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9화. 간 큰 노비
이날 정 어멈은 은자 백 냥을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냉차를 나눠줄 방법을 적은 종이도 소비에게 건네주었다.
종이에 적힌 내용을 살펴보며 생각에 잠겨 있던 소비의 눈썹이 갑자기 꿈틀거렸다. 황도에 있을 때 남궁월이 자신에게 해 주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아가씨, 하인들은 그저 일을 거들어 주는 조수일 뿐이에요. 그들이 영원히 안주인을 대신해 집안일을 해줄 수는 없어요.
옛말에 사람이 어느 자리에 앉으면, 그 자리를 안전하게 책임지기 위해 제 분수를 지키며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했답니다. 내가 할 일조차 다른 사람에게 미룬다면, 그거야말로 성인의 가르침을 어기는 게 아닐까요?’
“큰아가씨, 다른 일이 없으시다면, 소인은 먼저 물러가 보겠습니다.”
정 어멈이 물러가려고 하자, 소비가 그녀를 멈춰 세웠다.
“정 어멈, 최근 몇 년간의 월벽거의 장부와 하인들의 명부를 보고 싶어.”
그 말을 들은 정 어멈은 하마터면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했다.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장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내어줄 수 없어. 만약 큰아가씨께 그 일을 들키면…….’
정 어멈은 생각할수록 두려웠다.
그러자 소비가 의아한 표정으로 정 어멈을 쳐다보며 물었다.
“정 어멈, 왜 그래? 무슨 문제라도 있어?”
정 어멈은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 앉아, 얼른 웃으면서 말했다.
“문제라니요.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다만 연초에 그동안 모아 뒀던 장부들을 작은 창고에 넣어놨는데, 창고에 비가 새는 바람에 많은 장부들이 축축하게 젖어 버렸습니다.
게다가 창고에 습기까지 차서 장부에 곰팡이 얼룩도 생겼지 뭡니까. 그런 장부를 아가씨께 보여 드렸다가, 괜히 아가씨의 눈만 더러워지시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되었을 뿐입니다.”
그 말에 소비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평소에 이런 자질구레한 일에 관여하지 않는 소비라고 해도 뭔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연이라기엔 너무 공교롭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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