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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다인씨. 그 새로운 동료를 만들겠다는 계획은 어떻게 되고 있어요?"

"아 그거요? 순조롭게 진행중이에요. 지금은 부정하는거 같은데, 함락까지 얼마 안걸릴겁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컵라면을 한젓가락 들었다.

순간이동 자주하면 힘들어서 배를 채워줘야 하는 법.

나는 면을 후루룩 먹으며 스마트폰을 켰다.

그리고 바로 내가 매니저로 있는, 스타더스 팬카페에 들어갔다.

캬.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스타더스 게시글 정리하며 보내는 삶. 이게 야스지.

옆에서 수빈씨는 그런 나를 착잡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왜지...?

하여튼 그건 그렇고, 나는 최세희에 대하여 떠올려봤다. 내가 영입하기로 마음먹은, 전기 능력자인 그녀.

그녀의 나를 향한 거부감, 테러를 하기 싫다던 그 완강한 태도를 고려해 봤을때.

흠.

한 일주일이면 충분히 되겠구만.

EP.73 일주일

작업을 진행할 때, 캐릭터 해석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원작 만화를 수십번 읽은 나인만큼, 등장인물들의 성격을 굉장히 잘 알기에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거다.

예를들어 서은이의 같은 경우는 한은그룹에 대한 복수심이 하늘을 찔렀기에, 이를 잘 활용해 영입 할 수 있었다. 하율이는 남동생을 제일 소중하게 여긴다는 걸 이용해 꼬셨고.

이는 스타더스에게도 마찬가지다. 솔직히 내가 스타더스에게 수상해보일만한 행동을 많이 하긴 했다. 테러를 내가 일으키곤 스타더스에게 구하라 하질 않나, 그녀를 대신해 칼빵을 맞아주질 않나...

만약 내가 아이시클, 그러니까 이설아같은 애한테 그랬으면 바로 내 정체를 들켰을 가능성이 높다.

...아닌가. 이설아 걔는 지금도 이미 내 정체를 어느정도 파악했을거 같은데... 일단 얘는 나중에 접근하기로 하고, 중요한 점은 이거다.

스타더스는 정의 자체를 형상화 한 인물이니만큼, 악과 타협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내가 초창기에 다른 빌런들을 죽이고 다녔을 때, 대중들은 은근 날 좋아했다. 그러나 그녀는 나를 혐오했겠지. 자기 마음대로 남을 죽이고 다니는 살인마라고. 이렇듯, 그녀는 자신만의 확고하고 단단한, 흔들리지 않는 정의관이 있다.

그러니까 내가 뭔 짓을 하던 별 관심도 없을거라는 소리. 물론 저번에 약간 내 의도를 의심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그건 그냥 찰나의 호기심이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나를 별로 신경쓰지도 않을거같은 기분. 아마 에고스틱에 대하여 까먹고 있지 않을까? 아니 그래도 개인적으로 기억정도는 해줬으면 한다. 잊혀지면 슬프잖아...

하여튼 결론은, 내가 이 세계 사람들에 대한 해석이 어느정도 돼있다는 거다. 그리고 그걸 밑바탕으로 모든 행동을 진행한다. 아군을 영입할때도, 적들과 대립할때도. 그들의 성격을 알고 있기에, 어떠한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 지 거의 다 예상이 된다는 소리.

그리고 이런 방식으로, 이번에 새로운 동료를 영입하고 있다.

"....."

최세희.

어린시절에 능력을 자각한 후, 부모님으로부터 절대 히어로가 되지 마라, 능력을 밝히지 마라 등 강요를 받으며 자라왔다.

그렇게 평생 자신의 능력을 억제하며 살았으나, 그게 억제될리가 만무.

과충전된 배터리마냥, 10만볼트를 뿜어내지 못해 스트레스가 쌓이기 시작한것이다.

그렇게 하도 억제되다 보니 시작된 파괴본능. 막 가로수같은걸 보면 전기날려서 뽀개버리고 싶어하는 등, 하도 오래 참고 살다보니 조절이 잘 안되기 시작한 것이다.

거기에 매일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다보니 점점 성격도 날카로워지기 시작한 것.

잘 모르는 사람들이 겉으로만 보기에는 무슨 양아치처럼 보이는 것이다. 실상은 단지 내면에 억제된 능력 사용 욕구에 의한 짜증이지만.

그렇게 참으며 살다가 성인이 된 이후 근근히 사람들 안보이는데서 몸안에 쌓인 전기를 조금씩 방출시키며 살던 삶.

그런 그녀가, 처음으로 죄책감 없이 자신의 능력을 자유롭게 쓴게 아마 나랑 만났을 때인거다. 아마 엄청난 해방감을 느꼈겠지. 속도 시원했을거고.

사실 그 정도는 뭐, 전기로 된 창 비스무리한거 몇번 날린게 다라 능력을 마음껏 썼다고 보기에도 민망하지만.

그게 지난 수십년간 단 한번도 자유롭게 쏘아보지 못했다가, 처음으로 한거라면 얘기가 다르다.

원래 한번 맛들리면 못 헤어져나오는 법.

나와 함께라면 이보다 더한 쾌락을 맛볼 수 있을거란걸 아는데.

달콤한 자유를 맛본 그녀가, 과연 나의 제안을 거부할수 있을까?

"흐흐흐흐흐....."

"오빠, 왜 이렇게 기분 나쁘게 웃어요?"

나를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서은이를 바라보여,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기다려라 서은아. 오빠가 친한 언니 만들어줄게.

***

"포인트 있으세요. 네. 기다리세요."

서울의 한 카페.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최세희는, 오늘따라 일에 집중하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는 3일 전부터.

'같이 테러 하실 생각 없으십니까?'

"미친놈."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린 말에 그녀의 옆에 있던 알바생이 움찔거리는 일이 있었지만, 그녀는 신경쓰지 않았다.

자신이 무슨 테러범인줄 아나. 살다보니 별일을 다 겪는다.

그렇게 코웃음을 치기는 했지만...

그러나, 그녀는 그날부터 좀 이상해졌다.

놈한테 전기를 쏘아버릴때의 그 해방감.

그때, 자신은 깨닫지 못했었지만 분명... 즐거웠었다.

능력을 숨기지 않고 마음껏, 타인이 보는 앞에서 사용했을 때 그 시원함, 통쾌함.

한명에게 능력을 조금 사용했을 때도 그랬는데, 수십 수백명이 보는 앞에서, 마음껏 자신의 한계를 시험할 정도로 사용하면...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시발. 내가 진짜 미친건가.'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구겼다.

말도 안되는 소리. 자신이 그렇다고 테러범이 되라는 소리인가? 애초에 그 미친놈을 어떻게 믿고!

'그래. 내가 테러범이 될 일은 죽었다 깨도 없어.'

***

그날 밤.

그녀는 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 에고스틱에 대해 검색해보았다.

'이건 그냥 어떤놈인지 궁금하니까...'

그렇게 자기합리화를 해가며, 인터넷을 통해 알아본 에고스틱.

그는, 자신의 생각보다 더 대단한 놈이었다.

자신은 그저 가끔가다 가게에서 일하다 그가 테러할때 티비나 인터넷 뉴스로만 소식을 들은게 전부라 몰랐지만, 그는 상당히 유명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빌런 1위, 유일하게 팬카페가 존재하는 빌런, 웬만한 히어로들보다 더 인기가 좋은빌런...

인터넷에 치는 순간 기사와 게시글들이 샐 수 없을정도로 주르륵 뜰 정도.

"....이렇게 대단한 놈이었다고?"

이런 놈이 왜 자신에게 접근한거지?

아니, 그전에 자신이 이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건 어떻게 알았지?

그런 의문을 가진 채, 그녀는 계속 그에 대한 설명을 읽어봤다.

이를 통해 깨닫게 된건.

돈이 많다, 해킹 실력이 뛰어나다... 그리고.

그가 일으키는 테러는, 지금까지 어떠한 이유로든 단 한번도 사망자가 나온 적이 없다.

'.....그러면...괜찮은게 아닐까?'

그녀의 눈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사실 그날부터 지금까지, 한번 시원하게 능력을 사용한 이후로 점점 더 참을 수 없게 되었다.

온몸이 전기를 그냥 뿜어버리고 싶어서 근질거리는 기분.

가만히 있어도 몸에 스파크가 날 정도다.

"하...시발..."

그녀는 한숨을 푹 쉬었다.

'잘 생각해보십쇼. 늘 능력을 드러내지 못해 큰 고통에 빠지시지 않았습니까? 저와 함께라면... 당신의 본능을 숨기고 살 필요가 없을겁니다...'

떠오르는 그의 말.

그래, 대체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힘들다. 언제까지 참고 살 수는 없는법.

분명 아직까지는 전혀 믿을 수 없는 놈이지만, 그래도.

다음에 찾아오면, 뭐라고 말하는지 들어는 볼 수 있겠지.

무슨 테러를 하자는건지, 어떤 조건을 주겠다는건지.

일단은 들어보고, 고민해보자.

이 충동을 억제하기가, 더는 힘들다.

"지금 한 3일쯤 됐고... 곧 온다고 했으니까."

내일쯤 다시 오려나.

그녀는 그렇게 생각할 뿐이었다.

***

다음날.

그는 찾아오지 않았다.

"..."

내면에 충동은 점점 더 쎄지고 있다.

그냥 어디에다간에 전기를 뿜어버리고 싶은 기분.

산이라도 올라가 능력을 방출하는걸로 해소된다면 좋겠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고있지 않으면 딱히 스트레스가 풀리지 않는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자신의 능력을 보여줄때 느껴지는 쾌감이 있는 법.

너무 오래 능력을 숨기고 살다보니 파괴욕과 더붙어 과시욕까지 생긴 그녀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착실하게 빌런의 길을 걷게 되었다.

'내일, 내일은 오겠지.'

다음날.

그는 역시 찾아오지 않았다.

슬슬 그녀는 큰일이 난거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로 시작된 충동은 더이상 참을 수 없을 만큼 커지기 시작했고.

이제는 사람들이 많은 곳만 가도 전기를 방출하고 싶어 몸이 근질거리는 지경에 도달했다.

자신때문에 이 주위에 기물들이 박살난다고 생각하면 자신도 모르는 채 짜릿해지는 기분.

'...이대로는 안돼.'

에고스틱. 그가 분명 자신은 곧 온다고 했다.

언제부터 '곧'이 5일이었지? 왜 안오는걸까?

...설마, 자신이 너무 그때 강력하게 거부하자 그냥 포기했나?

그래. 찾아보니까 에고스틱 이놈은 정말 대단한 놈이었다.

다리 테러만 봐도 대체 돈이 얼마나 많은건지 자신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지경.

...그새 자신은 버리고, 그냥 다른 빌런들 찾으러 간거 아닐까? 생각해보면, 자신 말고도 능력을 숨기고 있는 사람들은 많을거다. 어쩌면 깔끔하게 다른 사람이나 구하자고 생각했을수도 있지.

...첫만남부터 전기를 날린건 실수였나? 아니, 그녀는 억울했다. 갑자기 어두운 골목에 혼자있는데 말을 걸어오면 누구라도 그러지.

".....하아."

이제는 별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가 하자는 대로 할테니, 사람을 해치지 않고...이 답답함을 해소할 수 있다면. 그의 말을 따르는게 맞아 보인다.

그렇게 지나친 파괴충동과 스트레스로 인하여 그녀의 머리는 슬슬 정상적인 사고에서 동떨어져, 제대로 생각을 이어가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다음날.

카페.

"세희씨. 어디 아프세요? 오늘따라 기운이 없으시네?"

"..."

".....어, 그럼 파, 파이팅!"

다음날.

밤.

조용히 집으로 걸어가던 그녀의 눈앞에, 한 남성이 나타났다.

"안녕하십니까, 세희씨. 제 제안은 좀 생각해 보셨습니까?"

"...할께."

"네?"

"한다고. 테러든 뭐든."

***

....아니. 내가 일주일만에 꼬실 수 있을거라고 호언장담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쉽게 함락된다고?

나는 내 눈앞에서 애절한 표정으로 나를 지켜보고있는 주황색 머리칼의 최세희를 바라보며, 의문을 품었다.

고작 일주일 가지고 왜이러는거지?

우리 망고단 애들은 2달 3달도 거뜬히 버티던데?

어쨌든, 기회는 왔을때 바로 잡아야 하는법.

"무슨 심경에 변화가 생긴지는 모르겠지만... 좋습니다. 같이 가죠."

나는 그렇게 말하며 그녀에게 손을 뻗었고.

그녀는, 주저없이 내 손을 맞잡았다.

진짜 일주일만에 새로운 빌런(예비)를 영입하는데 성공했다.

이렇게 된 이상, 테러를 예상보다 빨리 실행할 수 있겠는걸?

스타더스, 생각보다 금방 다시 보겠네.

두달? 두달이면 금방이지 뭐.

***

'....진짜, 죽은건 아니겠지?'

"하루야.... 또 무슨 생각 하니....?"

EP.74 테러전야

바로 테러를 해서 스타더스를 다시 보는 것도 좋지만.

그걸 위해서, 필수로 해야할게 있다.

"따라 들어오시죠."

"....여긴 어디야?"

경계하는 태도로 나를 보고 있는 최세희.

늦은 밤, 내가 그녀를 잡고 순간이동하여 온 곳은 바로 한 가정집.

정확히는, 밑에 지하기지가 있는 그곳이다.

"제 집입니다."

"....그래."

묘하게 자포자기한 상태로 조용히 따라오는 그녀.

대체 무엇이 그렇게 기가 세던 그녀를 이렇게 만든거지?

불과 일주일만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건지 난 잘 이해가 안될 지경이다.

그래도 뭐. 좋은게 좋은거겠지. 계속 반항적인것 보다는 낫네 뭐.

그렇게 고분고분히 따라 집으로 들어온 그녀에게, 나는 지금부터 신세계를 보여줄 예정이었다.

"자, 여기 타세요."

"으응..."

최세희와 내가 들어간곳은, 방안에 있는 순간이동장치.

굉장히 기묘하게 생긴 기계장치가 집 한가운데 뜬금없이 있는 모습에 그녀의 고개가 살짝 갸우뚱했지만, 별말 없이 캡슐 안으로 들어왔다.

그렇게 장치를 가동시키고.

약간 빙글거리는 감각과 함께, 우리는 캡슐 밖으로 나왔다.

분명 들어갈때는 주위가 가정집이였으나.

나왔을때는, 우리의 눈앞에 산 사이에 뒤덮여있는 웅장한 대저택이 펼쳐져 있었다.

"...여기는 또 어디야?"

"여기가 제 진짜 집입니다."

난 집이 2개야.

나는 그렇게 말하며 저택 앞, 숲쪽으로 향했다.

저택을 힐끔대며 나를 뒤따라오는 그녀.

그렇게 어두운 산골짜기 한가운데, 숲 안쪽으로 들어가는 남녀.

별말없이 나를 뒤따라오던 그녀는, 내가 멈춰서자 따라 멈췄다. 내가 하자는데로 하겠다는 모습.

...아니, 얘 진짜 왜이래? 원래 이런 캐릭터가 아닌데? 아무리 생각해도 단 일주일만에 이렇게 변한게 말이 안된다. 어색하네 그려.

"크흠."

어쨌든 숲 한가운데 멈춰선 나는, 멀뚱히, 살짝 애타는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녀에게 얘기해줬다.

"자. 여기는 지금 아무도 없어요. 저희 둘뿐이고, 이곳을 지켜보는 무언가도 없죠."

"그래서?"

"여기서는 능력을 마음껏 쓰셔도 됩니다. 전기, 마음껏 방출시켜 보세요."

"...테러한다고 하지 않았어?"

"누가 테러를 바로 한답니까? 그전에 사전준비를 거쳐봐야죠. 한번 마음껏 해보세요. 풀파워로."

"마음껏?"

"네."

내가 아예 자유롭게, 원하는 만큼 능력을 발휘해보라 하자 오히려 망설이는 그녀.

그래, 당연하겠지. 지금까지 살면서 한번도 마음껏 능력을 써본적이 없으니. 막상 할려니 기분이 새로울거다. 약간 무섭기도, 떨리기도 하고.

약간 주저하는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용기를 복돋아주었다. 빨리 해봐!

그런 내 모습을 보던 그녀는, 이내 숨을 가다듬고 손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손에서 스파크가 튀기 시작했고.

"흐으..."

그렇게 그녀가 마침내 자유롭게, 모든걸 놓고 자신의 힘을 발휘하자, 손끝에서 전기들이 번쩍거렸고.

동시에.

파지직-.

그녀 근방에 있는 모든 곳으로.

전기가 그녀의 온몸에서, 번개처럼 뻗어져나갔다.

마치 분수처럼, 뻗어져나가는 전기의 줄기.

이에 그치지 않고, 그녀의 온몸이 전기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그녀의 안에서 무언가 끊어졌는지.

스파크들이 마치 번개처럼, 온 숲을 향해 뻗어져 나가며 번쩍이기 시작했다.

"오오오...."

그리고 나는 그걸 멀찍히 떨어진 후 감탄하면서 보고 있었다.

옆에 팝콘이 없는게 아쉬울 지경의 장관.

그녀의 주워로 마치 거대한 돔처럼 전기가 쏟아져나가는데, 어두운 밤에 그러고 있으니까 마치 불꽃놀이와도 같았다. 눈앞에는 검은색 노란색만이 보이는 모습.

전기의 줄기가 가지치기를 해가며 뻗어나가 허공으로 비산하는데, 그때문에 주위에 나무들 다 박살나고 아주 그냥 난리도 아니다.

물론 그저 감탄만 하며 본 것은 아니다. 그녀의 전기공격의 위력이 얼마정도 하는지도 동시에 확인해보았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역시, 강하네.'

위력이 상당하다.

아무리 쌓여있었다 해도, 저정도의 전류를 계속해서 내뿜는건 대단한거다. 심지어 그 위력도 전기줄기 단 한방에 나무가 박살날 정도니, 말할 필요도 없다.

저정도 전기를 몇십년동안 배출도 못하고 혼자 끙끙거리며 지내왔으니, 당연히 스트레스 받아서 예민해 질만도 하네. 군계일학이라고, 저런 재능을 숨긴채 살아갈 수는 없는 법이다.

그렇게 한동안 이어진 불꽃놀이가 끝나고.

이제는 만족할만큼 다 내뿜었는지, 전기를 다 거두어들인 그녀.

멀찍히 있던 나는 다 끝나고 나서야 그녀에게 다가갔다.

"헉... 헉..."

땅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허덕이고 있는 그녀.

그런 그녀에게, 나는 미리 챙겨둔 생수를 한병 건냈다.

"만족하셨습니까? 자, 여기 물 좀 드시죠."

"어? 으, 땡큐."

땀을 흘리며 눈이 살짝 풀린채 주저앉고 있던 그녀는, 내가 건내준 생수병을 받자마자 바로 꿀걱이며 마셨다.

얼굴이 빨갛게 물들인 채, 생수에서 입을 땐 그녀.

주황색 머리카락은 땀에 젖어 목에 달라붙었고, 몹시 힘든지 아까부터 계속 허덕이고 있었지만... 굉장히 후련해보이는 그녀의 표정.

그래, 처음으로 자신의 능력을 원없이 선보였는데 얼마나 좋겠어. 원작에서는 이런 기회가 없는 바람에 한밤중에 도시 한복판에서 이짓거리 해서 수용소에 잡혀갔다.

지금은, 아주 그냥 자신의 파괴 본능을 마음껏 살려 주변 나무란 나무는 죄다 박살낸 모습. 땅에 있던 잔디들도 전부 그을려 검게 변했다.

그렇게 계속 바닥에 앉아있는 그녀에게, 나는 손을 건내며 이렇게 말했다.

"저와 함께하면... 앞으로 쭉, 스스로의 능력을 숨기고 사실 필요는 없을겁니다. 당신은 일반적인 사람이 아니에요. 결코 스스로의 재능을 억누르며 살 수 없습니다. 저희와 함께할 때만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며 사실 수 있을 겁니다."

"...너가 한다는 테러가, 사람을 해치는건 아니지?"

"네. 저는 비폭력주의자거든요."

"...그렇게 말하기에는, 너가 지금까지 뭘 많이 했던데?"

그렇게 이죽이면서도, 내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

그런 그녀에게, 나는 웃으면서 말할 뿐이었다.

"에고스쿼드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최세희씨."

"에고스쿼드는 또 뭐야...."

***

능력자를 구했으니까 바로 테러를 하자!

...였었으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치 않다.

테러 전에 미리 사전준비, 시간대 조사, 계획 수립등 할게 많은 법.

거기에 최세희 그녀의 능력에 대한 훈련도 필요했다.

"...전기를 바닥에 쏴서, 공중을 날 수 있다고?"

"어. 전기를 그대로 휘감은 상태로, 바닥을 향해 쏜다고 생각해봐."

"으응.... 오, 이게 되네?"

원작 지식을 이용한 내 특훈 아래, 빠르게 성장하는 그녀.

능력을 너무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나머지, 어떻게 활용할지도 모르길레 내가 붙어서 코치해줬다.

물론 말은 옛저녁에 놨다. 앞으로 매일 볼텐데 매번 존댓말 컨셉을 쓰기에는... 내 항마력이...

"하아, 하아."

"자, 여기 수건."

"언니, 여기 물이요!"

"흐으. 고마워."

그렇게 능력을 특훈하는 겸, 그녀는 아예 내 저택에서 잠시 머물고있다.

거기에 서은이와도 친해진건 덤.

"야. 빨리 씻어라. 냄새난다."

"뭐라고? 넌 왜 시비냐?"

나한테 눈을 부라리는 그녀를 피해 나는 모른척 뒤를 돌아 저택으로 향했다. 참고로 나하고도 전보다 훨씬 친해졌다. 하루종일 붙어서 같이 훈련하며 보냈는데 안 친해지는게 더 이상하긴 해.

그 와중에 내 옆에 전기가 스쳐지나갔다. 저 미친년!

"으악! 야! 그걸 나한테 쏘면 어떡해! 나는 민간인이라고!"

"지랄하네. 너가 대체 왜 민간인이야? 일로와, 내가 오늘 힘의 차이를 느끼게 해줄게."

"서은아, 살려줘! 쟤가 나 죽이려고 한다!"

"....세희언니. 그냥 콱 10만볼트로 쏴주세요."

"한서은 너마저!"

어째 집안에 믿을 사람이 점점 없어지는 기분!

하여튼, 이런 식으로 시간이 꽤나 빨리 흘러갔다.

내 예상보다 최세희 그녀가 능력을 잘 활용하지 못해서, 붙어서 일일이 코치해주다보니 시간이 생각보다 걸렸다. 뭐, 어차피 남아도는건 시간이니까. 김선우가 그짓거리 하기전까지는 한참 남았으니, 여유롭게 해도 별 문제는 없다.

최세희는 나름 집안에서 잘 적응해지냈다.

애초에 졸업하자마자 서비스업종에서 지낸 그녀이니만큼, 서은이는 물론이고 수빈씨랑 하율이랑도 두루두루 잘지내는 모습. 특히 그녀는 알바를 때려치다 보니까, 뭘 할지 모르겠는듯 방황하던 때, 서은이의 악마에 꼬드김에 넘어가 게임에 빠져들었다.

"....게임 하는건 좋지만, 밤에 잠은 자면서 해야되지 않을까요?"

"네...."

"죄송해요 언니...."

물론 둘이 같이 밤새서 게임하다가 수빈씨한테 걸려 혼나는 헤프닝도 있었다. 바보들. 나처럼 새벽 5시쯤에 도망갔었어야지.

"근데 다인오빠도 새벽까지 저희랑 같이 했어요."

"....다인씨, 정말요?"

"..."

물론 배신자에 의해 나도 같이 혼났었지만.

어쨌든, 그렇게 최세희와 함께 지낸지 벌써 한달이 지난 날.

나는 드디어, 오랜만에 모두를 지하기지 아래 회의실로 소집했다.

"..."

나를 지켜보는 네쌍의 눈동자.

그들 앞에서, 나는 입을 열어 선포했다.

"자. 오늘 드디어, 새로운 테러를 준비해보자."

에고스틱의 신개념 외주-테러의 서막이 밝았다.

이제 테러를 혼자서 하는 시대는 끝났다.

콜라보레이션 테러의 시대가 온다.

그렇게 그들 앞에서 나는 계획을 설명했고.

이내 다 들은 최세희가, 입을 열어 한마디 했다.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나 혼자 다하는거 아니야?"

"어. 맞어."

나도 좀 쉬어야지.

이번엔 너가 해라.

EP.75 Electra

한 건물의 옥상.

나는 그 위에 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런 내 옆에 있는 건, 커다란 카메라.

저 아래 골목쪽을 보며, 나는 입을 열었다.

"여기는 에고. 관제탑, 응답하라, 응답하라."

[...관제탑은 무슨. 대체 또 뭘 보신거에요? 하여튼, 응답했어요.]

"그래. 이제 슬슬 작전을 시행해도 괜찮겠지?"

[...네. 지금 시간대가 제일 적절할거 같네요. 주위에 시시티비도 다 작동정지 시켰어요.]

"그래. 그럼 이제 하기만 하면 되겠네. 최세희?"

"...휴우. 어."

"자, 갔다와라. 작전대로만 하면 되니까. 오케이?"

"....오케이. 근데 너, 진짜 마지막에 꼭 나 데리러 와야된다?"

"당연하지. 그럴려고 카메라도 챙겨왔잖아. 걱정하지 마."

내가 염력으로 띄워논 카메라를 흔들며 말하자, 고개를 끄덕이며 숨을 들이마쉬는 그녀.

"....휴. 이제 출발한다."

최세희는 긴장된다면서도, 얼굴 아래 희미한 흥분의 기색을 보이며, 하늘로 날아 손을 뻗었다.

그렇게, 테러가 시작되었다.

***

서울의 한 사거리.

자동차와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분주한 삶의 활력이 느껴지는 이곳.

활기차면서도 평화로운 이곳에.

갑자기, 벼락이 내리꽂아졌다.

콰앙-.

"꺅!"

정말 뜬금없이.

마른 하늘에 내린 날벼락.

하늘에서 떨어진 벼락들은 한두개가 아니었고.

그것들은 전부, 근처의 가로수들로 콰앙- 콰앙-하며, 내리꽂아지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갑작스러운 상황에 사람들은 혼비백산 도망치기 시작했고.

자동차에 탄 사람들만,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자리에 멈춰 창으로 고개를 빼꼼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콰아아아아아앙-.

사거리에 중심에, 이때까지 떨어진 벼락 중 제일 커다란, 마치 거대한 노란 기둥같은 벼락이, 하늘에서 쿠웅- 천둥같은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사거리의 아스팔트 바닥이 전부 해집어지며, 모든걸 부술 기세로 엄청난 위용을 보여주며 떨어진 벼락.

그제서야 심상찮은 일이 벌어졌다는걸 깨달은 사람들이, 혼비백산 차를 끌고 크락션을 울리며 도망칠 때.

사거리 한복판, 벼락이 떨어졌던 그곳의 연기가 걷히자, 한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포니테일로 묶은, 바람에 흩날리는 주황색 머리카락.

공중에 떠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녀는, 다리쪽에서 전기폭풍을 일으키며 그 위에 서있는 모양세였다.

그렇게, 허공에서 전기를 뿌려가며 등장한 그녀.

처음으로 모습을 보인 그녀는, 이내 잠시 숨을 들이마쉬더니, 기합을 내질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육안으로도 파악하기 힘들 만큼 수없이 많은 스파크 몇백, 몇천 줄기가 그녀의 몸에서 사방으로 강렬하게 뻗어져나가기 시작하며, 사거리에 있는 모든것을 파괴하기 시작했고.

이 사실은 즉시, 협회에게 보고되었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빌런이, 테러를 일으키고 있다는.

***

신하루.

평범한 대학생으로 보이는 그녀는, 남들에게 말못할 비밀을 가지고 있다.

사실 그녀는 A급 히어로, 스타더스라는 사실.

대학교 수업에 출석은 하지만, 평상시에도 그녀가 대학에 있는건 아니다.

선배랑 카페에 있거나 집에 있는걸 제외할 때, 그녀가 주로 있는 곳은 바로 히어로 협회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

수시로 빌런들에 대한 정보를 보고받고, 빌런이 등장했을 때 출동하기 가장 편한곳이 사무실이었기에, 낮에 선배와 만나지 않을 때는 주로 그곳에 있었다.

그렇게 지금.

히어로 협회 사무실에 앉아있는 그녀는, 컴퓨터로 습관처럼 보게 된 사이트를 보고있었다.

*

[에고스틱 팬카페 성 명 문]

우리 10만 망고단 일동은.

엘리강트하고뉴패러다임이며지니우스한사상자0명전국생중계 테러를 2개월째 안하고.

지지자들의 호소속에서도 피도눈물도 없이 잠수를 타고있는.

간악하고 비인간적인 빌런 '에고스틱'에 대한 엄벌을 요청합니다.

에고스틱은 지금 당장 잠수를 끝내고 소식을 전해라!!!!!

제발....이러다가 나 죽어....

왜안와?왜안와?왜안와?왜안와?

=[댓글]=

[지지합니다^^]

[에고스틱이 아니라 봉고스틱이라네요]

[ㄹㅇ 이제는 3개월 이상이 아주 패시브야]

[테러범이? 테러를 안하는건? 직무유기가 아닐까?]

[나 추워... 왜 안 와]

[스타더스만 일 안한다고 행복하고 나머지는 다 불행한듯ㅋㅋㅋ]

ㄴ[ㄹㅇㅋㅋ별먼지단도 요즘 심심해죽겠다고 하더만]

ㄴ[걔네는 왜?]

ㄴ[망고 없으니까 ㅈㅂ들만 나와서 싸울때 폼이 안난데 다들 한방컷이니ㅋㅋㅋ]

ㄴ[아ㅋㅋ생각해보니 지금까지 늘 스타더스만 부르기는 했네]

ㄴ[에고스틱 없는 스타더스는 앙꼬빠진 찐빵이 아닌교]

ㄴ[근데 그런든말든 스타더스는 요즘 편하다고 ㄹㅇ싱글벙글하고 있긴 하겠네ㅋㅋㅋㅋ]

*

"하아..."

아무것도 모른채 웃고 떠드는 그들을 보며, 한숨을 쉬는 하루.

자신이 보기에 에고스틱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미 죽은 것 같다. 그게 그녀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런 사실이 다시 상기될 쯤이면, 그녀는 언제나 가슴 한쪽이 살짝 쓰라렸다.

....그깟 빌런 하나 죽든 말든, 뭐가 중요하다고.

이렇게, 신경쓰이며 죄책감이 드는 것인가.

그렇게 살짝 다운된 기분으로 그녀가 멍하니 앉아있을 때.

벌컥. 사무실의 문이 열리며 협회 요원이 들어왔다.

"스타더스님. 또 서울 시내에 빌런이 출현했습니다! 지금 당장 출동을!"

"...알겠습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현재 기분이 어쨌든, 그녀는 히어로인만큼.

즉시, 빌런을 제압하기 위해 움직였다.

***

하늘.

슈트를 입고 창공을 가르지르며 사건 현장으로 날아가던 그녀는, 협회에서 오는 보고를 받으며 그곳으로 향했다.

[범인은 20대 여성으로 보이며, 전기를 활용하는 능력을 지닌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사거리에 있는 기물들을 무작위로 파괴하고 있으며, 시민들은 전부 대피해 인명피해는 없습니다.]

[현장 근처에 있는 B급 히어로가 진압을 시도했으나, 즉시 피격당해 현재 전투불능 상태입니다.]

[부디 주의를.]

"알겠습니다."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한 그녀는, 생각을 곱씹으며 그쪽으로 계속 향했다.

어차피, 그녀가 몇방 휘두르면 금새 진압될거다.

대다수의 빌런들은 이제, 그녀의 힘을 이기지 못하니.

....늘 뒷배가 있던 에고스틱을 제외하면 말이다.

"쯧."

또 그의 생각을 해버린 그녀는, 고개를 털고 정신을 집중했다.

빌런과 전투할때는, 아무리 그래도 최대한 집중해야 하는 법이다.

그렇게 잠시 비행을 하여 목적지에 도착한 그녀는, 위쪽에서 아래의 상황을 파악했다.

사람들이 다 도망쳐 한산한 사거리.

그 중심에, 수많은 전격파에 둘러싸여있는 한 인영이 보였다.

전기의 폭풍에 한가운데서, 사방의 기물을 향해 전기를 쏘아내고 있는 그녀.

이미 주위의 가로수나 신호등, 전봇대, 변압기, 아스팔트 바닥, 건물의 외벽 등 그 사거리에 있는 모든것들이 다 초토화되고 있었다.

아직까지는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저렇게 계속 납두고 있으면 어떻게 될 지 모른다. 지금 상태를 봤을때, 능력을 폭주하는걸로 보이는 모습. 당장 진압이 필요해 보인다.

결론을 내린 그녀는, 하늘에서 저 아래로 내려갔다.

쿠웅. 히어로 랜딩을 하며 땅으로 착지한 그녀.

그리고 그 소리에, 빌런이 반응했다.

마구잡이로 전격파를 날리며 파괴하는걸 멈추고, 고개를 돌려 스타더스를 바라보는 그녀.

주황색 머리를 찰랑이며 스타더스쪽을 바라본 빌런은, 이내 예상했다는 듯, 그녀를 향해 말했다.

"아. 너가 스타더스구나?"

"빌런. 지금 당장 테러행위를 멈추고 항복해라. 바로 항복하지 않으면 진압하겠다."

매뉴얼대로, 빌런에게 외친 스타더스.

그런 그녀를 향해, 주황색 머리칼에 빌런은 비릿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항복? 싫은데?"

그와 동시에 전격탄을 그녀에게 날리는 빌런.

스타더스는 이를 피하며, 빌런을 향해 날아갔다. 그녀를 잡기 위해.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전기의 폭풍을 일으키며 하늘위로 날아가버린 빌런.

높이 솟아오른 그녀는, 손에서 스파크를 방출해가며 스타더스에게, 그리고 이 모습을 보고 있을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내 이름은... 일렉트라!"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기에 휩싸여 스타더스를 바라보며 빌런, 일렉트라는 웃는 상태로 입을 열었다.

"그를 위해 스타더스, 너를 상대하려고 왔다."

그녀는 그렇게 말함과 동시에, 사방으로 전기의 줄기를 쏘았고.

스타더스는 그녀에게 쏘아지는 전기의 세례들을 피해가며, 이를 악물었다.

대체 자신을 상대하기 위해 왔다는게 무슨 소리인지, 그녀가 말하는 '그'는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이 모든건, 일단 그녀를 쓰러트리면 자연스레 알게 될테니.

스타더스는, 주먹을 쥐고 다시한번 전격의 폭풍 사이로 뛰어들어갔다.

전투의 시작이었다.

***

한편, 그 모든 광경은 하늘 위에 날아다니는 방송국 헬리콥터의 카메라에 찍혀, 뉴스 생중계로 방송되고 있었다.

사람들이 또 뭔일인가- 하고 티비나 휴대폰으로 그 전투를 지켜보고 있을 때.

나는, 그 근처 건물 옥상에 서서 그 광경을 직관하고 있었다.

캬. 최세희. 내가 오랫동안 일대일로 붙어서 교습해준 보람이 있구만.

저 스타더스를 상대로 저렇게 꽤 버티는걸 봐라. 실화냐? 가슴이 웅장해진다...

그래도 뭐. 결국은 시간이 지날수록 밀릴테니, 그쯤되면 내가 나서야겠지만.

나는 그렇게 미리 챙겨온 팝콘을 집어먹으며 전투의 현장을 라이브로 시청했다.

"재밌네."

역시 싸움 구경에는 팝콘이지.

팝콘이 달다, 달아.

EP.76 테러진압은 신중히

"번개펀치....?"

내 저택의 앞에 있는 숲.

나는 거기서, 최세희에게 능력을 훈련시켜주고 있었다.

"그래. 손에다가 전기를 말아서, 그대로 주먹을 쥐고 날려봐."

"엥? 굳이 그래야해? 그냥 손에서 원거리로 전기를 쏘는게 더 낫지않나?"

"속는 셈 치고 한번 해봐."

내가 그렇게 채근하자, 세희는 미심쩍어 하면서도 일단은 고분고분 내 말을 따랐다.

손에 주먹을 쥐며, 그곳에 전기를 집중시키는 그녀.

어느던 주먹을 쥔 손쪽에 전기가 뭉치기 시작할 때,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거기서 더, 한계까지 전기를 모아본다는 생각으로 전기를 주먹에 집중시켜봐."

"이미 그렇게 하고있어.....!"

내 말에 이를 악물고는 더, 더욱 전기를 주먹에 집중시키는 그녀.

그리고 이제 되었다고 느낄 때 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자! 이제 저쪽으로 날려봐!"

"으아아아아!"

그렇게 세희는 숲 한쪽을 향에 전기를 모은 주먹을 뻗었고.

그 순간. 퍼엉.

주먹에 모인 전기가, 마치 거대한 건틀릿처럼 그녀의 팔을 뒤덮음과 동시에, 전방으로 엄청난 파공음과 함께 쏘아지기 시작했다.

콰과광-.

엄청난 위력으로 숲 한쪽을 갈아버린 전기 충격파 공격.

전방에 있는 나무들이 다 박살나 사방으로 날아가고, 땅마저도 검게 그을리며 뻗어나간 전기의 파동탄. 마치 번개를 모아놓은 듯한 노란색 전류들이 그녀의 앞을 휩쓸듯 쓸어버렸다.

이내 연기가 걷히자, 완전히 박살나버린 숲의 풍경이 보였다.

입을 멍하니 벌리고 앞을 보고있는 그녀에게, 나는 피식 웃으며 한마디 던져줬다.

"어때. 이게 번개펀치야. 지리지?"

"....와. 시발."

그녀는 숨을 헐떡이면서도, 자신이 일으켜 낸 참상에 눈을 때지 못했다.

아주 그냥 숲 한쪽을 시원하게 날려먹은 모습. 폐허가 되어버렸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앞으로 좀 더 연습하면 할수록 부담이 덜해질거야. 자."

나는 땀을 뻘뻘 흘리는 그녀에게 수건을 건냈다.

수건을 받고, 얼굴을 닦은 뒤 나에게 말을 건내는 그녀.

"....아니, 이게 단순히 전기를 주먹에 모아서 쏠 뿐인데 이렇게 능력 차이가 난다는게 말이 돼? 왜 이렇게 강해?"

"아아, 왜냐하면... 펀치는 '낭만'이기 떄문이지..."

"낭만 이 지랄... 근데, 대체 너는 이걸 어떻게 안거냐? 주먹에 말아서 휘두르면 이렇게 강해진다는걸?"

그녀는 의아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아냐니. 그야, 이게 나중에 너가 주력으로 쓰는 기술이니까 그렇지.

원래는 원작 후반부에서 스스로 시행착오를 겪다가 알게 되는거지만, 이제는 내가 있는데 굳이 그렇게 먼길을 돌아갈 필요는 없잖아?

물론 이렇게 말할 수는 없으므로, 니는 피식 웃으며 이렇게 말해줄 뿐이었다.

"몰랐냐? 나는 원래 모르는게 없어."

"하. 아주 잘나셨어요."

"그 번개 내려찍는 것도 계속 연습하고."

"알았어. 야, 근데... 그 너가 나보고 하라고 한 그 오글거리는 말, 꼭 해야되냐?"

"당연하지. 그게 핵심인데."

"하아... 씨발, 인생..."

"그리고 명심해. 일단 스타더스를 전기로 최대한 감전시키는게 목표야."

걔 내구력좀 키우게.

"알았네요 알았어!"

툴툴 거리며 걷는 그녀에게 피식 웃어주며, 나는 같이 자택까지 걸어갔다.

그래. 최세희, 그러니까 일렉트라는... 이제 번개, 전격파, 전기폭풍, 거기다가 이번에 번개펀치까지 배웠으니, 숙련도는 좀 떨어지더라도 겉보기에는 원작 일렉트라의 최종스팩에 꽤나 가까워졌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나는 옆에서 수건을 들고 걷는 최세희를 바라보며, 혼자서 생각했다.

사실, 나와 처음 만났을 때의 최세희만 따지고 보자면 절대로 스타더스에게 못이긴다. 아마 그냥 싸우자마자 바로 몇방 맞고 털렸겠지.

그러나, 지금 정도의 실력이라면.

스타더스에게도, 어느정도 버틸 수 있지 않을까?

***

그리고, 다시 현재.

서울 시내 한복판, 사거리.

"읏."

스타더스, 그녀는 이를 악물고 공격을 피했다.

사방에서 뻗어오는 전기의 줄기들은, 점차 피할수 없을 정도로 몰려오기 시작했고.

결국 빌런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그녀는 어느정도 공격을 맞으며 나아기기로 결정했다.

"크윽..."

몇십만볼트의 전기가 그녀를 닥치자, 짜릿한 고통이 느껴졌지만.

그녀 자신은 신체강화 능력자인만큼 어떻게든 정신력으로 이겨냈다. 그래, 이정도 고통은, 버틸수있다. 아직까지는.

"하하하하! A급 히어로라는게, 고작 이 정도란 말이야?"

자신이 전기의 폭풍 속을 뚫으려 애쓰고 있자, 광소를 지으며 도발하는 그녀.

스스로를 일렉트라라고 부른 그 빌런은, 얼굴이 빨갛게 물든 상태로 계속해서 사방으로 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주위의 건물이 박살나고, 땅이 해집어지며, 온갖 기물들이 파손되고 있지만.

스타더스는 그 모든 장애물을 피해, 착실히 일렉트라를 향해 날아갔다.

한방만 때리면, 단 한방만 공격이 제대로 들어가면 된다.

물론 일렉트라 그녀가 계속해서 도주하는 바람에, 그것조차 쉽지 않았지만.

그렇게 전투는 계속되었다.

전격의 폭풍 위에 올라타 자신이 있는 쪽을 향해 계속해서 10만볼트를 뿜어대는 일렉트라. 그런 공격을 피해가며 일렉트라를 잡아채기 위해 그녀는 계속해서 주위를 날아다녔다.

일렉트라 그녀는 자신이 가까이 오면 전격의 폭풍위에 올라타 빠르게 도망치거나, 계속해서 번개를 주위에 내리치는 등의 방식으로 거리를 벌려 도망치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이 전기에 감전되면서도 숨만 좀 거칠어질뿐, 계속해서 일정한 페이스로 일렉트라를 압박하고 있는 반면, 계속되는 전투에 점점 지쳐가는게 눈에 띄이는 일렉트라.

그녀는 주황색 머리칼을 바람에 흩날리며 욕설을 내뱉었다.

"하아, 하아. 시발. 존나 끈질기네."

거친 숨을 내뱉으며 헐떡이는 그녀에게, 스타더스는 다시한번 매뉴얼대로 통보해줬다.

"일렉트라라고 했나? 지금이라도 항복해라. 그러면 더이상 공격하지 않고 잡아주겠다."

"좆까!"

그렇게 큰 소리로 외치는 일렉트라였으나, 시간이 갈수록 지쳐서 힘을 잃어가는게 눈에 띄일정도.

폭풍처럼 그녀의 주위를 휩쓸던 전기의 바람도 갈수록 약해지고, 계속해서 쏘았던 전기줄기도 점점 줄어드는 모습이였다.

결정적으로, 숨을 헉헉 내쉬며, 더이상 여유롭지 못하고 아슬아슬하게 스타더스의 공격을 피하는 일렉트라.

초반에 일렉트라가 자신의 전격공격으로 스타더스를 압박하던 모습과 다르게, 이제는 자신이 역으로 일렉트라를 압박하는 형상이었다.

그래, 이제 슬슬 끝내야 할 떄가 왔다.

이내, 그녀의 사정거리안에 들어온 일렉트라를 보며, 스타더스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제, 끝이다."

그렇게 스타더스가 주먹을 쥐고 일렉트라쪽으로 직선으로 날아오자.

일렉트라는 그 광경을 보며, 침을 퉤 뱉고는이를 악물곤 큰소리로 외쳤다.

"누가, 이대로, 쓰러질거 같아!!!"

그렇게 이내 자신이 방출하던 모든 전기를 다 끊어버린 그녀는.

전격의 폭풍 위에서, 주먹을 쥐고는 모든 전류를 자신의 손으로 모으기 시작했다.

스타더스가 다가오는대도 도망치지 않고, 가만히 자리에 서 오직 자신의 손만에 정신을 집중하는 그녀.

바람이 그녀의 손으로 모여들면서, 스파크가 점점 모여 튀기기 시작하는 그녀의 주먹.

스타더스가 그녀의 코앞까지 왔을 때, 그제서야 그녀는 고개를 들어 스타더스의 쪽을 노려보았다.

그렇게 거대한 스파크가 그녀의 손에서 튀기기 시작함과 동시에, 스타더스의 주먹이 그녀에게 날아왔고..

그와 동시에, 일렉트라도 자신의 주먹을 그녀에게 맞서 뻗기 시작했다.

"누가 이기나, 함, 보자-!"

일렉트라류 비기-

번개펀치(電氣强拳).

그렇게 악문 이 틈새로 일렉트라가 전기가 튀기는 주먹을 스타더스에게 날렸고.

스타더스또한 그녀에게 주먹을 날림과 동시에

콰아앙-.

도심 한복판에서, 엄청난 굉음이 울려퍼졌다.

쿠구구궁-.

스타더스가 내지른 주먹과, 일렉트라가 전격을 끌어모아 날린 파동의 탄이 맞다으며 나는 충격파.

주위에 강력한 파동과 함께 스파크 수백, 수천줄기가 그 둘을 중심으로 뻗어져나갔고.

쾅. 주위에 건물들이 다 박살나며 사거리는 붕괴되는 모든 것들이 만든 먼지들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이내 먼지가 걷히자, 비로소 눈에 잡히는 두 사람의 인영.

자욱한 먼지 사이로 드러난것은, 몸에서 조금 스파크가 스파크가 튀기기는 하지만 상대적으로 멀쩡히 허공에 떠있는 스타더스와.

서서히 위태롭게 흩날리는 전격에 폭풍 위에서, 복부를 부여잡고 허리를 약간 숙인 일렉트라였다.

"쿨럭, 쿨럭. 큭, 씨발. 쿨럭."

너무 과도한 능력 남용 때문일까, 아니면 스타더스와 한방을 교환했기 때문일까.

충격파로 인해 저 멀리 날아간 상태로, 일렉트라는 비틀거리며 몸을 겨우 지탱하고 있을 뿐이었다.

'끝났군.'

그리고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스타더스는 생각을 정리했다.

어떻게 끝내 버티기는 했지만, 마지막 공격은 그녀에게도 위험했었다. 힘의 리미트를 살짝 풀었을정도로.

이때까지 오직 순수한 힘만으로 그녀를 이렇게까지 밀어붙인건... 저 일렉트라라는 여자가 처음이다.

대체 어디서 등장했고, 무엇을 위해 테러를 일으켰으며, 처음에 설명한 '그'가 누군지 아직은 모르겠으나.... 그건 그녀를 붙잡고나서 심문하면 자연스럽게 알게될 일.

일단, 눈앞에 있는, 저항 불가능한 상태의 빌런을 검거하도록 하자.

체포를 위해 스타더스는,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고 비틀거리고있는 일렉트라를 향해 날아갔고.

그렇게 그녀가 코앞에서, 일렉트라를 붙잡으려고 손을 뻗은 그 순간.

눈앞에 있던 일렉트라가, 한순간에 갑작스럽게 사라졌다.

"....?"

마치, 증발하듯.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다는 텅 비어있는 허공만을 가르고 있는 그녀의 손.

아까까지만 해도 코앞에 있던 그녀가 대체 어디로 사라진건가, 당황한 스타더스가 주위를 맴돌때.

그녀의 위쪽에서, 무언가 펄럭이는 소리가 났다.

'뭐지?'

그렇게 의문을 품은 그녀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어올려 보게 된 것은.

최근, 그녀가 늘 회상한.

검은색 모자.

검은색 로브.

검은색 망토.

반쪽의 회색 가면을 쓴 채.

아까까지만 해도 서있던 일렉트라를 공주님 안기로 든 채, 그녀를 내려다보고있는.

"안녕하십니까. 스타더스."

"에고스틱...?"

이렇게 만나게 될꺼라고는, 그녀가 한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네! 맞습니다. 오랜만이네요. 에고스틱입니다. 반갑습니다!"

그녀를 향해 활짝 웃고있는

에고스틱이, 그 자리에 서있었다.

***

[방송ON!!!!!!]

[자 드가자~ 자 드가자~ 자 드가자~ 자 드가자~ 자 드가자~ 자 드가자~ 자 드가자~ 자 드가자~ 자 드가자~ 자 드가자~ 자 드가자~ 자 드가자~ 자 드가자~ 자 드가자~ 자 드가자~ 자 드가자~]

[야동입갤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

[에고스틱! 에고스틱! 에고스틱! 에고스틱! 에고스틱! 에고스틱! 에고스틱! 에고스틱! 에고스틱! 에고스틱! 에고스틱! 망고스틱! 에고스틱! 에고스틱! 에고스틱!에고스틱! 에고스틱! 에고스틱!]

[존나 갑작스럽게 켜지네ㅋㅋㅋㅋ]

[Folks FUCK EGOSTIC LIVE is ON!!!!]

[자기가 하던거 다 멈추고 허겁지겁 방송부터 킨 망붕이면 개추ㅋㅋㅋㅋㅋ 일단 나부터ㅋㅋㅋㅋㅋ]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저 누님은 누구냐???]

[충격)에고스틱 불륜 선언... 스타더스를 버리고 외도]

[왜 방송켜자마자 보이는게 공주님자세로 여자 껴안고있는 모습인데ㅋㅋㅋ]

[에로스틱 게이야ㅋㅋㅋㅋㅋ]

EP.77 출범식

"빌런 연합이요?"

"그래."

지하기지.

나는 거기서 일원들을 모아놓고, 내 원대한 계획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었다.

한문장으로 요약하자면, 히어로 협회에 대응하는 또다른 세력이 되겠다.

다양한 능력을 지닌 빌런들을 모아, 대한민국에 또다른 실세의 한축이 되겠다는 계획이다.

"...그렇게 모아서 하는게 뭔가요?"

"하는거? 테러랑 다른 빌런 처리지."

"...아니, 우리가 빌런 연합이 될거라면서요. 그런데 다른 빌런들을 처리한다는게 무슨 소리에요?"

"무슨 소리냐니. 우리와 '함께하는' 빌런들이랑은 연합하고, 우리랑 대적하는 빌런들은 처리한다는 소리지."

지금까지 내가 수많은 빌런들을 처리했듯, 그 일은 계속해서 할 생각이다. 물론 주로 원작지식을 가진 내가 슥삭하는 형태다 되겠지만.

새로운 빌런들또한 원작지식을 바탕으로 몇명만 더 영입하면 된다. 제일 강하던 애들로만.

"어쨌든, 그래서 우리 연맹의 이름을 정해야 돼. 에고스쿼드 어때?"

나는 먼저 의견을 제시했다. 에고스쿼드. 에고분대. 나쁘지 않지 않나?

그러나 내 말을 들은 최세희가, 미묘한 얼굴로 답했다.

"너가 그때 말한 에고스쿼드가 이거였구나? 음... 나쁘진 않은데..."

그녀는 본격적으로 턱을 괴고 생각했다.

그러자 덩달아 다른 이들도 심각한 얼굴로 같이 이름을 뭐로 할지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다. 아니, 잠깐. 이게 뭐라고 그렇게 진지하게 정해? 그냥 대충 아무거나 하지.

"저기요? 애들아? 에고스쿼드로 그냥 가는게 어떨까요?"

내가 그녀들에게 손을 휘저으며 말하자, 고개를 돌려 내 눈을 마주치며 답하는 하율이.

"다인 오빠. 한번 정하면 계속 쓰게 되는 이름인데, 한번 정할때 제대로 정해야죠."

묘한 기백을 내뿜으며 진지하게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래. 너네 마음대로 해라.

"...오빠 빌런명도, 애초에 우리가 있었으면... 제대로..."

뭐라고 수근거리며 계속해서 의논하는 그녀들.

그렇게 몇시간의 논의 끝에 빌런 연합의 이름은 에고스트림으로 결정되었다.

...근데 그거나 에고스쿼드나 뭔 차이가 있냐?

***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나는 현재, 쓰러진 최세희를 공주님 안기로 들고 허공에 떠있었다.

스타더스의 눈을 마주보면서.

"오래만이네요. 에고스틱입니다. 반갑습니다!"

[에고스틱! 에고스틱! 에고스틱! 에고스틱! 에고스틱! 에고스틱! 에고스틱! 에고스틱! 에고스틱!]

[오빠 나 죽어 오빠 나 죽어 오빠 나 죽어]

[이거 지금 무슨 구도냐ㅋㅋㅋ]

[방송 시작하자마자 상황 개꿀잼이네ㅋㅋㅋㅋㅋㅋ]

[바로 스타더스랑 대립 ONㅋㅋㅋㅋ]

채팅창도 나를 반갑게 맞아주고 있었다.

언제봐도 빌런의 방송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나를 보며 좋아 죽는 채팅창. 여긴 이미 내 팬카페의 놀이터가 된 모습이다.

하여튼 지금은 채팅창이 중요한게 아니지.

일단은 눈앞에 스타더스에게 집중하자.

"잘 지내셨습니까, 스타더스?"

나는 그녀에게 윙크를 하며 인사를 건냈다.

자고로 매력적인 빌런이란, 히어로에게 격식없이 친한것마냥 유쾌한 모습을 보여줘 상대를 자극하는법.

실제로 그런 내 전략이 통했는지, 그녀는 약간 벙쩌있는 모습이었다.

심지어 눈동자까지 흔들리는 모습. 아니, 왜 저래? 그렇게까지 당황할 일인가?

이내 다시 약간 정신을 차린듯한 그녀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에고스틱... 너, 살아있었냐?"

뭔 질문이 이래?

"네. 당연하죠. 사지 멀쩡히, 건강하게 살아있습니다. 아쉽게도요!"

내가 그렇게 농담을 던지자, 약간 안심한듯 한숨쉬는 그녀.

저 한숨의 의미는 뭐지? 내가 살아있어서 안심한건 아닐테고, 여전히 미친놈처럼 보인다는거에 안심한건가? 잘 해석이 안된다.

"...그래. 다행이군."

응? 다행?

"네? 다행이요? 제가 살아있다는게 그렇게 다행이셨습니까? 야, 스타더스씨가 그렇게 절 생각하고 있으셨을줄은 제가 몰랐습니다. 안부라도 미리미리 전할껄 그랬네요. 하하하!"

내가 웃으며 그렇게 말하자 얼굴이 살짝 빨갛게 물드는 그녀.

나는 이렇게 겉으론 웃으며 농담을 던지면서도, 속으로는 머리를 핑핑 돌리고 있었다.

다행이야? 뭐가 다행이라는거야. 아, 저번에 내가 다치고 이동한게 다행이라는건가? 근데 그걸 신하루가 왜 신경쓰지? 얘 원래 그런거 신경쓰는 애 아닌데?

잠깐, 이거 방송중인데.

나는 잠깐 채팅창을 곁눈질해봤다. 역시나 개판이 나있는 채팅창.

[빌런을 걱정해주는 히어로라... ㅗㅜㅑ]

["살아있었냐?" "다행이다." 둘이 무슨 로맨스 영화찍음?]

[지금 기레기들 노트북키고 개같이 열애설 시즌2 적는중ㅋㅋㅋㅋㅋㅋ]

[잘 모르겠는데 일단 클립땄다 ㄹㅇㅋㅋ]

[스타더스가 망고스틱에게 감겼다... 대한민국은 끝났다...]

좋아. 이제 채팅창은 신경 꺼야겠다.

하여튼 내가 그렇게 계속해서 능글맞게 웃고있자, 스타더스는 약간 붉어진 얼굴로 쏘아붙였다.

"내가 직접 너를 수용소에 넣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거다. 너 같은건 법의 지엄한 심판을 받아야하니까. 합당한 처벌없이 객사한게 아닐까 걱정했을뿐, 다른 의미로 말한게 아니다!"

아 그런거였어?

하긴, 그녀가 나를 걱정했을리가 없지. 빌런을 걱정하는 히어로? 내가 태어나서 들어본적이 없다.

법의 심판도 안받고 어디서 몰래 콱 죽었을까봐 걱정하다니, 참 스타더스 답다.

...그와 별개로 얼굴이 여전히 빨간 그녀였다. 왜지?

어쨌든 다시 정신을 차렸는지, 내가 안고있는 최세희를 보며 나에게 묻는 그녀.

"...그래서, 지금. 왜 나타난거지?"

"보면 모르겠습니까? 제 동료를 구하러 나왔죠."

"...동료?"

의아하다는 듯 나를 보며 되묻는 스타더스.

그래, 여기서부터가 중요하다.

스타더스, 그리고 동시에 이 영상을 보고있을 전국민에게 알릴 차례가 왔다.

내 포부를, 내 목표를.

일단은, 이렇게 시작하자.

나는 그렇게 계속하여 미소지은 채로, 말을 이었다.

"네! 동료 말입니다. 정확히는 제 '연맹'에 속해있는 동료죠."

"연맹...?"

나를 보며 되묻는 그녀. 리액션이 바로바로 튀어나와서 좋다.

그리고, 그래.

이제 여기서부터 쇼를 시작하자.

"그렇습니다. 연맹 말입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위로 쏘아올라갔다.

내가 갑자기 공격하는줄 알았는지 스타더스가 살짝 움찔했지만, 나는 그러든 말든 약간 더 하늘 위로 올라갔을 뿐이다.

그리고 어느정도, 내가 그녀를 확실히 내려다보는 구도가 되었을 때.

나는 그녀를 향해, 그리고 전방에서 나를 찍고있는 카메라를 향해, 목소리를 깔고 입을 열었다.

"생각해보십쇼. 히어로들에게는 무엇이 있습니까? 협회가 있죠. 협회가 있기에 지원이 있고, 협력이 있으며, 권력이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나.

카메라 영상에서는 미리 준비해둔 CG로 히어로 협회의 건물의 모습이 내 뒤로 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거기까지 말하고, 나는 말을 살짝 멈췄다.

동시에 뒤에 협회의 모습이 사라지고, 검은색으로 물드는 배경. 동시에, 카메라 클로즈업.

점차 내 얼굴을 가까이 비추는 화면을 향해, 나는 속삭이듯 조용히 말했다.

"빌런들에게는, 대체 무엇이 있습니까?"

내가 그렇게 말함과 동시에, 다시 내 주위로 CG가 나갔다.

수많은 빌런들이 히어로들에게 격파당하는 모습이, 작게 내 주위를 맴도는 모습.

그런 영상들 사이에서,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빌런들의 역사는 지금까지 늘 개별활동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쉽게 각개격파되었고, 어떠한 세력도 이끌지 못한 채 한때의 유행으로, 검거되어 수용소의 이슬로 사라졌죠."

나는 이제 망토를 휘날리며 더 높은 하늘로 떠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아직도, 쓰러진 채 숨을 힘겹게 나에게 안겨있는 최세희.

나는 그녀를 내려다보는 상태로, 살짝 꽉 껴안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언제까지, 빌런들은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언제까지, 빌런들은 매번 패배해야 합니까?"

"언제까지, 빌런들은 홀로 외롭게 활동해야 합니까?"

거기까지 말한 난, 다시 고개를 들어올려 스타더스를, 그리고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저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민국의 빌런들이 단결하여 함께 히어로들을, 그리고 자신들의 적들을 맞서는 모습."

"저는 제가 직접, 그런 세계를 만들기로 결정했습니다."

"소개합니다!"

거기까지 말한 나는, 최세희는 염동력으로 고정한 뒤, 팔을 활짝 벌렸다.

그와 함께, 내 앞으로 나오는 자막.

[THE EGOSTREAM]

이제는 장엄한 음악마저 흘러나오는 가운데.

나는 다시 서서히 지상으로 내려오며,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저는 이제, 빌런들을 위해 살겠습니다."

"빌런 연합 에고스트림, 오늘부로 출범합니다."

"긴장하는게 좋을겁니다, 협회."

거기까지 말한 나는, 망토를 펄럭이며 뒤로 돌았다. 위풍당당한 내 뒤로 망토가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

그리고, 뒤에서 들려오는 바람소리. 역시.

나는 여전히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큰 소리로 외쳤다.

"일렉츄! 지금 바로 100만 볼트!"

"...하아."

내 품에 안겨있던 최세희의 낮은 한숨과 함께, 가슴에서 뒤쪽으로 전격파들의 줄기가 강하게 날아갔고.

그와 동시에 치잇-하는 목소리와 함께, 누군가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스타더스. 아직 저를 잡기엔 5년은 이릅니다. 조금 더 분발하시지요."

내가 슬쩍 뒤를 돌며 말하자, 전기파를 피하는 스타더스의 모습이 보였다. 아마 내가 주저리 떠들때 기다리다가, 내가 방심한 틈을 타 기습을 할려고 했는듯한 모양.

나쁘지 않은 전략이다.

상대가 그녀의 사고방식을 다 꿰뚫고있는 내가 아니었다면.

"그럼, 안녕히 계세요! 아디오스."

"야!"

나는 거기까지 말하며, 빠르게 튀었다.

채팅창에서 난리를 일으키고 있는 방송은 꺼버리고, 일렉트라가 내뿜는 전기를 피해 다가오는 스타더스를 보며.

가기전에, 한마디 더 해줬다.

"그리고 스타더스. 조만간 저흰 또 볼일이 있을겁니다. 그때 보죠."

그렇게 살짝 미소지으며 말한 뒤, 나는 정말로 순간이동했다.

뒤에서 뭐라뭐라하는 스타더스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그건 내 알바가 아니였다.

다음에 보자고.

***

=[사회부]=

[빌런 일렉트라 - 에고스틱. 둘은 무슨 관계인가?]

[속보)빌런 일렉트라, 협회 A급 판정.]

[한국형 '빌런 연합' 출범계획 밝힌 에고스틱... '테러공화국'이 오는것인가 -권성현기자 칼럼]

[[단독]한국 초상 능력자 협회, 에고스틱의 빌런 등급 승격 검토중. '조직적으로 다른 빌런들을 규합시켜 세력을 구축하는 모습이 상당히 우려스럽다.']

*

=[연예부]=

[연예가중계) 에고스틱의 그녀는 누구? 일렉트라에 대하여 집중 분석!]

[에고스틱-일렉트라. 보기만해도 설레는 모습들 순간포착!]

[대중들의 관심은? 에고스틱 빌런연합 창설(23%)이 2위, 에고스틱 열애설(48%) 1위]

["언제까지,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합니까?" 애틋한 눈길로 일렉트라를 껴안는 에고스틱의 모습(현장사진)]

['스타더스 바라기' 에고스틱은 어디로?]

[스타더스는 가라! 에고스틱-일렉트라. 짧은 순간에도 이목을 사로잡은 둘의 케미.avi]

*

기사를 읽던 신하루는, 자기도 모르게 스마트폰을 구겼다.

"..."

뭔가, 뭔가...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짜증난다.

EP.78 처리

[속보)에고스트림 공식 사이트 나옴]

들어가보면 겁나 깔끔하게 텅 빈 화면에 흰색 바탕에 로고만 보임

밑에보면 LIVE 있는걸 보아 아마 이제 방송은 여기서 할려는 모양?

=[댓글]=

[오]

[신기하네]

[아니 여기 오른쪽 맨 밑에 깨알만한 글씨로 '피해보상신청'적혀있는데 이거 뭐냐?ㅋㅋㅋㅋ]

ㄴ[ㄹㅇ?ㅋㅋㅋㅋㅋㅋㅋ]

ㄴ[ㅅㅂ진짜 한결같네ㅋㅋㅋㅋㅋ]

ㄴ[이게 '빌런' 연합...?]

*

[에고스틱 첫방송부터 라이브로 챙겨봤는데 감회가 새롭네]

처음에는 그냥 조금 참신한 빌런으로 시작해서

점점 테러 스케일도 커지더니

이제는 빌런 연합까지 만드는 모습을 보면

뭔가 막 내가 가슴이 벅차고(?)그럼ㅋㅋㅋㅋ

그리고 여기까지 왔는데도 아직까지 사망자 0이라는것도 레전드임ㅋㅋㅋ

=[댓글]=

[ㅇㄱㄹㅇ 막 성장하는거 보면 뿌듯함]

[망고스틱은 전설이다....]

[ㄹㅇ스타더스랑 단 둘이서 투닥거리던게 엇그제같은데]

[걍 다리테러 이후로 나날이 고점 갱신중ㅋㅋㅋ]

[근데 ㄹㅇ 사상자 0명은 A급중에서도 손에 꼽지 않음? S급으로 승격하면 ㄹㅇ최초될듯ㅋㅋㅋ]

ㄴ[에고 아직도 A급임? 대체 왜지]

ㄴ[ㄹㅇㅋㅋ 이해가 안되네]

ㄴ[협회가 무능한게 하루이틀이냐고ㅋㅋㅋ]

ㄴ[내가 협회 관계자는 아닌데 전해듣기로는 에고스틱은 자체 무력이 굉장히 약하고, 아직까지 사망자가 안나왔기에 A급으로 유지한다고 들음. 다만 해킹 실력과 파급력, 테러의 중대함, 그리고 이번에 보여준 조직력을 봤을 때 S급으로 승격을 내부적으로 검토중입니다.]

ㄴ[협회 직원 게이야.....]

ㄴ[협회직원아 고마워!]

*

[다필요없고 일렉트라 <<<예쁘면 개추ㅋㅋㅋㅋ]

일단 나부터ㅋㅋㅋ

=[댓글]=

[ㄹㅇㅋㅋ]

[에고X일렉 지지합니다]

ㄴ[갈!!! 에고X스타가 버젓이 있거늘!!!]

[솔직히 보자마자 예쁘다는 소리 튀어나옴]

ㄴ[우리학교에서 제일 예쁘던 일진누나 닮음ㅋㅋㅋ]

ㄴ[아니 ㅅㅂ비유를 해도 꼭ㅋㅋㅋㅋ]

*

[솔직히 에고스틱 일렉트라 <---- 둘이 사귀는거 펙트임]

위험에 빠지자마자 구해주는 에고스틱.gif

공주님 안기 상태로 일렉트라를 꼭 껴안는 에고스틱.gif

그리고 특히 마지막 이장면

에고스틱이 '일렉츄 100만볼트!'하니까 이때까지 쓰러진척하던 일렉트라가 일어나서 전기쏘는거ㅋㅋㅋ ㄹㅇ케미 미쳐버림ㅋㅋㅋㅋ

오늘부터는 에고스틱X일렉트라... 줄여서 에고트라 지지한다 말리지마라

=[댓글]=

[둘이 솔직히 케미 좋긴 함ㅋㅋㅋ 저거 딱봐도 사석에서 친한거 아니면 안나오는 거긴해]

[응 에고스틱은 스타더스꺼야~ ㅅㄱ]

ㄴ[스타더스는 무슨 스타더스ㅋㅋㅋ 에고스틱이 스타더스 안부른지가 언제인데]

ㄴ[당장 이번에만해도 스타더스랑 만났는데 뭔소리?]

ㄴ[그러니까 만난거말고 에고스틱이 스타더스를 직접 부른게 언제냐고ㅋㅋㅋ 한참전임]

*

[에고스틱 X 스타더스단이 멸망할 수 밖에 없는 이유...eu]

애초에 팬들 입장에서도 엮을때

빌런X히어로는 현실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0에 수렴함

거기에 스타더스 성격보면 막 정의! 이래가지고 에고스틱이랑 상극이고

그런데도 엮인 이유가 에고스틱이 활동 초기부터 꾸준히 스타더스 지목하고 스타더스 부르고 스타더스 언급하고 그래서였는데

언제부터인가 에고스틱이 스타더스를 안부르기 시작함

그래서 살짝 엮는것도 힘들어질때 헤성처럼 금태양 일렉트라 등장

같은 빌런X빌런에 연합관계에 묶여있다는 긴밀성

저번 영상에서 보여준 묘하게 서로 친근한 태도

걍 스타더스는 바로 버려버리고 일렉트라랑 엮일수밖에 없음ㄹㅇㅋㅋ

그러니까 에고스타단 알아들으셨어요?

팬카페에서 방 빼시라고

여긴 이제 에고트라단이 점령한다

=[댓글]=

[응 에고스타 못잃어~ 난 그때 기차 테러때 대가리 깨졌어~]

ㄴ[ㄹㅇ유입들 그 기차테러직후 스타더스 쓰러졌을때 에고스틱이 스윗하게 스타더스 챙겨준거 못봐서 이럼]

ㄴ[-틀-]

[아직도 에고스타 미는 퇴물 없지?]

[스타더스 컷!]

*

"...."

순간 폰을 집어던질뻔한 그녀는, 살짝 심호흡을 한 뒤 이성을 되찾았다.

그래, 그렇게까지 화낼 일은 아니다. 애초에 자기가 왜 에고스틱이랑 엮인단 말인가. 그리고 에고스틱이 일레어쩌구라는 년이랑 엮이든 말든 알 바가 아니다.

근데 왜 짜증이나지.

"...마음에 안들어."

그녀는 일렉트라를 공주님 안기 자세로 꼭 껴안고 있는 에고스틱의 모습을 다시보자, 자기도 모르게 기분이 불편해지는게 느껴졌다.

신문의 1면 사진또한, 에고스틱과 일렉트라 둘만 클로즈업 하고 스타더스 그녀는 편집해버린 모습.

뭔가 둘이 다정한 모습을 보니까 짜증이난다.

그렇게 언짢은 기색으로, 한참을 가만히 앉아서 새로 받은 폰을 슥슥 내려가며 읽던 그녀는.

문득, 생각했다.

내가 왜, 짜증이나지?

그녀는 다시 자세를 고쳐앉았다.

그래.

지금까지 짜증나는 기분에 가려져 잊고있었는데.

애초에, 왜 자신은 이렇게 불편해하고 있는거지?

그녀는 머리를 감싸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래. 생각할수록 자신이 짜증날 일은 아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기분이 안좋은걸까.

에고스틱, 그놈이 무슨 상관이라고?

그렇게 그녀는, 에고스틱에 대해 떠올려봤다.

에고스틱.

자신이 갓 히어로가 된 이후, 좀 시간이 지나 어느정도 일에 적응했다고 느꼈을 쯤에 나타난 빌런. 그게 에고스틱이었다.

그전까지 도시를 박살내거나 단순히 인질을 잡고 금품을 요구하던 여타 빌런들과는 다르던 놈.

그놈은 처음부터 다른 빌런들을 살해하는 행보만을 보여 초창기에는 다크히어로가 아니냐는 말도 있었지만, 이후 그의 테러로 인해 그런 말은 쏙 들어갔다.

그리고 그의 첫번째 테러.

그때 그는, 정확하게 스타더스 자신을 지목했다.

아니, 생각해보니 그 이전부터. 스타더스 자신을 지목했었다. 빌런을 살해한 뒤 남겨놓은 메세지를 통해.

그리고 그 다음 테러에서도, 그는 자신을 지목했다. 당연하다는 듯이.

거기에, 그녀가 얼굴을 노출하고 나서려던 때에는 어떻게 알고 나타나 도와줬었다.

그 다음 테러에는 심지어, 자신에게 직접 연락해 믿고있다, 그녀가 그를 완성시킨다는 말까지 했었다.

끝에는, 그녀를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지기까지 했다.

그래. 지금까지 에고스틱은 늘, 무슨 일을 일으킬 떄마다 스타더스 그녀를 지목했었고, 사건의 현장에서 매번 그녀의 옆에 있었다.

거기까지 곱씹던 그녀는, 불현듯 깨달았다.

에고스틱이 많은 히어로들 중에서 자신만을 늘 신경쓰듯이.

그녀 또한, 많은 빌런들 중에서 에고스틱만을 제일 신경썼었다.

"....."

그래.

생각해보면, 그녀의 히어로 인생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에고스틱 없이는 논하기 어려운 단계에 이르렀다.

그녀는 에고스틱을 만나기 전에 히어로로써 무엇을 했는지는 이제 기억조차 잘 나지 않았다. 그저 한 빌런이 나오면 그냥 걔를 수용소에 넣고, 다른 빌런이 나오면 또 넣고. 그렇게 살아왔었지.

그러나 에고스틱.

그랑은 참, 오래가게 되었다.

순간이동이라는 압도적으로 기동성이 높은 능력으로 매번 도주한뒤 다시 계속해서 테러를 일으키는 빌런.

그러면서도 사상자는 없고, 다른 빌런들은 제거하며, 이상한 명목으로 가끔 사람들도 구하고 다니는, 비밀이 굉장히 많으며

늘 자신을 지목하고, 자신과 엮였던 녀석.

자기도 모르게 다시 그에대해 떠올리던 스타더스는, 깨달았다.

이제 에고스틱이 없는 삶이 잘 상상되지 않는다.

에고스틱이 사건을 일으키고, 그 다음에 자신을 부르고, 그러면 자신은 그의 앞에서 그를 쫓는게 너무 익숙해져서.

어느새, 그러지 않은 삶은 상상도 잘 안된다는 것.

"...."

그래.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늘 에고스틱은 자기만을 불렀었다.

빌런을 죽일때도, 3번의 테러도 전부.

그러나 그 다음부터, 그는 자신을 부르지 않았다.

그래. 정확히는 다리 테러. 그때 아예 접근을 막았었다.

다른 때 만나지 않았냐고?

그건 그가 그녀를 직접 지목했던게 아닌, 전부 우연히, 상황에 따라 만나게 되었던거지.

그가 직접 '스타더스', 그녀를 불렀던게 아니였다.

그래. 어느 순간에서부터.

그는 스타더스를 찾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가 폰을 슥슥 내릴때, 눈에 들어온 글.

*

[스타더스는 그냥 추진제임ㅋㅋㅋ]

그냥 초반 어그로용 추진제였던거지.

여기보면 막 에고스틱은 스타더스에 빠졌다, 에고스틱은 스타더스 바라기다 이런 말 있던데.

무슨ㅋㅋㅋ에고스틱이 그럴애냐?

그냥 에고스틱이 초창기에 그랬던건 스타더스가 서울을 담당하는 A급 히어로니까 걔 상대하면서 어그로 끌어서 자신의 존재감을 높이려 한거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님.

최근들어 스타더스 언급 1도 없는거 보면 확실하지ㅇㅇ

그냥 비즈니스적으로 이용만 해먹고 팽해버린거지.

아마 앞으로 테러 일으켜도 스타더스 지목할 일은 절대 없을걸? 사실 비행기테러 때부터 스타더스 안불렀잖음ㅋㅋㅋ

그냥 스타더스는 엔조이고

뒤에서 에고는 일렉트라랑 물고빨며 잘 살고 있을것ㅇㅇ 예전에 스타더스한테 주던 관심은 다 일렉트라에게 쏠림.

에고스타단 수고ㅋㅋ

*

거기까지 읽은 그녀는, 결국 못참고 휴대폰을 던졌다.

쟤가 뭘 안다고 그러는가.

에고스틱은 비행기 테러때도 자신을 개인적으로 불렀었고, 심지어 한은그룹 지하에서는 그녀를 목숨걸고 구하기까지 했었다.

늘 그는 그들이 못보는곳에서, 그녀와 소통했었다고.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그녀는 문득 깨달았다.

그래, 자신이 그 둘을 보고 기분이 나빴던 이유는.

지금까지 에고스틱과 관련해서는 늘 자신이, 그의 상대로 매번 엮였었는데.

갑자기 다른 쓸데없는 여자가, 괜히 그 둘 사이에 끼어들었기 때문이였다.

"...."

에고스틱은 언젠가, 자신보고 그녀가 그의 아치에너미라고 했던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이제, 그의 말에 동의하게 되었다.

좋으나 싫으나. 자신의 가장 큰 적은, 그녀의 숙적은 에고스틱이란걸.

그리고.

자신과 그의, 둘의 관계는, 다른 누구도 엮이지 않은 채 둘이 매듭 지어야 한다는걸.

어느새 머리가 다시 차가워진 그녀는, 조용히 침대쪽에 던져진 휴대폰을 줍기위해 일어났다.

그래. 어찌됐건. 에고스틱은 분명 자신한테 다음에 곧 보자고 했었다. 그때 다시 상대하면 되겠지.

그리고.

일렉트라. 그 여자는 하루빨리 처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

"...시발, 뭐지."

"뭐야. 갑자기 왜 그래?"

"아니... 갑자기 뭔가 쎄한 기분이..."

소름이 돋았다는양 자신의 양팔을 매만지는 최세희를 보며,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신기하다, 나도 저번에 너처럼 쎄할때 있었는데."

뭐지. 요즘 다들 기가 허한가?

EP.79 미래를 위한 포석

일렉트라 데뷔와 빌런 연합 창설 선언 이후, 나는 다시 한동안 쉬기로 했다.

빌런이라는 직업의 장점이, 한탕 한뒤에 자체적으로 몇주 쉴 수 있다는거지.

뭐, 사실은 원작의 메인 이벤트가 일어날 때까지 기다리는거지만.

하여튼 우리는 그렇게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내가 요즘 연예계 뉴스를 못봐."

한가한 낮.

내가 서은이와 같이 거실에서 TV로 게임을 하고 있을 때, 뒤에서 최세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못보는데?"

"하아. 들어갈 때마다 이런게 나오니까?"

소파에 앉아서 휴대폰을 내쪽으로 보여주는 그녀.

그녀가 보여준 화면에는 [에고스틱X일렉트라 존재감 뿜뿜 넘치는 케미 모음.zip]이라는 굉장히 어질어질한 기사가 보였다.

"오빠! 앞에!"

"어? 악!"

참고로 그거 보다가 게임에서 죽어버렸다.

"망겜이네."

눈 좀 살짝 돌렸다고 죽는게 망겜이지 뭐가 망겜이냐?

"하아... 뭘봤길레 그래요? 저도 보여주세요."

그렇게 서은이가 최세희의 폰을 보는 동안, 나는 최세희에게 말을 건내주었다.

"너무 크게 신경쓰지마. 어차피 잘 모르는 사람들이 회로돌리는건데 뭐."

"아니... 그래도 메인에 저렇게 대놓고 걸려있는데, 넌 신경 안쓰여?"

최세희가 복잡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나?

생각해보니까 나도 처음에 스타더스와 열애설 떴을때는 진짜 화들짝 놀랐다. 방송국을 폭파시켜버릴까 고민했을정도로.

근데, 뭐. 지금은.

"계속 보다보면 익숙해져."

"...거 참 도움이 되는 말이네."

떫떠름하게 나를 보는 최세희의 시선을 피하고 있을 때, 옆에있던 서은이가 살짝 퉁명스럽게 말했다.

"아니. 애초에 오빠 옆에 제일 오래 있던건 저인데, 왜 세희 언니만 사람들이 알아주는거에요?"

"왜냐니. 그야 너는 뒤에 있었고 최세희는 나랑 같이 카메라 앞에 섰으니까 그러지."

"으. 카메라 얘기는 꺼내지도 마. 내가 그 앞에서 연기하느라 얼마나 쪽팔렸는지 알아? 나는 일렉트라다! 이렇게 말할때 챙피해서 혀 깨물뻔했다고."

"....근데 그렇다기에는 너도 중반부터는 좀 즐기던거 같은데?"

"내가? 하! 어이없어."

내 정곡을 찌르는 말에 찔렸는지 입을 다물곤 살짝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돌리던 그녀.

그리고 옆에서 서은이의 '나도...테러를...'이라고 중얼거리는 소리까지.

음.

여전히 평화로운 하루구만.

***

그래도 우리 에고스쿼드. 아니지. 이제는 에고스트림이라고 해야하나? 우리 에고스트림 일원들이 놀기만 하는건 아니다. 일을 할때는 또 하는 법.

서은이와 수빈씨는 에고스트림 홈페이지를 계속 만드느라 바쁘다. 무슨 메크로를 돌리겠다는데...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율이와 차윤이 남매는 열심히 공부하는 중. 특히 차윤이는 나한테 커서 협회에 들어가 나를 도와주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기특해 아주.

최세희는 여전히 자신의 능력을 컨트롤하는 훈련을 진행하고 있고.

나는.

현재 서울 시내 한복판에 서있었다.

서울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낡은 건물들이 줄지어 서있는 거리.

나는 그것들 중 붉은 벽돌로 이루어진 작은 건물로 들어갔다.

다 쓰러질거처럼 허름한 건물 안.

내부로 들어온 나는, 곧장 계단을 타고 지하로 내려갔다.

지상과 똑같이 어두컴컴하고 허름한 지하.

평범해 보이는 지하로 향하는 길이었지만.

차이점이라면.

아무리 내려가도, 계단이 끝없이 이어진다는 점?

"....좋아."

나는 괜히 그렇게 중얼거려봤다.

여기 맞겠지?

마치 아무 문제 없다는듯 계단을 계속해서, 사뿐히 내려가던 나는. 기습적으로 옆에 벽면을 발로 쾅 쳤다.

"이리 오너라!!!"

그와 동시에, 모래로 쌓은거마냥 허물어지는 벽.

그리고 그 벽 너머로는, 기다란 복도가 펼쳐져 있었다.

제대로 왔네.

녹색의 양초불이 은은하게 감싸는, 아까까지의 허름한 건물과는 대비되는 고풍스러운 석조 복도. 약간 이끼가 끼어 더욱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곳을 나는 당당하게 걸어갔다. 아니, 시대가 언제인데 아직도 양초를 쓰는거야? 마음같아서는 싹다 LED를 달아버리고 싶다. 산업화 좀 해야지.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며 걷다보니, 어느세 어느샌가 온 복도의 끝.

그리고 그 앞에는, 검은색 문이 놓여있었다.

세밀한 장식들이 가득한, 고풍스러운 흑요석 문이었지만 그건 내 알 바가 아니지. 나무 문이든 흑요석 문이든 자동문이든 열리라고 만들어진건 다 똑같다. 그래서 문을 당당하게 쾅 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보이는 것은 똑같이 녹색의 양초로 은은하게 빛나는 살짝 넓직한 방.

이런저런 액자들과 무언가 들끓고 있는 솥단지를 지나, 나는 연두색의 장막이 쳐져있는 곳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복장은. 검은 모자부터 검은 신발에 망토에 가면까지. 어느새 갈아입은 완벽한 에고-슈트상태다. 사실 그녀는 어지간하면 내 정체를 꿰뚫어 볼거 같기도 한데, 혹시 모르니까.

그렇게 베일처럼 쳐진 장막을 걷자 보이는 것은, 작은 원형 탁자. 그리고 그 위에 수정구.

그리고 나를 마주보는, 여인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내가 인사를 하며 들어오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

진녹색의 로브를 머리끝까지 써 얼굴을 가린 그녀는, 나중에 협회에 정체가 밝혀지자마자 즉시 S급을 부여받는 빌런, 덩굴마녀(Vine Witch)였다.

내가 자리에 앉자, 그녀는 비로소 입을 열었다.

"처음 보는 아이구나. 그래, 어쩐 일로 찾아왔니?"

"예. 다름이 아니라, 의뢰를 하려고요."

그래. 내가 그녀를 찾은 이유는 의뢰를 하기 위해서다.

나는 미리 챙겨운 두개의 가죽 노트를 꺼냈다.

하나는 내 일기장, 그리고 하나는 아직 안쓴 노트.

"이거 2개에 봉인의 주술 좀 해주십쇼."

"기한은 언제까지?"

"둘 다 제가 죽을 때까지."

나는 그렇게 말하며 품속에서 다른걸 꺼냈다.

작은 상자에 담긴, 수십개의 형형색색의 보석들.

내가 그 상자를 탁자위에 놓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나에게서 노트를 가져갔다.

그러면서 작은 목소리로 영창을 시작하는 그녀.

내 노트에 손을 올리고 말을 중얼거리자, 책 둘이 전부 연두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짧은 시간이 지난 후 빛도 꺼지고.

이내 다 되었다는 듯 나에게 두 노트를 건네주는 그녀.

다시 두권 모두 받아 살펴보니, 겉에 전에 없던 연두색의 주술적인 문양이 새겨진 모습이다.

"...이제 주인외에는 그 누구도 강제적인 방법으로 열거나 내용을 엿볼 수 없을거다."

"감사합니다, 마녀님."

나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볼일 다 봤으니까 가야지.

나는 그렇게 말한 뒤 다시 베일을 걷고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문쪽으로 가자, 갑작스럽게 뒤에서 들려오는 말.

"...힘든 길을 걷는구나."

스쳐지나가듯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에, 나는 살짝 멈칫했다.

마치 내 모든걸 꿰뚫듯이 말한 그녀의 한마디에. 자연히 느려지는 내 발걸음.

역시, 그녀정도면 한방에 알아보는건가.

어떻게 답해야할까.

...그래.

"...누군가는 걸어야하는 길이니까요."

"힘내거라."

내 답변에 짧게 응원을 해주는 그녀.

원작에서 덩굴마녀가 저런말을 한 적이 있었나? 저렇게 응원하는 말을 한거는 처음인거 같은데.

나는 조용히 문을 닫고 복도를 걸었다.

힘든 길이라.

나는 그 말을 곱씹으며 피식 웃었다.

힘들지 않았으면, 애초에 시작도 안했다.

***

다시 집으로 돌아온 나는, 펼쳐놓은 두 노트를 바라보았다.

하나는 내 일기장. 이제 최세희도 이집에 거주하면서 들킬 확률이 커진만큼, 아예 봉인해버렸다. 여기에 내 목표랑 그런거 다 적혀있어서 들키면 큰일나.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번에 새로산 노트.

이것도 차차 내용을 채워나갈 생각이다. 이건 나중에 해야지.

대충 할 일을 다 마친 나는 스타더스 팬카페나 들어갔다.

내가 직접 만든 국내 최대 규모의 히어로 팬카페. 스타더스 팬카페 별먼지단.

하루하루 쑥 쑥 커가는 카페를 보면 괜히 내 마음이 뿌듯해지고 그런다.

....아직도 내 팬카페인 망고단에 비하면 인원이 반에 반도 안되는게 흠이지만. 아니, 빌런이 히어로보다 팬카페 규모가 크다는게 말이 돼? 스타더스의 매력을 모르는 사람들이 불쌍하다.

나는 툴툴거리며 카페를 관리했다.

스타더스 사진... 저장. 스타더스 찬양... 좋아요. 스타더스 열애설... 삭제. 스타더스랑 에고스틱이 잘 어올린다? ...음. 이건 냅두고.

그렇게 하나하나 관리하던 나는, 한 게시글의 제목을 보고 살짝 멈칫했다.

[협회다니는 지인한테 들었는데 한은그룹 지하에 에고스틱이 들어간 날 스타더스도 들어갔었다는데?]

그건 바로 삭제하고 게시글 작성자도 차단했다.

넌 너무 많은걸 알았어.

그렇게 칼삭을 한 나는, 한은그룹에 대하여 다시 떠올려봤다. 서은이와 수빈씨의 원수. 비밀실험을 자행하던 대기업. 그리고 도망친 총책임자 김선우와 연구원들.

달력을 보니... 그래. 곧이네.

"드디어 끝장을 보겠구나."

그래.

이번에야말로 원작의 중간보스이자, 살아있는 피폐메이커 한은그룹 놈들을 완전히 박살낼 때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부터 슬슬 방송할 준비하고, 계획도 설립하고 해야지.

이번엔 그리고, 스타더스도 확실히 지목해서 부르자.

"...."

절대 내 팬카페에서 최근에 에고스틱이 스타더스 버린것 같다는 글을 봐서 이러는게 아니다.

절대로.

EP.80 멸망의 전조

이 세계가 참 생각해보면, 지랄맞은 세계다.

나는 창밖으로 도시들을 내려다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해 보인다. 높디 높은 건물들 사이로 분주히 움직이는 수많은 사람들. 이렇게보면 마치 내가 전생에 살았던 세계와 다른점이 전혀 없어보인다.

그러나, 실상을 보면 굉장히 다르다. 주로 지랄맞은 쪽으로.

일단 기본적으로 가끔가다 초능력을 각성하는 이들이 태어난다. 근데 이 초능력이 적당한 능력이면 몰라. 다 지랄맞게 강한 놈들이 나온다는게 문제지.

당장 스타더스만 해도 마음만 먹으면 빌딩 몇십개를 다 박살낼 수 있을거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 거기에 해외로 나가보면 더 개판이다. 거의 모든 나라들이 매달 멸망의 위기를 겪는다 해도 무방하다.

물론 세계의 균형덕분인지, 웬만한 빌런들보다 강한 히어로들이 나오는 덕분에 어찌어찌 굴러는 가고 있다. 즉, 히어로들이 없으면 국가들은 제대로 굴러가지도 않았다. 그덕에 정부의 영향력이 협회에 비해 굉장히 축소되어있는 세계다. 대통령도 살짝 편집증적이고.

거기에 빌런들만 문제냐? 그것만이 아니다. 한은그룹을 보면 알겠지만, 대기업들도 그냥 돌았다. 비밀실험은 기본, 그 라이벌 기업인 유성기업도 정부와 협회를 압박해 대한민국을 뒤에서 조절하는 흑막이다. 한은그룹이 무너지고 나서부터 본격적으로 대한민국을 먹으려 하고 있겠지. 뭐, 나로써는 그러는 편이 더 이득이기는 하다. 그렇게되면 이설아 하나만 컨트롤하면 되니까.

어쨌든,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이 세계가 정상이 아니라는거. 초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테러를 마구 일으키고, 정부는 구실을 못하고 기업이 조절하는 데다가, 심지어 신도있고 저승도 있고 그냥 난리가 아니다. 평화롭던 예전 세계가 그립다고.

"...."

나는 여전히 창밖을 내다보며 생각했다.

더 웃긴건 뭐다? 이정도면 굉장히 평화로운거다.

이제 갈수록 더 강한 빌런들이 나오고, 세계는 더더욱 혼란스러워질거거든

그리고 스타더스 혼자, 그 모든걸 감당해야되겠지.

"오빠, 대체 혼자 청승맞게 뭘보고 있는 거에요?"

"...아니다. 이제 가자."

옆에서 들려오는 서은이의 말에 비로소 상념에서 깨어난 나는, 고개를 다시 돌렸다.

그래.

결국 내가, 이 모든걸 다 막아야하는 법이다.

***

내가 빙의한 만화, [스타더스트!]는 팬들이 총 임의로 크게 4페이즈로 구분한다.

스타더스의 성장물과 약간의 일상물 전개가 띄는 1페이즈. 대략 지금의 시간대이며, 제일 평화로울 시기다.

그리고, 한은그룹 사건 이후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2페이즈. 이때부터 빌런들이 점점 많이, 더 강한 능력을 들고 튀어나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팬들이 2페이즈의 시작이라고 명명한 사건이자, 이 세계관이 사실 피폐물이라는걸 못박는 이벤트.

그게 바로 한은그룹 서울 침공 사건이다.

전에 베히모스 사태와는 비교도 안가게 죽어나가는 사람들, 막지 못하여 무력감과 자책감에 시달리는 스타더스, 삐그덕거리는 협회와 정부, 그리고 불타는 서울.

히어로들은 이때까지 뭐했냐는 성토가 전국을 뒤덮으며 한국이 박살나는 무시무시한 사건!

아비규환이 되는 시내! 박살나는 건물들과 인간! 산불!

근데...

그거 내가 그 일이 일어날거 알고있잖아?

한은그룹 넌 좆됐다 애들아.

원작에서의 히어로들을 향한 짜릿한 복수극, 장렬한 산화?

그런건 없다 선우야!!

"후흐흐흐흐흐."

"다인씨. 사람 많은데서 이러시면 안돼요..."

"오빠..."

"얘 원래 자주 이러냐?"

"형...?"

전망대를 내려오는 길.

나도 모르게 사악한 웃음을 지었더니 일행들의 질타가 이어졌다.

다 너네 좋으라고 하는거라고.

"...오빠가 저렇게 웃을때면 또 뭔가 사악한 계획을 꾸미고 있다는건데."

나를 옆에서 오랜기간 지켜봐온 서은이만이 탐탁치 않은 표정으로 옆에서 중얼거렸다.

사악하다니.

나는 인류를 구원해주려고 하는데, 억울해 죽겠네.

물론 김선우를 필두로 한 한은그룹 애들 입장에서는 치가 떨리는 일이겠지만 말이야.

***

한은그룹.

대한민국 최고의 대기업은, 대외적으로는 친절한 이미지를 메이킹하면서 뒤에선 무력으로 대한민국을 지배하기 위해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그렇게 불법적이고 비인륜적인 인체실험, 괴물 창조를 비밀리에 하고있던 그들은 베헤모스 사건으로 그 모든 음모가 들키게 된다.

그 결과는 회사는 망하고, 회장을 비롯한 고위 임원들은 해외로 탈주했지만, 김선우 박사를 필두로 한 실험을 한 연구원들은 도망치지 못했다.

원작에서 김선우가 베히모스를 탈취해 스타더스와 싸워도 보지만, 결국 패배하고 도망친 그.

결국 그를 필두로 한 직원들은 자신들은 끝났다는걸 깨닫게 되고, 이왕 다 죽게 생긴거 가기전에 마지막으로 크게 한방 터트려 다같이 죽고 보자는 계획을 세우게 된다.

그게 바로 한은그룹 서울 침공 사태.

그리고 그들이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기 위해 선택한 방식은.

거대 병기였다.

***

"그러니까. 근시일 내에 한은그룹이 최후의 발악으로 밤에 거대 로봇을 끌고 서울을 침공할꺼라고요?"

"로봇이 아니고 병기인데, 어쨌든. 그래."

"....."

에고-지하 기지의 회의실.

서은이, 수빈씨, 그리고 이번에 새로 합류한 최세희에 하율이까지. 전원이 모인 그곳에서 나는 얘기를 꺼냈다.

"...거대 병기라는게, 구체적으로 어떻다는 거에요?"

"거대한 산맥처럼 큰 살짝 뭔가 문어 느낌에, 몸통은 반구로 이루어져 있는데 긴 강철의 팔다리가 붙어있는..."

"아니, 잠깐, 잠깐."

내 얘기를 듣던 최세희가 말을 끊더니 황당하다는 기색으로 나한테 물었다.

"곧 거대 병기가 서울을 침공할거라고? 넌 그걸 어떻게 아는데?"

"나는 모르는거 빼고 다 알아."

"아니. 그게 뭐야...."

최세희가 황당하다는 듯 눈을 치켜뜨고 나를 바라봤지만, 나는 그저 싱긋 웃을 뿐이었다.

원래 비밀이 많은 남자가 매력적인 법이래. 아마.

"하여튼, 우리의 계획은 그 거대병기를 탈취하는거야."

"그걸? 어떻게?"

"뭘 어떻게야? 그냥 순간이동으로 조종대 가서 애들 다 두들겨패고 우리가 조작하면 끝이지 뭐."

"그게 그렇게 쉽게 된다고?"

"어려울건 또 뭐야?"

인간이 뇌가 죽으면 죽듯이, 거대 병기도 조종석 뺐기면 그대로 끝인거다.

"...근데 그건 걔들도 미리 알고 대비를 해놓지 않았을까?"

"당연히 했겠지."

정확히는, 저녁 한정으로 어디든 순간이동 할 수 있는 섀도우워커를 대비했지.

베히모스에서 추출한, 어둠에 대항하는 물질로 그냥 떡칠을 해서 놈이 못오게 막았다.

이걸 설명하자, 의아해하는 최세희.

"....너는? 너가 순간이동하는건?"

"나? 나는 당연히 고려조차 안했겠지."

"왜?"

"그야 나는 히어로도 아니고 그냥 일개 빌런이니까...?"

"아."

그녀가 이제서야 깨달았다는 듯 바보 도터지는 소리를 냈다. 아니, 나를 대체 뭘로보는거야?

"다인씨. 그런데 그 기계가 그렇게 강력해요? 그냥 폭탄 몇발 쏘면 안돼요?"

"안돼요."

나는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그게 그냥 병기가 아니다. 원작에서 보면 가히 압도적인, 보는 이에게 하여금 '저건 못막는다'라는 소리가 나오는 압도적인 크기에, 대체 뭐로 만들었는지 뭘 쏘아도 흠집하나 안나는 가히 경이로운 물건.

괜히 그게 원작에서 페이즈1의 최종보스라고 불렸던게 아니다. 그냥 압도적이라니까? 이때까지 스타더스가 맞닥트렸던 것들과는 상대가 안된다. 가히 끝판왕.

결국 스타더스도 못쓰러트리고 포기했을 정도니.

이게 얼마나 강하고, 압도적이고, 경이로운 물건인지 모두에게 설명한 뒤, 나는 한문장으로 끝을 맺었다.

"그리고 그걸, 내가 그냥 꿀꺽할려고."

나는 그 말을 하며 나도 모르게 사악한 웃음을 지었다.

그래. 내 이 세계에서의 목표가 무엇이었는가.

스타더스에게, 감당가능한 시련만 내려주자.

그리고 이건, 절대로 그녀가 감당가능한게 아니다.

그러면.

내가 직접, 감당가능한 시련으로 개조시켜주면 되는거 아니겠는가?

"아마 바로 이번주에 일어날테니, 다들 미리미리 준비하자고. 특히 최세희 너는 나랑 함께가고."

나는 그렇게 말하며, 계획을 짰다.

한은그룹도 확실하게 끝내고, 스타더스도 성장시킬 절호의 찬스.

특히 김선우를 비롯한 한은그룹 놈들.

자기들이 최후의 한방으로 그렇게 준비하던게 개같이 망하면, 표정이 어떨지 정말 궁금하네.

후흐하하하하하.

****

지방 깊숙한 곳 어딘가.

한은그룹 비밀기지 섹터 C.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숙한 지하의 한가운데서, 수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다들 피골이 상접해 몸이 야위었고, 씻지도 못했는지 꾀쬐쬐했지만.

눈만은, 형형한 독기로 타오르는 그들.

하얀 가운을 입은 그들이 그렇게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가운데, 한 남성이 그들을 가로질러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이들 중 나이가 가장 많아 보이고.

이들 중 가장 지쳤으나.

눈만은 제일, 누구든 씹어죽일 듯한 독기로 타오르는 남성.

한은그룹 베헤모스 프로젝트의 총책임자였으며.

이사진들한테 팽당해, 한국에 잔류하고 있는.

김선우 박사.

그는 그의 곁을 바쁘게 따라오는 연구원에게, 씹어먹듯 말을 뱉었다.

"그래서. 최종 점검까지 끝냈다고?"

"그렇습니다 박사님. 이제 출격만 하면 됩니다."

"내가 보지."

그렇게 뚜벅뚜벅 걸어간 그가 도착한곳은.

마치 거대한 도시 하나를 세로로 돌려 지하에 집어넣은것 처럼 보이는 압도적인 크기의 빈 공당.

그리고, 그곳을 가득 채우는.

세로 길이는 족히 마천루의 몇배요, 가로 길이는 거대한 산맥같은.

한은그룹 이들이 자신의 마지막 불꽃을 갈아 만든, 파괴를, 붕괴를, 혼돈만을 위해 만들어진 최후의 역작.

멸망을 위해 만들어진 병기, 프로젝트 옥토패스(Octopass)였다.

"그래... 드디어. 드디어 만들어졌구나."

그걸 본 김선우는 이를 악물고서는 중얼거렸다.

그러더니, 스스로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며 즉석에서 전 직원을 향해 소리쳤다.

"전 직원은 들어라!!!"

이 넓은 강당을 가득 채우는, 파괴적인 성량.

옆에있던 연구원이 급히 옆에 마이크를 세팅해, 시설 전지역으로 목소리가 나가는 와중에.

그의 목소리가, 지하에 울려퍼졌다.

"우리가 지금까지 한은그룹을 위해, 그리고 국가의 발전을 위해, 우리가 얼마나 희생했는가!"

"오직 더 나은 세계를 위해 헌신한 우리를, 질타하고 매도하는 국민들은! 대체 이 나라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

"진화를 통해 인류의 역사를 새로 창조하려고 한 우리를, 얼마나 탄압하며 이제는 숙청하려 드는가!"

"이런 썩어빠진 나라는, 더이상 필요없다!"

"이제 우리가! 이런 증오스러운 나라를 우리 손으로! 불바다를 만드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마지막 소명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내일!"

그는 마지막 말을, 불타오르는 눈길로 씹어먹듯 뱉었다.

"서울을 멸망시킨다."

그의 연설이 끝나자, 주위에서 울려퍼지는 환호. 동조. 불바다. 멸망. 분노.

그런 온갖 소음속에서, 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래. 바로 내일.

서울은 그의 손아귀에, 비로소 종말이란 무엇인지 깨닫게 될거다.

***

"그래서, 그 병기를 강탈할 계획이 뭐라고요?"

"조종석에 가서 몽키스패너로 조작하는 놈 뚝배기를 퍽. 끝. 그러면 이제 우리꺼지."

"...그렇게 쉽게 된다고요?"

"어."

참 쉽죠?

EP.81 서울 불바다

서울.

화창한 햇볕이 대지 위에 활짝 깔린 대도시는, 여느때와 다름이 없어보였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늘 비슷할거라고는 예상되는 평범한 도시.

비록 가끔가다 테러범들이 나오고, 괴물들이 튀어나오기는 하지만 그런 이벤트를 제외하면, 늘 언제나 한결같은 도시였다.

10년뒤에도 이 모습 그대로일거라고는 예상할 수 없지만, 당장 다음주까지는 이렇게 평화로울거 같다고 생각되는 이곳.

그렇기에,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일상의 종말이 이렇게 갑작스럽게 찾아올 거라고는.

평범한 대지.

높은 건물들 사이, 옥상에서 경치를 바라보는 사람.

그 사람이 제일 먼저, 이 이변을 알아차렸다.

늘 보던것과 똑같은 풍경이었다.

높은 건물들, 그 뒤 어두운 배경에 흐릿하게 보이는 산맥, 그리고 그 옆에 있는 거대한 무언가.

아마 멍하니 보고 있던 사람이라면 전혀 몰랐을만한 무언가.

그러나, 눈썰미 좋은 사람은 금새 파악했을만한 그것.

어 시발.

저거뭐야.

서울 도심 한쪽.

저 멀리, 산맥 옆쪽에.

거대한 무언가가 서서,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원기둥에 머리부분을 반원으로 세운듯한, 회색빛의 몸통. 길게 강철로 이루어져 뻗은 두 다리. 그리고 길게 늘어트려진 강철의 팔.

전체적으로 기계 병기처럼 보이는, 이 도시 앞에 있다고 믿겨지지가 않는 무언가.

그리고 사람들이, 눈을 비비며 자신이 무언가를 잘못보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와중에.

그것이, 지상을 박살내며 도심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쿠웅-.

쿠웅-.

한걸음 걸을때마다 대지가 울리고, 다른 한걸음 옮길때마다 땅이 흔들리는 채, 다가오는 그것.

마치 영화에서나 볼 것 같은 그것은, 발치에 있는 모든 것을 박살내며 다가오고 있었다.

"꺄아아아아아악!!!"

그제서야, 사람들도 이변을 눈치채고.

그것의 지나가는 길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하던 것들을 모두 멈추고 대피하기 시작하며.

평화롭던 도시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앙-.

이내, 아무런 제지없이 도시 한복판까지 온 그것.

건물들 한복판에 우뚝 솟아, 엄청난 위압감을 뽑내고 있는 그것.

이미 그 거대 병기의 다리가 놓인 곳은, 아스팔트 바닥이 전부 박살나 있었고.

그 앞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고 있었다.

차들의 크락션 울리는 소리, 사람들이 비명을 지른 소리.

가히 도시의 모든 이들이 깨어나, 어떻게든 한시라도 빨리 그것으로부터 도망가려고 하고 있었다.

그렇게, 아직 아무것도 안하고 단순히 앞에 서있을 뿐인데도, 도심을 마비상태로 만든 그것.

가만히 서서, 자신이 일으킨 혼돈의 카오스를 내려다보던 그것에서.

드디어, 무언가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정부와 협회의 개들이여.]

온 도시로 울려퍼지는, 실로 엄청난 데시벨로 나오는 음성.

마치 쇠가 긁히는 듯한, 잡음이 끼인듯한, 그래서 더욱 소름끼치는.

그 음성이, 거대병기에서 울려퍼지고 있었다.

[신인류로 진보하는 우리를 막아선, 구 인류의 잔재들이여.]

[진화와 혁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무능하고 열등한 종속들이여.]

[네놈들의 편협하고 이기적인 사고방식이 기어코, 대한민국의 새 지평선을 열 한은(韓恩)을 무너트렸으니.]

[무언가를 멸망시킨 자들이여, 자신들도 멸망할 각오를 하라.]

거기까지 말한, 누군가는 잠시 숨을 고르는 듯 했고.

이내, 아까보다 훨씬 또렷하고 커다란 음성으로

통보하듯, 선언했다.

[오늘, 정부, 협회를 포함한 서울은]

[여기서, 끝난다.]

[이 도시에 있는 모든 이들은.]

[아무도, 살아나가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 마지막 말과 동시에.

그 거대한 것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앙.

동시에, 팔을 휘둘러 앞에 있는 건물들을 그냥 그대로 박살내버린 그것.

위풍당당하게, 몇십년이 지나도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것만 같던 마천루가 덧없이 반으로 부서지고.

그것을 시작으로, 그 병기는 도시를 마구잡이로 파괴하기 시작했다.

수십년동안 산업화의 시절 쌓아올린 수많은 건물들이.

그것의 손에, 덧없이 붕괴되기 시작했다.

쿠우우우우웅.

마치 아무도 막을 수 없는 재앙처럼, 신화적인 존재처럼 막힘없이, 눈앞에, 주위에 있는 모든 건물을 박살내는 그것.

등장한지 단 몇십분만에, 이미 도시를 반파시킨 그것이 드디어, 도망치던 사람들을 따라잡았다.

"으, 으으...."

"사, 살려주세요...."

"흐아아앙. 엄마아아."

"아, 아."

이내 열심히 도망치던 사람들도.

자신을 가리는 그 그림자에, 자신도 모르게 주저앉아버리고 말았다.

아.

아무리 도망쳐도.

이제는 도망갈 수 없구나.

여기까지구나.

그렇게 공포에 질린 사람들 앞.

단 한걸음만 더 걸으면 수백, 수천명을 한번에 해치울 수 있을 지점에서.

그것이 다시, 마지막으로 말했다.

[잘가라.]

[무능한 협회를 탓하며.]

[지옥으로 가거라, 인간들이여.]

그렇게 그것은, 옆에 있던 빌딩을 마치 무뽑듯 팔로 뜯어버렸고.

이내 외벽이 뜯긴 채 덜렁거리는 그것을,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을 향해 팔을 겨누고.

이내 사람들이 체념하여, 눈을 감은 순간.

갑자기 그 거대병기가 움찔하기 시작했다.

"....?"

체념하고 곧 다가올 죽음을 기다리며 눈을 감고 있던 사람들이,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 눈을 다시 떴을때.

무언가 움찔움찔 하며, 여전히 팔을 올린 채 정지상태로 있는 그것.

그러더니, 갑자기 그 병기로부터 정체불명의 비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뭐냐! 넌! 으윽, 으아아아악!! 연구, 원. 으. 윽.]

....

잡음.

뭔가가 깨지고, 누군가 소리를 지르고 박살나는 듯한 소음.

그러더니 들리는, 퍽. 퍽. 무언가가 찍히는 소리.

그리고 다시, 정적.

"....."

갑자기 고요해진 도심.

아까까지만 해도 사방을 울리던 병기의 스피커가 멈추자, 거짓말처럼 조용해진 도시.

간헐적으로 사람들의 울음소리만 들리는 그곳에서, 거대한 병기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건물을 휘두르는 자세 그대로 멈춰있었다.

마치, 조각상처럼.

***

"뚝배기!"

"으아아아아악!"

나는 렌치로 조종석에 앉아있던 놈을 퍽 퍽 내리쳤다.

맥없이 나가 떨어지는 놈.

"저자식 뭐야!!!"

"죽여!!!"

근처에 있던 연구원들이 나에게 덤벼들자.

나는 내 뒤에있던 최세희에게 소리쳤다.

"세희츄! 100만볼트!!!"

"옛다. 얍."

그렇게 최세희가 간단하게 전기를 쏴주자.

몸을 부르르 떨더니 죄다 쓰러져버리는 한은그룹의 똘마니들.

그리고 그 끝에, 홀로 넓은 조종석 끄트머리 벽쪽에 몸을 기대며 뒷걸음칠하는 김선우 박사가 있었다.

"김선우 박사님 안녕하세요? 처음뵙겠습니다, 에고스틱입니다."

나는 싱긋 웃으며 그에게 인사했다.

김선우. 1페이즈의 최종 보스이자 서은이와 수빈씨의 원수이기도 한 그.

처음으로 실물로 본 그는.

내 생각보다도 더 비루하고, 더 한심해 보였다.

"네, 네놈! 어째서 이런 짓을 하는거냐! 네놈은 빌런 아니였냐?"

"저요? 저 빌런 맞죠. 집에서 잘 쉬고있는데 갑자기 멋진 로봇이 나타났는데, 이걸 안 뺏으면 그게 빌런입니까?"

"너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줄 아느냐! 이 멍청한 자식아, 너가 새 인류의 진화를 막고있는거라고!"

"하하. 대체 서울 시민들 학살하는게 진화랑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네요. 그리고 아재."

나는 거기까지 말하고 하하 웃다가, 목소리를 낮추고 입을 열었다.

"지랄하지 말고 그만 닥쳐, 이 노망난 미친새끼야."

"뭐라고! 이노오오옴!"

"세희야. 쏴."

"이응."

눈깔이 뒤집혀가지고 달려드는 김선우를 향해, 뒤에 있던 세희가 전기한방 쏘자 그는 그대로 축 늘어졌다.

땅바닥에 쓰러진 놈을 발로 걷어찬 뒤, 나는 그대로 놈들을 우리 에고-지하기지에 감금해뒀다.

그렇게, 조종석은 텅 비고. 나랑 최세희 둘만 담게 되었다.

"후흐흐... 하하하하하하!!!!"

그리고 나는 나도 모르게 미친놈처럼 웃었다.

"하하하하하!!!!"

"야... 왜 그래?"

걱정스러운 눈길로 나를 바라보는 최세희의 시선을 무시한 채, 나는 한참을 미친듯 웃었다.

아니 웃기잖아.

이렇게 허무하게, 1페이즈의 최종 보스이자 대한민국을 무정부상태로 만드는 트리거, 수만명을 죽이고 스타더스의 인생을 본격적으로 피폐물로 만드는 이게.

이렇게 쉽게, 진압됐다는게.

"하하...."

너무 웃어서 나온 눈물을 살짝 닦은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깔끔한 하얀 벽면에, 몆십개의 전광판으로 뒤덮인 벽면. 그리고 밖이 보이는 조종석.

떨고 있는 사람들 수천명이 내려다보이는 이곳에서, 나는 조용히 조종대로 다가갔다.

한은그룹 놈들이 자신의 모든 것을 갈아넣어 만든, 그들 최후의 역작.

제지가 없는 한 도시 하나를 완전히 파괴할 수 있으며, 어지간한 충격은 전부 다 버티는, 그야말로 첨단 과학의 상징.

실로 사나이의 가슴을 울리는 이 거대 병기.

"자, 한번 조작해볼까?"

할께 많다. 일단 이거 끌고 스타더스와 싸울 예정인건 당연지사. 오랜만에 우리 별먼지 성장 좀 빡세게 시켜보자고.

일단 그전에, 저기서 오들오들 떨고있는 국민들이나 안심시켜 주도록 할까.

"아, 아."

나는 마이크를 키고 입을 열었다.

쇼를 시작해보자고.

***

그렇게.

시민들을 향해 공격하기 전, 갑작스럽게 멈춘 거대병기가.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다시 움직였다.

그러더니, 갑자기 다시 흘러나오는 목소리.

[아, 아.]

아까와는 다른, 좀 더 밝고 경쾌한 목소리에, 순간적으로 의아해진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미쳐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그 거대병기로부터 계속해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인사올립니다. 에고스틱입니다!]

그래.

갑작스럽게, 정말 갑작스럽게. 아무도 예상하지도 못 했던 이름이 갑자기 들려왔다.

사람들이 혼란에 빠진 사이, 계속해서 들려오는 그의 말.

[한은그룹 애들이 멋진걸 만들었더라고요? 아무튼....]

어딘가 살짝 웃음기까지 섞인 채, 그는 말을 이었다.

[그래서 제가 뺏었습니다.]

[이건 이제 제 겁니다.]

그건 진짜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말이었다.

EP.82 리얼스틸

한국 초상 능력자 협회, 줄여서 히어로 협회.

서울에 있는 그곳의 작전통제실은, 현재 초상집 분위기였다.

"그래. 그래서 미친 한은그룹 새끼들이 만든 그것은, 지금 어디있지?"

"현재 수도권 외곽 폐공장 지대에 구조물들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그쪽에 있는 인원들은 대피해 아직까지 인명피해는 없습니다만..."

"....도심에 시민들의 대피는, 어느정도 진행됐나."

"외곽쪽은 거의 다 빠져나왔습니다만, 현재 저 병기의 진입속도가 빨라 곧 따라잡을 것 같습니다. B급 이하 히어로들이 남은 이들을 도왔기에, 아직까지 인명피해는 없습니다만.... 언제까지일지는..."

"....하아. 그래. 스타더스는. 어디라고 하나."

"지금 전속력으로 날아가고 있다고 합니다만, 아무래도 여기서부터 거리가 거리인지라 시간이 좀 걸릴거 같습니다."

"....알겠네."

협회장은 찹착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거대한, 마치 문어와도 같이 생긴 로봇이 도심 외곽을 마구 박살내며 전진하는 모습.

저것을 말릴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어보였다.

...아니. 딱 하나 있기는 했다.

"...'그것'의 준비는 아직인가?"

".....계속 세팅중이라고는 합니다만, 협회장님. 그걸 쏘면 근처에 있는 도시들과 시민들이 전부 휘말릴 수 있습니다."

"어차피 결정은 내가 아닌 대통령님이 하시니, 나에게 말해봤자 소용없다. 미사일은 정부권한 이라는걸 잊지말게."

"....알겠습니다."

"...그래도 하지만. 어쩌면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해 어느정도의 희생은 감수해야할 수도 있겠지."

"....."

"....스타더스가 저걸 쓰러트릴 수만 있다면, 그래. 참 좋겠지만... 승률은 얼마정도 될거같나?"

"현재의 풀 파워로 상대하면 어느정도 버틸 수 있을지 모르나, 지금처럼 도시 한복판에서 싸우면 다른 사람들이 말려들지 않게 힘이 제한돼서... 힘들 것 같습니다."

"젠장. 역시 그렇겠지. 아이시클은 연락이 되나?"

"현재 연락이 끊겼습니다. 아마 연락은 받을 수 없는 상황이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기랄. 딱봐도 그 회장놈이 위험하다고 숨겨버린거겠지. 도움이 안되는 구만."

협회장은 착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는 거의 사람들이 모여있는 도심 한복판까지 다가온 거대병기.

사람들을 습격하기 직전인 그것의 모습을 보면서도, 협회의 이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다만 깊은 절망감을 느끼며, 무력하게 앉아만 있는 그들.

그렇게 모든 희망은 사라지고.

이제 대학살이 펼쳐지기, 바로 직전.

갑자기, 그것이 작동을 멈추었다.

외마디 비명소리만을 내뿜고.

"....?"

협회 안 모든 직원들이 갑작스러운 사태에, 모두 정신을 못차리고 있을때.

시간이 조금 지난 후, 갑작스럽게 거대병기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

그것은, 아까까지와는 다르게 너무 밝았고, 너무 경쾌한 한마디였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인사올립니다. 에고스틱입니다!]

"에고스틱...?"

협회안 직원들의 머리에 버퍼링이 걸렸다.

대체 왜 쟤가 저기서 나와?

갑작스러운 사태에 의문을 느낄 때쯤, 계속해서 이어지는 그의 말.

마치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당연한 행동이였다는 듯.

거대병기로부터, 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한은그룹 애들이 멋진걸 만들었더라고요? 아무튼.... 그래서. 제가 뺏었습니다.]

[이건 이제 제 겁니다.]

"와."

그렇게 누가 했는지 모를 작은 탄성만이, 적막한 협회를 가득 채울 뿐이었다.

***

도심의 거리에 나와있는 수천명의 사람들을 가리는 그림자의 모습은, 실로 장관이었다.

그야말로 보는 것만으로도 위압감을 느끼게 하는, 압도적인 크기의 병기로 인해 생긴 그림자.

그리고 그, 방금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에게 건물을 들고 흔들며 종말이네 뭐네 하던 그, 공포의 상징은.

팔을 돌리고 다리를 움직이며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이거 좀 재밌네요! 하하하하하하!]

엄청난 음량으로 그 기병에서 뿜어져나오는, 경쾌한 에고스틱의 목소리.

이제는 조작이 익숙해졌는지, 자유자재로 컨트롤되고 있는 병기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자신들의 머리 위로 거대 병기가 그러고 있는걸 멍하니 지켜보는 사람들.

그들의 시선을 이제야 눈치챈듯, 살짝 기계의 머리를 아래부분으로 숙인 에고스틱은, 다시 입을 열어 사람들에게 통보했다.

[거, 여러분들. 거기서 뭐하십니까?]

[구경꾼은 필요 없으니, 그만 가주실래요? 훠이, 훠이.]

마치 날파리를 내쫓듯, 손을 휘휘 내저으며, 아무 관심이 없다는듯, 시민들보고 가라고. 정확히는 순순히 도망치라고- 하는 그.

그제야 정신차리기 시작한 사람들이, 하나 둘 몸을 일으켜 서둘러 그 병기로부터 도망갔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지켜보던 그것에서 다시 말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건 그렇고.]

[모처럼 멋진 로봇을 얻었는데, 이렇게 가만히 있는건 심심하네요.]

그러더니 살짝 섞이는 농담처럼 과장되게 나오는 말하는 그.

[막 심심해서 도시를 파괴하고 싶어지네요! 으악! 거대병기를 타니 파괴충동이!]

[그러니.]

거기까지 말한 그는.

마치 이게 본론이라는 듯.

살짝 웃음기가 섞인 목소리로.

입을 열고, 말했다.

[스타더스씨. 이쪽으로 와주실래요?]

그것은 참으로 오랜만에 입에서 나온, 스타더스를 부르는 말이었다.

그리고.

"하."

그리고 그런 그의 말에.

빌딩에 막 도착해 그런 그의 말을 들은 스타더스는, 자신도 모르게 웃고있었다.

***

신하루.

그녀는 이런 갑작스러운 상황이 일어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갑자기, 서울 한쪽 편에서 갑작스럽게 등장한 거대한 병기.

손짓, 발걸음 하나로 건물들을 붕괴시키는 그것을 보며, 그녀는 이를 악물고 날았다.

대체 어째서, 이런 재앙은 늘 이렇게 갑작스럽게 일어난다는 말인가.

예상치 못하게 등장한 그 병기를 쓰러트리기 위해 스타더스는 날았다. 전속력으로, 자신의 한계를 쥐어짜가며, 날아갔다.

너무 늦으면,어떡하지.

그런 생각 하나만을 계속해서 하며.

그렇게 얼마나 날았을까.

그리고 그녀가, 거의, 진짜 거의. 조금만 더 가면 도달할 수 있을 때쯤.

소식을 듣기 위해 꽂아둔 그녀의 귀에 있는 이어폰으로부터, 음성이 흘러나왔다.

[속보입니다! 현재 거대병기가 도심 코앞까지 도착했습니다! 건물을 뽑아 사람들에게 던지려하고 있습니다! 아아, 어떻게 이런일이... 현장, 연결하겠습니다...]

앵커의 떨리는 말을 끝으로, 이어폰에서 들려오는 낮은 기계음의 음성. 아니. 날아가는 그녀의 귀에 저 멀리서 직접 들어오는 소름끼치는 기계음.

[잘가라.]

[무능한 협회를 탓하며.]

[지옥으로 가거라, 인간들이여.]

거기까지 들은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끝내, 이렇게 돼버리고 마는건가.

자신은 늦은건가.

그렇게 그녀가, 참담한 심정으로 향할때.

갑자기.

이변이, 일어났다.

[으아악!]

갑자기 그 로봇으로부터 들려오는 비명소리.

[어라? 여러분, 갑자기 거대병기가 멈추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이게 무슨 일인가요!]

갑작스러운 상황에 앵커도 당황하며 소식을 전했고.

잠시뒤,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아까와는 달리 훨씬 밝은 목소리.

그리고 그건.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인사올립니다. 에고스틱입니다!]

그녀의 숙적, 아치에너미.

[이게 무슨일인가요! 갑작스럽게 그것에서 에고스틱이 튀어나왔습니다!]

"...에고스틱?"

에고스틱이었다.

***

거의 현장에 도착한 그녀는, 이제 이어폰을 껐다.

아까 무언가의 사태로 거대병기가 잠시 움직임을 멈춘동안,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한계를 돌파해 날아왔기에.

끝내, 거대병기가 한눈에 보이는 옥상 위에 안착한 그녀가 본 것은.

죽기 직전이었던 사람들을 귀찮아서라는 듯 물리치는, 그러니까 한마디로 순순히 보내주는 에고스틱의 모습과.

[스타더스씨, 이쪽으로 와주실래요?]

거대병기에서 들려오는, 웃으면서 그녀를 부르는 목소리.

그리고 그걸 본 그녀는.

"하하...."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며 웃음이 나오는걸 느꼈다.

건물의 옥상 위.

바람이 부는 곳에서, 자신의 금발머리를 휘날리며.

옥상위에 선 채, 아마도 에고스틱이 타고 있을, 아까까지만 해도 모두를 학살하려고 했던 그 병기를 보며.

그녀는 떠올렸다.

그래, 이런 상황을 어디에서 한번 겪었던 적이 있었다.

지금처럼 곤란한 상황에서, 누군가가 나와서 모든걸 처리해줬던 기억이.

저번과도 같은 옥상에서, 마치 지금처럼 들려왔던 목소리.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에고스틱입니다!'

그래.

악어 괴한이 축제에서 튀어나와, 테러를 일으키고.

사람들이 죽기 일보직전, 그녀가 신상 노출도 각오하고 나서려 했을때.

이상한 이유를 대며, 대신 나와 문제를 해결해줬던 한 사람.

....그리고 지금 여기.

사람들 수천명. 아니, 어쩌면 수만명 수십만명이 죽게 생긴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어디선가 튀어나와, 그 모든 상황을 해결하고.

마치 그냥 귀찮아서라는 듯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구해내여 보내주는 그의 모습을 보며.

스타더스는, 신하루는.

어느새인가 깨달아버렸다.

"하....."

자신은, 이미 에고스틱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뛰었고.

이내 모든 상황을 진압한 뒤, 의도한게 아니라는 듯 무심히 사람들을 구해주고, 마치 자연스러운 일이라는양 자신을 부르는 그의 모습에.

그녀도 모르게. 웃음이 튀어나왔다는걸.

"그래..."

그녀는 전신을 감싸는 안도감을 느끼며.

이내 에고스틱쪽을 향해, 웃으면서 중얼거렸다.

"일단, 너가 나를 불렀으니."

"내가, 가야겠지."

그렇게 그녀는, 아무런 고민없이 그가 있는 곳을 향해 땅을 박차고 날아갔다.

그리고 날아가는 그때까지도.

그녀의 입꼬리는 살짝, 올라가 있었다.

***

"오빠. 앞에 지금 드디어 스타더스 오고 있어요!"

"그래? 그럼 우리 조금 더 뒤로가자. 여기 근처에서 싸우면 사람들 다 죽겠다 야."

"야. 이제 막 치고박고 싸우는거야? 재밌겠네."

"다인씨. 조심히 조작하세요. 그러다 넘어지면 큰일나요."

"맞아요. 다인오빠."

"오케이 오케이."

거대병기의 머리쪽, 조종실.

스타더스랑 좀만 투닥거리다 돌아갈거라는 내말에, 그럼 자기네들도 따라오겠다고 우겨서 다같이 온 일행들. 그런 그들의 앞에서, 나는 이 거대병기를 조작하고 있었다.

내 손길대로 움직이는 이 탄탄한 강철의 골격을 봐라. 사나이의 로망이 이거지. 끝내주는 기분이다. 정말 말 그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을것만 같은 기분.

그리고 그런 나는, 어느새 내쪽으로 가까이 온 스타더스를 보며, 나는 나도 모르게 씨익 웃었다.

"하루야. 오늘 한번 파워업 좀 제대로 해보자."

이런 거대병기랑 깔끔하게 다른 방해요소 없이 1대1로 맞다이 뜰 수 있는 기회 자주오는거 아니다.

오늘 한번 능력, 빡시게 한 2배정도 강화시키고 가자고.

나는 웃으면서 손을 풀고, 본격적으로 조작대를 움직였다.

내 계획은, 스타더스랑 좀 투닥거리며 논 다음에, 대충 어느정도 완벽하게 성장했다 싶으면 빠르게 도주하는 것.

좋아. 이번에는 정말 오랜만에 계획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풀려나가고 있다.

오늘이야말로 몸 성히 한번 집에 돌아가보자고!

***

그리고 그시각.

대통령 집무실.

어두컴컴한 그곳에서, 한 요원이 말을 이었다.

"대통령님. 현재 스텔스 미사일 이 발사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그녀의 말이 끝나자, 옆에 있는 다른 요원이 덧붙여, 입을 열었다.

"방금 협회쪽에서 온 연락입니다만. 사태가 어느정도 안정되어서 미사일은 발사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추가 인명피해가 일어날 가능성은 낮다고 합니다."

"..."

조용히 그들의 말을 들으며, 그림자에 몸을 감추고 있던 대통령은.

아무말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미사일 발사버튼을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흐음."

EP.83 최강자들의 전투

수도권 외곽 지역.

폐허가 된 잔해들만 가득한, 다른 사람들은 모두 대피한 이곳에서.

거대한 철갑으로 이루어진 병기가, 위풍당당하게 서있었다.

엎어진 반구형태로 이루어진 머리부분과, 길게 늘어트려진 두 팔. 굉장히 크고 높은 몸통과 다리까지.

척 보기에도 굉장히 위험해보이는, 거대한 병기.

그리고, 그 앞에.

그것과 비교하면 잘 보이지도 않는, 단신의 사람이 한명 공중에 서있었다.

자신보다 거의 수십, 수백배는 더 큰 병기를 한치의 두려움도 없다는 듯, 긴 금발머리를 휘날리며 바로보고 있는 사람은 바로 그녀, 스타더스

.

그리고 그 거대병기의 조종석에서 그녀를 마주하고 있는건 바로 나, 에고스틱이였다.

"아이고. 여기가 완전 폐허가 되어버렸다. 그죠?"

나는 마이크를 향해 실실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자, 거대병기 어딘가에 붙어있는 스피커에서, 쩌렁쩌렁 나가는 내 목소리.

내 코앞에 있는 스타더스의 귀에 다이렉트로 꽂힐만한 데시벨이다.

"저도 이거를 모니까, 막 이대로 서울로 진격해버리고 싶고 그런 충동이 드는데..."

나는 그렇게 말하며 씨익 웃었다.

"뭐. 제가 그렇게 하는지 안하는지는 스타더스, 당신에게 달려있습니다. 여기서 저와 싸워서 이기신다면, 제가 순순히 물러나죠. 그러나 제가 이기면? 그대로 서울 불바다를 목표로 달리겠습니다."

"그러니."

나는 거기까지 말하고, 기계를 조작해 그녀를 향해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입을 열었다.

"먼저 들어와보시죠."

그리고 내가 그렇게 말을 끝낸 순간, 이미 그녀는 금발머리를 휘날리며 내쪽을 향해 주먹을 쥐고 날아오고 있었다.

뭔가 웃고있는거 같은데. 기분 탓이겠지?

어쨌든, 드디어 내가 오랜 세월동안 격투게임으로 다져온 실력을 뽐낼때가 됐다.

나는 본격적으로 조종대에 손을 갖다대며, 내 뒤에 있는 일행들에게 외쳤다.

"다들 꽉 잡아! 지금부터 본격적인 싸움 들어간다!"

그리고서는, 나도 기계를 조작해, 그것이 주먹을 쥐게 만들었다.

자, 본격적인 싸움을 시작해보자.

***

스타더스.

그녀는 자신을 압도하는 거대한 로봇을 앞에 두고도, 전혀 두려움을 느끼지 못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 위압감을 느끼기는 했다. 자신보다 몇배나 더 큰데, 당연히 좀 괜히 압박되고 그런게 있다.

그러나.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자신을 부른 에고스틱 때문일까.

그와 싸워서 이기면 서울을 파괴하지 않겠다는 말이, 마치 그러는걸 보고 싶지 않다면 꼭 이기라고 자신한테 동기부여를 하는 것 같아서일까.

아니면 이 거대한 기계의 앞에 서서도 별로 두렵지 않은건.

이전에 지금처럼 극복하지 못할것만 같은 상황에서 그녀가 좌절하고 있을 때.

'당신은 할 수 있습니다.'

라고 말했었던, 그의 목소리가 떠올라서일까.

"....그래."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웃으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어디한번, 붙어보자.

그렇게 그녀는 주먹을 쥐어들고 거대한 로봇을 향해 날아갔고.

그 로봇도, 주먹을 뻗기 시작하며.

전투의 서막이 올랐다.

***

"네! 말씀드리는 순간! 스타더스와 에고스틱이 탄 거대병기가 격돌했습니다! 와, 카메라가 이렇게 멀리있는데도 충격파가 여기까지 전달되고 있습니다. 스타더스가 현재 측면을 향해 공격하는걸, 에고스틱이 막고 있는데요. 아, 에고스틱의 반격! 거대한 팔이 스타더스를 향해 날아옵니다! 스타더스, 아슬아슬하게 피합니다!"

[에고스틱 스타더스 싸움수준 ㄹㅇ실화냐? 진짜 세계관 최강자들의 싸움이다. 그 찐따같던 스타더스가 맞냐? 가슴이 웅장해진다...]

[스타더스 요리조리 잘피하네ㅋㅋㅋㅋ]

[아니 스타더스가 저 큰걸 어떻게 상대함? 짜고치는 고스톱 아니냐?]

[스타더스 떨어지는 비행기도 든 애인데ㅋㅋㅋ 너무하네]

[걍 이번 전투도 경력으로 추가될듯ㅋㅋㅋㅋㅋ 거대병기 탄 빌런이랑 전투ㄷ]

[심지어 막상막하로 싸우는중ㄷㄷ]

[이번에야말로 스타더스 S급으로 승격 가냐?????]

[아니 망고스틱 저거 로봇 막 뺏은거 아님? 왜저렇게 조작 잘하는데ㅋㅋㅋㅋ]

[우리 망고는 다재다능하다고ㅋㄱㅋㅋㅋ]

[ㄹㅇ에고스틱도 솔직히 이정도면 S급 상향 가자. 솔직히 이때까지 보여준것도 웬만한 S급들 다 뺨치는데]

[ㄹㅇ이번에 저 한은그룹 미친새끼들 격파했는데 ㄹㅇ 빨리 S급 히어로로 승격시켜줘야지]

[나 망고단 아닌데 동의한다]

[팩트)팬카페에서 좌표찍어서 여기 망고단밖에 없다]

[아닌데여. 별먼지단도 있는데ㅡ.ㅡ]

[자기가 에고스틱이 방송 안틀어줘서 서운한 망고단이면 개추ㅋㅋㅋㅋㅋ]

[ㄹㅇ왜 뉴스 채팅방에서 이러고 있어야하냐고~ 에고스트림 사이트 왜 이름값 못하고 스트리밍 안하는데]

[근데 오늘따라 화력 좀 적다? 에고스틱 공식방송이 아니라 그런가?]

[ㄴ지금 아까 저거 때문에 서울 남쪽 재난경보떠서 다 피난가느라 빠져서 그런듯]

[아닌데? 나 지금 가족들이랑 도망친 다음에 길바닥에서 이 방송 보고있는데?]

[미친놈ㅋㅋㅋㅋ]

[근데 이와중에 스타더스 ㄹㅇ잘싸우네ㅋㅋㅋㅋㅋ]

***

처음으로 전투가 시작된 후,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그들은, 아직도 싸우고 있었다.

[하하하하! 스타더스씨, 고작 그것밖에 안되시는 겁니까! 좀 더 잘해보시지요!]

거대 로봇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

스타더스는 그걸 들으며, 이를 악물었다.

꽤 오래 지속된 전투로, 지친 나머지 숨을 헐떡거리고 있는 스타더스.

땀을 흘리며 간신히 그의 공격을 피하고 있는 그녀의 상태도 별로 좋지 않아보였지만, 그만큼 그 로봇의 상태도 좋지 않았다.

처음에 말끔했던 외관과는 다르게, 계속된 그녀의 공격으로 이제는 어디선가 연기도 나오고있는 모습.

물론 이제는 지쳐 날아다니는 것만해도 힘든 스타더스보다는 훨씬 나았지만, 그래도 확실히 타격이 있어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녀는 계속해서 이를 악물었다.

그래. 솔직히 말해서.

지금 그녀의 실력으로는, 이기기 힘들어보였다.

애초에 체급 차이가 너무 컸다.

저것은 자신을 한방만 때리면 되지만, 자신은 저것을 전방위적으로 두들겨 패야한다.

또한 놈이 휘두르는 주먹은 강철로 이루어져있는 만큼, 한대 맞을때마다 충격이 꽤나 컸다. 거의 몸이 울리는 느낌.

그녀의 능력이 이전에 비해 많이 강해졌다고 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역부족.

[벌써 지치신겁니까? 이게 다란 말입니까!!!]

그의 목소리와 함께 또 날아오는 병기의 주먹.

"크윽."

그녀는 겨우겨우 막아서며 신음을 흘렸다.

이제는 몸도 지쳐, 더이상 힘도 들어가지 않는 상황.

계속해서 날아다니는 것마저 한계에 몰린.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대로 그냥 희망을 꺾을 정도로 절망적인 상황.

그러나.

그녀는 아직까지도, 포기하지 않았다.

신하루.

그녀가 이렇게 절망적인 상황을 맞닥뜨린게, 이번이 처음이던가?

아니다. 전에도 그녀가 좌절했던적이 있었지.

자신은 이길 수 없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당신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이겨내지 않았던가.

지쳐서 숨을 헐떡이던 그녀는, 다시 눈을 불태웠다.

그래, 여기서 이대로 포기하는건 말이 안된다.

그녀는 다시 숨을 들이마신 뒤, 그 거대병기를 향해 달려나갔다.

그녀는 그의 기대대로 기필코, 그를 쓰러트리고 말것이다.

그리고.

[오호? 바로 그겁니다! 이렇게 나와야 제가 싸울맛이 나죠!]

[오빠, 좀 똑바로 조작해요!]

[야. 조심해!]

"...."

기계에서 흘러나오는, 그의 말 뒤로 작게 흘러나오는 어떤 여자들의 목소리.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이를 악문채, 주먹을 쥐었다.

저 거대병기를 쓰러트릴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기필코 쓰러트린 뒤, 그의 옆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 그녀들이 대체 누구인지도 알아내고 말겠다.

그렇게 그녀는, 어디서 솟아난건지 모르겠는 힘으로 다시 거대병기에게 달려들었다.

***

"그래. 이거지!"

나는 나도 모르게 그렇게 소리쳤다.

점점 지쳐가더니, 다시금 각오를 되새겼는지 젖먹던 힘으로 나에게 덤벼드는 스타더스.

내 과격한 조작에 뒤에있는 여성진들의 불만이 터져나왔지만,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지금이 스타더스를 폭발적으로 성장 시킬 수 있는 기회라고!

오늘부터 앞으로 미친듯이 강한 빌런들이 쏟아져 나올텐데, 이번에 많이 강해져야 그녀가 앞으로 편할거다.

특히 이번이 성장할 제일 좋은 기회이기도 하고.

원래 운동도, 계속해서 너무 너무 지쳐서 손가락 하나 못 까딱하겠을때 드는 덤벨이 효과가 좋듯이.

그녀도, 너무너무 힘든 상태에서 그래도 계속해서 싸울 때, 능력이 한계를 뚫고 성장한다.

즉, 이번이 아주 그냥 쭉쭉 세지기 좋은 때란 말씀.

"하하하! 더! 더 공격해 보세요!!!!"

나는 광기의 젖은 목소리로 스타더스를 상대하면서도, 머리속으론 뇌를 핑핑 돌렸다.

이정도면 대략 한 몇시간뒤면 힘이 많이 세졌을때니까.

대충 실수인척 몇방 맞아준 다음에, 넘어져서 으악 나를 이기다니! 이런 다음에 도망가면 되겠지?

좋다. 계획은 완벽하다!

흑. 이렇게 계획대로 술술 잘 풀려가는게 얼마만이냐 .

감동이에요.

***

히어로 협회.

작전통제실.

"잘한다! 그래, 저기서 바로 어퍼컷! 캬 깔끔하네. 하루가 확실히 센스가 좋아. 음음."

그곳의 벽면에 붙어있는 대형 모니터로, 팝콘을 씹으며 스타더스와 에고스틱의 전투를 지켜보는 협회장.

그런 그에게, 직원이 헐레벌떡 다가왔다.

"협회장님!"

"왜그래?"

"대통령, 대통령이....!"

그리고 이어지는 직원의 말은, 협회장마저 얼굴을 굳히게 하는데 성공했다.

"저, 저 현장을 향해, 미사일을 쏘셨다고 합니다!"

"하..."

거기까지 들은 협회장은, 자기도 모르게 손에 들린 팝콘통을 놓쳐 떨어트렸고.

이내 그에게선, 낮은 중얼거림이 흘러나올 뿐이었다.

"...좆됐군."

EP.84 인정

스타더스가 거대병기를 상대한지,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났다.

".....하아. 하아."

계속되는 전투 도중, 살짝 숨을 고르기 위해 공격을 멈추고 그것으로부터 약간 떨어진 그녀.

다행히 쉴 틈은 주겠다는건지, 그가 쫓아와 공격한다던가 그러지는 않았다.

그 덕에, 그녀는 이렇게 잠시 숨을 내쉬며 쉴 수 있었다.

"...후우."

허공에서 땀을 훔치고있는 그녀의 모습은, 굉장히 지쳐보였다.

입고있던 슈트는 안이 보일정도로 딱 달라붙었고.

그녀의 상징인 금발의 머리카락도 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려지고 있는 모습.

그러한 상황에서 그녀는, 객관적으로 자신을 판단해보았다.

현재 그녀의 상태는 빈말로도 좋지 못했다.

이렇게 약간의 휴식시간을 제외하고는, 자신과 체급차이가 몇배나 나는 병기를 상대로 끊임없이 날아다니며 몇시간이고 전투를 치르다보니... 사실상, 지금 이렇게 서있는것도 대단할 지경이었다.

이미 몸 자체를 너무 혹사해, 언제 쓰러지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이렇게, 주먹 하나 쥐어서 날리기도 힘든 극한의 상황에서.

그녀는 역설적으로, 자신의 힘이 점차 강해지는걸 느꼈다.

"..."

힘이 빠진 상태로, 기존에 컨디션이 좋은 상태의 출력을 내기 위해.

무리해서, 힘을 끌어다 쓰려고 하다 보니까.

자신도 모르게 능력이 점점, 한계를 뚫는 느낌.

운동선수가 모래 주머니를 매고 달리기를 하여 실력을 키우듯.

한계에 내몰린 상황에서 평소처럼 힘을 발휘하려고 이를 악물고 노력할 수록, 그녀 안이 무언가 꿈틀하는 느낌.

한동안 정체되어있던 그녀의 힘이, 다시금 점차 성장하는 느낌이였다.

조금만, 조금만 더 큰 자극이 있으면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거같은 직감.

그녀는 그런 생각을 하며, 자신도 모르게 에고스틱이 타고 있을 거대병기의 조종석쪽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그는, 자신의 능력이 이러한 방식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걸 알고 이런일을 벌인걸까?

...어쩌면, 이걸 위해서?

'당신은 할 수 있습니다.'

귓가에 다시 재생되는 그의 목소리를 생각하며,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그렇다해도, 거기까지는 아니겠지.

아마도...

충분히 쉰 그녀는, 다시 한번 숨을 들이마쉰 뒤 전투를 재개할 준비를 했다.

그래. 그가 의도한 것이든 아니든, 힘을 성장시킬 수 있는건 굉장히 좋은 기회다. 능력이 더욱 강할수록, 빌런들로부터 시민들을 지킬 수 있을 가능성이 더욱 커질테니.

일단은, 그를 이기는거에 집중하자.

그렇게 다짐하며, 그녀가 다시 발을 내닫을 때.

그녀가 귀에 꽂힌 걸 잊고있던 이어폰에서, 갑작스럽게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스타더스. 스타더스, 들리나?]

"협회장님..?"

다시 그 병기가 있던 곳으로 향하고 있던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발걺음을 멈칫했다.

지금 한창 싸우느라 바쁜데, 왜 연락을 하는거지.

그런 그녀의 의문에 답하듯, 이어폰 너머로 협회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작전 변경일세. 곧 철수할 준비를 하게.]

"....네?"

협회장의 말에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 한창 그녀의 한계를 돌파해가며 잘 싸우고 있는데, 철수? 전세가 딱히 불리한것도 아닌데?

그녀가 자기도 모르게 따져물으려고 할때 쯤, 협회장이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대통령이 그곳을 향해 GOAB를 쐈네. 곧 그 거대병기로 떨어질 예정이니, 타이밍봐서 도망치게.]

"...뭐를 쐈다고요?"

[...GOAB-3. 스텔스 유도 미사일일세. 주변지역을 거의 반파시키는, 현시점에서 가장 위력이 가장 강한 미사일일세. 지금 이미 그곳으로 날아가고 있다네.]

그녀는 그걸 들은 순간, 자신도 모르게 머리가 새하얘졌다. 미사일을 쐈다고? 여기로?

아니 근데, 잠깐.

"...애초에, 미사일로 저걸 잡을 수 있나요?"

[그래. 비밀리에 개발하던거다. 위력이 너무 강해서 만약 저게 도심 한복판에 있다면 도시가 날아가서 못쐈겠지만, 에고스틱이 외곽으로 빠진 덕분에 쏠 수 있었다고 하네.]

"지금 미친거에요? 아무리 그래도 그런걸 여기에다가 쏘면 어떡해요!"

[나한테 따져봤자 내가 뭐라 하겠나. 대통령의 독단이야. 이번 기회에 저 국가를 어지럽히는 간악한 빌런을 확실하게 제거하겠다고 말하더군. 정부 신뢰도 키우고.]

거기까지 들으며 흥분했던 스타더스는, 속을 가라앉히고 다시 이성을 되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 A급 빌런 . 명분은 확실하다. 아마 지금과도 같은 기회는 없겠지. 특히 그가 저 병기안에 박혀있어서 주위 환경을 파악할 여유도 없는 상황일테니.

"..."

거기까지 들은 스타더스는, 얼굴을 굳혔다.

정부와 협회 모두 진심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저 거대병기와 에고스틱을 동시에 날릴 생각이다.

...그래. 사실, 생포가 불가능한 빌런을 사살해버리는건 드문 일은 아니다.

에고스틱을 포함한 A급 빌런들 상당수가, 이미 즉결 처형 가능 목록에 올라와 있기도 하고.

그러니까

지금 이 자리에서, 에고스틱이 죽는다?

"..."

아니지.

그라면, 미사일이 날아오는걸 알아 차릴거다.

늘 자신보다 한발자국 위에서, 모든걸 안다는듯 내려다보았던 그니까, 당연히 알고 있을거다.

그래. 그러니 아마, 바로 도망치겠지. 순간이동도 있으니까.

그러, 겠지?

[드디어 돌아오셨군요 스타더스씨! 대체 저를 얼마나 기다리게 하실 셈입니까?]

그녀가 조용히 다시 돌아오자, 거대병기로부터 들리는 쩌렁쩌렁한 그의 목소리.

...싸우다말고 히어로가 충분히 휴식하기까지 기다려주는 빌런이라.

"....."

다시금 에고스틱에 대한 복잡미묘한 감상을 품으며, 그녀는 생각했다.

그래.

그라면 분명, 전투 도중에 도망칠거다. 당연히 그러겠지.

그리고, 아직 미사일이 날아오기까지는 시간이 있으니까. 곧 도주할거야.

그런 생각을 하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 그녀는 계속해서 전투를 이어갔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머리속은 복잡했다.

알아차리고 도망치겠지? 그럴꺼야.

이미 알고 있겠지.

[왜 이렇게 전투에 집중을 못하십니까? 페이 어텐션 하세요!]

그리고 그녀가 계속 딴생각을 하며 날아서일까.

그는 자신의 상태가 이상하다는걸 눈치채고는, 집중하라며 일갈했다.

...참 웃기지. 적이 집중하고 있지 않으면 그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좋은게 아닌가?

[스타더스. 이제 곧 미사일이 떨어질 예정이네. 슬슬 도망치게나.]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그녀의 귀에 들리는 협회장의 목소리.

그런 그의 말을 듣고는, 그녀는 다시 한번 에고스틱을 바라보았다.

[하하하하하하하!]

거대한 팔을 붕붕 휘두르며, 여전히 경계심이라고는 전혀 없는 모습.

아무리 봐도 자기 머리 위로 지금 미사일이 떨어지고 있다는걸 알고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

그렇다면. 지금 그녀가 가만히만 있으면 그는 이대로 죽는다는 거겠지.

그런 그를 보며, 그녀는 다시금 그에 대해 순간적으로 생각했다.

에고스틱. 그는 확실한 빌런이다. 지금까지 그가 일으켰던 테러들만 해도 여러번이니.

그러니, 정부에서 그를 죽이려고 들어도, 억울할거는 없다. 당연한거다. 위험한 빌런은 죽일 수 있을때 죽여야지.

그러나.

과연 그가, 이 자리에서 이렇게 끝나는게, 맞는가?

그녀는 생각했다.

그의 죽음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그녀는 스스로 그를 부정하지 않고

처음으로 솔직하게

에고스틱, 그에 대하여 떠올려봤다.

에고스틱. 그녀는 처음에 그를 다른 빌런들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을 겁박하며 희열을 느끼고 자신의 유희를 위해 테러를 저지르는, 단순하게 말해서 '나쁜놈'이라고 단정했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일까.

그가 테러를 일으킬때마다 결과적으로 사망자는 나오지 않았다는걸 알았을때?

그가 죽인 빌런들은 전부 위험한 이들이었다는걸 알았을 때?

축제에서, 그가 자신이 나서는걸 막고 대신 나섰을때?

그녀 스스로도 자신을 믿지 않을때, 그녀를 믿는다고 얘기했을 때?

다른 빌런의 테러현장에서, 스스로 히어로라고 속이기까지 하며 나섰을 때?

다리를 붕괴시킨 이유도, 다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였다고 고백했을 때?

언제부터 였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그녀는...

그렇게 그녀는

에고스틱이 타고 있는 거대병기를 상대하며

금발 머리를 휘날리며

그의 죽음을 목전에 둔 상태에서야, 인정했다.

그녀는 언제부터인가.

그가 나쁘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자신도 이유를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를 볼때면, 다른 빌런들에게서 흔하게 느낄 수 있던 악한 마음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때로는, 그가 테러를 일으키는 이유도, 자신을 적대하는 이유도.

다, 그녀가 모르는 다른 숨겨진 이유가 있어서라는 생각이 종종 들었다.

에고스틱은 분명 빌런이다.

분명 빌런인데, 어째서.

그녀는 그를 볼때마다, 속으로 묘한 동질감을 느끼는가.

어는 순간에서부터, 그가 빌런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는가.

그가 일부러, 속마음과는 다르게 저렇게 행동한다고 생각하고 있는가.

그녀는, 이 자리에서, 깨달았다.

자신은 에고스틱을 믿고싶었다는걸. 아니. 사실, 자기도 모르게 이미 믿고있었다는걸.

그는 사실 자신처럼, 다른 사람들을 구하고 싶어하고.

그가 테러를 저지르는 이유도 전부, 다 그래야만 하는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어서가 아닐까.

그녀는 어느 순간에서부터, 에고스틱이 빌런이 아닌 이유를 찾고 있었다.

그렇게 그녀는, 처음으로 그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인정을 하는 순간 결심했다.

에고스틱은, 이대로 죽을 수 없다.

그리고.

'이번에... 하나, 빚지신 겁니다.'

그도 자신을 한번 살려주지 않았던가.

그녀는 그에게, 빚이 하나 있지 않던가.

그래. 그는 이대로 이렇게, 죽어서는 안된다.

저 미사일을, 자신이 막겠다.

잠시 침묵하던 그녀는, 협회를 향해 조용히 속삭였다.

"....죄송합니다."

[응? 스타더스? 스타더스? 뭐야? 야! 신하루!]

그녀는 자신의 귀에 꽂혀있던, 협회와 연결되어있던 이어폰을 다시 꺼버렸다.

그리고 그렇게 그녀의 결심이 내려진 순간.

행동은 빨랐다.

그녀는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미사일이 날아오고 있는 쪽으로.

***

[스타더스 지금 뭐함?]

[뭐임 도망치는건가???]

[도망친다기에는 옆도 아니고 위로 올라가고 있는데? 뭐하는거지??]

[우리 별먼지가 미쳤어요!!!]

[무슨 로켓처럼 치솟네ㄷㄷ]

"쟤 지금 뭐하냐?"

나는 나도 모르게 황당함에 소리쳤다.

아니, 왜 싸우다말고 갑자기 하늘로 솟구치고 난리야? 개꿀잼 몰카인가?

"오빠가 하도 스트레스 줘가지고, 폭발해서 날아오르는거 아니에요?"

"...그건 아닌거 같은데."

나는 조종석에서 고개를 올려, 계속해서 하늘로 날아오르는 스타더스를 바라보았다.

아니, 진짜로.

대체 무슨 일이야??

EP.85 선동과 날조

"크윽..."

창공 위를 가로질러 비행하며, 신하루는 신음을 흘렸다.

떨어지는 미사일을 그녀가 막을 수 있을지, 이렇게 힘이 부족한 상태로 그렇게 할 수 있을지.

그녀는 솔직히 말해서, 확신 할 수는 없었다.

"....."

그녀가 날아오르자 마자, 바로 한눈에 잡히는 미사일.

이제는 그들이 있는 곳 바로 앞까지 다가온 그것을 보며,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저걸 막을 수 있을까.

아니, 그게 중요한게 아니다.

이미 결정을 내린 순간, 저것을 막는 수밖에 없다.

저것에 휘말릴수도 있는 시민들을 위해.

저것으로 인해 완전히 망가질수도 있는 도시를 위해.

그리고... 저것으로 인해 죽을지도 모르는 한 남자를 지키기 위해.

그렇게 그녀는, 날아오는 미사일을 향해 도망치는게 아닌, 역으로 그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찰나의 순간.

그녀는 그것을 향해, 몸을 날렸다.

....

솔직히, 어떻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것과 충돌한 순간 느낀 내장이 뒤틀리는 고통, 살을 애는 감각, 머리까지 울리는 충격.

예전에 비행기를 들었을 때와 비슷한, 아니 그보다 더 심한 충격이 그녀를 강타했다.

심지어 장기간에 거친 전투로 이미 힘마저 빠진 상태였기에, 더더욱.

정신을 잃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

그러나, 그녀는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버텨냈다.

그녀와 부딪힌 이후 미사일은 느려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계속해서 나아가고 있는 상황.

그걸 멈추기 위해.

그녀는 정신을 잃을 것같은 상황속에서도, 자신의 힘을 한계까지 발휘했다.

일반적으로라면, 절대로 불가능했을 상황.

그러나, 그녀는 역경을 겪으면 겪을수록 더욱 강해지는, 그런 사람이었기에. 지켜야 할 사람이 있다면 더욱 강해지는 그런 사람이었기에.

그녀는.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힘으로.

끝내.

미사일을, 멈춰세웠다.

그리고나서.

이제는 거의,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미사일을, 하늘로 다시 날려버렸다.

"....."

대체 이 짧은 순간, 그녀의 능력이 어디까지 증폭된건지.

그녀가 날린 미사일은 하늘 위로 높이 높이 날아가, 하늘의 별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녀는 그대로 쓰러졌다.

"....아."

그녀는 떨어지면서 짧은 신음을 뱉었다.

미사일을 다시 날려버리는 순간, 한계를 넘어 능력을 발휘한 그녀의 신체가 제 기능을 다했다는듯, 힘이 쭈욱 빠져버린것이다.

허공위에서 쓰러졌으니, 떨어지는건 당연한 결과.

그렇게 그녀는 추락하며, 눈을 꼭감았다.

이대로 떨어지면, 무사할까?

아무리 그녀가 일반인에 비해 몸이 튼튼하다고 해도, 이정도 높이에서 떨어지면 무사할지 장담할 수가 없다. 죽지야 않겠지만... 며칠간 병원신세 질 각오는 해야겠지.

그렇게 그녀가 곧 다가올 충격을 각오하고 있을 때.

둥실.

충격 대신, 그녀를 부드러이 감싸안는 누군가의 손길이 느껴졌다.

".....?"

예상치 못한 감촉에, 그녀는 무슨 일인가 하고 눈을 살짝 떴고.

그런 그녀가 본것은.

허공에서 자신을 안은 채, 떠있는 에고스틱이었다.

***

"아니 시발?"

미사일이 날아오는걸 본 나는, 눈을 휘둥그래 떴다.

대체 저건 언제 쏜거지? 원작에서 그지랄 날때도 안쏘았던걸?

아니 뭐, 사실 미사일이 별 문제되는건 아니다. 그냥 병기 버리고 튀면 끝이니까. 스타더스 거의 다 파워업 끝냈는데... 각성까지는 못시키고 이대로 끝나는게 아쉬운거 빼고는 뭐.

그러니까 그게 문제가 아니라.

그럼 스타더스가 갑자기 위로 날아오른 이유는.

"저거 막으려고...?"

나는 나도 모르게 황당함에 중얼거렸다.

아니 저걸 왜 막아. 뭐 핵폭탄이라도 날아온다고 전달받은건가? 일반 미사일이면 막을 이유가 없는데?

아니 그전에.

쟤 지금 저거 막을 수 있는 몸 상태인가?

"오빠, 어떡해요?"

"일단 여기 헬리콥터로 찍고있는 그 뉴스 전파납치해봐. 빨리."

"네에... 아니, 여기 장비가 부족한데..."

서은이는 그렇게 툴툴거리면서도 수빈씨랑 같이 미리 챙겨온 노트북으로 무언가를 하기 시작했다.

"하율아, 그리고 최세희 일단 둘은 여기 있어. 나 좀 갔다올게."

나는 그리고 남은 둘한테 말한 뒤, 순간이동했다.

어디로? 거대 병기의 머리 꼭대기 부분으로.

"에취! 아, 추워."

밖에 있는 머리 꼭대기 쪽으로 나오니 갑자기 불어오는 찬바람. 이제 곧 밤이 될 예정이라 그런지 기온이 떨어진 모습이다. 이게 중요한게 아니지.

병기의 꼭대기에 서서 망토를 휘날리며, 나는 스타더스를 바라보았다.

아니, 쟤가 왜 나섰는지는 모르겠지만.

저거 막을 수 있나?

나랑 아침부터 지금 오후가 될 때까지 아무것도 안먹고 싸우기만 했는데?

나는 나도 모르게 걱정에 손을 물어뜯을 지경이 되었다.

아니, 이건 지금까지랑 경우가 좀 다르다.

원작에서 기차나 비행기를 턱턱 막는 장면은 나왔어도, 저정도로 지친 상태에서 미사일을 막는건 못봤다고!

안절부절 탭댄스를 출 지경.

여차하면 이미 구하러갈 준비도 한 채,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스타더스가 하는걸 지켜봤다. 전파납치까지 되었을테니 걱정은 없다.

그렇게, 스타더스와 미사일이 충돌했고.

나는 손에 땀을 쥐고 그 모습을 바라봤다. 아니 저거저거 터지면 어떡할려고!

다행히, 미사일이 중간에 펑 터져 스타더스가 불타는 일은 없었다. 하율이 데리고 왔으니 여차하면 치유까지 하려고 했는데, 다행이네.

잠깐, 미사일을 잡은건 좋은데, 저거 어떻게 할려고? 근처에 던지면 거기서 터질텐데?

그러나 내 걱정이 기우라는 듯, 그녀는 잡은 미사일을 저 하늘 위로 뻥 날려버렸다.

아예 저 하늘을 넘어 우주까지 갈 기새로 날아가는 높이 높이 날아가는 미사일.

저정도 세기로 날렸다고? 아니, 쟤 지금 끝없이 위로 가는데?

아무리봐도 스타더스가 각성한거 같다. 음, 원래 로봇배틀로 능력 키울려 했는데, 어쩌다보니 다른 방식으로 성장시킨거 같네. 뭐, 모로가든 서울만 가면 되니까.

그렇게 내가 평가한 순간, 스타더스가 중심을 잃고 쓰러져 하늘에서 추락하기 시작했다. 아, 힘 빠졌구나. 그럴 수있지. 근데 저대로 땅에 박으면 큰일날텐데.

나는 그렇게 생각한 순간, 몸이 먼저 움직였다.

일단 스타더스 구하고 보자.

...그리고, 저건 왜 막았는지도 물어보고. 진짜 핵폭탄인가?

*

그리고, 다시 현재.

나는 자연스럽게, 스타더스를 공주님 안기로 들고있었다.

"..."

내가 공주님 안기를 한건 이세계에서 두번째네.

스타더스가 내 품에 쏙 들어와있는건 좀 신기한 기분이다. 슈트 밖으로 잡은건데도, 살이 말랑한게 느껴진다. 히어로일을 많이 하는데 어떻게 이러지.

...잠깐, 무슨 이런 이상한 감상이 드는거지? 저번에 최세희 이렇게 들때는 아무 생각 없었는데, 이상하네.

하여튼, 나는 내 품에 들어와있는 스타더스와 눈이 딱 마주쳤다.

"....."

그리고 우리는 잠시 아무말도 없었다.

날 보자마자 '이 쓰레기같은 녀석! 당장 놓지 못할까!'라고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아무말 없이 조용히 날 바라보는 그녀.

숨을 쌔액쌔액 쉬는게, 곧 기절할거 같은 모습이다. 아니, 근데 왜 날보고도 별말 안하는거야? 히어로가 빌런한테 안겨있는데? 그 덕분에 원래 내 계획이 파기되었다. 그녀가 나한테 일갈하면, 그걸 유들유들하게 놀리면서 받아칠 생각이었는데 이게 뭐야.

허공에 떠서 천천히 지상으로 내려오며 급히 머리를 굴려 할 말을 찾은 나는, 이내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스타더스씨! 또 신기한걸 하셨군요. 갑자기 싸우다말고 위로 올라가셔서 승천하시는줄 알았습니다 저는!"

일단 아무말이나 던져봤다. 뭐라고 반응 좀 보여봐.

그러나 그녀는 별말 없이, 눈을 내린채 조용히 내 품에 안겨있었다. 왜이러는거야. 벙어리야?

그래, 그럼 이거나 물어봐보자.

"그럼요 스타더스씨. 저 궁금한거 있는데, 저 미사일은 왜 막으신거죠?"

아니 진짜 왜막은거지?

저거 그냥 놔뒀으면 깔끔하게 거대병기 부수고, 덤으로 운좋으면 나도 보내고 1석 2조인데.

그런 내 질문에, 이번에는 그녀가 입을 열었다.

어라, 이번에도 무시당할줄 알았는데?

그녀는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그냥...."

"그냥?"

"이걸로, 빚은 갚은거지?"

그녀는 거기까지 말하며 살짝 희미한 미소를 짓더니, 그대로 기절했다.

그렇게 여전히 입가가 살짝 올라간 채 쓰러진 그녀를 보며.

나는, 웃지 못했다.

"...."

빚은 갚았다고?

이게 무슨 소리야. 그럼 저거 나 구할려고 막았다는 소리야? 다른 이유가 있는게 아니라?

....왜? 어째서? 나는 빌런인데?

세상에 어느 히어로가 빌런을 지킨다고 몸을 날려.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살짝 현기증이 나는것 같았다.

....설마 눈치챈건가? 내가 빌런 짓을 하는 이유를? 내 본심을?

아니, 그럴리가 없다. 그녀가 얼마나 고지식한데. 내가 저지른 전과가 있는데. 왜 그러겠어.

....근데 그럼, 방금 그 반응은 뭐였냔말이야.

이제는 지상에 다 도착한 나는, 근처에 스타더스를 눕혔다. 여전히 조용히 쓰러져 누워있는 그녀.

"....."

나는 지끈거리기 시작하는 머리를 손으로 꾸욱 눌렀다.

그래, 일단 그녀가 나를 어떻게 보고있던, 그게 지금 중요한게 아니다. 지금 중요한건 이 상황을 어쩌냐는거. 아마 스타더스가 미사일을 막으러 날아간거까지는 모두가 봤을거다. 근데 이걸 왜 막았는지가 문제지. 나를 지키려고 막았다고 하면 활활 불탈거다.

....열애설로 불탄다는게 아니다. 물론 그걸로도 불탈텐데, 히어로써의 자질을 문제삼고 적대세력이 공격할 수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하나.

그녀의 행동의 당위성을 입증해야지.

나는 머리를 빠르게 굴려봤다.

이 세계 국민들의 가진 정부에 대한 불신,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 나와 스타더스에 대한 우호 여론, 쉽게 불타는 사람들. 우주로 가버렸는지 보이지도 않는 미사일.

좋아, 이게 답이다.

계획을 완전히 세운 후, 나는 서은이에게 연락했다.

"서은아, 전파납치 했냐?"

[네.그리고 그 뉴스 카메라? 그것도 꺼버리게 했어요.]

"지금 방송 시작할거니까, 카메라좀 던져... 아니다, 내가 갈게."

나는 그 말을 끝으로 다시 병기 조종석으로 순간이동했다.

갑작스럽게 내가 등장하자 다들 나를 무슨일인가 하고 보고있는 모습.

"최세희. 옆에 카메라좀."

"어? 여기."

"서은아, 너는 지금 방송 송출할 준비하고."

"알았어요."

나는 세희로부터 카메라를 받은 뒤, 그걸 들고 다시 병기의 머리 꼭대기로 이동했다.

이제는 어둑어둑 땅거미가 지는 모습.

빨리 하고 떠야겠구만.

나는 잠시 심호흡을 한뒤, 카메라를 켰다.

오랜만에 전파납치로 모든 지상파 티비에서 보일 내 모습.

거기에 이번에 추가한 에고스트림으로 인터넷 전역으로도 향할 내 모습이다.

그리고 역시, 키자마자 가득히 올라오는 채팅창.

[방송 개같이 ONㅋㅋㅋㅋㅋㅋ]

[아니 왜 이제서야 키냐구 젠장ㅋㅋㅋㅋㅋㅋ]

[내 가슴이 웅장해지는 거대로봇전투 어디갔음?????? 어딨어!!!!!]

[갑자기 스타다스 위로 올라가는거까지 보고 뉴스 방송 끊겼었는데 뭐임?]

[아니 무슨 일임? 왜 밖에 나와있나요?]

[스타더스 어디감?]

[아까 스타더스 급발진한 이유 뭐임? 궁금해 죽겠네]

[아니 기대하면서 들어왔는데 거대 병기 어디감... 피난길 길바닥에 유일한 재미였는데...]

나는 카메라를 보며, 일단 모두에게 웃으며 인사하고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에고스틱입니다!"

그리고 나는 바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전투가 갑자기 끊겨서 의아하실텐데, 아쉽게도 이게 끝입니다. 스타더스씨가 쓰러지셨거든요."

[?????]

[아니 이게 무슨 말이야]

[스타더스는 왜 쓰러짐? 결국 졌나?]

[ㄴㄴ 아까 갑자기 위로 올라가고 끊기던데 그거랑 관련있는듯?]

[내 거대야스 어디갔어!!!!]

"스타더스씨는, 싸우던 도중 이쪽으로 갑자기 날아온 무언가를 막으신 뒤 쓰러지셨거든요. 여러분, 충격먹지 말고 들으세요."

나는 거기까지 말하고 잠시 숨을 들이마셨다.

그래, 이제서부터가 중요하다.

지금부터 나는 스스로를 속인다. 극한에 도달한 선동과 날조는 스스로마저 선동과 날조를 당하는 거다.

이 모든건 스타더스를 위한 것. 자, 나는 진실하다... 나는 진실하다...

이내 자기 확신에 찬 나는, 이내 누구보다 진실한 목소리로, 신뢰감 가득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저 하나 잡겠다고, 대통령이 핵폭탄을 서울에 날렸습니다!"

"그걸 막겠다고 스타더스가 몸을 날린거고요!"

"이게 진실입니다 여러분!!!"

[?]

[네?]

[??????????????]

[아 시바 왜 머통령이 했다니까 그럴듯하냐]

[바로 이거였군]

[와 ㅅㅂ 진짜로?]

[거짓말이야 그럴리가 없어!....라기에는 어라?]

[ㅅㅂ그래서 스타더스가 날았던거냐? 개소름돋네]

[정부 걔들 언젠가 일낼 줄 내 그럴줄 알았다]

[이~~~ 대통령, 내,,그럴,,줄,,알았다,,,,@!! 당장,,,구속시켜,,,십새끼들@@@!!!]

자, 선동과 날조를 시작해보자.

내가 가만히 있을 줄 알았냐?

다같이 좆되보자 이새끼야.

***

"저런!!! 헛소리를!!! 총리! 저거 당장 끄게!! 방송 막아!!!"

"...죄송합니다 대통령님, 저자가 전파납치를 하는 바람에 저희쪽에서 어쩔수가 없습니다."

"으..."

"대통령님, 큰일났습니다!"

"또 뭔가!"

"협회장이 성명문을 냈습니다! '대통령이 핵폭탄을 발사한게 맞다'...라고. 아마 자기네들 히어로를 지키려고 그러는거 같습니다!"

"....대관절 이게 무슨..."

대통령은 그만 쓰러졌다.

EP.86 여파와 반응

["어떻게 자국의 대통령이! 자기 나라의 시민들이 있는 곳에! 이런 짓을 할 수가 있습니까? 저같은 잔악무도한 빌런도 그런짓은 안합니다!"]

조회수 수천만회를 기록한 에고스틱의 폭로 영상이 전국을 강타한 이후, 뉴스에서는 계속해서 그 이야기만이 흘러나왔다.

"빌런 에고스틱의 폭로 이후, 대통령의 지지율이 연일 하락하고 있습니다. 헌정 최저치인 9프로를 기록하며 두자리수 지지율이 붕괴해..."

"히어로 협회장이 공개석상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주요 골자는 대통령이 핵, 또는 핵에 버금가는 위력에 미사일을 날린것이 맞다는 이야기로, 히어로 스타더스의 활약이 없었으면 수천명의 시민들이 희생되었을거라고 밝혔습니다."

"대통령 비서실측이 진화에 나섰습니다. 핵이 아닌 단순한 미사일이라고 해명했지만, 시민들의 반응은 여전히 싸늘합니다. 네티즌들은 '핵폭탄이 아니라 수소폭탄이냐? 그게 그거 아니냐' 라며 격양된 반응을 보였습니다."

"정부가 출범 이후, 역대 최고의 위기를 맞았습니다. 대통령을 탄핵하라는 주장까지 제기되는 와중에...."

"그와 별개로, 히어로 협회의 지지율은 계속해서 오르고 있습니다. 협회장의 소신발언과 스타더스의 적절한 대응을 칭찬하는 목소리가 연일 높아지고 있는 모습입니다."

"속보입니다. 국제 히어로 협회 연합에서 한국의 히어로 스타더스의 S급 승격을 논의하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습니다. 아마 이번 전투에서 보여준 활약이 영향을 미친 것 같다는게 전문가들의 판단입니다. 국내 협회가 지정할 수 있는 A급까지와는 다르게, S급은 국제 협회 연합의 인가가 필요합니다."

"또, 빌런 에고스틱도 S급으로의 승격이 고려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제 논의를 시작한 스타더스와는 다르게, 에고스틱은 수달 전부터 논의가 되어 왔으며 아마 이달 말 공식 발표가 있을 예정이라고 협회 관계자가 말했습니다."

***

[속보)에고스틱 S급 승격 곧 한다고 함]

기사링크

=[댓글]=

[드디어]

[왜 이리 오래 걸리냐]

ㄴ[S급 부터는 국제기구에서 판단해서 그런듯?]

[S급 히어로 킹플망고가 온다ㄷㄷㄷ]

[이번 활약 보면 S급 히어로라는거지? 그런거지?]

*

[망고스틱은 히어로이고 이건 고구려 수박도에도 적혀있는 사실이다]

사망자도 없어, 테러 저지만 수십번이야, 저번에 그 다리부순거랑 이번에 로봇 납치한거 다 합치면 살린 사람이 몇명인지를 모르겠네

야, 이래도 에고 지지안해? 독하다 독해ㅋㅋㅋㅋ

=[댓글]=

[솔직히 한국인이면? 망고 지지해야 하는게?]

[개추ㅋㅋㅋㅋㅋㅋ]

[팩트)다]

[내 나이 서른마흔다섯. 이런 빌런 본적이 없다]

*

[에고스틱 이해하는 법.honey_tip]

아니 시발 왜 빌런이란 놈이 사람들 구하고 지랄(X)

아! 에고스틱은 히어로였구나! (O)

=[댓글]=

[바로 이거네ㅋㅋㅋㅋㅋㅋㅋ]

[ㄹㅇ사고방식을 바꿔야]

[빌런이 왜 이럼?(X) 아 빌런이 아니구나!(O)]

[그저...^빌런조무사^]

ㄴ[이건 칭찬이냐 욕이냐ㅋㅋㅋㅋ]

*

[ㄹㅇ대통령이 ㅈㄴ꽤씸한점]

정부도 못막은 거대기병 뺏어서 서울 구해놨더니

표창장은 커녕 미사일을 날림

ㄹㅇ얘네가 사람이냐?

=[댓글]=

[어차피 순간이동해서 죽이지도 못하는데 ㅂㅅ들ㅋㅋㅋㅋ]

[히어로 관련된 일은 협회가 처리해야지 왜 정부가 나서고ㅈㄹ]

[근데 걔 그러다가 ㅈ됐자너ㅋㅋㅋ 임기 얼마 안남았는데 레임덕 씨게올듯]

ㄴ[걘 그냥 탄핵해야함 솔직히ㅋㅋㅋ]

*

[근데 협회장은 왜 귀신같이 대통령 손절한거임?]

그냥 그거 핵탄두 맞다고 바로 발표하던데

협회면 막 정부 커버쳐주고 그러는거 아닌가? 둘이 협력관계 아님?

=[댓글]=

[ㄴㄴ협회랑 정부랑 별로 안친함. 이 정부 특징이 협회가 정부 위협한다고 생각해서 권력견제 ㅈㄴ함. 협회도 마찬가지고]

[1.머통령이 침몰하는 배같으니까 썩은줄 버리기 or 막타넣기 2.스타더스 두둔할려고]

ㄴ[개인적으로 2번같은게 대통령이 스타더스가 왜 그걸 막냐고 따지고들면 협회 입장에서 곤란해짐. 이론상 빌런 제거를 위해 쏜거는 맞거든. 그래서 지랄하기전에 먼저 보내버린게 맞는듯?]

*

[망붕이 소름돋는 사실 밝혀냈다....scary]

지금까지 에고스틱에게 맟선 자는

다 처절히 몰락함ㄷㄷㄷ

야코스틱... 그의 저력은 어디까진가...

=[댓글]=

[스타더스: ???]

ㄴ[아ㅋㅋㅋㅋ 여친은 예외라고ㅋㅋㅋㅋ]

*

[속보)일렉트라단 멸망.... 저번 사건 사진 공개]

(사진)

에고스틱이 쓰러지는 스타더스 공주님 안기로 공중에서 잡고있는 사진 공개됨ㅋㅋㅋㅋㅋㅋ

근처에 있던 어떤놈이 망원경으로 딱 찍은거라함ㅋㅋㅋㅋㅋㄱ

응ㅋㅋㅋㅋ 에고X스타야ㅋㅋㅋㅋㅋㄱ

이미 에고스틱 마음은 스타더스에 가버렸주? 이정도면 그냥 기정사실이죠?

=[댓글]=

[저거 주작임]

ㄴ[주작드립 입갤ㅋㅋㅋㅋㅋ]

ㄴ[???: 암튼 주작임]

ㄴ[정신이 좀 들어?]

ㄴ[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wwwwww]

[캬ㅋㅋㅋㅋㅋㅋㅋ]

[ㄹㅇ에고스틱이랑 스타더스랑 뭐 있는거 맞다니까ㅋㅋㅋㅋㅋ]

*

[팩트)에고스틱은 처음부터 스타더스를 좋아했다

빌런 죽이고 편지 남긴것도 스타더스

첫 테러후 부른 것도 스타더스

아무튼 엮인 것도 스타더스

그리고 이번에 스타더스 구해주는거까지ㄷㄷㄷ

찐사랑 ㅇㅈ?

=[댓글]=

[ㄹㅇ이정도면 착즙이 아니라 합리적 의심임ㅋㅋㅋ]

[사진은 진위여부 갈려서 좀 애매하긴 한데]

[에고스타 지지자로써 처음에 에고가 스타더스 부를때 뽕으로 가득 참ㅋㅋㅋㅋㅋ]

*

[스타더스 인기가 요즘 하늘을 찌르네]

별먼지단 팬카페 가입수 평소대비 2000% 폭증했다네ㄷㄷㄷ

걍 이번사태 최고 수혜자인듯ㅇㅇ...

=[댓글]=

[미친ㅋㅋㅂㄱㅋㅋㅋㄱ뭐냐]

ㄴ[대한민국 최초의 S급 예정에... 서울 시민들은 사실상 걔가 다 구한거니까 인기가 하늘을 찌르지]

ㄴ[에고스타 둘이 결혼하면 S급 부부 되는겨? ㅋㅋㅋㅋㅋ]

[거기 별먼지단 카페매니저 ㅈㄴ신났던데ㅋㅋㅋ 막 회원들한테 치킨 뿌리고 난리남]

ㄴ[걔는 ㄹㅇ찐사랑이더라ㅋㅋㅋㅋㅋ 그냥 스타더스를 위해 사는 수준이던데]

[솔직히 거대병기랑 일대일 맞다이 뜨는게 좀 지리긴 했어ㅋㅋ]

*

[유성기업 서울 피난민들에게 구호물품 기부]

그와 별개로 수십억 기부까지 했다고ㄷㄷ

=[댓글]=

[유성기업이 거긴가? 그 회장 손녀딸이 아이시클인데?]

ㄴ[ㅇㅇ이설아 걔 있는데 맞음]

[유성기업 호감가네ㅋㅋㅋㅋㅋ]

[유성기업 이번에 한은그룹 망하고 대한민국 제계 1위찍더니 이미지 관리도 하나보네]

ㄴ[요즘 다른 회사들도 인수합병 ㅈㄴ하잖아ㅋㅋㅋ]

ㄴ[거기 주식 사둬라 ㄹㅇ끝없이 오른다ㅋㅋㅋ]

[유성그룹이 대한민국을 배후에서 조종한다! 그리고 A급 히어로 아이시클이 흑막이다!]

ㄴ[안녕하세요 ㅇㅇ님. 유성기업 법무팀입니다. 오늘 밤 10시까지 이 댓글을 삭제하지 않으신다면 허위사실 유포 및 명예훼손으로 회사차원에서 고소, 고발 조치를 취하도록 하겠습니다.]

ㄴ[인실좆 입갤ㅋㅋㅋ]

***

부산.

유성그룹 본사.

꼭대기 층.

야경을 보며 의자에 등을 기댄 채,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앉아있는 그녀에게 양복을 갖춰입은 직원이 다가왔다.

"설아님. 여론에 대한 조작이 어느정도 완료되었습니다. 이번 정부는 이제 회생불가입니다. 또한 협회장과도 잘 타협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은 어떻게 됐나요?"

"네. 차기 대선후보를 접촉해 포섭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는 이제부터 우리 말을 따를겁니다."

"좋아요. 계획대로 되고 있네요. 다른건 없나요?"

"....회장님께서 모든 전권을 다 설아 사장님께 위임한다고 밝혔습니다."

"드디어. 잘됐네요."

그녀는 그 소식에 처음으로 살짝 웃으며, 창가를 바라보던 의자를 다시 앞쪽으로 돌렸다.

긴 하늘색 머리카락을 가진 채.

하얀 고양이를 안고 쓰다듬으며.

빙그레 웃고있는 그 여자는.

세간에 흔히 A급 히어로 아이시클로 알려진 유성기업의 후계자, 이설아였다.

"이제 어느정도 해결됐겠다... 하루나 만나러 갈까?"

***

산 깊숙한 곳 숨겨진 대저택, 일명 에고스트림 본부.

나는 그곳에서, 두 손을 깍지끼고 책상에 올린 채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는 남자가 있었으니.

바로 나였다.

"....."

무슨 고민을 하고 있느냐.

대통령? 그건 내 알바가 아니다. 어차피 걔는 원작에서도 빌빌거리다 나락간다.

S급승격? 그것도 어느정도 예상했던거고, 원작도 그랬으니 별 문제없다. 아니, 있긴 한데 아마 해결할 수 있을거다.

이설아를 필두로 한 유성기업의 대한민국 정복? 어차피 나도 숟가락 올릴 생각이니까 괜찮다.

내가 고민하고 있는, 진짜 문제는.

'이걸로, 빚은 갚은거지?'

그날로부터 자꾸만 계속 생각나는.

나에게 살짝 웃으며 그렇게 말했던, 스타더스의 얼굴. 그 모습.

이거.

아무리 생각해도.

"눈치챈거 아니야?"

나 무서워.

EP.87 대책 논의

내가 이 세계에서 빌런 노릇을 한지도 꽤 시간이 지났다.

이제 원작 기준으로도 꽤나 본격적인 스토리가 진행되는 상황.

더 강한 능력을 가진 이들의 등장, 점차 세력을 이루는 빌런 조직들, 유성기업의 대한민국 삼키기등 점점 더 혼란으로 가득 찰 2페이즈가 온다는 소리.

그리고 나는.

그런 것들을 다 제치고, 다른걸 걱정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스타더스가 날 의심하는것 같다."

에고스트림 회의실.

모두가 나를 바라보는 그 앞에서, 나는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중대한 문제다. 지금 내 인생의 목적이 직접 빌런이 돼서 스타더스에게 역경을 줘 성장시키는건데, 애초에 그녀가 나를 빌런으로 안보면 어쩌자는거지?

아니, 대체 왜 테러만 몇번이고 일으키고 다른 빌런들도 무자비하게 죽인 나한테 그렇게 경계심없이 웃었는지 난 이해할 수가 없다. 대체 어떻게된거야 이게.

그렇게 내가 억울하다는 성토를 하자, 앞쪽에서 듣던 서은이가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아니. 오빠, 지금 그렇게까지 행동하고도 오빠가 빌런으로 보일줄 알았어요?"

"내가 뭘했다고?"

내 말에, 서은이의 맞은편에 있던 최세희가 입을 열었다.

"...어, 일단. 너 테러가 사망자가 아예 없지? 사망자가 나올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안나와봐. 다들 너가 의도한거라고 생각하지 않겠어? 사실 내가 너 영입제안을 수락한 것도 그것 때문이거든."

"그뿐만이 아니죠."

옆에 있던 수빈씨도 거들기 시작했다.

"그때 비행기에서 스타더스에게 직접 연락도 하셨잖아요. 어떤 빌런이 그 상황에서 히어로보고 믿는다면서 구하라고 해요."

거기에 조용히있던 하율이까지 입을 열었다.

"...거기에, 이번에 그 거대로봇 중간에 강탈한것도. 사실 따지고 보면 죽게생긴 사람들 구한거잖아요. 그걸로 사람 해친것도 아니고. 심지어 이렇게 남의 빌런 테러에 훼방놓은게 한두번도 아니고."

마지막으로 서은이가 정리해서 한마디 해줬다.

"솔직히 이정도면, 눈치 못채는게 이상하죠. 오빠가 스타더스 입장이었어도, 뭔가 이상한게 느껴지지 않아요?"

흠.

뭔가 이렇게 모아놓고 보니 굉장히 수상하기는 하다.

그러나, 스타더스가 이런거에 나를 의심한다고?

말도 안된다. 그녀는 살아있는 정의의 화신 그자체.

그것만으로 잔악무도한 테러리스트인 나를 의심한다는건 말도 안되는....

'이걸로 빚, 갚은거지?'

아.

...그래, 그 사건이 있었지.

내가 그녀를 대신해 칼빵을 맞아준 사건.

신하루가 내가 빚이라고 한 말까지 기억한 그거.

"...."

아무래도 그거때문에 나한테 덜 적대적인건가?

아니, 그게 뭐라고. 거 살다보면 빌런이 목숨걸고 히어로도 좀 구하고 그럴수도 있는거지 뭐. 이것도 히어로물에서는 유명한 클리셰일거다. 물론 살면서 그런 장면을 본적이 한번도 없기는 하지만...

나는 조용히 머릿속으로 주판을 두들겨봤다.

스타더스가, 만약 내가 빌런짓을 하는게 미친놈이여서가 아니라, 사실 다 그녀와 세계를 위해서라는걸 알게 되면 어떻게 될까?

.....보나마나지. 나와 싸울때 진심을 다해 싸울 수 있을까? 원래 능력의 각성이란 위기상황속에서 성장할때 생기는 법. 애초에 그 상황이 위기상황이 아니라는걸 아는데, 뭘 얼마나 진심을 다해 싸우겠어. 결국 나태해지고 말거다!

갑자기 머리속에 안좋은 미래가 떠올라버렸다. 내가 빌런들을 대신 해치워주고, 스타더스는 아무것도 안하고 놀다가 게을러져 히어로를 때려쳐버리는 끔찍한 미래가.

그건 안된다. 미래가 스타더스의 손에 달려있다고. 그녀가 성장하지 못하면 세계는 멸망하고 끝이다.

...그리고 아마 내 생각엔 그녀가 내 테러 사유가 그녀와 세계를 위해서라는, 거기까지 추측했을거가 같지는 않다. 그거까지 알았으면 예지능력이라도 가졌게? 물론 하루가 그거랑 비슷한 초감각을 가졌기는 한데... 어쨌든. 아마 살짝 의심하는 정도지 심각한 정도는 아닐거다.

"오빠. 근데 그게 그렇게 크게 걱정할만한건 아니지 않나요?"

"맞아요. 오히려 협회가 다인 오빠를 이악물고 추적하는건 아니니, 괜찮은거 아닐까요?"

태평한 소리를 하는 그녀들에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엄청나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긴 하겠지만, 그래도 아무 대책도 안세울 정도인것도 아니다. 어느정도 보험은 준비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그래.

내가 무슨 짓을 하던, 신하루 옆에서 에고스틱은 잔악무도한 빌런이라는걸 계속 상기시켜주는 사람이 있으면 되지 않을까?

역시, 정답은 그거다.

곧 대한민국의 사실상 흑막이자, A급 히어로 아이시클이라는 이명으로 활동하며, 스타더스의 제일 친한 친구이기도 한.

이설아를 하루빨리 만나야겠다.

그게 답인 것 같아.

***

"하아... 스타더스. 진짜 그 이유가 맞다는건가?"

"네."

협회장은, 그의 앞에 있는 스타더스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아니... 설마 대통령이 사람들 다 죽이는 뭐 예를들어 핵미사일을 쏘고 그랬겠나. 당연히 그냥 그 로봇만 날리는걸 쐈을텐데 왜 막고 그런건가. 아니, 내가 말도 하지 않았나? 그 GOAB는 그정도로 쎈 미사일은 아니라니까?"

"....."

협회장은 자신의 텅 빈 머리를 누르며 꾹 꾹 누르기 시작했다. 이내 그녀 앞에서 한탄하기 시작하는 그.

"스타더스. 아니 신하루. 내가 자네때문에 탈모가 올 뻔했어... 내가 자네 두둔한다고 얼마나 무리수를 많이 했는줄 아나? 까딱 잘못하면 내 모가지가 짤릴뻔했어. 다행히 여론이 대통령을 돌아서서 망정이지... 내가 살다살다 대통령을 상대로 모함을 하는 날이 올줄이야..."

"...죄송합니다."

"아니야, 아니야. 하긴, 그 양반 시시건건 우리 협회 밟고 넘어지고 그래서 꼴보기 싫긴 했어. 그리고 우리랑 상의없이 혼자 미사일은 왜쏴? 그양반 이번에 뭔가 좀 보여주고 싶었나본데, 개털됐지 뭐. 어차피 그 로봇은 결국 부하걸렸는지 알아서 폭발하더만."

"....."

"그리고 이제 곧 S급 승격 예상된다고 하니까, 미리 축하한다. 요즘 내 언플덕분인지 뭔지 인기도 엄청나던데, 일단 조용히 있자. 대중의 관심이란게 많다고 꼭 좋은게 아니거든. 어디 좀 조용한 곳 가서 쉬고 그래."

"네. 알겠습니다."

"그래... 에휴. 전화왔네 뭐냐... 썩을. 김부장!!! 내가 청와대는 차단하라고 했지 않나!!!"

"협회장님, 걔들 자꾸 번호를 바꿔서 연락해서 답이 없습니다! 그냥 끄고계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하아... 신하루, 봤나. 내가 이렇게 힘들게 살고 있다."

"네. 협회장님. 저 그만 가도 되나요?"

"...그래."

협회장의 힘없는 말을 뒤로하고, 그녀는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그렇게 복도를 걸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손으로 주먹을 쥐어본 그녀.

지이잉-.

그리고, 협회에서 측정했을때도 느꼈지만 역시.

그녀의 힘이 체감될정도로 성장했다. 이제는 S급 승격마저 논의될 정도로.

....거기에, 그녀는 의도치 않았지만 인기또한 많아졌다.

이게 다, 따지고보면 에고스틱 그놈 덕분인가.

"...."

그를 그녀는, 이번에 구해냈다.

그가 죽어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자기도 모르게 몸이 움직인 것이다.

뒷일은 생각하지 않은 무모한 행동.

만약 진실이 알려지게 된다면, 그녀는 매장당했을거다.

빌런을 억지로 살린 히어로라니? 당장 수용소로 끌려가도 무리가 아니다. 그만큼, 히어로로서는 말도 안되는 일.

그러나, 그녀에게 그렇게 한걸 후회한다고 물으면.

그녀는, 아마 그 말에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에고스틱에 대해 생각하는 순간, 그녀는 그날의 일이 오버랩됐다.

미사일을 저지한 뒤, 하늘에서 힘을 잃고 떨어진 그녀.

그리고, 그런 그녀를 중간에 감싸올린 어떤 팔.

떨어지는 그녀를 구하며, 그녀에게 능글맞게 웃던 그의 모습.

그리고 왜 미사일을 막은거냐며, 전혀 모르는 채 순수한 궁금증을 보이며 그녀에게 묻던 그의 모습.

...그리고, 자신이 대답하자,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 굉장히 당황한 표정을 짓던 그의 모습..

"하루야!"

"어?"

그렇게 그녀가 생각을 하며 걷던 도중, 한쪽편에서 갑작스럽게 등장한 설아에 의해 자신도 모르게 얼빠진 소리를 내었다.

"협회장이랑 얘기 끝났어? 내가 아까부터 기다리고 있었어."

"아... 그랬어? 미안. 같이 가자."

"그래. 그런데, 뭐 좋은 얘기라도 듣고 왔어?"

"응? 왜?"

"내가 오면서 보니까, 너 아까 살짝 웃고 있던데?"

"....내가?"

그녀는 그말을 듣고는 살짝 멈칫했다.

...내가 웃고있었나.

왜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은거지?

그렇게 고민을 하기 시작한 신하루의 살짝 뒤에서,

이설아는. 그런 하루의 모습을 보며 슬쩍 조용히, 싸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물론 그녀는 금새 그런 기색을 지우고, 밝은 목소리로 하루에게 말을 걸었다.

"그래. 하루야. 요즘 돌아가는 분위기 보니까 잠시 쉬어도 될거 같던데. 오랜만에 우리 집으로 놀러올래?"

"응?"

"오랜만에 부산 와서 휴가도 좀 즐기고 해. 어차피 협회장도 너보고 잠시 쉬라고 하지 않았어?"

"어? 그러긴 했는데..."

"그럼 문제없네! 그치?"

"어? 어...."

그렇게 신하루는 어버버 하는 사이,잠시 이설아의 집이 있는 부산으로 놀러가는걸로 결정되었다.

***

"애들아. 나, 잠깐 부산 좀 갔다올게."

"네?"

의아해 하는 서은이와 세희의 시선이 꽂혔다.

미안, 빨리 갔다가 돌아올게.

꼬셔야 하는 사람이 생겼거든.

EP.88 버스

부산에 한 펜트하우스.

통유리로 부산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그곳에, 두 여인이 앉아있었다.

"아 하루야, 하루야아."

"왜?"

"부럽다아..."

"뭐가?"

베란다 쪽 테이블에 앉아 얼음이 띄워진 시원한 망고쥬스를 마시며 밖을 바라보고 있는 금발의 여자는, 친구를 따라 놀러온 A급 히어로의 삶을 숨기고 있는 평범한 대학생, 신하루.

그리고 그런 그녀에게 칭얼거리는, 소파에 누워있는 하늘색 포니테일을 한 여자도 A급 히어로 아이시클, 이설아였다. 대신 스타더스와는 다르게 자신이 히어로라는걸 숨기지 않은.

"왜냐니. 너 곧 S급 되잖아. 그것도 대한민국 최초!"

"하하, 그거때문에 그래?"

그제서야 이설아가 무슨 말을 하는지 파악한 신하루는, 멋쩍게 웃었다.

"S급 부러워... 나도 S급이 되고 싶었어..."

"글쎄. 막상 난 실감이 안나서 잘 모르겠는걸. 그리고 등급 알파벳하나 달라지는게 뭐 얼마나 대단해지는건가 싶어."

빨대로 쥬스에 담긴 얼음을 휘저으며 그렇게 무심히 말하는 신하루.

그리고 그런 그녀를 향해 이설아는 택도 없는 소리 하지 말라는 듯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했다.

"무슨 소리야! S급 되면 달라지는게 얼만데. 당장 위상부터가 달라질껄? 사람들 사이에서 S급과 A급의 차이는 또 하늘과 땅 차이라고."

"그런가? 글쎄... 아. 하긴, 너는 위상이 클수록 회사에 좋으니까 그럴수도 있겠네."

신하루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그렇게 말했다. 그녀도 이설아가 히어로 생활과 동시에 기업을 운영해나간다는걸 알고있다. 그렇기에 히어로 활동도 정의감보다는 회사의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 한다는것도.

"그래. 하아... 나도 등급이 높아지고 싶은데. 근데 그럴려면 좀 강한 빌런이 나와야지 나도 실적이 쌓이고 하지, 여기는 뭔가 다 약해. 특색있는 애들이 없어! 나도 너처럼 에고스틱 같은 애 한명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이설아의 입에서 갑작스럽게 에고스틱이 나오자, 신하루는 순간 움찔했다.

그리고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해서 말을 잇는 설아.

"아! 나도 차라리 이번 기회에 서울로 올라갈까? 어차피 이쪽은 요즘 빌런들도 별로 없는데. 하루야, 이번에는 에고스틱이 테러 저지르면 내가 상대해도 돼?"

"....안돼."

"응?"

자신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그렇게 말해버린 하루.

그리고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하는 이설아의 표정을 보고 나서야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를 깨닫고 황급히 이유를 덧붙였다.

"아니, 걔가 계속 테러 일으킬때면 꼭 나보고 오라고 협박해서, 다른 사람이 상대하면 무슨 돌발행동을 할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그... 어..."

"알았어 알았어. 왜 그렇게 당황하고 그래?"

웃으며 진정하라고 말하는 설아를 보며, 신하루는 숨을 내쉬었다.

'...내가 왜 그렇게 답했지?'

뇌를 거치지 않고 튀어나온 말에 그녀 자신도 당황스러웠다. 뭐지. 뭔가... 에고스틱이 그녀말고 다른 히어로와 싸운다고 하니까 거부감이 들었다.

.....그래. 자신이 에고스틱을 제일 잘 알고, 제일 오래 싸워왔으니 그런거다. 설아가 괜히 걔를 상대하다가 다칠 수 있으니까. 원채 변칙적이고 막기 힘든 테러를 하는 놈이니 설아가 상대하기에는 조금 무리니까 걱정되서 내가 대신 싸운다는거지. 응.

그렇게 그녀가 누구에게 하는지 모를 변명을 속으로 생각하는 동안, 옆에서 팔을 괸 채 의뭉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던 이설아는 이내 일어섰다.

팔을 뻗어 으으으...같은 소리를 내며 잠시 기지개를 한 그녀는, 신하루에게 다시 말을 건냈다.

"으응... 하루야, 나 오늘 회사좀 잠깐 다녀올게. 처리해야하는 일이 있어가지구, 금방올게! 잠시만 기다려줘. 알겠지?"

"응? 으, 응. 갔다와."

"어. 빠이~."

그렇게 활짝 웃으며, 묶어둔 하늘색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그녀는 거실을 나섰다. 뒤에서 여전히 자신의 입술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긴 하루를 홀로 내버려둔 채.

그리고 그녀는 얼마후, 본사 건물에 도착했다.

그리고 회사 내에 들어서자마자, 순식간에 무표정으로 돌아온 그녀의 얼굴.

아까와는 완전히 달라진 차가운 표정의 그녀가 복도에 들어서자, 근처에 있던 직원들이 모두 그녀에게 인사를 건내왔다.

"사장님,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십니까."

그렇게 여기저기 고개를 숙이는 사람들을 돌아보며 그제서야 살짝 웃으며 인사를 받는 그녀.

"네, 네. 안녕하세요."

물론 인사를 건낸 뒤 그녀의 표정은 다시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녀가 자신의 집무실이 있는 꼭대기 층에 도착하자, 확연히 달라진 건물의 분위기.

아래층들 처럼 밝고 활기차기 보다는, 진중하고 살짝 무거운 그런 공기가 그녀를 감쌌다.

승강기에서 내린 그녀는 묶어두었던 머리를 풀고, 걸음을 옮겼다. 또각, 또각. 그녀의 발소리가 주위에 울려퍼지는 소리. 곧 집무실에 도착한 그녀는, 앞에 서있던 경호원에게 말을 건냈다.

"제가 업무 볼 때는, 아무도 여기 들어오게 하지 말아요. 아셨나요?"

"네 아가씨."

선글라스를 쓴 그의 로봇같은 대답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인 후, 자신의 집무실로 들어왔다.

웬만한 집들의 거실보다도 큰, 넓찍한 그녀의 집무실.

그녀를 제외하고는 텅빈 그곳에서, 그녀는 또각 또각 걸어가 창을 등지고 자리에 앉았다.

"휴우..."

쌓여있는 결제 서류들 중 하나를 꺼낸 그녀.

그렇게 근처에서 볼펜을 꺼내 서류들에 사인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잠시 고개를 숙인 채 서류작업을 하던 그녀.

얼마나 지났을까.

그녀는 펜을 내려놓은 뒤, 찻잔에 담긴 커피를 들고는, 입에 대기 전 입을 열고 말했다.

"거기에 조용히 앉아계시지만 말고, 뭐라고 말이나 해보시지 그래요?"

텅 빈 집무실에 울려퍼지는 그녀의 목소리.

그리고, 이내 그녀의 앞쪽에서 어떤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럴까요?"

이내 그녀가 숙였던 고개를 들고, 앞을 바라보자.

그녀가 들어올때까지만 해도 텅 비어있던 집무실 의자 앞에, 누군가가 앉아있었다.

검은색 모자, 검은색 망토를 입은 채 다리를 꼬고 앉아있는, 얼굴의 반을 가리는 회색빛 가면을 쓰고있는 남성.

이내, 그가 그녀를 향해 살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이설아씨. 에고스틱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

상남자 특.

일단 무대포로 진격함.

그렇게 무작정 부산으로 향했던 나는 현재, 하늘색의 긴 머리칼을 늘어트린 이설아와 대면하고 있었다.

마치 내가 오는 걸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무관심한 얼굴로 잔에 담긴 커피를 홀짝이는 그녀.

....그런 그녀의 손가락이 살짝 떨리고 있는건 못본 척 해주기로 했다.

사실 하품하면서 작업하다가, 내가 어느새 그녀의 앞에 앉아있는걸 뒤늦게 확인하고는 움찔했던 것도 기억에서 지워주기로 했다. 움찔하더니 마치 아무것도 못봤다는 듯 다시 서류작업에 열중하는 척 하는건 좀 웃기긴 했는데, 어쨌든.

그렇게 내가 그녀의 앞에 몰래 순간이동해 들어와 잠시 앉아있는 동안, 꿋꿋하게 아무것도 모르는 척 계속 서류작업을 하던 그녀는 잠시 시간이 지나서야 펜을 내려놓고 드디어 나에게 말을 건냈다.

마치 그녀의 개인 공간에 불법침입한 빌런한테 건내는 말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정도로 차분하고 조용히 말을 건낸 그녀.

"거기에 조용히 앉아계시지만 말고, 뭐라고 말이나 해보시지 그래요?"

그래서 나는 그런 그녀에게 친히 대답해줬다.

"그럴까요?"

"안녕하십니까 이설아씨. 에고스틱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내가 웃으면서 건낸 인사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

그러며 커피를 한모금 마신 뒤, 그녀는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여기는 왜 오신거죠? 드디어 자수할 마음이 생기신 건가요?"

생긋 웃으며 나에게 그렇게 말을 건낸 그녀에게, 나는 똑같이 웃으며 맞받아졌다.

"하하. 그럴리가 있겠습니까? 다만 히어로인 척 하며 뒤로는 대한민국을 집어삼키려는 유성그룹의 실질적 지배자 이설아씨에게 관심이 있어서 찾아왔죠."

"어머 그래요? 저는 또 빌런인 척 하며 뒤로는 스타더스를 챙겨주며 대한민국을 지켜주시는 우리 에고스틱씨가 스스로 수용소에 들어갈려고 마음먹어서 오신 줄 알았죠."

"하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

그렇게 잠시 그녀의 집무실에는, 나의 박장대소와 그녀의 건조한 웃음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렇게, 한참을 웃은 뒤.

우리는 서로 약속한 것마냥 동시에 웃음을 멈췄다.

"...대단해요, 대단하군요 이설아씨. 역시 당신이라면 그정도는 예상하고 있을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도요, 대단하네요 에고스틱씨. 설마했는데 저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줄이야. 대체 그 정보는 어디서 나신거죠? 웬만하면 절대 유출될 리가 없을텐데?"

"하하.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는 법 아니겠습니까?"

나는 그렇게 얘기하면서 팔짱을 꼈다.

여기서는 여유로운듯 웃음을 보이는게 중요하다. 이설아 앞에서는 방심했다가는 탈탈 털리는 수가 있다. 쟤가 얼마나 무서운 여자인데.

그렇게 남의 집 안방에 들어와 다리를 꼬고 여유롭게 웃고있는 내 모습을 보며, 그녀는 포기한다는듯 한숨을 내쉬곤 입을 열었다.

"....그래요. 그래서, 저한테는 왜 오신건가요?"

그제서야 나에게 묻는 그녀를 보며, 나는 씨익 웃고는 대답했다.

"이설아씨. 혹시 저와 '협력관계'를 맺으실 생각 없으십니까?"

이 돌아버린 히어로 만화 속 세계에서 살아남는 법 제 첫번째.

흑막이랑 손을 잡자.

흑막은 때려잡는게 아니라, 버스를 타야되는 존재인 법이에요.

***

"...."

친구 이설아의 집에 놀러와 잠시 쉬고있던 신하루는, 갑작스럽게 등골이 섬찟한 느낌을 받았다.

"....뭐지."

무언가 방금, 굉장히 안좋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거 같다는 직감이 느껴졌는데...

EP.89 손을 잡다

내 앞에 있는 긴 하늘색 머리카락을 늘어트린, 약간 차가운 고양이 인상같은 여자. 이설아.

그녀를 가리키는 말은 다양하다.

일단 스타더스와 더붙어 대한민국의 단 3명밖에 안되는 A급 히어로 중 한명이다. 아이시클이라는 이명으로 활동하며, 부산에 거점을 두고 빌런들을 진압하고 있다.

그리고 그녀는 히어로라는 신분만큼 유명한 다른 신분이 있다. 바로 이설아라는 그 이름 자체.

그녀는, 대한민국의 재계 2위에 빛나는 유성그룹의 상속자인 재벌 3세다.

예전부터 우월한 미모와 재벌 3세라는 타이틀로 어느정도 인지도가 있던 그녀는, 능력 각성 이후 히어로로서도 살겠다고 밝혀 큰 화제를 모았다.

재벌 3세임에도 불구하고 시민을 위해 히어로 활동을 하는 게 좋게 보였는지, 유성그룹 본사가 있는 부산에서는 꽤나 이미지가 좋았다.

특히 특유의 미모와 생글생글 웃고 다니는 인상때문에, 대중으로부터 착한 재벌 3세라는 이미지를 얻고 있다. 굳이 할필요도 없는 히어로를 하니, 애초에 당연한거겠지만.

그리고 이건, 모두 다 가면이다.

세상 물정 잘 모르는 순진한 여자인 척 하는 그녀는, 사실 뒤에서 대한민국을 집어삼켜버리고자 하는 야망을 품고있는 흑막이었다. 히어로 활동도 그런 속내를 감추고 이미지를 관리하 며 협회와 커넥션을 만들기 위함.

실질적으로 뒤에서 유성그룹을 총 지휘하던 그녀는, 경쟁사였던 한은그룹이 자멸한 이후에는 실질적인 대한민국 굴지의 기업의 수장이 된다.

이후 원작에서 그녀는 대통령이 서울 붕괴사태로 물러나 정치적 공백이 생긴 상태에서 차근차근 정치계를 하나 둘 잡아먹으며 세력을 확장해나간다.

그리고 결국, 재계, 정계, 그리고 민심까지 다 쥐어잡아 원작 후반부에서는, 자기 입김대로 대통령을 갈 수 있고, 법도 마음대로 바꿀수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실질적 지배자에 등극하는 그녀.

그리고 그런 그녀가, 현재 내앞에 있었다.

"협력관계라.."

그렇게 조용히 중얼거리고는, 조용히 찻잔을 내려놓는 이설아.

뒤에선 햇빛이 그녀의 하늘색 머리칼에 반사돼 반짝되고 있었다.

"재밌네요."

그리고 그녀는 피식 웃더니, 차가운 눈길로 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히어로인 제게 빌런이 협력을 맺자고 제안하는 모습이라니, 제가 이걸 수락할거라고 생각하는 건가요?"

싸늘하게 말하는 그녀.

그와 동시에, 살짝 방의 온도도 내려간 기분이 든다.

아니 그녀의 능력을 생각하면 실제로 내려간걸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반응에, 나는 씨익 웃었다.

"에이, 무슨 소리십니까? 서로 알거 다 알면서."

자. 여기서가 중요하다.

원작에서 보인 이설아는, 굉장히 무서운 애다. 거의 상대의 심리를 꿰뚫는 천부적인 재능과 상황판단력을 가진 여자.

그러나. 그건 더 많은 경험과 관록을 가졌을때의 얘기고.

지금은 아직 야망만 가진, 원작 후반부와 비교하면 어설픈 그녀다. 이때는 아마 판단력도 좀 흐릴꺼고.

아직은 애송이라는 말.

그러니까, 그녀를 요리할 수 있는 타이밍은 지금이 유일하다. 그녀가 무르익기 전, 지금이.

그랗게 나는 여전히 여유로운 미소를 보이며, 말을 이었다.

"유성그룹의 확장주의적 행보의 배후가 누군지 제가 뻔히 알고 있는데, 뭘 그렇게까지 그러시나요. 저는 당신을 방해하려는게 아니라, 함께 같은 길을 걷는 원만한 관계가 되고 싶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동지라고 할까요."

나는 거기까지 말하곤 손을 까딱해 옆에 있던 텅 빈 찻잔과 주전자를 염동력으로 들어, 내 앞에 커피를 한잔 따랐다. 그리고 들어서 마셨다. 맛있네.

마치 내집같은 편안함을 보여주는 내 모습에 살짝 자기도 모르게 눈썹을 꿈틀한 이설아는, 이내 빠르게 냉정을 되찾고는 나에게 싸늘히 말했다.

"대체 저에 대해 뭘 아시고 그러는지는 모르겠네요. 애초에, 당신이 저에게 무슨 도움을 줄 수 있다는건가요? 어이가 없네요."

요약: 나한테 무슨 도움을 줄 수 있다는건지 설명해봐라

나는 그런 그녀에게 다시 한번 피식 웃어주었다.

"제가 해드릴 수 있는건 많죠. 뭐, 나열하자면 끝이 없습니다만."

그걸 앞에서 떠벌거리면 좀 폼이 안나잖아?

나는 조용히 주머니에서 USB를 꺼내, 이설아에게 던졌다.

갑작스럽게 검은색 물체가 그녀를 향해 날아오자 살짝 움찔하면서도 공중에서 탁 낚아채는 그녀.

그녀가 USB를 손에 잡고 이게 뭔냐는 듯 나를 바라보자,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입을 열었다.

"요즘 다른 회사들 하나하나 합병하랴, 정치권도 거드리랴 바쁘신 것 같던데... 뭐, 좀 도움이 될 수 있는걸 드렸습니다. 제 작은 성의라고 봐주시면 좋겠네요."

나는 거기까지 말하고 그냥 일어나버렸다. 내가 갑작스럽게 몸을 일으키자 뭐하냐는듯 바라보는 그녀.

"일주일 뒤에 다시 오겠습니다. 그때쯤이면 제 제안을 수락해주셨으면 좋겠네요."

"저기요? 이게 무슨."

"그럼 나중에 뵙죠."

나는 그렇게 내 할말만 하고 망토로 몸을 감쌌다.

악당 특. 할말만 하고 사라짐.

그렇게 순간이동해서 사라지기 전, 마지막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늘색 머리칼, 약간 날카로운 고양이 같은 눈매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녀.

원작 후반부보다는 훨씬 앳되어 보이는 그녀를 보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정말로, 수락해주면 좋겠네. 협력.

너를 처리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선택한건데, 최소한 이정도 도움은 되야지.

그렇게 그녀의 녹색빛 눈동자를 마지막으로 내 눈에 담으며, 나는 그곳에서 순간이동해 사라졌다.

아, 이제 다시 서울까지 올라가야 하네.

존나 귀찮어.

***

"하아... "

에고스틱이 떠나간 자리.

그 앞에서, 이설아는 숨을 토해냈다.

"하. 아니 진짜, 뭐야..."

그녀는 그가 떠나고 나서야 참고있던 숨을 쉬었다.

사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정말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등이 식은땀으로 젖을정도.

갑자기 에고스틱, 그 빌런이 자신 앞에 나올줄은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애초에 늘 스타더스만 찾던 그이기에 더더욱.

그리고, 자신의 계획을 알고있는 모습을 보여줬을때는 정말 소름이 돋는줄 알았다. 어떻게? 분명 정보는 철저히, 정말로 철저히 감췄을텐데?

뭐든지 꿰뚫어 버릴듯한 그의 눈동자를 봤을때는 자신도 모르게 긴장했지만, 어떻게든 여유로운 척 하는데 성공했다.

에고스틱. 그에 대하여 그녀는 어느정도의 추측을 하고 있었다.

이설아 그녀는 태어났을때부터, 다른 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거의 때려 맞출수 있는 재능을 가졌었다. 타고난 머리와 눈치로, 다른 이들의 마음을 거의 맞출 수 있는거다.

그리고 그런 그녀가 추측하기에, 에고스틱은 애초에 빌런으로 활동하지만, 세상에 대한 적의가 없었다. 이는 히어로인 스타더스에게도 마찬가지. 오히려 빌런인 척 하며 마치 영웅처럼 활동하는 그.

그리고 일어난 일렬의 사건들과 그의 행보를 통해, 그녀는 반쯤 확신하고 있었다. 에고스틱, 그는 일종의 안티 히어로다. 능력이 아주 출중한.

그리고, 그런 그가 자신의 앞에 등장할 가능성? 그렇게 높게 치지 않았다. 그래, 아무리 그가 능력이 출중하다고 해도, 설마 거기까지 알겠어?

그리고 오늘, 이설아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그를 과소평가 했다는 걸. 그는 자신에 대해 모든걸 알고있었고, 그녀가 그를 꿰뚫고 있다는 것마저 알고 있었으며, 거기에 더해 심지어 협력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녀가 그가 자신에게 무엇을 해 줄수 있냐고 물어보자, USB 하나 던져주고 사라졌다. 자기 할말만 하고 그냥 가버린 것이다.

"하아... 진짜 뭐야...."

대체 그는 자신에게서 뭘 원하는거지? 왜 접근한거지?

애초에 에고스틱. 그는 자신이 적이 되면 굉장히 좋지 않은 상대였다.

에고스틱, 그녀는 처음부터 통찰로 그를 꿰뚫어봤었다. 빌런인 척 하지만, 실상은 모순적이게도 히어로에 닮았다는 걸. 거기에 그녀의 천부적인 눈치로 파악해 봤을때, 그의 그런 행동 은 스타더스와도 어느정도 관련이 있어보였다. 더 자세한 이유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런 그를 경계해야할만한 이유는 여러개였다.

대체 어디서 얻은건지 모르는 압도적인 정보력, 어디서 난지 모르겠는 압도적인 자금력, 거기에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 대체 어떻게인지는 모르겠지만 일종의 팬덤을 형성했는 데, 그 팬덤 규모도 규모일 뿐더러 그의 말이면 무조건적으로 믿는 엄청난 충성심을 자랑한다. 아니, 애초에 에고스틱에 대한 여론이 일반 대중사이에서도 대체로 좋다.

즉, 에고스틱 그는 개인으로써는 대한민국에서 거의 제일가는 영향력을 끼치는 존재다. 평소에 가면쓰고 하하 웃고다니니까 잘 모르는거지, 어떻게 보면 굉장히 위험하고도 무서운 존 재.

그러나, 그녀가 판단하기에는 어느정도 적의는 없고, 자신과 엮일 일도 그렇게 많아 보이지는 않기에 크게 경계하지는 않은거다. 예의주시하기는 했지만, 그뿐.

그런데 그런 그가, 갑자기 자신의 앞에 등장한 것이다.

거기에 협력이라는, 상당히 생뚱맞은 이야기를 들고...

"하아...."

이설아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대체 그는 자신의 야망을 어떻게 알고, 협력하자는건 대체 뭐지? 함정인가?

특히 그가 사라지기 전, 마지막에 보인 눈길. 계속해서 헤프게 웃던게 거짓말이라는 듯, 싸늘하게 그녀를 내려다보던 그 눈길을 생각하며 그녀는 살짝 몸을 떨었다.

....진짜 함정 아니야?

사실 그가 자신을 적대하는게 아니라면, 그녀로써는 딱히 그를 거부할 이유는 없다. 그와의 협력은 플러스라면 플러스지 마이너스는 아니니까.

....그가 자신과 진심으로 협력하자는건지 아닌지는, 이걸 열어보면 나오겠지.

그녀는 자신에 손에 들린 작은 USB를 바라보았다.

...이걸 꽂는다고 혹시나 해킹당하고 그러는건 아니겠지?

"...."

에이, 설마 그럴까

그녀는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혹시 모르니까 서브 컴퓨터에 꽂아봤다.

대체 뭐가 들어있는걸까.

그녀는 긴장하면서도 USB를 열어보았고. 그 속에는...

"...어?"

다른 경쟁사들의 비리와 허점등을 기록한 파일들이 수없이 들어있었다.

내부 정보부터 기밀 문서, 개인의 비리까지.

활용할려면 정말 수많은 방법으로 써먹을 수 있는, 그러한 문서들.

그것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던 그녀의 눈이, 살짝 빛났다.

이것들만 있으면, 그녀가 요즘 골머리를 앓던 인수합병과 관련된 일이 굉장히, 훨씬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

벌써부터 그녀의 머릿속에는 이 정보들을 이용해 다른 회사들을 어떻게 삼켜먹을지에 대한 수많은 방법들이 시시각각 떠오르고 있었으니.

"...아주 좋은 사람이었네."

에고스틱.

이제 봤더니, 진심으로 그녀를 도와줄 생각인거 같다. 위협할려는게 아니라. 이런걸 주는 사람이 그녀의 적일리가 없다. 그럼.

뜻밖에 선물에 갑자기 행복회로가 돌아가기 시작한 그녀.

똑똑하고 스마트한 자신이 판단하기에, 에고스틱은 진짜 그녀와 협력을 맺고싶어 하는, 유용한 인물인거같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를 거부할 이유는 없지 않나?

***

한주 뒤.

"그래서, 제 제안은 생각해 보셨습니까?"

"네. 뭐, 함께 못할것도 없죠."

그렇게 둘은 손을 잡았다.

나 에고스틱, 대한민국 시가총액 1위의 기업을 운영하는 미래의 흑막을 포섭하다.

'운이 좋군.'

한방에 꼬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