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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

아무도 찾을 수 없는 산맥 깊숙한 곳.

그곳 한복판에 위풍당당하게 서있는 커다란 집.

바로 에고스트림 본부.

대한민국 제일의 빌런연합을 넘어, 이제는 한국 제일의 초상능력자 모임이 되어가려고 하는 그곳.

그리고 이 연합의 창립자인 수장인 나.

는 현재, 울고있는 서은이를 달래주느라 바빴다.

"흐윽...."

"괜찮아, 괜찮아."

하룻밤 기절하고 나서 깨어나자마자, 멍하니 침대에 앉아있다가 갑자기 두 눈에서 눈물을 주르륵 흘리던 서은이.

애가 깨어나자마자 갑자기 우니까 화들짝 놀란 나는, 이렇게 정신없이 달래주고 있었다. 아니, 뭐가 그렇게 서럽다고 울고 그래.

"흐윽.... 이길 수 있었는데..."

아, 그게 서러웠던거구나.

...근데 서은아, 어. 딱히 이길 수 있어보이진 않았는데...?

여전히 내 품에 안겨 훌쩍이던 서은이는, 이내 나한테 사과를 하기 시작했다.

"미안해요 오빠... 제가 조금만 더 잘하면, 이길 수 있던건데..."

"아니야. 괜찮아 괜찮아, 그리고 꼭 이겨야 되는건 아니였어."

"흑흑흑..."

이내 나는 우는 서은이를 품에 안아 달래주며, 조용히 생각했다.

사실 서은아.. 애초에 이거 이기면 안되는 싸움이었어...

에고스트림 자체가 스타더스한테 주기적으로 시련을 주려고 계획된 조직인데, 진짜 스타더스를 이겨먹으면 약간 곤란해진다고.

...아닌가? 오히려 지면 더 분발할려나?

그런 생각을 하며 서은이를 쓰다듬고 있을 때, 서은이의 등 뒤에 있는 방문쪽에서 수빈씨와 최세희의 얼굴이 빼꼼 나타났다.

아마 우는 소리를 듣고 온 모양.

최세희가 나한테 입모양으로 '들어와도 돼?'라고 물어보길래 살짝 고개를 끄덕여줬다.

그래. 애 달래는 것 좀 도와줘.

그렇게 방으로 들어온 최세희는, 이내 서은이한테 옆에서 말을 걸었다.

"야, 서은아."

"히익?!"

갑자기 옆에서 최세희의 목소리가 들리자, 화들짝 놀라는 서은이.

그러더니 다급히 내 품에서 떨어져 말했다.

"어, 언니?"

"그래. 네 언니다. 울지말고 이거나 봐봐."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휴대폰을 건네주는 최세희.

그걸 받은 서은이는 울어서 살짝 붉은 눈으로 화면에 띄워진 게시글들을 읽어봤다.

".....언니, 이게 뭐에요?"

"뭐긴. 이번 테러에서 너 귀엽다고 하는 글들이다. 어때, 좀 힘이나지?"

"...하. 언니, 제가 초등학생도 아니고 이런거 본다고 갑자기 기분이 좋아지고 그러겠어요? 저는 원래 남 눈치보는 사람이 아니에요."

서은아. 그런 말은 입가에 미소만 좀 지우고 했으면 더 좋았을거 같은데.

그렇게 서은이는 휴대폰을 한참을 봤다. 다른 게시글들까지. 어찌나 열심히 보던지 앞에 서있던 최세희가 '어... 이제 그만 주지?'라고 말할 정도.

그렇게 내 팬카페 글들을 열심히 읽은 서은이는, 아까까지 울던 모습은 어디가고 갑자기 힘이 났는지 주먹을 번쩍 쥐고는 말했다.

"....그래요! 제 테러가 이번 한번도 아니고, 앞으로도 남았는데 그때 이기면 되죠!"

갑자기 자신감넘치게 말한 서은이는, 이내 한손에 여전히 주먹을 꽉쥔 채로 앞에 앉아있던 나한테 조용히 비장하게 속삭였다.

"....오빠, 제 스타버스터 2.0은, 저번이랑은 다를거에요. 제가, 그렇게 만들꺼니까."

"어... 그래. 파이팅?"

"좋았어요. 언니!!!"

"으, 으응?"

"저 따라와요, 지하실로! 오늘부터 새로운 스타버스터를 만드는거에요!"

"야, 잠깐만!"

갑작스럽게 의욕에 가득차서 침대를 뛰쳐나간 서은이를 최세희가 황급히 쫓아갔다.

"..."

뭐.

어쨌든 기운 차렸으니까, 좋은게 좋은거겠지...?

참고로 뛰어가던 서은이는 중간에 거실에서 수빈씨한테 들켜 혼났다. 기절하고 일어나자마자 뛰어다니면 어떡하냐고.

저런.

***

"휴우...."

그렇게 서은이 문제도 잘 해결되고.

은월이랑 최세희랑 같이 침대에 누워있는 서은이랑 오손도손 떠드는거까지 보고 다시 거실로 나와 소파에 털썩 주저앉은 나는, 근처에 있는 리모컨을 조작해 티비를 틀어봤다.

[이번에 에고스틱이 새로운 테러를 일으켰는데요, 시민들 반응은 어떱니까?]

[네. 이번에도 역시 이변은 없었습니다. 사상자는 아무도 없었고, 인질들도 무사히 풀려났는데요. 특히 인질로 붙잡힌 사람 중 한명은 평소에 에고스틱의 팬이라, 더없이 행복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만 보자.

대충 채널을 계속 돌려서 영화가 나오는 곳으로 바꾸어 버린 나는, 이내 한숨을 다시 한번 푹 쉬었다.

"에혀...."

"다인오빠, 왜 그렇게 한숨이세요?"

그러자마자 근처 주방에 있던 이하율이 쪼르르 왔다.

나를 걱정된다는 눈으로 바라보는 그녀.

나는 그런 그녀한테 내 고민을 솔직히 말해주었다.

"아니... 분명 인기를 떨어트리려고 테러를 했는데, 아무런 소득이 없어..."

정말 이해가 안되는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언제부터 사람을 철장에 가둬 겁박하고 총으로 위협하는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단 말인가?

역시 이 세계의 대한민국은 어딘가 잘못됐다. 나는 열심히 성실하게 테러를 일으켰는데, 그걸 몰라주는 사람들이 이상한거지.

그리고 그런 내 말에 하율이는 약간 애매한 표정이 되서 말했다.

"....어, 오빠. 솔직히 말해서 이제는 오빠 테러에서 한명 죽지 않는 이상, 인기가 이대로 쭉 갈꺼같은데요. 사실 테러에서 사상자가 한명도 없는게 좀 이상하긴 하잖아요..."

말끝을 흐리면서도 소신발언을 마친 그녀.

나는 그러는 그녀한테 딱 잘라 말해주었다.

"...사람을 죽이는건 안돼. "

이곳에서 빌런이 되기로 마음 먹으면서 한가지 스스로와 약속한 것 한가지.

민간인을 죽이지는 않겠다. 웬만하면.

...아니 애초에, 사상자가 있건 없건 인질 붙잡고 살인미수를 몇십번 저질렀는데. 대체 어째서 그건 아무도 모른척 신경도 안쓰냐고.

"에휴... 근데 그래서 좀 문제네."

"오빠. 힘들어 보이시는데, 머리 맑아지시라고 제가 힐좀 해드릴까요?"

"어? 그래. 그래주면 나야 좋지. 고맙다."

내 말이 끝나자 나를 소파로 앉히더니 내 어깨를 주물러주는 하율이.

...?

"아니 하율아, 너 그 치유능력 써준다는거 아니였니?"

"이렇게 주물르면서 동시에 능력쓰는게 더 효과 좋으니까, 가만히 계세요."

"엄... 그래. 고맙다."

하율이의 안마는 시원했다.

...어쩌다 내가 안마를 받게된건진 잘 기억도 안나는데, 하여튼.

그렇게 그날 밤.

나는 혼자 내 방 책상 앞에서, 동영상 공유 사이트를 뒤적여봤다.

"와... 아니, 이게 그렇게 없다고?"

검색창에 에고스틱을 넣고 쳐봤더니, 어째 나를 욕하는 영상들은 다 어디가고 무슨 연예인 얘기하듯 다룬 영상들밖에 없다.

에고스틱_하이라이트, 에고스틱_매드무비, 세계가 놀란 K-빌런 에고스틱 뭐 이런것들.

...내 욕을 하는 애가 이렇게까지 없다고?

나는 그 순간에서야 큰 경각심을 느꼈다.

아니, 내가 전에 봤던 히어로 영화에는 거미줄만 쏘는 착한 히어로마저 어떤 할아버지 나오는 언론이 미친듯이 억까하면서 까던데, 이 세상에는 빌런인 나를 까는 사람이 없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에고스틱 비판'이라고 쳐봤다.

그러자 확 줄어드는 검색결과.

그나마 있는 영상들도 다 내 테러 초기에 올라왔던거라 없다시피 했다.

그렇게 심각한 얼굴로 스크롤을 내리던 그때.

"...있네, 하나."

딱 하나 있었다.

어떤 여성이 에고스틱은 테러범 아닌가요? 라면서 의아해하는 영상이.

당연?하게도 싫어요 테러를 받은 그 영상을 보며.

나는 무언가가 번뜩였다.

"...그래."

아무도 나를 억까하지 않는다면.

내가 스스로, 그 히어로 영화에서처럼 나를 억까하는 방송을 하나 만들어버리면 되는거 아닐까?

"....."

....나, 천재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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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으... 미안해요, 여러분 미안해요... 미안하다고!!!"

서울의 한 원룸.

그곳에서 컴퓨터를 보며 마우스를 딸깍이던 채나영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빽 질렀다.

그리고 눈물을 머금고 영상의 댓글창을 막아버렸다.

댓글을 막는 초강수를 둔 문제의 영상은 바로, 에고스틱 비판 영상.

"하아... 진짜, 어째서...."

그녀는 한숨을 푹 쉬었다.

채나영, 그녀는 기자다.

아니, 정확히는 기자였다. 이번에 잘리기 전까지만 해도.

홀로 다시 길바닥에 내려앉은 그녀는, 울며 겨자먹기로 동영상 공유 플랫폼에 채널을 하나 파 영상을 올리고 있었다. 자신이 제일 잘하는, 시사 관련 영상을.

구독자수도 별로 없어 겨우 입에 풀칠할 정도지만, 현재 그녀의 유일한 희망.

편의점 알바까지 두탕을 뛰어가며 열심히 운영하고 있던 채널. 그리고 이번에 새로 올린 영상이, 싫어요 테러를 받은 것이다.

"...아니, 에고스틱이 무슨 성역이야? 성역이냐고!"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빽 질렀다.

자신이 이번에 올린 영상은 빌런 에고스틱을 비판하는 영상.

정확히는, 그를 무지성적으로 추종하는 사람들을 비판하는 거였다. 아니, 빌런이잖아? 그런데 왜 지상파도 그렇고 그를 그렇게까지 심하게 비판하지 않는거지?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먼저 나서서 블루오션을 개척하기로 했다.

솔직히 자신 있었다. 아직 에고스틱을 까는 사람이 별로 없을때, 자신이 앞장서서 나서면 에고스틱을 비판하는 모든 반대파들을 흡수 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그 결과는.

폭망이었다.

".....하. 망했네. 이게 유일한 희망이었는데.."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자기도 모르게 울먹였다.

안그래도 조회수는 매번 하락중. 이제는 정말 먹고살길이 막막해질 지경.

심지어 월세도 못낼 위기에 처한 그녀는, 그만 싫어요와 악플을 받고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아. 다, 그만할까."

그리고 그녀는.

이내 초점을 잃은 눈동자로 중얼거렸다.

하하, 안될거야 아마.

로또라도 샀어야했나.

아. 이번 월세는 어떻게 내지.

그렇게 퀭한 눈으로 그녀가 있을 때.

띵동- 하고 알람이 왔다.

"....뭐지."

그렇게 중얼거리며 자신의 휴대폰을 열어본 그녀는.

순간적으로 눈을 비볐다.

"...뭐냐. 꿈인가?"

[DH님이 10,000,000원 후원.]

[안녕하세요 늘 영상 잘 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소신을 잃지말고 이런 영상 계속 만들어주셨으면 해요. 특히 이번 영상, 굉장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혹시 저랑 사업 하나 해보실 생각 없으십니까?]

"....에?"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휴대폰을 손에서 떨어트렸다.

***

"오빠.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좋은 생각이 아닌거 같은데요?"

"아니야. 이건 굉장히 좋은 아이디어야."

"아닌거 같은데...."

나는 서은이한테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말했다.

아니, 이제는 이 방법밖에 없다.

그리고 이게 제일 효율이 좋고.

대한민국에 에고스틱을 욕하는 언론사같은게 하나도 없다는건 정말 이상한 일이다.

따로 알아본 결과, 누가 조금이라도 비판적인 기사를 쓰면 우르르 사람들이 몰려가 싫어요 세례를 받는다는걸 깨달은 뒤로, 난 느꼈다. 이건 좀 바뀔 필요가 있다는걸.

내 목적은 스타더스에게 시련을 안겨주어 성장시키는 빌런이 되는 것.

사실 따지고보면 스타더스만 나를 빌런이라고 생각하면 오케이인 일이기도 하다. 내가 하는 모든 일들은 스타더스를 위해서니까.

다만. 지금처럼 사람들 모두가 나를 딱히 욕하지 않는다면 스타더스가 의아해 할 수도 있다. 막 스스로를 의심할 수도 있다고. 다른 사람들이 다 에고스틱을 딱히 안 싫어하는걸 보니까, 에고스틱은 빌런이 아닌가? 이러면서.

물론, 물론 우리 스타더스가 그럴리가 없다고 난 믿고있다. 정의감으로 가득 찬 스타더스가 나같이 악랄하기 짝이없는 빌런을 상대로 다른 이들처럼 그런 말도 안되는 의심을 할리가 없겠지. 다만, 아무리 그래도 나를 비판하는 곳이 단 한곳도 없는건 좀 문제다.

그래서 나는 결심한 것이다.

그래, 내가 아싸리 방송사를 하나 차려버리자.

에고스틱 비판전문 채널을 만들어버리는거다.

대한민국에 이런게 적어도 하나는 있어도 괜찮잖아?

라는 생각을 하자마자, 또 문제점에 부딪혔다.

아니, 내가 그런거 할 시간이 어딨어? 처음부터 열까지 다 하려고 하니까 힘들다.

그런 고민을 하다보니 내 눈에 들어온 것.

바로, 유일하게 나를 비판하는 영상을 올렸다가 싫어요 폭탄을 받은, 어떤 여자의 방송이었다.

험악한 댓글창과는 다르게, 영상은 꽤나 잘 만들어졌다. 편집실력도 깔끔하고, 여자 목소리도 마치 공중파 앵커처럼 또박또박하고.

그런 그녀의 영상을 홀린듯 시청하던 나는, 무언가를 깨달았다.

....잠깐. 생각해 보니까 굳이 내가 직접 할 필요없이, 이 여자를 키워서 나를 까는 영상만 만들게 하면 되는거 아닐까?

"..."

나는 즉시 떠오른 아이디어를 행동으로 옮겼다.

자, 입벌려 후원 들어간다.

우리 한번 진득한 대화를 나눠볼까?

***

"후흐..."

채나영.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계속 실실거리다가, 스스로 흠칫하고 놀랐다.

그래, 이렇게 좋아해서만은 안되지.

일하자, 일.

"...예쓰!!!"

그러나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침대에서 번쩍 뛰어올랐다.

그래.

이대로 나락으로 갈꺼같던 그녀의 인생에도, 한줄기 구원의 빛이 내린 것.

바로 그녀에게 후원자가 생긴것이다.

그것도, 자신의 능력을 인정해주는.

자신한테 밑도끝도 없이 갑자기 천만원을 후원해준 그 의문의 후원자.

화들짝 놀란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그 후원자분과 연락을 하게 되었고.

이내 그와 많은 대화를 하게 되었다.

자신을 그냥 아이디 [DH]로 불러달라고 한 그 익명의 남성, 아니. 그 분. 그 분은 자신의 제일 최근 영상이 몹시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그래, 에고스틱을 비판했던 그 영상이.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에게 남는 건 돈 뿐이니, 팍팍 밀어줄테니까 한번 에고스틱 그놈을 진득하게 까보라고 하셨다. 앞으로 나올 영상의 퀄리티를 보고, 더 후원. 아니, 더 투자 해주실 수도 있다고.

그렇다.

그녀는 재벌 2세로 추정되는 사람한테 간택받은 것이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그 의문의 후원자를 향해 중얼거렸다.

솔직히 말해서 그녀는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이게 현실이라고? 갑자기 돈이 넝쿨채 굴러들어왔는데?

그리고 느껴지는 후원자분에 대한 경의.

그래... 이게, 사랑인걸까?

그녀는 지금 후원자를 거의 숭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같이 미천한 사람을... 어찌감히...

"그래... 이럴때가 아니지."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 기회.

인생에 정말 한번 올까말까한 이 기회를 놓칠수는 없다. 절대로.

후원자분이 자기를 찝은 이유는 에고스틱을 까는 그 영상때문.

즉, 그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그녀는 분발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날 즉시 그녀는 그가 후원해준, 아니. 투자해준 돈으로 스튜디오를 하나 빌렸다.

그래. 나 채나영.

나의 저력을 꼭 후원자님한테 보여줘서, 인정받고 말겠다.

내가 한다면 하는 여자라는걸.

이 세상에서 에고스틱을 자기보다 더 찰지게 깔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다는 걸.

***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하아... 하아..."

마지막 최종편집까지 마친 채나영은, 컴퓨터앞에 털썩 쓰러졌다.

"...하얗게, 불태웠어..."

영상 하나 만드는데, 그녀가 할 수 있는 모든걸 쏟아부었다고 자부할 수 있다.

로고만 있으면 공중파 9시 뉴스급 퀄리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모습.

이 고퀄리티의, 대단히 공신력 있어보이는 영상의 내용은 알차게 에고스틱을 욕하는 내용으로만 담았다.

오로지 단 한분, 자신의 후원자를 위해.

"후원자님... 보고 계십니까? 당신을 위한 심퍼니입니다..."

그렇게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영상을 새로 판 채널에 업로드했다.

자.

주사위는 굴려졌다.

***

내가 채나영이라는 유튜버한테 후원을 해준 뒤, 대단히 생산적인 일을 한지 일주일 후.

사실 한 주나 지나서 거의 까먹고 있었는데.

띠링하고 폰이 울려서 봤더니, 그녀가 영상을 하나 올렸다는 알림이 왔다.

"아, 드디어 올렸나. 어디한번 봐볼까?"

그리고 내가 본 영상은.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

처음부터 끝까지 에고스틱을 쉴세없이 까는 영상.

그것도 엄청난 퀄리티로, 마치 뉴스처럼 제작된 그 영상은.

그야말로 내가 딱 원하던 거였다.

그리고 난 그때 깨달았다.

...이거, 물건이다.

크게 될 수 있다.

그런 판단을 마친 즉시, 나는 서은이한테 달려갔다.

"서은아! 주작기 있지?"

"에. 네? 주작기요?"

"그래. 유튜브 조회수 주작기. 그거 빨리 써, 이 영상 실시간 인기영상 1위로 만들자."

"아니, 이게 뭔데요. ...이걸요?"

"그래. 내 감이 말해주는데, 이건 각이 나왔어. 얘 밀어주면 뜬다."

"네? 아니... 참... 스읍... 일단 알았어요."

그렇게.

대한민국 유튜브 실시간 인기 영상 1위에.

[잔인무도한 사이코패스 빌런 에고스틱, 그의 추악한 일면을 정리해보자]가 등극하는, 희대의 이벤트가 일어났다.

***

신하루.

그녀는 한주간 제일 생각을 많이한건, 언제나 똑같듯 에고스틱이었다.

대체 그가 같은 집에 산다는건 무슨 소리인가.

동료들이랑 가족같이 친하다고? ...자신은 그에대해 아무것도 모르는데, 그는 동료들이랑 가족같이 한집에서 지내는 걸수도 있댄다.

자신은 그에 대한 작은 정보 하나, 이름하나 모르지만 그의 동료들은 가족이라던데 당연히 그정도는 알겠지. 자신은 아무리 애를 써도 모를 것을.

그리고 그 테러.

이번에 일으킨 테러는 대체 뭘 워한 테러였던걸까. 기껏 인질까지 붙잡더니, 털끝도 안건드리고 또 풀어줬다. 애초에 인질을 잡은건 별다른 이유는 없고 스타더스 자신을 부르기 위함이라는 것처럼.

...그러면 대체 이번 테러는 왜 일으킨거란 말인가. 무슨 목적으로?

그리고 그런 그녀의 직감이 말하기를.

...어째, 이번 테러는 에고스틱 그가 자신이 빌런이라는걸 호소하기 위해 한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말도 안되는 자신의 망상이겠지만, 그냥 그런 생각이 자신도 모르게 들었다.

...에고스틱. 그를 정말 나쁜놈이라고 봐야하는 걸까. 그를 빌런이라고 할 수 있는가?

또 그런 생각을 하던 신하루는, 자신도 모르게 머리를 져었다.

...에고스틱은 당연히 악당이다. 잔인한 악당. 자꾸 이상한 생각을. 헛된 망상을 해서 약해지면 안된다.

에고스틱은 분명한 빌런이고, 자신은 그를 잡으면 된다. 끝.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자연히 머리가 아파지던 신하루는, 한숨을 쉬며 유튜브나 들어갔다. 음악이나 들을까 하고.

그리고 그런 그녀에 눈길을 사로잡는, 실시간 1위라고 적혀있는 커다란 썸네일의 영상.

[잔인무도한 사이코패스 빌런 에고스틱, 그의 추악한 일면을 정리해보자]

그 제목을 본 그녀는, 홀린듯 영상을 눌렀다.

그리고 시작되는 영상에서는 한 앵커저럼 보이는 여자가 나와, 침착한 목소리로 지금까지 에고스틱이 저질렀던 악행들을 조목조목 읊기 시작했다.

민간인들이 탄 배를 폭탄으로 터트릴려 하기, 기차 선로에 사람 묶어두기, 비행기 떨어트리기, 다리 폭파 기물 파손 등등.

지금까지 에고스틱이 저지른 악행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말하던 앵커는, 마지막에 가서는 격양된 목소리로 외쳤다.

[이런 잔인무도한 사이코패스같은 미친자식을 당장 집어넣어야 합니다!! 국민 여러분, 속지 마십쇼! 그는 구제불능한 미친 쓰레기고, 당장 사형시켜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세상에 나쁜놈이 있다면 그건 이 개만도 못한 에고스틱일겁니다!!!]

그렇게 흥분한 여성의 일갈로 끝난 영상.

그 밑에는 무수히 박힌 싫어요들이 범람하고 있었고.

댓글창에는 수많은 욕들이 난무했다. 물론 에고스틱이 아닌, 앵커에게.

그리고 그 영상을 끝까지 본 뒤.

여전히 멍하니 있던 신하루는, 조용히 생각했다.

"....."

...아니, 에고스틱이 물론 나쁜놈은 맞지만.

그래도, 그래도 이건 너무 심하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던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영상의 댓글창에 댓글을 적고있는 자신의 손가락을 발견했다.

[Newday313][이거는 좀 너무 억지로 까는거 같네요. 논리도 빈약하고요. 에고스틱이 이렇게까지 나쁜놈은 아닌거 같습니다.]

거기에 바로 댓글 등록까지 해버린 그녀는, 조용히 생각했다.

...그래. 이건 일종의 정의구현이다.

아무리 상대가 빌런이라고 하더라도 이렇게 욕까지 하면서 까는건 아니지, 암.

솔직히 이정도면 에고스틱이 불쌍한거니까. 응. 너무 욕을 심하게 했으니까... 어쩔수 없는거야.

그렇게 신하루는 내친김에 영상에 싫어요 표시도 꾸욱 했다.

...왠지, 에고스틱이 욕먹는 영상을 보니 자신이 기분이 나빠지는,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을 품은 채.

***

"와. 오빠. 오빠 까는 영상 좋아요 대 싫어요 비율 1대 10000을 돌파했어요. 거의 역대 최고 기록인데요?"

놀리듯 나한테 말하는 서은이를 보며, 나는 말해줬다.

"서은아. 그건 아무 의미 없어."

그래.

이건 사실상 스타더스, 신하루 한명만 보라고 만든 영상이다.

분명 휴식시간에는 유튜브를 보는 그녀니, 분명 이 영상도 봤겠지.

그녀가 이걸 보고 다시한번 내가 얼마나 나쁜지 깨닫고, 나에대한 적개심을 활활 불태운다면 그걸로 난 됐다.

비록 댓글창은 나를 커버쳐주는 사람들로 한가득이지만, 거기에 스타더스가 있는건 아닐테니 상관없다.

"그래... 그거면, 된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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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고스틱에 대한 건설적인 비판의 장을 만들기 위해 계획한, 안티-에고스틱 방송 만들기. 일명 반-에고스틱 언론사 만들기는, 따지고 보자면 성공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지금은 싫어요 테러를 당하는 등 분위기가 안좋아보이지만, 원래 선구자는 욕을 먹는법. 계속하다보면 언젠간 인정받을 날이 올거다.

그래서 그런 의미로 투자를 해서 아예 스튜디오를 하나 만들어버렸다. <데일리 빌런>. 말이 데일리 빌런이지, 사실 에고스틱 전문 방송이라고 할 수 있다. 투자금을 다 내가 댔으니 당연히 내 입김이 꽤나 들어가겠지만, 그래도 채나영 그 여자가 혼자서도 알아서 잘 하는것처럼 보여서 믿음직스러웠다.

근데 그거랑 별개로, 이 채나영이란 여자가 나한테, 엄, 너무 부담스럽게 굴어서 좀 문제다. 계속 후원자님은 제 은인이에요 이러는데, 진정해.

...생각해보니까 좀 웃기긴 하다. 나는 후원자라고 거의 숭배하듯 우러러보면서, 정작 하는일은 그 후원자를 욕하는거잖아? 물론 그녀는 내가 에고스틱이라는걸 모르니 그렇게 된거지만, 모든걸 아는 입장에서는 묘하긴 하다.

하여튼 아직은 미약하지만, 시간이 차차 지나면 꽤나 효과가 있을 거라고 개인적으로 예측한다. 언젠가는 모든 대중이 날 잔인무도한 사악한 빌런이라고 생각할 날이 오겠지. 암, 그렇고 말고.

하여튼 이 문제는 일단 됐다.

이런게 중요한게 어디지.

"...어디보자..."

나는 봉인된 내 공책을 꺼내놓았다.

원작을 통해 아는, 앞으로 미래에 일어날 일들이 정리되어있는 이 다이어리.

그것을 보며 나는 침음했다.

"...하아. 산넘어 산이구만."

앞으로 등장할 빌런들을 대략적으로 보니, 머리가 지끈거리는 기분.

솔직히 이제는 스타더스가 꽤나 강해져서 어지간한 적들은 전부 무력으로 때려 부수지만.

문제는 기믹형 빌런들이다. 독가스를 뿌린다던가, 대규모 학살을 한다던가 그런 놈들. 스타더스가 잡는다 하더라도 이미 수많을 피해자를 낼 놈들.

...물론 내가 이 세계를 원작과는 꽤나 다르게 바꾸긴 했지만, 그건 원래 죽었을 사람들을 살린거지 살았을 사람들을 죽인게 아니라 별 의미가 없다. 결국 원작에서 등장했던 이 빌런들은 아마도 높은 확률로 등장할거란 말.

그리고 월광교. 얘네도 문제다.

대망의 2페이즈 최종보스인 이 교주녀석. 벌써부터 골치가 아프고, 최종장이랑 연계를 생각하면 이것저것 골때리기는 한데. 이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3페이즈도 이제 슬슬 대비해야된다. 그때가 되면 세계가 진짜 미쳐 날뛰는데, 아마 그 상황에서는 나 혼자서 지금처럼 다 처리할 수는 없을거다. 협회랑 어느정도 협력을 해야겠지.

협회와의 협력은 뭐, 이미 이설아를 내편으로 꼬드긴 시점에서 반쯤은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섀도우워커랑 협회장, 둘만 더 끌어드리면 협회도 내 손에?

아, 또 미래를 생각하니 머리가 아프네.

좋아. 이건 나중에 생각하고.

지금 당장 닥친 일만 한번 봐보자.

"좋아. 이제 다음에 일어날 메인 이벤트가... "

그렇게 노트를 넘기던 나는 멈칫했다.

그래, 이제 이거 차례구나.

나는 노트에 내가 예전에 적어놓았던 글씨를 바라보았다.

[섀도우워커 여자친구 살인 사건]

"....."

좀 쉬나 했더니.

또 바쁘겠구만.

***

이 세계관의 대한민국에는 3명의 A급 히어로가 있다.

서울의 스타더스.

부산의 아이시클.

그리고 저녁의 섀도우워커.

밤에 한정해서는 절대적인 위력을 내는 그는, 원작 만화 초반부까진 별로 등장도 안한다. 애초에 거의 저녁에만 활동하니 스타더스랑 만날 일도 없고.

그러나 내가 분명 이 세계관이 무엇이라고 했었나.

이 지구는 멸망직전까지 가는 피폐한 세계.

즉, 히어로인 섀도우워커도 피폐의 마수를 피하지 못했다.

그중 그의 인생이 피폐해지기 시작한다는 신호탄을 쏜게 바로 그의 여친 살인 사건.

그에게 큰 정신적 지주였던 여친이 갱단에 납치당해 인질로 묶였다가, 끝내 살해당하는 사건.

그전부터 안그래도 경미한 우울증을 갖고 있던 섀도우워커는, 순식간에 나락행 열차를 타게 된다.

그렇게 갖은 피폐의 시련이 닥치고, 결국 흑화엔딩.

...아, 그거 생각하니까 골 때리네.

하여튼 결론은, 그의 여자친구가 죽는게 결과적으로 안좋은 일이라는거다.

그러니까 살려야지.

이제 슬슬 준비해야겠구만.

그런 결심을 마친 나는 거실로 나왔다.

거실에 들어오자마자 보이는, 서은이와 은월이.

거실 식탁에 추욱 늘어진 서은이는, 백은월한테 중얼거리고 있었다.

"여행... 여행이 가고싶어."

"...생각해보니, 전 태어나서 한번도 여행을 가본적이 없네요."

"뭐 진짜?"

"네... 기억 날때부터 월광교에 갇혀 살았으니까요."

"그럼 바다는 본 적 있어?"

"....당연히 본 적은 있죠. 다만 그때는 교주를 따라 사람들한테 전도하러 갔을 때 잠깐 멀리서 본거라, 들어가서 논적은 한번도 없네요.

"와 진짜?"

...서은아, 그. 너도 저번에 나랑 수빈씨랑 놀러가기 전까지는 바다 한번도 가본적 없지 않니? 왜 그렇게 놀라는거야.

그런 생각을 품고 내가 거실로 다가가자, 나를 본 서은이는 반색하며 말했다.

"오빠! 우리 여행가요, 바다로!"

"바다?"

"네. 저랑 오빠랑 수빈언니랑, 세희언니랑, 하율언니랑, 은월이랑, 데식이 아저씨랑 차윤이 다 같이 바다 한번 가는거에요. 어때요?"

나한테 눈을 빛내며 그렇게 말하는 서은이.

거기에 옆에있던 은월이도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보는게, 여행에 관심이 있어보이는 눈치였다.

...여행, 여행이라.

생각해보니 마지막으로 서은이랑 수빈씨랑 부산 놀러갔던거 빼고는 다같이 여행을 가본적이 없네.

요즘 너무 바쁘게 살아오긴 했지.

....그래, 여행이라.

"좋아. 나중에 한번 가보자. 다같이."

"진짜요? 야호!"

"뭐야, 우리 여행가?"

그렇게 서은이와 은월이가 신나하고 있을 때, 방금 막 일어났는지 최세희가 눈을 부비며 걸어들어왔다.

"네. 언니, 지금부터 한번 우리끼리 알아봐요. 은월이가 바다 한번도 가본적이 없다니까 바다 어때요?"

"바다? 좋지. 이많은 인원이 다가면 아예 펜션이라도 빌려야 할려나? 한번 알아볼까."

"좋아요!"

물흐르듯 갑작스럽게 진행되는 여행얘기.

이렇게 좋아할 줄 알았으면 진작 여행 한번 갈껄 그랬나?

그런 생각을 하던 나는, 뭔가를 잊은듯한 찝찝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잠깐. 내가 왜 거실로 나왔더라. 여행말고 다른 할 얘기가 있었는데.

아 맞다.

"서은아, 서은아. 일로와봐."

"왜요 오빠?"

내가 부르자마자 쪼르르 달려오는 서은이.

나는 그런 서은이한테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해줬다.

"서은아."

"헤헤... 네?"

"오빠가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

"네! 뭐든 해보세요!"

"여자 한명만 CCTV 해킹해서 감시해줄래?"

".....네?"

아까까지만 해도 방긋 웃고있던 서은이의 눈과 입꼬리가 착 가라앉았다.

아니, 이상한거 아니야.

다 세계를 위해서 이러는거라고.

그렇게 서은이한테 상황을 잘 설명해주고서야, 나는 서은이의 협조를 받아낼 수 있었다.

좋아... 이 준비는 완료되었고.

이제 아이시클, 이설아만 만나러가면 되겠네.

***

하여튼 그렇게 일은 착실히 계획되고 있었다.

섀도우워커의 폭주를 막아라. 제 1단계. 여친 살려주기.

"다인씨. 제 말 듣고있어요?"

"응? 아, 당연히 듣고있지."

유성기업 사장실.

정기적으로 하는 이설아와의 대담에서, 그녀는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하아. 제가 어디까지 말했죠? 네, 하여튼 일이 좀 꼬이고 있어요. 다른 기업들은 하나 하나 인수하고 있는데, 정치권이 문제네요."

"잘 안돼?"

"말도 마세요... 제말을 듣는둥 마는둥 하는데. 그냥 그놈들을 다 얼려버리고 싶다니까요. 이제 대선도 얼마남지 않았는데, 진짜 뭐하자는건지.. 하아."

이설아는 그렇게 나를 붙잡고 자신의 대한민국 정치권 장악 프로젝트가 표류하고 있다고 한동안 징징거렸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말을 들으며.

"...하하, 힘들겠네."

나는 살짝 식은땀을 흘렸다.

...나 때문인가?

원작에서는 월광무녀의 서울 테러 이후 정부청사같은게 전부 부산으로 옮겨지면서, 부산 토박이인 이설아의 위상이 상대적으로 엄청 강해졌었다.

그래서 정부도 굉장히 쉽게 먹었던걸로 기억하는데...

"진짜 김만복 그놈은!! 아흑... 머리야."

"...하하."

맞는거같다. 원작에서는 분명 쉽게쉽게 정부도 장악했다고 나왔는데, 지금 저렇게 머리를 싸매고 있는걸 보아 잘 안풀리는 모양.

그렇게 죽는소리를 하는 이설아를 보며, 나는 괜사리 좀 미안했다. 아니 그래도, 서울이 망하게 둘 수는 없었잖아....

결국 죽는소리로 시작한 이설아와의 대담은 결국 그녀가 요즘 힘드니 우리집에 한번 놀러와보고 싶다는걸로 결론이 났다.

...결론의 상태가 이상한데, 하여튼.

***

그 이후로도 일상은 나름 평범하게 진행되었다.

나는 다음 테러 기획하고, 에고스트림 멤버들은 여행 어디갈지 알아보느라 바쁘고, 서은이는 틈틈히 섀도우워커 여친 감시하고,

그렇게 평범하게 지내던 어느날.

"오빠! 그 여자가 갑자기 이상한 남자들한테 끌려갔어요!"

거실에서 최세희랑 같이 리듬게임 2인배틀을 하고있던 나한테, 서은이가 달려와서 다급히 소리쳤다.

"뭐라고!"

나는 당장 패드를 던져버리고 외쳤다.

아니, 생각보다 빨리 일어났는데?

나는 서둘러 준비하기 시작했다.

좋아, 빌런의 시간이다.

***

섀도우워커, 김자현.

그는 방안에 틀어박혀 있었다.

저번 월광무녀 사건 이후, 살짝 우울증에 걸린 그.

늘 해가 진 밤이 도래한 시간에는 무적이라는 자신감이 있던 그는.

월광무녀한테 처참히 지고 나서, 그야말로 멘탈이 박살났다.

밤.

밤은... 내가 최강이 아니었어?

처음으로 자존심에 큰 스크레치를 입은 그는.

그렇게 우울감에 빠져 방안에 틀어박혀 하루하루를 자괴감에 빠진 채 살았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힘이 되었던건, 그의 여자친구.

자신을 늘 응원해주던 그녀덕분에, 섀도우워커는 점점 힘을 낼 수 있었다.

"...근데, 왜 연락이 안되지?"

그런데 그날은 뭐가 이상했다.

늘 연락이 잘되던 그녀가 갑자기 연락이 끊긴것.

그래서 김자현 그가 걱정에 빠져있을 때.

갑작스럽게,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지."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문으로 다가간 그는, 뭔가 이상하다는걸 깨달았다.

...노크소리가, 문에서 들려오고 있지 않았다.

현관문이 아닌, 옆에 창문에서 들려오고 있었다는 것.

"아니 시발. 뭐야."

황당함을 느낀 그가 창문을 벌컥 열었고.

그렇게 10층 상공에서.

"안녕하십니까, 섀도우워커씨. 에고스틱이라고 합니다!"

가면을 쓴 A급 빌런이 제발로 찾아와 인사를 건냈다.

"...."

김자현은 자신이 꿈을 꾸고있는건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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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 협회.

사실 각종 히어로물들에서 늘 모든 히어로들을 총괄하는 협회같은 단체는 꼭 등장한다.

그리고 그런 단체들의 공통점은, 꼭 내부의 적에 의해 무너진다는 것도 똑같고.

이 세계관의 협회도 마찬가지다.

무능하지만 그래도 양심은 있는 협회장에 의해 초중반까지는 어찌어찌 굴러가던 협회는, 결국 후반부에는 빌런 세력에 완전히 먹혀버린다. 그리고 교묘하게 히어로들을 이끌어 자멸과 내분으로 이끄는 등, 대한민국 막장화에 큰 기여를 한다.

그거말고도 이런 저런 이유들이 있는데, 한줄로 정리하면 이거다.

아이시클과 섀도우워커.

큰거 안 바라고 딱 두명. 딱 두명만 포섭하고 보자.

그렇게 나는 원작에 나온 섀도우워커를 떠올려봤다.

밤에는 무적이란 특수한 능력때문에 프라이드가 강하고, 그에 따라 스스로가 굉장히 똑똑하다고 생각하고, 그런 자신의 믿음과는 다르게 어... 그래. 항상 피곤해서 뇌를 저전력으로 운영하는건지, 애가 좀 단순하다. 원작에서 봤는데, 어. 강력한 능력과는 다르게 좀 많이 단순하더라고.

그리고 어쨌든 그보다 제일 중요한건 여자친구를 굉장히 아낀다는 거다

그럼 그런 그의 친구가 되기 가장 좋은 방법은 뭘까?

아! 걔 여친을 구해주면 되지 않을까?

그래서 내가 여기 왔다.

"안녕하십니까, 섀도우워커씨. 에고스틱이라고 합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산뜻하게 웃어줬다.

원래 첫만남이 모든걸 결정하는 법. 첫인상에 웃는 모습을 보여 호감도를 올리겠다는 나름의 계략으로 웃은거다. 물론 원래 웃기는 하지만, 하여튼.

그렇게 대략 밤의 10층 높이는 되는 아파트에서.

찬 바람을 맞아가며, 나는 창문 너머의 섀도우워커에게 인사를 건냈다.

그리고 그런 내 인사를 받은 섀도우워커는.

"....내가 지금 꿈을 꾸는거냐?"

살짝 황당해 보이는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부스스한 머리에, '나 피곤해요'를 광고하듯 눈 밑에 그려져 있는 다크서클까지. 심지어 여전히 잠옷까지 입고 있는 모습.

그런 그는, 이내 여전히 무슨 상황인지 이해를 못하겠다는 듯 부스스한 머리를 손으로 털더니, 나를 보며 계속 말을 이었다.

"....아니지, 분명 현실인데. 그럼 넌 뭐냐? 자수하러 온거냐?"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나를 바라보는 그.

머리가 어지럽다는 듯 이마를 부여잡는 그에게, 나는 여전히 씨익 웃은 채 입을 열었다.

"그럴리가 있겠습니까? 당연히 다른 이유로 찾아왔죠."

"아니... 그전에 내 집은 대체 어떻게 알고 찾아온거야? 뭐냐 대체...."

"제가 지금부터 중요한 말을 할겁니다. 잘 들으세요."

"....그냥 내가 널 여기서 붙잡고나서 들으면 안되냐?"

"일단 이건 제가 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흥분하지말고 잘 들어보세요."

"....아니. 네 입장에서 생각해봐라. 네가 밤에 있는데 히어로가 네 집 창문에 똑똑하고 창문을 두들기면 흥분 하겠어 안하겠어?"

"제가 한건 아니고 저도 들은건데."

"...뭐. 뭔데."

"당신 여자친구가 무슨 갱단한테 납치당했답니다."

"..."

그리고 내가 그 말을 내뱉은 그 순간.

아까까지만 해도 어리버리해 보이던 그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아니 시발 제가 한거 아니라고 했잖아요. 그거 낫 치워봐."

나는 어느새 자기 손에 그림자로 이루어진 낫을 소환한 그를 보고 심드렁이 말했다.

내 이럴줄 알았지, 빌런은 서럽다 서러워. 좋은 일을 해도 의심을 받으니, 이거 억울해서 살겠어? 어?

"....네가 한거 아니라고?"

"아니 좀 생각해보세요. 제가 한거였으면 왜 여기와서 굳이 맨투맨으로 통보하겠습니까? 그냥 방송키지."

"...그래. 방송. 너 지금 이거 방송킨거 아니야?"

"이상한 소리는 하지 마시고, 이건 오프 더 레코드입니다. 당신과 저만의 대화죠."

"아니 시발... 숙희, 숙희가 납치당했다고? 넌 그걸 어떻게 알고있는데?"

"제가 모르는건 이세상에 없다, 그렇게만 알고계시면 됩니다. 그리고 자, 여기입니다."

갑작스러운 내 말에 패닉에 빠진 그를 보며, 나는 휙 하고 지도 한장을 건네줬다. 사실 벌써 줄 생각은 없었는데, 얘가 슬슬 멘탈이 빠르게 무너지는게 보여서 일단 건네주고봤다. 조금만 지체하면 '네가 납치했지?' 하면서 저 낫을 나한테 휘두르게 생겼었다고.

".....이게 뭐냐."

"뭐긴요. 당신 여자친구분이 납치당했다는 공장지대 좌표입니다. 선물이에요."

"..."

그리고 내 말이 끝나는 즉시, 그는 그림자이동으로 그냥 텔레포트해서 사라졌다.

....? 그냥 갔어?

".....음, 어. 바로 갔네."

그렇게 나는 휑한 창 밖에서, 홀로 서있었다.

...아니, 아무리 정신이 없다 해도 나는 뭐 딱히 공격해서 묶어둔다거나 하지도 않고 그냥 사라져버렸네.

애초에 저게 함정이었으면 대체 어쩌려고 저러는거지? 물론 밤에 섀도우워커를 위협할 수 있는게 뭐 얼마나 되겠냐만은 그래도.

"베히모스야, 아쉽게 됐다."

나는 내 코트안에 챙긴 베히모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해주었다. 베히모스 좀 오랜만에 쓰나 했더니 어째 별 소득이 없네. 섀도우워커의 어둠을 상대할 수 있는게 베히모스라 기껏 챙겨왔는데, 섀도우워커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가버려서 원...

[다인! 어떻게 된건가. 싸움이 어째서 아직도 시작되지 않는거지?]

"아. 데식이 아재. 거, 음. 오늘은 싸움없습니다. 그냥 잠이나 자세요."

[뭐라고!]

그리고 반지안에 영혼상태로 갇혀있는 데스나이트. 싸움을 기대한 그에게도 아쉽게 됐다.

아니, 난 진짜 최소 한번은 싸울 줄 알았지.

원래 내 계획은 이거였다.

내가 섀도우워커한테 니 여친 납치당했다고 말한다. 그러면 섀도우워커가 빡돌아서 '네가 납치했지!!' 라면서 나를 공격한다. 그러면 나는 베히모스랑 데스나이트를 이용해 그에게 맞선다. 그리고 나 아니라고 살살 설득해서 그 공장지대로 애를 보내버린다... 였는데.

엄. 그냥 내 말을 들은 순간부터 살짝 식은땀도 흘리고 초조불안해 하더니 지도 받자마자 세상 빠르게 텔레포트해서 사라졌다.

"....뭐. 좋은게 좋은거지."

저걸보니 왜 쟤가 여친 죽고나서부터 슬슬 흑화했는지 알거 같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다시 1층으로 내려왔다.

어두운 골목 사이로, 미리 주차되어 있는 검은색 차.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거기에 타서 입을 열었다.

"수빈씨. 저 왔어요."

"어머, 다인씨. 일찍 오셨네요?"

"네. 싸울 줄 알았는데 안싸우더라고요. 어쨌든 빠르게 밟죠. 목적지 설정됐나요?"

"네. 그 공장쪽으로 되어있어요."

"좋습니다. 바로 출발하죠."

그렇게 우리는 어두운 밤의 거리를 달리기 시작했다.

...섀도우워커, 그놈이야 능력이 출중하니 거기까지 한순간에 순간이동 할 수 있지만, 나는 그짓거리했다가는 피토하고 죽는다. 여기서 거기까지 거리가 얼만데.

"....."

그리고 생각해보니까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수빈씨 안부르고 나 혼자 갈걸 그랬네.

나야 섀도우워커와의 싸움은 피할 수 없을거라고 90프로 이상 확신했으니, 도중에 부상을 입을걸 대비해 수빈씨를 미리 대기시켜 놓은건데, 멀쩡하니까 좀 미안하다. 내가 운전해도 되는데.

살짝 미안함 마음을 가지고 나는 차에 탄 채 공장지대로 향했다.

그래도 등받이는 푹신하고, 수빈씨도 오랜만에 둘만 있으니 좋다고 했으니까 된 거 아닐까?

그렇게 이런저런 대화를 하며, 우리는 금새 공장지대에 도착했다.

을씨년스러운 밤의 폐공장.

아마 저 안에서 섀도우워커가 갱단을 조지고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공장 쪽으로 이동했다.

섀도우워커랑 말은 하고 떠나야지.

***

"크아아악!"

"쯧."

섀도우워커, 김자현은 혀를 찼다.

방금을 마지막으로 이 공장을 점거하고 있던 갱단의 일원을 전부 처리한지 오래.

"...하아. 이게 무슨 일이냐..."

그렇게 납치당한 채 기절해있던 인질들을 전부 풀어주고.

그 틈에 섞인 여자친구만 일단 챙긴 채, 그는 밖으로 나왔다.

"....큰일날뻔했네."

그는 기절한 자신의 여자친구를 품에 안은 채, 중얼거렸다.

다행히 상처하나 없이 평온히 잠들어있는 그녀.

...정말 큰일 날 뻔했다.

그는 방금전에 봤던 모습을 떠올렸다.

총을 든 채, 히히덕 거리며 누구 먼저 쏴서 죽여볼까 거리며 놀던 갱단새끼들.

그 모습에 눈이 뒤집힌 그는, 순식간에 전부 처리해 버렸으나.

아찔한 감각은 아직까지 남아있는 채였다.

저런 한주먹거리도 안되는 놈들한테 그녀를 잃을 수도 있었다.

....그가 없었다면

"안녕하십니까 섀도우워커씨. 역시 깔끔하게 처리하신 모습이네요. 대단하십니다."

"....에고스틱."

여자친구를 품에 안은 채 밖으로 나온 김자현은, 드넓은 공터에 선 채로 자신을 향해 축하의 말을 건네는 에고스틱을 보며 짧게 읊조렸다.

검은 모자에 검은 망토에 검은 옷에 아주 깔맞춤한 채, 하얀 마스크로 얼굴의 반을 가리고 있는 그.

...저놈 덕분에, 그녀를 구할 수 있었다.

"...."

그는 자신이 알고있던 에고스틱에 대한 정보를 빠르게 복기해봤다.

에고스틱. 낮에 일어나는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던 그도 수없이 많이 들어본 놈이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유명한 빌런이자, 인기 또한 제일 많은 빌런. 테러는 일으키되 사상자는 절대로 내지 않고, 오히려 다른 빌런이 테러를 일으키는걸 막을때도 있다고 들었었다.

그래, 그도 소문으로는 많이 들었다. 스타더스도 그에 대해 꽤 많이 신경을 쓴다는걸 들었었고.

사실 그래도 그렇게까지 자신은 별 관심이 없었는데.

이러면 얘기가 달라진다.

"....에고스틱. 너는 분명 빌런 아니냐? 어째서 나를 도와준거지?"

그래.

그게 김자현, 그의 제일 큰 궁금증이었다.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건 넘어가고, 어째서 그의 여자친구가 납치당하는걸 그에게 알려준거지?

그리고 자신의 의문섞인 질문에, 에고스틱 그는 씨익 웃으며 답할 뿐이었다.

"글쎄요. 왜일까요?"

"...."

"그냥 편하게 생각하세요. 빌런이라고 꼭 나쁜일만 해야되는건 아니지 않습니까? 히어로들도 매일 착한건 아니고, 가끔은 나쁜일도 하지 않습니까. 저도 뭐 가끔씩은 착한 일도 해보고 그럴 수 있는거죠."

"...?"

뭔 개소리야.

김자현은 그 말이 입밖으로 나올뻔한걸 참았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사실상 그녀를 구해준건 에고스틱이니까.

대신, 김자현은 머리를 굴렸다.

그의 여자친구 숙희는 늘 그보고 단순무식하다고 하지만, 김자현은 스스로는 굳게 믿고 있다. 그가 머리를 안써서 그렇지, 막상 쓰면 아주 똑똑하다는걸.

그런 그가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에고스틱. 빌런이지만 평소에 일으키는 테러는 사상자도 없고 다른 빌런을 사냥하고 다닌다. 거기까지만 보면, 그래도 빌런은 빌런이지 않냐고 볼 수 있지만.

"....고맙다. 뭐 원하는거 있냐?"

"훗. 협회나 다른 이들한테 제가 도와줬다고 알리지나 마십쇼. 그것만 해주신다면 더 바라는거 없습니다."

거기에 더해 굳이 다른 히어로의 연인이 납치당했다는걸 히어로한테 알려줘 범죄도 막고 인질들도 살려나게 한다?

그렇게 그의 대뇌는 결과를 도출했다.

이녀석, 착한놈이었구만.

"알았다. 너도 뭔 사정이 있겠지."

섀도우워커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이미 무엇보다 소중한 자신의 여자친구를 살려줬다는거에서, 에고스틱에 대한 호감도는 천장을 뚫은지 오래. 거기에 딱히 나쁜 녀석도 아닌거처럼 보여, 또 호감도는 2배가 되었다.

심지어 그는 다른 이들한테 자신의 선행을 알리지 말아달라는 말만 남긴 채, 뒷끝없이 그대로 사라졌다.

이거 완전, 진정한 사나이가 아닌가.

"...에고스틱. 착한 녀석이었군. 물론 난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만."

"으응..."

"어 숙희야! 깼어?"

그렇게 그날 밤.

그날 밤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대한민국의 A급 히어로 3명 중 2명이 에고스틱의 편이 되는 순간이었다.

***

"....?"

혼자 방에 있던 스타더스는, 뭔가 이상한 감각에 사로잡혔다.

뭐지? 이 자기만 따돌린 채 다들 무언가를 하고있는거 같은 기분은.

"...기분탓이겠지."

그렇게 그녀는 오늘도 열일하는 직감을 기분탓으로 치부하고 넘겼다.

...좀 찝찝함만 남긴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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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사람의 마음을 추측하는 능력까지는 없다.

그래서 현재 섀도우워커가 나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딱히 모르는 일.

....그래도 원작에서 나온 그놈의 단순한 성격을 생각해 봤을 때, 나를 믿는데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을 거라고 믿는다. 아마 몇번만 더 하면 같이 술잔을 기울일 수 있을 정도로 발전할 수도 있지 않을까.

걔의 그리 단순한 성격때문에 나중에 사기당해 배신당하는 일도 있었지만, 그건 나중일이니 일단은 보류하자.

그렇게 제일 급한 불이던 섀도우워커 여친 살인사건을 막고, 거기에 섀도우에게도 호감작까지 해뒀더니.

음. 마음이 편안하네.

그래도 한시름 놨다고 할 수 있다.

살짝 긴장이 풀리는 느낌.

나는 지금까지 내가 이룬 업적을 다시 떠올려보았다.

역시 제일 중요한건 스타더스를 원작보다 훨씬 빠르게 성장시켰다는 것. 결국에는 스타더스가 알파이자 오메가인만큼 이게 제일 크다.

그리고 스타더스의 스트레스도 원작보다 훨씬 덜해졌을 거라는 것또한 큰 장점. 원작 만화에서는 이미 이 시간대 쯤이면 멘탈이 가루가 되어있을 그녀다. 그러나 지금은? 원작에 비하면 아주 해피할꺼다.

또 뭐가 있을까.

그래. 나 때문에 죽지않은 사람들이 벌써 수십, 수백명에. 지켜진 도시들도 몇개나 된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섀도우워커의 흑화도 막았고.

그리고 빌런 연합 창설도 아주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얼마나 순조롭나면, 저번에 수능을 본 하율이가 드디어 대학이 확정났다.

"연희대 간호학과?"

"네! 여기는 별로 기대도 안했는데 붙었어요!"

그렇게 말하면서 기뻐하는 하율이었다. 사실 이미 S급 능력인 치유능력이 있는데 대학이 무슨 소용인가 싶지만, 그래도 뭐 본인이 가고 싶다는데 굳이 말리진 않았다. 대학도 하나의 경험이니까.

그런데 연희대면 스타더스, 신하루가 다니는 곳인데.

그렇게 생각한 나는 멈칫했으나, 생각해보니 연희대는 1학년은 나머지 학년과 다른 캠퍼스를 쓴다고 해서 안심할 수 있었다. 그래, 하루가 이제 4학년이지? 어차피 만날 일도 없겠네. 심지어 내년이면 졸업이니까.

....없겠지? 응, 없을꺼야 설마.

그래. 거기에 스타더스는 우리 하율이를 한번도 직접 본적은 없잖아? 괜찮겠지 뭐.

그런 생각을 하던 나는, 슬슬 이런 생각도 해봤다. 언젠가 스타더스가 충분히 강해지고, 빌런 연합이 나 없이도 잘 굴러갈 정도라면... 나는 그만 쉬어도 되는거 아닐까. 그런 생각을.

아니, 세상이 진짜 나름 평온하게 잘 굴러가고 있다.

이제는 원작의 그 피폐한 세계관이랑은 아주 많이 달라진지 오래. 이정도면 치유물..?

물론 아직까지도 두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있는 월광교와, 아직 수없이 남은 빌런들을 생각하면 그정도는 아니겠지만, 하여튼.

결국 중요한건, 내가 알기로 한동안은 별다른 일이 없을거라는거.

그러니까 두다리 쭉 뻗고 쉬어도 된다, 이말이다.

그렇게 나는 조금 마음 편하게 먹기로 했다.

뭐 별일 있겠어.

***

며칠후, 화창한 낮.

따뜻한 태양볕이 창문을 통해 거실을 은은하게 밝히는 그곳의 소파 아래쪽에 앉아.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다들, 준비됐어?"

"당연하죠. 오빠, 질 준비나 해요. 제가 1등일꺼니까."

"하. 서은아, 미안하지만 1등은 이 언니꺼란다."

가운데에 앉아 컨트롤러를 쥔 채 준비를 하고 있는 나.

그리고 내 양 옆에 앉아 같이 컨트롤러를 각각 하나씩 쥐은 채 미소짓고 있는 서은이와 세희.

그리고 심판을 보는 은월이까지.

그렇게 긴장한 내 앞에 티비화면에서는.

숫자가 카운팅 다운되고 있었다.

[쓰리- 투- 원-]

[고!!]

그와함께 화면에서, 동시에 각자가 조작하는 자동차가 출발했다.

우리 셋이 하기로 한 내기. 게임에서 세개의 트랙을 모두 돌아 1등으로 도착한 사람의 소원을 나머지 두명이 들어주기.

그렇게 빌런들의 치열한 전투가 펼쳐졌다.

"아악! 등껍질 맞았어요!"

"미안하다 서은아! 그거 내가 쏜거다!"

"아니, 오빠. 진짜 그럴거에요?"

"쓰읍... 이거 왤케 빡시냐..."

피튀기는 빌런들의 한판 승부.

그렇게 첫번째 트랙이 끝나고.

승부는 더욱 찌릿찌릿해지기 시작했다.

아니, 말 그대로의 의미로 찌릿찌릿해지기 시작했다. 최세희 주위로 정전기가 일어나기 시작했거든.

"아니! 최세희! 너 그거 정전기 어떻게 좀 해봐!"

"쓰읍. 나 지금 집중하고 있잖아, 말시키좀 말아봐."

"아니! 언니! 저 슬슬 팔이 진짜로 따가워지고 있어요!"

전기타입 능력자 특징. 집중하면 전기를 제어를 못함.

이대로는 승부에 심각한 영향이 갈꺼라는 판단이 든 나는, 비상한 상황에 맞는 비상한 대책을 세우기로 했다.

뭐긴 뭐야. 런이지.

"아니 오빠, 어디가는거에요!"

"서은아 미안하다! 나는 살아야겠다!"

나는 그렇게 순간이동해 소파에서 멀찍히 떨어진 곳으로 이동했다.

순간이동 최대장점. 게임할때 화면에서 눈을 안때고 자리를 바꿀 수 있다.

그런데 어째, 멀리 떨어져있는데도 정전기가 일어나고 있는 기분이다?

"야 최세희! 대체 왜 여기까지 정전기가 나는건데? 너 일부러 그러는거지?"

"쓰읍... 난 아무것도 모른다. 묻지마. 흐."

순간 삐끗하면 나락으로 가는 게임인만큼 고개를 돌려 최세희를 바라볼 수는 없었지만. 안봐도 쟤가 웃고있는건 알 수 있겠다.

....좋아. 그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그렇게 정전기의 억까속에 나는 꼴등을 하고 있는 상황.

그래. 이대로는 안된다.

아까 말했듯, 비상한 상황에서는 비상한 대책을 세워야 하는법.

나는 염동력을 발휘해 컨트롤러를 띄워올렸다.

물론 내꺼 말고 쟤들꺼.

"아니 야!"

"오빠!!! 왜 저한테까지 그래요!!!"

집중해서 게임하다가 갑자기 컨트롤러가 두둥실 떠오르는 살아생전 하기힘든 놀라운 경험에 그녀들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억까에는 억까로, 능력에는 능력으로.

내가 무능력자인줄 알어? 나도 염동력이라는 능력을 가진 어엿한 듀얼능력자라고.

....물론 서은이한테는 좀 미안했다. 못난 어른들이 미안하다 서은아.

그렇게 방해공작 끝에 내가 다시 1위로 우뚝 설 수 있었다. 그래, 이거지.

참고로 두 어른에 억까에 휘말린 서은이는 꼴찌가 되어버린 상황.

"....그래, 다들 이렇게 나오겠다 이거죠?"

이를 갈던 서은이는, 갑자기 달리는걸 멈추고 컨트롤러를 이상하게 조작하기 시작했다. 누가 보면 격투게임을 콤보 누르는 마냥 아무키나 누르기 시작하는 그녀.

나는 순간 드디어 서은이가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게임을 접어버렸나? 라고 생각하던 순간.

갑자기 내 차가 달리다 말고 하늘 높이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찰리와 유리엘리베이터를 탄 것마냥 트랙을 떠나 저 먼 우주로 질주하기 시작하는 나의 차!

"아니 이게 뭔일이야!!"

"쓰읍 서은아! 이거 네가 한거지!!"

"하. 이건 언니랑 오빠가 먼저 시작한거에요! 저는 능력 없는줄 알았죠?"

그렇게 무슨 코드를 입력해 우리를 우주로 보내버리고 유유히 텅 빈 트랙을 1등으로 질주하고 있는 서은이.

황급히 드디어 땅으로 돌아온 나와 최세희가 애를 써봐야 역부족.

이대로 가면 백프로 진다.

그런 생각을 하던 중, 저쪽에 있던 최세희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동시에 서로의 생각을 꿰뚫은 우리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적의 적은 나의 친구라는 오래된 격언이 있지. 어차피 스포츠맨쉽은 저 아래 땅바닥에 쳐박혀있는지 오래. 이제와서 점잖을 떨어봤자 위선일뿐.

서은아. 인생은 실전이란다. 저 바깥의 세상으로 나가면 너의 적들은 공정하게 룰을 지키면서 싸우지 않아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치사하고 더럽게 널 옭아맬거란다. 그런 세상의 험악함에 서은이가 당황하지 않을 수 있도록, 나는 미리 교육을 시켜주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서은이가 결승선을 통과하기 직전, 찌릿한 정전기기가 그녀의 등에 닥침과 동시에 손에 들고있던 컨트롤러도 미친듯이 진동하며 컨트롤을 방해하기 시작했다.

"언니!!! 오빠!!! 진짜 이럴거에요!!!"

"크흑... 미안하다 서은아. 이 못난 오빠를 용서해라!!!"

"쓰읍.... 난 아무것도 안했어 서은아. 언니 믿지?"

"야 임마."

"아니 진짜!!!! 아니!!!"

그렇게 서은이가 얼타는 순간 다시 우리 둘이 순식간에 따라잡았고.

"으으...!"

"쓰읍... 간다!"

"제가 질거같아요?"

드디어 마지막 결승선을 셋 중 한명이 통과하려던 그때!!!

-파앗.

갑자기 티비 화면이 검은색이 되며 꺼졌버렸다.

"...."

"...."

"...."

그렇게 순간적인 침묵이 거실을 감싸고.

우리 셋이 모두 갑작스러운 사태에 굳어있을 때.

소파 위에서 멍하니 우리가 일으키던 생쇼를 지켜보던 은월이만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어. 이렇게 되면 무승부네요."

"...."

"...."

"쓰읍... 서은아! 아까 네가 이상한거 하더니 티비가 고장난거 아니야?"

"아니 언니. 여기서 제탓을?!"

"푸흣... 아니. 크흑, 진짜 웃겨죽겠다. 우리 진짜 지금까지 대체 뭘한거냐? 엔딩봐라."

이제는 아예 폭소를 터트리는 최세희.

그런 그녀를 어이없다는 듯 보던 서은이도, 이내 이 상황이 웃긴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보며 나도 웃음을 지었다.

...아, 이렇게 뇌 비우고 놀던게 진짜 얼마만이지?

괜사리 나도 웃음이 터지는 기분.

...그래. 이게 행복이지. 사실 행복은 멀리있는게 아니다. 이렇게 다같이 모여 웃고 놀며 떠드는게, 진정한 행복 아닐까.

비록 언제까지 이렇게 다른 생각 안하고 웃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당분간은 별일이 없을테니까, 상관없다. 지금 이렇게 이 순간을 즐기자고.

내가 그렇게 미소지으며 생각하고 있을 때, 아까 꺼졌던 티비가 드디어 다시 빛을 내며 켜지기 시작했다.

"어? 저거 다시 켜지는데?"

내가 손으로 티비를 가르키며 말했다.

아니, 나름 좋은 티비를 갔다가 썼는데 왜 고장나고 난리인거야?

켜졌다는 불이 들어오긴 하지만, 여전히 새까만 어둠으로 뒤덮인 화면.

그런 티비를 지켜보던 나는 제일 먼저, 무언가 이상하다는걸 깨달았다.

....잠깐. 이거 고장이 아닌거 같은데.

그리고 그런 내 생각을 입증하듯.

갑자기.

거대한 검은색 티비 화면에서.

달이.

하얀색 달이, 중앙에 떠올랐다.

"....저건 뭐야?"

갑작스러운 상황에 최세희가 고개를 갸웃거릴 때.

뒤에 있던 은월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어 말했다.

"월광..."

"응?"

"저 달이, 월광교의 상징이에요...."

살짝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리는 은월이.

그리고 그와 동시에 화면에서는, 어떤 늙은 사람의 목소리가 지직거리며 나오기 시작했다.

[아....]

[아...해들이여...]

[월광교의 교주, '천월황'이옵니다.... 처음으로 인사올립니다. 강녕하시옵니까....]

그렇게 지직거리는, 긁는 듯한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얼굴을 굳혔다.

아니 시발.

원작에서 이런 일은, 분명 없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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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

히어로라고 해서 매일 일만 하는 건 아니다.

사실 히어로들은 빌런이 나타났을 때나 활약할 기회가 있기 때문에, 빌런이 없는 대부분의 시간. 즉 평소에는 그렇게 할 일이 많은 편이 아니다.

그런만큼, 히어로들은 빌런이 없는 대부분의 시간을 꽤나 한가하게 보내는 편이다.

협회에서 주는 월급만으로는 살기도 힘든 저등급의 히어로들은 대부분 각자 따로 주업을 두고 히어로 활동을 부업으로 하는 편.

그리고 그런 저등급 히어로들 말고도, 대한민국을 책임지는 A급 이상의 히어로들도 대부분 여가시간을 따로 각자의 할 일을 하며 보내는건 마찬가지다.

아이시클, 이설아. 그녀는 빌런이 등장하지 않는 대부분의 시간을 자신의 회사를 운영하며 보낸다. 이미 정치계와 금융권에 깊숙히 발을 들인 이설아의 유성기업은, 곳곳에 뿌려진 그녀의 영향력에 의해 이미 그녀 없이는 굴러가기 힘든 상태. 그런만큼 이설아또한 회사에서 살다시피 하며 살고있다.

섀도우워커, 김자현. 낮에 자고 밤에 활동하는, 드라큘라와 같이 사는 그는 주로 자신의 여자친구와 놀면서 시간을 보내는 법이다. 아니면 그 시간에 자신의 능력을 단련하던가 하며.

그리고 마지막으로. 스타더스, 신하루.

그녀 역시도, 남은 시간에 히어로 활동이 아닌 다른 일을 한다. 대표적으로 대학생활. 이제 4학년, 졸업반인 만큼 수업도 듣고 과제도 들으며, 마치 평범한 대학생처럼 살고 있다.

그러나, 스타더스가 누구인가.

대한민국의 A급 히어로들 3명 중 제일 특별한, 유일하게 S급에 가까운 인물. 그리고 그들 중 제일 정의로운 인물.

그런 그녀이니만큼, 빌런이 나타났을 때만 잠깐 반짝 활동한 뒤 나머지 시간은 빌런이든 뭐든 히어로활동은 다 잊고서 일상에 전념하는 다른 히어로들과는 달랐다. 즉, 그녀는 평상시에 대학 생활도 병행하면서, 히어로라는 신분을 망각하지 않고 틈틈히 협회 사무실에 나가거나, 아니면 집에서나 빌런들을 어떻게 잡을지 연구하며 일하는 편이다.

즉, 현재.

협회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신하루는 컴퓨터를 끼고 앉아 일을 하고 있었다.

"스타더스님. 혹시 필요한거 있으시면 언제든지 불러주시길 바랍니다."

"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협회 직원도 나가고.

다시 마우스를 달깍이던 그녀는, 늘 그랬듯 한 사이트에 들어갔다.

[에고스틱 팬카페]

"....."

상당히 오랜만에 들어옴에도, 마치 고향집에 온거처럼 자신을 반겨주는 정겨운 노란색 인터페이스.

그녀가 이 카페에 들어온 이유는 단 하나, 정보를 얻기 위함에서다.

무슨 정보? 당연히 에고스틱에 대한 정보.

"하아..."

그녀는 히어로.

그런 그녀는, 전국에서 암약하며 테러를 일으키는 빌런들을 붙잡아 수용소에 쳐넣어버리는 것이 그녀의 임무다.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현재 가장 꼭대기에 있는 히어로인 신하루 그녀가, 그녀와 마찬가지로 가장 꼭대기에 있는 빌런 에고스틱을 집중적으로 알아보는 것은, 자석의 N극과 S극이 맞물리는 것처럼 지극히 당연한 일. 사실 그녀가 하루종일 에고스틱에 대해서만 고민한다 해도 그런 그녀를 책망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것이다. 오히려 칭찬하면 칭찬했지.

그렇게 자신이 에고스틱 팬카페를 둘러보는 것에대한 구구절절한 자기합리화를 마친 그녀는, 이내 양심의 가책을 벗어던지고 카페의 인기글들을 먼저 둘러보기로 결정했다.

척 보기에도 별 쓸모없어 보이는 것들이 대다수.

에고스틱 테러 스틸샷, 망고스틱 코스프레, 에고스트림 맴버랑 커플링 등...

그래도 혹시 모르므로 굳이 다 들어가본 그녀는, 마음에 드는 게시글에는 좋아요를 누르고 마음에 안들면 댓글로 반박도 달며, 열심히 활동했다.

다시 말하지만, 놀고 있는게 아니다. 엄연히 히어로로써 빌런에 대해 알아보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열심히 모든 인기글들을 다 읽어본 뒤.

다시 메인 화면으로 돌아온 그녀는, 문득 허망함을 느꼈다.

...자신은 에고스틱 그에 대한 작은 정보 하나라도 더 얻기 위해 이렇게 애쓰는 동안, 그의 동료들은 이미 에고스틱 그에대한 모든걸 다 알고있겠지?

그런 생각을 하던 신하루는 가슴이 답답해지는걸 느꼈다.

내가 에고스틱 전문가인데.

정작 나는 에고스틱에 대해 아는게, 그들과 비교하면 거의 없구나.

"에휴...."

'우리는 가족같은 사이입니다. 아주 친하죠.'

귓가에 어른거리는 에고스틱의 목소리에 다시 기분이 안좋아지는 느낌.

...하아. 어쨌든간에, 에고스틱은 테러를 여러번 저지른 빌런이다. 빌런이니까, 잡아야되는데...

"...."

모르겠다.

이상하게 에고스틱에 대해서만 생각하면 그녀는 머리가 바보가 되는거 같았다.

온갖 나쁜놈인 척 빌런짓은 다하면서도, 정작 중요한 순간 나타나 자신을 구해주는 그를.

....이제는, 그를 자신의 손으로 감옥에 잡아넣을 수 있는 순간이 왔을때, 자신이 그한테 그럴 수 있을지도 확신이 들지 않는다.

"...내가 무슨 생각을."

그래. 아무리 그래도 그는 빌런이다. 걸어다니는 시한폭탄. 이미 전과만 수십개.

히어로로써, 자신을 지지해주는 대중들을 생각해서도 이러면 안된다.

그래. 일하자 일.

그녀는 다시 모니터에 집중했다.

.... 좋아, 이번에는 뭘 알아볼까.

협회에서 올라온 보고서나 다시한번 읽어볼까.

그렇게, 창가에서는 햇빛이 내려와 그녀의 금발 머리를 반짝이듯 빛나게 하는, 아늑한 그녀의 사무실.

따뜻한 태양볕을 받으며, 신하루는 다시 열심히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녀가 문서들을 읽고있던 그때.

돌연, 모니터가 그냥 꺼져버렸다.

"....?"

뭐지. 고장났나.

그녀가 모니터를 노려보며 뭐가 문제인건지 생각해보려던 그때.

팟-.

다시 모니터에 빛이 들어왔다.

아, 다시 켜졌구나.

라고 그녀가 생각하던 순간.

그녀는 무언가, 이상한걸 깨달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하얀색의 문서가 나와있던 화면.

그 화면에 문서는 어디가고.

새까맣게 검은색으로 물들은 화면에는.

거대한 달 하나만이, 외롭게 떠있을 뿐이었다.

"....뭐야 이거."

갑자기 자신의 모니터에 나타난 달.

그것을 보며, 신하루는 즉각 불길함을 느꼈다.

뭔가, 이상하다.

그리고 그 순간, 바로 자신의 모니터와 천장에 달린 협회 스피커에서 나는, 쇠가 긁는 소리.

[아....]

[아...해들이여...]

[월광교의 교주, '천월황'이옵니다.... 처음으로 인사올립니다. 강녕하시옵니까....]

월광교.

그 말을 들은 즉시, 그녀는 즉시 얼굴을 굳혔다.

에고스틱과 더붙어, 협회에서 가장 예의주시하고 있는 빌런 중 하나.

저번에 월광무녀를 앞세워 서울을 거의 괴멸시킬뻔한 그 단체.

"스타더스씨!!!"

"네, 저도 지금 듣고있어요."

서둘러 달려온 협회직원한테 조용히 하라고 손짓으로 전한 뒤, 그녀는 월광교주 말에 귀를 기울였다.

여전히 무언가 쇠를 긁는 듯한 목소리로 이어지는, 스피커의 소리.

[네... 아, 네.... 모두들 행복한거 같으셔서 기분이 저도 몹시 좋습니다... 다들 가정과 일터에 축복이 있는... 그런 낮을 보내고 계십니까?]

[썩어빠진 인간들끼리 모여 서로를 악의 구렁텅이로 빠트리는 모습이, 참으로... 참으로 즐거웁니다 그려....]

[오늘도 매일 세계를 파멸로 이끌어가는... 스스로 재앙과도 같은 그대들에게.]

[제가 선물이, 있사옵니다....]

[

저 하늘 위의 달을 보십시오.}

[달이 참으로, 밝지 않습니까?]

밝은 대낮에 갑자기 달을 바라보라는 교주의 말.

이해하기 힘든 선문답같은 말에, 신하루의 얼굴이 찌푸려졌으나.

갑자기.

교주의 그 말이 끝난 그 순간.

"....어?"

아까까지만 해도 맹렬히 타오르던 햇빛이 갑작스럽게 사라짐과 동시에. 모든게 새까메지며.

세상이 갑작스럽게, 어둠에 내려앉았다.

"....밤이 됐어?"

[....끌끌끌.]

[우둔한 여러분께 소인이 주는, 첫번째 선물이옵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를... 더 드리도록 하죠.]

[서로가 서로를 죽이려드는 끔찍한 세계를...]

[벗어나 구원의 길로 가실 수 있도록, 제가 기회를 주겠습니다...]

[구원을 얻지 못하신 모든 자들이여... 월광(月光)과 함께하면 구원의 길이 그대에게도 열릴지어니.]

[배교자에게는, 오직 죽음뿐이리라.]

그리고 교주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도시의 한쪽편에서 들려오는, 기괴하고 거대한 울부짖음.

구워어어어어어어어어어-

끼이이이에에에에엑그

"스타더스씨!"

"네, 지금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이미 슈트를 다 챙겨입은 그녀는, 불빛한점 없는 새까만 하늘로 즉시 몸을 던졌다.

"....."

갑작스럽게 내려앉은 짙은 어둠에 깔린 도시.

그곳 위를 날며, 거대하게 울리는 기괴한 소음이 나는 곳으로 날아가는 신하루.

그러는 그녀의 표정은, 어느때보다도 불안해보였다.

불길하다.

그 어느때보다도, 불길하다.

그녀의 직감은, 그렇게 경고하고 있었다.

***

순식간에 어둠속에 휩싸인 집.

[구원을 얻지 못하신 모든 자들이여... 월광(月光)과 함께하면 구원의 길이 그대에게도 열릴지어니.]

[배교자에게는, 오직 죽음뿐이리라.]

교주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시발. 진짜 좆됐네."

나는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아니, 시발. 진짜 왜...

"오빠! 이게 다 무슨일이에요?"

"다인씨! 갑자기 밖이 어두워졌는데 어떻게 된거죠?"

"야... 지금 대체 뭐가 일어나고 있는거냐?"

우리 에고스트림도 난리가 난 가운데.

[속보입니다! 현재 서울 한지역에서 미확인 괴생물체가 나타났다는 소식입니다!]

나는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듣고, 얼굴을 굳혔다.

월광교. 갑자기 깔린 어둠. 괴생물체.

시발. 이건 백퍼 월광교의 그거다.

2페이즈의 최종전에 등장하는 묵시록의 병사들 중 하나.

"...은."

"네?"

"서은아, 은 있는거 다 챙겨. 빨리!!!"

좆됐다.

이건 진짜 빨리 못막으면 답이 없다.

나는 서둘러 지하실을 향해 이동했다.

아니, 시발 교주 씹새끼야.

왜 최종병기를 지금 들고오냐고.

그렇게 어둠이 깔린 도시에서.

두명의 인물이, 재앙을 막기 위해 나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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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대한민국의 낮.

어느때와 다름없이 밝은 해가 도시를 내비추는, 평범한 하루였다.

그래.

정확히는 평범한 하루였었다.

월광교의 교주가 대국민 메세지를 전한 뒤, 그 직후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어두운 하늘.

한순간에 새까매진 하늘을 최대한의 속도로 날아가며, 스타더스는 불길함에 몸서리쳤다.

방금까지만 해도 밝았던 하늘이 어둠에 잠긴, 초자연적인 현상.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거지.'

현재 대한민국은 통신도 전부 끊어져서, 협회랑 제대로 연락도 안되는 상황이었다.

고요하고 새까만 하늘을 배경으로, 계속해서 들려오는 의문의 괴소음을 향해 그녀는 날아갔다.

현재 그녀가 알고있는건, 어둠에 잠긴 서울의 도시 한쪽에 '무언가'가 나타났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나타난 이후, 그 도시쪽에서 모든 연락이 다 끊겼다는 것이다.

무언가 심각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건 누구나 알 수 있는 일.

"...."

그렇게 심각한 얼굴로 스타더스는, 새까만 어둠에 잠긴 하늘을 금발 머리를 휘날리며 통과했고.

이내 그 현장에 가까이 도착한 그녀는.

순간 보이는 광경에, 그대로 몸이 굳어버렸다.

새까만 어둠에 잠겨있는 도시.

육안으로 도시를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빠르게 날아온 그녀는, 도심 한복판에 서있던 '그것'을 드디어 볼 수 있었다.

"....뭐야, 저게."

그것은.

가히 재앙이 찾아온 모습이었다.

*

[끼이이이이이이이끄이에에에엑-]

"꺄아아아아아아아악!!"

"사, 살려줘!!!"

"흐윽... 이게, 이게 뭐야아..."

마치 쇠를 긁는듯한 괴음.

어두운 도시. 그곳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뒤엉켜 소리의 진원지로부터 조금이라도 더 빠져나가기 위해 애쓰고 있었고.

그리고, 그 중심.

갑작스럽게 밤이 되어버린 어두운 밤하늘을 배경으로, 홀로 빛나는 새하얀 달빛 아래.

보라색의, 기괴하고 거대한 무언가가 도심 한복판에 서있었다.

[크르르르르르르르르...]

어떻게 보더라도, 인간이 아예 아닌 무언가.

흉측하게 올라온 분홍색의 혈관.

보라색으로 짙게 물들은 커다란 신체.

기괴하게 뒤틀린 얼굴과 몸.

그러나 눈만은 선명한 붉은색으로 타오르고 있는 그것.

"크아아아아악! 크어, 억...."

그리고 그것은.

사람들을 향해 팔을 들어올리고 있었고.

그것의 앞에 있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려 공중에 뜬 채 꺽꺽대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크아아아악....

크아아아아악."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공중에 떠 있는 사람들한테서, 갑자기 하얀색의 반투명한 무언가가 빠져나오기 시작한 것.

절규하는 표정의 흰색 무언가.

그렇게 사람들에게서 빠져나간 그 흰색 무언가는, 전부 중심에 선 보라색의 '그것' 안으로 흡수되듯 빨려들어갔고.

그와 동시에, 공중에 떠있던 사람들은 전부 생기를 잃고 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마치, 영혼이 빠진듯이.

[끄이이이이익- 키에에에에에에엑!]

울부짖는 보라색의 거대한 그것.

전기마져 끊겼는지 사방이 어두운 도시의 한복판에서.

수많은 건물들을 박살내며 육중한 덩치로 도시를 차근차근 박살내고 있는 그것.

그리고 그것의 주변에는.

도망치다가 그것에 의해 공중에 붙잡힌 채 끌려온 수많은 사람들이, 공중에서 괴로워하다가 이내 영혼을 빼앗기고 땅바닥에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어두운 도시를 배경으로,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사람들. 사방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그리고 중심에 서서, 사람들의 영혼을 빼앗아먹으며 도시를 파괴하고 있는, 이계에서 온듯한 괴생명체.

그리고, 싸늘하게 쓰러진 사람들.

마치 인세에 강림한 지옥도(地獄圖)같은 모습.

음산하게 어두운, 비명만이 가득한 도시.

오직 괴생명체의 보라색 빛깔과 붉게 타오르는 눈만이 보이는 그곳에서.

휘슈우우우우우우웅-.

어두운 밤하늘을 가로지르며, 노란색 빛이 어디에서인가 날아와, 대지에 서있던 그 보라색의 괴생명체에 내리꽂혔다.

콰아아아아아앙-.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어보이던, 지옥에 화신과도 같은 괴수에 그대로 내리꽂은 그녀.

그녀는 바로 히어로, 스타더스였다.

[....끼에에에에에엑-!]

이내 괴수가 충격으로 비틀거리자, 공중에서 괴로워하던 사람들이 순간적으로 땅에 떨어졌고.

영혼이 털리지 않은 그들은, 다시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흐, 흐아아아아악!!"

"흐에엥... 시발 살려줘!!!"

"아, 아아아..."

도망치는 사람들.

그리고 이내 보라빛의 괴수가 다시 그들에게 고개를 돌릴 때.

"네 상대는 나다, 이 괴물새끼야."

불타오르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금발의 여자에의해, 다시 등쪽에 타격을 입고는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다.

[-끼이이이이익...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엑!!!]

"크윽...."

이내 괴수가 내뿜는 소름끼치는 소리에 얼굴을 일그러트린 스타더스.

그런 그녀는, 다시 그것을 향해 온 힘을 다해 주먹을 휘둘렀다.

콰앙-

그순간 생긴 엄청난 굉음.

주먹의 충격파로 주변이 뿌연 연기로 뒤덮인 가운데.

[그이이이이이... 끼에에에...]

그녀의 주먹을 정통으로 맞은 그것은, 마치 아무런 타격을 받지 못했다는 듯, 여전히 제자리에 서있는 채로 얼굴만 그녀쪽으로 돌린 채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것의 붉은 눈과 마주친 스타더스가 자신도 모르게 몸을 굳힌 그때.

뒤에서 갑작스럽게 들려온, 섀도우워커의 목소리.

"스타더스, 피해라!"

그녀가 몸을 던짐과 동시에.

그것의 붉은 눈에서, 무언가의 보라색 광선이 뿜어져나와 그녀가 있던 곳을 스쳤다.

그런 그녀가 뒤를 돌아보자 마주친건.

"헉... 헉.... 섀도우워커?"

"그래. 늦어서 미안하다. 하... 시발. 자다가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냐."

[키르그으으으으으...]

이제는 그 둘을 확실히 적으로 인식했는지, 초점을 둘에게 맞춘 그것.

자신들을 바라보는 그것을 보며, 섀도우워커는 빠르게 말했다.

"스타더스, 빠르게 말하겠는데 지금 내 능력이 정상이 아니다. 이 밤이 인위적으로 생긴거라 그런지 출력이 이상해. 듣기로는 한반도만 어두워지고 다른 나라는 전부 정상적이라고 하던데, 그 영향인거 같아."

[크르르르... 키아아아아아아아!]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들에게 달려든 그것.

황급히 둘이 떨어짐과 동시에, 섀도우워커는 마지막으로 스타더스에게 전했다.

"일단은 난 사람들 먼저 안전한곳으로 옮기면서 널 서포트 해줄테니, 버텨봐라!"

그 외침을 끝으로, 섀도우워커는 어둠에 녹아 사라졌다.

그리고 이제는 스타더스 그녀에게 시선을 고정한 그것.

[.....엑크르으으으...]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한손을 들어 올리자.

도심 어딘가에 있던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잡혀 끌려와, 또 비명을 지르며 영혼을 빼앗기기 시작했고.

그 비현실적이게 끔찍한 현장을 보며, 스타더스는 다시 주먹을 쥐고 육중한 덩치의 보라색 무언가에 달려들었다.

순간 그것과 눈이 마주치자 머리가 잠시 울리기 시작했으나 그뿐. 역시나 일반인들처럼 공중에 들려 비명을 지르는 그런 일들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이를 악문 그녀가 이내 가까이 접근하자 다시 덤벼드는 그것을 공중에서 몇번 피하며 접근하자, 그것또한 주먹을 쥐고서 스타더스를 상대하기 시작했다.

콰앙.

콰아앙-.

그렇게 시작된 혈전(血戰).

어둠속에서, 노란색의 빛과 보라색의 빛이 얽히며 치열하게 전투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것과 맞서던 스타더스는.

이를, 악물었다.

강하다, 너무 강하다.

자신이 아무리 공격해도 타격이 거의 들어가는 것 같지 않아보이고, 심지어 그것이 내지르는 공격은 그것 주위에 있는 보라색 아우라 때문인지 거의 살기를 내뿜는 수준.

이미 지구상의 그 어떠한 생명체와도 겹쳐보이지 않는, 기괴하게 뒤틀린 그것.

그것은 심지어 그녀와 전투를 하는 와중에도,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초자연적인 힘으로 끌어올려, 영혼 비슷한 것을 빼앗아 흡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과 계속해서 몇번 공방을 맞붙어본 그녀는, 직감적으로 깨닫고 말았다.

...자신은 절대 이것을 이길 수 없을 것이란 걸.

'.....어째서, 이런일이.'

이미 패배를 직감한 그녀였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그것에 덤벼들었다.

...이곳에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죽기 직전에 최후의 한명이라도 더 살리겠다.

그렇게.

스타더스, 그녀의 목숨을 건 전투가 시작되었다.

***

어두운 밤하늘.

밑에 도시에서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그 근처 건물 옥상 위에 선 나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지랄났네."

어둠에 잠긴 도시.

그 가운데 있는건, 현실에서 직접 보니 진짜 세상 끔찍하게 생긴, 월광교의 최종병기중 하나인 영혼포식자. 그리고 그것과 어떻게든 맞서 싸우고 있는 노란 빛의 스타더스.

그리고 동시에 무너지고 있는 도시.

온동네에 가득한 검은색 연기.

쓰러져있는 수많은 영혼이 빼앗긴 시체들.

사방에서 서라운드로 들려오는 비명.

뭔가 하고는 있는거 같은데 큰 도움은 안되고 있는 섀도우워커.

공중에 떠오른 채 목을 조르며 영혼이 빼앗기고 있는 사람들에.

딱봐도 밀리고 있는 스타더스와.

자신이 아직 이런때 나오는게 아닌 막강한 최종병기중 하나라는 걸 여실히 증명하고 있는, 양학중인 보라빛의 거구까지.

그 참혹한 지옥도를 보며.

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뭐야."

"....진짜 큰일난 줄 알았더니, 상황이 그렇게 나쁘진 않네?"

아니, 진짜 뭐지?

하늘 어두워진거 보곤 진짜 겁에 질렸는데, 헐레벌떡 와보니 영혼포식자가 딱 한 개체만 있는 모습.

원작의 최종전에선 수십마리 튀어나왔던거 생각하면 애교인 수준이다.

심지어 아직 영혼 수급도 못해서 진화도 안된 모습인데, 저 상태에서 저거 죽이면 지금 쓰러진 사람들 다 살아난다. 사실상 내가 쟤 죽여버리면 사상자도 없는거아니야.

그리고 쟤도 다들 쌩으로 그냥 싸우니까 다들 탈탈 털리는거지, 지금 내가 들고온 제 약점인 은탄 몇방 맞으면 그냥 꽥 죽는 놈이다. 기믹형 보스들이 다 그렇듯.

그러니까 보기에는 거의 멸망 직전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냥 내가 지금 들고 온 대물 저격총으로 은탄 한방 쏴주면 끝나는 상황이란 소리.

"....뭐야?"

괜히 쫄았잖아....?

그렇게 난 옥상에 서서, 대물저격총을 그것을 향해 조준하기 시작했다.

...뭔가 허무한데.

아니야. 스읍, 그래. 오히려 좋아.

이 기회를 이용해야한다.

이거 쏘는거 타이밍 맞춰서, 극적인 순간에 스타더스가 쟤를 쓰러트린거처럼 연출하면 어떨까?

....오, 나쁘지 않은데?

***

그리고 에고스틱이 이미 긴장을 풀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옥상에 있던 그시각.

스타더스는.

[끼에에에에에에에엑!!!]

'....유언이라도 미리 남겨놓을걸 그랬나.'

이미 모든걸 포기한 채, 체념한 눈빛으로 전투에 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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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포식자.

굉장히 직관적인 닉네임의 이 괴생명체는, 원작의 2부 최종장에서 등장하는 월광교의 최종병기들 중 하나. 즉, 당연히 첫등장도 2부 최종장인, 원래라면 아직 나올 놈들이 아니다.

"....근데 왜 벌써 나온거냐?"

갑자기 어두워진 하늘.

밑에서 들려오는 귀곡성을 들으며, 나는 건물 옥상에 서서 생각에 잠겼다.

이상하네... 이새끼가 이때쯤 나올 애가 아닌데...

이때까지는 헐레벌떡 생각할 겨를도 없이 오느라 몰랐었지만, 생각해보니 이상한 일이다. 왜 월광교가 원작과 달리 쟤를 벌써 내보냈을까?

그렇게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나는 결론에 도달했다.

"....나 때문인가?"

아무래도 월광무녀인 은월이를 테러 중간에 NTR해서 빼앗어버린게 좀 큰 느낌.

원작에서 교주가 월광무녀를 시켜 테러를 일으킨게 월광교를 무서움을 모두에게 알리기위해 했던거란걸 생각하면...

흠. 그냥 나때문에 방해받은게 꼬아서 한번 더 일으킨건가..?

솔직히 교주가 그거 가지고 별 신경쓸까 싶었는데, 아무래도 좀 빈정이 상했나보다. 아니, 나이도 지긋한 사람이 왜이리 속이 좁아. 대인배처럼 넘어갈수도 있지, 참.

하여튼, 여전히 건물 아래에서 포효를 하며 개판을 치는 보라빛의 영혼포식자를 보며, 나는 혀를 찼다.

저거 한개체만 내보낸거 보니까 애초에 전력이 다 모이지도 않은거 같겄만, 왜 이렇게 무리했데?

"에휴... 그 영감탱이."

너 때문에 나만 쫄았잖아.

저 영혼포식자가 위협적이려면, 셋중 하나여야 한다. 여러 개체거나, 영혼을 충분히 먹어 진화한 상태이던가, 은이 약점이라는걸 모르거나.

그러나 지금은 단 한개체에, 색도 아직 보라색인걸 보니 진화도 안됐고, 심지어 나는 여러 개체들이 나온줄알고 은도 한가득 가져왔다.

그러니까 뭐. 게임 끝이란 소리.

".....이제 뭐하지."

그렇게 옥상위에 서서.

밤하늘의 차가운 공기를 맞으며, 나는 중얼거렸다.

아니. 솔직히 그냥 은탄 큰거 한발 쏘면 끝인데 뭘해. 솔직히 원작에서도 은이 약점이라는거 알기전에만 털렸었지, 알고 난 이후에는 그냥 역공해서 쟤들은 다 잡았다. 최종장에는 쟤보다 더 문제인 그놈이 있었으니.

하여튼, 좀 허무해지려던 나는 생각을 고쳐먹기로 했다.

그래. 오히려 좋아.

".....역시 밀리네."

아래를 내려다보니 역시 일대일 싸움에서 밀리고있는 스타더스의 모습. 아무리 그래도 최종병기는 최종병기다보니 상대하기 어려워하는 모습이다.

심지어 저놈 저거 주위에 사람들 또 두둥실 띄운다음에 영혼 빨아들이는 것좀 봐라. 계속 저렇게 체력회복을 해대니 스타더스가 밀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다만...

"....그래. 오히려 좋아."

지금 저 영혼포식자가 스타더스보다 일방적으로 강하다는건, 그만큼 스타더스가 더 성장할 수 있다는 소리.

시련을 겪을수록 강해지는 그녀이니만큼, 이 기회에 또 성장할 수 있다면 나쁘지 않을거다.

그리고, 거기에다가...

나는 총구를 만지작거렸다.

....어차피 지금 다들 정신도 없는 상황.

즉, 스타더스가 결정적인 공격을 날릴 때 내가 이걸 뒤에서 몰래 쏴버리면.

사람들은 스타더스가 쓰러트렸다고 생각하고 스타더스를 다들 찬양하지 않을까?

거기에 내 정체도 안드러나니 일석이조.

그래. 바로 이거다.

그렇게 결론을 내린 나는, 총구를 겨누고 타이밍을 노리기 위해 존버하기 시작했다.

....일방적으로 탈탈 털리고 있는 스타더스를 직관하며.

크흑, 눈물이 나올거같지만 참았다. 그러다 오인사격하면 안되거든.

그래도 스타더스 열심히 싸우는거 보니까 역시... 절망적인 상황에저도 저렇게 희망을 가지고 싸우는 모습을 봐라. 그래. 그런 그녀를 봐서라도 제일 최적의 타이밍을 노리자.

그렇게 조준을 마친 내 밑에서는.

끔찍하고 처절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

'답이 없다.'

그것이 스타더스가 내린 결론이였다.

-

끼에에에에에에에!!!

다시 그 괴수가 휘두른 팔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스타더스는 슬슬 한계가 오고 있다는걸 느꼈다.

쾅-. 쾅-. 무너지는 건물들,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

"하아..."

쾅-.

또다시 그것의 일격을 겨우 피한 그녀는, 잠시 그것과 거리를 벌려 떨어졌다.

그녀가 숨을 간신히 고르는 그때, 다시 울부짖는 괴수.

끄끼아아아아악!!!! 끼야이에아악!!!

귀에 꽂히는 소름끼치는 소리.

폐허가 된 어두운 도시를 배경으로, 오직 하늘 위 밝은 달만이 그 아래를 비추는 그곳에서.

보라빛의 괴수가 괴음을 내지르자, 그에 맞추어 허공에서 끌려와 그것 주위를 원형으로 맴도는 허여멀건한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비명. 뽑혀져나오는 영혼. 몸에 힘을 잃고 인형처럼 쓰러지는 사람들. 붉게 타오르는 그것의 눈동자.

어두운 하늘 밝은 달 아래.

끔찍한 괴음을 내지르며 사람들의 영혼을 빼앗고 있는 그것의 모습은, 그야말로 초현실적인 광경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스타더스에게 달려들었다.

"크윽..."

콰앙.

다시 둘이 맞붙으며, 엄청난 굉음이 났고.

역시나 스타더스는 막기에 급급하였다.

쾅. 쾅.

가끔 스타더스가 공격을 날려보지만, 무의미할뿐.

끄떡도 없이 계속해서 달려드는 그것을 상대하며, 스타더스는 점차 지쳐갔다.

"하아, 하아."

끄이에에에에에에에에엑!!!

쾅.

"흐윽..."

그리고 이내 그것이 휘두른 공격에 정통으로 맞아버린 스타더스.

엄청난 충격에 그대로 튕겨져나간 그녀는, 이내 벽쪽의 건물에 그대로 부딪히고 말았다.

그리고 그녀가 정신을 체 차리기도 직전, 그녀를 향해 쏘아지는 분홍색 레이져.

그 검은 하늘을 가르는 광선을 보고 가까스로 몸을 날려 피한 그녀.

콰아아아앙.

스타더스가 아까까지 있던 자리는 완전히 박살이 나고.

다시 그녀가 비틀거리며 날아올랐을때는, 이미 다시 그 괴수가 저 멀리 도망치던 사람들을 염력으로 자기 주위로 끌고 와 영혼을 빨아먹고 있는 순간이었다.

"헉... 헉...."

스타더스는 뿌연눈을 한손으로 부비며,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기 위해서 애썼다.

자신이 이대로 쓰러지면 안된다, 쓰러지면...

그리고 다시 그녀를 향해 달려드는 보라빛의 그것.

이를 악물고 주먹을 쥔 그녀는, 다시 그것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역시나 역부족.

타격은 거의 못준채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기만 한 그녀는, 이내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그녀는 다시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그것을 바라보았다.

뒤에 보이는 폐허가 된 도시, 어두운 하늘.

다시 가까워지는 보라빛의 흉측한 그것.

인생은 원래 한순간이라더니.

정말로, 끝은 이렇게도 갑작스럽게 찾아오는구나.

"크흑."

그것이 내지른 주먹을 다시 한번 막아보았지만, 역시나 역부족.

머리까지 울리는 충격에 비틀거리며, 그녀는 거친 숨을 내뱉었다.

....대체 어디서 이런게 갑자기 튀어나왔는지 모르겠다.

분명 오늘 전까지만 해도, 늘 평소와 똑같은 하루였는데.

그리고 이렇게 비슷한 하루가, 계속 될 줄 알았는데.

한순간에 이렇게 다 끝나는구나.

다시 어두운 밤하늘을, 그것의 공격을 전보다 훨씬 느리게, 간신히 피하며.

스타더스는 생각했다.

....싸우기 시작한지, 얼마나 됐더라.

아마 꽤 됐겠지.

그녀는 전투중에 간신히 옆을 힐끔 보았다.

아마 저쪽 어딘가에서 섀도우워커는 계속해서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있겠지.

그러는 동안, 자신은 어떻게든 이것을 붙들고 막아야한다. 이것이 이 도시를 떠나 다른곳으로 가게되면, 더 큰 재앙이 될테니.

그러나.

'...못이겨.'

그녀는 직감적으로 그것을 깨달았다.

자신은 이자리에서 절대로 저것을 이길 수 없다.

이미 계속되는 공방으로 몸은 지치고, 눈은 계속 떨릴 지경.

자신이 이렇게 빈사사태가 되는동안, 저것은 여전히 저렇게 쌩쌩한 상태.

이대로 계속 싸우다간 죽는다.

그녀는 그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걸 안다고 어쩔까. 자기 혼자 도망칠까?

"....."

저 쓰러진 사람들을, 여기에 버려두고?

그런 자신을, 히어로라고 부를 수 있는가?

아니.

이 자리에서 쓰러지더라도, 끝까지 맞서싸워.

단 한사람이라도 더 구하는것.

그것이, 히어로다.

그렇게 다시 마음먹은 그녀였으나.

"크윽..."

역시나 계속되는 공격에, 이제는 버티지 못하고 거의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점차 그녀의 몸에 힘은 빠지면서도, 공세는 더욱 강해지는 최악의 상황.

그럼에도 그녀는.

계속해서 거친 숨을 내뱉으며, 어떻게든 맞서싸웠다.

"헉... 헉..."

"으윽."

어떻게든.

"하아, 하아... 젠장, 하아..."

계속해서, 맞서 싸우던 그녀는.

"으으윽, 크흑!"

그렇게 계속 막고, 막고 맞서다.

시간이 꽤 지났을때.

그때 결국,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제.... 한계다.'

더이상은 몸을 움직이기도 힘들다.

아무래도... 여기까지같은 느낌.

여전히 괴수는 괴음을 내뱉으며 그녀에게 달려오고, 더이상 몸을 움직여 피할수도 없어 보이는.

그녀가 슬슬 최후가 다가온다고 느끼던 그때.

스타더스. 그녀는 마치 주마등처럼, 이전의 기억들이 갑작스럽게 떠오르는걸 느꼈다.

어린시절 부모님을 잃은 기억, 이설아를 처음 만난 기억, 히어로 협회에서 처음으로 히어로로 인정받은 기억, 처음으로 빌런을 쓰러트린 기억, 자신이 구해낸 시민들에게 감사를 받던 기억, 쓰러짐에도 다시 일어나던 순간의 기억.

그리고.

'안녕하십니까 스타더스씨. 에고스틱이라고 합니다.'

"....하."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마지막에 떠오르는게 에고스틱의 모습이라니.

끼에에에에에에엑!

"큭...."

다시 커다란 충격에 튕겨져나간 그녀.

그렇게 다시 비틀거리는 몸을 간신히 띄우며.

신하루는 자기도 모르게 계속해서 떠오르는 기억들을 복기했다.

배를 폭파시키려 들던 에고스틱.

비행기를 자신보고 구하라고 격려하던 에고스틱.

다리를 무너트린 에고스틱.

자신을 대신해 공격을 맞던 에고스틱.

인질들을 잡고 협박하던 에고스틱.

쓰러진 그녀를 쓰다듬은 뒤 폭풍으로 향하던 에고스틱.

"하.."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탄식을 내뱉었다.

다시 그녀에게 쇄도하는 보라빛의 괴물을 피하며.

그녀는 조용히 곱씹었다.

생각해보니 늘, 자신이 절망할때나 위기에 몰렸을때는 에고스틱이 어떠한 방법으로도 곁에 있었지.

이번에도... 그랬으면...

하. 무슨생각을 하는거야. 그럴리가 없다는 걸 알면서.

...그런것보다는.

자신은 끝끝내, 에고스틱의 비밀을 풀지도 못한 채, 이대로 가는구나.

모든걸 체념한 채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그녀는 문득, 분노가 치솟는걸 느꼈다.

...저 쓰잘때기 없는 괴물놈 하나때문에 끝내 그에 대해 전혀 알아내지도 못한 채 이대로 가다니.

"..."

...안돼.

억울하다.

그건 말도 안된다.

그래, 이대로 끝낼 수는 없어.

다시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육중한 보라빛의 괴수.

그런 그것을 보며,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이미 몸은 만신창이가 된지 오래. 곧 쓰러지기 직전의 상태인 그녀였지만.

"....갈땐 가더라도, 반드시 네놈은 쓰러트리고 간다!"

그렇게, 이미 다 쓰러져가는 몸을 이르켜.

그녀는 최대한의 속도로 그것을 향해 날아가며.

힘을 쥐어짜, 주먹을 쥐고 그것을 향해 휘두를 자세를 취했다.

최후의 일격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네놈한테 이거 한방은 먹이고 가겠다.

끄예예예아아아악!!!

"흐읏.....!"

그렇게 이를 악문채 쏘아지던 그녀의 주먹은.

어두운 밤하늘을 밝히는 밝은 빛을 내기 시작하며.

노랗게, 빛나고 있었다.

***

스타더스의 주먹을 중심으로 빛나는, 노란색의 빛.

"....지금이다."

굳은 얼굴로 전투를 계속 지켜보던 나는, 그 빛을 본 순간 그대로.

겨누고있던 총구의 방아쇠를, 당겼다.

-탕.

그렇게 밤하늘에는 눈이 부실 정도의 커다란 빛이 번쩍이며.

작은 총소리만이,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게 조용히 울려퍼질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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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도시.

그곳 한구석에 숨어있는 여자는, 길 한쪽에 주저앉은 채 벌벌 떨고 있었다.

'아니... 시발. 대체 저런 괴물이 어디서 튀어나온거야....'

끼에에에에에에에엑!!!

"히이이익!"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를 낸 여자는, 재빨리 입을 가렸다.

회사에서 일을 하던 중, 갑작스럽게 찾아온 재앙.

밝은 낮이 갑자기 어두워지고, 도시가 회색빛이 된 순간.

저 괴물이, 갑자기 도심 한복판에서 튀어나왔다.

흉물스러운 생김새에 모두가 비명을 지르는 순간, 놈이 손을 들었고.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마치 보이지 않은 손에 끌려가듯 허공을 날아 그놈에게 가까이 가게 되더니.

그대로, 마지막 비명을 지른뒤 모두 싸늘한 시체가 되었다.

'.....이젠 다 틀렸어.'

여전히 여자는 벌벌떨며 생각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끔찍한 생김새를 가진 저 괴물.

저 괴물이 언제든 손을 들면, 다음 차례는 바로 자신이 될 수 있다.

마치 여전히 자신의 옆에 있는 싸늘한 시체가 되어 누워있는 대리님처럼.

콰앙.

콰앙.

물론 저 괴물만이 이 어두운 도시에 있는건 아니었다.

이 사태가 일어난 직후에, 곧장 달려온 히어로들.

처음에는 사람들도 히어로를 보고 저들이 해결해 줄거라는 희망을 가졌으나.

'....틀렸어.'

콰아아아앙.

또다시 들리는 파괴음.

벌벌떨던 그녀가 고개를 옆으로 들려 뒤를 봤고.

그 코너 뒤에는.

끼에에에에에에엑!

-크흑...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는, 금발 머리를 휘날리는 히어로가 보였다.

저 괴물을 무찌르기는 커녕, 놈이 휘두르는 공격을 막기에도 급급해보이는 그녀.

그리고 그와중에도 계속 수많은 사람들이 골목 어딘가에서 괴물에 의해 끌려와, 비명을 지르더니 정기가 빨리고선 땅바닥에 풀썩 쓰러졌다. 차가운 시체가 되어.

'.....이젠 나도 곧이겠지.'

이미 그녀는 체념했다.

다른 히어로가 구조작업을 하고 있는거같긴 한데, 아무래도 자기 쪽으로는 올 기미가 안보인다.

하, 이렇게 죽을 줄 알았으면 그 꼰대 과장 뺨은 한대 때려보고 죽어볼껄.

....어차피 그 과장도 죽었을려나?

아니다, 그 명줄 긴 인간이라면 지금도 살아있을 수 있어.

그런 생각을 보며 이제는 아예 대놓고 전투를 지켜보던 그녀에게.

저 한쪽에서, 휴대폰을 들고있는 남자가 보였다.

'.....저 인간은 저기서 뭐하는거야?'

눈을 가늘게 뜨고 자세히 보니, 휴대폰을 가로로 잡고 전투현장을... 찍고있는거 같다.

'.....하. 진짜 난리났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마지막 순간까지 유튜브 스트리밍을 하는건지 뭘하는건지 모르겠는 남자를 뒤로하고, 그녀는 다시 전투를 지켜봤다.

여전히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는 히어로.

이름이... 스타더스였나? 스타더스는 여전히 맞서 싸우고 있었으나, 갈수록 힘이 빠지고 있다는게 일반인인 그녀가 보기에도 느껴졌다.

다시봐도 스타더스가 이길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그래도, 최선을 다해 싸우네.'

그녀는 씁쓸히 생각했다.

지금은 저렇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아마 이제 곧, 자신도...

-살려줘! 꺄아아아악!

어느덧 또다시, 허공에서 끌려오는 사람들.

스스로 목을 조르며 괴로워하더니 이내 몸안에서 무언가 하얀게 빠져다가더니, 땅에 생기를 잃은 채 털썩 쓰러지는 그들.

그런 모습을 빛을 잃은 눈으로 고개를 빼곰 내민 그녀가 그것을 지켜보던 그때.

-쿵.

그것과, 그녀의 눈이 마주쳤다.

"....아."

황급히 다시 고개를 돌려 벽쪽으로 다시 몸을 숨긴 그녀.

그렇게 몸은 떨리는데다 쿵쿵거리는 심장을 붙잡고, 벽뒤에서 숨을 죽인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깨달았다.

이제 다음은 내차례 겠구나.

자신 옆에 싸늘하게 누워있는 시체를 다시보니 공포심이 더욱 극대화 된 그녀.

이빨마저 딱딱 부딪히는 가운데.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체념한 그녀였으나, 직접 죽음을 문턱에 두자 갑자기 삶에 열망이 생기는 그녀였다.

'제발.... 스타더스... 제발....'

다시 고개를 빼꼼 내밀고서는 스타더스를 향해 아예 기도를 하기 시작하는 그녀.

제발. 제발! 기적이 내려, 스타더스님. 한번만 저놈을 이겨주면 안되겠어요? 제발요.

그러나 역시나 스타더스는 아까와 다를 바 없이 밀리고 있었고.

이제는 건물에 부딪히며 난리를 피우는 가운데.

그것이 다시 손을 들어올린 채 스타더스에게 달려들고.

그 전투의 현장을 벽뒤에 숨은 그녀가 고개를 내밀고 지켜보던 그때.

'아, 안돼...'

순간 그녀는, 자신의 몸을 누군가 꽉 잡은 듯한 감각을 느꼈다.

자신또한 다른 이들처럼 영혼을 빨리게 생긴 그 순간.

저 괴물에게 끌려가며 절규하던 그녀 앞에.

"으아아아아아-!"

기합에 찬 여자의 함성이 들려왔고.

그와 동시에.

스타더스와 그 괴물이 있는 곳에서.

스타더스가 주먹을 휘두르는 순간,

번쩍-

눈이 부실 정도의 밝은 빛이 그 중심에서 번쩍이며.

끝내 그 빛이 그것을 향해 쏘아지는 순간.

쿠우우우우웅.

콰아앙-

이때까지 들었던 그 어떤 소리보다 큰 굉음이 울려퍼지고.

그들을 중심으로 날아갈정도의 바람이 휘몰아치며.

도시 전체가, 그 중심에 마치 원자폭탄이 터진것마냥 거대한 노란 빛으로 순간 빛나는 동시에.

-쿠구구구구구구구구구궁.

끼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엑!!!!

"....으악!"

엄청난 빛에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며 눈을 감은 그녀가, 다시 눈을 떴을때 본 것은.

끼에에에... 끄아아아아아아!!!

허공에 뜬 채, 고통으로 울부짖는 괴물.

그것의 몸 사이사이에서 뿜어져나오는 보라색 빛.

그리고, 그것의 마지막 단말마를 끝으로.

-슈우욱

콰과과과과과과과과광-

작열하는 하얀색 빛과 함께, 그 괴물이

펑.

터져버렸다.

"히익!"

이내 허공에 들렸던 그녀의 몸도 바닥에 떨어지고.

잠시 그녀가 고통속에 엉덩이를 매만질때.

"으으으..."

"어? 대리님?"

자신 옆에 싸늘한 시체가 되어 누워있던 남자에게.

하얀색 빛의 무언가. 마치 영혼같은 것이 그에게 들어오며.

그가 다시 혈색을 띄고, 신음을 내뱉기 시작했다.

그런 광경을 지켜보던 그녀는.

"스타더스가... 쟤를 결국 쓰, 쓰러트린거야?"

자신도 모르게 더듬거리며 그렇게 말한 그녀.

이내 땅바닥에 시체가 되어 뒹굴던 사람들도 하나 둘 다시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고.

이내 무너진 벽 뒤에서, 더러워진 자신의 정장을 신경도 안쓴 채 비틀거리며 일어난 그녀. 그리고 그녀를 포함해 그순간 정신을 차린 모두가 본 것은.

그 도시를 중심으로 어두운 하늘이 걷히며 다시 해가 떠오르고.

그 중심에 서서, 제일 먼저 밝은 빛을 맞이한 채 허공에 여전히 주먹을 쥐고 떠있는.

금발 머리카락만을 휘날리고 있는, 스타더스.

떠오르는 해의 역광으로 떠, 그림자에 잠긴 스타더스의 등 뒤를 보며.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영웅."

저게, 영웅이구나.

누구도 상대하지 못할 것만 같은 괴물을 쓰러트린 뒤, 홀로 빛나며 떠있는 스타더스의 모습은그야말로 영웅이었으며.

그 모습을 본 모든 이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런 스타더스의 모습을 멍하니.

그저 멍하니,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빛나는, 우리들 모두를 구원해준.

영웅의 모습을.

그렇게 그날부로.

스타더스의 전투가 처음부터 끝까지 찍힌 영상이 전국으로 퍼지며.

스타더스 그녀의 인기는, 폭발하기 시작했다.

***

어둠이 사라지고 다시 밝아진 하늘.

그 중심의 옥상에서, 나는 웃었다.

"하하, 시발. 좆밥새끼. 한방에, 쿨럭. 끝나죠?"

은탄을 꾹꾹 눌러담아 무슨 바주카포마냥 놈한테 날려주니 그냥 찍소리도 못하고 끼에엑! 거리며 죽는 모습.

심지어 내가 스타더스가 스타-펀치를 날리며 빛이 번쩍하던 그 순간 쏘는 바람에, 정말 누가봐도 스타더스가 쓰러트린 모습이다. 하루도 자기가 쓰러트린걸로 알껄?

핵탄두라도 맞은마냥 강렬한 빛이 번쩍하면서 놈이 쓰러지는게, 나조차도 순간 스타더스가 직접 쓰러트린 줄 알았다.

물론 하루의 스타펀치가 얼마나 강한지와는 별개로 저놈은 은으로 공격하는게 아니면 절대 안죽는 애인만큼, 그럴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원작보다 훨씬 빠르게 이 기회로 준필살기인 스타펀치를 각성한게 어딘가.

다시 밝아진 하늘 아래, 마지막으로 놈을 쓰러트린 뒤 잠시 떠있다가 모든 힘을 다하고 풀썩 쓰러진 스타더스. 그런 그녀를 뒤로하고, 나는 이제 내 자신을 신경쓰기 시작했다. 스타더스야 피로가 풀리면 다시 깨어날거고... 이젠 내가 문제네.

"휴... 이제 집에, 쿨럭. 어떻게 가... 쿨럭. 쿨러억."

아 시발.

이와중에 나는 또 피를 토했다.

아무래도 여기까지 이 먼거리를 오바해서 순간이동으로 왔더니, 긴장이 풀린 이제야 그 후폭풍이 오는 것 같은 느낌.

결국 건물 외벽에 피를 한바가지 토해준 나는, 입가에 흐르는 피를 쓱 닦고 주섬주섬 대물저격총을 챙겨 집에 돌아갈 준비를 했다.

하, 돌아가는건 어케가지.

엄청 걱정해하던 이설아한테도 상황 설명해줘야하고... 할께 많네.

그렇게 생각하며 총을 챙긴 내가 뒤를 딱 돌아보려는 순간.

"역시 너였구나."

내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나는 멈칫하고 말았다.

그렇게 다시 고개를 돌린 내 앞에 있던건.

"....섀도우워커?"

검은 머리에 다크서클이 가득한 섀도우워커였다.

눈은 피로에 찌든 모습이지만, 그럼에도 입가는 살짝 올라가있는그.

...아니 시발. 얘가 왜 여기서 나와.

갑작스러운 만남에 내가 얼타고 있을 때, 놈은 코끝을 쓱 닦더니 나를 향해 말했다.

"그렇게 놀랄 필요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알고있었으니까."

"....뭘?"

"네놈이 빌런인척 하는 히어로라는건 난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이번에 보니 저걸 제거한것도, 너지?"

날 앞에두고 주절주절 말하는 그. 아니 그래서 얘는 어디서 튀어나온거고, 혼자 뭔소리를 하는거야

그렇게 눈알만 굴리고 있는 나를 보며, 그런 나를 보고 혼자 무슨 판단한것인지 그는 다시 코밑을 쓱 닦으며 말했다.

"하여튼... 히어로를 대신해 말하지. 에고스틱. 너에게 내가 대신 감사를 표한다. 에고스틱."

그러더니 이제는 나한테 엄지를 척 내밀며 말하는 그.

"네놈은 내가 인정한... 진정한 사나이다!"

....임마는 대체 뭐지.

"어... 고맙다?"

나는 자기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는 걔한테 그냥 그렇게 한마디 해줬다.

...어차피 섀도우워커는 원래 포섭하려고 했던 놈이니, 나에 대해 좋게 생각해주면 좋지 뭐.

무슨 상황인지는 어, 모르겠는데.

그래도 이 말은 해야지.

나는 여전히 따봉을 날리고 있는 그한테 덧붙였다.

"아 그리고. 내가 이랬다는거 다른 사람들한테 말하면 안된다?"

"훗. 나를 뭘로 보는게냐. 너한테도 이러는 사정이 있다는걸 이해한다. 비밀은 꼭 지켜주지."

그래. 고맙다.

그러니, 슬슬 가주면 안되겠냐?

지금 정신이 나갈 것 같거든.

"그래, 고맙다. 그러니 이젠 나도 가야돼서, 쿨럭."

아 씨발.

결국 난 그놈 앞에서 피를 쏟고 말았다.

갑자기 내 입에서 피가 토해지는걸 보자 표정이 굳는 그.

".....어이, 네놈. 괜찮은거냐?"

"괜찮으니까, 쿨럭. 이제 가줄래?"

아. 생각해보니 아까부터 너무 당황해서 존댓말 컨셉 지키는것도 잊고 있었네.

어쨌든 내가 손을 휘휘 지으며 좀 가달라 부탁하니, 표정을 여전히 굳힌 채 그래도 발을 옮기는 그였다.

"...네놈, 음.... 아니다, 그래. 음.... 그래, 나는 먼저 가지."

그렇게 무슨생각을 한건지 혼자 더듬더니 터덜터덜 옥상의 문을 열고 내려가는 그였다.

그림자 이동은 안하고 왜저러나 했는데, 생각해보니 이제 밤이 아니구나.

뚜벅이가 된 그의 뒷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던 나는, 이내 머리를 부여잡고 침음했다.

그래... 깜짝 이벤트도 어떻게 해결하고.

아. 집은 이제 어떻게가지.

어쩔 수 없다. 이 몸상태로는 좀 리스크가 크지만, 그래도 순간이동을 하자. 다른 리스크지지 말고.

...쓰러지면 하율이가 치료해주니까, 괜찮겠지? 설마 가다가 죽지는 않을꺼아니야.

그런 판단을 마친 나는 다시 장거리 순간이동을 감행했다.

인생이 고달파요.

****

[네! 방금 올라온 현장 영상입니다! 스타더스가 끝내 그 괴물을 무찌르는 모습입니다! 스타더스가 모두를 구했습니다! 영웅 그자체의 모습을 보여준 스타더스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스타더스 만세! 스타더스 만세! 스타더스 만만세!!!]

[김태원 앵커, 지금 당장 데스크에서 내려오세요! 생방송중에 누가 거길 올라가! 방송 꺼. 방송 꺼!]

그날의 사건 이후.

대한민국에서는 그야말로 스타더스 열풍(熱風)이 불었다.

지금까지 헌정사상 그 어떤 히어로도 겪지 못한 뜨거운 지지.

절망에 빠져있던 국민들을 위해, 끝까지 맞서 싸우며, 끝내 번쩍이는 빛과 함께 놈을 쓰러트려 모두에게 구원을 내린 스타더스. 그런 그녀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말그대로 국민 영웅이라 불러도 모자람이 없었다.

그리고 대중의 뜨거운 사랑과 관심.

그 중심에 선 스타더스, 신하루는.

'....분명 그때, 옥상에서 누군가...'

자기가 인기가 있건 없건 그런건 다 뒤로하고, 힘이 다해 쓰러지기 전 마지막으로 본 광경을 떠올리느라 애쓰고 있었다.

분명 탕하는 소리와, 가면 쓴 누군가를 본거같은데...

잘못들은건가.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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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현재 스타더스 열풍. 실시간 트렌드에 #스타더스, 사라질 기미가 안보여...]

[역대급 인기... 스타더스 전투 하이라이트 영상 단시간내 1000만뷰 돌파.... 전세계 인기영상 리스트에 올라가.]

[외신들도 주목하는 이번사태... 낮이 밤이된 초유의 사건, 이를 끝낸건 자랑스러운 한국 히어로 스타더스였다.]

[역대 히어로들 중 초유의 인기... 협회 연전연승.]

"크하하하하하하!!!"

사태가 마무리 되고 난 이후.

대한민국 히어로 협회 최상층.

그곳에서 협회장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래. 스타더스. 몸은 이제 괜찮고?"

"네 협회장님."

"그래! 역시 우리 스타더스야. 이번에 정말 대박이었네! 내 진짜 나라 망하는줄 알고 얼마나 놀랬는줄 아나? 크하하하하하하!"

계속 해서 웃는 협회장.

그리고 그런 반응을 보며, 신하루는 불편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정말 내가 쓰러트린게 맞았을까?'

그래.

자신이 마지막으로 그 괴물을 상대로 날린 빛을 뿜으며 날린 공격은, 지금 생각해도 놀라울 정도의 출력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 그녀가 지금까지 발휘한 능력 중에서도, 제일 강했던 공격.

그러나.

신하루는 단 한번도, 그 공격으로 놈을 쓰러트릴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적은 없다.

오직 마지막 순간 놈에게 한방을 먹이겠다는 각오로 한것일뿐.

그녀가 직감적으로 느끼기에, 놈은 이런 일반적인 단순한 공격으로는 쓰러질거 같지 않았다. 따로 '약점'같은게 있다면 모를까...

그렇기에.

신하루는 자신이 놈을 그런 공격으로 쓰러트렸다는걸 믿을 수 없었다.

그리고.

"스타더스. 걱정말게. 내 꼭 책임지고 국제 협회 총괄지부에 연락해 당장 S급으로 승격시키라고 따질테니! 크하하, 히어로 협회 소속, S급이라! 크하하하!"

"....."

자신이 그것을 쓰러트렸다고 굳게 믿는 협회장을 보며, 그녀는 점점 마음이 불편해져갔다.

....과연 내가 쓰러트린게 맞을까.

그런 의심과 더불어, 놈이 쓰러진 뒤 자신또한 정신을 잃기 전 보았던, 흐린 기억.

자신이 공격을 날릴 때 분명 탕- 하는, 마치 총소리같은 소음이 들려왔고.

옥상 위에 누군가, 분명 서있던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아마.

신하루가 누군가를 떠올리던 그때, 다시 협회장의 웃음소리가 회의실을 가득 채웠다.

"하여튼 스타더스. 이번에 보너스도 챙겨줄테니 좀 푹 쉬게, 알았지? 어디 여행이라도 갔다오게. 저기 동해쪽에 이 날씨에도 불구하고 따뜻한 바다가 있다고 하던데, 좀 그런데 가서 쉬어. 고생한만큼 보상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이제 전국적 스타인데, 하하하하!!!"

"그래 하루야. 고생했으니까 쉬어. 딸꾹. 정말 큰일을 했잖아?"

옆에서 아이시클 또한 붉게 물든 얼굴로 따뜻하게 웃으며 그렇게 말했고.

옆에서 혼자 깊은 생각에 빠져있던 섀도우워커도 문득 정신을 차리고 입을 열었다.

"으음.... 음, 아? 아, 그래. 스타더스. 너의 싸움은 정말 멋졌어. 이제 좀 쉬게. 대한민국의 영웅 아닌가. 나머지는 아이시클이 다 해준다고 했네."

"...저기요, 딸꾹. 자현씨? 제가 언제 그런말을 했죠?"

그렇게 협회장에 이어 아이시클과 섀도우워커마저 자신에게 그런 말을 건네자, 스타더스의 마음은 이제는 살짝 죄책감마저 느끼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 그녀가 끝까지 목숨을 걸고 맞서 싸운건 맞다.

그러나 과연 마무리지은게 자신일까?

탕- 소리, 옥상 위 그림자.

누구보다 많은걸 알며, 총을 주 무기로 하고, 가면을 쓴거 같았으며, 늘 위기에 순간 자기를 구해주었던.

그와 동시에 그녀의 머릿속에 한 남자의 모습이 스쳐갔으나,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너무 억측이다. 내가 그냥 마지막에 힘이 빠져서 잘못 듣고, 잘못 본걸 수도 있지. 자신의 직감 말고는 그 어떤 증거도 없지 않는가. 애초에 그는 빌런이기도 하고.

그러나.

신하루의 직감은, 한가지는 확실하다고 끝까지 강력하게 소리쳤다.

....그건, 그녀가 쓰러트릴 수 있는게 아니었다고.

분명 다른 누군가가 도와준거라고.

아마, 분명 그가...

"하하! 그 괴물을 단신으로 쓰러트리다니, 스타더스. 자네는 정말 생각할수록..."

"협회장님."

그렇게 신나서 떠드는 협회장의 말을 끊고.

끝내 스타더스, 신하루는. 고백하고 말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걸 쓰러트린건 제가 아닌거 같습니다."

그녀의 말이 끝난 순간.

갑자기 얼어붙은 분위기.

"....뭐라고?"

그녀의 폭탄발언을 들은 협회장의 얼굴이 굳을 때.

그보다 더 당황한 인물들이 있었으니.

"...딸꾹."

".....!"

그건 바로, 창백한 표정을 짓고있는 아이시클과 섀도우워커였다.

***

"무슨 소리야 하루야. 당연히 쓰러트린건 너지, 하하하, 딸꾹. 착각하는거 아니야?"

그렇게 얼어붙은 분위기에서 처음으로 말을 꺼낸건, 아이시클이었다.

이미 다인에게 사건의 전말을 다 전해들은 그녀였기에, 그가 괴물을 몰래 쓰러트린걸 알고 있던 그녀.

'...그리고 내가 타이밍을 정확하게 노려서 하는 바람에, 스타더스는 절대로, 쿨럭, 내가 했다는걸 모를거야. 자기가 한거라고 확신하겠지.'

'...다인씨. 분명 하루는 모를거라면서요!'

자신만만하게 자신한테 전화로 전했던 그의 말이 귓가에 들려오는 듯 했던 이설아는, 속으로 그를 원망하며 어질거리는 머리를 붙잡은 채 스타더스에게 말을 이었다.

"거기서 너말고 쓰러트릴 사람이 누가있겠어? 하루야, 기절했다가 일어나서 머리 아픈거 아니야?"

"아니. 난 분명 봤었어. 옥상 위에 누군가가 있었던걸. 그리고 아마 그것을 쓰러트린건, 그 같아."

"스타더스. 그건 아니야."

"....섀도우워커?"

갑작스럽게 난입한 섀도우워커의 말에 스타더스는 의문을 표했고.

그런 그녀의 시선을 받으며, 섀도우워커는 속으로 조용히 생각했다.

'....에고스틱. 그는 분명,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고 싶지 않다고 했었지.'

그러면서 그는 그날 옥상에서의 기억을 회고했다.

한사코 자신이 알려지는걸 원하지 않던, 계속 빌런으로써 어둠에 살고 싶다고 한 그.

그리고 피를 계속, 계속해서 토하던 그.

그리고 거기서, 섀도우워커는 한가지 가설을 만들어냈다.

'....시한부인가.'

어째서 그 남자는 히어로가 아닌 빌런으로써, 좋은 일을 하면서도 세상 사람들에게 빌런이라는 오명을 받기를 자처하며 살아가는가.

누구보다 이 세상을, 사람들을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던 그가 어째서?

...그가 시한부여서, 자신이 히어로로 활동하다 사망할시 세상 사람들이 희망을 잃을 걸 대비해 그러는게 아닐까.

어차피 떠나게 될 날이 정해졌기에... 정을 붙이지 않고. 빌런으로써 조용히 뒤에서 세상을 지키며 살아가는 거라면.

'....크흑. 에고스틱. 역시 네놈은 진정한 사나이다.'

어둠 속에서 세상을 지키는 다크 히어로... 에고스틱...

그렇게 머릿속에서 한편의 대서사시를 그린 섀도우워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 그런 진정한 영웅 에고스틱을 위해 내가 이정도도 못해주겠어.

걱정마라, 에고스틱. 여기는 내게 맡겨라.

그런 신념에 사로잡힌 섀도우워커는, 다시 뻔뻔하게 스타더스에게 말했다.

"내가 네가 마지막으로 그를 쓰러트리기 직전, 네 주위를 다 살펴봤었는데. 그 누구도 네 근처에 있지 않았다. 당연히 그 어떤 옥상 위에도 아무도 없었고."

"....그럴리가."

"날 믿어라 스타더스. 어두울때 한정해서 내 능력은 아무리 약해져도 그정도는 눈치 챌 수 있다는걸 알지 않는가."

"그때 네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것을 쓰러트린건 너다."

"맞아 하루야. 거기 누가 있었겠어? 당연히 네가 쓰러트린거지. 요즘 기가 허해서 헛것이 보이나보다. 내가 좋은 휴양지 알려줄까?"

"...."

"...하하하! 그래 스타더스, 자네가 착각한거겠지. 내 진짜 깜짝 놀랬지 뭐야. 그럼 난 이만 기자들한테 우리 협회가 어떤 도움을 줬는지 설명해야되서, 가보겠네."

"아, 하루야. 나도 가볼게. 하아, 요즘 기업이나 정치권이나 다들 내 기업을 못잡아먹어 가지고 난리라, 딸꾹. 그거 대책을... 에휴. 지겨워 진짜."

"...나도 가보겠다. 역시 낮에 깨어있으니 졸려 죽겠군. ...근데 아이시클, 그거 설마 술인가?"

"뭐요. 요즘 이거 없으면 미치겠어서 주기적으로 마셔줘야되거든요?"

"....아까부터 딸꾹거리더만 그게... 그. 아니다, 그래. 너 알아서 해라."

그렇게 그들의 말소리가 점차 멀어져가며.

이내 회의실에는, 스타더스 혼자만이 남아있게 되었다.

"..."

모두가 떠난 자리.

그렇게 홀로 남은 스타더스는, 여전히 심각한 얼굴로 조용히 중얼거렸다.

".....아닌데, 그럴리가 없는데...."

자신을 빼고 모두가 짜고 친듯 착각일뿐이라고, 아니라고 그녀에게 말하는 상황.

....그게 착각이라고?

말도 안된다, 말도 안되는데...

모두가 부정하니 이젠 그녀도 혼란스러울 지경이었다.

....진짜 내가 그냥 착각한건가?

"....그거, 아무리 생각해도 에고스틱 같았는데."

자신도 모르게 끝내 시인한 그녀.

...그래, 어쩌면 자신이 에고스틱에게 너무 의존을 하는 바람에, 착각한 것일수도 있다.

잠깐. 의존? 내가 빌런인 에고스틱에게 의존하고 있다고?

"..."

화악.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진 그녀는, 고개를 털며 빠르게 생각을 정정했다.

그럴리가. 그냥 요즘 정말 허해서 착각한거다.

...아니 근데 정말로, 에고스틱 같았다. 직감이 그랬다고.

".....내가 망상하는건가."

아니.

그래도, 그건 에고스틱이 쓰러트린거 같다.

그렇게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 말을, 그녀는 홀로 중얼거릴 뿐이었다.

그래.

....이번엔, 내 직감을 믿어보는게.

그런 생각을 하던 그녀는, 문득 정신을 차리곤 황망히 텅 빈 회의실을 둘러보았다.

....잠깐. 근데 생각해보니까 다들 어디가고 나만 혼자 있는거지.

그렇게 신하루는 홀로 텅 빈 커다란 사무실에 앉아있다, 자리를 털고 나왔다.

...다들 너무한거같다.

***

[망붕이 영혼 빨린 썰 푼다]

그날도 회사에서 몸이 갈리던 사축 망붕이

갑자기 시발 밖에서 크롸롸롸~ 소리가 들리는거임

그래서 헐레벌떡 나갔더니 시발 날이 어두워지고 막 괴물 튀어나오는거여

다들 그거보고 으악! 이러면서 사방으로 튀는데

갑자기 내 몸을 누가 붙잡은것처럼 움질일 수가 없더니 허공에 잡혀 그 괴물놈한테 끌려감;;

그러더니 갑자기 누가 내 머리 끄댕이를 잡아당기는? 느낌과 함께

무슨 쭈쭈바 쥐어짜듯 몸에서 무언가 빠져나가는게 느껴지는 거야

내가 영끌투자를 많이 하긴 했는데 그렇다고 ㄹㅇ 영혼이 끌어모아져 빨릴 줄은 몰랐음 ㅅㅂㅋㅋ

하여튼 뽑히고 나니 느낌 존나 기묘함 무슨 괴물옆에 붙여있는데 약간 몽롱하니 꿈꾸는느낌? 의식이 약하게 있기는 했음

그렇게 어어어 이러며 있는데 갑자기 노란 빛이 번쩍하더니 다시 몸으로 복귀함 ㄷ 스타더스 없었으면 ㄹㅇ영혼상태로 쭉 있었겠지? ㅅㅂ생각만해도 무섭네

오늘 느낀건데 사후세계는 있는게 맞는듯ㅇㅇ...

좀 말이 두서 없어졌는데

결론: 오늘부터 에고스타 지지하기로 했다

=[댓글]=

[결론이 좀 이상한데?]

[ㅅㅂㅋㅋㅋㅋㅋ 세상 살면서 진귀한 경험 했네]

[에고스타를 드디어 깨달은거 보니 좋은 경험이었네.]

[에고스타 갑자기 떡상ㅋㅋㅋ 정작 에고스틱이랑은 엮이지도 않았는데 뭐냐]

ㄴ[아ㅋㅋ 망고도 좋고 스타더스도 좋으니까 둘이 합쳐지면 2배로 좋아지는거 아니겠냐고ㅋㅋㅋ]

*

"하, 쿨럭. 웃기네, 쿨럭. 쿨러억!"

"오빠! 괜찮아요?"

"어, 당연히, 쿨럭. 괜찮... 쿨럭. 쿨러억!!!"

"꺄아악! 하율언니!!!"

"지금 갈게!"

모든 사건이 끝난 이후.

내리 기절해있던 나는, 깨어난 후에도 계속 피를 쏟고 있었다.

하. 순간이동 그거 좀 몇번 했다고 다 죽어가는게 말이 되냐?

능력 구린 사람들은 서러워서 살겠냐...

"내가 진짜 오빠때문에 못살아요!"

"서은아... 나도 지금 못살고 쓰러지겠다... 은월아, 쿨럭. 저기 손수건 새거 하나 좀."

"네, 네!"

하.

진짜 내가 빨리 은퇴하던가 해야지 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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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더스는 떡상했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그냥 내 스타더스 팬카페만 봐도 알 수 있다. 가입자가 요 며칠사이 그냥 폭등했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스타더스의 매력을 알게 되니 내가 다 기쁘다.

물론 그 반작용으로, 내가 거의 죽을뻔하기는 했는데...

그래도 결과적으로 안죽었으니까 된 거 아닐까?

"쿨럭."

"다인오빠, 여기 손수건이요."

"아, 은월아. 고맙다."

나는 입가에 흐르는 피를 슥 닦았다.

...아무래도 초장거리 순간이동은 내 몸에 좀 무리가 많이 가는거 같다. 하긴, 따지고보면 수십키로를 한번도 안쉬고 전력질주 한거니 몸이 안망가지는게 이상하지. 죽지 않은게 다행이긴 하다.

...물론 죽지는 않았지만, 거의 죽을뻔하기는 했다.

집에 도착하자 마자 피바다를 일으키고는 그냥 쓰러져버렸으니까. 나중에 듣기를 진짜 온 집안이 뒤집어졌다고 한다. 그나마 하율이가 바로 달려와서 치료해주는 덕분에 겨우 살아난거지, 아니였으면 숨 넘어갈 것처럼 보였다나.

특히 내가 이러는 걸 처음 본 최세희랑 은월이는 거의 패닉상태에 빠졌다고 한다. 서은이랑 하율이는 저번에도 내가 칼빵맞고 피철철 흘리며 온적이 있어서인지 비명을 지르면서도 정신은 붙잡았다는데, 은월이는 듣기로는 기절했대나...?

그 결과가 내 침대 옆에 꼭 붙어있는 은월이다.

"다인오빠... 진짜 괜찮으신거 맞죠?"

"그래. 걱정마, 은월아."

여전히 나를 향해 걱정어린 시선을 보내는 은월이.

나는 그런 은월이에게 계속 괜찮다고 말해줬다. 내가 깨어나자마자 본게 세상 잃은듯 펑펑 울던 은월이라, 미안한 마음이 크다. 안그래도 나한테 서은이만큼이나 많이 의지하는 애인데, 얼마나 놀랐겠어.

그렇게 나한테 붙어 살짝 떠는 그녀를 내가 옆에서 한손으로 다독이고 있자 불편한 기색으로 눈을 흘기던 서은이는, 이제는 갑자기 모함을 하기 시작했다.

"오빠, 백은월 저거 사실 오빠 옆에 붙어있으려고 괜히 약한척 하는거에요. 다 연기니까 속으면 안돼요."

"...아니거든요? 오빠, 저런 거짓말에 속으면 안되요. 제가 진짜 걱정 많이하는거 알죠?"

"당연히 알지."

"이씨....! 그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이내 내 옆에 앉아있던 서은이는, 자신도 내가 반쯤 누운듯 앉아있는 침대에 자기도 올라오기 시작했다.

"....서은씨, 뭐하세요?"

"뭐가. 나도 오빠 걱정하거든? 붙어있을꺼거든?"

"....아까는 저보고 오버하는거라면서요?"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헤. 솔직하지 못하신게 귀여우시네요."

"뭐라고? 지금 나 놀리는거지?"

"아니요. 귀엽다는 칭찬이에요."

"흥. 그러면 너도 귀여워."

"고마워요."

"...뭔가 이상한데."

오늘도 투닥거리는 서은이와 은월이.

...뭐, 여느때와 같이 친한 둘이었다.

사실 이렇게 으르렁 거리는 것도 둘이 친하니까 가능한거다. 평소에는 둘이서 손잡고 이곳저곳 쏘아댕기며 잘놀더라.

하여튼 요즘에는 이런 식으로 살고 있다.

침대 겸 피로회복기에 누워서 지내는 삶.

내가 아무리 괜찮다고 말해도 각혈이 이어지는 걸 본 멤버들이 강제로 여기 눕힌 뒤, 손가락 까딱 못하게 하고 있다.

...아니, 이제는 가끔 피토하는거 빼고는 정말 괜찮은데. 너무 과보호가 심하다.

하여튼 여전히 으르렁거리며 해커망고니 달빛망고니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대화를 하고있는 둘을 중재시킬겸, 나는 입을 열었다.

"....서은아, 은월아. 진정하고. 쿨럭."

"오빠! 괜찮은거 맞아요? 하율언니 또 부를까요?"

"쿨럭. 그정도는 아니야."

이미 최근까지도 내 옆에서 선잠자며 하루종일 내 옆에 붙어서 병간호하다가 이제야 눈좀 감은 애를 다시 깨우자고? 그건 아니다. 내 양심이 허락하지 않아...

싸우다말고 나를 향해 걱정어린 목소리로 말하는 서은이를, 나는 쓰다듬어 줬다. 그제서야 살짝 눈을 감고 안심하듯 한숨을 내쉬는 그녀.

휴, 다들 걱정시켜서 미안한 마음이 크다.

나도 힘들어. 어디론가 훌쩍 여행을 떠나 쉬고싶은 마음 뿐이다. 좀 휴양지 비스무리한 데로.

"우리 조금있다 바로 여행이나 가자. 어디든."

"네? 그 몸상태로요?"

"...서은아, 이제는 진짜 괜찮다니까. 어차피 휴양지 가는거라 나는 누워만 있어도 되고."

"...그런가. 뭐, 그정도면 괜찮을거 같기도 하네요! 언니들한테 말해볼께요."

"....여행..."

여행이란 말을 듣자 눈을 반짝이는 은월이었다.

그래, 빨리 은월이 바다 보여줘야지.

하여튼 그렇게 다같이 누워서 이런 저런 얘기를 했다.

애초에 서은이랑 은월이가 이 방으로 오는 이유가 나 혼자 누워있으면 심심할꺼라고 해서인만큼, 양옆에서 재잘거리는 애들.

"그래서 오빠. 이제 거의 다 제작이 끝났어요. 스타버스터 2호기, 버스터를 넘어선 일명 스타브레이커! 이번에는 저번과 확실히 다를거에요. 스타더스가 제 앞에서 무릎꿇기까지 이제 얼마 안남은거죠! 히히."

"...아니 서은아. 대체 스타더스가 너한테 뭘 했다고 그러니..."

"저한테 한게 아니라 오빠한테 했죠. 맨날 그 여자때문에 오빠가 다쳐서 들어오는데, 전 용서할 수 없어요!"

....나 때문이였던거야?

그렇게 스타더스를 쓰러트릴 계획을 말하며 환하게 웃는 서은이를 보며, 나도 어색하게 웃어주었다.

...하긴, 생각해보면 서은이는 원작에서도 스타더스랑 사이가 안좋았었다. 역시 원작대로 가는게 이 세상의 순리인가? 그래, 이건 다 원작때문이다. 나 때문이 아니야.

그렇게 스타브레이커가 전의 스타버스터보다 강하고, 튼튼하고, 원격으로도 불러올 수 있고 등 장점을 줄줄 읊던 서은이는, 이내 주먹을 불끈 쥐더니 침대에 일어서서 외쳤다.

"그래! 이럴때가 아니야. 오빠! 저 스타브레이커 좀 더 손 보고 올게요! 은월아, 따라와!"

"....네? 어, 저는 다인오빠랑 좀 더 같이 있고싶은데..."

"응 나없이 둘만 있는건 안돼. 따라와!"

"으에에..."

그렇게 서은이는 은월이의 손을 잡고 질질 끌며 밖에 나가고 말았다.

마지막까지 애처롭게 나를 향해 손을 뻗는 은월이가 좀 딱했지만, 난 말릴 수 없었다.

은월아... 좀 쉬다 와... 나도 스타더스 팬카페 정리해야 돼...

그렇게 둘도 사라지고.

다시 조용해진 방에서, 내가 노트북을 꺼내려던 그때.

-링딩딩~

전화의 벨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누군가 하고 보니 이설아.

오랜만이네.

나는 바로 전화를 받았다.

"어, 설아야."

[딸꾹. 안녕하세요 다인씨. 몸은 괜찮으세요?]

"어. 이제 슬슬 괜찮아지고 있어."

[다행이네요, 딸꾹.]

"...야, 근데 나보다 네가 더 안괜찮아 보이는데? 왜 이렇게 딸꾹질을 해?"

[아, 딸꾹. 술 좀 마셨더니 계속 이러네요.]

"술? 지금 시간이 몇신데 벌써 술이야. 대낮인데?"

[하아... 요즘 이래저래 심란한 일이 많아서, 딸꾹. 이거 마셔주면 그래도 좀 기분이 나아져요. 기업들은 인수도 잘 안되지, 국회는 유성기업 못잡아먹어서 안달이지... 하아, 딸꾹. 갈수록 점입 가경이에요. 서럽네요.]

...미안하다 설아야. 그거 아무래도 나때문인거 같다.

원작을 너무 바꿨나봐. 원래는 지금쯤이면 한국 반쯤 정복 끝나있어야 되는데.

나는 쿡쿡 쑤시는 양심을 무시하고 어색하게 응원의 말을 건네줬다.

"하하... 야, 너도 힘내라."

[다인씨. 딸꾹. 근데 그것보다 더 서러운게 뭔 줄 아세요?]

"....어, 뭔데?"

[제가 제일 소중히 여기는 동료가 쓰러졌다는데 병문안조차 갈 수 없다는 사실이요. 하하, 뭐 어디 사시는지 저한테 말 못하실 수 있죠. 이해해요, 제가 못미더우셔도.]

"에이, 그런거 아니야."

뭔가 불길함을 느낀 내가 황급히 입을 열어봤으나, 이미 늦었다.

이설아는 살짝 울먹이며,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냥. 그래도 조금 씁쓸하네요. 동료한테 믿음 하나 못줘서, 흑, 아직도 집도 모르는 제가 뭘 할 수 있다고 이렇게 나섰는지. 미안해요 다인씨. ...그냥, 그냥 저는 다인씨 소중하게 생각하고, 의지하기도 하고, 그냥 좋아하는데. 흑, 그런 다인씨가 아파하는데 아무 도움도 못주고, 훌쩍, 병문안도 못가고. 하아. 누굴 탓하겠어요, 신뢰감 하나 못주는 제 자신을 탓해야지. 흑, 미안해요 다인씨...]

이제는 거의 흐느끼기 시작하는 그녀. 아니, 얘 왜이래?

"야, 야. 왜 그래. 울지마. 뚝."

[하하하... 미안해요 다인씨. 딸꾹. 술 마셨더니 정신이 나갔는지 말이 막나오네. 미안해요, 잊어주라. 하하, 내가 왜이러지. 훌쩍, 감정 조절이 안되네...]

훌쩍이면서도 애써 웃으며 그렇게 이설아.

그러는 그녀한테 마음이 약해진 나는, 결국 그렇게 말할 수 밖에 없었다.

"....와."

[네?]

"병문안 오라고, 주소 알려줄테니까."

[훌쩍, 정말요?]

"그래. 그러니까 내가 너 믿지 않는다는 말도안되는 생각은 말은 이제 하지 말고..."

[와! 진짜죠? 무르기 없기에요? 당장 가도 되는거죠?]

"....어. 그래. 주소 보낼테니까, 그쪽으로 와."

[네! 알았어요! 그때봬요!!]

"어... 어..."

그리고 바로 전화가 끊겨졌다.

...뭐지. 이 찝찝함은?

아니, 아직도 이설아가 배신때릴까봐 못믿고 그런건 아닌데.

...뭔가, 당한거 같은 기분이...

"씁. 생각해보니 나보고 제일 소중한 동료라는 대목부터 눈치챘어야 되는데..."

그건 거짓말이다.

왜냐하면 원작에서는 분명, 이설아가 제일 소중히 생각하는 동료는 신하루라고 분명히 말했었거든.

"....."

....거짓말, 맞겠지?

생각해보니 오히려 거짓말이 아니면 더 곤란하네.

하여튼 뭔가 찝찝한 기분으로 나는 주소를 보내줬고, 이설아한테서 근시일 내에 찾아뵙겠다는 답장을 받았다.

...뭐, 그래. 와도 문제될 건 없으니까 상관없겠지. 솔직히 이설아가 이제와서 불거같지도 않고.

근데 잠깐.

내가 에고스트림 멤버들이랑 큰집에서 다 같이 살고 있다는걸, 얘기 했었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