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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규방



3화 규방

연석이 앞으로 나서 충용후부의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누군가 문을 열고 머리를 내밀더니, 그들을 보고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진강 공자님, 연(燕) 후작님, 이(李) 공자님, 송(宋) 공자님, 정(程) 공자님께 인사를 올립니다. 모두 어인 일로 오셨습니까?”

“자귀 세자께서 설날에 쓰실 물건을 가지고 왔다. 어서 문을 열거라.”

연석이 눈을 크게 뜨고 문을 연 사환을 쳐다보자, 사환이 급히 문을 열었다. 문 앞에 있던 사환 역시 곧바로 달려와 마차의 고삐를 잡고 웃으며 말했다.

“공자님들, 안으로 드시지요. 세자저하께서는 해당정(海棠亭)에서 눈을 감상하고 계십니다! 이미 사람을 시켜 고하러 갔으니, 곧 나오실 겁니다.”

“응? 자귀 세자의 병이 좋아지신 것이냐?”

“아직 약을 드시고 계시지만 많이 좋아지셨습니다. 외출을 하실 정도는 아니셔서, 집안에서만 산책을 하고 계십니다.”

사환이 황급히 대답했다. 연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사람들에게 말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충용후부의 해당정은 매우 특별하다고 하더군. 세상의 모든 해당화는 봄과 가을에 피는데, 충용후부 해당정의 해당화는 겨울에 펴서 매화만큼 아름답다고 하던데.”

“나도 들은 적이 있어. 하지만 보여주실지 모르겠군.”

이 공자가 연석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빨리 가지. 우리가 먼저 해당정에 도착하면 볼 수도 있겠지. 진강의 개가 죽은 것을 알면 미안해서라도 보여주지 않겠나?”

곁에 있던 사람들 또한 상기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좋은 생각이군!”

정 공자, 송 공자가 그 말에 즉각 동의했다. 한편, 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사환이 등에 식은땀을 흘리며 진강을 쳐다보았다.

‘진강 공자님의 개를 죽게 했다고?’

그 때, 진강이 아직 문 앞에서 들어오지 않고 있는 사방화를 향해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안 들어오고 무엇 하는 것이냐?”

사방화는 8년이나 돌아오지 못한 집을 보며 감개무량해 하고 있다가, 그의 말에 재빨리 안으로 들어왔다.

“이 사람은……!”

사환이 들어오는 사방화를 쳐다보며 잠시 동작을 멈췄지만, 진강은 그에게 많은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진강의 명이 곧바로 이어졌다.

“우리를 해당정으로 안내하라!”

사환은 차가운 표정의 진강을 보고, 물음을 속으로 삼켰다. 그리고 즉각 길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사람들도 황급히 사환의 뒤를 따라 후원으로 향했다.

* * *

후원에 있는 정자에 도착하자, 사환이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공자님들, 앞에 있는 정자를 지나가면, 저희 세자저하께서 계신 해당원(海棠苑)이 나옵니다. 하지만 해당원은 저희 아가씨의 규방이라 공자님들을 모시고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자귀 세자저하의 병약한 누이동생의 처소를 말하는 것이냐?”

연석이 걸음을 멈추고 물었다.

“네, 그렇습니다.”

연석은 인상을 썼다. 그는 해당정이 해당원 안에 있을 줄은 전혀 몰랐다.

‘어쩐지, 매번 자귀 세자에게 해당정을 보여 달라고 할 때마다 거절하더니 누이의 규방이었을 줄이야.’

그들은 사내이기 때문에 함부로 안쪽에 들어가기 곤란했다. 이(李) 공자, 송(宋) 공자, 정(程) 공자 역시 난처해했다.

진강은 콧방귀를 뀌더니, 사람들을 쳐다보지도 않고 제멋대로 안으로 들어갔다. 연석과 일행은 잠시 굳은 표정으로 서로를 한 번 쳐다보다가 곧이어 그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그들은 물가 옆 정자를 지나 해당원 앞에 도착했다. 고요한 해당원 안에서 불어오는 해당화 향기가 기분을 매우 상쾌하게 만들어 주었다. 연석이 손뼉을 치면서 말했다.

“바로 이 향기지. 다른 해당화에선 이런 향기가 나지 않아. 모양은 얼마나 더 아름다울지 모르겠군.”

“들어가 보면 알겠지.”

진강이 앞서서 해당원으로 들어갔다.

* * *

마침 해당원의 문은 열려 있었고, 시녀들이 눈 쌓인 바닥을 쓸고 있었다. 그들은 누가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빗자루를 떨어뜨리며 소리를 질렀다.

진강은 시녀들의 반응에도 아랑곳 않고, 눈 위에 신발 자국을 남기며 안으로 들어갔다. 진강이 후원으로 들어가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시녀들이 황급히 쫓아가 그들을 막았다.

그 때였다. 자귀 세자, 사묵함이 해당정에서 걸어 나왔다. 시녀들은 사묵함을 보고 사색이 되어 급히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세자저하, 저희가 막지 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나중에 집사에게 가, 곤장 열 대를 맞거라.”

사묵함이 어깨의 눈을 털면서 담담하게 말했다. 그녀들은 얼른 대답을 올린 뒤, 서둘러 물러났다.

“자귀 세자, 규율이 매우 엄한 것 아닙니까?”

진강의 뒤에 있던 연석이 웃으며 걸어나왔다.

“이곳은 누이가 거주하는 곳이니, 당연히 엄격하게 대해야지 않겠소.”

곧이어 사묵함이 뒤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사환을 발견했다. 순간, 사묵함의 안색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자귀 세자는 이 사환을 아십니까?”

연석이 사묵함에게 다가가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고, 웃으며 물었다.

“세자께서 설에 쓸 물건을 전해주러 막북군에서 온 이 사환이 경성에 들어오자마자 큰일을 저질렀습니다! 마차로 진강의 개를 치어 죽이고 말았지요.”

그의 말에 사묵함이 인상을 썼다.

“그 개는 이미 돌아가신 덕자 태후마마께서 하사하신 것이어서, 진강의 큰형님도 그 개를 보면 멀리 숨었었지요. 한데, 오늘 하필 이 사환의 손에 개가 죽었으니, 아무래도 세자께서 진강에게 배상을 해주셔야 그의 화가 가라앉을 것 같습니다.”

사묵함은 연석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어두운 얼굴로 진강을 돌아보았다. 진강의 얼굴만 봐서는 그의 기분이 어떤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사묵함은 다시 사환을 보더니, 평온한 목소리로 물었다.

“너는 누구냐? 이름이 어떻게 되지? 어디서 왔고, 무엇을 하러 왔느냐? 어떻게 해서 진강 공자의 개를 죽이게 됐는지, 거짓 없이 말해 보거라.”

고개를 끄덕인 사방화가 여전히 머리를 푹 숙인 채,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왕은이라고 합니다. 막북의 변경에서 왔습니다. 오는 동안 별다른 일이 없었는데, 하필 경성에 들어와 연부루를 지날 때, 갑자기 어디선가 고기만두가 날아왔습니다. 그 냄새를 맡고 개가 마차로 뛰어들더니, 그만 깔려 죽고 말았습니다.”

“허면, 내 개가 마차를 알아보지 못하고 뛰어들었다는 것이냐?”

진강이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 사방화는 고개를 숙이고 그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사묵함은 인상을 쓰고 한참을 생각하더니, 진강에게 말했다.

“우연히 일어난 일이기는 하나, 이 사환에게 책임이 없다고 하기는 힘들군. 진강 공자, 내가 어떻게 배상했으면 하오? 덕자 태후마마께서 하사하신 개는 돌려줄 수 없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최선을 다해 배상해주겠소.”

“자귀 세자께서 그리 말씀해 주시니 좋군요. 진강 공자, 해당정에 가서 해당화를 보는 것은 어떤가?”

연석이 즉각 상기된 목소리로 제안했다.

“설마 해당화를 보는 걸로 배상이 된다고 생각하나?”

진강이 차가운 표정으로 그를 응시하자, 연석이 머쓱한 듯 기침을 하며 머리를 만졌다.

“해당정의 해당화를 당연히 진강 공자의 개와 비교할 수는 없지. 진강 공자가 원하는 게 있으면 말씀하시오.”

말을 마친 사묵함이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입을 막고 기침을 했다. 진강은 별안간 웃음을 터뜨리더니, 손으로 사방화를 가리키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렇다면, 이 사환을 내게 주십시오. 그것으로 배상받는 것이 좋겠군요.”

놀란 사방화의 몸이 딱딱하게 굳어졌고, 입술은 한 일자로 단단히 맞물렸다.

‘감히 나를 원하다니!’

사묵함은 순간 긴장했지만, 다시 평정심을 유지하며 말했다.

“도리대로 말하면 진강 공자의 요구가 과한 것은 아니오. 나도 물론 공자의 말을 들어주고 싶지만, 이 사환은 충용후부의 사람이 아니고, 막북에 계신 외숙부의 사람이기에 숙부님의 허락이 있어야만 가능할 것 같소.”

“그럼 숙부님께 서찰을 써서 내가 이 자를 원한다고 전해주셨으면 합니다.”

진강의 말에 순간, 사묵함이 멈칫거렸다.

“단지 사환일 뿐이잖소? 충용후부와 막북군은 한 가족이니, 이 사환이 영친왕부 이 공자의 개를 죽인 것을 알면, 무위 장군께서도 당연히 허락하지 않겠소?”

“맞는 말이오.”

정 공자의 말에 송 공자도 맞장구를 쳤다.

사방화의 머리에 식은땀이 흘렀다. 만약 그녀가 진짜 사환이라면 이는 아무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사방화는 충용후부의 적녀이자, 세자 사묵함의 친 누이이며, 해당원의 주인이다. 어떻게 죽은 개에 대한 배상을 그녀로 대신할 수 있겠는가?

“자귀 세자께서는 별로 원하시지 않는 것 같습니다?”

진강의 말에 사묵함은 일순간 머리가 아파왔다.

사방화는 오라버니 사묵함이 저를 알아봤다는 것을 눈치 챘지만, 더는 이 상황을 타계할 방도가 없었다. 결국, 그녀는 숨을 크게 들이쉰 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진강 공자님이 저에게 시중을 들라거나, 목숨으로 배상하라 하셔도 저는 당연히 그리 해드릴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무위 장군부에서 온 것이 아니라, 막북 군영에 예속되어 있습니다. 이번에 제가 온 연유는 충용후부에 물건을 가져다주는 것 외에 다른 임무도 있습니다. 바로 황제폐하를 알현하는 것입니다.”

순간, 그 곳에 있던 사람들 모두 멍한 표정을 지었다. 사묵함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고 진강을 향해 말했다.

“진강 공자, 군에 예속된 사람을 내 마음대로 할 권리는 없소.”

“그럼 자귀 세자께서 저에게 큰 빚을 진 걸로 하지요. 물건으로도 갚을 수 없는 빚을 지신 겁니다.”

사묵함은 웃으며 약속할 수밖에 없었다.

“좋소. 오늘 충용후부는 진강 공자에게 큰 빚을 졌군. 진강 공자가 나중에 말만 하면, 그 땐 반드시 최선을 다해 배상을 하겠소.”

진강이 미소를 지으며, 뒤에 있는 네 사람에게 말했다.

“그대들이 증인이다.”

“알겠어. 우리가 증인이네.”

연석(燕亭), 이(李) 공자, 송(宋) 공자, 정(程) 공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묵함은 손수건을 움켜쥐고 몇 번 더 기침을 했다. 영강후부의 후작인 연석, 우승상부의 공자 이목청, 후부상서의 공자 정명, 예부상서의 공자 송방은 젊은 세대 중 걸출한 인재들이다. 그들이 증인을 선다면 이는 확실한 권약이 되는 것이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자귀 세자. 정말로 우리에게 해당화 구경을 시켜주시지 않고, 문전박대하실 겁니까?”

연석은 진강이 해당화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자, 행여 구경하지 못하고 돌아갈까 걱정이 됐다. 크게 한숨을 쉰 사묵함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이미 이곳까지 왔는데 어찌 문전박대를 할 수 있겠소?”

연석은 크게 기뻐하면서 눈을 빛냈고, 이어 사묵함이 시녀들에게 명했다.

“너희들은 아가씨에게 가서 내가 친우들을 데리고 해당화를 보러 가니, 방에서 나오지 말라고 전하여라.”

“네!”

두 시녀가 즉각 뒤돌아 해당원으로 들어갔다.

“시서, 너는 왕은을 조부님께 데려 가라. 그는 막북 군영에서 임무를 받아 폐하를 알현하러 왔으니, 그전에 조부님께 먼저 상황을 말씀 드려야 한다.”

사묵함이 자신의 사환인 시서에게 분부했다.

“네. 세자저하!”

시서는 예를 갖춰 답한 뒤, 사방화에게 길을 안내했다. 누이동생이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던 사묵함은 진강과 공자들을 데리고 해당정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