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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여치 (3)

19화. 여치 (3)

임근지는 육함이 하는 말이 결코 거짓으로 지어낸 것 같지 않아, 갑자기 기분이 아주 좋아졌다.

생각해 보니 역시 그랬다. 임근주와 임근옥 같은 성격을 가진 사람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게다가 평소에 부드럽고 얌전하던 근용 언니가 오늘 이렇게 사납고 흉포한 짓을 저지르게 된 건 다 육륜의 그 여치 덕분이었다. 그녀에게는 정말 복덩이가 아닐 수 없었다.

네 명의 자매 중 동시에 세 명이 쓰러지자 임근지는 눈썹을 휘며 웃었다.

그녀가 한창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을 때 한쪽에 있던 임신지가 녹색 즙이 아직 묻어 있는 여치 우리를 들어 올렸다. 그는 땅에 쪼그리고 앉아 시끄럽게 울어대기 시작했다.

어찌나 잘도 울어대는지 벌써 눈물이 줄줄 흘러 잠깐 사이에 그의 앞 흙바닥이 흠뻑 젖을 정도였다.

임근용은 이 모습을 보다가 머리가 다 아파서 쪼그려 앉아 그를 위로했다.

“울지마. 누나가 나중에 방법을 생각해 보고 더 좋은 놈으로 찾아줄게.”

하지만 임신지는 그녀의 말은 듣지도 않고 소매를 잡아당기며 울어서 쉰 목소리로 말했다.

“이거 살려내! 내가 원하는 건 얘란 말이야!”

육륜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임신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죽으면 끝이지, 어떻게 다시 살려내란 건데? 내가 나중에 다른 더 좋은 놈으로 찾아 줄게. 왜 널 도와 준 넷째 누나한테 떼를 써? 그럴 거면 그 일곱째 누나한테나 가서 떼를 쓰든지!”

임근용은 울 수도 웃을 수도 없었다. 그녀는 임신지의 손에 더러운 여치의 즙과 진흙이 묻은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를 품에 안고 가볍게 토닥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달랬다.

“그래, 그래. 우리 같이 얘를 원래대로 살려낼 방법을 생각해 보자. 우리 일곱째 그만 울어. 이제 다 컸잖아. 사람은 웃으면서 살아야 돼. 착하지.”

임신지가 누나의 목을 껴안았고 울음소리가 점점 잦아들었다.

임근용은 동생의 부드럽고 따뜻한 몸을 안자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따스함에 갑자기 슬퍼져 가슴이 아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 역시 이렇게 보드랍고 작은 몸을 안고 가볍게 달래며 흔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 작은 생명은 눈 깜짝할 사이에 차갑게 굳어 다시는 웃지도 울지도 못했다.

‘대체 누구의 잘못이었을까?’

임근용은 갑자기 명치 부근이 따가워지며 눈꼬리가 시큰거렸지만 필사적으로 참았다.

“신지 좀 봐…….”

오상이 눈웃음을 지으며 낮은 목소리로 육함에게 말했다.

“나도 어렸을 때 저렇게 떼쓰다가 큰 누나가 달래줬던 게 생각나네.”

육함은 입을 다물고 임근용 남매의 뒷모습을 보며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임역지는 옆에서 꾸물거리며 관망하다가 임근용 남매 곁으로 가서 떠보듯 말했다.

“신지야, 너무 슬퍼하지 마. 내가 금전거북이 며칠 빌려줄 테니 데리고 놀아. 내일 같이 여치 잡으러 가자. 이것보다 좋은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괜찮은 걸 잡을 수 있을 거야.”

임근용은 의아하다는 듯이 그를 한 번 보고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오라버니, 생각해줘서 고마워요.”

역시 한 다리 건너뛴 사이가 맞았다. 만약 임역지가 그녀의 친 오라버니였다면 쌍둥이가 임신지를 괴롭히는 걸 보고도 가만히 있다가 이제야 나서겠는가?

하지만 그렇다고 원래부터 격의 없이 대하던 사이도 아닌 그가 굳이 자신들을 위해 위험을 무릅쓸 필요도 없었기 때문에 임근용은 더 이상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임역지는 그녀에게 고맙다는 말을 듣고, 얼른 그녀의 귓가로 다가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임근주랑 임근옥이 분명히 가서 일러바칠 텐데 어떡할 거야?”

임근용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뭘 어떻게 해요, 그러든지 말든지. 처음부터 걔들이 억지를 쓴 거잖아요. 본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데요.”

어린 동생이 쌍둥이에게 괴롭힘당하고 울분을 참는 걸 손 놓고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다 같은 임씨 가문의 자손인데, 뭣 때문에 삼남가의 사람들만 계속 참아야 한단 말인가?

아무 말도 못 하고 울분을 참기만 하는 건 다른 두 집이 삼남가를 업신여기고 자기들 마음껏 밟게 그냥 놔두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임역지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부인이 분명 가만있지 않을 거야.”

차남가는 지나치게 총애를 받은 나머지 늘 이겨 먹으려고 싸움을 거는 습관이 있었다. 최근에는 그들의 야심이 점점 커져 심지어 장남가와도 우열을 다투려는 기세였다.

임근용이 육륜과 함께 육, 오 두 가문의 자제들 앞에서 쌍둥이의 본성을 드러내고 크게 망신을 주었으니 이부인이 임근용을 어디 쉽게 용서하겠는가?

그녀뿐만 아니라 임역지도 괜히 말려들어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고 있었다.

임근용이 눈을 들어 임역지를 바라보았다.

“오라버니 무서워요? 난 하나도 안 무서워요. 누구든 내 앞에서 내 형제자매를 괴롭히려면 우선 나부터 밟고 가야 할 거예요!”

임근용이 단호하게 한 마디 했다. 그녀는 늘 사람들과 부딪치지 않으려 더러운 것들은 피하기만 했던, 그래서 비겁함이 몸에 뱄던 지난날의 임근용과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커서 육씨 형제와 오상이 다들 이 말을 듣고 잇따라 그녀를 쳐다보았다.

육륜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뻔뻔스럽게 큰 소리로 말했다.

“제자가 드디어 하산할 때가 되었구먼! 만약에 네가 훌쩍거리며 울기만 했거나, 숨어서 찍소리도 못 하고 있었으면, 내가 널 경멸했을 거야!”

오상이 곁눈질로 그녀를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임근용은 무의식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피했다.

임역지의 눈빛이 움츠러들었다. 그는 뭔가 말을 하려다 끝내 하지 못하고 낮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내가 아버지께 가볼게.”

임근용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껏 임 삼노야에게 어떤 기대도 품어 본 적이 없었다. 임 삼노야는 어린아이의 일에 누나가 왜 함부로 끼어들었냐며 위엄을 부리는 말투로 혼이나 낼 것이 분명했다.

틀림없이 한 번 타일렀으면 그만이지, 괜한 트집을 잡을 필요가 있었느냐? 라며 훈계한 뒤 흐지부지 넘어갈 것이다.

그는 그녀들에게 그저 명목상의 아버지일 뿐이었다.

그가 있어서 명목상 그녀들은 고아와 과부는 아니었지만, 사실 그가 없어도 크게 달라질 건 없었다.

오늘 이 일은 그녀 역시 마지막에 어떻게 끝나게 될지 정말 예측할 수 없었다.

육함이 나타나지 말아야 할 곳에 나타나면서부터 통제 불능의 오차가 생겼다.

예를 들어 육함이 그녀의 계략에 걸려서 임옥진을 화나게 한 것, 그리고 아까 여치 사건까지 전부 통제 불능의 오차였다.

하지만 그러면 또 어떻단 말인가?

임근용은 눈을 내리깔고 임신지의 정수리를 보며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이건 처음부터 어린아이들 간의 싸움이었다. 할머니가 아무리 편애한다 해도, 또 이부인이 아무리 사납게 군다 해도 본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 사건에 한쪽 편만 들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임근용은 정말로 한 쪽 편만 들어 그녀에게 벌을 준다 해도 기꺼이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평생 남에게 멸시와 괴롭힘이나 당하는 겁쟁이로 살 수는 없었다!

사람이란 모두 밑바닥에 저열한 본성을 가지고 있어서 늘 당하면서도 참는 사람을 괴롭히는 걸 좋아하는 법이다. 그녀는 다시는 남에게 속고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그걸 당연하게 여기는 등신은 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한편 어린 소년들은 본래 근심할 줄을 몰랐다. 사건이 일단락되자 다들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고 함께 모여 웃고 떠들기 시작했다.

임근용은 거기에서 육함이 자신을 구역질 나게 하는 것을 보고 있을 생각이 없었다. 또 쌍둥이가 고자질 한 후에 생길 수 있는 후유증도 생각해 보아야 했기 때문에 예를 갖추며 그들에게 인사했다.

“전 신지를 데려가서 좀 씻고 옷도 갈아입어야 할 것 같아요. 오라버니들은 편할 대로 하세요.”

임근지는 그녀가 정말 가려고 하자 급히 달려가서 소매를 잡아당기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언니 정말 가려고요? 나 혼자 여기 남아서 어쩌라고요?”

임근용은 그녀에게 임신지에게 잡혀 진흙과 알 수 없는 녹색 즙이 잔뜩 묻은 소매를 내보였다.

“내가 이런 꼴로 여기 있는 게 어울리겠어? 그리고 신지의 저런 모습을 다른 사람들이 보는 것도 안 좋잖아.”

“쯧!”

임근지는 싫은 내색을 하며 한 걸음 물러나더니 발을 동동 구르고 눈살을 찌푸리며 뾰로통하게 말했다.

“그럼 난 어떡해요?”

임근용은 오상과 수줍어하며 대화를 하고 있는 육운을 보고 말했다.

“육 동생을 내버려두고 다 가 버리면 안 되잖아? 그럼 사람들이 우리가 실례를 범했다고 할 거야.”

임근지가 갑자기 활짝 웃으며 당당하게 말했다.

“언니는 얼른 가 봐요, 난 운이랑 함께 있을게요.”

그러더니 임근용을 향해 눈짓하며 속삭였다.

“언니 방금 진짜 무서웠어요. 근데 정말 통쾌하기도 했어요. 걱정 마요. 이따 속 좁은 두 야만인들이 소란을 피우면 내가 언니 대신 증언해 줄게요. 본전도 못 찾게 만들어 줄 거예요.”

임근용이 담담하게 웃었다.

“그래, 미리 감사 인사를 할게.”

그녀는 임신지에게 몸과 마음이 바로 서야 한다고 가르쳤지만, 오히려 스스로는 나쁜 마음을 품고 일을 도모하고 있었다.

꿈에서 깨어난 순간부터 그녀는 정의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고 중생을 인도하는 부처가 되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원칙에 반하여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독한 소인이 되고 싶지도 않았다.

인간은 본래 이기적이고, 흉한 것을 피해 길한 것을 택하는 것이 본능이라지만 대체 어디까지가 적정선일까?

무엇이 옳은 걸까?

또 무엇이 틀린 걸까?

임근용은 탈피가 고통스러워서 차라리 도망치고 싶었다.

쌍둥이는 대나무 숲에서 곧장 연극을 보고 있던 건물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임근옥은 온 얼굴에 눈물 칠갑을 하고 울면서 “할머니!”라고 소리쳤다. 그리고 임 노부인의 품에 안겨 일어나지 않았다.

임 노부인은 연극에 빠져 있다가 그녀가 갑자기 이러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말했다.

“무슨 일이냐?”

쌍둥이가 거짓으로 일러바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임근옥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임 노태야를 끌어안고 숨이 넘어갈 듯 울어 젖혔다. 장내의 이목이 한순간에 집중되고 사람들이 호기심 어린 눈빛을 보냈다.

곧이어 임근주가 뒤따라 들어와 도씨를 훔쳐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육륜 오라버니가 신지에게 여치를 한 마리 주었는데 근옥이가 여치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호기심에 가져와서 좀 보려 했어요. 그런데 신지가 보여주기 싫다며 바닥에 앉아서 울기 시작했어요. 제가 뭐라고 했더니 넷째 언니가 저와 근옥이한테 무례하다고 욕하면서 신지에게 사과하라고 했어요. 안 그러면 근옥이를 때리겠다고 하면서요.

육, 오 두 집 오라버니들 앞에서 일이 커질까 봐 제가 좋게 말하고 넘어가려고 했는데 육륜 오라버니가 튀어나와서 우리한테 버릇이 없다며 욕을 할 줄은 몰랐어요. 못된 계집애라면서, 앞으로 누구도 우릴 좋아하지 않을 거라고…….”

그녀는 이렇게 말하며 고개를 숙이고 억울한 듯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맑은 눈물을 두어 방울 떨어뜨리며 아주 치욕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녀가 말을 끝내자 임근옥이 더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렸다. 마치 누가 산 채로 갈기갈기 찢기라도 하는 양 크게 울어댔다.

임 노부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임옥진과 웃고 떠들던 임 이부인도 말을 멈추고 사랑스러운 딸들을 애처로운 눈길로 바라보다가 곱지 않은 시선으로 도씨를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