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전고
황 이낭이 가볍게 기침을 하며 무심한 듯이 말했다.
“저는 전부터 육 부인을 모시는 방 마마(方嬷嬷)와 자매처럼 친하게 지냈어요. 요 몇 년 동안은 육 부인을 따라 남쪽으로 가 있었지만 명절이 되면 우리끼리는 서로 연락을 했지요. 어제 육 부인께서 비로소 평주에 도착했는데 방 마마가 수양딸을 시켜서 저한테 물건을 보냈어요. 이건 전부 그 딸아이한테서 들은 거니 거짓말은 아닐 거예요.”
‘아아, 그랬구나. 방 마마는 황 이낭의 든든한 자매이자 고모의 심복이었지. 고모의 사람이라면 그런 말을 하는 것도 당연하겠네.’
임근용은 황 이낭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이 미끼를 던져 나라는 물고기를 낚으려는 게로구나?’
그러나 족제비는 이번에 미끼를 잘못 던졌다. 그녀는 이 미끼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다른 결말이었다. 하지만 아직 황 이낭에게 자신의 패를 내보일 때는 아니었다.
임근용이 멍청한 얼굴로 천진하게 웃었다.
“그렇구나. 오 둘째 오라버니랑 비교하면 누구의 재능이 더 출중할까?”
그녀의 목소리가 작지 않아서 마침 주위에 있던 여러 노복들의 귀에도 들어갔다.
황 이낭은 난처해하며 긴장했다. 오상이 육함보다 못하다고 하면, 오씨 가문과 오씨에게 미움을 살 것이고, 육함이 오상보다 못하다고 하면 육씨 가문과 육 부인인 임옥진(林玉珍)에게 미움을 살 것이다. 이 사람들은 그녀가 건드릴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도 영리한 사람인지라 바로 웃으며 큰 소리로 말했다.
“그건 잘 모르겠네요. 하지만 공자께서 남방에서 자라셨고 남방에는 이름난 유학자가 많으니 공부하느라 고생이야 좀 했겠지만 분명 총명하실 거예요. 아마 두 공자가 우리 평주에서 쌍벽이지 않을까요.”
임근용은 담담하게 웃으며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육씨 가문에 시집간 고모 임옥진은 임 노부인의 막내딸이었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제일 총애를 받아 시집도 잘 간 편인 데다 성격이 교만하고 안하무인이었다.
무슨 평주 쌍벽이란 말인가! 이 말은 그저 황 이낭이 임옥진에게 잘 보여 간접적으로 노부인에게 잘 보이려 하는 말일 뿐이었다.
오상은 아주 보기 드문 인재로 평주에서 유명한 신동이었다. 평주의 학자들 중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육함은 예전에는 그저 육씨 가문 삼남가의 무명의 아이에 불과했다. 육씨 가문 장남가에 아들이 없어 그가 일고여덟 살쯤 되었을 때 장남가에 입양되어 임옥진의 아들이 되었다.
임옥진은 아이가 나이가 많아 집에 적응하지 못할까 봐 황급히 그를 데리고 육씨 가문 대노야인 육건신(陆建新)을 따라 부임지인 남쪽으로 이사를 갔다. 그들이 거기서 산 지 벌써 7, 8년이나 되었고 그동안 육함이 자신의 친부모를 만날까 두려워했던 그들은 고향집에도 한 번 돌아오지 못했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의 육함은 평주에서는 그저 어디서 왔는지도 모를 무명일 뿐이었다. 어디 오상과 재능과 명성을 비교한단 말인가?
그리고 나중에 전시(*殿试: 과거 제도 중 최고의 시험)에 응시했을 때도 그는 오상을 넘어서지 못했다.
외모를 따지자면? 임근용의 머릿속에 갑자기 차가운 별처럼 무섭게 반짝이던 눈동자가 떠올랐다.
그녀는 웃었다. 확실히 육함은 황 이낭이 말한 것처럼 정말 잘생기긴 했다. 그래서 처음에 그가 임씨 가문에 얼굴을 비추었을 때 그녀의 사촌 여동생 셋이 서로 질투를 하며 싸워 댔고 손님으로 온 다른 가문의 소저들도 그를 몰래 훔쳐보았다. 하지만 잘생긴 걸 어디다 쓴단 말인가?
‘밥을 먹여주나? 아니면 옷을 입혀주나?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
전생에는 막말을 한 마디도 할 줄 몰랐던 임근용이 이제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막말을 해 댔다. 마음속으로 몰래 한 것이긴 했지만 속이 다 시원해지는 것 같았다.
황 이낭은 왠지 모르게 임근용의 웃음이 처량한 비웃음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다시 보니 그런 느낌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저 밝고 예쁜 소녀가 눈앞에서 천진무구하게 웃고 있을 뿐이었다.
황 이낭은 자기도 모르게 살짝 웃었다. 그동안 병 때문에 너무 피곤한 나머지 눈이 침침해져서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넷째 아가씨가 신중하고 온화한 성격이긴 했지만 아무래도 아직 어린아이였다. 방금 그 말을 한 것도 아마 어릴 때부터 오상과 친하게 지낸 탓에 어디선가 갑자기 튀어나온 ‘사촌 오라버니’가 맘에 안 들어 부주의하게 말실수를 한 것이리라.
어쩌면 넷째 아가씨가 사실 오상을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일지도?
황 이낭은 앞서 걷고 있는 오씨의 뒷모습을 힐끗 훑어보았다. 두 가문의 이런 관계도 짐작은 가지만 만약 그런 거라면 그녀는 또 다른 방법을 생각해 봐야 했다.
그녀는 잠시 동안 몇 년 후의 미래까지 생각해 보고는 임근용에게 일깨워주려는 듯이 호의적으로 말했다.
“육 부인은 성격이 아주 강하신 분이에요. 아가씨가 방금 한 말은 다른 사람이 듣지 못하게 마세요. 안 그러면……. 아가씨는 우리 집안 아가씨들 중에서 가장 뛰어나잖아요. 장남가와 차남가에서……. 하하……. 저랑 오공자는 항상 아가씨가 잘되길 빌고 있어요.”
임근용이 미소 지으며 황 이낭을 바라보더니 한 글자씩 또박또박 말했다.
“이낭의 말이 맞아. 우리는 모두 삼남가 사람들이잖아. 한 가족이니 체면도 같지. 나무 한 그루로는 숲을 이룰 수 없어. 우리 4남매는 앞으로 서로 도와야 해. 나도 다섯째 오라버니가 잘되길 바라고 있어.”
개인의 힘은 가문의 힘에 비하면 사막의 모래 한 알처럼 보잘것 없는 것이다.
가족들 간에는 대외적으로 늘 일치된 모습을 보여야 했기 때문에 개인적인 원한이 있더라도 문을 닫아걸고 이야기해야 했다.
황 이낭은 어리둥절해졌다. 그녀는 임근용을 꼬드기려는 의도로 완곡하게 돌려서 호의를 표시했다. 그런데 임근용이 아주 적절하게 받아치는 것을 넘어서 그녀보다 한술 더 뜨는 것이 아닌가.
임근용은 황 이낭에게 비록 임역지가 있긴 하지만 한 나무로는 숲을 이룰 수 없으니 서자인 임역지의 장래를 생각한다면 자신과 같은 적출의 형제자매를 짓밟으려 해서는 안 되고 오히려 그들의 도움을 구해야 한다는 사실을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고 있었다!
동일한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나이가 어린 임신지와 그들 남매에게는 곧 성인이 될 임역지라는 적은 필요가 없었다!
어째서 전에는 이 넷째 아가씨의 이런 묘한 점을 눈치채지 못했던 걸까? 정말 유순하고 선량하기만 했던 아이가 맞나? 황 이낭은 달라진 눈빛으로 임근용을 다시 바라보았다.
임근용은 그녀 앞에서 어리석은 척하는 짓을 그만두고 이번에는 황 이낭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어머니께서 이런 도리를 우리 남매에게 여러 번 강조하셨기 때문에 내가 오늘 다섯째 오라버니를 도와주게 된 거야. 아시다시피 어머니께서 성격이 좀 불같으시긴 해도 마음씨는 착하신 분이니까.”
황 이낭 같은 사람이 장남가나 차남가에 있었다면 벌써 여러 번 죽고도 남았을 것이다.
황 이낭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같이 산 지 십여 년이나 지났는데 부인의 사람됨을 제가 어찌 모르겠어요?”
도씨가 줄곧 사사건건 트집을 잡아 대며 그녀를 불쾌하게 만들긴 했지만, 정말로 간악하고 흉측한 짓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여러 해 동안 암투를 벌이긴 했지만, 황 이낭 역시 가슴에 손을 얹고 도씨와 그녀의 자녀들에게 무슨 악한 짓을 한 적은 없었다. 그러지 않았으면 신분과 도리를 가장 중시하는 임 노태야가 제일 먼저 그녀를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다.
임근용이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알고 있으면 됐어. 조금 이따가 손님들 앞에서 어머니가 불편하게 하더라도 이낭이 좀 참아. 다른 사람들한테 우스운 모습을 보이지 않게 말이야. 나중에 나도 이낭을 도와줄게.”
그녀와 조건을 협상하려면 말을 분명하게 하는 것이 좋았다.
자진해서 사람을 모시기로 했으면 이 정도 희생을 할 각오쯤은 되어 있어야 했다. 그럴 게 아니라면 모두가 난처해지기 전에 빨리 물러나는 것이 좋았다.
황 이낭의 표정이 좀 어색해졌다. 도씨는 몇 번이나 사람들 앞에서 추태를 부리며 화를 낸 전적이 있었다. 비록 도씨의 성질이 거칠고 급하긴 했지만 그녀가 무의식적으로 도씨를 자극하는 것도 관련이 없지는 않았다.
도씨는 본인이 황 이낭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게 손해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임 삼노야는 그걸 믿지 않았다. 그저 도씨가 성질이 고약하고 박정해서 그녀를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이 넷째 아가씨가 그걸 눈치채고 있을 줄이야!
내주는 것이 있어야 얻을 것도 있는 법이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결사의 각오를 한 듯 말했다.
“부인께서는 주인이시고, 저는 한낱 노비일 뿐이에요. 노비는 주인의 뜻을 따르는 것이 본분이지요.”
임근용이 덤덤하게 말했다.
“이낭이 오늘 한 말을 잊지 마. 반드시 본분을 지켜.”
“아가, 너 뒤에서 꾸물거리면서 뭐하는 거니?”
도씨는 임근용이 황 이낭과 함께 뒤에서 소곤대며 빨리 따라오지 않는 것을 보고 몹시 불쾌해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도끼눈을 뜨고 황 이낭을 노려보았다. 황 이낭이 임근용에게 환심을 살까 두려운 모양이었다.
임근용에게는 이렇게 옹졸하고 어린애 같은, 그러면서도 강한 척하는 친어머니가 있었다. 그녀는 웃음을 터트리며 임신지를 끌고 종종걸음으로 도씨를 향해 달려갔다.
“이낭이 신발 두 켤레를 만들어 준다고 했어요.”
황 이낭의 신발 만드는 수준은 정말 일품이었다. 특히 여자 신발은 정말 정교하고 세밀해서 예쁘면서도 발이 편했다. 그녀를 뜯어먹으려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전혀 그런 의도가 없다고도 할 수 없었다.
‘이 넷째 아가씨가 아주 보통이 아니네. 그래, 신발 두 켤레 정도야?’
황 이낭은 이날 아침부로 넷째 아가씨에 대해 갖고 있던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녀는 귓불을 만지작거리며 아예 인심을 쓰듯 말했다.
“비첩이 부인께도 공경의 뜻으로 두 켤레 정도 드리고 싶은데 부인께서 비첩의 체면을 봐주실는지요?”
도씨는 콧방귀를 뀌며 코를 치켜들었다.
“난 신발이 아주 많아서 말이야.”
족제비가 만든 신발이면 구린내가 날 것이 뻔한데 그녀가 그걸 어찌 참을 수 있단 말인가.
임근용은 고개를 돌려 황 이낭을 향해 미소 지었다. 그들은 서로의 마음속을 훤히 꿰고 있었다. 하지만 신분과 상황 때문에 두 사람은 영원히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는 친근한 사이가 될 수 없었다. 그저 각자 필요한 만큼 등가 교환하는 거래 상대일 뿐이었다.
떠보는 과정에서 자칫 잘못하면 한 번에 일이 어그러질 수도 있었기 때문에 서로 아주 조심스럽게 대했다.
‘지금 이건 시작일 뿐이야, 정말 오래 합작하려면 이 다음을 생각해야해.’
도씨가 낮은 목소리로 임근용을 꾸짖었다.
“저 여자랑 왕래하지 마라. 좋은 사람이 아니야. 넌 잘 모르겠지만 너를 해칠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해. 저 여자랑은 말도 섞지 마!”
임근용은 웃음을 머금고 도씨가 뭐라고 하든 알았다고 대답했다.
그녀는 지금 가능한 한 도씨의 기분을 풀어주어야 했다. 그런데 어찌 도씨에게 말대답을 할 수 있겠는가?
도씨는 자신이 꾸짖는데도 딸의 태도가 나쁘지 않은 것을 보고는 이 일에 신경을 끄고 다시 오씨와 귓속말을 하기 시작했다.
“정말로 봉당이 혼자 사람을 데리고 거기에 갔었다고요?”
오씨가 눈썹을 휘며 웃었다.
“예.”
오씨가 도씨의 귓가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식량과 비단을 가져가서 밀랍, 사향, 종용(*苁蓉: 열당과의 한해살이풀, 통째로 말려 강장제로 씀), 홍화로 바꿔왔어요. 물건이 청주(清州)로 들어온 지 하루도 안 되어 다 팔려 나갔다니까요. 값도 아주 잘 받아서 부군께서 대단히 만족스러워했어요.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비웃을까 봐 아가씨한테만 말하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