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고인 (2)
임역지는 혼이 날 것이 두려워 연못에 뛰어들어 돌을 꺼내려다 몸에 한기가 들었다. 거기다 또 이틀 밤낮을 사당에서 무릎 꿇는 벌까지 받아 결국 병이 나 버렸고 한참 동안 고열이 떨어지지 않았다. 원래부터 지병이 있던 황 이낭은 쉬지도 않고 그를 돌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이 일로 인해 어머니는 아버지의 원한을 샀고 아버지는 보복하듯이 애첩을 한 명 더 들였다. 성격이 강한 어머니는 이에 화가 나서 큰 병이 났다. 원래도 좋지 않았던 부부 사이의 감정은 갈수록 더 나빠졌고 그들 남매도 중간에서 시달리느라 아주 힘들어졌다.
한편, 임역지의 신분과 지위는 이때부터 적자보다 앞서기 시작했다. 그는 원한을 품고 정말로 일곱째 동생을 위협하는 존재로 변화했다. 그때 이렇게까지 궁지에 몰리지만 않았어도 어머니가 임근용의 혼사를 그렇게 기뻐하며 승낙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 자신도 나중에 그런 고생을 하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전생에서 그녀는 오늘보다 일찍 일어나, 이 일을 맞닥뜨린 적도 없었고, 막을 힘도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이렇게 맞닥뜨리게 되었으니 아무래도 가만히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이번에 가면 아마 많은 것들을 바꿀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임역지가 벌을 받지 않을 테니 황 이낭도 일찍 죽지 않을 것이다. 그럼 아버지가 새로운 첩을 들이지 않을 테니 어머니도 병으로 쓰러지지 않을 것이다. 임역지 역시 그녀들을 증오하지 않을 테니 나중에 그녀들이 그렇게 고생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그녀도 육씨 가문의 육함에게 시집가 비명(非命)에 죽는 일은 없을 것이다.
임근용이 제멋대로 가버리는 것을 보고 여지는 계원을 나무라는 눈초리로 한 번 훑어본 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넌 무슨 말이 그리 많아! 아가씨가 무슨 말썽이라도 일으키면 계 마마한테 일러서 종아리를 때려주라고 할 거야.”
그녀가 말한 것은 계 마마한테 이른다는 것이지 삼부인에게 이른다는 뜻은 아니었다. 이것만 해도 이미 많이 봐준 것이었는데, 계원은 고마워하기는커녕 도리어 짜증을 내며 말했다.
“언니 팔뚝 참 굵네요! 이게 나랑 무슨 상관이에요? 빨리 따라가기나 해요, 아가씨가 벌써 멀리 갔잖아요!”
임근용은 연못가로 걸어가 멈춰 섰다.
8월 말, 연못에는 연잎과 연꽃은 벌써 사라지고 그저 시커멓게 시든 잎만 남아 부평초와 함께 떠다니고 있었다. 이 부평초들은 아직 덜 자란 소년들을 방해하며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영벽석은 원래 연못가에 세워져 있었다. 그런데 그중 임 노태야가 가장 좋아하는 검은색 영벽석이 기울어져 연못에 빠진 것이었다. 소년들은 똑같이 덜 자란 하인 서너 명을 지휘하며 허리까지 오는 깊은 물에 서서 목숨을 걸고 돌을 밀었고, 그들이 휘저어댄 덕분에 물은 흙탕물이 됐다.
임근용이 그들을 하나하나 훑어보았다.
피부색이 거무스름하고 벌레 두 마리가 올려진 것 같은 짙은 눈썹에 연한 녹색 상의를 입은 뚱뚱한 녀석은 그녀와 동갑인 육씨 가문의 오공자 육륜이었다.
호리호리한 몸에 키가 크고 점잖으며 연한 회색 옷을 입은 사람은 오씨 가문의 적차남 오상(吴襄)이었고, 하얗고 뚱뚱하며 파란색 옷을 입은 사람은 육륜의 형인 육씨 가문 셋째 공자 육경(陆经)이었다.
마지막으로 수려하고 곱상한 얼굴에 절망 가득한 표정으로 눈을 사방으로 굴리고 있는, 옅은 청색 옷을 입은 사람은 그녀의 오라버니 임역지였다.
자기 집 정원에서 이렇게 반쯤 자란 녀석들이 껑충거리며 뛰어다니고 있는데도 임근용은 전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평주 땅에서 임(林), 육(陆), 오(吴) 이 세 가문은 명망이 높은 집안이었고 모두 대대로 문인 가문이었다. 그들은 지금껏 서로 간에 혼사를 맺어왔으며 특히 임, 육 두 집안은 더욱 친밀했다. 두 집안은 각 세대마다 반드시 혼인을 맺어 두 성을 친척 관계로 묶어 두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모두 임씨 가문과 아주 밀접한 친척 관계였고 어렸을 때부터 임씨 가문을 자주 드나들어 서로 잘 알고 있었다.
요 몇 년 사이 모두들 점점 나이가 들어 남녀 사이의 내외가 시작되긴 했지만, 이런 경사스러운 날에 임역지의 통솔하에 몰래 정원에 와서 까불어대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라 어른들과 하인들도 모두 눈감아 주었다.
이 일에 대해 말하자면, 임역지가 사건이 일어난 후 노태야에게 혼쭐이 난 것은 정말 그래도 쌌지만, 결국 그녀의 어머니가 화풀이 대상이 되어 불행해졌고 그녀의 남매도 덩달아 화를 입게 되고 말았다.
임근용은 눈살을 찌푸리며 생각했다. 이런 걸 뭐라고 하더라? 아내가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하면 어쨌든 다 망한 거라 했던가.
이런 남자들은 마음속으로 아내는 마땅히 그를 대신해서 집안일을 처리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며 남편을 잘 보살펴야 한다고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그를 대신해서 첩과 어린아이를 잘 보살피는 것도 마땅한 도리라고 생각했다. 그러지 않으면 현모양처가 아닌 악처 취급을 받았다.
임근용은 마음속으로 퉤 하고 침을 뱉으며 생각했다. 그게 무슨 개똥 같은 도리람! 예전의 자신이었다면 마음속으로 그저 불공평하다고 생각할지언정 옳지 않다고까지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그녀가 어릴 때부터 받았던 교육에서 듣고 본 것이 전부 그랬으니 오랫동안 억울해도 그저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살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을 겪고 다시 살아나니 알고 있으면서도 아주 눈에 거슬렸다.
“넷째야.”
켕기는 구석이 있는 임역지가 제일 처음 임근용을 발견했다. 그는 무서워서 거의 눈물을 흘릴 것 같은 표정으로 애원하듯 임근용을 보았다.
“어쩌면 좋지?”
그의 생모가 아무리 임 삼노야의 총애를 받는다 해도 그는 서자에 불과했다. 윤리와 신분을 가장 중시하는 임 노태야의 눈에 그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만약 그가 자랑만 하지 않았더라면, 또 몰래 이 공자들을 이곳에 데리고 와 돌을 보지만 않았더라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겠는가? 열세 살 소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임근용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시선은 아직 육륜에게 쏠려 있었다. 장난꾸러기인 까만 뚱보가 약지 두 개를 입에 넣고 검지 두 개로는 눈꼬리를 누르고 쥐어짜며 못생긴 표정을 지었다.
“와…….”
임근용이 탄식했다. 그는 그녀를 향해 흰자를 까뒤집고 혀를 내밀었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보기 흉한지 눈뜨고 봐 주기 힘들 정도였다.
짝!
열네 살의 육경은 체면을 중시해 얼굴을 붉히며 동생의 뺨을 때리고는 슬쩍 오상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미안하다는 듯 임근용을 보며 웃었다.
“넷째 누이, 화내지 마, 다섯째는 늘 이 모양이잖아.”
“왜 또 때리고 그래? 어머니한테 이를 거야.”
육륜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형의 뺨을 때렸다.
“화 안내요.”
그녀가 어찌 육륜을 탓할 수 있을까. 장난기가 있긴 해도 그처럼 그녀에게 잘해주는 사람도 몇 명 없었다. 그는 친오라버니가 아니었지만 친오라버니보다 나았다.
임근용은 가까스로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녀는 소년들이 옅은 미소를 짓는 것을 보고 자연스럽게 허리를 굽히고 인사했다.
“육 셋째 오라버니, 오 둘째 오라버니. 다섯째 오라버니, 육륜 오라버니.”
육륜은 시시하다는 듯이 그녀를 쳐다보며 돼지 멱따는 소리로 크게 말했다.
“병이 났다고 해서 살이 빠졌을 줄 알았는데 어째 넌 살이 더 찐 것 같다? 살 안 빼? 우리 둘째 누나는 요즘 매일 살쪘다고 떠들어대면서 밥도 안 먹던데.”
그의 곁에 있는 오상도 웃는 얼굴로 임근용을 바라보며 그녀가 대답하기를 기다렸다.
임근용은 자신도 모르게 뺨을 만졌다. 보름 동안 좀 먹었다고 정말로 살이 찐 건가? 난 왜 몰랐지?
하지만 몇 년 만에 다시 돌아왔으니 그녀는 원래 자신이 뚱뚱했었는지 말랐었는지 기억이 안나 잠시 동안 육륜에게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왜 자꾸 헛소리를 해. 자매들 일을 네가 왜 함부로 말을 하고 그래?”
육경은 급히 육륜을 꼬집고는 어색하게 임근용을 바라보며 말했다.
“넷째 누이, 이 검은 뚱땡이가 또 사고를 쳤어. 역지가 이놈한테 저 영벽석이 평주에서 제일이라고 말했는데, 믿을 수 없다면서…….”
육경은 말은 이렇게 했지만 고소해하는 눈빛으로 한쪽에서 넋을 놓고 있는 임역지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리고 또 물에 반쯤 잠긴 영벽석을 보더니, 임근용을 향해 눈짓하며 ‘알겠지’ 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임씨 가문 삼남가의 적출 자녀들이 임역지를 싫어하는 건 비밀 축에도 들지 않았다.
임근용은 육경이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인 척하며 웃는 걸 보면서 속으로 냉소했다.
예전의 그녀는 이런 능글거림에 속아서 일방적으로 육경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랬던 이 사람이 자신의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친형제를 독살할 줄 어찌 알았겠는가!
무슨 난리가 날까 두려워하면서도 이렇게 그녀 앞에서 좋은 사람인 척 연기하는 음흉함이라니. 사실 그의 이런 성격은 어릴 때부터 이렇게 단서가 있었는데, 어째서 당시에는 눈치채지 못했던 걸까?
한편 육륜은 성질이 났다. 그는 사람들이 그에게 검은 뚱땡이라고 하는 것을 가장 싫어했다. 그의 친형이라도 안 됐다. 그는 시꺼먼 얼굴로 육경을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이 하얀 뚱땡이가! 내가 그 돌덩이가 제대로 고정이 안 돼 있는 줄 알았겠어? 임 오공자는 나한테 이 돌이 평주에서 제일이라고만 했지, 밑 부분이 작아서 건드리면 안 된다고 하지는 않았어. 그래도 내가 운이 좋았으니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이쪽으로 떨어져서 벌써 죽었을걸…….”
그는 한쪽에 창백한 얼굴로 서 있는 임역지를 사납게 찌르며 큰 소리로 말했다.
“이거 그거 아니에요? 임 형! 일부러 그런 거죠? 지난번 싸움에서 날 못 때려서 복수하려고 그런 거 아니냐고요?”
“아니야. 나도 이럴 줄 몰랐어.”
임역지는 긴장해서 옷에 손을 닦고 닦았지만 계속 흘러나오는 식은땀을 다 닦을 수가 없었다. 그는 이를 악물더니 소매를 걷어 올리고 연못에 뛰어들 준비를 했다. 그는 하인들을 도와 돌을 밀려는 것 같았다.
모든 나쁜 일들이 그가 물에 뛰어든 것에서부터 비롯되었는데, 그가 또 다시 물에 뛰어들려 하고 있었다!
임근용은 옆에서 잠자코 있던 오상을 급히 불렀다.
“오 둘째 오라버니, 빨리 잡아요.”
오상은 이 말을 듣자마자 임역지를 붙잡았고, 임역지는 불쌍하게 발버둥 쳤다.
“놔줘요! 나 할아버지한테 맞아 죽어요!”
사실 그는 정말 불쌍할 정도로 멍청했다. 그 돌이 그의 작은 몸으로 밀어 올릴 수 있는 크기인지 아닌지 눈으로 보면서도 모른단 말인가?
임근용은 짐짓 온화한 눈빛으로 임역지를 바라보았다.
“아마 돌 받침이 불안정해서 그랬을 거예요. 오라버니랑은 상관없어요. 우리가 증언해줄게요. 그렇게 해 줄 거죠? 육륜 오라버니?”
그녀가 육륜을 흘겨보았다.
그 뚱뚱한 녀석은 두어 번 끙끙거리더니 아무래도 임근용의 체면을 세워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는지 떨떠름하게 말했다.
“그래, 내가 이 돌이 예뻐서 만져보려 했는데 살짝 건드렸더니 넘어져 버렸어.”
그가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재수도 더럽게 없네!”
오상이 임근용을 보더니 태연하게 웃으며 맞장구쳤다.
“그래 맞아. 우리가 다 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