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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

초기 각성자이자 마인인 모영강은 원래 중국 삼합회 범죄조직 우두머리 출신이었다.

마나 침범으로 망해버린 세계.

모영강에겐 오히려 기회였다.

국가 시스템이 무너진 상황, 그래서 마음껏 살인을 저지르고 자신보다 약한 적합자와 각성자들을 잡아먹었다.

무서운 것도 없었다.

누가 자신을 막아?

같은 마인들을 끌어들여 조직을 만들고, 중국 전체를 지배할 계획까지 세웠다.

물론 최종 목표는 세계 정복.

그러다 어이없게도 중국이 망해버렸다.

핵무기를 터뜨려 마수 밀집지대를 없애버리겠다는 중국 공산당의 야심찬 구상은 실패로 돌아갔다.

비욘드 엘리트 마수의 출현.

중국은 마인마저 살 수 없는 세상으로 변해버렸다.

결국 떠날 수밖에 없었다.

어디로?

나라를 잃은 중국인에겐 두 가지 선택권이 있었다.

동쪽이냐, 아니면 서쪽이냐.

모영강의 선택은 서쪽.

인구가 많으니까.

그래서 수많은 피난민에 섞여 부하들과 함께 유럽 제국에 터를 잡았다.

천천히 기반을 다져나갔다.

유럽에 삼합회를 재건할 목적으로.

돈 되는 일이면 다 했다.

주로 청부 살인.

아직은 혼란한 유럽이라 일감이 매우 많았다.

간혹 일반인도 있었지만 주로 적합자와 각성자가 그 대상.

얼마나 좋은가?

돈도 벌고, 자신이 죽인 대상을 잡아먹어 힘도 키우고.

추적이 안 되는 딮웹을 통해 청부를 받았다.

세계 각국으로 출장도 나갔다.

가까운 아메리카 공화국에서 멀게는 삼한 제국까지.

사업은 쑥쑥 성장했다.

놈들을 만나기 전까진 말이다.

블랙 마피아.

생겨난 지 몇 년도 되지 않는 신생 조직.

필연적으로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조직 간의 전쟁이 벌어졌다.

그리고 처참하게 깨졌다.

블랙 마피아는 무서운 자들이었다.

특히 장로라고 불리는 자들은 인간을 초월한 존재였고.

초기 각성 마인?

그들에 비하면 그저 쓰레기일 뿐.

결국 블랙 마피아의 지시에 따라 여러 잡일을 수행하는 하청조직으로 전락했다.

여기 삼한 제국에 온 이유도 바로 블랙 마피아의 장로, 에드워드의 지시 때문.

태홍 바이오 김태주 제거.

이미 놈에 대한 정보는 숙지했다.

'독을 잘 다루고, 단검이나 암기를 이용한 원거리 공격, 몸놀림도 재빠르다···,'

미심쩍은 부분도 있었다.

놈은 각성자가 아니다.

각성자가 아님에도 강한 이유.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자신처럼 각성 문양을 가렸거나, 아니면 블랙 마피아 장로들처럼 각성과는 전혀 다른 인외의 힘을 지니고 있다거나.

그러나 놈이 어떤 경우에 해당하든 전혀 상관없다.

에드워드 장로도 함께 왔기 때문이다.

김태주는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현재 무섭게 변화하고 있는 파주 신도시.

여기가 놈의 무덤이 될 것이다.

칙칙!

인이어를 통해 들려오는 조직원의 음성.

- 대상이 시내에 나타났습니다. 태홍 바이오 파주 지점장 정연희, 고양이 한 마리와 함께.

"알았다. 계속 동태를 보고해."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다고 가렸지만 누가 모를까?

김태주에 대한 정보는 조금만 발품을 팔아도 쉽게 얻을 수 있다.

고양이와 함께 다닌다는 정보, 그리고 옆에 딱 붙은 정연희 지점장.

제국에선 나름 얼굴을 알리지 않겠다면서 언론이나 SNS를 통제하고 있지만 다 헛짓이다.

칙칙!

- 목표가 정연희와 헤어졌습니다. 현재 움직이지 않고 있고, 지금 칠까요? 저흰 준비됐습니다.

"아직, 여긴 사람이 너무 많아. 놈이 인파에 숨어 도망치면 걸리적거릴 수 있어."

될 수 있으면 조용한 곳에서.

잠시 후,

- 놈이 이동합니다.

"천천히 따라가."

※ ※ ※

태주는 정연희와 미리 약속한 공사 현장으로 진입했다.

'아무도 없구나.'

정연희가 잘 처리해준 모양.

뒤쪽에서 느껴지는 마기.

태주는 아직 시멘트가 그대로 드러난 계단을 통해 위로 올라갔다.

중간층 정도에 이르자,

"회장님."

"야옹!"

"아무도 없죠? 우리 말고는."

"네, 모두 다 피신했는지 확인 끝냈어요."

태주의 눈치를 보며 슬쩍 물어오는 정연희.

"마인 때문인가요?"

"맞습니다. 지금 절 쫓아오는 중이고."

"그렇다면 저도 여기 있을게요."

마인의 기세를 보니 한 놈 빼고는 그저 그렇다.

강한 놈은 자신이 맡고 나머진 일이삼백이와 정연희가 상대해도 충분할 터.

"그러세요."

"야앙!"

순간!

타탁! 탁탁탁! 탁탁!

공사 현장 벽면을 통해 뛰어 올라오는 다양한 인종의 마인들, 모두 10명이었다.

태주가 그중 가장 강해 보이는 놈을 향해 물었다.

외모가 동아시아계열, 잘하면 말이 통할 수도.

"다 왔어?"

"···놀라지 않는 걸 보니 우리가 쫓아왔다는 걸 알고 있었군."

다행히도 말이 통한다.

초기 각성자일 듯.

가장 강하니까.

바룬 밀농장의 부회주, 그놈처럼.

"내 이름은 잘 알 테고, 넌?"

모영강이 피식 웃으며 답했다.

"시간을 끌어보려는 수작인가? 하지만 우린 방심 같은 건 하지 않는다."

"그래? 난 방심하고 있는데."

"···뭐?"

"방심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 같아서 말이야. 그치? 삼백아?"

"니아아아···,"

삼백이도 그런가 보다.

다소곳이 앉아 하품이나 쩍쩍하고 있으니.

그 모습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모영강.

"다 죽여버려! 고양이도, 저년도."

순간!

쁘드드득! 뿌득, 우드드득!

10명의 마인이 동시에 마수화를 시전했다.

"크륵! 심장을 먹어 치워 주마."

그때였다.

"아!"

외마디 비명을 지르는 정연희.

마수화를 보고 놀란 건 아닐 텐데.

태주와 이야기를 하던 마인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더니.

"너···,"

서둘러 스마트폰을 꺼내 확인했다.

그녀의 얼굴에서 화색이 돌았다.

반가운 사람을 보기라도 한 것처럼.

"드디어 만났어."

"크르르? 날 아나? 처음 보는데?"

"너무나 잘 알지. 넌 삼한 제국이 처음은 아닐 거야."

"키륵, 십수 년 전에 오긴 했다만."

정연희는 스마트폰을 모영강에게 던지며 대라신검을 꺼내 들었다.

휘익!

탁!

그걸 받은 모영강이 고개를 갸웃하면서,

"크륵? 이거, 나군."

"그래, 너야."

"아하!"

뭔가 기억난다는 듯, 놈의 샛노란 짐승의 눈이 반짝였다.

"그러고 보니 기억이 나. 기업가였던가, 맞아. 내가 죽였지."

"내 아버지였어."

"딸이라, 그럼 넌 애비의 원수를 만난 거군. 낄낄, 이거야말로 소설 같은 전개로구나."

정연희는 모영강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태주에게 말했다.

"저놈은 내 거에요."

"···어음, 괜찮겠어요?"

"제발! 내가 하게 해주세요."

"···."

어쩔 수 없다.

그녀와 이미 계약했다.

넘겨줘야지.

"알았어요."

대신,

"나머진 내가···,"

스슷!

태주의 손에서 나타난 유엽비도.

"처리하죠."

동시에 굉음과 함께 눈부신 광채가 번뜩였다.

츠피릿! 츠핏! 츠피피피피피핏!

꾸불꾸불,

그러나 눈으로 좇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현란한 빛이 번쩍인다.

허공에 이리저리 그어진 선.

푸푹! 푸푸푹! 푸푸푸푸푸푸푹!

마치 그림을 그리는 것 같았다.

빛줄기가 빼곡하게 수놓아졌다.

"···어어?"

모영강은 뭐가 날아다니는지 보지도 못했다.

대신,

털썩, 털썩, 털썩···,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그저 마수 상태로, 무력하게 쓰러지는 부하들의 모습만 눈에 들어왔을 뿐.

모영강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왜···,'

다들 쓰러졌지?

'주, 죽었어?'

시체로 변한 수하들.

몸엔 각각 수십 개씩의 상흔이 보였다.

하나가 아닌 수십 개.

반쯤 넋이 나간 모영강.

'대, 대체?'

9명이 쓰러지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1초였다.

그 짧은 시간에 바느질하듯 꿰뚫어버렸다.

'설령 장로라고 해도 이 정도는···.'

태주는 유엽비도를 다시 수거했다.

독령의 씨앗,

비록 만천화우만큼은 아니지만 비도 몇 자루는 마음대로 조종이 가능했다.

그리고 정연희에게,

"1대1로 싸워보세요. 옆에서 보고 있을···,"

그때였다.

'음?'

태주의 기감에 잡힌 끈적한 마기 덩어리.

'한 놈 더 있었네.'

그런데 냄새가 사뭇 다르다.

마기는 분명하지만 시스템 각성 마인도 아니고, 천마의 마기도 아닌, 완전 새로운 유형의 마기 냄새.

'또 새로운 놈?'

위치는 옥상.

'가봐야겠군.'

태주는 정연희에게 말했다.

"혼자서 해봐요. 괜찮겠죠?"

"네! 얼마든지요."

일백이에겐.

"너 여기 있어. 연희씨 위험하면···, 알지?"

"냐앙!"

"그래, 너만 믿는다."

스팟!

태주는 밖으로 빠져나가 옥상으로 올라갔다.

남은 두 사람, 한 마리의 고양이.

정연희는 대라신검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넌 오늘 여기서 죽을 거야."

모영강은 전신의 털을 바짝 세우며 포효했다.

"크르르륵!"

이게 웬 호재인가.

자신도 꼼짝없이 죽겠다 싶었는데.

때마침 블랙 마피아의 장로가 왔다.

장로는 김태주를, 자신은 이 건방진 년을.

"네 애비처럼 심장을 뽑아 먹어 치워 주지."

"해봐."

동시에,

츠리릿!

일검에 마귀를 물러나게 한다는 복마검법 제 일초, 격검축마(擊劍警魔)가 모영강을 향해 섬전처럼 쏘아졌다.

채앵!

마인 모영강의 강기 서린 손톱과 검후 정연희의 대라신검이 강하게 부딪혔다.

※ ※ ※

타닥! 타다닥!

태주는 건물 벽면을 밟고 옥상에 올라섰다.

그러자 보이는 한 남자.

붉은 머리에 푸른 눈, 핏줄이 보이는 하얀색 피부.

'각성 문양이 없어. 숨긴 것도 아니야.'

심상치 않은 놈이다.

저 마기는 대체 어떤 종류일까?

'물어볼까?'

몸과 몸의 대화로.

"네가 김태주···,"

태주의 손에서 나온 탈명비도가 빛살처럼 날았다.

츠핏!

"헉!"

화들짝 놀라는 블랙 마피아 장로 에드워드.

"다크 배리어."

불길한 검정 빛깔의 반투명 보호막이 에드워드의 몸에서 피어올랐다.

째앵!

찌지직!

한방으로 금이 간 보호막.

에드워드도 반격했다.

"다크 스피어!"

쓔웅!

검정색 마나 줄기가 태주의 얼굴을 향해 날아왔다.

비폭(飛瀑).

푸아아악!

정면에서 터지는 철환에 막혀 터지는 마기의 창.

"아아."

"으음."

태주에겐 처음 보는 스킬이다.

입으로 소리 내어 스킬을 발현하는 것도 우습고.

아니, 애초에 스킬이 아닐 수도.

에드워드는 표정이 심각해졌다.

작은 단검의 공격에 7클래스 흑마법의 다크 배리어가 금이 갔다.

마나 블레이드도 그냥 튕겨내는 보호막이.

"대체 뭐냐?"

이놈하고도 말이 통한다.

잘됐다.

몇 가지 물어봐야지.

"넌 누구지? 마인은 아니고,"

"내 이름을 묻겠다고?"

"왜? 물으면 안 돼?"

"여기서 질문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다."

에드워드가 무심한 표정으로 손을 들어 태주를 가리켰다.

"데모닉 바인더."

우웅!

스스스스스스,

태주의 발밑에서 피어오르는 마기의 줄기.

'어라?'

스멀스멀, 하체를 타고 오르더니 온몸을 꽁꽁 묶었다.

"감히 날 먼저 공격해?"

"···."

"네놈의 머리를 구석구석 헤집어주겠다."

태주는 고개를 갸웃했다.

접하면 접할수록 신기하다.

여태까지 놈이 발현한 기술,

'마법은 확실한데,'

마기를 쓰니까 흑마법?

'뭐, 강호 무림이란 다중 우주가 존재한다면, 판타지 다중 우주도 존재하지 말란 법이 없지.'

그렇다면 저놈은 영혼 연결자, 혹은 그 일당일 것이다.

그럼 좀비도 소환하고, 데쓰 나이트도 막 나오고 그러나?

'재밌겠네.'

그런데 영혼 연결자치고는 많이 약하다.

천마보다 더.

지구의 천마와 비교해서도.

'한번 놀아보자.'

금방 죽을지도 모르니까 살살.

태주는 독정을 회전시켰다.

위이이잉!

독정에서 흘러나오는 강렬한 독기.

우지끈!

그러자 자신을 속박하고 있던 마기의 줄기가 힘없이 끊어져 나갔다.

그와 동시에 후두두두둑!

무한공간에서 쏟아져 나와,

스웅, 스웅, 스웅···,

태주의 주위에서 둥실 떠오르는 각종 암기들.

"조금 따끔할 거야."

"···어어, 이, 이럴 수가?"

에드워드의 표정이 당혹스럽게 변해갔다.

허공에 떠 있는 무기도 그렇지만 놈이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었다.

'데모닉 바인더가 저리 쉽게?'

마스터라도 절대 끊을 수 없는데···,

순간!

츠핏! 츠피피피피피피피핏!

"헉!"

공기를 찢으며 날아드는 투사체.

무서운 기세로 마기의 보호막을 향해 돌진해왔다.

"제기랄! ···다, 다크 배리어!"

암기가 보호막을 사정없이 두드렸다.

타다다다다탁!

드럴 때마다 생겨나는 보호막의 균열.

찌직! 찌지직! 찌지직!

"다크 배리어! 다크 배리어 다크 배리어···,"

서둘려 겹겹으로 배리어를 발현했지만,

"이, 이런!"

산산조각은 순식간이었다.

째쟁! 째재쟁! 째재재재쨍!

"다, 다크 배리···,"

투사체는 폭풍처럼 날아왔다.

모든 걸 부숴버리는 칼날의 폭풍.

그리고 그 틈을 비집고 한 자루의 유엽비도가,

스핏!

장로 에드워드의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크억! "

마나 거부증 치료제 개발 과정에서 조합한,

모기 독보다 훨씬 진보한,

마나 제거 합성 독이 진득하게 발린 암기였다.

※ ※ ※

선계.

천인들도 돌아가고 신선들만 남은 멀티플렉스.

최상층 당군악의 거처에서 비밀 회동이 열렸다.

믿을 수 있는 신선들만 따로 모았다.

태상노군은 보냈다.

같은 편으로 보기엔 아직 미심쩍은 신선이니까.

"종리, 천도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소?"

천선 종리 선인은 도원 관리를 못 했다는 이유로 거처 연금형을 받고 얼마 전에 풀려났다.

그래서 서왕모에 대한 감정이 그리 좋지 않았다.

"그야 도화궁 안뜰에 있지."

"들어가는 방법은?"

"못 들어가오. 전에 원숭이 새끼가 훔쳐먹은 이후로 방비가 만만치 않아서."

"흐음."

선계의 최고 보물인 천도.

당연히 가까이 가기도 힘들겠지.

"결국 서왕모가 문을 열어줘야 하는데···,"

"뻔뻔하게 나가볼까?"

"어떻게?"

"뭐, 그냥 한 번만 달라고."

"···."

그게 되겠나.

그러자 주선이 묘책을 내놨다.

"미인계, 아니 미선계 어떻소?"

"미선계?"

"서왕모를 꼬셔서 일단 도화궁 안에만 들어가는 거요."

들어가면 방법이 있다.

안뜰에서 따오면 되니까.

"좋은 생각이군. 어쨌거나 서왕모도 여자이니."

"보통 외모로는 어림도 없소. 잘생기고 품격이 넘치는 신선이어야 하오."

그러자 발끈하는 검선.

"지금 나보고 서왕모를 유혹하란 말인가?"

"···우리가 언제?"

"아니, 잘생기고 품격있는 신선이라면 나 말고는 없지 않소! 아니 되오, 난 평생 검과 인연을 맺기로 맹세한 몸이오."

같잖다는 표정의 신선들.

"···."

"···참나."

"아무리 뻔뻔해도 분수가 있는 법인데."

"대체 어디서 오는 자신감이지?"

"성형외과 가서도 견적이 안 나올 얼굴에."

"자기가 마른오징어라는 건 모르나?"

갈홍 선인도 계책을 내어놓았다.

"그 원숭이 새끼 불러오면? 여래계에 있지만 아직도 사고 치는 버릇은 그대로라던데."

"에잉, 멀티플렉스에 와서도 말썽을 피울 거요. 벼룩 잡겠다고 초가삼간 다 태울 것도 아니고,"

"맞소, 원숭이 역할은 검선이 하면 되지. 생긴 것도 원숭인데."

"···."

당군악도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고는 말을 이었다.

"우리가 원하는 건 선도가 아닌 천도요. 위험부담이 너무 커서···, 시간을 두고 고민해봅시다. 집단 지성의 힘이면 묘책이 나올 터이니."

반드시 태주에게 천도를 넘겨줘야 한다.

그래야 마음이 편할 것 같다.

<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 끝

ⓒ 꾸찌꾸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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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대한 존재? 감히 누구앞에서. >

저놈, 흑마법사라고 치자.

마법을 사용하고 마나에 마기와 섞여 있으니까.

강호 무림과 비교해 저 흑마법사의 수준을 가늠해보면?

'100대 고수 안엔 충분히 들겠어.'

무시할 수 없는 경지, 특정 세계에서 가장 강한 사람 100명 안에 들어간다는 말이다.

게다가 무공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마법.

"블링크!"

팟팟!

갑자기 사라졌다가, 뒤에서 나타났다가.

'이형환위? 진짜 신기하네.'

한방을 허용했지만 놈은 쓰러지지 않았다.

독기가 퍼지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한 것 같다.

"커즈 커럽션,"

희한한 마법 기술도.

몸속으로 스며드는 불길한 느낌, 썩은 내와 비린내가 잔뜩 풍겼다.

처음 날린 공격 마법은 보이기나 했지···,

'부패 독인가?'

아니면 그 비슷한 거.

그러나 걱정할 것 없다.

위이이이잉!

독정이 진동했다.

말끔하게 사라지는 기운.

"커즈 디지즈!"

움찔,

갑자기 쇠약해지는 태주의 몸.

하지만 자동으로 치유.

확실히 까다롭기는 하다.

마스터라 하더라도 이 주문 몇 방 맞고 나면 그 자리에서 주저앉을 정도.

그럼에도 태주에겐 아무것도 아니다.

애초에 먹혀들지가 않았다.

'독정이나 선기 때문이겠지.'

어쩌면 마법사란 족속들에게 태주는 가장 무서운 천적일 지도.

'아직 마나는 안 말랐나?'

빨리 마르게 해보자.

츠핏!

신령비도가 날았다.

저렇게 위치를 수시로 바꾸는 놈에겐 신령비도가 제격.

한번 목표물을 설정하면 끝까지 쫓아가니까.

츠파파팟!

"헉! 블링크, 블링크, 블링크···,"

팟팟팟!

마치 유령처럼 사라졌다가 나타나는 흑마법사.

'보는 재미가 있구나.'

마법을 쓸 때마다 소리 내어 외치는 것도 웃기다.

아마 반드시 입으로 말을 해야 마법이 발현되는 듯.

신령비도는 집요했다.

한번 설정한 목표물을 절대 놓치려 하지 않았다.

쫓아오면 도망가고, 도망가면 쫓아가고, 또 쫓아오면···, 어디로 도망가든 그때그때 방향을 바꾸면서.

결국, 서걱!

"끄아아아악!"

흑마법사의 귀를 잘라내고 다시 태주의 손으로 돌아왔다.

"어때? 따끔하지?"

"이, 이놈!!!"

아직 멀었나?

슬슬 독이 돌 때가 됐는데···,

순간, 흠칫!

놈의 표정이 변했다.

"···독?"

"어, 맞아. 나에 대한 소문은 들었을 텐데."

"이깟 독 따위, 포이즌 디톡스!"

스르릇!

흑마법사의 손에서 흘러나온 마기가 그의 온몸을 감쌌다.

하지만,

"어?"

당황한 표정의 흑마법사.

해독이 안 되는 모양.

"포, 포이즌 디톡스, 포이즌 디톡스! 포이즌 디톡···,"

"안 되지?"

될 리가 있나.

일반 독이 아니다.

독정에서 뽑아낸 독.

'곧 마나가 사라지겠군,'

장로 에드워드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모든 시도가 허무하게 막혔다.

부패도, 질병도 통하지 않았다.

독을 쓴 것도 아니다.

이건 저주다.

마계 악령들의 원념이 담긴 저주.

무조건 걸려야 정상이다.

하지만 아예 저주가 통하지 않는 놈처럼 느껴졌다.

이러다간 놈에게 잡힌다.

지금도 독 때문에 흑마력이 뭉텅뭉텅 사라지고 있었다.

'이 방법만은 쓰고 싶지 않았는데···,'

결정해야 한다.

고민하다간 타이밍을 놓친다.

에드워드는 입술을 잘끈 깨물었다.

그리고,

"데모닉 세크리파이스."

마계의 계약자에게 자신의 수명의 반을 바쳐 마력을 늘리는 주문.

"끄억!"

심장이 터질 듯 아팠다.

하지만 그 고통은 곧 강대한 마력으로 되돌아왔다.

"활활 태워주마!"

"탈 것도 없는데?"

입으로 알 수 없는 언어를 읊조리는 에드워드.

뭐 하는지 지켜나 보자.

잠시 후.

"헬파이어."

주문을 외치는 것과 동시에 공기가 뜨뜻해졌다.

그러더니,

지지지지지지지!

불길한 오망성이 옥상 바닥에 깔렸다.

'응?'

화르르르르륵!

옥상에서 검정색 불길이 솟아올랐다.

사방에서, 도저히 피할 데도 없이.

에드워드는 조소했다.

"으하하하하! 절대 꺼지지 않는 지옥의 불길이다. 어디 몸이 활활 타고도 계속 지껄일 수 있는지 보자꾸나!"

헬파이어 주문이 완성되면 사방에서 불길이 일어나 살아있는 모든 걸 태워버린다.

"방심의 대가다."

김태주, 놈은 주문이 끝나기 전에 달려들었어야 했다.

물론 그렇게 해도 완성되었을 테지만,

독?

독의 천적이 바로 불 아닌가?

이글이글,

뜨거운 열기에 콘크리트 바닥이 녹았다.

자신이 서 있는 곳을 제외하면 전체가 불바다였다.

'···힘들었어.'

하마터면 자신이 당할 뻔했다.

어쨌거나 죽이긴 했으니.

그때였다.

저벅저벅.

"헉!"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걸어 나오는 한 사람.

"너···?"

김태주?

살아나와?

어떻게?

심지어 멀쩡하다.

불에 그을린 흔적도 없다.

"그래, 인정할게. 내가 방심했다. 덕분에 아까운 부적도 하나 써버렸고."

"부, 부적?"

"이제 볼 건 다 봤으니···."

스슷!

환영미리보(幻影迷理步)에 이은,

"끝내자."

혈인독장(血印毒掌).

퍼버벅!

"끅!"

파바박!

"다, 다크 배리어."

지이잉!

보호막이 솟아올랐지만.

퍼벅! 퍼버버버버벅!

태주의 핏빛 손바닥이 보호막을 포함한 흑마법사의 전신을 두드렸다.

째앵!

갈라지기 시작하는 보호막.

"끄아아악! 그, 그만! 그마안···,"

태주는 아랑곳하지 않고 쉴새 없이 두드렸다.

퍼버버버버벅!

정성스러운 독기의 마사지.

골고루 독이 퍼지게 하기 위해서.

효과 끝내주는 자백제를 주입했다.

정신의 방어 기제를 무너지게 만드는 환각독의 일종.

차이나타운 하수도에서 천마의 노예였던 진마(眞魔) 핸들러에게 사용한 것보다 훨씬 뛰어나다.

무려 다른 세상, 그것도 선계 옆에 위치한 요마계, 인면지주의 환각 독이 섞여 있었으니까.

그래서인지 효과는 금세 나타났다.

울컥!

입에서 피를 뿜어대면서도, 점차 몽롱해지는 눈빛.

뜨거운 불길도 잦아들었다.

무기력하게 쓰러져 누운 에드워드.

절대 버틸 수 없을 것이다.

생명의 기운이 꺼져가는 순간까지 모든 걸 말해줄 것이다.

"말해봐. 너 누구야?"

"···에드워드, 브, 블랙 마피아의 장로, 7클래스의 흑마법사."

"아, 그래, 흑마법사 에드워드, 그럼 블랙 마피아는 뭔데?"

"블랙 마피아는···,"

바로 그때!

우우우우웅!

에드워드의 몸이 풍선처럼 부풀기 시작했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이놈은 영혼 연결의 당사자가 아니었다.

결국 하수인.

배후는 따로 있었다.

비밀을 말하지 못하게 미리 금제를 걸어 입을 다물게 하는 방식.

세상엔 천마 같은 놈들이 한둘이 아니다.

"죽게 내버려 둘 것 같아?"

이미 경험했다.

"한번 당하지 두 번은 안 당해."

태주는 부풀어 오르는 에드워드의 맥문을 움켜잡았다.

스스스스스!

독기를 밀어 넣었다.

이대로 죽이면 안 된다.

블랙 마피아에 대한 정보를 확보해야 한다.

당시 진마 핸들러도 자백하는 도중에 금제를 당해 죽었다.

회(會)가 고비초원 지대에 있다는 것만 알아냈을 뿐, 별다른 소득도 없었고,.

그때 천마를 잡을 수 있었던 이유.

다 독선 당군악 덕분이었다.

황천계 무간지옥에 들어가 천마를 만났기 때문에.

또 서로를 경멸한 나머지, 꼭 죽여달라며 주절주절 다 떠벌렸던 그 한심한 천마 덕분에.

이놈은 안 된다.

여기서 죽으면 배후를 알아낼 방법이 없다.

스스스스,

태주는 계속 독기를 주입했다.

마나 제거 합성독.

독기가 마기를 잡아먹었다.

피시시식, 풍선처럼 부푼 몸에서 바람이 빠지기 시작했다.

'안정화됐나?'

다시 자백제와 마나 제거독을 꾸준히 주입하면서.

"블랙 마피아가 뭐?"

"20년 전에 만든 조직, 유럽의 밤을 지배, 하청 조직들 다수."

술술 흘러나왔다.

"···장로 회의, 장로의 숫자는 5명."

"장로가 블랙 마피아의 수장인가?"

"우린 실무자, 모든 건 그분이 결정."

"그분? 누군데?"

"그분은···,"

그때였다.

"크헉!"

갑자기 신음을 터뜨리는 에드워드.

그러더니.

태주의 손을 덥석 잡아 왔다.

우우우···.

다시 일어나는 마력의 유동,

[아아!]

동시에 에드워드의 눈빛이 달라졌다.

흰자위 하나 없는 까만 눈동자.

마치 딴사람이 된 것처럼,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태주와 눈을 마주쳤다.

[제법이구나. 연금술이 다가 아니었군.]

뭐지?

이놈은 에드워드가 아니다.

놈이 말한 '그분'이란 새끼가 틀림없다.

흑마법사 에드워드는 대화를 위한 일종의 매개체.

"네가 블랙 마피아의 보스?"

[보스는 무슨, 직접 움직이기 귀찮아서 만든 조직이야.]

태주는 곧바로 찔러봤다.

"그럼 영혼 연결자겠네."

[···그걸 알고 있어? 흐흐흐, 이러니 에드워드가 당했지. 넌 어디의 누구와 연결했느냐?]

"네가 먼저 말해봐. 너와 연결된 영혼을."

[흐흐흐, 건방지구나. 기껏해야 인간의 영혼 주제에, 영혼에도 격이 있다. 너 따위가 내 영혼을 알려고 해? 내가 너 같은 놈들을 한두 명 경험한 줄 아느냐?]

한두 명이 아니다?

영혼 연결자가 더 있다는 의미.

[···그리고 넌 이미 걸려들었다.]

"뭐?"

순간!

에드워드의 맥문을 통해 태주에게로 흘러들어오는 진득한 마기.

콸콸 밀고 들어와 혈맥을 타고 머리로 이동하고 있었다.

[머리를 조아려라. 내 옆에 설 기회를 주겠다.]

'이 새끼 지금 뭐 하자는 거지?'

[거부하지 마라. 복종해라. 그리고 순종해라. 권세와 영광이 너와 함께할 것이다.]

'세뇌 마법의 일종 같군.'

마기가 머리를 침범하려 드는 걸 보니.

[한낱 인간의 영혼으론 위대한 존재를 거역하지 못한다. 기쁘게 받아들여라, 넌 내 옆에 설 자격이 있느니라.]

"싫은데?"

[···뭐?]

"어디서 개수작을 부려? 건방지게!"

위대한 존재는 개뿔.

감히 신선 앞에서.

[아, 아무렇지도 않다고?]

이놈도 별거 아니다.

태주가 가진 소량의 선기에도 잡아먹히는 마기를 가진 주제에.

※ ※ ※

건물 중간층에서도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츠리리리릿!

정연희의 대라신검에서 올올이 이어져 나오는 검기.

채채채챙!

마인의 강기와 검이 층돌했다.

"으윽!"

정연희는 연신 뒤로 물러났다.

내부가 진탕되는 느낌.

마인 모영강의 손톱이 그녀의 목젖을 노리고 날아왔지만,

태앵,

간신히 검으로 걷어냈다.

'히, 힘이 부족해.'

마나량이 상대가 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건 복마검법의 신묘한 초식과 마인의 강기에도 부러지지 않은 대라신검 덕분.

보통 마인이 아니다.

놈은 자신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원수, 반드시 죽인다.

"멍청한 년아! 넌 김태주에게 매달려야 했다. 제발 가지 말라고."

"개소리 지껄이지 마!"

쐐액!

빠른 속도로 다가가는 정연희,

파팟!

손톱이 날아들었다.

살짝 고개를 숙여 흘려보낸 후.

일선참마(一線斬魔),

최단 거리, 직선으로 도달하는 검.

그러나,

챙!

또 막혔다.

이번엔 보호막이었다.

마스터에 이른 마인만이 구사할 수 있다는 마기의 보호막.

검기(劍氣)가 아닌 검강(劍罡)이라면 뚫을 수 있었을 테지만···,

"킬킬킬, 마나 블레이드도 익히지 못한 주제에 감히 나에게 덤벼?"

"닥쳐!!!"

마인 모영강은 조소했다.

물론 스킬이 평범하지 않은 건 인정한다.

저년의 검에 베일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의 차이는 극명했다.

'가소로운 년.'

슬슬 정리하자.

모영강은 힘으로 윽박지르기로 했다.

그냥 팔을 들어 올려.

"이것도 막아보아라!"

쐐액!

위에서 아래도 내리꽂았다.

채앵!

정연희가 힘겹게 검을 들어서 막았지만.

쐐액!

채앵!

"···아!"

쐐액!

채앵!

정연희의 눈에서 실핏줄이 터졌다.

쐐액!

채앵!

무릎이 저절로 굽혀졌다.

"으윽!"

쐐액!

채앵!

검을 쥔 손아귀에도 힘이 빠졌다.

"이젠 재미도 없구나."

"씨, 씨발···,"

모영강은 마지막 일격을 준비했다.

이년을 죽이고 옥상으로 가서 에드워드 장로와 합류해야지.

김태주를 죽이는 데 도움을 주면 그 신기한 흑마법을 가르쳐 줄지도.

"죽어!"

바로 그 순간!

멈칫!

뒤통수에서 무섭게 찔러오는 섬찟한 살기.

"크르르르르르···,"

마인 모영강의 몸이 꼼짝없이 굳어버렸다

끔찍한 마수의 피어.

'뭐지?'

웬 마수가?

이곳엔 자신과 저년, 그리고 고양이···,

"헉!"

모영강은 깜짝 놀랐다.

그 작고 허약해 보이던 고양이는 없었다.

대신 윤기 나는 흰색 털에,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낸 거대한 백호 한 마리가 어슬렁어슬렁 주위를 돌고 있었다.

'···엘리트?'

아니다.

엘리트 수준을 훨씬 넘었다.

백호의 눈은 자신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보기만 해도 소름 끼치는 놈의 눈빛.

"크르르르."

폐부를 찔러오는 저음의 포효.

꿀꺽,

모영강은 마른침을 삼켰다.

저 애송이 년은 더 이상 자신의 관심 대상이 아니다.

우웅!

모든 강기를 손톱에 밀어 넣어.

찌이이잉!

저 초엘리트 마수의 공격에 대비했다.

백호도 자세를 낮추어 달려들 준비를 마쳤다.

순간!

"일백아! 멈춰!"

마인과 백호의 사이에 끼어든 정연희

"···크릉?"

"미안하지만 나에게 한 번만 더 기회를 줘."

"크으응,"

"이번에도 못난 꼴 보이면 네게 양보할게. 그러니 제발."

삼두백호는 잠시 고민했다.

허약한 암컷이었다.

그러나 주인의 친구인지라 죽게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살려줘야지.

저 더러운 냄새의 인간 놈도 만만치 않지만, 본체로 변신하면 한 발로 짓눌러버릴 수 있었다.

그런데 기회를 달라고?

어떡할까?

가만히 보니 암컷의 눈에서 맹렬한 투쟁심이 흘러나온다.

뭐, 기회를 한 번 더 줘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삼두백호의 2단계 변신 버전, 일백이 백호는 천천히 걸어가서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 모습에 정연희는 크게 심호흡했다.

기회를 얻었다.

너무 성급했다.

또한 복수심에 눈이 멀어 밀어붙이기만 했다.

하지만 이젠 달라질 것이다.

반면 모영강은 갈등하고 있었다.

이년 혼자라면 모르겠지만 뒤에는 엘리트 마수보다 훨씬 강한 놈이 버티고 있었다.

'도망가야 하나?'

아직 완공되지 못한 건물.

양옆은 벽으로 막혔고, 앞뒤는 뚫려있었다.

'어디로?'

뒤에는 백호, 앞에는 여자.

결정은 쉬웠다.

스팟!

모영강은 손톱을 곧추세우고 애송이 년에게 달려들었다.

정연희는 부드럽게 검 손잡이를 잡았다.

'온다.'

복마검법은 절대 힘으로 짓누르는 검이 아니다.

스마트폰 영상에서 보여주신 그분의 검술 시연.

도가의 검은 부드러워야 한다고 했다.

그분께서 알려주신 구결을 곱씹은 후, 그녀는 마인의 강기 손톱을 마중 나갔다.

쐐액!

강기의 손톱을 검신 옆면으로 쳐서 방향을 바꾸고

투웅!

그대로 검을 돌려서 하단으로,

"음?"

달려오는 방향으로 살며시 검을 갖다 대니.

"이, 이런!"

먼저 찌르지 않는다.

먼저 베지 않는다.

힘 대 힘으로 부딪치지 않는다.

그저 놈의 돌진해오는 경로에 검을 던져 넣을 뿐.

쐐액!

힘으로 밀어붙이면 거스르지 않고 물러나며,

스슷!

한 발짝만 움직여 방향을 전환하고.

다시 툭! 걷어내고.

검기가 그물처럼 피어오른다.

마나의 순환이 커다란 강물처럼 흐른다.

'이렇게 하는 거였구나.'

초식의 이해도도 높아졌다.

거칠었던 숨이 잔잔하게 쉬어졌다.

물 흐르듯이 흐르는 초식 간의 연계.

그리고!

띠링!

[축하드립니다. 당신은 등급이 상승했습니다.]

[이제 마스터 등급으로 특성이 추가되었습니다.]

[추가된 특성은 마나 블레이드입니다.]

[스킬 : 엑소시즘 소드 숙련도가 정점에 올랐습니다.(100%)]

동시에!

지이이잉!

대라신검에 넘실거리는 두터운 강기.

마인 모영강은 두 눈을 부릅떴다.

"이, 이런 제기랄!"

정연희는 싸늘한 미소로 답했다.

"2차전 시작해볼까?"

< 위대한 존재? 감히 누구앞에서. > 끝

ⓒ 꾸찌꾸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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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쉽지 않음. >

흑마법사 에드워드.

이미 죽은 거나 다름없었다.

어딘가에 있을 영혼 연결자, 즉 흑막의 의사와 마기를 전달하는 매개체 역할로 전락했다.

그래서인지 불쌍하게도 점점 몸이 붕괴하여갔다.

나쁜 놈이다.

오히려 천마보다 더했다.

뭐?

위대한 존재?

치졸하고 비열한 새끼.

제 목적을 위해선 부하들도 서슴없이 희생시키는 주제에, 위대한 존재 운운해?

애초에 이런 새끼가 직접 모습을 드러낼 리 있나?

[···내가 성급했군. 실수를 인정하겠다.]

"이럴 게 아니라 얼굴 한번 보자. 어디냐? 내가 직접 찾아간다."

[기다려라. 곧 만나게 될 것이다.]

"기다릴 필요 없이 바로 만나자니까? 나 한가한 사람 아니야."

[조급하지 마라. 나도 널 맞이할 준비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나?]

준비라, 뭘 하려고?

"뭐, 어차피 블랙 마피아 들쑤시면 네가 나오겠지."

[마음대로 해보려무나.]

순간!

에드워드의 육신이 먼지가 되어 사라지기 시작했다.

프스스스스스···,

'후우, 꼬리 자르긴가?'

옷만 남기고 시체는 사라지고 말았다.

'사진이나 찍어둘걸.'

그랬다면 얼굴을 근거로 조사할 수 있었을 텐데.

혹시 몰라 옷 주머니를 뒤져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이거 찾기 어렵겠군.'

쉽지 않다.

천마 때와는 또 다르다.

그놈의 영혼이 무간지옥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블랙 마피아라는 단서는 잡았으니 그쪽으로 파고들면 뭐라도 나올 것이다.

'조만간 또 유럽 갈 일도 생겼네.'

지금 당장은 곤란하고, 나중에.

더 중요한 일이 있다.

마나 거부증 치료제를 만들어야지.

자리를 비울 수가 없다.

당군악에게서 배송되는 천계 꽃을 약재 저장고에 채워 넣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유럽 가게 되면 두 번째인가?'

전에 천마 처치하느라 프리 바르셀에 잠깐 다녀왔었다.

그때는 급하게 다녀오느라 제대로 구경도 못 했다.

'유럽에도 백화점이 많겠지?'

마수로 인해 교류가 예전보다 어려워진 세상.

그곳에 가면 더 다양한 물건들이 있을 터, 명품으로 유명한 유럽 제국 아닌가.

삼한 제국에선 보기 힘든 신상들이 가득가득 널려있을 것이다.

태주에게 있어 쇼핑은 중대한 문제, 보다 더 다양하고 좋은 물건들을 선계로 보내야 한다.

'아메리카 공화국도 가 봐야겠고···,'

물론 쇼핑하러.

그런 태주에게 흑마법사 에드워드가 재로 사라지면서 남긴 물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오! 아이템도 드랍했구나.'

두툼한 반지 하나.

딱 봐도 마법 아이템이다.

마나 결정체가 보석처럼 박혀있다.

'엘리트네?'

엘리트 아이템, 과연 어떤 용도일까?

'일단 챙겨 놓고.'

참! 밑에 층은 어떻게 됐지?

아직 싸우고 있나?

일이삼백이가 있어서 걱정은 안 하고 있지만.

'빨리 가봐야겠어.'

※ ※ ※

마스터가 된 정연희.

그리하여 강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이젠 마나도, 스킬도 놈에게 모자라지 않았다.

심지어 무기마저도.

강기에도 부러지지 않았던 대라신검이었다.

검에서 뿜어져 나온 빛이 방안을 뒤덮었다.

대성에 이른 복마검법.

모영강은 낭패한 표정으로 그저 피하기에 급급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안전한 곳은 없었다.

'하필 이때···,'

마스터로 각성하다니.

그래도 이길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

고작 갓 레벨업한 마스터 아닌가?

그러나 저 빌어먹을 스킬.

반격하려고 했지만 도통 기회가 생기지 않았다.

움직임마저 봉쇄됐다.

검의 움직임이 그물처럼 자신을 옭아매고 있었다.

급기야.

"이런!"

서걱!

나무젓가락처럼 잘려 나가는 마인 모영강의 손톱,

"허어억!"

그러고도 검은 멈추지 않았다.

서걱!

팔꿈치가 베였다.

투둑, 바닥에 떨어지는 오른팔.

"자, 잠깐!"

모영강은 정신없이 뒤로 물러가며 말했다.

"사업일 뿐이었다고! 네 아버지에게 어떤 원한도 없었단 말이다."

죽기 싫었다.

어떻게 이어온 목숨인데.

마인으로 각성해 200년을 살았다.

블랙 마피아와의 세력 다툼 때도 비굴하게 고개를 조아려 생명을 건졌다.

"의뢰가 있었어, 의뢰가!"

"누가 의뢰했는데?"

"씨발! 딮웹으로 청부를 받아서···,"

"없다고?"

"어음···,"

들을 필요도 없다.

서걱!

정연희의 검이 원을 그리며 휘둘려졌다.

툭! 데구르르르르,

모영광의 머리통이 바닥을 굴렀다.

"냐앙."

만족스럽다는 듯, 울음을 내뱉는 일백이.

"고마워, 일백아."

스슷!

태주도 현장에 나타났다.

'죽였네.'

솔직히 힘들 줄 알았다.

아직 마스터에도 오르지 못한···, 어?

"와!"

"아! 회장님, 오셨어요?"

"언제 마스터가 되셨대?"

"덕분에···."

"축하드립니다. 언제 한번 복마검법 끝까지 펼치는 거 보여주세요."

검선에게 보여줘야지.

"지금 보여드릴게요."

"영상을 찍어도 될까요?"

"네. 찍어도 됩니다."

태주는 당군악과 소통 목적으로 가지고 있는 공기계 스마트폰을 꺼내 정연희의 복마검법 시연을 촬영했다.

지구의 검후.

그녀를 보는 검선의 소감은 어떨까?

아무튼 마무리됐으니까, 시체 처리팀을 부르자.

태주는 제정원 문경식 차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 ※ ※

선계(仙界).

도화궁 서왕모의 하루 일과는 한결같다.

아침에 일어나 간단하게 세안을 하고 화장대 위에 앉는다.

"오늘은 어떤 컨셉으로?"

"꾸안꾸로 가자꾸나. 짙은 화장은 부담스럽구나."

"네."

그럼 선자들이 달려들어 메이크업을 시작한다.

기초화장, 색조화장, 그리고 한 명은 뒤에서 고데기로 머리를 말고.

이제 옷을 골라야지.

도화궁 안에 서왕모 전용 드레스룸이 있었다.

"···입을 게 없네."

늘 하는 고민.

드레스, 원피스, 바지, 셔츠 등등 다 합쳐서 100벌이 넘어가지만 고작 이걸 가지고?

즐겨보는 드라마에 나오는 지구 상류층의 여자들, 이보다 몇 배나 더 많은 옷을 가지고 있었다.

그에 비해 자신의 드레스룸은 얼마나 초라한가?

'오늘은 제대로 쇼핑해봐야겠어.'

신상이 들어왔으려나?

아마 독선의 무한공간에 엄청나게 많은 신상이 들어있을 것이다.

하지만 좀처럼 풀지 않았다.

하루에 한 벌씩, 감질나게 보여줄 뿐.

화가 나지만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독선이었다.

유들유들, 능청스러운 태도로 자신의 지갑을 열게 만드는 능력은 아마 천하제일일 터.

"가자."

서왕모는 꽃가마에 올라탔다.

도원을 지나자마자 검선이 만든 도로가 보였다.

'참으로 천방지축, 기상천외한 신선이야.'

오토바이 하나 타고 싶다고 천계 전체에 도로를 깔다니, 지금도 도로가 계속 깔리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반쯤 미친 신선 같았다.

그때!

위이이이잉!

"비키세요!!!"

"으아아아아!"

"너무 빠르게 달리지 마! 사고 나잖아."

"이건 본능이야. 어쩔 수 없어."

천인들이었다.

보기만 해도 흐뭇하다.

천계에 가야만 볼 수 있었던 어린 천인들인데.

이젠 선계를 제집 드나들 듯하면서 놀고 있으니.

"얘들아, 천천히, 왕모님 지나가시잖아."

해맑 선녀도 함께였다.

어쩜 저리 고울까?

이렇게 한번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선계의 변화.

상제도 절대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이미 대세는 독선에게 있으니까.

저기 멀리 멀티플렉스가 보인다.

마음이 급해졌다.

"어서 가자꾸나."

그런데?

"음?"

멀티플렉스로 가는 도로.

도로 양쪽 넓은 공터에 하나같이 금줄이 쳐져 있었다.

그리고 곳곳에 쌓여있는 수많은 나무와 편평한 돌도 보이고.

'또 뭘 만들려고 하는지···,'

거의 다 왔다.

멀티플렉스 앞에 꽃가마를 주차하고 안으로 들어가니 주선이 환하게 웃으며 반겼다.

"어서 오시오. 서왕모, 오늘도 아름답구려."

갑자기?

"오늘 특별히 술 한잔 대접하려고 하는데 허락해주시겠소?"

"···해보세요."

주선은 쉐이커에 갖가지 음료를 따르고 능숙한 솜씨로 흔들었다.

달그락, 달그락!

그러고 나서 작고 예쁜 잔에 따르더니.

"지구의 여자들이 좋아하는 칵테일 중에서도 손꼽히는 피치 크러쉬라는 술이라오."

"···피치 크러쉬?"

"복숭아 향이 가득할 거요. 도수도 낮고,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왜 갑자기 잘해주지?

술이 덜 깼나?

주선 태백 선인.

그의 입에선 아직도 술 냄새가 팍팍 풍기고 있었다.

선계의 유명한 주정뱅이, 알콜 중독자.

"드셔보시오. 서비스라오."

공짜니까 마셔준다.

"선도 과즙으로 만든 것이라 괜찮을 거요."

"달콤하네요. 향기도 좋고."

"허허허, 그럴 줄 알았지."

그러더니 아련한 눈빛으로.

"내 꿈이 뭔 줄 아시오?"

"뭔데요?"

"천도로 피치 크러쉬를 만들어보는 것이오. 그래서 말인데 혹시 남는 천도···,"

"없어요. 꿈도 꾸지 마세요."

어디서 개수작을.

선도는 몰라도 천도는 안 된다.

설사 이 멀티플렉스를 통째로 준다고 해도 말이다.

서왕모는 서둘러 일어났다.

그리고 2층으로 올라가기 위해 계단 방향으로 걸어갔다.

순간 언제 나타났지, 계단 바로 옆 벽면에 등을 기대고 선 검선.

"오랜만이구려, 서왕모,"

검선은 왜 또···,

"내가 요즘 도로를 건설하고 있다는 걸 아는지 모르겠군."

"알고 있어요."

"오! 그렇군. 그럼 도화궁 안뜰까지 도로를 놓아드리려고 하는데···, 어떻소이까?"

"도로를 놓으면 뭘 하나요? 타고 다닐 것도 없는데."

"걱정하지 마시오. 내 바이크를 드리리다."

"···날 더러 바이크를 타라고요?"

"생각보다 운전이 쉽소, 금방 배울 것이니···,"

대체 뭐 하자는 수작이지?

주선도 그렇고 검선도 그렇고.

"어쨌든 도로를 건설하려면 실측을 해야 하오. 내 날 잡아서 도로 건설 계획을 위해 도화궁 안뜰에 들어가···,"

"없어도 됩니다. 오토바이 타기도 싫고."

"아, 아니 그렇게 급하게 결정 내리지 말고,"

"좀 비키시죠?"

"···아, 알겠소."

검선만이 아니었다.

2층에 올라서자마자 귀곡 선인과 갈홍 선인이 보인다.

마치 들으라는 듯이,

"여보게, 귀곡! 끝내주는 결계진을 개발했다며?"

"그렇지. 건곤무량혼원태을천라만상진이라는 술법진이네."

"오오, 이, 이름부터가 범상치 않군. 용도는?"

"귀중한 보물을 지키기 위한 결계진이야. 한번 설치하면 상제라도 들어오지 못할 어엄청난 진법이지."

"허허허, 보물이라면, ···천도 같은?"

"그걸 위해 개발한 진법이네. 도화궁 안뜰에 설치하면 딱인데 말이야."

"그럼 도화궁 안뜰로 들어가서 실험 삼아 설치해보면 되겠군."

"이를 말인가? 당장 해보고 싶어."

뭐래?

서왕모는 그들의 대화를 무시하고 그냥 휙 지나쳤다.

그리하여 모든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검선과 귀곡, 갈홍은 시무룩한 얼굴로 바에 앉았다.

주선이 마티니 한 잔씩 주면서 말했다.

"쉽지 않음."

"쉽지 않군."

"쉽지 않아."

"하아, 나이도 많은 게 콧대는 하늘 높은 줄 몰라."

검선은 마티니를 단숨에 들이켜면서 말을 이었다.

"그냥 도화궁 쳐들어가서 천도를 따올까?"

"종리 선인 말 못 들었소? 온갖 결계가 겹겹이 둘러쳐져 있다 하지 않았소,"

"흥! 그까짓 결계쯤이야."

"그러나 잡히면? 이번엔 뇌옥 수감만으로 안 끝날 터인데."

"···그럼 안 되지."

세상 무서운 것 없는 검선이지만 어디 갇히는 건 두렵다.

영화도 못 보고, 바이크도 못 타고.

"하루 이틀 가지고 될 문제가 아니오. 우리 모두 노력해봅시다."

※ ※ ※

당군악 또한 천도에 대한 열망이 대단했다.

태주에게 천도를 배송해주면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보통 인간이라도, 먹는 즉시 신선이 된다는 천도.

비록 지구엔 선계가 없어 등선하지는 못하겠지만, 독령(毒靈) 정도는 단번에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격을 초월하는 존재가 되는 것.

그럼 걱정할 것이 뭐가 있겠나?

함께 오래오래, 천수를 누리며, 서로 교류도 하고 소통도 하고.

비단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선계도 관련되어 있다.

앞으로 이룩할 새로운 선계에 태주의 도움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첫 단계는 서왕모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

그녀의 허락이 없으면 천도를 따는 건 불가능하다.

'신선들이 잘하고 있으려나?'

때마침 2층 쇼핑몰로 올라오는 서왕모.

"어서 오시오, 서왕모."

"후우, 독선의 얼굴을 보니까 한결 마음이 편하네요."

"음? 무슨 일이 있었소?"

"미친 신선들 때문에 여기 오기도 싫을 정도예요, 주정뱅이에, 미친 바이크광에, 주절주절 수다쟁이들까지."

"···."

죄다 실패한 모양.

하지만 첫 시도였을 뿐이다.

시간이 지나면 점점 나아지겠지.

"신상 들어온 것이 있나요?"

"아! 마침 새로운 물건이 있는데 보시겠소?"

"당연히 봐야죠."

당군악은 무한공간에 고이 모셔둔 끄라띠에 다이아몬드 장신구 세트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목걸이, 반지, 귀걸이, 이 중 하나만 해도 가격이 엄청나다.

"아!"

보자마자 눈이 돌아간 서왕모.

"다이아몬드, 금강석이라고도 부르지요. 선물입니다."

실로 예사롭지 않은 아름다움.

"···선물? 왜 제게 이런 귀한걸."

"그야, 우리 쇼핑몰 VVIP에 걸맞은 예우일 뿐이오."

"호호호호, 하긴, 제가 많이 사긴 했죠?"

그녀는 조심스럽게 목걸이를 꺼냈다.

찬란하게 빛나는 다이아몬드의 광채.

물론 금강석은 자신도 몇 개 가지고 있다.

그러나 차원이 다르다.

'아아아아···,'

이렇게 정교하게 연마한 것은 처음 본다.

너무 빛이 나서 눈이 멀어버릴 듯했다.

지구의 보석 장인이 만든 장신구였다.

섬세한 다이아몬드 커팅 기술로.

"진짜 이걸 공짜로 주신다고?"

"말했잖소. 귀빈은 대접을 받아야지."

"혹시 원하시는 건 없나요, 독선?"

"전혀! 그저 왕모께서 마음껏 누리시길 바랄 뿐."

"호호호! 독선도 참, 역시 다른 신선들하고는 다른 분이세요."

"과찬이요."

화기애애한 분위기.

그런 두 사람을 몰래 지켜보는 4명의 신선이 있었다.

주선과 검선, 귀곡 선인과 갈홍 선인.

"가불기 들어갔군."

"다이아몬드라면 어쩔 수 없지."

"독선이 여심을 제대로 파악했어."

"역시 그쪽으로 파고 들어가는 게 맞았네."

"쯧! 바로 다이아몬드와 천도를 바꾸자고 했었어야지."

귀곡이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며 말했다.

"큰 둑은 한 번에 무너뜨리는 게 아니오. 여기저기 작은 구멍을 뚫어서 저 스스로 무너지게 만들어야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천도 건은 독선에게 맡기고 우린···,"

"선계월드 건설에나 주력합시다."

"좋지."

"그런데 노동력이 부족하지 않소? 선인들 숫자로는 모자랄 것 같은데."

"천계 신장들 도움을 받으면?"

"상제가 잘도 보내주겠소이다."

"흐음."

노동력 확보가 시급하다.

멀티플렉스 건설과는 규모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었다.

< 쉽지 않음. > 끝

ⓒ 꾸찌꾸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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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도 간다. >

삼한 제국 태홍 바이오에서 발명해 낸 마나 거부증 치료제, MRC.

전 세계가 함께 기뻐했다.

인류의 위대한 진보, 칭송과 찬양이 쏟아졌다.

모두가 삼한 제국에 주목했다.

물밀듯이 밀려오는 치료제 주문.

태홍 바이오 영업팀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

일개 회사의 업무 범위를 훨씬 벗어났다.

각국의 국왕과 대통령, 총리들이 직접 치료제를 주문하고 나섰는데 어떻게 감당해?

그래서 제국 정부에서 치료제 주문업무를 대행하고 있었다.

국가 간 경쟁이 치열했다.

제발 더 많은 치료제, 더 빨리, 더 우선적으로.

물건을 파는 사람이 절대 갑의 위치, 사는 사람이 을이었다.

국격 상승은 이런 것이다.

이게 다 태홍 바이오 김태주 회장이 삼한 제국민이라서 가능했다.

그런데 파주에서 마인 테러가 발생했다고?

이제 막 공장이 완공되어 MRC 대량생산 체제를 갖춘 그곳에서?

제국이 발칵 뒤집혔다.

황명에 따라 전투 부대가 출동했다.

'파주를 비롯한 구례, 뉴서울 MRC 공장을 지켜라.'

지리산 방어부대가 구례로 급파됐다.

뉴서울 공장도 마찬가지, 엄정한 방어태세.

병력이 부족하면 개척부대에서 인원을 빼 왔다.

그리고 사건이 일어났던 파주에도 제정원 요원들이 헬기를 타고 날아왔다.

"이 개쌍! 마인 새끼들이!!!"

널브러진 마인들의 시체를 보자마자 욕설을 터뜨리는 제정원 문경식 차장, 태주를 보더니.

"회, 회장님! 다친 곳은 없으십니까?"

"네, 빨리 오셨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저희가 너무 안일하게 대처해서···,"

안일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는 일.

작정하고 숨어드는 마인을 어떻게 잡나?

"차장님, 부탁드릴 일이 있는데."

"뭐든 말씀해주십시오. 최우선으로 처리해드리겠습니다."

"유럽 블랙 마피아라는 조직에 관한 상세한 정보가 필요해서요."

"아! ···그럼 이놈들이?"

"맞아요. 블랙 마피아, 혹은 그 하부조직일 겁니다."

"밑바닥까지 싹싹 훑어서 가져오겠습니다."

곧 제정원에서 정보가 넘어올 테고.

태주는 일이삼백이를 품에 안고 정연희와 함께 사건 현장을 나왔다.

"호텔 옥상 개보수를 하셔야 할 겁니다."

"아! 많이 상했나요?"

"흐음, 아주 뜨거웠거든요."

에드워드가 마지막에 펼친 마법.

헬파이어, 지옥의 불.

사실 호신부가 없었다면 위험할 뻔했다.

죽지는 않았겠지만 온몸에 화상을 입었을 수도.

황제에게도 직접 전화가 걸려왔다.

매우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 괜찮나?

"걱정하지 마세요. 치료제 생산엔 차질이 없을 테니까."

- 허허, 내가 지금 치료제 가지고···, 어쨌든 블랙 마피아와 관련됐다고 들었네.

"알고 계신 것 있나요?"

- 잘은 몰라. 하지만 내가 알렉스 황제에게 직접 전화를 넣지. 발본색원하라고.

"흠, 그렇게 막 들쑤시면 숨어버릴 텐데?"

- 염려 말게, 알렉스, 그 친구도 만만한 사람이 아니니까.

"조심하라고 전하세요. 만만한 놈들이 아닙니다. 기억나시죠? 바룬 밀농장에서."

- 아! 그럼? 놈들도 각성 문양 없이?

"네. 어떤 식이냐 하면···,"

태주는 황제에게 에드워드와의 싸움에서 알아낸 정보를 자세하게 설명해줬다.

그리고 될 수 있으면 직접 부딪치지 말라는 당부도,

- 아참! 아메리카 공화국에서 아공간 가방이 도착했네. 빌리 피트먼이 2개를 준비해줬어. 수호 보내서 전달해주지.

2개씩이나?

- 원래는 자네가 아메리카 공화국으로 와줬으면 하는 눈치를 보였는데, 그냥 비행기도 보내라고 했네

"고맙습니다."

- 빌리가 언제 한번 꼭 방문해달라고 간청을 하더라고.

"왜요?"

- 뭐, 목적이 있겠지. 자네와의 친분을 과시해서 일전에 카피약 사태로 떨어진 지지율도 회복한다던가.

그 정도 립서비스야 못 해줄 것도 없다.

'거기도 가봐야겠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MRC 생산이 궤도에 오르면.

천계 꽃 물량도 충분히 받아놓고.

수시로 당군악이 천계 꽃을 공유창고와 아공간 아이템 꽉꽉 채워 배송해주고 있었다.

찌르르르,

이렇게 말이다.

'왔구나.'

공유창고 교체시간.

이번에 보낼 물건은 전동카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탈 것들, 또한 발전기도.

요즘 선계의 전기 소비량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중이라 들었다.

그래서 바쁜 와중에서 엘리트 결정체를 가공한 전기 발전기도 미리 준비해놨다.

'놀이공원 설계도도 넣고.'

일명 선계월드 계획.

기꺼이 동참한다.

천인들이 그곳에서 행복하게 즐길 수 있다면 뭔들 못하겠나?

물론 지구의 놀이기구와 똑같지는 않을 것이다.

최대한 비슷하게는 만들겠지.

신선들의 술법이 있으니까.

회전목마 같은 건 쉽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청룡 열차 등 롤러코스터나 대형 어트렉션은 힘에 부칠 듯한데.

생각 같아선 통째로 뜯어서 넘겨주고 싶다.

아무튼 무사히 물건을 보냈고.

이제 2차 출고 준비해야지.

※ ※ ※

블랙 타워, 흑마탑.

원래는 5명의 장로들이 모여 회의를 개최했는데, 지금은 3명 밖에 없다.

에드워드는 삼한 제국으로 떠났고, 카르멘은 그분을 접견하러 갔으니, 남은 장로들은 마츠모토, 욘슨, 아브라힘.

"잘 지냈습니까? 아브라힘?"

"안타깝지만 사정이 썩 좋지 못합니다. 마나 거부자들 치료 예약이 줄줄이 취소되는 바람에."

아브라힘은 소환 마법에 능한 흑마법사, 주로 마나 거부자 치료를 전담해왔다.

물론 치료를 통해 대상을 지배하는 게 주목적이지만.

"조금만 참읍시다. 에드워드 장로가 놈만 처치하면 치료제 생산이 중단될지도 모르니까."

"욘슨 장로 말이 맞습니다. 곧 소식이 오겠죠."

"마츠모토 장로님, 군대의 숫자는 좀 늘렸습니까?"

"그냥저냥, 일반 시체야 쉽게 확보할 수 있지만 적합자나 각성자 시체 공급이 확 줄어들었어요."

마츠모토는 언데드 군단을 연성하는 역할.

욘슨은 블랙 마피아 휘하의 각 도시 지부를 관리하고 있었다.

"시체 공급이 줄어든 원인이 뭔가요?"

"태홍 바이오에서 개발한 약 때문입니다. 도통 죽질 않으니까요."

"아! 태홍 회복제라는 신약 말이죠?"

"네, 그 때문에 마수 레이드 사망률이 대폭 줄어들었어요."

"후우, 이번에도 그놈의 김태주군."

"애초에 싹을 잘라버렸어야 했는데."

순간!

벌컥 회의실 문이 열리고 다급한 표정의 카르멘이 들어왔다.

그녀는 그분과의 소통, 그리고 블랙 타워를 운영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카르멘 장로, 오셨습니까?"

"어서 오세요."

"···표정이 밝지 못하군요. 설마 그분께서 질책을?"

카르멘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지금부터 그분의 지시 사항을 대신 전해 드릴게요."

그러자 자세를 고쳐 앉은 장로들.

"현재 하는 모든 임무와 작업을 중단하고 잠적하세요. 절대 외부와 소통하지 말고."

"···무슨?"

"아, 아니 왜?"

"정말입니까?"

다들 믿을 수 없다는 표정들이었다.

"마츠모토 장로님."

"···말씀하세요."

"언데드 군단이 파리에 있죠?"

"그렇습니다. 지하 묘지 카타콤에 숨겨뒀습니다."

"추가 언데드 연성은 중단하시고, 좀비나 스켈레톤같은 건 파괴하세요. 최소 구울급 이상으로만 남겨요, 곧 이동할 준비를 해야하니."

"아, 알겠습니다."

카르멘의 지시는 계속 이어졌다.

"욘슨 장로님은 블랙 마피아 지부 인원 중에서 흑마법사들을 전부 불러 모으세요."

"네. 그렇게 하죠."

아브라힘이 물었다.

"전 뭘 하면 됩니까?"

"저와 같이 블랙 타워를 정리할 겁니다. 모든 문서를 소각하고, 건물도 팔아버릴 거예요."

"···마탑을?"

"마탑은 언제든 다시 만들 수 있어요. 지금은 다른 일을 해야 합니다. 자금을 확보해야 해요."

"대, 대체 왜?"

도무지 이유를 모르겠다는 표정들.

하던 사업을 중단하라는 것까진 상관없는데, 마탑 마저 판다고?

"에드워드는? 삼한 제국에 가 있지 않습니까?"

"그는 죽었습니다. 신경쓰지 마세요."

"헉?"

"무슨···?"

장로들은 귀를 의심했다.

에드워드가 죽어?

"설마?"

"맞아요. 김태주에게 당했어요."

"어어···."

충격이었다.

7클래스 전투형 흑마법사로서 저주 주문과 공격 주문에 누구보다도 능한 에드워드가?

"아무튼 우린 의식을 진행해야 합니다."

"···의, 의식요?"

"그래요. 전쟁을 일으킬 거예요."

"아아."

위대한 흑마법의 의식을 진행하기 위해 필요한 것.

인간의 피, 그리고 영혼, 그것도 대량으로.

만족할 만큼 확보하려면 당연히 전쟁밖에 없지.

"삼한 제국입니까?"

"아뇨, 거긴 너무 규모가 커요. 우리가 움직일 수 있는 소규모의 국가에서, 예를 들어···,

카르멘이 벽에 걸린 세계지도에서 한 장소를 가리켰다.

"이곳."

"아!"

모스크바 왕국.

거기라면 가능하다.

뿌려둔 씨앗이 있기에 얼마든지 인위적인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

"그렇다면 내전이겠군요."

"맞아요. 공화파와 왕당파 간의 갈등이 존재하고, 국가 영토의 범위와 인구수도 적당해서 우리가 쉽게 통제할 수 있는 곳이죠."

갑자기 전쟁과 의식이 결정됐다.

그런데 대체 이렇게 급하게 진행하는 이유가 뭐지?

불현듯, 장로들의 머릿속에 떠오른 하나의 가정.

'설마···,'

'그럴 리가.'

'말도 안 되는 얘기지.'

불경한 생각이다.

위대한 존재나 다름없는 그분께서 한낱 제약회사 회장 따위를 경계하고 계실 리가.

※ ※ ※

황천계(黃泉界), 업화궁(業火宮).

염라를 비롯한 여러 판관, 차사, 그리고 사자들이 모여 명부 회의를 하는 중.

자욱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황천계 관리들은 대부분 골초였다.

하긴, 맨날 보는 새끼들이 악령들인데···, 정신적 피로감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 담배라도 피워 해소해야지.

"오늘 사자들이 데려온 망자는···, 총 85,678명이네요."

"생각보다 작군."

"이 중 천계로 오를 천인은 3명, 지옥에 떨어질 악령은 788명, 나머진 여래계로 이동해서 환생할 예정입니다."

망자 대부분이 다시 환생한다.

영혼도 에너지라 소멸하지 않기 때문이다.

"쯧쯧, 천계가 저리 넓은데, 늘어나는 천인들 숫자는 찔끔찔끔 이니."

그러하기에 천인들은 존귀하다.

아무나 천인이 되나?

황천계 관리들도 누구보다 천인들을 사랑한다.

염라도 그렇다.

허구한 날, 추악한 악령 새끼들만 상대하다가 천인들을 보면 저절로 웃음이 나오기에.

"차사들은 빨리 명부 작성해서 판관부에 넘기고, 판관들은 재판 준비하라."

"네!"

명부 회의를 주재 중인 염라는 뻐끔뻐끔 곰방대 연초를 피우며 뭔가에 골똘히 열중하고 있었다.

자꾸만 생각난다.

천계 자미궁에서 열렸던 상위계 대표자 회의.

태상노군이 입었던 옷, 신발, 그가 가지고 다니던 가방, 피우던 연초, 그리고 기이한 소리를 내는 부싯돌.

'미치겠군.'

기품이 절절 흘러넘쳤다.

행동 하나하나가 멋졌다.

다른 세상에서 넘어온 기이한 문물.

자신도 경험해보고 싶다.

'지금이라도 선계에 가볼까?'

무슨 핑계로?

대표자 회의에서 태상노군과 서왕모를 조리돌림 하듯 몰아세웠는데.

게다가 물건을 살 돈도 없고.

'천인들도 많다고 했지?'

천인들은 선계 꽃을 화폐 삼아 다른 세상의 문물들을 마음껏 누리고 있단다.

물론 선인들은 선도 복숭아로.

그러나 황천계는 아무것도 없다.

다른 세상의 물건을 살 수 있는 화폐가.

바로 그때!

사각, 사각, 사각,

'응?'

이게 무슨 소리지?

염라는 소리가 나는 쪽을 쳐다봤다.

강림차사였다.

'저건 또 뭐야?'

명부 작성과 판결문 작성에 여념이 없는 차사들과 판관들, 모두 붓에 먹을 묻혀 부드럽게 써 내려가고 있었다.

하지만 강림차사는?

붓털이 아닌, 뾰족한 금속 촉이 끝에 달린 검정색 짤막한 막대기로 글을 쓰고 있네?

심지어 놈이 손을 놀릴 때마다 언뜻언뜻 드러나는 은색의 팔찌, 태상노군이 손목에 차고 있었던 손목시계 같은데.

'이 새끼가···,'

틀림없다.

염라는 인상을 있는 대로 찌푸리며 소리쳤다.

"야! 강림!"

"···네?"

"너 이 새퀴, 당장 튀어나와."

"왜, 왜요?"

"어쭈? 반항이냐?"

"아, 아닙니다."

군기가 바짝 든 자세로 황급하게 달려 나와 염라 앞에 선 강림.

"너 그거 뭐야?"

"이거요? ···만년필이라고 하는 건데."

"가지고 와. 손목에 찬 거도 벗어!"

"어, 시계는 비, 비싼 겁니다."

"뒈질래? 무간지옥 뺑뺑이 근무시켜줘?"

"여기···,"

강림은 한숨을 푹 쉬며 염라에게 만년필과 손목시계를 넘겼다.

"너 선계 다녀왔지?"

"비번일 때만 잠깐."

"이거 무슨 돈 주고 샀어?"

"그, 그게···, 독선이 선물로 줫습니다."

독선과의 거래로 받은 거지만, 내용은 절대 발설할 수 없다.

"그동안 너만 꿀 빨았다고? 이기적인 놈, 야! 이 새끼 움직이지 못하게 잡아!"

"어어?"

판관들이 나서서 강림의 양팔을 잡았다.

"몸수색 시작해."

"네!"

그러자 튀어나오는 각종 물건들.

사탕에, 초콜릿에, 담배갑에, 일회용 라이터까지.

"오호라!"

이럴 줄 알았다.

황천계 관리들도 호기심 어린 표정.

"대왕, 이게 뭡니까?"

"먹는 건가요?"

"말로만 듣던 다른 세상의 물건?"

염라는 강림이 지니고 있었던 담배갑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리고 일회용 라이터를 강림에게 넘기고.

"불이나 붙여봐."

"네네, 아, 알겠습니다."

칙!

화륵!

치지직!

깊게 한모금 빨아들이는 염라.

"흐읍, 푸우우우우···,"

그래, 이 맛이지.

텁텁한 곰방대 연초보다 훨씬 부드러웠다.

그러자 옆에서 킁킁 냄새를 맡으며 호기심을 보이는 판관과 차사들.

"저거 연초야?"

"그런 것 같은데."

"허허, 처음 보는군."

"냄새가 좋아."

"대왕님, 저도 한 대만···,"

"이거 먹어도 됩니까?"

염라는 강림이 괘씸했다.

이걸 저놈 혼자만 즐겨왔단 말이지?

"강림아."

"네."

"네 죄를 네가 알렸다?"

"···모르겠는데요?"

"알게 해줘?"

"아, 아닙니다."

염라는 결심했다.

이렇게 된 이상 상제와 용왕 눈치 볼 필요가 없다.

나도 간다.

"참회할 기회를 주마. 너 독선하고 친하지?"

"안면은 있습니다."

"그럼 독선과 협상해봐."

"협상요?"

"그래, 선도나 천계 꽃처럼 황천계에선 필요한 거 없냐고, 우리라고 손가락만 쪽쪽 빨고 있을 수는 없잖아."

"아!"

무슨 말인지 알겠다.

염라대왕께서도 선계 멀티플렉스에 가고 싶은 것이다.

지갑 두둑이 채워서.

그런데 어떤 걸 제안해야 하지?

황천계에 쓸만한 것이 있나?

< 우리도 간다. > 끝

ⓒ 꾸찌꾸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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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되팔이는 심판해야 한다.(1) >

시간이 흘러 어느덧 MRC 2차 출고.

1차 때보다 물량이 두 배로 늘었다.

태주는 출고 마지막 과정을 검수하려고 구례 공장으로 왔다.

여기가 군대인지 공장인지 모를 정도로 바글바글한 군인들,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삼엄한 경계 태세.

모든 태홍 바이오 공장과 지점에 완전무장한 제국군이 투입되어 철통 방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MRC 공장에 마인들이 나타났는데, 가만히 있으면 직무유기지.

당연히 구례에도 지리산 방어부대가 총출동했다.

부대 지휘관들이 태주를 보자마자.

"김회장님께 대하여 경례!"

"멸마! 멸마! 멸마···!"

태주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장난치지 마시죠. 오중장님."

"아니, 이게 장난일 것 같나? 얼굴 보기도 힘든 삼한 제국 실세님께서 떡하니 행차해주셨는데, 부대 총 사열을 해도 모자랄 판이지."

"···."

싱글벙글 웃고 있는 지리산 방어군단 사령관 오진형 중장.

왜 이렇게 업돼 있어?

좋은 일이라도 생겼나?

설마?

"진급 결정 났나요? 별이 4개?"

"흐흐, 역시 눈치가 빨라."

"근데 왜 아직 여기 계세요?"

"자리가 나야 말이지, 병사든, 부사관이든, 장교든···, 군인은 보직이걸랑."

"아하."

태주도 흐뭇했다.

구례에 처음 왔을 때 오진형의 도움을 얼마나 많이 받았나?

그가 잘 되면 당연히 기분 좋지.

"그건 그렇고, 자네 결혼은 언제 해?"

···결혼이라니,

이 양반이 말을 함부로 하네.

"먼저 여친이 있는지 물어보는 게 순서 아닙니까?"

"엥? 있잖아."

"뭐가요?"

"여친."

대체 무슨 소리?

"제가 여친이 어디 있다고,"

"다 들통났다니까?"

"무슨 말도 안 되는···."

태주는 오진형이 스마트폰으로 직접 보여준 뉴스 기사를 보고 나서야 무슨 일인지 알았다.

'어?'

다스패취에서 보도한 기사였다.

유명인들 염문설 보도로 이름난 그 언론사.

<백두 그룹 재벌 3세 정연희씨와 파주 시내를 거니는 남자는 누구?>

- ···사진 속 남자가 누구인지 추측하는 건 어렵지 않다. 따라서 단순히 생각하면 부하직원과 회장과의 관계라고 볼 수 있지만 그러기엔 둘 사이가 매우 친밀해 보인다. 중요한 건 진도가 어디까지 나갔는지, 결혼을 전제로 만나고 있는지···, -

이거 언제 찍힌 거지?

"기사가 이것뿐인가? 여기도 봐. 지금 난리가 났어."

<태홍 바이오 김태주 회장, 벌써 품절남?>

<백두 그룹 측, 긍정도 부정도 아닌 모호한 태도, 다만 지나친 억측은 자제해 달라고 당부.>

<주식 시장이 불타오른다. 백두 그룹 계열사 주가, 속속 상한가 행진.>

'후우,'

이거 골치 아프네.

왜 갑자기 이런 기사가.

"언제 결혼할 건가? 청첩장은 보낼 거지? 식장은 어디서? 구례나 파주는 제외하게. 될 수 있으면 뉴서울에서 해야지. 황궁 연회장을 빌려서···,"

그때였다.

"야! 남녀가 같이 붙어다니면 무조건 사귀는 줄 아나? 사업 때문에 이야기 나눈 것뿐이겠지. 설마 김회장이 결혼이라는 지옥으로 제 발로 들어가겠어!"

금수호 비서관이었다.

"하여간 군인 놈들은 나이가 젊으나 늙으나 다 똑같아요. 여자 저항력이 없어! 이 새끼들은 여자와 눈만 마주쳐도 자식 유치원부터 알아볼 놈들이야."

그러자 오진형 중장이 뚱한 표정으로.

"신빙성 있으니까 그렇죠. 금비서관님은 총각이시라 잘 모르시는 것 같은데···,"

"닥쳐! 군바리 새끼야! 저리 가서 공장 방비나 제대로 해! 진급 취소되기 싫으면."

"왜 나만 보면···, 자기도 군인 출신이면서."

오진형이 구시렁대면서 자리를 피하자 금수호가 주섬주섬 2개의 작은 가방을 꺼내 태주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받게. 아메리카 공화국에서 보낸 선물이야."

"오! 드디어!"

아공간 가방이 추가됐다.

이제 총 4개.

"얼마랍니까?"

"글쎄, 가격 이야기 안 하는 걸 보니···, 공짜? 그냥 가지게."

"그럴 수야 없죠."

세상에 공짜가 어딨나?

더구나 가방 하나에 한두 푼도 아니고.

"가격 알려달라고 하세요. 값은 반드시 치른다고."

"알았네. 그건 그렇고, 유럽 제국에서 연락이 왔어. 블랙 마피아 건 말이야."

"수사는 잘 되고 있답니까?"

"사실 블랙 마피아는 유럽에서도 주시하고 있었던 갱 조직이었다더군."

"그래요?"

이름에 마피아가 들어가니 당연히 갱 조직으로 알고 있었겠지.

"그래서 이번 마인 테러와 관련이 있다는 걸 알자마자 유럽 제국 경찰과 정보 요원이 각 대도시 블랙 마피아 지부들을 급습했다고 알려왔어."

"···잡았나요?"

"아니! 이미 한발 늦었다네. 개미 새끼 한 마리 없었고, 남아있는 물건들도···,"

알만하다.

흑마법사 에드워드를 매개로 흑막과 나눈 대화.

놈은 숨기로 결정했나 보다.

그럼 찾기 난감하다.

놈이 직접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이상.

"그나마 마인의 정체는 확인해줬네. 중국계 유럽 제국민 모영강, 난민 출신으로 주로 살인 청부를 주업으로 삼아왔던 놈이야."

사실 마인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중요한 건 그놈을 도구로 삼아왔던 블랙 마피아의 장로들.

5명이라고 했으니까 4명 남았다.

거기에 놈들의 우두머리인 영혼 연결자.

"유럽 제국에도 비상이 걸렸어. 어쨌거나 마인 조직 실체가 확인되었거든. 전력을 다해 수사할 테니 기다려보자고."

"그래야죠."

"그럼 난 이만, 계속 고생하시게. 결혼할 생각은 접고."

"···."

금수호와 헤어진 후, 태주는 개인 연구실로 갔다.

그놈들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고민해보자.

천마의 경우엔 행운이었다.

당군악이 다 해준 거지.

그러나 이번 경우는 다르다.

연결된 영혼이 누구인지도 모른다.

'잡긴 잡아야 하는데···,'

세계 평화의 임무를 맡은 건 아니지만, 그놈들은 존재만으로 위협 요소.

그놈이 가만히 있을까?

언젠가는 분명 공격이 들어올 것이다.

그리고 태주에겐 지켜야 할 사람이 아주 많아졌다.

'기다리라고 했었어. 날 맞이할 준비를 한다고.'

그게 무슨 준비인지는 모르겠지만.

태주는 주머니에서 흑마법사 에드워드가 떨어뜨렸던 반지를 꺼냈다.

현재 남아있는 단서는 이것뿐.

여기에 무슨 실마리가 있을지 조사했지만 그 어떤 마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엘리트 마나 결정체가 박혀있다는 사실 말고는.

'용도가 뭐지?'

직접 껴보면 된다.

태주는 반지를 오른손 약지에 끼웠다.

효과가 생길까 기다렸지만···,

'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전문가에게 넘겨서 세밀하게 조사해볼까?

순간!

똑똑.

노크 소리가 들리고,

"회장님, 저 백서연입니다."

"들어오세요."

심각한 표정의 그녀.

"무슨 일이죠?"

"저어, 다름이 아니라···,"

목소리도 가라앉아 있었다.

몹시 화가 난 것 같은데.

"회사 차원에서 회장님과 관련된 SNS 게시물을 관리하는 건 아시고 계시죠?"

"아! 전에 보고 받은 기억이 납니다."

"방금 우리 홍보실에서 한 게시물을 찾아냈습니다.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어서 보고드리려고요."

혹시?

다스패취 기사와 관련된 것인가?

어떡하지?

사귀는 사이 아니라고 말해야 하나?

"뭔가 오해가 있으신 모양인데, 사실은 비즈니스적인 차원에서···,"

"이걸 보십시오."

"어?"

깜짝 놀랐네.

염문설 기사와 관련된 게시물은 아니었다.

동남아시아 계열인듯한 한 소녀가 올린 짧은 SNS 영상.

흐느끼는 목소리로 무언가를 호소하고 있었다.

"삼한 제국민은 아닙니다. 이 소녀의 이름은 에일라, 국적은 버마 공화국입니다. 현재 하는 말을 번역해보면···,"

"아뇨, 번역은 괜찮습니다.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네요."

"네? 어떻게···,"

태주는 흑마법사 에드워드가 남긴 반지의 용도가 무엇인지 알았다.

'통역 반지였어. ···뭐, 득템인가?'

처음엔 낯선 언어였다.

그리고 그 뜻을 뭔지 궁금해하려는 찰나, 반지에서 흐르는 기운, 순간 영상 속 소녀의 말이 귀에 쏙쏙 들어왔다.

심지어 말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선계에도 비슷한 술법이 있다.

학선(學仙) 갈홍 선인의 천리신통(千里神通) 술법진.

광범위한 언어 공유 기능.

물론 이 반지와는 방식 자체가 다르다.

술법진이 텔레파시 형식으로 언어를 공유한다면 이 반지는 AI 번역기 같은 거, 그래서 영상에서 흘러나오는 말도 해석이 가능했다.

"이거 사실입니까?"

"따로 조사해봤습니다. 불행하게도 전부 사실입니다."

300년 전엔 미얀마라는 이름으로 불리었지만 지금은 버마 공화국.

동남아시아에선 타이 왕국 다음으로 큰 나라, 사실 이름만 공화국이지, 군부에 의해 통치되는 독재 국가였다.

군부 독재자의 이름은 민타누, 버마 최강의 마스터이자 정부군 최고 사령관.

태홍 바이오는 버마에도 마나 거부증 치료제 MRC를 공급하고 있었다.

이 소녀의 오빠가 초중증 마나 거부자였는데, 치료제를 투여받지 못해 결국 사망했단다.

그녀는 슬픔에 못 견뎌 SNS 숏 영상으로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었고.

"버마에 공급된 MRC 개수는요?"

"약 1만 병입니다. 그러나 단 하나도 유통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유통되지 않았다면? 다른 나라로 빼돌려 되팔았다는 말인가요?"

"네, 최소 5배 이상 부풀려서, 아니 그보다 더 비싸게 받았을 수도 있습니다."

되팔이구나.

그것도 사람의 목숨을 담보로 한 아주 파렴치한 되팔이.

이게 살인하고 뭐가 다를까?

"독재자 민타누가 예전부터 주장해왔던 발언들이 있습니다."

"뭐죠?"

"마나 거부자들은 공동체를 좀먹는 벌레들이라고, 사회 발전을 위해선 도태시키는 것이 최선이라며, 국가의 복지혜택에서도 그들을 제외해 왔습니다."

"미친 새끼군요."

"전형적인 각성 계급주의자입니다. 자국 마나 거부자들에게 약을 공급하는 것보다, 다른 곳에 팔아서 국가 예산을 확보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판단한 듯합니다."

"후우,"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눈앞에 민타누인가 뭔가 하는 놈이 있었다면 그대로 머리를 잡고 한 바퀴 돌려버렸을 것이다.

태주도 마나 거부자였던 적이 있어서 잘 안다.

지금은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지만, 사실 마나 거부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별로 좋지 못했다.

- 마나 거부자는 사회의 짐 덩어리다.

- 하등의 쓸모가 없는 존재들이다.

- 세금이 아깝다.

- 어차피 죽을 거 왜 그들에게 투자해야 하나?

심지어 삼한 제국 내에서도 차별이 존재했다.

태주도 경험하지 않았나?

군 소위였지만 이등병들도 자신을 무시했었다.

그냥 둬선 안 된다.

버마 공화국의 수십만 마나 거부자들을 위해서라도.

"삼한 제국 정부는 알고 있나요?"

"곧 알게 되겠죠."

"어떻게 대응할까요?"

"버마 정부에 항의하는 게 전부 아닐까요?"

"걔들이 오리발 내밀면?"

"그럼 방법이···, 수출 금지하는 것 말고는."

씨발 새끼들.

수출 금지는 안 된다.

버마 국민들이 더 고통받는다.

"항의가 안 통하면 버마 초중증 환자들에게 몰래 치료제 공급하는 방법도 알아보라고 전해주세요."

"네."

이걸로는 부족하다.

"또 다른 국가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는지 전수조사해주시고."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버마 공화국 권력자들 명단과 사진이 필요한데···, 제정원이나 정부 통하지 않고 입수할 방법 있습니까?"

정부 쪽은 한계가 있다.

군대를 파병할 것도 아니고.

백서연은 잠시 곰곰이 생각하다 물음에 답했다.

"독재자에 대항하는 반군 세력이 있습니다. 그들이라면···,"

"그래요? 그럼 아예 그 반군 세력을 만나보는 게 더 빠르겠네요."

"접촉해보겠습니다. 비밀리에."

꾸벅,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가는 백서연.

그녀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마치 자신이 뭘 하려는지 아는 것처럼.

태주도 굳이 설명하지 않았다.

독재자 민타누.

놈은 악인이다.

게다가 멍청하기까지 하다.

마나 거부자들을 살려서 인구를 늘리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고 현명한 판단 아닌가.

하긴, 악인 중에 영리한 자들이 몇이나 될까?

그저 보통 사람들과 비교해 사고방식 자체가 다른 놈들일 뿐, 저런 짓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것만 봐도 충분히 안다.

국가를 운영할 재목이 안 되는 새끼.

갱생시킬 가치가 있나?

※ ※ ※

선계(仙界).

귀곡과 갈홍은 태주가 보내온 놀이공원 설계도를 보며 열띤 토론을 나누고 있었다.

"여기부터 비교적 타기 쉬운 어트렉션을 배치하면 되겠군."

"회전목마 정도가 좋겠소이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우주선도."

"중간중간에 도로를 건설해서 이동에 불편함이 없어야 하오."

"이쯤엔 양말도 젖고, 속옷도 젖는 아마존조로존존존을 만듭시다."

"물은 어디서 끌어오게?"

"신선이면서 호풍환우도 모르시오? 구름 하나 소환해서 비를 내리면 되지."

"아, 맞다. 나 신선이었지? 가끔 헷갈려서 그러오."

주선이 슬며시 끼어들면서,

"우리가 탈 만한 거 없나?"

"신선이? 재미나 있겠소? 공포에서 오는 짜릿한 느낌을 받아야 하는데."

"그렇고말고. 보통 사람이라면 모를까···, 가만!"

뭔가 떠올랐다는 듯 눈빛을 반짝 빛내는 귀곡,

"부적이나 보패로 일정 시간 동안 선기를 봉인하면 되겠군."

"선기 봉인?"

"그러고 나서 어트렉션을 탑승하면 오줌을 질질 쌀 거요."

"오오오, ···죽진 않겠지?"

"그깟 선기 봉인한다고 신선이 죽어? 뭐, 이참에 한 번 죽어봤으면 좋겠소."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공사 기간.

최대한으로 단축시켜야 한다.

한시라도 빨리 천인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보고 싶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동원할 수 있는 숫자는 얼마나?"

"신선들 숫자가 50명이 채 안 되오. 거기에 제법 힘을 쓸 수 있는 무림계 선인들은 극소수이니."

"쯧쯧, 노동력이 문제야."

"독선은? 해결 방법이 있답니까?"

"그 양반은 바빠. 열외시킵시다. 한창 서왕모 꼬시느라 정신이 없는데···."

그때였다.

멀티 플렉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시커먼 형상의 한 남자.

"저, 저어기···."

주선이 친근하게 말을 건네며 아는 체를 했다.

"오! 강림 아니시오? 어쩐 일이요? 요즘 뜸하더니,"

행색을 보니 매우 초라해졌다.

"갑자기 일이 생겨서···,"

"일단 앉으시오. 목이나 축이고 이야기해봅시다."

엉거주춤 자리에 앉은 강림.

"쯧쯧, 몰골이 말이 아니오. 게다가 시계는 어디에 두고?"

"압수당해서,"

"응? 압수? 누구에게?"

"그, 그게, 어찌 된 일이냐고 하면···,"

강림차사가 울먹이는 음성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신선들의 눈이 점점 초롱초롱해졌다.

뭐? 염라가?

노동력 문제 금방 해결되겠는데?

< 되팔이는 심판해야 한다.(1) > 끝

ⓒ 꾸찌꾸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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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되팔이는 심판해야 한다.(2) >

버마 공화국의 군부 독재는 역사가 꽤나 깊다.

거슬러 올라가자면 300년 전 미얀마였을 때부터.

마나의 침범 이후, 동남아시아도 혼란에 빠졌다.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행정과 치안 시스템이 무너져 곳곳에서 폭동이 발생했고.

마나로 죽어간 사람들도 많았지만, 인간끼리 행해지는 폭력에 의해 희생된 이들도 수두룩했다.

그런데 미얀마는 비교적 다른 국가들보다 빠르게 안정화됐다.

군부 독재 때문이었다.

폭력은 더 큰 폭력으로 진압한다.

이후 국가 이름을 버마 공화국으로 바꾸고, 허수아비 정치인들을 내세워 선거를 실시해 의회와 행정부를 구성했지만 언제나 실권은 군부에 있었다.

각성자가 탄생했을 때도 마찬가지.

적합자든, 각성자든, 싹 다 군부가 흡수했다.

죄다 버마 군부 소속.

그런 이유에서인지 현재 버마 공화국엔 공식적인 민간 길드는 단 하나도 없었다.

반군 조직을 제외하면 말이다.

그리하여 최강의 마스터이자 군부 최고 사령관 민타누는 무려 100년 동안 버마의 실권을 잡아 왔다.

그를 거역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각성의 힘과 군대의 무력, 그 둘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데.

물론 특별한 경우는 아니다.

요즘 세상에서 같은 독재는 필요악일 수도 있다.

마수와 마인, 그리고 빌런들을 억제하고 국가 체제를 유지하려면.

삼한 제국만 해도 황제가 다 해 먹고 있지 않나?

그러나 삼한 제국은 민주주의 국가다.

입헌주의의 원칙에 따라 국가가 운영된다.

법률로써 황제의 권한을 제한할 수 있는 시스템도 갖춰져 있고.

하지만 버마 공화국의 경우엔 정도가 너무 심했다.

더구나 민타누는 철저한 각성 차별주의자.

"각하!"

"어떻게 됐나?"

"빠르게 수습했습니다. SNS에 게시물을 올린 불순분자와 그 가족까지 싹 잡아 가뒀습니다."

"잘했어. 그럼 MRC는?"

"예정대로 들어올 겁니다. 2차 출시국 명단에 우리 버마 공화국이 포함되어 있는 걸 확인했습니다."

"물량은 얼마나?"

"최소 10만 개 이상입니다."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는 민타누.

다행이다.

SNS 숏 영상이 널리 퍼지기 전에 막아서.

하마터면 황금알 낳는 오리를 잃을 뻔했다.

사실 삼한 태홍 바이오에서 기적의 치료제 MRC를 개발했다고 떠들었을 땐 별 감흥이 없었다.

마나 거부자들 치료제라니.

새로운 시대의 적응에 실패한 패배자들을 고쳐서 얻다 써먹겠다고.

게다가 1회 치료비가 무려 400달러?

버마 공화국 내에 마나 거부자들만 수십 만이다.

그들에게 치료제를 맞히면 돈이 얼마나 들까?

쓸데없는 낭비였다.

그래서 구입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폭발적인 관심.

전 세계가 열광했다.

다들 이 치료제를 조금이라도 더 많이 공급받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때 당시 민타누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 생각.

'이것 봐라? 장사 되겠는데?'

민타누는 허수아비 총리를 시켜 치료제를 신청했다.

그리하여 1차분으로 약 3천 개의 치료제가 도착했고.

이제 팔리는지 확인해보자.

우선 1천 개 분량만.

사 온 가격은 400달러, 가격을 두 배로 올려 800달러에 내놓았다.

브로커를 통해 가까운 타이 왕국과 베트남 공화국에.

불티나게 팔렸다.

무려 80만 달러나 되는 돈이 한 번에 들어왔다.

그렇다면 5배.

부유한 사우디 연방과 두바이 왕국에.

이것도 올리자마자 완전 매진.

5배뿐인가?

10배 올렸는데도 팔렸다.

독재자 민타누는 이 돈 복사, 기적의 신약을 만들어준 태홍 바이오 김태주 회장이 너무나 고마웠다.

마침내 MRC 2차 출시 일정이 발표됐다.

당연히 최대치로 주문을 넣어야지.

그 와중에 SNS에서 폭로 영상이 게시됐다.

치료제를 투여받지 못해 가족이 죽었다면서 엄살을 피워댔다.

어차피 죽을 운명이었으면서, 주제도 모르고 감히?

"그런데 삼한 제국 대사관에서 항의가 들어왔습니다."

"···항의? 뭐라고?"

"초중증 환자들에게 확실하게 치료제 투여했는지, 증거를 제출해 달라고."

"하아, 그 망할 년 때문에···,"

"걱정 마십시오. 불순분자들 선동으로 돌리면 됩니다. 증거는 의료기록 적당하게 꾸며서 보여주겠습니다."

"좋아.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처리해. 자꾸 딴지를 걸면 내정 간섭이라고 경고하고."

그깟 마나 거부자들이 죽든 말든 알게 뭔가?

이 돈은 더 가치 있게 쓰여야 한다.

자신을 비롯한 버마 각성자들에게 말이다.

뭐, 가끔 적합자들에게도 베풀어주고, 어쨌든 그들도 예비 각성자들이니까.

"SNS 올린 년은 어떻게 할까요?"

"재판은 받게 해줘. 자비는 베풀어줘야지."

"죄명은 뭘로···?"

"국가 내란죄. 그리고 사형시켜."

"네! 알겠습니다."

반군들이나 불순분자들이나, 국익에 도움이 안 되는 것들이다.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

자신은 버마 공화국의 번영을 위해 이렇게나 노력하고 있는데···,

이번 사건의 배후에도 반군 놈들이 있는 게 분명하다.

"반군 토벌 작전은 어떻게 되고 있나? 이 기회에 싹 쓸어버려야 다신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지."

"놈들의 근거지를 파악했습니다. 곧 작전에 들어갈 예정이고요."

"이번엔 한 놈도 살려두지 마. 반군이든, 반군에 협조하는 불순분자들도."

"아예 뿌리까지 뽑아버리겠습니다."

그제야 민타누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곧 끝나겠군.'

한시름 놨다.

자나 깨나 나라 걱정.

이 마음을 누가 알아줄까?

※ ※ ※

열대 우림으로 유명한 레냐 숲은 버마의 대표적인 마수 밀집지대.

인간이 살아가기에 매우 위험한 환경이지만 장점도 있다.

바로 버마 정부군의 공격을 피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레냐 숲 초입엔 하나의 작은 마을이 존재한다.

바로 버마 국민해방전선의 근거지.

해방전선 지도자이자 마스터 각성자 마웅샨은 동지들의 마음을 다독이고 있었다.

현재 정부군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레냐 숲 가까운 곳에 각성자 정예 병력이 집결하고 있는 중.

"빠르면 오늘 안에 정부군이 들이닥칠 겁니다. 빨리 숲으로 피신해야···,"

"안돼! 위험부담이 너무 커. 엘리트 마수라도 만나기라도 하는 날엔 우린 전멸이야."

"이래죽으나 저래죽으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차라리 마수와 싸우다 죽는 게 낫습니다. 정부군에 잡혀서 고문당하는 것보다···."

모두가 초조한 마음이었다.

버마 남부 지역 레냐 마수 밀집지대는 원래 군부도 손을 놓고 있는 지역.

레냐와 가까운 곳에 도시도 없다.

사람들이 거의 살지 않는 곳이라고 보면 된다.

엘리트 마수의 밀도가 매우 높아 웨이브도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위험하긴 해도 버마 국민해방전선이 숨어 지내기엔 안성맞춤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상황이 변했다.

정부군의 토벌 움직임이 포착된 것.

현재 레냐 숲 북부에서 버마 정부군이 점점 포위망을 좁혀오고 있었다.

피신할 데라고는 저 마수 밀집지대밖엔 없다.

결국 선택지는 둘.

정부군과 결전을 치르느냐, 아니면 숲 중심부로 들어가 피신하느냐.

지도자 마웅샨도 초조한 마음.

하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자신이 흔들리면 해방전선 전체가 위태로워진다.

"기다려 보자. 삼한 제국에서 사람이 온다고 했으니."

"삼한 제국에서요? 설마 군대를 파병해주겠답니까?"

"글쎄···, 아무튼 태홍 바이오 CEO와 직접 접촉했어. 도움을 주겠다면서."

"네? 태홍 바이오? 일개 제약회사잖아요. 우린 군대가 필요합니다."

"맞습니다. 아무런 도움도 안 될 겁니다. 그저 MRC 치료제가 잘 유통되고 있는지 조사하기 위해 우리를 만나려는 거겠죠."

마웅샨도 간부들과 생각이 비슷했다.

삼한 제국 차원에서 군대를 보내주던가, 아니면 각성자 민간 길드라도 보내주던가.

하지만 태홍 바이오 백서연 사장은 너무나도 태연한 음성으로 곧 문제가 해결될 거라며 자신을 안심시켰다.

"조금만 참아. 그리고 태홍 바이오 관계자가 우리와 함께 있다는 게 알려지면 정부군에서도 섣불리 쳐들어오지 못할 테니까."

"만약 안 오면 어떡합니까? 온다는 말만 던져놓고···,"

바로 그때!

"크, 큰일 났습니다. 밀림 파수대에서 긴급 연락이···,"

"무슨 일인데, 혹시 정부군이 오고 있나?"

"그, 그게 아니라 트윈헤드 블랙 재규어가 우리 마을 쪽으로 오고 있다는데요?"

잘못 들었나?

"트윈헤드라고? 갑자기? ···마, 말도 안 돼."

트윈헤드 블랙 재규어는 엘리트 마수다.

일반 재규어 마수는 원래 머리가 하나, 그러나 엘리트로 진화하면 두 개의 머리를 가진다.

레냐 숲 마수 중 가장 강하다.

그러나 숲 깊숙이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 놈.

"왜 밀림 밖으로···, 여긴 놈의 영역이 아니잖아."

"무언가에 쫓기고 있는 것같답니다. 망원경으로 확인했다고."

"미친!"

엘리트 트윈헤드 블랙 재규어가 도망쳐온다니.

놈을 쫓아 오는 마수가 대체 어떤 놈이길래.

이럴 때가 아니다.

놈이 마을로 들이닥치면 모두 다 죽는다.

"당장 사람들을 피신시켜. 각성자들은 날 따라오고,"

마웅샨은 해방전선 동료들을 이끌고 마을과 밀림의 경계로 서둘러 달려갔다.

그때!

우지끈! 우득, 뿌지지직!

밀림 가장자리에 서 있던 아름드리나무가 차례차례 부러지고 있었다.

동시에,

"크아악!"

모습을 드러낸 엘리트 트윈헤드 블랙 재규어.

거대한 몸집이었다.

탱크나 장갑차보다 훨씬 더 큰.

"헉!"

"이런!"

"···우린 다 죽었어."

절망적인 상황.

놈을 상대하기 위해선 최소 마스터 3명이 필요하다.

아니면 보호막을 뚫을 수 있는 강력한 첨단 무기라도.

그런데 멀리서 보기에도 트윈헤드 블랙 재규어는 허둥지둥 당황한 모습.

진짜 놈을 쫓는 무언가가 있다고?

곧 확인할 수 있었다.

"냐앙!"

엘리트 트윈헤드 재규어를 쫓아온 존재를.

"···어?"

"내, 내가 지금 보는 게 맞아?"

"고, 고양이?"

"어어, 흰색 고양이인데."

도도도도.

"냐아아, 냥냥!"

짧은 다리에도 불구하고 빠른 스피드로 블랙 재규어를 몰고 있는 고양이.

맞다.

고양이다.

진짜 고양이다.

"냐아앙!"

겁에 질려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가는 레냐 숲의 제왕, 엘리트 트윈헤드 블랙 재규어.

"···원래 재규어 천적이 고양이인가?"

"그, 그럴 리가요?"

"근데 왜 도망가?"

"저도 궁금합니다만."

거짓말 같은 모습이었다.

순간!

"일백아! 장난 그만 치고 빨리 처리해. 사람들 다치겠다."

"냐아아아아···"

그때였다.

쑤욱!

고양이의 몸집이 순식간에 커졌다.

호랑이만 한 크기로.

스팟!

어느 틈에 블랙 재규어의 등위에 올라탄 변신 고양이,

그러더니,

콰직!

재규어의 목덜미를 단숨에 물어버렸다.

우드드득!

"끼이잉,"

애처로운 비명을 남기고 기우뚱, 옆으로 쓰러지고 마는 거대한 엘리트 트윈헤드 블랙 재규어.

"세, 세상에."

"아아,"

"···."

"···."

다들 말이 없었다.

직접 보고 있지만 저걸 어떻게 믿어?

그리고.

"여기가 버마 국민해방전선 기지가 맞습니까?"

저벅저벅, 밀림을 헤치고 나타난 한 남자.

마웅샨은 얼떨결에 대답했다.

"어음, 네."

"혹시 마웅샨씨?"

"그, 그렇습니다만."

"반갑습니다. 태홍 바이오에서 왔습니다. 여기 마수 밀집지대 생태 조사하느라 조금 늦었네요."

태주였다.

※ ※ ※

마을 안 임시 본부.

태주는 해방전선 간부들과 함께 자리했다.

옆에 일이삼백이도 있었지만 눈치만 볼 뿐, 그 누구도 가까이 가지 않았다.

"전에 부탁드린 건 준비됐나요?"

"아! 여기 버마 군부 권력자 명단과 사진입니다."

마웅샨이 태주에게 두툼한 종이 뭉치를 건넸다.

"그럼 이놈들만 제압하면 군부를 접수할 수 있는 건가?"

"네? 제, 제압?"

"싹 잡아드리죠. 모조리."

"···."

마웅샨은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제약회사에서 나온다길래 자금 지원이나 무기 지원 정도만 생각했었다.

"갑자기 이러면 행정 공백이 생길 수도 있는데···, 그게 문제긴 하네."

심지어 말도 안 되는 고민까지.

마웅샨이 서둘러 대답했다.

"버마 공화국에도 민간 정치인들이 있습니다. 현재 군부에 의해 자택 구금상태라 바깥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어서···."

"오! 그런가요?"

겉으로 보면 버마도 정상 국가.

선거를 통해 정치인들을 뽑는다.

단 군부의 말을 잘 들으면 자리를 보전할 수 있고, 조금이라도 반항하면 억압을 당하는 거고.

"그리고 군부 내부에도 양심적인 인사도 있고요. 민타누와 그 일당의 강압적인 통치 때문에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놈들 없어도 괜찮다는 거네요."

"하지만 민타누 측근들이 죄다 마스터 등급의 각성자라는 게 걸립니다. 무려 20명 이상이라."

"흐음, 20명이면 꽤 많네. 한곳에 모여있으면 편하겠는데."

"···네?"

대체 이 사람은 누구지?

게다가 각성자도 아니다.

'···가만!'

혹시?

"저, 성함이 어떻게?"

"그건 모르는 걸로 하죠. 그게 편해요. 이게 진짜 제 얼굴도 아니거든요."

"아!"

마웅샨은 비로소 깨달았다.

그가 누군지.

"여기 직접 오신 이유가?"

"되팔이 사기꾼은 무조건 잡아야죠."

"···되팔이요?"

"민타누, 그놈 말입니다. 죄질이 몹시 나빠요. 벌써 사망자도 생겨버렸고.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할 겁니다."

말만 들으면 이미 결정 난 듯했다.

"자, 슬슬 일어나 볼까요? 아참! 먼저 이것부터 드시고."

태주는 마웅샨에게 작은 환약이 든 병을 넘겨줬다.

"이건?"

"해독제입니다. 모두 빠짐없이 복용하도록 하세요."

"해, 해독제?"

"정부군이 지척에 와 있다면서요. 일단 그놈들부터 처리합시다."

"네? 군대를요?"

태주는 지구의 절대독마.

이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절대독마라는 별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왜 일인 군단과 다름없는지.

어떻게 수십만의 마교도들을 홀로 처리하고 천마마저 죽였는지.

바로 오늘.

똑똑히 보여줄 생각이었다.

< 되팔이는 심판해야 한다.(2) > 끝

ⓒ 꾸찌꾸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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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도 당해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