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4화. 재촉
가을이 되어 방 안의 얼음 그릇을 치웠지만 여전히 더운 느낌이 남아있었다. 한지는 얼굴을 씻은 뒤, 마당 앞으로 나갔다.
“세자, 어찌 그리 우울해 보이십니까?”
뒤에서 익숙한 매화향이 전해져왔다.
한지는 뒤돌아서서 조용히 정요를 쳐다봤다.
정요가 눈을 내리깔았다.
“제 거처의 마당도 마음대로 걸을 수 없는 겁니까?”
“아니, 그럼 난 이만 돌아가 보지.”
한지가 지나쳐가자, 정요가 한지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한지가 눈살을 찌푸리고 정요를 쳐다봤다.
정요는 한지의 옷자락을 더욱 꽉 쥐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내 몸은 아직도 그리 원하면서, 평소엔 어찌 이렇게 서리처럼 차갑게 구는지. 내가 옛사람들의 시를 표절한 것 외에, 무슨 용서할 수 없는 죄를 저질렀단 말인가? 예전엔 분명 죽을 때까지 나만 사랑하겠다고 해놓고선, 그 사랑이 이토록 보잘것없는 마음이었단 말인가? 한지가 사랑한 건 내가 아니라, 상상 속의 완전무결한 여인이었나보구나!’
“정요, 이거 놓거라. 이렇게 들러붙는 건 보기 좋지 않아.”
정요가 피식 웃었다.
“여기 저희 말고 또 누가 있단 말입니까?”
정요가 한 걸음 다가서자, 은은한 향기가 두 사람을 감쌌다.
“세자, 며칠 전 제가 한 말 때문에 그리 우울하신 겁니까?”
“그게 뭐 어때서?”
“정미는 늘 예상 밖의 행동을 저지르곤 하니까요. 세자께서 정말 정미를 연모하신다면, 제게 세자의 바람을 이루어드릴 방법이 있습니다.”
정요의 속눈썹이 살짝 떨렸다.
“저도 제 잘못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세자께 확실히 보상해드려야지요. 그저 앞으로 세자께 새로운 사람이 생기더라도, 저를 조금만 더 생각해주시길 바랄 뿐입니다.”
한지는 괴물을 보는 듯한 눈빛으로 정요를 쳐다봤다.
“바람을 이루어주다니? 정요, 잠꼬대 같은 소리 하지 마라.”
“제게 정말 방법이 있―”
한지가 정요의 말을 끊었다.
“정요, 아직도 철 형님의 새로운 신분을 모르고 있는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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