 길이는 김준배가 가진 접이식 나이프가 세 배는 더 길었다. 칼날의 넓이도 더 넓고, 두께도 더 두꺼웠다.

더 크고 긴 칼을 가진 김준배가 실실 웃었다.

"너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구나?"

"굳이 알아야 하나 싶긴 하다."

차우진은 연쇄살인마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연쇄살인마를 잡으면 이선정이 꿈속에서 본 사건으로 살해당하는 미래는 막을 수 있다. 그게 목적이다.

문제는 차우진의 전투력이다. 그가 작게 투덜댔다.

"꿈속의 전투 감각이 현실에서 충분히 구현이 안 되면 망하는 건데 말이야."

김준배가 차우진을 향한 칼날을 천천히 움직이며 말했다.

"마포 쌍칼이라고 들어봤나? 그게 바로 나다."

"나를 죽일 테니까 네 별명을 들어도 상관없다는 뜻이지?"

"크흐흐. 잘 아는구나."

차우진이 김준배의 칼을 쥔 자세를 보며 피식 웃었다.

"겨우 그 실력으로?"

"이 새끼가!"

김준배의 살기가 강해졌다.

현대 문명이 무너진 세계에서 탄약 생산 공장이라고 멀쩡할 리 없다. 탄약을 아끼려면 총보다는 칼 같은 무기를 자주 써야 한다.

차우진이 생각했다.

'현실에서는 칼로 싸워본 적이 없는데.'

맨손 전투 능력은 어제 골목에서 담배 피우던 고등학생들을 상대로 확인했다. 하지만 칼은 현실에서 쓴 적이 없다.

게다가 상대는 어제 같은 아마추어 고등학생이 아니라 살인 경험이 있는 칼잡이다.

그래서 조금 불안하긴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놈을 막지 못하면 어차피 세상은 멸망해.'

지구 멸망을 생각하자 차우진의 눈빛이 조금 어두워졌다.

김준배는 그 모습을 다르게 받아들였다.

'눈에 독기가 없어. 사람을 찔러본 적 없는 일반인이구나! 그러면 쉽지. 움직임이 뻔할 테니까.'

차우진의 오른쪽 어깨가 슬쩍 흔들렸다. 김준배는 그걸 공격 신호로 받아들였다.

'어깨! 그러면 나는 저놈의 왼쪽으로 피하면서 옆구리를 친다!'

차우진은 어깨만 슬쩍 흔들어 상대를 유인했다.

김준배가 오른쪽 앞으로 돌진하며 칼을 크게 휘둘렀다.

차우진은 김준배의 돌진 속도에 맞춰 이미 왼쪽으로 움직인 후였다.

칼날이 허공을 갈랐다.

김준배는 당황했다.

"어?"

차우진이 김준배의 다리를 툭 걷어찼다.

"큭!"

김준배가 무게중심을 잃고 옆으로 나동그라졌다가, 몸을 굴려 벌떡 일어났다.

"씨발. 이게 어떻게…."

차우진이 말했다.

"페이크다."

"너 이 새끼! 일반인이 아니구나!"

보통 사람은 칼날 앞에서 그런 여유를 부리기 어렵다.

차우진이 피식 웃었다.

"처음에는 나를 경호원이라고 하더니, 몇 초 만에 그걸 까먹고 일반인이라고 착각한 거냐? 그러다 또 아닌 걸 알고? 붕어 대가리인가?"

"이 새끼가!"

차우진은 직접 해보기 전에는 꿈속에서 쓰던 근접 전투 기술이 칼잡이를 상대로 얼마나 통할지 몰랐다.

"방금 그건 내가 지옥문이 열린 곳에서 쓰던 기술인데."

일단 싸워보니, 꿈속에서 쓰던 기술이 칼잡이에게도 아주 잘 먹혔다.

"이게 되네."

6. 살인마 II

모든 신체 동작이 차우진의 기억대로 되는 건 아니다. 차우진의 움직임은 꿈속 미래에서 싸울 때보다는 느렸다.

지금 몸과 그때 몸은 신체 능력이 다르기 때문이다.

차우진이 말했다.

"내가 원래는 무서운 사람인데 말이야."

신체는 꿈속 미래와 다르지만 그때 획득한 전투 센스는 다르지 않았다.

"지금 몸 상태로도 붕어 대가리 하나 잡는 건 쉬워."

김준배의 기세가 조금 쭈그러들었다.

"이 새끼…."

"너 무슨 궁리 하냐? 눈알 굴리는 게 보인다?"

지금은 이 주변을 지나가는 사람이 없지만, 언제 누가 나타날지 모른다. 누군가 신고해서 경찰이 오면 김준배가 불리해진다.

김준배가 눈알을 굴리며 생각했다.

'저 새끼도 나랑 비슷한 과야. 나처럼 목적이 있어서 저 여자를 따라다닌 거야.'

그가 옆을 슬쩍 보았다. 산이 있었다.

김준배가 갑자기 그 산을 향해 후다닥 뛰었다.

"튀냐?"

차우진이 김준배를 따라갔다.

"아니구나. 목격자가 없는 곳으로 나를 유인하는 거네."

차우진도 이 자리가 곤란한 건 마찬가지다. 경찰이 오면 칼잡이와 왜 칼을 휘두르며 싸웠는지 설명해야 한다. 그건 반가운 상황은 아니다.

예정된 멸망급 재난은 오메가 바이러스 하나가 아니다. 차우진이 이런 사건으로 유명해지면 앞으로의 활동에 좋을 게 없다.

차우진이 말했다.

"산으로 들어가 주면 편하지. 내가 산이나 폐허에 익숙하거든."

***

이선정은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가게 밖을 보았다. 지나가는 사람은 없었다.

"누가 쫓아오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그녀가 다시 밥을 먹으며 말했다.

"요즘 내가 너무 과민반응을 하나 봐. 그래서 차우진 씨한테도 실례한 거겠지."

아까 차우진이 미행하는 줄 알고 도망친 일을 생각하니 부끄러웠다. 그녀가 음식을 부지런히 입에 집어넣었다.

"밥 먹자."

***

차우진은 산에 남은 흔적을 따라 이동했다.

"하이에나 새끼들을 추격하던 거 생각나네. 이것도 되게 익숙하다."

그는 이틀 전까지만 해도 산악 추적술이 뭔지도 몰랐다. 그런데 지금은 적이 어디로 어떻게 이동했는지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차우진이 걸음을 멈추었다. 그의 앞에 나뭇잎이 무성한 나뭇가지가 휘어져 있는 게 보였다.

"이따위 걸 함정이라고 만들었어?"

김준배가 도망치면서 급히 함정을 설치했다. 구조는 간단했다. 사람이 지나가다 건드리면 휘어진 가지가 쫙 펴지며 그 끝에 달린 작은 칼이 다리에 꽂힌다.

"참 조잡하다."

아포칼립스 세계에는 함정을 파는 놈이 흔했다.

실력이 좋은 놈들은 훨씬 기술적이고 잘 은폐된 함정을 판다. 그들은 이런 대낮에 뻔히 보이는 곳에 어설픈 함정을 설치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그 시대의 모든 사람이 전문가 수준의 함정을 파는 건 아니다. 이런 낮은 수준의 함정을 짐승이 아니라 사람을 잡으려고 설치하는 놈들도 제법 많았다.

차우진이 함정 뒤쪽을 보았다. 사람이 몸을 숨길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바위가 있었다.

"여기서 내가 함정 때문에 당황하면 저기서 튀어나와 공격하기 딱 좋긴 하다."

***

김준배는 바위 뒤에 숨어 있었다. 귀는 쫑긋 세운 상태였다.

'날 못 찾은 건가?'

차우진은 산속을 이동하는데도 소리를 거의 내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바위 뒤에서 귀를 기울여도 차우진이 어디까지 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쪽으로 왔으면 함정에 걸려 다리에 칼을 맞을 테고.'

그 함정만으로는 치명상을 입히긴 어렵지만, 일단 다리에 칼을 맞으면 전투력은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면 김준배는 바위 뒤에서 튀어나가 차우진에게 칼을 꽂을 생각이다.

'그놈이 선빵을 맞은 후라면 내가 쉽게 이겨.'

문제는 차우진이 이쪽으로 오지 않았을 때였다.

'그럼 나도 숨어 있는 장소를 바꿔야….'

갑자기 등 뒤에서 바람이 훅 불었다.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바람까지 신경 쓰이게….'

"헉!"

차우진이 위쪽에 서서 김준배를 내려다보며 히죽 웃었다.

"야. 여기 숨어 있었네?"

김준배는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어, 어떻게 내 뒤에…."

이해가 가지 않았다.

"여기는 저 앞으로 올라올 수밖에 없는데 어떻게!"

"잘."

"뭐?"

"부비트랩이 참 조잡하더라. 하나밖에 없는 길에 설치한 건 좋은데, 기왕 할 거면 잘 좀 숨기든가."

김준배가 칼을 앞으로 겨누며 바짝 긴장했다.

"보통 놈이 아니구나!"

"그새 까먹었냐? 너도 내가 보통이 아닌 걸 알고 있었잖아. 멸망에 관여한 빌런이 정작 하는 짓은 붕어 대가리 수준이라니. 실망이다."

"자꾸 붕어라고 하지 마! 이 새끼야! 내가 누군지 아나? 나 영등포 쌍칼이다!"

"산 밑에서는 마포 쌍칼이라더니? 붕어 맞네."

"내가 바로 쌍칼이라고!"

차우진이 김준배의 칼을 꽉 쥔 손과 번뜩이는 눈알을 본 후에 물었다.

"너 지금까지 몇 명이나 죽였냐?"

"너까지 죽이면 셋이다!"

"구라 치고 있네. 더 있을 텐데?"

"내가 칼을 꽂은 놈은 많으니까 더 죽었을 수도 있겠지! 그거야 죽은 놈 팔자고!"

"너 별명이 쌍칼이긴 하냐?"

김준배는 산 아래로 도망치는 건 포기했다. 여기서 차우진에게 등을 보이면 곧바로 당할 것 같아서 그럴 수가 없었다.

그럼 선택지는 하나밖에 남지 않는다.

김준배가 차우진을 향해 돌진하며 외쳤다.

"씨발! 그냥 좀 죽어!"

아래에서 위로 뛰어오르면 평지만큼의 속도를 내기 어렵다. 그런 놈을 상대하는 데는 시간 가속 스킬을 쓸 필요도 없다.

차우진이 바닥을 걷어찼다. 발에 차인 흙과 나뭇잎들이 김준배의 얼굴로 날아갔다.

"큭!"

김준배가 순간적으로 눈을 감았다. 눈을 뜨고 있으면 눈에 흙이 들어갈 판이라 어쩔 수 없었다.

그렇다고 그 자리에 멍청히 서 있지는 않았다. 김준배가 즉시 옆으로 뛰었다.

그런데도 갑자기 오른팔에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

"끄악!"

김준배가 급히 눈을 떴다.

차우진은 적이 눈을 감는 순간 앞으로 이동해 그의 오른팔부터 칼로 그었다. 김준배가 옆으로 피한 데다가 칼이 워낙 작아 상처는 얕았다.

김준배가 이를 갈았다.

"이 새끼…."

차우진이 팔을 들어 어깨를 휘휘 돌리며 몸을 점검했다.

"쯧. 그게 빗나가네. 역시 몸 움직이는 게 좀 달라."

현재의 근력과 유연성, 체중은 꿈속 미래와 달랐다. 그 차이를 실시간으로 수정해서 싸웠더니 몸에 부담이 조금 갔다.

김준배가 말했다.

"비겁하게 눈에 흙을…."

"그게 칼을 들고 여자를 몰래 따라가던 놈이 할 소리냐?"

멸망한 세계에서는 싸울 때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 시대에는 살아남은 놈이 강한 놈이다.

차우진이 그 세계에서 싸울 때는 전투에 최적화된 신체를 가지고 있었다. 반면에 지금은 최적화는 고사하고 배가 나온 상태다.

배가 나온 지금의 몸으로는 고기동 전투가 편하진 않았다.

차우진이 투덜댔다.

"그렇다고 살을 빼긴 싫은데."

아포칼립스 시대에는 식량은 부족하고 전투는 치열해서 이런 체형을 유지하기 어렵다. 지금 그의 신체는 그 시대에 그렇게 그리워하던 몸이다.

김준배가 왼손으로 칼을 들며 소리를 질렀다.

"내가 쌍칼이라고 했잖아! 나 원래 왼손잡이야!"

"쫄리냐? 왜 혀가 그렇게 길어?"

"이 새끼가!"

"좋은 정보를 그렇게 떠드는 건 겁먹었다는 뜻이지."

'아니면 페이크거나.'

김준배의 지금 위치는 도망치기 좋은 지형은 아니다. 게다가 지금 도망치면 설사 도주에 성공한다 해도 목격자가 남는다.

"이 새끼. 너 죽여버린다!"

김준배가 소리를 지르면서 차우진을 향해 돌진했다. 차우진은 그 모습을 보면서 꿈속에서 겪은 일을 생각했다.

***

현대 문명이 무너진 후에도 겨우 유지되던 소규모 생존그룹 하나가 전멸했다. 피해자는 여덟 명이었다.

차우진이 바닥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낡은 곰 인형이 찢어진 채로 폐허 위를 굴러다녔다.

주변을 확인한 박창수가 다가왔다.

차우진이 물었다.

"그쪽에 생존자는?"

"없어."

"여기도 없어."

차우진이 현장을 둘러보며 말했다.

"외부에서 들어온 기습 공격에 전멸했어."

그가 바닥에 떨어진 부러진 칼을 가리켰다.

"저거 기억나?"

박창수가 인상을 썼다.

"칼에 새겨진 무늬가 눈에 익네. 며칠 전에 본 그 새끼들 짓이구나."

두 사람은 며칠 전에 약탈자 넷과 충돌했다. 그때 둘은 처리했는데, 둘을 놓쳤다.

그때 제거한 두 놈의 칼에 똑같은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차우진이 말했다.

"그때 두 놈을 놓쳤더니, 여기서만 여덟 명이 더 죽었어."

"살인마들은 피를 봐야 사니까. 어떻게 할래?"

"지금 봤잖아? 그 새끼들을 놔두면 어떻게 되는지. 이틀 전 전투의 마무리는 해야지."

박창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역시 그게 맞지. 악마는 다 뒈져야지."

"악마는 다 뒈져야지."

***

칼잡이 김준배가 차우진을 향해 돌진하며 칼을 뻗었다.

차우진은 경찰에 김준배를 신고할 수 없다. 김준배가 이선정을 죽이려 했다고 신고하거나 증언할 수 없다.

막아야 하는 멸망급 재난은 하나가 아니다. 차우진은 이런 일로 노출되어서는 안 된다.

김준배가 왼손에 쥔 칼을 차우진의 목을 향해 내질렀다.

차우진이 옆으로 슬쩍 움직여 적의 칼을 피했다.

'느린데?'

시간 가속 스킬을 사용한 것도 아닌데 김준배의 칼이 느렸다. 적이 왼손을 사용했다는 걸 고려해도 너무 느렸다.

'그럼 페이크인가?'

차우진이 왼팔을 아래로 내렸다.

김준배의 오른팔이 갑자기 차우진의 왼쪽을 노리고 채찍처럼 휘어져 들어왔다. 적의 오른손에는 작은 단검이 쥐어져 있었다. 분명히 조금 전에 다친 팔인데도 공격 속도가 빨랐다.

어차피 예상했던 공격이다. 차우진이 왼손으로 적의 손목을 받아쳐 기습 공격을 가볍게 빗겨냈다. 그러면서 오른손의 작은 단검을 위로 들었다.

김준배는 즉시 뒤로 펄쩍 뛰었다. 일부러 오른팔이 많이 다친 척하며 기회를 노리다 기습했는데 전혀 통하지 않았다.

차우진이 물었다.

"겨우 이걸 노린 거냐?"

다급해진 김준배가 양손에 쥔 두 자루 칼을 빠른 속도로 번갈아 휘두르며 차우진을 향해 돌진했다.

"죽어어!"

차우진이 뒤로 물러나며 오른팔을 휙 뻗었다.

"악마는 다 뒈져야지."

작은 단검이 표창처럼 날아갔다.

김준배는 두 자루의 칼을 무리하게 휘두르던 중이라 그 공격을 피할 수가 없었다. 급히 칼로 그 단검을 쳐내려고 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단검이 너무 가까운 거리에서, 너무 빠르게 날아왔다.

아포칼립스 세계의 비검술은 적을 확실히 죽이는 쪽으로 발전했다. 차우진이 던진 작은 칼이 김준배의 목에 정확히 꽂혔다.

"컥!"

김준배가 뒤로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양손에 쥔 칼을 떨어뜨리고 두 손으로 목의 칼을 뽑으려 했다.

차우진이 그 모습을 보며 말했다.

"몇 명이나 죽였는지 자기도 모른다던 연쇄살인마 새끼도 살고는 싶나 보구나."

"커컥."

김준배는 산 아래에서부터 차우진을 칼로 죽이려 했다. 미행 목적을 눈치챘다는 이유만으로 처음부터 목숨을 노렸다.

과거에도 살인을 저질렀다는 자백도 했다.

게다가 김준배의 칼솜씨와 살기는 사람을 죽여본 놈의 것이었다. 차우진은 그런 놈들을 많이 봐서 잘 안다.

'모두 꿈에서 본 거지만.'

그 꿈은 그냥 개꿈이 아니다.

"너를 살려서 보내면 결국 이선정 박사를 죽이겠지. 이선정이 죽으면 10년 후에 지구에 사는 사람 절반이 죽어."

차우진은 지구 멸망 이후의 세상을 기억한다.

그 멸망급 재난 중 하나라도 막을 수 있다면, 살인마쯤은 망설임 없이 죽일 수 있다.

김준배가 차우진을 향해 손을 뻗었다. 뭔가 말하려고 했지만 목에 칼이 박혀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김준배가 팔을 뻗은 채로 뒤로 나자빠졌다.

전투가 끝났다. 차우진도 전투 상태에서 벗어나 평소의 감각으로 돌아왔다.

"어우."

평소의 차우진으로 돌아오자마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멘탈이 무너진 건 아니다. 멸망한 미래를 경험한 차우진의 정신은 살인마 하나 죽인 일로 충격을 받지는 않는다. 그건 그 세계에서는 흔한 일이다.

그렇다고 현실에서 목숨을 걸고 싸운 것이 아무런 충격도 안 준 것도 아니다.

"와. 칼 든 놈하고 싸우니까 살 떨린다. 칼 맞을 뻔했네."

여기 더 있고 싶진 않았지만 마무리는 해야 한다.

차우진이 김준배에게 다가가 얼굴을 덮고 있는 마스크를 벗겼다.

"이 새끼가 연쇄살인마라는 게 밝혀지면, 경찰도 그쪽으로 수사…. 음?"

문득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김준배의 얼굴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그 연쇄살인마가 이렇게 생겼었나?"

꿈속 뉴스에 연쇄살인마의 얼굴까지 나온 경우는 별로 없었다. 꿈의 마지막 시점을 기준으로 보면 그 뉴스를 본 것조차 너무 과거의 일이라서 그 사진이 제대로 기억나지 않았다.

"이놈이 살인자에, 이선정 박사를 노린 건 확실한데…."

뉴스에서 본 연쇄살인마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40억 명의 목숨이 걸린 일이다. 작은 위험도 무시할 수 없다.

다른 가능성이 떠올랐다.

"만약 이선정 박사를 노린 살인마가 하나가 아니라면?"

이놈이 오늘 이선정 박사를 죽이려 했다면, 이놈이 그 연쇄살인마라고 판단하는 게 합리적이다.

그런데 그게 아닐 수도 있다.

"이놈이 재미가 아니라 다른 이유로 이선정 박사를 노린 거라면…."

그녀를 죽이려는 진짜 연쇄살인마가 따로 있을 수도 있다.

"이선정 박사. 어그로가 얼마나 심하게 끌린 거야?"

7. 살인마 III

차우진은 작은 단검을 회수하고 김준배가 죽은 장소를 벗어났다.

"내가 개입해서 상황이 바뀐 줄 알았는데."

그는 칼잡이 김준배가 오늘은 간을 보다가 나중에 다른 장소에서 이선정을 살해하려 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런 일이 생기기 전에 미리 김준배를 제거했다.

그런데 상황이 변했다. 이선정을 노리는 놈이 김준배 하나가 아닐 수도 있다.

"설마 다른 연쇄살인마의 디데이가 오늘은 아니겠지."

이선정이 이맘때쯤 살해당한다는 건 안다. 하지만 정확한 날짜는 모른다.

대신에, 그녀가 어디서 살해당하는지는 안다.

***

등산 삼아 산을 오르던 사람들이 소변을 보려고 길을 잠시 벗어났다. 그중 한 명이 앞쪽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어? 저거 혹시 시체 아냐?"

"에이. 설마. 그냥 옷이 버려진…. 으아악! 시체다!"

"119, 아니, 112!"

그 지역 파출소의 경찰이 신고를 받고 출동해 현장을 확인했다. 그 파출소 경찰은 출동할 때만 해도 야생동물이나 버려진 옷을 잘못 보고 신고했을 거라고 판단했다. 지난달에도 그런 신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이 현장에서 확인한 건 야생동물이 아니라 칼잡이 김준배였다.

"소장님. 신고가 진짜인데, 어떻게 하죠?"

"일단 지원 요청…. 야! 현장 통제 안 해?"

소식을 들은 등산객 몇 명이 현장을 구경하러 오고 있었다.

"어? 거기 선생님! 그쪽으로 가면 안 됩니다!"

"아니, 난 사진만 좀 찍…."

"잘못하면 선생님이 용의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헉! 아직 가까이 안 갔어요! 손도 안 댔다고요!"

그 지역 관할 경찰서 형사팀에서 도착했을 때는 현장에 외부인의 접근이 완전히 통제된 상태였다.

형사들이 현장을 조사했다.

"이거 살인사건인데요?"

"바닥에 단검들이 떨어져 있고 목에 칼을 맞았는데 그럼 사고겠냐?"

형사팀장은 조금 늦게 현장에 도착했다.

"어디야?"

"이쪽입니다."

김준배의 시체는 숲 속에 있었다.

형사팀장이 김준배의 상처를 살펴보며 말했다.

"피해자가 목에 칼에 맞았는데…. 칼이 작겠어. 이거 흉기는 찾았냐?"

먼저 도착한 형사가 보고했다.

"아니요. 피가 묻은 칼은 못 찾았습니다."

팀장이 혀를 찼다. 살인사건은 흉기를 찾아야 한다.

"쯧. 칼이 작으니까 도로 가져가기 쉬웠겠지."

"대신에 피해자의 칼은 찾았습니다."

"응?"

"그런데 피해자의 칼이 꽤 큽니다."

팀장이 인상을 썼다.

"피해자도 칼이 있다고? 그건 왜 전화로 보고 안 했어?"

"저희도 조금 전에 와서요."

"그 칼은 어디 있어?"

"이 형사가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팀장이 짜증을 냈다.

"왜 자꾸 그런데야? 또 뭐가 그런데?"

"칼이 하나가 아닙니다."

"어?"

다른 형사가 비닐 봉투에 보관된 증거품들을 가져왔다.

"피해자가 직접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칼이 두 자루에, 아직 제대로 꺼내지도 않은 거 한 자루를 더 찾아냈습니다. 피해자의 몸을 제대로 수색하지도 않았는데 세 자루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셋 다…."

"피해자의 것이다?"

"그렇게 보입니다."

다른 형사가 다가왔다.

"팀장님. 저쪽에는 부비트랩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나뭇가지를 건드리면 가지가 쫙 펴지면서 거기 매달린 칼에 맞는 방식의 함정인데요. 아직 칼이 달려 있습니다."

"그거 잘못 건드리면 다칠 텐데? 통제 확실히 했어?"

"함정이 작동하지 않게 누가 가지를 부러뜨려놨던데요."

"다행…. 응? 누가?"

"저 사람을 죽인 범인 아닐까요?"

"그럼 그 함정은 피해자가 설치했다는 건데…."

충청도 경찰서 형사팀의 팀장이 증거물 봉투에 담긴 칼들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피해자는 일반인은 아니겠어. 피해자 신원조회는?"

"아직 지문도 못 떴습니다."

충청남도 경찰서의 형사팀장이 지시했다.

"신원조회부터 빨리 진행해. 일반인이 아니니까, 다른 지역에 누구 아는 사람이 있는지까지 다 알아봐."

***

서울 지역 경찰서 회의실에 다른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팀이 모여 있었다.

회의실 대형 화면에는 목에 문신이 있는 남자의 사진이 떠 있었다. 형사가 용의자의 정보를 설명했다.

형사과장이 말했다.

"저건 아닌 것 같다. 다음."

"다음 용의자입니다."

문신 남자의 사진이 사라지고 화면이 칼잡이 김준배의 사진으로 바뀌었다.

형사가 설명했다.

"이름은 김준배. 칼 두 자루를 잘 써서 쌍칼이라는 별명을 가진 칼잡이입니다. 인천 쪽에서는 김준배가 청부 살인을 했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습니다."

형사과장이 물었다.

"이놈은 청부업자라고?"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리 살인사건의 용의자 중 하나이고?"

"예."

"저건 느낌이 온다. 체포는?"

"지켜보고만 있습니다."

과장이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왜 체포 안 해?"

"심증은 가는데 물증이 전혀 없습니다."

형사팀장이 옆에서 설명했다.

"과장님. 증거를 남기지 않는 놈이라 어설프게 건드리면 못 잡습니다. 우리가 주시한다는 걸 눈치채면 주변을 싹 정리하고 더 깊게 숨을 겁니다."

"저놈은 그냥 체포해서는 답이 없다는 소리지?"

"그렇습니다. 작은 물증이라도 찾은 후에 잡아야 합니다."

"젠장. 현재 위치는?"

"워낙 용의주도한 놈이라 휴대폰도 대포폰만 사용합니다. 그래서 휴대폰 위치추적이 안 됩니다. 신용카드도 쓰지 않는 놈입니다."

"지켜보고 있다며?"

"자주 출몰하는 술집이 있습니다. 그곳을 통해서 술 마시고 떠드는 말을 수집하는 중입니다."

"골치 아프네. 그렇게 꼼꼼한 놈이 말실수를 해줄지…."

회의실에 있던 형사 중 한 명이 알림 진동을 느끼고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그의 눈이 조금 커졌다.

"헉!"

"왜 그래?"

"김준배를 찾았답니다."

과장이 짜증을 냈다.

"찾기만 하면 돼? 체포할 방법을 찾아야지."

"죽었다는데요?"

과장은 당황했다.

"어? 그게 무슨 소리야?"

"지금 전화해서 확인하겠습니다."

형사가 연락이 온 곳으로 전화를 걸었다. 잠시 통화한 후에 그가 상황을 보고했다.

"김준배가 충청남도 산에서 칼에 맞은 시체로 발견됐습니다."

***

차우진은 서울로 돌아왔다.

그는 이선정 박사가 일하는 회사를 건물 밖에서 보고 있었다. 이선정의 연구실이 있는 곳은 불이 켜진 상태였다.

"오늘 사들인 연구용 약재들을 정리하는 중인가?"

밖에서는 연구실 내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지만, 그러지 않을까 짐작했다. 그녀가 약재상에서 뭔가 잔뜩 샀다는 건 알고 있다.

"그중에 오메가 바이러스의 치료제 원료가 있을지도 모르지."

그는 그녀가 그 연구를 계속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오늘 그녀를 노리던 칼잡이 김준배를 제거했다.

"예전의 나라면, 그놈이 아무리 살인마라 해도 죽였으면 마음에 부담이 올 텐데."

그런 부담이 전혀 없었다.

"꿈속 미래에서 겪은 일이 내 현재 멘탈에도 영향을 끼치나 보다."

***

충청남도 경찰서에서 형사가 팀장에게 보고했다.

"인천 쪽에서 피해자를 예전에 조사한 담당자와 통화했습니다."

"그래? 뭐래?"

"그때는 증거가 없어서 감방에 보내진 못했지만, 자기는 김준배가 범인이라고 확신한다던데요."

"확신만으로는 부족한데…."

"그 담당자를 통해서 서울 다른 경찰서의 형사와도 통화했는데요. 거기서는 피해자를, 그러니까 김준배를 또 다른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의심하고 있던데요."

팀장은 당황했다.

"응? 피해자가 연쇄살인마였어?"

"양쪽의 의심이 다 사실이라면, 그럴 수도 있습니다."

연쇄살인은 단일 살인사건보다 파장이 크다.

팀장이 인상을 썼다.

"우리는 김준배를 체포한 게 아니라 사망한 걸 발견했잖아."

"그렇죠."

"이거 잘못하면 똥 밟는 수가 있는데…."

"어떻게 할까요?"

"그 두 사건의 담당자들한테 당장 만날 수 있냐고 물어봐. 회의 좀 하자고. 이거 잘 처리해야 우리도 챙기는 거 있다."

"알겠습니다."

***

그날 밤에 세 경찰서의 형사들이 모여 비공개로 회의했다.

회의를 주최한 충청남도 수사팀의 형사가 말했다.

"그러니까, 증거만 없다뿐이지 김준배가 살인마라는 건 두 분 다 확신하는군요."

인천에서 온 형사가 대답했다.

"지금이 물증이 필요 없는 서부시대였으면 제가 직접 그 새끼의 목을 매달았을 겁니다."

"그 정도입니까?"

"저는 말입니다. 그 새끼가 죽었다는 전화를 받고 환성을 질렀습니다. 이제 잠 좀 편하게 자겠네요."

서울 경찰서의 형사가 충청남도 수사팀에서 제공한 사진을 뒤적이다가 말했다.

"아. 그 물증 말인데, 지금 찾았습니다."

"네?"

형사가 현장 사진 중 하나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김준배의 차에 있는 비밀 공간에서 나온 이 칼 말입니다. 우리 담당 사건의 피해자 살해 흉기로 추정하던 것과 형태가 일치합니다."

김중배의 차는 사건 현장 근처 지역의 주차장에서 찾아냈다. 그곳 담당 형사가 얼른 말했다.

"그 칼에서 혈흔이 나왔습니다."

"국과수로 보내셨죠?"

"물론이죠. 빨리 좀 확인해달라고 해야겠네요."

***

충청남도 형사가 팀으로 돌아와 상황을 보고했다.

팀장이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말했다.

"사망한 김준배는 최소 두 건의 살인사건의 범인이야. 이거 뉴스에 날 거다."

형사가 물었다.

"우리 똥 밟은 건가요?"

"어. 이미 밟았어. 김준배를 죽인 사람을 못 찾으면 똥만 밟고 끝날 거야. 뭐 좀 나왔어? CCTV는?"

"팀장님. 산속에 CCTV가 있을 리가…."

"그건 그렇지? 그럼 거기까지 가는 길에는 뭐 없어?"

"찾아보겠습니다."

팀장이 잔소리를 했다.

"그런 건 시키기 전에 좀 해라. 이거 대처 잘못하면 우리가 똥물 다 뒤집어쓴다."

"알겠습니다."

팀장이 인상을 쓰며 김준배의 사진을 보았다.

"쌍칼이라고 불릴 정도로 칼을 잘 쓰는 청부업자를 누군가 칼로 죽였어. 어떻게?"

"나뭇가지로 만든 부비트랩의 칼에서 김준배의 지문이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범인이 아니라, 오히려 김준배가 함정을 팠습니다."

"맞아. 그런데 그 부비트랩은 범인이 발견하고 해체까지 해놨지. 그럼 어느 한쪽이 기습한 건 아닐 거야. 서로 정면에서 싸웠겠지."

팀장이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누가?"

"예전에 김준배에게 당한 사람의 가족 아닐까요?"

팀장이 듣기에도 그쪽이 타당해 보였다.

"그렇겠지? 가족이 직접 했거나, 아니면 킬러를 보냈겠지? 피해자 가족들을 찾아가서 상황을 알려주고 떠보자."

"예? 피해자의 가족에게 그렇게까지…."

"뭐 어때? 범인이 죽었다는 걸 알려주면 위로라도 되겠지. 가족이 킬러를 직접 고용한 것만 아니라면 말이야."

"아. 그건 그렇겠네요."

8. 연쇄살인마

이선정 박사는 그녀의 언니 이화연이 사장으로 있는 작은 회사에서 일한다. 그 회사는 이화연이 경영을 맡고 이선정은 외주 실험과 연구 개발을 맡는 구조로 운영됐다.

이선정이 대낮에 회사에서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꺄악!"

이화연이 배달시킨 점심을 먹으며 물었다.

"이번엔 또 왜?"

"너무 귀여워!"

이선정이 스마트폰에 뜬 강아지 사진을 보여주었다.

"언니. 우리도 강아지 기르자."

"낮에 집에 아무도 없는데 강아지는 누가 케어하게?"

"언니가 사장인데 회사에서 키우면 되지 않을까?"

"응. 안돼. 직원들이 너도나도 강아지 가져오면 회사 개판 되는 거 순식간이야."

"우리 회사는 이미 개판 아닌가?"

"옷에 개털 묻히고 실험실 들어가고 싶어?"

"쳇. 안되는구나."

사장인 이화연이 말을 돌리려고 스마트폰을 보여주었다.

"이거 봤어? 어떤 사람이 산에서 시체로 발견됐대."

이선정이 질색했다.

"언니. 밥 먹는 데 그런 거 보여주면 어떻게 해!"

"이 기사에 사진은 없다."

"그래도."

"그런데 말이야. 죽은 사람이 살인사건 두 건의 유력한 용의자래. 뭔가 스릴러 같지 않아?"

스릴러라는 말에 이선정이 관심을 보였다.

"응? 범인이 죽은 거야? 누가 죽였는데?"

"몰라. 현장에 누군가와 싸운 흔적은 있대. 댓글에는 누군가 꼬리 자르기 한 거 아니냐는 의견이 많아."

이선정이 그 기사를 같이 보았다. 그러다 멈칫했다.

"어머. 나 어제 이 동네에 갔었는데."

"응?"

"식당에 가다가 이 산 근처도 지나갔는데."

이화연이 이선정의 등을 때렸다.

"넌 이런 위험한 곳에 왜 혼자 가는데!"

"아야! 그땐 위험하진 않았지! 누가 그 산에서 그런 일이 있을지 알았나. 난 그냥 약재상에서 실험 재료 좀 사고 식당에 밥 먹으러 간 것뿐이야!"

이화연이 조금 굳은 얼굴로 물었다.

"그럼 혹시 수상한 사람 봤어?"

"음…. 누가 따라오는 느낌이 들었…."

이화연이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

"야!"

이선정이 얼른 설명했다.

"그냥 요즘 그런 느낌 자주 드는 것뿐이야! 그냥 착각한 거야!"

"어제는 착각이 아니었을 수도 있잖아!"

***

차우진이 그날 저녁때 이선정의 회사로 찾아갔다.

"김준배가 살인마인 건 확실한데…."

뉴스에는 김준배가 최소 2건 이상의 살인사건 용의자라고 나왔다.

차우진은 꿈속에서 본 10년 후 미래의 뉴스에서는 이선정을 살해한 연쇄살인마는 한 명이라고 했다.

그 뉴스들만 보면 그가 문제의 연쇄살인마를 제거했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찜찜했다.

범인의 얼굴이 너무 낯설었다.

"내가 꿈속 뉴스에서 얼굴을 몇 번은 봤을 텐데 너무 낯설어. 그래서 그놈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자꾸 든단 말이야."

아포칼립스 시대에는 전투 후 확인 과정도 중요했다. 죽은 척하는 놈을 못 알아보고 지나치면 뒤치기를 당할 수 있다.

이선정 박사는 치사율 50%인 오메가 바이러스의 치료제를 개발해야 하는 사람이다. 그녀를 노리는 살인마가 또 있을 확률이 손톱만큼만 있어도 확인해야 한다.

차우진이 그녀의 회사를 보며 말했다.

"이선정 박사가 완전히 안전해졌는지 확인은 해야지."

***

이선정은 저녁 8시에 회사를 나왔다.

"배고프다."

일하다 밥때를 놓쳤다. 그녀의 언니는 약속이 있어서 늦는다고 했다. 혼자 집에 가봤자 즉석밥이나 데워먹어야 한다.

"밥 먹고 들어가야지"

그녀가 회사 근처 식당으로 갔다. 거기서 자리에 앉아 음식을 주문하려고 하는데 차우진이 식당에 들어왔다.

그녀는 안 그래도 어제 차우진을 경계했던 일이 마음에 걸렸다. 그녀가 무안함을 감추려고 환한 표정을 짓고 손까지 들며 인사했다.

"어머. 안녕하세요? 여긴 어떻게…."

차우진이 그녀의 앞자리에 자연스럽게 앉으며 둘러댔다.

"이 근처에 가끔 옵니다."

"아. 그래서 저번에도 마주친 거군요?"

"그렇죠."

"그럼 어제 제 뒤에서 따라온 건…."

"집이 그쪽이라서 이쪽으로 올 때 차량 이동 경로가 겹쳤나 보네요."

"아! 저랑 가까운 곳에 사시나 보다!"

"그런가 봅니다."

이선정이 환하게 웃었다. 혹시나 하던 걱정이 사라졌다.

그녀의 기준으로는 차우진은 겨우 한 번 본 사이다. 하지만 그 한 번이 특별했다. 차 사고로 죽을 뻔한 걸 차우진이 구해주었다.

이선정이 큰소리쳤다.

"오늘 식사, 제가 살게요. 제일 비싼 거 시키셔도 돼요."

"김밥헤븐에서?"

이 분식집에는 비싼 메뉴가 없다.

"앗. 그럼 식당을 옮…."

차우진이 오른손을 슬쩍 들었다.

"아니요. 여기 패밀리 세트를 정말 오래전부터 먹고 싶었습니다. 그거 시키면 종류별로 다 나오니까."

"오래전부터면 얼마나…."

차우진은 멈칫했다. 꿈속 미래에서는 아주 오랫동안 못 먹은 음식인데, 현실에서는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그의 배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어…. 지난주?"

이선정의 눈이 순간적으로 차우진의 배로 향했다가 도로 올라왔다.

차우진이 물었다.

"봤군요?"

"아, 아니에요."

"보는 거 봤는데."

그녀가 얼른 둘러댔다.

"사람이 배 조금 나올 수도 있죠. 그 정도면 많이 나온 것도 아닌데요. 그니까, 그…."

다시 봐도 배가 꽤 나왔다.

"통통하신 거잖아요."

"통통이라…. 역시 더 먹어야겠군."

"네?"

"이 배가 다 물자 확보 능력의 상징…. 어…. 아닙니다."

배가 나온 이야기는 중요한 게 아니다.

차우진이 김밥헤븐에서 파는 패밀리 세트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처음에는 간단한 가십 이야기가 나왔다.

차우진이 어제 잡은 김준배의 이야기를 일부러 꺼냈다.

"어제 충청남도에서 살인마가 죽은 채로 발견됐다는 뉴스 봤어요?"

이선정이 얼른 맞장구쳤다.

"어머! 봤죠. 저도 그때 그 지역에 갔었거든요. 살인마가 발견된 그 산 앞도 지나갔어요."

"그러시군요. 혹시 살인마를 직접 봤으려나?"

그녀가 손뼉을 쳤다.

"아. 그러고 보니까, 누가 절 보는 듯한 느낌을 받긴 했어요."

김준배가 어제 그곳에서 이선정을 미행했다. 차우진은 이선정과 김준배 둘 다 보고 있었다.

'역시 감이 좋은데….'

그녀가 얼마 전부터 그런 느낌을 받았다는 말은 이미 들었다. 그래서 감이 좋다는 건 알았다.

그가 그 이야기를 일부러 꺼낸 건 바로 그 부분을 묻기 위해서다.

"그렇게 누가 보는 듯한 느낌이 자주 들던가요?"

"네?"

"저번에도 그렇게 이야기해서."

"아. 네. 최근 들어서 자주 그랬죠. 오늘은 아니지만요."

차우진은 문득, 그가 막으려는 연쇄살인마는 범행 후에 시체에 특별한 표시를 남긴다는 게 떠올랐다.

'김준배도 그런 걸 남기나?'

뉴스에는 그런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의심이 더 커졌다.

'이선정이 살아서 연구를 계속해야 멸망급 재난인 오메가 바이러스를 막을 수 있다.'

오메가 바이러스가 본격적으로 퍼지면, 무인도에서 혼자 살지 않는 한 감염 위험을 피하기 어렵다.

오메가 바이러스가 수십억 명을 죽이는 사태를 막을 유일한 방법은 치료제를 개발해 보급하는 것이다.

그리고 최선의 해결법은 사태 초기에 그 치료제를 사용해 바이러스를 완전히 제압하는 것이다.

바이러스가 확산하기 전에 치료제가 나왔다면 오메가 바이러스 사태를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이 10년 후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그런데 그 치료제를 만들 수 있는 이선정 박사를 연쇄살인마가 죽이려 한다.

"역시 이건 내가 막을 수밖에 없네."

"네?"

차우진이 말을 돌렸다.

"음…. 이선정 씨. 다음에는 밥은 내가 사겠습니다."

"어머."

"왜 눈을 동그랗게 뜰까요?"

그녀의 머릿속이 바빠졌다.

'이거 혹시 데이트 신청인가?'

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언제…."

"음. 내일?"

"네? 출근 안 하세요?"

"요즘 놉니다."

차우진은 전기 기술자다. 그는 조만간 일을 다시 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상황이 바뀌었다. 지금은 살인마를 잡는 게 더 급하다.

이선정이 말했다.

"아. 혹시 백수…. 앗. 아니에요. 그런데 저기, 저는 내일 출근해야 하는데…."

연차라면 많이 써봤다. 연차를 내고 그 시간에 개인 연구를 할 때가 많았다. 하지만 내일은 회사에 일이 있어서 연차를 쓸 수 없다.

"퇴근은 할 거 아닙니까? 어차피 저녁도 먹어야 할 테고요."

"아…. 그렇죠. 저녁밥은 먹어야죠."

두 사람은 내일 저녁에 다시 만나기로 했다.

차우진이 식사하며 말했다.

"여기 맛있네요. 푸짐해서 더 좋고요."

"맞아요. 여기가 맛은 있어요."

그녀가 살짝 기대했다.

'내일은 어디로 가려나?'

그동안 차우진과 두 번 밥을 먹었다. 처음에는 국밥을 먹었다. 오늘은 김밥헤븐이다.

'세 번째 식사 때는 다른 나라 요리도 좀 먹고 싶은데.'

***

말끔한 양복을 입은 남자가 의자에 앉아 모니터에 뜬 사진을 보았다. 이선정의 사진이었다. 사진 속 그녀는 다른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었다.

그런데 그 사진에 찍힌 사람 중에 어제 죽은 김준배가 있었다.

남자가 김준배의 얼굴만 확대한 사진을 옆쪽 모니터에 띄웠다. 그러고 나서 반대쪽 모니터로 인터넷 뉴스를 검색했다.

그 뉴스에 김준배의 사진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가 두 사진을 보며 말했다.

"내 사냥감 주변에 날파리가 날아다니고 있어서 먼저 처리하려 했는데."

사진 속 김준배가 산에서 시체로 발견됐다는 기사가 떴다.

남자가 턱을 살살 긁었다.

"누가 이놈을 나보다 먼저 처리했을까? 원한 관계인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나?"

그 뉴스에는 이선정에 관한 건 없었다.

경찰은 김준배의 목표가 이선정이라는 걸 몰랐다. 그러니 기자도 그녀의 존재를 알 수가 없었다.

남자도 그날 이선정이 그곳에 갔다는 것까지는 몰랐다. 이선정을 24시간 감시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남자가 인상을 썼다.

"조심해야 한다는 느낌이 들긴 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살인의 충동을 거스를 수 없었다. 그는 일단 타깃을 정하면 바꾸는 법이 없다.

"누가 저 김준배라는 놈을 처리했는지 몰라도."

남자가 손가락으로 이선정의 사진에서 목을 찔렀다.

"나는 내 일을 해야지. 일이 복잡해지기 전에 서둘러 처리해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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