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0화. 기회
전왕의 몸이 바닥으로 허물어졌다.
경명제는 조금의 동정심도 깃들지 않은 차가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전왕의 생모인 안빈(安嬪)도 출궁을 명한다. 함께 황릉을 지키도록.”
경명제는 타 마마에게 크게 데인 터라, 후궁에게 어떠한 후환도 남겨두고 싶지 않았다.
안빈은 후궁 안에서 존재감이 극히 옅은 사람이었다. 사실, 그녀가 아들 부부와 함께 지내게 된 것이 그리 나쁜 일은 아니었다.
지의를 전달받은 안빈은 아들의 처지에 안타까웠지만, 궁 밖에서 사는 미래를 기대할 수 있었다.
아들 내외와 손주와 함께 사는 생활을 얼마나 바랐던가.
관례에 따르면, 비빈들은 황제가 승하한 뒤에야 궁을 나갈 수 있었다. 자식이 있는 비빈은 자식과 함께 살 수 있으며, 자식이 없는 비빈은 자신의 가문으로 돌아가 세상과의 단절을 끊은 채 살아야 했다.
그녀는 자신이 황제보다 오래 살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지도 못하게 황제가 은혜를 베풀어 준 것이다.
안빈은 경명제를 보지 못했지만, 황궁을 떠나기 전, 곤영궁으로 향했다.
황후는 깊이 머리를 조아리는 안빈을 보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부드럽게 일렀다.
“일어나게. 황상께서 자네를 전왕과 함께 살게 해주신 것은 큰 은혜라는 것을 알고 있겠지? 자네가 전왕의 일 때문에 허튼 생각을 할 까봐 배려하신 걸세.”
“물론입니다. 빈첩은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 아니옵니다. 그동안 마마의 보살핌 덕분에 궁에서 무탈하게 생활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다시 뵐 수 없더라도, 언제나 마마의 행복을 빌겠습니다.”
황후가 궁녀에게 눈짓하자, 궁녀가 작은 염낭 하나를 안빈에게 건넸다.
“패물이 조금 들었네. 어디에 쓰일 줄 모르니, 가지고 가게. 이별 선물일세.”
“감읍하옵니다.”
안빈은 염낭을 받아들고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빈첩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안빈이 물러가자, 황후도 자리에서 일어나서 심복 궁녀에게 말했다.
“복청에게 가봐야겠다.”
webnovel.com で好きな作者や翻訳者を応援してくださ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