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풍파 (1)
도씨는 눈썹을 번쩍 치켜들었다. 그녀는 즉시 자신의 자식들이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렸을 리 없고 쌍둥이가 사고를 치고 모함을 하는 것이 분명하다고 말하려 했다. 도씨가 막 입을 여는데 오씨가 손으로 그녀를 누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흥분하지 말고 우선 상황을 지켜보고 나서 이야기해요.”
춘아가 급하게 따라 들어와 도씨의 귓가에 대고 몇 마디 속삭였다.
도씨는 사건의 진상을 듣고 벌컥 화가 났다. 그녀는 내심 차남가가 사람을 기만을 해도 유분수지 이건 너무 심하다고 생각했다.
먼젓번엔 그 어미가 부덕하여 천리에 어긋나는 짓을 하고도 조심할 줄을 몰라 임근용을 까무러치게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 딸이 임신지에게 손을 대고,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입에 발린 말로 임근용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있는 것이다.
참을 수 있다면 누가 안 참겠는가! 그녀는 화가 폭발할 것 같았다.
임근음과 오씨는 그녀의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을 보고 죽을힘을 다해 만류했다.
오씨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가씨, 일의 경중을 생각해요. 지금 어떤 자리인지는 알죠? 소란을 피우는 건 법도에 어긋나는 짓이에요.”
임근음이 바로 말을 이었다.
“할머니께서 아직 아무 말씀 안 하셨잖아요. 지금 할머니를 창피하게 만든 건 쌍둥이에요. 일단 참으세요. 넷째가 온화하고 예의를 아는 성격인 건 사람들도 다 알아요.”
도씨는 참고 또 참느라 이마에 핏줄이 다 튀어나왔다. 그녀는 겨우 화를 삼키고 낮은 목소리로 냉소했다.
“일단 저것들이 어떻게 나오는지 지켜보는 게 좋겠지요?”
옆에 앉아 있던 육씨 가문 둘째 부인 송 씨가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육륜 이 녀석이 어찌 이리 분수를 모르고 설쳐?”
그리고는 즉시 손을 뻗어 임근옥을 끌어다 자신의 손수건으로 그녀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자자, 착한 아가씨, 아가씨가 이렇게 귀한 눈물을 막 흘리면 안 되지. 울지 말고. 그놈이 뭘 잘 몰라서 그러니 상심하지 마. 좀 이따가 그놈을 혼쭐을 내주고 너한테 사과하라고 할게.”
육륜의 장난꾸러기 기질은 아주 유명했다. 그녀의 이 말에는 망신스러워 죽겠다는 의미도 담겨 있었다.
그러나 임 노부인이 품위 있게 웃으며 사양했다.
“그럴 것 없네. 아이들끼리 장난치다가 말다툼 좀 한 것 가지고.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무심코 했을 텐데 그게 어찌 진심이겠나? 나중에 제대로 가르치기만 하면 그만이지.”
임 대부인 주씨도 웃으며 말했다.
“맞아요, 어린애들끼리는 말다툼하고 싸우는 게 정상이잖아요. 자기들끼리 알아서 하겠죠, 내 생각에 우린 그냥 가만히 있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녀는 적당히 얼버무려서 일이 흐지부지 되기를 바랐다.
만약 도씨가 총명했다면 영리하게 앞에 나와 고개를 숙이고 몇 마디 반성하는 척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굳은 얼굴로 입을 다물고 앉아 있었다.
임 이부인은 달갑지 않은 눈빛으로 도씨를 힐끗 쳐다보더니 딱딱한 표정으로 쌍둥이를 꾸짖었다.
“너희 둘도 너무 철이 없구나. 오늘은 네 할머니의 생신이잖니. 억울한 일이 있으면 나중에 따로 얘기해도 되잖아? 왜 굳이 손님들 앞에서 이리 소란을 피워! 이렇게 분수를 모르다니, 지금 너희 꼴이 어떤 줄 알아? 다 큰 아가씨가 남부끄럽지도 않아! 얼른 가서 매무새를 정리하지 않고 뭐해? 정리가 끝나면 방에서 여계(*女诫: 여성의 교양에 관한 책)을 베끼거라. 백 번 다 쓸 때까지 밖으로 나오지 마!”
그리고는 변명할 틈도 주지 않고 쌍둥이 옆에 있던 시녀에게 두 사람을 부축해 데려가게 했다. 임 이부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임 노부인과 거기 있던 사람들에게 일일이 사과했다.
“제가 아이들을 제대로 못 가르쳐서 어머님께 걱정을 끼치고 손님들께 못 볼 꼴을 보였습니다.”
"됐다, 아이들이 잘못을 알았으면 됐지."
임 노부인은 허허 웃으며 주름살 가득한 얼굴을 돌려 주변 지인들에게 말했다.
“자네들한테 정말 민망한 꼴을 보였구먼. 집안에 아이들이 많아 한창 장난치고 말썽을 피울 시기라네. 아무리 엄격하게 단속하려 해도 애들이 이러는 건 도저히 당해낼 수가 없어!”
모두들 한바탕 웃었다. 사람들은 임씨 가문의 가정교육이 아주 엄격한 건 잘 알고 있다며 아이가 아직 어리고 성격이 활발하니 그저 천천히 가르치면 될 것이라 말했다.
그리고 사실 자기 집 아이들도 버릇없기는 마찬가지라면서, 이보다 더 지나쳤으면 더 지나쳤지 결코 이보다 덜하지는 않을 거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또 어렸을 때 이렇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며 위로를 건넸다.
모두들 한바탕 겸손을 떨며 자신을 낮추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이 일을 매듭 지었다. 그러고 나서 사람들은 계속 연극을 보며 차를 마셨다.
하지만 임근음은 오히려 걱정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임 노부인은 체면을 아주 중시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평소에도 차남가와 쌍둥이를 편애했다.
표면적으로는 쌍둥이가 벌인 이 소동을 이부인이 엄격하고 공정하게 처리한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악랄한 저의를 가지고 어머니를 도발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더구나 어머니가 면전에서 이렇게 당하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은 임 노부인의 눈 밖에 나서 또 불쾌한 일을 겪게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일곱째는 나이도 어리고 남자아이라 혼이 나진 않겠지만, 넷째는 아마도 벌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걱정이 되었다.
임근음은 가만히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빨리 가서 임근용과 임신지를 찾아 다시 위층으로 올라오지 말고 이 상황을 피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차남가 사람들이 자기 쪽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어서 움직이기가 곤란했다.
그녀가 안절부절못하고 있는데 황 이낭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셋째 아가씨, 제가 가서 보고 올게요.”
황 이낭도 속으로 임역지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녀는 임역지가 부주의하게 행동해 이 일에 연루되지나 않을까 염려했다. 아니면 혹시라도 뭔가 적절하지 못한 행동을 해서 또 다시 삼부인과 그 자식들을 불쾌하게 만들 수도 있었다. 그녀는 기회를 봐서 상황을 제대로 확인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역지가 좀 전에 벌였던 그 일도 아직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는 걸 잊어버려선 안 됐다. 이런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으려면 무슨 일이든 게으름을 피우며 교활하게 빠져나갈 생각을 해선 안 되고 매사에 주도면밀하게 앞장서서 처리하려는 태도를 가져야 했다.
임근음은 그녀를 믿을 수 없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어 웃으며 말했다.
“그럼 이낭이 수고 좀 해줘. 일단 두 아이를 잠시 피하게 해주고. 굳이 와서 더 시끄럽게 만들 필요 없잖아.”
그리고 자신의 시녀 비파(枇杷)에게 눈짓을 했다. 비파가 웃으며 황 이낭을 부축했다.
“이낭이 병이 아직 다 낫지 않았으니 노비가 부축해드릴게요. 저랑 같이 가요.”
황 이낭은 살짝 웃더니, 화도 내지 않고 친절하게 부축하는 비파와 함께 아래층으로 내려가 말없이 임근용과 임신지를 찾아다녔다.
사람들은 연극을 또 한 편 보았다. 막간에 기예를 보여주는 틈을 타 임 노부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역시나 도씨를 뒤로 불러서 미간을 찌푸리며 담담하게 말했다.
“넷째가 아프다 하지 않았니? 그럼 방에 남아서 쉬게 하든지, 아니면 여기 앉아서 연극을 보게 하지, 왜 신지를 데리고 쓸데없이 쏘다니게 만드는 게야? 언니로서 동생들의 잘못을 말리기는커녕 오히려 앞장을 서서 이렇게 일을 저지르다니.
더구나 이제 혼사를 논할 시기가 아니냐! 늘 육륜 그 못된 녀석과 어울려 다니더니 내 이럴 줄 알았다. 자기 집안 동생들이 그놈한테 그런 추잡스러운 소리를 듣고 명예가 손상되고 모욕을 당했는데 그게 넷째한테 좋을 건 또 뭐란 말이냐? 정말 중요한 게 뭔지도 모르고 우리 임씨 가문을 웃음거리로 만들다니!
넌 얼른 가서 넷째를 육륜 그 녀석과 떼어놓고 여섯째와 일곱째한테 예의를 갖춰 사과하라고 해라. 아이들이 사람들 앞에서 다시 다정한 모습을 보여주면 이 일은 자연스럽게 지나가게 될 게다.”
도씨는 기가 막혔다.
사람이 어찌 이리 편애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잘잘못을 가려보지도 않고 덮어놓고 우리 애들 잘못으로 치부해버리다니?
임 노부인 스스로도 육륜이 고집스럽다 말해놓고, 설마 임근용이 그 아이를 부추겨 쌍둥이한테 욕하게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건가? 정말 웃기지도 않는군!
더구나 임근용은 본래 연약한 성격이었다. 만약 정세가 여간 심각한 게 아니었다면 동생을 사랑하는 마음이 절절한 근용이가 이렇게까지 대담하게 나섰을 리가 있겠는가?
아무 잘못이 없는데도 넷째가 쌍둥이에게 사과한다면, 앞으로 차남가에서 삼남가의 아이들을 얼마나 쉽게 밟으려 들겠는가!
그 집안의 하인들마저 그 위세를 등에 업고 삼남가를 업신여기지 않겠는가? 주인이 힘이 없어 하인들까지 천대를 받게 될 것이다! 이런 건 절대 승복할 수 없지!
도씨는 분노로 인해 관자놀이가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눈을 들고 임 노부인을 바라보며 딱딱하게 말했다.
“어머님도 잘 아시다시피 넷째는 원래 여리고 얌전한 성격입니다. 그리고 신지는 아직 나이가 어린데 어찌 그런 일을 벌일 수 있었겠습니까? 육륜이 장난이 지나친 건 사람들도 다 압니다. 우리 아이들은 평소에 바깥출입을 전혀 하지 않고 사촌 형제들과 만나는 횟수도 손으로 꼽는데 어울려봤자 얼마나 더 그 아이와 어울린단 말입니까? 그리고 손님이 이런 일에 굳이 왜 나섰겠습니까?
분명 근주와 근옥이가 너무 심하게 사람을 업신여기니 보다 못 한 다른 아이들이 나서서 그리 모욕을 당한 것이겠지요! 뭣 때문에 넷째더러 사과를 하라고 하십니까? 아이들이 욕을 먹었는데 싸우지도 못하고 억울하게 듣고만 있어야 대의를 아는 거란 말씀이십니까? 그게 언니로서의 미덕이라고요?
둘째 형님이 낳은 아이들이 어머님의 친손녀인 건 사실이지만 제가 낳은 아이들도 어머님의 친손자 손녀입니다! 어머님은 어째서 한쪽 말만 듣고 저희 아이들 잘못이라고 다그치십니까?! 이건 불공평하지요!”
“내가 불공평하다고?! 도씨 가문에서 아주 딸을 잘 키웠구나! 그래, 네 말대로라면 내가 편애해서 너희 모자를 냉대한단 말이지? 너 같이 위아래도 몰라보고, 매사에 싸우려고 들고, 악담을 퍼붓는 것이 아이를 어찌 제대로 가르치겠느냐! 아이들이 자매간에 화목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여 사람들 앞에서 체면을 좀 세워달라는 것이 뭐가 잘못되었느냐. 그저 입만 놀리면 되는 일이고, 넷째한테도 좋은 일인데, 내가 네 아이들한테 뭘 어쨌다고 이러느냐?”
임 노부인은 도씨 때문에 흥분하여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녀는 하인들 앞에서 체면을 구길 수 없어 말투가 더욱더 엄격해졌다.
도씨가 냉소하며 말했다.
“뭘 어쩌시긴요, 도가 지나치게 편애를 하셔서 차마 눈 뜨고 볼 수가 없을 지경입니다.”
“이 어른도 몰라보는 불효막심한 계집! 내 오늘 네 부모를 대신해 널 좀 가르쳐야겠다!”
임 노부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지팡이를 들어 도씨를 때리려 했다.
도씨에게는 바로 이런 능력이 있었다. 분명 좋은 말로 넘어갈 수 있는 일도 그녀는 매번 수습할 수 없을 지경이 될 때까지 상황을 악화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