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천마독체
당염원은 사릉고홍의 품속에 있는 것이 여전히 익숙하지가 않았다. 하지만 그를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안기는 것이 조금도 불편하지 않았거니와, 온몸에 가득한 독의 기운은 서로가 붙어 있어야 흡수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가 자신을 해치지만 않는다면 이렇게 거리를 좁혀 함께하는 편이 그녀에게도 훨씬 좋은 일이었다.
사릉고홍이 독의 기운을 흡수하는 것을 알아채지 못한다고 판단한 후, 당염원은 온 힘을 다해 그의 독을 흡수했다. 워낙 강력한 탓에 그녀가 모두 흡수했음에도 독의 기운은 조금도 약해지지 않았다.
“녹녹아, 어찌 독의 기운을 흡수하는 게 독약을 직접 먹는 것보다 수련에 더 도움이 되는 거야?”
당염원이 마음속으로 녹녹에게 물었다.
「그럴 수밖에요……. 이건 천마독이에요……. 가장 맛있어요……. 너무 좋아요! 주인님, 더 주세요……. 더!」
녹녹의 목소리에 만족감과 기쁨이 묻어났다.
「덕분에 녹녹은 주인님께 더 많은 걸 줄 수 있어요……. 더 많은 약의 기운을……. 주인님은 더 강력해질 수 있어요……!」
당염원은 놀랐다. 그녀는 벽천결을 통해 영초와 독초에 관한 많은 것을 배웠는데, 천성약체의 정반대되는 것이 바로 천마독체(天魔毒體)였다. 천성약체가 온몸이 성약인 것이라고 한다면, 천마독체는 사독으로 이루어진 거라 할 수 있었다. 녹녹이 그렇게 좋아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자신 역시 수련을 더 빨리 할 수 있었다.
당염원은 고개를 들어 사릉고홍의 아름다운 턱을 바라보았다. 옅은 붉은색의 얇은 입술은 말려 올라가 있었고, 짙은 속눈썹은 마치 검은색 날개처럼 너무나 정교해 보는 이의 마음을 현혹시켰다.
정말 천마독체일까?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어찌 이렇게 천마독을 내뿜을 수 있겠어? 보통 사람들은 천마독에 닿는 순간 그대로 죽어 버렸다.
“음?”
사릉고홍이 그녀의 시선을 알아채고 눈썹을 기울이며 바라보았다. 마치 ‘왜 그래?’라고 물어보는 것 같았다.
당염원은 눈을 깜빡였다. 표정은 그녀 자신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진지했다. 누가 봐도 지금 무언갈 열심히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표정이었다. 두 눈은 동그랗게 뜨고 있었고 맑고 움직임 없는 눈동자는 무언갈 간절히 갈망하고 있었다. 사릉고홍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얇은 입술이 점점 위를 향해 올라갔다. 당염원을 바라보는 눈에 기쁨의 웃음이 가득했다.
당염원은 지금 자신의 표정이 다른 이의 눈에 얼마나 귀엽게 보일지 알지 못했다. 과거 그녀는 ‘얼굴’도 없었다. 거울도 보지 못했는데 자신의 표정이 어떤지 어떻게 알 수 있었겠는가. 거울을 본다 하더라도 이목구비조차 분간하기 힘든 얼굴에 표정이 있을 수가 없었다.
“원아?”
사릉고홍은 당염원이 말이 없는 것을 보고 말했다.
“갖고 싶은 게 있으면 말하시오. 모두 줄 테니.”
당염원의 눈이 미세하게 빛났다. 사릉고홍의 표정을 자세히 살피는 모습이 꼭 그 말을 증명해 달라는 듯했다. 사릉고홍이 고개를 끄덕이자, 당염원은 손가락 하나를 내밀어 보였다.
사릉고홍은 멈칫했다. 뒤이어 당염원이 손가락을 자신의 입가에 가져다 대는 것을 지켜보았다.
“흠?”
사릉고홍이 콧소리로 의아함을 표했다.
당염원의 눈빛이 떨리기 시작했다. 눈동자는 더 깊어졌다. 그녀는 손가락에 힘을 주어 무방비한 사릉고홍의 입속으로 자신의 손가락을 넣었다.
“원아!”
사릉고홍의 얼굴색이 변했다. 그는 빠르게 그녀의 손목을 잡아 손가락을 빼냈다. 그는 순식간에 어둡게 변한 눈빛으로 침이 묻은 당염원의 손가락을 마치 원수를 보듯 쳐다봤다. 잠시 뒤, 손가락에 조금의 변화도 없자 사릉고홍의 눈 속에 의아함과 안도감이 동시에 스쳐 지나갔다. 그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약간 책망하는 눈빛으로 당염원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옷으로 그녀의 손가락을 닦아 주려 하며 내뱉는 말에서도 죄를 묻는 강경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다음부터 이런 위험한 행동은 함부로 하지 마시오.”
만약 주묘랑이 이 장면을 보았다면 아연실색했을 것이다. 사릉고홍은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싫어했다. 결벽증도 가진 그였지만 지금은 이렇게 자신의 옷으로 손가락을 닦아 주려 하고 있었다.
「주세요! 녹녹한테 주세요! 주인님, 먹을래요!」
녹녹이 간절하게 외쳤다.
사릉고홍이 소중한 천마독을 닦아 내도록 내버려 둘 수 없었다. 당염원은 손가락에 묻은 침에서 검붉은 기운을 뿜어내는 독기를 보았다. 이건 그의 몸에서 발산하는 검은 안개보다 훨씬 더 진한 독이었다. 그야말로 독의 실체였다.
당염원은 재빨리 사릉고홍이 잡고 있던 손가락을 빼내 그대로 자신의 입속에 넣었다. 두 눈은 여전히 사릉고홍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마치 먹이를 지키려는 다람쥐처럼 사릉고홍에게 다시 손을 빼앗길까 걱정하고 있었다.
사릉고홍은 멍해져 버렸다. 그러다 뒤이어 웃음을 터뜨렸다. 당염원을 안고 있던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그는 당염원이 손가락을 깨끗하게 핥는 모습을 잠시 보다가 천천히 물었다.
“괴롭진 않소?”
당염원은 그가 괴롭진 않냐고 물어보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역시 자신의 몸에 있는 독을 알고 있었기에, 그걸 먹고 나서도 그녀가 괜찮은지 괴로운지 묻는 것이었다.
“괜찮아요.”
당염원은 기분이 좋아져서 웃으며 답했다.
천마독체(天魔毒體), 온몸이 독인 사람. 그건 침도 예외는 아니었다. 방금 저지른 행동을 통해 그가 정말 온통 독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걸 몸소 깨달았다. 방금 먹었던 침 속의 독은 그녀가 이틀 동안 먹었던 독과 약보다도 훨씬 셌다. 그러니 녹녹도, 당염원도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실력을 갖기 전에는 이 사람의 곁에 있는 것이 나쁘지 않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의 말을 잘 들으면 목숨에는 지장이 없을 듯했다. 또 가끔씩 천마독을 흡수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였다.
당염원이 눈썹을 휘며 웃었다. 눈동자는 영롱했고 말려 올라간 입술은 앵두같이 예뻤다. 마치 삼월의 복숭아꽃처럼 아름다웠고 구월의 국화꽃처럼 고아했다.
사릉고홍의 눈동자가 움츠러들었다. 그는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지금껏 느껴 보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기쁘면서도 부끄러웠고, 갈망하면서도 긴장됐다. 가슴이 세차게 두근거릴 정도로 낯선 기분이었다.
사릉고홍은 본능적인 갈망으로 고개를 숙여 입술을 부딪쳤다. 이때 그를 기분 좋게 만들었던 앵두 같은 입술은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마치 조금만 힘을 줘도 녹아 버릴 것처럼 부드러웠다. 세상에서 가장 사람을 잘 홀리는 독을 발라 놓은 것처럼 입술을 떼고 싶지 않았다.
잠깐 입술을 댔다가 바로 뗄 생각이었는데, 입술을 대는 순간 사릉고홍의 갈망은 오히려 더 강해졌다. 그는 항상 자신의 본능을 충실히 따라왔다. 좋으면 좋은 거였고, 싫으면 싫은 거였다. 그래서 이번에도 입술을 떼지 않았다. 게다가 입술을 조금씩 움직이면서 혀로 핥기도 하고 가볍게 물기도 했다. 마치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걸 먹고 있는 것 같았다.
한편 당염원은 멍해졌다. 또 어리둥절했다. 이게 뭐 하는 거지? 그의 행동에서 악의는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소중히 대하는 것이 느껴졌다.
머릿속에서 녹녹이 흥분에 찬 소리를 지르는 걸 듣고서야 당염원은 놀란 듯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지금이 절호의 기회라는 걸 깨달았다.
당염원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들어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입을 벌려 자신의 입술을 핥고 있는 사릉고홍의 혀에 닿지 않도록 조심하며 자신의 혀를 집어넣었다. 사릉고홍이 멈칫하다가 눈을 뜨니 그 안에 맑은 눈동자가 드러났다. 눈에서 한 줄기 그윽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 그의 입술과 혀가 당염원의 입속에서 물러서지도, 움직이지도 않았다.
입에 맞는 맛있는 음식을 어찌 가만히 둘 수 있겠어?
당염원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상대가 화가 나지 않은 틈을 타 최대한 먹기로 했다. 생각을 정하자 당염원은 이제 입맞춤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혀를 내밀어 상대의 혀를 핥고 물고 삼켰다. 그녀의 얼굴엔 만족의 기쁨이 떠올랐다.
그때 당염원의 허리를 파고들 것처럼 안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당염원은 상대가 기분이 안 좋아진 것으로 오해하고 입을 떼 내려 했으나, 뒤로 조금 물러서자마자 큰 손바닥이 그녀의 뒤통수를 잡고 눌렀다. 그러자 입속에서 얌전한 토끼처럼 있던 혀가 돌연 맹수처럼 변했다. 그것은 격렬하게 그녀의 입술을 탐했고 마치 그녀를 배 속으로 삼킬 듯 달려들었다.
당염원은 이에 놀라기는커녕 오히려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기뻐했다. 상대의 입맞춤에 전혀 반항하지 않고 더욱 열심히 혀를 놀렸다. 당염원은 여기서 끝내지 않고 조금 더 욕심을 부렸다. 그녀는 상대방의 움직임에 만족하지 않았으며, 대담하게 상대의 입속을 계속해서 탐했다. 그렇게 둘은 오랫동안 밀착해 있었다.
“으음…….”
당염원의 양 볼이 붉어졌다. 짜릿짜릿한 이상한 기분이 온몸에 퍼졌다. 하지만 목숨의 위협이 없는 상황에서 맛있는 독을 탐할 시간을 그녀는 조금도 놓치지 않았다. 몸에 힘이 빠져 상대에게 온몸을 맡긴 채 상대가 주는 침을 수동적으로 받아먹고 있다 하더라도, 손가락으로 여전히 상대의 옷깃을 꽉 쥔 채 놓아주지 않았다.
사릉고홍은 당염원의 눈동자가 점점 짙어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때 뜨거운 기운이 통제를 벗어나 온몸으로 몰려들었다. 그녀는 지금 자신이 얼마나 아름답고 매력적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뭇 사내는 그녀 앞에서 저항조차 하지 못할 것이었다.
휘어진 두 눈썹은 마치 찌푸린 것 같았고 두 눈은 기쁜 듯 기쁘지 않은 듯 몽롱해 보였다. 양쪽 보조개는 붉게 물들어 있었고 콧방울엔 어느새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그는 그녀가 자신도 모르는 새 요염한 모습으로 자신을 탐닉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허어어어어-?!”
그런데 그때, 별안간 천둥 같은 외침이 하늘을 뚫고 울려 퍼졌다. 그 소리에 나뭇가지 위에 쌓여 있던 눈들이 진동에 절로 떨어질 정도였다.
사릉고홍은 턱을 뒤로 젖혀 격렬했던 입맞춤을 끝냈다.
“흡-”
당염원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두 눈은 여전히 사릉고홍을 바라보고 있었다. 만족스러운 환희가 일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여전히 갈증이 났다. 게다가 물안개가 아직 걷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는 자신의 모습이 여전히 상대를 유혹하고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사릉고홍은 소리 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뒤 당염원의 뒤통수를 잡고 있던 손에 미세하게 힘을 주고 그녀의 매혹적인 얼굴을 자신의 품에 넣었다.
“더 안 하나요?”
당염원이 그의 품속에서 고개를 들어 물었다. 상당히 아쉬운 듯한 표정이었다.
사릉고홍이 몸으로 다른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당염원을 가린 채 물었다.
“원하오?”
당염원은 마음을 가라앉혔다. 적극적으로 요구했다가 그 목적을 의심받는다면 앞으로 같은 걸 요구하기 더 힘들어질 수도 있었다. 그녀는 눈을 굴리다가 조금 전 채 삼키지 못해 입가에 묻어 있던 침을 조금도 남기지 않고 혀로 핥아먹었다. 그러곤 사릉고홍에게 묵묵히 말했다.
“조금 전 했던 게 또 하고 싶어지면 말씀하세요. 전 언제든 좋아요.”
사릉고홍의 눈동자가 갑자기 움츠러들었다. 그가 시선을 살짝 떼고 말했다.
“알겠소.”
당염원은 만족스러웠다. 그러고는 고개를 틀어 조금 전 둘의 좋은 시간을 방해한 사람을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