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화. 생사(生事)
왕비는 잠에서 깨자마자 구 어멈이 바깥채에서 춘초와 추계 등과 함께 나지막이 잡담하는 소리를 듣게 됐다.
춘초가 인기척을 듣고는 서둘러 들어와 발을 치고 추계를 불렀다. 구 어멈 역시 급히 따라 들어왔다. 어린 시녀가 뜨거운 물, 손수건, 물병 등을 들고 들어왔고, 구 어멈은 춘초와 추계를 도와 왕비가 양치하고 씻은 후 옷 갈아입는 것을 도왔다. 왕비는 동편 곁채 남창 아래 침상에 앉았다.
왕비는 구 어멈이 내미는 차를 기분 좋게 받아 두 모금 정도 마시더니 고개를 돌려 창을 바라보면서 분부했다.
“창문을 좀 열어라. 오늘 밖의 날씨가 아주 좋구나.”
어린 시녀가 황급히 다가와 창문을 열어젖혔고, 왕비는 방 안에 쏟아져 들어오는 시원하고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고 다시 길게 내쉬었다.
어제저녁은 몇 년 동안 답답하게 쌓여 왔던 화를 토해내는 셈이었다! 그녀의 각이는 문무에 능하고, 어려서부터 고되게 무예를 갈고 닦아 보기에 안쓰러울 정도였다. 정각은 연마를 계속했고, 예닐곱 살 때 수운 선생의 문하로 들어가 그녀의 체면을 세워주었다. 이후 열 몇 살 때는 변방으로 나가서 창과 칼로 이름을 날려 심지어 황상께서도 몇 번이고 칭찬해 주었다.
‘이런 복숭아라면, 하나로 충분하지!’
그 썩은 살구들이 아무리 많이 광주리에서 쏟아져 나온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보기만 해도 역겨울 뿐이지!
왕비는 가볍게 고개를 들었다. 입가에 저절로 웃음이 걸린 채로 그녀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바깥의 풍경이 볼수록 더 훌륭해지는 것만 같았다.
구 어멈은 조심스럽게 왕비의 안색을 살폈다. 왕비의 기분이 좋아 보이자 그녀는 슬며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서, 시녀가 받쳐오는 홍조연자갱(*紅棗蓮子羹: 대추와 연밥을 넣고 끓인 탕)을 올렸다. 그리고 방에서 시중을 드는 어멈을 훑어보다가 추계가 옆에서 시중드는 것을 보고는 웃으면서 말했다.
“어젯밤, 작은 마님께서 전 어멈을 보내 송 태의를 왕부로 부르셨습니다. 듣자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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