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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화 말 시합



27화 말 시합

진강 일행이 영친왕부를 나오자, 털이 눈처럼 새하얀 말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진강이 문을 지키고 있는 사환에게 명령을 내렸다.

“이번에 남번에서 공물로 들어와, 폐하께서 내게 하사한 적갈색 말을 끌고 와라.”

“진강 공자, 설마 그 말을 청음에게 줄 건 아니겠지?”

연석이 놀라하며 묻는 말에, 진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청음에게 줄 것이네.”

“그 말은 사나워서 사람들이 길들이길 포기한 말이라, 공자도 여러 번 상처를 입지 않았나? 행여나 청음이 말을 타다 다치면 어쩌려고. 공자는 걱정도 안 되나?”

연석이 진강을 쳐다봤다.

“만약 청음이 이 말을 탈 능력이 없다면, 나를 모실 능력 또한 없다는 뜻이겠지.”

진강의 말에, 연석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사방화를 쳐다봤다. 아무리 상상해 봐도, 사나운 말을 타는 그녀의 모습을 도저히 떠올릴 수 없었다.

‘혹, 당황하며 눈물을 흘리지는 않을까?’

진강의 말을 들은 사묵함은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그래도 여인인데, 조심하는 것이 좋소.”

진강이 사묵함을 보며 큰소리로 웃었다.

“내가 있는데 무슨 걱정입니까? 설마 내가 청음을 위험하게 하겠습니까? 그리고 누가 여인은 말을 타지 못한다 하던가요? 여인도 사내에게 뒤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 말에 사묵함이 한숨을 내쉬었다.

“확신이 있다면 되었소. 이건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이오.”

“당연히 자신 있습니다.”

잠시 후, 사환이 적혈마(赤血馬) 한 마리를 끌고 왔다. 다른 말보다 몸집이 더 크고, 우람했다. 또한 가슴을 당당하게 펴고 걸어 나오는 말의 모습은 마치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두고 돌아 온 개선장군의 모습을 연상케 했다.

“이 말을 탈 수 있겠느냐? 말의 이름은 내가 홍종금(紅棕金)이라 지었다.”

진강이 사방화에게 물었다. 사방화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 후, 사환에게 다가가 조용히 고삐를 건네받았다. 그녀는 조급하게 말에 올라타지 않고, 먼저 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때 홍종금(紅棕金)이 갑자기 입을 벌려 그녀의 손을 물려고 했다. 그러자 사묵함이 창백한 얼굴로 소리를 질렀다.

“조심!”

사방화는 잽싸게 손을 거두고는 다른 손으로 홍종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말이 또 깨물려 하자 다시 손을 숨긴 다음, 반대편 손으로 쓰다듬었다. 이렇게 둘은 열 번 이상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적혈마 홍종금이 흥분하면서 발로 거칠게 땅을 차자, 그녀가 갑자기 말 위로 올라갔다. 홍종금은 더욱 흥분하여 머리를 거칠게 흔들면서 그녀를 떨어뜨리려 했다.

“만약 버티지 못할 것 같으면, 내려오너라.”

사묵함이 몸을 떨면서 창백한 안색으로 말했다. 그러자 진강이 사묵함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느릿하게 말했다.

“자귀 세자, 언제부터 담이 이리 작아지셨습니까? 저는 세자께서 어렸을 때, 사나운 말을 길들이던 것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사묵함이 갑자기 고개를 돌리고 그를 노려보며, 자신도 모르게 화를 냈다.

“우리는 사내이고, 청음은 여인인데, 어떻게 같을 수 있겠소?”

“왜 안 됩니까? 지금 말 등에 저리 잘 앉아 있는데요?”

진강이 눈썹을 올리며 말했다. 사묵함은 진강의 손을 밀쳐낸 후 말에 탄 사방화를 쳐다봤다. 말은 앞뒤로 움직이며 미친 듯이 발을 구르고 있었지만, 사방화는 두 발을 말 허리춤에 딱 붙인 채 평온하게 앉아 있었다. 그녀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사묵함은 문득 누이동생이 8년간 무명산에서 지냈다는 것이 생각났다. 그는 걱정을 거두며,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연석, 정명, 송방은 눈을 크게 뜨고 사방화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이목청은 다른 이들과 다르게 진강과 사묵함의 표정을 자세히 살피고 있었다.

잠시 후, 적혈마 홍종금이 드디어 고개를 숙이고 조용해졌다. 사방화가 손을 뻗어 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홍종금은 사람의 손길이 익숙하지 않은 듯, 고개를 흔들었지만 손을 물려고 하지는 않았다.

“대단하군!”

연석이 놀라 반짝이는 눈으로 사방화를 쳐다봤다.

“여인이 사나운 말을 길들이는 것은 처음 보네. 진강, 청음은 정말 보통 여인이 아니군.”

송방이 기뻐하며 말했다.

“맞아. 경성 안 그 어떤 여인도 이리 사나운 말을 길들이진 못할 테지. 노 아가씨도 말을 타고 사냥을 즐기지만, 감히 홍종금을 길들이진 못할 것이네.”

정명도 다른 사람들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그 말에 진강이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노 아가씨? 그녀는 홍종금을 만질 수조차 없을 걸세.”

사묵함은 문득 방금 전 진호가 해준 말을 떠올렸다.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노 아가씨와 영강후부의 연 아가씨가 친우들을 데리고 사냥터에 갔다는 사실을 진강에게 전해 주었다.

“며칠 전 진강 공자가 경성의 직조부(*织造府: 의상실)에 노 아가씨와 연 아가씨의 옷을 미뤄두고, 청음의 옷을 먼저 제작하라 명했다 들었소. 그 소식을 들은 노 아가씨와 연 아가씨의 화가 가볍지 않다 하더군. 오늘 아가씨들이 사냥터에 갔다고 하오. 사람을 보내 알아본 후, 최대한 그들과 마주치지 않는 편이 좋겠소.”

“제가 그들을 무서워할 것 같습니까?”

진강이 신경 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공자는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하여도 청음은 시녀인데, 괜찮을 것 같소?”

사묵함이 말했다.

“잊지 마시오. 그대가 만들라고 한 것은 청음의 옷이오. 그녀들은 공자를 건드리지 못하는 것이지, 청음은 아니오.”

“청음도 그녀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진강이 말 위에 올라타면서 사방화에게 분부했다.

“만약 그녀들이 나타나 너에게 함부로 굴면, 검으로 그들의 팔과 다리를 잘라라. 전부 내가 감당하겠다.”

사방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진강이 있는데, 자신이 무엇을 두려워하겠는가? 진강의 말에 연석이 놀라 큰소리를 질렀다.

“이보게, 진강 공자. 그 중엔 내 누이동생도 있네!”

“그럼 자네가 누이동생에게 가서 말하게. 내 시녀를 건드리지 말라고.”

진강이 콧방귀를 뀌면서 화를 냈다.

“요즘 들어 정말 이상해졌군.”

연석이 자신의 말에 오르면서 말했다. 이목청, 정명, 송방도 모두 자신의 말에 올랐다. 사묵함은 말에 오르면서 오늘 자신의 누이동생과 말할 기회를 찾을 수 있을지 내내 고민했다.

* * *

그들은 영친왕부를 떠나 북성문(北城門)으로 향했다.

곧 연말이기 때문에 거리엔 사람들이 많았고, 연말 분위기로 인해 즐거움이 가득 흘러넘치고 있었다. 사전(*肆廛: 가게)도 일찍이 문을 열어,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들로 잔뜩 붐비고 있었다.

진강 일행들이 거리로 나가자 사람들은 즉시 양쪽으로 길을 비켜줬다. 대부분 사람들은 그들에게 정중함과 호기심을 보였다. 정중함은 진강 일행에게 보여주는 것이었고, 호기심은 그들 일행 중 유일한 여인인 사방화에게 보이는 것이었다.

진강의 시녀가 되고 나서 온갖 소문만 무성했던 사방화가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자, 넓은 거리가 일순간에 조용해졌다.

진강은 거리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당당하게 걸어갔다. 사방화는 평온한 표정으로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말 위에 앉아 있었다. 비단옷을 입고 적갈색 말 위에 당당히 앉아 있는 그녀는 소문대로 천상에서 내려온 선녀 못지않은 모습이었다.

연석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가는 진강과 청음을 보면서 입을 삐죽거렸다. 이리도 총애하는 시녀를 두고, 진강이 앞으로 어떻게 부인을 맞이할 수 있을 런지 그가 참으로 애안했다.

한편 이목청, 정명, 송방, 사묵함은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진강 일행은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북문을 향해 갔다. 북문에 있던 병사들이 사냥터에 가는 그들을 위해 길을 열어주었다.

“오십 리를 가야 하는데, 그전에 달리기 시합을 해서 몸을 좀 풀어놓는 건 어떤가?”

진강이 고개를 돌려 다른 사람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좋지.”

연석이 즉시 동의했다.

“자귀 세자께서는 몸이 회복된 지 얼마 되지 않으셨으니, 그냥 저희 뒤에서 천천히 걸어오십시오!”

이목청이 말했다.

“그럴 필요 없소.”

사묵함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가자!”

말을 마친 진강이 말에게 채찍질을 하며 먼저 출발했다. 사방화의 말, 홍종금은 진강이 출발하는 것을 보자, 쏜살같이 앞으로 튀어나갔다. 두 마리의 말이 순식간에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역시 좋은 말이군!”

연석이 감탄하며 그들을 쫓아갔다. 이목청, 정명, 송방, 사묵함도 그들의 뒤를 쫓아가기 시작했다.

진강이 타고 있는 말은 유운구(流云駒)라는 말이었다. 성격이 홍종금(紅棕金)처럼 거친 건 아니었지만, 다리의 힘은 그 못지않게 좋아 달리는 속도가 상당히 빨랐다. 구름처럼 가볍게, 바람처럼 빠르게 달리는 말의 움직임이 유난히도 경쾌해 보였다.

어느덧 두 마리의 말이 바람을 맞으며 나란히 달리기 시작했다. 연석과 이목청 등이 탄 말도 좋은 말이었으나, 진강과 사방화가 탄 말을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유운구는 작년에 북쪽에서 공물로 들어온 말 중의 하나였다. 당연히 진강이 황제를 졸라 뺏어온 말이다. 홍종금은 남번(*南番: 남쪽 오랑캐)이 바친 공물 중 하나였지만, 진강 외에 누구도 이 말을 길들이지 못했다. 허나, 진강이 남번의 사신 앞에서 이 말을 길들이자, 황제가 기뻐하면서 그에게 상으로 하사했다.

한참을 달리던 연석이 말고삐를 잡아 멈추며 인정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청음이 말을 이리 잘 탈 줄은 몰랐어. 왜 좋은 물건과 좋은 사람들은 모두 진강 공자 곁에만 있는 거지?”

이목청과 다른 일행들도 말을 멈추었다. 그러자 정명이 말했다.

“당시 영친 왕비께서 소봉상에게 화장을 해준 시녀를 달라고 하셨을 때, 모두 저 시녀가 하잘것없는 존재라고 생각했지 않은가. 아마 우리 손에 들어왔어도, 별것 아닌 노비로 취급했을 것이네.”

연석은 콧방귀를 뀌었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진강 외에 그들은 이 시녀를 보잘 것 없는 존재로 생각했었다. 소봉상이 하잘 것 없는 극단의 배우이기 때문에, 그의 시중을 들던 벙어리 소녀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어찌 되었든, 호위병을 데리고 나오지 않았으니, 빨리 그들을 쫓아가는 것이 좋겠소.”

“자귀 세자, 오늘 왜 이리 갑자기 청음에게 관심을 가지시는 겁니까?”

연석이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조금 멈칫하던 사묵함이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그래 보이오?”

“조금이요.”

연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청음이 내 누이동생과 좀 닮아서 그런 것이오.”

연석이 갑자기 깨달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렇군요. 사실대로 말하면, 어렸을 때 보고 한 번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자귀 세자의 누이동생이 지금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렸을 때와 똑같을까요?”

사묵함이 연석을 진지하게 쳐다보면서 말했다.

“그대가 만약 가족들을 설득해 우리 집에 혼담을 넣을 것이 아니라면, 앞으로 내 누이동생을 그만 생각했으면 좋겠소. 만약 소문이라도 이상하게 난다면 누이동생 뿐 아니라, 그대에게도 별로 좋지 않은 일이지 않겠소?”

연석도 진지하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이제 가지!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게 되면, 진강 공자가 우리를 기다리지 않고 사냥을 시작할 것 같네.”

이목청이 말했다.

공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진강은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다. 오랫동안 알고 지냈지만, 그 누구도 진정으로 진강을 이해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었다. 그는 언제 표정을 드러내고 감춰야 하는지를 매우 잘 아는 사람이었다. 표정 관리에도 능했고 속내도 잘 드러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