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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 전쟁은 끝났고. >

유럽 언데드 대전쟁은 모스크바 대폭발로 마무리됐다.

폭발은 실로 강렬했다.

핵이 아닐까 의심될 정도로.

하루가 꼬박 지나서야 유럽 제국 정부와 인근 국가에서 조사단이 파견됐다.

그러나 폭발의 원인이 뭔지, 전쟁의 결과는 어떠했는지, 제국군과 언데드들이 어떻게 됐는지, 알아보는 건 불가능했다.

남아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알렉스 카이사르 황제도, 최정예 각성 군인들도, 제국군 기계화 사단도, 언데드 마수들도, 그리고 네크로맨서 드렉 카락스도.

싹 사라졌다.

보이는 건 평지로 변한 모스크바뿐.

혹시 몰라 정찰기와 드론을 띄우고, 대규모 병력을 이용해 인근을 철저하게 수색했지만 아무것도 밝혀내지 못했다.

그래서 결국,

<황제 폐하와 제국군, 언데드 마수 군단과 함께 장렬히 전사.>

<황제 카이사르, 유럽을 구원하다.>

<고귀한 희생정신, 메가 로마 황궁으로 제국민들의 추모 잇달아.>

<세계 각국에서도 애도의 메시지, 알렉스 카이사르 황제는 영웅이었다.>

<율리안 황태자, 황제 승계 작업에 착수, 선황의 유지에 따라 위대한 유럽을 건설할 것.>

이렇게,

황제가 사악한 네크로맨서와 언데드 마수 군단을 토벌하다 함께 사망한 걸로 결론지었다.

한편 태주는 파주에 있었다.

유럽 전쟁은 끝났다.

상황이 어떻게 수습됐는지 알고 싶은 생각도 없고.

그보다 우리 길드원들이 어떤 성과를 냈는지가 중요하지.

영주관에서 정연희에게 보고를 받았다.

내용은 성공적으로 끝난 DMZ 마수 밀집지대 공략.

"총 88마리의 앨리트 마수를 토벌했습니다. 엘리트 마나 결정체도 80개 정도 확보했고요."

"···와!"

9명으로 구성된 소규모 레이드팀이 무려 88마리의 엘리트 마수를 사냥했다니.

언론에 안 알려서 그렇지, 이게 밝혀지면 나라가 발칵 뒤집혀질 정도로 기절초풍할 일, 엘리트 마나 결정체 80개만 해도 어디인가.

"믿기지 않죠? 우리가 했지만 얼떨떨해요."

심지어 일이삼백이의 개입도 없었다.

그저 간식만 얻어먹고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기만 했고.

"도핑 물약은 도움이 됐나요?"

"하아, 환상이었어요. 아마 이번 레이드 성공의 가장 큰 지분이 도핑 물약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다행이다.

"부작용은?"

"없었어요. 아예!"

"그럴 리가···,"

"진짜라니까요."

"흐음."

선도를 먹었기 때문인가?

선도의 가장 큰 효능.

바로 조화.

어긋난 기운을 바로 잡고, 어떤 이질적인 기운도 화합하게 만들어 준다.

'아무래도 임상 대상을 잘못 선정했네.'

선도를 먹지 않은 일반 각성자들을 대상으로 한 번 더 실험해볼 필요가 있다.

어쨌든 DMZ 마수 밀집지대 엘리트 마수 레이드 성공으로 파주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결정체들은 영주관 금고에 보관해뒀어요. 회장님, 가실 때 가지고 가세요."

"연희씨하고 길드원들끼리 나눠 가지시지."

"어머? 무슨 말씀이세요? 맨날 돈만 축내다가 이제야 일다운 일을 했는데."

그래도 보상은 줘야 한다.

"그럼 수고하셨으니, 이거라도···,"

태주는 미리 준비한 선도 9개가 든 가방을 정연희에게 내밀었다.

"···이, 이건?"

"길드원들과 하나씩 나눠 드세요."

"어쩜, 이, 이렇게 귀한걸, 또."

사양하지도 않고 가방을 끌어당겨 품에 안는 정연희.

선도야 넘치고 넘친다.

이미 천도를 먹어 그다지 욕심도 안 생기고, 게다가 이건 하품(下品)이라 자신이 먹은들, 티도 나지 않는다.

태주는 기차를 타고 양산으로 왔다.

컨테이너선 티제이호는 이틀 전에 아메리카 공화국으로 출항했단다.

생기불끈과 MRC, 그리고 수출 상품들을 가득 싣고.

현재까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벌써 몇 번을 왔다 갔다 했는데.

배를 타려는 지원자들도 속출했다.

월급도 많고, 수당도 엄청나고, 태평양을 횡단한다는 낭만도 있고.

그래서 항구로 가지 않고 조선소로 왔다.

꽉 찬 10개의 도크.

어느새 배의 형태가 거의 갖춰졌다.

'이렇게 빨리?'

어찌 보면 당연하다.

삼한의 정부가 지분을 투자했기에 국책 사업으로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총력전.

국가의 자본과 노동력을 총 투입해서 미칠 듯한 생산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놀라운 일도 아니다.

과거 마나 침범 이전,

그러니까 2차 세계 대전 당시.

아메리카 공화국의 모체였던 미국이 항공모함을 한 달에 한 척씩 뽑아냈다는 전설도 있는 판에.

군사시설을 방불케 할 정도로 보안이 철저한 흑암철 저장 창고로 가서 주괴들을 부려놓고.

그리고 이번엔 구례로 왔다.

파주 걱정도 덜었겠다, 요즘 지리산 상황은 어떤지 보려고.

일이삼백이를 데리고 지리산 천왕봉에 올라가서.

"어때? 옛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냐?"

"냐아아아···,"

관심 없다는 듯 심드렁한 목소리로 그르렁거리는 일백이.

오랜만에 왔으면 본체 변신이나 해볼 것이지.

과거엔 천왕봉 위에서 지리산 전체를 관망했던 엘리트 영수 삼두백호.

그땐 제법 카리스마도 있어 위풍당당 그 자체였지만,

"냥?"

지금은 완전 고양이다.

사실 일백이를 데리고 온 이유가 있었다.

몇 가지 간단한 실험을 해보기 위해.

"일백아."

"냐아?"

"쉿! 가만히 있어."

"냐으아아···,"

태주는 일백이 머리에 손을 댔다.

"들어가 봐."

"냐옹?"

"···."

무한공간으로 집어넣으려 했지만 들어가지 않는다.

이게 맞다.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가 들어갈 리가.

'언데드라서 그런 게 분명해.'

전에 꿈속 카르멘과의 내기에서 이겼을 때, 블랙 마피아 장로들이 어떻게 언데드들을 모스크바로 이동시켰는지 들었다.

운반 수단은 아공간 가방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상한 것이.

태주는 무한공간을 열었다.

시체처럼 움직이지 않고 통나무처럼 보관된 드렉 카락스의 모습.

놈을 꺼내고,

스슷,

"냐아?"

"이놈!!! 김태주! 널, 저, 저주하겠노라!"

"캬악!"

아공간 가방을 하나 꺼내 드렉 카락스 앞에 대고 벌렸다.

"들어가."

"가, 감히 날!!!"

"냥!"

안 들어가네.

스슷,

무한공간엔 들어가고,

스슷,

빼내는 것도 되고.

"자, 잠깐만 기다려라. 우리 대화를···,"

스슷,

오직 무한공간만 가능했다.

스슷,

"제발, 그, 그만! 원하는 게 있으면 다 들어 주겠···,"

스슷,

'그럼?'

태주는 제천대성의 털 하나를 꺼냈다.

펑!

"우끽?"

"···냐냐?"

"우끼기기긱!"

"캬아악!"

일백이와 분신이 처음 만났다.

만나자마자 불꽃이 튀었다.

파파파파팟!

타타타타탓!

일백이의 앞발 공격, 그걸 여유롭게 막아내는 제천대성의 분신.

"어어, 싸우지 말고,"

"우키킥!"

"캬오옹!"

"···."

그냥 분신 원숭이에게 손을 뻗어.

스슷,

들어간다.

들어가니 저절로 한 가닥 털로 다시 변했다.

분신이야 원래 털이었으니까.

생명이라기보다는 요력으로 만들어진 인공체 같은 거니까.

이제 남은 문제는,

'공유창고엔 들어갈까?'

들어간다면 당군악에게 보내볼 생각.

어차피 여기서 죽여봐야 계속 살아난다.

하지만 선계에선 방법이 있을지도.

황천계도 있지 않나?

어쨌든 알아볼 건 다 알아봤다.

마지막으로,

구례 티제이 바이오 단지 내부에 있는 김동훈의 보안 연구소로 가서.

"형님, 아니 회장님."

"잘 있었니? 동훈아. 고생이 많지?"

"흐흐, 고생은요, 편하게 앉아서 스마트폰 작업만 하면 되는데···,"

"많이 만들어 놨어?"

"넵! 창고에 100개씩, 10박스 준비해뒀습니다."

"···그렇게 많이?"

"시제품 만들 때야 어려웠지, 다음부터는 그대로 복사만 하면 되는데요."

새삼 운이 좋다고 느끼는 태주였다.

역시 사람을 잘 들이는 것이 최고.

능력에 걸맞은 대우를 해줘야 한다.

"너, 이거 하나 먹어봐."

"···혹시 복숭아?"

"아니, 복숭아는 나중에 줄게. 지금 주는 건 영약이야."

"으음, 전 일반인이라 별 효과가···."

"먹어보기나 해, 아마 적합자가 될지도 모르니까."

"네?"

자이언트 반달곰 웅담이 대량 들어간 영약이다.

아마 적합자가 아니라 바로 각성할지도 모른다.

'이제 좀 쉬자.'

백서연은 내일 만나고.

그녀도 보고할 것이 많을 것이다.

아메리카 공화국, 화이백 공장 설비 인수와 관련해서.

태주는 자택으로 왔다.

집에 잘 들어가지 않는 상황에도 언제나 깔끔하게 정리되어있는 거실과 방.

이백이를 안고 푹신한 소파에 몸을 푹 기대고 앉아 무한공간에서 대외비라고 표시된 보고서를 꺼냈다.

'빈센트 모레티라···,'

제정원 안보 파트 장상호 2차장이 보내준 것이다.

그 안에 빈센트 모레티에 대한 정보가 적혀있었다.

그러나 내용이 몇 줄 되지도 않았다.

유럽 제국 안에서도 베일에 싸인 사람.

심지어 사진 한 장 없었다.

일단 황립 결정체 공학 연구소 소장이라고 알려졌다는 것만.

또한 이번 전쟁에 사용된 미사일과 로켓을 마법 아이템으로 인챈트했다고 추정되고.

게다가 현재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황립 결정체 연구소도 문을 닫았단다.

폭발의 배후에 이 사람이 있다는 건 거의 확신에 가까웠다.

더불어 알렉스 카이사르가 폭발하기 전 마지막으로 외친 이름도.

'아마 영혼 연결자 같은데···,'

태주는 품에서 추적부를 꺼냈다.

어디에 있을까?

아마 도망갔겠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정신을 집중해서 빈센트 모레티를 떠올렸다.

'흐음,'

하지만 추적부가 작동하지 않았다.

특정할 수 있는 정보가 너무나 부족한 모양.

순간!

찌르르,

선계 배송 신호가 떴다.

물건 교환 시작.

스마트폰부터 공유창고에 집어넣고.

자, 이제 하이라이트.

드렉 카락스를 넣어보자.

놈의 정체와 왜 보내는지에 대해선 이미 편지로 적어놨다.

감당하기 어려우면 다시 보내도 된다는 내용도 덧붙여서,

'들어가려나···?'

스슷!

들어갔다.

정말?

'···진짜 신기하네.'

이로써 드렉 카락스는 태주에 이어 두 번째로 선계에 방문한 지구의 존재가 될 것이다.

물론 자신과는 결이 다르긴 하지만.

아무래도 이 무한공간과 공유창고엔 아직 파악하지 못한 기능들이 들어있을지 모른다.

차차 연구해봐야지.

그때였다.

지이잉.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금수호의 전화였다.

"네, 접니다. 비서관님."

- 그, 급하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봄세. 자네 방금 올라온 너튜브 영상 봤나?

너튜브라니.

"혹시 황금 원숭이···,"

- 아니, 그거 말고. 영혼 연결자 말이야.

"···네?"

예상도 못 한 말이 튀어나왔다.

"갑자기 무슨?"

- 일단 너튜브부터 확인하게. 그 후에 다시 전화를 걸어줘.

뚝,

끊기는 전화.

'영혼 연결자라니, 어디서 듣고?'

태주는 너튜브로 들어갔다.

그러자 오늘의 핫 영상들이 줄줄이 떠 있었다.

영상의 썸네일과 제목은···,

<영혼 연결자, 그들의 정체는?>

<나와 똑같은 영혼이 다른 세상에 존재한다?>

<충격! 영웅 알렉스 카이사르 황제, 알고 보니 영혼 연결자?>

<영혼 연결자는 각성 문양이 없다. 겉으로 보면 일반인.>

<인류가 살아남은 건 이러한 영혼 연결자들의 헌신 덕분이 아닐까.>

.

.

.

대체 누가 이런 영상을.

핵폭탄이나 다름없었다.

후폭풍이 얼마나 될 건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이거 하나만은 확실하다.

앞으로 매우 귀찮아질 터.

뭐, 언젠간 밝혀지리라고는 생각은 했었다.

'···그렇다고 달라질 것도 없지만.'

※ ※ ※

선계 보패드림.

신선들은 보패드림에서 자신의 보패를 자랑하고, 기능에 대해 토의하며 서로 친교를 나눴다.

이건 지구에서 만든 어플이 아니었다.

귀곡 선인이 코딩을 익혀 처음으로 만든 선계 토종 커뮤니티 프로그램.

천재 신선 귀곡.

그의 제자가 인간계 촉나라의 군사이자 승상이었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선도 못 한, 못난 제자라며 늘 구시렁대고 다니지만.

보패드림에 게시물 하나가 올라왔다.

제목은 독선이 해맑을 울렸다!

└ 내 이럴 줄 알았다.

└ 참교육 들어갑시다.

└ 뭘로?

└ 불매 운동 들어가야지.

└ 그게 될 리가? 물건 안 살 거요?

└ 흐음, 안 되겠군.

└ 쇼핑몰 할인 이벤트로 사죄하라고 요구합시다.

└ 오! 좋은 생각이오.

그러나 냄비처럼 끓어오르다가 순식간에 식었다.

어차피 장난 비슷한 거라 진짜 화를 내는 이들도 없었고, 나중에 해맑과 독선이 함께 손으로 하트를 그려 찍은 사진도 올라왔기 때문이다.

- 우리 정말 친해요. 오해 없기를. -

└ 역시 해맑이는 해맑아.

└ 다 좋은데 저 옆에 오징어는 대체 뭐요? 쯧쯧, 모자이크라도 해놓던가.

└ 독 오징어 같은데.

└ 크크크.

└ 크크크

└ 크크크, 제법 웃겼소. 독 오징어. 그럼 검선은 칼 오징어?

└ 독선보다야 내가 더 낫지. 어떻소?

└ 허어, 안 본 눈 사겠소.

└ 참으시오. 저런 얼굴이라서 등선이 가능했던 거 아니겠소.

└ 그렇지, 강제적으로 도를 닦게 만드는 얼굴이랄까.

그 와중에 선계 월드 커피숍에서 시원한 아이스티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갈홍 선인과 염라.

"대왕, 상위 계 대표자 회의는 언제로 예정되어 있소?"

"일주일 후로 알고 있소이다."

"안건은 뭔지···,"

"뭐, 선계를 드나드는 천인들 숫자가 점점 늘어나니, 아마 그에 대한 이야기겠지."

빨대로 아이스티를 쪽쪽 빨면서 대답하는 염라.

"설마 출입 금지 같은 건 안 하겠지요?"

"천인들을? 무슨 권한으로! 하지도 않겠지만 만약 그렇다면 내가 가만히 안 있을 거요."

사실 천계 법도는 단순하다.

오브 더 천인, 바이 더 천인, 포 더 천인.

천인들의, 천인들에 의한, 천인들을 위한 세상.

문득 뭔가 생각난 듯,

갈홍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대왕. 궁금한 게 또 있는데."

"물어보시오."

"황천계의 능력이라고 하면 세상과 세상의 문을 여는 거 아니겠소?"

"맞소."

"그렇다면 혹시 태주 대협이 사는 곳으로 문을 낼 수 있소?"

"흐음,"

염라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불가능하오. 우리가 인간계의 영혼을 데리고 오기 위해 문을 여는 건 맞지만, 태주 대협의 세상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잖소.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혹시 가능한 방법 있다면?"

"하나가 있긴 하오만."

갈홍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있다고?

"오! 알려주시면 안 되겠소?"

"지구에 나와 같은 영혼이 있다면? 그래서 영혼 연결로 서로의 능력이 오고 가고, 위치가 특정되면···, 열 수 있을지도 모르지."

"아!"

염라와 같은 영혼이 지구에도 있고, 그래서 영혼 연결이 이루어지면 해답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인데.

그게 될까?

영혼 연결이 흔한 것도 아니고.

"허나 문을 열어봐야 뭐 하려고? 여기도 지구나 다름없이 변하고 있는데."

"그야 그렇지만···,"

싱긋 웃으며 말하는 염라.

"사실 나도 한 번쯤 가보고 싶긴 하오."

"나도 그렇소."

하긴, 누군들 그런 생각이 없을까?

< 전쟁은 끝났고. > 끝

ⓒ 꾸찌꾸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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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안 죽지?(1) >

너튜브로부터 시작된 영혼 연결자 폭로.

가장 조회 수가 높은 것이 몰래 찍은 듯한 영상.

얼굴에 각성 문양이 짙게 그려진 알렉스 카이사르 황제의 얼굴이 나왔다.

그런데 손가락에 낀 반지를 빼자,

스르르륵,

각성 문양이 사라지는 모습.

그리고 다시 끼우니.

스윽,

문양이 나타났다.

└ 와! 소름, 카이사르 황제 나이가 200살에 가까운데, 그럼 언제부터 영혼 연결자였어?

└ 이래서 음모론들이 꼭 근거 없는 얘긴 아니라니까.

└ 왜 여태껏 각성자처럼 행동했지?

└ 그래야 권위가 서지 않겠어? 영혼 연결자가 밝혀지기 전엔 지구는 각성자들의 세상이었잖아.

└ 어쨌든 각성자들 조심해야겠네. 각성 문양 없다고 깝치다 영혼 연결자라도 만나는 날엔.

└ 이미 그런 사람 하나 있어. 삼한제국에.

└ 아···, 회장님?

태주에 대한 이야기도 솔솔 흘러나왔다.

현시점에서 가장 유력한 영혼 연결자가 누구겠나?

알렉스 카이사르 황제가 직접 나와 누군가와 대화하는 영상도 있었다.

이 역시 몰카의 느낌.

내용은 이랬다.

"폐하께서 연결한 영혼은 어떤 존재이옵니까?"

- 그야 황제지. 다른 세상의 황제, 아발란 제국의 트릴리안 랜서.

"아! 공교롭게도 같은 황제셨군요."

- 동일한 영혼이니까. 그래서 내게도 주어진 사명이 있네만.

"사명이 무언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 황제가 해야 할 일이 뭔가? 국가를 현명하게 통치해서 평화롭고 부강한 제국으로 만드는 거지.

"그래서 유럽을 통일하고자 하신 거였네요."

- 맞네. 유럽 제국, 더 나아가 세계를 도모할 거야. 그러니 자네도 딴생각 말고 날 믿고 따라오면···,

영상은 여기서 끊겼다.

뒷말이 뭔지 알 순 없었지만 그래도 황제의 진심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또 하나의 영상이 마지막으로 올라왔다.

드론 영상이었다.

모스크바 시내로 용감하게 진입하는 황제와 제국 최정예 각성자들.

황제가 선봉에 섰다.

그리고 시작된 언데드 마수들과의 최종 결전.

끔찍한 언데드 마수들의 공격, 마스터 각성자들의 마나 블레이드가 번뜩였다.

하지만 전쟁의 원흉으로 여겨지는 네크로맨서의 등장.

"타락하라! 부패하라! 썩어 문드러져라!"

하지만 용감하게 다가가는 황제.

거의 지척까지 다가간 순간!

파아아아아아앗!

폭발음과 함께 화면이 암전됐다.

└ 가슴이 웅장해진다.

└ 저 네크로맨서가 궁지에 몰리다가 황제 폐하와 함께 자폭한 거였어.

└ 진짜 영웅이었구나. 너무 일찍 가셨네.

└ 원래 하늘은 영웅을 시기하는 법이지.

└ 악마 새끼, 저놈만 아니었어도.

└ 네크로맨서도 영혼 연결자겠지?

└ 영혼 연결자라고 해서 다 착한 건 아니구나.

죽어서 소원을 성취한 알렉스 카이사르.

적어도 유럽에선 영웅으로 취급받았다.

태주도 자택에서 모스크바 최후의 영상을 봤다.

'많이 빠졌네.'

거울이 나타나고 같은 영혼이 출현해 서로 합쳐서 폭발하는 모습.

빈센트 모레티라는 놈이 핵심 내용을 다 편집하고 올렸을 것이다.

'내가 다 지켜봤다는 건 꿈에도 모르겠지?'

폭발이 일어나고 나서야 투명부가 해제됐으니까.

'황제나, 네크로맨서나.'

태주에겐 둘 다 다를 바 없다.

솔직히 지금까지 경험했던 영혼 연결자 중 제대로 된 놈들 한 명도 못 봤다.

천마도 그랬고, 드렉 카락스도, 알렉스 카이사르 황제도, 또한 영혼 연결자라 의심되는 빈센트 모레티마저도.

'그나저나 빈센트, 그 새끼는 무슨 생각으로···?'

폭로의 배후도 그놈일 터.

짐작이 가는 게 있다.

빈센트는 황립 결정체 연구소 소장.

즉 과학자다.

모스크바 전쟁에 나타난 마법 인챈트 무기도 놈이 만들었다고 추측하고 있었다.

뿐인가?

시중에 풀린 마법 아이템도 빈센트, 그놈이 다 만들었을 것이다.

알렉스 카이사르의 죽음이 만약 실험이라면?

거울이 나타나고 같은 영혼과 결합해서 대폭발이 일어나는 과정을 다 놈이 의도한 바라면?

'직접 연결해보려는 거야. 영혼 말고 물질과 물질, 혹은 세상과 세상.'

그럼 실험체가 더 필요하겠지?

다른 영혼 연결자들 말이다.

아무튼 영혼 연결자의 존재가 밝혀진 후, 태주도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다.

지금도 집 밖엔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개인 방송 스트리머들까지 모였다.

그들이 외치는 소리.

영혼 연결자가 맞느냐며, 혹시 맞는다면 어느 세상의 누구냐며?

벌써 며칠째인지도 모르겠다.

최초 폭로가 나온 후부터 계속 이랬다.

밖으로 나갈 수도 없을 정도로.

기자들 피하려고 투명부를 사용할 수도 없고.

삼한제국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전 세계 곳곳에서 엄한 사람들이 영혼 연결자로 의심받았다.

- 이 사람이 유력하다.

- 증거도 있다.

- 완전 빼박인데?

특히 힘 있고 권력을 가진 일반인들은 무조건.

물론 걔 중엔 진짜다 싶은 경우도 있었지만.

정말 흥미진진한 이슈 아닌가?

심지어 백홍표, 백서연도 와서 슬쩍 물어올 정도니.

전화도 엄청나게 걸려왔다.

황제, 금수호, 정욱철 회장에, 리더스 클럽 이고르 등등.

물론 다 안 받았지만.

'약이나 만들자.'

잠잠해질 때까지 말이다.

그나저나 드렉 카락스는 무사히 잘 배송됐나?

※ ※ ※

선계(仙界).

며칠 후면 상위계 대표자 회의가 열릴 예정.

태상노군 대신 회의에 나가기로 했으니, 간단한 준비는 하고 가야지.

회장님 놀이나 한번 해볼까?

당군악은 제천대성을 만났다.

아아!

놀면서 돈 버는 존재.

궂은일은 분신이 다 하고, 본체 제천대성은 빈둥거리며 힙합퍼 흉내나 내고 다니고.

"아주 팔자가 폈소?"

"에이, 분신 부리는 게 쉬운 일이 아니오만."

"퍽도 그러겠소."

태주에게 보낸 털로 만든 분신과 제천대성이 직접 만든 분신을 차원이 다르다.

가만히 놔둬도 사라지지 않고, 말도 하면서, 복잡한 일도 무리 없이 잘 수행한다.

"그런데 무슨 일이신지?"

"혹시 분신도 자동차 운전을 할 수 있는지 궁금해서,"

"가르쳐 봐야 알겠소만···,"

"운전만 가능하면 기사로 고용하겠소. 물론 정규직으로."

"당장 하겠소. 오늘부터 연습 들어가리다."

정말 부러운 능력이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손서방이 번다더니.

분신 법술 배울 수 없을까?

배워서 태주에게 가르쳐주면 좋을 텐데.

순간!

찌르르,

'벌써 배송 올 때가 됐군.'

당군악은 무한공간을 열어 공유창고를 확인했다.

먼저 전용 스마트폰이 100개씩 들어간 상자 10개.

'많이도 보냈어.'

선계를 위한 태주의 헌신에 늘 미안할 따름.

스마트폰이 오길 한없이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최근 선계로 유입되는 새로운 천인들.

자루에 꽃을 가득 담아 왔지만 스마트폰 물량이 없어 빈손으로 돌려보내 마음이 아픈 차였다.

순간!

"응?"

공유창고에 이상한 것이 보인다.

"이게 뭐야?"

마네킹인가?

일단은 옮겨두고.

편지도 있었다.

자세하게 읽어보는 당군악.

시작은 유럽에서 일어난 전쟁부터.

언데드 범람, 인간의 부대와 전쟁, 네크로맨서, 그리고 만천화우와 제천대성 분신이 도움이 되었다는 내용까지.

"허허,"

태주가 보낸 게 뭔지 알겠다.

인간이지만 인간이 아닌.

살아있지만 살아있는 놈이 아닌.

"이런 망측한 요물이···,"

감히 태주를 괴롭혀?

스슷,

당군악은 멀티플렉스에서 나와 앞마당에다 드렉 카락스를 꺼냈다.

다시 나온 드렉 카락스.

"음? 여긴···,"

그는 달라진 환경에 어리둥절했다.

김태주, 그놈에 의해 들어간 이상한 공간.

그곳에선 몸을 움직일 수도 없었으며, 의식도 희미했다.

이제 나왔나 했더니 여긴 또 어딘가?

"네가 드렉이라는 놈이더냐?"

"···어?"

누구지?

'···김태주?'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길래 저렇게 늙었나.

"어디 여기서도 살아나는지 보자꾸나."

"자, 잠깐! 우리 먼저 대화를···,"

치지지지직!

독선의 독기방사.

솜사탕처럼 녹아서 흘러내렸다.

잠시 후.

우우웅!

녹았던 육신이 다시 뭉치기 시작했고.

"어쭈?"

"허억, 허억, 마, 말 좀 하자고!!!"

원래 형태대로 부활.

"거참, 신기한 놈이로다."

이러니 여기로 보냈지.

녹여도 안 되면 이걸 어떻게 죽인다?

순간!

부다다다다닥! 푸닥, 푸닥!

오늘은 스포츠카 대신 할리 바이크를 타고 온 검선.

"안녕하시오. 독선, 마침 잘 됐소. 바이크 기름이···, 응?"

검선이 드렉 카락스를 봤다.

"뭐요? 이 냄새 나는 종자는?"

"그게···,"

당군악은 차근차근 설명했다.

그러자 검선이 눈을 반짝 빛냈다.

"내가 꿈속에서 만난 요망한 계집의 주인이라 말이군. 태주 대협처럼 영혼 연결자고."

"맞소."

"공유창고를 통해 여기 왔다는 말이 틀림없소?"

"지금 보고 있잖소."

"으흠···,"

그러더니.

"넣어주시오."

"···뭘? 이놈을?"

"아니, 나 말이요. 나도 한번 들어가 봅시다."

검선의 생각은 이렇다.

드렉 카락스란 놈이 공유창고를 통해 선계로 배송되었으니 거꾸로 가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만약 된다면 말이다.

어이없다는 당군악의 표정.

"···이자는 인간이 아니어서 가능했던 것 같은데."

"나도 인간은 아니오."

"···."

일리가 있다.

그래서 손을 뻗어 검선을 집어넣으려 했으나,

"안 들어가오."

"에잉! 기대했건만."

검선은 실망했다.

왜 이 새끼는 되고 자신은 안 될까?

"어쨌든 안 죽는다고? 직접 죽여봤소?"

"당연히 해봤지."

"쯧쯧, 독선의 명성이 허명이었나? 착한 천인 울리는 건 잘하더니."

"···."

발끈하는 당군악.

"그럼 그대가 죽여보든가. 만약 죽이면 10만 코인 드리지."

"다 들었소. 나중에 딴말하지 마시오."

"걱정하지 마시오. 속고만 살았나."

"흥!"

검선은 먼저 강기의 막을 이용해 투명한 원통을 만들어 드렉 카락스를 가뒀다.

그리고 역시 강기로 만든 검을 십자 형태로 엮어서 놈의 발밑에다 놓고.

"곱게 갈아주마."

웨에에에엥!!!

강기의 십자 검이 맹렬하게 회전했다.

마치 믹서기처럼.

"끄아아악!"

파바바바바박!

발부터 갈리기 시작하는 드렉 카락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갑자기 이상한 곳으로 끌려 와, 독에 의해 몸이 녹았으며 심지어 갈려서 가루가 될 판이다.

웬만하면 덤벼보기라도 해보겠는데 이 자들은 자신을 어린아이 다루듯이 마음대로 가지고 놀았다.

저항도 못 했다.

힘의 차이가 너무나 컸으니까.

대규모 언데드 마수 군단을 만들어 세상을 위협했던 최흉의 네크로맨서, 데우스 리치가 이 모양 이 꼴이라니.

게다가 이 끔찍한 고통은?

영혼까지 갈려 나가는 느낌.

결국.

파스스스스스.

"흐흐흐, 봤소? 어서 10만 코인이나 준비하시지."

"아직 안 끝났소."

"죽었는데?"

"다시 살아난다니까."

당군악의 말이 맞았다.

우우우웅!

촤촤촤촤촥!

뼛가루가 뭉치고, 뼈가 되어, 피부가 붙었다.

"어음, 이, 이게 왜 살아나?"

"쯧쯧, 검선도 허명이었군."

"···망할!"

그 와중에 지나가던 한 명의 신선이,

"무슨 일이오? 재미난 거라도 있소?"

철장 선인이었다.

설명을 듣고, 역시 검선처럼 자신도 무한공간에 넣어보라고 한 후, 그게 안 된다는 걸 깨닫고는.

"그대들의 선기가 부족한 탓이오. 맨날 처놀기만 하니···,"

"지는?"

"···내 망치가 얼마나 신령한지 감상이나 해보시구려."

철장 선인이 거대한 망치를 치켜들었다.

"제, 제발,"

드렉 카락스가 애처로운 목소리로 호소해봤지만.

츠핏!

백염으로 불타오르는 신령의 망치가 드렉 카락스의 머리통에 작렬했다.

"켁!"

콰직! 와그작!

팍팍팍팍팍!

"이렇게 죽이면 되지. 사기와 요기는 이 망치 한 방이면 싹···,"

하지만,

우우웅, 촤촤촥!

다를 바 없었다.

부활하는 드렉 카락스.

"이, 이럴 리가?"

"죽이지 못한 게 선기가 부족한 탓이라며?"

"···."

"아주 자알 봤소. 참으로 선기 넘치는 망치질이군."

반면 드렉 카락스는 기진맥진했다.

살아나는 게 문제가 아니다.

여지없이 가해지는 고통.

죽으면 이 고통이 사라질까?

또한 이들의 대화를 들어보니 여기가 어딘지 짐작이 갔다.

'선계···,'

그럼 이자들은 신선들?

너무나 황당한 노릇.

진짜 선계가 실존했단 말인가?

하긴 마계도 있는 판에.

그렇다면 김태주의 영혼 연결자가 신선이란 의미.

그게 맞다 손 치더라도 남아있는 의문점.

어떻게 자신은 이곳에 왔지?

"···차, 차라리 날 죽여."

"닥쳐! 새끼야, 지금 그러고 있잖아!"

신선 하나가 또 왔다.

"뭘 그리 재미나게 놀고 있소?"

그림 그리는 화선(畵仙)이었다.

역시 검선과 철장 선인이 했던 행동을 똑같이 거친 후에.

"죽이는 방법이 틀려서 그런 거라오. 내가 그대들의 식견을 넓혀주겠소."

화선은 화선지 한 장을 꺼내 붓으로 쓱쓱 그림을 그렸다.

기암절벽과 계곡이 그려진 산수화.

그리고,

"들어가라!"

슈슈슛!

드렉 카락스가 산수화 속으로 빨려 들어가 그림이 되었다.

"봤소?"

"가두는 게 끝? 이럴 거면 무한공간에 넣어두는 게 더 편하지."

"이게 끝이 아니오."

화선이 쇼핑몰에서 구매한 일회용 라이터를 꺼냈다.

칙!

화선지에 불을 붙이니,

화르르르륵!

순식간에 불타 사라지는 산수화.

"오!"

"참신한 방법이군."

그러나,

"으잉?"

"내 이럴 줄 알았다."

화선지가 불탄 자리에서 다시 생성되는 드렉 카락스.

그리고 어느 틈에 신선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뭐야?"

"무슨 일이래?"

"저 뼈다귀는···, 해장국 집이라도 차렸소?"

"비위도 좋소. 저걸 먹겠다고?"

멀티플렉스 앞마당에 가득 모였다.

곤륜, 매화, 삼봉 선인, 염선, 빙선, 다선, 수선, 대목 선인, 귀곡 선인···,

화선에게서 이야기를 듣고, 독선에게 달려가 혹시나 무한공간에 자신들이 들어가는지 확인하고 나서야.

"줄을 서시오."

"10만 코인이라 이거지?"

"빨리빨리 합시다. 안될 것 같으면 포기하고."

"기회는 딱 한 번이오."

드렉 카락스는 그냥 모든 걸 포기했다.

부활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였다.

자신도 영영 죽고 싶었다.

대체 몇 번이나 죽어야 끝나지?

길게 늘어선 줄.

재미있는 놀이라고 하는 것마냥 서로 종알종알 시시덕거리는 신선들.

그것도 그렇지만.

"시원한 캔맥 5개, 땅콩 안주 배달왔소이다."

"여기다. 원숭아!"

"별 다섯 개, 리뷰도 부탁드리오. 여기 서비스."

"오냐!"

"내 짜장 라면은 언제 오는 거야?"

"지금 막 출발했소."

"그 말 한 지가 10분이 넘었다고!"

"다선은 뭐하시오? 커피나 만들지 않고, 배달이 안 돼!"

"브레이크 타임이라오."

여긴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세상인가?

정녕 선계가 맞긴 하나?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신선들이라니.

드렉 카락스는 죽고, 부활하고, 또 죽고, 또 부활했다.

이쯤 되니,

"왜 안 죽지? 허약해 빠진 놈인데."

"제 스스로도 마음대로 죽을 수 없나 보오."

"아무래도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기운을 가진 것 같소만."

"불멸의 격이라도 얻었나 보지."

"쯧쯧, 혼세마왕처럼 요괴 왕이라도 되는 모양이군."

요괴 왕의 능력을 갖췄다면 봉인이 최선.

'어떡한다?'

웬만하면 죽이는 것이 깔끔하긴 한데.

당군악은 잠시 고민하다가 결정을 내렸다.

"염라에게 물어봐야겠군."

"오! 좋은 생각이오."

"가봅시다."

드렉 카락스를 무한공간에 집어넣고,

당군악은 항상 황천계로 열려있는 문을 통과했다.

그 뒤를 신선들이 우르르 따라갔다.

< 왜 안 죽지?(1) > 끝

ⓒ 꾸찌꾸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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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안 죽지?(2) >

황천계 염라의 업화궁.

하루 업무가 끝나고 지금은 마무리 회의 중.

"자자, 이만 끝내고, 멀티플렉스로 가서 한잔하자고."

염라의 말에 손을 들면서 말하는 강림.

"저어, 제가 오늘은 일정이 있는데···,"

"뭐?"

"극장에서 새로운 드라마가 나오는 거 모르십니까?"

"뭔데?"

"갑오징어 게임 시즌 2라고···, 큰 화면으로 봐야 실감 나서,"

강림의 말에 겁륜 판관이 쏘아붙였다.

"이 새끼야, 오징어는 신선들 얼굴 보면 되잖아."

"그렇지, 독 오징어, 칼 오징어, 술 오징어, 그림 오징어, 다양하게 있는데."

"그래도 시즌 1은 꽤 재미있었지."

"시즌 2에도 똑같은 배우들이 나오나?"

"이참에 우리도 드라마 한 편 만들어봅시다."

"드라마?"

"선계 오징어 게임, 어떻습니까?"

꽤 흥미로운 제안이었는지, 회의장이 떠들썩해졌다.

"드라마처럼 서바이벌 게임을 해보자?"

"당연히 코인을 상품으로 걸고···."

"신선들이 법술을 쓸 수도 있으니, 선기도 봉인해야겠지."

"선계 오징어들이 잘해줄까?"

"코인이 걸렸으니 악착같이 달려들 겁니다."

"촬영은 스마트폰으로?"

"찍어서 지구로 역수출을···,"

그때였다.

"재밌소?"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아주 난리가 났구만."

"회의한답시고 우리들 욕이나 할줄 누가 알았겠나?"

"역시 음흉한 황천계야."

"우리보고 오징어라고? 지들은 구더기처럼 생긴 주제에."

어느 틈에 업화궁에 나타난 신선들.

다 몰려왔다.

"···어,"

"으음,"

"어, 언제?"

당군악이 정색하며 앞으로 나왔다.

"독 오징어가 여쭈어볼 것이 있어서 왔소."

염라가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말했다.

"다, 다 들었나?"

"죄송하오. 원체 귀가 밝아서."

"그게 어, 어떻게 된 거냐 하면···."

"됐고, 이것 좀 봐주시오."

무한공간에서 드렉 카락스를 꺼내니,

"음?"

괴이한 형체였다.

머리에 뿔을 달린 것도 모자라, 온몸이 뼈다귀와 가죽뿐, 거의 살아있는 해골.

지옥의 죄수보다 더 볼썽사나웠다.

"이건···,"

우르르,

앉아 있던 판관과 차사들도 모여들었다.

"이건 뭐지?"

"형체가 있는 걸 보니···, 강시?"

"강시는 아니야, 악귀 냄새가 나."

"···악령?"

드렉 카락스는 혼이 나갔다.

또 어딘가 옮겨졌다 다시 나왔는데.

이 자들은 또 누구지?

여긴 어디고?

신선들과는 또 다르다.

신선에게서 까마득한 힘의 격차를 느꼈다면 이자들은 보기만 해도 몸이 떨렸다.

"어떻소, 전문가로서 판단해주시오."

전문가?

저자는 대체 누구길래?

부리부리한 큰 눈에, 부숭부숭한 검정 수염, 불타는 듯 붉은빛의 얼굴, 떡 벌어진 풍채, 그리하여 전신에서 피어나는 위엄.

머리가 절로 수그러졌다.

눈도 마주칠 수가 없었다.

"독선, 먼저 이놈이 어디서 왔는지 궁금하네. 요괴는 아닌 듯한데."

"후우,"

한숨 쉬는 당군악.

했던 얘기 또 하려니 진이 빠진다.

하지만 태주의 일이니 꾹 참고.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하게 이야기했다.

그러자 눈을 동그랗게 뜨며 격한 호기심을 보이는 염라와 판관, 차사들.

"그러니까 지구에서 인간도 아닌 것이 배송됐단 말인가? 그것도 태주 대협을 괴롭힌 사악한 네크로맨서라는 영혼 연결자가?"

"정확합니다."

"게다가 잘 죽지도 않고?"

"이놈이 여태껏 살아있는 이유지요."

잠시 생각하는 염라.

그러더니.

"먼저 이놈이 가진 영혼을 살펴봐야겠네. 잘하면 영혼 연결자가 어떤 놈인지도 알 수 있을 거야."

"오! 부탁드리겠소이다."

염라는 판관 한 명에게 지시했다.

"오도 판관, 가서 초혼령(招魂鈴) 가지고 오게."

"당장 대령하겠습니다."

초혼령.

황천계의 보패.

방울처럼 생겼다.

이걸 흔들면 죄인의 영혼을 매개로 현생과 전생에서 지은 죄까지도 낱낱이 보여준다.

더불어 영혼의 본질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

진짜 인간인지, 아니면 사특한 악령인지.

초혼령을 든 염라가 엄중한 목소리로 드렉 카락스를 추궁했다.

"묻노니, 넌 누구와 영혼을 연결했느냐?"

"···알아서 뭐 하게."

어림도 없다.

그걸 말해줄 것 같아?

'내 영혼 연결자가 누구인지 살펴보겠다고?'

감히!

주제도 모르는 것들이.

갑자기 용기가 샘솟는다.

드렉 카락스도 영혼 연결자의 매카니즘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와 연결한 영혼도 세계의 절대자.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비록 자신은 인간이라, 같은 영혼인 위대한 존재의 힘을 오롯이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이 한스러울 뿐.

데우스 리치가 된 것도 그에게 최대한 가까이 다가서기 위함이었다.

'나와 연결한 영혼이 누구인지 알면 아마 놀라서 까무러칠 거다.'

아니, 밝혀내기나 할까?

그러자 염라가 비릿하게 조롱하듯 웃으며,

"하찮은 것아. 내 친히 밝혀주겠도다."

딸랑! 딸랑! 딸랑!

세차게 초혼령을 흔드는 염라.

우우우우우우···,

"네 죄를 네가 알렸다!"

순간!

파아아아아앗!

업화궁 회의실 천장에 환영 비스름한 것이 펼쳐졌다.

"헉!"

눈이 동그라진 드렉 카락스.

머리 위 환영에서, 비록 흐릿하지만 지구에서의 자신의 행적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갔다.

유럽 제국 메가 로마.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마수 웨이브로 부모를 잃고, 어렵게 생활하다가 어느 순간 영혼 연결을 경험했다.

그리고 그 힘을 발판 삼아 갱 조직을 하나하나 접수해가며, 마약도 팔고, 매춘에, 청부 살인, 유괴, 갈취, 고리대금업도 하면서 세력을 키워나갔다.

많이도 죽였다.

처음엔 갱단만 죽여댔지만 나중엔 힘을 얻기 위해 일반인들도 죽였다.

모든 행적이 다 나왔다.

쓸만한 자질을 지닌 자들을 제자로 거두고, 마침내 블랙 마피아라는 조직을 세워 유럽의 밤을 군림했던 과정, 언데드를 일으켜 모스크바 전체를 제물로 삼았던 일까지.

"저저저···,"

"못된 놈!"

"나쁜 짓은 다 저질렀구만."

"···불우한 가정에서 자란 것이 안타깝긴 한데."

"불우하다고 다 악인이 되나? 당장 천인들만 해도 전생에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이들이 거의 없어."

순간 사라지기 시작하는 환영.

"흐음, 끝인가?"

"에잉, 영혼 연결자도 알아낼 수 있다더니."

"더 노력해보시오, 염라."

흠칫!

드렉 카락스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염라?'

황천을 관리하고 지옥을 지배하는 그 염라대왕?

'에이, 설마! 그럴 리가···,'

딸랑딸랑딸랑!

방울 소리가 더 거세졌다.

환영이 다시 나타났다.

분위기가 달라졌다.

그런데?

"응?"

"아!"

"흐음···,"

"저긴?"

"···지구가 아니네?"

지구와는 전혀 다른 환경.

음산한 기운이 감도는 하늘, 시커먼 대지에, 기괴하게 생긴 동식물들.

신선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환영 속 장소가 어디지?

반면 드렉 카락스는 눈빛이 몽롱해졌다.

저곳이 어딘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계.

자신과 연결한 위대한 영혼이 사는 곳.

그랬다.

다른 세상의 나 자신은 마왕님이시다.

아아아!

위대한 나의 영혼이여.

마족이 아니라 인간이어서 그가 가진 힘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하는 한을 누가 알까?

마계에 갈 수만 있다면 마족의 몸을 얻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반의반만이라도 따라가고 싶었다.

하지만 인간으로서 올라갈 수 있는 한계는 딱 데우스 리치뿐.

허접한 놈들이 알 리가 있나?

마왕의 위대함을.

딸랑, 딸랑, 딸랑!

방울 소리가 머리를 울린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두근거리는 심장.

감각이 최고조에 달했다.

몸이 붕 떠오르는 것 같다.

동시에 어디론가로 쭉 빨려 들어가는 드렉 카락스의 영혼.

아아아아!

이 느낌, 이 기분.

'드디어···,'

드렉 카락스의 영혼 연결이었다.

그걸 처음으로 감지한 이는 역시 독선 당군악.

'이 새끼 봐라?'

뜬금없이 여기서?

"영혼 연결이군."

당군악의 말에 화들짝 놀라는 신선들.

"누가? 혹시 태주 대협과 독선이···,"

"아니! 이놈 말이오. 현재 누군가와 영혼이 연결된 것 같소."

"허어!"

파르르르,

초혼령이 세차게 흔들렸다.

그리고.

파앗!

업화궁 천장 환영 속에서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뭐야? 저 염소 대가리는?"

"와! 눈에서 불이 나와."

"뿔도 있고 턱도 뾰족해, 찍히면 아프겠네."

"살다 살다 저렇게 못생긴 놈은 처음이군."

"저거에 비하면 혼세마왕은 아이돌급이지."

"저 염소가 이 새끼의 영혼 연결자인가?"

하지만 드렉 카락스는 감격하고야 말았다.

저분이 바로 자신이다.

마족의 지배자.

마계의 왕 바포메트.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드렉 카락스는 입에서 터져 나오는 탄성을 참을 수가 없었다.

"마계의 왕이시여!!! 이 비천한 쓰레기들을 한껏 비웃어주소서!!!"

그 말에 어리둥절한 신선들.

"이 새끼 왜 이래? 약 처먹었나?"

"마왕이라고? 마계는 또 어디 동네야?"

바로 그때!

환영 속에서 바포메트가 신선들을 직시했다.

"어쭈? 저놈 봐라? 우릴 똑바로 쳐다보네?"

"염소같이 생긴 놈이. 아가리를 쭉 찢어버릴라!"

"염라, 저 새끼 사는 곳에 문을 만들 수 없소?"

염라도 환영에 나타난 대악마, 마왕 바포메트를 노려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보자마자 알겠다.

비열하고, 잔인하며, 음흉하고, 교활한 악의 결정체.

염라가 가장 싫어하는 유형, 눈앞에 있다면 당장이라도 찢어버렸을 터.

"눈 깔아라, 마종 새끼야! 어딜 감히 건방지게,"

스스스스슷!

염라의 전신에서 광포한 황천의 힘이 요동쳤다.

"까불면 피똥 싼다? 내가 갈까? 못 갈 것 같으냐? 문 한번 열어봐?"

그 와중에 드렉 카락스는 의식의 합일을 경험하고 있었다.

자신과 마왕 바포메트.

영혼 연결로 경험과 기억이 공유됐다.

서로의 감정 또한 실시간으로 오고 갔다.

그리하여 드렉 카락스는 안다.

현재 마왕 바포메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경악, 충격, 혼란, 당혹감, 그리고···,

'헉! 무, 무슨?'

나머지 하나는 두려움이었다.

포식자와 마주한 초식동물이 가지는 공포심.

바포메트는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 신선들을, 판관들을, 차사들을,

특히 염라에 대한 바포메트의 격한 반응.

'마신···,'

그랬다.

마왕 바포메트는 염라를 마신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미, 미친! 마, 말도 안···,'

심지어 바포메트가 먼저 눈을 내리깔았다.

그리고 점점 흐려지는 연결.

'자, 잠깐!'

툭!

'어?'

연결이 끊겼다.

바포메트가 강제로 끊었다.

핏! 하고 사라지는 환영.

드렉 카락스는 어이가 없었다.

마계의 지배자, 마왕이 무서워서 영혼 연결을 끊었다고?

"아씨, 도망갔네. 대왕, 대체 뭐 하는 거요?"

"놓쳤잖소, 저 새끼가 태주 대협에게 위해를 가하려 했던 놈인데."

"맞소, 태주 대협에게 받을 건 다 받아 놓고선, 저딴 새끼도 못 잡고."

"은혜를 몰라, 은혜를."

"뒤에서 남 욕이나 하고 말이야."

신선들의 비난이 줄을 이었다.

그에 항변하는 염라.

"아, 아니! 다른 세상에 있는 놈을 무슨 수로 잡으란 말인가?"

"아까는 문을 열 수 있다며? 뻥카쳤소?"

"뻥카는 아니고···,"

"오! 그럼 저쪽, 마계로 갈 수 있단 말이오?"

"당장은 안 돼. 하지만 초혼령에 이놈의 영혼과 마왕이란 놈이 반응했으니, 좀 더 연구해보면···,"

그러자 검선이 은근한 목소리로,

"하면 지구도?"

"그건 안 된다고 누차 말하지 않았나. 지구에 나와 같은 영혼이 있어야 한다고."

"쯧, 실망했소, 염라."

"···."

염라가 독선을 보며 말했다.

"이놈, 어떡할 텐가?"

"글쎄요, 볼 건 다 봤으니, 쓸모도 없고,"

"그럼 나한테 맡겨주게나. 연구해 볼 것도 있고."

"그러시지요."

허락을 받은 염라는 강림을 불렀다.

"강림아."

"네, 대왕."

"일단 이 새끼, 지옥에 처넣어."

"알겠습니다."

"말랑말랑해질 때까지 최대한 굴리도록."

강림은 아직도 망연자실해 있는 드렉 카락스의 모가지를 비틀어 쥐고는 초열지옥으로 넘어가서,

"천마야, 혈마야!"

"넵!"

"부르셨습니까?"

선계월드 건설 작업에 기여한 공로로 지옥 죄수 관리자의 역할을 맡게 된 천마와 혈마가 부리나케 달려왔다.

"신입 받아라. 확실히 굴려."

"···강도는 어느 정도로?"

"안 죽는 놈이라니까, 마음껏 조져도 돼."

"하하하, 염려 붙들어 매십시오."

"나중에 치킨하고 맥주, 사식으로 넣어줄게."

드렉 카락스의 지옥 생활이 막 시작됐다.

※ ※ ※

태주는 야밤에 기자들을 피해 황궁에 방문했다.

하도 전화가 많이 와서 만나보기는 해야지.

미리 연락해서 금수호가 직접 마중 나왔다.

할 말이 많은 듯한 표정의 류태현 황제와 금수호.

"잘 왔네, 요즘 정신이 없지? 안팎으로 말이야."

"네, 조금, 신약 연구가 힘들 정도로."

사실 별로 힘들진 않지만 엄살 부려 보자.

"허허, 그러면 곤란한데···, 근데 무슨 약을?"

"레이드용 도핑 물약입니다. 자체적으로 실험 중입니다. 지금은 부작용을 최대한 줄이는 작업에 들어갔고요."

"그래?"

황제가 반색했다.

마약성 도핑 물약은 지금도 있다.

문제는 부작용이 심해서 널리 쓰이진 않는다는 것.

그런데 부작용 없는 도핑 물약을 만든다면?

더구나 김태주 회장이 만든 약 아닌가.

마수 밀집지대 공략에 큰 도움이 될 터.

더불어 언데드 사태같은 돌발 상황에도 대응할 수 있고.

"효과는?"

"끝내주죠. 혹시 아시려나 모르겠네. 얼마 전에 DMA 마수 밀집지대 공략이 있었습니다."

"나도 알지. 성공했다며?"

"9명이 엘리트 마수 88마리를 잡았어요. 레이드 도핑 물약 덕분에."

"오오오!"

뭐, 검후 정연희의 지분이 크긴 해도.

"그리고 발모제도 연구해보려고요."

"헉!"

이번엔 금수호가 탄성을 질렀다.

"저, 정말인가? 발모제라고?"

"네."

"오오오! 언제 나오는가? 내가 실험대상으로 지원하면 안 되겠나?"

왜 호들갑이지.

머리도 풍성한 양반이,

"사실 최근에 머리가 조금씩 빠지고 있어. 약을 먹어서 진행이 늦춰지긴 했지만."

"흐음,"

가만히 보니 이마가 양쪽으로 살짝 올라가긴 했다.

"M자형?"

처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금수호.

황제가 기가 막힌다는 듯 혀를 차며 말했다.

"쯧쯧, 다 늙어빠져서는···, 아예 머리를 밀어!"

"두상이 평타만 쳤어도 그랬을 겁니다."

"결혼 생각도 없다는 놈이···,"

"결혼은 안 해도 연애는 합니다만···, 아무튼 이럴 때가 아닙니다. 김회장이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우리가 도와줘야 합니다."

"어떻게?"

"기자들부터 치워야죠."

현재 모든 제국민의 관심이 영혼 연결 이슈.

광풍이었다.

TV만 틀면 그 얘기가 나온다.

너튜브도 마찬가지.

오죽하면 황제도,

"나도 의심받고 있어. 내가 영혼 연결자 아니냐고, 아니라고 해도 믿지 않는 눈치야."

"···힘드시겠어요."

"여간 답답한 게 아니야. 신하들하고 다과회를 열었는데, 다들 물어보더라고, 영혼 연결자가 아닌지."

그럴 만도 하다.

웬만한 마스터들과는 비교를 불허하는 그랜드 마스터.

삼한제국 최강의 각성자가 바로 류태현 황제 아닌가.

그래서 예전부터 종종 비교도 당해왔다.

알렉스 카이사르 황제와 류태현 황제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사자냐? 호랑이냐?

슈퍼맨이냐, 배트맨이냐?

그 와중에 알렉스 카이사르 황제가 폴리모프 반지로 각성 문양을 숨겼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류태현 황제가 의심받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

"반지도 빼고, 목걸이도 빼고, 때밀이 수건으로 문양을 박박 문질러도 의심을 거두지 않더라고."

금수호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을 받았다.

"네, 대단했지요. 다과회 테이블 위에 올라가 바지까지 내리시려 하지 않았습니까? 폴리모프 아이템이 없다는 걸 증명한답시고."

"···바지는 안 내렸잖아."

"허리띠까지는 푸셨죠. 제가 안 말렸으면 내리셨을걸요?"

황제도 이런 판에 다른 사람은 오죽할까?

"그런데 말이야, 자넨 어느 세상의 누구와···,"

조심스럽게 물어오는 황제, 슬며시 다가와 눈을 반짝이는 금수호.

결국 이게 목적이었다.

'흐음,'

알려줘 말아?

일단 알려준다고 해도 선계와 신선들은 안 된다.

당연히 물건 교류도.

딱 인간계까지.

그러니까 등선하기 전 강호 무림에서의 1차 연결.

'그 정도면 괜찮겠지?'

암기와 독물, 그리고 신약 제조의 능력이 어디서 연유했는지도 수긍할 테고.

< 왜 안 죽지?(2) > 끝

ⓒ 꾸찌꾸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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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인간이다. >

언론과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온통 영혼 연결과 다른 세상에 대한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익명의 정보에 의하면 김태주 회장의 연결 영혼 대상은 연금술사일 가능성이 높아.>

<독과 약, 그리고 지옥의 금속까지, 모든 게 설명된다.>

<일각에선 다른 의견도, 연금술사라면 무력은 어떻게 설명할 건가?>

<독을 잘 만들고 원거리 투사체 공격에도 능하다면, 암살자, 혹은 살수?>

다른 세상의 정체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다중 우주설에 제일 힘이 실렸다.

└ 다중우주라고 보면 돼. 각 세상의 초기 출발점이 같았지만 점차 방향이 달라진 거야.

└ 지구는 과학이, 다른 세상은 마법과 무공이 발달했단 말이지?

└ 하긴, 지구도 중세 유럽 시절 마녀와 기사가 실존했잖아.

└ 강호 무림도 그래. 도가 문파나 소림사라든가, 자객 형가, 묵가의 협객 같은 무림인도 있었고.

└ 무당과 주술사는? 알고 보면 그게 마법이지.

그렇다면 왜 지구는 마법이나 무공이 사장되고 과학 문명으로 발전했을까?

└ 마나가 있고 없고의 차이 아닐까?

└ 마나, 혹은 무형의 기가 있는 세상은 마법과 무공으로 발전이 됐고, 없는 세상의 선택은 과학이었단 말이지?

└ 맞아. 지구가 이렇게 변한 것도 300년 전 마나 침범 이후잖아.

└ 그럴듯해. 마나가 생긴 이후, 쿵푸와 태권도도 살상 무예로 변화했고, 단전호흡으로 기를 모은다는 사람도 생겨났고.

└ 시스템 각성만 해도 그래, 과학과 마법의 결합? 딱 그거 아냐?

한편,

빈센트 모레티는 아프리카 사하라 초원에 있었다.

이번 폭로의 배후이자, 모스크바 대폭발의 주범, 자신도 대마공학자와 영혼이 연결된 그.

사하라.

과거 광활한 사막이었던 곳이, 지금은 기후 변화로 인해 초록색 풀들이 송송 올라오는 초원지대로 변했다.

하지만 이곳은 악명높은 마수 밀집지대.

사실 아프리카 전체가 그렇다고 보면 된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나마 마수의 숫자가 적은 지역에 지하 벙커를 건설해왔다.

황제 카이사르가 알아차릴 수 없게끔 천천히, 은밀하게.

벙커 안엔 사람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죄다 골렘들뿐.

인간형 사이보그 골렘을 비롯해서, 건설 작업용, 전투용, 정찰용···,

그와 같은 영혼,

다른 세상의 대마공학자 자크 델루안의 경험과 지식을 받아 제작한 골렘들이었다.

지금도 자크와 영혼을 연결하고 있다.

최근의 연결이 6개월 전.

아마 조만간 또 한 번의 연결이 이루어질 터.

'기대되는군.'

자크 델루안과 실험 결과를 공유하고, 토론하게 될 날이 머지않았다.

알렉스 카이사르를 대상으로 진행했던 한 번의 실험만으론 부족하다.

몇 번의 실험이 더 필요하다.

차원 게이트를 어떻게 제어하는지가 관건.

중요한 건 거리.

영혼 연결자들끼리 멀리 떨어뜨려 놓는다.

그러려면 게이트를 원하는 장소에 열어야 한다.

하지만 만약 실패하면?

예를 들어 도시 한복판에서 같은 영혼들이 합쳐지게 되면?

'뭐, 어쩔 수 없잖아.'

폭발로 인해 사람이 죽어 나간들, 그까짓 것 눈도 깜짝하지 않는다.

오로지 빈센트에게 있어 중요한 건 다중우주의 원리와 법칙을 탐구하는 일.

자크 델루안도 마찬가지다.

각종 무리한 실험의 남발로 자신이 사는 세계를 스스로 멸망으로 몰아넣었다.

멸망이 대순가?

진리 탐구보다 중요한 것이 뭐가 있다고.

'적당한 실험체가···,'

현재 전 세계 언론에서 영혼 연결자에 대한 이야기뿐.

의심되는 자들이 속속 나오고 있었다.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 찾아주니 얼마나 고맙나?

거의 확실하다고 생각되는 존재도 하나 있었다.

삼한제국 티제이 바이오의 김태주.

'위험 부담이 큰데···, 접근하는 것도 그렇고.'

비범한 능력의 소유자.

위협적인 존재이기도 하고.

마나 거부증 치료제인 MRC, 연금으로 만든 금속으로 바다를 건널 수 있는 배도 만들었고, 게다가 무력도 만만치 않은 걸로 알려졌다.

사실 따지고 보면 모든 영혼 연결자들이 다 그렇다. 누구 하나 평범한 자들이 없다.

무서워할 필요가 있나?

김태주도 실험 대상일 뿐이다.

그것도 최우선 실험대상자.

'김태주부터 시작해보자.'

고전적인 방식으로 접근할 생각.

개선된 차원 게이트 발생기를 마법 아티팩트로 속여 놈에게 전한다.

"다니엘,"

"네."

"삼한제국으로 가줘야겠다. 가서 김태주를 만나라."

"구체적인 행동 양식이 필요합니다."

"상황에 따른 프로그램을 알고리즘으로 짜서 입력해 주겠다."

"네."

김태주는 걸려들 수밖에 없다.

스스로 차원 게이트를 작동하든, 다니엘이 대신 작동하든,

'무조건 실험이 진행되는 거지.'

쾅! 터지면 어쩔 수 없고.

오히려 그게 더 낫다.

위협적인 존재가 제거되는 셈이다.

실험체들이 어디 그놈 하나뿐인가.

성공은 시간문제다.

거의 150년이 넘게 매달려온 과제.

너무나 오래 기다려온 시간.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죽으면 실험도 못 하니까.

자신은 각성자가 아니다.

영혼을 연결했지만 일반인이나 다름없다.

각성자는 마나와 시스템의 힘으로, 마법사는 서클과 클래스로, 기사들은 오러의 힘으로 자신의 영혼과 육체를 단련한다.

그런 이유로 남들보다 수명이 길다.

200년, 300년은 우습게 산다.

그러나 대마공학자는 이것도 저것도 아니다.

육체 단련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직업.

그저 일반인.

그런데 어떻게 150년이라는 시간을 살았을까?

간단하다.

노쇠한 신체를 교체하면 된다.

인챈트 마법 공학과 골렘 기술을 통해 만든 인공 심장, 콩팥, 간, 폐, 안구, 고막···, 심지어 전뇌 신경 임플란트까지.

거의 다 교체했다.

지금도 진행하고 있고.

그래서 가끔은 이런 생각도 한다.

자신은 인간인가, 아니면 초 마도 공학의 결정체인 인간형 골렘인가.

'···당연히 인간이지.'

오래전,

철학자 데카르트의 명언.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인간이니까 사유할 수 있는 거 아니겠나.

"난 인간이야."

빈센트 모레티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 ※ ※

태주는 황궁에서 나와 구례로 돌아왔다.

기자들과 너튜브 스트리머들이 철수한 터라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초심을 찾고 본업에 충실하자.

영혼 연결이니 뭐니 해도 자신은 약 장사가 아닌가.

백서연을 만나서.

"한 번 더 도핑 물약 실험을 해보려고요."

"티제이 길드원들 소집할까요?"

"아뇨, 걔들은 실험 대상으로 부적합해서···."

선도와 신선주를 먹은 탓에 도핑해도 어떤 부작용이 발생하는지 알아볼 수 없다.

그리고 실험 당시에 유럽 전쟁에 개입하느라, 그 자리에 없어서 관찰이나 진단도 내리지 못했고.

"공개 실험으로 가겠습니다. 각성자들과 적합자들을 대상으로."

"각성자들 등급은 어떻게?"

"적합자를 포함해 등급별로 20명씩, 마스터도 있으면 좋겠지만···, 없어도 상관없습니다."

"네."

각성 등급별로 잠력 폭발로 인한 탈진 부작용이 각각 얼마나 심한지 알아본다.

태주도 도핑 물약을 전보다 대폭 개선했다.

천계 꽃의 비율을 늘리고 화학 성분은 줄였다.

처음 개발한 약이 지속 효과 5분에 부작용 회복 필요 시간 60분이었다면, 이번에 만든 약은 지속 효과 10분에 부작용 회복 필요 시간 40분.

어쩌면 발모제보다 더 시급한 약이 도핑 물약.

마수 레이드는 위험하다.

안전하게 계획을 세워도 그렇다.

레이드 사냥 시 가장 위험한 순간이라 하면 엘리트 마수와 맞닥뜨렸을 때.

물론 처음부터 엘리트 마수를 잡기 위해 스페셜 팀을 짰다면 모르겠지만···,

'우린 일반 마수만 잡을 거다.' 라든지, '엘리트 마수의 영역은 접근도 하지 않는다.' 라고 해도 돌발 상황은 늘 존재한다.

엘리트 마수의 영역은 고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역 분쟁으로 쫓겨난 엘리트가 새로운 지역에 자리를 잡을 수도 있고, 강해진 엘리트가 영역을 넓힐 수도 있다.

이런 위험한 순간을 타개하기 위해 레이드 팀들이 가지고 다니는 것이 바로 도핑 물약.

주요 용도는 탈출용.

짧은 시간 동안 강해진 신체 능력으로 엘리트 마수의 위험에서 벗어나려고.

하지만 탈출에 실패하면?

꼼짝없이 죽는 거지.

가장 대표적인 부작용이 탈진 현상이니까.

그리하여 구례 티제이 약국 본점에 공고문이 걸렸다.

- 레이드 도핑 물약 임상을 위한 대상자 모집.

- 주관 : 티제이 바이오 제약.

- 대상 : 적합자 포함 등급별로 각 20명씩.

- 일시 : 2323년 00월 00일.

- 장소 : 지리산 마수 밀집지대.

- 수당 : 500만 원.

공고문이 걸린 지 5분도 채 안 돼서 모집이 완료됐다.

인원을 더 뽑으라고 문의 전화가 쇄도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인근 군부대에서도 무보수로 참가 의사를 밝혔다.

누가 만든 약인데.

그 유명한 김태주 회장 아닌가.

레이드 도핑 물약 실험은 첫 출발부터 매우 순조롭게 진행됐다.

※ ※ ※

황천계 초열지옥.

드렉 카락스는 뜨거운 용암 구덩이 속에서 흑암철 제련 작업 중이었다.

아무리 죽지 않는다지만 온몸이 녹아버릴 것 같은 뜨거운 고통을 참아 낸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여기가 다른 세상의 황천계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자신과 마왕의 영혼 연결이 이루어졌었다.

그럼 또 이루어질 확률이 높다.

아마도 다음 연결엔 마왕 바포메트가 이곳을 탈출할 방법을 알려줄지도 모른다.

그때까지는 무조건 이 악물고 버텨야 한다.

마침 힘도 거의 다 회복됐다.

데우스 리치로서의 권능.

놈들은 실수한 거다.

능력을 봉인시키지도 않고 이곳에 집어넣어?

매의 눈으로 감시하는 관리인들이 있다고 하지만 그래봤자 죄수, 적어도 인간 중엔 자신을 이길 사람은 없다.

···김태주는 빼고.

'흐흐흐, 멍청한 놈들, 날 이렇게 방치해하다니, 어디 두고 보자.'

순간!

퍽!

"어헉!"

누군가가 자신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강한 충격.

"뭘 그리 히죽히죽 웃고 있느냐? 씹다 만 뼈다귀 놈아."

드렉 카락스는 어이가 없었다.

심지어 때린 놈은 신선도 아니었다.

무시무시한 황천계 관리도 아니었다.

고작 죄인들을 감시하는 관리인.

즉 자신과 같은 처지의 죄수.

"감히 내 뒤통수를 쳐?"

"하하하, 참으로 황당하구나. 감히? 감히라고?"

"더는 못 참겠다. 죽어라!"

우우우웅!

데우스 리치, 드랙 카락스가 관리인을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손가락에 흑마기가 진득하게 맺혔다.

하지만,

퍼억!

"케엑!"

눈에 보이지도 않는 빠르기로 턱을 강타당한 드렉 카락스.

맞았다고?

아무렇게나 휘두르는 저 주먹질에?

뒤통수 맞았을 때야 기습당했다고 쳐도, 뻔히 마주 보는 상황에서···,

데미지도 상당했다.

잠깐 의식이 끊길 정도로.

"다, 다크 배리어!"

드렉 카락스의 전신에 암흑의 반투명 보호막이 쳐졌다.

단순한 보호막이 아니다.

미사일이나 로켓도 막을 수 있는 데우스 리치의 절대 보호막.

그런데?

파아악!

채채채챙!

콰직!

관리인의 주먹이 보호막을 너무나 쉽게 깨트렸다.

퍽! 퍽! 퍽!

"천지 분간도 못 하지? 착각하지 마라! 넌 아무것도 아니야. 굴러다니는 광석보다 더 값어치가 없다."

퍼억! 퍽퍽!

천마는 연신 드렉 카락스의 안면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이놈의 정체는 강림 차사에게 대충 들었다.

네크로맨서?

마왕과 영혼을 연결했다고?

그게 뭐!

퍽퍽퍽퍽!

그저 영혼만 연결해 힘을 얻은 놈.

"영혼 연결을 너만 해봤는 줄 아느냐? 그게 그렇게 대단할 거라 여겼나?"

천마도 영혼 연결의 당사자.

자신과 같은 영혼이 김태주에게 뒈져버렸지만.

뭐, 원했던 일이었다.

"버러지 새끼, 절대자는 개뿔, 주제에 분수도 모르고,"

천마도 강호 무림의 절대자.

비록 만들어진 몸이라고는 하나, 지옥에서도 천마신공을 대성한 몸이다.

인간계에서의 지긋지긋한 부작용도 극복했다.

오히려 강호에서보다 더더욱 완성된 천마신공이었다.

하지만 차사 하나 이기지 못한다.

강림에게 개기다가 처맞고 눈물을 흘렸던 것이 한두 번인가?

그랬다.

펑펑 울었다.

억울하고 아팠다.

고통을 줄이기 위해 고개를 숙여 잘못했다고 빌어야 했다.

마교 교주로서 자존심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

여기선 수많은 죄인 중 한 명.

영혼 연결자도 결국은 인간.

결코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선계와 천계, 황천계의 도움을 한 몸에 받는 지구의 김태주라면 또 모르겠지만.

천마의 분풀이에 드렉 카락스는 개처럼 맞았다.

이젠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너무 많이 맞아서 뼛조각이 으스러질 정도로.

그 모습에 혀를 끌끌 차며 조소하는 혈마.

"처맞는 놈이나, 때리는 놈이나, 둘 다 제정신이 아닌 건 확실하구나."

천마가 코웃음 쳤다.

"미친 걸로만 따지면 혈마, 널 따라갈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낄낄낄, 그건 나도 동의하는 바야."

인사불성이 된 드렉 카락스.

흥미가 떨어졌는지 천마는 놈을 용암 속으로 던져버렸다.

"근데, 천마야, 너도 영혼 연결자였다는 것이 사실이냐?"

"···난 원하지 않았어. 빌어먹을 어떤 힘이 강제로 그렇게 만든 거지."

"혹시 영혼 연결의 조건이 미친 정도 아닐까? 너도 또라이고, 저 새끼도 그렇고."

"···."

가만히 생각해보니 혈마의 말도 근거가 있다.

당장 당군악만 해도···,

김태주는 모르지만 당군악은 미친놈이 맞았다.

무시무시한 만천화우로 수많은 마교도들을 학살하고 자신마저도 독으로 녹였다.

그런 놈이 어떻게 등선했을까 싶을 정도로.

"그럼 혈마, 너도 언젠간 영혼 연결하겠구나. 너도 나 못지않게 미쳤으니."

"···뭐?"

"충분히 가능성 있지, 안 그러냐?"

"어어···,"

혈마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자신과 같은 놈이 또 존재한다고?

생각만 해도 소름 끼치는 일이었다.

< 난 인간이다. > 끝

ⓒ 꾸찌꾸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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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험의 결과는? >

구례 지리산.

레이드 도핑 물약 실험 첫날이었다.

하루에 하나의 등급만으로 실험을 진행할 예정.

오늘은 적합자부터.

각성자들은 유저에서 익스퍼트까지 다 모았지만 마스터는 딱 한 명 받았다.

바로 이정학 구례 부시장.

태주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시정 행정 결제받으러 왔다가 실험에 합류했다.

"아무리 명예직이나 다름없는 시장이시지만 시청에도 좀 들리시는 게···,"

"이번 실험만 끝나고, 제가 방문해서 회식 한번 크게 쏘겠습니다."

"시정 업무는···?"

"사람 모자라면 더 뽑으세요. 오늘은 실험에만 집중하죠."

"···."

실험은 철저하게 통제된 상황에서 실시될 것이다.

자칫하면 위험할 수도 있으니 정연희와 티제이 길드원들이 실험 보조로 투입됐다.

"몇 마리 잡아 올까요?"

"적합자 대상 실험이니까, 칼날이빨 담비 3마리만 준비합시다."

"엘리트 포함해서요?"

"그냥 일반으로, 뒷다리는 부러뜨리고."

적합자들에겐 일반 마수도 버겁다.

20명에 3마리라도 인명피해를 각오해야 한다.

정연희와 길드원들이 일반 마수들을 몰고 왔다.

바짝 긴장하는 대상자들.

적합자들은 레이드에 있어서 전투 지원 포지션.

총기로 각성자들을 엄호하고, 와이어와 덫으로 마수들을 속박하며 사냥을 편하게 해준다.

그러나 적합자만으로 직접 사냥에 나서기는 처음.

당연히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거, 겁먹지 말라고, 다리가 부러진 놈들이잖아."

"네가 더 겁먹어 놓고는!"

"···자, 잡아!"

"찔러, 찌르라고!"

"제기랄! 무, 무기가 안 들어···,"

"나한테 온다."

적합자는 특성도 없고 스킬도 없다.

일반인보다 더 나은 게 있다면 마나를 받아들여 신체 능력이 상대적으로 더 강하다는 점.

백창훈이 적합자들에게 외쳤다.

"좀 전에 받은 푸른색 물약 빨아요. 마나 증폭 물약입니다. 2배로 뻥튀기될 거예요."

마나 회복제와는 차원이 다르다.

증폭 물약은 마나통 자체를 확장시켜 주는 것.

지속 시간은 10분.

"오!"

"···마, 마나가?"

"할만한데?"

"뭐해? 죽여!"

무기들이 마수들의 몸에 박혀 들어갔다.

우왕좌왕 정신이 없었지만 그래도 가까스로 사냥 성공.

"자, 잡았다."

"죽는 줄 알았네."

"흐흐흐, 이런 경험도 다 해보는구나."

"후우, 지친다, 지쳐."

10분이 지나고, 이제 부작용 검사.

적합자들이 줄을 지어서 태주에게 진맥 검사를 받았다.

'부작용이 좀 크긴 해. 최소 30분 이상은 쉬어야 할 것 같네.'

적합자에게도 도핑 물약은 유효했다.

아마 각성자들에겐 훨씬 더 효과가 좋을 터.

실험은 이걸로 끝이 아니다.

3가지 물약을 다 실험해볼 예정.

2개씩 혹은 3개 모두 동시 복용했을 때의 효과와 부작용도 알아봐야 하니까.

'내일은 유저 등급이었지?'

다음 날은 비기너, 레귤러, 그리고 익스퍼트.

아마 일주일 이상은 꼬박 걸릴 것이다.

※ ※ ※

다니엘은 엄밀히 따지면 순수 골렘에 속하지 않는다.

일종의 혼종.

대마공학자 빈센트 모레티의 골렘 기술과 현대 과학의 로봇 공학이 결합한 사이보그.

두뇌도 딥러닝 AI 인공 지능을 장착해서 일상생활을 하는 데에 전혀 무리가 없었다.

빈센트 모레티의 지시를 받은 다니엘은 먼저 이집트로 갔다.

유럽제국의 식민지이자 사하라 마수 밀집지대 사냥터의 전진기지가 있는 곳.

위장 신분으로 항공기를 이용했다.

설령 X레이에 찍힌다고 해도 인간의 장기가 그대로 드러나도록 개조한 몸이기에 검색대 통과는 어렵지 않았다.

이집트에서 사우디 연방으로, 버마 공화국, 베트남 왕국을 거쳐, 그리고 최종 목적지인 삼한제국.

다니엘이 현재 도착한 곳은 자유 영지 구례.

티제이 바이오 김태주가 시장으로 있는 도시다.

임무는 차원 게이트 발생기를 김태주 곁에서 작동하기.

하지만 막상 구례에 도착하고 보니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우선 김태주와 만날 방법이 없다.

자택이나 티제이 바이오 본사에도 갔지만 만나지 못했고.

차원 게이트를 어떻게 활성화하지?

최대한 가까운 거리에서 실행해야 한다.

직접 만나서 얼굴을 보고 하는 게 제일 확실한데.

그러다 티제이 바이오가 구례 지리산 마수 밀집지대에서 레이드 도핑 물약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는 정보를 알아냈다.

'김태주를 만날 기회.'

어떻게?

'아무도 모르게 근처까지 접근해서,'

다니엘은 자신의 관자놀이를 툭툭 두드렸다.

순간!

스르르륵, 다니엘의 몸체가 투명하게 변했다.

광학 미채 기술.

주변의 빛을 인위적으로 굴절시켜 사람들 눈에 투명한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하나 더.

차원 게이트 발생기.

이건 따로 준비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의 몸 자체가 게이트 발생기였기 때문에.

다니엘은 지리산 마수 밀집지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최소 10m 안쪽까지는 접근해야 한다.

'이쯤에서···,'

위이잉!

미리 준비해온 초소형 드론을 위로 띄워 올린 다니엘.

마공학 인챈트로 개조한 드론.

역시 광학미채 빛 왜곡 기능으로 스텔스와 투명화 기능을 갖췄다.

1차 용도는 김태주의 위치 찾기.

2차 용도는 촬영 및 전송.

게이트 발생 실험만 성공하면 뭘 하나?

결과를 알아야지.

드론이 영상을 찍어, 무선 인터넷망을 통해 사하라로 전송할 것이다.

※ ※ ※

5일째 계속되는 레이드 도핑 물약 실험.

오늘 진행되는 등급별 실험대상은 주니어 익스퍼트였다.

고등급 각성자가 투입되는 상황이라 일반 마수로는 모자란다.

엘리트 마수가 필요하다.

하지만 엘리트 마수를 온전하게 실험장에 배달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나?

이정학도, 정연희도 안 된다.

죽일 수는 있겠지만 어떻게 생포해와?

태주가 나서야 했다.

'뭐가 좋을까?'

결정했다.

엘리트 자이언트 반달곰이 최고.

맷집도 있고, 그리 빠르지도 않아 실험에 적합한 엘리트 마수.

그러나 만만치 않다.

사실 생포는 쉽다.

적당한 놈 찾는 게 더 어렵지.

대규모 지리산 마수 밀집지대 공략 이후, 숫자가 대폭 줄어든 지리산의 엘리트들, 최근에 몇몇 눈에 보이고 있다지만 예전 같진 않았다.

별수 있나?

열심히 발품을 팔아야지.

샅샅이 뒤져서 한 마리 발견했다.

"크르르릉!"

경계 가득한 눈초리로 두 발로 일어선 놈에게 달려가.

"크아아악!"

벽마부 먼저 붙이고.

"···끼이잉,"

구속부도 붙여서 꼼짝 못 하게 만든 다음,

"자, 가자."

가볍게 어깨에 둘러멨다.

하도 커서 태주의 몸이 가려질 정도지만,

스팟!

표홀질풍보로 빠르게 달렸다.

타다다닥! 타닥!

그간의 결과는 매우 좋았다.

각성자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들.

등급이 높을수록 효과가 뛰어났다.

특성과 스킬의 위력이 극대화되었고, 그로 인한 부작용도 극히 짧아졌다.

즉시 생산해서 만들어 팔아도 될 정도.

'일단 구례에서만 한정 판매하면 되겠네.'

자유 영지라 약품 제조와 판매가 자유로우니까.

'그리고 군납도···,'

순간!

"음?"

멈칫!

태주는 발걸음을 멈췄다.

앞쪽에 뭔가 있다.

마치 유령처럼.

마나의 기운도 느껴졌고.

그런데 왜 안 보이지?

단순한 착각?

'···아냐. 저기 있어.'

어슴푸레 보였다.

아지랑이 같은 무언가가.

엘리트 자이언트 반달곰을 땅에 내려놓은 후.

쿠웅!

"나와라."

스우웅!

허공에 떠오르는 유엽비도.

"한 방 맞고 나올래, 그냥 나올래?"

태주가 경고하듯 말하자,

스르르륵.

누군가가 나타났다.

"결국 절 발견하셨군요. 예상은 했었습니다만."

조금 놀랐다.

나타난 사람이 굉장히 이질적이었기 때문이다.

겉모습은 백인.

하지만 생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감지되는 건 오직 마나뿐.

'언데드일 리도 없고.'

표정에서도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얼굴 가죽에 눈코입만 달려있다고 느껴질 정도로.

"넌 누구냐?"

"다니엘입니다."

"이름 말고, 어디서 왔어? 무슨 목적으로?"

"답변할 수 없는 질문입니다."

이놈 봐라?

인터넷 게임 운영자처럼 지껄이네.

"아무튼 내게 볼일이 있는 것 같은데···."

"맞습니다."

느낌이 좋지 않다.

판관의 반지도 잠잠하다.

진실인지, 거짓인지 판단이 안 된다.

강해 보이진 않았지만.

'살기도 없고, 로봇인가?'

그럴 가능성이 매우 크다.

다니엘이란 놈이 저벅저벅 걸어왔다.

거의 지척까지.

"잠깐! 거기서 멈추지?"

"네, 멈추겠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뭐가 충분해?"

"답변할 수 없는 질문입니다."

"···."

"곧 알게 될 테니까요."

화아아아악!

놈의 몸이 전구처럼 빛났다.

기운이 빠져나갔다.

빠져나간 기운이 놈에게로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멈칫 굳어버리는 태주의 몸.

쉽사리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하체가 꽁꽁 묶인 느낌.

'···이건?'

어디서 본 적 있다.

기억이 떠올랐다.

'모스크바?'

그렇다면?

"이 새끼, 무슨 수작이냐? 혹시 네가 빈센트?"

"···어떻게? 아무튼 답변할 수 없는 질문입니다."

"그럼 빈센트 부하?"

"편하게 생각하십시오. 아마 모르실 겁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픽, 하고 비웃으며 대꾸하는 태주.

"다른 세상의 내 영혼을 불러내서 나랑 합치게 하려고?"

"···어떻게 아셨습니까?"

"답변할 수 없는 질문이다. 이 개자식아!"

"하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순간!

째애애앵!

바로 뒤에서 타원형 거울이 생겨났다.

"이런 미친놈이!"

이럴 때가 아니다.

알 수 없는 힘이 자신을 움직이지 못하게 옭아매고 있었다.

이것부터 끊어 내야 한다.

거울 주위에 머물러 있으면 끝장.

"흐읍!!!"

독령이 꿈틀했다.

선기가 전신으로 퍼지고서야.

투투툭!

태주는 자신을 속박하는 기운을 부쉈다

스팟!

동시에 다니엘에게 달려가.

콰악!

태주는 다니엘의 목을 움켜잡고 빠르게 거울 주변에서 벗어났다.

스팟! 파파파팟!

'설마 독선이···,'

만약 모스크바에서 일어났던 현상이 여기서도 일어난다면 그가 저 거울에서 나올까?

일단 선계에서 경험했던 대로 100m 정도 거리를 벌리고.

'이 정도면 괜찮을 거야.'

동시에 위이잉!

어디선가에서 들리는 미세한 프로펠러 소리.

'드론?'

맞다.

아지랑이처럼 희끗 보이는 투명 비행체.

아마 몰래 찍고 있는 모양인데.

'결국 실험이었군.'

모스크바와 똑같았다.

'어딜 훔쳐보려고!'

츠핏!

태주는 가볍게 유엽비도 한 자루를 날렸다.

콰직!

비도에 맞고 떨어지는 드론.

허공에서 잡아채 무한공간에 집어넣은 후.

여전히 태주의 손에 매달려있던 다니엘이 궁금하다는 듯 말했다.

"···도무지 모르겠군요. 게이트가 나타날 줄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리고 일어날 결과에 대해서도."

"하아, 시끄럽게 옆에서 종알종알, 확 아공간에 집어넣을까 보다."

판관의 반지도 작동하지 않는 판에.

심문한들 알려줄 리도 만무하고.

"전 스스로 사유하고 움직이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아공간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래? 한번 해볼까?"

"차라리 절 파괴하시···,"

스슷!

다니엘이 사라졌다.

"어때? 무한공간은 처음이지?"

확실히 인간은 아니다.

정체는 나중에 살펴보도록 하고.

아직 거울은 호수 표면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그런데 모스크바 당시와는 사뭇 달랐다.

그때는 거울이 나타나자마자 사람이 나왔다.

지금은 생겨난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잠잠했고.

'실패했나?'

거울 크기도 점점 작아졌다.

그래서 안심하고 있던 찰나!

쑤욱!

갑자기 거울 속에서 누군가가 데굴데굴 굴러 나왔다.

"···어?"

저 사람이 왜···,

※ ※ ※

선계(仙界).

멀티플렉스는 오늘도 분주했다.

이제 몇 시간 후로 다가온 선계 대표자 회의.

독선 당군악이 태상노군 대신 참석할 예정.

부우우웅,

스르르륵.

자동차 한 대가 선계 월드를 지나 멀티플렉스 주차장 앞에서 부드럽게 정차했다.

스포츠카는 아니었다.

얼마 전에 선계를 방문한 태주가 주고 간 대형 승용차였다.

삼한제국 백두 자동차에서도 최상위 트림인 에코로이스 리무진, 일명 회장님 차.

운전석 문이 열리고 황금 원숭이 한 마리가 내렸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신선들이 손뼉 치며 감탄했다.

짝짝짝,

"오! 잘한다."

"역시 원숭이야. 흉내 하나는 기가 막히게 낸다니까."

"우끽!"

능숙한 몸놀림으로 뒷문을 열자,

철컥!

뒷좌석에서 멋진 양복 차림의 당군악이 내렸다.

"그림 좋고!"

"그런데 자미궁까지 차가 들어가나?"

"일단 임시로 길을 만들어뒀소."

"고생했소, 검선."

솔직히 당군악은 마뜩찮다.

'선계 대표는 무슨,'

그러나 이번은 참는다.

상제가 긴히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하니 들어는 봐야지.

"그럼 다녀올 테니, 선계에 별문제 없도록 신경 써 주시오."

"걱정 붙들어 매고,"

"우리 못 믿소?"

당연히 못 믿지.

누가 믿겠나?

빨리 갔다 오자.

이것저것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이따가 봅니다. 다녀와서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

그때였다.

우우우웅!

치치치치치칙!

"···어?"

무언가 희한한 기운이 뒤쪽에서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니,

째애애애앵!

느닷없이 생겨난 타원형의 거울.

"으잉?"

"저게 뭐지?"

"누가 술법이라도 펼쳤소?"

"난 아닌데."

그뿐이 아니었다.

우우웅!

거울 문 안에서 알 수 없는 힘이 당군악을 거울 속으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이게 무슨?"

어리둥절한 당군악의 표정.

하지만 고작 이런 힘에 신선이 끌려갈 리가.

"흡!"

파사삭!

기합을 넣어 힘을 주니 썩은 동아줄처럼 끊어졌다.

그런데도 거울은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조금씩 줄어드는 것 같기는 해도.

우르르르.

거울 주위로 모여든 신선들.

그들의 눈빛엔 반짝반짝 호기심이 가득했다.

"뭐지?"

"황천계 문하고 비슷해 보이는데,"

"그럼 염라가?"

"흐음, 그건 아닌 것 같고,"

그 와중에 당군악은 저게 뭔지 알아냈다.

태주의 편지에 적혀있던 내용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모스크바 대폭발.

거울 속에서 나온 같은 영혼이 서로 합쳐져서, 그 여파로 도시가 완전히 사라졌었다고.

자세히 보니 거울 너머의 모습도 보인다.

나무와 숲이 보이는 걸 보니 산속인가?

"···이 거울은 지구와 연결되는 문일 거요."

획!

신선들의 눈이 한꺼번에 당군악에게로 향했다.

"저, 정말이요?"

"아마 저길 통하면 지구로 갈 수 있겠지. 태주가 바로 옆에 있을 것이고,"

"그럼 뭘 하시오? 당장 들어가 보지 않고?"

"난 갈 수 없소, 내가 들어가면···,"

"아! 혹시 영혼 합쳐짐 현상?"

"그냥 가만히 둡시다. 문이 사라질 때까지, 지금도 슬슬 사라지고 있으니까."

고개를 끄덕이는 신선들.

확실히 눈에 띄게 거울 문이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맞소. 들어갔다간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니."

"모두 멀리 떨어지시오. 자칫하다간 빨려 들어갈라."

"감히 어떤 놈이 선계에다 저런걸···,"

"험험, 곧 있으면 사라질 텐데 뭐가 걱정이오?"

말은 그렇게 하고 있지만 몸은 반대였다.

슬금슬금,

신선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거울 쪽으로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어허! 왜들 이러시오. 떨어지라니까."

"그러는 주선은 왜 발이 그쪽으로 움직이나?"

"취해서 비틀거렸을 뿐이오. 그러는 당신은?"

"응? 누, 누가 밀었나? 왜 자꾸 몸이 이쪽으로···,"

"내가 막아주지."

"그럴 필요까지야···,"

모두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역시 검선이 가장 빨랐다.

"어이쿠! 발을 헛디뎠네."

콰당,

앞으로 곤두박질하듯 고꾸라지더니,

스피릿!

전광석화의 속도로 그대로 데굴데굴 굴러서,

쑤욱!

거울 안으로 들어갔다.

"저저저···,"

"아뿔싸!"

"제기랄!"

"비, 비켜! 나도···,"

"내가 먼저."

너도나도 들어가려 했지만,

검선이 들어가자마자,

팟!

순식간에 사라지고 마는 거울 문이었다.

< 실험의 결과는? > 끝

ⓒ 꾸찌꾸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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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승과 제자 >

사하라 사막 지하 벙커 시설.

빈센트 모레티는 삼한제국 구례 지리산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모니터를 통해 시청하고 있었다.

다니엘에게 따로 연락을 받았다.

김태주의 위치를 파악했다고, 곧 임무를 실행하겠다고.

빈센트 모레티는 이번에도 차원 게이트 실험 실패를 예상했다.

김태주도 다른 세상의 같은 영혼과 합쳐지고 말 것이다.

일단 게이트가 열리면 피할 방법은 없다.

지구 최강이라 부를 수 있는 알렉스 카이사르 황제도, 그와 같은 영혼인 소드 카이저 트릴리안 랜서도.

김태주도 마찬가지.

제아무리 영혼 연결자라고 한들, 트릴리안보다 강할까?

영혼 연결자도 결국은 인간.

절대 그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모스크바에서처럼 대폭발이 일어날 테고,

구례 시(市)는 흔적도 남지 않을 것이다.

또한 다니엘이나 드론 같은 증거도.

드론 촬영이 시작됐다.

김태주가 저 앞에서 엘리트 마수를 산 채로 제압해 끌고 오는 모습이 보였다.

'확실히 영혼 연결자가 맞군.'

일반 각성자 따위가 어떻게 엘리트 마수를 산 채로 잡아? 마스터도 불가능한 일을 말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응? 어떻게?'

광학 미채와 인챈트 마공학으로 시각을 왜곡시킨 골렘 다니엘의 위치를 정확하게 짚어냈다.

'뭐, 그 정도야.'

눈썰미가 좋은 놈인가 보다.

또한 광학 미채의 투명 기능이 완벽하지 않은 이유도 있고.

다니엘은 훌륭하게 임무를 완수했다.

김태주의 가까이 접근했고, 차원 게이트 발생기도 무사히 작동했다.

'끝났군.'

이제 놈은 꼼짝도 하지 못할···,

"헉!"

빈센트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무, 무슨?"

이게 말이 돼?

차원 게이트 발생기의 속박을 힘으로 끊어냈다고?

단순한 기계 장치가 아니다.

초고도 마도 공학의 정수가 담긴 아티팩트.

마법으로 따지면 9클래스 이상의 고위 마법.

"세, 세상에···,"

속박은 차원 게이트 발생기의 고유 기능이자 한계였다.

영혼을 매개로 차원 연결이 이루어지기에 육신마저 꽁꽁 묶어버린다.

그래서 장치가 작동됐을 때 무조건 대상자는 움직이지 못한다.

어떻게 보면 단점이었다.

이것 때문에 빈센트도 자크 델루안을 불러올 수 없었다.

자칫하면 함께 펑 터져버리니까.

그런데 저 김태주는 뭔가?

9클래스 마법과 다름없는, 아니 능가할지도 모를 차원 속박의 힘을 저리 쉽게 끊어버리다니,

'인간의 능력을 넘어섰다고?'

게다가 차원 게이트가 발생하고 나서의 결과도 아는 듯했다.

거울의 문이 나타나자마자 빠르게 그 지역을 벗어났고, 심지어 초소형 드론마저 원거리 투사체로 추락시켜버렸다.

영상 전송이 끊겼다.

지금부터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방법이 없다.

예상을 완전하게 벗어난 실험 결과.

위험하다.

상대를 잘못 골랐나?

'거꾸로 내가 위험해졌어.'

놈은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자신을 찾으려 할 것이다.

'대비해야 해.'

이런 놈인 줄 알았다면 다니엘을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어떻게 처리하지?'

갑자기 불안해진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

'···설마 드렉 카락스도?'

빈센트 모레티는 황립 결정체 소장으로 있으면서 유럽제국 정보부가 수집한 모든 정보를 열람할 수 있었다.

드렉 카락스가 모스크바에서 의식을 진행하기 위해 유럽에서 모습을 감춘 시점이 언제였나?

'삼한제국에서 김태주 암살이 실패했던 직후였어.'

드렉 카락스의 심복 중 하나였던 에드워드, 그리고 마인들이 파주에서 김태주에게 사망하고 난 뒤, 둘은 처음 만났을 것이다.

'그때 김태주의 능력을 인지했을 거야.'

이제야 알겠다.

'의식의 목적이 김태주였군.'

놈에게서 살아남기 위해.

그래서 무리하게 모스크바 내전을 유도하고 인간의 영혼을 제물로 데우스 리치가 되기 위한 의식을 진행했을 터.

빈센트 모레티의 인공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불안하다.

예감이 좋지 않다.

죽는 건 둘째치고 앞으로 실험을 원활하게 진행하지 못할까 두렵다.

'어떡하지?'

지하 벙커를 버려야 하나?

여길 버리면 어디로 간다고?

순간!

빈센트의 의식이 어디론가로 쭉 빨려 들어갔다.

"아!"

벅차오르는 합일감.

반가운 얼굴이 떠올랐다.

'자크 델루안···,'

사하라 사막 지하 벙커에서,

빈센트 모레티와 다른 세상의 같은 영혼, 자크 델루안과의 영혼 연결이 또다시 이루어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