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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 계약체결

21화. 계약체결

주작이 냉소를 지으며 어린아이티가 나는 목소리로 오만하게 말했다.

“내가 인간들의 평가를 신경 쓸 것 같으냐? 저 인간은 내가 선택한 인간에게 무례를 범했다. 그러니 살려둘 수 없다.”

하찮은 인간이니 손가락 하나만 까딱해도 죽일 수 있었다.

성군이 웃으며 말했다.

“나도 네가 사람들의 생각은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아이의 몸에는 주작세가의 피가 흐른다. 너도 예전 주인의 후손을 죽이고 싶어 하지는 않을 텐데?”

‘신역 사람들은 정말 못돼 처먹었군. 감히 저런 말을 꺼내다니.’

주작이 콧방귀를 뀌었지만, 성군은 심가이를 살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주작은 성군을 두려워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당분간은 신역과 척지고 싶지 않았다. 그들은 아주 큰 힘을 숨겨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린아이가 잘 몰라서 떠든 것이니, 주작은 그 말에 신경 쓰지 마라. 백 년간 잠을 자다가 이제 막 깨어났는데 일어나자마자 피를 보는 것도 좋지 않다. 이 아이가 무례를 저지른 것은, 내가 나중에 주작세가의 가주에게 알리겠다. 그가 알아서 처리할 터이니, 주작은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이다.”

성군은 능력이 아주 강한 신수를 너무 강경하게 대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달래주었다.

주작은 잠시 생각하다가 신역의 체면을 살려주는 셈 치고 더는 심가이의 목숨을 위협하지 않았다.

“만약 이후에도 또 누군가 쓸데없는 이야기를 한다면 오늘처럼 이렇게 좋게 넘어가지는 않을 게다. 자기 입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 하는 자는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할 것이다.”

주작이 무섭게 화를 내자 주작세가 사람들은 혼비백산했는데, 어찌 심소담에게 또 뭐라고 할 수가 있겠는가.

만약 그렇다면 그건 죽고 싶은 것이겠지!

심일풍과 심가휘는 자신을 최고로 여기는 신수의 귀에 거슬리는 말이라도 하게 될까 봐 입을 막고 얌전히 있었다.

그들은 바보가 아니라서 주작의 말에 조금의 거짓도 없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래도 그들은 이 상황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들은 지금 눈앞에 있는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자신만만했던 그들은 결국 가장 무시하던 바보에게 졌다. 만약 그들의 아버지가 알게 된다면, 피를 토하고 쓰러지실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들이 아무리 불만스러워한다고 해도 주작이 내린 결정에는 아무런 영향도 미칠 수 없었다.

주작은 팔짱을 끼고 뜨거운 눈빛으로 심소담을 바라보다가 거만한 걸음걸이로 그녀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네 피를 내 미간에 찍어라. 그러면 나는 네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너의 신수가 될 것이다.”

그는 인간과 계약을 맺는 것을 싫어했지만, 예전에 자기가 한 말을 뒤집을 수는 없었다. 그래도 다행히 인간의 수명은 짧아서 길어봤자 백 년이었기 때문에 그는 금방 다시 자신의 둥지로 돌아와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는 다음에는 반드시 더 깊숙한 곳에서 잠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또다시 신역 놈들에게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심소담이 오만한 작은 새를 바라보았다. 심가이가 그녀에게 욕을 퍼부었는데, 어찌 아무렇지도 않았겠는가. 그녀는 그저 서두르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런 아이들을 처리할 시간과 방법은 아주 많았다. 그런데 주작이 그녀를 보호하고 나섰다. 이건 그녀의 예측을 벗어난 일이었다.

비록 이제까지 저 못난 새가 그녀를 대하는 태도는 변변치 않았지만, 조금 전에 그녀를 보호하는 모습은 심사우와 비슷해 보였다.

심소담은 저 못난이 새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방금 있었던 일 때문에 마음이 많이 풀렸다.

성정이 못됐기는 해도 아예 상종도 못 할 정도는 아닌 것 같았다.

모두 심소담과 주작이 계약을 맺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주작세가의 사람들은 지능이 낮은 바보가 주작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심소담의 지능은 네 살 어린아이의 수준이라 복잡한 말은 알아듣지 못했다. 그런 그녀가 주작이 무슨 말을 했는지 어찌 알겠는가.

심일풍과 주작세가 사람들은 속으로 나쁜 생각을 했다. 심소담의 바보 같은 모습에 주작이 화를 내고 계약도 맺지 못하기를 바랐다. 주작이 그녀에게 화를 낸다면 그들에게도 다시 주작을 쟁취할 기회가 주어질 터였다.

그들은 모두 저 바보가 자신들보다 더 높은 곳에 오르는 걸 바라지 않았다. 주작을 얻으면 가주가 된다. 그러니 혹시 심허봉이 주작을 얻었다는 이유로 주작세가의 비웃음거리인 심소담에게 가주의 자리를 물려줄지도 몰랐다.

만약 저 바보에게 주작세가를 물려준다면, 심일풍과 심가이, 심가휘는 함께 바다에 빠져 죽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심소담이 가주가 된다면 어떻게 될지 상상이 됐다. 분명 용헌제국의 사람들이 모두 그들 집안을 비웃을 것이다. 바보를 가주로 둔 집안이라고…….

그들은 더 생각을 이어나갈 수가 없었다.

신역의 사람들은 주작이 깨어난 후, 계속 존재감 없이 한쪽에 조용히 서 있었다. 그들은 주작이 주작세가의 능력 있는 자제 3명을 모두 탈락시키고, 바보 같은 아이를 주인으로 결정하자 깜짝 놀랐다. 물론 당사자들처럼 불만스럽게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 결정에 어리둥절하였다.

전설로만 듣던 신수의 취향이 참으로……

정말 독특하다, 정말 특이해.

모두 심소담이 주작과 스스로 계약을 맺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오는 길에는 거의 없는 사람 취급을 당했던 어린아이가 자신의 왼손을 입에 넣고 세게 깨물었다.

그러자 선홍색 피가 심소담의 손가락에 맺혔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라며 안색이 변했다. 저 바보가 주작의 말을 알아듣다니!

심일풍은 달걀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입을 쩍 벌리며 놀랐다.

모두 놀라서 바라만 보고 있는데, 심소담이 무표정한 얼굴로 손을 뻗어서 주작의 미간에 피를 묻혔다.

그러자 갑자기 붉은빛이 땅속에서 솟구치더니 순식간에 주작과 심소담 주변이 안개로 둘러싸였다.

“나 주작은 그대와 계약을 맺길 원합니다. 오늘부터 나는 그대가 죽을 때까지 함께 할 것입니다.”

정중한 목소리가 뜨거운 동굴 안을 울리자, 주작세가 3대들은 심장이 부서지는 것만 같았다.

그들은 주작이 깨어나서 이런 결과를 가져올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심소담은 예전부터 계속 그들의 놀림감이었는데, 뜻밖에도 이렇게 주작을 얻게 되었다.

거대한 운무가 조금씩 걷히고 운무 사이로 붉은 화염에 휩싸인 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운무가 모두 사라지자, 화염에 휩싸인 거대한 새가 사람들 눈앞에 나타났다. 거대한 새는 양 날개에서 붉은 화염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 날개를 활짝 펴니 동굴을 가득 메울 정도로 컸다.

이것이 바로 주작의 원래 모습이었다. 불을 통제하고 모든 마수 중에서 가장 뛰어난 신수!

주작의 아래쪽에는 몸집이 작은 사람이 한 명 서 있었는데, 그자는 바로 심소담이었다.

심소담의 평범하고 작은 얼굴은 이전과 조금 달라 보였다. 그녀의 미간에는 붉은색 불꽃 문양의 낙인이 생겼는데, 그 문양은 그림이 아니라 진짜로 화염을 내뿜고 있는 듯 보였다.

성군은 눈앞에 펼쳐진 장면을 보면서 환한 미소를 지었다.

심일풍은 심소담과 주작이 계약을 맺자, 속에서 천불이 나는 것 같았다. 조금 전까지는 그저 마음이 괴로운 정도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주작의 실제 모습을 눈앞에서 보고 나니 마음이 괴롭다 못해 죽고 싶을 지경이었다.

주작은 아주 강한 존재였다.

다른 마수들은 주작의 발끝에도 못 미쳤다. 주작의 강인함을 직접 보고 나니, 나중에 자신의 마수를 찾고 싶은 생각도 없어졌다.

주작이 이렇게 강인하고 크니, 그가 각고의 노력을 해서 열심히 찾는다고 해도 자신이 찾은 마수는 주작의 만분의 일도 못 미칠 것이다.

‘불만스럽다, 불만스러워!’

물론 심일풍이 아무리 불만스러워한다고 해도 그는 지금의 현실을 바꿀 수 없었다. 심가이가 주작에게 당한 모습을 봤으니, 그는 심소담에게 조금도 적대적으로 대할 수 없었다.

자신이 분명 주작세가에서 가장 강한 사람인데, 신께서는 어찌 이런 농간을 부리신단 말인가!

심일풍이 속으로 이렇게 불만스러워하고 있을 때, 심가휘는 구석진 곳에서 더 힘들어했다. 하지만 그는 불만스러운 마음보다 공포감이 더 들었다.

그의 곁에는 심가이가 있었고 요즘 주작에 정신이 팔려있어서 얼마 전에 심소담 때문에 놀랐던 일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거대한 주작 아래 서 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속 깊은 곳에 넣어두었던 공포심이 다시 일어났다.

그는 두려워졌다. 심소담이 주작을 갖게 된 후, 예전과는 다르게 변할 것이 두려웠다.

그와 심가이는 계속 심소담을 괴롭혀왔다. 그는 누구보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심소담이 예전 일을 복수할까 봐 두려웠다. 조금 전 주작의 태도로 봤을 때, 심소담이 주작에게 그를 처리하라고 한다면…….

심가휘는 울고 싶었다. 만약 심소담이 주작을 갖게 될 줄 알았다면, 감히 그녀를 건드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조금 전에 누이가 심소담에게 욕을 했던 것을 떠올리며 더욱 두려움에 떨었다. 주작이 그 일로 그에게까지 화를 낸다면…….

심가휘는 지금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고, 심소담이 자신에게 관심을 두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난 아직 젊단 말이야. 벌써 죽고 싶지 않아!’

물론 이건 심가휘의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주작과 계약을 체결한 후 심소담은 몸에 살짝 변화가 생겼다. 그녀는 주작의 기분을 바로 느낄 수 있었다. 그것도 아주 확실히. 지금 이 못된 새는 말하고 있지 않았지만,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심소담이 고개를 들고 머리 위에 있는 거대한 짐승을 보며 입가를 끌어올리고 아주 환하게 웃음을 지었다.

심소담은 주작을 갖게 되니 예전에는 체험할 수 없었던 것들을 느끼게 되었다.

「인간아! 나에게 네 이름을 알려줘.」

주작의 음성이 심소담의 머리에 울렸다. 그 목소리는 주작이 인간의 형상일 때처럼 앳된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녀의 머리에 울리는 목소리는 성인 남성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여전히 아주 오만한 말투였다.

“심소담.”

「오늘부터 내가 너를 지킬 테니, 아무도 너를 괴롭히지 못할 거야.」

주작은 새로운 주인인 그녀에게 조금 불만이 있었다. 아까 못된 소녀가 그녀에게 욕을 했을 때, 심소담은 바보처럼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의 주인은 절대로 아무에게나 무시당하면 안 되었다. 어쨌든 옛날에는 어떠했든지, 앞으로는 자신에게 어울릴만한 주인으로 가르치기로 했다. 절대로 신수인 자신의 위엄을 더럽히지 못하게 할 것이다.

심소담이 눈썹을 끌어올리기만 하고 아직 말을 하지 않고 있는데, 머릿속에서 갑자기 다른 목소리가 울렸다.

「겨우 작은 새일 뿐이면서, 다른 사람을 지킨다고?」

수의 목소리였다.

「너는!?」

주작은 익숙한 목소리를 들으며 의아해했다. 그는 자기 주인의 의식 속에서 제삼자의 목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그 목소리는 예전에 들어본 적 있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주작은 그 목소리가 누구의 목소린지 바로 알아차리지는 못했다.

여전히 얼음처럼 차가운 수의 목소리가 울렸다.

「내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번에 괜찮은 선택을 했다는 것만 알면 된다.」

주작은 잠시 고뇌에 빠졌다. 갑자기 어디서 나는 목소리란 말인가? 어린 주인의 몸에 왜 다른 놈이 사는 것이란 말인가?

「누구냐? 어째서 떳떳하게 신분을 밝히지 못하느냐?」

이 인간은 자신이 새로 선택한 주인이었다. 그는 계약을 맺자마자 뜻밖의 일이 생기는 것을 원치 않았다.

수가 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하하하! 네가 죽고 싶나 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