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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0 여론

다음날 아침.

"진짜 이제는 괜찮은거에요?"

"어어. 아, 컨디션이 다시 좋아졌다니까?"

"이상하네... 하루만에 좋아질리가 없는데... 병원가기 싫어서 억지로 나은척 하는거 아니에요?"

거실에서 나는, 자고 일어났더니 컨디션이 좋아졌다고 말해줬다.

그러나 말해줘도 다들 믿지를 않기에, 막 온 방안을 순간이동으로 슉 슉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여줬다. 아니 이게 아침부터 뭐하는건지...

"뭐야... 진짜 괜찮아졌나보네요?"

"헉, 헉. 그렇다니까. 속고만 살았니?"

"이상하네... 어떻게 그게 하루만에 나아지죠?"

어제까지만 해도 피를 토하면서 죽어가던 내가 갑자기 쌩쌩해지자 다들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내 '좋은게 좋은거지~'라는 말에 유야무야 넘어가는 분위기였다.

저쪽에서 어쨌든 다행이라며 좋아하는 남동생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 하율이만, 조용히 미소짓고 있을 뿐이었다.

오늘은 기분이 좀 나아졌나보다. 솔직히 어제는 새벽감성에 사로잡힌 괴물이 되가지구 좀 무서웠어... 그렇게 죄책감 느끼면서 자책하니까 좀 미안해졌었다고.

하긴, 다 큰 어른처럼 보여도 얘도 아직 고2밖에 안되니까. 아 이제 다음 달이면 해가 바뀌니까 고3인가?

생각해보니 이제 서은이가 지금 중3이니 다음달이면 고등학생이네. 하는건 아직도 중학생같은데 말이지. 씁.

어쨌든 날도 밝았으니, 나는 저번 테러의 결과나 보고받기로 했다.

자료정리는 수빈씨가 다 해주셨다. 아니, 요즘 애만 셋 돌보느랴 엄청 바빠보이던데, 대체 언제한거지?

결론적으로 내 이번 테러가 초래한 결과는 이렇다.

마포대교의 완전한 붕괴.

아주 그냥 기둥부터 싸그리 다 터트리는 바람에, 그냥 마치 그곳에 다리가 없던것처럼 깔끔하게 없어졌다고 한다. 잔해들을 다 치우고 다리를 새로 만들려면 몇년이 걸릴지 모르겠다고 하는 상황.

좋아. 완벽하다.

이제 그 미친 검은 촉수괴물이 만화에서처럼 닥돌해서 서울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세상 무서운줄 모르고 신나게 앞으로 앞으로 진격하다가 그대로 한강물에 꼴아박을 놈을 생각하니, 벌써 즐거워졌다. 아, 그날은 꼭 팝콘 꺼내고 생방송으로 지켜봐야지.

피폐의 시작? 그런건 없다! 앞으로 내 인생을 피폐물로 만들 요소는 미리미리 제거할거다. 스타더스를 위해서라도, 그리고 나를 위해서라도.

어쨌든 마포대교는 한 3년 뒤까지는 다리고 자시고 기둥 하나 복구시키는 것도 힘들다고 하니까, 모든 준비는 완벽하다고 할 수 있다.

그 사건이 내 기억으로는 내년 3월, 그리니까 약 4개월 후에 일어나니. 혹시 하율이 영입때 처럼 내가 시간을 잘못 기억하거나 사건이 미리 일어날 수도 있으니 넉넉잡아서 부숴놨다. 이제 두려울건 없다!

그렇게 내 목표인 다리 박살내기는 완벽하게 완료했고.

예상치못한 소식도 듣게 되었다.

"뭐? 내 욕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네 오빠. 이제는 여론이 사실상 거의 다 오빠를 욕하는 분위기에요."

"아니... 뭐, 애초에 무시무시한 빌런이 되는게 내 목표였으니까 욕은 먹을 수 있다고 쳐도. 갑자기? 배 박살내려고 하고 기차에 선로 묶고 비행기를 떨어트려도 막 빨아주더니, 이제와서?"

사람 50명을 내 마음대로 몰살 시킬려고 할때는 가만히 있더니, 이번에는 심지어 대중 참여형 투표였는데 왜지?

"이게 어떻게 된거냐면요..."

서은이가 들려준 얘기는 참 황당했다.

테러를 하고 있을때는 다들 '히히 십만원 개꿀' 이러다가, 내가 700만명이나 십만원을 타갔다는 결론을 내자, 사람들이 꽤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다들 그 짧은 시간안에 오백만명 절대 못넘긴다, 기껏해야 백만명 넘길까 말까다 하던 사람들이 전부 입을 꾹 닫고 모르쇠를 시전.

결과적으로 내 말대로 인간이 이기적이 다는게 증명된 셈이니까.

근데, 여기서 문제가 좀 이상해졌다.

외국에서 이 사건을 자기네들 나라 뉴스에 보도하기 시작한 것.

동방의 작은 반도에 있는 나라 한국에서 일어난 이번 사건을 다루며, '한국인 700만명이나 자신의 이득을 위해 테러를 일으키는 것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라고 보도하며, 인본주의(人本主義)의 실종이라고 참담하다는 뉘앙스의 뉴스를 풍겼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해서, 한국이 좀 망신거리가 됐다는 말이다. 이에 외국 네티즌들도 저 저 이기적인 것들을 보라며 쯧쯧 거렸고.

거기에 인지부조화가 온 국뽕티비들. 외국 커뮤니티에서 한국 좋아 이러는걸 퍼와서 영상을 제작해야 하는데, 무슨 한국 욕밖에 없으니 큰 충격을 받은 것이다.

그에 이 모든 일을 초래한 에고스틱에 대한 분노로 국뽕티비들이 자신의 이름값을 못하고 국뽕대사 일제히 에고스틱을 씹어대는 영상을 올리기 시작.

대충 결론은 외국인들의 이런 반응은 다 에고스틱이라는 천인공노한 패륜적인 놈 때문이며, 대한민국 국민들은 그의 농간에 놀아난 희생양이라는거다.

이 근거도 없고 논리도 없는 영상들은, 외국 뉴스를 보며 마음을 아파하던 장년층을 중심으로 빠르게 퍼졌고...

이걸 기자들이 다시 퍼와서 기사를 양산, 결론적으로 쓰레기같이 인간의 마음을 농락하는 에고스틱 때문에 자기들이 피해를 받았다는게 결론이다.

사실 자기들이 돈을 안받았으면 되는 일을, 괜히 전부 에고스틱의 잘못으로 돌리는건 그야말로 적반하장.

그 결과 나름 호감이던 에고스틱은 갑작스럽게 역적이 되어버린것.

"어...."

거기까지 들은 나는 좀 황당했다.

그래, 내가 빌런이 된 이후로 나를 좋아하는 여론에 당황했던건 사실이다.

그래서 제대로된 트루 빌런이 되기 위해 욕좀 먹고 싶다고 생각은 했는데.

이게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지니까 좀 웃기긴 하다.

"음, 뭐. 내가 계획하고 유도한 테러 때문에 일어난 일이니, 결과적으로 나 때문이 맞기는 한가...?"

"그게 왜 오빠때문이에요! 자기들이 700만명이나 했으면서 이제와서 오빠 탓하는건 말이 안되죠. 오빠가 유도를 했어요 뭘 했어요."

"맞아요! 형은 잘못 없어요!"

잠시 물을 마시고 나오던 하율이의 동생 차윤이도 옆을 지나가면서 나를 두둔해줬다. 하하...

"쩝... 근데 그럼 이제 망고단도 없나? 망고단이었던 사람들도 돌아선건가."

"아 망고단이요? 아니요. 걔네는 오히려 단결했던데요."

"단결했다고?"

이건 또 뭔얘기야?

"사람들이 오빠만 욕했겠어요? 당연히 오빠 지지하던 사람들도 욕했죠. 그러니까 오히려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 단결하던데요. 봐봐요."

그래?

나는 휴대폰을 켜서 에고스틱 공식 팬카페에 들어가봤다.

인기글로 들어가 글목록을 살펴보니, 어째 활활 불타고 있는 게시글 제목들.

*

[대체 왜 돈은 자기들이 받고 우리 망고 욕함?]

[망고한테서 10만원 받고서는 입싹닫고 욕하는거 보소ㅋㅋ]

[아 자기들이 이기적인걸 인정할것이지 왜 망고한테 ㅈㄹ?]

[학교에서 우리 망고오빠 욕하는 애들 참교육 해주고 왔다(인증있음)]

[에고스틱으로 물귀신하는 사람들 역겨우면 개추ㅋㅋㅋㅋㅋㅋ]

[실시간 우리 학교 에타... 이새끼 뭐냐?]

*

"음...."

나는 인기글 목록을 보고 침음을 흘렸다.

윗부분만 슬쩍 봐도 그냥 개판이 났네.

"하. 물론 오빠가 잘했다는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오빠 잘못만 있는마냥 몰아가는게 어이가 없다니까요."

소파에 앉아 내 뒤에서 같이 폰을 바라보던 서은이는, 이내 벌러덩 누워버렸다.

"오빠. 이번에 다리 부순게 그 다리 앞에 있는 한은그룹 애들이 실험하다가 괴물같은게 나올거라고 해서 그런거죠? 만약 괴물이 나온다면 무조건 그 다리 건너니까?"

"어? 어, 그렇지."

"하. 진짜 오빠 말대로 된다면 어떻게 될지 궁금하네요."

서은이가 씨익, 사악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서 진짜로 오빠 때문에 괴물을 막게 되면, 사람들이 그때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어라?

그러게.

무슨 내 욕이 가득한걸 보고 잠시 잊고 있었는데, 그 무슨 고층빌딩같은 괴물이 한강에 꼴아박게 되면 전국민이 보게 될거다. 그걸 숨길 수 있을리도 없으니.

뭐, 그때 되면 사람들 반응이 웃기긴 하겠네. 아니지, 오히려 내 강력한 지지자가 되어줄려나? '우연이었다'라고 주장할 내 말을 지지해줄거 같은데. 아니면 자기들만 바보되니까.

뭐, 그건 그때 알게 될 이야기.

나는 그냥 뉴스나 보면서 놀았다. 당분간 검은괴물꼴박 사건전까지는 집에서 계획이나 짜며 놀아야지.

그렇게 인터넷 뉴스를 보던 그때, 내 눈에 확 띈 뉴스기사가 보였다.

[한은그룹 기술고문 김선우 가석방 판결 후 출소.]

"오."

거기서 나는 육성으로 외쳤다.

드디어 원작대로 저놈이 깜방에서 나왔구나.

이 모든 사태에 시발점이 된 놈이자.

한은그룹의 멸망에 제 1책임자.

그리고 내가 다리를 박살내게 만든 이유, '검은괴물'프로젝트를 진행한 놈.

"저 놈이 나왔으니, 이제 시간문제겠구만."

큰거 오겠다.

***

서울. 한강 아래.

지하 깊은 연구실 안에, 하얀 가운을 입은 연구원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김선우 박사님. 복귀를 환영합니다.""

"어. 됐고. 안내해."

"옙!"

모두를 고개 숙이게 만든 사람은, 안경을 쓰고 퀭한 얼굴에 머리가 얇아 보이는, 연구복을 입은 남자.

한은그룹 기술고문이자.

비밀리에 진행되는 프로젝트, '탈 인간'의 최종 감독관이자 책임자.

김선우.

"일단 다른 놈들은 나중에 보고하고, '그것'은 얼마나 완성되었지?"

"거의 다 완성되었습니다. 이제 지성도 슬슬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좋아, 좋아. 어디보자고."

태블릿을 두들기며 나아가는 그를, 다른 연구원들이 안내했다.

이윽고 어두운 복도를 계속하여 지나고 몇십개의 철문을 통과하자.

나온것은 지하에 있다고는 믿을 수 없는 거대한 강당과도 같은 뻥 뚫린 곳.

수많은 연구원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그곳에, 육안으로 다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수조가 자리잡고 있었다.

공터의 한쪽 벽면에 있는 것은 벽이 아닌 유리. 연구원들이 있는 곳을 제외한 이 넓은 곳이 전부 하나의 커다란 수조였다.

물 대신 연녹색의 무언가 화학용품으로 가득 차있는 수조.

김선우 박사는, 조용히 앞으로 걸어가 자신 키의 몇십배는 되는 수조 유리벽에 손을 대었다.

"현재 베히모스 베타의 상태는 굉장히 안정되어 있습니다."

"그래, 그래. 그렇단 말이지..."

아련한 눈빛으로 수조 안을 바라보는 그.

녹색의 수조 안에는, 마치 커다란 집 크기의 검은색 촉수 덩어리가 몸을 말고 꿈들거리고 있었다.

"...곧, 너를 완성시켜주마. 베히모스."

박사는 불타오르는 눈으로 수조 안을 바라보았다.

그런 그의 눈은, 순수히 광기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

"응~ 베히모스 한강 꼴박 순삭 예정이죠? 5년 연구 아무 소용도 없어지고 회사도 망할 예정이죠?"

"오빠. 대체 어디서 이상한 말투를 배우다가 쓰는거에요? 그거 인터넷 방송 용어죠!"

혼자 김선우 출소 기사 보고 신나서 중얼거리다가 서은이한테 정상적인 한글 좀 쓰라며 혼났다.

중학생이 어른보고 가벼워보이는 신조어 쓰지 말고 진중한 말좀 하라고 혼내는 상황.

...이게 맞나? 어른이 중학생보고 제대로 된 말 좀 하라고 혼내는 경우는 봤어도... 그 반대는 대체...

아니 서은아, 너한테도 좋은 얘기라고.

물론 그런 나의 항변은 무시되었다.

너무해.

EP.61 검은재앙

"눈이 오네."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마지막 다리 테러를 일으킨 이후, 베헤모스의 한강 다이빙, 줄여서 한강꼴박 이전까지 시간이 꽤 남은 상황.

대략 3월쯤에 일어날 일이니, 그 전까지 나는 놀았다. 뭐. 노는건 좋은거다. 노는게 제일 좋아.

사실 한강꼴박 이전까지 다른 테러 하나 더 일으켜볼까 생각도 해봤는데.

곰곰히 생각할수록 굳이 그럴 필요가 없겠더라. 애초에 스타더스가 이미 원작시점 3년차 정도로 강해지기도 했고... 그리고 제일 중요한건 겨울이라 춥다. 12월달의 마포대교도 추웠는데 지금은 얼마나 춥겠어. 원래 테러도 날이 따뜻할때 하는게 빌런에게도 히어로에게도 좋은 법이다.

그렇게 나는 집에 콕 박혀있었다.

밀린 게임이나 해야지.

집에만 있었어도 애초에 집에 워낙 사람이 많다보니 심심할 틈은 없었다. 산골에 있는 대저택에 나, 서은이, 수빈씨, 그리고 하율이 남매까지. 총 다섯명이서 있으니.

남매는 기껏 학교를 보내자 마자 겨울방학이라고 다시 돌아와버렸다. 어라? 이게 대체...

학교 빨리 보내보겠다고 서은이를 달달 볶아 행정기록 조작하고 난리쳤던건 뭐였는지 모르겠다. 미안하다 서은아.

어쨌든 학교 물도 먹은 차윤이, 그러니까 하율이 남동생은 공부를 더욱 더 열심히 하고있다. 아니, 이제 중1 올라가는 애가 뭐이리 공부를 열심히 한데. 원래 중학생때는 다들 노는거 아니였어?

그렇게 차윤이가 열심히 공부를 한 결과, 옆에서 그걸 지켜보던 하율이마저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아니, 너는 어차피 치유능력 있으니 공부 안해도 되는데?

뭐, 하율이는 이제 고3이니까 공부 할만도 한가? 뒤늦게 책을 펼치고 수능공부를 하고 있는 하율이를 보면 전생이든 여기든 대한민국 수험생은 어쩔 수없이 공부를 할 운명인가보다. 저런...

고등학생 이후로는 길바닥을 전전하느라 공부를 거의 다 까먹은 하율이를 위해, 수빈씨가 일대일 과외처럼 붙어서 가르쳤다. 그래, 잊고 있었는데 수빈씨는 서울대다. 수능 공부에 관련해서는 우리들중에 제일 잘 안다는 소리.

잠깐, 생각해보니 수빈씨 요즘 너무 바쁘지 않나? 집안일 같은거는 돌아가면서 하니까 그렇다 쳐도, 거기에 추가로 서은이 보조, 애 둘 학습까지 봐주는데. 아니, 사실상 하율이 남매를 홀로 키우고 계시다. 누가보면 저 남매의 엄마인줄 알겠어.

저렇게 다들 바쁘게 살때 나는... 어...

뭐, 난 지금까지 열심히 했잖아? 놀아도 된다고.

물론 계속 놀기만 한건 아니다. 틈틈히 인재(人災), 그러니까 빌런들 영입 계획도 세우고, 일기도 적고...

물론 서은이랑 둘이 누워서 같이 게임한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기는 하다. 거실 소파에 앉아 함께 클리어 한 게임들만 몇십개. 몇몇 어려운 게임은 둘이서 같이 안하면 깰 수가 없더라고.

"오빠! 빨리 패리! 패리해서 저 살려요!"

"오케이. 자! 살렸다."

"휴. 얘만 잡으면 이제 클리어 맞죠?"

그렇게 빈둥빈둥 시간을 보냈다.

집에서 논것만은 아니고, 눈이 오는 날에는 밖에서 눈싸움도 하고 놀았다. 그때는 하율이 남매랑 수빈씨도 다 밖으로 끌고 나갔다. 사람이 너무 집안에만 박혀 있으면 못써, 나가 놀기도 해야지.

"악! 오빠! 이리와요!"

"싫은데? 에베베베."

"아니! 순간이동 하는건 반칙이죠!"

"후흐흐... 힉!"

"수빈씨도 거기 서있지만 말고 같이 노시죠! 에잇!"

"다인씨... 죽었어요..."

나는 그날 수빈씨가 화나면 무섭다는걸 알게 되었다.

오늘의 교훈. 가만히 서있는 수빈씨 얼굴에 눈덩이를 던지지 말자.

남매는 둘이서 돌돌돌 눈을 굴려 눈사람을 만들고 있었다. 확실히 여기가 산지라 눈이 많이 오네.

눈내리는 산골짜기는 나름의 로망이 있었다. 집 옮기길 잘했지. 지하기지보다는 여기가 백배는 나은 것 같다. 애초에 산 깊숙한곳에 있는데다가 주위에 장치도 깔아 놓아서 사람들이 가까이 오지도 않으니 우리들끼리 마음껏 밖에 있어도 되고.

물론 도심으로 갈려면 매번 순간이동 장치를 써야한다는 문제도 있지만, 그정도 수고는 충분히 감수할 만 하다.

그렇게 물흐르듯 크리스마스가 돼서, 기분 전환겸 집에 사람키 2배만한 크리스마스 트리도 놔두어 보고.

그렇게 1월, 2월도 지나며 시간은 유유히 흘렀다.

...아니, 노니까 시간이 너무 금방 가는데?

그렇게 물흐르듯 지난 시간.

산골짜기 깊숙한 곳에 박혀있으니 살짝 속세를 잊게 된 것 같다. 좋네.

가끔 스타더스가 잡다한 빌런들이랑 싸우는거 팝콘 먹으면서 구경하는게 몇 안되는 이벤트였다. 서은이랑은 다르게, 하율이 남매는 은근 싸우는걸 좋아해서 같이 봤다. 쟤네들은 스타더스를 보기 보다는 살짝 액션영화 보듯이 보는것 같았지만... 아니, 그냥 팝콘 먹는게 좋은건가?

내가 이렇게 잔잔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우리 망고단 애들은 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 같았다.

사방에서 내 음해는 계속되지, 나는 또 활동도 안하지.

미안하다, 애들아...! 그래도 곧 광명 찾을 날이 올테니 조금만 기다려!

이런 저런 일들을 하며 마침내 3월이 되었다.

차윤이는 중학교에 진학했고, 하율이는 원래 다니던 고등학교에 3학년으로 올라갔다.

애들이 적응을 잘할까 살짝 걱정했는데, 보니까 다들 친구도 잘 사귀고 지내는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둘 다 지하기지가 있는 집 근처에 여고와 공학 중학교에 각각 배정받아, 나름 잘 지내고 있었다.

생각해보니까 우리 서은이도 이제 고등학생인데 말이야.

학교 갈 생각은 없니? 라고 살짝 물었더니 자기가 거길 왜 가냐는 답변이 돌아왔다. 컴퓨터 전산망 만지작 거릴 시간도 없다고.

...뭐, 애초에 기대도 안했다. 사실 서은이가 학교 가면 좀 곤란한것도 있고. 서은이가 없으면 내 계획이 다 하자가 생겨요.

3개월이나 같이 지내다보니, 다들 서로서로 많이 친해졌다. 살짝 어색했던 하율이와 서은이도, 이제 언니 동생 하면서 친해진 모습. 역시 시간이 약이지.

어쨌든, 그렇게 3월은 서서히 흘러갔다.

그래.

이제 슬슬, 일어날 때가 됐다.

한은그룹의 야심찬 지구정복 프로젝트의 알파이자 오메가. 63빌딩만한 크기의 거대 왕꿈틀이가 튀어나올 날이 다가온다.

원작에선 서울 위쪽 모든 도시를 파괴하고 북한도 때려부쉈던 그놈이, 내가 테러 핑계로 부순 다리 하나 때문에 물에 빠져 허망하게 죽을 그날이.

아마 내가 원작을 제일 크게 비틀어버릴 이벤트.

피폐물로 돌입하는 대한민국의 운명이 바뀔 날.

그렇게 그날을 기다리며, 하루 하루를 보냈고.

마침내 어느날.

드디어 그것이, 나타났다.

***

서울, 낮.

한강을 바라보는 도심.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각자만의 일을 하고 있는 이곳은, 여느때와 다름없이 평범해 보였다.

그래, 이때까지는.

"...?"

조용하던 도시에,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진동.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 마냥 점 점 땅을 강하게 울리는 진동에, 사람들은 혼란에 빠졌다.

그렇게 몇십분동안 땅을 울리던 진동.

그리고는 뚝. 갑자기 멈췄다.

그리고.

갑자기.

한강을 마주보고 있던, 한은그룹 건물의 땅 아래에서.

그 건물을 박살내며,

검은색의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그것은 마치 검은 탑과도 같았다.

수없이 많은 촉수로 이루어져있는, 검은색 재앙.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순식간에 땅에서 솟아올라온 이 검은색 무언가는, 그대로 지상에 쿵- 하고 몸을 뉘였다.

마치 건물 사이즈로 확대시킨 지렁이처럼 생긴, 그 덩치만으로도 도시 하나는 박살낼 것처럼 보이는 그것.

갑작스러운 재앙에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혼비백산 하고 있을 때.

그것은, 갑작스럽게 소름끼치는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끄...끼이이이이이에에엙엙엙엙엙...끼이이이익...

마치 칠판을 손톱으로 긋는 소리처럼.

아기 수백명이 모여서 울부짖는 목소리처럼.

근원적 악의(惡意)가 느껴지는 소름끼치는 파열음.

서울 어디서나 들릴 정도로, 소음만으로 근처에 있는 모든 유리를 박살내는 소름끼지게 커다란, 생명체가 낼 수 없을 정도의 주파수를 내는 그것.

현세에 강림한 종말처럼 보이는 그것은, 마치 인간들을 심판하러 온, 인간이 막을 수 없는 재해(災害) 그 자체처럼 보였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대한민국의 종말이 다가온걸까.

잠시 소강상태로 있던 그것은,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했다.

앞으로, 앞으로.

마치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수많은 촉수들을 꿈틀거리며.

옆이나 뒤로 가는건 전혀 모른다는 것처럼.

도로를 갈아엎으며, 그것은 그대로 앞으로 진격하기 시작했다.

멀리서 보기에는 검은 해일처럼 보이는 그것.

몇키로미터 멀리서 봐도 육안으로 보이는 그것은, 앞으로 모든걸 박살내려는 듯 직진했다.

그렇게 앞으로만 직진하려는 놈 쪽에 있던건, 다름아닌 한강.

놈이 가는 그 길목에는 다리가 딱 있었다.

아니, 있었었다. 지금은 없다.

근데 그게 얼마전 어떤 테러범이 박살내는 바람에, 그냥 텅 빈 허공에 강만 넘실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무시무시하고, 한국을 멸망시키게 생겼고, 그 어떤 히어로가 나서도 막을수가 없을 것 같던 괴수는 한강으로 그대로 돌격했고.

그대로 물 속으로 빠지더니.

"끼에에에에에엙엙엙엙엙엙!!!!!!!"

갑자기 소름끼치는 비명을 지르며, 물이 무슨 산성액이라도 되는 마냥 녹아버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리고.

끝났다.

".....?"

갑작스럽게 돌아온 평화.

조금전까지만 해도 서울에 있는 수천만명에게 들리는 끔찍한 소음을 내고, 마치 파괴신처럼 보이는 대재앙이었던 그것은.

그렇게 황당하고 갑작스럽게, 마치 아무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놈이 튀어나오는 바람에 박살 난 건물과 갈아엎어진 땅, 그리고 검은색으로 물들은 한강만이 방금 전까지 여기 무언가가 있었다는 걸 증명할 뿐이었다.

그렇게 갑자기 튀어나온 재앙은 5분만에 등장했을 때처럼 갑자기 사라졌다.

사건 끝. 문제 해결!

"야, 참 쉽다."

소파에 누워 팝콘을 와작거리며 티비로 광경을 보던 나는 그렇게 말할 뿐이었다.

음, 지방 산골짜기에 있으니까 소리도 안들리고 좋네.

앞으론 지방 집값이 오르지 않을까? 서울은 저렇게 위험합니다 여러분!

옆에서 나랑 같이 팝콘을 먹고 있던 서은이만, 팝콘을 먹는것도 잊은 채 입을 헤 벌리고 티비 화면을 바라볼 뿐이었다.

"아니, 아니. 아니 잠깐만. 오빠, 방금 큰일날 뻔한거 아니에요?"

음, 저놈 포스가 좀 어마무시하기는 했지.

그래도 뭐, 원작에서도 서울 한강 위쪽이랑 경기도, 북한을 개박살 내는거 빼고 나머지 동네는 별 문제 없었다.

아. 그게 큰일난거구나.

"뭐, 막았으면 됐지."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할 뿐이었다.

뭐 건물 하나 부서지긴 했는데, 금방 진압됐으니.

사람들이 놀라지는 않았겠지?

***

[시발 방금 뭐 였냐ㆍㅡㄷㄱㅂㄷ]

아니 ㅅㅂ진짜 죽눚ㄱ둘 알았네

종로사는데 저거 ㅅㅂ 왛으며ㆍ 나 그냣 죽늑너 아니였나?

아직도 손발이 ㄱㆍ부들부들 떨리는듸ㅣ어떡하냐

소리 ㅅㅂ 지구가 멸ㄱㅈ망하는줄알았다.

=[댓글]=

[당신을 살려준 망고스틱에게 감사하십시오. 그가 다리를 부수지 않았으면 당신은 이미 죽은 목숨입니다.]

ㄴ[이왜진?]

***

솔직한 바람으로는 그냥 다들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넘어가줬으면 좋겠는데.

나 여기에 엮지 좀 말고.

"어, 오빠. 실시간 트렌드 10위에 에고스틱 진입했어요. 위에는 다 괴물 마포대교 한은그룹 이런거고요."

음, 역시 그럴리가 없겠지?

하하하하하.

EP.62 재평가

[망고스틱이 다리를 부수지 않았으면 일어났을 일들....real fact]

오늘은 이번에 서울에서 일어난 검은 촉수덩어리 사태(a.k.a.검은괴수)에 대하여 알아보겠다.

검은괴수가 영등포구에 있는 한은그룹 본사에서 출발, 그대로 일직선으로 마포대교를 건너 직진했다고 치면.

서울 한강 위쪽 마포구, 중구, 종로구, 성북구, 강북구, 노원구 괴멸적 피해 (추정 사망자 몇십만명 예상).

의정부, 포천, 철원도 개박살.

더 나아가서 북한, 중국, 러시아도 큰 피해를 입었을거라고 추정됨.

그리고 더 무서운건 뭔줄 알음?

미국 히어로 협회가 이번에 발표한 자료에 이렇게 적혀있다.

'Korean-Black Disaster(검은재앙)의 초반 행동이 찍힌 영상에 따르면, 이 생명체는 어느정도 지성이 있어 보인다. 초반에는 아직 완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해 마구잡이로 직진한걸로 보이나, 나중에 완전히 지성을 깨우친 이후로는 능동적으로 다른 방향으로 향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냥 쉽게 말해서 한은그룹 이새끼들이 크툴루를 만들었다고 보면 됨. 실제로 미국 네티진들은 저거 크툴라나 웜이라고 부르더라.

분석하기를 미국 S급 히어로 두세명 정도 달라붙어 하루종일 싸워도 이길까 말까라는데, 진짜로 저게 물이 약점이라 다행인거임.

근데 약점이 있어도 문제는 지성이 있어보인다는거였음. 애초에 지성이 없이 직진만하는 새끼면 비만 맞아도 죽을테니 어떻게든 처리된다 쳐도, 지성까지 생기면 걍 노답임. 쟤가 히어로 피해다니면 S급들 와도 처리하기 힘듬.

그리고 나중에 없앤다쳐도 이미 그때쯤이면 서울 위쪽이랑 경기도랑 북한 사람들은 다합쳐서 몇백만명 죽었을듯ㅇㅇ

결론: 망고스틱을 찬양하라

[추천]1255 [비추천]6

=[댓글]=

[이미 망고단인가 거기 에고스틱 팬카페에서 찬양 오지게 하던데ㅋㅋㅋ]

ㄴ[ㄹㅇ욕 오지게 먹던 망고단 개같이 부활ㅋㅋㅋㅋ]

[나 서울사는데 시발 진짜 죽는줄 알았다니까. 존나 멀쩡히 있는데 무슨 사이렌 울리듯한 크기의 소름끼치는 비명이 천지에서 진동하는데, 지구 멸망하는줄 알았음.]

[ㅅㅂ이번에 올라온 검은새끼 이동경로 봤는데 딱 내집이 정확하게 경로에 있더라ㅋㅋㅋ 걍 이대로 인생 하직할뻔]

[진짜 지금이야 저새끼가 존나 허무하게 디졌으니까 다들 웃으며 얘기할 수 있는거지, 저새끼 살았으면 이미 수십만명 죽고 국가 비상사태 선포함]

[여의도에 있었는데 존나 무섭긴 하더라ㅇㅇ... 마트에 있었는데 갑자기 하늘이 진동하며 유리잔 긁는 비명소리나는데 애들 다 울고 오줌지리고 난리도 아니었음]

[정부랑 협회도 ㅈㄴ놀라서 계엄령 선포할려고했던 카더라도 있더라ㅋㅋㅋㅋ]

[난 이제 이미 디진 그 괴물새끼보다 에고스틱이 더 궁금함. 이새끼 ㄹㅇ 미래에서 온 S급 히어로 애플망고 아니냐?]

ㄴ[이제 -틀-들도 인정해야지. 에고스틱은 히어로다.]

ㄴ[협회새끼들 일 존나 안함. 아직도 에고스틱 전산오류로 빌런이라고 되어있더라;;]

ㄴ[ㄹㅇㅋㅋ 이새끼들 직무유기하네]

***

세계에서 제일 강한 히어로들이 모여있고.

그만큼 악랄한 빌런들이 모여있으며.

히어로 협회의 힘과 정보력도 제일 막강한 곳, 미국.

한국 협회가 갑작스러운 사태에 얼이 빠져서 무슨 대국민 메세지를 '이제는 문제가 없는걸로 보이니 국민 여러분은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해주십시오'만 반복하고 있을 때, 제일 먼저 해당 사건에 대한 보고를 내놓은건, 지구 반대편에 있는 미국 협회였다.

Black Disaster라고 그것을 이름붙인 미국 협회.

그리고 그것은 역수입돼, 한국 협회도 '검은재앙'이라고 그날의 사건을 공식적으로 이름붙였다.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트렸던 이 사건.

서울 전역에 소름끼치는 소리를 울리고, 약간 꿈틀하는 것만으로도 건물을 무너트리는 괴물이 땅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일은, 아무리 빌런들에 의해 갑작스러운 테러에 익숙해있던 한국인들도 당황스러웠던 것이다.

실제로 그 시간에 마포구에 있는 바람에 '그것'을 육안으로 목격한 이들은, 하늘을 가리던 그 무시무시한 모습에 코스믹 호러를 느끼고 정신질환을 호소하기도 했으니.

그나마 첫 등장때의 그 압도적인 포스와는 다르게, 굉장히 허무하게 사라져서 어안이 벙벙해진 사람들이 많았지만. 뭐, 좋은게 좋은거 아니겠는가.

그럼 이제 원인을 찾아야한다.

대체 지하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길레 저런게 튀어나왔나.

뭐? 한은그룹 본사 지하에서 튀어나온 놈들이라고? 한은그룹 윗대가리들 다 불러봐! 미친새끼들 아니야 이거.

...뭐? 한은그룹 임직원들이 전부 연락두절상태라고?

이새끼들이?

그렇게 한은그룹 사장부터, 핵심 인사들중 한명인 김선우 박사를 비롯한 많은 인물들이 사라져 지명수배 상태가 되었다. 그러나 대체 어디로 도망갔는지 도저히 찾을수가 없었지만.

그렇게 대한민국 국내 굴지의 대기업 중 하나이던 한은그룹은, 하루아침에 망해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전후사정까지 어느정도 파악되고, 시간도 흘러 공포심이 많이 희석된 사람들은 다른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와. 저게 강에 빠져 죽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했구나.

어라? 원래 그놈이 가는 길목에 다리가 있었데.

근데 그 다리가 부서져있는 바람에 그게 죽은거래.

근데 그걸 누가 부쉈지?

아! 에고스틱이 무너트렸었지.

많고 많은 다리중에 놈이 에고스틱이 딱 무너트린 그 다리를 '우연히' 건널려고 했고, 거기를 에고스틱이 '우연히' 무너트려 못건넌거라니.

이렇게 우연히...?

우연이...2번?

잠깐. 아니, 상식적으로 생각해봤을때.

이게 우연이... 맞나?

[이게 어떻게 우연임ㅋㅋㅋㅋㅋ]

어떤 커뮤니티에 올라온 제목대로, 그래.

사람들은 이게 우연이 아닌, 의도된 일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대하여 생각해보기 시작했고.

저 다리를 미리 무너트려, 결과적으로 대한민국을 구한게 되어버린 에고스틱.

그에게 전국민의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다.

그에 관하여 올라오는 수많은 추측들.

[S급 히어로 애플망고님... 지금까지 오해해서 죄송합니다ㅜㅜ]

에고스틱은 사실 빌런 코스프레를 하던 히어로라는 썰과.

[망고스틱좌 예지능력 있는거 같으면 개추ㅋㅋㅋ]

사실 그가 미래를 보는 능력을 가졌다는 썰.

[딱보면 모름? 해킹으로 한은그룹 저새끼들이 저런 짓 하고 있던걸 미리 알고 저지한거지ㅋㅋㅋ]

한은그룹에서 저런 사고가 벌어질걸 추리하고 미리 끊었다는 썰까지.

마포대교 붕괴 사태를 우연이 아닌, 에고스틱의 의도로 보는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은.

그가 대한민국을 구해내기 위해 전에 마포대교 테러를 일으켰다는 점이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에고스틱은 국격을 훼손시키는 천일공노할 빌런이며, 그를 빠는 자들은 전부 민족의 배신자로 몰아가던 여론은.

하루아침에 손바닥 뒤집듯 바뀌어버렸다.

유튜브만 키면 느낄수 있을 정도로.

[에고스틱에 대한 당신이 모르던 신기한 15가지 사실들.]

[집중탐구)에고스틱은 히어로인가 빌런인가?]

[MZ세대 에고스틱에 관한 여론조사 결과... 92프로가 '호감간다', 압도적인 지지.]

[에고스틱 동상을 세워야한다는 청원 등장... 대체 그의 인기는 어디까지?]

[요즘 20대 편의점 인싸템은 이것? 망고스틱 제가 직접 먹어보았습니다.]

[일본 협회장, 마침내 눈물! '에고스틱같은 빌런이 존재하다니, 한국은 정말로 축복받은 곳입니다.' 동방예의지국 한국은 빌런마저도 나라를 생각한다? 전세계에 도는 K-빌런 열풍에 대한민국 정부의 외교적 위상이 높아지다!]

***

"안녕하세요. 9시 뉴스입니다. 오늘은 요즘 세간의 화제인 빌런이 있죠. 오늘 9시 뉴스, 시작은 에고스틱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여기, 서울대 초상능력학 박사 전원봉 박사님 나와계십니다. 박사님, 안녕하십니까."

"예, 안녕하세요."

"요즘 에고스틱, 이 빌런이 언급이 안되는 날이 드물 정도인데요. 그를 지지하는 팬들의 별명인 '망고단'의 회원수가 폭발적으로 늘고있다고 합니다. 왜 그가 갑자기 이렇게 뜬겁니까?"

"네 에고스틱. 염동력과 순간이동이라는 이중능력을 가진 능력자이자 테러만 4번 일으킨, 이미 대중에게도 꽤나 알려진 빌런입니다. 그런 그가 최근에 다시 이름을 알리게 된건, 통칭 '검은재앙'이라고 불리는 사태 때문입니다."

"검은재앙, 그건 한은그룹이 일으킨 일 아닙니까? 에고스틱이 이번 일과 무슨 상관이 있는겁니까?"

"정확히는, 에고스틱이 테러로 무너트린 다리가 이 재앙을 저지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했죠. 다리가 있었다면 그 괴수가 정확히 그걸 건너 서울 위쪽으로 진격 했을 테니까요. 결과적으로만 보자면 에고스틱 덕분에 재앙을 피했다고도 말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아. 그런데 그건 완벽한 우연 아닌가요?"

"네티즌들은 다르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가 예지능력도 있어서, 대한민국을 구하기 위해 미리 알고서 다리를 부쉈다는 낭설도 돌아다니더군요. 예전에 에고스틱으로 추정되는 S급 히어로 애플망고가 몽키스패너의 테러를 막은것이, 네티즌들의 이번 추측에 근거가 된듯 합니다."

"그럼 박사님은 다르게 생각하시는겁니까?"

"예. 예지능력이 있다는건 말도 안되죠. 그것보다는 이게 아예 기막힌 우연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근데 저는 개인적으로, 에고스틱이 미리 알고 막은게 맞다고 봅니다. 단, 예지능력이 아닌 일로요."

"그 뜻은..?"

"아마 한은그룹 지하에서 무언가의 실험이 대략적으로 진행되는걸 안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가 보여줬던 해킹능력을 보면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띠릭.

꾸욱.

거기까지 듣고있던 신하루는, 그만 티비를 껐다.

더이상 들을 필요도 없었다.

투욱.

소파 등받이에 몸을 뉘인 그녀는, 눈을 감고서 천천히 생각해보았다.

에고스틱.

사적으로 다른 빌런들 사살. 서로를 보고 죽이라고 한 테러. 기차에 선로를 묶고 사람을 치게 한 테러. 퀴즈를 못맞춘다고 비행기를 떨어트리던 테러. 돈을 받아가면 다리를 떨어트린다고 한 테러.

그가 일으킨 수많은 테러들은, 그를 확실하게 빌런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아무도 죽지 않는 테러, 신분을 노출하지 말라던 충고, 자신의 추종자들이 일으킨 테러 진압, 다른 빌런들 사살, 비행기를 구하라며 자신에게 보낸 믿음 , 애플망고라면서 막은 테러, 다리에서 떨어지던 자동차를 막은 일.

그리고 이번, 재앙까지 막은 일까지.

그러면 이러한 일들은, 그를 무엇으로 규정한다는 말인가.

그래.

이정도면 그녀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놈은 과격하고, 반사회적이며, 오만하고, 예측할 수 없고, 다른 빌런들을 아무렇지 않게 죽인다.

또한 테러도 일으켜 대중에게 위협을 가하고, 어쩌다가 나설 때는 자기가 꼴려서라고 답하지만.

결과적으로, 따지고보면.

그 누구도 죽이지 않았고, 시민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빌런들을 제거하고, 무언가의 테러가 벌어졌을때 자기를 자극해서, 언급해서, 심심해서라는 명목하에 나서서 막았다.

"....."

그녀는 인정했다.

뭘?

이제 자기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것을.

"하아..."

늦은 밤.

그녀의 집 옆쪽에 있는 창문으로 고요히 비춰오는 달빛.

그 아래에서, 그녀는 혼란에 빠진 한숨만을 쉴 뿐이었다.

그녀가 히어로로 활동한지 벌써 몇년.

그러나 지금의 그만큼, 그녀를 혼란스럽게, 또 신경쓰이게 만든 빌런은 아무도 없었다.

"에고스틱."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입밖으로 그 이름을 꺼내봤다.

에고스틱이라, 참 웃기지도 않는 이름이다.

근데 너는.

너는 대체 뭐길래.

빌런 주제에, 그냥 빌런이면서.

나를 이렇게 신경쓰이게 만드는거냐.

EP.63 기분 탓

나는 폰을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어떻게... 내가 다리 부숴서 사고를 막아낸게 우연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지..?

모두가 내가 모든걸 알고 다리를 부순거라고 확신하는 상황. 참으로 곤란하다.

아니, 전까지만 해도 막 날 억까하더니, 왜 이제는 억빠를 하고 그러는거야?

...사실, 쟤들 추측대로 내가 다 알고서 부순게 맞긴 한데. 어떻게 확신까지 하는지는 미스터리다.

아무리 생각해도 애플망고 사건 때문이야. 그때 정체만 제대로 숨겼어도.

내 팬카페에 이런 글이 올라오지는 않았을거 같은데...

*

[오늘부로 망고스틱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다.]

오늘부로 망고스틱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다.

오늘부터 지지관계에서 벗어나

망고스틱과 나는 한몸으로 일체가 된다.

망고스틱에 대한 공격은 나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

세상에 70억명의 망고단이 있다면, 나는 그들 중 한명일 것이다.

세상에 1억명의 망고단이 있다면, 나 또한 그들 중 한명일 것이다.

세상에 천 만명의 망고단이 있다면, 나는 여전히 그들 중 한명일 것이다.

세상에 백 명의 망고단이 있다면, 나는 아직도 그들 중 한명일 것이다.

세상에 한 명의 망고단이 있다면, 그 사람은 아마도 나일 것이다.

세상에 단 한 명의 망고단도 없다면, 나는 그제서야 이 세상에 없는 것이다.

망고스틱, 나의 사랑.

망고스틱, 나의 빛.

망고스틱, 나의 어둠.

망고스틱, 나의 삶.

망고스틱, 나의 기쁨.

망고스틱, 나의 슬픔.

망고스틱, 나의 고통.

망고스틱, 나의 안식.

망고스틱, 나의 영혼.

망고스틱, 나.

=[댓글]=

[어질어질하네요]

[이 글 보고 동네 과일가게 가서 망고 풀매수했다]

[인기글 가자]

[망고를 국회로]

[지지합니다]

[대한민국은 망고가 지키고 있어요]

[이 글만 봐서는 여기가 에고스틱 팬카페인지 망고 먹방하는 사람들 모임인지 구별이 안가네ㅋㅋㅋ]

[이거 망고 바이럴이네ㄷㄷ 델몬트 네 이놈들!!]

[망하하하하하]

*

서은이가 보여준 팬카페 글은, 참 어질어질했다.

아무리 나 좋아하는 사람들만 모인 팬카페에 올라온 글이라고 해도 좀....심하지 않나?

무슨 사이비 종교에 신이 된듯한 기분.

그래, 뭐. 내 지지자들이야 힘든 시기를 보냈으니 그럴 수 있다고 쳐도.

더 악질은 서은이었다.

"망고스틱, 나의 빛. 망고스틱, 나의 영혼..."

"악! 그만해라!"

"왜요, 재밌는데. 망고스틱, '나'!"

"제발... 그걸 굳이 육성으로 말하지는 말아줘..."

한가로운 낮.

거실에서 한적하게 뒹굴거리고 있던 나는, 갑자기 정신공격을 당하기 시작했다.

아니 내 팬카페는 왜 들어가보고 그러는거야?

"수빈씨, 살려주세요! 이 콩알만한게 절 계속 괴롭히네요."

"뭐요? 콩알?"

"뭐가, 콩알 맞잖아 악!"

"염동력 쓰지마요. 쓰기만해봐."

"콩알을 콩알이라 부르지 못하고... 알았어 알았어!"

"이리로 안와요?"

서은이가 휘두르는 방석을 피해 도망친 나는, 웃으면서 메론을 깎고있던 수빈씨가 있는 부엌으로 달려갔다.

애가 난폭해졌어. 아무래도 잘못 키웠나봐...

휴우, 어른인 내가 참아야지.

"하하, 그만 놀고 와서 과일이나 드세요. 서은아, 과일먹을래?"

"네 언니."

나한테는 쌍심지를 키더니만, 수빈씨에게는 사근사근한 서은이였다.어째서 나한테는...!!

"이제 슬슬 애들이 올 시간인데..."

수빈씨가 중얼거리던 떄, 딱 맞춰 계단을 타고 올라오는 아이들.

"다녀왔습니다~."

교복을 입은 채, 학교에서 돌아온 남매.

그런 그들을 보며 서은이는 손을 흥들어줬다.

"언니, 차윤이. 왔어요?"

"애들아, 손씻고 와서 과일 먹으렴."

"네~."

손을 씻으러 종종 가는 아이들.

나는 조용히 그 광경을 지켜보다, 옆에서 메론을 우물거리고 있는 서은이에게 조심히 물었다.

"서은아, 너는 진짜 학교 갈 생각 없어?"

"네에?"

메론을 먹다말고 무슨 소리냐는 듯 옆을 흘겨보는 서은이.

입안에 든 메론을 빠르게 오물거리고 꿀꺽 삼키더니, 서은이는 나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또 그 소리에요? 저는 딱히 학교 갈 생각 없다니까요. 어차피 거기서 가르치는거 다 아는데 거길 왜가요, 시간만 아깝게."

"아니 그래도, 학교를 꼭 공부하러만 가는건 아니잖아. 가서 친구도 사귈 수 있고..."

이어지는 내말에, 서은이는 좌우로 고개를 흔들더니 대꾸했다.

"됐어요. 제가 가면 오빠는 누가 도와주겠어요? 해킹도, 자금 운용도, 구체적인 테러 실행방안도 다 제가 짜는데."

음, 맞긴해.

그래도 나 때문에 학교도 못가고 나랑 같이 집안에만 콕 박혀있는게 미안해서 그러지.

그런 내 기색을 읽은걸까.

서은이는 입을 오물거리더니, 살짝 작은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그리고, 어차피 저는 다른 사람은 필요없어요. 오빠랑 수빈 언니만 있으면 충분하니까..."

거기까지만 말하고는 얼굴이 붉히며 옆으로 고개를 휙 돌려버리는 서은이.

아니.

너무... 너무 귀엽잖아!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서은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에구, 우리 서은 어린이. 오빠랑 언니만 있으면 충분해요?"

"이씨. 조용히해요! 그리고 쓰다듬지 마요."

얼굴은 붉힌 채 말은 그렇게 하면서, 고개는 은근슬쩍 내가 쓰다듬기 편한 방향으로 돌리는 서은이였다.

아니, 너가 고양이니?

이런 애가 이제 고등학생이라니, 믿을 수가 없다.

서은아. 역시 너는 고딩보다 중딩이 어올려.

그렇게 서은이의 머리를 잠시 쓰다듬으며, 나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뭐. 어차피 내 계획은 이 큰집에 사람을 꽉 채우는거니까, 앞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기회는 충분할것이다.

...근데 앞으로 올 사람들이 다 유사 빌런들인데, 이거 괜찮을려나?

생각해보니 서은이도 원작에서는 빌런이었으니까? 괜찮겠지?

그래도 서은이는 이번에 한은그룹이 쫄딱 망한거보고 기분이 좋아져서 다행이다. 수빈씨의 표정은 약간 미묘했지만...뭐, 좋은게 좋은거지. 이제 김선우를 필두로 한 잠수탄 임원진들만 처리하면 될거다. 근데 그건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 한은그룹의 보물이나 털어먹어야지.

한은그룹의 베헤모스 프로젝트.

인간을 초월할 수 있는 생명체, 한마디로 생체병기를 만들겠다는 야심찬 프로젝트다.

예전에 인간을 후천적으로 초상 능력자로 만들겠다며 생체실험으로 인간들을 갈아넣으며 했던 프로젝트를 대차게 말아먹고, 그들이 새로 추진한 계획.

인간에게 초능력을 주기 보다는, 일단 초능력을 가진 생명체들로 군대를 만들겠다는 것.

한마디로 괴물 군대를 만들려고 했다는 소리다. 한국정복이라도 하고 싶었나보다.

어쨌든 그렇게 이것 저것 다양한 괴물들을 만들었다.

막 몸이 칼같은 괴물, 순간이동하는 괴물, 불꽃을 쏘는 괴물, 눈알이 10개 등인 괴물들....

얘네들의 문제는, 어... 아무래도 인공적으로 만들다보니 생긴게 다 끔찍하게 생겼다. 고어같은 느낌? 하여튼 발랄한 느낌이 아니라 지옥에서 올라온, 약간 만들어지다 만 실험체느낌이다. 죽여줘...라고 말할 것만 같은 느낌?

어쨌든 그러다가 걔네들이 딱 만든게 베히모스였다. 무려 한국 정복의 제일 큰 문제인 섀도우 워커의 어둠을 막을 수 있으며, 내구성이 심각한 다른 실험체들과 다르게 핵폭탄도 견딜 수 있는 기적의 물질로 몸이 구성된 생명체.

바로 유레카를 외친 놈들은 그것을 복사해 마구마구 키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조그만했던 원본과 달리, 증식으로 키운 그 검은 왕꿈틀이를 그들은 베헤모스라고 이름붙였다. 히나 헤나 뭔 차이인지...

어쨌든 그렇게 한국정복의 야망을 품고 열심히 만들었던 그것의 문제는, 다 좋은데 물에 약하다는거다. 그리고 이건 진짜 심각한 문제였다, 3면이 바다로 둘러쌓여있고 장마도 긴 나라에서 물이 약점이라니?

그래서 그들은 그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참 여러가지 시도를 했었다. 더, 더! 조그마한 물 정도로는 흠집도 안나게 크기를 무식하게 키우고, 이것 저것 하던중.

얼래. 이놈이 자의식이 확고해졌네?

그렇게 그놈은 탈출했다. 다 박살내고.

다행히 나로 인해 강에 꼴아박기는 했지만.

어쨌든 결론은 이거다.

한은그룹 지하는 지금 마굴이 되어있다. 베헤모스 그 미친 왕꿈틀이가 다 부수면서 올라와, 다른 괴물들을 막고있던 장치가 거의 망가졌거든.

그래서 온갖 괴물들이 떠돌아다니고 있다. 다행히 최후의 보안시스템만은 어떻게 안뚫려서 차폐막으로 다 지하에 가까스로 가둬두기는 하고 있지만.

그리고 나는, 그 미궁에 들어가 볼 생각이다.

"손 다 씼었어? 와서 좀 먹을래?."

"네 언니."

"네 누나!"

"읏."

내가 서은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상념에 빠져있는 사이, 그새 하율이랑 차은이가 손을 다 씻고 이쪽으로 다가왔다. 화들짝 놀라 내 손을 치우는 서은이는 덤. 얘가 은근 부끄러움도 잘 타.

"잘먹겠습니다~"

밝게 웃으며 메론을 포크로 집어 자기 동생에게 먼저 건네주는 하율이를 보며, 나는 다시 상념에 빠졌다.

괴물들이 가득한 한은그룹 지하.

그 미궁 제일 깊숙한 곳에는, 보물이 숨겨져있다.

바로 거대 왕꿈틀이의 원형, 베히모스.

작고 검은 촉수들로 이루어진 그 조그만한 놈은, 아직 거기에 갇혀있다.

음? 걔 그냥 단순히 검은재앙의 미니 버전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완전히 다르다!

얘는 자의식이 없이 그냥 인간에 말에 따르게 만들어져서, 말이 촉수지 그냥 검은색 나노 슈트같은 느낌이다.

입고 착용하는 것처럼, 싸울때 오른쪽에 결집시켜서 오른손을 강화하기도 하고, 그걸로 검은 날개를 만들어서 날아오르기도 하고.

말 그대로 자유자제로 움직일 수 있는, 촉수로 이루어진 입자-슈트같은 거라고 할 수 있다.

원작에서는 몇달 뒤에 몰래 숨어든 김선우 박사가 그걸 다시 탈취해, 스타더스랑 나중에 싸우게 되는데.

싸움 도중 그가손을 쫙 뻗자 몸에 붙은 검은 물질들이 주먹의 모양으로 뻗어져 나가던 모습은, 마치 사나이의 로망 로켓 펀치.

...물론 그것보다는 '내 오른손에 흑염룡이 있다...'할때 오른손이랑 더 비슷하긴 했는데, 어쨌든.

그래. 나는 그걸 갖고 싶었다.

안그래도 염동력이랑 순간이동 가지고는 몸 하나 지키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그걸 갖게 되면 훨 낫지 않을까? 적어도 총맞고 비명횡사할 일은 줄어들거다.

물론 이건 단순한 소망일 뿐, 너무 위험해서 시도할 생각은 없었는데. 저 미궁에 들어가는건 조금...

그러나 최근에 하율이를 영입하고, 생각이 바뀌었다.

어차피 다쳐도... 죽지만 않으면 쟤가 치유해 주면 되는거 아니야? 그치?

그러니까 음, 몸을 막굴려도 되는거 아닐까?

그렇게 결심한 것이다.

그래, 가자. 괴물들이 우글거리는 지하미궁에 들어가, 검은 슈트를 탈취해 오는거다.

나도 파워업좀 해보자고!

원작 대로라면 히어로들도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협회가 반대해서 거기로 내려가지 않는다.

다행이라고 할 수 있지. 거기서 혼자 열심히 탐사하고 있는데, 갑자기 스타더스라도 만나봐. 진짜 갑분싸 되는거다.

내 계획은 완벽해!

시기는 빠를수록 좋으니, 당장 내일 간다.

막 일이 꼬이고, 그렇게 되는 일은 없겠지?

예를 들어 원작과 달리 스타더스가 그 지하로 내려가는 바람에, 거기서 딱 마주친다던가.

하하, 나도 말도 안되는 소리를. 그런 일이 벌어질리가 없잖아?

세상이 나를 그렇게 억까할리가.

***

"알겠네. 스타더스, 자네의 한은그룹 지하 탐사 작전을 승인하지. 언제 출발할 생각인가??"

"바로 내일 갔다 오겠습니다."

"....그래. 알겠다."

***

"오빠, 왜 몸을 떨어요?"

"응? 아. 아무것도 아니야."

식탁에서 애들과 메론을 먹던 나는, 무언가 불길한 기분에 몸을 떨었다.

뭐지, 근데 뭔가 쎄한데...

기분 탓이겠지?

EP.64 지하라는 이름의 미궁

"스읍, 네. 저는 못 들어갈 것 같습니다. 거기 벽에 붙은 검은색 무언가가 제가 어둠을 쓰는걸 막더라고요. 그림자이동 하기도 힘들어보입니다."

"알겠네. 김선우 박사라 했나? 그 새끼는 대체 뭘 만든건지..."

"협회장님, 저도 가면 안돼요? 우리 하루 혼자 보내기는 너무 위험한데!"

"아이시클. 말했지 않나. 거긴 너무 위험해. 자네가 무력이 있어도, 기습에는 취약하지 않나? 자기 방어가 약한 상태로 들어가는건 도박일세."

협회 최고층에 있는 회의실.

협회장과 A급 히어로 3명, 그리고 최고위계의 간부들만 모인 그 회의실에서는, 한창 열띤 토론이 일어나고 있었다.

"히잉... 아니 그럼! 하루 혼자 거기 가는건 말이 되고요?"

"하아... 나도 계속 반대했네. 근데 스타더스가 자꾸 고집을 피운거라네. 아이시클 자네가 말려보던가."

"하루야! 거길 갑자기 왜 들어가? 이미 안전하게 봉쇄도 됐는데 굳이 거기 급하게 들어갈 필요 없잖아?"

자신을 보며 칭얼거리는 설아의 모습에, 하루는 잠시 말을 골랐다.

자신이 왜 거기를 들어가는가.

이유는 많다.

"설아야. 거기 안전장치가 언제 풀려 괴물들이 빠져나갈지 모르잖아. 미리 처리해 두는게 맞지. 그리고 한은그룹 걔네들이 또 뭐 더 숨기는게 있을지도 모르니까 자료 확보도 해보고."

"힝..."

차마 반박을 못하고 투덜거리는 설아를 보며, 하루는 뒷말은 삼켰다.

사실 자신도 굳이 이렇게까지 급하게 가볼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예전보다 강해진 자신의 힘은, 거기에 가서 뭔 일이 벌어져도 몸은 성히 챙겨 돌아올 수 있다는 확신을 줬고.

그리고.

그녀는 살짝 초조하기도 했다.

사실 신하루 그녀는 어느정도 자신감이 있었다.

서울에 있는 빌런들은 거의 다, 자신이 처리할 수 있고 테러도 막을 수 있다는 자신이.

실제로 에고스틱 그놈을 제외한 모든 빌런은 자신이 검거해서 감옥에 쳐박아버리기도 했고... 에고스틱이 일으킨 테러도, 어쨌든 막는데는 성공하지 않았었나.

그래서였을까.

그녀는 이번에 일어난 재앙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만약에 에고스틱이 없었으면 대체 희생자가 몇만명이 나왔을지 끔찍할 뿐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한낱 빌런보다... 무용했다는 것을.

히어로인 자신도 못한 일을, 빌런이 사실상 대신 해결해준 것.

생각해보면 이번만이 아니다.

저번에 엘리게이터맨이라는 빌런이 일으킨 테러도, 에고스틱이 없었으면 더 큰 피해가 있을 뻔했다.

'이래서는 안돼.'

실제로 그녀는 약간 초조해 지기도 했다.

빌런보다 못한 히어로라니. 그런건 있을 수 없다.

사후처리라도 똑바로 해야, 히어로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지 않겠나.

"그래도 시간 좀 들여서 있다가 가는게 어때...?"

아이시클이 소심하게 건낸 한마디에, 옆에 있던 섀도우워커가 슬쩍 끼어들었다.

"어차피 내가 거기 들어갔을때 보듯, 아주 깊숙히 들어가면 전파가 안 터져서 시간을 끌어봤자 의미가 없기는 해.. 이왕 들어갈거면 더 늦기 전에 빨리 가는게 맞을거 같은데..."

결국 최후의 반론도 기각당한 아이시클은, 걱정된다는 듯 스타더스를 바라보았고.

스타더스는 아이시클에게 안심하라는 듯 미소를 지어줄 뿐이었다.

그래. 지하.

거기서 한은그룹, 그들이 대체 무슨 짓거리를 했던건지, 그녀는 기필코 밝혀내고 말 것이다...

"자, 그럼 계획이나 세워보자."

그렇게 히어로 협회 최상층은, 밤늦게까지 불이 꺼지지 않았다.

바로 내일 이루어질, 스타더스의 한은그룹 지하 공략에 대해 회의하며.

***

서울 지하 깊은 곳, 에고-베이스의 회의실.

깜빡이는 조명 밑에서, 나는 설명을 마쳤다.

"...그 밑에, 한은그룹 이놈들이 연구하던 꿈의 생명체 베히모스라는게 있어. 그걸 인터셉트 하기 위해 바로 내일! 출발한다."

내 말이 끝나자, 갑자기 조용해지는 회의실.

뭐야. 왜 반응이 없어.

내가 눈만 꿈뻑이고 있자, 그제서야 듣고만 있던 하율이가 입을 열었다.

"저, 오빠.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지는 둘째치고, 일단 혹시 위험한 일인가요?"

위험하냐고?

"어... 좀 위험하긴 할거야. 사실 나도 거기 안에는 잘 모르거든."

실제로 원작에서도 한은그룹 지하를 자세히 묘사하지는 않았다.

그냥 기괴한 괴물들이 가득하고, 그 안에 베히모스가 있는걸 김선우가 탈취했다 정도?

사실 좀 쫄리기는 한데 뭐, 여차하면 하율이가 힐 해줄테고.

제일 중요한건.

'로켓 펀치...'

나도 블랙 로켓펀치 해보고 싶다고.

언제까지 위력도 쥐꼬리만한 염동력 원툴로 살아갈 셈인가.

인간은 원래 도박을 하고 살아야 하는법!

"...그래서 오빠, 또 위험한 짓을 기어코 하시겠다고요?"

그때.

갑자기 고개를 숙이고 있던 서은이가 조용히 말했다.

잠깐, 뭔가 회의실 안이 좀 싸늘해진거 같은데?

"아니, 뭐. 죽기야 하겠니? 하하."

내가 머리를 긁적이며 그렇게 말하자, 고개를 숙인 채 주먹을 쥐고 있던 서은이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뭐지, 이 불길한 기분은?

"아니!!!! 오빠는 생각이 있는거예요 없는거예요!!!! 몸을 그렇게 막굴리는게 말이 돼요!!!"

갑자기 주먹으로 책상을 쾅- 내리치면서 화를 내는 서은이.

아니, 저런 싸가지 없는!

나는 다급히 도움을 바라는 눈길로 수빈씨를 바라보았으나.

"...다인씨, 저번에도 다쳐서 돌아오시더니, 이번에도 그러신다고요?"

똑같이 서늘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며 오히려 서은이에게 동조하기 시작했다.

세상에, 믿을사람 하나 없다더니!!!

결국 메챠쿠챠 혼났다.

거, 참 사람이 몸 좀 굴릴수도 있지.

안전한 길로만 가서는 큰 수익을 얻을 수 없는 법이다. 남자라면 베팅도 해봐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물론 그렇게 말했더니 욕을 더 먹고 말았다.

어째서 나한테는 아무도 공감해 주지 않는거지?

어차피 다치면 하율이가 치료해 줄거야. 난 믿고있다.

....치료해 주겠지?

어쨌든 아래에서 카메라를 들고 가 실시간으로 화면 틀어주고, 소통도 계속 꾸준히 하겠다는 조건으로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

아니, 이 조직의 대장은 나 아니야?

어째서 내가 허락을 받고 있어야 하는거지?

뭔가 뭔가 이상했지만,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어쨌든, 내일 출격이다.

***

그렇게 다음날 낮.

사람들은 점심을 맛있게 먹고 있을 그때, 나는 한은그룹 건물 붕괴현장에 숨어있었다.

무너진 건물의 잔해들 사이에서 보이는, 마치 싱크홀 같은 구멍.

아마 저게 베헤모스가 튀어나온 것이겠지. 참으로 거대하다.

...물론 협회는 그 위에 빠르게 시멘트를 부어서 매워버렸지만. 아니면 거기 안에 있는 괴물들이 다 튀어나올테니 잘한거다.

어쨌든, 거기서 얼마 안 떨어진 곳에 한은그룹의 숨겨진 지하실로 향하는 입구가 있었다.

파인 땅 아래쪽에 있는, 여러겹의 차폐문으로 닫혀있는 곳.

그리고 그 앞에는, 협회의 사람들이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엄중히 지키고 있었다.

총과 선글라스를 끼고 앞에서 순찰을 하고 있는 그들. 선글라스에 양복까지 입은 모습이, 마치 맨인블랙을 보는 듯 했다. 근데, 뭐.

저렇게 순찰을 하고 있던 말던. 나에게는 상관없는 일이다.

순간이동 하나면 모든게 해결 아니겠는가? 순간이동이 짜세다. 부작용만 없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하여튼간에, 잠시 상황을 살핀 나는 준비가 끝난 뒤 바로 안쪽으로 순간이동 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바뀌는 공기.

감았던 눈을 뜨자, 분명 밝은 햇볕 아래 서있던 나는, 어느세 퀴퀴한 지하에 있었다.

위쪽에는 전등이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하는 중.

그렇게 음침한 분위기에, 앞쪽으로 어두운 복도가 쭈욱 늘어져 있는 모습. 아마 저 안쪽에는 괴물들이 우글거릴거다.

음. 어두컴컴한데 괴물들까지 있다라.

"...."

아니, 이런거에 쫄아서는 프로 빌런이라고 할 수 없다.

나는 스타더스의 아치에너미. 물론 자칭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이런거에 겁먹어서는 안 되지.

나는 일단 준비해둔 보따리를 봤다. 총, 폭탄, 카메라, 거기에 간식도 챙겼다. 간식은 중대사항이지.

옷도... 검은색 마술사 모자에 검은 로브, 거기에 검은 망토까지. 완벽한 올블랙 패션. 화룡점정으로 얼굴의 절반을 가리는 회색빛 가면까지. 좋다. 퍼펙트.

모든 준비를 끝마친 나는, 카메라를 켜고 방송을 틀었다.

원래 이런거는 또 송출해줘야 제맛이거든.

테러도 아니기에 지상파 전파납치는 안하고 단순히 유튜브 스트리밍만 했을 뿐이었지만.

채팅창은, 갑작스러운 방송에도 불구하고 채팅들이 빠르게 올라오기 시작챘다.

[?????]

[뭐임?????]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새로운 방송 우효wwwwww]

[신 그는 망고인가? 신 그는 망고인가? 신 그는 망고인가? 신 그는 망고인가? 신 그는 망고인가? 신 그는 망고인가?]

[이게 서울의 수호자이자 S급 히어로인 애플망고의 방송인가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4개월 잠수타던게 어제같은데 실화냐? 진짜 망고스틱은 전설이다...]

[마포대교 ㄹㅇ이번에 이렇게 될줄 알고 부순거임? 해명좀]

[근데 여기 어디냐? 왜이리 어둡지]

[오늘은 또 무슨 미친짓거리를 할려고ㅋㅋㅋㅋ]

가파르게 올라가는 시청자숫자.

그런 그들에게, 나는 두 팔을 벌리며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저의 에고-라이브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한은그룹 새끼들 분명 이거 보고있겠지?

엿 좀 먹어봐라.

협회는...뭐.

어차피 걔네 여기 무섭다고 절대 차폐막도 안열고 버티던 놈들인데, 내가 오히려 가는길에 괴물들도 몇마리 해치워줄테니 오히려 좋아하지? 않을까?

***

"젠장! 스타더스에게 지금 연락 되나?"

"신호는 가는데 받지를 않습니다! 아마 이미 시간이 꽤 경과한 만큼, 너무 깊숙히 들어가서 더이상 통신이 불가능한 상태인 것 같습니다."

"아니, 우라질! 쟤는 왜 하필 이 타이밍에 들어가고 지랄이야! 에잇, 이제 거기서 만나던 말던. 나는 모르겠네. 화나 죽겠으니까, 팝콘이나 가져오게 비서!"

".....네, 협회장님."

협회장은 비서가 가져온 팝콘이나 우적이며 에고스틱의 방송을 시청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을, 참으로 잘 실천하는 그였다.

EP.65 공포 방송

"엄청난 우연이었죠, 솔직히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이정도면 마포대교 앞에 제 동상 하나 세워줘야 하는거 아닙니까?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동상ㅇㅈㄹ 무친련ㅋㅋㅋㅋㅋㅋㅋ]

[아ㅋㅋㅋ 오히려 당당하니까 호감가네ㅋㅋㅋㅋㅋ]

[아니 이렇게 나오니까 진짜 우연이였던거 같네ㅋㅋㅋㅋㅋ]

[망고동상 드가자~~]

[동상 세워달라고 요구하는 빌런ㅋㅋㅋ]

[이제 망고단애들 십시일반 돈모으기 시작할듯ㅋㅋㅋ]

[벌써 두렵다]

아니, 농담으로 던진말에 왜이래?

진짜 돈 모아서 동상 세우려고 드는건 아니겠지?

한은그룹 지하에 있는 비밀의 연구소.

하얀 벽면과 바닥으로 뒤덮여있는 복도를 걸으며, 나는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방송을 하면서.

키자마자 마포대교를 내가 한강꼴박이 일어날지 알고 미리 부순거냐는 채팅이 도배되기 시작하길레, 동상 드립이나 치며 유야무야 넘겼다. 내가 우연이라는데, 어쩔꺼야?

결국 내 공식입장을 들은 사람들은, 슬슬 마포대교 사건보다는 지금 내 현재 위치를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여기가 어디임?]

[무슨 복도의 사방이 다 하얗냐... 정신병원임?]

[불빛 꺼졌다 켜지는거 ㅈㄴ무섭네 사일런스 힐도 아니고]

[옆에 핏자국 뭐냐?]

"여기가 어디냐면... 짜잔! 한은그룹 지하랍니다. 네, 이번에 일어난 그 끔찍한 재앙을 만들어낸 곳이죠."

[????]

[거기 어케들어간거임ㅋㅋㅋㅋ]

[협회 오열ㅋㅋㅋㅋㅋ]

[협회가 저 위에 막고있지 않음? 어떻게 들어온겨?]

[딱보니까 순간이동으로 들어온듯?ㅋㅋㅋ]

[근데 저기는 왜 들어가는거냐 갑자기?]

"제가 여기를 왜 들어왔냐! 아니, 솔직히 우리 터놓고 말해봅시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악당이 누굽니까? 저 아닙니까!"

[ㅈㄴ뻔뻔하네ㅋㅋㅋㅋ]

[아니 누가 그걸 지입으로 말하는데ㅋㅋㅋ]

자, 이제 개소리를 한번 지껄여보자.

"그런데 말입니다, 네? 상도덕도 없이 말이야. 여 지하에서 업계 대선배 허락도 안맡고 지네 맘대로 생체병기 만들고있어? 몹시 괘씸하더군요. 그래서 그 벌로, 이번에 이들의 치부를 낱낱이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뭐? 기밀? 관계자외 출입금지?"

나는 복도를 걸어가던 중, 벽면에 커다랗게 쓰여있는 '관계자외 출입금지'를 보며, 그쪽으로 엿을 날려주었다.

"그런건 없다 한은아!!! 너네의 최고 기밀 시설, 전국으로 생방송중이다!!"

그렇게 말하면서 미친놈처럼 웃어줬다.

일류 악당은 어디서든 광소를 지을 줄 알아야하는법.

...그리고 솔직히, 이번에는 찐텐으로 웃겼다.

한은그룹 걔네들 어차피 지금 거지꼴로 숨어있을텐데, 이거 보면서 아무것도 못하고 주먹만 부르르 떨고 있을 모습 생각하니 웃음이 막 나와.

그렇게 [무친련ㅋㅋㅋㅋ]으로 도배되는 채팅창을 가면으로 힐끗 보며, 나는 다시 깊숙히 안쪽으로 들어갔다.

사방이 하얀 복도.

무언가 약간 소름끼치는 기분이다.

거기에 전등도 나갔는지 어두어졌다-밝았다 하니 훨씬 을씨년스러운 기분.

아니, 진짜 조금 무서운데?

심지어 괴물이 언제 어디에서 갑툭튀할지 모르니까 더 무섭다.

[아니 ㅅㅂ근데 여기 왜 이렇게 무서움?]

[ㄹㅇ뭐 갑자기 튀어나올거 같은 분위기인데]

[순간 불 나가서 어두워질때마다 움찔하게 되네]

[왜 갑자기 장르 공포물됨?]

[공포 게임(아님)스트리머ㅋㅋㅋ]

[야 잠깐 나 저쪽에서 뭐 본거같은데?ㄷㄷ]

아니 시발 무서우니까 그런 채팅 치지 말라고.

안그래도 내 발소리 빼고는 정말 고요해서, 무언가 무섭다고!

그러나 무섭다든 티를 내는건 초보 악당.

일류 악당은 이럴때일수록 더욱 당당하게 나가는 법이다.

"여러분, 쫄지 마십쇼. 뭐가 튀어나오든 그게 절 이길 수 있을것 같습니까?"

나는 그렇게 말하며, 미리 챙겨온 총들을 두둥실 띄워 올렸다.

괴물? 냉혹한 현대병기 앞에서 무릎을 꿇으라고 전해줘라.

[공포영화 보면 꼭 저런 말 한 애가 제일 먼저 죽던데ㄷㄷㄷㄷ]

이상한 말은 무시했다.

플래그 세우지 마!

***

그렇게 나는 계속 더욱 깊숙히 깊숙히 아래로 내려갔다.

처음에는 조금 공포스러웠던 분위기도, 내가 농담을 계속 던지고, 그 어떠한 괴물도 나타나지 않자 조금씩 희석되기 시작했다.

....아니, 근데 왜 괴물들이 진짜 안나오지? 이제 슬슬 나올때가 됐는데?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서서히 본격적인 연구시설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잔뜩 널부러트려진 책상들과 컴퓨터들의 모습.

아마 여기서 연구를 했던거겠지.

뭔가 이해가 하나도 안되는 서류들을 눈으로만 슥슥 보고, 그 옆으로 가자.

괴생명체를 연구하고 가둬놓은 곳이 나왔다.

아니, 정확히는 가둬 놓았던 곳이지. 지금은 다 파손돼서 한마리도 남아있지 않았다. 아마 다들 이 지하 어딘가를 떠돌고 있지 않을까.

일자로 유리벽들이 줄지어 있는 모습.

아쿠아리움처럼 강화 유리를 사이에 두고 괴물들을 관찰하게 되어 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다 유리가 깨져있다.

"아, 여기 칸마다 괴물들에 대하여 써놓았군요."

실제로 유리 앞마다 판같은곳에 괴물들에 대하여 써있었다.

*

"RKCB-1107"

[가칭]순간이동자

[유의사항]순간이동을 하여 도망칠 수 있으므로 A등급 보안을 늘 유지한다. 뒤에서 덮치므로 주의를 표할 것.

*

그러면서 옆에는 이놈의 사진이 붙어있는데.

와... 정말 끔찍하게 생겼다.

전색이 하얀색인 모습으로, 인간과 닮았지만 과도하게 큰 머리에 커다란 입 하나만 달린 모습. 거기에 커다란 낫과 같은 손까지.

아니... 무섭네.

이런 놈이 갑자기 뒤에서 튀어나와 뒤통수를 칠 수도 있다는거잖아?

그때, 갑작스럽게 뒤에서 느껴지는 흠칫한 기운에 뒤를 돌아봤다.

다행히 아무것도 없는 모습. 휴, 쫄아라.

[와 ㅅㅂ저따구로 생긴게 돌아다닌다고?]

[망고 방금 쫄아서 뒤돌아본거임? 카와이www]

[한은그룹 근데 진짜 미친새끼들이네. 저런거 몰래 어떻게 만들었냐]

나도 놀랍다.

아니, 이 세계는 분명 히어로물 아니였어? 왜 괴물이 있는데.

그렇게 미로와도 같은 연구동을 계속 해집어봤다.

깨져있는 우리와, 꿈에 나올까 무서운 괴물들의 사진.

아니.

아무리 생각해봐도... 한은그룹 이새끼들이 사고치는 바람에 이 모든게 지금이라도 들통나서, 다행인거 같은데?

대체 계속해서 안들킨 채 충분한 시간만 주어졌다면 이새끼들이 뭘 만들었을지 상상이 안간다.

"크흠. 일단, 계속 안쪽으로 가보겠습니다."

나는 계속 더 아래로 내려갔다.

아니, 여기 왜 이렇게 넓어?

서울아래 무슨 미궁을 만들어놨다.

여전히 정신이 나갈 것 같은 넓은 하얀 복도들.

갈림길도 많아져, 점점 내가 미로를 걷고 있는건지 뭘 하는건지도 모르겠다.

심지어 깊숙히 들어갈수록 통신도 끊겨, 채팅창도 버벅이는 모습.

"어지럽네..."

그렇게 계속 걷고 있을때.

어디선가 들리는... 무언가 두두두 거리는 소리.

뭔가, 가까워지는 소리?

그래, 드디어 괴물이 하나 오는구만.

어쩐지 너무 안보인다 했다.

나는 들고있던 보따리에서 칼을 뽑아들고, 소리가 들리는 복도쪽으로 겨누었다.

사무라이들이나 쓸 법한 긴 칼.

물론 혹시나를 대비하여 총들도 염동력으로 띄어놨다.

어차피 원작에서 짧게 언급된 바로는, 저 괴물들은 내구가 굉장히 약해서 칼 한방에도 죽는다고 했다.

그러니까 굳이 총까지 쓸 필요도 없을거라는 소리. 시청자들에게 내 칼춤실력을 보여줄 좋을 기회다.

"자!!! 와봐라!!!"

뭐든지 썰어주마!

그렇게 저 어두운 복도에서 달려나온 것은.

하얀색의 사람 머리통만한 고양이 얼굴에.

지네처럼 길다랗지만 하얀 털이난 몸통에 달려있는 수십개의 다리들.

거기에 얼굴의 반을 차지하는 활짝 웃는 입 사이로 보이는 뾰쪽한 이빨들까지!

거기에 미친듯한 속도!!!! 너가 기차냐 임마!!!!

"꺄아아아아아악!!!"

그 충격적인 비쥬얼에 나는 괴성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어떻게 저런게 존재한다는 말인가!!! 이런건 있어서는 안돼!!!!!

"쏴!!! 쏴!!!"

나는 그렇게 칼을 휘두르기도 전에 본능적으로 총을 먼저 쏴재끼고 만 것이다!!!

두두두두두두하고 미친듯이 나가는 총알들!

다행히 총 몇개가 동시에 발포한 공격을 맞자, 놈은 금방 꼬꾸라지고 말았다.

그러더니 금새 하얀 가루가 되어 허공으로 날아가버린 놈.

겨우, 겨우 죽였다...

"헉... 헉..."

아 시발, 염동력 사용하기도 힘들어서 칼 휘둘어보려 한건데.

순간 깜짝 놀라서 모르게 총을 먼저 발포하고말았네. 아니 근데 시발, 진짜 생긴게 무슨 B급 공포영화에 나오게 생겼어.

나만 놀란게 아니라, 시청자들도 놀란 모습이다.

인간이면 쫄 수 밖에 없는 비쥬얼과 등장이었다고.

[아 갑툭튀 ㅅㅂ]

[뭐 저렇게 기괴하게 생겼냐]

[ㄹㅇ버퍼링때문에 끊겨져서 다행이지 그냥 봤으면 심장마비 걸렸을듯ㅋㅋㅋ]

[그래도 총 몇방맞으니 죽으니 다행]

[일단 망고스틱 비명지르는거 클립따놓음 ㅅㄱㅋㅋㅋ]

음, 서은이한테 부탁해서 저 클립은 지워버리자.

하아...

뭔가 슬슬 여기 들어온게 후회도 되고 있다.

내 주제에 파워업은 무슨 파워업이야, 발닦고 염동력이나 연마할걸.

그러나 이미 후회하기는 늦었다. 매몰비용이라고, 이미 여기까지 온 이상 내가 진짜 죽이되든 밥이되든 베히모스는 챙겨서 로켓펀치는 하고 만다.

그렇게 다시 의지를 불태우며 더 깊숙히, 깊숙히 들어갔다.

너무 아래로 내려와서인지 더이상 스트리밍도 진행이 불가능한 상황.

이정도면 충분히 보여줬다며, 송출은 그냥 끊었다.

[안대 돌아와~~~~]

마지막 채팅창의 단말마만이 남긴 채, 방송도 멈추고.

그러자, 진짜로 여기 지하 깊이 넓은 곳에 나 혼자 남아있다는게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

무서워!

그래도 나는 걸었다. 애국가를 속으로 불러보자.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걷다보니 중반부터 중간중간 보이는 검은 점액질들.

저게 베헤모스의 흔적일려나.

아마 끝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뜻이겠지?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나는 또 수많은 갈림길 앞에 서게 됐다.

아니, 애들은 대체 왜 이따구로 만든거야?

안그래도 어두침침해서 앞도 잘 안보이는데.

아무데나 마음 내키는대로 걷고 있을 무렵.

복도 옆 쪽에서, 무언가 달칵거리기 시작했다.

시발, 또다른 괴물이냐!

그렇게 칼을 부여잡고, 어두컴컴한 그쪽으로 가까이 가고 있을 무렵.

갑자기 불이 켜지며 뭔가가 내 앞에서 튀어나왔다!!!

"으악!!!!!! 시발!!!!!!!"

심장이 떨어지는 공포!!!

나는 나도 모르게 눈을 꼭 감고 칼을 미친듯이 휘두르고 봤다!!!

울어라 지옥 참마도!!!!!

그러나 내 칼은 그저 허공을 가를 뿐이었고.

앞에서는 여자가 '힉!'하며 놀라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잠깐, 여자?

갑작스러운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 나는 눈을 떴고.

그런 내 앞쪽에는.

"스타더스?"

"에고스틱...?"

나를 당황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는 스타더스가 서있었다.

...대체 왜 거기서 나오시는겁니까, 선생님?

EP.66 잘못된 만남

당혹.

스타더스를 처음 마주친 나의 심정은, 당혹감이었다.

아니 왜 얘가 여기서 나와?

너 원작에서는 여기 안갔었잖아!

그러나 그런 말을 할 수 있을리 만무.

그렇게 우리는, 서로 입을 열지 않은 채 기묘하게 마주보고 있었다.

....아니, 지상으로부터 몇백미터 떨어진 이 깊은 지하에서 갑자기 이렇게 마주칠 줄 알았냐고.

그렇게 나와 똑같이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던 스타더스는, 순식간에 표정을 갈무리하더니 다시 차가운 표정으로 돌아왔다.

나에게 차갑게 묻는 그녀.

"....너. 너가 왜 여기서 나오지?"

그건 제가 묻고 싶은 말인데요.

"...아니, 스타더스. 당신이야말로 왜 여기 계십니까?"

"나는 히어로다. 당연히 이 안에 시민을 위협하는 괴물들과 위험물질들이 있는데, 와서 당연히 처리해야지."

무슨 당연한걸 묻는냐는 듯 대답하는 그녀.

그래, 맞는 말이다. 맞는 말인데....

너는 원래 여기 안왔었다니까!

그렇게 내가 입을 꾹 닫고 소리없는 아우성만을 치고 있을 때.

그녀는 갑자기 씨익 웃더니, 손을 뚜둑 꺾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 잘 됐군. 생각치도 못한 수확이야."

와, 스타더스가 웃는건 이 세계에 와서 처음보는 것 같다.

주먹을 꺾으며 웃고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여신.

저 웃음이 나를 잡으려는 생각에 나오는 것만 아니었으면 참 좋았을텐데.

"순순히 잡히면 많이 아프지는 않을거다."

그녀는 그 말과 동시에 나에게 달려들었다.

응, 순간이동.

나는 그녀가 내 쪽으로 달려옴과 동시에 그녀의 뒤로 순간이동했다.

그러나 예상했다는 듯이, 그대로 고개를 돌려 뒤쪽으로 팔을 휘두르는 그녀.

나는 하는 수 없이 더 뒤쪽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잠깐!!"

"잠깐은 무슨 잠깐이냐!"

나의 필사적인 외침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계속해서 금발 머리를 휘날리며 나에게로 날아왔다.

이 좁은 복도에서 뭐하는거야 대체!

"잠깐, 타임합시다 타임!"

내가 계속 순간이동으로 그녀의 수마를 요리조리 빠져나가자, 이제는 결국 나를 잡는걸 포기하고 주먹을 쥔 그녀.

야, 미쳤어! 나 너 주먹 한대 맞으면 나 즉사야!

"저기요 스타더스씨! 조금만 진정하시고!"

그러내 내 말이 들리지 않는 듯, 그대로 내쪽으로 날아와 주먹을 날린 그녀.

다행히 아슬아슬하게 순간이동으로 빠져나가는 데는 성공했지만, 나를 대신해 애꿎은 벽이 그녀의 주먹을 대신 맞아버리고 말았다.

쿠웅-.

분명히 죽지는 않게 힘 조절을 하고 때린 걸텐데도, 벽에 맞닿자 굉음을 내며 흔들리는 벽.

그 덕에 천장도 흔들리고 먼지도 흩날리고 전등은 깜빡이고 아주 난리가 났다.

"여기 다 부술일 있습니까! 조금만 진정하고 제 얘기 좀 들어 주시죠!"

아직도 흔들리는 지하.

복도를 반쯤 부숴놓고 나서야, 스타더스는 진정했다.

"...무슨 얘기?"

아, 내가 무슨 말을 할지 들어보겠다는 건가.

하늘색 눈동자를 나에게 고정하며, 그녀는 잠시 공격을 않겠다는 듯 한쪽 팔을 허리에 올렸다.

자, 이제 여기서 입을 잘 털어야 한다.

아니면 끌려가게 생겼어....!!

"일단 저는 싸울 생각 없습니다. 애초에 서로 이렇게 만날 줄 모르고 들어온거 아닙니까? 각자 원래 하던 일을 하는게 어떨까요?"

"...나보고, 지금 빌런인 네가 여기 1급 보안시설에 마음대로 돌아다니도록 납두라고?"

음, 이건 아닌것같군.

"아니, 그 저도 어차피 여기 무슨 짓을 할려고 온건 아닙니다. 한은그룹 얘네가 괘씸해가지구, 방송을 할려고 했을 뿐이죠."

나는 그렇게 말하며 카메라를 보여줬다.

"...여길 방송했다고?'

그녀의 표정이 더욱 안좋아지고 있다.

이것도 미스였다는 말인가!

스타더스가 다시 주먹을 쥐고 나를 공격할 준비를 하는 것 같기에, 나는 황급히 입을 열었다.

"잠깐! 임시 동맹을 맺는건 어떻습니까?"

"임시 동맹?'

무슨 개풀 뜯어먹는 소리를 하냐는 듯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에도 불구하고, 나는 꿋꿋이 입을 열었다.

"스타더스, 당신도 어차피 여기가 얼마나 위험한지는 모르시지 않습니까? 이왕 이렇게 된거, 제일 깊숙한 곳에 내려갈 때 까지만 동맹을 맺고 같이 가보는 건 어떻습니까? 사실 어차피 저를 잡으려고 하셔도 저는 순간이동으로 그냥 도망치면 그만입니다. 그보다는 이렇게 만난것도 인연인데, 함께 예? 상부상조하며 가는거죠. 저도 여기 밑에 뭐가 있는지 궁금하거든요."

음, 내가 생각해도 개소리 그 자체다.

당장이라도 그녀가 '히어로인 나보고 빌런이랑 동맹을 맺으라고?' 하며 화를 내며 달려들어도 이상할게 없는 상황.

에이, 이제 진짜 어떡하지. 그냥 도망칠까? 내 베히모스, 내 파워업, 안녕....

그렇게 내가 마음속으로 이미 결정을 내렸을 때쯤, 잠시 얼굴을 찡그리더니 갑자기 표정을 푸는 그녀.

그러더니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

"..그래, 좋아. 여기 밑에 내려갈 때 까지만 같이 가던가."

"네?"

"...왜 네가 말해놓고 네가 놀래?"

내가 당황하자, 오히려 살짝 웃으며 고개를 돌리는 그녀.

"따라와. 안그래도 나 혼자 처치하기 곤란했는데, 네가 좀 도와주던가."

"네? 아, 예. 좋습니다."

다시 저 밑쪽으로 먼저 앞장서는 그녀를 보며, 나는 홀린듯 멍하니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아니... 뭐지?

내가 뱉어놓고도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는데, 선뜻 받아들이는 그녀를 보며 나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뭐지? 무슨 꿍꿍이지? 내가 아는 스타더스는 저럴 사람이 아닌데?

당연히 빌런이랑 타협은 없다며 달려들 줄 알았는데, 갑자기 저렇게 나오니까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그녀와 나는, 같이 이 지하를 걸어가게 되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

스타더스.

그녀가 이 지하로 내려오자마자 만난 것들은, 수없이 많은 괴물들이였다.

마치 녹아내린 것처럼 끔찍하게 생겼으며, 전부 하얀색으로 생겼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던 놈들.

그녀의 주먹 한방에 다 가루가 되어 사라지긴 했지만, 그럼에도 하나하나 무언가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그녀를 섬찟하게 하였다.

그리고 그 기분은 연구실 쪽으로 들어가자 더욱 강해졌다.

그들이 연구한 끔찍한 기록들.

유리벽을 사이로 가둬놓았을 실험체들은 이미 탈출한지 오래고, 그들의 기록만이 덩그러니 남아있을 뿐이었다.

*

"RKCB-0064"

[가칭]지옥고양이

[유의사항]매우 빠르다. 먹이를 줄때 주의할 것.

*

*

"RKCB-1107"

[가칭]순간이동자

[유의사항]순간이동을 하여 도망칠 수 있으므로 A등급 보안을 늘 유지한다. 뒤에서 덮치므로 주의를 표할 것.

*

"끔찍하군..."

비인간적인 실험으로 탄생했을 괴물들.

만약 이번 사고로 밝혀지지 않았으면, 서울 한복판에서 이들이 계속 생체실험을 하였을꺼라는 생각에, 그녀는 몸을 살짝 떨었다.

그 사고가 벌어지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만약 에고스틱이 다리를 부수지 않았더라면.

끔찍한 일들이 벌어졌을 것이 분명했다.

"....."

그렇게 그녀는 계속, 천천히 눈에 보이는 괴물들을 하나하나 없애가며 앞으로 걸었다.

지하 깊은 곳으로 내려가자 통신도 끊기고, 전등도 깜빡이며 불길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거기에 미로처럼 얽힌 수많은 갈림길들까지.

그러나, 그녀는 거침이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발달한 그녀의 직감이, 이쪽으로 가면 된다고 그녀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녀의 감각이 그녀를 이끈 곳 앞에는.

"으악!!!"

자신이 튀어나오자 화들짝 놀라며 칼을 휘두르는 에고스틱이 서있었다.

그래.

솔직히 말하자면, 그녀도 매우 당황했다.

여기서 에고스틱이 나올지 누가 알았겠는가?

그러나 그녀는 제빨리 이성을 되찾았다.

그래, 뭔지 모르겠지만 이건 기회다.

왜 여기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잡고 생각해보자.

그렇게 그녀는 그에게 달려들었다.

"잠깐!!!"

"잠깐은 무슨 잠깐!!!"

그렇게 그녀가 잡기 위해 달려들어 봤지만, 역시나 순간이동으로 이리저리 도망치는 그.

결국 그녀가 벽을 쳐 이 지하실을 거의 무너뜨릴뻔 하고서야, 그녀는 멈추고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을 들어봤다.

방송을 위해 여기에 왔다는 그의 말과.

"임시 동맹?"

이 지하의 끝까지만 같이 동맹을 맺고 내려가자는, 그의 제안.

거기까지 들은 그녀는 속으로 헛웃음을 지었다. 대체 자신이 왜 빌런과 동맹을 맺어야 한다는 말인가.

그렇게 거절한 후 다시 그를 공격해볼까 했던 그녀였지만.

순간, 그런 생각이 그녀를 스쳐 지나갔다.

'잠깐. 저 자식은 어차피, 그냥 능력으로 도망쳐 버릴 수 있잖아?'

그렇다.

아까까지는 그가 그냥 짧게짧게 순간이동을 하기에 간과하고 있던 사실이지만, 애초에 에고스틱은 마음만 먹으면 아예 이 지하 밖으로 한순간에 도망가버릴 수 있다. 애초에 지금까지도 매번 테러를 일으킨 뒤 바로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았던가?

....그건 안된다.

이렇게 아무도 없는 곳에서, 단둘히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또 있을까?

아니, 아마 없을 것이다.

저놈의 성격상, 다음에 만난다면 또 어디서 전국민에게 송출되는 카메라 앞이겠지. 놈이 세팅한 무대에서.

그에게 휘둘리지 않은 채 같이 있을 수 있는 순간이, 어쩌면 지금이 유일할 수도 있다.

'...어차피, 내가 여기서 거절하면 그대로 잡지도 못하고 아무것도 못 알아낸 채, 그냥 쟤만 도망갈 뿐이겠지.'

그렇다면 차라리.

옆에 두고 같이 다니면, 놈에 대하여 좀 더 알게 되지 않을까?

지금까지 에고스틱에 대해 품었던 의문들이 어쩌면... 해결될 기회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자기 옆에 끼고 다니면, 쟤가 여기에 내려온 이유가 정확하게 뭔지도 알 수 있을테고.

거기다 애초에 저녀석은 지금까지 나를 해치려는 기색을 보인적도 없고... 애초에 쟤가 도망치지도 않고 일대일로 싸우게 되면 그녀의 압승이다. 딱히 위험성도 적다는 소리.

'그래, 이건 그냥 어차피 이대로 놓칠거라면, 그 전에 정보라도 빼내기 위함이야.'

그렇게 누구에게 하는지 모를 변명을 하며, 그녀는 그에게 말했다.

"..그래, 좋아. 여기 밑에 내려갈 때 까지만 같이 가던가."

"네?"

자기가 먼저 제안해 놓고서는, 그녀가 선선히 받아들이자 역으로 놀라는 그의 모습.

...웃기네, 자기도 내가 안받아 줄거라고 예상하고 그렇게 그냥 던져본건가 보다.

생각해보니까 쟤가 당황하는 모습은 처음보는 것 같네. 지금까지는 늘 그녀가 그의 페이스에 휘말리며 당했었으니까.

"...왜 네가 말해놓고 네가 놀래?"

어쩐지 유쾌한 기분이 들어,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그래, 오늘 그를 붙잡으거라고는 기대도 안했다.

대신, 여기서.

그녀가 에고스틱에 대하여 늘 느꼈던 의문점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지도 모른다...

***

스타더스가 임시동맹 제안을 받아들이게 되어, 우리는 함께 미궁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대체 무슨 생각인거지? 아직도 이해가 안되네.

그렇게 나는 경계의 기색을 낮추지 않으며, 그녀의 뒤를 따랐다.

히어로가 빌런한테 뒤통수 맞을까봐 걱정하는 것도 아니고, 빌런이 히어로한테 통수당할까봐 걱정하다니, 이게 맞나?

그렇게 깊숙히 안쪽으로 들어가면서, 우리 사이에는 딱히 별다른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가끔씩 다가오는 실험체들은 그녀가 주먹질 한방에 처리하니, 뭔가 무섭지도 않았다. 혼자 있었을 때는 조오금 쫄렸는데 말이지.

내가 가끔 농담을 던지면, 그녀는 그냥 씹고 뭐 그런게 반복됐다.

물론 가끔 웃참에 실패해 피식 웃더니, 급히 표정을 갈무리하고 나한테 조용히 해- 라면서 째려보는건 좀 귀여웠다. 내가 너 유머코드를 다 알아.

어느덧 끝이 가까워진걸까, 점점 수없이 많은 연구실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그녀는 심각한 표정으로 이 서류 저 서류를 뒤적였다.

나는 뭐했냐고?

그녀가 어딜 빌런이 기밀을 볼려고 하냐며 못보게 해서 그냥 그녀만 바라보았다.

음, 사실 최애를 이렇게 가까이서 오래 볼 수 있다니, 어쩌면 이건 일종의 포상 아닐까?

금발머리를 늘어트린 채로, 몸에 딱 달라붙는 빨간색 히어로 슈트를 입은 채 연구실을 뒤적이는 스타더스의 모습은 볼만했다.

좋네, 좋아.

그렇게 얼추 무언가를 알아낸걸까.

우리는 다시 안쪽으로 향했다. 아니, 여기 왜 끝이 없어? 무슨 개미굴도 아니고.

더 신기한거는 어디로 갈 줄 알겠다는듯 척척 발걸음을 옮기는 스타더스였다.

여기 지리를 미리 조사하고 온건가?

...설마 벌써 초감각이 발달된건 아니겠지. 에이.

어쨌든 이번에야말로 진짜 끝까지 온 기분이 들었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

....근데 지하에 바람이 어떻게 부는거지.

계속 걷던 우리가 마주한 것은 [최고 기밀 지역].

그리고 그 옆에, 빨간색으로 덕지덕지 칠해진 통로가 있었다.

"...여긴 뭐하는 데지?"

그녀의 의문에,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답할 뿐이었다.

"일단 들어가 보죠."

"흠..."

그녀는 고민끝에 들어가 보는걸 선택했고.

그렇게 우리는 같이 안쪽으로 들어갔다.

통로를 쭉 걷다보니 나온 것은, 작은 방.

"초상 능력 억제의 방...?"

그녀는 그 방 앞에 붙어있는 안내문을 보고 중얼거렸다.

초상 능력 억제? 이 방 안에 들어가면 능력발동이 안된다는 소리인가?

아니, 한은그룹이 이런 기술도 가지고 있었다고?

이건 진짜 심각한 기술인데...

내가 그렇게 진지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을 때, 내 앞에 있던 스타더스가 나를 돌아보더니, 고개를 까딱이며 입을 열었다.

"...에고스틱, 네가 먼저 들어가봐라."

"...저요? 제가 왜."

내가 그렇게 말하자 조용히 주먹을 들어올리는 그녀.

...그래, 그래. 내가 들어가본다.

"예,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나는 두평짜리 작은 방에 들어가게 되었다.

사방이 하얀색으로 뒤덮여있는 밀실. 시계 같은게 하나 걸린거 말고는, 그냥 깔끔하게 아무것도 없다.

그러니까, 여기서는 진짜 능력 사용이 안된다는 소리지?

나는 시범으로 내가 들고온 보따리를 향해 염동력을 사용해봤다.

"흡?"

오, 진짜 안되네.

그럼 순간이동은?

정신을 집중해 보았으나 역시나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이거 신기한데.

"어떠냐. 정말로 능력이 사용되지 않아?"

"네. 그렇네요. 무슨 원리지?"

내가 그렇게 주위를 두리번 거릴때쯤, 그녀는 자기도 실험해 보겠다는 듯 안쪽으로 들어왔다.

"...정말로 안되네."

그렇게 그녀가 능력을 테스트해 보고 있을 때, 나는 방 한쪽면을 살펴보고 있었다.

이거 잘 쓰면, 진짜 대박이겠는데. 원리가 뭐지...

내가 벽을 보며 슬기로운 탐구활동을 하고 있을 무렵, 갑자기 뒤쪽에서 쾅-하는 소리가 나더니 방이 흔들렸다. 뭐야?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벽을 주먹으로 박아버린 스타더스의 모습이 보였다.

아무리 능력이 억제됐어도, 원채 힘이 강해서인지 주먹모양으로 움푹 파인 벽.

내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멋쩍은 듯 내 눈을 피하는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아니, 진짜로 다 억제되는건지 확인해볼려고..."

"아니... 아무리 그래도 벽을 그렇게 무식하게 치면 어떡합니까?"

잘못됐다가는 여기 수몰돼서 죽을뻔했네!

그렇게 따질려고 할 무렵, 갑자기 우리가 들어온 방문 앞에서 경보음이 나더니.

뻥 뚫려있던 방의 입구가 깁자기 위에서 내려온 차폐막에 의해 막혀버렸다.

쿵-.

"뭐, 뭐야?"

갑작스러운 사태에 당황한 그녀.

당연히 그녀만 당황한게 아니다. 나도 황당하다. 이게 갑자기 무슨 일이야?

갑자기 시맨트로 이루어진 차단막이 내려와서, 아까까지 복도로 이어지던 공간이 갑자기 막혀버렸다.

"....."

어...

그러니까 지금 상태가.

갑자기 이 지하 깊은 곳에 있는 밀실에

스타더스랑 둘이, 사이좋게 능력도 서로 잃은 상태로 갇힌거지?

"....."

"....."

그렇게 좁은 방에서는, 적막만이 흘렀다.

음.

좆됐네.

EP.67 밀실

"...."

심사숙고한 끝에 나온 좆됐다는 결론.

여전히 당황한 채 얼타고 있는 스타더스를 뒤로 하고, 나는 빠르게 주위를 스캔했다.

프로 악당은 위기의 순간에도 당황하지 않고 냉철하게 상황을 분석하는 법.

평소와 달라진 점은 뭐지? 어디인가 빠져나갈 구멍이 있지 않을까?

그렇게 사면을 둘러본 나는, 이내 무언가 달라진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벽에 걸려있는 시계.

꺼져있는 전자시계 였던것이, 불이 켜지고 시간을 나타내고 있었다.

[2 : 58.42]

[2 : 58.41]

[2 : 58.40]

...

시계에서 보이는, 줄어드는 시간.

그래, 모든 비밀은 풀렸다!

"어... 어라?"

여전히 어버버 거리고 있는 스타더스.

아니, 저렇게 당황하면 어떡해?

자고로 유능한 히어로라면 이런 상황에선 나처럼 빠르고 냉철하고 객관적이게 사태를 관조해야 하는법.

내가 아는 스타더스는 이러지 않았다.

이렇게 얼타지 않았다고!

....그래, 생각해보니까 그 스타더스는, 원작 후반부에 구르고 굴러 노련해진 스타더스였지.

지금의 스타더스는 아직 덜 굴러서 그런지, 어리버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스읍. 근데 아무리 그래도 저러면 안되지.

"스타더스!"

"으, 응?"

몹시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녀에게, 나는 고개를 돌려 시계를 가르켰다.

"저기 보이십니까? 시간이 줄어들고 있는걸 보니, 아마 저 시간이 다 지나면 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진정하시죠."

"어? 아, 아."

그제서야 위를 올려다 본 스타더스.

시계를 바라본 그녀는, 얼굴을 찡그리고는 중얼거렸다.

"3시간...?"

"네, 3시간만 있으면 됩니다. 뭐 그렇게 길지도 않으니, 기다리죠. 읏차."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자리에 앉아버렸다.

여기서 한 세시간 갇혀있어야 하는데, 서있을 수는 없지.

다리 아프다고.

그렇게 앉은 다음에, 스타더스에게도 앉아서 기다리자고 하는 그때.

쾅-.

스타더스가 다시 벽을 쳤다.

"아니, 뭐하세요?"

"저기서 3시간 뒤에 문이 열리는건지 아니면 폭탄이 터지는건지 뭔 줄 알고 기다려?"

그렇게 말을 하며 계속 문쪽을 주먹으로 쿵쿵 치는 그녀. 그러다가 여기 무너지겠다!

그러나 아무리 그녀가 애써도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

결국 그녀가 먼저 포기해버렸다.

"쯧..."

자신의 손을 문지르는 그녀.

뭐야?

자세히 보니까 주먹쪽에 피가 뚝뚝 흐르고 있었다.

아니, 뭐하는거야 대체?

"아니, 그렇게 미련하게 치시면 어떡합니까, 안그래도 능력도 억제되어있는 상태인데."

"....."

"에휴, 자. 이걸로 지혈이라도 하세요."

나는 보따리에 있던 붕대를 하나 꺼내서 그녀에게 던져줬다.

서은이랑 수빈씨가 다치면 쓰라고 챙겨준 건데, 이게 이렇게 쓰이네.

"...."

나한테서 붕대를 건내받은 스타더스는, 살짝 고민하더니 이내 조금 잘라서 자신의 팔에 감기 시작했다.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

"그게 고맙다는거 아니에요?"

"..."

정곡을 찔린 듯 살짝 움찔하는 그녀.

아니, 고맙다는 인사 받을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도 않았는데, 저렇게 나올 줄은 몰랐네.

...원래 그녀가 빌런한테 저렇게 말하는 스타일이 아닌데. 솔직히 붕대를 던져줬을 때도 다시 내 얼굴에 날아오는걸 각오했었다. 순순히 받아서 오히려 내가 살짝 의아했을 정도.

뭐지? 지금 이맘때쯤은 성격이 좀 유한가?

그건 아닐텐데. 그럼 나한테만 특별취급 하는건가?

왜지? 딱히 그럴 이유는 없는데.

라고 생각할 무렵 붕대가 내 얼굴로 날아왔다.

그럼 그렇지.

"악! 아니, 기껏 생각해서 줬더니. 제가 뭘 그리 잘못했습니까? 그냥 굴려주면 어디 덧나나요?"

"...."

내가 그렇게 투덜거리며 째려보자, 그녀는 살짝 옆쪽으로 눈을 피했다. 자기도 좀 미안하긴 한가보지?

...근데 사실 빌런한테 미안할건 없긴 해.

"쩝, 앉아서 기다리기나 합시다. 그리고 딱 보니까 3시간 후에 문 열린다는 뜻 같은데요. 뭐 '직감'적으로 느껴지는거 없으십니까?"

"...직감."

그녀는 내 말을 듣고는 중얼거렸다.

그래, 직감. 너 초감각말이야. 거의 미래예지에 가까운.

사실 나도 저 3시간뒤에 뭔 일 일어날지 모르겠으니까 너가 좀 알아봐.

그렇게 잠시 얼굴을 찡그리던 그녀는, 이내 얼굴을 풀었다.

아마 직감적으로 3시간후에 열린다고 느낀 모양.

휴, 다행이다. 뭐, 아직 스타더스의 초감각이 완전히 발달하지는 않았겠지만... 이정도는 맞을거다.

그렇게 우리는 가만히 앉아있었다.

가만히.

움직이지도 않고.

좁은 방안에서, 단 둘이.

서로 어떠한 말도 하지 않고, 적막하게.

"...."

잠깐.

이건 지옥인데?

***

그렇게 서로 아무말도 하지 않은 채 한시간이 지났다.

들리는건, 서로의 자그마한 숨소리뿐.

물론 나라고 가만히만 있던건 아니다.

보따리에서 과자를 꺼내 먹었다. 맛있더라.

스타더스는 내가 보따리에 손을 넣을 때 순간 움찔하더니, 그냥 과자를 꺼내니까 살짝 안심했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왜. 내가 안에 있는 총이라도 꺼낼까봐 긴장한걸까?

...적어도 내가 그럴일은 없으니, 안심해라.

아닌가? 오히려 안심하면 히어로로써의 위기감이 없는건가?

"과자 좀 드실래요?"

"...말도 안되는 소리."

배고파 보여서 물은건데, 싫음 말고.

그렇게 그 이후로 우리는 서로 계속 조용히, 가만히 있었다. 어색해 죽겠네.

그리고 어색한 것과는 별개로, 1시간이 흐른후부터 느낀건데... 여기 산소가 좀 부족하다. 호흡이 가빠진다고. 이게 밀실의 비애인가?

산소가 부족한건 아주 큰일이다. 산소가 부족하면 뇌가 안돌아가서 이성적인 판단이 안될 가능성이 높다고. 즉, 뇌를 거치지 않고 말이 튀어나올 수도 있다는 거다.

...그리고 물론, 나는 그랬다가는 큰일난다. 내가 숨기고 있는 비밀이 몇개인데.

그래서 차라리 입을 꾹 닫고 가만히 있기로 결정했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고 하니까.

처음에는 너무 어색해가지고 몸을 비틀었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이것도 익숙해 졌다. 보따리 안에 있는 휴대폰을 꺼내 보고 싶은 충동이 잠시 들기도 했으나, 그랬다가는 내 신원이 노출될 수도 있었기에 참았다. 여기서는 순간이동도 못써서 도망칠 수도 없다고.

그렇게 이제는 그녀의 색색거리는 숨소리도 익숙해 질 무렵, 나는 한시간만 더 이렇게 있으면 되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멍을 때리고 있었다.

아니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좁은 방에 둘이 갇혀있으니까 숨이 잘 쉬어지지도 않는 것 같다.한은그룹 이새끼들은 밀실에 산소발생기도 안달아놨어? 대체 뭐하는 놈들이야.

놈들 덕에 머리가 점점 멍해지고 있다. 마치 약에 취한거처럼. 아니, 정확히는 술 마신것 같다는걸까? 여러분, 산소가 이렇게 중요합니다.

야, 이게 갇혀있는 3시간이라 다행이지 더 갔으면 진짜 큰일날 뻔했다고 생각할 무렵.

불현듯, 그녀가 입을 열었다.

"....마포대교."

"네?"

멍 때리며 천장을 보고 있다가, 그녀의 말을 듣고는 다시 고개를 내려봤다.

무릎을 모은 채 손으로 다리를 감싼 자세로 있던 그녀는, 나를 보지도 않고 아래를 내려다 보며 중얼거렸다.

"마포대교에서, 자동차 떨어지던거 너가 멈췄어?"

살짝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묻는 그녀.

아니, 여기서 갑자기 이걸 묻는다고?

그녀를 자세히 보니, 이미 눈이 살짝 감긴 채였다.

뭐야, 자는거야? 그건 아닌거 같은데?

아, 그녀도 지금 좀 머리가 어지러워서 그런건가.

....신체 능력자인데 산소 좀 부족하다고 저렇게 헤롱거리나?

아, 쟤도 능력 지금 억제된 상태지?

그렇게 내가 안돌아가는 머리로 북치고 장구치고 있을 때, 그녀는 나에게 한번 더 채근했다.

"..자동차, 너가 멈췄냐고."

자동차? 내가 자동차를 왜멈춰. 자동차가 멈추면 수동차인가?

아, 마포대교 얘기하는건가. 그 떨어지게 생긴거 내가 살짝 멈춘거?

...그걸 기어코 봤다는 말이야?

나는 그런거 멈춘 적 없다. 아무튼 없다고.

"저는 아무것도 안멈췄습니다. 전 늘 앞으로 달려나가는 사람이기 때문이죠."

"뭔 개소리야..."

그렇게 웅얼거리며 답한 그녀는, 다시 또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럼 그 비행기는, 나보고 왜 구하라고 했어?"

"그때 말하지 않았습니까? 제가 빌런이 되기 위해서는 당연히 저에 맞서는 적, 히어로가 필요하다고. 빌런이 그냥 테러만 한다고 해서 단순히 빌런이 아닙니다. 그에게 막아서는 적수가 있을때, 비로소 빌런은 빌런다워지는 법이죠. 그래서 그랬습니다."

"....."

내 대답에 다시 입을 가둔 그녀.

음, 사실 방금 그건 히어로는 빌런이 만든다는 말을 거꾸로 했을 뿐이다. 몰라, 머리도 어지러운데 대충 답해.

이제 슬슬 머리도 아픈데 좀 조용히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무렵.

그녀는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그럼, 마포대교 무너트린건... 이번에 그 괴물이 올라오는 사태가 일어날걸 미리 알고서 무너트린거야?"

아니, 기어코 그녀마저 나에게 이걸 묻는단 말인가.

거의 사람들 모두에게 한번씩 다 들어본 것같은 기분이다. 거참.

아무튼 늘 그랬듯, 그저 우연이라고 답하기 위해 그녀를 볼려는 찰나.

나는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마자 고개를 다시 숙인 그녀.

그러나 나는, 방금 똑똑히 보았다.

마치 내 모든 비밀을 알아내겠다는 듯,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보는 그녀의 눈을.

"..."

정신이 번쩍 든다.

아니, 지금까지 웅얼거리며 어눌하게 말한 건 다 연기였다는 말인가? 나를 방심시키기 위한?

신하루, 실로 무서운 여자다. 마치 독사와도 같군.

정신이 좀 다시금 들자, 나는 침을 삼켰다.

그래. 이제 생각해보니까 뭔가 이상했다.

애초에 처음부터 왜 나랑 동맹맺는걸 선뜻 받아들였을까?

이제봤더니 나에 대하여 더 자세히 알아내기 위해, 정보를 빼갈려고 그런거 아니야?

나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스타더스, 신하루! 대체 어디까지 큰그림을 그린거냐...

잠깐, 지금까지 그녀가 질문한게 뭐였지?

자동차 떨어트린거 멈춘게 나냐는 것과.

비행기는 왜 구하라고 했냐고 물은 것과.

마포대교는 내가 검은 괴수 사태가 일어날 걸 알고 부순거냐고 물은 것...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나는, 얼굴이 굳었다.

그녀가 나한테 던진 질문들을 종합해보면.

나를 빌런이 맞는지, 의심하고 있는거 아닌가?

아닐수도 있다. 그냥 내 과대망상이고 착각일 수도 있다.

직감적으로는 그런거 같기는 하지만, 내가 스타더스 그녀처럼 직감적으로 진실만을 맞추는 초감각을 지닌 것도 아니니까.

그렇다고 해도, 이건 위기다.

애초에 늘 가짜 악당, 악당을 흉내내는 사람으로써 빌런의 근본력에 늘 자격지심을 갖고 있던 나인데.

정체가 들켜서는 안된다.

사실 테러같은것도 전부 그녀를 위함이고, 나는 이 세계를 그저 구해내고 싶을 뿐이라는 사실을...!

그럼 어떻게 해야하지?

그래, 지금이 오히려 기회다.

이렇게 둘이 있을때, 완전히 오해를 덜어버리면 돼.

그녀가 가진 나에대한 의심을 버리게 하고, 나를 완전무결한 사악한 악당으로 인식하게 한다!

그럴려면, 오히려 정공법으로 간다.

나는, 손으로 가면이 안 가려진 얼굴쪽을 가리며 킥킥 웃었다.

"하하...하하하하하!!!"

내가 갑작스럽게 웃자, 의아해하는 그녀.

스타더스야, 스타더스야.

진정한 악당은, 상대의 정신을 뒤흔들어 상황을 자신의 손아귀에 올리는 법이란다.

그런의미로, 막나가는 것도 하나의 전술이 될 수 있지.

자, 그럼 판을 한번 뒤흔들어보자.

"당신에게만 말씀 드리겠습니다만.... 그래요. 맞습니다."

나는 웃으며,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는 그 재앙이 벌어질 걸 미리 알고 있었습니다."

"알고서 일부러, 그 다리를 부쉈습니다."

내 갑작스러운 인정에, 당황하는 그녀.

그래. 내가 이렇게 선선히 수긍할줄은 몰랐겠지.

그럼 한번 계속, 아가리를 털어보자.

"그래서 뭐."

"어쩌란 말입니까?"

어쩌라고.

EP.68 통수

"....뭐라고?"

"그 재앙이 벌어질거 알고서, 미리 다리 부순거 맞다고요."

내 대답에 벙찐 표정을 짓는 그녀.

그래, 내가 이렇게 순순히 인정할 줄은 몰랐나보다.

뭔가 내가 대충 둘러대면, 그 변명의 허점을 찾아 허를 찌르는 방식으로 나를 압박하려고 한거 같은데.

어림도 없지.

"근데, 그래서 어쩌란 말입니까. 그거 알으셔서 뭐 어떻게 하게요?"

나는 오히려 그렇게 따져물었다.

에고류 비기. 어쩌라고 전략.

"....아니, 잠깐."

그녀는 내 쿨한 인정에 살짝 머리가 아프다는 듯이 이마를 붙잡았다.

왜, 이런 대답을 기대한게 아니었어? 이렇게 나올줄은 몰랐나보지?

프로 악당은 원래 막나가는 법이야.

"....그럼, 그 사건이 벌어질 줄은 어떻게 알았는데?"

"아. 그걸 말씀 드려야겠군요."

나는 팔짱을 끼고,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사실 저는 미래예지 능력이 있습니다. 그걸 알고 미리 다리를 부순거죠."

"...정말로?"

아니, 믿지마...

"이걸 믿으시는걸 보니, 아직까지 제대로 된 1인분을 하는 히어로가 되긴 멀으신 것 같네요."

내가 피식 비웃으며 말하자, 눈을 찡그리는 그녀.

"...아니라고?"

"당연히 아니죠. 이걸 어디서부터 얘기해야 하나... 그냥 현대 과학의 승리라 보면 됩니다."

잠시 숨을 들이키고.

"저와 제 '동료'들은 몇주 전부터 한은그룹을 해킹해, 그들의 본사 지하에서 통제 불가능한 거대 괴수를 배양하고 있다는걸 알게 되었죠. 그래서 시뮬레이션으로 분석, 놈의 탈주했을때의 시나리오를 분석했습니다. 그래서 미리 다 준비를 해놨죠."

"다리를 부순건 제가 한 수많은 보험의 일부였을 뿐입니다. 그거 말고도, 다양한 경우의 수에 대비해 세팅을 해놨죠. 다리는 우연히 얻어 걸린 것 뿐입니다."

다른 경우의 수는 무슨 다른 경우의 수.

당연히 원작에서 다리를 건넜으니 다리 부순거 말고는 다른건 아무것도 안했다.

그러나 말은 이렇게 해놓는 거다. 갑자기 예언자 취급 받고 싶지 않으면.

....사실 거의 미래를 보는 것과 비슷하긴 한게 맞지만.

어쨌든, 나의 그런 변명은 잘 먹혀들어간거 같다.

그녀가 살짝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거든. 그래, 받아들여!

지금까지 내가 한 해킹들을 떠올려봐라. 방송사 전파납치, 전국민 계좌 메크로로 돈 송금...

솔직히 이정도면 대기업 보안 털어서 시뮬레이션 돌리는건? 당연히 할 수 있는거 아닐까?

잠시 내 대답을 곱씹던 그녀는, 여전히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아니, 이상하잖아."

"뭐가 그렇게 이상합니까?"

"너가 왜 다른 사람들이 죽던 말던, 그런걸 신경쓰고 막는건데? 애초에 너가 다른 민간인들을 가지고 놀며 테러하는 놈이면서?"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째려보는 그녀.

이건 그냥 이렇게 답하면 되지.

"그런 일이 벌어졌다가는 어그로가 뺏기니까요."

"어그로?"

"관심 말입니다. 빌런들의 특징이 뭡니까. 이거 다 관심받을려고 하는거에요. 최대 다수의 최대 불행이라고 하나? 테러를 통해 더욱 많은 사람들한테 절망감을 주고자 하는건데, 그런 일이 벌어졌다가는 사람들이 저한테 주목을 해주겠습니까? 이미 가족이고 친구고 잃은 사람들이 티비에서 생판 남이 죽네 사네 하는걸 관심이나 가져주겠냐 이말이에요. 그래서 막았습니다."

내 담담한 말에, 그녀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가, 맞는 말이잖아.

실제로 한 빌런이 테러를 일으켜 화제가 되면, 그후 몇주는 그 어떤 빌런도 테러를 일으키지 않는다.

자신이 받게될 관심의 양이 줄어드니까.

실제로 내가 요즘 대규모 테러를 뻥뻥 일으키는 바람에 범죄율이 줄고 있다는 통계도 있더만.

"...그래서. 어그로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막았다?"

"네. 정확합니다."

"....."

"대체 무슨 대답을 기대하신 겁니까? 제가 갑자기 내면의 선함을 깨닫고 사람 구하러 다니는 히어로로 각성한 줄 아신겁니까? 원래 진실은 생각보다 싱거운 법입니다."

나는 피식 웃으며 그렇게 말할 뿐이었다.

....근데 사실 진정한 진실은 사람들을 구하고, 이 세계가 피폐물이 되는걸 막기 위해서 한게 맞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하면 그녀가 대체 날 뭘로 보겠는가? 그녀 특유의 초감각으로 그냥 내 정체를 파악해 버릴수도 있다.

사실 내가 하는 모든 테러도, 다른 빌런을 마구잡이로 죽이고 다니는것도 모두 이 세계를 지키기 위해서라는 걸.

사실 나에게 사람들을 괴롭히는 취미는 없고, 오로지 그녀를 위해 이러고 있다는 걸.

이 모든게 다 오로지 이 세계의 평화와, 그녀의 불행을 막기 위해 이러는 거라는걸.

물론 그녀가 이 모든걸 추리하게 될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애초에 겉보기에는 나는 법 위에서 노는 무법자, 약한 이를 괴롭히는 테러범 그 자체인데 뭐.

그래도, 미리미리 조심해서 나쁠건 없지.

그리고 때마침 내가 말을 끝냈을 무렵, 문쪽의 차폐막이 다시 천장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고개를 들어 시간을 보니, 어느새 3시간이 다 지나있는 상황.

문이 드디어 열렸다.

이 어색한 방도 탈출이다 탈출!

여전히 아리송한 표정을 짓고있는 그녀.

하아. 아무래도 이 한마디도 해야겠다. 답답해서 안되겠어.

"....그리고. 제가 사람을 살리던, 무슨 짓을 하던 저는 애초에 법 위에서 노는 무법자이자 테러리스트. 그러니까 빌런입니다. 자꾸 이상한 생각을 하시는거 같아서 덧붙입니다만."

그러니까 나 좀 의심하지마.

난 확실한 빌런이라고! 뭔가 아까부터 자꾸 나를 블랙히어로로 몰아가려고 하는거 같은데, 굉장히 당황스럽다. 스타더스가 성선설을 믿는다는 얘기는 못들 은거 같은데. 왜 자꾸 나를 세탁하려고 하는거 같지.

내 말을 들은 그녀의 표정이 더욱 의심으로 물드는것 같아, 나는 그만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그래. 당해봐야 알지, 당해봐야 알아.

그래도 일단 그녀는 내 말에 반박을 딱히 하지 않고 조용히 일어났다.

뭐. 일단 내 말이 논리적으로 맞아 떨어지기는 하니까. 여기서 더 의심해서 뭐할꺼야?

...그런데 어쩌다가 갑자기 그녀가 취조하고 내가 변명하는 분위기가 됐던거지? 나는 그냥 파워업 이벤트를 하려고 왔을 뿐인데. 어떻게 엮여가지고는...

그렇게 우리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뭐 그 이후에는 서로 별말 안했다. 그냥 튀어나오는 괴물들 하나하나 무찔러가며 진격했을뿐.

...아니, 대체 근데 이게 무슨 상황인지를 모르겠네.

히어로와 빌런이 서로 붙어서 지하를 탐방하는 모습이라. 내가 제안한거기는 하지만, 참 이상한 그림이다.

그녀는 내가 즉시 도망칠 수 있다는걸 알기에, 나를 공격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뭘 하려는지 알아내겠다는듯이 지켜볼 뿐.

나는 애초에 그녀를 공격할 생각이 없기에, 공격하지 않는다. 빌런이 히어로를 무지성으로 '공격'하는건 이 세계의 상식이기는 한데... 내가 대체 왜 그래야 하는지?

그래서 이렇게 계속 어색한 동행을 하고있다.

특히 아까 방에서의 만담을 기준으로 더 어색해진것 같다.

가끔씩 그녀가 나를 빤히 바라보는데, 무서워.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거야?

나는 그렇게 그녀의 뒤를 따라가며 걸었다.

절대 앞장서지는 않았다. 그랬다가는 통수맞고 협회 밑바닥으로 끌려갈 가능성이 농후하거든.

서로가 서로를 공격하기도, 그렇다고 갈 길 가라고 놓아주기도 그래서, 임시동맹이라는 기묘한 타이틀 아래 동행하고 있는 모습.

가는 길에 눈에 보이는 괴물들은 거의 다 족치면서 가서, 이제는 사실상 다 처리한 느낌이다.

그 순간이동한다는 괴물은 못보기는 했지만. 걔는 이미 여기 빠져나간건가? 뭐, 그건 다른 히어로들이 처리하겠지.

빨리 베히모스만 챙기고 튀고싶을 따름이다.

...아니지.

지금 그녀가 특유의 직감으로 내 본질을 깨닫기 전에.

진짜 악당이란 무엇인지 교육을 좀 시켜야 할 수도...?

애초에, 어? 히어로가 이렇게 빌런을 옆에 두고 아무것도 안하고 방심하고 있는게 말이 돼?

정신이 있는거야 없는거야.

어쨌든 그렇게 우리는 끝까지 도착했다.

지하 제일 깊숙한 곳에 있는 커다란 공간, 그곳에 있는 깨져있는 수조.

"베헤모스...?"

그녀는 그 수조앞에 적힌 글씨를 보며 중얼거렸다.

그래, 드디어 그녀도 그 괴수의 이름에 대하여 알게 되었구만.

녹색의 끈적한, 수조에서 흘러나온 것들이 가득한 이 공간에는 아무도 없었다.

깨져있는 컴퓨터와 종이들많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을뿐.

여기서 연구하던 사람들은 다들 미리 도망쳤었나 보다. 참 튀는건 잘해요.

하여튼 이 곳 옆에 있는 방으로도 우리는 가봤다.

천장도 높던, 아까의 그 수조가 있는 곳보다는 작지만 그래도 넓은 이곳.

이 방의 중간에는, 어떤 인큐베이터 같은게 있었다.

그 안에 있는 조그만한 검은 촉수.

하아. 드디어 찾았구만.

이제 이걸 들고 그냥 튀면 된다. 튀면 되는데...

나는 스타더스를 힐끔 바라보았다.

나에 대해서는 신경도 안쓴 채, 구석에 있는 책상에서 자료를 뒤적거리는 모습.

...마음에 안든다.

왜 나한테 관심을 안갖지?

아니, 이게 이상한 뜻이 아니다.

히어로가 빌런을 옆에 두고 저렇게 무방비하게 있는게 맞는거야?

진정한 히어로는 늘 빌런을 경계해야 하는법.

대체 날 뭘믿고 이렇게 자유롭게 행동하게 두는건지 모르겠다.

왜 이렇게 겁이 없어?

"...."

안되겠다.

원래라면 그녀가 한눈 판 사이에 베히모스만 챙겨서 도망치려 했는데.

그녀에게 세상의 쓴맛을 좀, 가르쳐주고 가야겠다.

나는 그렇게 다짐하며, 천천히 인큐베이터 쪽으로 다가갔다.

쇼타임이다.

***

"...이건 또 뭐지."

넓은 방 한가운데 있는 인큐베이터를 보며, 그녀는 중얼거렸다.

이 비밀의 연구소 제일 끝에 있는 이 방.

그 안에는, 척 보기에도 수상해보이는 인큐베이터가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검은 촉수.

아마 이게, 한은그룹 이들이 제일 보호하고 싶었던 무언가로 추정된다.

슬쩍 옆을 보니, 에고스틱은 굉장히 흥미로워 보이는 눈길로 그 인큐베이터를 보고 있었다.

"건드리지마라. 저건 일단 협회로 보낼거니까."

"예 예. 당연하죠."

두 손을 위로 들며 아무것도 안할 거라는 듯 방긋 웃는 그.

"...."

그런 그의 모습을 보자, 아까 방안에서의 일이 다시 떠올랐다.

자신이 모든 힘을 잃고 무력하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붕대를 건네줬으면 건네줬지 전혀 건드리지 않았던 그.

자신이 모든걸 알고 다리를 부순거지만, 그게 딱히 사람들을 구할려고 한건 아니였다는 그의 말.

자신은 빌런이니, 의심하지말라고 덧붙이던 그의 말.

그 모든게 합쳐져.

그녀는 에고스틱에 대해 더욱, 뭐가 뭔지 모르게되었다.

그는 분명히 빌런이다. 법 위에서 노는 무법자이며 사람들을 상대로 테러를 일으키는 빌런.

그런데 어째서.

그가 하는 모든 말이, 무언가의 진실을 숨기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걸까.

어째서, 그의 옆에 있으면 묘하게 경계심이 흐려지는 걸까.

'...왜 자꾸 이런 생각이.'

그녀는 고개를 흔들며 생각을 털어냈다.

일단, 눈앞에 있는 일에 집중하자.

그녀는 방 한쪽 구석에 있는 책상으로 향했다.

여기에 아마 저것에 대한 정보가 있겠지.

그리고 그녀는 발견했다.

저것에 대해 적혀있는 보고서를.

*

"RKCB-001"

[가칭] 베히모스

*

그렇게 그녀가 설명을 읽고 있을 때.

정확히는, 방심하고 있을 때.

에고스틱이 있는 쪽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깨어나라. 베히모스."

그와 함께 들리는, 무언가 와장창 깨지는 소리.

갑작스러운 사태에 스타더스는 황급히 뒤를 돌아봤지만.

이미 모든 상황은 끝나 있었다.

어느새 깨지고 있는 인큐베이터.

그리고 에고스틱의 팔을 감싸고 있는, 검은색의 불길한 무언가.

그 모든 혼란한 상황속에서.

에고스틱 그는, 스타더스쪽을 바라보며 조용히 웃고있었다.

그렇게, 웃는 상태 그대로 그녀에게 말을 건네는 그.

"스타더스씨. 그거 아세요?"

통수는, 타이밍입니다.

EP.69 변곡점

베히모스.

원작에서는 김선우 박사가 와서 회수해 가는 검은 물질.

작은 검은색의 촉수 여러겹으로 만들어진 이것은 사용자의 신체에 붙어, 붙은 부위를 강화시켜준다.

물론 베히모스의 유용성은 이것 뿐만이 아니다.

사용자의 생각에 따라 자유롭게 이동하는 만큼, 활용법은 많다.

주먹처럼 뭉쳐 로켓펀치마냥 쏘아버릴 수도 있는 등, 꼭 신체에 붙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활용법은 무궁무진.

원작에서는 이걸 통해 김선우가 스타더스랑 싸운다.

그러니까, 일반인도 이것만 있으면 초인과도 싸울 수 있다는 소리.

그러니까 나도, 이것만 있으면 스타더스랑 1대 1 대전을 할 수도 있다는 소리 아닐까?

"....그거 안 내려놔?"

"제가 이걸 왜 내려놉니까?"

굳은 표정으로 내게 으르렁 거리는 그녀를 향해,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어느덧 베히모스는 내 오른손을 완전히 감쌌다.

내 오른손은 촉수로 이루어져 있으니-

나는 한번 손으로 주먹을 쥐어봤다.

"좋네요."

좋다.

뭔가 오른손에서 힘이 넘치는 기분.

특히 이 촉수들이 내 뇌랑 직접적으로 연결됐는지, 내가 원하는데로 움직인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 이정도면 스타더스와 싸우는 것도 무리가 아니지 않을까?

여전히 굳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만보고 있는 그녀.

당장 달려들어 나한테서 이걸 떼어놓고 싶어하는 걸로 보이지만, 어림도 없지.

내가 그냥 순간이동으로 도망치면 끝이라는걸 알기에, 달려들지도 못한 채 저렇게 가만히 있는거다.

순간이동이 좋긴 좋아.

"스타더스. 제가 조언을 하나 해드리겠습니다. 뭔줄 아십니까? 바로 빌런을 믿지 말라는겁니다! 솔직히 어떻게 이걸 모르셨는지 의아하네요. 하하하하하!"

내가 능글거리며 그렇게 말하자, 그녀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졌다.

그래. 원래는 여기까지만 한 뒤에 '수고요~' 이러고 튈 생각이었다.

그럴 생각이었는데.

쓰읍. 이대로 가면 좀 그렇지?

이왕 새로운 능력도 얻은겸.

스타더스한테 경각심도 줄겸.

나는 검게 물든 오른손을 스타더스에게 까딱거리며, 이렇게 말했다.

"정 빼앗고 싶으시면... 와서 빼앗아 보시던가요."

내가 그렇게 웃으며 말하기까지 하자, 그녀도 더이상 참지 않았다.

"...죽지 않을 정도로만 패주마."

쿠웅-

순식간에 자리를 박차 내쪽으로 날아오는 그녀.

"이 악물어라."

그녀는 그 말과 동시에, 나를 향해 주먹을 뻗기 시작했다.

나는?

나도 이미 주먹을 장전한지 오래.

그러나 사나이는, 멋없게 아녀자와 직접 몸을 맞대며 주먹다툼을 하지 않는법.

그녀가 내 코앞까지 와 주먹을 휘두르는 순간.

나는 그대로 내 원래 있던 곳에서 한뼘 뒤로가, 주먹을 장전했다.

그리고 그녀에게, 쏘았다.

애고류 비기(祕器)-

로켓펀치(火箭强拳).

콰앙.

내 손에서 쏘아진 검은 주먹 모양의 촉수는, 그대로 스타더스에게로 향했고.

그렇게 스타더스가 휘두른 주먹과 그대로 부딪혔다.

쿠우웅-.

굉음을 내며 맞붙는 주먹.

스타더스는 자신의 힘을 견디는 주먹에, 살짝 당황한것처럼 보였다.

그래. 이게 베히모스의 위력이다 이말이야.

...물론 내가 이걸 오른팔에 휘감아 물리적으로 싸우는게 아닌, 작은 사이즈의 주먹 하나에 모든 촉수를 응집시켰기에 그녀의 힘을 견딜 수 있는거다. 거기에 스타더스도 나를 여기서 즉사시킬 생각을 하지는 않을테니 힘조절도 어느정도 하고 있는 상태일테고.

근데 그런게 중요해?

중요한건 내가 어찌됐건 그녀랑 막상막하로 싸우고 있다는거지.

"야!! 정정당당하게 싸워!!"

"악당이 언제 정정당당하게 싸우는거 보셨습니까?"

그녀는 계속 요리조리 빠져나가며 원거리에서 촉수로 이루어진 주먹만 쏘아대는 나를 보며 일갈했지만, 나는 가볍게 무시했다.

...그리고 방금 스타더스 컨셉 무너지지 않았어? 원래는 '네이놈! 정정당당하게 싸워라!' 이랬어야 했을텐데.

음. 조금 빡쳤나보다. 왜 빡쳤지?

전투를 이어나가며 그녀의 표정을 보니, 분노와 배신감으로 가득 찬 얼굴.

....배신감? 대체 왜 배신감을 느끼는거지? 악당이 배신을 하는건 '상식'이데.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인생의 쓴맛을 덜본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싸움을 이어나갔다.

계속 순간이동으로 도망치면서 얍삽하게 촉수로 잽만 날리는 공격.

아무리 방이 넓어도 서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주먹다툼을 하다 보니 벽도 부숴지고 난리가 났다.

...슬슬 원패턴이라 질리는데.

순간이동을 너무 많이 했더니 지친다. 힘들어.

애초에 내가 이렇게까지 몸을 움직여가며 싸운적이 있나? 없다. 사실 내가 싸운다기 보다는 베히모스가 대신 싸워주는 기분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정도면? 어느정도 교육이 되지 않았을까?

여전히 분노로 가득 찬 채 쌩쌩한 모습으로 날아오는 그녀를 보며, 나는 다시 한번 주먹을 장전했다.

그녀가 똑같이 나를 향해 주먹을 뻗을 때, 나도 뻗어서.

쾅-.

이번에는 비슷하게 원거리에서 공격한게 아닌, 내가 직접 베히모스를 오른팔에 감싸고서 그녀의 주먹을 받아냈다.

팔이 조금 저릿저릿 하긴 하지만, 이정도는 막아낼 만 하지.

이게 내 마지막 공격일거거든.

이제 입만 조금 털고 도망쳐야지. 서은이가 걱정하고 있을거다.

나는 그렇게 그녀와 몸이 맞닿은 채, 그러니까 주먹이 부딪힌 상태로 마지막 인사를 건냈다.

"오늘의 교훈. 아셨죠? 악당은 믿는게 아니..."

그래.

악당은 믿는게 아니라고.

앞으로는 이렇게 통수맞지 말라고 조언을 하려고 마지막까지 조언을 하려고 할 때.

그 일은, 갑작스럽게 일어났다.

코앞에서, 나를 잡아 죽일듯이 바라보고 있는 스타더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뒤는 텅 비어있었다

그래. 비어있었었다.

갑작스럽게 그녀의 뒤에, 뭔가가 튀어나오기 전까지.

그것은 거대한 하얀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키는 2m정도로 거대했고, 입은 기괴하게 찢어져 있었으며.

마치 거대한 낫과도 같은, 하얗고 날카로운 팔을 가진 모습.

정말 갑작스럽게, 갑작스럽게 허공에서 순식간에 튀어나온 그것.

아무도 예상치 않던 순간, 눈 깜짝할 사이에 튀어나온 그것은.

나타난 순간부터, 이미 그 낫과 같은 팔을 스타더스의 등 뒤를 향해 휘두르고 있었다.

나는 그 순간, 생각이 잠시 멈췄다.

스타더스는 여전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른 채, 무방비하게 나만을 바라보고 있는 상황.

그리고 내가 뭘 할 셈도 없이, 이미 그 하얀 낫은 그녀의 목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우리가 미쳐 해치우지 못한 하나의 괴물.

*

"RKCB-1107"

[가칭]순간이동자

[유의사항]순간이동을 하여 도망칠 수 있으므로 A등급 보안을 늘 유지한다. 뒤에서 덮치므로 주의를 표할 것.

*

그래. 그런걸 읽었던 적이 있던 것 같다.

그러나 나는 그놈을 발견하지 못하고도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았다. 신경쓰지도 않았다.

지금까지 다른 괴물들은 너무나도 쉽게 죽이면서 왔으니까.

그리고 나의 그런 방심은, 커다란 비수가 되어 스타더스를 향하고 있다.

어떻게해야 하는가.

말하기에는 너무 늦다. 이미 촉수는 그녀의 주먹과 맞붙고 있다. 염동력으로 하기엔 너무 약하다.

잡고 순간이동? 하필 베히모스로 주먹 맞대고 있어서 잡을 수도 없다.

그럼. 어쩔수 없잖아.

나는 그대로 순간이동 했다.

그녀의 등 뒤, 괴물이 낫을 휘두르고 있는 그 자리로.

그리고 내가 대신해.

그대로 그것에, 찔렸다.

푸욱-.

"무슨....! 뭐야!"

등 뒤에서 들리는 그녀의 비명.

나는 그녀와 등을 맞대고, 대신 그것에게 찔리며, 그녀에게 향하던 주먹 그대로, 놈에게 날렸다.

퍼석.

너무나도 쉽게. 머리가 박살나며 하얀 가루로 흩날리는 그것.

그래. 참 쉽게, 이렇게 쉽게 해치울 수 있는 놈이었다.

내가 이렇게, 가슴에 구멍이 뚫리지 않고 해치웠으면 더 좋았을텐데.

"이, 이게 무슨일이냐! 어, 어 너가, 왜...."

굉장히 당황한 채 말을 더듬고있는 그녀의 목소리가 내 위쪽에서 들려왔다.

그야 황당하겠지. 아까까지만 해도 싸우던 빌런이 갑자기 뒤로 이동해서 대신 칼찌당했는데.

지금 내 상태는 빈말로도 좋지 않다.

바닥에 엎어져, 가슴에 무슨 주먹하나 들어갈만한 구멍이 나서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 모습.

미친새끼. 무슨 몸을 관통했어.

존나 아프네.

"쿨럭."

나는 그 자리에서 피를 토했다.

가슴으로도, 피를 뱉고. 입으로도 피를, 뱉고. 개판 이구만. 하, 하하...

"아니...대체..왜....괜찮...젠장....어째서....이게..무슨...."

위에서 들려오는 스타더스의 목소리.

이제는 이명 때문에 잘 들리지도 않는다.

빨리, 돌아가야한다. 집으로.

이러다가. 정말. 죽겠. 어.

잠깐, 그래도. 가기 전에... 한마디는, 해야지. 안이상하지.

나는 죽을 힘을 다해 한마디를 짜냈다.

"쿨럭. 이번, 이번. 에. 하나. 빚지신, 겁니다."

여전히 몹시 당황한, 어쩔줄 모르겠다는 듯 나를 떨리는 눈길로 바라보고 있는 그녀를 마지막으로 보고선.

나는그대로, 순간이동했다. 집으로.

늦지, 않아야할텐데.

하하하.

***

늦은 밤.

산골짜기 깊은 곳에 숨겨져있는 커다란 저택.

그곳의 부엌에서. 세명의 사람이 모여있었다.

"아니. 오빠는 대체 언제 오는걸까요?"

볼을 부풀린 채 스마트폰을 바라보고 있는 하얀 머리칼의 여자애는, 한서은.

그녀는 지하로 내려간지 시간이 경과한 후, 연락이 끊어진 다인을 걱정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그리고 하율아. 넌 내일 학교가는거 아니니? 이제 슬슬 자러가야지."

옆에서 건낸 걱정 어린 수빈의 말에, 쓴 웃음은 지으며 고개를 젓는 하율.

"아니요. 저도 조금만 더 같이 기다려볼께요."

"휴우. 진짜 이 오빠는 맨날 사람 걱정이나 시키고..."

그렇게 세 여자의 한숨소리만 깊어지고 있을 때.

우당탕-.

거실에서 들리는, 무언가 나자빠지는 소리.

"어! 오빠 드디어 왔나봐요!"

서은이는 소리가 들려오자마자, 서둘러 뛰어나갔고.

그런 그녀를 따라 남은 둘도 일어나 거실로 향하고 있을 떄.

거실에서, 먼저 달려간 서은이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꺄아아아아아아악!!!"

"서은아! 무슨일이야!"

갑작스러운 비명소리에 놀란 둘이 거실로 서둘러 달려가자.

그들이 본것은.

상체에는 구멍이 뚫려있고.

그곳에서 온몸으로 피를 흘리는 채.

서은이에게 기대 쓰러져있는, 에고스틱의 모습이었다.

"오빠, 오빠! 어. 어떡해. 오빠!!"

눈물을 흘리며 그의 옆에서 공황상태에 빠져있는 서은이.

숨을 희미하게 쉬는 채 쓰러져, 피를 쏟아내는 그의 모습을 본 둘도

갑작스럽게 펼쳐진 충격적인 광경을 보고, 패닉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이, 이게. 무슨.... 아. 아아. 이, 일단, 일일구, 전화. 전화해야돼...."

충격에 빠진 상태로, 손을 벌벌 떨며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는 이수빈.

그러나 손이 너무 심하게 흔들린걸까. 휴대폰은, 들어올리는 과정에서 그녀의 손을 빠져나가 바닥에 부딪히며 박살이 났다.

"아. 안돼."

그렇게 이수빈이 여전히 초점이 나간 상태 그대로 무릎을 꿇고 바닥에 있는 폰을 더듬거리며 주울 때.

그녀의 옆에 있는 하율은, 이미 그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서은아. 비켜."

"네? 아. 네..."

무언가의 결의로 가득 찬 하율의 말에, 울고있던 서은이는 엉금엉금 떨어져 그에게서 물러났고.

이내 쓰러져있는 그의 코앞까지 온 하율은, 무릎을 꿇고 다인의 몸에 두 손을 얹었다.

그리고.

번쩍.

그들이 있던 거실은, 갑작스러운 빛으로 가득찼다.

***

흐려지는 의식 사이로,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감각.

온몸이 따스해지는 이 기분.

아아.

하율이가, 나섰구나.

다행히 안 늦었구만.

살았네. 살았으면 됐지 뭐...

하하. 진짜 죽을뻔했지 뭐야.

사나이로 살다보면 뭐, 한번쯤은 이렇게 사선에서 탭댄스도 해보고 그래야하는 법이지. 다 나중가면 좋은 추억이 되고 그러는거다. '하하. 그때는 정말 아찔했지!' 이러면서.

...그런데 깨어난 이후가 문제네.

서은이랑 수빈씨, 하율이 모두 충격받았을테고.

스타더스는....

아몰라. 그건 나중에 깨어나서 생각하자.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파이팅, 미래의 나....!

EP.70 요양

"서은아."

"왜요?"

"이것 좀 풀어주면 안되겠니?"

"안돼요."

나는 내 침대에 묶인 수갑을 절그럭 거리며 말했다.

아니, 그렇다고 내 손을 침대에 묶는건 너무하잖아...

그리고 난 어차피 순간이동하면 그냥 빠져나갈 수 있는데?

"그거 빼기만 해봐요. 오빠 얼굴 다시는 안볼꺼야."

"....."

그런 내 기색을 읽었는지 서은이가 서슬퍼런 기색으로 말했다.

쩝... 내가 얘한테 한게 있어가지고 뭘 할 수가 없네.

"알았다, 알았어. 그냥 누워있으면 되지?"

나는 결국 항복하고 다시 침대에 몸을 기댔다.

오른손에는 링거가 꽂혀있었다. 수액이래나 뭐래나.

한은그룹 지하에서 스타더스를 대신해 칼빵을 맞은지 벌써 몇주가 흘렀다.

사경을 해매다가 하율이가 해준 힐 덕분에 겨우 목숨은 붙였다. 몸에 분명 구멍이 뚫렸었는데 살았다니, 이게 기적이지 뭐가 기적이겠어.

거기에 여기까지 순간이동해서 몰아닥쳤던 피로도까지 생각하면, 진짜 살아있는게 용했다.

근데 문제는.

내가 거의 죽을뻔했다는걸 우리집 모두가 알게 되었다는거지.

그 결과 방에 감금되었다.

"..."

"자. 아~ 하세요."

"...수빈씨. 제발, 제발 밥은 제가 직접 떠먹으면 안되겠습니까?"

"안돼요. 아~."

"하아...."

그래. 솔직히 인정해서.

나 같아도 정말 깜짝 놀라긴 했을꺼다.

만약 서은이, 수빈씨나 남매중 한명이 어디 나갔다 왔다가 몸에 구멍이 뚫려서 피를 철철 흘리며 나타난다? 진짜 심장 떨어지는 기분일걸.

실제로 내가 쓰러지고 몇주 후에 깨어났을 때, 다들 내 앞에서 펑펑 울었으니까.

...그래도 침대에 수갑을 채우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어쨌든 깨어나고서도 그렇게 몸이 썩 좋지는 않아서, 한동안은 침대에서 링거 맞으며 누워 있었다.

"...지금까지 숨겨서 죄송해요."

"아니야 아니야. 내가 오히려 살려줘서 고맙다고 해야지, 무슨 소리야. 뚝!"

그리고 하율이는 나에게 자신이 치유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어렸을적 멋모르고 말한 고아원장을 제외하면, 나한테 처음으로 자신의 능력을 고백한 것.

물론 거실에서 대놓고 쓰러져있던 나를 치료했으니 모두가 알게 됐겠지만, 뭐.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먼저 말할때까지 가만히 있었을 뿐.

이렇게 공식적으로 나는 힐러를 얻게 되었다.

'다쳐도 하율이가 치료해주면 되니까 괜찮은거 아닐까?' 라고 말했다가 서은이한테 머리를 얻어맞는 해프닝이 있었긴 한데, 어쨌든.

내가 좀 괜찮아진 이후, 다들 제일 먼저 물어본것은 그거였다. 어쩌다가 이렇게 크게 다친거냐고.

그냥 사실대로 '스타더스 지켜주려다가 다침'이라고 말하려고 했었는데.

"....."

무언가 쎄한 기분이 들었다.

왜인지 이렇게 말했다가는, 좆될거같다는 기분이.

나에게도 스타더스처럼 초감각이 있다는 말인가? 이 기분은 대체 뭐지?

...그래, 이렇게 말하자.

"괴물이 뒤에서 기습했다고요?"

"그래. 방심하고 있다가 맞았지 뭐야."

거짓말은 아니다. 진실의 일부만 말했을 뿐.

괴물의 기습때문에 찔린거는 맞다. 다만 내가 일부러 찔린거긴 한데, 이걸 말했다가는 끔찍한 시간을 보내게 될 것 같으니 가만히 있자.

이미 여기까지만 말했는데도 다들 표정이 굳었거든.

다들 처음부터 그런 위험한데를 왜 들어갔냐고 나를 하도 괴롭혀서, 앞으로 저런데는 안가겠다고 겨우 약속을 하고 나서야 풀려났다.

...쩝. 사나이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법인데.

그렇게 며칠간의 감금생활을 끝내고.

침대에 누워만 있으면 오히려 몸에 안좋다는 내 애원에, 드디어 일어나 산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집이 산골짜기에 있는 덕분에, 어디 갈 필요없이 집앞 마당이 사실상 공원처럼 가꾸어져 있어서 걷기에 참 좋다. 짚 앞 둘렛길, 현대인의 로망 아니겠는가.

물론 나 혼자 걸은건 아니다. 나를 감시하겠다며 서은이가 딱 달라붙었거든.

....아니, 내가 여기서 갑자기 도망가겠어 뭘 하겠어? 참으로 억울하다.

생각해보니까 그냥 나랑 같이 걷고 싶은걸수도 있네. 뭐.

어찌됐던간에 날은 좋았다.

이제는 봄이라 그런지, 새들도 날아다니고 꽃들도 좀 펴있고... 바람도 선선하니 좋네.

"오빠, 진짜 몸 괜찮은거 맞아요?"

"어. 이제는 멀쩡해. 내가 대체 몇주나 쉬었니? 아직도 안나으면 그게 이상한거지."

"...가슴에 구멍이 뚫렸었는데 금방 낫는게 더 이상한데요."

"하율이가 워낙 힐을 잘해줘서. 역시 모든 팀에는 힐러가 필요하다니까. 아니었으면... 큰일났겠지."

그래도 하율이한테 미안하기는 하다.

얘도 나 치료해준 다음에 힘이 빠져서 잠깐 기절했었다고 들었거든.

....사실 처음부터 힐러 목적으로 영입한거긴 한데, 또 그랬다니까 좀 마음이 불편해.

나는 여전히 옆에서 걱정스러운 눈길로 나를 바라보는 서은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내가 머리를 만져도 아무말 안하고 가만히 몸을 맡기는 서은이. 얘가 원래 이런애가 아닌데, 내가 쓰러진 이후로 좀 유해졌다.

하긴. 제일 처음으로 반시체가 된 내 모습을 본게 서은이니까. 다른 사람들은 서은이의 비명소리를 듣고 본능적으로 마음의 준비라도 했지, 서은이는 그런것도 없이 달려갔다가 내 모습을 봤다고 한다. 솔직히 사람이 가슴에 구멍뚫리고 피 흘리는거 보고있으면 트라우마 되겠어.

...애가 정말 많이 놀랐다고 한다. 수빈씨의 말에 의하면 계속 울었데나. 미안하네.

그래. 재밌는거라도 보여주자.

"서은아, 이거 봐봐라."

"뭔데요?"

나는 내 몸쪽에 있던 베히모스를 손 위에 뭉쳤다.

사실상 내 이번 개지랄의 유일한 소득.

검은색의 리모트 컨트롤 가능한 액체괴물이다.

...뭔가 이렇게 말하니 좀 없어보이기는 한데, 어쨌든.

그걸 여러개의 공처럼 뭉쳐봤다.

순식간에 생긴 4개의 꿈틀거리는 검은색 공.

"짠. 저글링!"

나는 그걸로 저글링을 했다.

비밀의 연구소에서 사람 수십명을 갈아만든 생체병기 특.

저글링 공으로 쓰일 수 있음.

"...오빠. 재밌어요?"

서은이는 짜게 식은 눈길로 그런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이상하다. 요즘 애들은 저글링 안좋아하나?

***

하여튼 그렇게 몸조리를 꽤 오래했다.

한 몇주 지나자 이제는 완전히 돌아온 컨디션.

이제는 침대에 누워 수액만 맞는 삶을 드디어 졸업하고, 방에 제대로 앉아있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오랜만에 돌아온 개인시간.

역시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법이지.

"...끝."

이번에 있던 일들까지 전부 일기에 적은 나는, 이내 일기를 서랍 깊숙한 곳에 넣어 열쇠까지 잠궈놓았다.

'그 빌런'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매일 이렇게 일기를 써야한다. 그 이후에는 태워버리면 될 테고...

그래서 이건 누가 읽으면 큰일 나. 내 비밀을 다 적어놨다고.

...그런데 자꾸 서은이가 내 일기를 읽으려고 들어서 큰일이다. 이거 읽으면 안돼. 지지야.

조만간 대책을 마련해야겠다.

"휴우..."

할일도 다 한 나는, 의자에 기대서 머리를 정리했다.

이번 한은그룹 지하실에서 일어난 일. 내가 원하던 베히모스를 먹는거까진 성공했는데 그 이후가 문제였다.

사실 이 세계에 오고 나서 처음으로, 나도 죽을 수 있다는걸 깨달았으니까.

내가 죽으면 좀 곤란하다.

서은이와 수빈씨, 하율이가 어떤식으로 움직일지도 모르겠고... 결과적으로, 세계가 다시 맛이 가게 될꺼니까.

사실 지금하는 모든일은 다 피폐물이 되는걸 늦출뿐, 원작의 최종보스를 쓰러트리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러니까 결론은.

내가 죽은 이후의 세계도 미리 생각해 놔야하는 법이겠지.

"...."

아무래도 노트를 하나 더 사야겠구만.

아무튼 그건 그렇고, 이런 일이 안일어나도록 재발 방지에 대한 이야기나 해보자.

이번에 느낀건데, 내가 무력이랄께 거의 없어서 어딘가에 혼자 직접 나서기에는 좀 위험한 감이 있다.

"...아니. 이제 없는건 아니지."

나는 내 오른팔 어깨쪽에 붙어있는 검은 무언가를 봤다. 베히모스. 이제 이게 있으니 어느정도 무력은 있다. 날아오는 총알같은건 어지간하면 얘로 막으면 되겠지.

...근데 내가 실제 전투에 참여할 일 자체가 많지 않을거라, 사실상 그냥 보험 느낌이다. 최악의 순간에 꺼내는.

하여튼. 중요한건 무력도 거의 없고.

더욱이나 내가 자꾸 전면에 나서니까 힘들다는거다.

그래. 역시 내가 구상한 그걸 더욱 빨리 시행할 필요가 있다.

그냥 대한민국의 모든 빌런들을 내 아래에 둬서 통제하는 것.

히어로들에게도 그들을 관리하는 협회가 있는데, 빌런들도 그들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무언가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게 생기면 내가 직접 주도적으로 테러를 할 필요도 없겠지.

전부 외주를 줘서 맡기는거다. 대충 민간인 피해 없고 스타더스만 강해질 수 있게.

그렇게 되면. 어쩌면. 내 은퇴가 꿈이 아닐수도 있겠지.

나는 뒤에 멀직히 서서, 모든 테러들을 관리하고 컨펌하는 역할만 하는거다.

...근데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

"휴... 일단 그녀부터 섭외해봐야겠구만."

나는 그렇게 다음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일단은 무력을 가진 사람이 필요하겠지.

...

계획을...짜야하는데...

"하아...."

나는 계획을 짜다 말고 한숨을 쉬었다.

그래. 미래에 대한 계획이고 뭐가 다 필요없고.

지금 제일 큰 걱정은.

"....스타더스는 어떡하지."

대체 그녀가 날 뭐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세상에 어떤 빌런이 히어로가 죽게 생긴걸 자기가 대신 몸빵을 해서 맞아주겠어.

이거는 진짜 나를 의심하기 시작해도 할 말이 없다.

"...아. 몰라."

모르겠다. 그래도 나중에 입 잘 털면 되겠지.

그래도 내가 지금까지 저지른 짓들이 있으니까. 갑자기 이번에 이거 하나로 의심하지는 않을거다.

에이. 지금까지 테러만 4번 일으켰는데, 그래.

...그렇게 믿어야지. 걱정하지말자.

"...."

...아니 그전에. 마지막에 그런 모습으로 헤어져서.

나 죽은줄 아는건 아니겠지...?

***

"하루야. 요즘 왜 이렇게 멍때려? 무슨 걱정이라도 있어?"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언니."

"뭐가 아무것도 아니야. 요즘 추욱 늘어져가지고 계속 표정이 안좋던데. 뭔일 있던거 아니야?"

뭔 일이 있기는 했어요.

신경쓰이는 일이.

그런 생각은 속으로 삼킨채, 신하루는 애써 웃으며 아무것도 아니라고 할 뿐이였다.

그날 이후로 한달째 되던 날이였다.

EP.71 그녀의 고뇌

한은그룹 지하를 조사하고 온지 어언 한달.

그날 이후로, 신하루는 일상에서 멍하니, 다른 생각을 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

공부를 하다가도, 히어로 활동을 하다가도, 쉬다가도, 잠을 자려다가도.

불숙불숙 치솟아오르는 생각은.

'....걔가, 왜 그랬을까.'

그녀는 아직도, 지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던건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대체 뭐지?

왜 그런거지?

자신을 구해준 사람에게 고마움을 느끼는건 당연한 일이다.

그것도 그 누군가가 자신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했다면.

누구든 아마 평생에 걸쳐, 고마워 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그 구해준 사람이, 그녀를 구해줘야 할 이유가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히어로와 빌런은 어떤 관계일까?

단순하게 정의하자면, 그냥 적대관계라고 할 수 있다.

서로가 서로를 주적이라고 여기는 앙숙.

빌런에게 히어로만큼 거슬리고 없애버리고 싶은 존재가 없고.

히어로는 빌런을 심판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걸 불사른다.

그러니까, 빌런이 히어로를 구한다는건 농담으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그런 일이 그녀에게 실제로 이루어져서 문제지.

"...."

한은그룹 지하.

그녀가 아직까지 누구에게도 해주지 않은 말이지만.

에고스틱은, 자신의 몸을 날려 그녀를 구했다.

아마... 그가 나서지 않았으면 자신은 이미 이 자리에 없었겠지.

빌런은, 히어로가 쓰러지면 제일 반기는 존재가 아니던가.

사실 따지고보면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수많은 빌런들이 전부 자신이 사라지는걸 바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자신을 죽이려고 들었던 빌런들도 수십명이고.

그런데 어째서.

에고스틱 그놈은, 자신을 구했지?

아니. 자신을 구한건 그렇다 치더라도, 어쨰서 스스로 몸을 날리면서까지 그런거지?

"..."

책상에 앉아 일을 하던 신하루는, 자신도 모른 채 다시 생각에 빠졌다.

최근들어 계속해서, 계속해서 반복되는 생각. 아니, 그래. 의아함. 그로 인하여 파생되는 궁금증.

왜 그는 자신을 구한걸까?

사실상 이번 일은, 그녀가 에고스틱에 대하여 갖고 있던 모든 의심들의 종지부를 찍는 일이었다.

그래. 처음부터 뭔가 이상했다.

그는 다른 빌런들을 처리하고 다녔다.

그가 일으킨 테러는 전부 사망자가 나오지 않았다.

거기에, 그녀만 알고있는 사실들.

그는 자신보고 얼굴을 노출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는 자신에게 테러를 막으라고, 스스로를 믿으라고 하였다.

그는 자신만이 예측한 재앙을 막기위해 다리를 부쉈다.

그리고 이번에. 그는 자신의 몸을 바쳐 그녀를 구했다.

그래. 그래.

이제는 정말로, 정말로 인정해야한다.

에고스틱. 그는 평범한 빌런이 아니다.

아니, 평범하지 않다. 그 말로 그를 정의할 수 있을까.

사실 그녀는 이제 그를 빌런이라고 해야할 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물론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그녀는 바로 스스로를 부정했다. 아니. 테러를 일으키고 ,민간인을 겁박했으며, 다른 빌런들을 자기 마음대로 살해한 이가 빌런이 아니면 누가 빌런이라는 말인가.

그러나.

그는 자신이 일으킨 일들 이상으로, 뒤에서 다른 일들을 많이 해왔다.

따지고보면 그로 인하여 사망한 민간인들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그로 인하여 구해진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가.

그의 추종자들이 인질을 붙잡고 일으킨 테러. 그가 막았다.

엘리게이터맨이 도심에서 난동을 일으킨 테러. 그가 막았다.

호텔에서 몽키스패너가 일으킨 테러. 그가 막았다.

한은그룹이 만든 괴물로 인하여 일어난 재앙. 그가 막았다.

...그리고 자신까지. 그가 구했다.

사실 그가 저지른 전과만 놓고 보면 그는 빌런이 맞지만.

그가 한 업적들만 따지고 보면, 그를 히어로라고 칭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다.

그러면 어째서 그는 이렇게 이중적인 면모를 보이는가.

그가 악한 이라면, 사람들을 구하는 이유가 설명이 안되고.

그가 선한 이라면, 그가 테러를 일으키는 이유가 설명이 안된다.

사실, 전자는 설명할 수 있다.

그가 악한 이라면 왜 사람들을 구했는가?는 이미 자신에게 그가 직접 설명한 일이니까.

추종자들이 일으킨 테러는, 자신의 명예를 실추시켜서.

엘리게이터맨이 일으킨 테러는, 자신을 언급한게 꼴받아서.

자신에게 비행기의 사람들을 구하라 한 이유는, 그와 자신의 대립구도를 강화하기 위해서.

호텔에서 몽키스패너가 일으킨 테러는, 지나가다가 그냥 기분내켜서.

한은그룹이 만든 괴물로 인하여 일어난 재앙은, 어그로가 뺏길까봐.

그래. 다 이유가 있다.

그가 스스로 구구절절, 하나하나 설명해준 이유들이.

그 이유들이, 다 그저 변명같다면 너무 과민반응일까.

아니. 한번 맞다고 쳐보자.

그가 지금까지 저지른 결과적으로 선했던 일들은 전부 그가 설명한 대로고, 그는 실제로 악한 빌런이라고.

근데 그렇다고 해도.

그가 스스로의 목숨까지 걸면서 그녀 자신을 구한 일은, 어떻게 설명할건가?

"하아...."

사실 그녀의 속마음은.

에고스틱을 단순한 악인이라고 보기에는 어렵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고 있다.

아니, 악인이건 선인이건 그의 말대로 자신은 그에게 빚을 졌다. 자신이 죽을 위기를 그가 스스로를 희생해 살려줬으니.

그러나 아예 나쁜놈이 아니라고 하기에는 지금까지 일으킨 테러와 빌런 사살이 계속 밟힌다.

그러나 나쁜놈이라고 하기엔 또...

"으...."

그래.

이건 답이 안나오는 문제다.

사실 에고스틱에 대해 생각하기만 하면 머리가, 마음이 어지러워져 그녀는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나쁜놈은 맞는데? 그래도 착한 일들도 많이 했고? 근데 자신은 왜 구한거지?

그리고 제일 중요한건.

그녀의 마음 속 깊숙히 어딘가, 직감의 영역에서.

왜인지 자꾸, 그가 사실 악인이 아니라는 쪽으로 마음이 기운다는거다.

그 마음에는 논리도 근거도 없다.

다만 메아리처럼 자꾸만 그런 기분이 들 뿐.

사실 내가 오해하고 있는건 아닐까...

알고보니 에고스틱이 지금까지 일으킨 테러도 무언가 깊은뜻? 같은게 있다던가...

"내가 미쳤지."

그녀는 상념을 털어내고 옆에 있던 물을 한잔 들이켰다.

이제는 막 이런 말도 안되는 생각도 들고있다.

"...."

그리고 이렇게 에고스틱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면.

늘 마지막에는, 하나의 생각으로 마무리지어진다.

걔는 지금, 무사할까.

사실 말도 안되는 일이다.

히어로가 빌런을 걱정하다니. 어디 소문이라도 나면 세상 사람들의 비웃음을 받을만한 일.

...아니. 에고스틱의 인기를 생각하면 꼭 그렇지 않을수도 있기는 하겠다만. 어쨌든.

늘 에고스틱에 대한 생각의 귀결은, 그에 대한 걱정으로 끝난다.

정말 심하게 부상당했었는데.

곧바로 치료하지 않으면, 그게..

아니. 그 이전에 그게 치료한다고 나을 수 있는 상처일까?

그녀가 마지막으로 봤을 때는 그는 거의 가슴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큰 상처를 입었었다.

...어떻게 그래도, 방법이 있겠지?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그렇게 무모하게 행동한거겠지?

....설마. 그대로 죽어버린건 아니겠지.

자신을 구하다가, 그렇게 허무하게.

"....."

아니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우울해지는 기분을 막기 위해 다시 되새겼다.

에고스틱. 그 비밀많고 꿍꿍이 많은 놈이 그렇게 허망하게 쓰러졌을리가 없다. 분명 어디선가 쉬고 있겠지.

그렇게 자기합리화를 하다가도, 자신이 지금 히어로면서 빌런 걱정을 하고 있는건가?- 라는 생각이 들면 또 뭔가 못할 짓을 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건 빌런을 걱정하는게 아니다. 그냥 자신을 구하다가 그렇게 된거니까. 아. 그래. 빌런이라고 할지라도 그렇게 죽어버리면 안되고,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하니까 그런거다. 그래.

"하아..."

걱정이 되지만.

걱정 하나 맘대로 하기도 힘들다.

그렇게, 그녀는 계속 끙끙거릴 뿐이었다.

...그래. 일단 이놈이 살아있어야 물을 수 있으니까. 일단 에고스틱, 이놈이 살아있다는걸 확인해야 하는 법이다.

그런 논리로 그녀는 오늘도 에고스틱의 팬카페에 들어갔다.

그가 살아는 있는지, 뭘 하는지 근황이라도 나와있지 않을까... 라는 기대에 매일 들어가게 되는 이곳.

*

[유입필독)한달 가지고 징징? 응 저번에는 거의 반년이었어ㅋㅋㅋㅋㅋ]

[하루 한번 감사의 망고스틱 퍼먹기... 26일차]

[마음 놓고 기다리고 있으면 복귀한다... 기다려라...]

[저번 공포방송 하이라이트 ver.7]

[아니 클립 지워졌는데 뭐지?]

[근데 이제 뭐함?]

[에붕이 오늘 우리 대학 축제에 에고스틱이 오는 꿈 꿨어]

*

늘 올라오는 결과적으로 쓸모없는 게시글들만 보며, 그녀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래. 그의 생사를 확인하는건, 그가 일으키는 테러로 자연히 알게 되겠지.

그렇게 오늘도. 따지고보면.

히어로는, 빌런이 테러를 일으키는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

"당분간 직접 테러 안한다."

"진짜죠?"

"그래. 당분간은 조용히 살테니까 제발... 제발 그만 물어봐!"

"잘 생각했어요. 몸을 그렇게 굴렸는데, 당연히 당분간은 몸조심 해야지."

"해야지는 반말이고... 하여튼, 다음 테러는 내가 직접 일으키지는 않을거다."

"네? 그럼 어떻게 하게요?"

"외주를 맡겨야지."

나는 거기까지 말한 뒤 씨익 웃었다.

그래. 언제까지 내가 직접 뛰어다니며 테러를 일으켜야 해.

내 테러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전한다.

당분간은 없다!

***

[신하루님, '에고스틱 공식 팬카페'의 성실회원으로 승격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아."

EP.72 인재 영입

모든 것은 스타더스를 위해.

내가 이 세계에 떨어진 이후, 한참을 방황한 끝에 삼은 삶의 목표다.

결국 이 세계의 주인공은 스타더스.

그래. 내 최애캐이기도 한 그녀를 위해, 내 한 몸 불사르리라.

그를 위해 내가 마음먹은 결론. 스타더스를 괴롭게 하던 빌런들은 내가 다 치워버리자.

근데 그러면, 스타더스는 누구랑 싸우지?

고인 물은 썩는 법. 활동을 안하는 히어로를 과연 히어로라고 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스타더스는 시련을 겪을수록 강해지는데?

...그래

내가 직접 빌런이 되어, 그녀가 감당할 수 있는 시련만 내어주자.

그렇게 지금까지 열심히 테러를 일으켰다.

그리고, 이제는 여기서 한발자국 더 나설 때가 되었다.

"테러를 굳이.... 내가 해야할까?"

그래.

이거 꼭 내가 직접 해야돼?

아니지, 아니다. 대충 사망자만 안나오고 스타더스만 성장시킬 수 있다면, 꼭 내가 아니라 다른 빌런이 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니까.

내가 빌런 연합 같은걸 만들어서, 나 말고 다를 빌런들이 나 대신 테러를 일으키게 한다면.

나는... 은퇴해도 되는거 아니야?

그런만큼 새로운 능력자를 구할 필요가 있다.

지금 있는 서은이와 수빈씨, 하율이까지 전부, 다들 서포터형이다. 무력을 가진 사람이 없어!

그래서 지금 다른 능력자 한명 꼬시러 가는 일이다.

여기는 한 카페.

나는 창가자리에 앉아, 커피를 홀짝이며 카운터를 훔쳐봤다.

"언니. 이것도 먹어봐요."

"음. 여기 딸기 케익도 맛있다."

"차윤아. 먹고 물양치 해야지."

그리고 내 옆자리에선 서은이 수빈씨 하율이 차윤이까지 전부 모여 수다를 떨고 있다.

.....가장에게 개인시간이란 없는가.

***

이번에 내가 꼬실 사람은, 최세희라는 여자다

지금 내가 있는 카페에서 카운터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그녀.

"....네. 7000원입니다."

주황색 머리에 뭔가 세상 만사 찌든 표정으로 주문을 받고 있는 최세희.

이번에는 그녀가 어떻게 사나 염탐만 온 것이기에, 나는 조용히 카페에 죽치고 앉아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인재 영입을 위해 카페 좀 갔다온다고 하니까.

주말인데 같이 가자며 다들 날 따라나왔다.

다들 맛있게 조각 케이크를 먹고 있는 모습.

"오빠. 오빠도 좀 한 조각 먹어요."

"응? 아, 그래. 한입 먹어보자."

맛있네.

나는 케이크를 우물거리며 계속 카운터를 바라봤다.

"..."

이와중에 번호를 따인 그녀.

인상을 팍 쓰고 거절하는 것이 참으로 볼만하다.

"흐음...."

나는 그녀를 계속 바라보다가 결론을 내렸다.

그래. 이제 슬슬 작업 시작해도 되겠네.

"다인씨. 카운터는 그만 바라보고 좀 더 드세요."

"오빠 허니 브레드 하나 더 시켜도 되요?"

"어. 어, 먹고 싶은거 다 시켜."

일단 이거나 먹으며 쉬고...

밤에 하면 되겠네.

나는 케익 한조각을 먹으며 생각에 잠겼다.

최세희.

전기를 뿜을 수 있는 전기 능력자다.

원작에서는 일렉트라라는 이명으로 활동하는 빌런 중 한명이다.

빌런들 중에서도 꽤나 까칠한 성격으로, 꽤나 다혈질이라는게 특징.

원작 만화 독자들한테 일진누나라는 별명으로 더 인기있는 캐릭터 중 한명이었다.

평소부터 매일 한숨 돌릴 틈도 없이 바쁘게 일하던 그녀는, 끝내 누적된 스트레스를 참지 못하고 폭발한다.

내면에 파괴광의 성질을 참지 못하고 야밤에 전기를 시내 한복판에서 오버플로우해서 섀도우워커에 의해 즉시 진압.

그렇게 첫 등장을 하자 마자 바로 수용소로 이송돼 한동안 만화에 안나오던 그녀는, 나중에 대탈옥 에피소드부터 다시 얼굴을 비치게 된다.

하여튼 A급 빌런으로 지정되기도 한 만큼 전기 공격 자체는 굉장히 우수한 능력이다. 애초에 원소 능럭 자체가 어지간하면 좋다. 얼음 능력을 가진 아이시클만 봐도...

어쨌든 나는 그녀가 필요하다.

그러니 자, 한번 해보자.

***

어두운 밤.

최세희는 집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하아..."

매일 매일 일만 하는 삶.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하고, 집에 와서는 쓰러져 잔다.

"....에휴. 시발."

그녀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밤거리를 걸었다.

그녀가 돈이 부족해서 일을 하는건 아니다. 물론 넉넉한 편은 아니였지만, 그렇다고 굳이 이렇게까지 스스로를 혹사하며 일을 할 필요는 없다.

그녀가 속세를 잊을듯이 일을 하는 이유는 단 하나.

남에게는 절대 말할 수 없는 기벽.

바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내면의 파괴충동을 억제하기 위해서.

"....."

어두운 밤거리를 걷던 그녀는, 슬며시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시시티비 하나 없는 뒷골목.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그녀는, 주머니에 넣었던 손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손을 올린 상태로 두자.

이내 그녀의 손끝에서, 전기가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지직거렸다.

그리고 이내, 어두운 거리를 마치 나무처럼, 전기로 인하여 허공에 별들이 수놓아졌다.

그녀의 손끝에서 출발하여 그녀의 앞쪽에 펼쳐진 반짝반짝한 노란 줄기.

자신이 이루어낸 광경을 그녀가 멍하니 보고있을 때.

"아름답네요."

뒤에서 갑작스럽게, 목소리가 들려왔다.

"...!!"

깜짝 놀란 그녀가 급하게 전기를 내뿜는걸 중단하고 뒤를 돌아봤지만.

그녀 뒤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골목만이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누구야."

경계하기 시작한 그녀가 어둠속으로 손을 뻗어, 언제든 전기를 뿜을 수 있게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잠시 그녀가 경계하고 있을 때.

어둠속에서 들려오는 박수소리.

짝짝짝-.

"미친놈."

저 상대도 정상이 아니라는걸 확인한 그녀가 전기를 앞쪽으로 쏘았으나.

마치 그 앞에 아무것도 없다는 듯, 전기는 그저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그러나 계속해서 들려오는 박수소리.

그리고, 이내 어둠속에서 누군가 튀어나왔다.

"안녕하십니까, 최세희씨."

그녀에게 인사를 건내며 튀어나온 사람은

검은모자, 검은로브, 검은망토를 입고 눈쪽을 가리는 가면을 쓴 남성.

그리고 그 남성은, 그녀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에고스틱?"

그녀가 인상을 쓴 채 그의 이름을 부르자, 순간 멈칫하는 그.

그렇게 잠시 뜸을 들이던 그는, 이내 다시 입을 열고는 그녀에게 물었다.

"....저를 알고 계십니까?"

"당연히 알지? 티비만 키면 나왔으니까?"

"....저를 알고 계실줄은 몰랐는데 말이죠."

잠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린 그는, 헛기침을 하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크흠. 그렇다면 설명이 더 빠르겠군요. 최세희씨. 저와 동업하실 생각 없으십니까?"

"....지금 이야기를 못따라가겠는데. 갑자기 밤에 사람을 미행하더니 갑자기 동업이라고? 무슨 소리야."

"이런. 설명이 좀 부족했나보군요. 그러니까 테러말입니다."

"...지금 나보고 테러를 동업하자고?"

"네. 같이 테러 하실 생각 없으십니까?"

"이거 순 미친놈 아니야. 꺼져!"

최세희는 화를 내며 그에게 전기를 쏘았다.

안그래도 인생 좆같아 죽겠는데, 이제는 살다살다 테러범한테 캐스팅 받는 날이 오다니.

그러나 그녀가 쏘아낸 전기는 그가 자리에서 증발해버리는 바람에 다시 허공만을 가를 뿐이었다.

그리고 다시 그녀의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잘 생각해보십쇼. 늘 능력을 드러내지 못해 큰 고통에 빠지시지 않았습니까? 저와 함께라면... 당신의 본능을 숨기고 살 필요가 없을겁니다..."

"꺼지라고!"

그녀가 다시 매섭게 공격을 해봤지만.

그는 어느새 눈앞에서 홀연히 사라져있을 뿐이었다.

"다음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그때까지 한번 잘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안 꺼져?"

그녀는 씩씩대며 다시 돌아봤지만.

다시, 텅 비어버린 골목.

그렇게 그녀의 숨소리 말고는 아무것도 들려오지 않는 골목에서, 그녀는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하...씨발. 살다보니 별일을 다겪네."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괜히 길가의 돌맹이를 치는 그녀. 자신이 비록 히어로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빌런이 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살다보니, 테러범이 자신에게 접촉해올 줄이야. 어이가 없어서.

그렇게 짜증을 낸 그녀는 따라오는 사람은 없나 잠깐 뒤를 돌아본 뒤에, 다시 집으로 걸었다.

다음에 또 오겠다고? 웃기는 소리. 또오면 그때야말로 놈의 낯짝을 전기통구이로 만들어주고 말거다.

그렇게 주황색 머리를 흩날리며, 그녀는 발걸음을 옮겼다.

"...."

그렇게 계속해서 걷던 그녀는, 문든 자신의 손을 올려 바라봤다.

아까 그놈한테 자신의 능력을, 손에서 전기를 생성해 던졌을때, 그때 참 기분이 좋았지. 일종의 해방감도 느껴지고, 속도 뭔가 뻥 뚫리는 기분이고.

자신을 지금껏 옥조이던 것들이, 순간 날아가버린 기분.

"..."

그와 함께라면, 늘 이런 해방감을 맛볼 수 있다는 말인가?

"시발. 뭐래."

그녀는 다시 혼자서 욕설을 내뱉은 뒤, 발걺음을 옮겼다.

자신은 그런 파괴광, 사이코패스가 아니다.

내가 어떤 조건 하에서라도 테러리스트가 될 일은, 결단코 영원히.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