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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

해가 지고, 세상이 어둠에 휩싸였을 때도 불은 주변을 밝히며 계속 타올랐다.

마장기 기사들은 이제야 안도하는 것 같았다.

마장기에서 내려 저녁 식사를 하고, 천막에서 쉬고 있었다.

'다크 엘프라, 얼마나 대단한지 볼까?'

통역을 맡은 다크 엘프가 식사를 끝내고 도시 안에 사과나무 위로 올라갔다.

그곳에서 사과를 하나 따서 디저트를 먹으며 나뭇가지에 누워있었다.

그는 인간들에게 협력하고 있지만, 인간들과 함께 생활하진 않았다.

[그림자 투영(lv.6) 스킬이 발동됐습니다.]

[선택된 마법인형 – 표범인형(lv.10) 꼭두각시]

은밀히 이동할 때는 표범인형보다 좋은 괴수가 없었다.

그리고 기습을 할 때도.

[운명의 실을 연결합니다.]

쓰윽!

"컥! 커컥!"

다크 엘프의 몸이 축 늘어졌다.

운명의 실이 검은색으로 물들었다.

[기사회생(lv.max) 스킬을 사용합니다.]

[다크 엘프(lv.1) 허수아비가 만들어졌습니다.]

서둘지 않았다.

스킬 지속 시간은 600초.

10분이면 충분하다.

기간트 앞에서 담배를 피우며 지키고 있는 두 당직 기사.

그들 뒤로 은밀히 다가갔다.

[운명의 실을 연결합니다.]

[운명의 실을 연결합니다.]

푹! 촤악!

쿵! 쿵!

[허수아비(lv.1)가 만들어졌습니다.]

[허수아비(lv.1)가 만들어졌습니다.]

모닥불에 앉아 술을 마시는 네 기사.

그 옆에 일찍 누운 기사 하나.

그냥 천천히 다가갔다.

자연스럽게.

[운명의 실을 연결합니다.]

푹!

"커헉!"

앉아 있던 기사가 목을 잡고 옆으로 쓰러졌다.

[허수아비(lv.1)가 만들어졌습니다.]

"응? 뭐야?"

얼큰하게 취한 옆에 기사가 날 올려다봤다.

[운명의 실을 연결합니다.]

촤악!

"크헉!"

[허수아비(lv.1)가 만들어졌습니다.]

앞에 앉아 있던 두 기사는 멍하니 나를 바라보다가 급히 몸을 돌려 마장기를 향해 달렸다.

난 그들의 뒤를 쫓아 달렸다.

[운명의 실을 연결합니다.]

[허수아비(lv.1)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렇게 차례로 기사들을 죽였다.

그리고 그들을 내 마법인형으로 만들었다.

돌아와 모닥불 옆에 자고 있던 기사도 죽였다.

[운명의 실을 연결합니다.]

[허수아비(lv.1)가 만들어졌습니다.]

화장실에 갔다가 돌아온 기사도 허수아비로 만들었다.

그리고 숨어 있던 기사도 찾았다.

마나를 품고 있는 기사라면 내 눈을 피할 순 없었다.

마지막으로 왕궁에서 쉬고 있던 패로운을 찾아갔다.

왕궁의 수비병들은 인간인 날 막지 않았다.

덜컹!

패로운은 날 귀신 보듯 쳐다봤다.

"내가 그렇게 쉽게 죽을 줄 알았나?"

"어, 어떻게?"

"그러게 안드레아스가 조심하라고 하지 않았나."

그가 검을 뽑고 달려들었다.

난 가볍게 피했다.

[운명의 실을 연결합니다.]

그리고 달려들어 검을 찔렀다.

푹!

"커헉!"

쿵!

[허수아비(lv.1)가 만들어졌습니다.]

지금 내 기사회생 확률은 95%.

기사 열하나를 죽였는데, 열이 내 마법인형이 됐다.

이것이 SS급 인형술사의 무서움이다.

적을 죽이면 끝이 아니다.

그들은 이제 내 기사가 된다.

'차례로 다 흡수해 주지.'

공중에 떠 있는 비공정으로 올라갔다.

내 자동인형들과 비공정을 지키는 다크 엘프들을 처리했다.

그중에 사로잡은 열아홉 명은 추가로 허수아비 마법인형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비공정을 내려 11척의 마장기와 마석 배터리를 모두 실었다.

전쟁을 원한다면, 전력을 다 해주지.

160. 독립 전쟁.

160. 독립 전쟁.

주변을 모두 정리하고 크로카일 수왕을 찾았다.

그리고 오늘 일을 수인족의 언어로 자세히 설명했다.

그들도 내가 거신들을 죽인 마장기에서 내리는 모습을 직접 봤고, 가디언 기사들이 자신들의 숙소를 부수고 불태운 것을 봤다.

내 이야기를 전부 다 들은 크로카일은 오히려 내게 감사를 표했다.

내가 움직여서 아리칸의 기사들이 거신들을 공격했고, 그 모습을 보고 수인들이 용기를 내 거신들을 공격했기 때문이었다.

수인들은 더는 거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와 테오아칸 왕국의 동맹에 흥미를 보였다.

고오오오!

그래서 지금 크로카일 수왕과 함께 테오아칸에 온 것이다.

비공정이 착륙하고, 나와 크로카일 수왕이 먼저 내렸다.

그리고 나를 마중 나온 라이진 수왕은 뜻하지 인물을 보자, 반갑게 인사했다.

"어서 오시오. 크로카일 수왕."

"오랜만이오, 라이진 수왕."

두 수왕은 따로 자리를 옮겼고, 난 급히 마르틴 국왕과 기사들을 모두 모았다.

내 표정을 본 마르틴 국왕이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 터지긴 터졌군."

"휴! 그렇습니다. 하지만 아직 대응은 가능합니다."

"그래, 무슨 일이오?"

난 먼저 거신들과 가디언 마장기가 전투를 벌인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가디언 제국의 앞으로 계획을 말해줬다.

"뭐요?"

이젠 다들 내 얼굴보다 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특히 마르틴 국왕은 자신을 노리고 글론 왕국과 탈로스 왕국이 다시 손을 잡고 공격할 거란 말에 분노를 삼키고 있었다.

"하아! 그때 탈로스 왕국을 더 몰아쳤어야 했는데······."

"그땐 이쪽도 여력이 없었잖습니까. 자책하지 마십시오."

마르틴 국왕은 리오넬 대령을 쳐다봤다.

"당장 움직일 수 있는 기간트가 몇 대나 되는가?"

"최대 500기 정도 됩니다."

"아직 300기나 수리를 못 했단 말인가."

"어차피 기사가 부족해 수리해도 상황은 똑같습니다. 문제는 이곳에 있는 우가스와 부서진 오리지널 기간트 3기입니다."

"그 점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선, 제가 가지고 있는 오리지널 기간트 3기를 바로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마르틴 국왕께서 지금 타고 있는 룩급 오리지널 기간트도 우가스를 수리할 때까지 사용하십시오."

마르틴이 살짝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고맙소."

"아닙니다. 저희 때문에 이곳까지 오셨으니 당연합니다. 그리고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마르틴 국왕과 아리칸의 기사들이 날 쳐다봤다.

정확히는 내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기대하고 있었다.

"저들이 병력을 집결한 것이 아니라, 집결 중이라 했습니다. 그 말은 우리가 먼저 움직일 시간이 있다는 겁니다."

"선제공격을 하자는 말이오?"

"그렇습니다. 탈로스 왕국은 비공정이 없지만, 글론 왕국은 비공정이 30척이나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니 분명 탈로스 왕국의 타이탄은 육로로 진군할 것이고, 거리가 먼 글론 왕국은 비공정을 타고 올 겁니다."

"그럼 언제 어디로 떨어질지 모르는 타이탄이 300기나 된다는 말인데, 우리가 선제공격할 수 있겠소?"

마르틴 국왕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아리칸의 참모 리오넬 대령이 끼어들었다.

"저도 회의적입니다. 지상과 하늘을 동시에 막아야 하는데, 선제공격이 가능하겠습니까? 기습한다고 해도 우린 병력이 부족해 비공정을 이용해야 합니다. 하지만 저들의 비공정은 30척입니다. 곧바로 따라올 거고, 그럼 이미 기습은 실패가 됩니다."

"그건 상관없소. 먼저 저들의 비공정이 확인되면 아리칸 왕국의 비공정 10척을 글론 왕국의 수도로 보내시오. 그럼 저들의 비공정은 따라올 것이오."

마르틴 국왕이 말했다.

"이번에도 저들의 수도를 직접 치자는 말이군."

리오넬 대령이 다시 끼어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과는 상황이 다릅니다. 이번엔 저들의 비공정이 30척입니다. 우리 크루세이더 기간트 100기가 무사히 내리더라도, 수도와 왕궁을 수비하고 있는 타이탄과 뒤따라 내린 300기의 타이탄을 상대해야 합니다."

아리칸의 기사들도 리오넬 대령의 말을 듣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수많은 전장을 누빈 자신들이지만, 대략 4배의 병력 차는 넘어설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이번엔 마르틴 국왕의 퀸급 기간트 우가스도 없고.

"오크 해병대 100명을 빌려드리겠습니다. 10척의 비공정에 오크들을 나눠 태우고, 곧장 저들의 수도로 향하게 하십시오. 혹시나 저들이 비공정을 공격하더라도 오크 해병대와 아리칸의 보병들이 상대하면 비공정 숫자가 적더라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렇겠지. 오크 해병이 10명만 적 비공정으로 넘어가도 놈들은 기겁할 거요."

오크 해병대의 활약을 직접 본 마르틴 국왕과 기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기간트는 비공정에 태우지 마십시오."

"뭐요?"

"네?"

"그리고 일부러 비공정 해치를 열어 비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돌아오십시오."

아리칸의 기사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마르틴이 물었다.

"그럼 글론 왕국의 수도를 타격하는 게 아니란 말이오?"

"네! 제 비공정 10척을 빌려드리겠습니다. 마르틴 국왕께서는 크루세이더 기사단을 이끌고 탈로스 왕국의 수도를 다시 한번 치십시오."

"······?"

"그리고 이번엔 왕궁을 철저히 파괴하십시오. 그리고 탈로스 왕국의 병력이 집결한 곳으로 날아가 후방에 있는 병참을 모두 파괴하십시오. 그럼 탈로스 왕국은 병력을 물리고, 향후 10년은 절대 움직이지 않을 겁니다."

"아! 2대1의 상황이 아니라, 먼저 1대1의 상황을 만들라는 말이군."

마르틴이 내 말을 알아듣고는 입을 쩍 벌렸다.

"허! 타일러 경의 용병술은 정말 놀랍소."

"그 일이 모두 끝나고 아리칸의 비공정이 귀환했을 땐 글론 왕국도 속은 것을 알았을 겁니다. 그렇다고 자신들의 병력을 육로로 진군할 순 없을 겁니다. 크게 당한 탈로스 왕국이 자국의 영토를 그냥 지나게 할 리가 없습니다. 아리칸 왕국의 비공정이 언제 다시 자신들의 수도로 날아올지 모르니까요. 그럼 글론 왕국의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30기의 비공정에 병력을 가득 태워 아리칸의 수도와 왕궁을 공격하는 것이죠."

"그럼 우린 기다렸다가 그놈들을 상대하면 된다는 말이군."

마르틴의 표정이 밝아졌다.

탈로스의 지상 타이탄과 글론의 비공정을 동시에 상대하려고 했다가 이젠 글론 왕국의 비공정만 신경 쓰면 되는 것이다.

리오넬 대령과 기사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네? 무슨 문제 말씀입니까?"

리오넬 대령이 물었다.

"바로 저들의 공격 시기요."

"아!"

리오넬 대령이 자신의 이마를 때렸다.

하지만 마르틴은 영문 모를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설명해줬다.

"저들은 바로 공격하지 않을 겁니다. 가디언 제국과 연합군이 움직일 때까지 기다릴 겁니다. 그럼 결과적으로 가디언 제국의 계획대로 진행되는 겁니다. 원래 탈로스와 글론 왕국을 동원한 목적은 전쟁 기간에 아베르크 제국의 동맹인 아리칸 왕국군의 발을 묶는 용도입니다."

"아! 그렇군. 우리가 기간트를 뺄 수 없으니, 저들의 의도대로 흘러가겠군."

"그렇습니다. 30척의 비공정에 탄 타이탄 300기가 언제 수도로 올 줄 알고 병력을 빼겠습니까? 공중에서 잡으면 좋겠지만, 실패하면 아리칸의 수도가 전장이 될 겁니다. 그리고 제압하더라도 큰 피해가 생길 거고요."

마르틴 국왕이 다시 나를 쳐다봤다.

"우리가 아베르크 제국을 돕지 않는다면, 더 힘겨운 싸움이 될 거고. 아베르크가 무너지면, 우리도 오래 버티지 못하겠지. 무슨 방법이 없겠소?"

난 피식 웃어줬다.

그러자 마르틴 국왕의 얼굴이 환해졌다.

"방법이 있군."

"한 번 더 10기의 비공정을 저들의 수도로 보내는 겁니다."

"한 번 더?"

"이번에도 오크 해병대만 태워서 보내는 겁니다. 그리고 그 시간에 크루세이더 기사단을 태운 10척의 비공정으로 글론 왕국의 다른 대도시를 공격하십시오."

"치고 빠지자는 건가?"

"그렇습니다."

"저들이 약이 바짝 오르겠군."

"그렇습니다. 그럼 보복을 하려고 아리칸 왕국의 수도나 다른 큰 도시를 공격할 수도 있고, 한 번 더 참을 수도 있습니다."

마르틴 국왕과 아리칸의 기사들은 흥미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보복을 하려고 온다면 기다렸다가 상대해주면 되는 거고. 만약 한 번 더 참는다면, 이번에도 같은 작전을 펼치는 겁니다. 대신 이번엔 수도로 향하는 비공정에 크루세이더 기간트를 가득 태워 가십시오. 그리고 두 번째 비공정 부대엔 다른 부대의 기간트 100기를 태우십시오. 만약 저들이 첫 번째 비공정이 아니라 두 번째 비공정 부대를 쫓아온다면, 크루세이더 기사단이 수도와 왕궁을 공격하면 되고, 만약 첫 번째 비공정을 쫓아온다면, 두 번째 부대가 다른 대도시를 공격하면 됩니다."

리오넬 대령이 다시 말했다.

"만약 저들이 비공정을 반으로 나눌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아! 그럴 수도 있겠네!"

마르틴 국왕이 말했다.

"그럼 두 비공정 부대는 각각 다른 대도시를 공격하는 겁니다. 그럼 저들은 막기 위해 비공정에서 병력을 내릴 거고, 그 병력을 잡아먹으면 됩니다. 아리칸의 기사들이라면 100대150 정도면 충분히 이길 수 있지 않습니까? 게다가 우리가 먼저 지상에 내리니 우리 비공정이 저들의 비공정을 공격할 거고, 그럼 오크 해병들과 병사들이 저들의 비공정을 나포할 갑니다. 제 예상에는 글론 왕국의 타이탄은 절반도 지상에 내리지 못할 겁니다."

"허허! 적을 도대체 몇 번이나 속이려는 거요."

"속고 속이는 게 전쟁입니다. 저들이 움직임을 예상하고 거기에 맞춰 작전을 짜고 움직인다면, 하나는 제대로 걸리지 않겠습니까?"

마르틴 국왕이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리오넬 대령 역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전 저들이 어디까지 생각하고 움직일지 벌써 기대가 됩니다. 왠지 글론 왕국의 비공정까지 모두 싹 쓸어올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렇다고 방심은 하지 마시오."

"물론입니다."

마르틴 국왕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우린 당장 돌아갈 준비를 해야겠소."

"저도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마르틴과 아리칸 왕국의 지휘관들이 우르르 나갔다.

"와! 영주님은 대체 저런 작전을 어떻게 세우신 겁니까?"

라이너와 기사들이 입을 떡 벌렸다.

"살기 위해 머리를 굴리다 보면, 다 생각할 수 있는 거야. 물론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을 수도 있고."

크리스티나가 손을 들고 말했다.

"아리칸 왕국이 글론 왕국과 싸우는 사이에 가디언 제국이 움직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아. 우리가 영지를 떠났을 때, 식민지 대륙으로 간 바이마르 대영지의 거대 비공정과 비공정 부대가 삼황자와 합류하지 않았어. 그러니 그들이 도착할 때까지 병력은 움직이지 않을 거야. 그리고 아베르크 제국의 세력이 셋으로 나뉘어 있어 움직이지 못한다는 걸 저들도 알고 있을 거라 가디언 제국은 병력이 다 모일 때까지 기다릴 거야."

그때 마키아스가 손을 들었다.

"차라리 안드레아스 원수를 암살하고 시간을 버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주군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겁니다."

"나도 한때 그런 생각을 가져봤지. 그래서 전에 정보국에 안드레아스가 어디 있는지 물었다. 하지만 그가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이 없더군. 놈도 내가 자신을 노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래도 장성급 지휘관을 몇 명 잡아다 신문하면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안드레아스나 루이스를 죽인다고 전쟁이 끝나는 건 아니야. 또 다른 안드레아스나 또 다른 루이스가 나오겠지. 그리고 난 이번 기회를 적극적으로 이용해 제국에서 독립할 생각이다."

"네?"

"······?"

"그러니까 아베르크 제국과 가디언 제국의 전쟁이지만, 발레리온의 독립 전쟁도 되는 거지."

기사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지금 황실과 제국의 지도자들이 하는 꼴을 보면, 저놈들을 믿고 있다간 이번이 아니라도 언젠간 망할 거야. 결국, 나와 영지를 지키는 방법은 스스로 강해지는 것뿐이지. 그리고 더는 여기저기 끌려다니기도 싫고."

기사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일단은 공국부터 시작할 거야. 그리고 아리칸 왕국처럼 완전히 독립하는 거지. 나중엔 누구도 건들지 못하는 강한 왕국을 만들 거야."

"하지만 황실에서 그걸 허락하겠습니까?"

군대 경험이 가장 많은 라이너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161. 해결 방법을 알려줬다.

161. 해결 방법을 알려줬다.

크리스티나도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저도 그게 걱정입니다. 제가 황제라면 절대 영주님을 놓아주지 않을 겁니다. 영주님이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아닙니까."

"그건 내가 알아서 할 일이고, 방금 말한 내 생각에 반대하는 기사들이 있으면, 그만둬도 좋아. 부하 기사들에게도 전부 전해."

"전 타일러 주군을 끝까지 따라갈 겁니다."

마키아스 단장이 말했다.

"저 타냐 블랙 부단장도 당연히 영주님, 아니 타일러 주군을 계속 따를 겁니다."

"영지군보단, 공작군이나 왕국군이 낫겠네요."

트라스의 개 서열 3위 카고르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영주님이 다 알아서 하시겠죠. 전 끝까지 함께 가겠습니다."

라이너가 말했다.

옆에 있는 크리스티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싸울 일이 많아질 테니, 급료나 많이 올려주십시오."

"알았네!"

기사들의 반응에 흡족한 웃음을 지었다.

내가 잘 키웠어.

"그리고 트라스의 개 기사단은 이곳에 남는다."

"네."

마키아스는 바로 대답했는데, 타냐 블랙이 손을 들었다.

"왜 저희만 남는 건가요? 저희도 가디언 제국과 싸우고 싶은데요."

"다들 조금 전에 코린트 왕국의 거신들이 수인들을 공격한 것을 들었을 거야. 언제 이곳도 거신들이 올지 모르네. 우리가 수인들을 지켜 주기로 했으니 약속을 지켜야지. 그리고 이곳에 공방을 짓고 있는 드워프도 지켜야 하고."

"그런데 거신들이 몰려오면, 기간트 20기로 막을 수 있을까요?"

"우리가 움직이면 수인들도 함께 싸울 거야. 수인들이 거신에게 대항한다면, 충분히 가능하지. 그리고 비공정 3척과 엘프를 남겨둘 테니, 여기 테오아칸 말고 우리에게 협력하는 수인들이 있다면 도와주고."

트라스의 개 기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은 맡겨 주십시오. 저희가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거신들은 비공정이 없으니, 빠른 기동력을 이용해 상대하면 좋을 거야."

"네! 알겠습니다."

트라스의 개 기사단은 공격에 어울리는 기사들이지만, 이번엔 지키는 임무를 맡겼다.

기사들에게 임무를 맡기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한쪽에서 훈련 중인 거신들을 찾았다.

"파이어 에로우!"

화르르! 퍼엉!

불꽃이 터지며 커다란 바위를 휘감았다.

릴리안의 마법을 본 알리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점점 캐스팅 시간이 짧아지고 있어."

릴리안의 마법은 하루가 다르게 일취월장하고 있었다.

내 밑에서 이론 수업을 열심히 했고, 알리사가 실전 훈련을 도와주자, 점점 어엿한 마법사로 성장하고 있었다.

아직도 마나를 너무 낭비하는 게 흠이지만.

붕! 휘익!

검을 휘두르는 갈라그란트는 여전히 스승에게 혼나는 중이다.

"검을 휘두를 때는 과감하게! 아직 쓸데없는 동작이 많다! 그럴수록 빈틈이 생겨나는 법이다."

암 드로운은 제자를 엄하게 가르치고 있었다.

그 덕분에 갈라그란트 역시 점점 기사로 성장하고 있었다.

거신들은 내가 테오아칸을 비운 며칠 동안 왕궁 앞 광장에서 반복 훈련을 하고 있었다.

이건 내가 일부러 시킨 것이다.

"모두 모이게."

네 거신이 다가왔다.

그리고 그들에게 말했다.

"오늘 난 아리칸 왕국 기사들과 제국으로 돌아간다."

"그 말씀은 저희는 이곳에 남으라는 말씀입니까?"

알리사 마법사가 물었다.

"역시 알리사는 똑똑하네. 그리고 그대들이 이곳에서 해줘야 할 일이 있어."

"이곳에서 수인들을 지키라는 거지요?"

이번엔 내 제자인 릴리안이 말했다.

"반만 맞아. 저기 너희를 지켜보는 거신 용병들 보이지?"

거신들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수십 명의 거신 용병들이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왜 이곳을 보고 있는 거죠?"

"왜긴, 배우고 싶은 거야. 알리사의 마법과 암 드로운의 검술을."

"아!"

알리사가 살짝 입을 벌리며 감탄사를 날렸다.

"그동안 이렇게 대놓고 연습하라는 이유가 그거였습니까?"

"그래, 알리사는 거신 용병 중에서 마나에 소질 있는 자들을 뽑아서 마법을 가르치고, 쓸만한 인재를 모아 마법병단을 만들게."

"알겠습니다. 한번 해보겠습니다."

난 암 드로운을 쳐다봤다.

"그대는 검을 배우고 싶은 용병들을 뽑아서 체계적으로 훈련하고, 제대로 된 거신병을 만들어주게. 드워프 공방에 말해 놓을 테니까, 그들에게 제대로 된 무기도 주고. 재료가 부족하면 비공정을 타고 대수림에 가서 사냥도 하게. 실전 훈련도 될 테니까."

"맡겨 주십시오. 주군! 최고의 거신병단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릴리안이 날 보며 말했다.

"저희는 그럼 뭘 해요?"

"너희 남매는 열심히 단련해야지."

"네······."

릴리안이 또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알리사와 암 드로운을 옆에서 도와주고."

"그럼 제가 마법병단 부단장이 되는 건가요?"

"그건 알리사 단장에게 물어봐야지."

릴리안이 알리사를 간절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알리가사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만 마음이 약해졌는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휴! 그래 부단장을 맡기지. 하지만 지금처럼 연습하다간 금방 다른 용병들에게 따라잡힐 거야. 그럼 난 다른 사람에게 그 자릴 넘길 거야."

"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단장님!"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갈라그란트가 암 드로운을 간절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럼 저도 부기사단장?"

"네놈은 아직 멀었다!"

갈라그란트는 스승의 꿀밤만 제대로 맞았다.

여기 있는 거신 용병들이 훈련만 제대로 받는다면, 누구보다 강력한 전력이 될 것이다.

"그리고 대수림을 자주 수색하고, 그 대군주와 괴수들의 움직임을 자세히 살피게, 놈들의 병력 규모가 커지면 반드시 개척촌이나 거점 도시를 노릴 거야. 그리고 대군주 이상의 존재를 발견하거나 감당하기 힘든 병력을 확인하면 곧바로 내게 알리게."

"네.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그렇게 이곳의 일을 대충 마무리 지었다.

우린 비공정에 올라타고 아리칸 왕국의 관문과 가까운 차원 균열을 향해 날아갔다.

***

아리칸 왕국으로 연결된 차원 균열은 대수림과 가까운 사막에 있었다.

그리고 과거엔 제법 큰 요새였지만, 이곳은 이미 폐허가 된 상태였다.

아마도 일전에 다른 요새를 공격한 대군주와 전갈 괴수들 짓일 것 같았다.

그들을 한번 물리치긴 했지만, 또 다른 놈들이 있을 것이고 지금 대수림 어딘가에서 병력을 늘리거나 공격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에테나가 다가왔다.

"그런데 암 드로운 경이 없어도 괜찮을까요?"

"응?"

"타일러님의 최고 전력이잖아요. 게다가 알리사 경도 없고."

에테나는 내 병력이 부족해 걱정인가 보다.

난 피식 웃어줬다.

내 최고 전력은 이미 바뀌었다.

지금 저기 대수림 어딘가에서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겠지.

상당히 멀리 있지만, 난 여왕개미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여왕의 군단이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때는 아무리 거대한 괴수 군단이라고 해도 싸워볼 만했다.

그리고 나도 만만치 않은 군단을 보유할 거고.

인형의 방을 열고, 이번엔 만든 꼭두각시들을 살폈다.

패로운 꼭두각시는 벌써 5레벨이 됐고, 다른 꼭두각시들도 레벨이 4까지 올랐다.

웨슬리와 자동인형들이 집중적으로 신입 꼭두각시들을 가르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두 다 내 전력이 될 것이다.

아직 운명의 실은 여유가 많았으니, 계속해서 마나인형을 늘릴 생각이었다.

그리고 한쪽엔 20명의 다크 엘프 전사가 훈련하고 있었다.

내 분신인형 짹을 불러들여 그들을 암살이나 잠입에 특화된 마법인형으로 키울 생각이었다.

"영주님, 우리 비공정이 차원 균열로 진입합니다."

엘프 비행사가 말했다.

"알았네."

이제 저쪽 차원으로 넘어가면 내 전쟁은 바로 시작이다.

***

[이베리아 평원]

하늘에서 내려다보자, 황금빛 들판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엄청난 밀 생산지로 아주 오래전부터 이 땅을 얻는 자가 세상을 지배할 것이라는 말까지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다 옛말이 됐다.

이젠 대수림을 지배해야 기간트를 만들고 마석을 캐서 세상을 지배할 수 있었다.

"영주님, 저기 보입니다!"

동부군 사령부와 새롭게 창설된 공군 본부가 있는 도시 렌스크!

대도시답게 멀리서도 큰 규모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도시 위쪽으로 비공정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비공정이 상당히 많은데요?"

에테나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베르크 제국도 놀고 있진 않았겠지."

대충 눈에 보이는 비공정이 70척은 되어 보였다.

하지만 내 예상보다는 숫자가 너무 적었다.

아마도 황실 근위대와 다른 군단에도 나눠줬겠지.

그리고 기간트 10척을 나르는 중형 수송기는 30척 정도였고, 그보다 작은 비공정이 더 많았다.

특히 기간트 4기를 빠르게 수송할 수 있는 소형 수송기가 많았는데, 이는 정면 대결보다는 빨리 치고 빠지는 작전을 쓰려는 윌리엄 원수의 의지가 엿보였다.

"비공정이 날아옵니다."

우리 비공정을 향해 4척의 소형 비공정이 접근했다.

깃발을 확인하더니, 공군 기지로 우릴 유도했다.

'여기도 타워 방식 접안 시설을 만들었군.'

모양을 보니, 우리 영지에 있는 것을 완전히 똑같이 만들었다.

그것도 4개나.

좋은 건 금방 베끼네.

비공정을 접안시켰고, 에테나와 공군 본부를 찾았다.

[공군 사령관실]

윌리엄 사령관의 집무실로 들어갔다.

윌리엄은 여전히 할아버지 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니, 머리가 하얗게 센 것이 이미 할아버지가 된 것 같다.

"타일러 경, 어서 오시오."

"윌리엄 사령관님, 오랜만입니다."

전에 조금 안 좋게 헤어졌기에 약간 서먹했다.

"시안 황자께선 어디 가셨습니까?"

"지금 동부 전선의 부대들을 돌아보고 계시오."

"그럼 당장 이곳으로 오시라고 하십시오."

"뭐요?"

"시간이 없습니다. 시안 황자께서도 계셔야 합니다."

내 표정을 본 윌리엄이 엠버 준장을 쳐다봤다.

"바로 무전을 치게."

"네!"

엠버 준장이 밖으로 나갔다.

"아직도 엠버 준장을 부관으로 데리고 계십니까?"

"그렇소. 일도 잘하고 또 믿음직하기도 하고."

"그래도 이제 준장으로 진급시키셨으면, 부대를 맡기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저런 인재는 사무실이 아니라, 전장에 있어야 합니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하겠소. 그런데 무슨 일이오. 시안 황자 저하까지 부르라고 하다니?"

난 고개를 흔들었다.

"정말 모르고 계셨군요."

"······?"

"우린 가디언 제국과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우린 가디언 제국이 주축이 된 연합군과 싸우게 될 겁니다."

"연합군?"

난 수인족 차원에서 얻은 정보를 윌리엄에게 말했다.

그러자 윌리엄 사령관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이 미친!"

좀처럼 표정 변화가 없는 사람이었지만, 오늘은 분노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그게 사실이오? 아니지. 타일러 경이 그리 말할 정도면, 확실하다고 봐야겠지."

윌리엄이 깊은 한숨을 쉬었다.

"하아! 겨우 가디언 제국의 비행 전력을 따라붙었다고 생각했는데, 배신자에 연합군이라니······!"

"우리 전력은 확 줄고, 저들의 전력은 확 늘었지요. 게다가 바이마르 대영지엔 기간트를 한 번에 50기나 나를 수 있는 초대형 비공정이 있습니다."

"뭐요?"

"그것도 모르고 계셨습니까? 아베르크 제국의 정보력이 쓰레기 수준이군."

난 일부러 윌리엄 사령관을 자극했다.

사실 내가 바이마르의 초대형 비공정을 확인한 것이 벌써 몇 년 전이었다.

그 사이 라디프 바이마르 공작은 남쪽 베른 대륙의 식민지 도시들을 모두 점령했고, 왕으로 군림하고 있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 저기?"

그는 스스로 묻고 있었다.

그 대답은 내가 해줬다.

"그들이 몇 년 전에 대수림에 훈련한다고 병력을 파견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엘프 차원에 갔고, 비행석을 대량으로 확보했습니다. 그러니 저들의 중급 비공정도 상당한 숫자가 있다고 봐야 합니다."

윌리엄 사령관은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겨우 가디언 제국에 대항할 비공정 부대를 만들었다고 생각했다가 갑자기 적들의 전력이 대폭 늘었으니까.

"호엘 삼황자가 왜 그런 자들에게 협조하는 거지?"

"이미 아시지 않습니까. 황실과 수도는 황태자 세력이 장악했고, 시안 황자는 동부군 내에서 인기가 나날이 치솟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도 있고요. 그런데 삼황자만 계속 답보 상태지요. 게다가 황태자가 황제의 이름으로 2군단의 기사들과 남부 영지를 하나둘 포섭하고 있습니다."

"위기감을 느꼈군."

"그리고 라디프 바이마르 공작은 대영지에 만족할 사람이 아닙니다. 이미 식민지 대륙을 장악했으니, 그곳에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할 겁니다. 하지만 아베르크 제국이 그 사실을 안다면 전쟁은 불가피할 거고······."

"이번 기회에 가디언 제국과 힘을 합쳐 우릴 치우려고 하겠군."

윌리엄 사령관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평소 제국에 감정이 좋지 않은 살루스 왕국과 윈데르 왕국 역시 참전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니 아베르크 제국의 최대 위기입니다."

윌리엄은 당황한 얼굴을 했다.

안드레아스와 싸울 자신의 계획이 모두 무산됐기에 저런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해결 방법을 알려줬다.

"먼저 황태자 세력을 치고, 수도와 황궁, 추밀원을 장악해야 합니다. 제국을 하나로 묶지 못하면, 절대 이길 수 없는 싸움입니다."

윌리엄 사령관의 표정이 심각하게 일그러졌다.

162. 성공하면 찬탈.

162. 성공하면 찬탈.

"지금 내게 반란을 일으키란 말이오?"

"성공하면 찬탈이고, 실패하면 반란이겠지요. 하지만 이 경우는 둘 다 해당하지 않습니다. 황태자는 황제가 아니니까요."

"하지만 수도와 황실을 장악하고 있으니, 황제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그 점잖은 양반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만큼 윌리엄 사령관도 당황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포기하실 겁니까? 지금 시안 황자가 문제가 아닙니다. 아베르크 제국이 무너집니다. 제국이!"

"크윽!"

윌리엄이 인상을 확 구기며 이를 악물었다.

"젠장! 잘 되어가고 있었는데······."

"뭐가 말입니까? 시안 황자를 황제 자리에 올리는 거 말입니까?"

"그렇소."

나도 안다.

윌리엄 사령관의 노력을.

그가 어떻게 여기까지 끌고 왔는지.

루이스 황자를 보고, 답을 얻었을 것이다.

그리고 동부 전선을 돌며, 기사들과 함께 싸우는 황족의 이미지를 잘 만들고 있었다.

아마도 가디언 제국과 전쟁에서 이겼다면, 동부 전선에서 함께 싸운 기사들은 시안 황자의 편을 들었을 것이다.

그럼 5군단과 공군의 힘에 3군단, 4군단, 동부군까지 힘이 더해져 황태자가 아무리 수도를 장악했다고 해도 대세는 시안 황자 쪽으로 기운다.

하지만 지금은 아직 때가 무르익지 않았기에 고심하는 것이다.

"당장 결심을 하셔야 합니다. 지금은 시간과 싸움이기도 합니다. 제국을 하나로 만들지 못하면 사방에서 몰려드는 적들을 막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시안 황자께서 과연 그 일을 허락하실지······."

"시안 황자 저하는 일단 생각하지 마십시오. 지금은 윌리엄 사령관께서 먼저 결심하십시오. 그래야 우리가 함께 시안 황자 저하를 설득할 수 있습니다."

윌리엄 사령관은 답답한지 자리에서 일어서 창문을 바라보았다.

난 그가 생각할 시간을 주었다.

그는 한참을 고민했다.

덜컹!

그때 엠버 준장이 돌아왔다.

"시안 황자께서 지금 지휘 비공정을 타고 돌아오신다고 합니다."

"나가 있게."

"네?"

"황자께서 오시면 내 방으로 안내하고, 근처에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게 하게."

"네."

분위기에 짓눌린 엠버 준장이 밖으로 나갔다.

"결심은 하셨습니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소. 경의 말처럼 제국이 하나로 뭉쳐 있어도 막기 어려운 적이오. 지금처럼 수도에 1군단과 서부군, 근위 기사단까지 아무것도 안 하고 머물러 있다면······."

다행히 윌리엄 사령관의 이성이 돌아온 것 같다.

황태자의 가장 큰 문제점은 모든 병력을 수도에 집결했다는 것이다.

수도를 빼앗기면 황제가 되지 못한다고 굳게 믿는 것이다.

문제는 동부 전선의 병력이 가디언 제국과 삼황자, 연합군의 협공에 당한다면, 순식간에 전멸할 것이고 더는 뒤가 없다.

그렇다고 황태자가 설득할 수 있는 상대도 아니었다.

자신과 경쟁 상대인 시안 황자나 윌리엄 사령관의 말을 믿겠는가?

사실을 말해도 분명 자신들이 장악한 수도에서 병력을 빼게 하려는 수작이라고 생각할 거다.

그걸 알기에 윌리엄 사령관도 결심을 굳힌 것 같았다.

"황궁과 수도를 장악할 방법이 있소? 타일러 경이 이미 생각해 놓은 방법이 있을 거 아니오?"

"전 거기까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보다 어떻게 연합군의 공격을 막을지 그걸 고민하고 있지요. 그러니 방법은 윌리엄 사령관께서 생각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노파심에서 말씀드리자면, 황태자와 측근들, 군단의 상급 지휘관들은 절대 살아있어선 안 됩니다."

윌리엄 사령관이 잠시 생각하더니, 드디어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한번 해봅시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일단 시안 황자께서 황실과 수도를 장악해야 다음 작전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경이 생각한 다음 작전은 뭐요?"

"1군단과 서부군을 이끌고 제가 삼황자와 연합군을 막겠습니다."

"병력 차가 꽤 날 텐데, 가능하겠소?"

"저라면 가능합니다. 그리고 아리칸 왕국의 비공정과 병력이 저를 도울 겁니다."

"하지만 아리칸 왕국은 탈로스와 글론 연합군이 공격할 거라고 하지 않았소?"

"그럴 겁니다. 하지만 이미 제 말을 듣고 마르틴 국왕이 그들의 전진을 막기 위해 움직였습니다."

"벌써 움직였단 말이오?"

윌리엄 사령관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빠른 움직임도 놀랐지만, 그들이 내 말을 듣고 병력을 움직였다는 것에 더 놀랐을 거다.

내가 아리칸 왕국까지 조종하고 있다고 느꼈을 테니까.

"그리고 윌리엄 사령관께서는 동부 전선의 병력으로 가디언 국군을 막는 겁니다."

"하아!"

윌리엄 사령관이 한숨을 쉬었다.

내가 알려준 저들의 마장기와 비공정이 생각보다 훨씬 많았고, 또 마석 배터리까지 이미 엄청나게 준비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한숨을 쉬는 것이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겁니다. 비공정도 부족하고, 기간트도 부족하고, 병력도 부족합니다. 그리고 제 도움도 받지 못할 거고요."

"하아! 타일러 경의 비공정과 오크 해병대는 당연히 참가할 줄 알았는데······."

내가 가디언 제국과 전쟁이 참가한다고 했으니, 내 전력도 계산에 넣었을 것이다.

하지만 난 다른 병력을 막아야 했다.

"윌리엄 사령관께서 아무리 노력해도 동부 전선은 가디언 제국에 밀릴 겁니다. 그러니 국경 도시 몇 개와 이베리아 평원 정도는 포기해야 할 겁니다."

윌리엄이 이를 악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 정도 피해는 예상하는 듯했다.

"제가 삼황자와 연합군을 최대한 빨리 처리하고 합류해야 그나마 제국을 지킬 가능성이 생길 겁니다."

"그런데 그 거대 비공정을 막을 순 있겠소? 호위하는 비공정도 상당히 많을 것이오."

"최선을 다해봐야죠."

윌리엄 사령관의 표정이 처음보다 많이 풀어졌다.

내가 한 방법대로 잘만 된다면, 제국을 지키는 것이 가능할 거로 생각하겠지.

"고맙소. 타일러 경이 아니었으면, 가만히 있다가 당할 뻔했소."

"고맙긴요. 자! 이제 저와 협상을 하셔야죠."

"무슨 협상이요?"

"제가 아무런 이득도 없이 움직이는 사람은 아니지 않습니까?"

"허!"

윌리엄의 미간이 좁아졌다.

"하긴 타일러 경은 뭔가 이득이 있어야 움직이는 사람이지. 그래 경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오?"

"제가 장악하고 있는 영지의 독립을 허가해 주십시오."

"뭐, 뭐요? 독립? 내가 지금 잘못 들은 거 같은데······."

"정확히 들으셨습니다. 제가 공왕에 오를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는 말입니다."

"공왕이라고? 지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시오?"

"안될 건 뭐가 있습니까? 그리고 당장 달라는 것도 아니고, 제국을 지키면 달라는 것이 아닙니까."

윌리엄의 표정이 처음보다 더 심각해졌다.

"하지만 우리가 황실과 수도 장악에 성공한다면, 1군단과 서부군도 우리 명령을 들을 텐데, 타일러 경이 필요하겠소?"

"제가 필요 없다면, 말씀하십시오. 시안 황자께서 직접 지휘하시면 되겠네요. 아! 그리고 제 비공정과 아리칸 왕국의 도움은 바라진 마십시오."

난 윌리엄을 향해 피식 웃어줬다.

내 비공정과 오크 해병대, 아리칸 왕국의 도움 없이 저들을 막을 수 있다면, 이런 조건을 부르지도 않았다.

"경이 동원할 수 있는 비공정과 병력이 얼마나 되오?"

이미 이 질문을 한다는 것은 내 조건을 수락한다는 뜻이었다.

"비공정 50척을 동원할 수 있습니다. 기간트는 총 300기를 동원하지요."

사실 비공정 50척은 아리칸 왕국이 글론 왕국의 비공정을 최소 20척은 나포해야 가능한 숫자였다.

난 마르틴 국왕과 아리칸 기사들을 믿었다.

"비공정 50척과 기간트가 300기라······."

윌리엄이 열심히 주판알을 튕기고 있었다.

1군단과 서부군의 기간트를 합치면 400기 가까이 된다.

근위 기사단과 일부 비공정은 적들이 병력을 몰래 빼서 수도를 공격할 수도 있었기에 수도에 남아 있어야 했다.

그럼 우리 측 병력은 기간트가 700기에 비공정은 70척이 된다.

"살루스 왕국 놈들이 아무리 기간트를 많이 보낸다고 해도 100기가 최대일 거고, 윈데르 왕국은 최대 150기, 2군단과 남부군 기간트가 합쳐서 400기, 문제는 바이마르 대영지의 병력인데······."

"모르긴 몰라도 400기는 될 겁니다."

"그럼 기간트만 1,000기가 넘는다는 건데!"

"그 정도면 제가 있으니, 싸워볼 만합니다."

"지금 싸워서 이기는 게 문제가 아니지 않소. 최대한 병력을 남겨야 동부 전선을 지원해줄 것이 아니오."

난 윌리엄 사령관을 빤히 쳐다봤다.

"저 못 믿으십니까?"

"흠······."

그러자 윌리엄도 날 쳐다봤다.

"잘 생각하십시오. 제국 전체를 지키고, 북부의 아주 조그마한 땅덩어리를 떼어주는 겁니다. 게다가 공왕이라고 해봤자, 공작보다 조금 나은 것이 아닙니까? 제국에 세금을 안 내는 것도 아니고."

"자신 있소?"

"전 지는 싸움에 배팅하진 않습니다."

윌리엄이 입술을 깨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그건 내가 책임지고 시안 황자님을 설득해 보겠소."

"아! 그리고 오늘 당장 문서로 약속해 주십시오."

"오늘 당장?"

"하도 거짓말하는 사람을 많이 봐서요. 물론 윌리엄 사령관과 시안 황자 저하 이야기는 아닙니다."

"흠. 알겠소."

"그럼 전 나가 있겠습니다."

"뭐요? 같이 시안 황자를 설득하자면서?"

"솔직히 혼자서도 충분하시지 않습니까. 전 어떻게 하면 삼황자와 연합군을 막을지 고민하고 있겠습니다. 아! 그리고 오래 기다리진 못합니다. 만약 일이 불발되면 전 영지민들과 제 살길을 찾으러 가야 하니까요."

난 가볍게 고개를 숙이곤, 밖으로 나갔다.

"엠버 준장, 내 비공정에 있을 테니, 사령관께서 날 찾으시면 그리 사람을 보내시오."

"알겠습니다."

***

휘이이잉! 척!

에테나가 옆쪽 타워 착륙장에 시안 황자의 지휘 비공정이 접안하는 모습을 보더니, 물었다.

"시안 황자가 반란을 허락할까요?"

"그럴 수밖에 없지. 아니면 제국을 빼앗기거나 황태자 밑으로 들어가야 할 테니까. 그리고 황태자 밑에 들어간다는 말은 이번 전쟁을 무사히 넘겨도 곧 죽는다는 말이기도 하지. 황태자 세력이 분란의 싹을 남겨둘 사람들이 아니거든."

시안 황자가 공군 본부로 들어가고, 한 시간 만에 나왔다.

그리곤 내가 있는 비공정으로 곧장 다가왔다.

"시안 황자 저하를 뵙습니다."

"타일러 경, 정말 그 방법밖에 없겠소.?"

"그렇습니다. 마음을 독하게 먹으셔야 합니다. 시간이 늦어질수록 제국의 피해는 커지고, 잘못하면 제국 자체를 적들에게 빼앗길 수도 있습니다."

시안 황자는 고민하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이미 그의 손에는 내게 줄 문서가 들려 있었다.

"휴! 최선을 다해 싸워 주시오."

시안 황자가 내게 문서를 내밀었다.

난 문서를 한번 읽어 보곤, 고개를 숙였다.

"그럼 전 바로 가서 전쟁 준비를 하겠습니다. 부디 거사가 성공하길 빌겠습니다."

"알겠소. 나중에 살아서 봅시다."

시안 황자는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거사가 실패하면 그도 죽고 윌리엄도 죽을 것이기에 이번이 마지막 만남이었다.

하지만 왠지 윌리엄이 계획한다면 실패할 것 같진 않다.

제국의 하늘을 지배하는 것이 윌리엄 원수니까.

그리고 그는 머리가 좋은 사람이었다.

난 비공정에 타고 곧장 내 영지로 향했다.

나도 시간이 많은 건 아니다.

아리칸 왕국이 글론과 탈로스 연합군을 막고, 윌리엄과 시안 황자가 황실과 수도를 장악하는 사이에 나도 할 일이 있었다.

***

[발루아 영지]

10척의 비공정이 발루아성 옆에 내려앉았다.

"충! 어서 오십시오."

"충! 어서 오십시오."

발루아의 영주 오를레앙 백작과 발루아의 기사들이 내게 고개를 숙였다.

오를레앙 백작은 록체스터 대영지에게 길을 빌려줬다가 역으로 내게 털리고, 충성을 맹세한 영주였다.

그리고 앨리슨의 외삼촌이었고.

"오를레앙 백작, 병력은 준비됐나?"

"물론입니다. 기회를 주신 만큼 기사들과 더 열심히 훈련했습니다."

난 발루아 영지의 기사들을 쳐다봤다.

주눅 든 지방의 영지군이 아니라, 눈빛이 살아있는 기사들이었다. 신형 기간트까지 지급했는데, 이번에 자신들의 존재감을 보이지 못한다면, 발루아 기사단을 유지할 이유가 없었다.

"다들 싸울 준비가 됐나?"

"네! 주군!"

50명 기사가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기간트에 올라타라! 승선을 준비하라!"

"자! 가자!"

위이잉! 쿵! 쿵!

기간트들이 차례로 비공정에 올라탔다.

다른 5척의 비공정엔 펠릭스와 하얀 악마 기사단이 타 있었다.

우리는 지금 록체스터 대영지를 공격하러 가는 길이다.

시안 황자와 윌리엄 사령관이 내게 땅을 주기로 약속했는데, 그 시기는 전쟁이 끝난 후였다.

그러니 내가 본격적으로 전쟁에 참여하기 전에 최대한 영지를 늘려야 했다.

'이왕이면 넓은 땅이 있으면 좋겠지.'

난 독립 전에 영토를 늘릴 생각이었다.

163. 대영지를 얻다.

163. 대영지를 얻다.

난 록체스터 대영지와 북서부 3개의 영지를 추가로 점령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내 영지는 하나의 큰 덩어리가 되고, 북서부 마자르 산맥을 경계로 아리칸 왕국과 붙어 있게 된다.

과거라면 길이 없어 돌아가야 했지만, 지금은 비공정이 있으니 얼마든지 교류할 수도 있었고, 기간트 병력을 보내기도 좋았다.

그렇게 내 독립 전쟁은 시작되었다.

[록체스터 대영지 영주성]

이맘때 록체스터는 마자르 산맥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 때문에 눈발이 가끔 흩날렸다.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온종일 눈이 왔고, 병사들은 밤늦게까지 눈을 치우고 있었다.

그리고 기간트들이 영주의 성을 지키고 있었다.

[쓰벌! 밤마다 이게 무슨 짓이야!]

[어쩔 수 없지. 위에서 까라면 까야지.]

[아니, 황태자께서 발레리온 영지와 중재했다면서 그럼 영지전은 끝난 거 아냐? 그런데 왜 우리가 매일 경계를 서야 하냐고? 그것도 6개월이나 지났는데!]

[니미! 위에서 불안하시다잖아.]

그림자 투영 스킬을 쓰고 성벽을 넘자마자, 기사들의 불평이 들린다.

주변에 눈을 치우는 병사들도 많은데, 저렇게 대 놓고 불평을 하다니.

'군기가 개판이네!'

록체스터 대영지는 기간트를 200기나 잃었고, 기사들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니 분위기가 험악한 것은 나 때문이지.

그리고 심심하면, 비공정이 날아와 빚쟁이들처럼 돈을 갈취해가니 기사들의 사기가 좋을 리 없었다.

'야밤에 영주성을 지키는 기간트가 20기라니, 좀 심한데······.'

보통은 많아야 2, 3기 정도인데 비공정이 생기고 성을 지키는 기간트 숫자가 많이 늘었다.

그래도 20기가 밤낮없이 지키려면 3교대로 60명의 기사가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기간트 생산 공방을 지키는 기간트도 20기나 있었다.

그 말은 120명의 기사가 매일 보초를 서고 있다는 말이었다.

내 정보에 의하면 록체스터의 기사 숫자는 수습까지 150여 명.

그러니까 거의 모든 기사가 보초를 서고 있다느 뜻이었다.

록체스터의 기간트는 원래 100여 기밖에 없었지만, 기간트 생산 공장이 있는 대영지였기에 200여 기로 2배나 늘어 있었다.

문제는 기간트에 탈 기사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조용히 움직여 내성을 살펴봤다.

기간트 기사로 보이는 자가 10여 명.

지휘관들이다!

그들은 내성에서 자고 있었다.

다음으로 격납고 내부를 살펴보니, 늦은 밤까지 훈련하는 기간트 20기가 보였다.

그들은 아마도 수습 기사들 같았다.

그리고 다른 기사들은······.

'여깄군!'

기사단 건물에 가장 많은 기사가 자고 있었다.

대부분 집으로 가지도 못하고, 이곳에서 지내고 있었다.

기사단 숙소는 격납고와 이어져 있었고, 언제든 출동할 수 있었다.

난 격납고로 들어가 기사단 숙소 입구 계단으로 향했다.

촤악! 촤악!

"크윽!"

"커헉!"

입구를 지키던 병사들을 처리했다.

황태자가 록체스터 대영지와 중재를 했다.

더는 싸우지 말고, 적당한 합의금을 받고 기사들을 풀어주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난 클린드 백작을 시켜, 최대한 합의금과 피해금을 받으라고 했다.

하지만 이젠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조금 이르긴 하지만, 록체스터 대영지를 통째로 먹으면 되니까. 그리고 중재한 황태자가 곧 죽을 텐데, 눈치 볼 필요도 없었다.

만에 하나 거사에 실패했다고 해도 난 개입하지 않았으니, 크게 상관없었다.

아니 이 영지전이 오히려 개입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실패하진 않겠지?'

"응? 넌 누구냐?"

계단을 내려오던 기사와 마주쳤다.

퍽! 쿵!

[운명의 실을 연결했습니다.]

내 영지를 공격한 자들이다.

내가 막지 못했으면 기사들과 병사들은 다 죽었을 것이고, 이계 난민들 역시 대수림으로 쫓겨나거나 기간트에 짓밟혀 죽었을 것이다.

푹!

[기사회생(lv.max) 스킬을 사용했습니다.

[허수아비(lv.1) 마법인형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니 사정을 봐줄 필요는 없었다.

조용히 방문을 열었다.

한참 잘 자는 기사를 깨울 필요는 없었다.

[운명의 실을 연결했습니다.]

[허수아비(lv.1) 마법인형을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차분히 기사들의 숫자를 줄이고, 내 마법인형의 숫자를 늘렸다.

끼익!

"넌 뭐야?"

포커를 치며 술잔을 기울이고 있던 네 기사가 날 쳐다봤다.

다다닥!

퍽! 퍼퍽!

"으헉!"

"억!"

쿵! 쿠쿵!

기간트를 무찌르기 가장 좋은 방법은 기사가 기간트에 타기 전에 제압하는 것이다.

[허수아비(lv.1) 마법인형을 만들었습니다.]

[허수아비(lv.1) 마법인형을 만들었습니다.]

.

.

이 마법인형들은 모두 내 영지를 지키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건물에 있던 기사들을 모두 처리하고, 맨 위층 창문을 열었다.

휘이이잉! 퍼엉!

록체스터 영주성 위에 신호탄이 터졌다.

고오오오! 휘이이잉!

5척의 비공정이 영주성 연병장에 내려앉았다.

그리고 발루아 기사단의 기간트들이 강하했다.

쿵! 쿵! 쿵!

[뭐, 뭐야?]

[적이다! 막아라!]

오를레앙 백작이 소리쳤다.

[주군께서 보고 계신다! 발루아의 기사들이여! 적을 섬멸하라!]

[공격하라!]

기이잉! 쿵! 쿵! 쿵!

쾅! 콰콰쾅!

발루아의 기사들이 달려오는 록체스터 기간트들을 몰아치고 있었다.

숫자도 많았지만, 오늘을 위해 6개월을 밤낮없이 단련했다.

오를레앙 백작은 오늘 타지에서 쓸쓸히 죽은 여동생과 매제의 원수를 갚고 있었다.

그 시각 하얀 악마 기사단은 록체스터 영주성 옆에 있는 기간트 공방을 공격하고 있었다.

전투는 길지 않았다.

빠르게 강하한 50기의 기간트가 지키고 있던 20기의 기간트를 제압했다.

사방에 비상종이 울리고 있었고, 그때 기간트 격납고에서 교관과 훈련 중인 수습 기간트 기사들이 나오고 있었다.

[너희는 격납고를 장악하라!]

[네!]

발루아의 기간트들이 격납고를 향해 달렸다.

기사들이 교관의 기간트를 쓰러트리자, 수습 기사들은 얼마 싸우지도 않고 곧바로 무기를 버렸다.

정규 기사와 싸워서 이길 자신이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그들의 기간트는 대부분 폰급. 기간트 급수도 차이 났고.

[병사들은 영주성을 점거하고, 안에 있는 자들을 모두 끌어내라!]

[네!]

비공정에서 내린 500명의 발루아 병사가 록체스터 내성 안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이미 싸움은 끝났다.

"이거 놔라! 난 베닝 록체스터다!"

병사들에게 끌려 나온 베닝 공작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가 감히 내 영지를 공격한 것이냐!"

난 베닝 록체스터 공작 앞에 섰다.

"베닝 공작, 내가 누구지 모르겠소?"

그가 이를 악물었다.

왜 모르겠는가.

내 얼굴은 몰라도 비공정과 기간트로 록체스터 대영지를 공격할 사람이 나밖에 더 있을까?

"타일러 후작, 이게 대체 무슨 짓인가?"

"보다시피 영지전이 아니오."

"하지만 황태자께서 그만하라고 명령하셨을 텐데."

난 피식 웃었다.

"시작은 그쪽에서 하고, 내가 멈추길 바란 건가? 너무 이기적이군."

"하지만 난 금화를 지급했다."

"그렇다고 우리 영지를 공격한 것이 사라지진 않지. 아무튼, 그대의 기간트 공방과 기간트들은 내가 잘 쓰겠소."

"뭐라? 난 아베르크 제국의 공작이다! 황실에서 이 일을 그냥 넘어갈 것 같으냐? 난 황실에 많은 사람과 연을 맺고 있다. 그리고 내무대신이 내 사돈이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하지. 이자와 귀족들, 기사들을 모두 영지로 끌고 가 지하 감옥에 가둬라!"

"네!"

병사들이 영주성에서 사로잡은 자들을 비공정에 태웠다.

기이잉! 쿵! 쿵!

오를레앙 백작의 기간트가 다가왔다.

[주군! 격납고에 기간트가 100기가 넘습니다. 오리지널 기간트도 2기나 있고요.]

"잘했군."

기사들이 기간트에 타기도 전에 처리한 보람이 있었다.

"모두 내가 챙길 것이다. 발루아 기사들은 먼저 영지로 돌아가게. 그리고 곧 시에라 영지를 공격할 테니, 준비하고."

[네! 주군!]

오를레앙 백작이 기사들과 비공정에 올라타고, 발레리온 영지로 향했다.

이곳은 하얀 악마 기사단과 병사들만 있어도 충분했다.

난 바로 지하 격납고로 내려갔다.

'허! 고맙게도 기간트를 많이 만들어 놨네.'

기사도 없으면서 기간트를 상당히 많이 만들어 놨다.

만들기만 하면 판매도 가능하니까 상관없긴 한데, 그래도 단숨에 기간트를 100기 이상 늘린 것을 보면 록체스터 가문이 그동안 쌓아놓은 돈이 아주 많은 것 같다.

난 괴수인형을 꺼내 이곳에 있는 기간트를 모두 챙겼다.

내가 SS급 헌터가 되면서 인형의 집은 웬만한 소도시 규모로 커졌다.

이제 공간이 너무 넓어져 따로 구획을 정해야 할 정도였고, 내 마법인형이 기간트에 타고 달리면 한쪽 끝에서 반대쪽 끝까지 두 시간이나 걸릴 정도였다.

이날 난 록체스터 대영지에서 허수아비 마나인형 50여 개를 만들었다.

이제 당분간 마나인형이 부족하진 않을 것이다.

운명의 실이 다시 부족해지겠지만.

그리고 멀쩡한 기간트도 150기나 챙겼고, 기간트 공방도 얻었다.

이곳 기간트 생산 장비들은 그대로 아리칸 왕국으로 옮길 것이다.

이제 독립을 위한 밑거름은 갖춰졌다.

***

록체스터 대영지와 새로 점령한 3개의 영지는 오를레앙 백작과 발루아 기사단에 맡기고, 발레리온 영지로 돌아왔다.

비공정이 차례로 착륙하고 하얀 악마 기사들이 차례로 내렸다.

"모두 고생했다."

[아닙니다. 영주님께서 먼저 적들을 처리해 주셔서 간단히 적을 제압할 수 있었습니다.]

펠릭스 기사단장이 대답했다.

4개의 영지를 점령하면서 우리 피해는 전무했다.

내가 먼저 적의 기사 숫자를 줄인 것이 큰 도움이 됐다.

하지만 진짜 전쟁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펠릭스 단장, 기사들을 며칠 푹 쉬게 하게. 곧 큰 전투가 있을 테니까."

[네! 주군!]

기간트 기사들이 격납고로 향했다.

난 에테나와 영주관으로 향했다.

"타일러 삼촌!"

다다다닥! 와락!

아주 반가운 얼굴이 달려와 내게 안겼다.

"어? 앨리슨! 왜 이렇게 무거워졌냐?"

"뭐에요! 숙녀한테 무겁다니!"

"어라? 키도 컸네!"

"에테나 언니!"

엘리슨이 이번엔 에테나에게 달려가 안겼다.

"어서 와!"

이제 두 사람의 키가 비슷했다.

폭풍 성장이네······.

하긴 앨리슨을 못 본 것이 몇 년째더라?

천재 소녀는 이제 어엿한 숙녀가 되어 있었다.

"삼촌! 무슨 일이에요? 수업도 받지 말고 바로 영지로 오라고 하게?"

"당분간 수업은 없을 거야."

"네?"

이제 수도가 난리가 날 텐데, 사관학교에서 수업을 제대로 하겠나.

"일단 안으로 들어가자."

영주관에 들어가기 전에 고개를 돌려 남쪽을 쳐다봤다.

지금쯤 시작했겠지?

내가 윌리엄을 만나고 온 지 두 달이 됐다.

제국 남쪽에서 거대 비공정이 등장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으니, 더는 기다릴 수 없을 거다.

며칠 안에 모든 것이 결판나겠지.

***

나흘 만에 소식이 올라왔다.

황제가 황태자와 측근들의 반란을 공식화했다.

그 말은 시안 황자의 거사가 성공했다는 뜻이었다.

방법은 아직 듣지 못했지만, 하늘을 장악한 윌리엄이라면 해낼 줄 알았다.

그리고 이틀 후.

발레리온 상공에 40척의 비공정이 날아왔다.

10척은 원래 내 비공정이었고, 30척은 아리칸 왕국의 비공정이었다.

"마르틴 전하, 해내셨군요."

"사실 더 일찍 올 수도 있었소. 그 멍청한 놈들이 자신들 도시가 공격당하자, 곧바로 30척의 비공정에 타이탄을 꽉 채워서 우리 수도를 향해 날아오지 뭐겠소. 그래서 공중에서 절반을 잡았고, 나머진 왕궁에 매복했던 기간트와 비공정에서 내린 기간트로 손쉽게 처리했소."

"나머지 비공정은 어떻게 됐습니까?"

"모두 나포했소. 10척은 수도에 남겨놨고, 비공정 30척과 기간트 200기를 끌고 왔소."

"잘하셨습니다."

마르틴의 어깨가 한없이 올라가 있었다.

대승이 아주 기쁜가 보다.

"타일러 경, 그런데 우린 언제 출정할 것이오."

"시간이 없으니, 바로 가야지요."

"알겠소. 이번엔 제대로 된 전투가 없어서 아쉬웠는데, 몸 좀 풀겠군."

마르틴은 룩급 오리지널 기간트에 탔어도 여전히 여유가 넘쳤다.

난 내 기사들을 향해 말했다.

"모두 비공정에 타라!"

기이잉! 쿵! 쿵!

내 비공정 10척에 하얀 악마 기사단 기간트 50기가 승선했다.

이 비공정들엔 쿠훌린의 오크 해병대 300명과 사이닝족 엘프 궁수 300명이 타고 있었다.

그리고.

"쿠오오오크! 서리 오크들이여! 우리 힘을 보여주자!"

"쿠오크! 쿠오크!"

다른 비공정 10척에 거구의 오크들이 차례로 탑승했다.

그들은 내 영지에 정착한 서리 오크인 크로우족 전사들이었다.

호빌테 족장은 그동안 꾸준히 강습 훈련과 대 기간트 전투 훈련을 한 300명의 오크를 이끌고 왔다.

그들은 아직 훈련이 부족해 오크 해병대 수준은 아니었지만, 타고난 괴력과 신체 조건은 쿠훌린의 사이얀족보다 나았기에 전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도 승선하라!"

"엘프의 힘을 보여주자!"

척척척척!

하이엘프 시노우엘이 설득해서 데려온 가이든 일족과 트아르 일족의 엘프 궁수 500명이 10척의 비공정에 올라탔다.

그들의 임무는 공중에서 접근하는 적들을 고슴도치로 만드는 것이다.

"드워프여! 이제 우리의 힘을 보여줄 때다!"

"포병대 승선하라!"

"가자!"

헬카인족 하버 족장이 드워프 포병대 600명을 10척의 비공정에 나눠 태웠다.

10척의 공격형 비공정엔 기간트가 한 기도 없었지만, 이계 병력이 가득 탔다.

그리고 이 비공정엔 드워프제 대포 16문이 탑재되어 있었다.

난 대포가 있는 비공정에 올라탔다.

대비행 시대에 맞춰 신무기의 위력을 확인할 생각이었다.

"와! 비공정이 50척이라니! 멋있다!"

앨리슨이 연신 감탄사를 흘렸다.

녀석은 자신도 이젠 성인이라며 함께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처음엔 반대했지만, 곧 허락했다.

대포와 엘프, 오크가 가득한 비공정이었다.

남쪽에 전선에서 우리를 위협할 것은 그 어디도 없었다.

"자! 수도로 향한다!"

"전군 항진하라!"

50척의 비공정이 위용을 뽐내며 차례로 수도를 향해 남하하기 시작했다.

이제 새로운 세상의 시작이었다.

164. 숙청.

164. 숙청.

[아베르크 제국 수도 에르가드]

쿵! 쿵!

육중한 기간트가 계속 황궁 성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어라!]

[어서 성문을 열어!]

400기나 되는 기간트가 황궁 정문으로 몰려왔다.

이들은 1군단과 서부군의 기사들.

수도 외곽에 주둔했던 두 군은 자신들의 지휘관들이 황궁으로 들어간 지 하루가 지났지만, 아무도 돌아오지 않자 이렇게 직접 찾으러 왔다.

하지만 두 시간째 성문을 두드려도 안에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러자 두 군의 영관급 지휘관들이 모였다.

서부군의 팔코네 대령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분명 내부에 일이 생겼소. 어서 들어가야 하오."

"하지만 문을 두드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지 않소."

1군단의 레오벤 대령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차라리 성문을 부수는 게 어떻겠소?"

팔코네 대령은 강하게 나가자고 말했다.

"황궁의 성문을 부수면 그건 반역이지 않습니까. 그러다 반역자로 몰릴 수 있습니다."

1군단의 쏨버트 중령은 반대했다.

"하지만 어제 연회에 참석한 사령관님과 군단장님, 그리고 장성급 지휘관들이 모두 연락이 되지 않소. 이건 내부에서 일이 생긴 게 분명하오. 성문을 부수더라도 빨리 들어가야 하오."

"저도 어제저녁에 갑자기 공군의 비공정이 와서 우리 비공정을 정비하겠다고 가져간 것이 걸립니다. 이건 분명 황태자 저하를 몰아내기 위한 쿠데타가 벌어진 겁니다. 그러니 당장 황궁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서부군의 리보 대령도 성문을 부수자는 의견에 동의했다.

"하지만 황궁 내부엔 근위 기사단이 있지 않습니까. 숫자는 적지만, 우리 제국에 그들을 단독으로 상대할 군은 없습니다."

쏨버트 중령의 말에 다른 장교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맞는 말이었다.

근위 기사단의 기간트는 100기가 조금 넘는 숫자였지만, 발데스 기사단장은 제국이 아니라 대륙에서 유일한 킹급 기간트 다라곤을 몰고 있었고, 부기사단장인 그란츠 백작 역시 13미터의 퀸급 오리지널 기간트 호마드에 타고 있었다. 그리고 오리지널 기간트가 6기나 더 있었고, 근위 기사단에 가장 약한 기체가 비숍급 기간트였다.

근위 기사단은 단일 군단 중에서 가장 강력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공군에도 오리지널 기간트가 많지 않습니까?"

리보 대령이 의문을 제기했다.

"하지만 요 며칠 수도로 온 공군의 비공정은 몇 척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호엘 삼황자 쪽은 빌란트 대영지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비공정도 없고요."

"하긴, 근위 기사단을 이기려면 비공정 20척에 기간트를 꽉 채울 정도는 돼야지."

지휘관들은 쏨버트 중령의 말에 수긍하면서도 성문이 열리지 않자, 고민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기사들은 답답해져 갔다.

지금 이곳에 모인 영관급 장교들은 나이는 다른 영관급 장교들보다 어리지만 모두 오리지널 기간트를 가진 능력자들로 실질적으로 대 기간트 전투를 이끄는 지휘관들이었다.

이들이 결정하면 다른 중간 지휘관들은 전부 따라오게 되어 있었다.

[성문이 열렸다!]

누군가 소리쳤다.

"뭐라?"

"어서 갑시다!"

1군단과 서부군의 오리지널 기간트가 앞장서서 황궁 안으로 들어갔고, 뒤를 이어 일반 기간트들도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멈춰라!]

기간트들이 삼 분의 일쯤 통과 했을 때, 퀸급 오리지널 기간트 호마드가 앞을 막았다.

그리고 근위 기사단의 기간트들이 앞으로 달려와 무기를 겨눴다.

[감히 황궁에 무단으로 기간트를 끌고 들어오다니! 제정신들이냐?]

퀸급 오리지널 기간트가 앞으로 나서며 기사들에게 호통을 쳤다.

기이잉! 쿵! 쿵!

그때 룩급 오리지널 기간트가 앞으로 나섰다.

[1군단의 레오벤 대령입니다! 저희 에히리 군단장님과 티아스 부군단장께서 어제 황궁으로 가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분들을 모시러 왔습니다.]

서부군의 팔코네 대령도 룩급 오리지널 기간트를 몰고 앞으로 나섰다.

[길라드 사령관님과 다비드 부사령관께서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저희 상관들은 어디 계십니까?]

[어디 계십니까?]

다른 오리지널 기간트들도 앞으로 나섰다.

그러자 뒤에 있던 기사들도 용기를 내 황성 안으로 조금씩 전진했다.

[무엄하다! 당장 멈추지 않으면 모두 반역으로 다스리겠다.]

그때였다.

고오오오!

위이잉! 위이이잉!

황궁 위쪽으로 십여 척의 공군 비공정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 대체 공군이 언제 온 거지?]

날렵한 비공정 한 척이 전진하던 오리지널 기간트 앞쪽에 내려앉았다.

그리고 비공정에서 두 사람이 천천히 내려왔다.

[윌리엄 원수와 시안 황자다!]

[저자들이 이곳에 있는 것을 보니 황태자 저하께서 진짜 당하셨나?]

기사들이 웅성거렸다.

"들어라! 프란 오르도 황태자와 보로스 추밀원장이 모반을 꾀했다. 그리고 발데스 기사단장, 서부군 사령관, 1군단장, 장성급 지휘관들이 그에 동조했기에 모두 처형됐다."

[뭐라고? 처형했다고?]

[황태자 저하와 군단장님이 죽었다니!]

[그분들이 모반이라니 말도 안 돼!]

기간트 장교들은 당연히 믿을 수 없었다.

만약 그런 징조가 있었다면 자신들이 몰랐을 리가 없었으니까.

그리고 이미 황실과 수도를 황태자가 장악했는데, 반역을 꾀할 리가 없었다.

[감히! 황태자 저하를 시해하고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오!]

[시안 황자와 윌리엄 원수가 황태자 저하를 살해했다!]

[저들은 반역자들이다!]

기사들이 흥분해 당장이라도 두 사람에게 달려들 것 같았다.

그때였다!

"황제 폐하 납시오!"

"황제 폐하 납시오!"

시안 황자와 윌리엄 원수가 갑자기 몸을 돌려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방금 두 사람이 내린 비공정에서 황제와 호위 기사들이 내렸다.

케인 오르도 황제는 휠체어에 타고 있었고 몸이 야위었지만, 아직 옛 얼굴이 남아 있었다.

[헛! 황제 폐하를 뵈옵니다!]

[황제 폐하를 뵈옵니다!]

쿵! 쿵! 쿵!

황제를 알아본 기사들의 기간트가 차례로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시안 황자가 황제의 뒤로 가더니, 호위 기사 대신 휠체어를 앞으로 밀었다.

"네놈들도 나를 뒷방 늙은이 취급을 하려는 게냐? 어서 기간트에 내려 제대로 예를 취하지 못할까!"

작은 목소리였지만, 위엄이 있는 목소리였다.

위이잉! 철컹!

기사들이 기간트에서 내려 무릎을 꿇었다.

"목이 아프다. 모두 내 앞으로 오라!"

1군단과 서부군의 기사들이 우르르 황제 앞으로 다가와 무릎을 꿇었다.

"그대들은 나의 기사들이냐? 황태자의 기사들이냐?"

"당연히 황제 폐하의 기사입니다."

"프란과 보로스는 나를 방에 감금하고 약을 먹였다. 그리고 제국과 황실을 마음대로 조종했다. 그것이 반란이 아니고 무엇이냐?"

황제의 말에 아무도 대꾸하지 못했다.

그건 사실이었으니까.

황제가 몸이 약해지고 아픈 건 맞지만,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프란과 추밀원장은 황제를 침대에 눕히고, 계속 안정제를 주면서 잠을 재웠고, 제국을 자신들이 유리하도록 운영했다.

거기에 근위 기사단장까지 합세하자, 그들의 행태를 외부에서 알 순 없었다.

발데스 근위 기사단장은 프란 황태자가 황제가 돼도 계속 근위 기사단장직을 맡긴다는 약속에 넘어갔다.

원래 황제가 죽거나 물러나면, 근위 기사단장도 물러나는 것이 관습이었다. 새로운 근위 기사단장은 새 황제의 최측근이 맡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발데스는 근위 기사단장직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는 욕심에 너무 쉽게 넘어갔다.

하지만 세상에 완벽한 비밀은 없는 법.

어떻게 하면 황태자와 추밀원장 숙청하고 황실을 장악할지 다방면으로 방법을 모색하고, 황궁 사람들과 뒤에서 몰래 접촉하던 윌리엄 사령관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그리고 어젯밤 황궁에서 큰 연회가 열린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언제 전쟁이 벌어질지 모르는데 황태자는 자신의 세력을 규합하기 위해 자주 연회 열었고, 어제는 장성급 이상의 지휘관들과 수도의 귀족들, 거기에 대신들까지 참석하기로 했기에 거사 일로는 가장 이상적이었다.

파티가 한창일 때, 윌리엄과 시안 황자가 가장 먼저 한 것은 기사들을 동원해 케인 황제를 은밀히 방에서 구해내 비공정으로 옮기는 것이었다.

각성제를 맞고 겨우 정신을 차린 황제에게 지금 제국의 상황을 말했고, 케인 황제는 그란츠 부기사단장을 조용히 따로 불렀다.

황제는 그란츠에게 기사단장직을 약속하고, 평소 친하게 지내던 부하 기사들을 포섭했다. 그란츠 백작 역시 모든 기사의 목표인 근위 기사단장직에 오르고, 대륙 유일의 킹급 기간트에 타고 싶었다.

하지만 이대로 프란 황태자가 황제가 되면, 자신에게 더는 기회는 없었다.

그란츠 백작이 퀸급 기간트와 근위 기사단의 기간트를 동원하자, 연회장 주변을 지키던 기간트와 병사들을 제압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피의 숙청이 이루어졌다.

황태자와 황태자비, 황태자의 자식인 황손들, 황태자를 따르던 군단장과 장성급 지휘관들, 추밀원장과 정보국장, 일부 대신들까지 황태자를 지지한 세력의 수장들은 그날 모두 목이 잘렸다.

케인 황제는 자신을 침대에 눕혀 무력하게 만든 이들을 증오했다.

늘 머리가 멍한 상태로 온몸에 힘이 없었고 계속 잠만 쏟아졌다. 겨우 한번 감기몸살로 누운 다음부터 한 발짝도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고, 자리에서 일어설 수도 없었다. 게다가 황후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케인 황제는 이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고, 정신이 조금이라도 돌아올 때면, 계속 주사를 놓았기에 병문안을 온 황자들과 대신들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결국, 황태자의 반역은 사실이었다.

"지금 제국은 위기에 빠져있다. 여기 있는 윌리엄 원수를 제국군 총사령관으로 임명하고, 시안 황자를 부사령관으로 임명한다. 다들 이들을 도와 제국을 지켜라!"

"충! 황제 폐하의 명을 받습니다!"

1군단과 서부군 기사들은 조용히 물러갈 수밖에 없었다.

***

황태자의 반란이 공표되고, 며칠 후 제국의 수도에 50기의 비공정이 날아왔다.

그리고 1군단과 서부군을 통합한 새 통합 사령부에 사령관이 부임한다는 소문이 퍼졌다.

"타일러 후작이라고?"

"그렇다니까, 방금 작전 장교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어."

"아니! 그 사람 황립 사관학교 출신도 아니고, 정보국 출신이잖아. 그런데 대장급 사령관이 된다고?"

"그렇다니까."

소문을 들은 기사들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다들 삼황자와 연합군의 기간트들이 속속 남부의 곡창지대인 빌란트 대영지에 집결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도 전에 아리칸 왕국에서 싸우는 거 봤잖아. 비숍급 오리지널 기간트도 잘 몰고, 부하들도 제법 잘 싸우고."

"그건 나도 봤지. 하지만 군단 규모의 병력을 지휘해본 경험이 없잖아. 게다가 우린 1,000기가 넘는 기간트를 상대해야 하는데, 지휘관이 고작 29살이야. 그가 감당할 수 있겠어?"

"조금 걱정이긴 하네."

그때 밖이 소란스러웠다.

1군단과 서부군 야영지 사이에 비공정 50기가 다가오더니, 고도를 차례로 낮췄다.

그리고 250기의 기간트가 내렸다.

쿵! 쿵! 쿵!

"오! 아리칸의 크루세이더 기사단이다!"

"아리칸 왕국이 우릴 도와주러 왔다!"

"와아아아!"

기사들과 병사들은 환호했다.

남부에 집결하고 있는 적들의 기간트는 1,000기가 넘는데, 1군단과 서부군은 기간트 400기로 막아야 했기 때문에 암울한 상태였고, 사기가 바닥까지 떨어진 상태였다.

그런데 마르틴 국왕이 직접 크루세이더 기사단과 기간트를 이끌고 왔으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그리고 맨 마지막 비공정에 착륙하더니, 처음 보는 기간트 한 기가 뛰어내렸다.

휘익! 쿠웅!

"어? 퀸급 오리지널 기간트다!"

"누구지? 마르틴 국왕의 기간트는 아닌데?"

1군단과 서부군은 모두 아리칸 왕국에서 함께 싸웠기에 아리칸의 기간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제국의 퀸급 기간트는 3기밖에 없었다.

저건 제국의 기간트는 아니었다.

위이이잉!

"해치가 열린다!"

치이익! 철컹!

해치가 열리고 키 큰 사내가 내렸다.

"어? 타일러 후작?"

"타일러 후작이다!"

기사들도 타일러 후작을 단번에 알아봤다.

"타일러 후작이 퀸급 기간트에 탄단 말이야?"

기사들이 경악했다.

165. 타일러 사령관.

165. 타일러 사령관.

[1군단 서부군 통합 사령부]

커다란 천막 안.

아리칸의 지휘관들이 한쪽에 서 있었고, 아베르크 제국의 영관급 지휘관들이 모두 천막에 모였다.

"차렷! 신임 사령관께서 들어오십니다."

척척척척!

지휘관들이 일제히 일어섰다.

난 마르틴 국왕과 안으로 들어갔다.

지휘관들이 날 보는 눈빛이 다르다.

내가 퀸급 오리지널 기간트에서 내렸기 때문이었다.

"다들 편히 쉬게."

내가 탄 퀸급 오리지널 기간트는 불의 탑에서 찾은 이데아 제국의 위대한 열두 기사인 불의 기사 카디스 렌블럼 후작의 갑옷을 기간트로 만든 것이었다.

솔직히 내가 이 기체에 타고 전투를 벌이기는 무리였다.

싱크로율이야 어떤 기간트를 타도 문제없었지만, 퀸급은 아직 마나량이 부족했다. 그리고 걷거나 달리는 정도는 문제없었다.

그리고 지금처럼 선전 효과론 그만이었다.

"내가 황제 폐하께서 임명한 통합군의 사령관이다. 여기서 통합군은 서부군과 1군단, 발레리온 영지군과 아리칸 왕국군까지 포함이다."

기사들은 내 말에 숨죽이고 있었다.

"다들 알다시피 우리가 싸울 삼황자 연합군은 빌란트 대영지에 집결했다. 저들의 전력은 우리보다 앞선다. 비공정 숫자도 많고, 기간트 숫자도 많다. 하지만 그래봤자 반란군이다. 살루스 왕국에서 오고 윈데르 왕국에서 오고, 2군단과 각 영지군에서 모였다. 한마디로 여기저기 긁어모은 병력이다. 하지만 우리가 누구인가?"

"역전의 용사들입니다!"

펠릭스 기사단장이 손을 들고 말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린 모두 인연이 있다. 다들 아리칸 왕국을 도와 탈로스 글론 연합군을 물리친 적이 있지. 특히 1군단은 나와 함께 베르카도 방어전에서 우리 2배의 적을 맞아 대승을 거뒀다."

1군단의 기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내가 적 비공정을 추락시켜 탈로스 타이탄 100기를 깔아뭉갠 것을 봤으니, 모를 수가 없겠지.

"그렇다! 우리는 이미 함께 힘을 모아 강대한 적을 맞이해 싸운 적이 있다. 그리고 승리했지. 이미 우린 하나의 군대고, 저들은 여기저기서 모인 오합지졸이다. 그러니 저들은 우리의 상대가 아니다!"

그때 마르틴 국왕이 손을 들고 나섰다.

"여기 타일러 사령관의 말이 맞소. 그때 여기 있는 제국의 기사들이 우리와 힘을 합쳐 싸웠기에 침략자들을 물릴 칠 수 있었소. 그랬기에 나와 아리칸의 기사들은 아베르크 제국이 아니라, 여기 있는 1군단과 서부군을 돕기 위해 날아온 것이오. 이번에도 함께 힘을 모아 저 간악한 무리를 격퇴해 봅시다."

"그래 우리가 이길 수 있어!"

"그때는 지금보다 적들의 타이탄 숫자가 더 많았잖아!"

다행인 것은 여기 있는 기사들은 한때 같은 전선에서 싸웠던 전우들이다. 그때 내 기사들도 이들을 도왔기에 섞이는 데 무리가 없었다.

"다들 싸울 마음이 들어서 다행이군. 그리고 아리칸 전선에서 활약한 오크 해병대의 일화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적 비공정을 공중에서 나포했지. 내가 이번에 우리 영지의 오크 해병대 600명을 이끌고 왔다. 그러니 공중은 걱정하지 마라! 그대들이 할 일은 당황한 적들을 몰아치는 것뿐이다."

지휘관들이 주먹을 쥐고 고개를 끄덕였다.

오크들의 무시무시한 활약을 일찍 보여준 것이 이럴 때 도움이 됐다.

"지금부터 새롭게 군을 개편한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펠릭스가 앞으로 나와서 새로운 통합군의 지휘체계를 설명했다.

설명을 끝낸 펠릭스가 호명했다.

"레오벤 대령 앞으로!"

레오벤 대령이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자, 살짝 당황한 표정으로 앞으로 나왔다.

"타일러 빈스 통합군 사령관의 권한으로 통합군의 준장으로 임명한다."

펠릭스가 말하고, 내가 앞으로 나섰다.

난 레오벤 대령의 견장을 떼고, 황금빛 별을 달아주었다.

"진급을 축하하네. 레오벤 준장."

"충! 감사합니다."

"앞으로 열심히 싸워주게."

레오벤 대령을 옆에 세웠다.

펠릭스가 팔코네 대령을 호명했다.

팔코네 대령도 준장으로 임명했다.

이날 천막 안에선 대대적인 진급 인사가 단행됐다.

대령을 준장으로, 중령을 대령으로, 소령을 중령으로.

그리고 오리지널 기간트에 탄 기사들을 일선 지휘관 자리에 앉혔다. 순전히 실력 위주의 자리 배치였다.

난 전투 전에 병력을 하나로 만들어야 했다.

그래야 적과 싸울 때 한 몸이 된다.

사기도 올려야 하고.

지금 가장 좋은 방법은 진급이었다.

그래서 위관급 장교들도 모두 한 계급씩 진급시켰다.

어차피 내가 급료를 주는 것도 아닌데, 크게 선심을 섰다.

그렇게 차근차근 통합군을 하나로 만들기 시작했다.

***

[발란트 대영지]

남부 제일의 곡창지대인 발란트 대영지.

기간트 생산은 하지 않지만, 기름진 땅에서 자라난 곡식들로 인해 옛날부터 부유한 영지였다.

지금 발란트 대영지에 수십 척의 크고 작은 비공정이 하늘을 뒤덮었다.

고오오오오!

거대 비공정 헬가우스 호가 영주성 위에 정지하자, 그 그림자로 인해 아래는 어둠에 잠길 정도였다.

잠시 후.

작은 비공정에 탄 호엘 삼황자와 지휘관들이 헬가우스 호로 이동했다.

"허! 실제로 타보니 더 엄청나군."

헬가우스 호에 처음 승선한 호엘 황자와 지휘관들은 다른 비공정보다 10배는 커 보이는 초거대 비공정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어떠십니까. 이 헬가우스 호를 직접 본 느낌이?"

라디프 바이마르 공작이 갑옷을 입고 나타났다.

호엘 황자는 장인을 바라보았다.

"아주 훌륭합니다. 이런 거대한 것이 하늘에 떠 있다니, 신기합니다."

"처음엔 멀미가 조금 나겠지만, 계속 타다 보면, 육지처럼 아주 편안해지실 겁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늦게 오셨습니까?"

"약속 시각에 늦은 건 아닙니다. 아시다시피 베른 대륙을 완전히 손에 넣는다고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이제 저항 세력까지 뿌리 뽑았으니, 그곳은 이제 제 왕국이 될 것입니다."

호엘 삼황자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거긴 제국의 식민지일 텐데요."

"험! 욕심이 너무 과하십니다. 이번 전쟁에 승리하기만 하면, 아베르크가 아니라 대륙의 황제가 되실 분께서."

"하지만 가디언 제국이 있지 않습니까. 그자들은 비공정도 많고, 마장기도 우리보다 훨씬 많습니다."

라디프 공작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자들은 아베르크 제국군과 총력전을 벌이고 나면, 힘이 많이 빠져있을 겁니다. 그때 이 헬가우스 호를 타고 저들을 공격하면 어렵지 않게 물리칠 수 있을 겁니다. 자! 보십시오. 이 거대한 비공정의 위용을!"

라디프 공작이 선원들을 향해 소리쳤다.

"전투태세를 갖춰라!"

"전투태세!"

땡떙땡땡! 사방에서 비상종이 울리고, 헬가우스의 선원들이 부산하게 움직였다.

여기저기 천막을 걷자, 이십여 개의 공성용 거대 발리스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거대한 갑판 난간에 500명의 궁수가 촘촘히 배치됐다.

마지막으로 가운데 갑판 통로가 열리며, 수백 명의 전투병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저들은 제 신무기인 강습병들입니다."

그들은 2미터 크기의 강습 갑옷을 입고 있었다.

"저 강습 갑옷은 모두 괴수 부산물로 만들었고, 무게를 줄이기 위해 비행석을 장착했습니다. 이 강습병들이 적들의 비공정에 올라타는 순간 전투는 끝난 거나 다름없습니다."

호엘 삼황자가 눈을 똥그랗게 떴다.

"언제 이걸 다 준비하셨습니까?"

"하하! 베른 대륙에서 식민지만 점령한 것이 아닙니다. 가디언 제국이 비공정을 늘린다는 소문을 듣고, 그들을 상대하기 위해 만든 것입니다. 우리가 하늘을 지배하면 저들은 우리를 공격할 수단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 헬가우스 호엔 50기의 기간트가 있습니다. 언제든 적의 수도나 대도시를 타격할 수 있습니다."

그때 2군단장인 스텐드 중장이 손을 들었다.

"저기,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만, 이미 아베르크 제국군엔 오크 강습병이 있습니다. 일전에 아리칸 왕국 전선에서 적 비공정을 나포해 크게 활약했다는 보고도 있고요."

호엘 삼황자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도 들었습니다. 숫자는 적지만 오크 강습병 열이 적 비공정에 올라타면 그 열 배의 병사들도 상대할 수 없다고 들었습니다."

라디프 공작이 살짝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가디언 제국도 아니고, 아베르크 제국에 저와 같은 생각을 한 자가 있다는 말입니까? 그자가 누굽니까?"

"타일러 후작입니다."

라디프는 인상을 찡그렸다.

타일러가 일전에 자신의 하이 엘프를 빼돌린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라디프는 다른 대륙에 있었기에 아무래도 아베르크 제국 내의 정보가 많이 부족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우린 숫자가 많으니까요. 이 헬가우스 호만 해도 강습병이 300명입니다. 그리고 우리 중형 비공정에도 30명씩 타 있으니, 숫자로 압도하면 그만입니다."

그때 스텐드 중장이 웃으며 말했다.

"그건 맞습니다. 아리칸 전선에서 활약한 오크 강습병이 100명 수준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숫자는 우리가 훨씬 많습니다."

"그보다 저들의 기간트 숫자는 얼마나 됩니까?"

호엘 황자가 미간을 좁혔다.

"이틀 전에 아리칸 왕국군의 기간트가 합류해 650기로 늘었다고 합니다."

"650기라 예상보다 저항이 심하겠군요."

"그래도 라디프 공작께서 기간트를 많이 이끌고 와 주신 덕분에 병력은 우리가 압도할 겁니다."

라디프 공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방심은 금물입니다. 하늘과 지상이 잘 연계돼야 큰 피해 없이 적들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수도와 황궁이 아닙니다. 수도를 장악한 다음엔 아베르크 제국군을 물리친 가디언 제국을 상대해야 합니다."

호엘 삼황자와 지휘관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언제 진군하는 겁니까?"

"가디언 제국과 약속한 시각이 사흘 후입니다. 그러니 그 전에 철저히 준비해야 합니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로군요."

호엘 삼황자와 라디프 공작은 큰 꿈을 꾸고 있었다.

***

전쟁의 시작은 가디언 제국의 병사들이 먼저 국경을 넘으면서 시작됐다.

기간트 같은 거대 병기와 비교하면 한없이 약한 병사들이었지만, 그들은 척후병들이었다.

기간트가 어디에 있는지, 적 비공정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는 중대한 임무를 맡고 있었다.

그리고 제국의 병사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이이잉! 쿵! 쿵!

드디어 선발대 마장기가 국경을 넘었다.

지상군이 먼저 대대적으로 움직였고, 하늘에선 비공정이 천천히 밀려오고 있었다.

"허! 비공정이 너무 많군."

지휘 비공정에 탄 윌리엄이 인상을 찡그렸다.

'안드레아스는 다른 사람보다 시간을 배로 가지고 있는 건가?'

그런 의심이 들 정도였다.

가디언 제국의 비공정은 수십 척이 아니라 수백 척이었다.

게다가 기간트 수송용이 아니라 오로지 공중 공격과 백병전을 염두에 둔 작고 빠른 전투용 비공정이 너무 많았다.

아마도 오크 해병대를 대항하기 위해 만든 것 같았다.

섣불리 달려들다간 수송용 비공정이 털릴 수도 있었기에 신중하게 움직여야 했다.

'타일러 후작이 빨리 와야 할 텐데······.'

***

[그르노블 대평원]

발란트 대영지 북쪽에 있는 곳.

삼황자와 연합군이 북으로 진군하고 다음 날 통합군과 마주쳤다.

"어이가 없군. 저 병력으로 정면 대결이라고?"

라디프 공작은 자신들을 막아선 기간트 400기가 우습게 보였다. 지금 지상엔 연합군의 기간트가 700기나 있었다.

자신의 비공정에 50기의 기간트가 있었고, 좌우에 수송용 비공정에 추가로 350기나 되는 병력이 있었다.

모두 합쳐 1,100기나 되는 대군이었다.

'그럼 나머지 250기는 어디에 있을까?'

그때 상대 비공정 25척이 모습을 드러냈다.

꼭 눈앞에 비공정에 기간트가 가득 타고 있다고 알려주는 것 같았다.

'눈속임인가?'

라디프 공작은 수도에서 출발한 비공정이 50기라고 알고 있었다.

그럼 저건 그냥 눈속임일 가능성이 컸다.

나머지 비공정 25기에 기간트가 있을 것이고, 자신들의 후미를 칠 수도 있었다.

'어설픈 작전이군.'

상대가 어떤 작전을 펼쳐도 자신은 자신 있었다.

이 헬가우스 호가 있는 이상 하늘에선 무적이었다.

"10척의 비공정이 앞으로 다가옵니다!"

장교의 말에 라디프 공작은 망원경으로 확인했다.

"겨우 10척이라니······."

라디프 공작은 고개를 흔들더니, 명령했다.

"전투용 비공정 30척을 보내라! 우리 강습병의 위력을 보여줘라!"

"네!"

기함의 신호를 받은 전투용 비공정 30척이 앞으로 나아갔다.

이 전투용 비공정엔 강습병과 궁수들이 타고 있었다.

라디프 공작이 망원경으로 보고 있는데, 갑자기 상대 비공정이 방향을 틀더니, 배의 옆구리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뭘 하는 거지? 들이박으라고 대주는 건가?"

그때였다!

비공정 선체에 8개의 작은 구멍이 생겼다.

그리고 구멍 밖으로 뭔가 시커먼 것이 불쑥 튀어 나왔다.

166. 나포하시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