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 프라하
차우진이 프라하의 천문시계탑 전망대에 올라갔다. 전망대의 위치는 꽤 높아서 먼 곳이 잘 보였다. 그곳에는 관광객용 망원경도 설치되어 있었다.
차우진이 그 망원경으로 프라하를 둘러보았다.
"고지대 정찰이 아닌 게 아쉽지만, 남의 나라인데 이게 어디냐."
드미트리는 죽기 전에 스컬스의 본부가 프라하에 있다고 자백했다. 그 주소가 어디인지는 지도를 검색해 확인했다.
차우진이 망원경을 움직여 그 지역을 찾았다.
그가 목표로 하는 건물은 너무 멀어서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대신에 그곳으로 들어가는 진입로와 진출로 등은 관람용 망원경으로도 파악할 수 있었다.
차우진이 인터넷 지도의 스트리트뷰 기능으로 봤던 건물 사진과 지금 보이는 주변 모습을 머릿속에서 조합하며 상황을 분석했다.
"담장이 있어서 외부 침입으로부터 방어하기 쉽고, 주변에는 높은 건물이 없어. 일부러 그런 지역의 건물을 골랐겠지."
건물 주변 환경이 인터넷 지도로 확인한 것과 별 차이가 없다는 것도 확인했다.
"배고프다."
아무리 시간이 부족해도 빈속에 싸울 수는 없다. 전투는 원래 체력 소모가 심하다. 스킬은 체력을 뭉텅이로 떼어가는 수준으로 소모한다.
그러니까 전투를 하려면 미리 체력을 채워둬야 한다.
차우진은 식당을 찾아가 배부터 채웠다.
"한국인은 역시 족발이지."
프라하에도 족발 요리가 있었다. 맛도 마음에 들었다.
전투를 치르고 스킬을 쓰려면 많이 먹어야 한다. 1인분으로는 부족하다.
주변에 한국 관광객이 몇 명 보였다. 그들과는 일부러 거리를 두었다. 그들의 시선을 끌 정도로 많이 먹는 것도 곤란하다.
차우진은 이 식당에서는 2인분만 먹고, 가게를 옮겨 다시 식사했다.
그렇게 먹으며 시간을 보냈더니 밤이 점점 깊어졌다.
프라하의 밤거리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인적이 완전히 끊긴 건 아니지만, 서울과 달리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가 쉬웠다.
"여기 놀러 온 거였으면 참 좋았겠다."
체코의 러시아계 마약조직 스컬스는 3층 건물을 본거지로 사용했다. 높이는 3층이지만 넓이가 제법 넓었다.
차우진은 그 건물 옆쪽 다른 건물의 지붕으로 이동했다. 스컬스의 건물이 조금 더 높았지만, 옥상에 아무도 없다는 것 정도는 확인할 수 있었다.
차우진이 스컬스의 건물을 관찰했다.
"CCTV는 외부에 몇 대, 창문 안쪽에 숨겨져 있는 것 몇 대. 반대 방향에도 그만큼 있겠지."
옥상도 확인했다. 옥상 바닥은 안 보이지만 계단용 출입구의 꼭대기에 익숙한 장비가 보였다.
"옥상에도 CCTV를 설치했네? 비행기를 경계하나?"
드미트리는 죽기 전에 두목이 박사를 직접 관리한다고 했다. 차우진의 1차 타깃은 두목이다.
"안에 몇 놈이나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시간만 충분하면 다양한 정보를 모아 내부에 인원이 얼마나 있는지 추측할 수 있다. 멸망한 세계에서는 식량이 얼마나 이동하는지로 적의 규모를 파악하곤 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방식으로 정찰할 시간이 없다. 파인드스톤의 탐지기 테스트가 끝나기 전에 뉴욕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탈리아에서 뉴욕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항공권은 이곳에 오기 전에 이미 샀다.
지금은 늦은 밤이다. 아무도 밤하늘을 보지 않았다.
"역시 강행돌파밖에 없나."
차우진이 단거리 공간이동 스킬을 사용했다. 그의 몸이 이쪽 건물 지붕에서 사라졌다가, 스컬스 건물의 지붕에 나타났다.
건물 사이에는 도로까지 있어서 공간이동 거리가 조금 멀었다. 차우진 잠시 쉬며 체력을 회복했다. 그러면서 주변을 확인했다.
도로에 주차된 차가 몇 대 보였다. 그중에는 사람이 있는 차도 있었다.
지붕에는 CCTV가 한 대 설치되어 있었다. 그 CCTV는 반대쪽을 감시하는 중이다.
CCTV가 차우진 쪽으로 천천히 회전했다. 차우진이 자리를 슬쩍 옮겼다.
"CCTV가 갑자기 움직인다는 건 누군가 이걸 수동으로 조종했다는 거니까."
차우진은 두목이 있는 곳을 찾으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깨달았다.
"CCTV 통제실로 가야겠다."
***
건물 3층에 방이 하나 있었다. 그 방에는 모니터 네 대가 있었다. 각각의 모니터에는 다시 네 개로 나뉜 화면이 떴다.
모두 16대의 CCTV가 이 건물의 내외부를 감시했다. 네 대의 모니터에 16개의 분할 화면이 보였다.
남자가 입을 크게 벌리며 하품했다. 그는 모든 화면을 동시에 보다가 잠시 멍해진 상태였다.
이 건물 담장 안쪽에는 동작 감지기도 설치되어 있었다. 누군가 담장을 넘어오면 동작 감지기에 걸린다.
동작 감지기가 반응했다. 화면에 경고 표시가 떴다. 남자가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또 고양이네? 저걸 쏴버릴 수도 없고, 오늘 벌써 몇 번째야?"
***
고양이 한 마리가 담장 위를 지나가고 있었다. CCTV 한 대가 그 고양이를 따라 움직였다.
차우진이 옥상 난간을 한 손으로 잡고 건물 외부에 매달렸다. 그는 CCTV를 피하면서 창문들을 확인했다.
창문은 커튼으로 막힌 곳도 있고 아닌 곳도 있었다. 커튼으로 막힌 곳도 틈새로 흘러나오는 빛까지 차단하지는 못했다.
아무런 빛도 나오지 않는 곳에도 사람은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CCTV를 통제하는 곳에서 조명을 꺼놓을 이유는 없다.
차우진은 커튼이 처져 있는데도 빛이 새어 나오는 창문을 찾았다. 그 앞에 매달려 빛이 나오는 틈으로 내부를 확인했다.
커튼 사이로 내부가 보였다.
'CCTV 감시 중. 사람은 하나.'
이 건물은 지은 지 오래된 옛날 건물이다. 그런데 창문틀은 나무가 아니라 단단한 알루미늄이었다.
'창문은 잠겼네?'
차우진이 현재 위치를 외부에서 볼 수 있는지 확인했다. 이쪽에는 주차된 차조차 없었다. 길 건너편의 건물은 불이 꺼져 있었다.
차우진이 문을 톡 건드렸다.
CCTV 통제실에 있던 조직원이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무슨 소리가 났는데…."
그가 창가로 가서 커튼을 젖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가 뒤도 돌아섰다. 창문에서 다시 톡톡 소리가 들렸다.
그가 뒤를 다시 돌아보았다. 여전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고양이만 해도 귀찮은데."
그가 창문을 열었다.
"비둘기나 까마귀까지 시비를 거나?"
창문을 열어도 보이는 건 없었다.
"뭐야? 그새 날아갔어?"
그가 뒤로 돌아서다가 화들짝 놀랐다.
"으헉!"
실내에 차우진이 서 있었다. 얼굴은 복면과 고글로 완전히 가린 상태였다.
차우진은 창문이 열렸을 때 단거리 공간이동 스킬을 이용해 내부로 침투했다. 창문 위쪽에 공간이 넉넉해서 그곳을 이용하면 충분히 들어올 수 있었다.
조직원의 눈에는 혼자 있던 실내에 갑자기 사람이 나타난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화들짝 놀랐다가, 상대가 침입자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조직원이 황급히 손으로 허리를 더듬었다. 총이 잡히지 않았다. 그는 실내에 있을 때는 무거운 권총은 책상에 올려두고 지냈다.
대신에 허리에 차고 있던 작은 칼이 손에 닿았다. 조직원이 칼을 잡으며 소리를 지르려고 입을 벌렸다.
차우진이 조직원의 목을 후려갈겼다.
"켁!"
적이 왼손으로 목을 잡고 비틀거렸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오른손은 기어이 칼을 뽑았다. 그 칼로 차우진을 베려고 했다.
차우진이 왼손으로 적의 입을 틀어막았다. 적이 내지르려던 칼은 차우진이 잡아채 적의 가슴에 도로 박았다.
"컥!"
차우진이 넘어지는 적의 멱살을 잠깐 붙잡았다가 놓았다. 적은 바닥에 쓰러졌지만 넘어지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차우진이 창문을 닫았다. 그러면서 외부를 슬쩍 확인했다. 목격자는 없었다.
차우진이 커튼을 도로 쳤다.
그런 후에 CCTV를 확인했다.
열여섯 개의 화면에 건물 내부와 외부가 잡혔다. 조직원들의 모습도 보였다.
건물 내부의 조직원 중에는 서둘러 움직이는 놈은 없었다. 그건 이곳에서 일어난 일을 아무도 모른다는 뜻이다.
"두목부터 찾아야지. 박사를 찾으면 더 좋고."
여기 들어온 이유는 스컬스 조직의 두목을 찾기 위해서다. 하지만 두목은 최종 목표가 아니다. 두목을 통해 레드 크리스털을 개발한 박사의 위치를 알아내는 게 진짜 목적이다.
그러니 박사가 이 건물에 있으면 일이 쉬워진다.
CCTV의 절반은 건물 외부를 보여주고 있었다. 나머지 절반은 복도와 출입문이다.
"방이 하나."
방 내부를 찍고 있는 CCTV가 하나 있었다.
"접대용 방인가?"
방에는 침대가 있었다. 어떻게 봐도 1인용 침대는 아니었다. 화려한 소품이 많아 단순히 잠만 자는 곳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침대 위의 침구는 어지럽혀져 있었다.
"사람이 있는데."
방 한쪽에 젊은 여자가 앉아 있었다.
"마음에 안 들어."
그녀의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멸망한 세계에서 저런 표정을 가진 사람을 많이 보았다. 희망을 잃은 사람의 얼굴이었다.
"자기 의지로 와 있는 게 아니야."
차우진이 CCTV를 사용해 건물 내부의 다른 장소를 확인했다. 처음에는 열여섯 개의 화면 중에 내부 모습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음?"
묘하게 거슬리는 느낌이 들었다.
차우진이 CCTV를 다시 확인했다. 이번에는 내부가 아니라 외부를 주로 보았다.
이곳에 진입하기 전에 주변에 차가 몇 대 주차되어있는 건 알았다. 사람이 타고 있는 느낌의 차도 있었다.
그런데 CCTV로 주변 전체를 확인하니 느낌이 좀 달랐다. 근처를 지나가는 차가 뺑뺑이를 도는 게 보였다.
"이것 봐라?"
외부에 주차된 차에 사람이 있다는 걸 눈치챘을 때는, 당연히 스컬스 조직원의 차량이라고 생각했다. 건물 외부를 경비하는 차라면 그런 식으로 대기할 수도 있다.
"역시 정보가 부족하니까 착오가 생기잖아."
CCTV로 주변 상황을 전체적으로 봤더니 결론이 달라졌다.
"저놈들은 외부의 공격을 대비하는 게 아니라, 이 건물 쪽을 경계하고 있네?"
차우진이 내부 CCTV들을 확인했다.
"건물 안에 누가 있나?"
복도를 비추는 영상 중 하나에 사람 네 명이 보였다. 문 앞에 두 명씩 서 있었다.
"이놈들은 서로를 경계하는구나."
문 왼쪽에 선 놈들과 오른쪽에 선 놈들은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왼쪽은 한 놈이 뒤를 수시로 확인하는 걸 보면, 이쪽이 외부에서 들어온 놈들이겠지."
정보가 조금 모였다. 결론이 나왔다.
"외부에서 손님이 오셨네. 서로 상대를 신뢰하는 관계는 아니니까 이렇게 부하들을 끌고 왔겠지."
넷이 지키는 방의 내부는 CCTV 화면에 나오지 않는다.
그쪽 벽에 매달려 창문에 귀를 대면 내부의 소리를 들을 수는 있다. 그런데 그러면 외곽을 경계하는 놈들이 보게 된다.
이 CCTV 통제실은 외부 차량의 위치에서 보이지 않는다. 설사 본다 해도 잠깐 정도는 눈을 피해 움직일 수 있다.
하지만 저 방은 다르다. 외부의 차량은 저쪽을 감시하고 있을 게 뻔했다. 창틀에 매달리면 안 보일 수가 없다.
"손님은 왜 찾아온 걸까? 평화협상은 아닐 테고."
평화협상이라면 이 건물이 아니라 어느 한쪽이 불리하지 않은 외부 공간에서 만나야 한다.
"그럼 거래를 위해서 만나는 거겠지. 손님이 아쉬운 입장이라서 여기로 찾아와야 하는 거라면…."
차우진은 손님 쪽에서 숙이고 들어올 만한 거래물품을 하나 안다.
"스컬스가 독점적으로 관리하는 상품. 레드 크리스털. 그걸 사러 왔다는 건데…."
좋은 방법이 생각났다.
"서로 신뢰하지 않은 상태니까, 건드리면 폭발하겠는데?"
차우진이 책상 위의 권총을 챙겼다. 그건 칼을 맞고 쓰러진 조직원의 권총이다.
그가 CCTV를 확인했다. 복도를 보여주는 것이 몇 개 있었다. 그는 CCTV에 보이는 모든 사물의 형태와 사람의 위치를 기억했다.
그중 하나에 사람이 지나가는 게 보였다. 문밖에서도 인기척이 들렸다.
차우진이 문을 벌컥 열었다.
문 바로 앞을 지나가던 놈의 뒤통수가 보였다. 조직원은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 뒤를 돌아보려고 했다.
차우진이 적의 목을 잡고 꺾었다.
"컥!"
기울어지는 적의 몸을 다시 발로 밀어 찼다. 적이 복도에 나자빠졌다.
그가 복도의 상태를 다시 확인했다. 네 명이 지키는 방 앞의 복도는 이곳과는 다르게 생겼다.
그것만으로는 타깃이 다른 층인지 알 수 없다. 이 건물은 제법 커서 각 층의 복도는 하나가 아니었다.
차우진이 다른 복도로 이동했다. 그곳에 서 있던 조직원 두 놈이 차우진을 발견했다.
"어?"
차우진은 얼굴에 복면을 쓰고 눈에는 고글도 낀 상태다. 누가 봐도 수상했다.
적이 급히 총을 꺼내려 했다.
차우진이 빨랐다. 그가 적을 향해 한 발씩 사격했다.
"커억!"
"컥!"
총에 맞은 두 놈이 비틀거렸다. 차우진이 적을 일단 제압해둔 후에 정조준하고 한 발씩 더 발사했다.
총탄 두 발이 적의 가슴을 꿰뚫었다.
두 놈이 그 자리에 고꾸라졌다.
건물 내외부의 조직원들이 총소리를 못 들었을 리 없다. 확실히 들으라고 일부러 총을 네 발이나 쏘았다.
여기는 3층이다. 차우진이 아래쪽을 향해 말했다.
"뛰어라."
137. 프라하 II
차우진이 CCTV 통제실에 다시 들어갔다.
건물 내부는 난리가 났다. 스컬스 조직원들이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권총을 들고 뛰어다니는 놈들도 보였다.
차우진이 화면을 보며 말했다.
"더 뛰어야지."
그는 CCTV를 이용해 건물 바깥 상황도 확인했다.
건물 주변에 주차된 차의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내렸다.
CCTV의 화질은 그리 높지 않았다. 모니터 하나당 네 개의 CCTV 영상이 나오고 있어서 해상도는 낮았다.
차우진이 커튼을 살짝 젖히고 두 눈으로 차량을 직접 확인했다. 주차된 차량은 이쪽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차우진이 복도로 나와 다른 방으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창문 너머를 확인했다.
주차된 차에서 내린 놈들이 제대로 보였다. 머리를 반쯤 밀거나, 복잡한 문신을 하거나, 밀어버린 머리에 문신한 놈까지 있었다.
"때깔을 보면 체코 경찰은 아니겠네."
차우진이 창문을 열고 그 차량을 향해 사격했다. 총탄이 차량 보닛에 퍽퍽 박혔다. 차 유리에도 사격했다.
차에서 내린 놈들이 사방으로 개미떼처럼 흩어졌다.
차우진은 그 조직원들은 쏘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한국에서 문신투성이인 사람 여럿이 모여 있는 걸 보면 경찰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런데 여기는 체코다. 처음 와보는 나라라서 정보가 부족했다. 범죄조직을 담당하는 체코 경찰이 저런 모습을 하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차체에 몇 발만 박았다.
건물 주변을 반복해서 지나가던 차도 보였다. 차우진이 그 차의 타이어를 향해 사격했다.
타이어가 폭발하듯이 터졌다. 차는 옆으로 기울어지며 벽을 들이받았다.
그 차는 빠른 속도로 이동하던 건 아니어서 충돌 충격은 크지 않았다. 문이 벌컥 열리며 조직원들이 뛰어나왔다.
차우진이 다시 CCTV 방으로 돌아와 상황을 확인했다.
모니터에 다른 방 문앞에 서 있는 네 명이 보였다. 그들은 서로를 향해 권총을 겨누고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CCTV 화면이라 소리가 들리진 않았지만, 입을 벌리는 모양만 봐도 서로 악을 쓴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그래도 쏘진 않네?"
차우진이 다른 화면을 확인했다. 조금 전에 차우진의 총에 맞은 두 놈은 3층 옆쪽 복도에 있다. 그곳으로 조직원들이 뛰어가는 게 보였다.
차우진이 방금 들어가 사격한 방으로 달려가는 놈도 하나 있었다.
차우진이 CCTV로 내부 상황을 보다가 문을 벌컥 열고 나왔다. 복도 저쪽에서 건너편 방을 향해 총을 겨누던 놈이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 뒤를 돌아보았다.
"어?"
차우진이 돌아서는 적을 향해 사격했다. 총탄이 적의 가슴에 박혔다.
"켁!"
CCTV 통제실도 이제 위험해졌다. 총소리를 여기서 냈기 때문이다.
차우진이 CCTV 통제실로 들어가 서버에 총알을 몇 발 박았다. 저장장치가 총탄에 퍽퍽 뚫렸다. 모든 화면이 꺼졌다.
차우진이 통제실을 나온 후에 계단을 내려갔다.
조직원들은 일단 총소리가 들린 3층으로 몰려갔다.
차우진이 2층 계단 모퉁이 너머로 고개만 슬쩍 내밀었다.
2층 복도에서 서로에게 총을 겨누며 대치하고 있는 놈들이 보였다. 두 놈은 뒤통수가 보이는데, 다른 두 놈은 차우진이 있는 방향이 정면이다.
차우진이 복도로 고개를 내밀었을 때 그중 한 놈과 눈이 마주쳤다. 그놈이 놀라서 입을 열었다.
"어? 저기에…"
차우진이 상체를 내밀며 그놈을 향해 사격했다. 총에 맞은 놈이 뒤로 나자빠졌다.
"으악!"
눈앞에서 한 명이 총소리와 함께 나자빠졌다. 긴장 상태이던 다른 세 놈이 즉시 소리를 지르며 방아쇠를 당겼다.
"으아아!"
혼자 남은 놈이 맞은편 놈을 쏘았다.
"컥!"
그 옆에 있던 놈이 혼자 남은 놈을 쏘았다.
"끄아악!"
총탄이 복도를 날아다니다가 조용해졌다. 이제 문 앞에는 한 놈만 서 있었다.
"헉헉. 이겼…."
차우진이 복도로 성큼 걸어나가며 사격했다. 서 있던 마지막 놈이 총에 맞아 고꾸라졌다.
"케엑!"
차우진이 탄약이 줄어든 탄창을 버리고 권총에 새 탄창을 끼웠다.
갑자기 1층에서 총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차우진은 지금 2층에 있다.
"그렇지. 안에서 이 정도 했으면 밖에서 쳐들어와야지."
외부에 있던 다른 조직의 조직원들이 건물 진입을 시도했다.
건물에 있던 스컬스 조직원은 당연히 거부했다. 그러면서 총격전이 벌어졌다.
갑자기 문 손잡이가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차우진은 섬뜩한 느낌을 받았다.
문에서 총만 삐져나왔다. 그런데 권총이 아니라 연발로 사격할 수 있는 소형 기관단총이었다.
총구가 차우진을 향했다.
"젠장."
차우진이 계단 모퉁이로 뛰었다.
그가 서 있던 방향으로 9mm 탄환이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차우진이 계단으로 몸을 날렸다. 총탄이 복도에 퍽퍽 박혔다.
기관단총의 장점은 단시간에 대량의 화력을 쏟아부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생기는 단점은, 방아쇠를 생각 없이 쭉 당기면 순식간에 탄창이 비어버린다는 것이다.
차우진이 모퉁이 너머에서 날아오는 총탄의 수를 세었다.
하나, 둘 같은 식으로 말하면서 세어서는 기관단총의 발사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 몇 발이나 날아오는지는 숫자가 아니라 감각으로 판단해야 했다.
순식간에 30발이 쏟아지고 나서 사격이 중단됐다. 방아쇠를 놓은 게 아니라 탄창이 비어서 사격이 멈췄다.
차우진이 모퉁이 너머로 성큼 나갔다. 한 놈이 사격하면서 문밖으로 나왔다가, 기관단총의 탄창이 빈 걸 깨닫고 권총이라도 뽑으려고 했다.
차우진이 적의 가슴을 향해 두 발을 발사했다.
"컥!"
적이 뒤로 나자빠졌다.
이젠 문 안쪽에서 총소리가 들렸다.
차우진이 문을 향해 뛰었다. 그는 문 앞으로 이동하기 직전에 시간 가속 스킬을 사용했다.
문 안에는 세 명이 서 있었다. 이미 총을 맞고 쓰러진 놈도 보였다.
스컬스의 두목은 상대를 향해 총을 겨누고 있었다.
두목의 옆에 있던 놈은 문을 조준하고 있다가 차우진을 보자마자 방아쇠를 당겼다.
시간 가속 스킬을 사용하며 진입한 차우진의 사격이 조금 더 빨랐다. 그가 발사한 총탄이 적의 가슴에 박혔다.
"켁!"
조직원은 뒤로 넘어갔다. 뒤늦게 발사된 총탄이 천장을 향해 날아갔다.
어느 쪽이 스컬스의 두목인지는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두목의 반대편에 서 있는 놈은 목에 문신이 있었다. 그 문신은 문밖에서 뒤쪽까지 경계하던 두 놈의 문신과 비슷했다.
차우진이 스컬스의 두목을 조준했다.
스컬스 두목 안드레이는 움직이지 못했다. 그의 총구는 차우진이 아니라 앞쪽을 향하고 있었다.
반면에 차우진은 안드레이를 정확히 조준했다.
지금 안드레이가 차우진 쪽으로 총구를 돌리면 머리통이 날아간다. 안드레이는 그걸 확실히 이해했다.
차우진이 다른 조직 사람을 보았다. 모르는 놈이었다. 그는 저 조직의 이름조차 몰랐다.
'젊은데?'
두목치곤 좀 젊어 보이긴 했지만, 상관없었다.
차우진이 그 남자를 향해 외쳤다.
"보스!"
안드레이가 그걸 듣자마자 화를 벌컥 냈다.
"역시 함정이구나! 거래하러 온 척하다가 나를 습격했어!"
상대편 남자는 체코 범죄조직인 울프팩의 간부 루카쉬였다. 그것도 그냥 간부가 아니라 두목의 아들이었다.
루카쉬가 당황한 얼굴로 차우진을 보았다. 그는 이런 습격을 지시한 적이 없다.
"난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보스는 내가 아니라 아버지…."
"닥쳐! 네 부하한테 총 버리라고 해!"
루카쉬가 당황한 얼굴로 차우진에게 지시했다.
"초, 총 버려!"
차우진이 안드레이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총 버려! 보스를 죽이면 너도 죽는다!"
차우진은 체코 말을 모른다.
그런데 그는 문장 몇 개를 체코 사람처럼 말할 수 있었다. 몇 가지 상황에 맞춰 써먹을 문장들만 따로 연습했기 때문이다.
발음도 나쁘지 않았다. 이런 대사가 나오는 체코 영화를 보고 똑같은 발음을 연습했다.
안드레이가 권총으로 루카쉬를 겨눈 채로 차우진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총 버려!"
루카쉬도 외쳤다.
"일단 총 버리라고!"
차우진도 미리 연습한 대사를 다시 외쳤다.
"총 버려! 보스를 죽이면 너도 죽는다!"
차우진이 그러면서 옆을 슬쩍 보았다.
'온다.'
3층으로 올라갔던 스컬스 조직원들이 2층인 이곳으로 달려오는 게 느껴졌다.
차우진이 방아쇠를 당겼다. 총탄이 스컬스 보스인 안드레이의 귀를 뚫었다.
"끄악!"
차우진은 마치 머리를 쏘려다가 빗나간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 귀를 쏘았다. 그런 후에 복도에서 옆으로 뛰었다.
차우진이 사라졌다.
안드레이가 악을 썼다.
"으아아! 감히 나를 쏴? 감히!"
분노한 안드레이가 울프팩 조직 두목의 아들인 루카쉬를 향해 방아쇠를 연달아 당겼다.
"죽어!"
"커억!"
안드레이는 총을 쏜 후에 재빨리 문을 향해 총구를 겨눴다. 차우진이 다시 나타날까 봐 두려웠다.
방 입구에 부하들이 우르르 나타났다.
안드레이가 방아쇠를 당기려다가 겨우 손가락을 뗐다.
"보스! 괜찮습니까?"
"울프팩이 킬러를 침투시켰다! 그 새끼는 잡았냐!"
"저희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사라진 상태였습니다."
"당장 잡아! 내가 직접 목을 치겠다!"
"보스. 지금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울프팩 놈들이 쳐들어왔습니다."
안드레이가 루카쉬를 가리키며 소리를 질렀다.
"이 새끼가 감히 나를 속였어. 내 구역과 레드 크리스털까지 혼자 다 처먹으려고 나를 쳤다!"
부하는 당황했다.
"보, 보스. 그놈을 인질로 잡아야 전투가 유리…."
"이미 죽었잖아!"
안드레이가 소리를 질렀다.
"이젠 전쟁이다! 쳐들어온 새끼들을 다 죽여버려!"
건물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울프팩 조직원들이 건물로 진입하려고 애썼다. 루카쉬가 안에 있기 때문이다.
스컬스 조직원들은 건물 내부에 숨어서 반격했다.
차우진은 조직 간에 전쟁을 일으켜놓고 다른 방을 향해 움직였다.
3층과 2층을 돌아다닌 덕분에 CCTV로 봤던 방이 어디인지 쉽게 찾을 수 있다. 그 방은 2층의 다른 복도에 있었다.
그 방에 도착하기 직전에 2층 복도를 뛰어오던 놈이 차우진과 마주쳤다.
"킬러를 찾았…."
차우진이 왼손을 아래에서 위로 크게 흔들었다. 손에서 단검이 날아갔다.
그 칼은 조금 전에 문앞에서 처리한 울프팩 조직원의 단검이었다. 단검에 늑대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켁!"
적은 가슴에 칼을 맞고 고꾸라졌다.
차우진이 방문을 열었다. 그 안에 젊은 여자가 앉아 있었다.
그녀는 CCTV로 봤을 때만 해도 맛이 좀 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눈빛이 살아나는 중이다.
차우진은 그 이유가 짐작이 갔다.
'아까는 포기한 상태인데, 지금은 구출될 희망을 봤나? 역시 강제로 끌려온 거였네.'
차우진이 영어로 물었다.
"구해줄까?"
안나가 즉시 대답했다.
"제발 구해줘요."
차우진이 창가로 가서 커튼을 슬쩍 젖혔다. 전투는 정문 쪽에서 주로 일어났다. 이쪽에는 아무도 없었다.
창문에는 자물쇠로 된 잠금장치가 걸려 있었다.
차우진이 자물쇠를 부순 후에 창문을 열었다.
"여기로 빠져나가서 저 담장을 넘어."
"저 높은 담장을요? 그리고 여기는 2층인데…."
"내 손을 잡아."
차우진이 안나의 팔을 잡고 2층 창문에서 아래로 내려주었다. 그런 후에 차우진도 건물을 빠져나왔다.
"왜 갇혀 있던 거지?"
"가족이 이놈들에게 빚이 있는데, 그걸 핑계로 강제로 끌려왔어요."
신인 배우 진소영이 생각났다.
"빚을 이용하는 놈들은 여기도 있구나."
"네?"
"여기에 당신 같은 사람이 또 있나?"
안나가 고개를 흔들었다.
"오늘은 나밖에 없다고 들었어요. 귀한 손님이 오니까 최고가 접대해야 한다고 했어요."
차우진이 그녀를 보았다.
'예쁘긴 하네.'
그가 앞쪽 담장을 보았다.
"잠깐."
"왜…."
몇 초 후에 앞쪽에 있는 담장 위로 적이 올라왔다. 울프팩 조직원이었다. 그는 차우진과 안나를 보자마자 권총을 쏘려고 했다.
차우진이 단검을 던졌다. 이 단검은 스컬스 조직원이 갖고 있던 것이다.
적이 가슴에 칼을 맞고 담장 안쪽으로 떨어졌다.
"컥!"
CCTV 통제실에서는 상대가 위장 활동 중인 경찰일 수도 있어서 공격을 자제했다.
이젠 그럴 필요가 없다. 경찰일 리 없다는 걸 안다.
차우진이 담장 건너편의 기척을 살폈다. 감지되는 움직임이 딱 하나 있었다.
차우진이 담장 위로 점프하듯이 올라가며 적을 향해 단검을 날렸다. 권총을 들고 있던 울프팩 조직원이 칼을 맞고 뒤로 나자빠졌다.
"켁!"
차우진이 담장 위에서 건너편을 확인한 후에, 손을 내밀었다.
"잡아."
안나가 그의 손을 잡았다. 차우진이 그녀를 담장 위로 끌어올린 후에 반대편으로 내려보냈다.
그런 후에 짧게 말했다.
"가."
"같이…."
"나는 할 일이 남아서."
차우진이 담장 안쪽으로 다시 뛰어내렸다. 그런 후에 벽을 타고 올라가 방금 빠져나온 2층 창문으로 도로 들어갔다.
"이놈들은 이 건물에서 버틸 생각인가? 그러다 경찰이 출동하면 어떻게 하려고?"
다른 놈은 몰라도 두목은 건물에서 나가줘야 한다.
"두목이 경찰에 체포되면 난 헛고생한 거잖아. 여기서 죽은 놈들을 생각하면 그러면 안 되지."
두목은 1층에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차우진이 계단에서 공간이동 스킬을 사용해 1층을 건너뛰고 지하실로 내려갔다.
지하실에는 기름보일러가 있었다. 기름통도 많았다.
"불 지르면 잘 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