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3화. 망신
“저는 지씨 가문, 영서 총독의 여식입니다. 아버지를 따라 수도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수도의 시회가 이렇게 재미있을 줄은 몰랐군요.”
지의련이 품속에서 어떤 물건을 꺼냈다. 물건은 부드럽고 반짝이는 비단으로 싸여 있어 몹시 귀해 보였다.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물건에 꽂혔다. 지의련이 비단을 풀자 책 한 권이 드러났다.
여러 번 읽었던 책인지, 모퉁이가 꽤 닳아있었다.
지의련이 서가복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서 아가씨, 와서 보시지요. 아가씨께서 말씀하신 책이 맞습니까?”
서가복이 성큼성큼 걸어가 책 이름을 훑어보더니 연거푸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바로 이 《습진유록(拾珍遺錄)》입니다!”
지의련이 서가복에게 책을 건네주었다.
서가복이 잠시 멈칫하자, 지의련이 부드럽게 웃었다.
“시회를 주최한 부인께 보여드리지 않을 겁니까?”
“그렇지!”
서가복은 번쩍 정신이 들어 책을 건네받고는 지의련에게 칭찬하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서가복은 뒤돌아서 도 씨의 앞으로 가 양손으로 책을 바친 뒤 장난스럽게 웃었다.
“도 부인, 어서 이 책을 보세요. 다 보신 후 저희 어머니께 제가 허튼소리를 한 게 아니라고 해명해주셔야 합니다.”
도 씨가 창백한 얼굴로 책을 건네받고는 조금 떨리는 손으로 첫 장을 넘겼다.
[분서갱유로 하나뿐인 서적들과 많은 기서(奇書)가 사라졌다. 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 몇 년 전 우연히 고산사(孤山寺)에 머물렀다가 낡은 고서 하나를 발견하였는데, 처음 보는 기이한 시가 백여 수 기록되어있었다. 이 보물 같은 시를 여러 번 퇴고하고, 빈 부분을 보충하여 이 책을 완성했으니, 후대에게 전해지길…….]
도 씨가 빠르게 모든 시를 훑어보았다. 늘 이런 분야에 빠져있던 그녀였지만, 지금은 전혀 빠져들 겨를이 없었다. 그렇게 마침내 시선이 한 곳에 꽂혔다.
[역참 밖 끊어진 다리 옆, 매화가 조용히 피어있지만 아무도 쳐다보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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