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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지옥의 퀴즈쇼ㄷㄷㄷㄷ]

[와 내가 저기 있었으면 오줌 지렸을듯]

[에고스틱 ㄹㅇ 빌런 맞는데 히어로라고 올려치기 한 사람 누구냐? 저사람들 다 죽게 생겼구만]

[팩트) 나만 아니면 된다]

[와 근데 비행기에 폭탄은 어떻게 설치한거임? 기본적으로 폭발물 검사 철저히 하지 않나?]

[나도 몰?루]

[기장은 뭐하고 있는거냐ㅇㅇ... 비상착륙 하면 일되나?]

[그랬다가는 바로 에고좌가 시밤쾅 해버릴거 같은데.]

"협회장님, 범인이 저 상공에서 저러고 있을때, 저희가 할 수 있는게 뭐죠?"

"우린 쓸모가 없다."

협회장은 침통한 표정으로 방송을 보며, 말을 이었다.

"가서 팝콘이나 가져와라 스타더스."

스타더스는 옆에 있던 팝콘을 협회장 얼굴에 던져버리고 말았다.

EP.32 Rising Airplane

"자! 두번째 문제의 시간이 종료되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뜨거운 과일은... 천도복숭아였습니다! 1000도 복숭아니까, 제일 뜨겁겠죠! 하하하하하하!"

"그럼 바로 세번째 문제 나가보겠습니다. 신하가 왕과 헤어질때 하는 말을 세글자로 하면?"

"정답은 바이킹이었습니다. Bye, King! 하하하하하하!"

"네번째 문제! 소고기가 없는 나라를 다섯글자로 하면 뭘까요?"

"정답은 소고기무국이었습니다! 소고기無國! 하하하하하!"

그렇게 문제가 지속될 수록, 승객들의 표정은 점차 어두워져만 갔다.

처음에는 꽤나 잘 맞추던 이들도, 문제가 계속될수록 하나 둘 틀리는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게임은, 한번 틀리는 순간 그대로 아웃.

즉, 후반으로 가자 남아있는 사람들이 몇명 없게 되었다.

사실 이 정도만 해도 많이 남은거라 할 수 있다.

에고스틱 자신은 솔직히 8번째 퀴즈쯤 되면 한명도 남아있지 않을거라 예상했으니까.

그러나, 놀랍게도 세명이나 남아있었다.

어릴때부터 유머 서적을 많이 읽었는지, 나오는 족족 다 맞춘 꼬마 남자애.

풍선껌을 씹으며, 뭔가 전혀 긴장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여고생.

소싯적에 회식할때 부하직원에게 아재개그 좀 많이 던져봤을 것 같은 아저씨 한명.

아직까지 스마트폰을 들고있는 이 셋에, 승객들의 눈빛이 집중되었다.

그들의 마지막 희망이 이 셋이었기에. 누구보다 간절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던 것이다.

긴장되는 상황에 사람을 숨막히게 하는 간절한 눈빛들이 온 사방에서 날아오니,

머리가 좀 벗겨진 아저씨는 주위 눈치를 보며 식은땀을 삘삘 흘리고 있었다.

물론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꼬맹이는 상황 파악을 못했기에 개의치 않고 다음 문제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도 이게 게임인줄 아는 모양. 옆에 있는 아이 엄마만이 애가 타는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빨간 야구점퍼를 입으며 풍선껌을 씹고 있는 여고생.

대체 이 시간대에 왜 혼자서 교복을 입고 비행기를 타고 있는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턱을 괴고 무심히, 앞에서 나오는 영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같은 시간. 지상에서 그들이 있는 상공을 바라보는 자가 있었으니.

[...스타더스. 자네 도착했나?]

"네, 도착했습니다. 일단은."

히어로 협회 제주 지부.

그 건물 깊숙한 지하실에서, 스타더스는 통신에 응답했다.

"우웩, 욱. 우웨에에엑."

"....김자현, 괜찮냐?"

"너는, 이게 괜찮아 보이냐- 우웨에엑."

옆에서 헛구역질을 하고 있는 자는 김자현. 히어로명 섀도우워커.

스타더스와 함께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3명의 A급 히어로중 한명이며, 셋 중 특정상황에서는 제일 강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래, '특정상황에서만' 제일 강한 인물이다.

섀도우워커. 순수하게 밤에만 강한 히어로.

밤에 한정하여, 아무 무리없이 어디로든 그림자에 녹아 이동이 가능하다.

100km이상 이동하고 나면 아마 높은 확률로 심장마비로 사망할 에고스틱이나, 총 한방 맞았다고 빌빌거리며 겨우 100m씩 이동하던 텔레포터와는 다르다.

자신이 있는 곳이 충분히 어둡기만 하다면, 그리도 이동할 곳도 똑같이 충분히 어둡다면.

이론상 지구 반대편으로도 이동이 가능하다. 물론 지구 반대편은 낮이라 이동이 안되겠지만은.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 밤에는 몸의 반이 사실상 그림자가 되기 때문에 무적이다.

그러니까, 죽지 않는다. 물리공격이든, 생화학 공격이든 사실상 무적이니.

거기에 자신의 그림자속으로 상대를 빨아들여, 어디로든 이동시킬 수 있다.

그야말로 밤의 제왕. 대한민국의 범죄자들이 밤에는 무언가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빌런들이 절대로 밤에는 테러를 벌이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람들이 이름붙이기를 일명 그림자 납치.

그냥 신고가 접수되자마자 그곳으로 이동해 범죄자를 순식간에 감옥으로 이동시켜 버린다.

즉, 시간을 저녁으로 한정하면 세계를 기준으로 보아도 웬만한 히어로들 중에서 탑급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상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S급 히어로에 제일 근접했던 인물이기도 하고.

그러나 그 약점때문에, A급으로 끝날 수 밖에 없었다.

바로 낮에 너무나도 약하다는 것.

순간이동이던, 불사던.

빛이 있다면 다 무용지물.

밤에는 분명히 운동신경이 좋던 그의 몸이, 이상하게도 낮만 되면 급격히 약해진다.

아니, 약해지는 걸 넘어 아예 깨어있는 것도 힘들어 하기 때문에 낮에는 늘 잠만 잔다.

물론 낮에도 아예 쓸모가 없는건 아니다.

순간이동이던, 불사판정이던. 충분할 정도의 '어둠'만 있다면 어느 정도는 낮에도 사용 가능하다. 물론 혹독한 부작용이 따르겠지만.

그래서 한국 히어로 협회는 서울, 부산, 제주. 세곳의 협회 지부 아래에 지하실을 만들었다.

인공적으로 매우 어두운 환경을 만들어, 그가 그림자 이동으로 다른 히어로라도 이동시킬수 있게.

그런 이유로 잠을 잘 자고 있던 섀도우워커 김자현은 오밤중에, 가 아니라 오낮중에 깨어나 서울에서 제주도까지 스타더스를 데리고 그림자 이동을 했던 것이다.

비록 본인은 이를 매우, 매우 마음에 안들어 하는 것 같았지만.

"우웩... 하아... 야, 이거 꼭 해야 했던거냐? 나 죽을거같다...."

"그래, 꼭 필요한 일이었다. 그래도 미안하다, 푹 쉬고있어라."

"하아... 죽겠네..."

그렇게 스타더스는 도착하자마자 어디론가 뛰어가버렸고.

홀로 남은 섀도우워커는, 자신을 부축하러 내려오는 직원들을 기다리며 숨을 골랐다.

"하아... 제발, 빌런새끼들아. 제발 밤에만 범죄 저지르라고..."

그의 독백은 어둠이 내려앉은 지하실 깊은 곳에 내려앉을 뿐이었다.

요즘 빌런들의 특징은, 무조건 낮에 활동하는 것이었기에.

***

[...아홉번째 문제의 정답은 덕수궁이었습니다!]

"아 씨발."

[어! 방금 누가 소리내지 않았나요? 자, 자. 전선 하나 자르겠습니다~ 아이고! 이제 두개 남았네요!]

정답을 확인한 여고생의 순간적인 욕설에, 폭탄의 선이 하나 잘려버리고 말았다. 3개중 하나가 잘려서 남은 것은 2개.

주위에 있는 승객들이 모두 그녀를 째려봤으나, 그녀는 개의치 않고 조용히 중얼거릴 뿐이었다.

'...저 꼬맹이를 믿는게 아니었는데.'

다행히 거의 속으로 중얼거리며 한 말이었기에 다른 승객들도, 에고스틱마저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 한 말이었다.

물론 승객들은 지금 전혀 다행인 상황이 아니었다. 여고생도, 그리고 꼬맹이 마져 둘 다 틀린 상황.

울상을 지으며 아쉬워하는 아이를 그의 어머니가 조용히 안아주었다.

그렇게 지금 남은건 단 한명.

머리가 벗겨진체 식은땀을 폭포수처럼 흘리고 있는, 가운데에 앉은 아저씨 한명뿐이었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에고스틱의 익살맞은 웃음소리.

[아이고! 이제 한분 남았네요. 그 유명한 최후의 1인인가요? 어디보자... 김덕배씨! 네, 김덕배씨가! 현재 유일하게 앞에 9문제를 모두 맞추신 분입니다.]

자신의 이름이 언급되자 화들짝 놀라는 아저씨.

[그렇기에 유일하게! 10번째 질문에 도전할 수 있으신 분이죠. 지금 현재 이 비행기에 탑승하고 있는 80명 모두의 목숨이 김덕배씨의 손가락에 달려있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어깨가 무겁겠습니다. 김덕배씨, 지금 소감이 어떠신가요? 한마디 해보시죠.]

안그래도 긴장해 죽을려고 하는 사람한테 말까지 하라고 하니, 슬픈 중년 김덕배씨는 지금 거의 기절할 것처럼 보였다.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채, 주위 사람들 모두의 눈빛을 받으며, 김덕배씨는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아, 그. 참, 참으로 채 채 책임이 막중하고-"

[이럴수가! 제가 아까 분명 누구라도 말소리 내면 전선 하나 자른다고 하지 않았나요? 근데 왜 입을 열고 그러시나요? 전선 하나 더 자르겠습니다.]

그러더니, 진짜로 비행기 어딘가에 붙어있는 선이 툭, 하고 잘려버렸다.

그 모습을 실시간으로 좌석 앞의 화면을 통해 보게 된 사람들.

"!!!.....!"

순간적으로 어이를 잃은 그들은 분통을 터트리려했지만.

이제는 전선이 정말로 하나 남은 탓에, 입도 뻥긋하지 못하고 표정으로 분노를 표할수 밖에 없었다.

[와ㄷㄷ 진짜 악마네]

[이거완전 움직이면 쏜다! 손들어! 이러고 '어, 왜 손 움직임?'하고 쏘는거랑 비슷한거 아니냐ㅋㅋㅋ]

[이게... 에고스틱? 내가 지금까지 알던 망고스틱은 어디에?]

[???: 정신이 좀 들어?]

웬만하면 에고스틱에 호의적이던 채팅창도 그 악랄함에 혀를 내두를 때.

에고스틱만이, 당연하다는 듯 목소리를 키울 뿐이었다.

[한마디를 왜 말로 합니까? 바디랭기쥐로 하면 되지. 수화라던가. 나 참, 센스가 없네.]

오히려 자기가 어이없다는 듯이 말하는 에고스틱의 말에, 사람들은 끓어오르다가, 문득 차분해졌다.

다들 분통을 터트리다 알아채고야 만 것이다.

폭탄의 폭발을 막을 선이 하나 남은게 의미가 없다는 걸.

애초에 마지막 퀴즈를 틀린다면, 그대로 폭탄이 터진다는걸.

숨막힐듯한 싸늘함이 가득한 이곳.

오직 스피커의 목소리만이, 밝게 마지막 질문을 건낼 뿐이었다.

[자! 드디의 10번째, 마지막 문제입니다! 이걸 맞추시면 모두들 그냥 비행기에서 안전히 내리시면 되고요, 틀린다면... 아시죠? 자, 문제 들어갑니다. 어린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기름은? 카운트다운, 시작합니다!]

[3 : 00]

[2 : 59]

[2 : 58]

...

그렇게 마지막 문제가 던져지고.

모두의 이목이 땀흘리는 중년 아저씨에게 집중됐다.

정답을 전혀 유추할 수 없는 사람들도

정답을 어느정도 알겠는 사람들도

정답을 확신하는 사람들도, 차마 아무 말도 못하는 채.

그저 그 중년의 아저씨만을, 간절히. 그 어느 때보다 간절히 바라볼 뿐이었다.

"...."

그렇게 붉어진 얼굴의 아저씨는, 한참을 고민했고.

[0 : 03]

[0 : 02]

[0 : 01]

마지막 순간, 정답을 썼다.

[삼, 이, 일. 땡! 자, 정답을 맞춰보겠습니다. 어디보자, 아이유라고 쓰셨네요. 자, 보자 보자. 네! 정답은...]

숨 막힐듯한 긴장감.

비행기 위 승객들도.

지상에서 방송을 보고 있는 사람들도.

모두가 침을 삼키며 기다린 끝에, 정답이 발표됐다.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기름은...오월오일(5월 Oil)이었습니다! 아이유는, 정답이, 아니었습니다!!! 안타깝네요. 그럼 뭐, 쩝.]

에고스틱은 한번 생각하더니, 말을 이었다.

[그만, 안녕히가세요!]

쾅.

"꺄아아아아아악!"

그렇게 뭔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비행기는 추락하기 시작했다.

EP.33 HERO

"꺄아아아아아아악!"

추락하기 시작하는 비행기.

승객들은 비명을 지르며, 좌석 팔걸이를 붙잡았다.

[아니! 소리를 내다니! 마지막 선도 자릅니다! 빵!]

또 한번 들리는 펑 소리와 함께

비행기가 더 빠르게, 빠르게 추락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모든 광경은, 라이브로 모두에게 송출되고 있었다.

"미친새끼..."

물론 그 광경을 실시간으로 직접 보고있는 사람도 있었으니...

"..협회장님, 대체 이제 어쩌죠?"

[어쩌긴 뭘 어째... 포기하게. 난 지금 규탄 성명문 적느라 바쁘네. 에휴, 또 이곳 저곳 고개 숙여야겠구만. 자네는 와서 나한테 팝콘던진거 시말서 쓸 준비나 하고. 아, 젠장. 밑에 기자들이 왔구만. 이만 끊게.]

그렇게 협회장과의 연락도 끊기고.

스타더스는 홀로 남아, 착잡한 마음으로 상공을 바라볼 뿐이었다.

"하아..."

서서히 떨어지고 있는 비행기의 모습.

워낙 천천히 추락하고 있기에, 그것만 놓고 보면 마치 정상착륙 중인 것으로 착각할 수도 있지만.

양 옆 날개에서 연기가 미친듯이 나고 있는걸 보면 누가봐도 뭔가 심각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스타더스는 생각했다.

이번이 거의 역대 최대 규모의 사상자를 낸 테러가 아닌가?

에고스틱... 놈이 기어코 일을 저지르는구나.

제일 허탈한 것은,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그저 지켜봐야만 했다는 것이다.

비행기의 속도는, 적어도 속력이 1000km는 된다.

자신이 겨우 겨우 막은 기차의 속력이 한 100km정도라는 것을 고려해 보면, 대략 10배정도 되는 속도.

저거를 막으려고 하는것은, 그야말로 계란으로 바위치기. 마치 자동차를 막으려는 드는 개미와도 같다.

즉, 자신은 할 수 있는게 없다는 것이다.

그저 무력하게, 보고밖에 있을 수 없다는 뜻.

그렇게 착잡한 마음으로 위를 올려다보고 있을 때.

갑자기, 인이어에 꽂은 이어폰에 전화 벨소리가 울렸다.

"...?"

그녀는 뜬금없는 타이밍에 걸려온 전화에 얼굴을 찌푸리며, 이어폰을 조작해 끊을려 했지만.

'잠깐... 이거 분명 협회랑만 이어진 이어폰일텐데?'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그녀는, 이어폰을 한번 더 두들겨 연락을 받았다.

거기서 들려오는, 한 남자의 목소리.

그리고 이제는 익숙해진 그 목소리에, 스타더스는 입술을 짓이겼다.

[안녕하십니까 스타더스씨. 에고스틱입니다.]

"이 쓰래기새끼가..."

순간적으로 끓어오르는 화를 참지 못해 이어폰을 꺼내 바닥에 던져거릴 뻔한 그녀였지만.

계속해서 이어지는 그의 말에, 순간 입을 다물고 말았다.

[다름이 아니라, 궁금해서 그러는데. 왜 구하러 가지 않으세요?]

"...뭐라고?"

[아니, 날아가셔서 비행기를 구해야죠. 뭐하고 계세요?]

자기가 떨어트려놓고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모습에 순간적으로 열이 뻗힌 스타더스.

그러나, 여기서 화를 내면 놈의 계략에 말려들어간다는 생각에, 애써 화를 가라앉히고,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지금, 추락하는 비행기를 나보고 막으라고? 너가 떨어트려놓고?"

[네. 당연하죠.]

너무나도 뻔뻔하게 말하는 그의 말에, 신하루는 진지하게 이놈을 한대 때려버리고 싶다고 느꼈다.

대충 즉사할 정도로 쎄게.

화를 꾹꾹 눌러담으며, 그녀는 입을 땠다.

"내가, 저걸, 어떻게, 막을까? 응? 시속 1000km로 떨어지고있는 저걸? 나보고 죽으라는거니? 아, 그렇겠네. 미친놈."

...화가 어째 새어나오고 있고, 컨셉도 풀리기 시작한 그녀.

그러나 그녀가 미처 소리를 지르기도 전에, 에고스틱이 그녀의 말을 끊고 건넨 말.

[아니요, 할 수 있습니다.]

순간적으로, 전화로도 들려오는 누구보다도 진중하고 진심인듯한 그의 목소리에. 그녀는 할 말을 잠시 잃었다.

[당신은 할 수 있습니다. 비행기의 추락을 막으세요.]

마치, 전혀 부정할 수 없는 진실만을 말하듯.

달이 지면 태양이 뜬다는, 당연한 사실만을 말하듯.

너무나도 확고한 그의 목소리.

잠시 말문을 잃은 그녀는, 정신을 붙잡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게 말이 돼? 그냥 나 이 기회에 제거하려고 하는거, 내가 모를 줄 알어?"

[제가 왜, 당신을 죽이려 듭니까?]

그리고 이에 이어지는, 그의 담담한 목소리.

[당신이 없는 저에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죠? 당신이 없으면 저는 그저 흔하디 흔한, 일개 빌런일 뿐이죠.]

[당신이 저를, 완성시킵니다.]

[그러니 나서세요. 주먹을 쥐고 다리에 힘을 주고, 저 하늘로 날아 사람들을 구하세요. 당신은 할 수 있습니다. 그게 당신이니까.]

그리고 그 말을 끝으로, 그대로 전화는 끊어져버렸다.

홀로 남겨진 그녀는 갑작스러운 상황 전개에 귀신에 홀린듯, 잠깐 멍하게 있다가...

이내 정신을 차린듯, 고개를 세차게 좌우로 흔드는 그녀.

저 미친놈이 그냥 늘상 하던 헛소리를 하는거다.

애초에 비행기를 지가 폭발시켜 떨어트린 놈이 한 말이잖아.

내 능력을 내가 아는데, 내가 저거를 어떻게 막어?

그냥 나를 이번 기회에 죽이려고, 저러는거 아니야?

그러나, 계속해서 그녀의 머릿속에 그가 한 말이 울려퍼졌다.

'아니요,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저를, 완성시킵니다.'

'주먹을 쥐고 다리에 힘을 주고, 저 하늘로 날아 사람들을 구하세요. 당신은 할 수 있습니다. 그게 당신이니까'

마치 텍스트 그대로 듣기만 한다면, 그녀의 팬이 했다고밖에 믿을 수가 없는 말.

그러나 이 말은 그녀의 적, 에고스틱 그놈이 한 말이다.

'오히려 그렇기에, 더욱 더 신뢰성과 객관성이 있는게 아닐까?'

그녀의 뇌는 현재 혼란한 상태였다.

안그래도 이대로는 저 비행기안의 모든 사람들이 죽는 것을 실시간으로 직관하게 생겼다며 무력감과 절망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는데.

저 비행기를 떨어트린 빌런이 자기에게 전화를 걸어와 자기가 떨어트려놓고 그녀보고 가서 구하라고 하자, 결국 멘탈이 나가버리고 만 것이다.

'그래. 기차도 막았는데, 비행기라고 못막을게 뭐있겠어? 사실 비행기도 보면 일종의 날아다니는 기차가 아닐까? 비행기가 뭐야, 비행기차의 줄임말 아니야? 그러니까, 비행기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그녀의 뇌는, 무언가 심각하게 오류가 있는 논리를 사용해 생각을 이어나가기 시작했고.

결과적으로 뇌는 결론을 내렸다.

[제 247회 신하루 대뇌 정기 의사판단 협의회]

[의제결과: 비행기를 구하러 가자.]

'그래, 어차피 이대로 저들의 죽음을 직관한다면, 나는 평생 죄책감에 짓눌려 살아가겠지. 그럴바에는 차라리, 후회없게.'

그리고 즉시.

그녀는 하늘을 날랐다.

***

"꺄아아아아아아악!"

"흐아아아아앙."

"으아아아아아아아악!!!"

비명소리가 난무하는 비행기 안.

비록 떨어지는거 자체는 폭발이 일어난거 치고는 어째서인지 스무스하게 떨어지고 있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포심이 사라지는게 아니었다.

창밖으로는 점점 더 지상이 가까워지는 모습.

처음에는 분명 구름밖에 안보였으나, 이제는 저 아래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 신께 기도드리는 사람들, 기절한 사람들, 아니면 모든것을 포기하고 조용히 눈을 감은 사람들.

그렇게 점차 바다로 가까워지고, 이제 죽는게 몆분 안남았구나- 하면서 사람들이 희망을 잃기 시작할 무렵.

쿵-.

앞쪽에서, 무언가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쿠웅-. 쿠웅-. 쿠웅-.

계속해서 들리는 소리.

마치 무언가가 비행기 앞면을 계속해서 내려치듯, 쿵하고 울려퍼지는 소리.

그리고 파공음.

콰아아아아아앙.

"으으으으으윽?"

갑작스럽게 무언가 앞쪽에서 엄청난 충격이 느껴지며.

승객들은 일제히 앞쪽으로 몸이 튕겨나가듯 떠올렸다.

안전벨트를 모두들 착용하고 있지 않았으면, 진짜로 튕겨져 나갔을 정도의 충격.

마치 가로수길에 부딪힌 자동차마냥, 비행기의 앞쪽에 무언가 부딪혔다는듯 충격이 오갔고.

바다를 향해 그대로 산산조각이 나기 위해 달려가던 비행기의 속도가.

점차.

점차.

느려지기 시작했다.

"...어라?"

그렇게 처음에는 앞쪽에 뭐가 부딪힌듯한 충격에 이제 죽었구나- 하던 승객들도 무언가가 이상하다는걸 눈치챘다.

그렇게 지상과 분명 가까워는 지는데.

마치 착륙하듯, 점차, 점차 느려지는 비행기.

"어..? 어?"

그렇게 무언가 점점 느려지던 비행기는.

이내, 바다에 쿠웅- 하고 착륙했다.

-콰앙.

"꺄아아아아악!"

물론 그 과정에서 약간의 충격과 비행기가 갑자기 충격으로 갈라지는 일이 생겼지만.

결과적으로.

승객 전원이, 생존했다.

"...뭐지?"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상황에, 어안이 벙벙해진 승객들.

그들은 무슨일인지 몰라,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도 실감이 안나서, 기뻐하지도 못했다.

정신을 차린 몇몇이 자리에서 일어나 승무원들을 찾아 안쪽으로 가보니.

그곳에는 기절한 채 쓰러져있는 승무원들이 있었다.

그들을 깨워, 비행기의 문을 열게 하고, 비행기문에서 바다로 구명보트를 띄워 미끄럼틀처럼 연결하는 기구를 설치한 채, 미끄러져 밖으로 나와 구명보트에 탄 사람들.

아직도 무언가 혼이 나간 채구명보트에 타, 노를 저어 비행기 앞쪽까지 간 사람들이 본것은.

홀로 비행기 기체가 움푹 들어갈정도로 힘을 주어 잡은 채, 잔뜩 찌그러진 비행기 앞면 위에서 땀을 비오듯 흘리며 숨을 고르고 있던 빨간색 타이즈를 입은 금발의 여성.

스타더스였다.

본능적으로 그녀가 자신을 구했다는걸 깨달은 사람들.

그들중 한명이, 자신도 모르게 이렇게 중얼거렸다.

"영웅...."

영웅.

히어로.

구원자.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거대한 비행기 위에서 한껏 초라한 모습으로 숨을 고르고 있던 그녀를 보며 느꼈다.

저게.

저 사람이.

방금 모두를 구한.

바로 우리의 영웅이라는 것을.

***

[네!!! 스타더스가!!! 비행기를!!! 착륙시키는데 성공했습니다!!! 승객들이 전원 무사히!!! 내리고 있는 모습입니다!!! 국민 여러분!!! 대한민국은 안전합니다!!!]

[Yes, and as you can see.... Wow. She did it! Viewers, The Korean A-class hero Stardus just stopped plane from crashing in midair! Unbelievable that it happened in Korea.]

[はい,ちょうど韓国のヒーローStardus-sanが飛行機を上空で止めることに成功しました. すごいですね. 韓国ができることはありますか?]

[韓國的英雄星塵攔住了飛機. 是的,這對於半島上一個流氓國家來說很棒.]

[En Corée, un petit pays à l'Est, un héros a arrêté un avion dans le ciel. Elle s'appelle Stardus.]

[미국은 경악하고 일본은 충격에 빠지다! 중국이 극찬하고 프랑스를 두려움에 빠트린 히어로, 스타더스는 누구인가? "일본은 이제 히어로에 관해서는 한국에 완벽히 패배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일본의 열 히어로를 합쳐도 한국에 이길 수는 없을것." 일본 내무부 장관의 충격폭로!]

EP.34 합리적 의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9시 뉴스입니다. 오늘 낮, 빌런에 의한 비행기 테러가 있었죠. 이 떨어지는 비행기를 우리나라의 히어로가 잡아내어 모두를 살렸습니다. 자세한 소식 전재승 기자가 알아보겠습니다.]

[오늘 낮 1시. 지상파 채널 3사의 화면이 갑자기 바뀌었습니다.]

예능을 보여주던 티비의 화면이 검은색이 된다. 그리고 갑자기, 어떤 비행기 내부의 모습이 화면으로 송출되기 시작했다. 두려움에 떨고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리고 들리는 에고스틱의 목소리.

[상공 최대의 퀴즈쇼, 더 에고쇼 라이브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티비에는 전에 찍힌 에고스틱의 모습이 화면에 나오고 있었다. 어쩐지 사악하게 웃고 있는 모습.

[지난번에도 두차례에 걸쳐 공중파 화면으로 자신의 테러현장을 송출한 에고스틱의 행각으로, 이번이 세번째 테러입니다.]

그리고 다시금 들리는 에고스틱의 목소리.

[룰은 간단합니다! 총 10문제에 넌센스 퀴즈가 나갈텐데, 그거를 맞추시면 됩니다! 단 한명만이라도 모두 맞추시면, 암전히. 그리고 안전히! 비행기를 놓아드리죠. 그런데 만약 모두가 틀린다면? 펑. 폭탄이 터진답니다!]

혼란스러워하는 승객들. 당황하며 퀴즈를 풀고 있다.

[넌센스 퀴즈를 맞추면 살려주고, 아니면 비행기에 붙여둔 폭탄을 터트리겠다는 그의 말에 승객들은 당황속에서도 침착하게 문제를 풀었습니다. 그러나.]

들려오는 에고스틱의 익살맞은 목소리.

[...는 정답이 아니었습니다!!! 안타깝네요. 그럼 뭐, 쩝. 그만, 안녕히가세요!]

그와 동시에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흔들리는 기체 내부.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비행기가 점점 하강하기 시작한다.

카메라가 바뀌고.

뉴스는 지상에서 저 멀리 바다를 찍는 카메라의 영상을 보여줬다.

얼핏 보기에는 잘 모를 수 있지만, 자세히 보면 분명, 비행기가 비스듬히 내려가고 있는게 보인다.

그렇게, 비행기가 열심히 추락하고 있을 때.

한 작은 점이, 비행기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점이 비행기와 부딪히고.

쿠웅-.

영상을 찍고있는 카메라에 느껴질 정도로, 엄청난 진동.

앵커의 말이 이어진다.

[그렇게 추락하는 비행기를 향해, 한 인물이 날아갑니다. 그녀의 정체는 A급 히어로 스타더스. 비행기의 착륙 예상 지점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그녀는, 비행기가 추락하자 단신으로 그것을 막기 위해 날아간겁니다.]

[원래 익히 알려져있는 그녀의 능력으로는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많은 전문가들이 예측했지만, 그 예측을 비웃듯이 비행기가 서서서 느려지는 모습입니다.]

영상 속 비행기는 눈에 띄게 느리게 추락하고 있는 모습이였다.

[결국 비행기는 멈춰졌고, 승객들은 전원 안전하게 구조되었습니다. 스타더스는 이후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피로로 인하여 기절한 것일뿐 생명에는 큰 지장이 없다고 히어로 협회는 발표했습니다. 지금까지 전재승 기자였습니다.]

그렇게 기자의 보도가 끝나고.

뉴스는 다시 서있는 여자 앵커를 비췄다.

입을 여는 그녀.

[네, 영웅. 영웅이란 무엇일까요. 정의, 구원, 희생, 믿음... 이번에 스타더스 그녀가 우리에게 보여준 행적은, 그야말로 영웅의 것이었습니다. 저희 방송사를 대표해, 대한민국 시민들을 지켜준 스타더스에게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그렇게 앵커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

[그래, 그정도 했으면 하루 정도는 쉬어도 된다니까? 내려와서 바다도 보고 기분이나 풀어. 오랜만에 같이 달려보자.]

"알았어, 이번에 갈게."

[진짜? 약속! 약속이다?]

"응, 응."

그렇게 전화가 끊기고.

휴대폰을 놓고 책상 앞 의자에 앉은 그녀는, 한숨을 푹 쉬었다.

"...."

벌써 그녀가 비행기를 홀로 막아선지 며칠이 지났다.

자신도 대체 어떻게 막았고, 어떻게 아직까지 살아있는지 신기한 일이었지만.

어찌됐건 중요한건 그녀가 비행기를 막아 사람들을 구했고, 그녀는 아직까지 멀쩡히 살아있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오른손을 한번 주먹쥐어 말았다 풀어보았다.

힘이 이번에도 세졌다.

그것도 그전과는 다르게 훨씬.

그녀의 이례적인 성장을 보고, 협회는 아마 지금까지 자신들이 그녀의 힘을 과소판단 했다고 판단하였다.

이미 그녀에게 그만한 힘이 있는데 아무도 그걸 몰랐다고 받아들인 것이다.

사실, 그녀의 능력의 상승은 그것 뿐만이 아니었다.

비행기를 향해 날라갈 때, 이를 악물고 필사적으로 질주할 때.

또 그녀는 하나의 벽을 넘었다.

어째서인지, 비행할때의 속도가 그전보다 훨씬 빨라진 것이다.

협회는 그녀가 지금까지 자신의 힘을 과소평가한 것 같다고 설명했지만.

자신의 힘이었기에, 그녀는 똑똑히 알 수 있었다.

자신의 능력이 원래 이정도였던 것이 아니라, 능력이 성장한 것이라는걸.

그럴수가 있나- 라고 의심할게 아닌.

진짜로, 그녀의 능력이 강해졌다.

어째서?

자신의 능력으로 해치울 수 없는 상황을 만났는데, 능력이 그 상황을 해결할 수 있도록 알아서 성장했다고?

그게 말이 되는가? 얼마나 편의주의적인 이야기인가.

그러나 그녀의 능력이 강해졌다는 것은 이미 일어난 일이었기에 이를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사실.

그녀는 자신의 능력이 성장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지금 딱히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는 않았다.

그보다 그녀의 현재 계속해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에고스틱, 그였다.

이번 비행기 테러 사건으로 인하여 에고스틱을 무차별적으로 안티히어로라고 추종하는 이들은 많이 사라졌다. 이번 일을 통해 그가 협회가 공인한 빌런이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은 사람들.

비록 이번에도 민간인 피해는 없었긴 했지만, 이번에야말로 스타더스가 막지 않았으면 진정 많은 이들이 죽었을 뻔한 일이었기에 그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그러나.

이 사건의 당사자인 스타더스 혼자, 대중과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자신이 무력하게 그저 가만히 서있었을때, 문득 온 연락.

그리고 그는 말했다.

자신보고, 저 추락하는 비행기를 막으라고.

'날아가셔서 비행기를 구해야죠.'

자신이 그걸 어찌 막냐고, 반문하자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한 그.

'당신은 할 수 있습니다. 비행기의 추락을 막으세요.'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게 아니냐는 말에, 그는 이렇게 말했었다.

'당신이 없는 저에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죠? 당신이 없으면 저는 그저 흔하디 흔한, 일개 빌런일 뿐이죠.'

'당신이 저를, 완성시킵니다.'

갑작스러운 발언에 그녀가 살짝 얼타고 있을때.

그는 뒤이어 진심에 가득찬 목소리로, 호소하듯 말했다.

'그러니 나서세요.'

'주먹을 쥐고 다리에 힘을 주고, 저 하늘로 날아 사람들을 구하세요.'

'당신은 할 수 있습니다.'

'그게 당신이니까.'

그녀가 지금까지 히어로 활동을 하면서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자신보다 더욱 더 자신을 믿는듯한, 신뢰하는 듯한 그의 말.

지금까지 한명이라도, 그녀를 이렇게 믿어준 사람이 있었는가?

A급으로 히어로로써 처음으로 활동할때도, 너무 어리다. 사건을 빨리빨리 해결하지 못한다 등 별로 좋지 않은 소리만 들었었다.

애초에 히어로를 별로 신뢰하지 않는 대중의 시선속에서 그저 묵묵히.

자신의 정의관을 지키기 위해 그렇게 묵묵히 해왔을 뿐이다.

근데 처음으로 들은, 자신을 전적으로 신뢰한다는듯이 말을 그녀의 숙적인 빌런이 했다는건,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의 말대로 됐고.

대체 자신의 뭘 믿고 그가 그렇게 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녀는 그의 말대로 성공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

자살행위.

그 어떤말을 써도 어올릴법한 일이, 실제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가 처음 예고했듯이.

"에고스틱..."

홀로 있는 집안에서, 그녀는 조용히 그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그는 자신을 믿는다고 했다.

비행기를 들라고 했다.

근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사실 자신을 믿는다고 한 부분이 아니다.

자신보고 비행기를 들라고 한 것이다.

어째서?

그가 비행기를 떨어트려놓고, 그걸 자신보고 구하라고 한다?

그럼 처음부터 왜 떨어트렸는가?

단순히 그가 자신의 능력으로 사람을 죽여대는 사이코이라고 하기에는, 무언가 석연찮은 점이 많았다.

자신이 가만히 있었으면 그대로 떨어졌을 비행기.

그러나 그가 자신보고 구하라라고 말을 했기에, 그녀는 구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왜 구하라 했냐고.

넌센스퀴즈를 틀리면 비행기가 추락하는 미친 데스게임은 기획하고 싶지만, 민간인이 죽는 것은 별로 보고싶지 않다 이건가?

그래, 그럴 가능성도 있다. 있는데.

그녀의 직감은, 어째서인지 그게 아닐 것 같다고 외치고 있었다.

'당신이 없으면 저는 그저 흔하디 흔한, 일개 빌런일 뿐이죠. 당신이 저를 완성시킵니다.'

그가 한 말이, 계속해서 그녀의 귀에 맴돌았다.

자신이 없으면 그는 그저 평범한 빌런이기에, 그는 자신이 필요하다고 했다.

어째서 자신이 없다고 해서 그가 평범한 빌런이 되는거지?

그의 대적자로 자신이 아닌 다른 히어로가 와도, 사실 상관 없는게 아닌가? 자신이 그의 근처에 있는 유일한 A급 히어로라 그런것인가?

그게 아닌것 같다.

그녀의 직감이 계속해서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아무 근거도 없고, 논리적 비약이 심한, 얼토당치도 않은 추측. 까놓고 말하자면 거의 일종의 망상이었지만.

그녀는 이번에는 그녀의 감각이 말하는 것을 한번 믿어보기로 했다.

"...지금까지의 행적을 조사해 봐야겠어."

그가 지금까지 무엇을 했었지?

그게 결국 어떻게 귀결됐지?

그가 일으킨 모든 사건을 모아보면, 무언가 나오지 않을까?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에고스틱. 그가 무언가를 계획하고, 무언가를 의도하고 이 모든 일을 하고 있다는 의심.

합리적 의심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그녀는 한번 추리를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신하루는 옷을 챙겨입고, 밖으로 나섰다.

에고스틱. 너가 숨기고 있는게 무엇이던. 계획하고 있는게 무엇이던.

내가, 그것을 찾아내주마.

***

"쓰읍, 왜 귀가 간지럽지?"

"오빠, 귀를 안파서 그런거 아니야?"

"아니, 그건 아닌거 같은데."

대체 뭐지. 누가 내 욕을 하나.

EP.35 무대의 뒤편에서

하늘 위에서 비행기가 떨어지고, 그걸 스타더스가 구한 그날로부터 몇주 전.

지하기지에서, 나는 비장하게 선포했다.

"자, 한번 해보자. 비행기 테러."

나의 말에, 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우리는 비행기 테러를 계획하게 되었다.

"오빠, 비행기는 어디로 가는걸 습격해야 되요?"

"무조건 국내선. 대충 제주도 가는거 하면 되겠네."

"국제선은 어때서요?"

"해외 가는 비행기를 습격했다가는 외국 히어로들이 올 가능성이 매우 높아. 특히 외국인 타있으면 그거 또 어떻게 될지 모르겠거든? 그러니까 한국에서 한국으로 가는 한국인만 탄 국산 항공사의 비행기를 습격해야 하는거야. "

"아하... 이게 또 까다롭네요. 밤비행기도 안되고요?"

"당연히 안되지. 그랬다가는 그 섀도우 워커 그놈이 그냥 비행기로 슥 순간이동해서 단체이동 시키고 끝날껄?"

"알았어요. 보자... 대충 이때 비행기 습격하면 될 거 같은데요?"

"어디봐봐. 음... 그래, 이때쯤이면 딱 좋겠다. 그럼 미리 준비해야 되겠네. 우리가 준비해야 할게 뭐지?"

"무슨 죽음의 넌센스퀴즈 할거라면서요. 가서 넌센스 퀴즈나 좀 알아와요."

"넌센스퀴즈를 알아오라고? 서은아, 난 이미 많이 알고 있단다. 스님이 내려가는 길을 6글자로 하면 뭔줄 아니?"

"...모르겠는데요. 뭔데요."

"불법 다운로드(佛法 Down Road)! 푸하하하하!"

"....오빠, 그거말고 제발 다른거 찾아봐요. 좋은말로 할 때."

서은이의 냉담한 반응.

불법 다운로드 재밌는데 어째서...

내가 그렇게 다른 아재개그를 할려고 할 때, 옆에있던 수빈씨가 나에게 말을 건냈다.

"다인씨, 저는 폭탄이나 알아볼까요? 저번에 기차 테러 할때 샀던 그 루트로 구하면 되는건가요?"

"아, 수빈씨. 저희 이번에 폭탄은 딱히 필요 없습니다."

내 말에 서은이와 수빈씨 둘 모두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아니 오빠, 비행기에 폭탄 터트릴거라면서요?"

아, 내가 이걸 설명을 안해줬구나.

"음... 그래, 아예 처음부터 자세히 설명해줄게."

에고쇼 시행 계획.

비행기 위에서 넌센스 퀴즈 대회를 개최한다.

10문제를 전부 맞추는 사람이 없으면, 폭탄을 터트린다고 한다.

"여기서 포인트는, 나는 무조건 비행기를 추락시킬거라는거야. 그런데 폭탄을 쓰면 비행기가 위에서 산산조각이 나겠지? 그러니까 폭탄은 안쓰고 그냥 추락시킨다는거지."

"네? 그게 대체 뭔소리에요?"

서은이는 이해가 안된다는 말투였다.

"아니... 뭔가 이상한 포인트가 한두개가 아닌데. 일단 비행기를 무조건 추락시킨다면서요. 근데 그러다가 10문제 다 맞추는 사람이 나오면요? 그래도 그냥 떨어트릴거에요?"

"그러지는 않지. 근데 애초에 문제를 다 맞추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싶기는 한데... 그래도, 내가 그건 혹시나 해서 미리 장치를다 해놨어."

"무슨 장치요?"

"마지막 퀴즈는 정답이 2개인거 낼 거야. 그래서 만약 맞추더라도? 그냥 다른걸 정답이라고 불러주면서 떨어트리면 돼. 이것도 안되면 그냥 억지부리고."

"와... 오빠, 지금까지는 몰랐는데 이렇게 보니까 좀 악마같네요."

황당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는 서은이.

뭐 임마.

원래 세상이 이런거야! 이 세상은 속거나 속이거나라고!

"다인씨, 근데 그러면 폭탄을 안쓰고 추락시킨다는건 무슨 소리세요?"

"아 그거요. 폭탄을 쓰면 비행기 기체에 손상이 가 저희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산산조각이 날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폭탄은 터트린척만 하고, 실제로 비행기는 그냥 비스듬히 아래로 향하게 할겁니다. 근데 공중에서 착륙포인트 안잡고 떨어지면 그게 추락이죠 뭐."

내가 어깨를 으쓱이며 그리 말하자, 서은이가 다시 한번 물었다.

"아... 그래서, 우리가 비행기를 추락시키면 스타더스보고 그걸 들게 하는게 우리의 목표인거죠?"

"정확해! 내 위압감도 높이고, 스타더스 인기도 높이고. 그야말로 일석이조 아니냐?"

"어... 근데 다인씨, 스타더스씨가 비행기를 막을 수 있나요?"

컴퓨터로 무언가를 검색해 계산해보던 수빈씨가 나에게 물었다.

내가 그쪽으로 눈길을 주자. 그녀가 계속 말을 잇기 시작했다.

"비행기 추락시키자는게 제가 낸 기획이기는 한데...스타더스씨가 지금까지 이룬 일중 제일 큰 업적이 저번에 달리던 기차를 막은거에요. 그 기차 막은 것도 대단한거기는 한데, 기차랑 비행기랑은 진짜 천지차이이에요. 보니까 그 기차도 스타더스씨가 진짜 한계까지 힘을 쥐어 짜서 막은거 같던데 비행기는... 단순히 속력만 몇십배 빠를뿐 아니라 중력이나 무게, 에너지까지 고려하면 몇백배 힘든거에요."

수빈씨의 타당한 의심.

사실 누구나 해볼법한 의심이기는 하다.

마치 어저께 더하기 빼기를 배운 아이가 오늘 수능 미적분 30번에 도전해보겠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

저게 정론적인 이야기긴 하다.

기차도 겨우 막은 스타더스가 비행기를 어찌 막느냐.

그러나 나는, 이렇게 답할 뿐이었다.

"스타더스는 할 수 있습니다."

이 만화의 주인공이란 그런 것이다.

후반에 가면 시간을 멈추고, 공간을 지배하고, 자연재해를 혼자서 일으킬 수 있는 적들이 쏟아져 나오는 이 세계.

나중에 가면 아예 신적존재들이 튀어나와 지구를 멸망시키려 드는 미친 세계관이 된다.

그리고 그 세계에서 홀로 대한민국을, 지구를 지키던 영웅 스타더스.

그녀는 주인공.

사실상 이 세계는 그녀를 위해 돌아간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은 딱 하나.

그녀의 능력이 성장하는 대에는 한계가 없다는 것.

주인공은 죽지 않는다.

그 뜻을 역으로 풀이하자면, 그녀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그녀를 강하게 해준다.

그러니까, 그녀에게 간절하고도 필사적인 '의지'만 있다면.

그녀가 막지 못할 것은 없다.

"스타더스는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녀를 믿고, 비행기를 추락시키면 됩니다."

내가 진지한 얼굴로 그리 말하자, 서은이는 살짝 부루퉁한 얼굴로 이렇게 물었다.

"웃겨요. 대체 그 여자의 뭘 믿고 그러는 거에요?"

나는 그 질문을 슬쩍 웃어 넘길 뿐이었다.

***

준비는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가짜 폭탄도 찍고, 폭발한 척 하기 위한 연기 발생기도 날개에 몰래 붙이고.

이륙되기 전에 미리 비행기 내부로 순간이동해 들어가서 이것저것 장치하고, 기장들도 중간에 잠들어버리게 세팅하고, 기기판에도 미리 조작을 가해놓고...

히어로 만화랑 영화들을 하도 많이 읽어서 짜낼 수 있던 나의 계획들과, 두 천재의 조력이 합쳐져 겨우 이루어낸 결과물.

솔직히 이정도 테러면... 거의 예술에 경지에 도달 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기획을 오래 한 만큼, 테러 자체는 속전속결로 이루어졌다.

비대면으로 테러를 하는건 처음이라 좀 이상한 기분이 들기는 했는데, 뭐 그건 감수해야지. 내가 추락하는 비행기에 탈 수는 없는거자너? 안전 좋아. 좋아 좋아!

"안녕하세요 여러분! 고도 25000피트에서 일어나는 지상 최대의 퀴즈쇼. 아니! 상공 최대의 퀴즈쇼, 더 에고쇼 라이브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근데 이게 탁 트인 곳에서 카메라를 보며 말할때는 술술 나왔는데.

지하 깊은곳에 있는 좁은 방안에서 마이크에 대고 말하니까 뭔가 좀 쪽팔리기 시작했다.

옆에서 서은이와 수빈씨가 자꾸 바라보는데, 제발 그만 봐주세요.

겁나 신경쓰여! 텐션이 안나온다고!

"룰은 간단합니다! 총 10문제에 넌센스 퀴즈가 나갈텐데, 그거를 맞추시면 됩니다!"

"만약 모두가 틀린다면? 펑. 폭탄이 터진답니다!"

나는 마이크에 대고 열심히 말했다.

기지에 있는 화면에서는 비행기 안의 사람들이 실시간으로 생중계되고 있었다.

참고로 이 영상은 또 지상파 3사를 해킹해서 전국에 송출되고 있다.

온갖 기술자들이 다 달라붙어 전파납치를 방지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장치를 해놓은 것으로 보이지만...

응, 그냥 서은이와 수빈씨에게 개같이 털려버렸다. 아디오스, 아미고...

근데 사실 굳이 이렇게까지 안하고 유튜브에만 실시간 라이브 올려도 지네들이 알아서 긴급편성으로 송출해 줄거 같기는 한데..

몰라. 이제는 전통이다.

"자! 그럼 바로 두번째 질문으로 가보겠습니다! 세상에서 뜨거운 과일은 무엇일까요?"

계속해서 넌센스 퀴즈를 방송하며 느낀건데...

아니 이 사람들, 왜 이렇게 잘맞춰?

솔직히 나는 한 7번째 8번째 쯤에서 다 나가 떨어질줄 알았는데.

끝까지 악으로 깡으로 버텨서 10번째까지 왔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건 머리가 벗겨진 한 아저씨. 어디보자 이름이... 김덕배? 대체 어떻게 계속 맞추는거야...

"자! 드디의 10번째, 마지막 문제입니다! 어린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기름은?"

그렇게 내 마지막 질문이 던져졌고.

나에게는 아이유라는 답이 보내져왔다.

사실 아이유라 보냈든 오월오일이라 보냈든 그런건 중요한게 아니다.

중요한거는 뭘보냈든 무조건 오답이라는거지.

...근데 기어코 마지막까지 맞추네. 복수정답 안했으면 큰일날뻔.

"자, 정답을 맞춰보겠습니다. 어디보자, 아이유라고 쓰셨네요. 정답은... 오월오일이었습니다! 안타깝네요. 그럼 뭐, 안녕히가세요!"

거기까지 말하고 나서 나는 버튼을 눌렀다.

펑! 미리 장치해둔 소음기가 돌아가고.

비행기가 연기를 뿜으며 밑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사실 그냥 밑으로 하강하는 거기는 하지만.

"휴, 드디어 끝났네."

나는 마이크를 끄고 의자에 벌러덩 누워버렸다.

가만히 앉아서 입만 터니까 텐션 유지하는게 너무 힘들어...

내가 그렇게 누워있자, 옆에서 조작을 다 마친 서은이가 말을 걸었다.

"오빠, 이제는 뭐해요?"

"뭘하긴, 스타더스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지."

"걔가 과연 올까요?"

"당연히 오지, 스타더스가 누군데."

그렇게 나는 기다렸다.

"이제 곧 올거야."

기다렸다.

"이제 출발 했을듯?"

계속 기다렸다.

"지금 가고 있는거겠지?"

그렇게 한참을 기다린 결과.

"으아아아악!!! 얘 왜 안와!!!!!"

나는 기어코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아니 왜 안와! 지금까지 진짜 안오면 곧 비행기 산산조각난다고!

"아! 오빠, 깜짝 놀라게 왜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그래요?"

"서은아! 애 뭐하고 있나 빨리 확인해봐! 근처 시시티비 해킹해서라도!"

"네, 네... 알았어요."

"아 찾았다. 오빠, 스타더스 여기 바닷가에서 그냥 비행기를 지켜만보고 있는데요?'

"뭐라고!! 대체 왜 그러고있는거야!!"

이런건 내가 아는 스타더스가 아니야!

"딱 보니까 자기도 아는 것 같은데요? 가봤자 끔살이라는걸 아니까 그냥 가만히 있는거죠."

서은이의 말에 나는 팔짝 뛰고 말았다.

뭐라고! 안돼! 스타더스는 마음만 먹으면 뭐든 할 수 있는 애라고! 일단 비행기 앞에다가 대려다 놓으면 각성해서 막을 수 있을거라니까?

"젠장... 어떡하지? 이대로 가면 방법이..... 그래, 이어폰. 인이어 이어폰!"

나는 떠올려낸것이다!

신하루는 늘 귀 안쪽에 작은 인이어 이어폰을 끼고 다녔다. 거기로 소통할 수만 있다면!

"서은아, 신하루 귀안에 있는 이어폰에 강제로 연결할 수 있어? 빨리!"

"잠시만요... 아, 이거 내선으로 연결된 보안용 연락망이라 뚫기가 좀 어렵네요... 언니! 저 좀 도와줘요."

"알았어!"

그렇게 둘이 달라 붙어서 컴퓨터로 계속 시도할 동안.

탁. 탁. 탁.

나는 정신사납게 다리를 떨었다. 불안해 죽겠네 진짜.

그렇게 억겁같은 시간이 흐르고.

"오빠! 뚫는거 성공했어요!"

"드디어!"

나는 서둘러 달려갔다.

컴퓨터에 잡히는건 무언가 복잡한 주파수 그래프.

"오빠, 근데 중요한게 저쪽에서 연락을 안받아주면 그대로 아웃이에요."

"괜찮아, 그러면 받을때까지 걸면 돼."

나는 그렇게 대답한뒤 자리에 앉았다.

심호흡을 한번 하고.

후우-.

뚜르르. 뚜르르.

가는 연락.

그리고.

달칵.

연락이 받아졌고.

나는 차분히,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스타더스씨. 에고스틱입니다."

[이 쓰레기새끼가...]

연결이 되자마자 돌아오는 욕설.

그러나, 지금 내가 욕먹는게 중요한 것이 아니였다.

"다름이 아니라, 궁금해서 그러는데. 왜 구하러 가지 않으세요?"

왜 구하러 가지 않느냐.

왜 여기서 이렇게 가만히 있느냐.

내 물음에 가벼운 욕설을 몇번 더 던진 그녀는, 끝내 입을 열었다.

[내가, 저걸, 어떻게, 막을까.]

[시속 1000km로 떨어지고있는 저걸.]

[나보고 죽으라는거냐.]

나는 그 말을 듣고.

생각보다.

생각보다 훨씬 큰.

큰 충격을 받았다.

그렇구나. 그녀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던 거구나.

정확히 이맘때쯤 그녀는,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내가 알던 스타더스는 이렇지 않았다고 생각할려던 찰나.

생각해보니 이때의 스타더스는, 이럴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타더스가 이길수 없는 적을 만나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건 후반부의 이야기.

원작의 초반부에서, 그녀는 다 자신이 충분히 상대가능해 보이는 적들과만 싸웠다.

내가 그걸 비틀어놓았기 때문에, 현재 그녀가 좌절감을 느끼고 있던 것.

그러나 내가 제시한 상황은, 그녀의 현재 힘만으로는 해결 불가능한 상황.

처음으로 갑작스럽게 나타난 재해에, 그녀는 좌절하고 만 것이다.

이래서는 안된다.

내가 아는 스타더스는 이렇지 않다.

극복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을 만나도, 이를 악물고, 고개를 들고, 앞으로 나서서 그 상황을 정면돌파하는.

자신의 능력을 믿고, 자신의 의지를 신뢰하며 적을 향해 불굴의 의지로 나서는 사람. 그게 스타더스, 신하루다.

근데 어째서 이번에는 나서지 않는거지?

아.

내가 처음부터 너무나도 높은 벽을 준건가.

조금씩 벽을 넘으며, 다음의 벽도 자신이 부술수 있다는 자신감을 줘야 했는데.

압도적인 벽에, 의지를 꺾어버리고 만 것인가.

그럼 어쩌지?

이제 어떻게 하지?

...

어떻게 하긴 어떻게 해.

다시 의지를 줘야지.

그녀가 할 수 있다는걸 알게 해야지.

스스로를 믿게 만들어야지.

그녀가 뭐라고 했었지?

'내가 저걸 어떻게 막을까. 나보고 죽으라는거냐?'

그래. 그렇게 말했었지.

생각을 정리한 나는 침착한 목소리로, 다시금 입을 열었다.

"아니요, 할 수 있습니다."

너는 할 수 있다.

너는 이 세계의 주인공이기에.

너는 의지만 있다면, 무엇이든 쟁취할 수 있는 사람이기에.

"당신은 할 수 있습니다. 비행기의 추락을 막으세요."

내가 진심을 무겁게 담아 건내자, 들려오는 그녀의 조용한 목소리.

[...그게 말이 돼? 그냥 나 이 기회에 제거하려고 하는거, 내가 모를 줄 알어?]

제거? 내가? 당신을?

나는 어이가 없어졌다.

누가 누구를 제거한다는 말인가.

순간적으로 정신줄을 놓은 나는, 그녀에게 진심을 담아 말해버렸다.

"제가 왜, 당신을 죽이려 듭니까?"

내가 왜 너를 죽이겠는가.

"당신이 없는 저에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죠?"

이 빌어먹을 만화 속 세계에 떨어졌다는걸 깨달은 이후, 방황하고 고뇌하다 남은 생을 너를 위해 살겠다고 다짐했거늘.

"당신이 없으면 저는 그저 흔하디 흔한, 일개 빌런일 뿐이죠."

단순히 빌런이라고 지칭할 수도 없다.

너가 없는 나는, 그저 이 세계의 이방인. 불필요한 부속품.

내 모든 가족, 친구, 자산, 사회적지위, 명예, 우정, 사랑, 모든걸 다 잃은 채 이세계에서 살아가는 나는 내가 아니다.

이 세계에서, 너를 위해 살지 않는 내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너가.

오직 너만이.

"당신이 저를, 완성시킵니다."

그러니 나서세요.

주먹을 쥐고 다리에 힘을 주고, 저 하늘로 날아 사람들을 구하세요.

당신은 할 수 있습니다.

그게, 당신이니까.

거기까지 말한 뒤, 나는 그저 그렇게 연락을 끊어버렸다.

옆을 보니, 서은이와 수빈씨가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게 느껴졌다.

아, 생각해보니 저 둘이 보는 앞에서 스타더스에 대한 내 마음을 줄줄히 읊었네.

음. 쪽팔린걸.

나는 그런 둘에게, 그저 옅게 웃으며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자, 이제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자."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이제는, 그저 신하루 그녀가 어떻게 마음먹는지에 따라 달렸다.

***

[네!!! 스타더스가!!! 비행기를!!! 착륙시키는데 성공했습니다!!! 승객들이 전원 무사히!!! 내리고 있는 모습입니다!!! 국민 여러분!!! 대한민국은 안전합니다!!!]

"와. 오빠. 진짜 오빠 말대로 저걸 멈춰세웠네요. 어떻게 한거지? 오빠? 오빠!"

서은이가 나를 불렀을때, 나는 의자에 앉은자리에서 그대로 쭉 미끌어지고 있었다.

"서은아..."

"오빠 왜 이래요?"

"우리 놀러가자...."

진짜 테러 한번 하고 나니까 조오오온나 힘드네.

난 쉬어야돼.

쉬어야겠어.

"테러 한번만 더했다가는 골병들겠다 야..."

3연속 테러했으니까.

이젠 좀 휴가 가져보자고.

이 빌런은 휴식이 필요해요.

EP.36 여행을 떠나요

"자, 가자!"

예전에 산 SUV를 타고, 우리는 집을 나섰다.

목적지는 부산.

서은이가 바다를 한번도 본 적이 없다고 해서, 이번 기회에 보러 가기로 했다.

"오빠, 지금이라도 KTX타고 가면 안돼요?"

뒷자석에 앉은 서은이가 투덜댔다.

"서은아, 너 뒤에 트렁크에 있는 자루 보이지? 저게 다 총이랑 그런건데, 저걸 들고 어떻게 기차를 타겠니?"

"나 참... 거기 얼마나 있는다고. 2박 3일인데 뭘 이렇게 챙겼어요?"

서은이는 고개를 돌리더니 뒤에서 자루에 있는 것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애가 운전하는데 위험하게 뭘하는거람.

"오빠, 이 마스크는 뭐에요? 처음보는건데?

서은이는 자루 안에서 가면을 꺼냈다.

내가 원래 쓰던 얼굴의 반만 가리는 가면이 아닌, 얼굴 전체를 가리는 가면.

"거기가서 뭔 일이 터질 줄 모르잖니. 혹시 모르니까 얼굴 가릴거 챙겨가야지."

내 말에 옆에 조수석에 타고 있던 수빈씨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인식저해 하고 오신거 아니에요?"

"아, 전 안했어요. 저랑 서은이는 대중한테 얼굴이 노출된적이 아직 없어서."

"아..."

수빈씨는 말끝을 흐렸다.

잠깐, 생각해보니까 여기서 유일하게 인식저해를 하고 여행온게 수빈씨구나.

그리고 수빈씨 얼굴을 대중에 생중계 때린게 나였고.

음.

이 얘기는 그만하자. 미안하니까...

뒤에서 서은이만 아무생각 없이 폰을 보며 놀고 있었다. 아무 생각 없어서 좋겠구나.

그렇게 우리는 부산으로 달려갔다.

운전 5시간하니까 몹시 힘들구만...

***

"바다다!"

해운대에 왔다.

서은이가 좋아하니까 좋구만.

애는 뛰어 놀라고 하고, 나는 돗자리 깔고 파라솔 아래 앉았다.

서있는 것도 힘들어. 좀 앉아있어야돼.

옆자리에 와서 앉은 수빈씨는 음료수같은걸 두개 사서 나에게 하나 건내주었다.

해는 쨍쨍하고, 바닷가에 사람도 많지 않으니 좋구만.

이래서 여행은 평일에 다녀야 해.

옆에 앉은 수빈씨는 빨대로 음료수를 한모금 마시더니, 머리를 귀 뒤로 쓸어 보내며 내게 말했다.

"저도 바다는... 아주 어렸을적에 마지막으로 보고는 오랜만에 보네요."

"저도 오랜만에 봐요."

이 세계에 떨어진 이후로 처음 보는것 같다.

물론 바다야 그냥 바다기는 한데... 그래도 보면 뭔가 속이 뻥 뚫리는게 있다.

내가 이 세계에서.

처리한 빌런만 4명.

저지른 테러만 3개.

너무 바쁘게 살았구만.

난장판도 좋지만, 가끔 이렇게 푹 쉬는 것도 필요한 법이다.

"...다인씨에게는, 늘 감사하고 있어요."

내가 그렇게 바다를 보며... 뭐라고 해야되지? 바다멍? 물멍?을 하고 있을 때.

수빈씨가 옆에서 조용히 말을 건냈다.

"감사요? 뭘요?"

"그냥... 모든게요. 처음에 안죽이고 살려주신것도 고맙고... 잘 대해주시는 것도 고맙고..."

"하하, 무슨 소리세요. 오히려 제가 더 고마운게 많죠. 늘 집안일을 도맡아 해주시고, 서은이 보좌까지 해주시는데."

"그렇게 말해주셔서 감사해요."

수빈씨는 그렇게 말하며 작게 웃었다.

이 분위기 뭐야?

이거 혹시 무슨 플래그야?

만화보면 이런 말 한 사람은 꼭 다음권에서 죽거나 배신때리던데?

나 무서워!

내가 갑자기 왜그러냐 묻기도 전에, 바다를 구경하러 홀로 뛰어갔던 서은이가 되돌아왔다.

"벌써 돌아왔네? 다봤어?"

"네. 아니 뭐 자꾸 봐보니까 게임에서 많이 본 바다랑 큰 차이도 없고. 뭔가 익숙한 느낌이네요 그냥."

세상에.

게임에서 바다를 많이 봤다고 해서 처음 본 바다가 익숙하다니.

이건... 게임의 순기능인가 악영향인가?

잘 모르겠지만 넌 돌아가면 게임 좀 통제해야 될 것같다.

"그래도 맨발로 모래사장 밟는건 신선했어요. 별점 5점만점에 3점정도?"

...해수욕장 와서 별점 매기는 애는 처음보네.

근데 심지어 짜! 한 4점은 주지!

"그럼 우리 밥이나 먹을까요?"

그럽시다.

***

우리는 국밥집에 왔다.

부산하면 또 국밥이지.

"오빠, 여기 깍두기 국물을 국밥에 부어먹으라고 적혀있는데, 진짜에요?"

"음... 너 그렇게 먹고싶으면 그렇게 먹어라."

난 싫어.

서은이는 기어코 깍두기 국물을 국밥에 부어먹었다. 대체 왜 그런짓을?

"먹을만 하네요."

의외로 서은이는 먹을만 하다는 반응이었다.

그런가? 취향차이인가.

뭐, 잘먹는걸 보니까 좋네.

사람이 맨날 집에서 집밥만 먹는거 보다는, 이렇게 뚝배기 후후 불어가며 먹는 것도 가끔씩 해줘야된다.

여기 국밥은 고기도 많이 들어가있네, 좋아.

국밥집 벽에 걸려있는 티비에서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협회는 A급 빌런 에고스틱에 대한 규탄성명을 발표하면서, '그를 잡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범인이 순간이동을 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정보통신망 조작에 능하다는 점 때문에 수사에 차질이 빚고 있다고 합니다. 네티즌들은 '에고스틱 무섭다', '스타더스VS에고스틱 싸움 봤냐? 진짜 전설이다...'등의 반응을 보였습니다.]

딱 하필 내 얘기 하고 있었네. 근데 여기 뉴스는 어째 좀 이상한 것 같다...?

내가 깍두기를 우물거리며 화면에 나오는 내 얼굴을 보고 있을 때, 앞에서 밥을 먹던 서은이가 내게 물었다.

"오빠, 근데 왜 오빠는 자기 이름을 에고스틱으로 지었어요?"

나는 순간 깍두기가 코로 나올 뻔했다.

얘가 지금 사람 많은데서 큰소리로 무슨 얘기를 하는거야!

급하게 눈동자를 굴리며 주위 사람들을 바라보니, 다행히 다들 이쪽에 큰 관심은 없어보였다.

내가 몹시 당황한 얼굴로 서은이를 바라보자, 서은이는 뭘보냐는듯 보다가 '아!'하더니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걱정하지 마요. 저번에 오빠가 뭐라뭐라 해서 소음차단기 만들어서 갖고왔어요."

그러더니 책상위에 놓은건 마치 조그마한 무전기처럼 생긴 무언가.

"이게 뭔데?"

내가 조심스래 묻자 서은이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우리끼리 하는 말은 다른 사람들에게 안들리게 해주는거에요."

"오? 이런건 또 언제 만들었어?"

"저번에 오빠가 사람많은데서 신분관련된 말 하지 말라길래, 집에서 설계도 뒤져보니까 나오더라고요. 한은그룹 얘들이 없는게 없더라고요."

"신기하네."

"그래서 오빠, 왜 이름을 에고스틱으로 지은거에요?"

서은이가 짖궃게 웃으며 나한테 물었다. 아니, 이거 저번에도 묻지 않았나?

"이기적인을 뜻하는 에고이스틱(Egoistic)에서 따온거라니까. 아니, 들으면 딱 떠오르지 않나?"

"아니요, 그냥 스틱(Stick)붙인거 같은데... 근데 거기서 중간에 이는 왜 뺀거에요?"

"왜 뺐냐고? 그냥... 뺐는데?"

스타더스트도 스타더스로 줄였는데.

에고이스틱을 에고스틱으로 못줄일건 뭔가.

"또 스타더스... 솔직히 스타더스도 왜 뒤에 트를 뺀건지 모르겠는데... 차라리 오빠도 뒤에 틱만빼서 에고이스라고 하지 그랬어요? 이게 훨씬 나은데."

"제가 이름 정할때 같이 있었으면 더 좋게 해줄수 있었을거 같은데, 안타깝네요."

옆에서 조용히 밥을 먹던 수빈씨도 한마디 거들었다.

"...자꾸 이러면 아예 이름 망고스틱으로 바꾼다. 다음 테러때 카메라 앞에서 망고스틱의 망고쇼에 온걸 환영합니다 이럴거야."

"그건 귀여운것 같은데요? 전 찬성!"

서은이가 밝게 웃으며 말하자 내 가슴이 찢어졌다.

농담이야... 농담이라고...

티비속 뉴스는 내 얘기를 끝내고 다음 내용을 보도하고 있었다.

[속보입니다. A급 히어로 섀도우워커가 현재 쓰러졌다고 합니다. 협회는 '특수활동을 위해 낮에 너무 과도한 능력을 사용한 것이 원인'이라고 밝히며, 조속히 치료를 완료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네티즌들은 '협회의 무능이 두렵다' '꾀병 아니냐' '협회장은 안보공백을 책임지고 사퇴하라' 등의 반응을 보였습니다.]

"아니, 쟤는 왜 갑자기 쓰러진거야?"

나는 황망히 티비를 바라보았다. 설마 스타더스 제주도까지 왔다갔다 해준거 그거 때문에 저렇게 된건 아니겠지? 그거 때문이라면 좀 미안해지는데...

[스타더스의 팬카페, '별먼지단'의 회원수가 급격히 상승하고 있습니다. 저번의 비행기 사건 이후로 창설된 이 카페는, 며칠만에 단숨히 10만 회원자를 돌파했습니다. 대한민국에 히어로의 팬카페가 생긴건 굉장히 이례적인 일입니다.]

"오!"

나는 밥을 먹다가 말고 티비에 집중했다.

그래, 믿고 있었다고! 역시 내가 개처럼 구른게 효과가 있구만!

"...오빠 팬카페 생겼을때보다 더 좋아하네요. 참나. 누가보면 오빠가 스타더스 아빠인줄 알겠어."

앞에서 밥을 먹던 서은이가 나한테 툴툴댔다. 음, 너무 대놓고 좋아했나?

[다른 속보입니다. 전문가들이 에고스틱의 저번 비행기사태에 '폭탄이 터지지 않은것 같다'라는 감식결과를 발표해 파문이 일고 있습니다. 현재 해당 기체는 바다에 침몰해 정확히 확인할 수는 없지만, 마지막으로 찍힌 사진자료를 토대로 판단했을때 폭발의 흔적을 확인할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말했습니다. 현재 가라앉은 비행기를 인양하고 있으며 자세한 결과가 나오는대로...]

"아니 시발 저거는 어떻게 안거야."

세상이 날 억까해.

"오빠, 그냥 이제 포기해요. 지금 실시간 트렌드 1위가 '#망고스틱_믿고_있었다구' 던데요?"

서은이가 끔찍한 진실을 폰으로 띄워 나에게 보여줬다.

아니야, 이런게 현실일리가 없어..

"아니 잠깐. 폭탄을 터트리던 안터트리던 일단 추락시킨거는 맞는데, 나를 커버쳐주는 사람들이 남아있다고?"

"이 사람들 말로는 오빠가 다 큰그림을 그렸을거라는데요? 결국 이번에도 민간인 피해가 없었지 않냐고 주장하네요. 망고단들 지지가 엄청난데요?"

"아니, 그게 말이 돼? 내가 한 짓이 있는데?"

"저도 신기해요. 다들 단체로 약먹었나? 비정상적인 지지세인데요? 이거 봐봐요."

"뭔데?"

나는 서은이한테 폰을 받았다.

===

[망고스틱 <--- 믿고 있었으면 개추ㅋㅋㅋㅋㅋ]

일단 나부터ㅋㅋㅋㅋㅋ

[추천]1355 [비추천]32

[ㄹㅇㅋㅋ 아직도 안믿던 새끼 없지?]

[왜 폭탄 안썼겠어 다 살리려고 그런거지ㅋㅋㅋㅋ]

[큰그림 ㅇㅈ합니다]

===

"서은아... 대체 이런 글은 어디서..."

"다인씨, 이거 봐봐요. 제 학교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에요."

"그건 또 뭐죠...?'

===

[글쓴이]익명

[제목]비행기 승객들 인터뷰 떴다!!

(기자)어떠셨나요?

(승객1)어우 무서웠죠. 무서웠는데, 내리고 나서 생각해보니까 그래도 의미있던 경험인 것 같았어요. 삶의 소중함을 상기하게 됐달까? 조금 무서운 롤러코스터 탄 느낌?

(승객2)나름 재밌었던거 같아요. 마지막에 추락할때는 아찔하더라고요. 근데 뭐, 결국 제주도에 도착은 정상적으로 했어서 잘 놀다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롤러ㅋㅋㅋ코스터ㅋㅋㅋㅋ

[익명1]승객들 다 깡 좋네ㄷㄷ

[익명2]상남자의 나라 대한민국

[익명3]ㄹㅇㅋㅋ 롤러코스터 타고 쫄아서 떨면 안돼지ㅋㅋㅋ

ㄴ[익명4]롤러코스터ㅇㅈㄹㅋㅋㅋ

===

내 감상은 담백했다.

"진짜 세상이 미쳐돌아가네."

말세다 말세.

*

그렇게 밥을 다 먹은 우리는, 후에 이곳저곳 구경다녔다.

국제시장도 가보고, 다른 맛집도 들려보고.

재밌게 놀다보니 어느새 밤.

"서은아, 우리 호텔은 예약 해둔거야?"

"당연하죠! 5성급 호텔 예약해놨어요."

"오, 이름이 뭔데?"

"시그니쳐 호텔이라는데요?"

"그래? 들어본 거 같기도 하고..."

"부산에서 제일 크고 유명하고 비싼 호텔이에요! 예약하기도 힘들었어요."

"그래, 잘했다. 빨리 가서 쉬자."

난 너무 지쳤어요 땡벌.

하, 가서 푹 쉬고 자야지.

그래도 맨날 테러만 하고 다니다가 오랜만에 푹 쉬니까 좋네.

당분간은 아무일 없겠지?

***

어두운 공간.

총으로 중무장한 사람들이 일제히 늘어서 있었다.

그 앞에 선, 대장격으로 보이는 자가 입을 열었다.

"오늘밤. 우리는 부산을 공습한다. 알겠나?"

""예!!!""

"우리 부대가 공습하는 곳이 어디라고 했나아!!"

""부산 시그니쳐 호텔이라고 했습니다아앜!!!!""

장병들의 고함소리가 그곳을 가득 매웠다.

***

음.

아무일 없는거 맞겠지?

"뭔가 불안한데..."

"오빠, 혼자 중얼거리지 말고 빨리 와요."

"알았다..."

그래. 뭔일 일어난다 해도 적어도 그게 오늘은 아니겠지 뭐.

EP.37 폭풍전야

논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저녁.

부산에서 하루 신나게 돌아다닌 우리는, 그만 잠을 자기 위해 호텔 안으로 들어왔다.

부산에서 제일 비싸다는 5성급 호텔, 'The Signiture' 호텔.

개인적으로 이렇게나 부산의 상징적인 호텔 이름이 영어인건 애국자인 나로써는 영 마음에 안드는 일이다. 우리말로 하지. 시그니쳐대신 사인이라는 좋은 한국말이 있는데.

...생각해보니 사인도 한국말이 아닌거 같기도 하고. 아니, 일단 여기서 시그니쳐는 그 뜻으로 쓰이는게 아닌가? 몰라, 일단 들어가자.

내부의 로비는 굉장히 크고 고풍스러웠다. 마치 사람 수백명은 너끈히 들어갈 것같은 공간. 수빈씨는 일단 짐 지키고 있으라 하고, 나랑 서은이는 체크인을 위해 프론트로 향했다. 예약을 서은이가 해서 서은이도 같이 갔다.

"어서오세요. 예약자분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아, 한서은으로 되어있을겁니다."

"네, 확인되셨습니다. 2708호 키 드리겠습니다."

"....방이 한개인가요?"

"네. 한방만 예약하셨네요."

"아, 네..."

나는 카드키 하나를 든 채 로비로 터덜터덜 걸어나오며 옆에 있던 서은이에게 물었다.

"서은아, 왜 방을 한개로 잡았냐?"

내 의문어린 시선에 서은이가 눈을 피하며 말했다.

"아니... 뭐, 돈도 아끼고 좋잖아요...."

"우리가 돈을 왜아껴? 너랑 나랑 합치면 넘쳐나는게 돈인데."

"에잇! 침대도 슈퍼킹이니까 그냥 와서 자요!"

"서은아? 심지어 침대도 하나라고?"

내가 황망히 서은이를 바라보자, 옆에 있던 수빈씨가 와서 서은이를 껴안으며 말했다.

"오랜만에 셋이 자면 좋죠 뭐. 후후, 기대되네요."

"어... 그 저희는 예전에도 한번도 셋이 잔적은 없는데...."

둘은 내 말을 안듣고 슝 엘리베이터 쪽으로 가버렸다.

내 가장으로써의 권위가...

***

"와, 방이 진짜 넓어요!"

호텔 방 안으로 들어온 서은이가 방방 뛰어다니며 감탄했다.

애가 늘 새초롬하게 컴퓨터 앞에만 앉아있는걸 보다가, 이렇게 눈을 반짝거리며 활발히 움직이는걸 보니까 좋네.

역시 학생은 밖에 나가서 좀 뛰어놀고 그래야해, 암.

"와, 무슨 목욕탕이 온천만하네요."

화장실쪽으로 들어간 수빈씨도 눈을 휘둥그래 뜨며 말했다.

그래, 역시 5성급호텔이라 이건가?

살면서 가본 호텔중에 제일 크고 넓었다.

무슨 가구 하나도 부티나는 목재로 이루어진게, 마치 실수로 불태웠다가는 수천만원을 물어내야 할것 같은 기분.

이 호텔에서는 절대로 불장난을 하면 안될것같다. 아, 불장난은 원래 하면 안되나?

"야경은 멋지네."

나는 그렇게 말하며 커튼을 치웠다. 말 그대로다. 높은 층이라 그런지 부산 시내의 야경이 내려다 보이는 절경. 저 멀리 밤바다가 파도 치는 것도 보인다.

"하아암... 와, 티비 엄청 크네."

나는 침대방에 있는 티비를 보며 감탄했다. 우리 기지에 있는 티비도 이정도 사이즈는 아닌데, 하나 바꿀까?

근데 이와중에 침대는 진짜로 하나였다. 물론 사이즈는 엄청 커서 마치 침대 4개 붙여논것 같기는 한데... 굳이 침대 하나로 잡았어야 했을까?

캐리어를 끌고 어수언하게 있는 이들에게 나는 먼저 말했다.

"일단 짐정리하고, 씻고 좀 놀다가 자자."

오늘 하루종일 이리걷고 저리걸었더니 피곤해.

***

그렇게 모두가 씻고, 침대에 누웠다.

서은이가 가운데 눕고, 나랑 수빈씨가 양 옆에 누운 자세.

우리는 누워서 티비나 보며 쉬기로 했다.

뭐 재밌는거 없나 채널을 돌리고 있을때, 옆에서 휴대폰을 보던 서은이가 입을 열었다.

"오빠, 나 물 좀 가져다줘."

응? 뭐라고?

잘못들은건가?

"물."

그러나 서은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한번 더 말했다.

아니 서은아, 너가 손이 없니 발이 없니...

"서은아...이제는 오빠를 그렇게 부려먹으려 하다니. 크흑... 내가 너를 잘못키웠구나. 좀더 엄하게 키울껄, 아이고 아이고.."

내가 장난스래 통곡하는 소리를 내자, 서은이가 당황한듯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아니 오빠 그런게 아니라! 오빠 염동력 있잖아. 그냥 그걸로 쓰윽 꺼내주면 안돼요? 손만 까딱하면 되는거 아니에요?"

아,그런거였나.

난 또 우리 서은이가 패륜아인줄 알았잖어...

"음, 아쉽지만 서은아. 그냥 너가 일어나서 가져오렴."

"힝... 알았어요."

"아니 이거 왜 그러냐면, 오빠는 힘을 아껴야돼."

"힘? 무슨뜻이에요?"

"음...내가 이걸 설명을 안해줬나? 어디보자... 너 RPG게임 하다보면 MP같은거 알지. 마나라고 해야되나? 마법사들이 마법쓸때 채워야하는 수치."

"아 그거요? 그 HP칸 아래 있는 파란 막대기?"

"그래 그거. 오빠 염동력이 그런거야. 자주 쓰다보면 힘이 딸려서 무슨 인형뽑기기계 집게손 정도의 힘밖에 안되는데, 안쓰고 가만히 있거나 차징? 뭐라고해야되지 정신집중? 하다보면 힘이 조금 더 쎄지거든. 그래서 위기 상황을 대비해 힘을 비축해 놔야 한다는거지."

실제로 마지막으로 쓴게 몇달전의 악어놈 처리할때라 그런지, 지금은 그래도 꽤 강해진 느낌이었다. 존버는 승리한다...!!

"아. 이제 알았네. 전 그냥 막쓰는줄... 갔다올게요."

그렇게 서은이는 터덜터덜 호텔 미니냉장고를 향해 갔다.

난 그동안 채널이나 돌려봐야지.

예능...뉴스...

난 그냥 뉴스나 틀었다.

솔직히 이 세계는 뉴스가 예능보다 더 재밌어.

뉴스에서 뭐 B급 빌런이~ 화염 능력자가~이러는데 재미가 없을 수가 없지.

뉴스를 틀자, 그곳에서는 금발머리를 한 여자와 하늘색의 긴 머리카락을 가진 여성의 사진이 나왔다. 어, 왼쪽은 스타더스인데. 오른쪽은 걔잖아. 북해빙녀.

뉴스에서는 앵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섀도우워커의 혼수상태 보도 이후 국민들의 안보에 대한 우려섞인 목소리가 끊이지 않자, 협회 소속 A급 히어로 스타더스와 아이시클이 직접 해명에 나섰습니다. 둘은 24시간 비상체제로 있겠다고 하며, 기존과 마찬가지로 스타더스는 서울 및 수도권, 아이시클은 경북 경남 및 부산쪽을 전담한다고 밝혔습니다.]

뭐, 원래부터 스타더스는 서울 담당이고 북해빙녀는 부산담당이었으니까, 지금 저 얘기는 사실상 저 둘이 24시간 일한다는 얘기다. 불쌍하네...

북해빙녀는 아직은 아무도 이렇게 안부르고 정식 히어로명칭인 아이시클로 뉴스에 나온다. 뭐, 북해빙녀는 후반부에 북한을 얼려버리고 나서 붙은 이명이니까 당연한거겠지만은.

내가 짧게 원작을 회상하는동안, 앵커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이에 대해 국민들이 '대한민국이 얼마나 넓은데 둘 가지고 커버가 되겠느냐' 라며 우려를 표하자, 협회가 '위험을 대비해 잘때 침대 옆에 야구 방망이를 하나씩 구비해놓으라'라는 입장을 밝혀 전국적 공분을 사고 있습니다.]

....여전히 협회는 저러고 있구나.

뭐, 협회야 늘 저랬으니까 딱히 어색할것도 없다. 애초에 내 기억에 협회장부터 좀 돌았었던거 같으니...

근데 진짜 치안이 좀 불안하기는 하겠네. 나도 뭐 준비해놔야 하나?

"오빠, 또 뉴스봐요? 이럴때보면 진짜 아저씨같다니까."

갑자기 극딜을 퍼부으며 침대방으로 돌아온 서은이. 아니야, 억울해. 너한테는 이게 일상이겠지만 나는 꼭 영화보는 기분이라고.

"어? 근데 그거 물이 아니라 콜라네? 그건 어디서 났어?"

"콜라요? 미니바 열어보니까 있던데요?"

순간 난 비명을 지를 뻔했다.

"서은아! 그걸 마시면 어떡하니! 호텔 미니바 안에 음료수나 과자가 얼마나 창렬한지 알어? 너가 마시고 있는 그 콜라캔이 한 오천원 할껄?"

내가 화들짝 놀라며 말하자 서은이는 왜 이러냐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아니 뭐 한잔에 오천원이든 오만원이든 어때요. 저희 돈도 많은데."

서은이의 말에 나는 순간 할말을 잃었다.

맞다, 우리 돈 많지?

내가 이 세계에 떨어진 이후 원작지식으로 번 돈이랑 애초에 서은이가 벌어놓은 돈까지 합치면, 굉장히 많다.

근데 너무 오랫동안 소시민처럼 살아서 그런가, 그걸 까먹게 되네.

"애초에 오빠, 이 호텔만해도 얼마인데요. 여기가 부산에 있는 모든 건물들 땅값중에 제일 비쌀걸요? 여기에서 유일한 5성급 호텔인데."

"음, 그래. 많이 마셔라. 마시고 이빨은 꼭 닦고."

"나 참. 내가 애에요?"

볼을 부풀리며 나한테 항의하는 서은이. 어, 너 지금 보면 굉장히 애같아...

수빈씨는 그런 우리를 보며 조용히 웃을 뿐이었다

*

"하아암... 이제 졸리네. 그만 잡시다 다들."

내일 일찍 일어나서 놀려면 일찍 자야하는법.

그렇게 다들 양치하고 불끄고 자리에 누웠다.

다같이 눕긴 했는데 침대가 워낙 커서 딱히 불편하지는 않았다.

근데 같이 한 이불 덮고 자니까 좀 그렇긴 하네.

누운지 얼마 안됐는데, 반대편에서 수빈씨가 조용히 쌕쌕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벌써 잠들었나. 눕자마자 잠드네.

나도 자기위해 눈감고 누워있을때, 옆에서 같이 누워있던 서은이가 아직 안자고 있었는지 조용히 중얼거렸다.

"오늘 재밌었어요...."

"음? 그래, 뭐가 제일 재밌었는데?"

"바다 본것도 좋았고, 시장 구경도 재밌었고... 가끔씩은 이렇게 놀러다니는 것도 좋을거 같아요."

"그래. 앞으로 가끔은 놀러 나오자."

놀러 나올 수 있으면 말이지.

일단 내 머릿속에 있는 테러계획들과 스타더스 성장 프로젝트는 다 완료하고...

"내일도 재밌게 놀려면 이만 자자."

"네에..."

서은이는 하품을 한번 하더니 배개에 얼굴을 파묻고 누웠다.

나도 빨리 자야지.

호텔이 참 조용하니, 잠이 금방 들것같다.

그리고 그 말대로, 나는 몇분뒤 바로 깊은 잠에 빠졌다.

내일 눈뜨면 해가 떠있겠지?

***

그러나 아직도 달이 어두운 도시를 비추는 늦은 밤, 호텔.

쿵.

쿵쿵쿵.

사방에서 들리는 무거운 발소리.

콰아앙-.

어디서 들리는 무언가 터지는소리.

꺄아아아악. 쨍그랑.

누군가의 비명과, 무언가 깨지는 소리.

쾅쾅쾅쾅쾅쾅.

우리방을 두들기는, 층간소음에.

""FBI OPEN UP!!!!""

그리고 방문 앞에서 들리는 고함소리까지.

"아니 시발..."

나는 자다가 말고 깨서 중얼거렸다.

대체 나한테 왜그래요.

EP.38 FBI OPEN UP!

야심한 밤, 부산 최고의 호텔.

그곳에서는 비명이 곳곳에 난무하고 있었다.

"으...뭐야, 당신들 누구야!"

"닥치고 죽기싫으면 나와라!! 빨리빨리 움직여!!!"

밤을 틈타 들어닥친 의문의 괴한들.

그들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각 층들로 이동해, 자고있던 손님들 방문을 부숴버리며 인질로 잡기 시작했다.

자다가 일어나자마자 얼굴에 겨누어진 총을 보고 화들짝 놀라는 사람들.

그들을 억지로 일으켜, 괴한들은 이들을 모두 1층으로, 1층으로 모았다.

"이게 마지막 층인가?"

"그래, 빨리 빨리 해치우자고. 아니면 보스가 분노하실거라네."

이미 아수라장이 된 복도.

총을 겨눈채 소리를 지르는 괴한들과 비명을 지르며 끌려가는 인질들로 혼란스러운 복도를 가로질러, 두 테러범은 자신들이 할 일을 하러 갔다.

아직 남아있는 방들에서 인질들을 잡아 오는것.

방문을 부수려고 드는 테러범에게, 옆에 있는 다른 테러범이 그의 손을 잡아 멈춰세우며 말했다.

"잠깐, 나 해보고 싶은게 있네. 늘 남의 방문을 부슬때마다 이걸 한번 외쳐보고 싶었어."

"그거 뭔가?"

"들어보게..."

그의 말을 들은 테러범은, 기가 차다는듯 웃으면서도 이렇게 말했다.

"어이가 없군... 그래도 뭐, 좋다. 그것도 나름 사나이의 로망이기도 하지. 내 같이 해주겠네."

"고맙군. 그러면 하나 둘 셋 하고 시작하세. 하나, 둘... 셋!"

그렇게 그들은 방문을 동시에 걷어차며 함께 소리쳤다.

""FBI OPEN UP!!!"

그렇게 부숴진 방문을 넘어 안쪽으로 진격하던 이들은, 침대에 누워있던 비몽사몽한 남자가 손을 한번 휘젓자 갑자기 날아오른 들고있던 총의 개머리판에 머리를 맞고 쓰러지고 말았다.

허망한 최후였다.

***

"이 새끼들은 대체 뭐야....?"

자다가 깬 나는, 비몽사몽한 눈을 부비며 중얼거렸다.

아니 갑자기 사방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나더니, 눈떠보니까 무슨 복면쓴 두명이 나한테 총을 겨누고 있잖어.

놀라서 그 총을 염동력으로 조작해 둘의 대가리를 치게 했다.

불시에 급습을 당한 그들은 침대 밑에 떨어져있었다. 얘네 뭐야?

"으으음... 무슨일이에요?"

옆에서 자고있던 수빈씨와 서은이도 드디어 깨어났다. 아니, 이 사단이 나는동안 우리는 대체 뭘 하고 있던걸까...

깨어나보니 들려오는 소리만 놓고 보면 아주 지옥도가 다름없다. 비명 소리, 우는 소리, 고함지르는 소리, 깨지는 소리, 부숴지는 소리, 총쏘는 소리 등등...

나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테러가 난거 같은데?"

아니 내가 진짜.

진짜로 웬만해서는 욕을 안쓰는 남자인데.

이건 정말 시이이이발 너무한거 아니냐?

대체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러는거야...

지금까지 내가 딱 두번 놀러갔는데 왜 두번 다 갑자기 이런 사건사고가 벌어지냐고..

부산에 호텔이 그렇게 많은데!

왜! 내가 있는 호텔에서 이런일이 벌어지는건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세상이 나를 억까하는 것같다.

나는 억울하다. 분명 착하게...까지는 아니어도 성실히 살았다고 자부하는데.

어째서! 신은 나 김다인을 낳고 저런 흉악한 악당들을 낳았단 말인가.

신이시여, 오늘도 정의로운 빌런이 되게 해주세요...

"하아암... 오빠, 대체 이게 무슨일이에요?"

자다가 깬 서은이가 피곤한 눈길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또 무슨 헛짓거리가 일어냐고 있냐는듯, 그냥 귀찮은 표정. 어째 이제는 별로 무서워하지도 않는다? 그새 테러에 적응이 된거여?

"잠깐, 주차장좀 보고 올게."

그렇게 나는 빠르게 주차장 안의 내 차로 순간이동했다.

"움직여, 움직여!!"

"물자 날러! 무기 챙겨!"

지하주차장도 이미 개판.

얼굴에 복면을 뒤집어 쓴 사람들로 가득 찬 군용트럭이 몇 다스씩 있었다.

신입, 멈춰라. 이곳은 지옥이다.

여기가 좀 안전해보이면 이곳에 서은이와 수빈씨를 대려다 놓을려 했는데, 그건 좀 무리가 있어보인다. 매애애애애우.

뒤적뒤적.

일단 나는 내가 챙겨온 바구니에서 필요한 것들을 챙겼다.

얼굴 전체를 가리는 노란 마스크, 체크.

무선 이어폰이랑 연결장치. 서은이와 떨어져서도 대화하려면 이것까지 챙겨야지. 체크.

총들은... 일단 내 계획대로라면 기관총은 에바고, 권총 작은것들만 챙겼다. 일단은.

빠르게 챙겨야 할 것들을 챙긴 나는, 잠깐 호텔 밖을 본 뒤 다시 방으로 이동했다.

아주 신속하게 행동하여 채 일분도 안지난 상황. 빠르게 돌아온 나는 불안해보이는 서은이와, 조용히 장황을 살피는 수빈씨에게 물품들을 건냈다.

"자, 일단 권총들 챙기고... 어떻게 쓰는지 수빈씨는 알테고 서은아 너한테는 저번에 가르쳐줬지?"

밖에는 여전히 소란스럽고 고함이 난무하는 상황.

오래 있다가는 들킬 수 있으니, 빠르게 설명해보자.

"지금 테러가 밖에 보니까 막 무장한 차들이 도로를 돌아다니고 헬리콥터도 날아다니고, 좋지가 않다. 그러니까 지금은 나랑 딱 붙어있는게 좋겠어. 일단 우리도 인질인척 내려가자."

내 말에 둘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놈이 내 잠을 깨워?

용서할 수 없다.

1층에 가면 놈이 있을 것.

하아, 평범하게 살고 싶었건만.

나는 총을 손아귀에 쥐었다.

아아, 이 서늘하고도 묵직한 감각.

2달만이구만.

'빌런' 에고스틱으로 돌아갈 때다.

"오빠... 왜 이런 상황에서도 폼을 잡는 거에요?"

서은이의 황당하다는 듯한 시선에 나는 괜히 뻘줌해져서 주머니 깊숙한 곳에 총을 넣었다.

다행히 잘때 입은 옷이 그냥 검정색 츄리닝이라 주머니에 넣는거는 문제 없었다. 하늘색 구름그려진 털잠옷 입었어봐, 얼마나 무안했겠어.

총 챙기고, 이어폰 끼고, 가면은 바지 깊숙한 곳에 쑤셔박고... 그래, 모든 준비는 끝났다.

"자, 일단 우리도 가자."

내가 그들에게 눈길을 주며 고개를 돌리자, 둘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 뒤를 따라왔다.

방밖으로 나서니 아주 개판.

막 뭐 도자기 깨져있고 스프링클러 작동하고 난리도 아니다.

"너네는 뭐야! 빨리빨리 안움직여!"

총구를 들이밀며 으르렁거리는 괴한.

"아이고, 예 예. 갑니다 가요."

나는 살짝 비굴하게 웃는 척 하며 옆으로 지나갔다.

"빨리 안가면... 으윽!"

계속 입을 놀리는 놈이 들고있던 총을 염동력으로 조작해 개머리판으로 코를 쳐버렸다.

으악 하다니 쓰러지는 괴한.

너는 너무 말이 많았어.

다행히 워낙 난장판이라 아무도 눈치챈 사람은 없었다.

밖으로 나온 인질들은 다들 정신이 나간것처럼 보였다.

당연히 그렇겠지. 누가 호텔에서 자다가 갑자기 빤쓰차림으로 밖으로 끌려나올지 알았겠어.

남자, 여자, 가족, 머리가 벗겨진 아저씨등 다양한 사람들이 질질 끌려가고 있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란 이런 것이 아닐까.

그렇게 다른 인질들과 섞여 어기적 어기적 복도를 이동하다 보니 엘리베이터 앞으로 도착했다.

"자, 계단으로 내려가라! 빨리 빨리!"

사람들을 좁은 계단으로 꾸역꾸역 밀어넣고 있는 이놈들.

...여기 27층인데, 계단으로 내려가라고?

진심?

나는 피도 눈물도 없는 놈들의 잔혹성에 이를 악물었다.

잘자고 있는 사람을 깨운걸로도 모자라, 이제는 거의 암벽등반을 시킬려 들어?

너네는 다 죽었다.

저거를 내려갈 수는 없지.

나는 내 양쪽에 붙어있는 둘에게 속삭였다.

"꽉잡아."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부드럽게 순간이동했다.

조금... 조금 많이 힘들겠지만, 어쩔수 없다.

저걸 어느세월에 하나하나 내려가.

우리가 뿅 사라진건 다들 못봤을거야 아마.

봤으면? 아 자기가 잘못 본걸로 생각하겠지 뭐.

***

호텔의 1층 로비.

분명 몇시간 전만 해도 잔잔한 클래식이 흐르며, 사람들이 고풍스럽게 대화를 나누던 이곳은 갑자기 자갈치 시장의 분위기가 되어버렸다.

대성당처럼 넓은 이곳에 사람들이 콩나물 시루처럼 빽빽히 빈틈없이 앉아 있었다. 그 사이사이로 복면을 쓴 괴한들이 총을 들고 순찰하고 있는, 살벌한 풍경.

야심한 밤. 평화로운 하루의 즐거운 마무리가 되었어야 했을 호텔은, 소란스러운 끔찍한 마무리로 변모하고 말았다.

그리고 로비 여기저기에 산재해있던 의자들을 무지성으로 쌓아 올린, 정문 쪽의 의자탑.

바리케이드로 남의 친입을 차단한 그 문을 등지고, 수북히 쌓여있는 의자들 가운데 홀로 똑바로 서있는 고급스러운 의자.

그리고 그런 의자탑 가운데 다리를 꼬고 앉아있는 남자.

A급 빌런, 몽키스패너.

자기가 해적왕인마냥 양옆으로 꼬부라진 수염을 만지작 거리며, 입에 시가를 물로 앉아있는 놈.

"....인질들은 모두 모였나?"

그가 시가를 씹으며 저 의자산 밑에 있는 참모에게 묻자, 참모가 기합이 잔뜩 들어간 목소리로 외쳤다.

"넵! 30층까지 있는 전원, 여기 아래 확보해 놨습니다!"

"...그래, 알겠다."

한참을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앉아있던 놈은,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나자마자 꿈틀거리는 그의 거대한 근육.

그가 일어서기 시작하자, 복면을 쓴 카메라맨이 황급히 촬영장비를 세팅하기 시작했다.

이렇게나 넓고, 이렇게나 사람이 많은데.

꽉찬 이 로비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고 그 남자가 일어서는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이내 그 육중한 덩치를 다 일으켜세운 그가, 큰 소리로 전방, 그러니까 카메라를 향해 외쳤다.

"협회와 정부에게 고한다."

묵직하게 말한 그는, 이내 숨을 흡-하고 들이마시더니 크게 외쳤다.

"지금 여기에!!!! 인질 수천명을 잡고있다!!! 지금 즉시 우리가 부르는 계좌로 현금을 입금하지 않는다면!!!! 모두 몰살하겠다!!!! 계좌번호는 일!공!공!이!-"

그렇게 놈이 폭발적인 성량으로 외치는 와중에.

갑자기, 저 숨죽인채 있는 인질들 틈사이에서, 웬 박수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짝짝짝짝짝짝짝.

놈의 외침 말고는 고요한 이 공간에.

갑작스럽게 울려퍼지는 박수소리는, 너무나도 이질적인 것이었고.

심지어 라이브로 방송을 하고 있던 몽키스패너 그놈마저, 말하다가 멈칫하고 말았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조용해진 공간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여전히 그 박수소리일뿐.

근처에 있는 시민들이 경악과 공포에 찬 눈길로 박수를 친 미친놈을 찾아 고개를 돌릴 때.

나는 그 시선들을 받으며,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으로는 계속 박수를 치며.

어그로가 이정도는 되야지.

EP.39 광대

수많은 사람들이 공포에 질린채 오밀조밀 모여있는 이곳.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데, 이렇게나 조용할 수 있다는게 신기할 정도로, 쥐 죽은듯이 고요한 이곳.

떨고있는 인질들도, 총을 든 테러리스트들도, 의자들탑 위에 위풍당당하게 서있는 자도.

모두 조용한 이때.

군중에서 일어난 한 남자가, 박수를 치고 있었다.

짝짝짝짝짝짝.

찔끔찔끔, 치는 시늉만 내는 그런 허접한 박수소리들과는 다르다.

어떻게 하면 더 큰 소리를 낼 수 있을까, 심열을 기울여 연구한것처럼 청명한 박수소리.

사람 한명이 냈다기에는, 너무나도 잘 울려퍼졌고.

너무나도 잘, 모두의 이목을 이끌었다.

그렇게, 조용한 곳에서 박수치는 남자를 바라보던.

이 모든 테러의 기획자이자 A급 빌런, 몽키스패너.

그가 입을 열었다.

"저 미친놈은 뭐야?"

말그대로다.

조금이라도 허튼짓을 하면 쏘아보일듯, 총을 들고 있는 테러리스트들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 와중에.

갑자기 일어나서 박수를 치며 어그로를 끌면, 그게 미친놈이 아니고서야 무엇이겠는가.

심지어 그의 괴상한 얼굴쪽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얼굴 전체를 가리는 가면을 쓰고 나타단 남자.

샛노란- 약간 주황색인가? 어쨌던 언벨런스한 옐로우 마스크. 심지어 마스크도 눈매는 약간 웃고있고, 눈 아래 별표도 있는게 마치 광대나 쓸 것처럼 보였다.

그 괴상망측한 생김새에, 테러 쫄따구들도, 심지어 산전수전을 다겪은 노련한 빌런 몽키스패너도 멈칫-할 수밖에 없던 것이다.

일단 그는 눈짓으로 카메라맨한테 영상을 끄라고 손짓했다. 괜히 돌발상황이 송출되어 봤자 좋을게 하나도 없으니까.

몽키스패너가 누구인가.

그의 능력은 사실 보잘것 없다. 약한 괴력. 뭐 그의 능력은 옷으로 감추어도 보이는 터질듯한 근육으로도 쉽게 유추가능하다.

그러나 몽키스패너는 비슷한 능력의 다른 빌런들과는 다르게, 약한 능력이지만 협회가 A급 빌런으로 지정했다.

아무리 협회가 빌런 랭크를 히어로에 비해 과하게 높게 주는걸 감안하더라도, 실로 이례적인 일.

그가 그런 높은 랭크를 받은 이유에는, 그의 뛰어난 조직능력에 있다.

대체 어떻게인줄은 모르겠지만, 수백명의 부하들을 자신 밑에 수족처럼 부리는 것.

일명 '점핑 몽키 클럽'이라고 불리는 이들과 함께, 그들은 대한민국 지하에 암약하며 은행도 털고, 마약도 팔며 지냈다.

보스 몽키스패너가 갑자기, 더 큰 물에서 놀겠다며 부하들을 이끌고 멕시코로 가기 전까지는.

멕시코 마약 카르텔을 먹겠다며 호기롭게 떠난 이들은, 역으로 카르텔에게 탈탈 털리고 말았다.

수백명을 호령하던 부하는 이제 백명 남짓.

테러로 미친듯이 번 돈도 홀라닷 날려버렸다.

그렇게 터덜터덜 고향으로 돌아온 그.

이대로 가면 망할 것같다고 느낀 그가, 묘수를 냈다.

한국에서 진짜 대형 테러로 돈을 뽑아먹은 뒤, 멕시코에 한번 더간다!

그렇게 부산항에 밀항해서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던 그.

원래는 돌아오자마자 무지성으로 할려고 했으나, 저 위에 서울에서 레고스틱인가 뭔가가 먼저 테러를 하는 바람에 계획이 저지되어 왔다.

테러는 어그로가 생명인데, 저렇게 남이 어그로 끌고 있을때 테러를 일으켜봤자 정부가 관심을 덜준다. 관심을 덜주면 받을수 있는 돈도 줄어든다.

...그렇게 기회만 노리던 그에게 존버 끝에 승리한달까? 최고의 기회가 왔다.

어둠의 지배자, 섀도우 워커가 쓰러졌다는 것.

사상최초로, 테러를 밤에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소리다.

그리고 그거를, 노련한 몽키스패너를 놓치지 않고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먼저 테러를 일으킨 것이다.

요약하자면.

비록 멕시코에서 말아먹기는 했지만, 몽키스패너는 기본적으로 눈치도 빠르고 휘하 직원들을 수백명 거느렸던 능력있는 빌런이라는 것.

그리고 몇년에 걸쳐 발달한 그의 직감은- 지금 저 가면의 남자가 심상치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네놈, 뭐하는 놈이냐!!"

그는 일단 그렇게 말을 하며 시간을 끌었다.

만약에, 만약에 초상능력자가 없는 세계였다면 가뿐히 그냥 총을 쏘았겠지만.

이세계는 저놈이 어떤 능력을 가진지 모르기에,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젠장, 왜 저런놈이 튀어나오는거지?'

로또 1등당첨보다 희귀한게 초상능력자다.

로또 1등은 매주 나오기라도 하지.

고작 이정도 인원에서 튀어나오는거는 희귀한 일.

그러나, 몽키스패너가 누구인가.

초상능력을 가진 수많은 히어로들 사이에서도 세력을 유지하며 끈질기게 살아온 그다.

이정도 이상사항은 자신의 힘으로 가볍게 넘길 수 있다고 믿는 그였다.

...아직까지는.

*

"...네놈, 뭐하는 놈이냐!!"

의자들로 이루어진 탑 위에 서서, 나를 향해 고함을 치는 저놈.

누군지 물어보신다면, 알려드리는게 인지상정.

태연히 서있던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입을 열었다.

"제 이름은..."

나는 말을 하다가 멈칫했다.

잠깐만, 여기서 에고스틱이라고 밝히면 안되는거 아니야?

내 스스로 이런말 하기는 좀 뭐하지만, 내가 대한민국에서 꽤나 유명인사다.

나름 뉴스에 한 다섯번 여섯번 얼굴을 비춘 남자란 소리.

...물론 굳이 뉴스까지 갈 필요도 없이 애초에 내가 테러영상을 라이브로 틀기는 했다만.

하여튼, 여기서 내 이름을 까봐야 좋을게 없다.

이름을 말하는 순간 내가 염동력과 순간이동을 사용할 수 있다는걸 깨달을테니.

그렇게 나는, 이름을 말하려다 유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름은... 알거 없습니다. 지나가던 시민이라고 해두죠 그냥."

나는 능글거리며 그렇게 입을 열었다.

내 말을 들은 놈의 얼굴이 구겨졌다. 내 여유로운 태도와 전혀 긴장하지 않은 평온한 말투로 미루어 봤을때 내가 생각외의 강자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지.

하긴, 나 같아도 테러 일으키는데 광대같은 가면 쓴놈이 옆에와서 빈정거리면 당황할것 같어.

그리고 이게 나의 계략이다.

상대가 나를 과대평가하게 하기!

강자가 상대를 방심시킨 다음에 허를 찌르지만, 약자의 싸움은 좀 다르다.

약자는 스스로를 부풀려, 자신의 능력보다 자신을 훨씬 있어보이게 포장해야 하는법.

그래야 상대가 경계하고, 경계한만큼 시간을 끌 수 있다.

그렇기에 초반 박수로 어그로를 끈것.

솔직히 말해서, 나는 저 몽키스패너인가 뭔가가 뭐하는 놈인지는 잘 모른다. 아니, 나는 스타더스랑 서울에서 싸우는 적만 알지, 저 밑 부산에서 뭔 일이 일어나도 잘 모른다. 거기는 북해빙녀가 알아서 처리하겠지.

그러니까, 난 저놈의 능력을 아까 몰래 검색해서 겨우 알았다는 소리다. 괴력, 약한 괴력이라.

...괴력은 좀 곤란하다. 놈이 내 척추를 반으로 접으려고 달려드는거야 순간이동으로 피하면 그만이지만, 문제는 나의 공격이다.

괴력 자체가 신체강화를 의미하는 거라, 웬만한 총이나 폭탄으로는 흠집도 안난다는거. 특수 공격수단이 없는 나로써는 쬐애끔 처치곤란하다. 내장도 튼튼해서 독가스가 먹힐지도 미지수. 애초에 여기서 독가스 터트렸다가는 다 몰살이겠지만.

그러니까, 일단 해치울수 있는 거부터 해치워볼까.

터벅, 터벅.

군중을 해치고 앞으로, 앞으로 나는 계속 갔다.

끝내 그놈의 의자산 앞으로까지.

나를 제지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다른 복면쓴 잡졸들이 나에게 총을 겨누는걸, 의자산 위에 앉아있는 몽키스패너가 손으로 막았기 때문.

쐈다가 어떤일이 벌어질지 모르겠다는거지.

결국 의자위에 서있는 그의 아래까지 온 나는, 그를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비웃으며.

"이런... 이런. 여기서 무슨 재밌는 사건이 터졌다길래, 무거온 몸을 이끌고 제가 직접 여기까지 왔것만. 별 볼일도 없는 자의 장난이었군요. 저 위에서 무거운 엉덩이를 붙이고 거기에 앉아 있는게 당신의 전부인가요? 이 대머리야."

갑작스러운 나의 폭언과 도발에, 놈이 진심으로 빡친게 보였다.

"네놈, 여기가 어느 안전이라고! 후회하게 해주마!"

끝까지 일단 상황을 관망하던 그는, 의자산 꼭대기에서 점프해 나에게 달려들었다.

열받은거 외에도, 이렇게 많은 부하들과 시민들 앞에서 얕보였다가는 별로 좋지 못할거라는 판단도 있었겠지.

그러나 놈이 나에게 달려들어 내가 있던 곳을 짓밟은 순간.

나는 이미 거기 없었다.

놈은 모르고있었겠지만, 내 능력은 순간이동이거든.

놈이 눈치챈 직전, 나는 이미 아까 그놈이 앉아있던 의자로 이루어진 산 위의 의자, 그 꼭대기에 다리를 꼬고 앉아있었다.

"정말... 허접하군요."

나는 그렇게, 지루하다는 듯, 따분하다는 듯, 하품을 하며 저 위에서, 그를 내려다보며 조용히 손가락을 튕겼다.

그와 동시에, 주위를 둘러싸던 잡졸들이 든 총기가 놈들의 손에서 빠져나와 허공으로 떠올랐고.

그것들은 일제히, 그대로 총구를 반대편으로 겨누어.

순식간에 총을 뺐긴, 아까까지 들고있던 자신의 주인을 향해.

총알을, 발포했다.

"꺄아아아아아아악!!!"

피가 튀기며.

그렇게 수십명의 테러리스트들이, 한순간에. 이토록 짧은 시간, 미처 무언가 눈치를 채기도 전에.

한꺼번에, 즉사했다.

"휴우..."

이거 카메라로 찍고있는 사람들 없지?

협회가 보면 나 바로 S급으로 승격시킬꺼 같은데...

그와 별개로, 방금꺼 하나로 내가 몇달간 비축해둔 염동력을 다썼다.

아, 내 능력은 왜이렇게 허접한거야.

EP.40 기만과 허세

사람이 너무나도 충격적인 일을 겪게 되면, 머리가 한순간에 마비된다고 한다.

지금, A급 빌런 몽키스패너의 경우가 딱 그랬다.

그가 살아온 짬밥이 있는 만큼, 그도 수많은 각성자와 싸워왔다.

S급 히어로는 한번도 만나본 적이 없지만, 그래도 A급들과는 몇번 많이 싸워봤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도망치는건, 나름 할만한 일이었다.

아무리 강한 힘을 가진 상대여도, 몽키스패너는 늘 다수와 함께 움직였기에 그들을 한방에 해치우는건 제 아무리 히어로라도 쉽지 않았다.

특히 일부 예외 빼고는 빌런들을 사살하지 않고 제압만 하는 그들이었기에, 오히려 빠져나가기가 쉬웠다.

즉, 몽키스패너는 패배한적은 있을지언정.

이런 일을 겪은 적은 없었다.

없었단 말이다.

자신의 부하들.

모두가 함께 험지를 오갔던, 동고동락하며 지냈던 사실상 동료들이다.

멕시코에 가자고 말했을때, 모두가 함께 따라와주지 않았던가.

물론 거기서 꽤나 많은 인원을 잃기는 했지만, 오히려 그랬기에 지금 남은 이들은 최정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그들이.

지금, 한순간에.

몽키스패너.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분명 인질들은 앉아있었고, 그의 부하들은 서서 총을 겨누고 있었을텐데.

아무도 서있는 자가 없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던거지?

그는 저 가면쓴 놈을 짓밟아주기 위해 뛰어들었고.

뛰어든 순간, 놈은 그 자리에 없었다.

그리고 대체 어느새, 원래 자신이 앉아있던 의자에 앉아있었고.

그놈이 무료하다는 듯 손가락을 튕기자.

한순간에.

자신의 부하들이 들고있던 총이 날아들더니.

아무도 정신을 차리기 전.

동시에.

탕탕탕탕탕탕탕.

수십개의 총이 한번에 발포되었고.

인질들의 비명소리와 함께.

이 공간 곳곳에서, 피가 튀기었다.

그렇게 서있던 자들은 더이상.

아무도, 없었다.

갑작스러운 총격과 자신들의 쪽으로 쓰러진 테러리스트들 때문에 인질들은 공황상태에 빠졌고.

멍하니, 순식간에 일어난 이 사태를 본 몽키스패너 역시.

공황에 빠졌다.

그렇게 그 많던 이들이.

이렇게 허무하게.

전원. 사망했다고?

이게... 현실이라고?

"꺄아아아아아아악!!!"

곳곳에서 들리는 인질들의 세찬 비명만이, 그가 현실에 있다는걸 되새겨줄 뿐이었다.

덧없는 눈으로, 현실을 부정하듯 멍하니 자신의 부하들의 시체를 바라보다.

목을 뚜두두- 돌려, 뒤를 바라보니.

산처럼 쌓인 의자 위에, 놈이 앉아있었다.

가면을 써서 표정이 보이지 않음에도, 어쩐지 느껴지는 저놈의 기운.

자신이 수년동안 동고동락 해온 부하들을 손짓 하나로 해치운 놈은, 그 손으로 귀를 후비고 있었다.

마치, 귀찮은 날파리들을 제거했을 뿐이라는 듯.

힘하나 들이지 않았다는 듯한, 그저 귀찮을 뿐이라는 듯한 태도.

그걸 보고 몽키스패너는 그제야 깨달았다.

아, 저놈은 히어로가 아니었구나.

벌레 죽이듯 사람들을 한순간에 죽이는 태도.

저놈은, 빌런이었다. 자신과도 같은.

그리고 충격으로 굳은 머리로도, 그는 무언가를 생각해냈다.

자신의 뒤로 순식간에 이동한 그 능력은, 순간이동.

그리고 부하들의 총을 조작해 몰살시켰던 능력은, 염동력.

대한민국에 순간이동과 염동력을 가진 빌런은 한명뿐이다.

세차례의 대규모 테러를 일으킨 요주의 빌런.

에고스틱. 그래, 그런 이름을 가졌던 놈.

솔직히, 몽키스패너는 에고스틱에 대하여 별 관심이 없었다.

다만 웃기는 이름을 가진 놈이, 자신이 테러를 일으킬 타이밍에 자꾸 사사건건 뭔가를 일으켜 대중의 관심을 빼앗아가는게 맘에 안들었을뿐.

그 희귀하다는 이중능력자인걸 알았을때는 조금은 관심을 가졌었기도 하지만.

염동력 능력 자체와 순간이동 능력 자체는 굉장히 약해보인다는 협회의 보도자료를 듣고는, 그대로 관심을 껐었다.

놈이 빌런을 3명이나 죽였다는 소문을 듣기는 했지만 뭐... 자기 알 바는 아니지 않은가? 자신이 저런 약골에게 죽을 일도 없고.

그리고 그게 지금 자기 알 바가 되었다.

그는 자신의 몸이 살짝 떨리는게 느껴졌었다.

젠장할 협회, 똥물에 튀겨죽여도 시원찮을 협회.

저게 어디봐서 약한 염동력이라는 말인가.

저정도 인원의 물건을 한번에 정확하게 컨트롤하는게, 약하다고?

그리고 대체 이놈은 왜 부산에 있다는 말인가.

그때 잠깐, 그의 뇌리를 스치우는 생각이 있었다.

저놈은 지금까지 다른 빌런들을 죽였다. 사냥했다.

아무 이유없이.

혹시 만약, 지금 이 타겟이 자신이 된거라면?

놈은 처음부터 나를 노리고 있던거라면?

내가 오늘, 테러를 일으킬껄 알고 있었다면?

그는 섬찟하는 기분을 느꼈다.

저놈, 능력을 숨기고 있다.

왜 평소에 쓰던 가면이 아닌 저런 우스꽝스러운 노란 가면을 쓰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위험하다.

뭘 더 숨기고 있을지 모르다.

몽키스패너, 그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어쩌면 지금이, 그의 인생 최고의 위기일 줄도 모른다고.

부하들은 자신만 살아있다면 얼마든지 만들 수있다.

일단 여기서, 저 놈을 짓밟고 살아남아야.

그렇게 그가 머리를 빠르게 굴리고 있을때.

반짝거리는 그의 머리 위로, 에고스틱 그놈의 실망한 기색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다인가?"

마치 너무나도 따분하다는, 오만한 놈의 태도.

그 말을 들은 몽키스패너는, 목 뒤로 땀이 한방울 또르륵 흘러가는걸 느꼈다.

에고스틱.

저놈은 대체 저 가면 뒤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것이냐.

***

음.

나는 내가 일으킨 참상을 살펴보았다.

사이사이 서있던 무장강도들이 피떡이 된 채 누워 있는 모습. 거기에 소리 지르는 인질들까지.

하하, 개판이구만.

갑작스러운 사태에 공황상태에 빠진 인질들이 소리지르며 오들오들 떠는걸 보며, 가면 뒤에서 나는 힘없는 웃음을 지었다.

저 멀리 반짝이는 은색 머리도 보인다. 서은이려나. 눈을 찌푸리고 보니 딱히 겁먹지는 않은 채 수빈씨 옆에서 나를 지켜보는 걸로 보인다. 오케이. 저쪽도 안심이구만.

지금까지 축척해온 염동력을 이용하여, 저 많던 잡졸들을 함꺼번에 해치워버렸다.

뭐 총 들어서 한번 빵! 쏘는 정도야 아무리 약한 나라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총이 무거워봤자 뭐 얼마나 무겁다고.

음... 근데 좀 많이 무겁더라.

그리고 내가 한번에 몇십명꺼를 동시에 조작했냐? 거의 백명 다 되어가는거 같은데. 아니, 어떻게 했지?

내가 했지만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수가 없다. 사실 나한테는 나도 모르는 숨겨진 힘이 있던게 아닐까? 알고보니 스타더스처럼 내 능력도 성장한다더니?

혹시 나도 주인공? [에고스티익!]이라는 만화가 발매되는 건가?

라고 말하고 싶기는 한데, 그건 아닌것 같다.

왜냐면... 지금 전혀 못 움직이겠는걸.

의자에 앉아서 여유롭게 다리 꼬고 손가락 탁 튕길때까지는 좋았다.

마치 내가 초월자가 된 기분. 돌덩어리를 모두 모은 타노스의 심정이 이랬을까?

근데 중요한건 그 이후였다.

저 많은 인원을 한꺼번에 정확하게 총을 들어 빵! 쏘는것 까지는 좋았는데.

다른 강한 능력자들과는 달리 내 염동력은 쓰레기.

그거 하나 했다고 모든 힘을 다 쓴것이다.

"...."

그래서 지금, 손가락 하나 까딱 못하겠다는거.

아니, 이거 좀 큰일이다.

솔직히 몇십분이면 어느정도 움직일 수 있을거 같가는 한데, 지금은 전장. 일분일초가 싸움의 승패를 결정짓는 싸움이다.

근데 갑자기 몇분 몸이 굳으면 어떡해.

아니, 내 능력이 쓰레기라는 생각은 했어도 이정도일줄은 몰랐다고.

"..."

진짜로, 손가락 탁해서 잡졸들 죽이는 것 까지는 좋았는데 이 이후가 문제다.

저 몽키댄스킹인가 뭔가는 어떻게 죽이지?

솔직히 지금일은 반쯤 충동적으로 저지른게 맞다.

아니 잘자는 사람 깨워서 머리에 총구를 들이미는데, 가만히 있어야돼? 본때를 보여줘야지.

깝치지 못하게 본보기로 털어줄 필요가 있는거다.

...근데 지금, 내가 털리게 생겼다고.

어떡하지.

근데 다행인 점은 저놈이 몹시 쫀거 같다.

그래, 나같아도 가면쓴 미친놈이 내앞에서 손가락 한번 튕기는걸로 부하들 다 죽이면 좀 무서울것 같기는 해.

나보다 덩치가 2배는 크고 머리도 벗겨진 콧수염 아재가 날보고 쫄았다니, 참 웃기는 이야기다.

...잠깐.

이거 어쩌면, 이 상황을 잘 헤쳐나갈 수도 있겠는데?

내가 힘이 쪽 빠졌다는 것은 나만 알지 저놈은 모른다.

그러니까 이 상황을 허세와 기만으로 넘길 가능성도 있다는 소리.

그래, 나한테는 다 계획이 있었다.

일단 돌발행위를 일으킬 가능성이 큰 잡졸들을 다 처리한다.

그리고 몽키스패너 저놈과 대치상태를 이어가며 존버한다. 언제까지? 다른 히어로가 올때까지.

솔직히 나는 이 상황에 낄 생각이 없었다. 몽키스패너 저놈은 스타더스랑 얽힌적도 없는데 뭔상관인가? 스타더스의 앞길만 안 가로막으면 별신경 안쓴다.

근데 먼저 선빵을 놨으니 혼쭐을 내줬을 뿐. 내가 또 당하고는 못사는 성격이거든. 1대맞으면 10대 때려줘야한다.

그런 의미로 보면 부하들을 한방에 죽인건 저놈한테도 매콤한 맛을 보여준거라 할 수 있다.

그럼 이제.

몸 회복되고 히어로 올때까지 존버하다 튀자.

부산이니까 북해빙녀가 곧 오겠지 뭐. 섀도우워커가 안오는건 뼈아프지만.

"이게... 다인가?"

나는 일단 입을 열고 아무말이나 했다. 반말로 가자.

중요한건 허세, 기선제압, 뭔가 더 있을거라고 생각하는 상대의 불안심리 자극.

그래, 몽키스패너 저놈 동요하고 있다. 내 그럴줄 알았지.

자, 한번 지옥의 아가리술을 펼쳐보자.

"몽키스패너라고 했나? 내가 너한테 질문을 던지지. 이 질문을 답하면 나를 따분하게 한건 넘어가주겠다. 너가..."

그렇게 내가 슬슬 입을 털기 시작할때.

콰아아앙.

갑자기 저 호텔 문짝에서 뭐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뭐야 갑자기.

"흐아아아앗!"

그러더니 엄청난 기합과 함께 들어온, 하늘색 머리칼의 여자.

어라, 북해빙녀잖아. 엄청 빨리왔네, 뭐지?

그런데 갑자기, 동시에 갑자기 로비 내부가 어두워지고.

갑자기 온 동네에 그림자가 드리우더니, 무언가 바닥에서 쑤욱 솟아올랐다.

저 음침한 검은 머리칼.

....아니 시발, 저거 섀도우워커잖아? 아니, 쟤 혼수상태라며. 왜 여깄어?

그러더니 갑자기 어디서 또 날아온 누구.

아니, 갑자기 올스타전이야? 뭐야?

어디 폭발한 벽에서 노란색 머리칼을 휘날리며 날아온 사람은.

스타더스? 아니, 너는 왜 또 여기에 있어?

"몽키스패너!! 당장 부하들에게 총을 놓으라 하고 투항해라. 너희는 포위됐다!"

갑자기 어디서 쩌렁쩌렁한 고함을 지르며 등장한 그녀.

그리고 그렇게 등장한 그녀가 본 것은.

피떡이 된 채 이미 쓰러져있는 몽키스패너의 부하들.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있는 몽키스패너.

그리고 의자들의 탑 위에서 다리를 꼬고, 가면을 쓴 채 모두를 내려다 보고 있던 나였다.

...아니, 시발. 이게 뭔 개판인데.

EP.41 위기일발

자.

상황을 정리해보자.

일단 내 계획은 이거였다.

나를 빡치게한 몽키탭댄스인가 뭔가를 혼내준다.

그걸 위해, 놈이 라이브 협박영상을 찍고 있을때를 노려 어그로를 끈다.

당황한 놈이 촬영을 중단하면, 입좀 놀려서 열받게 한 다음에.

마지막 한톨의 염동력까지 쥐어 짜서, 놈의 부하들을 한방에 죽인다.

그러면 저놈이 내가 엄청나게 강한줄 알고 경계할거다.

손 한번 튕기는걸로 몰살이라니. 손 두번 튕기면 어떻게 될지 무섭자너.

원래는 거기까지 하고 바로 순간이동으로 튈려고 했다.

대충 '시시하군... 별볼일 없구만.' 같은 대사 한번 쳐준다음에 서은이랑 수빈이 데리고 도망가려했지.

뭔가 이런 잡범이랑 싸우기도 귀찮다는듯 유유히 떠나는 그런 연출, 좋잖아?

실상은 지하주차장에 차끌고 부산이 혼란에 빠진 틈을 타서 서울로 런할려고 한거지만.

그런데 계획에 차질이 생겨버렸다.

아니, 이게 염동력인가 뭐시기를 쬐애끔 무리한거 같더라고.

이정도는 할수 있겠지? 했는데 이정도도 못하는게 맞았다.

손가락 탁 튕기며 염동력 전체조작 할때부터 삘이 왔었다고. 무슨 삘? 좇된 삘.

그리고 실제로 지금, 못움직이겠다. 짜잔.

그래서 계획을 변경했다.

바로 대-에고스틱 플랜B. 지옥의 아가리털기.

뭔가 흑막인척, 손짓으로 너따위 죽일 수 있다는듯 상대가 함부로 공격 못하게 입을 털면서.

존버하는거다. 언제까지? 히어로가 올 때까지.

아마 북해빙녀가 올텐데, 걔가 오기까지 시간이 좀 소요될테니.

그때까지 입을 털어서 몽키스패너의 발을 묶어두는거가 핵심... 이었는데.

어머 짜잔? 북해빙녀가 벌써 왔네!

그것도 섀도우워커랑 스타더스랑 함께.

"..."

시발 대체 뭐야 이게.

"몽키스패너!! 당장 부하들에게 총을 놓으라 하고 투항해라. 너희는 포위됐다!"

넓은 호텔 로비를 울리는, 쩌렁쩌렁한 스타더스의 목소리.

만화책으로만 읽던 그녀의 목소리를 실제로 듣는거는 꽤나 팬으로써 즐거운 경험이었다. 마치 실사영화를 보고 있는듯한 기분.

그래, 근데 그게 지금만 아니었으면 참 좋았을텐데 말이야, 그치?

"다시 한번 말한다! 총을 놓고...."

그렇게 쩌렁쩌렁 말하던 스타더스의 목소리는.

점차 갈수록 줄어들었다.

왜냐하면 그녀의 주위에는 아무리 둘러봐도.

총을 든 무장강도들이 한명도 없었거든.

"...?"

예상치 못한 상황에 의아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그녀.

같이 들어왔던 북해빙녀또한 당황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당연히 그렇겠지. 무장강도들 진압하러 왔는데 그 무장강도들이 땅바닥에서 이미 넝마가 되어서 구르고 있는데.

이와중에 탈주각을 잡고있는 몽키스패너.

"이익... 윽!"

더욱더 총체적 난국이 되어버린 상황에, 제일 먼저 도망치려고 했던 그는 바로 섀도우워커한테 진압당했다.

"내가 아무리 지금 힘이 없어도... 너 정도는 그냥 잡거든?"

어느새 몽키스패너 위에 올라가, 그림자로 그를 진압한 섀도우워커.

그덕에 몽키스패너는 무슨 아무것도 한것도 없이, 그저 땅바닥을 구르는 신세가 됐다.

손도 발도 입도 전부 그림자로 묶인 처량한 모습.

호기롭게 부하들과 함께 테러를 일으킨 그였으나, 불과 몇십분만에 부하들을 전부 잃고 자기 자신마저 구속된 신세가 되어버렸다.

아무리 몽키스패너가 날고 기어도.

밤에 섀도우워커한테는 반항 한번 할수 없다.

그게 '상식'인거다.

근데 물론 지금 섀도우워커 상태가 쫌 메롱인걸로 보인다.

애가 뭔가 비틀거리고 있어.

물론 그건 중요한게 아니다. 상태가 이상해보여도 몽키스패너정도는 지금 손쉽게 제압했으니.

약해진 상태의 섀도우워커한테 진압당해 땅바닥에 머리가 쳐박힌 몽키스패너를 보니.

엄... 불쌍하구만.

불쌍하긴 한데.

지금 잘못하면 내가 저꼴이 되게 생겼다고....

그렇게 몽키스패너를 진압한 섀도우워커의 눈이 나에게 향했다.

아니, 당연히 나한테 향할 수밖에 없겠지. 처음보는 놈이 혼자 의자를 산처럼 쌓은곳 위에 다리꼬고 앉아있으니.

북해빙녀와 스타더스, 둘도 마찬가지였다.

북해빙녀는 날 보고는 어리둥절해하고 있고, 스타더스는 살짝 긴장해 보이는 얼굴.

음. 생각해보니.

쟤들은 아직 내가 에고스틱인거 모르지?

상황이 다 종료되고 현장을 급습했으니, 무슨일이 일어난지도 모를거다. 라이브도 망고스패너가 나 등장하기전에 꺼버렸고.

결정적으로 가면이 다르다. 기존에는 반쪽짜리 회색가면을 쓰고 있었다면 지금은 노란색의 얼굴전체를 가리는 가면이니.

몽키스패너를 진압하는데 성공한 섀도우워커는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저놈 뭐지?라는 표정.

나를 올려다보며, 피곤해 보이는 기색의 섀도우워커가 입을 열었다.

"...너는 누구지? 우리는 분명 몽키스패너를 잡으러 왔다만..."

거기까지 말한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째서인지 피투성이가 된채 쓰러져있는 수십명의 무장 테러리스트들.

그리고 어정쩡한 자세로 서있던 몽키스패너.

거기에 그를 다리를 꼬고 내려다 보고있던 나.

상식적인 사람이면, 여기서 바로 눈치를 챌 수 있었을거다.

저것들을 모두 해치운게, 나라는 사실을.

그럼 이제 그들의 머릿속에 의문이 드는거다.

'저놈은 뭐지?'라는 의문이.

히어로라고 보기에는 손속이 너무 과하다. 전원을 죽여버렸으니까. 거기에 오만하게 다리꼬고 턱괴고 높은곳에 가면쓰고 앉아있는걸 봐라. 딱봐도 빌런처럼 생겼다.

근데 빌런이라고 보기에는? 내가 테러를 막았다. 몽키스패너와 대치중이기도 했고. 행적만 보면 히어로가 맞다. 저런 가면쓴 히어로를 본적이 없어서 그렇지.

북해빙녀와 스타더스의 의심어린 시선.

거기에 나를 꿰뚫어 볼려는듯한 섀도우워커의 시선까지.

그리고 나는 지금 손가락 하나 까딱이는 것도 힘든 상태다.

이거뭐야.

왜 대한민국의 A급 히어로 전원이 이곳 한자리에 모여있는데? 몽키스패너가 그정도 대처가 필요한 상대야? 그건 아니잖아!

그리고 왜 하필 내가 지금 제일 무력한 상태일때 갑자기 셋다 몰려드냐고.

얘들아, 나 좀 그만 바라봐. 얼굴 닳겠다.

"..."

절체절명의 위기.

내 대가리는 어느때보다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서은이와 수빈씨가 멀리서 불안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는게 보였다. 사실 너무 멀어서 보이지 않기는 한데, 대충 그런 표정 아니었을까? 걱정하지마, 오빠만 믿어! 이런 난관정도는 해치울수 있다.

자 일단 체력상태는?

일단 내 목표는 이거다. 순간이동해서 저 둘 데리고 차로 이동. 빠르게 튄다.

그러니까 딱 그정도 거리만 순간이동 하면 된다는 소리다. 멀지 않아요.

지금 몸만 멀쩡했어도 바로 튀었다.

근데 문제는 안멀쩡하다고.

몇분.

딱 몇분만 더 주면, 아슬아슬하게 튈 수 있을 것 같다. 튀고 난 이후에 내 몸이 어떻게 망가질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몇분만 더 있으면 된다.

그리고 이런 위기상황에서 그 몇분을 만들어 내는게 위대한 악당.

지금까지 내가 봐온 히어로물만 몇개인가.

난 할 수 있다.

여전히 나를 바라보고 있는 저 셋.

아까 뭐라고 질문했지?

아, 나는 누구냐고 물었지.

여기서 대답을 잘해야 한다.

'나 에고스틱인데요'라는 말을 하는 것은 자살.

그냥 셋이 달려들어서 나를 마구 때리고 말거다. 그리고 그러면 내 몸과 마음이 심히 아플것이다. 그러니까 이건 절대로 안된다.

내 목적은 시간을 끄는것.

시간을 끌기 위해서는, 일단 도중에 저들이 나를 공격하게 해서는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분을 위조해야지.

저들은 나를 모른다, 그 점을 이용해야된다.

저들이 보기에는 나는 처음보는 노란 망고색 가면을 쓴 채 무언인지 모를 방식으로 그많던 테러리스트들을 죽인 뭔지 모를 사람.

여기서는 공갈을 쳐줘야한다.

뻥카를 날려줘야 해.

오만하게, 모두를 내려다보는 저 높은 곳에 앉은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전혀 긴장한 티를 내서는 안된다. 여유롭게, 담담한 사실을 고하듯.

"...나를 물었는가? 나는 S급 히어로..."

그래, 여기서 제일 좋은 뻥카는 히어로라고 구라치는 것. 대충 한국에서 활동하는게 아닌 너네가 모르는 히어로 컨셉으로 가야한다. 어, 근데 히어로명은 뭐로하지. 전혀 생각을 안했는데. 어라! 있어보이고 추상적이고 은유적인거 아무거나, 일단!

결국 급박해진 나는, 머릿속에 떠오른 말을 필터링없이 그대로 내뱉었다.

"나는 S급 히어로, 애플망고다."

아 씨발.

"....."

오만하고 진중한 목소리로 뱉은 말이 애플망고.

그 말에, 갑자기 주변 분위기가 싸해졌다.

애플망고라는 말을 듣고는 괴상해진 셋의 얼굴.

아니 시발 이게 다 그 커뮤하는 놈들 때문이야.

하도 댓글이나 이런데서 망고스틱 망고단 이러니까 뇌가 오염됐잖아 미친놈들아!

심지어 아까 가면보고 망고색이네라는 생각을 해서 더욱 이런 맛간 소리를 한게 아닌가 싶다. 드디어 내가 미쳤구나.

...아니 근데 얘들아, 내가 진짜 한국말 잘하는 옆나라 S급 히어로 애플망고면 어쩔려고 그래.

사람 이름갖고 그런 표정 지어도 돼! 어!

그냥 이름을 묻기에 답했다는 듯한 나의 태도에, 얼굴을 찌푸려뜨렸던 스타더스가 기어코 입을 열었다.

"....애플망고? 우리는 그런 이름의 S급 히어로를 한번도 들어본적이 없는데."

날카로운 지적.

아니, 사실 날카로운 것도 아니지. 당연히 못들어봤겠지... 내가 방금 지어낸 이름인데...

하지만 이런것 하나 못넘기는건 삼류 악당.

일류 악당인 나는 이런 상황일수록 뻔뻔하게 나가는 법이다.

최대한 낼수 있는 진중하고 무거운 목소리로. 그러면서도 오만한 목소리로. 나는 입을 열었다.

"당연하지. 나는 비밀리에 활동하니까. 한국인들은 모를 수 있다."

에고류비기 제 오의. 우기기(雨器己).

너네가 뭘 알아.

증거있어?

아무튼 나 히어로라니까?

나는 얼굴에 철판을 두르고, 뻔뻔하게 나가기로 했다.

무겁고 진중한 목소리로 다시 크게, 멀리까지 잘 울리도록 나는 말했다.

"너네들. 내가 들어본적이 있지. 섀도우워커, 북..아이시클. 그리고 스타더스. 그런데 너네, 전부 A랭크 히어로들 아닌가? 선배와 후배의 차이는 하늘과 땅같으니, 모두 나한테 말할때는 존댓말을 사용하도록."

지금 현재 몸도 못움직이는 일개 빌런인 내가.

손가락으로 날 압살할 수 있는 히어로 3명을 두고.

뻔뻔하게, 그렇게 말한것이다.

아 시발 나 S급이니까 존댓말해.

갑작스러운 내 선고에 어이가 털린듯한, 그러니까 순간 자기가 잘못들었나 싶은 얼굴로 나를 보는 세명.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더 뻔뻔하게 나갈 뿐이었다. 존대말 하라고 시발. 여기 동방예의지국 아니야?

내 말에 황당하다는듯 되묻는 북해빙녀.

"뭐라고?"

"뭐라고는 반말이고. 존댓말해라."

나도 이제 모르겠다 시이이발. 한번 막가보자.

그렇게 그날 밤 부산의 한 호텔 로비에서는, 대환장 파티가 벌어질려고 하고 있었다.

이절에 삼절에 뇌절 한번 다같이 가보자고.

EP.42 탈주각

옛말에 이런 말이 있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호랑이 굴에서 엎어져 울기만하면 그냥 호랑이의 런치세트가 될 뿐이겠지만.

정신을 차리고 탈출루트를 짜면 성공적으로 도주할 수 있는 확률도 있다는 소리.

지금도 그렇다.

A급 히어로 3명한테 둘러싸였다고 엉엉 울면 어떻게 되겠나. 그냥 두들겨맞고 끌려가겠지.

하지만, 여기서 정신을 차리면 살아서 돌아갈 수 있다는 소리다.

서로가 가진 정보의 차이에서 오는 상하관계.

나는 그걸 이용하기로 한거다.

나는 저들을 안다, 그런데 저들은 나를 모른다.

이거, 아주 중요한거다.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는거라고.

현재 상황을 보자.

테러집단은 전부 사망했고, 그 수장도 섀도우워커가 손쉽게 제압했다. 손도 발도 입도 묶에 미라처럼 땅바닥에 박혀있다고.

이렇게만 보면 아무 문제도 없지만, 문제는 나다.

혼자 몽키스패너를 제외한 나머지를 전부 죽여버린걸로 보이는 미친놈.

여기서 한가지 재밌는점은.

저들은 나를 함부로 건들 수 없다는 점이다.

저들은 아직 내가 누군지 모른다.

저들은 아직 내 힘을 모른다.

대충 쓰러진 테러리스트들을 보고, 대략적으로 매우 강하다고 추측할 뿐. 얼마나 강한지 모른다는 소리다.

그리고 미지는, 공포를 일으킬 수 있다. 내가 생각보다 훨씬 쎄다면? 손가락 튕기는걸로 이자리 모두를 없앨수 있다면?

또 지금 이 자리에서는 인질들이 있다.

내가 수틀려서 인질들을 갑자기 죽이려고 들면, 정말 큰일이 아닐 수가 없다. 내가 히어로인지 빌런인지 그냥 미친놈인지도 모르는 마당에.

결론은.

저들은 나를 아직 건들 수 없다. 내 힘을 정확히 모르고, 인질들도 있기에.

그러니까 내가 이런 짓거리를 할 수 있다 이말이지.

"요즘 것들은 정말로 싸가지가 없구나. 나때는 말이다, 자신보다 높은 랭크의 히어로가 지나가면 90도로 허리부터 숙였다. 그런게 사회생활이고 예의라는거다. 그런데 쌩판 어린놈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올려다보니... 참, 말세다 말세. 비록 내가 지금은 어, 해외에서 활동하기는 하지만 S급 히어로라고 밝혔으면 바로바로 알아서 존대를 해야지 어디서 반말을 찍찍하고..."

"저기요."

내가 아무말 대잔치를 늘어놓고 있을 때, 듣고있던 스타더스가 내 말을 끊고 입을 열었다.

"방금 협회한테 연락이 왔는데, 해외에도 애플망고라는 이름을 가진 S급 히어로는 없다는데요? 당신 정체가 뭡니까?"

음, 언제 또 협회랑 연결했데.

아 쟤네 전부 귀에 협회장이랑 다이렉트로 연결된 이어폰 꽂고있지.

일류악당은 이런 일에 당황하지 않는다.

손 움직이냐? 됐다, 이제는 손도 움직인다. 조금만 더 버티면 순간이동도 되겠어.

나는 주먹을 말아서 팔걸이에다가 쾅-하고 치며 입을 열었다. 일류악당은 듣는이의 정신도 흔들어버려야하는 법. 다시 한번 뇌절을 감행했다.

"이런 싸가지없는 놈들을 봤나. 당연히 정체를 숨기고 활동하니까 모르겠지. 개인정보가 함부로 유출될 것 같으냐? 의심만 많아가지고는... 그리고 너네 협회장, 어! 내가 너네 협회장이랑 어 밥도먹고 술도 마시고 사우나도 가고 다했어 임마!"

그 말을 들은 셋의 표정이 괴상해졌다. 음, 이건 너무 무리수였나. 생각해보니 젊어보이는 내가 아재인 협회장이랑 사우나를 갈리가 없잖아? 애초에 협회장이 부정할테고.

아무말 대잔치여도 너무 아무말이었다. 나는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서둘러 덧붙였다.

"...아, 그리고 너네 이거 알고있냐. 협회장 이름이 박준호지? 그거 개명한거다. 원래 이름은 박막춘이다. 우리 막춘이, 자기 이름 싫다고 맨날 징징거리더니 은근슬쩍 바꿨더라? 귀여워 귀여워."

내 말을 듣던 스타더스가 이어폰으로 무언가를 듣더니 움찔했다. 그래, 이걸 알줄은 몰랐겠지? 원작에서도 정말 세상 쓸때없는 TMI로 나오는 내용인데, 이렇게 써먹을 줄은 몰랐다.

어쨌든 잠시 주제를 벗어난 때 아닌 협회장 개명 전 이름 폭로로 시간을 조금 더 벌었다. 좋아.

그러기도 잠시, 북해빙녀가 바로 입을 열었다.

"아니, 우리가 당신을 어떻게 믿어...요? 애초에 증거도 뭐도 안주고 갑자기 S급 히어로라고 말하는게 말이돼?....요? 제가 보기에는 당신도 빌런처럼 보이거든요..."

말을 흐리는 그녀.

아니, 이 말을 다 들어줬다고? 참 착한애네. 이미 스타더스랑 섀도우워커는 그냥 듣지도 않고 내가 과연 어디까지 가나 보자 이런 태도인데. 살짝 손주재롱잔치 보는 할아버지 같이 나를 보고 있다. 나도 내가 뇌절하는거 아니까 그렇게 보지 말아줘.

그리고 너 말 잘했다. 시발, 뇌절의 끝은 선정. 선정필승. 정색 먼저하면 이긴다는 소리다.

"빌런? 내가? 하하하."

하하하하하하.

"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정적만이 가득한 이곳에서 갑자기 미친놈처럼 웃는 나.

방금전까지 진지하게 아무말 대잔치 하자가 이러니, 무언가 더 소름끼치는 느낌.... 줄 것이라고 기대하며 하고있다.

그리고 여기서 바로 뚝.

갑작스럽게 웃음을 멈춘다.

허공을 보며 웃던 내가 갑자기 고개를 숙이더니.

다시 고개를 위로 올려, 목소리를 깔고. 당연한 사실을 말한다는듯 고요히 말했다.

"내가 빌런이었으면."

"너희는 전부, 이 자리에서 이미 죽었다."

꼭대기 위에서 손을 얼굴에 괸 채, 선포하듯 내리어지는 나의 말. 시발. 좀 오글거리지만 참았다.

갑작스럽게 하는 위협에 인질들은 긴장하고, 스타더스와 북해빙녀도 몸을 전투태세로 변경했다. 인질들을 지키며 싸울수 있게.

그리고 섀도우워커 저놈은... 그냥 멍때리고 있다. 아무생각 없어보이네. 하긴, 저놈은 밤이라 죽지도 않으니 별로 긴장도 안되겠지.

방금전까지의 분위기가 거짓말같다는듯, 순식간에 일촉즉발의 상황이 된 이곳.

모두가 침을 삼킨채,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전투를 대비하며 몸을 긴장시킬 때.

나는 갑작스럽게 너털웃음을 지으며, 손을 휘휘 털었다.

"하하. 농담이다 농담. 내가 설마 후배들을 겁박하겠나. 긴장 풀게."

갑작스럽게 휙휙 바뀌는 나의 분위기에, 아직까지 정신을 못차리는 둘. 원래 뇌절은 올렸다 내렸다해서 정신을 못차리게 해야돼.

그때 멍하니 나를 구경만 하고 있던 섀도우워커가, 자기 이어폰에다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그냥 공격이나 하지? 어차피 우리 셋이 달려들면 질거 같지가 않은데. 일단 쓰러트리고 생각해보자고. 만약 진짜 히어로라면 그때가서 사과하면 되지."

야 이 새끼야 다들린다 다들려.

이어폰으로 섀도우워커가 전달한 말을 들은 북해빙녀는 신나가지고 고개를 끄덕였고, 스타더스는 고개를 저었다. 아마 인질들이 말려들까봐 그런거겠지. 크흑, 역시 스타더스 너밖에 없구나.

나는 필사적으로 못들은 척 했다. 아니, 여기서 들은거처럼 굴면 큰일난다. 저런 말을 듣고 가만히 있으면 내 '정체를 숨긴 오만한 S급 히어로' 컨셉이 와르르 붕괴될거라고. 근데 그렇다고 발끈해서 싸우면? 아니, 사실 싸우는 것도 아니지. 발끈해서 전투가 벌어졌다가는 5초안에 폭행당하고 질질 끌려가고 말거다. 그것만은 안돼....!!

근데 사실 지금 이미 슬슬 힘이 돌아오고 있다. 꽤 오래 시간을 끌었거든. 좋아, 이제 대충 탈주각이 나왔다. 튀자.

근데 가기전에.

음...

모처럼 선배 히어로 컨셉을 잡은 김에, 하고싶은 말은 하고 갈까?

크흠-하고 헛기침을 한 나는, 이목이 집중된 틈을 타 빠르게 할말을 했다.

"어쨌든, 후배 히어로들을 보니까 반가웠다. 좀 싸가지가 없기는 하지만... 내가 선배로써 충고를 해주자면, 위협을 만났을때 도망가지 말고 맞써 싸워라. 아무리 큰, 너네가 이길 수 없어보이는 고난과 역경을 만나도 물러서지 마라. 너네는 히어로다. 히어로는 도망치지 않으면."

"무조건. 승리할 수 있다. 재앙? 재해? 다 의미없다. 의지만 있다면, 너네에게 의지만 있다면. 그걸 극복하는건, 너무나도 쉬운 일이다."

고개를 돌려가며 말하다가, 마지막 말은 스타더스를 보며 말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살짝 놀라는? 떠는?그녀. 흠. 갑작스러운 나의 설교에 내가 혹시 진짜 히어로인지 의심할려는 걸려나? 좋은 일이다. 아니면 그냥 병신이라고 생각하던가. 쯥.

그리고 더 좋은 일은 나한테 지금 힘이 돌아왔다는거고.

자, 작별의 시간이다.

다른말로는 탈주각이다 탈주각.

"뭐, 나는 할일을 다했으니. 이만 가겠다. 잘있어라. 아디오스."

그렇게 말하며 손을 살짝 깔딱여주고, 갑자기 순간이동했다.

내가 사라지자 굉장히 당황하는..? 사실 별로 당황하는거 같지도 않은거 같은데, 기분탓이겠지?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이미 서은이랑 수빈씨 뒤에 서있었다.

"흡."

그리고 둘을 잡고 다시 차로 순간이동했나. 정말 빠르게 움직였기에 아무도 못봤을거다. 아마도.

"꺄아아악!"

우당탕.

차로 겨우 순간이동한 나.

근데 막판에 힘이 쭈욱 빠지는 바람에, 우리 셋은 차에 굴러지듯 오게 되었다. 미안, 지금 거의 젖먹던 힘으로 온거다...

"아으으... 오빠, 괜찮아요?"

"아니.... 나 죽겠다...."

실제로 죽겠다.

지금 의식이 나갈려고 하고 있어. 이거 지금 최소한 일주일은 기절 각이다. 좇됐구나.

쓰러지기 전에, 나는 마지막 유언...이 아니라 메세지를 남겼다.

"으윽... 서은아, 지금 당장 호텔 기록같은거나 다 지워라. 시시티비랑 출입명부 이런거. 우리 들키면 좇된다..."

"네!"

뒷자석에 쓰러지듯 누운 나는 아까전에 옮겨놨던 노트북을 서은이에게 건내주며 말했다.

"그리고 수빈씨... 운전해서 빨리 서울로 올라가주세요. 지금 테러때문에 주위가 개판이라 몰래 빠져나갈 수 있을겁니다. 재빨리..."

협회 병신들이 주변방위를 철저히 했을리가 없다.

오히려 난장판이겠지. 이 새끼들 만화볼때는 그러는거 보고 쌍욕을 했는데 이럴때는 은근 큰 도움이 되는구나. 고맙다!

"네, 넷!"

수빈씨는 허둥거리며 핸들을 잡았다.

그래, 내가 할 일은 다했다.

이제 의식이 점점 나간다....

지금은 피로회복캡슐도 뭐도 없다. 한마디로 좇됐다는 소리.

"전, 좀, 자겠습니다. 그럼..."

거기까지 말하고 한계에 몰린 내 의식은 결국 끊어졌다.

쓰러지면서 마지막으로 한 생각은.

그래도 어째 S급 히어로 애플망고라는 해괴한 컨셉으로 정체를 들키지 않고 넘긴것 같다는 생각.

단순히 시간벌라고 한 개지랄이 이런 의외의 효과가 있었을 줄이야.

그래, 이제는 안심하고 잘 수 있겠어...

***

[[단독]자칭 S급 히어로 애플망고, 그의 정체는 빌런 에고스틱이라는 의혹 확산... 협회, '그럴 가능성 유력하나 일단은 사실관계 확인중' 이라는 조심스러운 입장밝혀....네티즌들은 이미 '반쯤 확신'.]

EP.43 화제의 중심

"오늘의 연예가~ 중계! 네, 이번 시간에 알아볼건 뭔가요?"

"네. 오늘의 주제는 바로! 자칭 S급 히어로 애플망고입니다!"

"어머, 히어로 이름이 애플망고라고요? 굉장히 정감가네요."

"맞습니다. 요즘 아주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사람인데요. 일단 보시죠."

티비에서는 여자 둘이 사라지고, 이내 다른 영상이 나오고 시작했다.

마치 누군가 스마트폰으로 몰래 촬영한 듯한 영상.

그곳에서는, 의자로 이루어진 탑 위에 앉은 누군가가 말을 하고 있었다.

노란 가면을 쓰고 있는 그에게서 나오는 목소리.

[나를 물었는가? 나는 S급 히어로, 애플망고다.]

거만한 목소리로 울려퍼지는 그의 말.

거기서 영상이 끊기고, 두 여자가 다시 나왔다.

"네! 아하. 저분이 스스로를 애플망고라고 지칭한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저번 부산 시그니쳐 호텔 테러 사건때 그 어떤 히어로들 보다 빠르게, 테러리스트들을 제압했는데요. 이후 다른 히어로 3명이 오자 이와같이 말한겁니다."

"네. 근데 듣자하니 이분이 이후 이상한 말을 하셨다던데?"

"아, 그것도 한번 들어보시죠."

다시 바뀌는 화면.

아까 그 모습 그대로다. 이어지는 노란 가면 남자의 말.

[그런데 너네, 전부 A랭크 히어로들 아닌가? 선배와 후배의 차이는 하늘과 땅같으니, 모두 나한테 말할때는 존댓말을 사용하도록.]

"네. 굉장히 어... 인상적이네요. 존댓말을 사용하라뇨?"

"맞습니다. 많은 분들이 보다시피 갑작스러운 그의 말에 히어로들이 약간 얼이 빠진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이후로도 그의 기행은 계속되었습니다."

[내가 너네 협회장이랑 어 밥도먹고 술도 마시고 사우나도 가고 다했어 임마!]

"허허... 이게 사실일까요?"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크죠. 이후로도 그는 여러가지 기묘한 발언들과 후배 히어로들에게 뜬금없는 충고를 하고 홀연히 떠나갔습니다."

"네. 듣기만 해도 참 묘한 이야기네요. 그게 바로 지금 그가 엄청난 관심의 중심이 된 이유인가요?"

"당연히 이것만이 아니죠.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 함께 살펴보시죠."

화면에 커다랗게 잡히는 숫자 1.

거기에는, 자막으로 커다란 글씨가 나왔다.

[자칭 S급 히어로 애플망고. 사실 그의 정체는 빌런 에고스틱?]

"어머, 이게 무슨 얘기인가요?"

"말 그대로입니다. 스스로를 히어로라고 주장한 그이나, 네티즌들이 그가 사실 에고스틱이라는 수많은 증거를 찾아냈는데요. 함께 보시죠."

다시 화면이 전환되며 나오는 영상.

아까보다 훨신 조악한 화질. 몰래 찍은듯한 영상에서는, 갑자기 떠오른 총들에 맞아 쓰러지는 테러리스트들의 모습이 보였다.

"첫번째 증거는 염동력입니다. 애플망고는 총들을 허공으로 부유시키는 모습을 보여줬는데요, 이는 에고스틱의 능력과 완벽히 일치합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또다른 영상. 그곳에서는 말을 마친후 앉은자리에서 순식간에 사라지는 애플망고의 모습이 담겼다.

"보다시피 그는 순간이동을 하는 모습도 보여줬습니다. 이도 역시 에고스틱과 완벽히 일치하는데요. 이중 능력자 자체가 극도로 희귀한데 둘의 능력은 완벽히 겹치는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야. 이정도면 요즘말로 빼박이라고 하나요? 빼도박도 못하는거 아닌가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영상으로 분석을 해봤을때 에고스틱과 애플망고는 보다시피 체형또한 거의 일치하는 모습입니다. 거기에 목소리도 들어보시죠."

"네. 에고스틱의 첫번째 테러. 배 테러에서의 목소리입니다."

[당신의 연설을 듣고 나서, 모두가 갑자기 연합되었었죠. 하, 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리고 이게 애플망고의 목소리입니다."

[빌런? 내가? 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어떠신가요?"

"이거...완전히 똑같은데요?"

"네. 많은 이들이 목소리와 하는 말이 거의 유사하다. 그러니까 아예 같다! 라고 주장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이정도면 그냥 애플망고를 에고스틱으로 봐도 되겠어요?"

"네. 아직 협회가 확답을 주지는 않았지만, 애플망고가 에고스틱이라는게 이제 정설이 된 분위기입니다. 아예 에고스틱의 팬클럽인 망고단에서는, 에고스틱이 자기들의 애칭인 망고를 인정해준게 아니냐면서 흥분하고 있습니다."

"망고단... 애플망고. 이정도면 진짜 대놓고 자신의 정체를 밝힌거 아닙니까?"

"맞습니다. 그래서 일부 사람들은 드디어 에고스틱이 빌런 코스프레를 버리고 히어로로 전직할려고 하면서 '격한 환영'이라는 입장을 밝혔는데요. 협회에게 S급 히어로 애플망고를 공식적으로 인정해달라는 청원까지 등장했습니다."

"그렇군요. 근데 그것만으로는 이 인기를 설명하기가 힘든데요. 애플망고가 핫해진 두번째 이유! 함께 알아보시죠."

다시 한번 화면에 잡힌 커다란 숫자 2.

그 밑에 자막으로는 '에고스틱과 협회와의 관계, 무엇인가?'가 나왔다.

"에고스틱과 협회라의 관계라... 이게 무슨 말입니까?"

"말 그대로입니다. 애플망고는 저번 사태에서 협회장의 개명 전 이름을 언급했는데요, 함께 들어보시죠."

[...아, 그리고 너네 이거 알고있냐. 협회장 이름이 박준호지? 그거 개명한거다. 원래 이름은 박막춘이다. 우리 막춘이, 자기 이름 싫다고 맨날 징징거리더니 은근슬쩍 바꿨더라?]

"이건 굉장히... 신선한 이야기죠. 협회장의 이름이 개명되었다는 주장입니다. 박막춘을 박준호로 개명했다는건데요. 이게 진실일까요?"

"협회는 일단 부정했습니다. 협회장의 개명은 근거없는 낭설이다.라고 입장을 밝혔는데요. 네티즌들은 이를 믿지 않고 있습니다. 딱 저 입장만 밝히고 협회가 노코멘트로 있는 것도 그렇고, 히어로들의 반응도 볼때 저말이 사실이 아니냐는거죠."

"신기하네요. 만약 저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애플망고, 그러니까 에고스틱은 그걸 어떻게 알고있는걸까요?"

"그게 지금 네티즌들 사이에서 화제거립니다. 애초에 협회장의 개명 여부가 전산정보에 남아있지 않아서, 일반적으로 가족이나 오랜 친구 외에는 딱히 알 수 있는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럼 대체 그는 그걸 어떻게 알고있는걸까요. 진짜 협회장의 옛 지인이던가, 아니면..?"

"그래서 이와 관련해 몇개의 음모론들도 있습니다. 사실 에고스틱은 진짜로 예전에 S급 히어로였는데, 이후 협회와 마찰을 빛고 빌런으로 전직한게 아니냐는 이야기죠. 전혀 사실확인이 되지 않은 찌라시입니다만... 상당히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사실 이 음모론대로라면 A급 히어로 3명이 애플망고를 놓친것도 설명이 되는군요? 사실 대선배이기 때문에 놓아준게 아니냐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네요."

"그렇습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나중에 알아보기로 하죠."

"네! 알겠습니다. 그럼 마지막 애플망고와 관련된 세번째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네, 세번째 이야기는 바로 이겁니다!"

그와 동시에 등장한 자막.

[3. 에고스틱의 능력은 대체 어떤건가?]

"에고스틱의 능력에 관한 이야기네요. 이건 무엇인가요?"

"이번에 보여준 모습과 관련된겁니다. 지금까지 협회와 전문가들이 추측한 걸로는 에고스틱의 염동력과 순간이동은 상당히 약하다는거였습니다. 애초에 단일능력자들보다 이중능력자들이 훨씬 약한거는 흔히 알려져있던 얘기기도 하고요."

"근데 그게 아니라는건가요?"

"그렇습니다. 이번에 보여준 염동력으로 총들을 드는 행위... 이게 상당히 고난이도 기술입니다. 현재까지 에고스틱이 보여준 능력만으로는 할 수 없어 보였는데, 이번에 했다는거죠. 또 순간이동도 마찬가지입니다."

"아. 지금까지 늘 서울에서 활동했던 그가 어떻게 부산에 있었냐는 얘기죠?"

"맞습니다. 테러가 발생한 그 순간, 갑자기 등장했는데요. 이를 토대로 그가 사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순간이동을 할 수 있는거 아니냐- 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굉장히 흥미로운 이야기네요. 지금까지 에고스틱은 힘을 숨기고 있었다는 얘기입니까?"

"어쩌면 그럴수도 있다는겁니다. 아직까지 확정된건 없지만, 에고스틱. 그가 한동안 대한민국의 화제의 중심이 될거라는것은 변함이 없어보입니다."

"에고스틱. 그의 앞으로의 행보에 더욱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입니다."

그녀는 거기까지 듣고 그냥 보고있던 티비를 꺼버렸다.

꾸욱.

리모컨을 누르자 허무히 꺼져버리는 티비.

텅 빈 그 검은 화면으로는, 신하루 그녀의 얼굴이 비추어 보였다.

"....."

티비에 비추어진 그녀의 모습은 굉장히 복잡해보였다.

에고스틱, 에고스틱. 그놈의 에고스틱.

그녀는 피곤하다는 듯 소파에 누워 눈을 누르며 지압했다.

벌써 사건 발생 후 며칠.

이미 호텔에서의 사건은 전국으로 알려진 뒤였다.

그리고 에고스틱에 관해서도.

"...."

사실 그녀도 이미 그 애플망고인가 뭔가가 에고스틱이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아니, 아예 다른 누구보다도 먼저 눈치챘다는게 맞겠지. 그녀는 에고스틱을 직접 본 몇안되는 인물이니.

그랬던 그녀인만큼, 그녀의 심정은 복잡했다.

요즘 에고스틱이 일으킨 사건들에 대해 다시한번 조사를 이어나가던 와중에, 이런 사건이 터져 그를 다시한번 만날줄은 몰랐으니.

저번부터 있던 의혹.

그리고 이번 일까지.

그녀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들어, 그녀의 안에 무언가 의심이 싹트기 시작했다는걸.

에고스틱.

이놈은 진짜, 빌런이 맞는가?

그러니까, 과연 악인(惡人)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가?

EP.44 의심의 심화

사실 이전부터.

신하루는 에고스틱에 대한 의심을 하고 있었다.

그래, 정확히는 비행기 테러 이후.

그가 자신에게 건 전화가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자신을 믿는다고.

자신은 할 수 있다고, 비행기를 막으라고 한 그의 말.

어떤 빌런이 히어로에게 그런 말을 한다는 말인가?

그걸, 빌런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때부터였다.

스타더스가, 에고스틱에 대하여 개인적인 조사를 하게 된 것은.

그가 일으킨 테러는 총 세개.

배, 기차, 비행기.

전부 사상자 0명.

어쩌면 이또한 우연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스타더스 자신을 지지하는 일명 별먼지단이 주장하는 것 처럼, 에고스틱은 죽일 생각이었지만 스타더스가 다 막아냈기에. 그랬기에 사상자가 없던거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다른 이들이 모르는 것을, 그녀는 안다.

마지막 비행기테러는 사상자가 아무도 없도록, 에고스틱이 유도한 것이라는걸.

실제로 비행기가 추락하여 부숴지게 생기자, 직접 자신에게 연락을 걸어 비행기를 막도록 하였다는걸.

즉, 이를 통해 그녀는 추측해 볼 수 있었다.

그 전까지의 테러도, 혹시 에고스틱이 무언가 장치를 해놓은것이 아닐까?

실제로 모든 테러가, 사망자가 나지 않도록 설계된 것이 아닐까.

그러면 여기서 드는 의문은 이거다.

가정해보자. 사상자를 낼 목적도, 금품을 요구할 목적도 아니었다면.

왜 그랬는가?

왜 테러를 기획했는가?

제일 일반적인 대답은 이거다.

관종이니까. 미친놈이니까. 정신이 나가서.

그래, 그게 제일 속 편한 대답이다.

그러나 그녀는 의문을 가졌다.

과연 오직 그 이유밖에 없을까?

물론 그녀도 그가 정신이 살짝... 나가있다는걸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녀의 직감.

그 직감이, 그녀에게 속삭이는 것이다.

무언가가 더 있다.

단순히 저것이, 그 모든 이유가 아닌거 같다.

그래서 그녀는 조사해봤다.

그 테러들이 벌어진 이후, 달라진 것들을.

신문도 보고, 통계청도 보고, 기사도 보고...

그렇게 그녀가 알아낸 것들은 이런 것.

운행수단들에서 폭발물 검사가 강화되었다. 정부나 방송사를 비롯한 각종 기업들의 사이버 보안이 강화되었다.

그리고 빌런들의 범죄율이 줄어들었다. 애초에 에고스틱 스스로가 3명의 빌런들을 처리했기도 하고. 빌런들은 다른 빌런들이 행동할때 나서지 않기에, 에고스틱이 활동하던 기간에는 테러율이 줄어든 것이기도 하고.

그러나 이것들을 에고스틱이 의도한 것이냐? 라고 하기에는 너무 억지스럽기 이로 말할 수 없다. 속 편한대로, 에고스틱에게 유리하게 끼워맞추는게 아니냐라는 비판을 면할 수가 없는 것이다.

실제로 에고스틱의 팬클럽인 망고단이 위와 비슷한 논리로 그의 테러를 정당화 하기도 하고.

사실 다 필요없이, 에고스틱으로 인한 변화 중에서 그녀가 제일 크게 느끼는게 있다.

바로 스스로의 힘이 훨씬. 훨씬 강해졌다는 것.

"....."

꾸욱.

그녀는 주먹을 말아쥐었다.

기차를 막은 일. 그리고 비행기를 막은 일.

이 두가지 일을 겪으며, 그녀의 힘은 몰라보게 강해졌다. 협회에서 이미 S급으로의 승격을 한번 검토해봤을 정도로.

물론 승격은 굉장히 까다롭다. 한국 히어로 협회가 아닌 국제 히어로 협회 연합에서 심사하기에, 웬만하면 잘 승격시켜주지 않는다. 애초에 A에서 S로 올라간 사람들이 거의 없기도 하고.

그러니까 애초에 말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인거다.

그녀의 힘은, 전례없이 빨리 강해졌으니.

그 누구보다도.

그리고 이걸 누구 덕분이라고 봐야 할까.

에고스틱 그놈?

"..나도 참, 뭐라는건지."

그건 아니다.

그냥 운이 좋게, 상황이 어쩌다보니 잘 풀려서 이렇게 된거겠지.

설마 에고스틱 그놈이 위기상황에서 스타더스 그녀의 능력이 강해지는걸 알고, 자신의 힘을 키워주기 위해 테러를 벌인거겠는가?

'참... 무슨 실없는 망상을.'

스스로가 생각해도 웃긴 얘기에 피식 웃어 넘기다가도.

[그래요 스타더스씨. 잘하셨습니다. 제가 상상도 못 한 방법으로요. 그런 방식으로 모두를 살릴 줄이야, 진짜 예상도 못했네요. 당신의 승리입니다.]

[그러니 나서세요. 주먹을 쥐고 다리에 힘을 주고, 저 하늘로 날아 사람들을 구하세요. 당신은 할 수 있습니다. 그게 당신이니까.]

"...."

말도 안되는 이야기다.

대체 그가 자신의 뭘 알고, 능력이 성장할 줄은 어떻게 알겠나 싶으면서도.

그가 예전에 한 말들을 떠올려보면, 무언가 싱숭생숭해 진다는 것이다.

'분명 빌런이 한 얘기인데... 심지어 자기가 한 테러인데...'

어째서 그가 한 말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걸까.

그녀는 고개를 훨훨 털어 잡생각을 무찔렀다.

그냥 과대망상이다 과대망상.

그리고 에고스틱, 이놈은 애초에 테러만 일으킨게 아니다.

빌런 셋의 사살. 테러를 일으켰던 그의 추종자들까지 포함하면, 꽤나 많이 죽였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의 맘대로 망설임없이 빌런들을 제거하는 모습. 사적제재. 말이 좋아서 안티 히어로지, 마땅한 법률없이 자기 마음대로 남을 죽이는건 그냥 살인일뿐이다.

그러나...

그녀는 노트북으로 보던 화면으로부터 눈을 돌렸다.

그녀가 보던것은, 그녀가 협회장으로부터 보안허가를 받은 자료.

협회 내 최고보안 요원과 협회장만 볼 수 있는 기밀이라고는 하지만, 막무가내로 협회장으로부터 뜯어온 파일이다. 자신이 A급 히어로임을 강조하며 알 권리를 주장하며 겨우 승인을 받은 기밀들.

대체 이걸 왜 히어로들한테 안 알려주고 협회 내부에서만 공유하냐 따졌더니, 보안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말도 안되는 답변만 받았었다.

'쯧... 우리를 사냥개로 아는건지.'

어쨌든 수탈에 성공한 이 자료.

이는 S급부터 B급까지의 빌런들에 관해 정리한 자료이다.

사이트에 대문짝만하게 [1급기밀]이라고 적혀있는, 자료들.

그녀는 거기서, 에고스틱이 지금까지 처리한 빌런들에 대하여 찾아보았다.

***

[엔조디악] 본명 전재혁.

S급 빌런.

주술사.

사람 8명을 죽인 후 그들을 제물로 주술을 일으키려다 적발.

위험성은 주술의 한계를 알 수 없다는 것.

2급 기밀사항: 20.03.24에 일어난 지진은 그가 일으킨 것이나, 이는 [기록말살]후 자연재해로 발표되었다.

*충분한 제물만 있다면 어떠한 재해도 일으킬 수 있기에 S급으로 지정. 국제 히어로협회 소속 히어로들도 수색중. 국내 히어로들에게는 /즉시사살/명령 외에는 별다른 말을 하지 말것.

A급 빌런 에고스틱에 의해 처리됨.

***

이 외에도 라이노, 텔레포터등 에고스틱이 사살한 다른 빌런들에도 알아본 결과, 그녀는 한가지를 알 수 있었다.

그가 능동적으로 살해한 빌런들은 현재까지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은 이들마저 모두 언젠가 '대규모 재해'를 일으킬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공통점을 가졌다는 것.

참고로 저 자료에 에고스틱은 어떻게 기록되었나도 볼려고 했으나, 협회장이나 국제협회연맹 최고위원들 말고는 볼 수 없는 [O급 기밀사항]이 걸려 있어서 볼 수 없었다. 협회장한테 따지자, 자신의 위에있는 국제 연맹이 지정한거라 자기도 모른다는 답변뿐.

무언가 찝찝했으나, 그녀는 일단 넘어갔다.

중요한것은 에고스틱. 그가 하는 행동들을 보면.

'단순히 빌런이라고 하기에는....'

대규모 테러를 저지르는것을 보면 빌런이 맞다.

그러나 그가 보여주는 행보들은 무언가 애매모호한 면이 많았다. 사상자가 절대 나오지 않는 수상한 테러들은 말할 것도 없고, 추종자 살해, 엘리게이터맨 저지등 이상한 점이 많았다.

그리고 그게 이번 애플망고 사태가, 그녀의 의심에 확신을 더해주었다.

"...."

애플망고.

사실 그녀는 보자마자 그가 에고스틱임을 눈치챘다.

목소리와 키, 하는 짓이 똑같은데 어떻게 모른다는 말인가.

물론 에고스틱을 실물로 본것은 그녀가 유일한만큼 다른 둘은 그자리에서는 눈치를 채지 못한것 같지만.

애초에 이름을 애플망고라고 짓는 것 자체가... 그가 딱히 자기의 정체를 숨길려 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중요했던 것은.

그가 그 자리에 왜 있었냐는 것.

애초에 저번 사건은 의도된 일이었다.

부산에서 대규모 공습이 있을 예정이라는 첩보를 들은 후, 섀도우워커가 쓰러졌다는 정보를 의도적으로 언론에 흘려 밤에 일망타진한다는 계획.

아마도 인질들이 많을 것 같은 만큼 대인전에 능한 섀도우워커로 안전하게 테러를 진압한다는 계획이었으나.

이미 애플망고... 그러니까 에고스틱이 잡졸들을 처리해 버리는 바람에 딱히 나설 기회도 없었다.

에고스틱은 끝까지 헛소리를 하며 자리를 떴었다.

그 자리에서 공격해서 붙잡았어야 했을까?

"...."

그래.

그녀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에고스틱에 대한 그녀의 의심이 일종의 확신이 되었다는걸.

빌런이라는 놈이 그 자리에서 사람들은 왜 구해냈다는 말인가?

보이는 모습은 미친놈 그 자체이지만, 그가 지금까지 한 행동들 하나하나를 따라가 보면... 네티즌들 말대로 빌런인척 하는 히어로로 보이기도 한다.

근데 그럼 히어로, 차라리 안티히어로로 활동하던가... 테러는 왜 일으키냐고.

무언가 자신을 포함한 사람들은 모르고 있는, 큰 그림을 그리는건가?

사실 그놈은 자기가 꼴리는대로 할 뿐인데 그녀가 확대해석을 하고 있는 걸수도 있다.

그렇지만.

고도로 발달된 직감은, 그것 자체가 합리적 추론이다.

그녀는 계속 의심했었고.

이번 애플망고 사태로, 그 의심은 거의 확신이 되었다.

에고스틱은 단순한 빌런이 아니다.

결코 히어로라고도 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적이라고도 하기도 애매하고, 아군이라고는 볼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아군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

이놈은 무언가, 거대한 판을 짜고 있다는 의심을.

스타더스 그녀는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녀는 그날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대체 에고스틱 이놈은 무얼 꾸미는걸까. 사실 알고보니 우리편? 아니, 그건 절대 아니야. 알고보니 진짜 선배 히어로가 빌런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면? 뭐라는거야 하루야. 너가 드디어 미쳤구나.'

그렇게 복잡한 생각만을 하며 잠 못 이루는 그녀였다. 그가 일으킬 다음번 테러에서는 꼭 정체를 밝히겠다는 다짐만을 하며...

'그런데 진짜 왜 스스로를 애플망고라고 지칭한거지? 무언가 이것도 숨겨진 의미가 있나?'

***

"좇같다..."

"대체 왜 애플망고라고 한거에요? 말해봐요 오빠. 망고 그렇게 싫은척 하더니, 사실은 그 별명이 좋았던거에요?"

"조용히해줘... 제발...!"

쪽팔려서 뛰어내리고 싶으니까...

EP.45 큰그림

서울의 지하 깊은 곳.

그곳의 참 많은 방들 중 하나.

회의실이라고 명명된 한 방에서,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팔을 모은 채 앉아있었다.

'제 6차 에고스틱 정기 회의'라고 적힌 칠판을 등지고, 나는 입을 열었다.

"앞으로 우리의 행동노선을 확실히 정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아니라 오빠 혼자 아니에요? 갑자기 애플망..."

"서은아. 한번만 더 그 얘기 꺼내면 오빠 일주일동안 입 안연다. 혼자 방에 문닫고 들어가 있을거야. 그리고 울거다. 꺼이꺼이. 너가 말 한마디로 다 큰 어른을 울리는거야. 이 얼마나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일이니?"

"알았어요 원. 농담도 못해."

"물론 우리 서은이가 오빠를 위하는 마음은 잘 알지. 일주일만에 깨어났다고 꺼이꺼이 우는걸 보고 오빠는 큰 감동을 했..."

"악!! 아, 안들려요. 빨리 회의인가 뭔가나 해봐요."

일단 시작전에 서은이가 놀리는걸 먼저 차단했다. 내가 깨어난 이후로 계속 망고 망고 거리며 놀렸다고... 좀 자제시킬 필요가 있다.

"그래, 하여튼. 우리의 행동노선을 확실하게 정해야겠다."

나는 그 말과 함께 한숨을 푹 쉬었다.

"저번처럼 무작정 그 몽키스패너인가 뭔가 막으려했다가 이 사단이 난거 아니야. 내가 잠시 내 신분을 망각한 것같다. 나는 히어로가 아니라 빌런인데 말이지."

"어... 오빠, 미안한데요. 요즘 사람들 거의 오빠를 히어로로 보고 있는거 같던데? 이미 오빠 팬카페가 무슨 에고스틱이 히어로인 20가지 이유를 쫙 뿌려서..."

"아..."

나는 침음을 삼켰다. 그래, 확실히 요즘 나댔지.

점점 내 빌런으로써의 정체성이 흐려지고 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뭔데요?"

"잠수탄다."

내 갑작스러운 잠수 선언에 서은이와 듣기만 하던 수빈씨도 얼이 빠진 표정이 되었다.

대체 어떻게 거기서 그런 결론이 도출되었냐는 듯한 시선.

나는 그들에게 차근차근 설명을 해줬다.

"인간은... 냄비같은거야. 어떤거에 관심을 가지다가도, 한동안 언급이 없으면 팍 식어버리지. 그리고 모두가 까먹는거야."

"그러니까...사람들이 오빠를 까먹게 할거라는거에요?"

"그래, 한동안은."

내 말에 서은이는 떨떠름한 눈길이 되었다.

하긴, 서은이가 늘 테러 계획할때 말로는 피곤하다 하면서도 제일 신나하기는 했지.

내 선언에 수빈씨가 물었다.

"그럼 그동안은... 뭐하죠?"

"맞아요. 대중에 노출 안되는게 목적이면 빌런도 잡지 말아야 하는거 아닌가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그렇지."

사실, 서은이와 수빈씨에게는 이렇게 말하기는 했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이미 많이 했어.

원작 초반부에 나오는 빌런들도 거의 다 죽였고, 지금 활동하는 이들중 후반부에 각성하는 놈들도 미리 다 죽였다. 엔조디악과 텔레포터 이 둘만 처리해도 많이 한거지.

그리고 테러도... 이미 시점으로는 원작 초반부치고 스타더스의 힘도 매우 강해졌다. 거의 원작 중반부급? 애초에 비행기 떨어지는게 원작 중반부에 있던 일인데...

거기에 테러의 소소한 목적중 하나이던 스타더스 대중 호감도 상승도 이루어냈다. 별먼지단이라니, 원작에서는 없던 팬클럽이다. 누가 지었는지 몰라도 참 잘 짓지 않았나?

"그럼 쉬는동안 오빠는 뭐하게요. 스타더스 팬카페나 계속 운영하게?"

차가운 표정으로 나에게 묻는 서은이.

어라?

"으, 응? 무슨 소리니?"

"오빠가 그 별먼지단인가 뭔가의 카페 대표 아니에요?"

눈을 지긋이 뜬 채 추궁하는 서은이의 모습에, 나는 갑자기 식은땀이 흐르는게 느껴졌다.

"아, 아닌데?"

"오빠... 제가 정부기관도 해킹할 수 있는데, 포탈사이트 카페 하나 못털겠어요?"

"하하..."

아니... 그렇다고 해도 그걸 털어볼 생각은 굳이 안하지 않나?

크흠. 나는 헛기침을 하며 상황을 무마했다.

"그런게 중요한게 아니야. 사실 우리가 이때까지 쉴세없이 달려왔잖니? 그러니까 잠시 휴식도 가져야 할 필요도 있어. 방학이라 생각해 방학."

"그러면 진짜, 한동안은 일 안하고 푹 쉬는거에요?"

"어... 뭐 가끔 짜잘짜잘하게 해야하는거 빼면?"

"뭐, 좋아요."

그제서야 서은이는 납득했다.

아니, 내가 쉬는건데 어째서 너한테 허락을 받는거지..?

어쨌든, 그렇게 우리는 잠수를 탔다.

대중들아 나를 잊어줘!

***

대외활동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놀기만 했다는건 아니다.

어렵게 생긴 시간이니만큼 앞으로의 일정도 미리미리 계획해놔야지.

"....."

지하 깊숙한 곳에 있는 내 방.

그곳의 벽에 붙여놓은 칠판을 보며,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일단 한시름 놨다.

초반에 짜증나는 빌런들은 모두 제압했다. 이제 남은 애들은 뭐 스타더스 주먹 한방에 나가떨어지는 애들이니, 딱히 내가 걱정할 만한거는 아니다. 티비로 팝콘먹으면서 보면 될 일이니, 큰 걱정은 안되고...

스타더스 능력도 굉장히 강화시켜놨으니 한동안은 든든하다고 할 수 있다. 딱히 나설 필요도 없다.

"메인이벤트는 딱히... 없네."

당분간은 큰 사건 사고가 안 벌어질거다.

물론 몇개월 뒤면 진짜 대형 사건이 벌어지기는 하나, 그거는 그때가서 막으면 될 일이다. 한 반년은 안전하다는 소리.

그동안 뭘 해야할까.

일단 나는 내 목표를 떠올렸다.

목표는 스타더스를 꽃길만 걷게 해주기.

그리고 최종적으로, 마지막까지 살아남기.

지금은 굉장히 평화롭다.

물론 달마다 대규모 테러가 하나씩 터지고 있기는 한데... 이정도면 굉장히 평화로운 편인거다.

이제 몇년 뒤면 파워 벨런스의 붕괴로 온갖 미친 능력의 빌런들이 쏟아져 나온다.

빌런들이 가득해지는 것과 별개로 실질적인 히어로는 스타더스와 북해빙녀 둘뿐이니 당연히 커버가 안되고... 개판이 된다.

그렇게 세상이 흉흉해지다가는 연약한 빌런인 나는 길을 걷다가 목이 뎅강 썰려버리고 말거다. 끔찍해라.

그것만은 안된다 그것만은...!!

그걸 막으려면 뭘 하면 되나.

분명 빌런들은 나중에 쏟아져나온다고 했다.

그 말은, 아직까지는 빌런이 아니지만 잠재적 빌런인 이들이 있다는 뜻.

그래, 대표적으로 우리 서은이가 있다.

원작에서는 행정체계도 부수고 정부도 마비시키고 협회도 털어버리는 빌런이 되어버리지만.

내가 흑화하기 전에 미리 거두었기에 이제는 빌런이 아니다.

그러니까 결론은.

아직 빌런이 아닌 애들이 빌런이 되기 전에, 내가 막으면 된다.

그리고 내가 써먹어야지. 다들 능력 하나만은 끝내주거든. 당장 서은이만 해도 봐라. 얘 없었으면 테러고 뭐고 아무것도 못했다. 내가 이 세계에서 제일 먼저 서은이를 품은건 다 이유가 있는법.

나는 날짜를 봤다.

그래, 이맘때쯤이면 그 남매가 그러고 있을 시기네...

대충 계획을 짰다.

내가 꿈꾸는것은 단 하나.

미래의 빌런들을 다 품어서, 거대한 빌런 연합을 만드는 것!

이름은 대충 에고스쿼드로 지으면 될 것같다.

좋아, 좋아.

대충 만족할만한 결론을 지은 나는, 칠판에 적어놓은것들을 다 지우고 자리에 앉았다.

파워벨런스가 붕괴하는 이 엿같은 만화에서 살아남을려면 이정도는 해도 되지 않겠어?

"휴우..."

쉴려고 했는데, 쉴 틈이 없겠구만.

나는 자리에서 노트북이나 켜봤다. 또 너무 머리를 썼어, 힐링을 해야돼.

나는 자연스럽게 북마크해둔 스타더스 팬카페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떠오르는 카페 대문 사진. 별먼지단이라고 적힌 글자 뒤에 스타더스의 얼굴이 보인다.

그래, 숨겨서 무엇하랴. 이 카페는 내가 만들었다. 아니! 제일 좋아하던 만화의 제일 좋아하던 캐릭터 덕질좀 하겠다는데, 누가 나를 말릴수 있겠는가? 원래 잘 살던 현실세계에서 이곳으로 강제로 납치됐는데 이정도 소소한 행복은 있어야 하는거 아닌가 싶다.

"흠, 흠."

누구한테 하는건질 모를 변명을 속으로 하며, 나는 카테고리중 하나를 눌렀다.

바로 스타더스 베스트 컷.

스타더스를 찍은 사진들을 모아논 곳이다.

"하아... 그래, 이거지."

스타더스가 시민들을 구할때, 시민들은 무엇을 해야겠는가.

도주? 물론 도주도 해야겠지만, 가는길에 사진 몇번 찍는건 괜찮잖아?

그렇게 찍힌 직캠들.

음.

역시 이쁘다.

이 만화를 현실에서 실사 영화로 만들때 저렇게 생긴 배우를 썼으면 1000만명 그냥 넘겼을걸.

그렇게 나는 한동안 스타더스 사진들을 둘러보며 지친 마음을 힐링했다. 그래, 이거면 된거야...

참고로 사비를 털어 카페 내에서 대회도 개최했다. 제일 이쁜 스타더스 사진 찍기 대회.

스타더스가 매일 나같은 A급 거물들만 상대하는건 아니다. B, C급등 조금 허접한 애들도 많이 상대한다.

그리고 그럴때면 이렇게 사진이 찰칵찰칵.

대회를 맞이해 올라온 수많은 게시글들의 사진들을 다 저장하고, 나는 노트북을 닫았다.

이정도면 많이 쉬었지.

이제는 뭐하지?

아, 일기나 적을까.

나는 책장 깊숙한 곳에서 노트를 꺼냈다.

이게 바로 내 일기. 혹시라도 서은이나 수빈씨가 볼까봐 자물쇠까지 걸어놨다.

이 일기는, 내가 빙의한 첫날부터 이때까지의 일들을 적어놓은 것.

나중에 어떤 빌런을 상대할때 이러한 일기가 꼭 필요하기에, 미리미리 적어두는 것이다.

...이 나이먹고 일기쓰고 있으니 좀 자괴감이 들기는 하지만. 뭐, 일기라고 해도 내가 일으킨 사건과 감정만 적는거다. 나중에 다시 기억할 수 있도록.

아마 이 일기를 나말고 다른이가 읽을 일은 없을거다.

...없겠지?

그렇게 일기작성까지 마친 나는, 등받이에 몸을 뉘였다.

이제는... 다시 놀아야겠지?

나는 다시 그렇게 신나게 놀았다.

테러도 안 일으키고 푸욱 쉬니까 좋구만.

아마 요즈음은 내가 사건을 안 일으켜서 스타더스도 안심하고 있지 않을까?

***

신하루. 그녀는 계획이 있었다.

다음에 에고스틱을 만날때는, 그때야말로 기필코 그놈이 숨기고있는 진실을 밝힌다는 계획이.

그런데...

"아니, 얘 왜 요즘 조용해?"

저번 호텔사건 이후, 에고스틱은 한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삼개월동안.

'....이놈이 이럴리가 없는데'

신하루는 자신도 모른채 살짝 초조함을 느끼고 있었다.

에고스틱 얘 어디간거야.

EP.46 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