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꽃가마를 타다
눈 깜짝할 사이, 소운의 혼삿날이 되었다.
지난 나흘간 소운은 동향후부 대문이 어디에 달려 있는지도 알아낼 수 없었다. 여태 밖으로 나가지 않고 있던 게 아니라, 나가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진국공부의 병사들은 줄곧 철수하지 않았고, 저택 주변은 여전히 경계가 삼엄했다. 그래도 이전과 달리 사람들의 출입은 허용했으나, 소운만은 출입이 불가했다.
곧 혼인할 몸이니 소운도 굳이 맞서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녀가 또 길거리에서 남자를 납치하지는 않을까 싶었는지 진국공부의 사람이 와서 계속 감시를 해대니, 소운이 어찌 웃고만 있겠는가?
거기다 동향후와 그의 부인 당 씨는 소운의 혼사 준비를 하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그래서 소운은 부모님께 심려를 끼칠 수가 없어, 나흘 동안 꾹 참고 견뎌낼 수밖에 없었다.
혼례를 서둘러 진행하긴 했어도, 혼례식을 할 때 갖춰야 할 예는 모두 갖췄다. 황제는 사혼 성지를 거둔 뒤, 봉관하피(*凤冠霞帔: 혼례 때 갖춰야 할 것으로, 봉황을 새긴 관과 구름이 수놓인 옷을 의미)를 하사했다.
묵직한 봉관을 쓴 소운은 동향후부를 나서기도 전에 목이 시큰거려 관을 벗어 던지고 싶었다. 그리고 꽃가마가 이리저리 움직이는 바람에 눈앞이 다 어지러웠다. 거기다 누가 썩은 달걀을 주는 바람에, 소운은 달걀을 다 뱉어내고 싶었으나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혼인할 때 축하 달걀(喜蛋)을 나누는 중국의 전통 문화)
그래서 소운은 차라리 직접 자신에게 침을 놓은 후, 가마 안에서 쓰러져 눈을 감고 있는 편이 더 나으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소운이 기절하듯 잠들어 버리자, 그녀를 태운 꽃가마가 곧 진국공부에 도착했다. 이내 풍악이 울리며 희낭(*喜娘: 신부의 시중을 드는 여자)이 가마에서 내리라고 세 번을 연달아 소리칠 때까지도, 소운은 진국공부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희낭이 가마를 덮은 발을 걷자, 소운은 가마에 비스듬히 기대어 쓰러져 있었다. 그녀는 소운의 머리 위에 있던 장신구와 희파(*喜帕: 신부가 혼례 때 쓰는 붉은 면사포)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곤 깜짝 놀라, 소운이 어리석게도 자살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곤 조심스럽게 소운의 숨이 붙어 있는지 숨소리를 들어보는데, 소운은 고르게 숨을 쉬며 잠을 자고 있었다.
그러자 희낭은 곧 입술을 삐죽였다. 산에서 살다 왔다는 이 아가씨는 참으로 남달랐다. 진국공부의 다 죽어가는 큰 공자에게 시집을 오는데, 팔자 좋게 꽃가마 안에서 잠을 자고 있다니! 그야말로 대장부가 따로 없었다.
이내 희낭이 헛기침을 하자, 곧바로 행아가 얼른 소운을 흔들어 깨웠다.
“아가씨, 가마에서 내리셔야죠.”
소운은 단잠에 빠져 있다가 감은 눈을 천천히 뜨며 하품하더니, 한쪽 발로 희파(*喜帕: 신부가 혼례 때 쓰는 붉은 면사포)를 밟으며 밖으로 나왔다.
희낭은 희파에 발자국이 찍힌 것을 보고 절로 표정이 굳었다. 이 새 신부는 참으로 교양이 없었다. 하지만 산에서 살다 온 사람에게 뭘 바라나 싶어, 희낭은 얼른 희파를 줍고는 손으로 털어낸 다음 소운에게 덮어씌워 주었다.
소운은 잠이 덜 깨 멍하니 있다가, 주변에서 자신을 비웃으며 손가락질 하는 것을 보고는 정신을 차렸다. 곧이어 그녀는 희낭의 부축을 받아 진국공부를 향해 걸어 들어간 뒤, 본채에 도착해서 절을 올렸다.
헹아는 소운을 부축하면서 소리를 낮춰 말했다.
“아가씨, 진국공부 사람들은 사람을 너무 무시하네요!”
소운은 머리에 희파를 쓴 채로 눈시울을 붉혔다. 진국공부에서 그녀를 냉대하고 있다는 게 무척 잘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진국공부 큰 공자가 이 자리에 없다는 것만 제외하면 이건 여느 평범한 혼사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큰 공자가 의식 불명인 채로 병상에 누워있는데다, 소운은 그 일에 연루되어 있기에 많은 것을 바랄 수는 없었다.
이내 소운이 무언가 물어보려고 하자, 수탉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소운의 낯빛은 순식간에 어두워져 흙빛이 되었다.
‘어쩜 이리 사람을 무시하는 것인지!’
진국공부 큰 공자가 맞절을 하러 올 수가 없대도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그렇다고 수탉을 큰 공자 대신 앞에 놓을 필요는 없잖은가!
‘설마 대단한 진국공부에 큰 공자 말고는 사람이 없는 건가?’
소운은 애써 참았다.
소운은 주례가 신랑신부 맞절을 외칠 때까지 참고 있다가, 신방으로 보내질 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수탉을 이리 다오.”
행아가 소운의 소매를 붙들고, 행동을 저지했다.
수탉을 품에 안은 사동이 어리둥절해져서 위에 앉아 있는 진국공부의 큰 마님인 남장군주(南漳郡主)를 바라보자, 남장군주는 그에게 손을 흔들었다. 신부가 수탉을 달라고 하는데, 그녀에게 준다한들 무슨 일이 생기겠는가.
이내 사동이 수탉을 소운에게 건네자, 소운은 조심스럽게 안아 들고 수탉을 쓰다듬었다. 그 상냥한 모습에도 사람들은 털이 곤두섰다. 모두들 간담이 서늘해져서, 소운이 상냥한 척하다가도 손에 조금만 힘을 주면 식장에 수탉의 피가 튀고, 자기들까지도 그녀에게 호되게 당할까 봐 두려워했다.
그들은 소운이 토비 출신이니, 필시 흉악무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소운이 수탉을 안고 몸을 돌리는 순간, 수탉이 있는 힘껏 앞으로 뛰어올라 앞쪽에 앉아 있는 남장군주를 향해 날아갔다. 이에 남장군주가 놀라 소리치자 본채는 난장판이 되었다. 사람들은 닭을 잡으려 달려들었고, 바닥에는 온통 닭털이 떨어졌다.
주위가 혼란한 틈을 타, 희낭은 서둘러 소운을 신방으로 보냈다. 소운은 신방으로 가는 길에 줄곧 웃음을 참았다.
* * *
잠시 후 신방에 들어간 소운이 다른 여종들을 모두 물리자, 행아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
“아가씨, 어째서 소란을 피우시는 거예요?”
남장군주는 눈짓만으로 다른 이를 죽일 수 있는 사람이었다. 집을 나서기 전 동향후 나리와 마님께서는 행아에게, 혹시나 억울한 일을 당하면 자신들에게 알려 아가씨가 직접 맞서지 않도록 말리도록 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남의 밑에 있으면 고개를 숙여야만 하는 법이므로 때를 아는 자가 승리할 수 있으며, 토비의 복수는 삼 년이 걸려도 늦지 않은 법이라 신신당부했었다.
소운은 단숨에 머리에 덮어쓴 천을 젖히고 봉관을 벗더니 말했다.
“난 그저 저 자들에게 알려주고 싶었을 뿐이야. 비록 토비 출신이지만 나는 수탉 한 마리 잡을 힘도 없다는 것을 말이야.”
그 말에 행아는 멍해진 채로 침상에 누워있는 큰 공자 사경신을 조용히 바라봤다. 아가씨는 사람들 앞에서 고야(*姑爷: 처가에서 사위를 부르는 말)를 묶어서 납치했는데, 이제 와 닭 한 마리 잡을 힘도 없다고 하면 과연 사람들이 믿을 수 있겠는가?
소운은 목운동을 하면서 침상을 향해 걸어갔다. 이렇게나 많은 날이 지나고 나서야 드디어, 행아가 그렇게나 입이 닳도록 천계의 사람이니 하며 칭송했던 진국공부 큰 공자 사경신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
막상 직접 보게 되니, 소운은 사경신의 빼어난 모습에 놀란 나머지 할 말을 잃었다. 그녀는 머리를 아무리 쥐어짜 봐도 사경신을 형용할 수 있는 단어를 떠올리지 못했다. 용장봉자(*龙章凤姿: 풍채가 뛰어나고 훌륭함), 헌헌장부(*軒軒丈夫: 외모가 출중하고 당당한 사내), 옥골선풍(*玉骨仙風: 옥같이 아름다운 모습과 신선 같은 풍채를 갖춘 이), 그 어떤 말조차 그 외모의 만 분의 일도 표현할 수 없었다.
사경신은 아주 요물이 따로 없었다.
행아가 옆에서 눈을 반짝이고는 아쉬워하며 말했다.
“아가씨, 고야(*姑爷: 처가에서 사위를 부르는 말)께서 아직도 의식이 없으신데, 충희는 효과가 없는 게 아닐까요?”
그 말에 소운이 웃었다. 충희는 애초에 진국공부의 큰 공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진국공부의 체면을 살리기 위함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진국공부가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소운에게 자업자득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는 데에 그 목적이 있었다.
사람을 구하는 것은 의원이 할 일이었다.
소운은 침상 옆에 앉아서 손을 뻗어 사경신의 눈꺼풀을 들어올려 본 뒤, 맥을 짚어 봤다. 행아는 옆에서 보더니 깜짝 놀라 어리둥절했다.
맥을 짚어보던 소운은 미간을 찌푸리곤 손을 놓으며 말했다.
“이 자의 옷을 벗기게 도와줘.”
그러자 행아가 얼굴을 붉히며 수줍게 말했다.
“아가씨, 고야께서 살아 계시는 사이 강제로 손을 대려 하시는 겁니까? 그런 거라면 소인은 도와 드릴 수 없어요…….”
행아가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소운은 그녀의 머리를 한 대 때렸다.
“얘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너희 아가씨는 그렇게 마음이 급하지 않단다.”
행아는 ‘아야’하고 소리를 내며 물었다.
“그럼 고야의 옷은 벗겨서 뭐 하시려고요?”
“살려야지!”
“……아가씨, 부군을 죽이시면 안 돼요.”
소운은 성미가 급해, 행아가 말하는 사이 벌써 사경신의 옷을 벗기고 있었다. 소운의 말이 진심인 것 같아 행아는 서둘러 소운을 도왔고, 그렇게 그들은 금세 사경신의 옷을 모두 벗길 수 있었다.
그의 옷을 모두 벗기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고, 소운은 재빨리 이불을 끌어다 사경신을 덮어주었다.
“들어오너라.”
소운은 사경신에게 이불을 덮어주면 될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문득 벗겨둔 옷을 숨기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안으로 들어선 여종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그 자리에 멍하니 서더니, 점차 뺨을 붉혀 금방이라도 얼굴이 터질 것처럼 보였다.
소운은 입술을 깨물었다. 급한 마음에 물불 안 가리고 합방을 한 것이라 오해받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오해 할테면 하라지.’
소운은 이미 여토비라고 소문이 자자했으며, 평판이라는 말은 소운과는 거리가 먼 얘기였다. 이윽고 소운이 차분히 물었다.
“무슨 일이냐?”
여종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아, 아무 일도 아닙니다…….”
‘가엾은 큰 공자님.’
국공부(国公府)에서 충희를 한 것은 사경신을 살려내기 위해서였는데, 이제보니 그를 호랑이굴에 던져준 꼴밖에 되지 않아 보였다. 큰 공자님이 과연 큰 새아기씨의 괴롭힘에 오늘 밤을 무사히 넘길 수 있을는지, 여종은 가늠할 수 없었다.
“정말 아무 일도 아닌 것이냐?”
소운이 천진하게 웃으며 물었다.
상냥한 말투였지만 그 말엔 가시가 돋친 것 같았다. 그러자 겁 많은 여종은 두 손을 부들부들 떨며, 갈라진 목소리를 내뱉었다. 소운이 보니, 더 상냥하게 대하지 않으면, 이 아이가 놀라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하지만 더 상냥하게 대해도 여종의 눈에는 소운이 ‘네가 들어오는 바람에 일을 그르쳤다.’며 짜증난 표정을 짓는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홍조를 띤 여종의 얼굴은 점점 창백해졌고, 여종은 소운이 화를 낼까 봐 두려워만 했다.
“큰 새아기씨께서 종일 아무것도 드시지 못했는데, 탁자 위의 식사가 모두 식어버려서, 소인이 따뜻한 식사를 다시 내오는 것이 좋을지 여쭤보러 왔습니다.”
잊고 있어서 못 느꼈는데, 소운은 이 말을 듣고 나니 정말 배가 고파졌다.
“이각(*二刻: 30분) 후에 가지고 오너라. 이만 물러가거라.”
여종은 특별사면이라도 받은 것처럼 거듭 절을 하더니, 서둘러 몸을 돌려 나갔다.
여종이 나가자 행아는 문을 걸어 잠그고 잠금쇠를 떨궜다.
이내 침상 옆으로 다가간 행아는 사경신의 몸에 일고여덟 개의 은침이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그에 행아는 놀라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는, 뼈저리게 후회했다. 아가씨가 고야께 침을 놓으려는 것을 알았다면 절대 침을 구해 드리지 않았을 것이다. 고야께서는 어차피 의식도 없건만, 아가씨께서 어째서 이렇게 못되게 구시는 걸까 싶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