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4화. 사릉무사의 출현 (2)
초목이 우거진 들판.
한 줄기의 가늘고 긴 그림자가 풀밭 위로 드리워졌다. 손가락은 하늘에 걸려 있는 무언가를 잡으려는 듯 느릿하게 허공을 휘젓고 있었다.
그의 손 안에서 한 줄기 은은한 불빛이 새어 나왔다.
빛은 옥처럼 뽀얀 손바닥 안으로 녹아들었다. 순간 사내의 흉곽이 가볍게 융기하더니 입가에서 한 줄기 선혈이 흘러내렸다.
“흥.”
낮은 웃음소리와 함께 사내가 입가의 피를 깨끗이 닦은 다음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일개 원신으로선 당연히 그들의 적수가 될 수 없지. 천지자연의 법칙을 뒤흔들 힘 역시 훨씬 미미하고 말이야. 원신이 본체로 돌아가 녹아들면 부상 역시 완전히 본체에 녹아들게 돼. 그런데 이 부상은 일개 원신에게는 중상이겠지만 본체에게는 원신에 난 작은 상처일 뿐이야. 정말로 상대방이 나에게 악의가 담긴 중상을 입힌다면 원신이 장소를 옮겼다고 해도 작은 부상이라고 말하기는 힘들겠지만 말이야. 하지만 내가 원한다면 그들에게 얼마든지 벌을 줄 수 있다고. 그들을 혼비백산하게 하지는 못하더라도 이번 생에 더는 발전하지 못하게 하기엔 충분하지.”
“안타깝네. 내가 지나치게 끼어들면 대세에 영향을 줄 수 있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정말 짜증 나.”
속상한 듯했지만 맑고 듣기 좋은 목소리였다. 사내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음에도 그 목소리는 듣는 사람을 현혹해 자기도 모르게 그를 위로하고 그의 마음속 고민을 해결해 주고 싶게 만들었다.
그때 사내가 고개를 들어 한쪽 방향을 바라보았다. 사내의 입꼬리가 가볍게 올라가며 섬세하고 아름다운 눈이 가벼운 호를 그렸다. 짙은 녹색의 신비로운 눈동자는 그 안의 새까만 동공을 감싸고 있었다. 눈동자 안에서 반짝이는 은은한 잔물결은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의 피부는 음침한 날씨에도 부드러운 빛을 발산하는 옥 같았다. 절세의 용모는 인간의 것 같지 않았다.
이 사람은 바로 사릉무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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