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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시우는 난데없이 나타난 거트의 모습을 보고도 당황하지 않았다.

특유의 나른하고 귀찮은 표정으로 상대를 유심히 바라볼 뿐.

그가 궁금한 것은 그저ㅡ 자신의 공격을 막아 낸 자가 알 수 없는 살의를 띠었기 때문이다.

[저놈 뭐냐? 방금 식량의 공격 막아 냈다. 이곳에 와서 처음이다! 그리고 스킬도 다른 놈들에 비해 괜찮아 보인다!]

프레의 방방 뛰는 음성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우는 찬찬히 상대를 관찰하기만 했다.

아는 얼굴도 아닌데 분노가 일방적이군.

물론 암살자들도 살의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들은 죽이겠다는 마음은 있을지언정 그것에 감정이 섞여 있지는 않다.

그러나 지금 나타난 상대에게선 아주 노골적인 살의와 적의가 가득했다.

마치 철천지원수를 대하는 느낌.

"너냐? 내 형을 죽인 놈이?"

순간 상대에게서 으르렁거리는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상처 입은 야생 짐승의 그것처럼 독이 오를 대로 오른 적나라한 분노가 칼날 같이 겨눠진다.

순간의 정적.

그 팽팽히 당겨진 실처럼 긴장이 끓어오르는 곳에서 시우는 귀찮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고는 끓는 분노에 기름통을 탱크째로 던져 넣었다.

"형? 어떤 덜떨어진 새끼를 묻는 거지? 너무 많은데."

거트는 순간 대꾸할 말을 잊었다.

이런 대답을 듣게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윽고 정신을 차리는 그는 잇몸에서 피가 나도록 어금니를 깨물었다.

"···심장을 통째로 씹어 삼켜 주마."

이성의 끈이 뚝, 하고 끊어지는 순간,

콰직!

그가 발을 내디딘 곳의 시멘트 바닥이 크레바스처럼 깨져 나가며 엄청난 진동이 건물을 뒤흔들었다.

그리고 그의 형상이 총알처럼 시우에게로 튀어 나갔다.

이제껏 싸웠던 헌터들하고는 차원이 다른 움직임에 시우는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제법이잖아.

그 같은 감탄이 잠시 스치는 순간, 마력을 잔뜩 머금은 거트의 주먹이 시우를 거침없이 가격했다.

퍼어어억!

사람을 때렸다고는 믿기지 않을 굉음이 건물 내부를 진동시켰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머리가 송두리째 날아갔을 일격.

하지만 주먹은 시우의 얼굴이 아닌 그의 왼팔 가드에 막혔다.

순간 거트는 시우의 눈빛을 볼 수 있었다.

재밌다는 듯 호선을 그리는 눈매.

'언제까지 웃나 보자!'

그 웃음이 기폭제가 되어 거트의 주먹에 힘이 실렸다.

그는 주먹을 쉬지 않았다.

2차, 3차로 이어지는 공격이 헤비급 복서의 그것처럼 전방위에서 시우에게 쇄도했다.

퍼어어억! 퍼억! 콰앙!

무거운 해머로 바윗덩어리를 때리는 것처럼 공격 하나하나가 묵직하게 상대의 몸에 내리꽂혔다.

그러나 그 모든 공격은 시우의 가드에 완벽하게 막히고 있었다.

"큭! 단장님, 도와 드리겠습니다!"

뒤에 있던 암살자 중 하나가 스킬을 발동하려 했다.

어떻게든 틈을 만들어 거트의 공격이 먹히도록 해야 했다.

그런데,

"일대일 대결에 끼는 건 반칙이잖아!"

눈 깜짝할 사이에 시우의 몸이 암살자 앞에 다가와 있었다.

"어? 어? 어, 어떻게?"

분명 거트 단장의 공격을 막기 급급해 보였는데?

"한창 재밌는데 말야."

콰아아아앙!

"커어억!"

시우가 가볍게 내지른 발길질에 암살자는 벽에 처박혔다.

그리곤 코와 입에서 피를 줄줄 흘리더니 절명했다.

'뭐야, 이 빌어먹을 괴물 자식은! 이게 튜토리얼 탑에서 갓 나온 신입의 빠르기라고??'

거트는 자신의 속도를 웃도는 시우의 빠르기에 흠칫했다.

분명 주먹을 끊임없이 휘두르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공격이 허공을 가른 것이다.

자신의 공격을 피한 것도 모자라 그 틈에 다른 사람을 공격하다니.

"내가 맞는 동안 생각을 좀 해 봤는데."

암살자 하나를 가볍게 죽인 시우는 목을 꺾으며 느릿느릿 말을 이었다.

"나한테 죽었다는 건, 네 형이 범죄자란 소리 아냐?"

설마하니 이계로 떨어지기 전 죽인 사람은 아닐 것이다.

물론 그 당시에도 헌터끼리 죽고 죽이는 경우는 많았지만, 대부분은 합의로 이루어진 전투였다.

그렇다면 이계에서 돌아온 뒤에 죽인 사람이란 소린데.

그럼 범죄자밖에 없잖아.

"범죄자는 죽여도 된다는 말인가?"

눈에 핏발이 선 거트가 입술을 짓씹으며 되물었다.

"어, 돼. 법이 그렇더라고."

"개같은 새끼."

거트가 시우를 향해 다리를 박찼다.

가공할 마력이 권갑에 응축되더니 푸른 빛살을 사방에 흩뿌린다.

그를 이 자리에까지 오르게 만들어 준 공격, [낭아천살].

주먹을 거침없이 휘둘렀다.

마치 맹수의 거대한 발톱 같은 강격이 공기를 찢어발기며 시우가 있는 자리로 미사일처럼 직격했다.

그 날카롭고 서슬푸른 마력의 공격이 다가오는 것을 보며 시우는 혀를 찼다.

"스킬."

[치킨 한 마리 입금해라.]

이 한결같은 시세 보소.

"[스펠 뉴트럴라이즈]"

시우는 지체 없이 스킬을 발동했다.

그의 손바닥에 나타나는 거대하고 찬란한 마법진.

원을 가로지르는 수십여 획과 아홉 개의 글자가 미묘한 조화를 이루며 마나의 흐름을 허락한다.

콰지지직!

그리고 거트의 어마어마한 공격이 그런 마법진을 씹어 삼킬 듯 내리꽂혔다.

콰아아ㅡㅡ 스스슥

"어···?"

거트는 당혹스러운 얼굴을 했다.

분명 첫소리는 거대한 파공음이었다.

상대에게 직격해서 사방팔방 다 찢어 놓을 때 들리던 그 소리.

그러나 그게 끝이었다.

마치 불이 꺼져갈 때 나는 것처럼, 혹은 풍선의 바람이 빠지듯 힘없는 바람 소리가 나더니 침묵이 들어앉았다.

"대체··· 대체 뭘 어떻게 한 거지?!"

거트는 예상 밖의 상황에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자신의 공격이 무위로 돌아간 것은 처음 겪는 일.

"뭘 어떻게 하긴. 스킬 공격은 스킬로 파훼해야지."

시우는 마법진을 다시 펼쳐 보이며 태연히 말했다.

"말도 안 되는 개소리! A급 헌터의 공격을 파훼하는 스킬이라고?"

"A급은 지랄 염병하네. 소고기 등급 매기냐?"

사실 시우가 쓴 스킬은 시우의 말처럼 간단한 게 아니었다.

상대 스킬의 계열과 마력량을 파악해서 반대되는 성질을 술식에 입력하고 마법진으로 펼쳐 막아 내는 고위 스킬.

이런 것이 가능한 이유는 시우의 세밀한 마력 컨트롤과 관찰력, 그리고 프레의 스킬 활용력 덕분이었다.

다만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간단한 마법진으로 스킬을 파훼한 것처럼 보일 테지만.

"그런데 A급 헌터가 이만한 마력을 쏟아 냈다는 건ㅡ 죽이려는 의도가 맞는 거겠지? HMCS 입장에서 어쩔까 고민 중인데."

시우는 천천히 웃음을 지워가며 서릿발 같은 눈으로 거트를 내려봤다.

"죽이려는 의도가 아니라ㅡ"

거트는 다시 한번 마나를 그러모았다.

마나맥을 타고 도는 마력들이 전신을 찌를 듯 맹렬히 회전했다.

그렇게 운용한 마력들을 근육 곳곳에 보내 육체강화를 함과 동시에 오른손으로 보내 스킬 시전도 준비했다.

"반드시 죽인다!!"

"그럼 HMCS 권리에 의거, 즉결 처분권을 발동하도록 하지."

시우는 손가락을 까딱였다.

거트의 터질 것처럼 부푼 근육들에서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른다.

그의 거체가 또 한 번 총알처럼 튀어 올랐다.

'놈은 분명 힐러라고 했다.'

그럼에도 자신의 거대한 마력 공격을 상처 하나 없이 막아 냈다.

'힐이란 건 메인 스킬이고, 디펜스는 보조 스킬일 터. 하지만 유용한 스킬엔 그만큼의 리스크가 있을 것이다.'

이런 스킬들은 대체로 사용 조건이 까다롭거나, 지대한 마나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

틈을 봐서 [낭아천살]을 다시 처박아주겠다.

이번에는 그 잘난 스킬조차 실행할 틈도 없이 말이다.

그 뻔한 속내가 보이는 듯해서, 시우는 입꼬리를 비틀어 웃었다.

거트의 주먹이 대포알처럼 쏘아져 들어온다.

시우는 고개를 틀어 공격을 피해냈다.

주먹이 스친 곳이 화끈거린다.

거트는 시우가 피한 방향으로 플라잉 니킥을 내질렀다.

뻐어억!

시우는 왼손바닥으로 무릎을 막아 내며 허리를 틀어 재빨리 오른손 어퍼컷을 날렸다.

거트는 고개를 뒤로 꺾어 스치듯 주먹을 피했다.

간발의 차였다.

쾅! 콰아앙! 퍽! 퍼억!!

빗나간 주먹이나 발길질에 시멘트벽과 바닥이 박살 나고, 충격파에 건물이 미세하게 흔들거린다.

공방은 이미 수십 합을 넘어갔다.

다른 암살자들은 그들의 대결을 망연히 바라만 볼 뿐, 차마 끼어들 곳을 찾지 못했다.

"크윽!! 이 괴물 자식!"

뻐억!

거트의 발차기에 시우의 몸이 2~3m 뒤로 날아간다.

하지만 큰 피해는 없어 보인다.

오히려 먼지까지 털어 가며 여유를 보이는 모습.

거트는 입술을 짓씹었다.

이제 시간을 더 끌면 안 된다.

그는 어깨를 뒤로 빼며 남은 모든 마력을 오른 주먹에 쑤셔 박았다.

쿠구구구구···!!

오른 주먹이 뻐근하게 아려 오며 마력에 터져 버릴 것만 같다.

눈이 시릴 듯 푸르게 빛나는 권갑.

"여기까지다!!"

다시 한번 [낭아천살] 스킬이 발현되고,

콰지지지지직!!

조금 전의 위력보다 더 강하고 선명한 마력의 발톱이 시우를 향해 대기를 찢어 울리며 돌진했다.

[도와줄까? 치킨 두 마리.]

"아니, 이젠 내가 할 거야."

전투로 몸이 풀렸거든.

콰가가가가가광!!!!

사방이 [낭아천살]의 마력으로 터져 나간다.

벽은 물론이고, 건물을 떠받치는 기둥과 지붕이 그 거친 공격을 감당하지 못한다.

쿠르르릉···.

결국, 엄청난 굉음이 울려 퍼지며 연구소가 무너져 내린다.

피어오르는 뿌연 먼지와 튀어 오르는 돌무더기 속에서 거트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형의 복수를 이뤘다.'

이제는 밀항이든 뭐든 홍콩으로 건너가기만 하면 될 일.

어차피 증거도, 증인도 없으니 자신의 짓이라 마냥 몰아세우진 못할 것이다.

암살단은 애초에 신원이 불분명한 자들로 이루어져 있으니 걱정할 것도 없고.

"끝났냐?"

순간 들려서는 안 되는 목소리가 그의 귓속을 파고든다.

"뭐? 너 어떻게···."

거트는 먼지를 툭툭 털며 다가오는 시우를 귀신 보듯 쳐다봤다.

자신의 온 힘을 다한 일격이었다.

거기다가 2차로 건물마저 붕괴했고.

거트는 창가에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붕괴하는 순간 급히 빠져나와 피해가 없었던 것.

"하, 내 애제자의 연구소를 부수다니. 거기다가 HMCS 요원에 대한 살인미수라."

시우는 빙글빙글 웃으며 터벅터벅 다가갔다.

조금씩 뒷걸음질 치는 거트를 향해, 시우는 푸른 안광을 서늘히 빛내며 입을 열었다.

"자, 모처럼 재밌는 전투를 했으니 나도 보답해야지."

쿠웅!!

시우의 오른손에 금빛 찬란한 마법진이 형성된다.

마치 벼락이라도 내려치는 것처럼 섬전이 눈부시게 불타오른다.

파지직··· 파지직!

"자, 잠깐만!"

"내 오리지널 스킬ㅡ"

순식간에 거트의 품으로 파고든 시우.

미처 도망가지 못한 거트의 가슴팍에 마법진을 대며 속삭인다.

"[라이프 스틸]"

파즈즈즈즈즈!!

"커허어억!"

"사실 나는 평범한 힐러라기보다는."

시우는 산송장처럼 비쩍 말라가는 거트를 보며 나지막하게 읆조렸다.

"생명력을 다루는 생령술사거든."

〈16화〉

파도가 친다

HMCS의 한국지부 운영팀.

〈HMCS 강북지부〉 - No.noname (LIVE 대기중)

"과장님, 누가 바디캠 라이브 켰는데요?"

이날 당직을 맡은 막내는 한쪽에서 라면을 먹고 있는 이용구 과장을 불렀다.

"에이, 씨발. 어떤 병신이 또 라이브 버튼을 누르고 지랄이야."

이용구는 라면을 우물거리면서 터벅터벅 막내에게 걸어갔다.

바디캠 라이브 방송.

〈HMCS 국제본부〉에서 대대적으로 기획한 것으로, HMCS 헌터의 범죄자 소탕 과정을 헌터 튜브와 연동시켜 라이브로 생중계하는 것이 목적인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선 거하게 말아먹은 계륵 같은 아이템이 되었으니.

문제의 원인은 라이브 그 자체.

얼마 전, HMCS에서는 바디캠을 국가별로 시범 운영하면서 라이브를 활성화했었다.

HMCS의 헌터들이 얼마나 힘들게 각성 범죄자와 맞서 싸우는지, 그리고 그들이 얼마만큼이나 강한지.

이런 내용들을 적극적으로 알리기 위한 방송이었다.

말 그대로 'HMCS의 홍보'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 카우카우 : 여윾시 따라지들 모이는 집합소답죠?

-ㅇㅇ : ㅅㅂㅋㅋㅋㅋㅋ 이거 홍보 채널 맞냨ㅋㅋㅋ 고도의 안티 아님?

-SSS급헌터 : 내가 발가락으로 싸워도 쟤들보다는 잘 싸울 수 있음

-헌갤러 : 이거 홍보는 홍보네 확실히 이제 이 영상을 보고 그 누구도 hmcs에 안 들어갈 테니까 말야

-오크물알 : 이딴 거 볼 시간에 아이돌 헌터 유아이 영상이나 한 번 더 보겠다…

대중의 싸늘한 시선과 조롱이 헌터 튜브에 올라간 영상마다 달렸다.

조회 수는 처참했고, 심지어는 관련 내용이 뉴스를 타기까지 했다.

「무능한 HMCS, 각성 범죄도 길드에 맡겨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와···.」

결국, 반응이 괜찮은 몇몇 나라를 제외하고는 라이브 기능을 무기한 중단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그것은 한국 지부도 마찬가지.

따라서 현재 바디캠은 온전히 녹화 기능에만 초점을 맞췄고, 녹화된 영상 중 괜찮은 것들만 편집해 HMCS 채널에 올리는 상황이었다.

"과장님, 전화 때릴까요?"

"기다려 봐, 시까."

이용구 과장은 짜증을 내며 모니터를 바라봤다.

어떤 얼빵한 자식이 녹화 버튼이 아니라 라이브 버튼을 눌렀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쓰바, 별것도 아닌 일에 누르기만 해 봐라. 해당 팀장한테 전화해서 지랄을··· 어?"

"왜 그러십니까?"

막내는 이용구 과장이 짜증을 내다 말고 말을 멈추자 의아한 듯 물었다.

그는 입까지 벌린 채 모니터를 뚫어져라 바라보기만 했다.

"야, 이 사람 어디 소속이라고?"

"그게··· 강북지부 황정구 팀장 소속입니다."

"이 바디캠 황정구 본인은 아니지?"

HMCS 한국지부에서 황정구의 이름은 꽤 알려진 편이었다. 투박하지만 강한 전투 방식 덕분에 각성 범죄자 사이에서도 그의 이름은 오르내리는 편이었고, 조금이지만 팬층도 있었다.

"네, 아닙니다. 접속 코드가 다른데 이 사람은··· 신입이라고만 적혀 있네요."

"허. 황정구가 괴물을 하나 키웠네."

이용구 과장은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도 과장 짬밥까지 올라오면서 헌터들의 숱한 전투를 봐 온 사람이었다.

한국 HMCS에 속한 헌터들의 전투 장면은 전부 봐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래서 알 수 있었다, 지금 이 헌터가 예사 인물이 아니란 걸.

"막내야, 라이브 돌려라."

"예··· 예?? 라이브 꺼라가 아니고요?"

막내는 당황했다.

현재 한국지부의 라이브는 무기한 중단 상황.

영상마다 달린 욕을 지우다 지우다 못해 댓글 중지까지 시켜 놨는데.

아직 다 꺼지지도 않은 불씨에 기름을 끼얹겠다는 건가.

"야. 총대는 내가 멘다. 넌 그냥 내가 시켰다고만 해."

이용구는 잘 익은 과일을 보는 표정으로 모니터 너머의 인물을 바라봤다.

물론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바디캠은 몸체에 달려 상대만 찍는 캠이었으니까.

막내는 우물쭈물 망설이면서도 이용구의 말을 따랐다.

<HMCS 강북지부〉 - No.noname (LIVE ON)< p>

라이브에 초록색 불빛이 들어온다.

괴물의 눈초리처럼 무섭게 쏘아지는 기분이다.

"이제 켭니다··· 정말."

막내는 이용구의 눈치를 잠시 보더니 곧이어 헌터 튜브와 동기화를 시켰다.

달칵.

라이브 영상이 헌터 튜브에 올라가는 순간이다.

***

"라이브 조회 수 175명, 편집 후 올린 영상 조회 수 3만 2천이라. 좋아요는 900, 싫어요는 55."

HMCS의 한국지부 지부장인 백건호는 인터넷 기사를 보며 헌터 튜브의 영상을 확인했다.

조회수 3만 2천.

다른 사람이 볼 때는 굉장히 미비한 숫자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백건호 지부장의 눈에는 절대 아니었다.

가능성.

그가 숫자에서 읽은 건 '라이브의 가능성'이었다.

먼젓번 처참했던 조회 수와 댓글에 비교하자면 이번 시도는 굉장히 고무적인 사건.

처음엔 조회 수가 몇백에 불과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HMCS의 채널을 구독하는 숫자도 적었고, 무엇보다 사람들의 인지도와 관심이 부족했다.

아니, 관심조차 없었다.

- 하꼬헌터 : 야 이번에 거트가 우리나라 들어온거 앎? 내 동생이 헌협 다니는데 거트가 자기 가족 죽인 어떤 헌터 조지려고 한국 왔다더라

- 대마도사 : 그새끼 A급 헌터 아님?? 대체 어떤 병신이 A 헌터 가족을 건드리냐

- ㅇㅁㄹㄴ : 헐 이번에 hmcs에 라이브 영상 을라왔는데 누가 캡처 떴거든 근데 거기 나온 헌터가 거트랑 똑같이 생겼다 하드라?

- SSSSS급 : 나도 그 영상 봤는데 개쩔더라.. ㅁㅊ 암살자들 떡바르더니 나중에 나타난 거트도 순살시켜버림

- 탑랭커 : 내 생각엔 hmcs에서 인지도 올릴라고 헌터 하나 용병으로 데려와서 거트 묻은 것 같음 ㄹㅇ 그동안 봐왔던 hmcs 실력이 아녔음

하지만 라이브를 본 소수의 사람들 덕분에 소문은 급물살을 타게 되고.

A급 헌터와 한국 HMCS의 전투라는 추측성 기사마저 올라오자 하루 만에 조회 수가 폭주한 것이다.

"3만 2천이라, 3만 2천. 거트라는 놈이 대단한가?"

백건호는 옆에 긴장한 채 서 있는 이용구 과장을 향해 물었다. 이용구는 영상을 올린 주범(?)으로서 해명을 위해 백건호가 직접 부른 것이었다.

"예? 아, 예, 그렇습니다! A급 헌터인데 홍콩의 3대 길드인 [적광길드]에서 1조 단장을 역임할 만큼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 헌터입니다! 얼마 전 포츈지에서 선정한 헌터 유망주 100위 안에도 들었었고요."

"호ㅡ 그래? 생각보다 꽤 거물이구먼. 그런데 그런 잘나가는 헌터가 우리 HMCS 헌터 한 명에게, 그것도 암살자들까지 동원해서도 졌다 이거지?"

"예, 그렇습니다!!"

백건호는 그 사실이 기분 좋았는지 입꼬리로 짙은 호선을 그렸다.

"이 과장, 앞으로 이 친구 전담 마크해서 영상 올려보도록 해. 마케팅부랑 상의해서 HMCS 채널 리뉴얼도 좀 하고."

"버, 벌써 말입니까?"

이용구는 자신의 예상대로 들어맞았다는 짜릿함 반, 혹시나 망했을 때 자신이 뒤집어쓰진 않을까 하는 걱정 반으로 물었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지. 지금 사람들 반응 나쁘지 않잖아?"

"알겠습니다··· 우선 조만간 미팅 한번 해 보고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용구는 큰 반박 없이 백건호의 말에 수긍했다.

사실 HMCS 한국지부를 키우고 싶은 건 그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라이브가 별로라고 해서 소속되어 있는 헌터들을 탓할 수는 없는 노릇.

능력 있으면 길드를 가지, 누가 이런 곳에 들어올까. 돈도 명예도 별로인데.

이용구는 이것이 HMCS 한국지부의 마지막 홍보 기회라 생각하고 반드시 끌어 올리리라 스스로 다짐했다.

"아, 거트랑 싸워서 이긴 친구가 누구라고?"

백건호는 얼굴도 이름도 실려 있지 않은 기사를 보며 물었다.

"저도 아직 이름은 못 들었습니다. 아침에 황정구 팀장이랑 통화하려고 했는데 거기도 정신없는지 통화가 안 되네요."

"그래, 알았네. 비서 통해서 직접 듣도록 하지. 나가서 일 보게."

이용구가 밖으로 나가자 백건호는 의자에 몸을 깊숙이 묻으며 영상을 다시 재생시켰다.

다대일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암살자들을 격파한 뒤 마지막 상대마저도 무리 없이 저지시키는 공격력.

"물건이군, 물건이야."

백건호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

"네, HMCS 강북지부입니다!"

"그건 지부 방침이라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아니요. 저희도 따로 들은 바가 없어서요."

"네, 여보세요!"

받아도 받아도 다시 울려 버리는 전화에 HMCS 강북지부 팀원들은 기가 질려 버렸다.

마음 같아선 전화선을 다 뽑아버리고 싶지만, 어디서 오는 전화인지 알 길이 없으니 차마 그러지도 못했다.

"네, HMCS 강북지부 팀장 황정구입니다. 네, 네. 안녕하십니까! 네, 맞습니다! 네, 저희 팀원이십··· 팀원입니다!"

시우는 커피를 마시면서 느긋하게 그 모습을 감상했다.

후르릅.

"오늘따라 커피가 쓰네."

"······."

"······."

그 작태를 보고 쌍욕을 하고 싶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겠지만, 아무도 그럴 수 없었다.

HMCS 강북지부 팀원들은 모두 그 영상을 확인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황정구가 고분고분한 데는 다 이유가 있다는 걸.

마력이면 마력, 스킬이면 스킬, 육탄전이면 육탄전.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는 일류 전투 헌터 그 자체였다.

심지어 아직 결과를 들은 건 아니라지만 그 A급 헌터 거트를 이겼다고 하지 않는가.

당사자한테 직접 물어볼 수도 없어서 눈치만 보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ㅡ알겠습니다. 네, 들어가십쇼! 후우."

전화를 끊은 황정구는 눈앞에서 한가하게 커피나 마시는 시우를 보며 할 말을 잃었다.

분노조차도 일지 않는다.

"그··· 민시우님??"

"왜?"

시우의 뻔뻔한 표정.

얼굴에 철판이 아니라 비브라늄을 깔아도 저거보다는 얇을 거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설명을 좀···."

황정구는 새벽부터 걸려온 전화 줄다리기를 오후까지 하는 중이었다.

대부분의 통화 용건은 단순했다.

시우에 관한 질문.

어떤 헌터냐, 능력이 뭐냐, 몇 급이냐, 언제 각성했냐, 이런 헌터가 왜 지금에서야 알려지게 됐냐, 정말 강북지부에 속한 헌터가 맞냐, 같은.

"전화? 나야 무슨 일인지 모르지."

"아니 그게 아니라, 헌터 튜브에 올라온 영상 말입니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황정구의 질문에 시우는 대충 기억나는 것들을 말했다.

물론 정민준의 연구소에 간 과정이나, 가서 뭘 했는지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다.

대충 제자의 연구소니 한번 들러봤고, 느닷없이 들이닥친 암살자들을 상대로 전투를 벌였는데 거트가 난입.

따라서 무력으로 제압하려 했고, 증거를 남기란 조언이 떠올라 버튼을 눌렀다는 것.

"아무래도 위쪽에서 민시우 헌터님을 마음에 들어 한 것 같습니다. 대대적으로 홍보해서 키워 보려는 것 같더라고요."

황정구는 시우의 이야기를 듣더니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현재 HMCS 내에 흐르는 분위기와 자신에게 걸려온 전화를 토대로 유추한 것들을 하나하나 설명해 나갔다.

시우는 덤덤히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괜찮으신 겁니까?"

"뭐 어때."

시우는 커피잔을 내려놨다. 그는 황정구를 보더니 피식 웃었다.

"정구야, 파도는 피하는 게 아니라 타는 거야."

***

정갈하고 깔끔하게 꾸며진 커다란 방.

값을 매기기에도 어려워 보이는 고려청자, 수묵화, 찻잔 따위가 군데군데 자리했고, 대리석 바닥과 한옥으로 꾸며진 천장이 고즈넉한 분위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고급스러운 원목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은 세 명의 남자들.

달콤한 전자담배 향이 은은하게 피었다가 사라진다.

"이번에 멕시코 쪽이랑 협상하는 건은 잘 되고 있습니까?"

"예, 중간에 난항에 부딪히긴 했는데 북미 로비스트 Dr. 윤이 연결해 준 덕분에 중재가 잘 됐습니다."

"그렇군요. 혹시나 하는 말이지만 계획에 차질 없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홍콩의 거트 헌터 건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지···."

"그게 뭡니까?"

처음 들었다는 상대방의 태도에 말을 꺼낸 남자의 안색이 조금 어두워진다.

"우리나라에 입국한 홍콩 헌터 하나가 HMCS에게 피살됐습니다."

"우리 쪽 잘못입니까?"

"아닙니다."

"그럼 외교부 라인 통해서 처리하세요. '그분'이 이런 문제까지 다루시기엔 바쁘니까요."

말을 마치는 순간, 방문이 열리며 누군가 황급히 들어온다.

"VIP께서 들어오십니다."

그 한마디 말에 세 사람이 동시에 몸을 일으켰다.

저 멀리서부터 느껴지는 거대한 기운에 몸이 뻣뻣하게 굳는다.

뚜벅. 뚜벅. 뚜벅.

190이 넘는 거대한 덩치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차분한 걸음걸이에도 주변의 공기가 바짝 팽창하는 기분이다.

"기다리게 했군."

투박하지만 무겁고 낮은 목소리.

현 대통령인 투신 최대수는 측근들을 바라보며 안광을 빛냈다.

〈17화〉

일일 강사

시우는 대놓고 귀찮은 표정을 지었다.

아래로 비틀린 입매, 살짝 찌푸린 미간, 대놓고 낀 팔짱까지.

그 노골적인 태도에 불편함을 느낀 건 오히려 앞에 선 수많은 사람이었다.

얼마의 침묵이 흘렀을까.

"저기요··· 수업은 언제 시작하나요?"

누군가 손을 들고 쭈뼛쭈뼛 질문을 던졌다.

시우의 차가운 눈매가 소리의 근원지로 향한다.

'누가 기침 소리를 내었는가?'를 연상케 하는 서슬 퍼런 안광.

질문했던 사람은 그 매서운 눈초리에 슬그머니 손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하아ㅡ."

절로 비집고 나오는 한숨.

그 소리에 손을 들었던 남자가 움찔했다.

시우는 자신의 눈앞에 선 수십여 명의 사람들을 둘러봤다.

신입 헌터들.

각자 이마에 '햇병아리'라는 글씨가 쓰여 있기라도 한 것처럼 어딘가 어벙해 보인다.

"수업이라···."

누군가를 가르치는 게 대체 얼마만 인지.

[수업이 뭐냐? 맛있냐? 나도 먹어도 되냐?]

지구의 시간으로 따지면 십 년만이겠지만, 그의 시간으로 따지면 자그마치 백 년.

시우는 저 구석에 밀어두었던 옛 기억의 조각을 찾아 하나씩 끄집어 올렸다.

처음 동생을 가르쳤던 순간부터 함께 마왕을 토벌하러 다녔던 마지막 기억까지.

민시준, 샤오롱, 강여화 그리고 정민준.

누군가를 가르치면서 느꼈던 행복과 뿌듯함.

제자들의 성장이 가져다주는 잔잔한 감동.

마치 오랫동안 들어가지 않은 다락방에서 먼지 쌓인 앨범을 펼쳐 본 것 같은 감정이 풀풀 피어올랐다.

"···뭐, 귀찮지만 어쩔 수 없지."

정구 놈 마빡 때린 것도 있으니 해 줄까.

시우는 기분 좋게 체념하며 아침에 나눴던 대화를 다시 떠올렸다.

***

출근하자마자 찾아온 황정구.

그는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한참을 머뭇거리며 시우의 눈치를 살폈다.

입을 버끔거리다가 도로 다물고 머리를 긁적이기를 반복.

"아이 씨ㅡ 뭐야?"

급기야 거슬린 시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렇게라도 말을 걸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눈치만 보다가 생을 마감할 놈이다.

뭐 얼마나 곤란한 일이길래 이렇게 미적거려.

황정구는 짐짓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쪼르르 달려왔다.

"저······ 미, 민시우 헌터님."

"왜? 뭐?"

"혹시 오늘 바쁘신 일이 있으신지··· 물론 언제나 공사다망하시고 범죄자 소탕에 있어 늘 모든 이들보다 최전선에서 활약하시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 외에 혹시 또 급한 일정이 있으시다면···."

"야. 한대 처맞고 말할래?"

시우는 신경질적으로 혀를 쯧 하고 찼다.

만약 분노 게이지가 눈에 보였다면 시우의 머리 위로 빨간색 막대가 점차 올라가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아닙니다, 그럼 말씀드리겠습니다."

"뭔데."

"오늘 교육을 좀 해 주셔야겠습니다."

"···교육이라니?*

그에게 있어 교육이란, 누구를 반으로 죽이거나 다시는 개기지 못하게 사지를 잘근잘근 분질러 놓는 것을 의미했다.

"어떻게 조패면 되는데? 목이라도 따오면 되나?"

[오랜만에 싸우는 것이다!]

"예··· 예? 아,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그 교육이 아닙니다!!"

황정구는 화들짝 놀라 허겁지겁 손사래를 쳤다.

자신이 생각한 교육이 아니자 시우는 김빠진 내색을 하며 의자 깊숙이 몸을 묻었다.

"그럼 뭔 교육?"

"신입 헌터들에게 전투 교육을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뭐ㅡ?"

[전투다! 나 싸운다!]

그는 황정구의 말에 인상을 팍 찡그렸다.

그 얼굴에 나타나는 뜻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

내가 왜?!

"미, 민시우 헌터님? 우선 노여움을 좀 푸시고··· 저, 꽉 쥔 주먹도 같이 푸시면 감사하겠습니다만···."

황정구는 침을 꿀꺽 삼키곤 양 손바닥을 들어 무저항의 제스처를 취했다.

시우의 살벌한 눈빛에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그야말로 과도한 스트레스로 위산이 콸콸 쏟아지는 기분.

'이 씨발! 내가 팀장이지만 팀장이 아니라고!'

어지간하면 황정구 차원에서 거절했을 내용이다.

천하의 민시우에게 귀찮은 업무를 시켜라?

턱도 없는 이야기다.

차라리 오크 워리어에게 뜨개질을 시키거나 트롤에게 독서 토론을 요구하는 편이 게 더 쉬울 것이다.

그런데 거절할 수 없는 위치에서의 명령이라면?

한 성깔 하는 황정구조차 고분고분 들을 수밖에 없는 '그분'의 연락.

- 이봐, 황 팀장. 그 새로운 신입 친구 덕에 요즘 분위기가 아주 좋아.

- 가, 감사합니다.

- 그래서 말인데. 물 들어올 때 노 한번 저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말이야.

-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 HMCS의 위신도 보여 줄 겸, 다른 헌터들 상대로 일일 교육 한번 진행해 보는 게 어떻겠나? 이벤트성으로 말이지.

- 교육을 말입니까? 하지만 누가 들을지···.

- 그건 내가 길드장들한테 부탁해 볼 테니, 자네는 신입 친구한테 말 좀 해 주게.

- 제, 제가 말입니까? 지부장님이 직접 말씀하시는 게ㅡ 여보세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야!!

황정구는 자기 할 말만 하고 끊어 버린 상대를 향해 절규를 내질렀다.

이번 민시우의 신입 헌터 교육은 간부급 정도가 아닌 HMCS 한국지부의 지부장인 백건호의 직접적인 지시.

다시 말해 한국 HMCS의 우두머리가 내린 명령이었으니.

황정구로서도 어쩔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미, 민시우 헌터님··· 제가 승낙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결코 아닙니다! 앞으로 사건 맡으시면 서류 정리 제가 전부 다 하겠습니다! 제발 그 주먹은 내리시고··· 끄아아악!!"

그렇게 시우는 딱밤 한대로 황정구를 용서했다.

[저놈 입에 거품 물었다. 생긴 거랑 다르게 약골이다.]

물론 기절하긴 했으나, 튼튼한 놈이니 괜찮을 거다.

시우는 나가떨어진 황정구의 얼굴을 떠올리고는 피식 웃음 지었다.

"잠시만 지나가겠습니다."

순간 인파의 뒤쪽이 소란스러워졌다.

무리를 헤치고 저 뒤편에서부터 몇 명의 사람들이 시우가 있는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마력 흐름이 신입은 아니네.'

그들의 정체까지는 바로 알 수 없었으나, 마력 운용이 안정되고 몸의 빈틈이 보이지 않았다.

제법 전투 경험이 많아 보이는 자들.

'저번에 그 거트인가 하는 놈과 엇비슷하거나 조금 더 높은 경지군.'

시우는 짧은 찰나의 순간 그들은 관찰하며 얻은 정보를 취합했다.

그때 가장 앞섰던 자가 시우를 보며 빙긋 웃었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덩치가 제법 있는 남자였다.

"교육 담당하시는 HMCS의 민시우 헌터님 맞으십니까?"

"그런데···?"

"반갑습니다. [제국 길드] 소속 헌터인 석태지라고 합니다. 오늘 수업 듣는 헌터들의 보호자인 셈이죠. 민시준 길드장님께 말씀 들었습니다."

석태지가 환하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가식이거나 구김이 있는 미소가 아니었다.

시우도 그의 손을 맞잡으며 호의의 미소를 지었다.

시준이네 헌터라는데 까칠하게 굴 필욘 없지.

"다른 두 분도 [제국 길드] 소속인가요?"

"아닙니다. 각각 다른 길드에서 왔습니다."

석태지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다른 두 명을 힐끗 쳐다봤다.

인사할 타이밍을 만들어 준 것이다.

"저는 [서리혼 길드]의 야마토입니다."

"[백사자 길드] 추하민이다."

그들은 시우를 향해 대강 고개만 까딱였다.

명백히 호의가 없는 눈빛.

특히 추하민의 표정은 노골적이다 못해 도발에 가까웠다.

공적인 자리가 아니라면 욕이라도 내뱉을 듯한 분위기였다.

[저놈 눈빛 마음에 안 든다. 왜 우리 식량 째려보냐? 물론 식량이 좁밥 같이 생기긴 했지만, 저놈보다는 강하다.]

"흠···."

잠시 정적이 흐르며 묘한 기류가 세 남자 사이에서 일었다.

긴장감이 날카로운 시선을 타고 흐른다.

시우는 먼저 시비를 걸진 않지만, 그렇다고 걸어오는 도발을 친절하게 넘겨줄 정도로 자상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분위기가 급속도로 냉랭해질 무렵,

"자, 인사는 이 정도로 마무리하시고."

석태지가 끼어들었다. 서글서글한 얼굴만큼이나 눈치도 괜찮은 편으로 보였다.

"아시다시피 오늘 교육 듣는 분들은 각 길드에 새로 들어온 신입 헌터들입니다. 아직 게이트 몬스터와의 전투는 물론이고, 대인전의 경험도 없습니다."

어차피 신입 헌터들은 게이트를 돌며 '알아서' 능숙해져야 한다.

물론 길드별로 몬스터에 대한 자료도 제공해 주고, 트레이닝도 나름 시켜 주지만 전투 감각과 경험은 순수 본인의 몫.

특히 헌터와 헌터가 싸우는 대인전은 쉽게 쌓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자, 민시우 헌터님. 이제부터 저희는 빠져 있을 테니 편하게 교육 부탁드립니다."

석태지는 야마토와 추하민에게 눈짓하며 뒤로 빠지자는 제스처를 했다.

야마토는 무표정으로 물러났고, 추하민은 시우를 길게 노려보며 천천히 단상에서 내려왔다.

시우는 나지막이 한숨을 쉬었다.

'황정구 이 새키, 돌아가면 마빡 한 대 더 맞아라.'

귀찮은 짓을 시킨 벌이다.

"간단한 전투 수업을 시작하겠다. 다들 기본적으로 마력은 다룰 수 있지?"

"저··· 마력을 다룬다는 기준이 뭔가요?"

시우는 질문을 던진 남자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잠시 고민에 빠졌다.

자기 기준에서 다루는 마력과 이제 막 각성한 햇병아리들의 기준의 마력은 다를 터.

"우선 마나는 일종의 기름 같은 에너지다. 그리고 단전이라는 엔진을 거치고 나면 마력이라는 힘으로 변환되지. 이건 알지?"

"예···."

"그렇다면 질문. 너 마력 사용해서 총알 막을 수 있어?"

"······예?"

그 남자는 생전 처음 들어 보는 질문인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시우는 머리를 긁적였다.

아직 총알은 조금 어려운가.

총구 방향을 관찰해서 날아올 각도를 예상하고 마력장을 펼치면 되는데.

"그럼 칼은 막을 수 있지?"

"······예??"

"그 정도도 못 막아? 쉽잖아."

시우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팔짱을 꼈다.

애초에 칼 정도도 막지 못하면 몬스터와는 어떻게 싸운다는 거지.

괴물 새끼들 공격이 어지간한 총칼보다 훨씬 강할 텐데.

"그럼 마력 활용해서 총알이나 칼을 막아 낼 수 있는 사람은 왼쪽, 그러지 못하는 사람은 오른쪽으로 서 보자."

나름 간단하고 쉬운 기준을 제시했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초보라지만 대부분은 마력 운용에 대한 기초는 터득했을 것이고, 신체 강화는 어느 정도 할 줄 알리라고 말이다.

'하··· 이건 좀 심한데.'

그러나 결과는 지나치리만큼 예상 밖.

5명을 제외한 모든 인원이 못하는 쪽에 선 것이다.

이 정도쯤 되면 오히려 마력을 다룰 줄 아는 5명이 더 이상해 보일 지경이었다.

안 되겠다.

가벼운 전투를 통해 실전 경험을 키워 주려 했건만, 이런 상태로 싸웠다간 그냥 뒈지겠는데.

"그럼 마력을 다루는 것부터 시작해 볼까?"

***

교육생들은 격자 형태로 떨어져 각자 편한 자세를 취했다.

누구는 앉고, 누구는 서고, 누구는 특정 포즈를 취하는 형식으로 말이다.

시우는 그 사이사이를 천천히 거닐며 수업을 진행했다.

"···단전을 조금씩 열어. 한 번에 열면 마나맥에 마력이 솟구치게 돼서 마력 낭비도 심하고, 재수 없으면 역류해서 주화입마 같은 상태에 빠질 수도 있어."

그는 교육생들을 지나면서 한명 한명 유심히 관찰했다.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마나 운용을 살피며 말이다.

"야. 단전 너무 열었다."

"거기 파랑 머리 신입, 먼저 단전에 기운을 모아야지."

"검은 로브, 마력이 일정하게 나오질 않고 들쑥날쑥하잖아."

이렇게 시우가 한 사람씩 코칭하며 몇 번 지나자, 개판 5분 전이었던 상태가 조금씩 나아졌다.

무턱대고 마나를 뿜어 대기만 하거나 스킬만 본능적으로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 대다수였던 것이다.

[너 오늘 되게 친절하다. 보기 역겹다. 뭐 잘못 처먹었냐.]

'아가리 좀 다물어.'

해당 교육은 모두 라이브로 방송 중이며 기자들도 몇 명 불러 놓았기 때문에 대대적인 홍보 기사도 날 예정이었다.

따라서 좋은 이미지를 보여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

물론 시우가 자신의 이미지를 생각해 그런 것은 전혀 아니었다.

단지 그간 황정구를 보며 느낀 측은함 때문에 내린 결정이었던 것.

'씨발, 다음에 다시 이 짓거리 하나 봐라.'

그러던 시우의 눈에 낯익은 얼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음··· 누구였지?

[저 암컷 또 만났다! 좁밥이 처음 본 암컷이다!]

아, 맞다.

"넌 여기 왜 있냐."

"어? 헤헤헤. 일부러 모른 척하고 있었는데. 기억하고 있었네요?"

"그래 계속 모른 척해라."

"아, 쫌! 농담도 못 해요!"

신지수.

지구로 다시 돌아왔을 때 처음 마주쳤던 바로 그 여자.

"그래서 너 왜 여기 있냐고."

"그게ㅡ."

"야, 마나 흐트러진다. 단전 똑바로 열면서 대답해."

시우의 지적에 신지수는 뾰로통한 표정을 지으며 마력을 운용한 뒤 대답했다.

"저 [제국 길드] 들어갔어요!"

"···시준이 길드?"

" 네!!"

"너 같은 찌끄레기도 받아 줘?"

"찌, 찌끄레기라쇼!! 이래 봬도 A급 스킬 각성자인데!"

[이 암컷한테서 맛있는 냄새 난다! 식량아, 먹자!]

"A급이라···."

[가라| 몸통 박치기!]

좀 닥쳐.

〈18화〉

아수라

교육이 시작되기 하루 전.

"돌격조장님, 길드장님이 사무실로 올라오시라는데요."

"씨발, 귀찮게··· 곧 간다 그래.'

추하민은 땀을 뚝뚝 흘리며 하던 푸시업을 마저 했다.

단단한 근육들이 꿈틀거린다.

그와 동시에 등에 새긴 삼면육비의 아수라 문신이 살아 숨 쉴 듯 움직인다.

'백사자의 아수라'

그를 가리키는 세간의 헌터 이명이었다.

싸우는 모습이 마치 신화에 나오는 아수라를 닮았다 하며 붙여진 이름.

흉터 가득한 근육이 터질 듯 부풀며 핏줄이 불거진다.

열기로 붉어진 피부 탓에 아수라의 색이 더 진해진 착각마저 든다.

옆에 대기하고 있던 부하 직원들은 그 모습에 침을 꿀꺽 삼켰다.

그의 평소 성격을 생각하면 저 문신은 잘 어울리다 못해 추하민을 가장 잘 표현한 캐릭터라 해도 무방했다.

"세트 끝났다. 가자."

"예!"

추하민은 자신에게 뭍은 '아수라'란 특징을 좋아했다.

헌터의 이명은 본인이 짓는 것도 아니고, 언론 플레이를 한다고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헌터의 활약을 본 시민들이 자연스레 붙여 주는 것.

따라서 그는 자신의 이름과 문신, 그리고 자신이 속한 길드를 자랑으로 여겼다.

[백사자 길드]

대한민국 랭킹 8위 헌터인 최성일이 세운 길드이자 국내 최고의 일곱 길드 중 하나.

추하민은 그런 길드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강자였다.

돌격조장이란 것도 그의 저돌성과 강한 능력을 본 간부들이 추천해서 이루어진 것.

그는 타이가 없는 검은 수트 차림으로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최성일이 있는 곳은 이 대형 빌딩의 가장 꼭대기 층.

길드장실에 들어가니 서울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통유리와 함께 고급스러운 사무실 정경이 눈에 들어왔다.

"거, 뭡니까."

추하민은 털레털레 들어가 소파에 털썩 앉았다.

보통 다른 길드원 같으면 일어날 수 없는 엄청난 결례였지만, 최성일은 그에게 아무런 불쾌함도 표시하지 않았다.

"좀 늦었군."

"사우나에서 땀 좀 빼느라."

추하민은 테이블 위에 발까지 올리며 거드름을 피웠다.

"편하게 앉으라 하고 싶은데 이미 앉았으니···."

"······."

최성일의 핀잔 아닌 핀잔에 추하민은 새끼손가락으로 귀까지 후볐다.

노골적으로 듣기 싫다는 제스처.

그러나 최성일은 부하의 무례함에도 빙긋 웃기만 했다.

"뭐, 다른 게 아니라 내일 외근 하나 해 줘야겠는데."

"외근? 어디서 게이트라도 열린답니까?"

"아니. HMCS에서 공문이 와서. 특강 연다고 협조를 요청했거든. 신입 헌터들 보호자로 좀 다녀와 줘야겠어."

"에이 씨발! 그걸 왜 내가 해! 인사팀이나 관리팀 애들 시키쇼!"

진심으로 짜증이 솟구쳤는지 추하민은 핏대까지 세워가며 욕설을 내뱉었다.

사실 이건 선을 넘는 행위였지만, 그의 성격이 워낙 더럽기도 하거니와 최성일이 대인배라 넘어가는 것이기도 했다.

"너 [적광]의 거트는 어떻게 생각해?"

"···갑자기 그 씹새끼 이름은 왜 꺼냅니까."

추하민은 난데없는 거트의 들먹임에 이를 드러냈다.

둘은 예전부터 견원지간이었고 언론에선 그런 관계를 이용해 교묘한 라이벌 구도를 구축했었다.

[적광]의 거트냐, [백사자]의 추하민이냐.

하지만 그런 구도도 추하민이 A+급으로 오르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깨지게 됐다.

이제는 비교한다는 것조차 그에게 스트레스가 되는 상황.

"그게 몇 년 전인 줄 알고 그러쇼? 싸우면 상대도 안 되게 좆 바를 수 있습니다. 뭣하면 씨발 오늘이라도 뜨자고 하든가."

"워ㅡ 진정하지. 그냥 거트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을 뿐이야."

"어떻게 생각하긴 썅, 존나 무식하고 힘만 센 새끼라고 생각하지."

"그래서 거트는 강한 헌터인가?"

추하민은 날카로운 눈을 빛내더니 잠시 입을 다물었다.

손가락으로 소파 손잡이를 툭툭 때리던 그는 조금 전보단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강합니다. S급을 제외한 전투 계열 헌터 중에서 무시할 놈은 없을 정도로."

감정을 배제한 냉정한 그의 판단에 최성일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추하민은 감정적이긴 하나 필요한 상황에선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냉철함이 있었다.

그를 돌격조장으로 임명한 것은 이러한 조화 덕분.

"그럼 얼마 전 HMCS 헌터가 거트를 잡는 영상도 봤겠군."

"그거 아직 확실하지 않은 거 아닙니까? 홍콩에 있는 다른 헌터한테 물어봐도 [적광]에서 별다른 공지가 없다던데."

"확실하다. HMCS 한국 지부장이 인정했어."

"······그래서 내일 외근이랑 지금 얘기한 거랑 뭔 상관이요?"

최성일은 HMCS에서 온 공문을 그에게 건네며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덩치가 제법 있는 추하민이었건만, 길드장 앞에선 조금 왜소해 보일 정도로 최성일의 몸체는 컸다.

"내일 그쪽에 있는 헌터 한 명이 길드 신입들 데리고 교육을 하려 하더군. 아마 약소해진 HMCS의 위상을 조금은 높일 기회라 생각하는 모양이야."

"······."

"그 교육 담당하는 자가 거트를 이긴 헌터다."

"······."

"그냥 보고 와. 어떤 헌터인지 나도 궁금하니까."

최성일은 소파 등받이에 몸을 깊숙이 묻었다.

만약 괜찮은 인재라면 수십억을 줘서라도 데려와야 한다.

아니지, 거트를 이길 정도의 강한 헌터가 아닌가.

'백억도 아깝지 않지.'

하지만 진짜일까? 그만한 헌터가 왜 HMCS에 몸담고 있는 것인지 쉬이 납득되질 않는다.

어느 길드건 그만한 실력자라면 못해도 수십억은 지불하려 할 텐데.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라 했지.'

작은 불씨라도 의구심은 떨쳐 버려야 하는 법.

가능성은 낮지만 HMCS에서 다른 헌터를 기용한 뒤 조작을 했을 수도 있다.

현재 대한민국 HMCS는 그만큼 세력이 줄어든 상태였으니,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닌 곳에서 무슨 짓인들 못 할까.

"어쨌든 신입들 잘 챙기고, 교육 어떤 식으로 하는지도 좀 보고. 특히 그 헌터 역량 좀 관찰하고 와."

"그럼 내 맘대로 관찰합니다?"

추하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털레털레 다시 밖으로 나갔다.

사무실에 들어왔을 때와 똑같은 그의 모습.

그러나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부하 직원들은 추하민이 문밖으로 나오는 순간 얼음처럼 굳어 버릴 수밖에 없었다.

먹잇감을 발견한 짐승처럼 날카롭게 벼려진 그의 눈빛 때문이었다.

추하민은 받아 온 공문 자료를 사정없이 구겼다.

'거트를 이겼다···?'

모처럼 가라앉아 있던 투쟁심에 기름이 끼얹어진 순간이었다.

***

개판이군.

개판이야.

연습용 던전으로 신입 헌터들을 데리고 온 시우는 자신의 표정이 점점 썩는 것을 느꼈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 한숨밖에 안 나왔다.

마력의 기초적인 운용을 가르친 뒤 원래 예정했었던 모의 전투를 하러 던전에 들어왔다.

그리고 각자 조를 짜서 눈앞의 몬스터를 처치하라 지시했다.

단, 조건이 하나 있다면 스킬 사용은 불가였다.

순전히 마력과 신체적인 능력만을 통해 없애라고 한 터.

그러나 무기 사용법이 글러 먹었다.

마치 침팬지에게 첼로를 주고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연주해 보라고 한 기분이다.

"시우 쌤! 저 잘하고 있죠?! 꺄악!!"

여성은 스켈레톤의 공격에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뛰었다.

두 개를 가르쳐 주면 하나를 까먹는 여자,

신지수.

오늘 교육생 중에 그녀가 있을 줄은 시우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동생의 길드인 [제국 길드]에 들어갔다고 한다.

"야, 나 부를 시간에 몬스터나 쳐다봐."

시우는 바위에 걸터앉은 채 주위를 둘러봤다.

사방에서 곡소리처럼 신입 헌터들의 앓는 소리가 들려온다.

"으아아! 서, 선생님!!"

"꺄악! 이거 어떻게 죽여요?!"

"포, 포션! 포션 하나만 주세요!"

"이 씨발놈들! 팔에서 피나잖아!"

각기 다른 몬스터들과 대치 중인 헌터들은 '신입'이라는 이름조차 아까울 정도로 엉망이었다.

적어도 시우의 눈에는 그랬다.

대체 길드란 곳에선 뭘 가르치는 거야.

각성 헌터란 이미 일반인에 비해 신체 능력이 월등하단 것을 뜻한다.

거기다 마력까지 활용할 줄 알면 저런 하급 몬스터 따위는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없앨 수 있다.

그런 게 헌터인데···.

눈앞에 있는 놈들은 우왕좌왕하며 공격을 피하기에만 바빴다.

무기든 마력이든 활용도가 10%도 채 되지 않아 보이는 모습.

대체 이것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나 고민하는 찰나, 근처에서 잡음 하나가 들려온다.

"에이 씨발, 이래 가지고 오늘 안에 토끼 하나 잡겠어? HMCS에서 언제부터 남 가르쳤다고."

"어허이~ 진정해. 다들 오늘 처음 배우는 거잖아."

"배우긴 뭘 배워, 개좆같이 배웠겠다. 아까부터 보니까 애새끼들한테 쓸데없는 것만 가르치잖아."

"아, 이 친구 오늘따라 왜 이래. 다 들리겠어."

"듣든지 말든지 씨발! [백사자]가 언제부터 HMCS 따위 눈치 봤다고."

시우는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대놓고 자신에게 쿠사리를 먹이는 추하민과 옆에서 만류하는 석태지의 모습.

야마토란 자는 팔짱을 낀 채 멀거니 쳐다만 보고 있다.

"보니까 지도 튜토리얼 탑에서 얼마 전에 나왔더구만 누가 누굴 가르쳐. 아직 랭킹 측정도 안 해서 등급도 없는 새끼인데!"

"이 친구 오늘따라 왜··· 하하하, 민시우 헌터님, 아무것도 아닙니다! 저희끼리 농담한 거예요!"

시우의 시선을 느낀 석태지가 중간에서 겸연쩍은 웃음을 내보인다.

시우는 옆에 있던 추하민에게 눈을 돌렸다.

그러나 추하민은 그 시선을 피하지 않고 되레 시우에게 입을 뻥긋거렸다.

'새. 꺄. 좆. 까. 라.'

입 모양을 보아하니 대충 저리 지껄였는데.

[저놈이 뭐라는 거냐? 치킨을 시켜라?]

"···옐로카드 두 장."

시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자리에서 이동했다.

한번 부딪칠까 했는데 프레의 말에 힘이 빠져 버렸다.

옐로카드 한 장만 더 쌓여 봐라.

그는 가장 엉망인 신입 쪽으로 향했다.

"야."

"으갸아악! 이 괴물 새끼들!!"

캉! 캉!

그 신입 헌터는 엉성한 검술로 해머를 든 스켈레톤과 대치 중이었다.

말이 좋아 대치지, 파리를 쫓듯이 검을 막무가내로 휘두르는 모양새에 지나지 않았다.

"으익!! 죽어! 죽으라고!"

"어휴."

시우는 그자의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때렸다.

딱, 소리와 함께 고개가 앞으로 꺾인다.

"에???"

"무슨 오케스트라 지휘하냐? 검 이리 내."

"어? 어? 예··· 예."

"너 이름 뭐야?"

"오, 오강오입니다."

시우는 오강오에게 받아 든 검을 들고 스켈레톤 앞에 섰다.

백골의 괴물은 악만 남았는지 뼈를 삐걱거리며 텅 빈 눈으로 시우를 노려봤다.

"내가 검쓰는 거 봐."

- 크어어억

해머가 수직으로 떨어져 내린다.

시우는 날을 비틀어 검신으로 공격을 받아 냈다.

캉!

불똥이 튀긴다.

검을 사선으로 튼다.

해머가 날을 타고 주르륵 미끄러져 내린다.

시우는 약간의 반동으로 해머를 밀쳐낸 뒤 스켈레톤의 몸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순식간이다.

검을 아래에서 사선으로 그어 을린다.

빛의 궤적이 그려지며 긴 선이 잔상으로 남는다.

빠가가캉!

갈빗대가 연속으로 부러져 나간다.

스켈레톤은 뒤늦게 바닥에 꽂힌 해머를 들어 올렸다.

그러나 늦었다.

빠각!

스켈레톤의 골통이 반으로 쪼개지며 몸이 후드득 무너져 내린다.

공방이라고 할 것도 없는 일방적인 처치.

"봤어? 검을 휘두를 때 시선이 목표를 향해 있어야 할 거 아냐. 넌 눈이 계속 왔다 갔다 흔들리잖아."

시우는 스켈레톤 머리에 박힌 검을 빼서 오강오에게 도로 건네줬다.

"그리고 날 좀 갈아라. 감자도 안 썰리겠다."

"예··· 예."

"다음은ㅡ"

이렇게 맨투맨으로 지도해 주면 한도 끝도 없는데.

그렇지만 제각기 다른 이유로 개판인 상황이라 어떻게 교육을 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게다가 쭉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이벤트성으로 하는 하루짜리 교육이니.

'오늘만 참자.'

시우는 엉망으로 싸우고 있는 다른 신입 헌터를 찾아 이동했다.

"야, 주먹을 왜 그렇게 휘둘러.'

물론 라이브로 송출된다고 존대를 해 주거나 자상하게 가르치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어··· 이렇게 배워서요."

몬스터와 싸우던 헌터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대꾸했다.

기본기도 체술도 하나 없어 보이는 동작이다.

"그따위로 휘두르면 고블린 콧구멍 하나도 안 다치겠다. 대체 어디서 배웠어."

시우가 그 헌터에게 다가가 주먹 휘두르는 법을 가르치려는 순간,

퍽!

단단한 나뭇가지가 볼을 스치며 날아가 뒤에 있던 바위에 부딪쳤다.

"···뭐냐."

자신을 빗맞힐 걸 알고 있던 시우는 상대를 향해 물었다.

"그따위로 휘두르게 알려 준 선생이다, 씨발놈아. 일부러 나 들으라고 지껄인 거 아냐!"

설마하니 지금 가르치려 했던 헌터가 추하민 소속 신입이었을 줄이야.

"내가 직접 가르쳐 준 주먹질에 불만이라도 있어? HMCS 따까리 따위가 보자 보자 하니까 막 기어오르네. 씨발, 존심 상하게."

애초에 뭐 하나만 걸리길 바란 것처럼 득달같은 반응이다.

시우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저런 같잖은 도발에 넘어가 주는 것도 나름의 도리가 아닐까.

"필요하면 너도 교육받아. 마력 날리는 꼴 보니까 너나 신입 헌터나 또이또이 하다."

"큭큭, 이 씨발. 하급 헌터 새끼가 주둥이만 살아서!"

마력을 가득 운용한 추하민의 신형이 번개같이 날아왔다.

시우는 주먹을 까드득 움켜쥐었다.

진정한 참교육의 시간이다.

〈19화〉

낯설지 않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