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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난

신비한 부의(符醫)가 되어 인생을 뒤바꾸다! 까맣고 거친 피부에, 이마와 볼에 난 여드름, 턱에 남은 여드름 자국까지…… 회인백부의 셋째 아가씨 정미는 여러모로 ‘부잣집 아가씨’의 틀에서 많이 벗어난 규수다. 게다가 적녀임에도 불구하고 적녀 취급은커녕, 서녀들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으며 어머니에게는 ‘쌍둥이 오라버니를 죽게 만든 아이’라는 이유로 미움을 받으니! 그러나 소꿉친구이자 상냥한 친척 오라버니인 한지와 자신만을 진정한 친여동생으로 바라봐주는 둘째 오라버니 정철 덕분에 꺾이지 않고 당찬 성격의 아가씨로 자라는데…… 하지만 어느 날, 사고로 정신을 잃은 날부터 정미의 눈앞엔 믿을 수 없는 장면들이 펼쳐진다. 행복할 줄만 알았던 한지와의 신혼은 완전히 무너져내리고, 불타 죽은 어머니와 등에 화살이 잔뜩 꽂힌 채 눈도 감지 못하고 죽은 정철, 태자를 낳지 못하고 죽어버린, 태자비이자 큰언니인 정아까지…… 눈앞의 장면이 너무나도 생생하여 정신이 나가버릴 것만 같던 그때, 정미의 머릿속에 어느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이봐, 만약 지금 네가 본 것들이 미래에 정말로 일어날 일들이라면 어떻게 할래?」 과연, 정미는 자신의 운명을 바꾸어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을까? 원제: 娇鸾(교난)

겨울버들잎 · Fantaisie
Pas assez d’évaluations
376 Chs

10화. 느릿느릿 늦게 온 사촌 오라버니

10화. 느릿느릿 늦게 온 사촌 오라버니

소녀들은 인기척을 느끼자마자, 모두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맨 앞에서 걸어오는 사람이 경왕의 왕세손이자 유명한 혼세마왕(*混世魔王: 세상을 어지럽히고 사람들에게 큰 재난을 가져다주는 사람)인 용흔임을 보고, 다들 긴장하며 급히 예를 갖춰 절했다.

“경왕세손을 뵙습니다.”

용흔은 한추화의 옆까지 걸어가 빙그레 웃었다.

“큰 사촌 누님, 누님의 이런 모습을 저희 어머니께서 보시면 또 제게 벌을 주시겠습니다.”

한추화가 웃었다.

“예를 갖춰야지요.”

이 말에 용흔은 사촌 누님에게 성질을 거두고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시선이 정미에게로 멈추고 나른하게 말했다.

“모두 일어나세요. 서로 잘 아는 사이끼리 이리 지나치게 예를 갖출 필요 없습니다. 오늘 저는 그저 같이 즐기러 온 것이니, 모두 편하게 하세요.”

자리에 있는 소년소녀들은 모두 친형제자매, 혹은 사촌형제자매 사이였고, 가장 먼 관계라도 어려서부터 서로 아는 사이였기에, ‘세형(世兄)’, ‘세매(世妹)’하고 부르고는 했다.

용흔의 말에 아무도 그에 구애받지 않았고, 분위기는 활기를 되찾았다.

정미는 이 ‘작은 패왕’을 가장 보고 싶어 하지 않았던 사람이었기에, 기회를 틈타 옆쪽으로 비켜 정요의 뒤로 숨었다.

용흔은 이를 느끼고는 한 쌍의 별처럼 반짝이는 눈에 차가움을 머금은 뒤, 그 방향으로 곁눈질했다.

“세손, 큰남동생이 어찌 함께 오지 않았습니까?”

오늘 연회에 참가한 소년들은 모두 왔으나, 정작 주인공이 오지 않은 것을 확인한 한추화가 물었다.

“흠?”

용흔이 정미를 보던 눈빛을 거두었다. 분명히 한추화가 뭐라 말했는지 듣지 못한 듯했다.

한추화가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말하자면, 정미도 운수가 좋지 않아, 하필 어릴 때부터 꼭 이 작은 패왕과 잘 맞지 않았던 바였다. 게다가 용흔은 세속의 예절에 구애받지 않는 사람이라, 트집을 잡아 시비를 걸기 시작하면 계집아이든 아니든 신경 쓰지 않았고, 사람을 놀리는 방법을 모두 생각해내 이를 행동에 옮기곤 했다.

“제 첫째 남동생이 어찌 당신들과 함께 오지 않았나요?”

“아, 노부인네들이 한지를 불러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 보고, 먼저 저 아이들만 데리고 왔습니다. 사촌 누님께서도 알고 계시듯이, 다른 사람과는 달리 저희 어머니께서 잔소리를 시작하시면 듣는 사람은 귀에 딱지가 앉으니…….”

“오라버니!”

용흔이 점점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는 것을 듣던 남 군주가 경고하듯 그를 불렀다.

용흔은 이 유일한 친여동생에게는 그런대로 괜찮은 오라버니였기에, 이를 듣고는 입을 다물었다.

한추화가 잠시 망설이며 말했다.

“그렇다면, 차라리 먼저 청설루(聽雪樓)로 들어가지요. 여기 화로가 있긴 하지만, 건물 안만큼 따뜻하지는 않습니다. 동생들이 감기에 걸리기라도 하면 낭패니까요.”

“사촌 누님 말을 듣도록 하지요.”

용흔이 웃으며 말했다.

* * *

청설루는 작고 정교한 건물로, 안에 들어선 뒤 사계절 내내 꽃이 피어있는 자단나무 병풍을 돌아 들어가고 나면, 넓고 환하게 트인 대청이 나왔고, 쉬는 공간은 2층에 자리했다.

대청 중앙에는 큰 탁자가 두 개 놓인 채였다. 모두 남녀를 나눠 각각 앉았고, 시녀들은 줄지어 들어와 말린 과일과 음료를 놓아주었다.

“어찌 과실주지?”

용흔은 수정으로 만들어진 잔에 담긴 푸른 음료를 보고 눈썹을 찡그렸다.

한추화가 웃었다.

“과실주면 딱 좋지요. 그렇지 않으면 동생들이 너무 많이 마셔 제가 야단맞을 수도 있으니까요.”

소년 중 가장 어린 소년인 한우(韓羽)가 중얼중얼 불평했다.

“큰누님, 큰형님께선 오늘 제가 술을 마시는 걸 허락하셨어요.”

한추화는 자기 집안의 어린 사촌 동생에게 그다지 친절하지 않았고, 그를 흘겨보다가는 말했다.

“마시고 싶으면, 네 큰형님이 왔을 때 다시 말해보렴.”

여덟 살밖에 되지 않은 한우는 큰누님의 위엄에 도전할 엄두가 나지 않았고, 찌푸린 얼굴로 조용히 성내며 말을 하지 않았다.

용흔은 이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으므로 그저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여식들은 과실주를 마시도록 하세요. 사내들은 이 달달한 걸 마셔서 뭐하겠습니까?”

말을 마치고, 그는 한추화가 입을 열기도 전에 고개를 돌려 옆에 서 있던 시녀에게 명령했다.

“탁자 위에 놓인 과실주를 치우고, 배꽃술을 가져오너라.”

용흔의 명령에 시녀들은 지체할 엄두를 내지 않고 어서 과실주를 치운 뒤, 배꽃술로 바꾸어 올렸다. 병을 열자, 감미로운 술향이 대청을 가득 메웠다.

약간 취한 분위기에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마음을 점차 놓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과실주를 마신 아가씨들까지 마음이 들떠 배짱이 평소보다 커다래졌다.

셋째 아가씨 한추몽이 수정잔을 들고 말했다.

“큰언니, 우리 이렇게 기다리기만 하니까 재미가 없는데? 벌주 놀이를 하자.”

이 제안에 다른 이들이 즉각 맞장구를 쳤다.

“시 놀이 어떤가요?”

도심이가 제안했다.

도씨 집안은 가양에서 유명한 학자 집안이라, 제왕의 스승을 배출해낸 적도 있었다. 재능으로 말하자면 도심이는 정요만큼 명성이 훌륭하진 않지만, 도심이 또한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정동이 정요를 살짝 곁눈질하여 훑어봤다. 그러곤 미소를 짓고는 부드럽게 말했다.

“매번 시 놀이를 하니, 제가 보기에 이번엔 ‘격고전화(擊鼓傳花)’ 놀이가 더 즐거울 것 같아요.”

평소 철천지원수인 정미와 비교하자면 정동이 정요를 대하는 태도는 괜찮았지만, 자매의 정으로 말하자면 그다지 깊지 않았다.

동 이낭은 자신이 재녀라 자만했고, 정씨네 둘째 나리는 더욱이 자신의 재주가 높은 것만 믿고 있었기에, 자녀들에게 이를 물려줄 수 있음을 특히 기뻐했다. 항상 보고 들은 덕분에, 정동이 시문에 들인 공은 적지 않았다.

원래는 스스로 만족할만한 수준이었지만, 하필 수도 제일 재녀인 정요가 위에서 누르고 있었기에, 속이 시원할 리 만무했다.

게다가 자리에 있던 소년들이 모두 또래임에다, 또 경왕세손이라는 황족까지 있으니, 그녀는 무의식중에 정요가 멋 부리는 것을 원치 않았다.

정동이 도심이의 제안을 반박했지만, 타고난 부드러운 목소리 덕에 반감을 사지는 않았다. 게다가 자리에 앉아 있는 소년소녀들 모두 아직 아이 티를 벗지 못해, 아직은 풍류를 좇는 것을 미처 즐길 줄 몰랐고, 격고전화 놀이를 듣자 시 놀이보다 재밌을 것 같아 모두 응하기로 했다.

오직 정미만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저는 술을 잘 마시지 못하니, 참가하지 않을게요.”

분위기가 갑자기 조용해졌고, 그쪽으로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어떻게 그래. 모두가 함께해야 즐겁지. 한사람이라도 빠지면 재미없어.”

정동이 말했다.

정동이 신경 써주는 모습을 보니, 정미는 가죽 신발로 그녀를 짓밟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었다.

이를 받아치기도 전에 한추화가 말했다.

“정미는 정말로 술을 못 마시는 게 맞아. 그래서 오늘 이 과실주도 정미에게 권할 수 없었는걸.”

그제야 모두가 정미 앞의 수정잔에 담긴 음료가 그저 맑은 물이라는 것을 주목했다.

정미는 한추화의 말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

‘맞다, 오늘은 지 오라버니의 열여섯 살 생일이잖아!’

앞서 복도 아래에 있을 때는 아가씨들뿐이었으니, 작은 다툼이 일어나도 괜찮았다. 하지만 지금 만약 또 정동과 날카롭게 맞선다면, 지 오라버니의 생일 연회에 흥을 깨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렇게 굴면 지 오라버니가 정말 나를 싫어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아무리 거만한 아가씨라도, 좋아하는 사람과 관련된 일이라면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이게 되는 법이었다.

정미는 지 오라버니가 혐오의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떠올리자마자, 마음이 식초 물에 잠긴 듯 시리고 아파옴을 느꼈다. 그래서 평소와 달리 정동과 맞서는 대신, 몸을 일으켜 시녀가 든 북을 받아들고는 말했다.

“그럼 내가 북을 칠게.”

“안 돼, 안 되지.”

진령운이 뛰쳐나왔다.

“꽃이 어디까지 전달되는지는 북 치는 사람의 손에 결정되는걸? 만약 너와 사이가 좋은 사람은 지나가게 해주고, 평소에 사이가 좋지 않은 사람 손에 꽃이 남도록 만들어 버리면 어떡하려고?”

“난 그렇게 하지 않을 거야.”

정미가 차갑게 말했다.

“이건 네 말만 들어서 될 게 아니야!”

아마 과실주를 많이 마신 탓인지, 진령운은 잠시 여기가 회인백부가 아니라는 것을 잊었고 점점 말이 거침없어지기 시작했다.

소년 중 평범한 외모를 가진 한 명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는 여자아이들의 다툼에 끼어들 수 없어, 가장 어린 한우에게 몇 마디 소곤댔다.

그 말을 듣더니 한우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가와서 천진난만하게 말했다.

“정미 누님, 북을 치고 싶으시면 공정하게 눈을 감고 하시면 되지요.”

어린아이의 말이었지만 꽤나 좋은 제안이었기에 결국 진령운은 입을 다물었다.

정미는 시녀가 바친 붉은 비단 수건을 받고 양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오른쪽 팔꿈치가 아파져 와서 저절로 손이 도로 내려갔다.

용흔은 술잔을 들고 계속 정미를 주시하다가 이 방법을 제안한 소년을 본 뒤, 얼굴에 싫은 기색을 띠었다.

‘못난 놈이 더 하다고, 그저 놀이 하나에 또 무얼 하려는 거야?’

“내 눈을 가려줘.”

정미가 옆의 시녀에게 명령했다.

붉은 수건이 두 눈을 가렸고, 사방이 조용해졌다. 정미는 적응이 되지 않아 북을 더듬었다. 그녀는 왼손으로 채를 찾아 잡고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는 말했다.

“그럼 시작하지요.”

채가 떨어지고, ‘퉁’ 하는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이때, 한지가 걸어들어왔다.

정미의 외가에는 네 명의 사촌 형제와 다섯 명의 사촌 자매가 있었는데, 큰 사촌 오라버니 한지와 큰 사촌 언니 한추화를 제외하고는 둘째 사촌 오라버니 한평(韩平), 셋째 사촌 남동생 한흘(韓屹), 넷째 사촌 남동생 한우와 나머지 네 여동생은 모두 작은외숙부의 자녀였다.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의 냉대를 받아온 정미는 아주 어릴 때부터 작은외숙부의 냉담함을 느꼈고, 때문에 이 사촌 형제들과도 친해지지 못했다. 게다가 큰 사촌 언니 한추화는 외숙모가 엄한 탓에 거의 같이 어울리지 못했다.

때문에 정미가 한지와 친해지는 것은 필연적이었다. 어릴 적부터 위국공부에서 지낸 나날들 중 대부분의 시간은 한지와 함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정미는 한지를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그녀는 눈을 가린 채 많은 사람들의 시시덕거리는 웃음소리 속에서도, 발소리만 듣고도 누가 왔는지 알 수 있을 지경이었다.

한지는 어릴 때 체질이 약해, 대부분의 남자아이들처럼 달리고 뛰는 걸 좋아하지 않았고, 가뿐히 걷는 습관이 생겼다. 나중에 무술을 배우고 나이를 한 살 두 살 먹은 뒤에도 이렇게 걷는 습관은 여전히 고쳐지지 않았다.

그 발걸음 소리는 마치 한 걸음마다 잰 듯 안정적이었고 침착하며 가볍게 땅에 떨어졌다. 마치 거위 깃털이 정미의 마음속에 휙 스친 듯, 저도 모르게 기쁘고 또 긴장되기 시작했다.

긴장감 탓에 북채를 처음 내리친 이후, 그녀는 계속해서 치는 것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여기 있는 사람들 중 경왕세손 용흔의 신분이 가장 높았기에, 이 격고전화 놀이는 자연스레 그부터 시작하게 되었다.

그런데 용흔은 시녀가 새로 꺾어 건넨 백매가지를 아직 어느 방향으로 돌릴지도 정하지 못했건만, 북소리가 멈춰버렸다. 그래서 모든 사람의 시선이 그의 손에 있는 백매에 꽂혔고, 걸어 들어온 한지를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용흔은 아직 물방울이 맺혀있는 백매가지를 바라보고는 표정이 어두워졌다.

‘분명 저 못난 계집이 고의로 한 것일 거다! 아까 대문 앞에서 욕한 걸 보복하려는 게 분명해.’

그는 그저 사실을 말한 것뿐이었다. 자기가 넘어지면서 언니까지 끌어당기더니, 양심의 가책은 전혀 느끼지 않는 건 물론이고, 그녀 대신 희생한 사람이 되려 그녀를 위로하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그녀더러 악독하다고 단 한마디만 한 것은 어려서부터 알고 지낸 사이임을 봐서 봐준 것이거늘!

용흔은 생각할수록 화가 나 벌떡 일어섰다. 그는 사람들이 멍하니 있는 사이 몇 걸음 만에 정미 앞으로 걸어갔고, 손을 뻗어 그녀의 눈을 가린 붉은 수건을 당겨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