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2화. 망쳐 버리다
무릎을 사흘 동안 꿇지 못했으니 셋째 부인과 넷째 부인이 다시 훤친왕비를 찾아와 무릎을 꿇고 부탁하는 일은 없을 터였다. 게다가 어제 두 사람은 매우 처참해 보였다. 아마 서너너덧 일가량 몸조리를 하지 않으면 밖에 나오지 않을 것이다.
심모가 훤친왕비 곁에 앉아 진맥을 봐주고 있을 때 바깥에서 계집종이 들어와 아뢰었다.
“왕비마마, 측비마마께서 오늘 항왕부에서 납채를 보내오는 날이라고 계집종을 보내 전하셨습니다.”
소매를 내리며 훤친왕비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항왕부에서 어느 분을 보내 납채를 보내오는지 아느냐?”
계집종이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습니다.”
“고 측비한테 왕부 대문으로 나가 귀빈을 맞이하라고 일러라.”
훤친왕비가 분부를 내렸다.
항왕부에서 납채를 보낸다면 분명 귀부인을 통해 보내올 터였으나 그게 누구든지 훤친왕비는 개입할 생각이 없었다.
고 측비가 계집종을 통해 이 일을 알린 건 훤친왕비가 항왕부의 체면을 세워줬으면 좋겠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훤친왕비가 그녀한테 직접 귀부인을 맞이하러 가라고 할 줄은 생각도 못 한 일이었다.
일각 후, 조언연을 데리고 형무원으로 온 고 측비가 말했다.
“항왕야와 원유의 혼사는 폐하께서 내려주신 것입니다. 왕비마마께선 항왕부에서 납채를 보내오는데 제가 대문 앞에 나가 맞이하는 게 적합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고 측비도 훤친왕비에게 귀빈을 맞이하라고 할 생각은 없었다. 이 넓은 경도에서 황제와 태후를 제외하고는 황후가 찾아왔다고 해도 훤친왕비는 맞이하러 나갈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훤친왕비가 대문으로 마중을 나가지 않더라도 대신 세자비를 보내야 했다. 그리고 훤친왕비가 중문에서 맞이한다면 항왕부의 체면을 충분히 세워주고 자신의 신분 또한 깎아 먹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런데 세자비를 부리기 아깝다고 그녀에게 나가란 거였다.
훤친왕비가 고 측비를 바라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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