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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6 광기

[제목]망고스틱 올때까지 숨참는다

=댓글=

[???: 라고 써져있는데요 박사님?(관을 드려다보며)]

[작성자분 사망하셨다네요 글 내려주세요^^]

[(이미 사망한 게시글 작성자입니다)]

*

[제목]확실히 망고스틱 잠수타고 내 인생이 달라졌다

망고스틱이 방송 킬때만 해도

기분 좆같은 일이 있어도 애플망고 이러는거 보고 쪼개고

망고스틱 매드무비 보면서 웃었는데

망고스틱 사라지고 나니 인생이 그냥 우울하다.

아무리 기분 좋은 일이 생겨도

샤워하면서 혼자 망고스틱 방송 안킨지 몇일째?

"망고스틱 방송 안킨지 D+93일째"

하면서 우니깐 기분도 슬퍼지네

이래서 망고가 사람을 만든다는말이 나온거같다.

=[댓글]=

[선생님....]

[심각할 정도의 망고중독입니다]

[내 유튜브 메인에 망고스틱 매드무비 안뜨니까 슬프긴 함]

ㄴ[ㄹㅇ티비보다 갑자기 전파납치 되서 에고스틱 라이브 뜨던 그때가 사무치게 그립다]

*

[제목]망고스틱 어딨어? 돌아와 돌아와

돌아와돌아와돌아와돌아와돌아와돌아와돌아와돌아와돌아와돌아와돌아와돌아와돌아와돌아와돌아와돌아와돌아와돌아와돌아와돌아와돌아와돌아와돌아와돌아와돌아와돌아와돌아와돌아와돌아와돌아와돌아와돌아와돌아와돌아와돌아와돌아와 아드득...까드득...아드득...까드득...아드득...까드득...아드득...까드득...아드득...까드득...아드득...까드득...아드득...까드득...아드득...까드득..아드득...까드득...아드득...까드득...아드득...까드득...아드득...까드득...아드득...까드득...아드득...까드득...아드득...까드득...

=댓글=

[ㅅㅂ존나 무섭네]

[이건 또 뭐야ㅋㅋㅋㅋㅋ]

[그저 망고스틱이 망친 사람 한명일 뿐입니다...]

[아드득 까드득은 뭐임?]

ㄴ[손톱 물어뜯는거인듯]

ㄴ[진짜광기ㄷㄷ]

*

[제목]응 망고스틱 계속 잠수타봐ㅋㅋㅋㅋㅋㅋ

자살 하면 그만이야

ㅋㅋㅋㅋㅋㅋ

=댓글=

[드디어 미쳤구나]

[본거또보고]

[응 자살해봐 이미 몇십명 자살한지 오래야~]

[이거보고 잠수 더오래 탈듯]

[응 자살해봐~ 잠수타면 그만이야~]

ㄴ[시발]

*

[제목]망고스틱 이미 돌아온지 오래인데?

(아이스 망고 스틱을 들고있는 사진)

내가 맛있게 먹는중ㅎㅎ

=댓글=

[망고스틱을...먹어?]

[ㅗㅜㅑ이거 좀 야하네요]

[떼끼,,,네이놈,,에고스틱은,,,스타더스꺼다,,]

ㄴ[악질 우결충 검거]

ㄴ[에고스틱 지하실에서 검거]

ㄴ[어케알았지;;]

ㄴ[?]

[망고스틱의...스틱...]

ㄴ[매니저 얘 제발 차단좀]

ㄴ[?뭐가 난 억울해]

***

"하아...."

에고스틱의 팬카페를 둘러보던 신하루는 그저 한숨을 쉬었다.

최근 쥐죽은듯 조용한 에고스틱의 행방을 여기는 알까 싶어서 카페 가입까지 해봤으나, 인기글에 올라온 것들은 다 별 의미없는 뻘글들.

3개월.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은 시간이다.

그러나 몇주 몇달 간격으로 사건 사고를 터트리던 에고스틱이 3개월이나 사라진것은, 불가사의한 일.

물론 그덕에 전보다 평화롭다.

당연히 그놈 말고도 다른 빌런들이 종종 테러를 일으키기는 했지만, 주먹질 몇방에 해결되는 시시한 것들.

배를 침몰시키고 비행기를 추락시키던 에고스틱에 비하면 우스울 지경이다.

실제로 요즈음 하루는 굉장히 평온하고 잔잔하게 보내고 있다.

그러나.

"불길한데...."

그렇다.

마치 태풍전에 고요처럼, 이 적막이 끝난뒤에 왜인지 끔찍한 일이 생길 것같다는 불안감.

대체 이놈이 3개월동안 무엇을 준비할지 이제는 공포스러울 따름이다.

"...."

대학교 수업을 들을때도.

선배랑 카페에서 공부할때도.

집에서 쉴때도.

다른 빌런들을 족칠 때도.

무언가 그녀의 가슴 깊숙한 곳에 맴도는 찜찜함.

다음번에 만날때는 그놈이 무엇을 계획하는지, 목적이 뭔지 기필코 알아낼 준비로 만만했지만, 나타나지 않고서야 뭘 할 수가 없다.

이 꺼림직함을 친구인 아이시클에게도 털어나 봤지만.

[아유, 하루야. 별걸 다 걱정한다아. 그놈도 좀 쉬고싶은가보지. 사람이 밥만먹고 테러를 일으키는게 말이 돼? 걱정 마~.]

이런 대답만 들었을 뿐이다.

"하아..."

그래, 상식적으로 그놈은 이제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오히려 안나타나면 좋지. 이대로 영원히 안나타나도 좋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그녀의 직감이 그녀 자신에게 속삭였다.

'정말?'

"....."

그래.

솔직히 인정하자.

사라질때 사라지더라도,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가 지금까지 일을 벌였는지 자신이 알아내고 나서 사라져줬으면 좋겠다.

다른 빌런들은 왜 죽였는가?

나에게 구하라는 말은 왜 했는가?

그럴거면 테러는 왜 일으켰는가?

...너는 히어로 코스프레를 하는 빌런인가, 아니면 빌런 코스프레를 하는...

그때, 그녀가 앉아있던 사무실이 벌컥 열렸다.

"스타더스씨!"

"에?"

조용히 생각에 빠져있을 때 갑자기 문이 열리자, 그녀는 깜짝 놀라 그만 혀를 씹고 말았다.

그제야 신하루는 그녀가 현재 카페에 있던게 아님을 깨달았다.

대학교 시험도 끝나고, 이제 남은 일과는 히어로 협회내 자신의 사무실에서 죽치고 앉아있던 것이다.

그럼 저 협회 직원이 달려왔다는 뜻은.

"또다른 사건인가요?"

"네, 어떤 빌런이 지금 마포구쪽에서 테러를 일으키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요? 그 빌런이 누군가요?"

그녀가 살짝 기대하며 물었으나, 답변은 실망스러웠다.

"처음 등장한 인물인데, 스스로를 락버텀이라 부른답니다."

"아, 예..."

스스로도 어째서 실망감을 느끼는지 모른 채, 그녀는 슈트로 갈아입기 위해 일어섰다.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출동하는 그 순간까지도, 그녀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에고스틱, 그놈은 대체 지금 뭘하고 있을까.

***

서울시 지하 깊은곳 에고-베이스.

그곳에 있는 나는, 매우 바빴다.

"오, 오! 스타더스 떴다!"

나는 급히 전자레인지로 튀긴 팝콘을 들고 티비 앞으로 달려갔다.

휴우, 아직 시작 안했구만.

[네! 여기는 서울시 마포구입니다. 현재 제 등뒤로 보이는 연기가, 빌런 락버텀이 일으킨 테러현장입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스타더스가 왔습니다!]

화면 속에서는 바위로 이루어진 인물이 건물을 부수고 있었고, 그 뒤 허공에서 스타더스가 날라왔다.

"전투... 전투다!!"

나는 입안에 팝콘을 들이부으며 흥미진진하게 시청했다.

락버텀. 몸이 바위로 이루어진 무식한 빌런.

딱히 인명피해도 안 일으키고, 스타더스한테 한번에 K.O당하는 애이기에 내가 딱히 관여하지 않았다.

"오오, 오!"

뉴스에 잡히는것은 스타더스와 락버텀의 치열한 전투. 분명 지상파 뉴스 긴급특보를 보고 있는건데, 마치 예전에 보전 히어로 영화를 보고있는 기분. 그것도 CG가 아주 실감나는.

[아! 네! 부셨습니다! 스타더스가 락버텀의 팔을 부셨어요! 아주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락버텀 빌런, 이제 어떡할거죠?]

마치 스포츠 중계하는 사람마냥 전투를 흥미진진하게 설명하고 있는 레포터도 재미 포인트.

화면에는 카메라가 열심히 박진감 넘치는 전투를 따라가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나는 옆에있던 콜라도 한모금 마시며 열심히 봤다.

손에 땀을 쥐는 승부...!라기에는 스타더스가 일방적으로 저 락버텀을 두들겨 패는 모습.

이거 만화에서는 분명 나름 치열한 전투였던거 같은데, 내가 너무 스타더스의 힘을 강화했나? 그냥 압도적으로 이기고 있다.

바윗덩어리를 복날 개패듯 패고 있으니 티비에서 나오는 소리가 공사장ASMR과 다를게 없는 모습.

팝콘 한입 콜라 한모금 마시면서 재밌게 보고있는 와중에,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누군가 하고 뒤를 돌아보니, 서있는건 살짝 뚱한 표정의 서은.

"어, 서은아 왔어? 팝콘 먹을래?"

나는 입안에 팝콘을 우물거리며 팝콘통을 건냈다.

서은이는 살짝 멈칫하다가, 이내 한숨과 함께 팝콘을 한움큼 가져갔다.

"오빠, 또 스타더스 보는거에요?"

"아니, 그것보다는 싸우는데 구경하는거지. 원래 싸움구경이 제일 재밌어."

"...그런거치고는 아이시클이 테러 진압하는건 이렇게까지 본방사수 안했잖아요."

"음... 걔는 재미없게 싸워."

헛웃음을 지으며 내 옆에 걸터앉은 서은이.

이내 싸움도 막바지로 흘러갔다. 그냥 걸레짝이 되어버린 락버텀과, 그 위에 위풍당당하게 서있는 스타더스. 멋지군. 10점만점의 20점이다.

[여러분!!!! 우리의 히어로!!!! 스타더스가!!!! 간악한 빌런을!!!! 쓰러트렸습니다!!!]

격양된 리포터의 말과 함께 울려퍼지는 위풍당당한 음악.

....이거 올림픽 금메달딸때 나오는 음악 아니야?

어쨌든 멋진 전투였기에, 나는 박수를 쳤다.

역시 봐도 봐도 재밌어. 짜릿해.

이런 내 모습을 옆에 있는 서은이가 짜게 식은 눈으로 바라보는 것 같았지만, 기분탓일지라.

나는 폰으로 북마크해둔 스타더스 팬카페에 들어갔다.

[캬 지렸다ㅋㅋㅋㅋㅋㅋ]

[스타더스 그녀는 신인가? 스타더스 그녀는 신인가? 스타더스 그녀는 신인가? 스타더스 그녀는 신인가?]

[오늘의_먼지_하이라이트.gif]

[이번전투 직캠영상 링크]

[빌런 하나 치우는건 이제 우리 먼지한테 일도 아니네ㅋㅋㅋ]

우리 별먼지단 회원들도 아주 이 기쁨을 누리고 있었다.

흠... 아직 유튜브 영상은 없나? 나도 영상 하나 제작 할까봐.

대충 '일본이 펄쩍뛰고 미국이 감탄한...'으로 시작하는 제목을 생각하고 있던 와중에, 옆에있던 서은이가 내게 물었다.

"오빠, 이제 벌써 쉰지 세달이나 됐는데 뭐 해야되는거 아니에요?"

갑자기 훅 들어오는 질문.

내가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서은이는 자기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다시 물었다.

"아니... 너무 오래 논것 같기도 하고... 이제 일좀 해야되지 않나 싶어서요."

서은아... 너 워커홀릭이었니?

부끄럽다는 듯 아래를 보며 묻는 말에, 나는 일정을 떠올려봤다.

대충 오늘 날짜가 이때고, 원작에서 언급된 걔네들이 이때니까...

대충 계산을 마친 나는, 서은이에게 말했다.

"그래, 이제 해도 되겠네. 다시 활동 재개하자."

"진짜요?"

갑자기 화색이 맴도는 서은이를 보며, 나는 어설프게 미소지었다.

그래 서은아, 하긴 할껀데.

음... 뭔가 너가 기대하는 건 아닐거 같아.

EP.47 완벽한 계획

힐러.

게임에서 많이 등장하는, 상처를 치유해주는 능력을 가진 사람을 칭한다.

내가 빙의한 이 만화, [스타더스트!]에서도 치유능력을 가진 여자가 있었다.

치유라. 딱 봐도 히어로같은 능력이지만.

안타깝게도 빌런이었다.

이게 우리편에 힐러가 있으면 든든하기 이로 말할 수 없지만, 상대편에 있으면 미치고 팔짝 뛰게된다.

기껏 몇달은 못움직일정도로 두들겨 패놨는데, 어떻게든 기어가서 도망치더니 하루만에 다 나아서 다음에 또 테러를 일으키러 돌아온다고.

우리 스타더스는 저놈들이 대체 어떻게 저렇게 금방 나아 돌아오나 의아해했고, 나중에 밝혀지길 이게 다 빌런들을 치유해주는 '엑스세인트'라는 여자 빌런 때문이었다.

원작 후반부 안그래도 빡센 빌런들 잡는 난이도를 더 높이는 주범.

얘만 처리해도, 후반부가 상당히 쉽게 풀어질거다.

그러니까.

내가 품어야지.

"그러니까 오빠, 나중가면 막 빌런들 치료해주는 악당 한정 성녀가 되는 애가 있다고요?"

"그래. 걔만 한명 있으면 참 든든하지 않겠니?"

"하... 대체 그건 어떻게 아는지는 진짜 안알려줄거에요? 그거 그냥 망상이에요, 아니면 진짜 막 미래를 보는거에요?"

"서은아 너는 아직 애라 모르겠지만, 어른이 되면 다~ 알게 돼있어요."

"그게 뭔... 휴우. 어쨌든 알겠어요. 그래서 걔 지금 어디서 뭐하는데요?"

"음.."

"뭐하는데요?"

"뒷골목에서... 소매치기 하고 있을걸?"

"네?"

서은이가 갑자기 무슨 황당한 소리를 들었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음...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걔가 고등학생이었나 그럴껄?"

내 말에 서은이의 얼굴이 더욱더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이 되었다.

음...이걸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

이하율.

아주 어렸을적부터 고아로 살았다.

자기 남동생과 함께 고아원에서 모진 학대를 견뎌내며, 하루하루 근근히 살다가.

고아원 원장이 그녀의 능력을 알게 되었다.

거의 죽어가는 사람도 살릴 수 있게 해주는, 최상위 치유 능력.

원래대로라면 바로 협회에 신고하는게 맞지만.

간악한 고아원 원장은, 이를 숨겼다.

그리고 이하율을 재벌들에게 팔아 넘길려했다.

사실상 인신매매를 계획한 것.

그러나 이를 알아챈 이하율은, 고아원을 탈출했다.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는 미친 원장을 찔러 죽이고.

그렇게 그녀는 그녀의 남동생과 함께 뒷골목을 떠돌게 된다.

도둑질이나 소매치기나 하며 근근히 살아가는 삶.

그러다가 어느날 그녀의 남동생이 그녀의 눈앞에서 괴한들에게 당해 죽게되고.

큰 충격을 받은 그녀는, 결국 흑화하게된다.

자신이 이렇게 된거는 다 이 세상때문이다.

자신을 미리 알아채고 도와주지 않은 협회때문이고, 정부때문이다.

그러면서 악착같이 살다가 결국 나중에 빌런연합에 들어가, 빌런들을 도와 대한민국 붕괴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다.

이렇게보니까 서은이랑 좀 비슷한점이 많다. 세상을 원망하다가 결국 세상을 파괴하려 드는.

어쨌든 결론은, 재를 내가 꼬셔서 내 편으로 만드는 거다.

대충 에고스틱발 빌런 연합의 첫 멤버로 딱인거 같다.

이렇게 한명 한명 모으면, 나중에 가면 거의 모든 빌런들을 내 손아래 둘 수 있지 않을까?

뭐, 그럴리는 없겠지만.

다 필요없고 일단은 쟤를 꼬시는게 급선무다.

물론 고아원때 겪었던 일 때문에 기본적으로 애가 인간불신이 있어서, 쉽게 넘어올 것 같지는 않다는 문제가 있다.

달려가서 "내가 돈줄테니까 나에게 충성을 바쳐라!" 이랬다가는 칼찌맞기 딱 좋다는 소리.

그래도 뭐, 흔들다리 효과로 어떻게 어떻게 해보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사실 내가 다 할테니, 서은이 너는 걱정할꺼 없어."

"그렇게 말하니 더 걱정되는데요..."

내게 탐탁치 않은 시선을 보내는 서은이.

그렇게 걱정할거 없는데.

나는 이미 이 방법이 먹힐거라는 확신이 있다.

왜냐하면 서은이 너한테 이런 방법을 써서 친해졌었거든...

***

어쨌든 그렇게 해서 지금 나는 서있다.

저녁, 시시티비도 없는 서울 뒷골목 어딘가에.

내 기억에 대충 여기쯤에서 활동을 했던거 같은데...

그렇게 정차없이 골목을 해매고 있을때.

꽂아놓은 이어폰으로 서은이에게 연락이 왔다.

[오빠, 2시방향 골목쪽에 어떤 여자애가 오빠를 숨어서 지켜보고 있어요. 쟨거같은데요?]

빙고.

현재 나의 복장은 검은색 옷에, 마스크도 안낀 채다.

약간 어리버리하지만 돈 좀 많아보이는 스타일로 꾸민 채 걷고있는 중. 마치 호구처럼 보이게 꾸미고 있다.

흠...

느릿느릿, 걷고 있으니.

마침내 저쪽에서 뛰어오는 소녀.

내쪽으로 달려오더니, 실수인 척 나를 퍽 치고 지나갔다.

그렇게 10대 소녀에게 어깨빵을 당한 나.

그 당당하던 에고스틱이 이렇게 살고 있을지 누가 알았겠나?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렇게 소녀는 탁탁탁- 하고 저 멀리 어둠 속으로 사라졌고.

마침내 소녀가 시야에 보이지 않자, 나는 그제서야 주머니에 손을 넣어봤다.

역시나 텅 비어있는 주머니. 안에 들어있던 지갑은 사라져버렸다.

"역시."

좋다.

계획대로 되고있다.

어두운 뒷골목 뒤에서, 나는 씨익 웃었다.

[거기서 뭐해요? 그만 돌아와요.]

"그래."

떡밥은 던졌으니

너는 이제 그걸 물면 되는것이여.

***

"헉, 헉."

이하율, 그녀는 뛰고 또 뛰었다.

오랜만에 성공한 소매치기.

남자가 자신을 찾을 수 없을 때까지 또 뛰고 뛴 그녀는, 이내 멀리까지 오고 나서야 숨을 골랐다.

안전한 곳까지 온 이후, 떨리는 손으로 그 남자에게서 훔친 지갑을 꺼냈다.

겉에 E.S라고 자수가 박혀있는 지갑.

조심스럽게 열자, 그곳에 들어있던건.

"10만원?"

만원짜리 열장이었다.

이정도면, 너무나도 횡제였다.

요즘 사람들이 카드를 들고 다니느라, 현금을 들고 다니지 않기에...

"이 돈이면... 차윤이에게 라면말고 다른 것도 사줄 수 있겠는걸..."

혼자 조용히 중얼거린 그녀는, 이내 살짝 미소지으며 집으로 걸어갔다.

물론, 자신때문에 돈을 잃은 사람에게는 조금 미안했지만...

'어쩔수 없잖아...'

자신들은 돈도 능력도 신원도 아무것도 없으니, 이렇게라도 살 수밖에 없다며 애써 위안하며 길을 걸었다.

물론 쌓여가는 죄책감은 어쩔수가 없었지만.

"누나, 왔어?"

다 무너져가는 판자촌에 들어가니, 그녀의 남동생이 그녀를 반겨줬다.

쓰게 웃으며 안으로 들어가, 그녀는 그녀의 남동생에게 말했다.

"누나 오늘은 돈 좀 벌었어. 맛있는거 사먹자."

"진짜? 와!!!"

아직 초등학생인만큼 감정 표현이 서툰 아이.

그런 그를 보며 그녀는, 자신도 모른채 미소지었다.

그래, 내가 못 먹어도 이 아이만큼은 잘 먹어야겠지.

남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오늘 내일은 이걸로 버텨도, 그 다음에는 또 어떡하지.

어두운 밤처럼, 그녀의 마음도 캄캄히 물들었다.

***

[제목]망고스틱 언제돌아와?

나 추워...

=[댓글]=

[쓰니 얼어죽은채 발견ㄷㄷ]

[삭제된 댓글입니다.]

ㄴ[?]

ㄴ[???]

ㄴ[뭐였음? 나 삭제되서 못봄]

ㄴ[정확하게 '미안하고 요즘 바빠서 몇주만 더 ㄱㄷ'라는 내용이었음]

ㄴ[왜 저 댓글 계정 눌러보니까 존재하지 않는 계정이라고 뜨냐? ㅈㄴ무섭네ㄷㄷ]

ㄴ[저 댓글 ㄹㅇ망고스틱 아니냐?]

ㄴ[에이 설마ㅋㅋㅋㅋ]

*

요즘 좀 심심해서 이러고 놀고있다.

내 팬카페 들어가서 대충 사람들 노는대 댓글 몇개 남겨주기.

물론 바로바로 지우긴 하지만... 이거 생각보다 재밌다...!!

왜인지 이러고 노는걸 서은이에게 들키면 또 나를 한심하게 볼거 같기는 한데... 음...

노는건 그만하고, 나는 앞으로의 계획이나 생각해보았다.

일명 '가랑비에 옷젖듯' 계획.

이번에 한번 지갑을 뺏겨줬다.

다음에 또 가서 옷 갈아입고 지갑을 뺏겨줄거다.

근데 그것도 E.S라고 이니셜 박힌 지갑.

그렇게 몇번 더 훔치다보면, 그녀는 이제 깨닫게 되겠지. 자기가 계속 동일인물의 지갑을 훔치고 있다는걸.

그렇게 그녀는 이상한점을 깨닫게 될거다. 한번 지갑을 그렇게 빼앗겼는데도 어째서 또 이 자리에 와서 자기가 몸통박치기를 해도 가만히 있는가?

그리고 동시에, 왜 처음에는 10만원이었돈 돈이 다음번처럼 20만원, 30만원으로 늘어나는가?

그렇게 그녀가 의문을 가질때쯤, 내가 그녀의 집앞에 등장하는거다.

'사실 저번에 소매치기당한걸 알았고, 너를 잡기위해 추적했었다.

그러나 너가 아주 힘든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남동생을 챙기며 으싸으쌰 사는 모습을 보고, 큰 울림을 받았다.

너만 괜찮다면 내가 너의 후견인이 돼주겠다.'

그라나 내가 그렇게 말해도 그녀의 뿌리깊은 인간불신으로 인하여 내말을 들어줄리 만무.

나보고 꺼지라고 할테고, 그러면 난 알았다며 조용히 쓸쓸히 물러날거다.

그러면 그녀는 나를 내쳤음에도, 어째서인지 내가 계속 떠오르고.

자기의 힘을 노린줄 알았으나 그런것도 아닌거같고, 쿨하게 떠난 이후로 다신 찾아오지 않는걸 보고는...

'사실은, 진짜로 착한 사람이었을려나...'

라고 쓸쓸히 생각할때, 아마 그때쯤 딱 그 사건이 벌어질거라고 추측한다.

갱단의 남동생 살인 사건.

그렇게 남동생이 죽기 직전, 내가 딱 개입해 남동생을 구해주면?

그리고 내가 한번 더 후견인 신청을 하면?

그때는 나를 완전히 신뢰하고 내 밑으로 들어오지 않을까?

"후후후...완벽해..."

지하실 깊숙한 곳에서 나는 사악한 웃음을 흘렸다.

그래, 내 계획은 완벽하다.

어긋날리가 없어.

그렇게 사악한 계획을 세우며, 20만원 넣은 지갑을 든채 방안에서 다음 플랜을 계획하던 어느날.

서은이가 갑자기 내 방문을 벌컥 열고 달려들며 소리쳤다.

"오빠! 지금 그 갱단인가 뭔가가 나타났어요! 어떡해요?"

아니 씨발 쟤들이 왜 벌써 나타나.

EP.48 구원

그래, 인정을 해야겠다.

나라고 해서 초인은 아니다.

[스타더스트!]가 내 최애 만화였고, 몇십번씩 읽어 대사들도 다 외울 지경이기는 했지만, 그뿐.

이 세계에 대해 모든걸 안다고 할 수는 없다.

"하... 씨발..."

나는 서둘러 마스크와 망토를 챙겼다.

아 그래, 총들도.

이제는 어쩔 수 없다. 이판사판이다.

나는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음...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따지자면 시기를 정확히는 모른게 크다.

엑스세인트의 남동생이 죽는 년도와 계절까지는 어떻게 알았지만, 정확한 날짜까지는 알지 못했다.

그러니 '대충 이쯤 일어나지 않았을까?'하고 추측해서 계획을 세운것 뿐.

그러니까 어... 타이밍을 좀 잘못잡은거 같다.

괴한들이 이하율 그녀의 남동생을 죽여, 그녀가 흑화하는 이 이벤트.

난 이게 대충 지금으로부터 1개월 뒤에 일어날 줄 알았는데, 왜 오늘 일어나는거냐고.

그러나 찡찡대기에는 너무 늦었다. 지금 안 족치면 답이 없다.

나는 서둘러 복장을 변경하고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너무 늦지는 않았겠지.

***

이하율.

그녀는 현재, 최악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유, 이 꼬맹이들을 어쩌면 좋을까?"

"읍! 읍!"

그녀의 작은 판잣집 안.

비록 작고 누추하지만, 그래도 그녀와 그녀의 남동생 의 하나뿐인, 유일한 그들의 집.

그들의 소중한 보금자리인 집에는, 원치않는 불청객들로 차 있었다.

"야, 막내야. 어찌하면 좋겠냐?"

맨 앞에 선 채, 그들을 내려다보며 말하는 남성.

두 남매의 집안에는, 험상궂은 남성들이 집을 꽉 채우며 서있었다.

신발도 안 벗은채, 집안으로 쳐들어온 이들은 이하율과 그녀의 남동생이 저항할 틈도 없이, 챙겨온 밧줄로 묶어버렸다.

거기에 테이프로 입까지 막아버려, 둘은 완전히 구속한 놈들.

머리를 깍은 채 얼굴에 흉터가 가득한, 근육질 남성.

그가 입을 열었다.

"형님. 이 맹랑한 꼬맹이가 형님 지갑을 훔칠려고 한 년입니까?"

"그래.... 그렇지..."

형님이라고 불린 남자. 왁스로 금발 머리를 올리고, 선글라스를 낀 전형적인 양아치처럼 생긴 놈. 이들의 대장인 그는 이내 쪼그려 앉아, 하율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요 맹랑한 꼬맹이가... 겁도 없이 내 지갑을 훔칠려 했다는거지?"

"읍! 읍!"

팔다리도 묶이고 입도 테이프로 막힌 그녀.

비록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녀였지만, 그녀는 필사적으로 자신의 몸으로 뒤에 남동생을 가렸다.

최악의 순간에서도, 남동생만을 지키겠다는 태도.

그리고 그러한 그녀의 의지를, 괴한들도 느낄 수 있었다.

아.

저년, 뒤에 남자애를 소중하게 생각하는구나?

"야, 야. 이년 치우고, 저 뒤에 꼬맹이 꺼내와봐."

"넵."

"으으으읍!! 으으읍!"

그녀의 필사적인 저항을 뒤로하고, 뒤에 있는 남자아이를 덥석 꺼내버리는 괴한.

그가 잡아 올린것은, 눈물을 흘리며 오들오들 떨고있는 어린 남자애였다.

"으으으...으으..."

똑같이, 밧줄로 묶이고 테이프로 입이 붙여진 남자아이.

초등학생쯤 됐을까. 떨고있는 그 아이를 보며 사악한 미소를 짓는 괴한들이었다.

그중 아까 형님으로 불린 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야, 얘 입에 테이프 붙은거 떼봐라."

"넵!"

막내라고 불린 대머리, 그 옆에 있던 다른 괴한이 테이프를 뜯었다.

촤악.

테이프가 뜯기고, 말을 할 수 있게 된 남자아이.

그는 눈물젖은 목소리로, 더듬 더듬 입을 열었다.

"사, 사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물기어린 목소리로 애원하는 그를, 주위에 괴한들은 비웃었다.

"하하하하하!! 이 쪼그만거 말하는거 봐라."

"흐음... 살려줄까? 말까?"

"형님. 그냥 둘다 확 해버리죠."

손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한 다른 똘마니.

그걸 본 남자아이의 얼굴이 하얘졌고, 아래의 이하율은 발광했다.

"으으읍!!! 으으으으읍!!"

"흐으으음...야, 저년 잡아봐라."

"옙."

"옙!"

옆에 있던 다른 똘마니 둘이 발광하는 그녀를 잡았고.

형님이라 불린 이는, 비릿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야, 야 이년아... 보니까, 이 남자애가 너한테 참 소중한가보다?"

거기까지 말한 그는, 칼을 꺼내들어 아이의 목에 갖다대었다.

"너가 죄를 지었으면... 그거를 갚아야겠지? 응? 보자... 딱보니까 얘가 동생인가?"

"으으으으읍!!"

"오호, 난리치는거 보니까 맞나보네?"

"흐윽...사, 살려...."

"그래, 뭐. 살려줄까?"

거기까지 말하고 씨익 웃은 '형님'.

그와 동시에, 그가 칼을 높이 치켜 들었다.

"너 누나는 살려줄게. 너는 누나의 죄를 안고 죽자. 야, 얘는 너때문에 죽는거다. 알겠어?"

"으으으읍읍읍!!! 으으으읍!!!"

"히...히이익..."

"잘가라."

남자의 칼이 아이를 향해 내리칠 준비를 했고.

그와 동시에.

콰과과과과과과광-.

"으아악!"

"시발 뭐야!"

집의 문이 개 박살이 나며, 엄청난 굉음이 들려왔다.

"....?"

금방이라도 칼로 애를 찍으려고 했던 남자는, 갑작스러운 사태에 얼굴을 찌부리며 이하율의 동생을 저쪽에 치워버리고 몸을 일으켰다.

"어떤 시발새끼가 우리가 재미보는데 지랄하냐."

"형님, 제가 나가 보겠습니다!"

이에 아까 그녀의 남동생을 들고 겁박한 막내라 불린 남자가 문쪽으로 갔다.

"뭐하는 새끼냐!"

큰 소리로 외치며 밖으로 나서는 막내.

그렇게 세상 겁나는게 없다는 듯이,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긴 그는.

탕.

갑자기 날라온 총알에 머리를 맞고.

그대로 그 자리에 허물어졌다.

"시발!!!"

"다들 총 꺼내! 막내가 당했다!"

갑자기 좁은 방 안에서, 서둘러 주머니 안의 총을 꺼내는 그들.

이내 그들이 전투태세를 갖추고, 총을 문쪽으로 향하고 있었을 때.

깜빡- 깜빡-

갑자기 방을 비추던 전등이, 켜졌다 꺼졌다, 밝아졌다 어두워졌다 하기 시작했다.

"이런 시발... 뭐야...."

그렇게 깜빡거리던 전등이, 결국은 나가버리고.

그 집 안은, 시커먼 어둠으로 둘려쌓여버렸다.

갑작스럽게 한치 앞도 보이지 않게 된 그들.

침을 꿀꺽 삼키며, 그들은 총을 문쪽으로 향했다.

소름끼치게 고요해진 집안. 오직 그녀의 남동생이 뒤쪽에서 훌쩍이는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그렇게 그들이 언제든 일어날 수 있을 전투를 대비하며, 몸을 긴장시키고 있을 때.

문쪽에서, 저벅거리는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모두 쏴!!!!"

갑자기 들린 소리에, 히스테릭하게 소리지르는 괴한들의 대장.

그의 말과 동시에, 서있든 이들 전부가 문쪽으로 총을 발포했다.

두두두두두두두-.

순식간에 총성으로 가득 찬 방안.

아까의 굉음과 맞먹을 정도로 총소리가 크게 울려퍼졌고.

문쪽은 거의 개박살이 나서, 자욱한 먼지 연기로 뒤덮였다.

"흐으... 해치웠나?"

뒤쪽에 있던 똘마니중 하나가 중얼거렸고.

그가 그렇게 말함과 동시에, 방안에 나갔던 불이 다시 잠깐 켜졌다.

번쩍.

그와 함께 그들이 본것은.

전신을 뒤덮는 검은 옷과 망토.

검은색 마술사 모자.

그리고 얼굴의 반을 가리는 가면을 쓰고 있는, 싱긋 웃으며 서있는 한 남성이었다.

그들은 잠깐 사이에 본것 만으로 남자의 정체를 파악했다.

저건 분명, 뉴스에 늘 등장하던 빌런-.

잠깐 사이에 켜진 불은 순식간에 꺼지고.

그 많은 총을 발포했음에도 여전히 서있는, 기묘한 복장의 남성을 본 그들.

그걸 본 대장은 히스테릭하게 소리질렀다.

"쏴!!!!!"

그렇게 어두컴컴한 방안에서 다시금 총성이 울려퍼졌고.

자신의 앞은 물론 옆도 안 보이는 캄캄한 그곳에서.

"으윽."

총을 쓰던 남성 중 하나가 단말마를 외치고 쓰러졌다.

"근출아! 젠장...!"

이를 악물고 더더욱 앞쪽으로 총을 갈기는 대장.

그러나, 계속해서 총을 쏴도 옆에 있던 부하들은 하나 둘 마지막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고.

이내 마지막 남은 부하까지 쓰러지며.

고요한 이곳에 총쏘는 소리는 오직, 그가 들고있는 총에서만 나오고 있었다.

"이익...씨바아알!!!"

이를 악문 그는 필사적으로 총을 쐈지만.

달칵. 달칵.

아무리 개조해서 탄알이 많았던 그의 총이라 할지라도.

결국은 총알이 다 떨어지고 말았다.

"시...시발..."

이내 아까 놓았던 칼을 다시 손에 쥐고.

비틀비틀, 뒤쪽으로 물러가는 그.

"시, 시발. 꺼져 이 개새끼야!! 꺼지라고오!!!"

그가 광인처럼 앞을 보며 소리를 고래고래 지를 때.

다시 캄빡. 하고 불이 완전히 켜졌다.

피범벅이 되어있는 방안.

방금전까지 멀쩡히 서서 남매를 죽이네 마네 했던 괴한들은, 모두 시체가 되어 방안을 뒹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참상 한복판에, 조용히 서있는 한 남자.

자신의 검은 옷에 묻은 피를 한손으로 툭툭 친 그는, 다른 손에 권총 하나만을 들고 있었다.

"시, 시발. 가까이 다가오지 마 이 새끼야아!"

미친듯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칼을 휘두르전 대장은, 검은 옷을 입은 남성의 반대쪽으로 뒷걸음질 치다 이내 무언가를 발견했다.

그걸 발견하자마자, 누구보다 빠르게 그것을 집어든 대장.

"우 움직이지마! 너가 움직이면 얘는 그대로 죽인다!"

그가 집어든 것은 바로, 묶인채 바닥에 쓰러져있던 이하율의 남동생이었다.

아이의 목에 칼을 들이민 채, 협박을 하는 대장.

그리고 그 협박이 유효했던 것인지, 서서히 다가오던 남자는 몸을 멈칫-했다.

"그래! 가만히 있고, 바닥에 총 내려놔 당장!"

그가 그렇게 소리를 지르자, 조용히 바닥에 총을 내려두는 남자, 에고스틱.

에고스틱이 총을 바닥에 완전히 내려놓고 다시 일어서자, 그를 지켜보던 대장의 얼굴이 순간 밝아졌다.

"시발 그래! 그럼 그대로 꺼..."

그리고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에고스틱의 뒷편에서, 어디 있었는지 모를 총이 두둥실 떠올랐고.

그걸 대장이 눈치 채기도 전에, 순식간에 그대로 발포됐다.

"...져..."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말하던 그의 미간에는, 그대로 구멍이 뚫렸고.

그는 그렇게 그 자리에서 그대로 쓰러졌다. 손에 쥐고있던 남자애와 함께.

"...."

그렇게, 이하율 그녀의 집에 쳐들어왔던 괴한들은 모두 죽었다.

이 자리에 있는건 옆쪽에 입이 막힌채 묶여있는 이하율, 바닥에 앉아져버린 그녀의 동생, 그리고 조용히 서있는 검은색의 남자.

그의 뒷편으로는 피투성이가 된 집만이 보일 뿐이었다.

"....."

남자도, 소녀도, 아이도 그 누구도 말 한마디도 없는, 소름끼치는 정적이 흐르고.

그렇게 바닥에 누워있던 소녀가, 어떻게든 무언가를 할려고 하던 직전.

고요한 이 집안에서, 바닥에 있던 그녀의 남동생이 갑작스럽게 입을 열어 말했다.

"마, 망고스틱...?"

그리고 그건, 이 분위기에 굉장히 안어올리는 한마디였다.

***

'응...?'

나는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내가 갑작스럽게 쳐들어와서, 피투성이로 만들어버린 집안.

저 옆에 쓰러져있는 이하율이 나를 무슨 연쇄살인마 보듯 공포에 질린 눈으로 보고있는 상태.

이러면 안되는데....!!

대체 이 어색한 상황을 어떻게 해쳐나가야 할까하고 고민하는 순간.

입을 먼저 열거라고 상상도 못한, 바닥에 쓰러져있던 이하율의 남동생이 입을 연 것이다.

'여기서 갑자기 망고스틱이라고 말한다고?'

대체 뭔가 하고 그녀의 남동생을 바라보니.

주변이 피투성이의 노약자 및 임산부 시청 금지의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향해 눈을 반짝이는 녀석.

어라?

'이거... 어쩌면?'

EP.49 어떻게든

갱단이 이하율의 집을 습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서둘러 달려갔다.

시발! 왜 벌써 지랄하냐고!

허겁지겁 달리고 타고 순간이동까지 해서 겨우겨우 도착한 이하율의 집.

어두컴컴한 밤에 홀로 덩그러니 있는 다 쓰러져가는 판자집 안에서, 무슨 소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헉... 헉..."

숨을 좀 고르고 나서, 문쪽으로 귀를 기울여봤다. 아니 얘들은 망보는 애 한명 안세워났어? 하긴, 아닌 밤중에 누가 판자집으로 오겠냐만은. 도둑도 오다가 다 무너져가는 이거 보고 그냥 가겠다.

어쨌든 귀를 기울여보니, 안쪽에서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사, 사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음, 타이밍 잘 맞춰 왔나보군.

아직 죽지 않아서 다행이다. 죽었으면 진짜 큰일났다.

이제 쳐들어갈 타이밍만 잡으면 되겠군.

그렇게 나는 잠시 문앞에서 대기를 탔다.

잠깐 기다리다보니, 드디어 이놈이 이하율 동생을 조지려는 타이밍까지 왔다.

그래, 지금이야.

나는 미리 준비해둔 폭탄을 꺼내들었다.

에고식 폭탄 4류.

공갈탄.

콰아아아아아앙.

엄청난 굉음을 내며 폭발하는 문.

물론 이런 판잣집에 폭탄을 썼다가는 문만 날라가는게 아니라 다 날라가기에, 적당히 위력 조절을 한 폭탄이다.

"시발 뭐야!!!"

안쪽에서 들려오는 욕설.

저런 싸가지없는 새끼들이 어디서 초면에 욕질이야?

살짝 교육이 필요해 보이는 친구들이라고 할 수 있다.

"형님, 제가 나가 보겠습니다!"

안쪽에서 어떤놈이 큰소리로 외치는게 들린다.

음, 첫번째 희생양인가.

아디오스다 임마.

"뭐하는 새끼냐!"

그게 유언이라니, 참 안타깝구나.

나는 그를 위해 묵념하며 걔 머리에 총을 한방 쏴줬다. 머리에 총알 한방은 건강에도 좋대. 아마?

"시발!!!"

"다들 총 꺼내! 막내가 당했다!"

흠, 드디어 본격적인 전투인가.

그러면 그걸 시작해야지.

나는 일단 염력을 조작해 집 형광등 전기먼저 끊었다. 원래 이게 분위기가 중요하거든.

...그리고, 이왕 최초로 밤에 전투하는 김에 조금 검은 분위기에서 하고 싶었다. 그놈의 섀도우워커 때문에 저녁에 나서본적이 없어. 낮에 일을 벌이면 분위기가 안사는데 말이지. 밤에 해야 뭔가 위압감을 줄 수 있는거다.

그렇게 전기를 끊어버리고.

안쪽에 놈들이 긴장한게 느껴졌다. 아니, 느껴지는게 아니라 보인다. 내가 쓴 가면은 야간투시경이 내장되어있거든. 점점 내 가면이 첨단과학의 결정체가 되가는것 같은데, 기분탓이겠지.

어쨌든 저놈들을 까꿍해주기 위해 안쪽으로 다가가 봤다. 저벅저벅 발소리를 내자마자 들려오는 히스테릭한 목소리. '쏴라!!!'

그리고 총알이 내쪽으로 미친듯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아이고 무서워라. 근데.

나 이거 염동력 3개월동안 하나도 안썼거든?

물론 그렇다고 그렇게 많이 강해진건 아니지만, 이 잡놈들이 쓴 총알정도는 튕겨낼 수 있다.

그렇게 조용히 총알들을 다 튕겨내버렸다.

내가 다 튕겨내자 판잣집 벽에 총알들이 부딪혀 먼지들이 자욱하게 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숨을 죽인채 가만히 있었고.

어둠과 먼지콤보로 한치 앞도 보지 못하는 그들중 한명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해치웠나?"

해치웠겠냐?

나는 염력으로 고정하던 형광등을 잠깐 풀어줬다.

다시 빛을 되찾은 이곳에서 그들이 본것은, 까꿍! 서있는 나.

"쏴!!!"

그들이 소리쳤고.

그렇게 대신 나는 저놈들을 쏴아 쓸어주었다.

막판에 대장격으로 보이는 놈이 이하율의 남동생을 인질로 잡는 같잖은 짓을 저지르기는 했는데...

그냥 간단히 염동력 페이크로 처리했다.

아니, 쟤 나 한번도 뉴스에서 본 적 없나? 나 염동력 능력있는거 모르나?

음... 아직 이렇게나 덜 유명하다니. 분발해야겠구만.

어쨌든, 그렇게 겨우 아슬아슬하게 이하율 남동생 사망 이벤트를 막을 순 있었다.

그리고 현재.

피범벅이 되어버린 집. 흡사 고어 공포영화 수준이다. 이걸 찍어서 영화로 팔면 순식간에 19세미만 시청금지를 받을 것만 같은 광경.

그리고 이 모습을 지켜보는건 둘다 19세 아래인 애들이었다. 아.

손발에 입까지 알뜰히 묶인채, 공포에 질린 눈길로 나를 보고있는 이하율 그녀.

음, 뭔가 첫인상이 최악인거 같은데.

쟤는 나를 사람 5명 갑자기 죽인 살인마로 보고 있을거 아니야. 나는 너희를 도와주려 했을 뿐이라고...!!

아직 초딩으로 보이는 남동생은 기절했어도 이상하지 않다. 물론 기절하지는 않았지만... 떨리는 눈길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걸 보니 얘도 나를 무서워하는 것 같다. 아 시발... 첫인상이 제일 중요한법인데.

이제 어떡하지? 아싸리 그냥 공포모드로 가야하나? 고민하던 순간.

앞쪽에서, 이하율의 남동생이 입을 열었다.

"망, 망고스틱..?"

솔직히 말해서, 그거 듣고 약간 뇌정지가 왔다.

응?

살려주세요가 나오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다시 그 아이를 바라보니, 나를 보며 눈을 반짝이고 있는 모습.

그래, 여기서 나는 깨닫고 만거다.

이거, 어쩌면 할만 할 수도 있겠다는걸.

***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나는 이하율과 그녀의 남동생의 구속을 풀어주었다.

이하율이 뭔가 저항을 하려는 것 같았지만, 그보다 그녀의 남동생이 더 빨랐다.

"마, 망고스틱 저, 저 정말 팬이에요!"

나를 보며 눈을 반짝이는 녀석.

으윽, 그만해.

갑자기 어린아이의 때묻지 않은 순수한 눈빛을 보면 좀 기분이 그래진다고!

...근데 지금 내 뒤에 피바다 그 자체인데 어떻게 저렇게 밝지?

하율아 대체 교육을 어떻게 시킨거냐?

그녀의 누나 이하율은 이미 남동생을 껴안고 경계태세였지만... 야, 너 남동생은 이미 나한테 푹 빠진거 같은데?

"절 구하러 오신건가요?"

눈을 반짝이며 그렇게 말하는 녀석.

어 맞어. 맞는데... 여기서 그렇게 말했다가는 좀 곤란해진다.

"큼, 음... 아니. 사실은 너희 누나가 내 지갑을 소매치기 했길래 잡으러 온거란다."

그렇게 말하자, 순식간에 얼굴이 하얘지는 이하율.

나는 일단 빠르게 말을 이었다.

"근데 왔는데 무슨 양아치들이 나대고 있길래. 나는 그런놈들 안좋아하거든. 너는 무슨 소리인지 알지?"

그렇게 말하자 고개를 미친듯이 끄덕이는 녀석. 진짜 아냐? 나도 내가 뭔말하는지 모르겠는데.

"쨌든 그러다보니 이리됐네..."

나는 주위를 둘러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어깨를 으쓱인다음, 다시 말을 이었다.

"애들아, 그냥 일단 나 따라와야겠다. 지금 밤인데다가 아까 총소리까지 울려서, 누구든지 와서 이 참상을 보면 내가 좀 곤란해져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드디어 처음으로 입을 연 이하율.

"우리가 그쪽의 뭘 믿고 따라가요?"

명백히 나를 경계하는 모습.

그래, 고아원 원장때문에 기본적으로 인간불신이 생긴 이하율은 이렇게 나올수밖에 없다. 아니, 애초에 방금 처음본 사람 5명 죽인 살인마를 따라가면 그게 더 이상한건가?

하여튼, 저렇게 나오면 내가 해줄 말이 없다.

기껏해야 안따라오면 혼난다는 협박?

물론 협박했다가는 호감도가 나락으로 갈 가능성이 농후하다. 장기적인 관계발전에 있어서 대단히 부정적이라는 소리.

이래서 내가 진작에 지갑으로 빌드업좀 하고 이럴려고 했던거다.

그렇게 원래라면 굉장히 곤란했을 경우지만.

야, 이거 변수가 하나 있었다. 대단히 긍정적인 변수가.

"누나, 무슨소리야? 에고스틱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데!"

갑자기 그렇게 말하며 급발진을 하는 그녀의 남동생.

그러더니 내 앞에서 나에 대단함을 누나에게 즉석에서 연설하기 시작했다.

뭔가 내용의 80프로가 과장과 날조가 섞인것 같긴 한데... 뭐 좋은게 좋은거니까 가만히 있기로 했다. 대신 내 칭찬을 바로 앞에서 듣고있으니 심하게 쪽팔린다는 문제가 있었지만.

그렇게 그의 팔만대장경이 끝나고.

이하율 그녀는 굉장히 곤란한 표정이 되었다.

"차윤아... 그래도, 처음보는 사람의 뭘 믿고 따라가니."

"처음보는 사람 아니야! 망고스틱, 아니 에고스틱은 히어로라고!"

그건 아니야. 나 히어로 아니야 임마.

어쨌든 거 아무리 생각해도 이하율 남동생 이놈, 망고단인거 같다.

그리고 이건 엄청난 기회...!

이하율 특. 딱봐도 남동생한테 엄청 약함.

지금도 봐봐라. 아까까지만 해도 강경하게 자기들이 뭘 믿고 따라가냐며 굳은 저항의지로 차있던 그녀의 표정이, 남동생의 말에 대단히 곤란하다는 표정이 되었다. 실로 극적인 변화!

그리고 남동생이 반항하고, 그녀가 그렇게 얼타고있는 지금이 최적의 기회였다.

"애들아, 빨리 따라와라. 조금만 더 있으면 섀도우워커든 경찰이든 누구든 와서 이 시체보면 개판 오분전 될껄?"

"그래 누나! 빨리 에고스틱 따라가자!"

내가 경찰을 들먹이고, 남동생마저 옆에서 나를 지지하자 점점 혼란해지는 그녀의 표정.

그러더니 결국, 그녀는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우리한테 조금이라도 뭔짓 하면, 가만히 안있을거야..."

나는 그녀가 그리 말하자마자 냉큼 답했다.

"내가 너희한테 뭔짓 해서 뭐하니? 아무것도 안할테니, 일단 따라와라. 내 손 잡아."

그렇게 말하며 내가 손을 내밀자, 바로 먼저 잡는 그녀의 남동생.

동생이 먼저 그렇게 나서버리니, 그녀도 어쩔 수 없이 떨리는 손으로 나를 잡았다.

좋군.

그렇게 나는 다 함께, 나의 지하기지로 순간이동했다.

좋아. 뭔가 어째어째 계획대로 되고 있는걸...?

EP.50 거짓말

"휴우."

그렇게 지하기지로 한방에 순간이동해 도착했다.

아 시발... 이 거리를 사람 두명 데리고 오니까 쓰러질거 같네.

내가 띵한 머리를 붙잡고 비틀거리는 동안, 이하율과 그녀의 남동생은 두리번거리며 사방을 살폈다.

그들이 보고있는 것은 LED로 빛나는, 새하얀 벽면들.

나야 뭐 맨날 보는거니까 별 감흥이 없지만, 이들에게는 다른가보다.

물론 남동생... 이름이 이차윤이었나? 차윤은 눈을 반짝거리며 돌아보고 있고, 이하율은 동생을 껴안은 채 경계심 가득한 태도로 사방을 돌아보고 있으니.

나는 일단 어지러운 머리를 붙잡고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 죽겠네. 애들아. 그만 돌아보고 나 따라와라. 아으..."

비틀거리며 앞쪽으로 향하자, 뒤에서 뽈뽈거리며 따라오는 애들.

여전히 경계심 가득한 테도로 조심스럽게 이쪽을 따르는 모양세지만, 일단 따라오는게 어디냐?

그렇게 골골거리며 하얀 복도를 걷고 있으니, 저쪽에서 서은이와 수빈씨가 튀어나왔다.

"오빠! 어...."

나를 향해 오다 내 뒤쪽의 아이들을 보더니 살짝 멈칫하는 서은이.

내 뒤에 남매든 갑자기 처음보는 사람이 등장하자 살짝 긴장한 눈치다.

"어 그래. 얘들이 좀 곤란해서, 일단 데리고 왔어. 근데 일단 다 필요없고, 얘들 좀 씻겨야겠다. 샤워실로 좀 데리고 가고... 여분의 옷좀 꺼내와봐라."

내 갑작스러운 말에 살짝 당황한듯한 서은이.

그러나 다행히, 뒤에있던 수빈씨가 나섰다.

"제가 안내할게요. 애들아, 따라올래?"

사람좋은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나선 수빈씨. 그래, 우리들중에는 수빈씨가 제일 착해보인다. 알고보니 얼굴마담...?

수빈씨가 나긋나긋하게 따라오라고 하자, 남매는 쭈뼛거리면서도 따라갔다. 하긴, 이미 여기로 온 순간 우리의 말을 따라야하는게 자명.

그래도 나랑 있는것 보다 이하율은 수빈씨를 따라갈때 얼굴이 더 편해보였다. 하긴, 쟤 입장에서는 나는 몸을 올블랙으로 물들인채 총으로 사람죽인 미친놈으로 보일테니... 수빈씨가 같은 여자기도 하고.

근데 남동생은 그렇지 않은가보다. 가면서도 뒤를 힐끔이며 나를 바라보는 녀석. 아니, 쟤는 왜이렇게 날 좋아해? 요즘 초등학생들은 원래 저렇게 나 좋아하나?

어쨌든 애들 다 치우고, 나는 비적비적 피로회복기쪽으로 걸어갔다.

염동력정도야 쉽게 쉽게 했는데, 마지막 순간이동이 좀 너무 무리수였다. 3명 데리고 그러는건 좀 에바였던거같기도...

"오빠... 그 모자, 기어코 썼네요?"

내가 비틀비틀 가고 있자, 뒤에 있던 서은이가 나를 쪼르르 따라와서 말을 걸며 같이 걸었다.

"아.. 그래, 이거."

나는 내 머리위에 얹어있는 검은색 마술사 모자를 만지작거렸다.

"어때, 느낌있지 않냐? 앞으로도 이거 계속 쓰고다닐려고."

"어... 하아. 그냥 뭐, 오빠 마음에 들면 됐죠."

그 한숨의 의미는 뭐냐.

쨌든 피로회복장치까지 겨우겨우 걸어왔다.

지친 삭신을 눕히고 가동시키니, 좀 나아지는거 같기도 하네.

내가 그렇게 누워서 몸을 회복시키고 있자, 옆에 있던 의자에 서은이가 털썩 앉더니 물었다.

"그래서 저 남매... 어떡하실거에요?"

"으.... 쟤들?"

원래는 지속적으로 빌드업을 쌓고 섭외했어야 했는데. 일이 꼬여가지고 조금 곤란해졌다. 하지만...

"쟤 남동생이 나 엄청 좋아하더라고. 그래서 어떻게든 될거 같은데?"

"그래요? 신기하네. 그 망고단인가 뭔가인가?"

"그런가봐. 야, 지금까지 내가 호감작 해놓은게 이렇게 돌아올줄은 몰랐다."

"하하... 오빠 초통령인가봐요."

"그럴수도 있지. 근데 맞다, 그 순간이동 장치 설치 다 했어?"

"어저께 다 했어요. 근데 진짜 이사갈꺼에요?"

"그래. 여기 지하에 3개월 갇혀있어보니까 느낀건데, 여긴 안돼. 사람이 햇빛을 받고 살아야지."

"힝... 전 여기가 좋은데."

"여기도 이제 순간이동 장치 깔았으니 사실상 지하실마냥 가깝잖아. 걱정하지 마."

그렇게 조금 시시덕거리며 기다리고 있으니,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서 이쪽 방의 문이 열렸다.

제일 먼저 수빈씨가 들어오고, 그 뒤로 쭈뼜거리며 다가오는 남매.

다들 샤워하고 옷을 말끔히 갈아입은 모양세다.

오, 씻고나니까 갑자기 사람이 달라보이네.

아까 그 먼지구덩이 개판 그자체에서는 굉장히 꾀죄죄해보였는데, 씻기고 옷도 깔끔한걸로 갈아입고 사니 사람이 달라졌다. 특히 이하율쪽은 역시 원작에서 이쁘게 그려진 만큼 한 미모했다. 이 세계는 빌런도 외모보정을 받나?

하여튼, 그 둘이 들어오고.

나는 눈짓으로 서은이와 수빈씨한테 나가달라고 전했다. 내 눈빛을 읽고 조용히 방을 떠나는 둘.

그렇게 넓은 방에는, 나와 남매만이 남았다.

"애들아... 일단 저기 의자 끌고 앉아봐라."

아직도 피로회복기에 누운채 그렇게 말하자, 둘은 쭈뼛거리면서도 의자에 앉았다.

음, 어디서부터 말해야할까.

내가 그렇게 할 말을 고르고 있을 때, 이하율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희를 왜 도와주신거에요?"

갑자기 불쑥 말한 그녀. 그리 말한 그녀의 눈을 바라보니, 뿌리깊은 불신이 보였다. 원작에서 언급된대로 자기 남동생말고 믿는 사람이 없어보이는 모습.

그런 그녀를 잠깐 바라보다, 나는 입을 열고 말을 했다.

"나도 예전에, 너희만한 동생이 있었단다."

갑작스러운 생뚱맞은 이야기에 얼굴을 찌푸리는 그녀.

그러던가 말던가,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예전에 동생이 있었지만, 나의 불찰로 괴한들에게 죽었다.

이번에 대체 누가 내 지갑 훔쳐갔나 하고 추적하다가, 너희를 보았다.

괴한들이 너희를 공격하는 모습을 보고, 그런 방식으로 죽은 내 동생이 떠올라 끼어들었다.

거기까지 말한 나는, 숨을 골랐다.

참고로 다 뻥이다. 난 동생 없었어.

하지만 쟤의 경계심을 없앨려면 이정도 뻥카는 쳐줘야 한다. 암...

"이하율, 이채윤... 너희 씻는동안 너희들에 대해 알아봤다. 이하율 너, 고아원 원장 죽이고 도망친거지?"

내가 그렇게 말하자 깜짝 놀라는 그녀.

그래, 이걸 알 줄은 몰랐겠지.

"뭐, 책망하려는거는 아니다. 그 고아원 원장도 알아보니 어지간히 미친 여자였다만. 왜 너희한테 지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서 '난 너가 최상급 치유능력 지니고 있다는거 몰라요~'라는 떡밥을 흘릴 필요가 있다.

내가 그거때문에 도와준거 알면 쟤 성격에 가만히 있을리가 없거든.

거기까지 말한 나는, 다시 분위기를 잡고 그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내가, 너희를 도와줄 수 있다."

"내 능력이면 너네가 도망친거야 뭐, 너네가 죽인게 아니라 그냥 누군가 원장을 죽이자 기회를 틈타 도망친걸로 조작할 수 있어. 내가 그정도 능력은 되거든."

"그리고 너희한테 집도, 돈도 대줄 수 있다. 너네 학교는 다니냐? 학교도 보내줄게."

"너네는 그냥, 뛰어놀며 살아라."

"내가 지원해줄테니."

갑작스러운 나의 아낌없는 나무 선언.

이미 그녀의 남동생은 망고스틱 만세!이러고 있지만...

쟤가 중요한게 아니다. 이하율의 의사가 중요하지.

역시, 나의 갑작스러운 말에 의심스러운 눈길로 나를 바라보는 그녀.

"...우리한테, 왜 그렇게까지 하는데? 우리 오늘 처음보는 사이인데? 말이 안되잖아."

여전히 의심의 기색을 지우지 않은 채, 나한테 쏘아붙이는 그녀.

그러나 그렇게 당당히 말하는 그녀의 몸은, 살짝 떨리고 있었다. 그래, 손짓 한방에 자기를 죽일 수 있다는걸 아는데 내 앞에서 저렇게 말하기가 쉽지 않겠지.

그러는 그녀한테, 나는 쓰게 웃으며 말했다.

"아까 말했잖니. 너희를 보고 내 동생이 생각났다고."

"그냥 길가다가 로또 1등 용지 주웠다고 생각해."

그런 나의 말에도 아직 의심을 완전히 거두지는 못한 그녀였으나, 내가 이제 그만 가서 자라고 축객령을 내 일단은 사라졌다.

수빈씨가 와서 둘을 데리고 빈방에 이불을 펴줬다.

수빈씨가 생각보다 애를 잘돌보네? 밥도 잘하고 청소도 잘하더니 애들도 잘 돌본다더라... 아무리봐도 저정도면 프로 주부다.

하여튼 겨우 쟤네를 재우고.

다음날이 되었다.

***

"이게 너네가 살 집이다."

다음날, 아침부터 나를 따라온 남매의 입이 딱 벌어졌다.

아침이 되서 다함께 어색한 밥을 먹은 다음, 따라오라고 하더니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실 위쪽으로 올라가자 나온 평범한 가정집.

거기에 놓인 수상할정도로 첨단장비인 순간이동 장치를 타자, 이동하게 된 이곳.

아무도 닿을 수 없는 깊은 산골짜기에 놓인, 대궁궐마냥 큰 3층 저택이다.

"아, 아니. 이건 좀..."

압도적인 위용에, 전까지만 해도 의심스러운 눈길로 나를 바라보전 이하율의 눈도 띠용해졌다.

"물론 너네 둘만 여기 산다는건 아니야. 우리도 여기 살거야. 나는 3층이고... 너네는 2층에 방 두개 내어줄테니까 거기서 살면 돼."

여전히 입이 딱 벌어진 그들한테, 나는 씨익 웃으며 한마디 해줬다.

"말하지 않았나? 나 돈 무지하게 많다고."

이게 돈지랄이지.

어쨌든 내부로 들어간 우리. 나는 쟤네한테 방을 소개해줬다. 대충 냉장고 침대 2개등 있을건 다있는 두 방. 미리 미리 준비해놔서 가득한 모습이다.

부담스러워하던 애들을 강제로 넣어버리니 역시 적응의 생물답게 금방 적응한듯한 모습이다. 다 처리해놨으니 다음주부터 학교도 갈 수 있다고 하니 다시 띠용해지는 둘.

그렇게 같이 좀 있으며 메챠쿠차 친해졌다. 이하율 얘는 전보다 확실히 나에 대한 긴장감이 옅어진 모습. 남동생이랑은 그냥 얘 질문하는거 답해주고 몇개 대답해주니까 급속도로 친해졌다. 애가 날 참 좋아하더라. 진짜 망고단이었을 줄이야...

어쨌든 이정도면 어떻게든 이하율을 섭외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아직까지 자신의 능력을 나한테 안밝히기는 했는데, 그래도 뭐. 내가 쓰러져서 죽기 일보직전이 되면 웬만하면? 나 치유능력으로 살려주지 않을까?

휴. 대충 뭐, 괴한들이 갑자기 침입했을때는 망한건가 했는데 어떻게 어떻게 잘 넘긴거 같다. 다행이야.

아이고, 힘이 쫙 빠지네.

근데 나 뭔가를 잊은거 같기도 한데...

뭐였지?

***

[제목]에고스틱 진짜 죽은거 아니냐??

아니 진짜 말이 안되잖아.

지금 거의 4달이 다돼가는데 어디갔어!!!

돌아와 돌아와 돌아와 돌아와

=[댓글]=

[에고스틱이 안온지 4개월. 세상에서 제일 추운 4개월을 나는, 보내고있다.]

[120일째 안온거임? 진짜 말이 안되잖아ㅋㅋㅋㅋ]

[에고스틱 ㅅㅂ진짜 은퇴한거 아니나?]

ㄴ[헉]

ㄴ[ㅅㅂ안돼]

ㄴ[아니 근데 빌런이 은퇴했으면 좋은거 아니냐...? 빌런이 테러를 안한다는데 왜 아쉬워함]

ㄴ[?]

ㄴ[?]

ㄴ[별첩검거]

ㄴ[너 별먼지단이지]

ㄴ[스타더스 개새끼 해봐]

*

"하루야, 왜 이렇게 컵을 계속 두들겨? 요즘따라 뭔가 초조해보여 너..."

"아, 죄송해요 언니."

카페 안.

스타더스, 신하루는 자신도 모른채 유리컵을 치고 있던 손을 멈췄다.

에고스틱 그놈이 그대로 잠수탄지 벌써 거의 4개월.

놈의 비밀과 꿍꿍이, 그리고 계획하는 바를 기필코 밝혀내겠다는 의지로 불타오르던 스타더스는 슬슬 초조해지고 있었다.

아니. 이놈이 활동을 해야지 뭘 밝혀내던가 말던가 하지.

'이쯤이면... 나타날 때가 됐는데..."

그녀는 오늘도, 의미없는 기다림만을 할 뿐이었다.

EP.51 큰집

이하율.

그녀가 벌써 이 저택에 살게 된지도, 일주일이 지났다.

"누나 일어났어?"

"어? 어..."

옆방에서 하품을 하며 들어온 그녀의 동생, 차윤이.

그런 그의 머리를 슥슥 문질러준 뒤, 그녀도 일어날 준비를 했다.

씻고 옷을 갈아입고.

긴 복도를 지나 거실로 가자, 부엌쪽에서 긴 검은색 생머리를 한 여자가 요리를 준비하고 있었다.

자신이 다가오는 소리를 들은건지, 요리를 하다가 말고 고개를 드는 그녀.

눈이 마주치자, 활짝 웃으며 자신에게 인사를 건냈다.

"하율아, 일어났네? 잘 잤어?"

"네 언니. 언니도 잘 주무셨어요."

"응."

슥 웃어준 뒤 다시 밥을 더는 그녀.

하율 자신도 그녀의 옆에 서, 요리하는걸 같이 도왔다.

수빈언니는 처음에는 괜찮다며 말렸지만, 하율이 자신도 꼭 돕고 싶다고 강력하게 주장하자 마지못해 함께하게 허락했다.

아침은 간단하게 볶음밥과 여러 반찬들.

이내 시간이 지나고, 계단에서 발소리가 들리더니 두 인물이 등장했다.

"서은아, 눈 뜨고 걸어라. 넘어지겠다."

"으으응. 오빠가 좀 잡아줘요."

"아이고..."

은색의 단발머리를 한 여자와, 그녀를 잡고 같이 올라온 남자.

자신보다 두살 어린 한서은이라는 애와, 이 집의 주인 다인이다.

"다들 잘 잤어? 하암."

"안녕히 주무셨어요오..."

그렇게 둘은 비적비적 걸어가더니 소파에 앉아 눈을 감았다. 같이 산지는 얼마 안됐지만, 늘 아침에 약해보이는 저 둘.

그렇게 요리가 거의 마무리되고.

수빈언니는 소파에서 졸고있는 둘을 깨우러, 그리고 나는 방에 있을 동생을 깨우러 갔다.

"차윤아... 벌써 공부하고 있어?"

"응!"

차윤이의 방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아침밥을 먹기도 전부터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고 있는 그녀의 동생.

이제 다음 월요일부터 학교를 가기로 했으니, 그 전까지 미리 예습을 하겠다고 밝힌 그녀의 동생이었다.

애가 알아서 공부를 하니, 참 기특했지만...

'차윤아. 왜 이렇게 공부를 열심히 하는거야?'

'난 공부해서 꼭 큰사람이 돼서, 다인형을 도와줄거야!'

...그렇게 당차게 선포하는 동생을 보며, 그녀는 쓴 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밥 다 됐으니까, 나가서 먹자."

"알았어!"

그렇게 마지막까지 문제를 끄적이다, 일어나서 거실로 향하는 차윤이.

그런 동생을 보며, 그녀는 조금 씁슬해졌다.

저렇게 공부를 하고 싶어하는 아이를, 지금까지는 공부는 커녕 밥도 제대로 못 먹여줬으니...

그렇게 다시 밖으로 가자, 다같이 식탁에 앉아있는 이들.

그녀와 동생까지 자리에 앉자, 그제서야 모두가 수저를 들었다.

"잘 먹겠습니다."

"잘 먹을게."

그렇게 다같이 식사를 했다.

볶음밥은 맛있었다.

"서은아, 눈 뜨고 먹어 눈!"

"아... 떳어요..."

"차윤이는 반찬도 안가리고 다 잘먹네?"

옆쪽에 수빈언니가 흐뭇하게 웃으며 그리 말하자, 차윤이는 먹다가 씩씩하게 대답했다.

"네! 잘먹어야지 다인형처럼 크죠!"

"그래! 하하하하. 이 형처럼 훌륭한 사람이 될려면 쑥쑥 먹어야된단다."

"으... 오빠 자의식과잉 극혐."

"씁..."

그렇게 만담하며 투닥거리는 다인과 서은 둘을 보며, 이하율은 자신도 모르게 살짝 웃었다.

이 집에 그들과 함께 산지 벌써 1주.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일주일 동안 같이 살며, 이하율은 많을걸 알았다.

저 앞에 앉아있는, 옆에 여자애와 투닥거리는 남자가 다인.

그의 정체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제일 유명한 빌런, 에고스틱이었다.

지금까지 저지른 테러만 3번, 죽인 다른 빌런들만 수십명.

평소에 일에 치여사느라 몰랐지만, 그는 인기도 굉장히 많은 편이었다. 심지어 차윤이조차 좋아하고 있을 정도로.

맨날 막 뭐 부수는 영상을 보고 있길레 뭘보나 했더니, 알고보니 에고스틱 다시보기랜다 참...

같이 살면서 본 에고스틱은, 세간에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뭐랄까... 착한사람? 이었다.

처음에 자신들보고 같이 살자고, 지원해준다고 했을 때는 우리를 뭐 어떻게 해볼려고 하는게 아닌가- 하고 의심했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돈이 얼마나 많길래 우리한테 그렇게 아낌없이 주나 했던 의심도, 이 커다란 대저택을 보고 사라졌다.

아. 돈이 정말. 정말 많구나.

에고스틱, 다인. 그는 실제로 자신의 말을 지켰고, 우리에게 딱히 무언가를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같이 살면서 느낀건, 그가 그럴만한 사람이 아니라는거다. 차윤이와도 놀아주고, 자신도 은근슬쩍 챙겨주는 모습을 보면...

또 그와 함께 사는 수빈언니. 그녀는, 자신과 차윤이가 마치 그녀의 동생인것 처럼 챙겨줬다. 옷도 같이 나가서 골라주고, 요리도 알려주고, 학교 행정절차도 같이 밟아주고...

그런 그녀가, 이하율은 너무나도 고맙고 미안했다.

지낸지 일주일.

그녀는 마치, 아직도 꿈을 꾸는 것같았다.

그녀가 기억하던 어린시절부터 이어져왔던 고아원장의 학대와, 최근까지 작은 판잣집에서 전전하던게 어제같은데.

갑자기 하루아침에 무슨 귀족 아가씨처럼 이런 고풍스러운 큰집에서, 삼시세끼 꼬박꼬박 잘 챙겨먹으며 살 수 있다니?

사실 그녀 자신의 만족감보다는, 그녀의 동생 차윤이가 그 모진 고통을 겪지 않고 클 수 있다는게 너무나도 좋았다.

어린시절부터 몸이 약해 고아원에서도 원장에게 핍박당하기 일수라, 늘 그녀가 챙겼던 그녀의 동생.

그가 밝게 웃으며 함께 떠들면서 밥을 먹는 모습만 봐도, 그녀는 배가 불렀다.

그와 동시에, 그녀는 다시한번 다인의 모습을 힐끔 보았다.

그녀가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던건 다 눈앞에 남자, 다인 때문이다.

아니, 사실 그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애초에 그자리에서 그녀의 남동생과 그녀는 죽었을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가 어떻게 알고 딱 찾아와주었고.

자신과 남동생을 구해주었다.

사실 그녀가 다인을 믿게 된 건 수빈언니의 영향도 크다. 이 집에 살게 된 이후로 그녀는 에고스틱에 대한 모든걸 찾아보았고, 그 와중에 수빈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수빈도 마치 자신과 비슷하게 거두어버린 인물.

테러를 일으키던 그녀를 다인이 같이 데리고 갔다.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에고스틱이 그녀를 어떻게 한거냐 하고 갑론을박이 벌어졌지만.

그녀는 이제 안다. 수빈은 잘 지내고 있다는걸.

사실 수빈언니도 마치 천사처럼 착해보이지만, 그녀도 테러를 일으킨 일종의 테러리스트다.

에고스틱은 애초에 협회가 주목하는 A급 빌런이고.

저기 은색 머리의 여자애도, 겉보기에는 그냥 작고 귀여워 보이지만 알고보니 천재 해커랜다.

그러나, 그게 무슨 상관인가.

저들이 자신과 동생을 가족처럼 맞이해 줬다는게 중요하지.

사실 그녀도 떳떳하지 않다. 애초에 소매치기를 하며 생계를 유지해왔으니...

시간이 지나며, 그녀는 다인에게 너무나도 큰 고마움을 느꼈다. 이제는 의심을 거의 거두고, 감사한 마음만이 가득 찼다고 할 수 있다.

비록 그는 자신의 능력, 그러니까 사람의 상처를 웬만하면 거의 다 치유할 수 있다는걸 모르는 눈치였지만.

'나중에 다쳐서 돌아온다면...'

그때는 기필코 은혜를 갚으리라.

그녀는 혼자서 조용히 그리 다짐했다.

***

"아저씨. 지하실로 가요."

"서은아... 기껏 이사했는데 햇빝도 좀 쐬고 그래야지."

"아 빨리이요."

"그래, 그래. 알았다."

서은이가 하도 칭얼거리는 바람에, 나는 결국 지하실로 향했다. 안가면 계속 아저씨라고 부를거 같어...! 형에 이어 아저씨냐...

가는법은 간단하다. 그냥 순간이동 장치를 타면 된다.

서은이를 3개월간 닥달해서 만든 순간이동장치. 꼭 뭔가 닥터후에 타디스마냥 생긴 이거에 문을 열면, 바로 지하실로 직행한다.

순간이동장치가 깔린 곳끼리만 이동할 수 있다는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뭐, 애초에 목적이 집과 지하실을 잇는 거였으니까.

이 지하기지에 3개월간 박혀 있으면서 느낀건데, 여기는 사람이 살 곳이 못된다.

그전까지는 여기서 정신없이 일만하느라 못느꼈지만, 쉬면서 있어보니 답이 없더라. 아니, 사람이 햇볕은 받고 살아야지.

그래서 큰맘먹고 저 산골짜기 깊숙한 곳에 커다란 대저택을 샀다. 남아도는게 돈인 나여도 실로 엄청난 지출.

뭔가 80년대 저택같은 이 고풍스러운, 이 웅장한 위용을 보면 내 가슴도 웅장해진다.

이렇게 큰 집을 산 이유는 단 하나.

앞으로도 여러 능력자들을 꼬셔서, 나의 빌런연합, 일명 에고-스쿼드에 본부가 될 곳이기 때문이다.

비록 지금은 5명이서 오종종 살고 있지만, 미래에는 여기가 꽉 찰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렇게 되겠지?

"하아. 역시 집이 최고에요."

"서은아, 우리 집은 저 위에 궁궐같은 저택이야..."

"전 여기가 편해요. 하아, 내 모니터들. 외로웠지?"

...물론 저기서 자기 모니터를 껴안고 있는 서은이처럼, 이사를 반대한 사람도 있기는 했지만.

적어도 수빈씨는 좋아하는거 같다. 특히 애 둘을 알뜰살뜰 챙기는게 보는 내가 다 흐뭇하더라. 의외로 아이들을 좋아하는 성격인거 같다니까. 생각해보면 서은이랑도 금방 친해졌었지.

저 남매. 어째어째 친해지는데 성공한거 같다. 하긴, 거지처럼 살고있던 애들 돈 다 대줘 집 줘 거의 구해줬는데 싫어하면 그게 더 이상한거겠지...?

이차윤인가? 얘가 내 추종자인게 너무나도 큰 도움이 됐다. 살짝 보니까 거의 자기 누나한테 에고스틱에 대해 세뇌시키고 있던데... 든든하다!

하여튼 이하율을 영입한거는 진짜 아주 잘된일이다. 거의 예비목숨을 여러개 한 것과도 마찬가지. 죽기 직전 상태여도 쟤한테 달려가면 구해줄거다. 아마도?

어쨌든 이하율까지 포섭했으니, 대충 할 일은 다한거 같다.

3개월... 아니 이제는 거의 4개월인가? 하여튼 나름 알차게 보낸거 같다. 이제 거의 겨울이 다되가네.

"오빠, 또 무슨 생각해요?"

잠시 딴생각을 하고 있으니 서은이가 볼을 부풀리며 나를 노려봤다. 얘가 저 남매가 이사해 온 이후로 부쩍 나한테 달라붙는단 말이지.

"아무것도 아니야. 맞다, 서은아. 이제 우리 그거나 하자."

"네? 그게 뭔데요?"

서은이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묻길래, 내가 씨익 웃으며 답해줬다.

"뭐긴 뭐야. 새로운 테러지."

너무 오래 쉬었다.

이정도면 대중들이 나를 잊게 생겼다고.

느슨해진 반도에 긴장감도 주고, 스타더스한테 어그로도 끌고, 미래에 위기도 막고.

*

[망고스틱이 다음주에도 안오면 바지에 똥을 지리겠다.]

경고했다.

=[댓글]=

[지지합니다]

[나는 광화문앞에서 똥을 싸겠다. 말리지 마라.]

ㄴ[캡쳐함]

ㄴ[그러니까 다음주에 광화문에서 볼 수 있다는거지?]

ㄴ[M][캡쳐했다 안싸면 차단함ㅅㄱ]

ㄴ[메니저 등장ㅋㅋㅋㅋㅋ]

[글쓰니는 바지를 하나 더 주문했다고 한다]

[야 아직도 기다려? 독하다 독해ㅋㅋㅋㅋㅋ]

*

...바지에 똥을 지리려고 하는 우리 망고단도 말릴겸. 새로운 테러 새끈하게 한번 해줘야지.

테러를 일으키자는 말에 얼굴이 밝아지는 서은이. 내가 애를 잘못 키웠나..? 테러를 좋아하는 여중생이 되었다. 아니 이제 여고생인가...

"와! 드디어 하는거에요?"

"엄...그래. 이번 테러 컨셉은..."

'마포대교는 무너졌다'로 가자.

마포대교는 무너질거다 이 섀끼들아.

내가 무너트릴꺼거든.

EP.52 복귀

내가 계획할 새로운 테러는, 그냥 테러가 아니다.

무려 원작의 메인 이벤트를 막는, 일석 이조의 테러.

한은그룹.

대한민국의 최고의 대기업중 하나이자, 고아들을 상대로 불법 생체실험을 해 능력자들을 양산할려고 했던 미친놈들의 온상.

우리 서은이가 이놈들의 생체실험의 피해자이다. 결과적으로 높은 지능을 얻기는 했지만, 그 과정에서 끔찍한 고통을 겪은건 당연지사.

하여튼, 일반인들에게는 평범한 기업으로 알려진 이 미친 기업의 실체가 까발려지는게 곧이다.

원작에서 최초로 등장한, 사람들이 떼거지로 죽는 메인 이벤트.

저번에 생체실험이 개같이 멸망한 이후로도 정신을 못차리고, 또 음지에서 이상한 짓거리를 하던 놈들.

뭐 거기까지만 해도 괜찮지만, 새롭게 참여한 미친놈에 의해 판이 어그러진다.

그놈의 목적은 '탈 인간.'

대체 무슨 좆같은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이놈은 괴물을 만들 생각을 한다.

그리고 짜잔! 괴물을 진짜 만드는데 성공했네?

근데 통제가 안되는.

검은색의 끈적거리는 점액질로 이루어진, 웬만한 빌딩을 가로로 눕힌것만 같은 괴실험체.

이동할때는 마치 거대한 검은색 파도와도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닿는것들은 모두 부식시켜버리는 끔찍한 녀석.

문제는 이놈? 이놈들? 하여튼 이 검은색 꿈틀이가 탈출했네?

눈도 없는 놈들이라 무지성으로 직진하네?

근데 하필 한은그룹 이 미친놈들이 이런 짓거리를 서울에 있는 지하 실험실에서 했네?

그래. 그놈들이 서울을 초토화 시켰다.

지하에서 튀어나온뒤, 서울을 세로로 가로질러 위로, 위로 향했고.

검은 파다와도 같은 것들이 서울을 일직선으로 초토화 시키며, 더 위쪽으로 향했다.

그래. 북한으로.

갑자기 지들끼리 잘 살던 북한은 남쪽에서 온 검은 괴생물체에 쓸려 초토화됐다.

차라리 한국은 이게 서울에서 시작되는 덕분에 서울 아래는 무사했지, 북한은 그냥 전국토가 일자로 유린당했다.

이거때문에 막 간악한 남조선 새끼들이 드디어 조선인민공화국을 멸망시키려하냐며 전쟁이 일어날 뻔하기도 했다.

심지어 이놈들이 이왕 직진할거면 중국까지 가지, 아예 북한에 눌러앉아 버려서 북한정부는 미칠려고 들었다. 이놈이 북한 국경 넘을때쯤에는 더 쎄져서 날아다니거든.

나중에 북해빙녀가 가서 처리하기는 하지만, 그건 머나먼 이야기.

그나마 이놈들 약점이 물이라 다행이었다. 물은 흔해가지고, 쉽게 구할 수 있거든. 그덕에 북해빙녀가 쉽게 처리할 수 있던거지만.

하여튼 이 사건이 원작에서는 최초로 등장한 피폐한 사건으로, 이 만화가 다른 킬링타임용 히어로 만화들과 달리 많이 음울할거라는걸 알리는 신호탄이 된다.

딱 작품분위기가 이전까지는 좀 밝다가, 이때부터 점점 우울해지기 시작하거든.

그러니까 나로써는 무조건 막아야한다는 말이다.

내가 살고 있는 세계가 갑자기 80년대 고담시티같은 분위기가 되는데, 이걸 눈뜨고 당하리?

그래서 내가 예전부터 참 고민을 많이 했다.

이거를 어떻게 막을까.

사실 제일 좋은 방법은 그 실험 자체를 막는거지만, 그건 장기적으로 봤을때 좋은 방법이 아니다.

이 사건으로 지금까지 한은그룹이 해오던 추악한 만행이 세상에 까발려지게 되고, 결국 수뇌부들이 모두 사라지게 만드는 결정적 계기가 된 사건이니.

거기다가 이런 방법이 아니면 한은그룹을 망하게 하기도 힘들다. 얘네가 대한민국 정치계랑 언론에 미치는 영향력이 어마무시해서, 어지간한걸로는 흠집도 내기 힘들거든.

그러니까 결론은 저 검은 왕꿈틀이가 나대게 만들면서도 피해는 줄여야 한다는건데.

어떻게?

그러게 한참을 고민하던 나. 그러다 불현듯 깨달았다.

원작에서 나왔던 언급.

'하, 저놈이 이동하는 거리에 하필 한강을 건너는 다리가 있어가지고, 그것만 없었어도...'

그래.

강남쪽에서 터진 놈이 물이 약점임에도 북한까지 진격할 수 있었던 이유.

하필 그놈이 진격하는 곳에 다리가 있었다.

그때 다리만 없었어도?

그대로 강에 꼴아박혀서 죽었었을 거다. 얼마나 좋냐. 사건해결!

심지어 갓태어났을때라 약해서 진짜로 강에 박혀 죽었을거다. 나중에는 날아다녀서 강은 그냥 우습게 건너거든. 그 한강 다리만 없었어도.

그래.

다리만 없었으면 됐다.

그럼 내가, 그 다리를 뽀개버리면 되는거 아닐까?

그때 내 머리에 번개가 쳤다.

유레카.

다리를 박살내자.

이 사건은 워낙 메인이벤트라 원작에서 시기까지 구체적으로 나와서, 직전에 딱 무너트리면 된다.

다리를 박살내기로 결심한 이후, 내 손속에는 거침이 없었다.

또 서은이 시켜서 폭탄 만들고, 무너트릴 각도 보고...

그러다가, 또 머리에 번개가 와자작.

아니. 폭발. 이거 테러 아닌가?

그러면 테러할때 다리를 폭발시키면 되는거 아닌가?

그렇게 테러계획이 잡혔다.

"우리는 다리를 폭파시킨다."

[제 9차 에고스쿼드 정기 회의]

벌써 아홉번째 회의임을 알리는 칠판을 등지고서, 나는 그렇게 선포했다.

"좋아요, 준비는 뭘 하면 돼요?"

눈을 반짝이며 묻는 서은이.

"시기는 언제인가요?"

구체적인 날짜를 궁금해하는 수빈씨.

"어... 애초에 테러를 왜하는거에요?"

자기가 왜 이 자리에 있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있는 우리의 힐러, 이하율까지.

대충 다 모인 멤버들에게, 나는 앞으로의 계획을 얘기했다.

"하율아, 잘 모르겠지만 테러는 다다익선. 느슨해진 반도에 긴장감을 줄 필요가 있는거란다. 시기는 바로 몇주뒤에 시행할 예정입니다. 준비는 이제부터 계획해야지."

"오빠, 아직도 별 생각안해놨어요?"

"그래! 일단 다리는 폭파시켜야 되는 이유가 있으니까 폭파시킬꺼고, 이걸 어떻게 테러로 요리할지 생각좀 해보자."

"좋아요. 흠... 다리, 다리라. 어디 다리 말하는거에요?"

"저 한강에 큰 다리 있잖아. 그거."

"그걸요? 아, 그래서 폭탄 위력을 그렇게 무식하게 높게 만들어달라고 한거에요?"

"그래. 저거 무너트릴려면 좀 큰거 써야될거 같더라."

"음... 또 그 딜레마적 상황 만들어야 한다는거죠? 거기에 또 그놈의 스타더스도 엮여야하고?"

"크흠. 서은아, 그놈이라니. 뭐, 맞긴해."

"저, 저기... 전 여기 왜있는건가요?"

우리가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을때, 갑자기 옆에서 조용한 물음이 들려왔다.

모두가 소리의 진원지로 고개를 돌리자, 갑작스러운 눈길에 살짝 움추러든 이하율이 거기에 있었다.

"아, 하율아. 너도 이제 우리의 가족과도 마찬가지란다. 가족이니까, 가족의 계획을 도와야겠지? 함께 머리좀 같이 굴려보자고 불렀지. 집단지성, 오케이?"

내 말에 '가족...'이라고 중얼거리더니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 눈길이 조금 더 의욕적이 되었다.

...사실 집단지성도 집단지성이지만, 자주 불러서 서서히 우리들에게 물들어가게 할려고 부른것도 있지. 원래 공범이 돼야 친밀감도 생기고 유대감도 깊어지고 그러는거다. 자꾸 친해지다 보면 언젠가 자신의 치유능력을 우리들에게 밝힐 날도 오지 않을까?

어쨌든, 우리는 머리를 같이 굴렸다.

여러 아이디어가 나오고, 다시 사라지던 그때.

서은이가 무언갈 기억했다는 듯 손뼉을 치며 말했다.

"아! 오빠! 우리 그거 있잖아요 저번에 안썼던거. 오빠가 선한 사마리안인 법인가 뭔가라고 이름붙였던거."

"그거?"

그래, 그런게 있기는 했다. 다른 테러를 일으키느라 무산되었던 그거. 근데 그거는 다리에 쓸만한게 아닌데..?

"아니죠 오빠, 그걸 이제 그렇게 변형시켜보자는거죠."

그러면서 서은이는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오, 이거 좋은데?

그때, 가만히 듣고 있던 하율도 옆에서 입을 열었다.

"저... 여기서는 또 이렇게 하면 좋지 않을까요? 사상자가 안나온다고 하셨으니까, 이렇게..."

"오. 그것도 나쁘지 않은데?"

그렇게 우리는, 계획을 구체화하며 몇날 며칠을 보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후.

"그래, 이정도면 되겠다."

준비는 완료됐다.

***

신하루.

그녀는 요즈음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망붕이 에고스틱 만들어봤다 ㅁㅌㅊ?]

[망고스틱 레전드는 퀴즈쇼지]

[망잘알특) 기차 테러를 최고로 침]

[망망망 뭔 글들 앞글자가 다 망이야 여기가 망카페라 그런가?]

[에고스틱 복귀기원 감사의 망고먹기 118일째]

[이번주 안으로 망고스틱이 올수밖에 없는 이유...real fact]

[펌)에고스틱이 돌아오지 않는 5가지 이유]

바로 에고스틱의 팬카페에서 게시글들을 읽는 것.

에고스틱에 관한 새로운 정보가 있을가 싶어 보게 되었지만, 매일 보다보니 일종의 습관이 되었다.

의미없는 뻘글이 대다수이지만, 그냥 시간도 보낼겸 아무 생각 없이 눈으로 슥슥 읽고있던 도중.

하나의 게시글이, 새로 올라왔다.

[야 에고싀틱 ㅣ새로운 영상 떴디ㆍㄴㅈㄴㄷㅂㄷㅋ]

"...?"

그와 동시에.

카페에서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게시글들.

[떴다!!!!!!!!!!!!!!!!!!!!!!]

[시발 이게 섹스지ㅋㅋㅋㅋㅋㅋㅋ]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야 떴음ㅋㅋㅋㅋㅋㅋ]

[티비보는데 뭐냐ㅋㅋㅋㅋㅋㅋ]

[입갤ㅋㅋㅋㅋㅋㅋㄱ]

[갤주 개같이 복귀ㅋㅋㅋㅋㅋㅋ]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신작 야동 118일만에 등장ㅋㅋㅋㅋㅋㅋ]

[야 시발 떴다ㅋㅋㅋㅋ]

[이왜진? 이왜진? 이왜진? 이왜진? 이왜진? 이왜진?]

[ㅅㅂㅋㅋㅋㅋ 테러 일어났다고 좋아하는 커뮤니티가 있다? 삐슝빠슝]

[지금 당장 티비 OR 유튜브 ㄱㄱ]

[줸장 믿고있었다고!!!]

[야 저기 어디냐? 빨리 분석해보라고ㅋㅋㅋ]

순식간에 상황을 확인한 신하루는, 급히 유튜브를 틀었다.

바로 메인화면에 뜨는 영상.

["실시간 스트리밍"안녕하세요, 에고스틱입니다.]

그와 동시에 협회로부터 연락이 왔고.

"네, 네. 봤습니다. 지금 갑니다."

그녀는 서둘러 일어나, 달리기 시작했다.

그가 돌아왔다.

EP.53 On Air

둥. 둥. 둥.

어디선가 들리는 신명난 북소리를 배경으로, 허공에 서있는 한 남자.

대낮에 어올리지 않는 검은 망토, 검은 로브, 검은 마술사 모자를 쓰고.

얼굴의 절반을 가린 가면 뒤로 미소를 짓던 그는, 이내 카메라를 향해 큰 소리로 소리쳤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대한민국 협회 선정 가장 영향력 있는 빌런 1위, 포보스 선정 최고의 빌런에 꼽힌 저 에고스틱이 여러분을 뵙습니다. 반갑습니다!"

커다란 다리를 배경으로 허공위에 떠서, 모자를 벗은 다음 중세 유럽풍마냥 카메라로 인사를 한 남성.

방송 3사와 유튜브로 전국에 송출되는 그의 모습에, 사람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눈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올라오는, 에고스틱이 공식으로 송출하는 유튜브 방송의 채팅창.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에고스틱 그는 신인가? 에고스틱 그는 신인가? 에고스틱 그는 신인가? 에고스틱 그는 신인가?]

[엄마 난 커서 테러범이 될레요! 엄마 난 커서 테러범이 될레요! 엄마 난 커서 테러범이 될레요!]

[김선우를 석방해라 김선우를 석방해라 김선우를 석방해라 김선우를 석방해라 김선우를 석방해라 김선우를 석방해라 ]

[자 드가자~ 자 드가자~ 자 드가자~ 자 드가자~자 드가자~ 자 드가자~ 자 드가자~ 자 드가자~]

[LOL is this that famous EGOSTIC? Wonder if there is eng sub]

[ㅅㅂ채팅창 곱창났네ㅋㅋㅋㅋㅋ]

[4개월만에 보니까 은근 반가운데?ㅋㅋㅋㅋ]

[이번에는 또 무슨 지랄을 할려고ㄷ]

[망고펀치! 망고펀치! 망고펀치! 망고펀치! 망고펀치! 망고펀치! 망고펀치! 망고펀치!]

[저새끼 모자쓴거 뭐냐ㅋㅋㅋㅋㅋ]

[韓国ビランのレベルwww 私たちの大日本帝国に比べて劣るwwww]

[오늘 싱글벙글 회식 준비하던 히어로협회 눈물 줄줄 흘리는중ㅋㅋㅋㅋ]

[ㅅㅂ이제는 하다하다 외국인들도 보네ㅋㅋㅋ 채팅 꼬라지봐라]

[저거 그래서 어디임?????]

"모두 반갑습니다 여러분. 네, 지금 저는 마포대교에 나와있습니다. 야, 한강에 오랜만에 오니까 좋네요. 제가 처음으로 했던 데뷔전이 여기 한강이었는데 말입니다. 그때 테러 했던게 어제같은데, 벌써 거의 1년이 다돼가나요? 참 시간이 금방 가는거 같네요."

[그게 벌써 1년 전이었나?]

[봄에 했는데 지금 겨울이 다되어가니 얼추?]

[망고스틱과 함께한 1년ㅋㅋㅋㅋㅋ]

[1년중 4개월을 잠수탄 씹년이 있다?]

[한해동안 대규모 테러만 3번 ㅅㅂㅋㅋㅋㅋㅋ]

[오늘 또 뭔짓 하나본데 이거 포함하면 4번이다ㄷ]

[이,,,악당놈,,,어느,,낯짝이라고,,얼굴을,,,들이미는게냐,,,! 고~~얀놈]

[어르신 유튜브 채팅도 칠줄 알고있네ㅋㅋㅋㅋ]

"어쨌든 짜잔! 갑작스럽게 밝히자면, 지금 제 아래에 있는 마포대교에는 폭탄이 붙어있답니다! 히어로나 협회여러분 허튼짓 하시면... 아시죠?"

에고스틱은 자기 손에 들린 기폭장치를 카메라쪽으로 흔들어보았다.

[기폭장치 시즌 516731461째 입갤ㅋㅋㅋㅋ]

[한결같이 폭탄 들고다니는 놈ㅋㅋㅋ]

[공무원들 ㅈ됐네 저번에 저놈이 배 기차 비행기 폭탄테러 한 이후에 매일 아침점심저녁으로 폭발물검사했다는데ㅋㅋㅋㅋ 이제 다리도 매일 폭탄있나 순찰돌겠네ㅋㅋㅋㅋ]

[그걸 왜 공무원들이 하겠냐 알바뽑아서 시키겠지]

[일자리까지 창조하는 망고스틱ㄷㄷ]

[근데 나만 이와중에 망고오빠 각선미만 보이냐? 넘 섹시한거 아니냐고 퓨ㅠㅠㅠㅠ]

[망고오빠 나죽어ㅜㅜㅜ]

[오빠 나 진짜 죽어 ㅅㅂ 지금 마포대교라고]

[ㅅㅂ위엣놈은 진짜 죽게 생긴거 아니냐?ㅋㅋㅋㅋ]

"큼. 히어로 여러분은 산산조각나는 다리를 보고싶지 않으시면 가만히 있는게 좋을겁니다. 사실 지금 저를 막을 수 있는 히어로가 스타더스 그녀밖에 없죠?"

거기까지 말한 그는 살짝 헛기침을 한 뒤, 다시 말을 이었다.

"네. 다가오시지 않는걸 추천합니다. 제가 인내심이 조금 부족해서, 눈에 보이면 어찌할지 모르겠네요."

그렇게 말하며 다시한번 경고의 의미를 담아 기폭장치를 만지작 거리는 그.

[스타더스 손절선언ㄷㄷ]

무언가를 본 그의 몸이 살짝 멈칫하기는 했지만.

다시 아무일도 없었다는듯, 자연스럽게 열리는 그의 입.

"여러분... 아 그전에 잠시만요. 음... 잠깐만요. 쾅!"

그가 말을 함과 동시에 다리의 양쪽에서 들려오는 커다란 굉음.

그와 동시에 무언가 무너지더니, 다리의 양 끝을 막아버리고 말았다.

그와 동시에 어디선가 커다란 확성기를 꺼내서, 아래에 다리를 지나는 차들을 향해 큰소리로 소리쳤다.

"현재 마포대교 위에 계신 여러분!!! 그냥 그 자리에 멈줘주시길 바랍니다!!! 이상한 짓 하시면 바로 쏩니다!!!"

에고스틱의 경고성 엄포에, 전속력으로 밟던 페달을 서서히 멈추는 차들.

그가 등장하자마자 양 옆을 날려버린게 아닌, 시간을 좀 준 만큼 다리위에 차들은 거의 없었다.

라디오를 못들었거나, 타이밍이 억수로 안좋았던 차 두대만이 덩그러이 서있을뿐.

할 말을 다 한 에고스틱은, 확성기를 다시 어딘가로 날려버리더니 카메라를 향해 씨익 웃었다.

"죄송합니다. 이게 테러가 관객이 있어야 더 즐거운거 아니겠어요? 게스트를 즉석에서 섭외하느라 잠시 말이 끊겼네요."

[멀쩡히 잘 달리던 사람 붙잡아놓고 게스트 섭외 ㅇㅈㄹㅋㅋㅋ]

[무친련... 무친련... 무친련... 무친련...]

[저 두 차에 탄 사람들은 뭔 죄냐ㅋㅋㅋ]

[어차피 쟤가 한 테러에서 지금까지 죽은사람 한명도 없는데 뭔상관ㅋㅋㅋ]

[ㄹㅇ오히려 포상아님? 아찔두근짜릿익사이팅 테러체험인데ㅋㅋㅋㅋ]

[아ㄲㅂ 내가 갔어야했는데]

[채팅창을 볼때마다 세상이 이상한건지 아니면 내가 이상한건지 모르겠다]

[너가 이상한거임]

"네, 네. 이제 모든 준비가 다 끝났으니. 잠시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그와 동시에 계속 흘러나오던 신명난 음악이 꺼지고.

다른 무언가 하얀거탑에 나올 것만 같은 서스팬스 브금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약간 그것이 알고싶다 앵커 톤으로 입을 여는 에고스틱

"여러분, 제 이름을 알고계십니까? 네. 에고스틱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여러분, 혹시 제 이름이 어디서 유래했는지 알고 계십니까?"

"에고이스틱(Egoistic), 영어로 이기적인을 뜻하는 에고이스틱에서 유례했습니다. 왜 이렇게 이름을 지었나 하면...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인지, 이를 증명하고 싶어서 제가 빌런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기적 유전자를 너무 감명깊게 읽은wwww]

[청소년 필독서로 이기적 유전자 임명한 사람 누구냐]

[리처드 도킨스가 잘못했네]

"큼. 어쨌든, 이번에는 제 이름값을 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인지, 저희 한번 실험을 해보죠! 만약 인간이 이기적이라면 제 승리. 인간이 제 생각보다 이기적이지 않다면 제 패배입니다."

거기까지 말한 에고스틱의 말을 들은 시청자들은 모두가 의아해했다.

이기적인지 실험을 해보겠다고? 어떻게?

사람들이 의아해 하거나 말거나, 에고스틱은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이 다리. 캬, 마포대교. 참으로 크고 아름답습니다. 이거 짓는데 돈이 얼마나 들었을까요? 몇백, 몇천억은 우습게 들지 않았을까요?"

뜬금없이 마포대교에 가격을 물어보는 그.

"그러나 이렇게 많은 돈이 든만큼, 시민이들이 편리하게 잘 이용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 다리가 없었으면 도로는 그만큼 막혔겠지요."

그러더니, 그의 시선이 다시한번 사악한 웃음을 지으며 카메라로 향하고.

그가 입을 열었다.

"자, 이번 테러를 설명하겠습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제가 부를 주소나 링크, 문자로 계좌번호를 보내주시면 제가 십만원을 드리겠습니다."

"이미 전산망은 다 해킹해놔서 걸릴 걱정도 없습니다, 그냥 대한민국 19세 이상 국민이면 누구나, 계좌를 보내주시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십만원 보내드리겠습니다. 공짜돈이죠."

"단."

"오늘 저녁 7시까지, 만약 저한테 10만원을 타간 사람이 500만명이 넘는다면."

"이 다리는 그대로 폭발시켜버리겠습니다. 이 다리위에 타있는 사람들과 함께요."

"여러분, 선택하시죠."

"공짜돈 십만원이냐? 아니면 혹시라도 터질 수 있는 이 다리냐."

"과연 인간은 남을 위해 꽁돈 십만원정도는 가볍게 포기할 수 있을정도로 이타적일까요? 아니면 나 하나 정도는-이라면서 돈을 가져가는 이기적인 사람들일까요?"

"뭐, 그건 오늘 밝혀지게 되겠죠."

"자! 소개합니다. 신개념 전국민 참여형 테러, 하나의 다리냐 아니면 재난지원금 정도의 금액인 10만원이냐. '국민의 선택 1vs10', 지금 시작합니다!!!"

그와 동시에 영상에서는 우렁찬 박수소리가 배경으로 깔리기 시작했고.

다리를 배경으로 화면을 향해 웃으며 인사를 던지는 에고스틱을 끝으로, 영상이 종료되었다.

그 다음으로는 빈 화면에 사이트, 전화번호, 카톡, 블로그, 트위터등 모든 에고스틱에게 계좌번호를 보낼 수 있는 수단들이 명시 되어있을뿐.

그리고 화면 맨 위에는, 오후 7시까지 남은 시간이 표기되어 있었다.

[8h 56m 45s]

[8h 56m 44s]

[8h 56m 43s]

...

그렇게 적막한 영상 옆, 채팅창에 올라온 한 채팅이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대면해 주었다.

[돌았네.]

그렇게 대한민국의 평범한 어느날, 폭발과도 같이 때 아닌 [대수금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

"..."

마포대교가 한눈에 들어오는, 강가 쪽.

경찰들로 둘러싸여 모두의 출입을 막고 대치상태로 놓여있는 그곳을 보며, 스타더스는 이를 악물었다.

에고스틱.

언젠가 그가 테러를 다시 할 줄은 알았지만.

이런 식의 테러를 벌일 줄이야.

대교쪽을 째려보는 그녀의 심기는, 매우 좋지 않았다.

당연히 저놈이 저런 천인공노할 짓거리를 벌이고, 국민들까지 말려들게 하는 악질과도 같은 테러를 하고 있기 때문.

...절대로, 이번에 저놈이 지금까지 일으킨 테러 중에선 처음으로 스타더스를 배제해서가 아니다.

당연히 아니다. 저놈이 자기를 부르던 말던 무슨 상관인가.

그건 신경 안쓴다.

절대로 그런걸 신경쓰고 있는게 아니다.

라고, 그녀는 스스로 되뇌였다.

"....."

하. 근데.

지금까지는 그렇게 줄기차게 자기를 불러놓고.

이번에는 이제와서 왜 갑자기 오지 말래?

"어이가 없어서..."

그렇게 그녀는 홀로 중얼거렸다.

누구도 듣지 못할 말을, 혼자서.

그래도.

저번에는 뭐 비행기 구하라고 자기한테 연락했으니.

이번에도 그럴려는건가.

그가 자신을 아예 배제시키지는 않을 것 같은데.

그렇게 계속, 그냥 그런 생각을 계속 할 뿐이었다.

자신도 왜 하는지 모를,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

"오빠, 근데 이번 테러에서도 스타더스 언급 할거에요?"

"음? 어, 안할건데? 어차피 다리 터트리면 날아와서 차만 슥 구하면 될 테니까... 이번에는 스타더스 시련용이 아니니 굳이 부를 필요가 없어."

스타더스는 자기 귀찮게 안한다고 좋아하겠지 뭐.

EP.54 돈복사

[제목]ㅅㅂ진짜 에고스틱 미친거 아니냐?

쟤 말대로 500만명이 진짜 돈 받는다고 하면 500억 이상 아님? 미쳤네 무슨 걸어다니는 중소기업이냐?ㅋㅋㅋㅋㅋㅋ

=[댓글]=

[익명1]ㄹㅇㅋㅋㅋ진짜 뭐하는 놈인지 모르겠네

[익명2]'돈 그렇게 많으면 10만원만 줘'라고 말했더니 진짜 주는 사람이 있다?

[익명3]이게 빌런임? 이건 히어로임ㅋㅋㅋㅋ

[익명4]야 500억 아님 5000억임ㅋㅋㅋㅋㅋ

ㄴ[익명5]?

ㄴ[글쓴이]???

ㄴ[익명6]와 ㅅㅂ진짜네ㅋㅋㅋㅋ 10만x500만하면 5000억인데ㅋㅋㅋㅋ

ㄴ[익명7]걸어다니는 대기업인데ㅋㅋㅋㅋㅋ

ㄴ[익명8]?? 아니 시발 이정도면 국가 한달 예산 아니냐?

ㄴ[익명9]걸어다니는 국가ㄷㄷ

ㄴ[익명10]망고국ㄷㄷ

[익명5]아니 근데 상식적으로 돈이 그렇게 많을리가 있냐? 계좌보내면 돈을 받는게 아니라 역으로 털리는거 아님?

ㄴ[익명2]ㄴㄴ나 계좌보내서 돈 받음ㅋㅋㅋ 77ㅓ억

ㄴ[익명5]어쩔 수 없다 ㅅㅂ나도 받으러 간다

ㄴ[익명11]받지마 미친놈아

*

[아니 저거 계좌 보내는 놈들은 미친거 아니냐?]

정신이 있는거야 없는거야.

너네가 '나 하나 쯤이야~'하는게 모여서 망하는거라니까?

저 다리 부숴먹고 위에 탄 사람들 죽는다니까?

진짜 양심없는거 아니냐.

[추천]23 [비추천]172

=[댓글]=

[응~ 이미 받았어]

[팩트 한접시)]

ㄴ[사돈에 팔촌까지 다 참여해도 8시간안에 500만명은 못 넘긴다]

ㄴ[팩트 두접시)]

ㄴ[서울 안살면 다리 부숴지든 말든 상관 안쓴다]

ㄴ[팩트 세접시)]

ㄴ[사람이 죽으면 그건 못구한 히어로 때문이지 그게 왜 우리때문임? ㄹㅇㅋㅋ]

ㄴ[ㄹㅇㅋㅋ]

ㄴ[ㄹㅇ스타더스가 알아서 구하겠지ㅋㅋㅋㅋ]

ㄴ[아 그래서 에고스틱이 일으킨 테러중에 사상자 나온거 있냐고ㅋㅋㅋㅋ]

[나만 아니면 되애애애애]

[이 글보고 어머니 아버지 누나 형부한테 당장 계좌 보내라고 말했다]

ㄴ[야 너두?]

*

[익명이니까 솔직하게 고백해보자]

걍 영상보자마자 바로 10만원 받아버렸다: 개추

사람이 먼저다. 난 내 양심껏 살기 위해 받지 않을거다: 비추

[추천]2476

[비추천] 51

=[댓글]=

[ㅅㅂ추천 비추천 비율봐라ㅋㅋㅋㅋㅋ]

[?다들 부모님 계좌까지 보내서 받은거 아님?]

[오늘 저녁은 꽃등심이다 컄ㅋㅋㅋㅋㅋ]

[돈이 복사가 된다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에고스틱이 벌인, 전국민적 사회 참여형 테러.

이전까지의 테러가 사람들은 아무 관련 없이 자리에 앉아, 수동적으로 테러를 무력하게 지켜만 보는 것이었다면.

에고스틱이 벌인 테러는, 완전히 개념이 뒤바뀌어 버렸다.

가해자가 '테러범'이 아닌, 사실상 '국민들'이 되어버리는 테러.

이 테러는, 사람들이 능동적으로 가해자가 된다.

에고스틱에게 10만원을 받은 모든 사람이 가해자고, 이 테러의 주범이 된다.

그가 밝힌 것처럼, 인간들이 얼마나 이기적인지 알아보겠다는 테러.

사실 모두가 가만히 있으면, 이 테러는 자연스럽게 와해된다.

일어나지도 않을 수 있는 테러.

그러나.

대한민국 국민들은 역시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다.

[실시간 검색어]

1.계좌 보내는 법

2.10만원

3.10만원 받는 겁

4.에고스틱 주소

5.에고스틱 10만원

분명히 돈을 받으면 다리를 붕괴시킨다고 경고했음에도.

사람들은 마구잡이로 자신의 계좌를 보내 돈을 받기 시작했고.

지상파3사를 계속 에고스틱이 전파납치하여 공짜 10만원 받는 법을 송출 하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깨어있는 사람들은 모두, 이 얘기를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어어, 김대리. 뭐하고 있는거야 지금?"

"아. 부장님, 이거 보십쇼."

"으음? 이게 뭐야?"

"여기에다가 계좌를 보내면 10만원을 그냥 준답니다. 부장님도 해보십쇼."

"뭐? 진짜? 기다려봐..."

"아니, 이거 500만명 이상이 돈을 받아가면 마포대교를 폭발시킨다는데? 김대리, 이거 도의적으로 문제가 있는거 아닌가?"

"에이 부장님. 500만명이 뉘집 개 이름도 아니고, 설마 저녁 7시까지 500만명이나 보내겠습니까? 저희 한명쯤이야 받아봤자 티도 안날껍니다."

"그런가? 하긴, 500만명이 얼마나 많은데. 자네 말대로 우리쯤은 뭐... 그래! 나도 받겠네. 김대리는 그러면 이미 받은건가?"

"좋은생각입니다 부장님. 네, 저희 사원들은 이미 다 받았습니다."

"그래? 그럼 돈도 받았는데, 오늘 저녁은 회식이다! 하하하하하."

"아..."

***

"여보세요? 철수야. 왠일로 전화했니?"

[어 엄마. 엄마랑 아빠 계좌번호좀 보내봐, 아. 할머니랑 할아버지도.]

"으응? 왜? 너 또 이상한짓 할려고 그러지!"

[아니야. 지금 1인당 10만원씩 받을 수 있어서 그런거야. 빨리 알려줘.]

"너 사기당한거 아니야?"

[아니라니까! 빨리 알려줘봐.]

"얘는 원... 알았어."

그렇게 그녀는 자식에게 자신의 계좌를 포함한 가족의 계좌를 보냈고.

얼마뒤, 그녀에게 날아온 알림.

[김주희님 10만원 입금되셨습니다.]

"어머, 진짜네? 애가 용돈을 보냈나?"

깜짝 놀란 그녀가 은행 앱으로 확인을 해보자.

[(주)에고스쿼드]가 보낸 10만원이 입금되었다고 뜰 뿐이었다.

"에고스쿼드가 뭐야?"

그렇게 그녀뿐만이 아닌, 금액을 신청한 모든 사람들은 (주)에고스쿼드라는 이름을 머릿속에 넣게 되었다.

***

[어째서 한국인만 이 이벤트에 참여할 수 있는겁니까? 불공평하다. 외국인도 참여하게 해줬으면 좋겠다.]

[한국이 부러운건 처음이야. 거기 악당들은 돈을 뺐는게 아니라 준다니. 우리나라 악당들이 본 받을 필요가 있어.]

[그의 이름이 egostic이라고 했나? 이름과는 다르게 이기적이지 않은 친구인걸.]

[내 한국인 친구들이 벌써 자기가 돈을 받았다는걸 자랑하고 있어.]

전세계적으로 봤을때도 희귀한 이벤트의 발생에, 외신과 외국 커뮤니티도 한국에서 일어난 특별한 테러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이에 외국 커뮤니티의 반응을 확인한 유튜버들이 서둘러 국뽕티비를 제작하고 있을 무렵.

이 모든 사단을 벌인 에고스틱은, 다리 위에 고고히 앉아있었다.

추위에 떨면서.

"에이취."

마포대교 위쪽에 주탑에 앉아있던 나는, 기침을 터트렸다.

쓰읍, 요즘 날씨가 쌀쌀해지더니, 상공 높은곳에 있으니까 좀 춥다.

핫팩이라도 후딱 가져올까 생각을 해봤는데, 여기서 핫팩만지작 거리고 있는거 파파라치한테 찍히면 좀 추할 것 같단 말이지.

그런고로 걍 추위에 떨면서 입김이나 내봤다. 아니 지금 겨울이야? 왜 입김이 나오냐...

다리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서울 시내의 모습이 한눈에 보인다.

특히 눈에 띄는것은 다리 양 옆을 둘러싸고 있는 경찰차들의 모습.

아무도 이쪽으로 접근할 수 없게 막고있는 걸로 보인다.

그러면서도 그 누구도 다리를 걷지는 않는걸 보니, 내가 내건 협박이 유효했다고 할 수 있다.

스타더스는 어디 있을려나.

아마 다리 저편에서 보고 있지 않을까? 여차하면 와서 이 두 차를 구할 수 있게.

흠.

서울을 둘러보면, 뭐가 다른게 느껴진다.

내가 빙의하기 전의 서울이나 이 세계의 서울이나 거의 비슷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보면 보이는 조금씩 다른 모습.

예를 들어 저쪽. 저쪽에는 원래 커다란 건물이 있었는데 여기는 보이지 않는다. 이 다리도... 내 기억에 마포대교에는 무슨 자살방지 문구가 있지 않았었나? 그거 대신에 무슨 현수교처럼 꾸며져 있다. 왜지. 다리가 괴물에 의해 뽀개지는 모습의 극적인 효과를 노린건가.

하여튼 그 덕분에 앉을 곳이 생겼으니 나야 고맙지.

나는 다시 추위에 떨면서 허공이나 보며 멍 때리기 시작했다.

사실 남들 눈에나 멍때리는 걸로 보이는거고, 실제로는 가면으로 채팅창 보고 있는 거지만.

[가족 계좌 다 돌려서 60만원 받음ㅋㅋㅋ 개이득ㅋㅋㅋ[

[아 ㅅㅂ이거 1인당 하나만 되냐? 계좌 여러개면 여러번 받을 수 있을 줄 알고 다 신청했다가 하나빼고 빠꾸맞음]

[ㅋㅋㅋ그게 되겠냐고ㅋㅋㅋ]

[속보)정부가 에고스틱에게 계좌 보내는 사이트 차단 하려고 했지만 실패함]

[방송국도 해킹하는 놈인데 그거 하나 못막겠어]

[예끼,,,이놈들,,,그깟돈에,,,양심을,,,팔아먹었느냐!!,,,미친,,,섀끼덜,,,,]

[아재요 통장에 10만원 받은거 내려놓고 말해봐요]

그렇게 채팅창이나 보면서 시간을 때우다보니.

어느덧 4시간이나 지나있었다.

흠, 이쯤 됐으면 다시 한번 시작해 볼까?

나는 다시 카메라를 켰다.

남은 시간과 계좌를 보낼 사이트만 보여주던 영상이 다시 반전되고, 갑작스럽게 등장한 나의 모습.

그에 따라 자기들끼리 조용히 떠들던 채팅창도 다시금 활발해졌다.

[오 뭐임?]

[방송 다시 ONㅋㅋㅋㅋㅋㅋㅋ]

휴.

이쯤되서 한번 더 아가리를 털어봐야지.

"예, 예. 반갑습니다 여러분! 에고스틱이 다시한번 인사 드립니다. 다들 자신의 양심을 위해 10만원정도는 가볍게 받지 않고 계시죠?"

[크흠ㅋㅋㅋㅋㅋ]

[아ㅋㅋㅋㅋ 당연하지ㅋㅋㅋㅋㅋ]

[10만원 따위는 ㄹㅇ 필요없지ㅋㅋㅋ (필요함)]

[ㄹㅇ줘도 안받음ㅋㅋㅋㅋ(이미 받음)]

[이새끼들 괄호안에 속마음 적을거면 왜 입은 터는거냐ㅋㅋㅋㅋㅋ]

"시간도 거의 절반 가까이 지난 김에, 그리고 아직까지도 양심을 지키고 계신 분들을 위해, 특별한 이벤트를 해보려고 합니다."

그렇게 말함과 동시에, 나는 주탑에서 뛰어내려 바닥에 착지했다.

쿠웅-.

뛰어내린 충격으로 나풀거리는 망토.

그 망토들 틈사이에서, 나는 씨익 웃으며 카메라를 향해 말했다.

"이번 시간은, 차에 갇혀계신 사람들을 인터뷰 해보겠습니다."

"여러분들이 10만원을 받기 위해 거리낌없이 어찌되든간에 상관 쓰지 않은 이 분들. 이 분들도 누군가에겐 소중한 가장이고, 친구이며, 아들이고, 딸이겠지요."

"제게 거리낌없이 돈을 받아가시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못 느끼는 분들을 위해, 제가 특별히 준비해 봤습니다."

"이분들을 살릴지, 아니면 당장 당신들의 지갑에 10만원을 채울지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제일 가까이 있는 차에 다가가기 시작했다.

근데 말이야.

차에 탄 사람들까지 조작하지는 않아서, 누가 타고 있을지는 나도 전혀 모른다.

제발 방송사고만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나는 차에 다가갔다.

에이 그래도. 뭐 설마 이상한 사람이 타고 있겠어?

EP.55 인터뷰

다리가 무너지든 사람이 죽든 무지성으로 10만원을 일단 받아가는 대중들.

그들에게 경각심을 주고 죄책감을 자극하기 위한 특별 이벤트!

당신이 10만원을 받아가면 죽게 생긴 사람들과 인터뷰를 하겠습니다!

그 첫번째 대상인 차를 향해 나는 걸어갔다.

나를 따라오는 염동력으로 띄워진 카메라는, 이 모든 광경을 촬영하고 있었다.

좋아, 준비는 완벽하다. 아마.

"똑똑. 창문 좀 열어주실래요?"

내가 똑 똑 창문을 두들기자, 스르륵 내려가는 창문.

사라진 창문 사이로 보이는 것은, 건장해보이는 20대 남성이었다.

휴, 다행히 막 이상한 사람은 아니었다. 여기에 막 뜬금없이 북해빙녀 이런 애 타고있어봐, 일이 좀 곤란해지거든. 다행이네.

"아이고, 안녕하세요! 수고가 많으십니다. 혹시 자기소개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마치 레크리에이션 사회자처럼 자연스럽게 진행을 하는 나.

이런데서 괜히 위협하고 겁주고 그러면 괜히 분위기만 싸해진다. 구렁이 담넘어가듯 자연스럽게 진행하는 포인트.

다행히도, 남자는 내 말을 받고 대답해주었다.

"예, 안녕하세요. 최영진이라고 합니다."

당차게 대답한 남성.

어라... 근데.

왠지 좀 당당하다?

테러의 한복판에 휘말려 죽네 사네 하는 분위기에 어올리지 않는 모습.

심지어 자신을 죽일수도 있는 테러범이 눈앞에 있는데도, 몸에 떨림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눈빛에서 겁을 하나도 먹지 않았다는게 느껴진다.

아니 오히려 어째, 눈이 똘망똘망한 모습?

나는 이점을 콕찝어 질문해봤다.

신기하자너.

"네 최영진씨. 반갑습니다. 아니, 그런데 영진씨, 지금 겁을 왜인지 하나도 먹지 않으신거 같네요? 좀 불안하고 그런거 없으십니까?"

"하하. 불안이요?"

마치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는 양, 허허 웃는 남자.

그러더니 나의 눈을 똑바로 마주하고는, 눈을 빛내며 또박또박 말했다.

"불안할게 뭐있습니까. 500만명이나 돈을 받지 않는 이상, 이 다리와 저는 모두 무사한거 아닙니까? 저는 믿습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을. 제가 사랑하는 조국은, 약간의 자본을 위해 인간성을 포기하지 않는, 끈끈한 한민족의 정으로 묶인 사이입니다. 제가 죽을일이 없는데, 어째서 겁을 먹어야합니까?"

맑은 눈으로 대답하는 남성.

으윽, 그의 눈이.

순수해! 너무 순수해!

막 눈에서 후광을 뿜는거 같아, 그만해!

이게 무슨 인간찬가인가 뭔가냐?

나는 눈을 질끔 감았다.

아니, 전생이면 몰라도 이 대한민국 사람들은 전혀 그럴 분위기가 아닌 것 같은데...

뭔가 이 테러의 기획자임과 동시에 같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써 양심이 쿡쿡 쑤여왔다.

세상에 이런 순수한 사람이 있다니.

그리고 양심의 통증을 느끼는건, 채팅창을 보니 나 뿐만이 아닌 것 같았다.

[아ㅋㅋ]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어라... 와티시, 어째서 가슴에 통증이?]

[내 마음속 삼각형이 막 저를 쿡쿡 찌르는데 이거 암인가요?]

[아니요. 그건 양심통입니다. 인간이 되어가고 있다는 소리죠.]

[10만원...이미 받았다고...]

[받을까말까 고민했는데 그냥 안받기로 했다]

[ㅅㅂ안받는다 그깟 푼돈 사람 목숨에 비할바 못되지]

[아니 왜 안받는거야 너네가 그러니까 받은 내가 나쁜놈 같잖아.]

[팩트) 받은 놈들은 나쁜 놈들이 맞다]

[미안합니다...]

으음, 그래도 분위기는 나쁘진 않다.

내가 원래 기대하던건 막 죽을까봐 벌벌 떨고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이제 그걸 본 국민들이 죄책감을 가지는 그림을 기대했는데...

뭐, 어쨌든 둘 다 결론은 돈을 받지 않겠다는 거니까 상관 없지 않을까?

솔직히 말해서, 나는 사람들이 돈을 안받아가면 안받아갈수록 이득이다.

왜냐고? 어차피 500만명이 넘든 안넘든 그냥 그냥 500만명 넘었다고 뻥치고 다리 폭발시킬꺼거든.

...

뭐.

어쩔 수 없다. 인생을 도박에 맡길 수는 없는 법.

그러면 500만명 안넘었다고 머쓱하게 '아... 400만명밖에 신청 안하셨네요? 그럼 전 물러나겠습니다...'라고 할수는 없잖어! 이 다리 안 폭파시키면 세계... 그러니까 한국 사회가 다함께 피폐물로 돌입한다. 이건 일단 무너트리고 봐야한다고.

그리고 뭐 내가 500만명 넘었다고 한들 누가 증명하라고 할 수 있을까? 나보고 돈받은 사람 계좌 명단 까보라 할꺼야? 그럼 돈 받은 몇백만명이 나를 지켜줄거다. 정확히는 자신을 지키려 하는거겠지만은.

그리고 사실, 돈이 좀 아깝다.

물론 내가 상상도 못할 정도의 돈을 가지고 있는건 맞다. 어느정도냐면, 쉽게 말해서 한 나라 1년 예산정도? 이 세계에 떨어진 이후 방황하다가 정신차리고 서은이 만나기 전까지는 하루종일 원작 지식으로 돈벌고 살았다. 대충 미국 부패 기업에서 돈 뜯고, 다른 나라 빌런이 못쓰고 죽어 숨겨져버린 돈도 찾아서 쓰고... 물론 나중에는 서은이의 도움이 좀 있었지만, 어쨌든.

돈이 많기는 많은데, 한번에 5000억 이상 태우는건 좀 부담이 된다.

나중가면 자본이 꽤나 중요해지는데, 여기에다가 좀 너무 많이 태우는 것 같기도..?

매크로로 열심히 빠져나가는 돈만 해도 지금 1분당 한 몇십억은 빠져나가고 있다. 너무 막나갔나봐.

윽. 서은이가 왜 이리 돈을 물쓰듯 쓰냐며 잔소리한게 아직도 귀에 이명처럼 울린다. 하율이는 손가락으로 몇천조가 얼마나 큰 숫자인지 세보다가 기절했었지. 음.

어쨌든, 결론은 그래서 사람들이 적당히 돈을 받아도 된다는거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다 합쳐서 백만명도 안넘을 줄 알았다. 아니, 기간도 짧게 줬는데 백만명이나 넘기면 다행이지.

그런데 이 세계 사람들은 언제나 그렇듯 내 기대를 가뿐히 뛰어넘었다.

[오빠, 벌써 300만명 이상이 돈 받아갔는데요?]

[....뭐라고?]

나는 아까 서은이에게 온 연락을 떠올렸다.

아니 사람들아! 진정 양심을 저기 한강 밑바닥에 던졌단 말입니까?

대체 왜 이럴때만 열심인거야...

하여튼간에 이게 내가 최영진군의 순수한 말에 가슴이 아팠던 이유다.

미안! 너가 그렇게 믿고있는 대한민국 국민들... 이미 배신하고 돈 냥냥하게 타갔더라....!!

라고 지금 내 눈앞에서 믿음과 신뢰로 눈을 반짝이고 있는 그에게 말해 줄 수는 없었다.

차마, 못하겠어...

"크흠. 알겠습니다. 대한민국을 믿으시는 최영진군의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끝으로 할 말 계십니까?"

내가 그렇게 말하자, 카메라를 보며 굳건한 믿음로 말하는 그.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저는 여러분을 믿습니다. 제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실거죠? 늘 사랑합니다. 한국 파이팅!"

이제는 카메라를 보며 파이팅 포즈까지 취하는 그.

음, 어질어질하군.

도망치자.

"네! 잘 들었습니다. 다음 분으로 그럼 가볼까요?"

내가 그렇게 황급히 철수하려던 그때.

차안에 있던 그가 큰소리로 외쳤다.

"잠깐!!!"

"예?"

갑자기 나를 불러세우는 그.

뭐야?

"왜 그러시죠?"

"빌런양반. 에고스틱이라고 했습니까?"

"네, 근데요?"

"제가 지금 4시간째 굶고 있습니다. 듣자하니 앞으로 4시간 더 굶게 생겼는데, 혹시 먹을거는 없습니까?"

이제는 당당한 표정으로 내게 먹을걸 요구하는 그.

나... 진짜 이런 캐릭터는 태어나서 처음인걸?

근데 더 웃긴건.

생각해보니 내가 먹을걸 나눠줄려고 가져오기는 했다. 까먹고 있었네.

"아, 잠시만요."

나는 도로위 어딘가에 놔둔 보자기로 순간이동했다.

그래, 여깄네.

총이랑 최루탄이랑 마이크랑 기타등등 모든 내게 필요한게 다 담겨있는 에고-보자기.

그걸 들고 나는 다시 차 앞으로 순간이동했다.

"잠시만요, 아, 여깄다. 크림빵 좀 드세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싱글벙글 웃으며 빵을 받아가는 남자.

참 넉살 좋다.

[이게 뭐야ㅋㅋㅋㅋㅋㅋ]

[테러범한테 밥 좀 달라는 인질과 달라하니까 진짜로 준비해둔 빵 건네주는 테러범ㅋㅋㅋ 이거맞냐?]

[어질어질하네 ㅅㅂㅋㅋㅋㅋㅋ]

[이게 빌런이냐고ㅋㅋㅋㅋ]

[아무리봐도 망고스틱은 취미로 빌런 짓 하는 히어로가 맞다]

[ㄹㅇ다리 부수려 하는것도 다 깊은 뜻이 있는거라고ㅋㅋㅋ]

[밥 잘 사주는 옆집 빌런ㅋㅋㅋ]

어쨌든 이제는 진짜로 이 차로부터 볼일은 끝났다.

나는 다음 차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어휴... 뭐 대화 별로 나누지도 않았는데 기가 빨린다 기가 빨려.

"네, 이제 다음 인질분을 만나러 가겠습니다. 이번에는 어떤분이 저를 반겨줄지, 저도 기대가 되네요."

나는 그렇게 카메라를 향해 말하며, 다음 자동차로 걸어갔다.

이번엔 제발 정상적인 사람이었으면 좋겠는데.

좀 어? 겁내하는 사람들 말이야. 테러리스트한테 인질로 붙잡혀서 죽네 사네 하고 있으면 좀 긴장하고 쫄고, 그래야 하는거 아닐까?

그렇게 희망을 품고 나는 차로 걸어갔다.

아까 전 남자 혼자 덩그라니 타고있던 승용차와는 다르게 이번 차는 커다란 SUV.

오, 살짝 희망이 더 생긴다.

저기 타고있는건 어디로 놀러가던 일가족이 아닐까? 자신도 공포에 떨면서 자식을 지키려 드는 부모... 사람들의 죄책감을 자극하기 딱 좋다.

제발, 나 돈 좀 아끼자.

그러나 SUV로 다가갈수록 나의 희망은 점점 부질없다는걸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차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희미하게 들리는 음악소리.

그것도 뭔가 신명나는 락음악이었다.

...뭔가 아주 불길한데.

그러나 나는 프로, 일단 차문을 두들기고 봤다.

"똑똑. 안녕하세요. 창문 좀 내려주시겠어요?"

내가 두들기기가 무섭게, 창문이 드르륵 내려왔고.

그와 동시에 내 귀를 시끄럽게 때리는 메탈 사운드와.

"꺄아아아아악!!! 망고스틱!!!!"

"와어떡해찐실물이야미쳤다정말."

"망고스틱 팬이에요!!!!"

"망고! 망고! 망고! 망고!"

찢어지는 함성을 지르는 여대생들이었다.

...돌겠네, 진짜.

EP.56 팬

자, 생각해보자.

빌런이 테러를 일으켰다.

근데 그 빌런이 인질로 잡은 사람들이, 그 빌런의 팬일 확률은 대체 얼마일까?

대체 얼마일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지금 그 확률을 지금 내가 뚫은 것같다.

"망고스티이이익!!! 팬이에요!!!!"

창문을 내리고 시끄럽게 고함을 지르는 여대생들.

대체 왜 나한테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말인가.

내가 원한건 그냥 공포로 떨고있는 평범한 일가족이었는데...

아, 이들도 떨고있기는 하다.

근데 그 떨림이 전율에 의한 떨림인 것 같아서 문제지...

"하하, 이런 상황은 예상하지 못했네요..."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여전히 차 안에서 흘러나오는 메탈 음악.

그와 동시에 흥분한 이들의 시선이 나에게 꽂힌다. 이게... 인질?

[진짜 개웃기네ㅋㅋㅋㅋㅋㅋ]

[인질들이 내 팬이었던 사건에 대하여]

[어떻게 면상에 대고 망고스틱을 박아버리냐ㅋㅋㅋ 진짜 깡보소]

[진짜네 지금 쟤 처음으로 망고스틱이라는 말 들어본거 아니냐?]

[자기도 에플망고라고 예전에 말했던거 보면 별명 알기는 알겠지ㅋㅋㅋ]

[근데 저 여자애들 깡 좋네 전국민 앞에서 빌런 팬 커밍아웃ㄷㄷ 얼굴까고 대학 과잠 있고 당당히 박아버리네]

[진짜 광기다]

채팅창도 개판 그자체.

아니야, 이런 상황일수록 정신을 차려야한다.

이정도는 충분히 예상범위안에 있던 일. 중심을 잡고 스무스하게 넘어가면 문제없다.

나는 다시 표정을 관리하고, 웃으며 입을 열었다.

"예, 예. 안녕하십니까. 에고스틱입니다. 다들 굉장히 엄... 즐거워보이시는군요. 혹시 자기소개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네!!!"

활기차게 답변하는 그녀들.

그래, 그래.

밝은건 좋은거지.

내 인사에, 내가 서있는 창가쪽에 앉은 애가 제일 먼저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연희대학교에서 히어로와 빌런에 관한 동아리 '베리타스'부원들입니다!"

밝은 목소리로 힘차게 대답하는 그녀.

아니, 그 대학이랑 동아리 이름까지는 안물어봤어.Tmi야.

뭔가 아이돌들이 가요무대에 처음 인사 올릴때처럼 카메라를 향해 웃으며 인사하는 그들.

....이거 분명히 내가 다리에 운없게 잡힌 인질들 인터뷰하는거 맞지? 뮤직뱅크 사회보고 있는거 아니지?

"저는 이 동아리의 부장인 김연화라고 합니다."

그러며 저 뒤에 있는 애들도 차례차례 자신의 이름을 밝히는 그녀들.

그들중 뒤에 앉은 한명이 갑자기 큰 소리로 말했다.

"김연화 쟤가 오빠 팬카페 매니저에요!!!"

...대체 누가 너 오빠냐?

근데 그와 별개로, 그녀가 한 말은 상당히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제 팬카페 매니저요?"

나는 그 말을 듣고 내 앞에 앉아있는 그녀를 다시 보았다.

살짝 부끄러운듯 얼굴을 붉히는 그녀.

갈색 단발 한쪽을 손가락으로 꼬며, 그녀는 다시 입을 열었다.

"네. 혹시 망고단... 이라고 알고 계시나요? 망고..아니, 에고스틱님을 좋아하는 팬들입니다. 참고로 저를 포함한 여기있는 모두가 전부 망고단이에요!."

자랑스럽다는듯 가슴을 피고 엣헴-거리며 말을 하는 그녀.

아...

제발 그만해.

내 손발이 오그라들잖아.

누가 당사자 앞에서 이러냐고...

그러나 나는, 나는 프로. 빌런계의 프로.

프로...인 나는 흔들리지 않고 산뜻하게 웃으며 대답해줬다.

"그러시군요. 저를 좋아하는 분들이 계시다니, 참으로 영광입니다. 그런데, 엄...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데, 혹시 제가 빌런이라는 사실은 알고 계신가요?"

나는 여기서 그녀의 허를 찔렀다.

아니 내 지지자라 고맙기는 한데.

이거 진짜 내가 빌런이라는걸 까먹고 있는건가?

난 이 망고단이라는 놈들이 그냥 인터넷상에서만 돌아다니는 컨셉러들인줄 알았는데, 지금 막 생각이 바뀐 참이다.

테러의 현장에 인질로 잡혔음에도 테러범을 보며 눈을 반짝거리는거는 컨셉이라고 할 수 없다.

이건 그냥 광기잖아...

아니 대체 멀쩡하게 생기고 인기도 많을것 같이 생긴 사람이 왜 이런짓을?

내 순수한 의문이 담긴 질문에, 그녀는 화들짝 놀란다는 듯 의아한 목소리로 내게 되물었다.

"네? 오빠 S급 히어로 애플망고 아니었어요?"

나는 그만 그걸 듣고 정신을 잃을뻔했다.

아니, 나 더이상은 못듣겠어.

항마력이 딸려. 제발 그만해.

"네!!! 잘 들었습니다. 굉장히 재밌는 얘기네요. 끝으로 한마디 해주시겠습니까?"

나는 황급히 엔딩멘트를 날렸다.

분명 내 목적은 무지성으로 10만원을 받고 받을려는 대중들에게 죄책감을 심어주는거였는데, 어째 그것과는 몆천광년 떨어진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건 그냥 빠르게 끝내는게 맞다.

내가 그렇게 이제 끝내겠다는 제스쳐를 취하자, 뒤에서 '왜 벌써 끝내요~'라며 칭얼거리는 그녀들.

음. 이 세계에 떨어지고 나서 지금이 제일 고통스러운 것 같다. 진짜 돌아버리겠네.

물론 그런 심정을 겉으로 표출하지는 않고, 그냥 싱긋 웃고만 있긴 하다.

다행이다. 가면이 내 얼굴의 절반을 가려서.

가면 뒤쪽의 입고리가 파르르 떨리고 있거든.

뒤에서 이상한 말만 날려대는 나머지 애들은 제쳐두고, 내 카페 매니저라는 그녀는 내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하더니 뭔갈 깨달았다는 듯 눈을 반짝였다.

"아!"

그러더니 자신의 앞에있는 가방을 뒤적이는 그녀.

그걸 보고 뒤에 있는 다른 여자들도 깨달았다는 듯 가방을 다함께 뒤적였다. 뭐야, 뭔데.

그렇게 그녀들이 가방에서 꺼낸건.

노트?

"사인 좀 해주세요!"

눈을 빛내며 나에게 노트를 건내는 그녀들.

나는 결국 포커페이스에 실패하고, 이마를 탁 짚으며 한숨을 쉬고 말았다.

제발...제발 그만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에고스틱 진심으로 황당해하는게 보이누ㅋㅋㅋ]

[진짜 무친련들인가ㅋㅋㅋㅋㅋㅋ]

[어질어질하다 그죠?]

[그러니까 이게 지금 테러범과 인질의 대화라는 말이죠?]

[아니 사인은 진짜 왜 해주는데ㅋㅋㅋㅋㅋ]

[망고좌 한숨쉬면서 부탁하는건 다해주네ㅋㅋㅋㅋ]

[이게 빌런이 맞냐고ㅋㅋㅋㅋ]

결국 사인까지 해줬다.

그냥 에고스틱 영어로 휘갈겨줬다. 그냥 막 썼는데도 참 좋아하더라...

마지막으로 얘네들한테도 딸기 크림빵 남은거 몇개씩 주는걸 끝으로 인터뷰는 끝났다.

그리고 창문을 닫으면서 그녀들이 외친 한마디.

"아! 그리고 10만원은 잘받았어요! 감사해요!"

씁.

이번 테러는 걍 망했군.

***

어쨌든 우여곡절끝에 약속한 시간이 종료되었다.

인터뷰 이후로 꺼놓았던 카메라를 다시 키고.

마포대교 상공에서, 나는 마이크를 키고 발표했다.

내 뒤로 보이는것은 푸른 하늘이 아닌, 커다란 숫자 전광판.

컴퓨터 합성 기술로 서은이가 어떻게 띄워났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메타버스?

"네 여러분. 약속한 저녁 7시가 되었습니다. 제가 선보인 대국민 참여형 테러. 10만원이냐? 다리와 다른 이의 목숨이냐.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인지 알아보기 위해 준비한 이번 테러의 결과를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두근두근]

[아 설마 500만명 넘겼겠냐고ㅋㅋㅋ]

[ㄹㅇ500만명이 잣으로 보이나? 아무 통보도 없이 이 짧은 시간안에 절대 안됨ㅋㅋㅋㅋ]

[자 드가자~ 자 드가자~ 자 드가자~]

[영진게이를 실망시킬 수는 없다. 대한민국의 힘 보여주자!!!]

[연화레즈는 실망 안할것같은데]

[ㅅㅂ 마포대교 무너지면 나 출근 ㅈ된다고 안돼]

[지나가던 공무원입니다. 두손 꼭 모으고 안터지길 빌고 있습니다. 터지면 잣됩니다.]

"결과, 보여주세요! 결과는!!!"

내 뒤에 보이는 전광판의 숫자가 차르륵 오르기 시작했다.

일, 십, 백, 천, 만... 가파르게 오르는 전광판의 숫자.

"결과느은!!!!"

나는 이제 거의 함성을 지르고 있었다.

미친듯이 오르는 숫자! 그리고 나를 보고있을 사람들의 영상마저 점멸하기 시작했다! 깜빡이는 화면! 깜빡이는 내모습!! 번쩍거리는 숫자!!!

"결과느으으은!!!!!"

이제는 거의 화면이 보이지도 않을 지경!!!

그렇게 나를 비추던 화면은 갑자기, Egostic이라고 적혀있는 하얀 화면으로 변하더니.

펑. 주위에 폭죽이 터지며 다시 나를 비추었다.

내 뒤에 있는 커다란 전광판에 적힌 숫자는.

[7,523,660]

"칠백!!! 오십!!! 이만명이!!! 10만원을 받아가셨습니다!!!!!"

나는 함성을 질렀다.

와! 하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함성소리. 물론 bgm이다.

짝짝짝. 나는 박수를 치며 답했다.

"대단합니다!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저는 솔직히 오백만도 겨우 넘길거라 생각했는데, 칠백만이라니! 상상 그 이상이네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활짝 웃고.

마치 만세를 하듯, 팔을 활짝 벌렸다.

"이기적인 여러분, 이 폭발은 여러분을 위한 폭발입니다. 모두 축하드립니다!!!"

그렇게 팔을 활짝 벌리고 있는 내 뒤로.

전광판은 어느세 사라졌고.

뒤에 배경처럼 보이는 다리는.

콰아아아아아앙-.

엄청난 폭발과 함께 붕괴하기 시작했다.

폭발은... 예술이다!

"지금까지 저 에고스틱의 테러에 참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 뵙겠습니다!! 그때까지 안녕!!!"

나는 카메라를 향해 씨익 웃으며 손을 흔들어줬고.

그렇게 손까지 흔든 뒤에는, 카메라를 꺼주었다.

휴, 오늘도 무사히 촬영 완료.

실시간 스트리밍을 마친 나는, 허공에서 땀을 닦았다.

와, 여기 한 열시간 있었어. 무슨 마라톤같은 테러였다. 힘들다고...

상공에 둥둥 떠있는 나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쿠구궁하고 굉장한 소리를 내며 무너지고 있는 다리.

그리고 저 멀리서,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는 한 여자.

우리 스타더스.

참으로 오랜만이구나.

붉은색의 히어로 슈트를 입고, 금발을 휘날리며 날아오는 그녀의 모습은 참말로 멋졌다.

마지막으로 본게 그 축제? 거기에서니까 정말 예전이네. 진짜 오랜만에 보는 거구나.

오늘 보면 또 언제 볼지 모르는데, 구경이나 하자.

나는 그렇게 바로 도망가지 않고, 느긋하게 허공에 염동력으로 둥둥 떠며 구경했다. 뭔가 내가 짬때린걸 그녀가 수습하는 모양세라 좀 미안하기는 한데... 뭐 좋은게 좋은거 아니겠어?

진짜 재빨리 날아와, 무너지고 있는 다리 반대편에서 떨어질려하는 SUV를 한손으로 드는 그녀의 모습.

와, 기차도 비행기도 막더니, 이제는 차를 한손으로 들어?

...아무리 생각해도 원작보다 급격히 빠르게 성장시킨거 같다. 뭐 좋은게 좋은거겠지만은.

그렇게 SUV를 한 손에 들고, 그녀는 다시 내 쪽에 있는 승용차를 향해 날아왔다.

근데 문제는, SUV를 이미 들고 날아오는 중이라 그런지 속도가 좀 느리다...?

그리고 어라? 지금 저 차 그대로 한강에 다이빙하게 생겼는데?

무너지는 다리위에 어떻게 같이 오손도손 무너지는 그 최영진군이었나 그가 탄 차는, 다리의 무너진 아스팔트 사이로 빠지려 하고 있었다. 스타더스가 오기도 전에.

그녀가 거의 코앞까지 왔지만, 이미 저 차는 결국 무너진 다리 사이로 쏘옥 빠지고.

"에이씨."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손을 뻗어, 떨어지는 차를 염동력을 한계까지 끌어다 써 살짝 공중에 고정했다.

내가 고정한 시간은, 아주 짧은 일 이초의 시간.

그러나 그 시간은 스타더스가 구해내기에 충분한 시간이었고.

끝내 그녀는 시간안에 떨어지던 자동차 모두를 손에 잡을 수 있었다.

"씹... 헉. 헉."

아 시발 죽겠네.

급격한 염동력 사용으로 온 몸에 힘이 빠졌다.

하루야, 신하루야. 왜 늦고 그러니... 쟤 죽을뻔했잖아.

빌런이 자기가 죽이려고 한 인질을 구하는 모습이라니, 누가 봤으면 아주 웃길 뻔했다.

그래도.

스타더스의 민간인 전원 구출이라는 명성에 흠집이 갈 수는 없잖아?

어쩔 수 없는거였다... 난 어쩔 수 없었다고...

그리고 두 차를 든 스타더스가 순간, 내 쪽을 향해 얼굴을 돌렸다.

갑자기 딱 마주친 눈. 이런 시바, 들킨거는 아니겠지?

그녀와 눈을 마주치자 마자 나는, 망토를 휘날리며 등 뒤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대로 바로 순간이동해서 현장을 빠져나갔다.

나는 아무것도 안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거라고...!

***

스타더스. 그녀는 무너지는 다리를 배경으로 손에 차를 든 채, 생각에 빠졌다.

에고스틱. 그가 있던 쪽에서 떨어지던 차.

자신이 잡을 틈도 없이, 그대로 떨어지려는 듯 보였으나.

'방금, 분명...?'

잠깐 떨어지다가 멈칫- 한듯한...

EP.57 의심에서 확신으로

[지난 수요일, 빌런 에고스틱에 의해 붕괴한 마포대교의 처리 작업이 거의 완료되었습니다. 마포대교 전체가 기둥부터 완전히 부서진 이 테러는, A급 영웅 스타더스에 의해 사상자는 아무도 나오지 않았는데요.]

[전문가들은 다리를 다시 짓기까지 몇년은 훌쩍 걸릴것같다는 의견을 내놨습니다. 한편 서울 시민들은 다리 붕괴로 인하여 교통체증을 겪고 있다며 불편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

신하루.

누군가 신하루한테 그녀의 숙적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그녀는 주저없이 에고스틱이라고 답할 것이다.

사실 에고스틱이 그녀의 아치에너미가 된 이유는 실로 단순하다.

그냥 에고스틱이 늘 스타더스를 지명했기 때문에.

에고스틱.

솔직한 말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있는 빌런을 꼽으라고 한다면 거의 다 에고스틱을 고를 것이다.

그가 본격적으로 활동을 한 시기를 꼽자면 불과 1년도 안된다. 그렇다. 그는 1년만에, 지난 수십년간의 역사가 있던 다른 빌런들을 제치고 당당히 1위가 된 것이다. 에고스틱을 모르면 간첩일 정도로.

사실 따지고보면 당연한 일이기는 하다.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일으킨 모든 테러 활동을 지상파 3사로 매번 생중계 했으니.

물론 그가 유명한 이유가 그것일 뿐이고, 인기있는 이유를 말하라고 한다면 정말 수없이 많겠지만...

결국 중요한건 그가 유명하고 인기가 많다는 것.

그리고 그로 인하여, 그의 반대급부인 스타더스의 인기또한 오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사실, 인기도 인지도도 없는 B급 히어로들은 너도나도 전부 자신이 에고스틱과 싸우기를 희망한다.

뭐, 어떻게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그의 적수가 돼서 맞서게 되면 그대로 전국에 생중계로 그 모습이 보여지는 만큼, 한방에 자신을 모두에게 알릴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 뭐든간에 어떤 유명한 것의 라이벌이 되면, 그 인기를 어느정도 공유받을 수 있는 법이다.

그러나, 애석하게 그런 기회는 그들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에고스틱은 매 테러에서 모두, 자신을 막은 인물로 스타더스를 지명했기 때문이다.

에고스틱의 유별난 스타더스 지목은 사실 꽤나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애초에 그가 최초로 저지른 범행인 두 빌런 암살에서 모두 스타더스를 지명했었으니.

범행현장에 '스타더스에게.' 라고 남겨놓은 그. 마치 빌런을 선물로 잡아줬다는 의미를 내포하는걸로 보이는 메세지이다.

그리고 그 뒤에 그가 저지른 테러.

배와 기차에서 그는 자신의 적수로 스타더스를 지명했다.

이 두 사건에서 스타더스는 각각 연설과 무력으로 그의 테러를 저지하였고, 이로 인하여 그녀의 인기또한 크게 뛰었었다.

이런 일들로 인하여 에고스틱과 스타더스의 관계를 떠들어대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아졌다. 심지어 열애설도 나왔을 정도이니... 아직도 에고스틱이 기차를 겨우 막아선 채 쓰러진 스타더스의 눈을 감겨주고 떠나는 영상이 인기동영상으로 등재되어 있다.

그리고 여기까지가 세간에 알려진 것.

그리고 스타더스 자신은, 이보다 더 많은걸 알고있다.

"..."

그는 그녀를 알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그러니까, 자신의 정체. 스타더스가 아닌 신하루라는걸.

자신이 갔던 축제에서 벌어진 테러.

협회에 들려 인식저해를 받기에는 늦어, 이대로 얼굴노출을 각오하고 나서려 할때.

그가 갑자기 나타나 테러를 진압했다.

그냥 저 빌런이 자신을 기분나쁘게 해서라는, 얼토당치도 않은 이유로.

그래, 거기까지는 우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모르는, 신하루 그녀만 아는것.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게 그가 속삭였던 말.

앞으로는 얼굴을 노출하고 나설 생각은 하지말라고.

인생이 고달퍼질테니.

그말을 듣자마자 그녀가 가지게 된 의문.

대체 자신이 얼굴을 노출하려고 한건지 어떻게 알았다는 말인가.

자신이 거기 있다는걸 안건가? 그래서 나선건가? 자신에게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억측이다. 라고 그녀는 그때 생각했다.

그러나 이후 그가 한 일.

비행기 테러를 일으켜, 자신이 추락하는 비행기를 지켜만보고 있을 때.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 떨어지는 비행기를 구하라고 한 일.

거기에 그의 평소 행적도... 사상자 없는 테러, 다른 위험한 빌런들 암살, 다른 신분으로 테러 진압등이다.

그렇게 이런 일들이 맞물리며 그녀는 의심을 하게 된 것이다.

에고스틱. 그가 과연 단순히 빌런이 맞는가?

이런 저런 상념에 휩싸인 그녀는, 결국 결심했다.

에고스틱 그놈이 다음 테러를 일으키면, 그때는 꼭 놈이 노리는 바를 알아내겠다고.

그런데 문제는 그가 테러를 4개월동안 일으키지 않고 사라졌다는거다.

그리고 그렇게 기다리는 시간만큼, 그녀의 의구심은 점점 커져만갔다. 마치 집에서 나왔는데 나오기 전에 가스를 잠갔는지 확신이 안들때 느끼는, 그런 찝찝한 기분.

그렇게 그녀가 점점 더 오래 에고스틱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고, 마침내 그가 언제 등장하나 하고 에고스틱 팬카페까지 들여다보게 되었을 때.

드디어 그가 왔다. 네번째 테러로.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그녀는 슈트를 입고 협회로 바로 날아갔다.

지난 3번의 테러에서 그녀 자신을 불렀으니, 아마 다음번 테러에서도 부를거라 확신하며 말이다.

그러나.

그런 그녀의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히어로들이 접근하면 바로 다리를 폭파시킬꺼라고 경고하며, 에고스틱이 벌인것은 대중을 대상으로 한 일종의 사회실험.

무슨 십만원을 나눠준다는둥 그러는 그의 말.

신하루는 그걸 듣고, 그의 첫 테러가 연상됐다.

인간이 이기적인 어쩌구 저쩌구...

그래, 그래도 첫테러 그때는 자신보고 무슨 연설을 하라고 했었다. 이번에도 그러지 않을까?라고 그녀는 추측했으나.

그런건 없었다. 그는 그저 다리 위에서 그의 팬이라는 사람과 시시덕거리고 놀 뿐, 스타더스 자신은 1도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나쁜놈.

자신은 그를 신경쓰며 하루 하루를 기다리며 보냈는데, 정작 그는 그녀를 전혀 신경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자신을 이렇게 의혹의 늪에 빠지게 하고서는, 나몰라라 하는 모습.

그러더니 결국에는 다리를 폭발시켰다.

뭐, 그건 그녀가 예상했다. 에고스틱 이놈은 자기가 하고싶은대로 하는 놈이니.

그렇게 미리 그가 예고한 저녁 7시에 마포대교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그녀는, 다리가 폭발하자 마자 앞에서 바로 출동했다. 그녀는 히어로인 만큼, 제일 중요한건 결국 사람을 구하는 일이기에.

허공에 떠서 자신을 지켜보던 에고스틱.

하. 지금까지는 뭐 아는척도 안하더니 이제야 자신을 보는건가.

뭔가 그가 벌인 사고를 자신이 수습하는 모양새라 심히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그녀는 해야할 일을 했다.

그렇게 첫번째 차를 구하고 두번째 차를 구하러 날아가던 순간.

그녀는 깨달았다.

저건 못구한다고.

코앞, 바로 코앞까지 다가가는데 성공한 그녀였으나.

손을 뻗는 순간 직감적으로 느낀것이다. 딱 한걸음 정도가 부족하다고.

그녀에게 닥치는 절망감.

그러나 그순간.

그녀의 손끝에서 떨어지던 차가, 살짝 멈추었고.

닿을 수 없던것처럼 보이던 떨어지는 자동차를, 그녀는 구하는데 성공했다.

순간 그녀 자신이 잘 못 본것인가 생각했지만.

진짜로, 그녀의 앞에서 잠깐동안 차가 떨어지는 것을 멈춘것만 같았다.

그리고 여기서 그런 일을 할 수 있는건 단 한명뿐...

양 팔에 차를 들고있던 그녀는, 위로 고개를 확 들어보였다.

그렇게 그녀가 본 모습은, 이쪽을 보며 팔을 아래로 내리고있던 에고스틱.

자신과 눈이 마주친 그는, 마치 아무일도 없었다는듯 고개를 돌려, 망토로 자신의 몸을 가린 채 그대로 사라졌다. 순간이동을 해서.

....눈까지 마주쳐놓고, 그 타이밍에 그렇게 갑자기 황급히 가버리면 더 이상하다는걸 모르는걸까.

그렇게 그녀는, 이번에는 거의 확신을 할 수밖에 없었다.

쟤, 사실 그냥 악당 아닌거 아니야...?

***

물론, 그런 성급한 추측은 굉장히 위험했다.

일단 에고스틱은 기물파괴와 사람들에게 단체로 위협을 조장하는 대규모 테러만 4번 일으킨 빌런이니까. 비록 우연히 사상자가 없었을 뿐.

...물론, 지금와서 생각하기에는 우연인지 아니면 에고스틱 그가 전부 의도한 것인지도 헷갈리지만. 어쨌든.

중요한건 이걸 그녀 혼자만이 생각하기에는 굉장히 위험하다는거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그녀가 빌런을 과소평가한 것이되어 나중에 큰 문제로 이어질 수 있으니.

그러니 그녀는 이를 상담할 사람이 필요했다.

자신의 비밀을 알고, 에고스틱에 대해서도 상의할 수 있는 친구.

그리고 그러한 친구는 그녀에게 단 한명밖에 없었다.

같은 A급 히어로이자, 어릴적부터 자매처럼 같이 자라온 친구 이설아. 부산쪽을 담당하는 그녀 아이시클.

늦은 밤, 그들은 사람이 없는 카페에 앉아있었다.

상담할거리가 있다는 자신의 말에, 섀도우워커행 순간이동을 타고 부산에서 서울까지 온 이설아.

카페를 통째로 대실 한 둘은, 야경이 살짝 창문으로 보이는 2층에서 앉아있었다.

조용히 녹차를 홀짝이며 신하루 자신의 말을 들어주는 설아.

그런 그녀에게, 하루는 자신의 추측을 털어놓았다.

에고스틱의 사상자는 없던 테러들.

협회의 기록으로 알아낸, 에고스틱이 죽인 빌런들은 전부 막대한 위험성을 지녔던 이들이라는 것.

그리고 그가 한 2번의 다른 테러 진압.

거기에 아직까지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비행기 테러때 그에게 온 전화와 이번에 떨어지던 자동차를 그가 자신이 잡을 수 있도록 멈춘 일까지.

전부 다 말해주었다.

그렇게 한참에 걸쳐 신하루 그녀가 한 이야기를 차를 마시며 조용히 들어주던 설아.

그렇게 모든 이야기가 끝나자, 설아는 마침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들고있던 차를 내려놓고.

비게 된 두 손으로, 입을 가리며.

설아는 자신에게 말했다.

"세상에 하루야...! 너 에고스틱은 어둠의 S급 히어로 '애플망고'라는 그 썰을 믿는거였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믿을 수 없다는듯 자신을 바라보는 친구를 보며, 신하루는 벌써 후회의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아. 괜히 상담한다고 했나.

EP.58 상담

"우리 하루가 애플망고 음모론을 믿었다니... 헉!"

입을 틀어막고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친구, 이설아.

이에 신하루가 불퉁한 표정으로 그녀를 째려보자, 그제서야 베시시 웃으며 손을 내리는 그녀였다.

"헤헤, 장난이야 장난. 화 풀어."

"나 진지해."

"아이구, 우리 하루 어린이 삐졌어요? 어떡해~"

생글생글 웃으며 계속 놀리던 설아는, 헛기침을 하다니 다시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와 입을 열었다.

"그래. 뭐, 일단 듣기에는 확실히 이상하기에는 하네. 테러는 하지만, 사람들이 죽는건 원하지 않는 빌런이라..."

잠시 생각에 빠진 설아는, 자신의 하늘색 머리카락을 손으로 살짝 꼬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그냥 뭐 그럴수도 있는거 아니야? 약간 그 뭐야, 엔터테이너 같은거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걸 즐기는 그런 타입? 인가보지. 그래... 뭐랄까."

잠시 말을 고르던 그녀는, 이내 손뼉을 치며 말했다.

"테러는 하고 싶은데 민간인은 죽이기 싫어하는 빌런이라고 보면 되겠네. 자기가 저지른 테러로 죽게 생긴 사람들 좀 구하라고 연락한걸 보면."

그렇게 말한 설아는 고민 해결이라는듯,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며 다시 녹차를 마셔 목을 축이는 그녀.

거기까지 조용히 듣기만 하던 신하루는, 이내 입을 열고 이렇게 물었다.

"....그럼 너는, 걔가 무해하다고 보는거야?"

"응? 뭐 무해하다고는... 일단 건물이나 비행기 같은거 다 부수는건 맞으니까. 빌런은 맞지. 그냥 민간인 죽는걸 싫어하는 빌런. 그게 무해하다고 볼 수도 있을려나? 민간인 다 죽이려고 드는 빌런들보다야 낫네."

"그리고 해킹 실력이랑 이번에 돈 뿌리는거 보면 뭔가 있는 놈은 맞는데, 너말 들으니까 오히려 안심이 되는데? 그정도 능력이 있는데 사람들 죽이려 들면 그게 더 끔찍했겠다."

거기까지 말한 설아는 다시 차를 한모금 들어 마셨고.

아직도 고민하는 표정을 하고 있는 하루를 보더니 다시 생긋 웃으며 말했다.

"우리 하루, 그게 고민되서 이 언니한테 상담 좀 해달라고 한거야? 에고스틱 그놈이 빌런인지 아닌지 궁금해서?"

"누가 언니야... 아니, 뭐. 좀 걸리는게 있어서..."

"걸릴게 뭐가있어. 원래 세상에 이런 빌런 있고 저런 빌런 있는거지. 사람 5명을 토막살인해서 주술할려고 하는 빌런도 있는데, 사람 죽는거 별로 안좋아하는 빌런도 있을 수 있는거 아니야? 오히려 고민할 필요가 없네. 앞으로 걔가 일으키는 테러는 민간인 피해를 너가 막을 수 있는 선에서만 일으킬 거라는거니까. 빌런들 죽이고 다니는거는... 뭐, 사적제재기는 한데 민간인 죽이는거 까지는 아니니."

테러로 사람을 안죽이면 오히려 좋은거인데 뭘 고민하냐는 듯 말하는 설아를 보며, 하루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면 설아의 말이 맞다. 그냥 민간인 피해는 없는 테러는 일으키고 싶은 빌런. 에고스틱. 그렇게 그를 정의하면 끝날 문제다.

테러의 이유는 여타 다른 빌런들처럼 단순한 쾌락을 위해서 하는거로 보면 되고.

아마 그게 에고스틱에 대한 정상적인 해석이겠지.

그러나 그녀는, 아직도 무언가의 의구심이 남아있었다. 말로는 뭐라고 설명할 수 없지만... 그녀의 안에서 강하게 느껴지는 '직감'.

테러를 일으키는 것이 단순한 자신의 쾌락추구가 아닌,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

그가 테러하는 모습을 보면, 단순히 테러를 즐긴다는 것 보다는 무언가를 노린다는게 있었다.

어떠한 다른 의도로, 무언가를 의도하며 테러를 일으키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

그게 무엇일까. 그걸 모르기에 아직까지는 그녀의 모든 생각이 망상으로 치부되는 거지만.

다시 고민에 빠진 하루의 얼굴을 보며, 설아는 웃었다.

"아니 하루야. 나 여기까지 부르길레 엄청 큰 고민일줄 알았더니, 빌런얘기였어? 애가 이렇게 워커홀릭이여서 어떡하니 응?"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그녀.

"하루야. 우리도 사람이야. 일 안할때는 머리 비우고 쉬어야지. 응? 대학생이면 좀 행사도 나가고. 그래가지고 친구 사귈 수 있겠어?"

"....친구 있거든."

"아, 그 너가 말한 선배? 그건 친구가 아니지. 언니지! 어쨌든 좀 쉴때는 쉬자 이거야. 그래가지고 남자는 한번 사귀귀나 하겠니?"

"너도 남자 사귄적 한번도 없잖아."

조용히 듣다가 뼈를 때리는 신하루의 말에, 설아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아니, 나는 그룹 차원에서 사생활 통제를 하니까 그렇지... 나도 어? 감시만 아니었으면 확."

"그래 그래. 알았어."

피식 웃으며 말하는 하루의 말에 투덜거리던 설아는, 이내 그녀도 웃고 말았다.

그렇게 에고스틱에 대한 이야기는 유야무야 넘어가며, 그녀들은 근황 토크를 하기 시작했다.

이설아가 애기 꺼낸것은 최근 그녀의 고민.

"하... 내 일거수일투족이 언론에 나가는게 여간 스트레스가 아니야."

이설아.

그녀의 친구이자, 부산을 담당하는 A급 히어로인 얼음능력자.

그와 동시에 대한민국 대기업 중 하나인 유성기업 회장의 딸이기도 하다. 흔히 말하기를 재벌 3세인 그녀.

"아니, 히어로일은 나도 재밌고, 회사에도 긍정적인 영향이 가니까 좋기는 한데... 왜 다들 내가 무슨 옷 입었는지 그렇게 관심이 많냐고오..."

테이블쪽으로 손을 쭈욱 뻗으며 한숨을 쉬는 그녀.

그런 그녀에서 하루는 '힘들겠네'라고밖에 말해 줄 수 없었다.

인식저해를 받는 등의 행동으로 철저히 자신의 신분을 숨기는 스타더스와 다르게, 아이시클은 딱히 자신의 신분을 숨기지 않았다.

애초에 그녀가 능력을 각성해 아이시클로 불리기 전부터, 그녀는 제벌 3세 이설아라는 이름으로 이미 대중에 널리 알려진 인물이었으니.

그래서 그녀는 자신에 신분을 숨기지 않은 채 이설아라는 이름 그대로, 히어로 활동을 할때도 딱히 인식저해같은 무언가를 하지 않고 맨얼굴로 나섰다.

"그래도 뭐, 이거 시작한 이후로 전처럼 심하게 간섭하지는 않아서 그건 좋지만. 솔직히 우리 회사 이미지에 내가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여겨서겠지."

"너도 힘들게 사는구나..."

"그래. 그나마 부산쪽은 수도권보다 테러가 적어서 다행이지. 너처럼 많았으면 진짜 와..."

거기까지 말한 이설아는 혀를 내두르며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무슨 기사를 읽더니, 얼굴을 구기는 그녀.

이에 의아하게 생각한 하루는 그녀에게 물었다.

"왜 그래?"

"아니, 우리 경쟁사있지. 한은그룹. 거기 기술고문중 한명이었던 김선우라는 또라이 있는데, 그놈이 석방됐다네. 무슨 인체실험하다가 잡혀간 놈인데 어떻게 풀려났지? 또 로비 엄청 했나보구만."

"김선우..."

"에휴. 요즘은 뭐 잘 풀리는 일이 없어."

설아는 혀를 쯧차며 휴대폰을 다시 책상에 놓았다.

그렇게 그녀들은 계속해서 얘기를 이어갔고.

시간이 어느덧 훌쩍 지나, 깊은 밤이 되고 말았다.

밖에서는 추적추적 내리고 있는 비.

"이만 갈까?"

"그래."

그렇게 여기서 헤어지기로 한 둘.

카페의 밖으로 나오자, 앞에는 선글라스를 끼고 양복을 입은 보디가드들이 쫘악 서있었다.

"아가씨. 타시죠."

"어. 하루야, 너도 태워줄까? 비도 오는데."

"아니, 난 좀 걷다가 가게. 너 먼저 들어가."

"그래..? 알았어. 근데 너 우산은 있어? 아저씨, 우산 남는거 하나만!"

그렇게 하루는 앞의 양복입은 사람들로부터 우산 하나를 받고 감사를 표했다.

"하루야, 난 이만 간다. 다음에 또 고민거리 있으면 바로 불러, 알았지?"

"응. 조심해서 들어가."

그렇게 그녀는 검은색 리무진을 타고 떠나는 친구를 배웅해주었고.

이내 차가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자, 그녀는 발걸음을 옮겨 집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우산을 때리는 빗물.

빗방울 소리만 들려오는 밤거리를, 우산 하나에 의지하며 그녀는 나아갔다.

오랜만에 친구와 만나니 좋았다.

말을 터놓고 대화할 수 있는 친구는 설아가 유일하기도 했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던 그녀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거의 새벽이 다돼가는 저녁인만큼, 캄캄한 하늘.

달만이 외로이 떠있는 하늘을 보며, 그녀는 다시 상념에 잠겼다.

결국 설아도 에고스틱. 놈에 대해 딱히 신경을 쓰지 말라고 조언해 줄 뿐이었다.

그냥 사람 해치는걸 꺼리는 빌런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그러나 하루는 여전히 그가 신경쓰였다.

설아도, 자신도 놓치고 있는 무언가 있는 기분.

그가 지금까지 행동이 무언가 큰그림을 그리고 있는거 같다는 직감.

그리고 그가 생각보다 나쁜 사람이 아닐것 같다는, 근거없고 말도 안되지만... 그럼에도 계속 그녀의 머릿속을 맴도는 생각.

그렇게 스타더스는, 자신도 모르는 채 초감각으로 에고스틱의 본질을 꽤뚫으려 하고 있었다.

물론 그의 실체를 알지는 못하는 만큼, 지금은 계속 찝찝하고 그가 신경쓰일 뿐.

"하아..."

어두운 밤하늘을 보며, 그녀는 그저 한숨을 쉴 뿐이었다.

자신은 에고스틱을 때문에 이렇게 심란해하고 있을 때.

막상 에고스틱 그놈은 자기 집에 누워서 배불리 잘 살고 있겠지?

***

"쿨럭, 쿨럭."

"꺄아아악!! 오빠 진짜 왜이래요!!! 이거 병원 가봐야하는거 아니에요? 병원 가자고요!"

"서은아, 내가 어떻게 병원을, 쿨럭, 가니. 조금 있으면 괜찮아질거야, 쿨럭."

"이렇게 피를 한바가지 쏟고 있는데 뭐가 괜찮아요!!"

"형 죽으면 안돼... 히잉."

산 깊숙한 곳에 있는 커다란 대저택 안.

그 안에서 누워있는 나는, 지금 피를 한바가지 토하고 있었다.

저택에 인원들이 몰려와 나를 둘러싸며 걱정하고 있는 모습.

저 문쪽에는 하율이가 안색이 하얗게 질려 나를 바라보고 있는게 보인다.

아 시발.

다리에서 너무 무리했나.

"쿨럭."

나는 그러게 다시 나오는 각혈.

억울해 죽겠다. 대체 힘을 쓰면 얼마나 썼다고 갑자기 이러냐?

좆망 능력 같으니라고...

다리를 붕괴시키고 집으로 오자마자 기절한 뒤 3일후에 일어난 나.

일어나자마자 피를 한바가지 토해내고 있습니다.

죽겠다.

언젠가 스타더스가 내가 그녀를 위해 이렇게 구르고 있다는걸 알게 되는 날이 올까?

아니. 안 올거야, 아마.

아이고...

"쿨럭, 쿨럭."

"꺄아아아악!"

그리고 서은아 넌 비명 좀 그만 질러...

EP.59 치유

그래. 인정할건 인정해야 한다.

늘 내가 내 능력이 구리다고 불평 불만을 늘어놓았지만, 사실은 따지고보면 꽤 좋은편이다.

염동력은 뭐... 범용성이 워낙 좋고, 순간이동도 히어로를 피하는 나에게 딱 어올리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염동력도 순간이동도 위력 자체는 형편없다는 문제가 있지만... 뭐, 막상 뒷생각 안하면 큰 힘을 낼수도 있다는 강점이 있다. 염동력은 안쓰고 스택을 쌓다가 한번에 풀면 나름 꽤 강한 편이고, 순간이동도 이론상 먼 거리를 이동할 수는 있다. 그 뒤가 문제기는 하지만.

하여튼, 따지고보면 그렇게까지 썩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

물론 그래도 쓰레기기는 하지만. 대체 능력 한번 화끈하게 쓰면 며칠간 반동으로 기절해야 되는 초상능력자가 나말고 또 있나?

그리고 이제는 기절을 넘어 각혈까지 하고있다.

"쿨럭."

저번 다리 테러 이후.

하루종일 염동력으로 둥둥 떠있던 것과 막판에 차를 염력으로 멈춘 것, 그리고 장거리 순간이동까지.

또 몸을 혹사시킨 나는 반동으로 3일간 기절했다. 이건 뭐 개복치도 아니고...

물론 이제 기절은 일상이라 이정도면 짧게 느껴지기도 했다. 저번 부산 호텔에서 쓰러졌을 때는 한 일주일 기절했던가? 그때와 비교하면 짧은 편이기는 하다.

근데 그때도 이렇게 피를 토하지는 않았는데 말이지.

"아니!!! 오빠!!!! 이거 병원 가서 진단 받아보자니까요?"

"서은아, 병원가서 뭐라 말하게... 염동력 사용 때문에 오장육부가 뒤틀린거 같아요? 미등록 초상능력자로 신고먹고 감방간다."

"그럼 어떡할건데요!! 계속 그렇게 피 토하고 있을거에요?"

"쿨럭, 시간 지나면 괜찮아 지겠지. 에혀, 이제 나 알아서 할테니까 들어가서 잠이나 자. 늦었다."

여전히 나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살피는 서은이.

나는 그녀에게 손을 휙휙 흔들며 나가라고 했다.

옆에 티슈로 입가에 피를 닦으면서.

수빈씨도 나를 걱정스럽게 보며, 내일도 이런다면 꼭 대책을 마련해보겠다고 말했다.

거기에 나를 좋아하는 이하율의 남동생, 차윤이. 얘는 거의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죽지 말라고 하더라. 요즘 초등학생들은 원래 그렇게 감수성이 풍부한가?

그리고 이하율.

모두가 나를 둘러싸고 있을때, 그녀 혼자 저 멀리 문쪽에서 파리한 안색으로 나를 멀찍히 보고 있었다.

죄책감을 느끼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

아마 나를 도와줄 수 있음에도 나서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책망하는 거겠지.

이하율이 어렸을 때 각성한 치유능력.

그 능력을 알아챈 고아원 원장에 의해 팔려갈 뻔한 트라우마 때문에, 자신의 능력을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던 그녀였다.

심지어 원장의 엄격한 통제로 인해, 자신의 남동생도 모르고 있는 상황.

그렇기에 그녀가 나를 처음 만났을 때 능력을 숨긴걸꺼다. 애초에 내가 그때는 굉장히 수상하기도 했었고.

그러나 시간이 이렇게 지난 지금, 그녀는 나에게 꽤 마음을 열었다고 볼 수 있다.

처음 만났을때는 나한테 계속 반말을 틱틱 내뱉던 그녀였으나, 이제는 존댓말을 하는 모습.

어라, 생각해보니까 이제 우리 집안은 전부 나한테 존댓말을 쓰고 있잖아?

....왠지 가부장적인 사람이 된 것같은 기분인데.

어쨌든 결론은 그녀가 나한테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걸로 보인다는거다.

나는 자기한테 집도 밥도 돈도 다 줬는데, 자기는 아무것도 보답할 수 없으니.

심지어 이제는 보답을 할 수 있는 기회도 생겼는데 안하고 있으니, 이런 스스로를 자책하는 걸로 보인다.

하긴, 나도 이해한다. 여기서 갑자기 '저 사실 치유 능력 있어요~ 말 안해서 죄송해요~' 이러기도 좀 그렇겠지. 아무리 우리를 좋아해도, 기본적으로 인간 불신이 있으니까.

쩝, 어쩔 수 없나.

그래도 일단 죄책감 스택이나 더 쌓아놓자. 언제가는 스스로 능력 밝히는 날이 오겠지.

그런고로 나는 더 요란하게 각혈했다.

"쿨럭! 쿠우울럭!"

"꺅! 오빠, 이대로는 안되겠어요! 병원가요!!"

"맞아요 다인씨, 일단 뭐라도 해야겠네요."

"형 죽으면 안돼 흐아아아아앙."

...근데 어째 다른 이들이 더 난리가 나서 그냥 그만두었다.

사람이 피도 좀 토할수도 있지 왜이렇게 호들갑들이래.

그래도 하율이의 얼굴이 더 거무죽죽 해진건 보니 효과가 좀 있나보다. 어라, 근데 뭔가 양심이 쿡쿡 쑤시네...

하여튼간에 그렇게 주위의 한바탕 소동이 끝난 후, 나는 밤이 깊었으니 다들 그만 자라고 방에 돌려보냈다. 이제 몸도 좀 괜찮아지고 각혈도 안하니, 난 혼자 쉬면서 몸조리하겠다고 말하고.

어째 다들 불안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고 있지만, 괜찮다니까 그래. 그냥 하율이를 좀 더 자극하려고 오바한것도 있다. 나는 힐러가 필요해요.

그렇게 다들 물러난 뒤.

나는 홀로 방안의 침대에 누워있었다.

흠, 수액이라도 좀 맞아야하나.

피로회복장치가 피로 회복에는 참 좋은데 병까지 치료가 되는건 아니라 한계가 있다.

사실 능력 과다 사용으로 인한 부작용을 병이라고 치기도 좀 뭐하지만.

하아. 아니, 근데 진짜로 피는 왜 토하는거지? 평소에는 늘 일주일 기절하다가 이번에는 3일만에 일어나서 그런가? 아니면 설마 능력이 퇴화하나?

나는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에이, 아니겠지.

....그래도 떨어지는 차 하나 잠깐 멈추는게 얼마나 힘들다고. 애초에 운동량자체가 그렇게 크지 않을텐데.

... 아닌가? 큰가? 잘 모르겠다.

어쨌든 최근에 테러를 하면 할수록 느낀건데, 점점 몸에 무리가 가는거같다. 이제 힘들어.

하긴, 1년에 테러만 4번했는데 몸이 안축나면 더 이상한거긴 하다. 원작의 메인 빌런들중에서도 이렇게 자주 테러를 한 애는 없어!

하긴. 나 혼자서 스타더스가 겪었던 거의 모든 메인 빌런들을 대체하려고 하니까 힘들수밖에 없다. 몸이 10개라도 부족한 샘.

...아무리 생각해봐도 빨리 에고-스쿼드, 그러니까... 빌런연합을 만들어야겠다. 외주를 주고 나는 쉬어야겠어. 나는 그냥 총괄만 하는거지. 테러는 다른 애들 시키고. 몇가지 제약만 걸고 테러하게 시키면 되지 않을까? 지금까지 내가 영입한 능력자들도 무력이 중심이라기 보다는 서포터 위주들이라... 그래, 원작에서 무력도 있고 내가 컨트롤 할 수 있을만한 애가 누가 있더라...

그렇게 새벽까지 나는 침대에 불끄고 누워서, 잠은 안자고 계속 계획을 구상만 했다.

아니 3일간 기절해있다가 막 깨어났는데, 다시 침대에 눕는다고 잠이 오겠냐고.

그렇게 누워서 빅픽쳐를 구상하고 있을 때, 갑자기.

삐꺽-.

내 방문이 조용히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뭐야?

일어나볼까 했으나, 일단은 그냥 계속 자는척 누워있어 보기로 했다. 상대가 이 새벽에 내가 깨어있을걸 상정하고 들어오지는 않았을거 같거든.

살금 살금. 누군가 내 침대로 다가오는 소리가 들린다. 대체 누구지?

궁금증을 이기지 못한 나는, 살짝 눈을 떠봤다.

어두운 방안에 보이는 작은 인영.

실루엣만 보이지만, 우리 집에 키가 저정도인 사람은... 하율이밖에 없는거 같은데.

얼굴이 보일 정도로 가까이 다가오길래, 다시 황급히 눈을 감았다.

이내, 숨소리가 내 코앞에서 들려왔고.

잠시 그렇게 그녀는 내 침대 앞에 서있다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저씨, 자요?"

응 안자.

그러나 그렇게 대답할 수는 없는 노릇. 나는 그냥 입을 꾹 닫고 아무것도 못들은척, 계속 자는 척 누워있었다.

이내 잠시 나의 대답을 기다리더니, 내가 미동도 없자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는 그녀.

그러더니, 갑자기 내 몸 쪽에 두 손을 나란히 올렸다. 뭐야.

이어서, 아까보다 더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기 시작하는 그녀.

"아저씨. 죄송해요. 능력이 있는데도 숨겨서..."

"저희 남매를 도와준 아저씨에게 정말 감사하고, 또 좋아하지만."

"그래도, 그래도 아직은 말을 할 수가 없었어요. 죄송해요, 이렇게 이기적이고 사람을 못믿는 애라, 죄송해요. 아저씨에게 그렇게 일방적으로 도움 받아놓고는, 이거 하나 못해주는 년이라 죄송해요."

떨리는 목소리로 나에게 고해성사를 시작하는 그녀.

아니, 야. 왜 그래. 새벽 감성에 젖어서 이러는거야? 정신차려 임마!

이러지 말리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나는 지금 공식적으로는 자고 있는걸로 알려진 상태. 입을 열 수 있을리가 없었다.

....아무래도 아까전의 각혈이 효과가 너무 좋았나보다. 내가 무슨 거의 다 죽어가는걸로 보였나? 갑작스러운 감정의 폭풍에 나도 정신을 차릴수가 없었다. 얘 대체 왜 갑자기 혼자 땅굴파면서 자책하는거야.

이제는 심지어 옆에서 들리는 훌쩍이는 소리.

야, 우냐? 울지마! 내가 미안해...

이러니까 괜히 내가 못난 어른이 된것 같다. 여고생을 울리는 쓰레기가 된듯한 기분이야..

잠시 훌쩍이던 그녀는, 코를 한번 흥 하더니, 내 침대 앞에서 무릎을 꿇고 다시 속삭였다.

"그래도, 제가 제 능력은 고백할 수는 없지만... 뒤에서라도, 도와드릴게요. 꼭."

그렇게 살짝 결연한 의지로 조용히 말한 그녀.

그러더니, 갑자기 내 몸을 붙잡은 그녀의 손쪽에서 작은 빛이 번쩍였다.

그러더니 그녀와 살이 맞닿은 곳을 기준으로 몸 안에 들어오는, 따뜻한 기운.

무언가 몽실몽실 하면서도 따뜻하게 품어주는 듯한 기운이 내 몸을 감쌌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몸 구석까지 따뜻한 기운이 맴돌던 때, 그녀는 이윽고 손을 땠다.

오랜시간 붙어있던 손이 내 몸에서 때어졌고.

살짝 헐떡이던 그녀는, 다시 일어나더니 흘러내린 땀을 닦듯 얼굴을 문지르는 듯 했다.

"하아... 이렇게 밖에 못해드려서 죄송해요. 그래도... 늘 감사해요 아저씨."

그렇게 거기까지 말한 뒤, 그녀는 비로소 방 밖으로 나갔다.

문앞에서 살짝 '안녕히 주무세요...'라는 소리가 들리더니, 비로소 문이 닫혔고.

이내 복도의 발소리마저 완전히 사라진 뒤에야, 나는 눈을 떴다.

"어우..."

몸을 일으켜서 팔을 휘둘러봤다.

분명 전까지만 해도 다 죽어가듯 골골거리던 몸이, 갑자기 활력을 되찾은듯 힘이 넘치는 모습.

속이 뒤틀리던 고통은 어디가고, 다시 쌩쌩해졌다.

"하율아..."

어. 아무리 생각해봐도, 하율이를 영입한건 최고의 선택이었던 것 같다.

지금 몸의 컨디션은, 최악에서 갑작스럽게 올해 중 제일 상태가 되었다!

"고맙다...!!"

이제 그냥 몸을 막 굴려도 되겠어!

애가 오늘보니 살짝 감정과잉인거 빼고는 참 좋은 애인 것 같어.

EP.60 여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