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요리를 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영친 왕비가 춘란과 함께 낙매거를 찾았다. 사방화가 그녀를 맞이하러 나가자, 영친 왕비가 웃으며 사방화를 살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낡은 옷을 입고 있든, 비단 옷을 입고 있든 별 차이가 없는 사람이구나.”
사방화는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이미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전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널려 있는 옷들은 네가 직접 세답(*洗踏: 옷을 빠는 일)한 것이냐?”
영친 왕비가 정원에 널려 있는 옷들을 보면서 물었다. 사방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보자마자 네가 세답한 것이란 걸 알았다. 청언에게 여러 번 세답하는 법을 가르쳤지만, 언제나 옷을 제대로 널지 못하더구나.”
영친 왕비가 춘란의 손을 놓으면서 말했다.
“너는 이만 돌아가도 된다. 한 시진 후에 나를 데리러 오거라.”
춘란은 잠시 망설이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실과 천이 담긴 바구니를 사방화에게 건네고 낙매거를 나갔다.
바구니를 받아든 사방화가 안에 담긴 것들을 잠시 살펴보았다. 그리고 한 손에 바구니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론 영친 왕비를 부축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방으로 들어간 영친 왕비는 방을 둘러본 후, 사방화를 쳐다보며 말했다.
“진강은 어려서부터 성격이 이상하였는데, 성장하면서 그런 면을 점점 더 드러내더니 더욱 거침이 없어졌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얌전히 서 있는 사방화를 바라보다,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
“어제 진강이 나에게 와서 뭐라고 했는지 아느냐?”
사방화가 고개를 들고 그녀를 쳐다봤다.
“진강이 나에게 낙매거에 있는 매화 모양을 수놓는 법을 가르쳐달라고 하였다.”
낙매거의 매화는 매우 비쌌으며, 흔한 품종이 아니었다. 사방화는 창문 밖을 바라봤다. 찬바람에 매화가 흩날리는 모습을 보니, 바람이 더 쌀쌀하게 느껴졌다. 그 때, 영친 왕비가 그녀의 손을 두드리면서 말했다.
“진강은 내 아들이지. 무엇을 원하고, 좋아하든 어머니로서 최선을 다 해줄 것이야. 진강에게 좋은 아버지를 주지 못했으니, 나라도 아껴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사방화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쳐다봤다. 영친 왕비의 따뜻한 미소 아래 어렴풋하게 상처받은 표정이 서려 있었다.
사방화는 어제 이곳에 나타난 영친왕을 떠올렸다. 그는 다리를 약간 절었으나, 빨리 걷지 않으면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할 정도였다.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영친왕은 영친 왕비를 매우 아낀다고 했다. 그러나 그녀가 영친왕의 유일한 여인은 아니었다.
“자, 시작하자!”
영친 왕비가 그녀의 손을 놓으며, 자리에 가서 앉았다. 사방화가 고개를 끄덕이며 바구니를 그녀의 앞에 가져다주었다.
영친 왕비가 쌍면수(雙面綉)를 놓기 시작했다. 사방화도 예전에 배운 적이 있었지만 영친 왕비처럼 섬세하게 수를 놓지는 못했다.
영친 왕비는 수를 놓으면서 간간이 이런 저런 얘기를 해 주었다. 누구 집 부인과 아가씨가 수를 잘 놓는다든지, 어느 집안의 아가씨가 규방의 예절에 대해 잘 아는지 등등의 이야기였다. 그렇게 시간이 물 흐르듯 지나갔다.
영친 왕비는 연부루의 주방장이 제 시간에 도착한 것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너는 규범적이고 본분을 잘 아는 아이 같다. 비록 말을 하지 못하나, 나를 매우 편안하게 해주는 구나.”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다시 말을 이었다.
“내일 다시 오마. 진강이 준비한 것들을 힘들다고 생각하지 말거라. 배워두면 전부 좋은 일이 될 것이다.”
사방화가 공손하게 고개를 끄덕인 후, 영친 왕비를 배웅했다. 춘란은 제 시간에 맞춰 낙매거에 왔다. 그녀는 영친 왕비를 부축하며 함께 낙매거를 나갔다.
사방화가 하안에게 인사를 하자, 하안도 즉각 화답했다. 그리고 그들은 함께 작은 부엌으로 들어갔다.
* * *
부엌 안에는 집사가 사람들과 함께 미리 준비해 놓은 각종 재료들이 있었다. 다만 약 냄새는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짙게 풍겨져 나오고 있었다.
오늘 하루 종일 배운 것들은 예전에도 전부 배웠던 것들이기 때문에, 그다지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요리는 달랐다. 사방화는 한 번도 부엌에 들어가 본 적이 없었고, 그릇이나 조리되지 않은 음식들을 만져본 경험도 전무했다.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불을 피우는 것이 전부였다.
하안은 세심하게 재료를 자르는 것부터 가르쳤다. 사방화는 칼질이 서툰 탓에 하마터면 손을 자를 뻔했다. 그녀의 손에서 피가 흐르자, 하안이 깜짝 놀랐다.
사방화는 그를 향해 웃어 보이며 괜찮다고 손을 저었다. 그녀는 진강의 방에 들어가 약을 바른 후, 천으로 손가락을 묶었다.
결국 하안은 자신이 재료를 직접 잘라, 재료를 사용하는 순서를 가르쳐줬다.
사방화는 그가 가르쳐준 대로 하다가 뜨거운 냄비에 손을 데었다. 그러자 손이 빨갛게 변하더니, 금세 수포가 생겼다. 하안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그녀는 바늘로 수포를 터트린 뒤, 손가락에 분말 약 가루를 바르고는 그에게 계속하라며 손짓을 했다.
하안은 그녀가 손가락을 깊게 베인 것을 알고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은데다, 수포가 생겨도 전혀 얼굴에 변화가 없는 것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감탄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요리하는 순서를 말로만 가르쳐 주었다.
음식 조리법에는 볶음, 조림, 국, 찌는 요리, 끓이는 요리 등 여러 가지 종류가 있었다. 하안은 음식마다 어떤 향신료를 넣어야 하는지, 음식의 양에 따라 향신료의 양을 어떻게 조절해서 넣어야 하는지 등등을 가르쳐 주었다.
사방화는 그의 말을 진지하게 들었다. 그녀에겐 아주 좋은 습관이 하나 있었다. 비록 쓸모없는 것을 배워 시간을 낭비한다 하더라도, 무엇이든 전력을 다해 배운다는 것이었다. 또한, 연부루의 주방장에게서 직접 음식을 배울 수 있는 기회는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그녀는 더더욱 최선을 다해 경청했다.
한 시진은 매우 빨리 지나갔다. 시간이 되자 하안은 낙매거를 떠났다.
사방화는 자신과 그가 만든 요리를 보면서 한참을 생각했다. 그리고 하안이 방금 가르쳐준 대로 다시 재료들을 자른 후, 순서대로 다시 요리해 보았다.
* * *
진강이 낙매거에 도착했을 때도, 사방화는 아직 부엌에 있었다. 그는 주방에서 풍겨오는 냄새를 맡으며 부엌으로 들어갔다.
사방화는 냄비에 향신료를 넣고 있었다. 진강은 문 입구에서 그녀를 쳐다봤다. 사방화는 그를 발견하지 못한 듯했다. 진강은 주방 안으로 들어와, 쪼그리고 앉아서 부뚜막에 장작을 넣었다.
사방화는 한참을 생각 하다, 병 하나를 들고 숟가락으로 안에 있는 것을 퍼내어 냄비 안에 넣었다.
“그건 소금이다. 너는 지금 네가 만드는 그 음식에 그렇게 많은 소금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진강의 목소리가 들리자, 사방화가 고개를 돌려 그를 보더니, 다시 자신이 쥐고 있는 병을 봤다.
‘이게 소금이라고? 설탕이 필요한데.’
“설탕 그릇은 저쪽에 있다.”
진강이 하얀색 병 옆에 있는 또 다른 하얀색 병을 가리키며 말했다.
“구별을 하지 못하겠으면, 병에다가 글씨를 써놓아라. 그럼 다음부터는 쉽게 구별할 수 있을 것이다.”
사방화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아주 좋은 생각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설탕 병을 들고 다시 설탕을 한 숟갈 떠서 냄비 안에 넣었다. 그리고 주걱으로 여러 번 냄비를 저은 후 뚜껑을 덮고, 뜸을 들였다. 그 후, 음식을 접시에 담아냈다.
진강은 두 개의 똑같은 요리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두 음식의 색깔은 하늘과 땅만큼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 하나는 아주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색이었고, 다른 하나는 새까맣게 타 있었다.
사방화는 이마에 고인 땀을 닦더니, 차가운 물로 손을 씻었다. 진강은 그녀의 손가락에 묶인 천의 핏자국을 발견하고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나 아무 말 없이 접시 두 개를 들고 부엌을 나갔다. 사방화는 상처 입은 손가락을 조심하면서 손을 씻은 뒤, 그를 따라 부엌을 나갔다.
청언이 문 앞에 있다가, 그녀가 나오자 큰소리로 물었다.
“청음, 음식 만드는 게 힘들었더냐?”
사방화가 잠시 생각한 후 고개를 저었다.
“손가락에 상처를 입었는데, 힘들지 않았다니?”
청언은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다. 사방화는 그의 말에 절로 미소가 나왔다. 그녀는 8년간 이것보다 훨씬 더 힘든 일을 겪었다. 이 정도 상처는 이틀이면 좋아진다. 청언이 그녀의 손을 보며 잔소리를 이어갔다.
“손가락을 그리 묶었는데, 어떻게 금을 연주하고 그림을 그리겠느냐?”
사방화는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그런 일들은 꼭 손을 쓰지 않고, 경청만 해도 되는 것이다. 청언은 그녀의 대답을 듣지 못하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다른 것은 다 멀쩡함에도 하필 말을 할 수 없다니. 손 태의의 약이 잘 들어서 그녀의 목이 얼른 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윽고, 사방화와 청언이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 안에서는 진강이 탁자 위에 올려놓은 음식 두 접시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공자님, 이 음식만을 드시려고 하십니까? 제가 큰 부엌에 가서 음식을 두 접시 정도 더 만들어 오겠습니다.”
청언은 말을 마치자마자 몸을 돌려 큰 부엌으로 달려갔다. 사방화는 그를 위해 차를 따르고, 자신에게 한 잔 따른 다음, 이내 그의 맞은편으로 가서 앉았다.
“어머니가 오후에 왔다 가셨느냐?”
사방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영친 왕비가 그렇게 당신을 아끼시는데, 어찌 안 오시겠어?’
진강이 의자에 몸을 기대며 득의양양하게 말했다.
“아버지께서 어제 어머니에게 오늘 오후에 함께 말을 타러 가자고 하셨다. 어머니께선 평소에 말을 타는 것을 제일 좋아하시는데, 아버지가 얄미우신 것인지 거절하셨어. 아버지가 그럼 내일 오후에 말을 타러 가자고 하셨는데 어머니가 또 거절하셨다. 그리고 앞으로 오전에든 오후에든 너를 가르쳐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없다고 또 거절하셨지.”
사방화가 눈을 깜빡였다.
“흥, 아버지께선 어머니가 나를 생각하시는 마음을 이길 수 없다. 어머니는 자신의 부군이 아들보다 믿을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분명히 알고 계시지.”
사방화는 그가 아이처럼 유치하게 군다고 생각했다. 진강이 차를 마시며 말을 이어갔다.
“내일 형님이 집으로 돌아오는데, 너는 상대하지 않아도 된다.”
사방화는 이 며칠 동안 영친왕부의 서출 장자가 집에 없다는 것을 눈치 채고 있었다.
진강의 형님은 이미 나이가 찼기에, 과거 시험에 응시해 조정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황제는 그에게 호부(戶部) 6품의 관직을 하사 했다. 한 달 전에는 외지에 나가 일을 탁월하게 수행했던 까닭에 원외랑(員外郞) 5품에 올랐다. 능력이 있으니 영전(*榮轉: 승진)도 빨랐다. 물론 영친왕의 높은 기대와 함께 개인적인 도움과 교육도 뒷받침 되었다.
호부는 대대로 입지가 아주 좋은 관직이었다. 그는 아직 부인을 맞이하지 않았다. 비록 서출이지만 장자이기에, 영친왕부에는 작년부터 매파(媒婆)들의 출입이 잦았다.
그 사이, 청언이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어 왔다. 세 사람은 드디어 식사를 시작했다.
사방화는 하안이 만든 음식을 먹어본 후, 다시 자신이 만든 음식을 먹었다. 하안이 만든 음식은 무척 맛있었으나 그녀가 만든 음식은 설탕이 많이 들어가 매우 달았다. 사방화는 본인이 만든 음식에 다신 손도 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