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포칼립스 속 집사가 되었다 (1)
나는 집사다.
어떻게 집사가 되었는지를 설명하자면 조금 이상할 수도 있겠다마는….
띠링-
"어서 오세요."
아, 게임 속에서 집사라는 말이지 현실에서는 일개 편돌이에 불과하다.
"담배."
"어떤 거 드릴까요?"
"에쉬."
"에쉬만 해도 10종류는 되는데, 찾으시는 게 어떤 걸까요?"
"얇은 거."
"다 얇아요."
"아이씨, 맨날 사던 거!"
처음 온 손님이 맨날 사던 담배를 찾으면 내가 어찌 알겠는가?
"이거 맞으실까요?"
편의점에서 일을 하다 보면 저런 병신 같은 놈은 늘상 만나는 법.
자주 출몰하는 유형인만큼 상대법도 간단하다.
대충 아무거나 한번 집어주면···.
"옆에 꺼!"
"아니!!! 우측 말고!!! 좌로 둘."
이렇게 스스로 답을 알려준다.
띠딕-
"4,500원입니다."
"퉤엣-!"
2년간의 편돌이 생활로 단련된 나다.
저런 진상 손님은 내게 일말의 타격도 주지 못한다.
뭐, 정신적 단련이 되서도 있겠지만, 힐링 게임 '아포칼립스 속 집사' 때문이 더 크다.
이걸 하다 보면 웬만한 스트레스는 눈 녹듯이 사라져 버리니까.
「사지 말고 입양하세요!!!」
라는 문구로 시작되는 아포칼립스 속 집사는 굉장히 특이한 설정을 가진 게임이었다.
1. 인류의 문명이 멸망한 세상이라는 배경.
2. 집을 관리하고 업그레이드한다.
3. 고양이를 키워서 행복도를 100%로 만든다.
크게 이 세 가지 컨셉이 주가 된다.
집사(執事).
직역하자면 집안일을 꽉 잡고 있는 사람이고 본래는 '집을 관리하는 사람'으로 쓰이던 말이다.
현대에 와서는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을 일컫는 의미로도 쓰이고 있는데….
이 게임에서는 두 가지 모두를 포함한 중의적인 표현으로 집사라는 명칭을 쓰고 있다.
즉, '아포칼립스 속 집사'. 줄여서는 '아속집'이라는 게임에서 할 일은 '고양이 키우기'와 '집 관리'라는 말이다.
「당신은 멸망한 세계의 집사가 되었습니다.」
아포칼립스라는 배경에 걸맞게 시작 지점에서 집의 모습은 폐허나 다름없었고, 배경으로 보이는 주변 풍경은 마치 핵폭탄이라도 떨어진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런 세상에서 귀여운 아기 고양이를 키우고 집을 짓고 업그레이드하는 게 이 게임의 전부인데, 생각보다 할 일이 많아서 시간을 제법 쏟아 부었다.
「폐허를 개척해 집을 지을 공간을 확보하세요.」
「건설 탭이 개방됩니다.」
자원을 수집하고 땅을 개척해 집을 짓는다.
「+500p」
「+750p」
「자원을 확보했습니다.」
「돌조각 +20」
「나무판자 +8」
「철근 +4」
그다음에는 주어지는 포인트와 수집한 자원을 사용해서 집을 업그레이드한다.
「고양이의 영역이 확보되었습니다.」
그렇게 최소한의 기준을 충족시키면, 스트릿 출신이라는 설정이 있는 아기 고양이가 합류한다.
「흑묘(생후 4주)가 반려묘로 추가됩니다.」
스트릿 출신이라는 설정답게 여기저기 상처가 많은 고양이.
초반에는 이 고양이를 치료하고 성묘로 성장시키는 것이 목표인데······.
「고양이 관리 탭이 개방됩니다.」
「고양이의 영역 확장이 필요합니다.」
「만 1세 미만의 고양이는 키튼(Kitten) 사료를 필요로 합니다.」
화면 속 고양이 주제에 요구사항이 제법 많았다.
「고양이의 식량 개선이 필요합니다.」
「고양이의 수직 공간이 부족합니다.」
이런 식으로 게임을 하다 보면 할 일이 계속해서 늘어났고, 어쩌다 보니 1년을 넘게 이 게임을 붙잡고 있었다.
「고양이의 만족도가 100%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더 이상 집과 고양이 관련해서는 업그레이드할 구석이 없어졌다.
「이동식 요새가 개방되었습니다.」
「방어 설비 건설이 가능해졌습니다.」
대신 맵이 확장되면서 새로운 기능이 개방되었는데, 아포칼립스라는 배경이지만 몬스터도 좀비도 없는 세상에서 이게 왜 필요한지 이해는 안 갔다.
그래도 이걸 지으면 고양이의 만족도가 100% 이상으로 올라가기 때문에 열심히 하게 되었지만.
「고양이가 안정감을 느낍니다.」
「만족도 200%」
이마저도 반년 만에 끝을 봤다마는….
『냐아아~!』
이제 더 할 콘텐츠도 없지만, 그냥 이렇게 고양이를 한 번씩 클릭하면서 순수 힐링 게임 용도로 플레이하고 있다.
『고로로로로롱-』
사운드를 잘 입혀놔서 그런지 유투브로 보던 진짜 고양이와 제법 비슷하기도 하고.
게임 속 고양이여도 개냥이여서 그런지 더 정이 간달까?
띠링-
편돌이를 하면서 시간 때우기도 좋고 진상 손님에게 받은 정신적 피해를 치유해주기까지 하는 갓겜이라고 볼 수 있지.
1년 반 넘게 해도 질리지 않는 걸 보면 말이야.
"저······."
1. 진상 손님, 암걸리게 답답한 손님 을 만난다.
2. 고양이를 보면서 힐링한다.
이 루틴으로 관성이 생겨 버렸기에 계속 이 게임을 놓지 못하고 있다.
"그······."
이번엔 암 걸리게 답답한 손님이다.
"아······."
"임테기는 뒤편에 있습니다. 생리대는 그 우측에 있고요."
병신같이 우물쭈물거리는 20대 남자의 99%는 임테기나 생리대 둘 중 하나를 찾는 사람이다.
저게 뭐 그리 부끄럽다고 저러는지 모르겠네.
"여기요."
"9,000원입니다."
이번 손님은 임테기를 사 갔다.
좆됐다는 표정으로 보아하건데, 저 손님은 조만간 아빠가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 직감은 제법 잘 맞아떨어지니까 99% 확신할 수 있다.
『야오오옹-!』
답답한 손님이 오면 고양이가 애교를 부려준다.
작은 폰 화면으로 보는 고양이도 고양이인 만큼 귀엽고 아름답다.
그것도 오늘이 마지막이지만······.
「멸망까지 남은 시간 02:00」
안타깝게도 '아포칼립스 속 집사'의 서비스 종료까지 2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이 카운트는 지금으로부터 약 한 달 전부터 나타났다.
뭐, 정식 서비스 출시일이라기에는 출처도 불분명한 게임이라 말이 안 되는 소리고.
그래서 '서비스 종료 일이 아닐까?'라고 추측했다.
애초에 설치한 것도 정기 후원을 하던 동물 보호단체 때문이었으니까.
'노묘에게 안식을'이라는 단체인데, 이곳에서는 늙은 고양이를 끝까지 살다 가게 돌봐주는 활동을 하고 있었다.
사람보다 동물이 좋고, 그중에서도 고양이를 가장 좋아하던 나는 그곳에 있는 고양이들에게 1:1 후원을 해왔다.
돈 아깝니 뭐니 하는 놈들도 제법 많았는데….
'내가 내돈 쓰고 싶다는데 무슨 상관이냐?' 하고 가볍게 무시했다.
어쨌든, 그렇게 내가 후원한 고양이는 7마리다.
그리고 마지막 일곱번째 고양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넜을 때 '아포칼립스 속 집사' 게임이 담긴 링크가 문자로 전송돼 왔다.
[후원자님 덕분에 저희 단체의 고양이들이 편안하게 살다 떠날 수 있었습니다. 후원자님이 게임을 좋아하신다니 답례로 저희가 만든 게임을 보내드립니다. 앞으로의 세상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butlerinapo.com]
그 후 '노묘에게 안식을'이라는 단체는 사라졌다.
아속집이라는 게임도 나 외에는 플레이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조금 이상하긴 했어도 어차피 모바일 게임이고 그 출처도 '동물보호단체'였기에 딱히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다.
그래서 지금까지 이 게임을 하고 있는 거고.
그렇게 회상에 빠져 있었는데······.
파앗-!
"응…?"
「멸망까지 남은 시간 01:59」
갑작스럽게 이상한 메시지가 나타났다.
그것도 내 눈앞에.
띠링-
폰 화면이 아니라 진짜 눈앞에 나타난 홀로그램 화면.
"저 쎄븐 마일드 한 갑―"
"저 혹시 제 앞에 파란색 화면 보이세요?"
마침 들어온 손님에게 이를 확인해 봤는데.
"네?"
"이, 멸망까지 남은 시간이라는 글자 안 보여요?"
"어… 뭘 말하시는 건지…?"
"아, 아니, 혹시 이거 안 보이셔요?"
"아… 수고하세요."
미친놈 취급을 받아 버렸다.
띠링-
"별 미친놈을······."
중얼거리며 나가는 손님은 일단 그렇다 치고.
파앗-!
「멸망까지 남은 시간 01:55」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가 더 문젠데….
1. 내가 미쳤다.
2. 이게 현실이다.
선택지는 둘, 비정상적일 정도의 침착함과 철저한 자기 객관화가 최대 장점인 나이기에 1번 선택지는 절대 말이 안 된다.
그 말인즉슨.
2번 선택지인 내 눈에만 보이는 홀로그램이 바로 현실이라는 걸 의미하는데······.
이게 사실이면, 세상이 멸망한다는 말도 진짜일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뜻한다.
"씨이발."
차분히 생각에 결론을 짓고 나니 나는 당장 이 병신 같은 편의점을 때려치우고 2시간 내로 멸망을 대비해야 한다는 것까지 생각이 이어졌다.
「멸망까지 남은 시간 01:51」
풀럭-
당장 편의점 유니폼을 벗어 던지고 편의점 안에 진열돼 있는 물품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도둑질?
곧 멸망이 온다는데 편의점 좀 털 수도 있지.
내 감이 말하는데, 멸망은 100% 일어날 것이다.
만약, 세상이 망하지 않고 내가 미친 거라면, 나중에 물건을 돌려준 후 정중하게 사과하고 피해금액을 변상하면 될 일이다.
새벽 두 시에 점장한테 전화해서.
'점장님, 세상이 멸망한다는데 가게 물건 좀 가져가겠습니다. 결제는 정산서 보내주세요!'
라고 양해를 구해봤자 미친놈 소리밖에 더 듣겠어?
드르르르르륵.
할 거면 제대로 한다는 게 내 철칙이다.
기왕 털기로 한 거, 주섬주섬 챙길 바에는 창고에서 핸드 카트를 끌고 오는 게 더 효율적이다.
햇반, 스팜, 쌀, 라면부터 유통기한이 긴 안주류 제품들까지.
드르르르륵.
또 다른 한 대에는 담배를 쌓았다.
과거의 인류라면 모르지만, 현대인은 웹소설을 통해 이런 재난 상황에 대한 충분한 사전지식을 가지고 있다.
세상이 멸망한다면 물물교환이 주가 될 것이고, 담배는 꽤나 쓸만한 거래 수단이 될 테니까.
띠링-
"저기―"
"영업 끝났습니다!"
간간이 들어오는 손님을 물리치고 편의점 입구 쪽으로 물건을 가득 담은 핸드 카트들을 끌고 갔다.
「멸망까지 남은 시간 01:06」
그 후에는 매장 근처에 주차해둔 1톤 탑차를 몰고 왔다.
과거에 하던 배송일 때문에 사둔 찬데, 아직 할부도 안 끝나서 별 생각 없이 출퇴근용으로 타고 다니고 있다.
그리고 세상이 망한 덕분에 그 덕을 톡톡히 보게 되었고.
띠링-
"저기―"
"영업 안 합니다!!!"
부아아앙―
손님들이 거슬려 탑차로 아예 입구를 막아버렸다.
문 앞에 대두는 게 물건 싣기도 편하니까.
「멸망까지 남은 시간 00:34」
신속함, 냉정한 판단력은 나의 강점이다.
때론 지금처럼 과해지기도 한다만, 나는 늘 이렇게 살아왔다.
그리고 이렇게 살면서 손해 본 적은 결코 없었다.
털썩-
"휴우…."
편의점 안에 있는 것들보다 차에 실린 것들이 더 많아졌을 때쯤.
쿠우우우우웅-!!!
세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미친."
그리고 내 눈앞에는 욕이 절로 나오는 미친 상황이 펼쳐졌다.
와장창―!!!
가판대, 선반, 냉장고에 있는 병들이 쏟아지고 부셔져 바닥에 흩뿌려졌고―
쩌저저적-!!!
건물 벽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멸망까지 남은 시간 00:30」
아직 짐도 다 못 실었는데, 시간도 30분이나 남았고….
멸망이 오는 것은 맞긴 한데, 카운트 기능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모양이다.
아니면 내가 뒈지길 바랐다거나.
어차피 편의점은 거점으로 최악인 장소다. 그래서 이곳을 뜰 생각으로 물자를 차에 옮긴 거고.
쿠구구궁-
지진이 조금 약해지기 시작했을 때.
부아아아아앙―!
나는 남은 짐을 버리고 재빠르게 차를 몰고 거리로 나섰다.
쿠우우웅-!
"꺄아아아아!"
밖에서 보이는 광경은 그야말로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자다가 뛰쳐나와서 그런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추운 겨울에 옷도 제대로 입지 않고 있었다.
"사람 살려―"
콰앙-!
세상이 흔들렸다는 느낌이 들 정도의 지진이었으니 실외기나 간판이 떨어지는 것도 당연한 일.
푸직―
그것에 맞아 핏덩이가 되어 버리는 사람이 보인다.
"아아악-!"
그리고 그 핏덩이를 밟고 넘어지는 사람도 있고.
빠아아앙―!
가족들과 차를 타고 대로변으로 빠져나가는 사람들도 보인다.
부아아아아앙―!
어딜 봐도 '멸망'이라는 단어밖에 보이지 않는 상황.
그래도 다행인 점이 하나 있었다.
새벽 두 시의 골목길이라 골목 안으로 향하는 건 나 하나뿐이라는 것.
집까지 2분 남짓한 거리.
사실 안전을 생각하면 다른 사람들처럼 대로 한복판이나 근처 초등학교로 가는 게 맞겠지만, 나는 내 집으로 향하고 있다.
막다른 골목에 자리한 내 집은 ㄷ자로 둘러싸인 골목의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1층인 내 집과 그 주변에는 고층 건물도 없으니, 유동인구가 많은 편의점이나 개나소나 다 몰려갈 학교 운동장보다는 백배는 안전할 것이다.
쿠우웅.
미친듯이 흔들리는 땅에서 운전한 탓에 골목에 주차된 차들을 박아버렸다.
대지진에서 운전은 처음이라 실수를 했는데….
세상이 무너지는 와중에 보험사가 올 겨를이 있을까 싶다.
띠- 띠- 띠- 띠-
그래도 집 차고로 차를 넣는 것은 신중하게 했다.
1972년에 지어진 낡디낡은 집이어도 '나의 소중한 집'이니까.
띠- 띠- 띠- 띠-
차에서 나오는 후진 경고음을 들으며 좁은 차고에 맞춰 후진을 했다.
끼이익-
철컥.
주차까지 마치고 나자.
쿠우우우우웅-!!!
다시금 세상이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멸망까지 남은 시간 00:15」
여전히 시간이 남아 있건만, 어째 이번 진동은 전보다 심하게 느껴진다.
쩌저저적!
집앞 빌라가 반으로 갈라져 무너지고.
쿠구구구구궁!
차고 앞 골목길은 푹 꺼져 버렸다.
와르르르르―
그리고 1972년에 지어진 내 낡은 집도 폭삭 무너져 버렸다.
「멸망까지 남은 시간 00:00」
10분 넘게 이어진 이 지진은 카운트가 0을 가리킴과 동시에 멈춰 버렸다.
「각성 퀘스트」
「고양이를 지켜라」
그와 함께 눈앞에 창이 떠올랐고.
뚜욱.
마치 전화를 끊은 것처럼 순식간에 세상에 정적이 찾아왔다.
그리고······.
우우우웅-!
내 스마트폰이 공중에 떠오르더니 기묘한 검은 빛을 뿜어대기 시작했다.
파앗-!
빛이 멎고 나타난 것은···.
『냐아······.』
검은색 아기 고양이다.
그것도, 내가 아속집에서 키우던 고양이와 비슷하게 생긴.
#2. 아포칼립스 속 집사가 되었다 (2)
「각성 퀘스트」
「고양이를 지켜라」
멸망 카운트가 0이됨과 동시에 나타난 각성 퀘스트.
폐허가 된 집과 멸망한 세상.
『냐아······.』
품속에서 울고 있는 아픈 고양이.
고작 두 시간만에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나 머리가 완전히 굳어 버렸다.
띠이잉-
그 와중에 문자가 한 통 왔다.
아직 신호가 잡히는 모양인데······.
"허······."
스팸문자일 가능성이 99%다만.
내게 새벽 두 시에, 그것도 세상이 멸망하고 있는 와중에 문자를 보낼 사람은 없으니까.
그래도 머리가 굳어 있던 차에 당장 할 일이 생겼으니, 이 문자가 썩 반갑게 느껴졌다.
틱-
별생각 없이 스마트폰을 들고 문자를 확인했는데, 그 내용이 심상치 않았다.
[지구에 남은 마지막 신이 사라졌습니다. 멸망하게 될 세상을 살아갈 당신께 마지막 축복을 내려드립니다. 칠묘(七猫)가 행복하게 삶을 끝내게 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내가 후원한 일곱 마리의 고양이에 대한 얘기인 것 같다.
우선 침착하게 문자 내용부터 분석해보자고.
첫 번째 키워드, 마지막 남은 신.
원래부터 개차반이었던 지구에 '신'이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긴 한데······.
하는 것도 없어 보이던 신이 사라졌다고 지구가 왜 망했는지는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두 번째 키워드, '멸망하게 될'.
이미 멸망 수준으로 세상은 망가졌다.
'될'이 붙은 것을 보면 여기서 더 좆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겠지.
세번째 키워드, 축복.
'고작 정기 후원 몇 년 한 걸로 축복까지 내려줄 정돈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지만….
내가 받은 축복이 뭔지는 알 것 같다.
1. 한 달 먼저 멸망을 알게 됨.
내가 믿지 않아서 그렇지, 아속집에서는 내게 한 달 전부터 이 사실을 경고했다.
멸망 두 시간 전부터는 눈앞에 기묘한 홀로그램 창을 띄워주기까지 했으니.
그 덕에 확보한 탑차에 있는 물자들만으로도 나는 다른 생존자들보다 몇 발자국은 앞서 갔다고 볼 수 있다.
2. 내 품에서 잠든 아기 고양이.
고양이와 폐허가 된 내 집의 모습으로 추측하건데, '각성 퀘스트'라는 걸 끝내면 나는 아속집의 능력을 얻게 될 가능성이 높다.
가능성이라 했지만, 반쯤은 확신하고 있다.
집이 무너진 모습이 게임의 시작지점의 집과 똑같은 모습이었으니까.
문자는 얼추 해결됐으니, 그다음 문제를 생각할 차례다.
눈앞에 떠오른 퀘스트 두 개.
「각성 퀘스트」
「고양이를 지켜라」
초록색 배경의 메시지 – 각성 퀘스트
파란색 배경의 메시지 – 고양이를 지켜라
아마도 각성 퀘스트 자체는 전 인류에게 적용되지 않았을까 싶다.
파란색 메시지는 축복을 받는 내게만 적용되는 것일 테고.
뭐, 비교 대상이 없어서 당장은 추측뿐이지만.
우우우우웅―
'퀘스트만 뜨고 뭐가 없네.'라는 생각을 하던 차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끼예에에에엑!
-끼예에에에엑!
하늘에 거대한 포탈들이 생겨났고 그 안에서 기괴한 생명체들이 우후죽순 나타나기 시작했다.
무너진 담장 너머로 보이던 지상도 마찬가지.
-고르르륵!
-고르륵!
웹소설, 웹툰, 게임 등의 각종 매체로 단련된 내게 있어 저 기괴한 생명체들의 이름을 추측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늘을 뒤덮기 시작한 갈색 익룡같은 놈은 와이번이라는 생명체일 것이고―
-고르르륵!
긴 코에 녹색 피부를 가진 저 역겨운 난쟁이는 고블린이라는 생명체일 것이다.
내 상상보다 더 끔찍하게 생겼다마는.
뚜욱.
뚜욱.
눈물 콧물을 줄줄 흘리면서 돌아다니는 고블린들.
몸에 뚫린 커다란 여드름 구멍에서는 이상한 점액을 흘리고 있었다.
-고르르륵.
끔찍하게 생긴 고블린이지만, 멀리서 본 감상으로는 생각보다 위협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일단 키가 1m밖에 되지 않아서 그런 듯한데….
아무래도 체급에서 오는 위압감이라는 게 있으니까.
-끼예에에에엑!
저 하늘을 날아다니는 거대한 와이번과 비교한다면 만만해보이기만 한다.
그것도 고블린들이 나를 발견하기 전까지 얘기다만.
우우우웅-
종말에 준하는 지진이 들이닥친 탓에 집 앞 골목길 도로는 반쯤 땅으로 꺼져 있었다.
그렇게 꺼진 땅 아래에서도 포탈이 생겨났는지, 비스듬히 무너진 도로를 타고 고블린 놈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고르륵?
한 놈.
-고륵!!!
두 놈.
-고르르륵.
-고륵!
세 놈, 네 놈.
-고르르르르.
다섯 놈.
하필 도로의 끝이 내 집이었던 탓에 놈들이 이대로 걸어온다면 탑차 뒤에 숨어있던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느낌상 100%겠지.
내 감은 거의 맞아 떨어지니까.
-고르륵!
멀찍이 보이던 고블린들은 나약해 보였는데, 막상 코앞까지 다가오니 두려움이 몰려온다.
두근- 두근- 두근-
놈들이 다가올수록 내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고, 나는 애써 사고를 가속시키며 긴장감을 무마시키려 노력했다.
'이상한 기술을 쓴다면 또 모르겠는데, 아마 최약체로 익히 알려진 몬스터인만큼 그럴 가능성은 낮을 거다.'라는 자기 위로가 전부지만.
힘든 상황일수록 침착함을 찾아가는 것이 생존을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덕목이니까.
대화재의 유일한 생존자인 내 경험담이다.
생존을 위해서는 뜨거워진 심장을 외면하고 머리를 차갑게 식힐 수 있어야 한다.
철그럭-
지진으로 뒷문짝이 뜯겨나간 탑차.
그 안에서 짐칸 내부의 파티션을 고정하던 철봉을 하나 집어 들었다.
"흐어어어-!!"
응?
갑자기 옆에서 들려오는 고함 소리.
"거기 누구 없어요?"
이대로 고블린들이 몇 걸음만 더 가면 내 차 앞에 도달하겠다 싶은 타이밍에 대각선으로 반만 무너진 앞 빌라에서 사람이 하나 나타났고―
-고르륵?
내 탑차 앞에 서있던 고블린들이 그곳으로 방향을 틀어버렸다.
"어어…?"
-고르륵!
타앗-!
다섯 마리의 고블린들이 빌라 잔해에서 나온 남자를 향해 달려들었고―
"휴우······."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 대신 다른 사람에게 위협이 넘어가자마자 안도감부터 드는 게······.
사람이란 참 얄궂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흐아아악-!"
40~50대로 추정되는 아저씨가 비명을 지른다.
도수 높은 안경을 썼는지 눈이 아주 작았고 머리 중앙이 비어 있다.
-고르륵!
인류애 따위는 없는 나이기에, 무턱대고 도와줄 생각은 없었는데―
퍼억-!
"이, 이, 이 괴물들!!"
-고르르르!!!
다가오는 고블린들에게 다짜고짜 돌팔매질로 선공을 날리는 아저씨의 모습을 보고 마음이 조금 바뀌었다.
'다섯마리가 끝이다.'라는 가정을 하면 또 모르겠는데, 하늘을 빼곡히 덮은 와이번들을 보면 지상도 저 꼴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거, 아저씨!!! 이거 받아요!!!!"
-고르륵?
맨 후열에 있던 고블린이 내 고함소리에 방향을 틀었고―
철그럭-
"고, 고맙습―"
-고르르르륵-!!!
아저씨는 말을 끝맺을 틈도 없이 고블린 한 마리와 먼저 맞닥뜨리게 되었다.
타박.
타박.
나도 비슷한 상황이다.
처음엔 많이 무서웠는데, 그래도 계속 보다 보니 생각보다 할 만할 것 같다.
타박.
타박.
고작 10m 거리를 오는데도 저렇게 느려 터졌으니.
게다가 다른 생존자까지 만났고.
타박.
느릿느릿 나를 향해 오는 고블린.
놈이 아무리 느려 터졌다고 해도 내가 먼저 다가갈 생각은 없다.
그래서 고블린을 기다리면서 그 뒤로 보이는 아저씨의 혈투를 지켜봤는데―
부우웅-!
"흐으으…."
콰직!
처음 생각보다 더 할 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흐아아아악-!"
콰직!
소리만 들어보면 아저씨가 죽어가는 느낌인데, 실상은 저 아지씨가 고블린들을 때려잡고 있었다.
-고르르르······.
최약체로 익히 알려진 고블린들이라 그런지 철봉 몇 방에 곤죽이 되서 죽어나가고 있다.
타앗-!
그리고 이제는 나도 구경만 하고 있을 수는 없게 되었다.
-고르륵!!!
담장을 너머와 내게 다가오는 고블린.
놈을 바라보며 철봉의 끄트머리를 잡은 채 휘두를 준비를 했다.
저 배불뚝이 아저씨도 무쌍을 찍는데, 힘도 체격도 훨씬 좋은 나라면 더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붙었다.
부우웅-
퍼억-!
자신감을 믿고 그냥 냅다 철봉을 휘둘러 관자놀이 쪽을 후려 쳤을 뿐인데.
털썩.
고블린이 옆으로 나가 떨어져버렸다.
-고르르… 르르륵 … 고르르….
뇌에 문제가 생겼는지 고개를 마구 흔들며 몸을 버둥거린다.
퍼억-!
-고르르륵….
퍼억-!
일어서게 둘 생각은 없으니, 멀찍이서 봉 끝을 잡고 대가리를 마구 후려쳤다.
퍼억-!
퍼억-!
소리가 멎고 나서도 한참을 내리친 것 같다.
안전주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내게는 지켜야할 작고 연약한 아기 고양이가 있어서가 더 큰 이유다.
"후우…."
고작 두세 시간 사이에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나서 정신이 없던 데다, 아저씨가 먼저 싸우는 걸 봐버려서 그런지 생각보다 고블린을 죽인 것에 대한 정신적인 타격은 없었다.
생긴 게 워낙 좆같아야지….
커다란 바퀴벌레를 잡은 느낌이랄까?
『냐아….』
탑차 짐칸 사이에 박스 하나를 비우고 고양이를 넣어 놨는데, 아까부터 조금씩 소리가 새어나오고 있다.
어디가 아픈가?
배가 고픈가?
대소변을 치워달라고 저러나?
같은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고 있는데, 당장은 저 아저씨를 도와줘야할 판이다.
고양이가 온 지 1시간도 채 안 됐다.
고작 1시간 만에 죽을 상태는 아니었으니―
"아저씨, 일로 뛰어!!!"
당장 뒤지게 생긴 저 아저씨를 구해주는 게 맞는 판단이다.
"흐어어어어-!!"
눈물을 질질 흘리며 내쪽으로 다가오는 옆 빌라에 사는 이름 모를 아저씨.
푸욱-!
-고르륵!
내가 고블린 하나를 잡는 사이에 아저씨는 4:1로 싸우고 있었다.
분명 무쌍을 찍는 느낌이었는데, 어느새 수세에 몰려 나를 향해 도망쳐오고 있었다.
"거, 거 편의점 청년!"
"절 아세요?"
도망치는 와중에 물어볼만한 건 아니지만, 나를 알아봤다는 점에 의문이 들어서 물었는데―
"아, 아까 애쉬 사갔잖아!!!"
아, 그 새끼······.
타인에 지독하리만큼 관심이 없는 나다.
담배 한 갑 사려고 진상을 부린 편의점 빌런의 얼굴 같은 걸 알아볼 리가 없지.
"나, 나 좀 도와줘!!! 옆집 204호 살잖아!! 이, 이웃끼리 도와야지!!"
그의 등은 여기저기 손톱에 베인 상처가 있었고 다리도 접질렀는지 한쪽 발을 질질 끌고 있었다.
내가 준 철봉도 놓쳤는지 손은 빈손이었고.
-고르르륵!!!
-고르······.
-고르륵!
-고르르륵!!!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옆집 아저씨와 싸우던 고블린 네 마리가 모두 살아 있었다.
고블린들도 상태가 안 좋긴 한데, 저 아저씨도 상태가 안 좋으니 딱히 내게 이득이 될 부분은 없다.
"거, 조, 조금만 이쪽으로―"
푸욱-!
"…크으윽!"
"에휴······. 그 가방이나 버리고 빨리 뛰어 오세요!"
한 5m 남짓한 가까운 거리.
탑차에 고양이가 있는 한 나는 이곳에서 멀리 떨어질 생각이 없다.
저 편의점 빌런이 죽기 직전이다 싶으면 또 모르겠는데, 애지중지 가방 하나를 부둥켜안고 버티는 걸 보면 아직까지는 문제없어 보인다.
저 꼴이 되어 수세에 몰리게 된 것도 아마 저 가방을 지키느라 그런 게 아닐까 싶은데.
망한 세상에서 뭐 그리 대단한 걸 챙기겠다고···.
"흐어어어어!!!"
소리만 들으면 거진 죽어가는 수준이다만.
푸욱-!
"흐어어억!!"
실상은 좀 다르다.
여전히 애지중지 커다란 가방을 끓어 안고 있고, 자세히 보니까 고블린이 입히는 상처도 별것 없었다.
그냥 좀 베인 정도?
그래도 아저씨가 탑차 근처까지는 왔으니 도와주기는 할 생각이다.
"후우욱… 후우욱…."
막판 스퍼트로 힘을 쥐어짰는지 고블린과 거리도 조금 벌어졌고.
"아저씨, 여기 가만히 있어."
-고르르르륵!!!
부우웅-
퍼억-!
아저씨와 고블린의 싸움을 관찰하고 직접 때려잡기도 하면서 알아낸 사실들이 몇 개 있다.
-고르······.
1. 고블린은 지능이 낮다.
4마리라는 수적 이점을 살릴 줄 모르고 가까이 있는 고블린 부터 무턱대고 달려들고 본다.
부우웅-
퍼억-!
2. 고블린은 약하고 느리다.
눈물과 콧물 그리고 진액을 줄줄 뿌리며 다니는 역겨운 외모 때문에 무서웠던 거지, 막상 실제로 싸워 보니 진짜 별게 없었다.
-고르르······.
3. 고블린은 관자놀이가 약점이다.
대충 근처에 한 방 맞히기만 해도 풀썩 쓰러지고 몸을 파르르 떨면서 바닥을 비적인다.
부우웅-
퍼억-!
4. 고블린은 더럽다.
썩은 생선 냄새 같은 걸 쉴 새 없이 풍기고 있으며 때가 잔뜩낀 손톱과 발톱이 유일한 공격 수단이다.
-고르······.
검은 때가 가득한 손톱을 보니 그것에 베인 아저씨 걱정이 잠깐 들었는데, 당장은 저 마지막 놈을 해치우는 게 우선이다.
부우웅-
퍼억-!!
이번엔 뭔가 손맛이 더 좋은데?
마지막 놈은 한 방에 죽었는지 곧장 바닥으로 머리를 처박고 쓰러졌다.
"휴우…."
「각성 퀘스트」
「고양이를 지켜라」
여전히 퀘스트는 변하는 게 없다만.
-고르르르르… 고르르….
퍼덕, 퍼덕.
한 마리는 즉사했으니, 남은 건 함몰된 머리로 바닥에서 버둥거리는 고블린 셋이다.
이놈들을 죽인다면 뭐가 바뀔까?
퍼억-!
퍼억-!
퍼억-!
「근처에 살아있는 몬스터가 없습니다.」
「각성 퀘스트 완료!」
「클래스 선택이 개방됩니다.」
「클래스를 골라주세요.」
퀘스트가 깨지긴 했는데······.
「전사: 선택불가」
「궁수: 선택불가」
「마법사: 선택불가」
「힐러: 선택불가」
선택… 불가······?
아직 뭐가 남았―
「고양이를 지켜라!!!」
갑자기 점멸하기 시작한 퀘스트 알림.
각성은 퀘스트는 깼는데, '고양이를 지켜라'는 사라지지 않았다.
『냐아아아!!!』
『냐아아!!!』
'뭐가 문제일까?'고민하던 찰나에 갑자기 큰 소리로 울어대기 시작한 고양이.
-그르르르르르.
그리고 탑차 뒤편에서 들려오는 기괴한 소음.
설마······.
-크르르라라라락!!!
『냐아아아!!!!』
타다닷-!
재빨리 탑차 뒤편으로 뛰어갔더니 편의점 진상 손님으로 왔던 옆 빌라 아저씨가 내 고양이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충혈된 눈.
간헐적으로 떨리는 몸.
기괴하게 꺾인 팔과 다리.
어째 그 모습이 고블린보다 더 기괴하고 무섭게 느껴진다.
『냐아아아아!!!』
그리고 나는 아기 고양이를 지키기 위해 이상하게 변한 옆 빌라 편의점 빌런과 싸워야 한다.
#3. 좀비와 몬스터 (1)
-크르라라라라!!!
터억.
『냐아아아아!!!』
터억.
『냐아아!!!』
탑차 짐칸으로 가는 턱에 부딪히는 편의점 빌런.
아마도······.
-크르라라라락!!!
'좀비'라고 불러야겠지?
터억-!
좀비답게 머리가 좋진 않은지 탑차 안으로 들어갈 생각은 못하는 모양이다.
-크르라라라락!!!!!
좀비가 악을 써봤자 고양이가 있는 박스 근처까지 대가리를 들이미는 게 전부.
『냐아아!!!』
내 입장에서는 다행인 상황이다마는 작은 아기 고양이를 생각하면 이만한 호러가 없지 않을까 싶다.
그야 고양이 시점으로 본다면 계속해서 괴성을 지르는 좀비가 얼굴을 들이밀고 있을 테니까.
고양이에게 트라우마가 생기지 않았길 바라며―
부우웅-
퍼억-!
있는 힘껏 좀비의 관자놀이를 후려쳤다.
-크라라라라!!!
고블린은 그 부근에 한 대만 맞아도 빌빌거리며 병신이 되는데, 좀비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기기기기긱―
"하… 미치겠네."
온 힘을 다해 휘두른 철봉에 맞은 좀비.
관자놀이가 푹푹 꺼지던 고블린과는 다르게 고개만 살짝 왼쪽으로 기울었다.
-크르라라라라라락!!!!
기기기기기기긱―
그러고는 괴성을 내뱉으면서 고개를 180도 돌려서 나를 바라본다.
'좆됐다.'
말고는 떠오르는 말이 없는 상황.
기기기기기기긱―
좀비는 관절의 방향, 신경, 인대 등등 각종 생명활동을 위한 인체요소에 영향을 받지 않는 모양이다.
뚜둑.
저 정도로 머리를 돌리면 모가지가 부러져 죽었어야 정상일텐데 말이야.
부우웅-
퍼억!
-크롸라라라라라라락!!!
혹시나 해서 다시 공격해봤는데 여전히 별 타격은 없고, 화만 더 돋운 느낌이다.
으드드드득.
화가 나서 그런지 몰라도 좀비의 몸이 더 기괴하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마치 변신이라도 하려는 듯한데······.
으드득.
진짜 변신은 아니고 180도로 돌아간 머리통에 맞춰 팔다리도 돌아가는 거다만.
으드득-
뚜둑.
뒤로 도는 것보다 머리랑 팔다리를 반대 방향으로 꺾어버린다는 미친 판단력을 가진 좀비.
코앞에서 보니 진짜 기괴하고 공포스러운 모습이다.
부우웅-
퍼억!
내구성도 튼튼한지 봉으로 아무리 내리쳐도 별다른 타격도 없고.
변신하게 두고 싶지는 않은데 말이야….
퍼억!
퍼어억!!!
"후우······."
혹시 머리만 단단할까 싶어 팔다리 관절도 노려봤는데, 좀비는 멀쩡하기만 하다.
-크라라랄락!!!
그래도 그 와중에 안도감이 조금 들었다.
공포스럽게 변해버린 내 앞에 있는 괴물은 옆 빌라 아저씨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온전한 사람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면 섣불리 죽여야겠다는 생각은 못했을 건데―
-크라라라라랅!!!
이상한 검붉은 피를 줄줄 흘리며 기괴하다 못해 엽기적으로 변해버린 모습 덕분에 느껴지는 것이 고블린이랑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당장 싸우는 데 문제가 없단 말이다.
저 좀비가 원래는 옆 빌라 아저씨라는 걸 안다.
퍼억-!!
그리고 그 문제는 저 좀비를 해치우고 나서 고민하면 될 일이고.
드드득-!
몸의 변형이 끝났는지 기괴하게 변한 모습이 된 좀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뚜둑.
뼈 긁는 소리를 내며 좀비가 나를 향해 서서히 다가온다.
뚜둑.
일단 이동 속도는 느리다.
부우웅-
퍼억!
변신하고 나서도 여전히 몸은 단단하다.
-퉤에엣!!!
여기까지는 똑같은데 변신을 하고서 추가된 능력이 하나 생겼다.
뭔가가 녹아내릴 정도의 산성침을 뱉는 것.
치이이이익―
탑차의 범퍼가 녹아내릴 정도니 뭔진 몰라도 저걸 맞으면 좆된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대략적인 파악이 끝났고 후려치는 건 의미가 없다는 것도 알았으니, 이제는 다른 걸 시도해볼 차례.
철봉을 찌르기 편하게 고쳐 잡았다.
휘이익-
퍽!
눈알을 노리고 찔렀는데 한참을 빗나갔다.
머리는 냉정하지만 여전히 몸이 말을 잘 듣지 않아서 그런데······.
덜덜덜덜.
어째 고블린을 잡을 때보다 손도 더 떨리고.
"후우우…."
이럴 땐 심호흡을 하면서 정신을 더 단단하게 잡아야 한다.
그 불지옥에서도 살아 나왔는데, 이깟 좀비 하나를 못 잡을까?
퉤에엣-!
치이이이이익-
차에 피해를 안 주려고 담장 방향으로 몸을 움직였는데―
우지끈!
좀비의 침이 담장 너머에 있던 나무에 맞았다.
나무의 밑동이 그냥 녹아내려 버리고, 나무는 그대로 옆으로 쓰러졌다.
쿠우웅-!
즉, 좀비의 침에 맞으면 병신이 되거나 뇌가 녹아 죽어버릴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래도 어떻게 하겠어?
차에는 아기 고양이가 있고, 당장 다른 장소로 도망가도 안전할 거라는 보장도 없는데.
휘이이익-
마음을 다잡고 저 괴물을 처치하는 것만이 유일한 답이지.
푸우욱!
-크라라라라락!!!!!
각오를 다져서 그럴까?
손의 떨림이 잠시 멎었고, 그 덕분에 좀비의 눈알을 찌르는 데 성공했다.
-그르를르르르륵.
좀비의 우측 눈알에 박힌 철봉.
그리고 좀비가 그 봉을 향해 팔을 허우적거리기 시작했는데―
까드드드득.
기괴하게 꺾인 팔 때문에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는 않는 모양이다.
"뒤져!!!"
푸우우우욱!!
있는 힘껏 뇌를 짓이기겠다는 일념으로 봉을 쑤셔 넣자―
-그르르를르그르르륵!!!!
파르르르르-
경련을 일으키며 좀비가 바닥에 쓰려졌다.
푸우우우욱!
파르르르-
푸욱!!
으드드득.
한참을 쑤시고 별 지랄을 다 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좀비는 몸이 무너져 내린 채 미동도 안 하고 있었다.
사람의 형체는 유지하고 있으나 뒤틀린 뼈를 지탱하지 못했는지 기괴한 형태로 몸이 무너져 있다.
마치 실이 끊어진 목각인형처럼.
"하아······ 진짜 뒤질 뻔했네."
좀비가 죽자 좀비의 사체 위로 빛무리가 일더니―
파아앗-!!
「녹슨 물컵x1, 딱딱한 돌빵x1」
무언가 튀어나오는 듯한 소리와 함께 음식이 나타났다.
마시면 병 걸릴 것 같은 외견의 물컵과 돌빵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딱딱한 빵 한 덩이.
아직 탑차에 식량이 넉넉하니 저것들을 먹을 생각은 없다.
"후우······."
힘들고 온몸이 근육통으로 비명을 지르고 있다마는 나는 아직 쉴 수 없다.
『냐아아!!!!!』
탑차 뒤에서 계속해서 소리치는 고양이가 남아있으니까.
"우쭈쭈."
『냐아······』
고블린을 잡고 좀비를 해치우기까지 고작 1시간 남짓한 시간이 걸렸다.
그 짧은 시간도 아기 고양이에게는 많이 무섭고 힘든 시간이었나 보다.
『냐아…』
왼손에 겨우 가득 찰 정도로 작은 크기의 검은 고양이가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다.
「'고양이를 지켜라' 퀘스트 완료」
「클래스가 추가됩니다.」
살살 만져주니 고양이는 잠에 빠져들었고, 내 눈앞에는 퀘스트 완료 알림이 떠올랐다.
「전사: 선택불가」
「궁수: 선택불가」
「마법사: 선택불가」
「힐러: 선택불가」
「집사: 선택가능」
여전히 다른 클래스들은 선택이 안 되지만, 새로이 열린 '집사'라는 클래스는 선택이 가능했다.
손을 가져다 댔지만 변화가 없다.
"집사 클래스 선택."
그래서 음성인식을 해보았는데―
파앗!
「상태창이 개방됩니다.」
「포인트 시스템이 개방됩니다.」
「집사 클래스로 전직했습니다.」
라는 알림이 떠올랐다.
"상태창."
파앗!
「이준(Lv.1) 32세 / 보유 포인트: 130p」
「클래스: 집사 / 능력치: 1」
「스킬: [방어 설비 건설], [주거지 건설], [요새화], [고양이 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