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돈을 아끼다 (1)
‘노 아가씨면 좌상 노용의 여식이겠지? 북성문까지 배웅 나온 걸 보면 그를 생각하는 마음이 대단한 것 같은데. 하지만 이런 오만 방자한 사람에게 마음을 주다니, 참으로 딱하구나.’
진강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도 전혀 거리낌 없이 말을 몰아 사방화의 뒤를 따랐다. 계속해서 말을 몰고 가던 사방화는 문득, 조금 전 진강이 한 말이 생각났다.
‘막북에 가고 싶다고? 막북에 가서 무엇을 하려는 것이지?’
사방화는 고개를 돌려 진강을 향해 말했다.
“공자님, 막북에 가는 것은 장난이 아닙니다.”
“내가 너와 장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막북은 매우 먼 곳입니다. 가는 길도 매우 험하고요. 아무리 빨리 간다고 하여도 최소 한 달 반은 걸리고, 눈사태를 만날 수도 있습니다.”
사방화는 진강에게 무언가 목적이 있는 건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설마 황제폐하의 명을 받고 따라오는 건가?’
“너 혼자 막북에서 경성까지 왔는데, 나라고 막북에 가지 못할까? 안심해라! 나는 충용후부의 자귀 세자처럼 몸이 약한 사람도 아니고, 고생이 두려운 사람도 아니다.”
진강이 말 위에서 여유 있게 말했다.
사방화는 입을 다물고 어떻게 하면 진강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지 생각했다. 자신은 막북으로 돌아갈 수 없다. 진짜 왕은과 교체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먼저 진강을 해결해야 한다. 진짜 왕은은 이 자를 상대할 만한 인물이 못 된다.
그녀가 깊은 생각에 빠져 있을 때, 난데없이 짐이 날아와 그녀의 머리에 부딪쳤다. 사방화는 인상을 쓰며 짐이 날아온 방향을 쳐다봤다. 진강이 어깨를 한 번 으쓱하며 그녀에게 말했다.
“짐 안에 내 옷과 여비가 전부 들어있다. 네가 가지고 가거라. 여행하면서 먹고, 마시고, 자는 것, 모두 너에게 맡기는 것이다.”
사방화가 화를 꾹 참고 말했다.
“공자님, 소인은 군영에서 생활해서 사람을 모시는 일은 잘하지 못합니다.”
“못하면 배우면 되지. 설마 황제폐하께서 너에게 나를 돌보라 명을 내리셔도 거절할 것이냐?”
진강이 차갑게 말했다.
“황제폐하께서는 저에게 공자님을 돌보라는 명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말을 마치며 사방화는 짐을 옆으로 던졌다.
“내가 막북으로 가는 것은 폐하의 칙서를 받아서이다. 폐하께서 이미 너와 함께 가는 것을 알고 계신데, 가는 동안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너도 죄를 면하기 힘들지 않겠느냐? 그러니 나를 잘 돌봐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진강이 거들먹거리며 말했다.
황제가 칙서를 내렸다는 것은 그에게 무슨 변고가 생기면 안 된다는 뜻이다.
“우리 둘 다 무사해야 후에 별 탈이 없겠지. 아니면 무위 장군부와 충용후부 모두 너 때문에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진강은 너무나도 담담한 말투로 말했다. 그러자 사방화는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냐? 설마 나에게 진정 무슨 일이 생기길 바라는 건 아니겠지?”
진강이 불현듯 물어왔다. 그러자 사방화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얼굴은 이미 평정을 되찾은 상태였다.
“공자님, 그런 불길한 말씀은 하지 마세요.”
“그럼 됐다.”
진강이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마차와 말이 지나가는 길엔 이미 눈이 녹아 있었다. 오늘은 날씨도 화창했고, 길가 나무에서 참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왔다. 진강은 기분이 나쁘지 않은 듯했다.
오후가 되면서 그들은 경성에서 오십 리 정도 떨어진 작은 성에 도착했다. 사방화는 원래 두 개의 건량(*乾糧: 먼 길을 가는 데 지니고 다니기 쉽게 만든 양식)을 사서 계속 길을 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진강은 건량은 거들떠도 보지 않고, 바로 주루(酒樓)에 들어갔다. 사방화도 할 수 없이 그를 따라 주루에 들어갔다. 그녀는 진강의 뒤를 따라가며, 그의 사환처럼 행동했다.
주인장이 얼굴 가득 미소를 짓고 그들을 맞이했다.
“공자님, 오늘 어떻게 이곳까지 오셨습니까?”
“먼 곳으로 외출하게 되었다. 좋은 음식들을 가지고 오너라.”
진강은 여유롭게 2층으로 올라갔다. 주인장은 그의 말에 허리를 숙여 인사한 후, 주방으로 들어갔다.
사방화는 주루 안을 둘러보았다. 오십 리나 떨어진 이곳에서 진강의 명성을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이 그리 이상하지 않았다. 경성에서 그렇게 멀리 떨어진 곳도 아닌데다, 황가의 사냥터가 바로 이곳 북산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2층에 있는 별실로 들어가니 진강이 기녀에게 노래를 청하고 있었다. 사방화는 그의 장단에 맞춰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먹고 마시며 함께 누리는 것을 마다할 이유도 없었다.
기녀는 미색이 뛰어났으며 노래를 하는 목소리 또한 부드럽게 간드러졌다. 이윽고 진강은 배불리 먹은 후, 손을 저으며 호탕하게 말했다.
“상으로 은자 열두 냥을 주겠다.”
그 말에도 사방화는 인상을 쓴 채로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녀는 돈을 꺼내려는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
“내 말을 못 들은 것이냐?”
진강이 그녀를 쳐다보자, 사방화는 담담하게 말했다.
“공자님, 짐 안에 있는 은자를 제가 세어봤는데 오천 냥 밖에 없었습니다. 밥값, 술값, 그리고 숙박비까지 쓰시면 오백 냥을 쓰시는 건데, 그럼 지금 가져오신 돈으로는 겨우 열흘밖에 버티지 못하십니다. 열흘 후에는 굶으려 하시는 겁니까?”
진강은 멍한 표정을 짓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네가 만일 여인이었다면, 집안의 돈 관리를 정말 잘 했겠구나. 알았다. 앞으로는 네가 먹으라는 것만 먹고, 네가 자라고 하는 곳에서만 잘 테니 모두 네가 알아서 하여라.”
* * *
주루에서 나온 두 사람은 계속해서 막북으로 향했다.
사방화는 경성에서 나온 후 지금까지도 진강이 대체 왜 막북에 가려고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조급하게 생각하려 들진 않았다. 오늘 밤은 아무래도 그와 함께 묵어야 할 것 같았다. 잠시 후, 진강이 말했다.
“네가 말을 타라. 내가 마차를 몰겠다.”
사방화는 고개를 들고 얼른 그의 말을 거절했다.
“공자님께 이런 일을 시킬 순 없습니다!”
“내가 너를 위해 마차를 몰겠다고 하는 줄 아느냐? 피곤하고 졸려서 그런 것이다. 말을 모는 것보다는 편하지 않더냐.”
사방화가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만약 졸리시면 마차 한 대를 빌리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제 마차는 전부 물건 밖에 들어있지 않아 공자님이 주무실 곳이 없습니다.”
“이렇게 황량한 곳에서 어떻게 마차를 빌리라는 것이냐?”
진강은 그녀에게 반박할 여지도 주지 않고 말고삐를 풀며 곧장 말에서 내렸다. 그러곤 마차 옆으로 다가와 그녀를 끌어내리고 대신 그 자리에 앉았다.
사방화는 간신히 중심을 잡고 서서 진강이 마차에 실은 물건에 기대어 눈을 감는 것을 지켜봤다. 그녀는 할 수 없이 진강의 말에 올라탔다.
잠시 후, 진강은 마차에서 잠이 들었다. 그의 머리가 마차의 흔들림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렸다. 사방화는 어쩔 수 없이 마차 바로 옆에서 자신의 물건들이 도랑에 빠지지 않게 노선을 지켰다.
* * *
날이 어두워 질 때쯤, 출발한 곳에서 백리 정도 떨어진 곳에 도착했다.
이 성은 낮에 지나온 성보다 더 번화한 곳이었다. 깊은 밤이었으나 거리에는 아직 사람들이 많았다. 대문 밖에는 밝은 등이 걸려있고, 화려한 옷을 입은 여인들이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사방화는 이런 곳이 어떤 곳인지 알만 했기에 가지 않았다. 대신 눈에 띄지 않는 작은 객잔 앞에 마차를 세웠다. 곧이어 백발의 노인이 안에서 나오며 부들부들 떠는 목소리로 물었다.
“손님, 묵고 가실 겁니까? 몇 분이신가요?”
“두 명입니다. 보통 방으로 두 개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따라오십시오.”
노인은 고개를 끄덕인 후, 앞장서서 길을 안내했다. 사방화는 기둥에 말을 묶은 후, 진강에게 다가가 그를 깨웠다.
“공자님, 일어나십시오. 객잔에 도착했습니다.”
진강은 하품을 하며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더니,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날더러 이곳에 묵으라는 것이냐?”
“저도 이곳에 있을 겁니다.”
그녀의 말에 진강이 화를 냈다.
“이렇게 낡은 곳에 묵을 순 없다.”
사방화가 그의 짐을 어깨에 둘러메며 말했다.
“오늘 오백 냥이나 쓰셨습니다. 만약 이곳에 묵기 싫으시면 혼자 다른 곳을 찾아보십시오! 소인은 관여하지 않겠습니다.”
진강은 말문이 막힌 듯 눈을 크게 뜨고 사방화를 바라보았다. 사방화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말에게 다가가 건초를 먹였다. 그러고는 옷을 털고 일어나 객잔 안으로 들어갔다. 진강은 마차 옆에 한참을 서 있다가, 결국 할 수 없이 객잔으로 들어갔다.
객잔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밖에서 보는 것처럼 그렇게 낡아 보이지도 않았고, 깨끗했다. 노인은 제일 안쪽에 있는 방으로 두 사람을 안내했다. 사방화는 만족스러운 말투로 노인에게 말했다.
“간단하게 음식 두 접시를 만들어서 갖다 주시고, 따뜻한 술 한 병도 주십시오.”
“음식 두 접시로 되겠느냐? 음식 열 접시와 술 두 병을 가지고 오너라. 제일 맛있는 음식과 독한 술이어야 한다.”
진강이 깨끗한 방을 보며 만족한 듯 말했다.
“공자님의 말을 들으라고 할까요? 아니면 제 말을 들으라고 할까요?”
사방화가 그를 흘낏 보면서 물었다. 진강은 사방화의 말을 듣지 않으면 그녀가 당장이라도 떠날 것처럼 보이자, 콧방귀를 뀌면서 몸을 돌렸다. 그가 방으로 들어가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뜨거운 물을 가지고 와라. 목욕을 해야겠다. 왕은, 설마 이것도 안 되는 거냐?”
“아까 제가 말한 대로 음식을 가져다주시고, 저희 공자님이 목욕을 할 수 있게 뜨거운 물을 가져다주십시오. 귀찮게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사방화의 말에 노인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후, 몸을 돌려 나갔다.
잠시 후, 건장해 보이는 한 사내가 물통을 안고 진강의 방으로 들어와 물통을 내려놓고 나갔다. 진강은 옷을 벗으면서 사방화를 향해 소리쳤다.
“왕은, 이리 와서 목욕 시중을 들어라.”
사방화는 못 들은 척했다.
“왕은, 귀가 먹은 것이냐?”
진강이 다시 한 번 크게 외쳤다.
“공자님, 소인은 무공 연습과 싸우는 것 외에 윗분을 어떻게 시중드는지에 대해선 전혀 알지 못합니다. 만약 혼자 목욕하시기 힘드시면, 방금 전 그 사내를 불러 올까요?”
그러자 진강이 사방화의 말을 막았다.
“됐다.”
사방화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창문을 닫은 후, 여유롭게 차를 마셨다.
진강은 옷을 벗어 의자에 걸친 후 물통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한동안 방에서는 물소리 외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 * *
반 시진 이후에 진강이 목욕을 끝내고 옷을 입은 후, 옆방의 문을 두드렸다. 사방화는 문도 열지 않고 대답했다.
“잠시 후에 주인장이 음식과 술을 가지고 올 것입니다. 그걸 드시고 일찍 쉬십시오! 내일 일찍 출발해야 합니다.”
“너와 함께 잘 것이다.”
사방화는 순간 놀랐지만, 곧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공자님, 같은 사내라 해도 신분의 차이를 생각하셔야 합니다. 공자님의 신분과 소인의 신분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어떻게 한 방에 같이 묵을 수 있겠습니까?”
“내가 처소에서 잠을 잘 때, 그 곳엔 밤새 나를 지키는 사람이 있다. 너도 오늘 당직을 선다고 생각하여라.”
“하지만 여기는 왕부가 아닙니다. 공자님께서 이런 것도 참지 못하시겠다면 소인이 볼 때, 지금 당장이라도 경성으로 돌아가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사방화가 비꼬듯이 말했다. 진강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사방화는 그가 결국 단념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갑자기 진강이 화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왕은, 경성을 떠났다고 나를 무시하는 것이냐? 어찌 겁도 없이, 감히 나를 비꼬는 것이야?”
사방화는 잠시 마음을 가라앉히며, 최선을 다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공자님, 화를 푸십시오. 소인의 말이 좀 직선적이었습니다. 화내지 마십시오. 만약 혼자서 주무시는 것이 겁이 나시면, 제가 아까 그 사내를 불러드리겠습니다. 주인장은 장사하는 사람이니, 당연히 공자님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을 것입니다.”
진강은 화가 나 발로 문을 두 번 걷어찼다. 하지만 문은 보기보다 더 견고했다. 흔들리는 문을 보며 사방화는 문을 걷어찬 그의 발이 아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너는 이 객잔에 쥐가 없기를 바라야 할 것이다. 만약 쥐가 방에 들어온다면, 내일 아침, 결코 너를 가만 두지 않을 것이다.”
그는 이 말을 남긴 후, 화를 내며 방으로 들어갔다. 사방화는 가만히 눈을 깜빡이며 진지하게 고민했다.
‘쥐가 무서운 거였네! 그럼 쥐나 한 마리 잡아서 방에 넣어버릴까?’
때마침, 주인장이 음식을 준비해 왔다. 사방화가 말한 것보다 양이 훨씬 많아 보였고, 심지어 고기와 생선도 있었다. 푸짐하게 차려진 음식을 보자 진강의 화가 많이 가라앉았다.
진강은 낮에 잠을 너무 많이 잔 탓에 잠이 오지 않았다. 그는 딱딱한 나무 침상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았다. 그리고 옆방에서 달게 자는 사방화의 숨소리를 들으며 이를 갈았다. 문득 진강은 이 상황이 흥미로워졌다.
‘왕은, 이렇게 나온다는 것이지……. 정말 재미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