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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

멸망은 하루 아침에 찾아왔다.

[속보입니다! 미국이 유럽과 중국, 호주, 이집트를 향해 핵을 쐈습니다! 이에 다른 나라들은 요격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똑같이 미국에 핵폭탄을 날렸다고 합니다!]

갑자기 전세계적으로 시작된 핵전쟁.

뜬금없이 미국 대통령이 전대륙에 핵폭탄을 쏘기 시작하며, 모든 참상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이보다 더 심한 일이 뭐가 일어날 수 있을까 했지만.

이건 그저 신호탄에 불과했다.

[속보입니다! 미국의 S급 빌런 셀레스트가 이끄는 빌런 단체 에테리아가 대규모 공습을 시작하였습니다! 이들은 미국을 공격하기 시작하며 국토가 불바다로...]

[속보입니다! 미국의 혀, 협회가 자국민을 공격하고 있다는 속보입니다! 히어로들이 도시를 박살내고 있으며, 정확한 이유는 불명이나...]

[속보입니다! 미국, 유럽, 러시아의 초상능력자 수용소가 전부 통제력을 잃고 박살났다고 합니다! 이에 격리되어있던 S급 빌런들이 풀려났다고 하며 인근 도시가 초토화...]

[속보입니다! 북대서양의 빌런 조직 아틀라스의 군대들이 전 세계에 침공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해안가쪽에 살고 계신 국민 여러분은 서둘러 대피를...]

[소, 속보입니다! 대한민국 동부 초상능력자 구치소, 이스트 카르케리스가 무너졌다고 합니다! 지금 S급 빌런들이 전부 풀려났으므로 국민 여러분은 안전한 곳으로 대피를...]

[...속보입니다. 서울 부산을 비롯한 대부분의 도시들이 전부 대규모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하하, 그냥 저희 다 망한거같아요.]

"지랄났네."

서울 한복판에 있는 고층 건물의 옥상.

나는 그곳에서 실시간으로 뉴스를 들으며, 도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퍼어어엉.

퍼어어엉.

이곳 저곳에서 들리는 폭발음들과,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들.

현세에 강림한 멸망. 종말이라는 단어를 형상화 한다면 이런걸까?

나는 그저 차분한 눈으로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이 일은, 애초에 내가 건들 수 있는 상황이 아니였다.

이 사태의 최초의 시발점이 어딘지, 대체 무엇이 모든 능력자들이나 정부, 협회가 자국민을 공격하게 만든건지 난 모른다. 아마 최면 능력자, 뭐 그런게 아닐까 추측할뿐. 아니면 신의 작업이던가. 잘 모르겠다.

그러나 확실히 아는건, 이 모든 일은 전부 '없던 일'이 될거라는 것. 나또한 오늘의 기억을 잊게 될 것이라는거다. 아마 자유의 여신상 지켜보다 안 터지는거 보고 안심한 뒤 그냥 일상을 살게되겠지.

즉, 지금부터 일어나는 일들은 전부 오프 더 레코드.

내가 여기서 내 비밀을 다 공개하고, 신분을 까발려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소리다. 어차피 다 없던 일이 될거니까. 그래서 지금 나올때 인식저해도 안걸고 나왔다.

"휴우..."

나는 그렇게 잠시 옥상 난간에 기대서, 무너지고 있는 도시를 지켜보았다.

그리고 귀에 들려오는 뉴스의 내용.

[속보입니다. 유성기업의 이설아가 전국을 향해 미사일을 발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게 랜덤하긴 한데, 하필 밖을 보니까 여기 방송국 방향으로 날아오고 있네요. 그래서 뭐, 이게 마지막 방송인거 같습니다. 다들 안녕히 계세요.]

그리고 뉴스는 끝났다.

음. 뭔가 펑펑 터지는게 미사일도 꽂히는 모양.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인 상황.

...뭐, 딱히 별 감상은 들지 않았다. 어차피 다 의미없는 풍경들인데 뭐. 마치 영화를 보는 기분. 일상이나 미래에는 별 영향을 안 미칠, 동떨어진 사건들이다. 어차피 없어질 시간선이니까. 심지어 나조차도 이 풍경을 기억 못할테고.

...그래도.

나는 잠시 원작의 내용을 떠올려보았다.

이 모든게 다 없는 일이 될거라는걸 모른 채, 동분서주하던 스타더스를. 혼자서 애써 부질없는 노력을 하며 고통받던 그녀를.

그래, 아무리 그래도 그 꼴은 내가 못보겠다.

그 생각을 하고 잠시 미소를 띄운 나는, 이내 챙겨온 카메라를 염동력으로 띄워서 켰다.

좋아, 전파납치로 티비 모든 채널에 송출 되고있을거고.

이제 이게, 부디 스타더스에게 들리기를 바래야지.

나는 그 작은 소망 하나를 품은 채, 입을 열고 카메라를 향해 말을 하기 시작했다.

"크흠, 크흠. 안녕하십니까, 에고스틱입니다!"

"아이고, 이게 세상이 조금 난장판이네요. 그렇죠?"

"뭐... 딱히 할 수 있는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제가 이 상황에 대해 뭘 알고있긴 합니다."

"그러니."

"스타더스씨, 부디 이리로 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나는 설핏 미소지으며, 그렇게 말했다.

***

하루아침에, 세상이 무너졌다.

신하루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비상, 비상사태를 선포해야 합니다!"

"미국이 또 핵을 쐈어요. 이거 막아야합니다! 요격장치 가동해!"

"아니, 협회장님은 대체 어디 계신거야!"

그야말로 미친듯이 움직이는 협회의 컨트롤센터.

그곳에 남은 직원들은, 애써 상황을 통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별 소득은 없었지만.

그렇게 스타더스가 급변하는 국제정세를 멍하게 바라보던 그때, 협회 한쪽에서 거의 비명에 가까운 소리들이 계속해서 들려왔다.

"동부 수용소가 갑자기 뚫렸어요! 빌런들 다 탈출하면서 쏟아져 나옵니다!"

"지금 서울, 부산, 경기, 전북등 전국에서 빌런들이 튀어나왔다는 신고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오늘 무슨 날잡은 것처럼 빌런들이 날뛰고 있어요!"

"...."

스타더스는 거의 영혼이 나갈거 같았다.

...이제는 이게 그냥 기분나쁜 꿈인지 의심되는 상황.

그러나, 피부에 느껴지는 차가운 공기는 이게 현실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와, 이, 이설아 회장이 미사일을 쏴버렸습니다! 유성그룹이 숨겨둔 미사일인거 같아요!"

"뭐라고요?"

그렇게 잠시 멍해있던 스타더스는, 그 소식을 듣고서야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이설아에게 전화를 걸어보았다.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삐 소리후 소리샘으로..]

그러나 가지 않는 신호음.

늘 그녀의 전화는 아무리 바빠도 받는 이설아였으나, 오늘만큼은 예외였다.

"전 일단 밖에 가보겠습니다."

"...네. 갔다오세요. 뭐, 저희가 할 수 있는건 더이상 없어보이지만..."

자포자기한 채 중얼거리는 협회 직원을 지나쳐, 스타더스는 밖으로 나섰다.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

그리고, 사방에서 들리는 폭격소리.

".....아."

신하루의 눈이, 정처없이 떨렸다.

어디서부터 뭘 해야되지?

그녀는 이미 협회에서 모든 보고를 받은 상태였다.

갑자기 자신을 제외한 모든 능력자들이 히어로고 빌런이고 관계없이 모두 미쳐 날뛰고 있다는 소식. 그리고 세계 정상들도 다 타락했다는 소식.

온 지구가, 갑자기 멸망을 향해 날아가고 있다.

하루 아침에.

그런 상황에서.

그녀는, 대체 어떻게해야 하는가.

대충 날다가 눈에 보이는 빌런들을 다 처리했지만, 그야말로 끝도없는 한명을 잡으면 다른 놈이 튀어나오는, 끝이 없는 상황.

말그대로 압도적인 물량 웨이브에, 신하루는 심리적 절벽에 내몰렸다.

...아무래도, 답이 없어 보인다.

이대로 끝인거 같다.

이미 세상이 다 멸망하고 있는데, 그녀 혼자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 상황에서.

그녀의 머리속에 갑자기 떠오는건, 다른 누구도 아닌.

빌런인 어떤 남자 한명이였다.

"...에고스틱."

그렇게 심리적으로 몰린 상황에서야, 그녀는 깨달았다.

내가, 에고스틱에게 생각보다 많이 의지하고 있었구나.

이 상황에서도, 그를 제일 먼저 생각할 만큼.

...그러나, 그가 도움을 줄 수 있을리가 없다.

당연히 그도 다른 이들처럼 미쳤을게 거의 확실하기에.

그렇게 그녀가 모든걸 놓고, 또 어디론가 날아갈 무렵.

지나치는 무너진 건물의 옆에 전광판에서, 방송이 나오고 있었고.

그 방송에서는.

그녀가, 생각치도 못했던.

아니. 생각은 했지만, 차마 기대는 하지 못했던.

한 남자의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아이고, 이게 세상이 조금 난장판이네요. 그렇죠?]

커다란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장난스러운 그의 목소리.

그 모습에, 그녀는 홀린듯 눈을 고정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그의 말.

[뭐... 딱히 할 수 있는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제가 이 상황에 대해 뭘 알고있긴 합니다.]

[그러니.]

[스타더스씨.]

[부디, 이리로 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마치 자신의 눈을 마주치며, 설핏 웃음을 짓는 그의 얼굴.

그 뒤에 배경을 확인한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이미 그곳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오직, 그를 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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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내가 결과적으로 따지자면 지금까지 한 모든 일들은 다 멸망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런 내가, 지금 멸망을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

"....."

나는 건물 옥상 난간쪽에, 다리를 허공에 두고 앉아있었다.

스타더스를 부르고, 그녀가 오기까지 기다리는 동안 그저 밖을 내려다보고 있을뿐.

한편, 탁 트인 시야에 보이는 세상은 열심히 붕괴되고 있었다. 인류가 쌓아올린 모든게 다 무너지는 상황.

근데 뭐, 별로 신경쓰이진 않았다.

애초에 이거 다 한순간의 꿈이 될거라니까. 여기서 내가 무슨 말을 하던, 무슨 행동을 하던 다 없는 일이 된다.

즉, 눈앞의 풍경은 '이 모양 이 꼴 안나게 하려면 열심히 해야겠네...' 정도의 감상만 준다는 소리.

사실 원래라면 나도 그냥 잠들려고 했었다.

근데, 또 그러니까 스타더스가 눈앞에 밟히더라고.

원작에서 이 멸망하는 시간대에 개고생을 한 그녀를 기억한 나로써는, 도저히 그걸 내버려 둘 수 없었다.

그래서 방송으로 그녀를 부른 것이다.

어차피 되돌아가는 시간대이니, 너무 마음고생하지 말고 쉬라고 말하기 위해서.

...사실, 그녀가 내 말을 믿을까- 아니. 애초에 여기는 오긴 할까 싶기도 한데. 그래도 노력은 해봐야지.

그리고 그런 기다림 끝에.

"....음."

그녀가, 왔다.

"에고스틱..."

"어서오세요, 스타더스씨."

탁 트인 푸른 하늘.

그리고 그 풍경 사이사이 올라오는, 검은 연기들.

그리고 실시간으로 붕괴되고 있는 인류의 문명을 배경으로. 그 모든 것들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건물의 옥상위에서

나는, 긴 금발 머리를 휘날리며 나를 바라보고 있는 스타더스에게 살짝 미소지으며, 그렇게 인사를 했다.

살짝 떨리는 눈으로, 공중에 떠서 나를 바라보는 그녀.

그 뒤로 폭격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오는 가운데.

나는, 상황에 어올리지 않는 잔잔한 목소리로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걱정했거든요. 안오면 어떡하나..."

"...."

"하여튼, 와주셨으니 얘기해 드리겠습니다. 이 모든 난장판의 진실을."

나는 그녀 앞에서 난간에 앉은 채, 그렇게 말을 했다.

...사실 지속적인 스트레스가 쌓인 그녀가 이렇게 된 이상 나라도 족치겠다며 달려드는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뭔가 전보다 평온한 표정으로 내 앞에 떠서 고개를 끄덕이는 스타더스의 모습.

그런 그녀의 반응에 안심하며, 나는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사실 뭐 길게 말했는데, 그냥 한줄로 요약하면.

"스타더스씨. 이건 어차피 능력자에 의해 돌아갈 시간대입니다. 다 없던 일이 될거에요. 당신도 오늘 있었던 그 어떤 일도 기억하지 못할거고요."

나는 그걸 쭉 풀어서 말했다.

...어떠한 능력자가 이 모든걸 일으킨 것으로 보이고. 미국에 존재하는 시간조작 능력자가 다 시간을 돌려버릴거고. 뭐 그런거.

"아마 당신도, 저도. 지금 이렇게 나누는 대화를 기억하지 못할겁니다. 없던 일이 될거니까요. 이 망해가는 세상도 몇시간후면 다 제자리를 찾을겁니다."

그러니, 시간이 돌아가기 전까지.

저랑 같이 그냥 쉽시다.

나는 거기까지 말함으로써 모든 할 말을 마쳤다.

다행히도, 내가 하는 말을 별다른 다른 말 없이 조용히 들어준 스타더스.

...근데, 이걸 그녀가 믿어주려나? 막상 말하고나니까 신뢰성이 굉장히 떨어니는 말을 한 기분이다. 생각해보니까 내가 이걸 다 알고있는게 더 이상하잖아.

"하하, 뭐. 근데 믿지 않으셔도 이해합니다. 악당이 이런 말을 해봤자-"

그래서 내가 그녀에게 그렇게 말을 하고 있을 때.

내 앞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믿을게."

"-신뢰가 없는게... 네?"

나는, 순간 내 앞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똑바로 들려 그녀를 바라봤다.

그러자 보이는, 내 앞에서 조용히 미소지으며 내 눈을 바라보는 스타더스.

그리고 그녀는 옅게 웃으며, 내게 말했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너니까. 믿을게. 전부."

그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숨을 잠시 멈췄다.

하늘을 등지고, 빛나는 금발머리를 휘날리며, 살짝 웃으며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서일까.

...아니면 한치의 의심도 없이, 나를 믿겠다고 말하는 그녀의 모습 때문일까.

뭐가됐든

"...어, 감사합니다?"

나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옆에 앉아도 되지?"

"네? 아, 네."

내가 그렇게 답하고 있을때, 그녀는 이미 난간의 내 옆에 앉은 후였다.

여전히 살짝 미소를 짓고있는 그녀.

그렇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건지 머리가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내가, 여전히 말을 고르고 있을때.

가까이, 바로 내 옆에 앉은 그녀는 난간에 두 손을 놓은채 앞에 하늘을 보며 내게 말을 걸었다.

"...그래서, 시간이 어차피 돌아갈꺼라고?"

"...네. 맞습니다. 지금의 일들은 다 없는 일이 될겁니다. 기억도 못할거고요."

"흐음..."

그런 내 말에, 딱히 별 대답없이 다리를 허공에 살짝 흔들뿐인 그녀였다.

...여기서 바로, 네가 그걸 어떻게 알고있냐고 물을 줄 알았는데. 딱히 그런 질문은 하지 않는 그녀.

대신 스타더스는, 내게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근데 그럼, 왜 너와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미치지 않은거야? 우린 둘다 멀쩡하잖아."

그게 제일 궁금했다는 듯, 내게 묻는 그녀.

나는 그런 스타더스에게 답을 해줬다.

"왜냐하면, 저희 둘의 힘이 근원이 달라서 그럽니다."

"힘의 근원이 달라?"

그런 내 말에 흥미가 간다는 듯, 앞의 하늘을 바라보던 고개를 돌려 궁금하다는 듯 내 쪽을 바라보는 그녀.

...음, 이게 너무 신학적으로 자세히 파고들면 하루종일 얘기가 되는데. 태초의 3신에 대해서부터 설명해야 되고.

그렇게 시간관계상, 나는 적당히 간추린 답안을 내놓았다.

"네. 다른 이들과 다르게 저희의 힘은 기원이 다릅니다. 애초에 베이스가 다른 만큼, 다른 신의 힘에 기원을 둔 저희는 영향을 받지 않는거지요."

그래. 일단 이렇게만 설명하자.

...근데 여기서 신이 누구냐 그런걸 물어보면 좀 곤란해지는데.

그리고 내 말을 들은 그녀는 다행히도, 그게 아닌 다른걸 내게 물었다.

"그럼... 우리 둘의 힘의 기원은 같은거야?"

"네. 맞습니다."

"흐응.... 그렇구나... 그런거구나."

그런 내 대답에 만족했다는 듯, 설핏 미소짓는 그녀.

그리곤 다시 시선을 돌려 정면의 하늘을 바라보는 스타더스였다.

그렇게 다시 잠시 찾아온 고요.

'.....'

나는 그틈을 타, 숨을 돌렸다.

...뭐지. 스타더스가 악당한테 이런 식으로 친근하게 나온 적이 원작에 있었나? 없었던거 같은데.

...모르겠다. 어차피 지금 하는 모든건 다 기억도 못하는 없는 일이 될텐데 뭔상관이겠어. 고민하면 지는거다. 그냥 즐기자.

나는 그렇게 스타더스의 옆에 앉아, 옥상에 선선히 불어오는 바람을 즐겼다.

물론 풍경 자체는 뭐 사이렌 소리 들리고 어디서 연기나고 난리기는 한데, 가짜 멸망이라 그런지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약간 환상을 보는 듯한 기분.

스타더스또한 조용히, 내 옆에서 그 광경을 함께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뒤.

조용히 풍경을 바라보던 스타더스가, 다시 고개를 돌려 내쪽을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있지... 에고스틱."

그에 맞추어 나도 고개를 돌렸다가, 순간 바로 코앞에 다가온 그녀의 얼굴에 멈칫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를 보며 말을 잇는 그녀.

"나, 너한테 질문 하나만 해도 돼?"

"어... 하세요."

그런 내 대답에 스타더스는 내 눈을 바라보며, 무언가의 갈망을 담고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마치, 이 질문이. 이것에 대한 대답이 예전부터 너무, 듣고싶었다는 듯이.

"에고스틱."

"넌. 정말 빌런이야?"

순간.

시간이 멈춘 듯한, 그런 착각이 들었다.

푸른 눈으로 내 눈을 올곧게 마주치며 그런 질문을 던지는 그녀.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한때 스타더스의 팬이었던 사람으로. 깨달았다.

이건 내가 뭐 형식적으로 빌런이냐 아니냐, 그런걸 묻는게 아니다.

정말.

내가 악인이냐 아니냐. 그런걸 묻는 그런 질문.

나는 그런 그녀의 물음에, 고개를 잠시 돌렸다.

그러자 계속해서 이어지는 그녀의 말.

"지금까지 저지른 테러들이 전부... 오로지 사람들을 괴롭히기 위해서 한거야? 오직 너의 사리사욕을 위해 한거야?"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던거야?"

나를 보면서 진지한, 무언가의 확신으로 가득찬 목소리로 계속해서 묻는 그녀.

그리고 그런 스타더스의 말을 들으며, 나는 잠시 고민했다.

...애초에 왜 저런 질문을 하는걸까. 설마 평소부터 나를 의심하고 있던건가. ...에이, 그건 아니겠지. 그럴리가 없다. 스타더스가 얼마나 빌런들을 싫어하는데. 아마 지금 내가 이 멸망의 모든 배후를 알고 그녀를 부른거때문에 추측한거겠지.

...그래도.

어차피, 전부 사라질 기억이니까. 지금의 일들은 전부 없어질 일들이니까. 결국, 시간이 돌아가면 다 신기루처럼 사라질 순간일테니까.

지금만큼은, 사실대로 말해도 되는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입을 열었다.

분위기가 조금 무거웠던만큼, 이를 조금 털기 위해 일부러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이런, 들켰습니까?"

"으응?"

"사실 전. 세계의 멸망을 막기 위해 했던겁니다. 당신을 성장시켜, 이 모양이 될 수도 있는 미래를 막기 위해서요. 하하."

나는 일부러 장난치듯, 마치 농담하듯 그렇게 말했고.

"...역시, 그랬구나."

"네?"

"하하, 왠지 그럴거 같았어."

그녀는 그런 내 말에, 그렇게 웃으며 대답했다.

"좀 더 자세히 얘기해줘봐."

"지금까지, 무슨 일이 있던건지."

...그리고, 내게 눈을 빛내며 말하는 스타더스의 푸른 눈을 보고는.

나는, 그 질문을 거절할 수 없었다.

'...어디서부터 얘기해야되려나.'

좀 길겠구만.

그래도, 뭐. 시간 때우기는 충분하겠네.

그렇게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

"....하아, 좀 쌀쌀하지 않아?"

"그렇네요."

신하루. 그녀가 에고스틱이 앉아있는, 이 옥상에 온지도 시간이 꽤 지났다.

처음에 오자 마자 들은, 이 모든 사태는 시간이 돌아가는 방식으로 전부 해결될거다- 라고 말하는 그의 말.

믿기 힘든 말이었지만, 그녀는 전부, 한치의 의심도 없이 믿었다. 그만큼 에고스틱을 신뢰하고 있었기에.

그래.

세상의 멸망을 눈앞에 보고있는 순간에서야, 그녀는 깨달았다.

'....하하.'

자신이 에고스틱을, 이렇게나 신뢰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 이야기를 한번에 믿고, 바로 안심할 정도로.

"아직도 난리났네요. 어휴."

"응..."

그리고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쭉 한 이후, 에고스틱과 붙어서 나란히 앉아 하늘 아래 탁 트인 경치를 보고있는 그녀.

그러나, 그런 스타더스의 정신은.

앞의 경치보다는, 옆의 에고스틱에 집중되어 있었다.

두근. 두근.

그가 자신을 위해 지금까지 했던 이야기를 들은 후.

그리고 에고스틱이 빌런이 아니였다. 그녀가 그런 확신을 한 이후로.

그녀는, 자신의 옆에 붙어있는 그의 모습을 볼때마다, 어쩐지 심장이 계속 두근거리는게 느껴졌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볼도 살짝 붉어진 느낌. 자기도 모르게 미소가 나오고.

그래.

세상의 멸망 끝에서.

에고스틱은 빌런이 아니라는 확신을 얻고.

그녀가 고생하는걸 보기 싫다며 굳이 그녀를 부른 그의 옆에 앉아서.

다 끝인줄 알았는데, 아니라고. 이 모든 일들은 다 해결될 거라고 자신있게 말하는 그의 옆에서.

미소짓는 그의 얼굴을 보며, 대화를 나눈 그 순간에서야.

그녀는, 어렴풋이 스스로의 마음을 깨달았다.

굳게 묻혀있던, 이 순간이 아니였으면 결코 인정하지 않았을, 자신의 마음을.

"...하하."

"갑자기 왜 웃으세요?"

"응? 아, 아무것도 아니야."

미소지으며, 그를 돌아보고는 그렇게 대답을 하자 의아해하면서도 자신을 향해 똑같이 살짝 미소지어 보이는 그.

그런 에고스틱의 미소를 보며.

신하루는 생각했다.

...그래.

일단은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자고.

비록, 없어질 순간이라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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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하는 세계.

그리고, 곧 시간이 돌아가 없어질 세계.

그곳이 내려다 보이는 건물에 옥상에서, 나와 스타더스는 함께 나란히 앉아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제가 그때 얼마나 놀랐는 줄 아십니까?"

"하하, 그때 나도 놀랐었어."

"특히 거기 갇혔을때는..."

어차피 시간이 돌아가, 이 모든게 없던 일이 될 것인만큼 나는 그냥 편하게, 편하게 떠들었다. 딱히 말할때 실수할까봐 눈치볼 것도 없이, 그냥 가볍게 이것 저것.

"....흐응. 그랬구나."

스타더스 또한, 가볍게 미소지으며 대화에 어올려주었다. 사실 우리끼리 할 얘기가 뭐가 있겠는가. 그냥 지금까지 서로 함께 공유했던 여러 일들. 이제는 마치 추억처럼 느껴지는 시간들에 대해 떠드는거지. 한은그룹 지하에서 둘이 같이 만났던 일, 부산 호텔에서 있었던 일... 뭐 그런 것들 말이다.

...사실, 따지고보면 웃기는 일이었다. 히어로와 빌런이 둘이 나란히 웃으며 붙어앉아 이때까지의 일들을 얘기하다니.

나야 원래 스타더스를 좋아했던만큼 그냥 지금 이 순간을 즐겼지만, 솔직히 그녀가 이렇게 나오는건 의외였다. ...그래도, 뭐. 내가 내 정체를 밝히기도 했고, 세상은 멸망하는데다가 지금 우리 둘이 뭘 한다고 해서 뭐가 바뀌는 것도 아니니. 스타더스또한 마음 편하게 생각하기로 한 것이겠지... 라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우리는 옥상에서, 선선히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몇시간이고 이런 저런 얘기를 했다.

평상시에는, 서로 싸우느라 바빠서.

서로가 서로의 신분에 얽메여, 남들의 눈치를 보느라.

스스로의 속마음을 억누르며, 미쳐 나누지 못했던. 그런, 이야기들을.

세계가 멸망하고 없어지게될 이 순간에서야, 우리는 그제서야 서로 웃으며 편하게 말할 수 있었다.

그렇게 몇시간이고, 멸망중인 세상으로 우리는 여러 얘기를 나눴다.

"짜잔. 안녕하십니까. 저희 구면이죠?"

"와... 하하, 그래. 내가 진짜 그럴 줄 알았다."

그러던 중, 어차피 잊게 될 시간선인 만큼 내가 가면을 벗고 정체를 밝히기도 했고.

"나도 널 다인이라고 부를테니까, 너도 날 하루라고 불러."

"...알겠습니다. 하루씨."

서로 정식으로, 통성명을 하기도 하고.

"...잠깐, 그때 다인 너. 해변에서 이설아가 나한테 널 소개주지 않았었어?"

"앗."

"흐응...?"

...신하루가 무서운 미소를 지으며 이설아와 나의 관계를 사근사근 묻길레, 본능적인 위기를 느낀 내가 열심히 변명하기도 했고.

"아니라고?"

"당연하죠! 저희는 가족같은 사이입니다. 생각하시는 그런건 아예 없어요!"

"...다행이다."

"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거기서 뻗어나가 나와 에고스트림 여성 멤버들 간의 사이에 무슨 썸띵이 있는거 아니냐는 스타더스의 의혹에 해명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은근, 끊이지 않는 대화거리들.

"하하, 진짜? 그때 내가 보고싶었다고?"

"크흠. ...네."

"아하하. 하하하하."

"아... 그만 웃으세요. 쪽팔리니까..."

그렇게

그녀와 함께 웃으며 떠든지도,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푸른 하늘이, 점점 주황색이 되가고 있을 정도로.

"..."

사실 중간에 월광교가 살아남으려고 발작을 일으켰는지 갑자기 밤이 된 적도 있었는데, 실패했는지 다시 낮으로 돌아왔다.

하여튼 이제는 점점 노을이 지는 무렵.

...본능적으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달은 우리는. 어느덧 입가에 선선한 미소만 지은채 주황색으로 물들은 하늘을 구경했다.

옥상 난간에 앉아, 두 손을 난간에 두고.

그렇게, 멸망하는 세계 맨 꼭대기에 앉아. 곧 돌아가게될 시간을 기다리며.

'....음.'

그러는동안 난, 대화가 멈춘 그 순간에야 살짝 제정신으로 돌아와 오늘 하루와 나눈 대화를 진지해진 마음으로 조용히 복기하고 있었다.

...나도 알고는 있다. 지금 상황이 특수하다는 것은.

앞서 말했듯 내가 정체를 밝히기도 했고, 세상이 멸망하고 있는 순간이니까. 어쩌면 심리적으로 매몰린 그녀에게 내가 오는 손길을 내밀었던만큼, 흔들다리 효과가 있었을 수도 있고.

그런데.

...그걸 감안해도, 하루는 내게 너무 사근사근했다.

마치 처음부터 우리가 히어로와 빌런 사이가 아닌, 오랜 친구사이였던 것처럼.

마치, 그녀가 나를 미워하거나 증오하지 않았단 것처럼.

'.....'

...나는 스타더스를 좋아했다. 처음부터, 당연히. 그러니 나는 그녀와 웃고 떠들 수 있었다. 그녀의 옆에서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하루는?

사실 처음부터, 좀 이상했다.

시간이 돌아갈거란 내 말을, 그녀가 한번의 의심도 없이 바로 받아들여주지 않있나. 마치 나를 처음부터 신뢰했던 것처럼.

...빌런인 나임에도. 어째서.

그리고, 그때.

"있지..."

"네?"

내가 그런 의문을 스스로 생각하고 있을 그때.

문득, 입가에 작은 미소를 띄운 채 지는 해를 바라보던 신하루가, 입을 열었다.

노을이 지는 하늘 아래, 주홍빛으로 물든 채.

무언가 심장이 두근거리는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내게 말을 하는 그녀.

"...이제와서 생각한건데 말이야."

"네."

"난 사실 다인 널, 그러니까 에고스틱인 널."

"처음부터. 애초에... 싫어하지 않았던 것 같아."

"....네?"

나는 그 말을 듣고는 귀를 의심했다.

고개를 휙 돌려 그녀를 바라보니, 여전히 주홍빛 지는 하늘쪽을 보며 선선히 미소만 짓고 있는 하루.

그리고 그녀는 계속해서 시선을 하늘 쪽에 두며, 말을 이었다.

"...사실, 있잖아. 난 어쩌면 널 그냥 의식적으로 싫어하려고 했던거 같아."

"빌런이니까, 테러를 일으키는 악당이니까. 그리고 난, 히어로니까. 영웅이니까. 당연히, 싫어해야지... 이러면서 말이야."

...무슨 소리를. 하는거지.

내가 혼란에 빠져있던 말던, 하루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근데 말이야. 이제와서 생각해보니까."

"나는, 언제부터일까. 비행기가 떨어지는 그날, 너가 나한테 전화를 건 그날일까?"

그녀는 거기까지 말하고, 숨을 골랐다.

그리고 다시. 무언가의 확신에 차서, 말을 하는 그녀.

"그때부터. 널."

"그렇게까지 싫어하진 않았던거 같아."

"오히려. 오히려 말이야."

...아닐거야.

에이, 설마.

"여러 시간이 흐르고. 네가 나를 위해주던 그때, 있지. 그때 순간 순간들이 모여서."

"난, 네가....."

....

그리고 하루는, 조용히 중얼거리듯. 내게만 들리게, 말끝을 흐렸다.

"...."

하늘을 보며 미소를 짓고 있지만, 눈가에 약간 작은 물기가 맺혀있는 그녀.

그리고 하루는, 여전히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하하, 웃기지? 모든 것의 끝에서, 어차피 다 사라질. 없어지게 될... 이 순간에서야, 내 마음을 깨닫다니. 그리고... 지금에서야 너한테 말하다니."

"....."

여전히 약간 붉어진 눈으로 하늘을 보며 그렇게 중얼거리는 신하루를 보며.

그렇게.

신하루의 마음을, 처음으로. 알게된 나는.

"....."

그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디서부터, 이렇게 된거지.'

대신 나는, 속으로 조용히 생각했다.

나는 분명 그녀에게 있어서, 영원한 악으로. 숙적으로 남으려고 했었다. 그래서 그렇게 행동한거지.

하지만, 나도 빌런은 처음이었기에.

무언가 미숙한 부분이 있었을거다.

...그래.

비행기가 떨어지던 그때, 그녀에게 연락해서 응원을 했으면 안됐던걸까.

그날 지하에서, 그녀를 구하면 안됐던걸까.

한은그룹이 거대병기를 타고 침공했을때, 탈취하면 안됐던걸까.

월광교에서 폭풍을 일으켰을때, 나서면 안됐던걸까.

그날 마왕성 앞에서 그녀를 대신해 상대했으면, 안됐던걸까.

....모르겠다.

그러나.

다시 돌아갔어도, 나는 분명 그렇게 했을거 같다.

그렇지만.

'....이걸, 알려야하는데.'

나는, 시간을 돌려서라도, 미래의 내게 이 사실을 알려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못됐다고.

스타더스의 아치에너미. 영원한 숙적. 악독한 빌런이 되는 내 프로젝트가, 처음부터 단단히 잘못됐다고.

빌런으로 남으려면, 지금이라도 계획을 바꿔야한다고. 세상을 위해서라도.

그러나, 전할 수가 없었다. 시간의 흐름은, 아무리 별의 힘을 가진 나라고 해서 거스를 수 있는게 아니었기에.

그렇게 내가 심각한 얼굴로 고민하던 그때.

...툭.

난간에 올려놨던 내 손에, 무언가 닿는게 느껴졌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무언가가.

툭. 툭.

내 왼손에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그녀의 손가락.

그리고 내가 고개를 돌리던 그 순간.

나는, 약간의 물기를 머금은 신하루의 푸른 눈동자와 그대로 마주했다.

"....안돼?"

작은 목소리로, 내게 그렇게 묻는 그녀.

...어차피, 마지막이잖아.

다, 없던 일이 될 거잖아.

주홍빛 태양에 비추어져, 눈물에 빛이 반짝여 숨이 막힐듯 아름다운 풍경속에서, 나한테 그렇게 말하는 그녀를 보며.

나는, 어떠한 말도 행동도. 할 수 없었다.

이내, 내 손에 조심스럽게 맞닿는 그녀의 손가락.

이내 하루의 손이 내 손등 위를 완전히 덮을 정도가 되자.

나도, 손을 살짝 움직여 그녀의 손을 마주잡았다.

"..."

그러자, 살짝 놀라는 그녀.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며, 조용히 생각했다.

...그래.

나는 스타더스를 좋아했다. 처음부터, 당연히.

그러니. 상관없는게 아닐까.

...몰라. 미래의 일은 미래의 에고스틱이 알아서 생각하겠지. 빌런이고 뭐고, 그건 미래의 내가 알아서 해결할 문제다. 걔도 눈치가 있다면 나중엔 어련히 알아서 전략을 새로 짜거나 해겠지. 어차피 없어질 시간선의 내가 걱정할 문제는 아니다. 그럴거야.

그리고.

...어차피, 마지막이니까.

다, 없던 일이 될거니까.

그냥,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해도 되는게 아닐까.

그렇게 나는 그녀의 손을 잡은채, 그냥 웃어주었다.

그러자, 그런 나를 보며 하루는 순간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활짝 웃었다.

눈이 부실 정도로.

*

퍼어어어어어엉.

퍼어어어어어엉.

"...이제, 슬슬 끝인가 보네요."

"응..."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우리는 옥상 위 노을 아래에서, 터져오는 폭발들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여전히, 손을 맞잡은 채.

...오늘의 하루도, 이제 이렇게 끝나겠지.

세상은 완전히 멸망하고.

시간은, 다시 되돌아갈꺼다.

그리고 오늘 하루의 일도 우리 둘 모두의 기억 사이에서, 완전히 잊혀지겠지.

그리고, 다시 서로 싸우는 날들로 돌아갈꺼다.

어느때와 다름없이 나는 테러를 하고, 그녀는 막고. 나는 웃으며 방송을 키고, 그녀는 사람들을 구하고. 그런 날들로.

"...하하."

"왜 웃어?"

"...그냥요."

나를 향해 의문어린 시선을 던지는 그녀에게, 나는 그렇게 말하며 손을 다시한번 꽉 잡아주었다.

그러자 뭐야...라고 중얼거리면서도, 여전히 붉어져있는 그녀의 귀.

...근데 뭐, 나라고 다를건 없을거 같았으니 가만히 있었다.

퍼어어어어어엉.

"...끝이 아닐겁니다."

"...응?"

그렇게, 점점 폭격음이. 버섯구름 같은 것들이, 우리 앞으로 점점 가까이 오는 와중에.

나는 조용히 그녀에게, 입을 열었다.

"시간이 되돌아가도. 결국 우리 둘이니까."

"사람은, 변하지 않으니까."

"언젠가 다시, 이렇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날이 올겁니다."

"그러니까."

나는 그렇게 다른 손을 들어, 그녀의 볼에 흐르는 눈물을 살며시 닦아주며. 말을 이었다.

"울지 마세요."

".....응."

그리고 그런 내말에.

하루는 붉은 눈으로도, 약간 웃어주었다.

퍼어어어어어어엉.

그리고, 그런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나는, 그녀의 얼굴에 눈을 뗄 수 없었고.

그리고.

퍼어어어어어어엉.

그렇게.

.....

시간이, 다시 되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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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협회 본부.

지상으로부터 깊은 곳에 숨겨진, 지하 벙커.

극히 일부만 이 장소의 존재를 알고 있으며, 설령 미합중국의 대통령이라고 해도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이곳.

외부와 차단되고 격리되어 있는 그곳은, 그 어떠한 능력자의 침범도 막기 위해 모든 종류의 보안이 되어있었다.

혹여나 이곳으로 이동하는 이들이 있을까.

거울은 없고, 티비도 없다. 어둠이 있는 한 자유롭게 이동가능한 능력자가 있다는 말에 이곳은 항상 밝으며, 또한 순간이동자들을 막기 위한 장치도 기본적으로 전부 되어있다.

이곳은 바로, 미국에서. 아니, 세계에서 제일 지켜야할 히어로가 머무르는 곳.

세계에서 유일하게 시간을 돌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이, '엑스 마키나'의 거주지였다.

그리고 그는.

현재, 그곳의 벽에 손을 기댄채 피를 토하고 있었다.

"쿨럭, 쿨럭."

하아, 하아.

깊은 한숨을 쉬며 숨을 헐떡이는 그.

갈색이던 머리는 노랗게 물들었고, 피부는 공포때문인지 하얗게 질린 상태에서.

그는 비틀거리며, 지하 깊숙한 곳의 복도를 걷고있었다.

'....막아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다 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쿨럭. 또한번 나오는 피.

떨리는 손을 힘겹게 부여잡고, 다리를 질질 끌며, 그는 그렇게 간신히 자신의 방으로 걸어갔다.

그가 걸어온 자리를, 피로 물들며.

"하아, 하아."

쿨럭.

이내 기어코 방에 도착하자마자, 자리에 주저앉은 그.

엑스 마키나. 본명, 제임스 마키나.

그는 피를 쿨럭이며,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은 뒤 중얼거렸다.

"....이것으로, 이 모든 일은 끝난다."

너무 시간이 지체되었다. 자신의 능력이 감당할 수 있는. 돌릴 수 있는 시간의 범위를 벗어났다.

이제 돌린다면,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한다. 그토록 인류의 위험을 막기 위해 지켜오던, 그의 목숨을.

하지만.

'...큭. 우습군. 이미 인류가 다 멸망했는데, 무슨 소용이겠어.'

그래.

최후의 생존자가 오직 그로 추정되는 만큼. 더이상 의미도 없었다. 종말을 막기위해 지금껏 목숨을 지켜왔다고? 그래. 지금이 그 종말이다. 이걸 막기 위해, 그는 지금까지 살아온거다.

다만.

"다음번엔..."

제임스는 떨리는 눈으로. 공포에 질린 얼굴로, 창백히 중얼거렸다.

...그는 모든걸 알아냈다. 이 사태가 일어난 발단과, 그 해결방법까지. 이제 시간을 돌리고, 자신이 마지막으로 밝혀낸 그 '장치'를 틀어 멸망을 막는 것으로 그는 소임을 다할거다.

비록 그 과정에서, 목숨을 잃겠지만.

상관 없었다.

그는 히어로니까.

사람들을 지키는, 세계를 구해야하는 히어로니까.

자신의 목숨따위는.

기꺼이, 내놓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자신이 어떻게든 막아냈지만. 돌려 보냈지만.

...다음번에 저것이 또 돌아온다면.

그때는, 누가 저것을 막을 것인가.

과연, 막을 수는 있을 것인가.

"신이시여... 이 세계를 구원하소서..."

그는 그렇게 자기도 모르게 마지막 말을 중얼거렸다.

그 신이 아닌, 자신의 신을 향해.

그리고 이내 그는, 자신의 심장을 더욱 강하게 움켜쥐었고.

그 순간, 하얀 지하실은 눈이 멀 정도의 노란 빛으로 가득 찼다.

그렇게

지하실뿐만이 아닌, 모든 세계가 다 노란 빛으로.

멸망한 세계가, 전부. 다 노란 빛으로 가득 찼고.

이내.

시간이, 다시 되돌아갔다.

***

에고스트림 본부, 큰집.

"흐아암..."

"오빠, 뭐해요?"

"응? 아, 티비보고 있지."

"...저게 대체 뭐길래 저렇게 집중해서 보는거에요?"

서은이는 의아한 표정을 한채 포크로 사과를 한조각을 집어먹으며, 내게 그렇게 물었다.

아침의 거실.

때마침 모두가 모여있는 그곳에서.

나는 집중해서 티비를 보고 있었다.

멸망의 순간을, 느끼기 위해.

[이시각 미국은 미국 지부 협회 창설 주년을 기념해, 자유의 여신상 앞에서 아직도 축제를 벌이고 있는 모습입니다.]

앵커의 말과 함께 화면에 잡히는 자유의 여신상의 모습.

나는 그걸, 집중해서 보고있었다.

그래, 이제 곧이다.

내가 멸망하는 시간대에 걸리는지 안걸리는지가 결정되는 순간이.

[[자유의 여신상의 머리가 갑자기 폭발하며, 비극이 시작되었다.]]

원작에서 분명히 언급되었던 그 말.

머리가 폭발하면 이제 멸망이 시작한다는 소리다.

하지만.

"..."

만약, 폭발하지 않는다면?

그 소리는 이미 멸망은 이루어졌고, 엑스 마키나의 희생으로 시간이 돌아온 상태라는거겠지.

나는 이미 모든 멸망을 경험했지만, 시간이 돌아가 기억을 못한채 이 자리에 앉아있단 소리고.

자, 그러니.

터지냐. 안터지냐.

그것이 문제로다.

나는 그렇게 집중하여 티비를 봤고.

마침내, 분침이 정시를 가르킨 그 순간.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네! 벌써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자유의 여신상 앞에서 축제를 즐기고 있는 모습입니다. 밤의 미국에서 전해드린 김유미 기자였습니다.]

"휴우..."

나는 소파에 그대로 허물어졌다.

...다행히, 내가 짬처리를 안해도 되는 시간대인가보다.

아니 뭐. 따지고보면 이미 과거의 내가 짬처리를 했다는 소리겠지만. 어차피 그건 없던 일이 됐을거니까 내 알바가 아니다. 과거의 내가 어련히 잘 했겠지.

"...다인오빠, 어디 아프신데 있어요?"

"응?"

"아니, 아까부터 막 한숨을 쉬시길래..."

그때 내 맞은편에서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은월이.

나는 그런 그녀에게 걱정말라고 말하며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안도의 한숨이었어 은월아.

나는 그렇게 다시 소파에 등을 기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느껴지는 동그란 공 모양의 무언가.

아마 저 자유의 여신상의 머리가 터지고 멸망이 시작되었다면, 나는 제일 먼저 이 수면가스가 든거부터 터트렸을거다.

다만 지금은 그 시간대가 아니므로, 이제 그럴 필요는 없고. 다시 내 방 어딘가에 둬야겠네.

"자영 언니, 그거 제가 먹던건데..?"

"에이. 서은아. 네꺼 내꺼가 어딨니. 다 우리꺼지."

"흠. 사과 맛이 달구나. 예전에 마지막으로 먹었을때는 이정도로 달진 않았던거 같은데."

"신령씨. 하나 더 깎아드릴까요?"

그렇게. 시끌벅적한 거실 가운데서.

나는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

...인터넷을 봐도 별다른 얘기가 없는 걸보니, 결국 멸망은 이대로 비껴간게 맞는거 같다. 아마 엑스 마키나가 스스로를 희생해 광범위하게 시간을 돌렸겠지.

원작에서 제대로 이 사태의 원인이 뭔지, 마키나가 어떻게 막은건지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아서 알 방법은 없지만... 하여튼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어쨌든 결국 일은 벌어졌다. 이제는 앞으로 어떻게 할 지를 생각해야지.

...아마 조만간, 갑작스럽게 전세계에 엑스 마키나의 사망 소식이 밝혀질거다. 철저히 비밀로 하던 그의 정체가 아마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어찌어찌하다 공개된걸로 기억한다.

하여튼, 뭐. 그건 이제 며칠 후의 이야기니까 됐고.

그것보다 더 중요한 생각거리가 있었다.

"....."

그건 바로, 멸망한 그 시간선에서 내가 무엇을 했느냐.

일단 내 계획상으로는 시간이 돌아가는걸 모른채 괴로워하는 스타더스를 만나, 그녀를 잘 달래서 괜히 마음고생하지 않게 하려고 했는데. 잘 했을지 모르겠다. 스타더스가 내말을 안들었을 수도 있고. 아마 영원히 모를 일이겠지.

...하지만, 만약 잘 풀렸다면.

그녀가 내 말을 믿고, 내 곁에 있었다면.

아마, 나는 내 비밀을 숨기지 않고 다 말해줬을거다. 어차피 없어질 시간대니까.

잊혀질 기억이니까.

"하하... 스타더스의 반응이 궁금하네."

"응? 스타더스요?"

"아. 아무것도 아니야."

내 조용한 중얼거림에 무슨일이지 하고 고개를 돌리는 서은이에게, 나는 웃으며 얼버무린 뒤 잠시 실례한다 말하고 내 방으로 걸어갔다.

...과연 스타더스는 무슨 반응을 보였을까.

화냈을까? 경멸했을까? 아니면 당황했을까. 어쩌면 황당해 하면서도 웃었을 수도 있겠다.

뭐. 이제는 영원히 알 수 없는 일이니.

나도 당연히, 전혀 기억이 나지 않으니까.

다만.

"..."

방의 문고리를 잡은 나는 나도 모르게, 가슴이 살짝 아려오는게 느껴졌다.

시간이 흐르고... 순간이 모여서...

"....쓰읍. 이거 왜이래. 부정맥인가."

난.

난, 네가.....

"....."

잘 모르겠다.

왜 계속 가슴이 아려오는지.

무언가 잊어서는 안되는 걸 잊은거 같은 기분이 드는지.

어째서, 심장이 계속 뛰는건지.

"진짜, 모르겠네."

나는 의자에 앉아 중얼거렸다.

시간 회귀의 부작용인건가? ...내가 회귀한 것도 아닌데. 이상하네. 그냥 마음이 허해서 그런가.

다만. 문득 드는 생각.

어째서인지 갑자기 문득 든, 그런 생각을.

나는 나도 모르게, 입밖으로 중얼거렸다.

"...스타더스, 보고싶네."

***

-달칵, 달칵.

한국 히어로 협회 본사.

스타더스의 사무실.

그곳에 앉아서 볼펜을 잡고 딸깍거리고 있던 신하루는, 달력을 보며 자기도 모르게 입을 살짝 내밀었다.

"...거짓말쟁이."

...뭐, 다음번에는 금방 다시 볼 수 있을겁니다.

마지막 테러에서 용을 타고온 에고스틱이, 그 말을 한지도 벌써 한달이 지났다.

금방 다시 볼거라더니, 벌써 한달이 지났는데 뭐가 금방인가. 평소처럼 또 세달뒤에 오고는 그게 금방이라고 할 셈인가?

"에휴..."

그렇게 신하루는 한숨을 살짝 쉬며, 의자에 등을 기대고 고개를 올렸다.

그러자 그녀의 눈에 들어온, 사무실 반대쪽 벽에 걸려있는 티비의 화면.

[이시각 미국은 미국 지부 협회 창설 주년을 기념해, 자유의 여신상 앞에서 아직도 축제를 벌이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 화면에서는, 축제를 즐기는 미국인들의 모습이 나오고 있었고.

그리고.

"..."

그녀는 어쩐지, 그 화면에 눈을 땔 수가 없어.

자기도 모르게 그 광경을, 계속해서 지켜봤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네! 벌써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자유의 여신상 앞에서 축제를 즐기고 있는 모습입니다. 밤의 미국에서 전해드린 김유미 기자였습니다.]

"....."

뭐, 딱히 별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냥 정상적이게 축제하는 모습만 보여주다 끝난 뉴스방송.

...내가 저걸 왜 보려고 한거지.

그렇게 다시 시선을 돌리고 고개를 돌려, 그녀는 다시 업무를 봤다.

그리고.

그녀가, 그러던 그때.

-툭.

"....어?"

갑자기 문서에 떨어진 물방울에, 그녀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게 어디서 떨어진거지?

그렇게 의문을 가진 그녀가, 무언가 이상한 느낌에 눈가에 손을 가져다갔고.

"....뭐야."

그리고 그녀는 그때서야.

꺼져있는 컴퓨터 화면에 반사된 자신의 얼굴을 보고.

자기의 눈 한쪽에서, 눈물 한방울이 볼을 타고 흐르고 있다는걸 깨달았다.

"....뭐야. 왜, 히끅. 왜이래."

...내가 미쳤나.

신하루는 그런 생각을 하며, 자신의 눈을 닦았다.

그러면서도.

갑자기, 문득. 드는 생각.

...무언가를, 잊은거 같다.

끝이 아닐겁니다.

시간이 되돌아가도. 결국 우리 둘이니까.

무언가 가슴 한구석에, 응어리진 감정이 침전한다.

"....진짜, 왜이러지..."

...기억하고 싶었는데. 잊고싶지 않았는데.

이대로 잊으면. 영원히 서로, 알지 못할까봐.

꼭 기억하고 싶었던 무언가를.

잊은거 같은, 이 기분.

그리고.

그 기분과 더불어.

그녀는, 갑작스럽게 어떤 강한 충동이 들었다.

...이대로는 놓칠 수는 없어.

이 감정만이라도. 제발, 기억해.

꼭.

언젠가 다시, 이렇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날이 올겁니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자기도 모르게 든 생각에 혼란스러워하던 그녀는.

어느덧 눈물을 멈추고. 어지럽던 머리도 정리하고. 혼란스럽던 감정도 정리하고.

이내. 조용히 의자에 기대 앉았다.

...왜 이러는지는 모르겠다. 갑자기 눈물이 왜 난건지도 의문. 요즘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런건가 라는 추측만 할뿐.

다만.

아까부터, 드는 어떤 생각.

그 혼란한, 의미를 알 수 없는 생각 끝에 떠오른 그녀의 마음을.

신하루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에고스틱... 보고싶다."

대체, 갑자기 어째서인지.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에고스틱이 보고싶었다.

지금, 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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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시간이 되돌아가 없던 일이 되어버렸겠지만, 멸망을 비껴나간 그날 이후.

벌써 겨울이 되었다.

"이야... 눈 펑펑 오는거 봐라."

나는 베란다에 서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확실히 집이 산골짜기 안에 있어서 그런지, 펑펑 오는 눈.

그렇게 초록빛이던 산들이 뽀얀 눈으로 하얗게, 하얗게 물들은 모습을 보며 나는 하얀 입김을 냈다.

...올해도 이렇게 무사히, 지나가는구나.

나는 창밖에 내리는 눈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도 드는 앞으로에 대한 생각.

지금까지 정말 많이 지내왔다.

끝이 보이지 않던 여정이, 슬슬 희망이 보일 지경.

첫 테러를 할때만 해도 이거 월광교 게이트 사건때까지는 살아있을 수 있으려나 했는데, 슬슬 그 날도 보인다.

종말 에피소드까지 버텨냈을 정도니까.

'....올해 안으로 PMC 육성 다 끝내고, 2기 3기 모집해야겠네.'

나는 그렇게 생각을 이어나갔다.

이제 진지하게 월광교에서 이세계 차원문을 열어 괴물들이 판치는 이후의 세계를 고민할 때가 됐다.

원작에서는 그야말로 그때부터 세계가 막장이 됐었지. 원래 막장이긴 했으나, 그때부터는 이게 아포칼립스물인지 히어로물인지 구별이 안되는 지경까지 갔다. 무슨 인구수가 절반넘게 줄었대나 뭐래나.

물론 차원문이 열리는거 자체는 막을 수가 없다. 사실 월광교에서 차원을 안뚫어도 언젠가는 열리게 되는 설정이라고 나오거든. 하지만, 적어도 피해는 줄일 수 있도록 노력해야지.

그리고 나면 이제 최종결전일테고.

"....휴우."

나는 다시한번 하얀 입김을 내뿜었다.

...일단은, 슬슬 오는게 보이는 월광교나 대비해야지. 그리고 최종결전을 대비해 스타더스도 성장시키고.

세계의 멸망을 막을 수 있는건 오직 그녀밖에 없으니까.

잠시 멸망에 대해 떠올린 나는 마음이 좀 복잡해졌다. 월광교 이후 원작 최후반부의 그 개판인 상황이 현실로 닥칠걸 생각하니 머리가 어지러워지는건 당연.

"오빠. 드디어 혼자 눈보면서 청승떠는건 다 끝났어요? 빨리 와서 코코아나 마셔요."

...그렇게 나름 진지한 고민을 하다 다시 거실로 돌아온 나는, 서은이의 손에 붙들려 코코아가 손에 쥐어졌다.

따뜻하고 달달하니 맛있긴 했다.

"맛있네."

"맛있죠? 이거 제가 탄거예요."

"진짜?"

"당연햐죠. 저도 이제 며칠뒤면 고3인만큼, 이정도는 이제 수빈언니보다 잘탄다고요!"

그렇게 말하며 약간 우쭐해하는 서은이. 어째 나한테 신기기를 설명할때보다 더 자랑스러워 하는거같다.

...코코아가 그렇게 타기 어려운건지는 오늘 처음 알았지만, 귀여우니 된 거 아닐까. 고맙기도 하고.

난 그렇게 몇분을 더 감탄해줬고, 서은이는 기분이 좋았졌는지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렇게 한참을 나랑 시시덕 거리다, 무슨 재밌는게 떴는지 스마트폰을 보는 그녀.

나는 그러는동안 다시 티비를 켜고 뉴스를 지켜보고 있었다. 별 일 없으려나...

그렇게 봤으나, 딱히 별 특별한 내용은 없어 하품을 하던 와중에.

옆에서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히히덕거리며 보던 서은이가, 나한테 이거 보라며 자신의 폰을 건내줬다.

*

[막대기가 피곤하면?]

에고스틱

에고... 스틱이니까 엌ㅋㅋㅋㅋㅋㅋ

=[댓글]=

[망하하하하 망하하하하하]

[선생님 대체 어째서 이런 글을 적는 겁니까]

[이거보고 피식한 내가 싫다]

[나만 볼 수 없어서 개추눌렀다 ㅅㄱ...]

ㄴ[나볼없추 멈춰]

*

"....서은아, 재밌어?"

"재밌지 않아요? 아이고... 힘들다 에고.. 스틱. 아하하하."

다시 생각해도 웃겼는지 피식 웃는 서은이.

그걸 보며 나또한 나도 모르게 웃었다.

...우리 서은이, 이런거 좋아하는거 보니 아직 애 맞구나. 아니지, 이건 오히려 아재같은건가..?

하여튼, 그렇게 서은이가 내 팬카페에 웃긴걸 찾아 보여주는걸 몇개 더 보며 나는 코코아를 마셨다.

...그래. 그래도 이게 좋은거다. 사람들이 다들 평화롭게 웃고 떠들고 있잖아. 원래 원작 이맘때쯤이면 한주에 테러가 몇번씩이나 나 매주 수백명이 죽으며 사회분위기가 이미 개판이 되어있다.. 스타더스, 섀도우워커등 히어로들이 무능하다며 규탄하는 시위들이 매일같이 일어날 정도니. 물론 이설아가 권력으로 다 해산시키긴 하지만.

내가 그렇게 평화를 만끽하며 거실에서 잠시 쉬고 있을때.

[...그리고 이시각, 일본 소식부터 알아보겠습니다. 서기자, 속보가 있다고요?]

때마침 티비에서는 일본 소식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래, 일본. 생각해보니 요즘 종말이니 뭐니 그런걸신경쓰느라 일본은 완전히 잊고 있었네.

나는 그제서야 소파에 등을 기댄채 시선만 티비 쪽으로 향했다.

일본이라. 썩은 정부, 협회와 카타나가 이끄는 삼협파가 매일같이 싸우는 그곳. 원작에서 삼협파가 패배하고 일본이 그냥 망한다는걸 기억한 나는, 카타나한테 살짝 귀뜸을 해줬다. 그녀의 패배 이유인 배신자의 정보를.

그래서 저번에 들었을때는 매일같이 지다가 조금씩 이기고 있다고 들었는데, 좀 나아졌으려나? 설마 아직까지도 지고 있는건 아니겠지?

나는 그런 생각을 가졌고.

그렇게 아무생각 없이 보다가,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되었다.

[네! 현재 삼협파가 일본 협회를 상대로 압도적으로 이기고 있다고 합니다. 전문가들은 내년 초 안으로 일본 협회가 무너질거라고 예측하는 모양세입니다.]

...아니, 뭐야. 너네가 왜 무너져.

당황한 나는 자세를 고쳐앉고 뉴스에 더욱 집중했다.

[이에 일협은 국제 협회에 도움을 청했지만, 거절되었다고 하는데요. 국민들이 오히려 삼협파를 지지하고 일본 정부 및 협회의 부패때문에 국제협회가 눈치를 본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있습니다. 한편 삼협파의 수장 카타나는 자신이 승리해도 협회는 존속되고 세계질서를 거스르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당황스럽네."

나는 살짝 얼떨떨하게 티비를 바라보았다.

아니, 배신자 하나 처리됐다고 저렇게 상황이 뒤바뀌어? 원작에서 매일같이 쳐맞고 결국 조직이 무너진 그 삼협파가?

음... 뭐, 좋은거겠지...? 잘 모르겠다. 나는 비등비등한 상황이 쭉 유지될 줄 알았지, 그거 하나 알려줬다고 이렇게 삼협파가 이길 정도가 되버릴거라고는 상상도 못했거든.

그래. 이제는 카타나가 은혜를 잊지 않고 나를 기억해주길 바라는게 제일 좋을거같다. 곧 빌런 회의인 카테달이 열리기도 하니까, 그때 만나게 되겠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잠시 또 계획을 세웠다.

...그전에, 일단 월광교 이후의 개판나는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우리 PMC부터 만나고 올까.

***

"좋네. 전보다 훨씬 많이 늘었는걸?"

유성그룹의 PMC, 유성스쿼드 본부.

그곳 지하의 훈련실에서, 나는 우리 PMC멤버들의 훈련 성과를 지켜보고 있었다.

"흥. 이게 뭘요. 아직 부족해요."

내 칭찬에 새침하게 답하면서도, 입꼬리가 살짝 씰룩이는 2호 노랑이.

빛의 화살을 쏘는 능력을 가진 그녀는, 전보다 실력이 훨씬 늘은 모양세를 고였다. 활 명중 정확도도, 그리고 빛의 화살의 위력도 그렇고.

그러니까 이제는 거의 초창기 스타더스랑 비슷할 지경.

물론 초창기 스타더스는 지금의 강해진 스타더스보다는 훨씬 약하지만, 그래도 A급이었다는걸 감안하면 노랑이의 실력은 대단한 성장세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파워인플레가 지속되었고, 노랑이가 내가 힘들게 찾은 원석인걸 감안해도 말이지.

근데 스타더스 얘기하니까, 요즘 스타더스는 뭘 하고있을지가 궁금하네. 또 빌런잡고 있으려나. 집에 돌아가서 팬카페나 정리해봐야겠다. ...잠깐, 왜 이런 생각을 하고있는거지. 일단 PMC 애들한테 집중하자.

그렇게 상념을 털어낸 나는, 다시 한명 한명을 봐줬다. 우리 3호 빨강이. 불타오르는 펀치를 주 능력으로 쓰고 대검도 휘두르는 그녀또한 상당히 강해졌다. 서은이가 만든 특제 훈련용 로봇과 싸울때 보면 판단력이나 공격의 위력이 전이랑 비교가 안 될 정도.

"하하, 저 잘했죠?"

"응. 잘했어."

그리고 4호 파랑이. 파랑이도 꽤나 강해졌다. 비록 아직까지 그녀가 만드는 비눗방울 자체는 약했지만... 파랑이는 어차피 다른 이들과 함께할때 진가가 드러나니 상관없었다. 그녀와 함께하는 멤버들은 강해지니까.

하여튼, 그렇게 3명을 모두 봐준 나는 이내 마지막으로 우리 PMC에서 제일 주의깊게 보고있는 1호의 실력을 테스트해봤다.

"흐아앗-!"

휘이이이이이잉. 쾅.

폭풍처럼 날아올라 번개처럼 칼을 휘두르는 그.

뒤로 묶은 그의 회색빛 머리가 휘날리며, 바람을 가르는 칼을 미친듯 휘두르는 그. 실로 남자다운 공격이었다.

그렇게 멤버들중에서도 제일 빠른 시간내에 적을 처치한 뒤, 숨을 헐떡이며 나를 올려다보는 그에게 난 고개를 한번 끄덕여줬다.

...역시, PMC 멤버들 중에는 얘가 제일 물건이다.

그렇게 훈련이 끝난 후 멤버들을 불러모은 나는, 치하를 해줬다.

"다들 수고했다. 정말 열심히 훈련한게 눈에 띄네. 이대로만 가면 좋겠다."

진심이었다.

너희들이 어서 강해져야, 2기는 니네들이 가르치지. 이게 바로 영웅 자동화 공장. 1기는 2기를 키우고 2기는 3기를 키워 PMC 능력자들을 복사한다. 그게 내 계획이었다.

하여튼 내 칭찬에 뿌듯해하는 그들을 보며, 나는 오늘 하루는 그들과 어올려주기로 결정했다. 그래. 또 히어로의 마음가짐과 정신에 대해 얘기해주면 되겠네. 스타더스를 예시로 들면서.

좋아. 교육의 시간이다.

***

그날밤.

다인이 떠난 이후, PMC 숙소.

"하암..."

방에 모인 4인방은, 하품을 하며 앉아있었다.

모인 이들이 나눈 대화거리는 당연히, 다인에 관한 것.

대충 칭찬받아서 좋은 2호, 3호와 앞으로 안심하지 말고 더욱 정진해야 한다고 말하는 1호. 그리고 졸고있는 4호가 모여있었다.

그렇게 모여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그들은, 자연스럽게 히어로들에 대한 얘기로 갔고.

"야, 그거 틀어보자. 스타더스가 저번에 용과 싸운 영상."

"그럴까?"

전투와 실전에 관한 얘기는, 현재 한국에서 가장 강한 히어로이자 다인이 늘 입을모아 칭송하는 스타더스에 관한 주제로 흘러갔다. 특히 오늘따라 무언가 아련한 표정을 지어가며 더욱 스타더스를 칭찬하던 그였다.

하여튼 다인의 주입식 사상교육 덕분에 스타더스를 본받아야할 이상이자 목표로 바라보고 있는 그들.

그런 그들이 자연스럽게, 스타더스의 전투영상을 보는건 무리가 아니었다.

"와, 쩐다..."

"어떻게 저렇게 움직이며 용이랑 맞섰지? 저걸 데리고온 에고스틱도 대단하네."

그렇게 그들이 감탄하던 그때.

화면속 에고스틱을 벽에 등을 기댄채 지켜보던 1호는, 무언가를 이상한걸 깨달았다.

"잠깐, 저 남자..."

역시 보면 볼수록, 뭔가 익숙한 느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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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세계가 갈수록 여러 빌런들의 등장으로 삐걱삐걱해도, 새로운 해만큼은 여지없이 찾아왔다.

[세계 각국 소식을 알아보는 글로벌뉴스 시간입니다. 미국이 오늘, 시간이동 능력자인 S급 엑스 마키나의 정체를 공식적으로 인정했습니다. 더붙어, 그의 사망소식을 밝혀 안타까움을 사고 있는데요. 발표된 지금까지 그의 공적들을 들은 시민들 사이에서 애도의 물결이...]

그리고 역시나 새해가 찾아오자마자 들려온 엑스 마키나의 사망 소식.

나는 그걸 보고서야 드디어 확신했다. 그래, 확실히 원작대로 시간이 한번 돌려졌기는 했나보구나.

더붙어, 그의 사망 소식으로 정체가 밝혀지며 나에 대한 주가도 뛸 가능성이 있어보였다. 저번에 카테달에서 내가 아무도 모르던 그의 정체를 공개하지 않았는가. 다들 믿지 않던가 긴가민가 했을텐데, 이번 소식으로 확실히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아! 에고스틱, 이놈이 진짜 뭔가 있구나-라고.

하여튼 그렇게 나에관해 관심이 생긴 놈들은 날 따로 알아보거나 할테고, 그러면 대충 나에대해 알게 될거다. 일단 다른건 몰라도 다른나라 약탈하러 갈때 하필 한국으로 침입해 오지는 않겠지.

어쨌든 그렇게 외국에 소문을 내서, 애초에 이놈들의 침입을 막아 스타더스가 개고생 하는거 막는게 내 목표다. 한국 빌런들중 악질들은 내가 미리 제거하는게 쉬운데, 외국 빌런들은 좀 오래 걸리는만큼 애초에 막는게 제일 좋다.

하여튼 카테달은 이런 식으로 차근차근 영향력을 넓히면 끝이다. 앞으로도 정보 몇개 더 푸는식으로 하면 되겠지.

...그래. 일단 이런 복잡한 생각은 나중에 하고.

일단 밥부터 먹자.

"잘먹겠습니다."

"네에. 맛있게 드세요."

그렇게 우리는 새해를 맞아, 식탁에서 떡국을 먹고 있었다.

싱긋 웃으며 우리가 먹는 모습을 지켜보는 수빈씨. 나도 만드는걸 같이 도왔기에, 이미 수빈씨랑 같이 간본다며 한그릇 먹어서 적당히 덜어 먹고있었다.

"맛있어?"

"네. 맛있어요 다인오빠."

생긋 웃으며 그렇게 답하는 은월이.

그래, 잘먹으니까 보기 좋네. 이상하게 요즘들어 은월이가 눈에 밟힌다. 뭔가 조금이라도 더 챙겨주고 싶은 기분? 약간 은월이를 볼때마다 약한 죄책감이 생기는데, 왜 이런 기분이 드는지는 잘 모르겠다.

...뭔가 기억나긴 할거 같은데 말이지. 이상하네.

"그리운 맛이구나. 예전에 마을 사람들이 나에게 이걸 대접하고는 그랬지..."

한편 옆에서는 갑자기 추억에 잠긴 신령씨가 뭐라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대체 언제적 얘기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하여튼 오늘의 식사자리는 훈훈하니 좋은 분위기였다.

밖에는 눈이 내리는 와중에, 따뜻한 집안에서 온 식구가 다같이 모여 떡국을 먹고있는 광경은 그야말로 보기만해도 마음 속 한구석이 따뜻해지는 광경이 있었다.

"...보기 좋네요. 그쵸?"

"네. 다들 잘 먹어주니 좋네요."

내 그런 말에 미소지으며 대답해주는 수빈씨.

우리는 그렇게 다들 먹는걸 흐뭇하게 바라봤다.

"와, 오빠. 저기 밖에 봐봐요. 눈이 펑펑 내려요!"

그때, 내 팔 소매를 잡더니 그렇게 말하는 서은이.

나는 그 말을 듣고 창밖으로 고개를 돌려봤다.

확실히, 전보다 펑펑 내리는 눈.

이번 겨울따라 눈이 많이오는 모습이다. 테러하기 안좋게.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때, 서은이가 눈을 반짝거리며 말했다.

"이런날은 눈싸움을 해야해요!"

"응?"

갑자기 나온 눈싸움에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이미 그 말을 옆에 앉아있던 최세희와 서자영이 들어버렸다.

"오, 눈싸움이라. 좋은 생각인걸? 어렸을적에 하고 커서는 한번도 한적이 없네."

"....좋아. 오랜만에 최세희한테 누가 언니인지 말해줘야겠네."

"하, 너가 날? 그 반대겠지."

"헤에. 화났어?"

"아니? 널 어떻게하면 눈사람으로 만들까 생각중인데?"

그렇게 갑자기 불붙은 최세희와 서자영.

...사실 서은이가 눈싸움하자고 한걸 듣고 우리 서은이, 아까까지만해도 자긴 이제 고3이라고 거의 성인이라고 주장하더니 이럴때는 애같다고 하려 했는데... 이래서는 누가 어른인줄 모르겠네.

뭐, 이렇게.

자연스럽게 밥을 다먹고 할 일이 정해져버렸다.

***

빌런.

테러를 일으켜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평범한 사람들에게 공포의 존재로 군림되는 이들.

압도적인 이능으로 일반인들을 위협하는, 무시무시한 그들은 평소에는 뭘하고 있을까.

답은 눈싸움이었다고 한다.

"에잇!"

"하, 이걸 피해? 이것도 피해 보시지!"

"세희언니, 자영언니. 옆에 조심해요!"

...음, 물론 스케일이 크다는 차이가 있겠지만은.

나는 그렇게 목도리를 하고 날아디니며 눈을 대포알처럼 서로에게 쏘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구경하였다. 물론 그사이에서 이상한 로봇 타고 와서 눈대포를 쏘고있는 서은이까지.

...분명 눈싸움으로 시작했는데 왜 불꽃이 튀고 번개가 번쩍이는진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다들 그러고 놀고 있었다. 이런걸보면 역시 산속에 집을 짓길 잘했단 말이지.

"음..."

그러면 나는 뭐했냐고?

나는 은월이랑 같이 눈굴리고 있었다. 저 험악한 곳에 끼지말고, 우린 조용히 눈사람이나 만들자...

장갑낀 손으로 눈을 뭉쳐 굴리는 은월이. 나도 옆에서 같이 굴렸다. 뭔가 이러니까 마음이 편해지는 기분. 대체 눈사람은 몇년만에 만들어보는거지? 어렸을적 친구랑 같이 제일 커다란 눈사람 만들겠다고 주차장에서 눈 굴리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다인오빠. 이정도면 될거 같아요."

"그래? 그럼 이제 우리 머리 놓을까?"

그렇게 머리도 굴려서 나랑 은월이는 아담한 눈사람 하나를 만들었다. 대략 내 허리까지 오는 눈사람. 심심해보여서 나뭇가지도 주워와 양 옆에 손처럼 꽂아주니 나름 그럴듯했다.

눈사람, 완성!

뿌듯해진 우리는 기념의 하이파이브를 했다. 그리고나서 배시시 웃는 은월이. 그리곤 눈사람을 요리조리 훑어보는걸 보니, 여간 마음에 들었나보다.

"하아, 이제 좀 쉴까?"

"네. 다인오빠."

그렇게 나는 숲 사이에 굴러다니는 통나무를 하나 끌고와서 염동력으로 쌓인 눈을 털었고, 그 위에 은월이가 마법을 읊자 가로로 길쭉한 보송보송한 통나무 의자가 어느새 완성되었다.

코 끝이 약간 빨개진 채, 하얀 입김을 내며 의자에 앉은 은월이. 약간 추워보이는 모습.

"은월아, 잠깐 기다려?"

"네? 네."

그걸 본 나는 옷 위에 얹힌 눈을 슥슥 턴 뒤, 집 안으로 순간이동했다.

그렇게 몇분 뒤, 나는 따뜻한 코코아 두잔을 들고 다시 눈내리는 통나무 의자 앞으로 날아왔다.

"자, 은월아. 마셔."

"아, 오빠. 감사합니다."

활짝 웃으며 컵을 받는 은월이.

눈 내리는 숲을 배경으로 긴 검은색 머리카락에, 붉은 눈. 그리고 평소에 입는 무녀복 대신 따뜻해보이는 옷을 입고 붉은 목도리를 한 채 코코아를 호호 불어마시는 그녀는, 딱 나이대에 맞는 소녀로 보였다. 원작의 중간보스격 빌런인 월광교의 병기 월광무녀가 아니라.

"언니....! 이렇게 치사하게 나오겠다 이거죠?"

"응 어쩔 불꽃 어쩔 방패~"

"진짜... 저도 그럼 생각이 있어요!"

한편 우리가 그렇게 평화롭게 눈싸움을 하며 쉬고있던 동안, 저쪽편에서는 거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온몸에 불꽃을 둘러 눈이 날아오기도 전에 녹이고 있는 서자영과, 그런 그녀를 보고 응징을 다짐했는지 어디서 대포같은걸 개조하고 있는 서은이, 그리고 이제는 날아다니는 자영이한테 번개같은 속도로 번개랑 눈을 동시에 던지고있는 최세희까지...

"...우린 그냥 여기서 코코아나 마실까?"

"...네, 오빠."

안그래도 추운데 별로 거기 끼고싶지 않던 우리는, 조용히 통나무에 앉아 구경이나 하기로 했다. 함께만든 눈사람을 딱 옆에 세워놓고, 따뜻한 코코아나 마시며.

"....."

내 옆에서 따뜻한 컵을 난로처럼 손으로 감싼채 ,조용히 미소지으며 다른 이들이 놀고있는걸 지켜보고 있는 은월이. 나는 그런 그녀를 힐끔 보고는, 코코아나 한모금 홀짝였다.

...백은월.

월광교의 무녀이자, 달의 마법을 사용할 줄 아는 그녀. 그리고 따지고보면, 전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달의 마법을 모두 완벽하게 소화할 수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리고 내가 그런 은월이를 에고스트림에 영입한건, 순전히 능력때문만은 아니었다.

저를, 그냥 죽여주세요.

...원작에서 월광교주에 의해 조종당하며, 자신이 원하지도 않는 테러를 일으켜야만 했던 그녀.

그렇게 매일밤 죄책감에 시달리던 그녀는, 끝내 스타더스에게 죽여달라 부탁하기까지 이른다. 자신의 힘을 최대한 억제해가며.

그렇게 결국 스타더스에 의해 목숨을 잃게 된 그녀는, 이제야 다 끝났다는 듯한 마지막 미소와 함께 숨을 거둔다.

...이 에피소드가 연재될 때, 독자들 커뮤니티에서는 아주 눈물바다였다. 특히 원작 스타더스에서 인물들중에 정상이 거의 없던 시기에, 이렇게 착하면서도 비극적이게 주인공의 손에 끝나는 캐릭은 그야말로 눈물샘 자극. 특히 안그래도 귀엽게 생겼는데 이토록 허무히 가는 모습에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했다.

물론 나도 그런 이들중 한명이었고.

그렇기에, 난 처음부터 은월이를 구할 생각이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던 그때.

"다인오빠..."

"응?"

"고마워요."

"뭐가?"

뜬금없이 옆에서 그렇게 말하는 은월이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눈내리는 숲속.

여전히 멤버들이 뛰노는 모습에 시선을 때지 않은채 살짝 미소지으며 말을 잇는 그녀.

"그냥... 오빠가 없었으면, 제가 이런 광경을 평생 볼 수 있었을까 싶어서요. 서은이랑... 수빈언니랑... 하율언니도. 모두, 저 처음 왔을때 따뜻하게 맞아주셔서..."

"당연하지. 우린 이제 가족인데."

"가족..."

그런 내 말을 혀에 잠시 굴리던 은월이는, 잠시 저 먼 숲을 바라보듯 하더니 약간 조용해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다인오빠. 예전에, 월광교에서 말이죠..."

그렇게 이곳에 온 이후 처음으로.

눈내리는 숲 속 저택 앞에서, 은월이는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꺼냈다.

"눈을 떴을때, 저한테는 기억이 없었어요."

다만 교주의 말로 추정하기에, 무녀복을 입은 채 그녀는 봉인에 갇혀있었다고 한다.

월광교를 만난 그게, 그녀의 첫 기억. 유년기의 기억도, 추억도 그 무엇도 없이.

그녀는, 월광교의 생체병기가 되었다.

그렇게 명목상 월광교의 무녀가 된 그녀는, 교주에 의해 월광교의 상징이 되었다. 처음부터 스스로의 자유도 없이 억압되고 통제되며, 마법을 배웠다.

그리고 교주의 꼭두각시가 된 그녀에게 다가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친구도, 가족도 없이. 오직 다른 이를 해치는 법만 배웠다.

"그래서, 전 다인 오빠한테 정말 늘, 매번 감사하고 있어요. 오빠가 없었으면 저는..."

그렇게 말하며 살짝 떨리는 은월이의 몸.

나는 그런 그녀를 아무말없이 조용히 쓰다듬어주었다. 안심하라고, 이제 괜찮다고.

이내 다시 떠는걸 멈춘 그녀는, 이내 우물쭈물하다 배시시 웃더니 내게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그래서 전, 다인 오빠를 위해선 뭐든지 할 수 있어요. 세상 모두가 오빠를 배신해도, 저만은 늘 오빠 곁에 있을게요."

"...그래. 고마워, 은월아."

"헤헤."

갑작스러운 은월이의 고백에, 나는 고맙다는 말을 하며 그녀를 쓰다듬는거 말곤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은월이는 눈이 오면 감성적이 되는거 같다.

"앗! 오빠, 은월이 둘만 뭐하는 거에요? 저도 눈사람 같이 만들레요!"

때마침 우리를 발견하고 달려오는 서은이.

그런 그녀를 향해 우리는 미소지어주었다.

...가족이라. 가족.

좋은 울림이네.

그렇게 그날은 하루종일 눈사람도 만들고, 나랑 은월이도 기어코 같이 눈싸움도 하며 지냈다.

그리고.

어느덧, 새해의 첫번째 카테달 회의의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벌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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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이 찾아온 뒤 얼마뒤.

나는 카테달에 갈 준비를 하고있었다.

"아니, 무슨 벌써 열려."

다들 할거 없나?

나는 대충 준비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사실 나야 뭐 풀 정보도 많고, 가서 아틀라스 아재도 오랜만에 보고 하니 좋긴한데... 다른 사람들도 그럴지 모르겠다.

아니면 자주자주봐서 그만큼 친해지자는 셀레스트의 큰 뜻인가? 저번에 보니까 옆자리 앉은 이들끼리는 은근 서로 인사한다음에 속닥속닥 한걸 보면 그렇게 친해지는거 같기도 하고. 원작에서도 자주 열렸다고 나오긴 했었으니.

물론 나는 처음부터 아틀라스 아재 옆에 앉아있었고, 그 다음번에는 우리 빨간 모히칸 머리 옆에 껴있어서 다른 이들을 만날 시간이 딱히 없었다. 아, 한명 있기는 했네. 일본의 S급 빌런인 카타나, 그 여자.

"....."

...음, 근데 그때 그걸 대화라 볼 수 있나? 나를 은근 경계하던 기색인 그녀한테 일방적인 정보 전달을 했을 뿐인데. 하여튼, 그래도 내 조언덕에 한순간에 전세가 역전돼 승승장구하고 있는 그녀였다. 얼마전 뉴스에서는 이제 사실상 일본 협회의 항복 선언만이 남았다고 하나? 이미 민심마저 카타나에게 있다고 했으니 말 다했다.

...근데, 카타나. 막상 나 보면 모른척하는거 아니야? 약간 토사구팽이라고 해야할까. 이제 정보를 얻었으니 입을 싹 씻는거지. 아닌가, 그래도 원작에서는 분명 은원은 확실히 갚는다고 나왔었으니 적어도 아는척은 하겠지...? 카타나에 대해선 정확히 모름으로 나는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뭐. 어쨌든 조금있다가 거기 도착하면 알게 되겠지.

그래서 나는 옷을 챙겨입은 뒤, 슬슬 셀레스트가 보낸 편지를 찢고 회의장으로 이동할 생각이었다.

"갔다오겠습니다 수빈씨."

"네 다녀오세요... 아, 잠시만요."

따뜻한 햇볕이 비춰오는 거실.

떠나기 직전 인사를 하는 나에게, 수빈씨가 웃으며 대답해주다 말고 내 앞으로 잠시 걸어왔다.

그러더니 내 코 앞에 서서 시선을 잠시 내린 뒤, 내 목 아래 옷깃을 매만지는 그녀.

"이쪽이 약간 삐뚤어졌어요..."

사락, 사락.

내 몸에 닿는 그녀의 손가락 감촉을 느끼며, 나는 잠시 조용히 서있었다. 그녀가 정리를 다 끝낼때까지.

그렇게, 잠시 거실에 우리 둘의 숨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고.

"자, 다 됐어요."

수빈씨는 그렇게 미소지으며, 내 옷깃을 마지막으로 쭉 핀뒤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거리가 가까웠다.

"감사합니다. 이제 갔다올게요."

"네."

수빈씨는 싱긋 웃으며 그렇게 대답해줬다.

...힘내서 갔다오자.

나는 그렇게 피식 웃은 뒤, 손에 든 편지를 찢었고.

그렇게, 눈앞이 다시 출렁였다.

***

"으음..."

"안녕하십니까, 에고스틱님."

피부에 느껴지는 서늘한 공기.

아까까지만 해도 따뜻했던 거실의 공기와 상반되는 약간 차가운 기운 속에서, 나는 눈을 떴다.

하얀 사제복을 입고 내게 고개를 숙이는 셀레스티아의 사제에게 고개를 작게 끄덕여준 후, 나는 긴 복도를 걸었다.

하얗고 하늘빛으로 물든 대리석 바닥에 울려퍼지는 내 발소리. 벽에 하나씩 걸려져있는 촛불은, 이곳이 일종의 성당이라는 느낌을 더욱 재현했다.

그리고.

'.....음.'

복도를 걸으며 회의장 쪽으로 갈수록 느껴지는 따뜻한 기운에, 나는 눈가를 갸웃했다.

그리고 이내 회의장 바로 앞에 도착해, 문에 건너 들어가보니.

"....오."

커다란 샹들리에 아래 탁 트여진 회의장에서는, 아래 복도와 다르게 확연히 따뜻한 공기가 느껴졌다. 전보다 샹들리에도 더 주홍빛으로 밝고, 주위에 촛대들도 전보다 많아진 느낌. 아무래도 날이 추운만큼 셀레스트가 난방에 신경을 썼나보다.

나는 그렇게 커다란 원탁에 빈 자리를 찾아 앉았다. 앉기전에 다른 빌런들 몇몇에게 살짝 미소지은채 인사를 하기도 했다. 나를보고 흠칫하고 놀라더니, 인사를 하는거였다는걸 깨닫고 그제서야 자기들도 살짝 고개를 끄덕여주는 그들.

...아니, 왜 S급들이 A급을 보고 흠칫하고 그러는거야. 내가 여기서 무력은 제일 약할걸? 해치지 않아요.

그렇게 자리에 앉고보니, 은근 여기저기서 힐끔대는 시선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저번에 엑스 마키나의 정체를 유출하고, 내가 말하고 나서 몇달뒤 그의 정체가 공개돼서 그런가보다. 아마 저 시선은 대체 쟤는 뭐하는 놈이길래 그런 1급 기밀을 알고있느냐, 뭐 그런거겠지. 상상력이 풍부한 친구라면 내가 그의 정보를 대외적으로 공개한 이후 그가 사망한 것을 두고 모종의 연결고리를 추측할 수도 있고.

뭐, 다 의도된 것이다. 어찌됐던 내 존재감을 높이는게 목적이니.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자리에 앉아있었다.

일찍 온 모양인지 여전히 좀 텅텅 비어있는 좌석들. 아직 아틀라스나 그 빨간 모히칸머리도 오지 않은 모습이다. 그런고로 난 이 회의장 주위나 구경하며 생각에 잠겨있었다. 이번 회의 끝나고 슬슬 스타더스 상대로 테러도 한번 해야되는데, 뭐하지...

거대한 샹들리에 아래, 넓은 원탁 주위를 둘러싼 하얀색 벽들. 그리고 벽에 은은하게 알록달록하게 있는 스태인 글래스들.

저 한쪽편에 거대한 태양의 모습이 새겨진 그것을 내가 잠시 지켜보고 있던 그때.

".....음?"

그쪽편에서, 카타나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검은색의 묶은머리에 하얗고 검은 천으로 이루어진 일본식 무사복을 입고, 일본도를 찬 그녀.

그리고 그런 카타나는, 누군가를 찾듯 고개를 두리번거리더니.

그녀를 지켜보던 나와 눈을 딱 마주치고는, 눈을 커다랗게 떴다.

그러더니, 내쪽으로 다가오는 그녀.

이내 내 앞으로 다가온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에고스틱씨."

"아, 네. 안녕하세요?"

그런 내 대답에, 설핏 미소짓는 그녀.

평소에 워낙 무표정한 얼굴이었어서인지, 그렇게 웃는 모습은 굉장히 색달랐다.

그렇게 내게 인사를 하더니, 자연스럽게 내 옆에 의자에 앉는 그녀.

음...?

그렇게 내 옆에 앉아, 나와 시선을 마주친 그녀는 이내 고개를 숙이며 내게 감사인사를 건냈다.

"그때, 에고스틱님의 도움으로 위기를 해쳐나갈 수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하고 있습니다."

진지한 표정으로 내 눈을 마주치며 그렇게 말하는 카타나. 눈빛이 아주 진심이었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이고, 아닙니다. 바로 옆나라에서 활동하는 동료인데, 서로 당연히 돕고 살아야죠."

"아닙니다. 도와주시지 않았으면... 저희는 아마 전멸했을겁니다. 정말 뭐라 해아릴 수 없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진지한 얼굴로 그렇게 말하는 그녀.

...음, 뭔가 이정도로까지 생각할 줄은 전혀 몰랐는데. 좀 부담스럽다.

난 그래서 헛기침을 하고, 일부러 분위기를 환기하듯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렇게 생각해주니 감사하네요. 전 그저 카타나씨, 당신과 친구가 되고싶어서 그랬을 뿐이니까요."

"친구라..."

오랜만에 들은 낯선 단어인양, 잠시 그 말을 중얼거린 그녀는 이내 아주 살짝 미소지으며 내게 답했다.

"좋습니다. 그럼 저희 오늘부터 친구인건가요?"

"네."

난 그렇게 카테달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다.

한국-일본 빌런 합작, 이제 이거 아무도 못막거든요... 물론 그 합작과정이 어째 학창시절 새학기에 친구사귀는 것처럼 간질간질한 분위기가 되기는 했는데 말이지. 이게 나라를 휘어잡는 두 빌런의 대화...?

하여튼 아직 회의 시작하기 전까지도 시간이 좀 남았으므로, 우리는 이런저런 대화를 했다. 그중에 주목할만했던건.

"이미 이기셨다고요?"

"네. 언론에는 알리지 않았지만, 이미 다 끝났습니다."

바로 카타나가, 이미 일본 협회를 정복한 뒤라는 것.

국제사회의 개입이 있을까봐 정보를 통제하고는 있지만, 이미 장악이 거의 끝났다고 한다. 이전까지 있던 썩어빠진 정치인들과 관료들은 다 처리하고, 아예 갈아치운다는 모양.

대충 계획을 들어보니, 협회는 대외적으로 그대로 존속시키면서 카타나의 삼협파는 비선실세로 있으려고 한다고 한다. ...뭔가 우리나라랑 좀 비슷한 느낌인거 같기도 하고.

이제 듣고보니 왜 나한테 그리 고마워했는지도 이해가 된다. 사실상 나덕분에 나라를 구했다고, 그러니까 나덕에 그녀가 협회를 먹을 수 있었다고 생각하나보지. 평생의 목표가 그거였으니 그럴 수 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던 그때, 내 옆에 앉은 카타나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즉, 그러니 제가 에고스틱 당신에게 얻은 은혜는 이렇게 넘어갈만한게 아닌거 같습니다. 그러니, 원하시는거 있으면 아무거나 말씀해주세요."

"음..."

그렇게 말해도, 난 딱히 부탁할만한게 없는데.

"제가 할 수 있는게 있다면, 뭐든지 해드리겠습니다."

뭐든지?

그 말을 듣자 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래, 뭐든지라고 했지...?

그렇게 내가 입을 열려고 할때.

"여, 에고스틱!"

그순간, 저쪽편에서 큰 목소리로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하고 보니 역시나, 커다란 덩치를 한채 오고있는 아틀라스 아재.

이내 허허 웃으며 나랑 인사를 한 그는, 내 옆에 앉으며 나랑 대화하느라 나랑 살짝 붙어 앉아있던 카타나를 보더니 내게 물었다. 누구냐고.

"아, 이번에 저랑 새로 친분을 쌓게된 일본의 카타나입니다."

"안녕하세요, 카타나입니다."

"하하! 그래, 에고스틱의 동료라고? 그럼 내 동료기도 하지!"

크하하! 호쾌하게 웃으며 말하는 그.

그렇게 웃은 그는 내 등을 팡팡치며 능력도 좋다고 칭찬했다. ...이건 무슨 칭찬이야?

하여튼 그렇게 내 왼편에는 카타나, 오른편에는 아틀라스가 앉았다. 아까 하던말은 끝나고 해야겠네.

그리고 잠시후.

마침내, 셀레스트가 도착하며.

회의가 시작되었다.

"...어... 거기 제자리..."

"...."

"아, 아닙니다..."

물론 조금있다가 온 우리 빨간 모히칸 머리가 소심하게 카타나에게 그렇게 말했다가, 그녀의 째릿한 눈초리 한번에 쭈구리가 되어 아틀라스 옆에 앉는 사소한 해프닝이 있었긴 했지만.

어쨌든, 그렇게 정말로 회의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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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의 S급 빌런 연맹의 리더들이 전부 모이는 회의, 카테달.

"다들 오셨군요."

각양각새의 인종들과 복장을 한 이들의 중심에.

눈을 감고, 하얀 성녀복을 입은 랭킹 1위의 빌런 셀레스트가 입을 열고 있었다.

마치 귓가에 천공의 찬송가처럼 나긋나긋하고 성스럽게까지 들리는 그녀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이어지고.

나는 그러는동안, 내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여전히 참신하고 다양한 옷차림으로 앉아있는 우리 빌런들. 저번 회의에서 온 사람들은 거의 다 온 모습이다. 아무도 안죽었다는게 신기하네. 다들 전보다 따뜻한 복장으로 왔다는게 그나마 볼만한점이다. 요즘 춥긴하지.

"...."

물론 난 다른 이들보다, 저쪽편에 뭔가 변발 비슷한 헤어스타일을 하고있는 남자에 시선이 갔다.

바로 중국의 S급 빌런, 리 샤오펑.

"....?"

주위를 힐끔보다 눈이 마주친, 내 바로 옆에 앉아있던 카타나가 왜그러냐는 듯한 표정을 하면서도 호의가 가득한 눈으로 날 보는걸 보며. 난 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중국쪽도, 리샤오펑과 정부가 대립하고 있다고 했지. 흠... 이거, 이쪽도 잘하면....

물론, 아직까지는 그냥 망상일 뿐이지만. 그래도 카타나의 경우도 이렇게 친해질줄 알았겠는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일이다.

그렇게 내가 동아시아 빌런연합을 떠올리고 있을때, 때마침 셀레스트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럼 이제, 회의를 시작해보도록 하죠."

드디어 시작인가.

나는 저쪽편에 가있던 시선을 거두고, 다시 셀레스트를 바라봤다.

성녀복을 입고있는 그녀와, 옆에 회색 기사 갑옷을 입고 앉아있는 셀레스트의 측근 아서.

그리고 역시나 첫 발언의 대상은 여느때처럼 셀레스트였고.

이중에서 아마 나를 제외하고는 제일 정보력이 높을 그녀는, 입을 열고 말을 하기 시작했다.

"국제 협회의 영향력이 갈수록 약해지고 있습니다."

그 말을 시작으로 그녀는 저번에 이어 다시 능력자들에 관한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갈수록 기존보다 훨씬 강력한 능력자들이 다수 생기고 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협회가 컨트롤하지 못하며, 점점 분위기가 이상해진다는 것이다.

뭐, 나야 이미 알고있던 내용이라 큰 관심이 가지는 않았다. 이미 파워인플레가 진행될건 처음부터 알고있지 않았는가. 그래서 PMC를 비롯해 범람할 능력자들을 컨트롤할 수단을 여러방면으로 연구한거고.

어쨌든 그렇게 셀레스트는 이어서 협회 내부 사정에 관한 기밀 몇개와, 그들이 현재 신경쓰지 못하는 대표적인 지역을 말해줬다. 특히 엑스 마키나의 사망으로 협회 내부에서 혼란이 생겼다는 말을 할때는, 당연하게도 내게 시선이 쏠렸고.

그렇게 셀레스트의 말이 끝나고.

이제 본격적으로 반시계방향으로 서로 정보공유의 장이 열렸다.

뭐 역시나 듣는데 재미는 있지만 별 도움이 안되는 얘기들.

사실 셀레스트가 이 회의의 주체자이자 빌런의 정점을 찍은 인물인만큼 정보량이 대단한거지, 다른 이들은 딱히. 그래도 참신한 얘기가 많이 나왔다. 무슨 어디 화산이 곧 폭발할거라는 얘기부터 어떤 히어로가 숨기고있는 제 2의 능력이라던가, 무슨 박사같이 생긴 녹색 고글을 쓴 폭탄머리의 남자는 아예 무기 설계도를 배포했다. 서은이한테 보여줘야지.

하여튼 그렇게 모두가 하나씩 정보를 풀었고.

일본 협회를 먹어치운 덕인지 은근 협회정보를 알고있는 카타나의 정보공유를 끝으로.

비로서, 거의 끝차례가 되서야. 내 순서가 왔다.

"...."

전에 다른 사람들이 말할때보다 나에게 훨씬 더 집중되는 수많은 시선들.

애초에 회의 시작부터 날 계속 아닌척 힐끔힐끔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았다는걸 생각하면 당연한걸까.

나는 그렇게 살짝 미소지으며, 그 모든 시선들을 다 받아냈다.

저번 회의에서 제일 파격적인, 거의 0급 기밀인 시간을 돌리는 히어로를 유출한 나. 이름부터 능력까지 정확히 맞춘 것과 더붙어, 하필 내가 말하고 나서 얼마후에 그가 죽음으로써 세상에 그의 정체가 공개된걸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즉, 지금 저들은 내가 하는 말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는 것. 내가 뭐하는 놈인지부터, 과연 이번에도 저번처럼 파격적인 정보를 풀지. 저번은 그냥 우연인지 아닌지에 관해 모든 관심이 쏠릴거다.

그리고 나는, 그런 그들의 기대를 배신할 생각이 없었다.

그래. 이번엔 이걸 풀자.

나는 그렇게 입을 열고 말했다.

"여러분, 다들 이 우주가 하나가 아니라는걸 알고 계십니까?"

그렇게, 조용한 윈탁에 던져진 내 말.

"....?"

그 말에, 일단은 다들 이해하지 못하는 모양세였다.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지 당황스럽겠지.

나는 거기서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정확히는 차원은 하나가 아닙니다. 이 우주는 여러 차원으로 이루어져있죠. 다중우주이론이라고 할까요. 일반적으로는 절대 닿을 수 없는, 다른 세계가 있다고 보면 됩니다."

뭐, 여기서 차원에 관해 깊은 얘기를 할 생각은 없다. 내가 하려는 말은 따로있거든.

"어쨌든, 제가 하고싶은말은... 듣기론, 요즘들어 각 차원을 가로막는 벽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즉, 다른 차원의 무언가들. 이차원의 존재들이 우리가 사는 세계로 넘어올 수도 있다... 그런 소문이 들리네요."

"아무쪼록 염두에 두시길."

"....."

나는 거기까지 말하고 정보를 마쳤다. 이정도면 되겠지. 더 길고 자세히 말하면 오히려 마이너스다.

그리고, 내 말이 끝난 이후.

뭔가 조용해진 원탁.

정확히는, 좀 혼란스러워졌다고 해야할까.

'...뭐, 당연하겠지.'

뭔가 듣기에는 그냥 어린아이의 망상같은, 말도 안되는 소리지만. 헛소리라고 무시하기에는 내 전적이 있다. 저번에 아무도 모르던 엑스 마키나를 정확히 맞춘 사람이 나 아니였겠는가.

그렇다고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에도 그렇다. 애초에 다른 차원이나, 이계의 괴물들이라는 말을 오늘 처음 들어봤을텐데 어떻게 믿겠어. 현실감도 없어보이는 소린데. 뭐, 갑자기 있는지도 몰랐던 다른 차원에서 괴물들이 쳐들어온다고? 듣기에도 그냥 개소리같다.

근데 또 무시하기에는 내 전적이 있다. 근데 그거 하나로 믿기에는 엑스 마키나랑 이계의 괴물들이랑은 또 차원이 다른 문제다. 그 혼란함의 결과가 지금 좀 조용했다가 소란스러워진 원탁인거고.

"....."

물론 난 부연설명 없이 가만히 앉아있었다.

이차원의 괴수들이 때거지로 밀려오는 원작의 메인이벤트, 월광게이트. 이게 일어날려면 아직 시간이 좀 남긴 했지만... 어차피 놈들과 상관없이 조만간 하나의 포탈이 열린다.

원작에선 그냥 누군가의 능력인가 하고 지나간 사건이였지만, 여기 있는 이들은 이제 알겠지. 저게 내가 말한 이차원의 통로라는걸.

"...이거, 내가 늘 에고스틱의 옆이다보니 분위기가 이상할때만 말하게 되는구만. 어허! 다들 집중하게나. 내 아주 기막힌 얘기를 들고왔다네."

그렇게 계속된 수근거림은 우리 아틀라스 아재의 호통으로 사그라들었다.

하여튼 얼마안가 아틀라스 아재의 말도 끝났고, 모히칸과 몇몇을 끝으로 회의도 끝났다.

"...더 대화할게 남은 분들은 얼마든지 남아서 얘기하시길."

그렇게 파한 회의.

일부는 떠났지만, 몇몇은 남아 자기들끼리 무슨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렇게 서로 다른 국가에 살며 멀리 떨어져있다보니, 이렇게 한번 만날 일이 있을때 좀 더 대화하다 간다는 거겠지.

그리고, 그건 우리도 다를게 없었다.

"하하! 에고스틱, 자네가 푸는 정보는 언제 들어도 역시 색다르군. 내가 자네를 인정한 이유가 있다니까, 크하하! 그래서, 아까 자네가 한 그말이 정말 사실인가?"

"...하하, 네. 저도 들은 얘기기는 하지만, 아마 유력하다고 생각합니다."

"음. 뭐, 누가 오던간에 다 물리치면 그만이지. 크하하!"

역시나 아무 생각 없는 아틀라스다운 대답이었다.

하긴, 본인부터가 물고기 인간들 수만명을 이끄는 지도자인데 이계의 생명체가 겁날리가 없지. 실제로 원작에서도 게이트에서 튀어나온 괴수들을 제일 많이 무찌른게 아틀라스의 군단이었고.

"....그 말이 사실이라면, 저희도 어느정도 염두에 둬야겠네요."

내 옆에있던 카타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뭐, 아직까지는 다들 별 생각이 없는듯한 느낌. 이계의 침략자라는 존재 자체가 두리뭉술하게 들리기도 하고, 아직 그들이 적대적이라는 보장은 없으니까. 뭐. 나중되면 다들 더 자세히 알게 될테니 그때가서 얘기하면 된다.

그렇게 우리는 몇마디 더하다가, 슬슬 헤어질 준비를 했다. 아무래도 여기는 듣는 귀도 많으니까.

"형님, 살펴가십쇼!"

"...어, 그래 그래."

그렇게 우리 모히칸의 인사도 받고, 아틀라스와도 인사를 하며 슬슬 돌아갈 준비를 했다. 이제 집에 가야지.

그리고 그때.

"잠시만요, 에고스틱씨."

"네?"

나를 붙잡는 카타나.

내가 웃으며 고개를 갸웃하자, 그녀는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말했다.

"아까 끊겨서 말을 다 못했는데, 당신에게 정말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런만큼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하고싶네요. 혹시 제가 해드릴 수 있는 일이 있을까요?"

내 눈을 마주보며 그렇게 진지하게 말하는 그녀.

나는 그런 그녀를 잠시 응시하다... 이내 입을 열었다.

"뭐든지요?"

"....네. 제가 할 수 있는일이라면, 뭐든지."

비장한 각오로 그렇게 말하는 그녀에게, 나는 그럼 아까부터 생각하던걸 말했다.

"그럼, 부탁드리고 싶은게 하나 있긴 합니다."

"네. 뭐든지 말해주시죠."

"카타나씨... 저랑 함께-"

나는 잠시 말을 고르다, 웃으며 말했다.

"-테러하지 않으실래요?"

"....네?"

비장한 각오를 해보이던 카타나는, 순간 내 그런말에 멍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내가 그럼 무슨 부탁을 할 줄 알았던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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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나씨. 저와 함께 테러하지 않으실래요?'

내 조언 덕에 일본을 반쯤 먹은 그녀가 말한, 무슨 부탁이던지 하나는 들어주겠다는 말에 내가 한 말.

카테달의 끝자락에서, 그 말을 한 이후.

"""こんばんは, Egostic-san."""

"어... 다들 안녕하세요. 곰방와."

나는 지금, 일본에 와있었다.

...음, 어쩌다 이렇게 된거지.

***

삼협파 조직원들의 인사를 받은 이후.

"편하신데 앉으세요."

일본 최대 빌런 조직이자, 협회가 사실상 기능을 잃은 지금 일본 전체의 실세. 삼협파.

그 삼협파의 수장, 카타나의 집무실에 나는 와있었다.

약간 목재로 만든 느낌을 주는 정갈하고 깔끔한 방. 한쪽에는 무슨 병서같은 것들이 벽 책장에 꽂혀있었고, 다른쪽에는 벽에 옛 일본지도 같은게 붙어져있었다. 여러모로 엔티크한 느낌.

"드세요."

"아, 감사합니다."

나에게 다기에다 차를 한잔 따라준 카타나는, 이내 내 앞에 탁자를 사이에 두고 앉았다.

따뜻한 차를 받은만큼 한모금 마셔봤다.

뭔가 깊으면서도 뒷맛이 없는 시원한 느낌.

그렇게 찻잔을 내려놓은 나는, 미소지으며 카타나에게 말했다.

"차가 아주 좋네요. 깊은 풍미가 있는게.... 직접 우리신건가요?"

"네.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이네요."

내 말에 무덤덤한 표정으로 답하는 그녀.

그러나 왠지 약간 좀 기뻐보이기도 하는 모습이였다. 표정은 큰 변화가 없지만, 뭔가 분위기가.

하여튼 우리는 그렇게 차를 가지고 짧은 대화를 했고.

이내 어느정도 분위기가 풀어진 뒤, 카타나는 다시 본격적인 얘기를 꺼냈다.

"...제가 테러를 같이 했으면 하신다는거죠? 한국에서."

그렇게 내 앞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나는 차 감상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내가 아까 말했던 테러를 언급하는 카타나.

...그래. 이게 바로 내가 일본에 오게 된 경위다. 카테달 끝나고 테러 제안만 하고 집에 오려했는데, 갑자기 끌려와버렸다.

...금방 끝날 얘기가 아닌거같으니 좀 더 개인적인 공간에서 논의해보자, 나중에 또 언제 다시 만날줄 모른다, 은혜를 갚고싶다 기타등등... 으로 말하니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만 것.

카타나랑 손잡고 편지 찢으니, 그냥 슉하고 눈뜨니까 일본이더라.

하여튼, 나는 내 앞에있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저와 함께 한국에서 테러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그게 제 부탁입니다."

"음...."

그런 내 말에 잠시 무표정으로 고민하는 그녀.

언뜻 보기에 차가워보이기도 하지만, 그건 그냥 얼굴만 그런거고 실제로 그런거같지는 않다. 표정변화가 거의 없는거 같달까.

실제로 카테달에서 내 손을 잡고 내가 지금 일본에 따라와야 하는 이유를 설명할때는 무표정인데도 그 속에 다급함이 드러났었다. 원작에서도 뭐, 감정표현을 잘 안하는 성격이라고 나왔었으니까.

하여튼, 일단은 눈앞의 카타나에 집중할때.

검은 묶은 머리카락을 하고, 도복을 입은 채 내가 한 테러제의, 나와 함께 한국에서 테러를 해주는게 내 부탁이라고 한 말을 생각하는 그녀.

그렇게 짧은 생각을 마쳤는지, 그녀는 다시 고개를 들어 내 눈을 보더니 말했다.

"그건 아닌거 같습니다."

...어라.

음, 이건 예상하지 못했는데.

그리고 내가 그렇게 미소는 짓고 있으나 살짝 멈칫한 뒤, 머리를 핑핑 굴리고 있을때.

내 표정을 보고 뭔가 오해를 있다는 듯, 살짝 빠르게 말을 덧붙이는 그녀.

"아니, 테러를 같이 안하겠다는게 아닙니다."

"...네?"

"제 말은 다만..."

살짝 헛기침을 하더니, 약간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그녀.

"저희 이제부터 친구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렇죠?"

"이건 그냥 친구 사이에 들어줄 수 있는 사사로운 일일 뿐이지, 하나뿐인 부탁으로 들어줄건 아닌거 같네요.

살짝 미소지은 채, 진지한 얼굴로 그렇게 말하는 카카나.

...원래 친구 사이에는 다른나라 가서 테러도 같이하고 그러나? 생각해보면 빌런사이에서는 그럴지도?

내가 그런 생각을 하던 사이, 그녀는 이 일을 여기서 끝내겠다는 듯 단호하게 말했다.

"그럼 함께 테러하는건 그냥 친구사이에 들어주는 걸로 하고, 부탁... 그래, 소원권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건 나중에 필요하실 때 또 말해주세요. 그때가서 들어드리겠습니다."

반론의 여지를 줄 틈도없이 그렇게 말하는 카타나.

그러니까 그녀의 말을 정리하자면, 무엇이든 하나 들어주겠다고 했는데 내가 테러 협력을 제안하자 이거는 그냥 친구사이에 당연히 해주는 거니까 부탁이 아니다. 진짜 부탁할게 있으면 나중에 말해달라, 그뜻이다.

...근데 지금 분위기 봐서는 나중에도 뭐 부탁하면 '이건 친구사이에 그냥 해주는 일이죠.' 라고 하면서 또 들어줄거 같은데? 이거 약간 아낌없이 주는 나무....

어쨌든 일단 나는 그런 그녀의 말에 고맙다고 말하는거 말고는 따로 할말이 없었다. 그런 내 대답에 무표정하면서도 약간 미소짓는 그녀.

...우리 이제 두번 만난 사이인데, 나한테 뭔가 너무 호의적인 느낌이었다. 원작으로 카타나의 성격을 알지 않았다면, 무언가 꿍꿍이가 있는게 아닐까 의심했을 정도.

물론 내가 조언 하나 해줘서 다 망해가던 삼협파가 단숨에 전세를 역전해 일본을 그냥 먹어버리긴 했다지만... 그걸 감안해도 좀 그랬다. 아닌가? 그럴만한가? 근데 카타나 성격에 그거 하나가지고 나한테 이렇게 친밀하게 나올거같진 않은데.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때.

잠시 자기 옆쪽의 창문을 바라보던 카타나는, 이내 입을 열어 내게 말했다.

"....사실, 에고스틱씨. 당신에 대해 제가 어느정도 찾아봤습니다."

"저요?"

"네. 지금까지의 행적이나, 그런 것들을 말이요."

거기까지 말한 그녀는 자신의 찻잔을 매만지더니, 다시 약간의 희미한 미소를 띄우며 내게 말했다.

"거기서 깨달았습니다. 당신 또한 저와 같은 부류라는걸요."

....같은 부류?

"같은 부류요?"

"네."

거기까지 말한 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

이내 시선을 하늘에 둔 채, 내게 말을 하는 그녀.

"에고스틱씨. 당신도... 당신의 나라를. 한국을 지키기 위해 테러를 하는게 아닙니까? 빌런으로써."

"네...?"

"...부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도 에고스틱씨와 비슷한만큼, 어느정도 이해가는 부분이 있으니까요. 당신도... 나라를 위해, 빌런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들고 일어나야 겠다고 생각한거죠?"

이제는 내 눈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하는 그녀.

그러더니 그녀는 여러 증거를 지나가듯 말했다. 희생자 없다, 국민들도 좋아한다, 나라를 지킨 적이 많다등...

...음. 뭔가 단단히 착각하시는거 같은데. 난 그냥 스타더스 피폐물 찍는거 막으려고 한거지, 썩어빠진 나라를 뒤집겠다고 빌런이 된게 아니다.

...아니지. 근데 사실상 나라를 몇번 지키긴 했으니 맞는 말은 맞는 말인가? 아닌거 같은데.

뭔가 좀 이상하긴 했지만.

어차피, 그러던 말던 내가 할 말은 정해져있었다.

"...네, 맞습니다. 빌런일도 테러일도 사실 제 나라 제 조국을 지키기 위해서 나섰던겁니다. 크흑, 알아봐주는 사람을 만날 줄은 몰랐군요."

"....역시, 그런건 줄 알았어요. "

아까의 무뚝뚝한 얼굴보다 한층 더 풀어진 얼굴로 내게 대답하는 그녀.

...음, 이래도 되나 싶긴 한데. 어쨌든 여기서는 호감도를 얻어 나쁠게 없으니 그냥 막나가기로 했다.

사실 뭐, 따지고보면 나라 구하려고 그랬던 것도 맞고.

물론 처음부터 막나가는 나라 지키겠다는 이유 하나로 들고 일어난 카타나랑 나랑은 큰 차이가 있긴 했지만, 굳이 그 오해를 깨려고 하진 않았다. 좋게 생각해주면 좋지 뭐. 오늘부터 난 애국열사 애국스틱이다.

그렇게 그 이후로 우린 쭉 대화를 나눴다.

평소처럼 무덤덤해 보이긴 하는데, 처음으로 자신과 뜻이 일치하는 사람 을 만났다는 생각 때문인지 약간 눈빛이 빛나는 느낌. 말도 뭔가 살짝 더 신난 느낌이고. 말투도 좀 더 격식없어진거 같기도 하고.

나또한 카타나의 얘기를 경청하고, 반응하며 때때로 내 얘기를 해주기도 했다.

그 이후로 드디어 다시 돌아온 테러얘기.

"테러는 구체적으로 언제 무엇을 하면 될까요?"

"음... 히어로 한명이랑 싸우는걸 부탁드리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스타더스 말씀하시는거죠? 알겠습니다. 어차피 저도 다양한 상대랑 대련하는걸 좋아하니까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는 그녀.

...근데 스타더스라는 말은 한적이 없는데 어떻게 안거지?

하여튼 그렇게 카타나가 대한민국에 오겠다는 약속과, 대략적인 테러 내용을 논의한 뒤 우리는 헤어졌다.

...물론 그 과정에서 서은이한테 왜 안오냐고 연락도 받고, 카타나의 초대로 그녀랑 같이 저녁도 먹고,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보니 카타나가 표현을 잘 못할뿐 굉장히 착하다는 것도 알게되고.

뭐 그런 뒤, 저녁.

나는 일본 삼협파 기지 근처, 어디 언덕 위 신사 같은 곳 근처에서 집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대충 이 카타달 복귀 편지지 뜯으면 다시 내 집에 가겠지. 이또한 셀레스티아의 이능인가.

"하여튼... 잘됐네."

그렇게 바람을 맞으며, 나는 약간 미소를 한 채 생각했다.

....아마 다음 테러는 카타나와 함께하는 콜라보겠지.

사실, 내가 우리 에고스트림 멤버들 대신 카타나를 섭외한 이유가 있다.

'...저번 드래곤-테러와, 멸망때 봤으나 기억 잊어먹은거 빼고는 스타더스를 해바뀌고 처음 보는거지.'

거기까진 좋은데, 난 뭔가 불길한 기분에 사로잡혔었다.

뭔가... 뭔가 이번에 스타더스 앞에 다른 여성 멤버랑 같이 가면 큰일이 날거같은 느낌.

"...."

그래. 내 본능적인 생존 경보가 스타더스 앞에 다른 에고스트림 여성과 함께 가지 말라했다. 진짜 큰일이 날 수도 있다는 직감.

그래서 난 결정한 것이다.

그래, 이번에 카타나랑 같이 가자!

카타나는 우리 에고스트림 소속 여자가 아닌 일본 삼협파 소속 여자다. 문제 해결! 직감의 경고를 잘 들었다고 할 수 있다.

'거기에 당연히 강하기도 하니... 스타더스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되겠지.'

난 멋진 아이디어를 떠올린 스스로를 칭찬했다.

완벽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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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나한테서 테러 협력 약속을 받아낸 이후.

나는 오랜만에 서은이와 함께 지하실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오빠. 곧 카타나라는 여자가 우리나라에 온다는거예요?"

"어. 전용기로 오기로 했어."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말했다.

당연히 전용기는 우리 이설아가 대주기로 했다. 든든한 유성기업만 믿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돼요. 고마워요 설아에몽...!

하여튼, 내 그런 말에 한숨을 한번 푹 쉬더니 어이없다는 듯 미소지으며 고개를 젓는 서은이.

"그래요... 오빠는 뭐 늘 그랬으니까. 뭐 어쨌든. 그러니까 테러 위치를 산정하면 된다는거죠?"

"어. 좀 넓직한 공터에, 사람들도 빨리 빠져나갈 수 있는 곳으로..."

"그리고 그게 서울 도심 근처여야 한다는거죠. 알았어요."

거기까지 말한 서은이는 뭔가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원래는 그냥 대충 정했는데, 이번 카타나는 능력이 상당히 강력해서 좀 더 신경써서 정해야했다.

그렇게 지하기지, 그곳 중심에 위치한 서은이의 작업공간인 이곳.

수십대의 모니터들이 벽면에 붙어 무언가 이해할 수 없는 코드들을 출력중인 와중에, 몇개의 모니터들이 서울 지도로 바뀌었다.

이내 알아서 혼자 뭔가 조작되더니, 갑자기 이동거리랑 인구밀도랑 등등이 한쪽에서 계산되기 시작했다.

"자, 이제 조금있으면 후보들이 나올거예요."

밀크티를 한잔 마시더니, 빨대를 입에 문 상태로 뭔가를 두들기며 그렇게 말하는 서은이.

서은이가 자동화시키겠다고 만든, 에고스트림 테러 계획 메이커 2.0이 열심히 작업중에 있었다. 제작자는 당연히 서은이와 수빈씨.

...근데 생각해보니까 빌런의 테러 계획 생성기가 어떻게하면 테러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지를 계산하고 있는게 좀 웃기긴 하네.

하여튼 나도 그렇게 서은이가 건내준 밀크티를 마시며, 장치가 굴러가는걸 지켜봤다.

대충 우리 에고스트림의 모든게 여기서 다 진행되는 만큼, 오늘도 열일하는 서은이.

이내 테러 후보지가 몇군데 나왔고.

우리를 도와주기 위해 수빈씨도 내려오셨다.

"아 수빈씨. 오셨어요?"

"네. 다인씨도 먼저 와계셨네요."

내게 살짝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는 그녀.

이내 자리에 자연스럽게 앉은 수빈씨는, 역시나 무언가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그러자 모니터에 뜨는 여러가지 팝업창.

...하긴, 수빈씨도 컴퓨터학과 출신이었지. 가끔 잊고 있었다. 평소에는 우리 에고스트림 멤버들을 뒤에서 받쳐주는 총괄느낌이라 그렇지. 사실 해킹 실력도 서은이를 보조해줄 정도는 되는 그녀.

그렇게 우리는 이후로도 회의를 계속 진행했고.

이내 최종적으로 서울 한쪽이 선정되었다. 대충 여기서 진행하면 되겠구만.

"슬슬 방송도 준비하고... 바쁘겠네."

나는 의자에 기대서 말했다.

곧있으면 카타나도 올거고, 같이 테러도 하고, 스타더스도 오랜만에 보고...

뭔가 다시 할게 많은 느낌.

그렇게 내가 앞으로를 생각하고 있을때, 문득 생각났다는 듯 서은이가 내게 말했다.

"그런데 오빠."

"응?"

"이렇게 언니랑 오빠랑 지하실에서 같이 있으니까, 옛날 생각나네요. 지하기지에서 살던 시절.

웃으며 말하는 그녀.

...옛날이라. 벌써 그게 옛날이구나.

"네가 나한테 형이라 부르던 그때 말하는거지?"

"...윽. 제가 언제요. 전 그런적 없어요. 잘못된 기억이니 빨리 잊으세요."

밀크티를 마시다 내 놀림에 볼을 부풀리더니, 시선을 확 피하는 서은이. 그 탓에 귀끝이 약간 붉어진게 눈에 보였다.

"후후...."

그런 우리를 보며 자상하게 웃는 수빈씨였다.

...하긴 처음 한동안은 나랑 서은이, 그리고 수빈씨 셋이서 거의 모든걸 다 했었지. 이후로 하율이를 시작으로 하나 둘 멤버가 추가되며, 집도 산 위에 대저택으로 옮겨가고. 에고스트림도 세우고. 서은이 키 큰것만 봐도 시간이 꽤 지났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하는건 딱히 변하지 않았지만.스타더스 상대로 테러.

다만 이번에는 글로벌 콜라보로 진행되는. 우리 에고스트림은... 진화한다!

하여튼 그렇게 잠시 지하실에서 노닥거리고.

"와. 이 카타나 언니도 이쁜거 봐."

갑자기 인터넷에 카타나를 검색해보더니 투지를 태우는 서은이를 달래 다시 일들을 준비한 뒤.

PMC도 가서 추가훈련 시키고, 뭐도 하다보니.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카타나."

"오랜만이네요 에고스틱씨."

마침내 카타나가 왔다.

***

온다고 한지 한시간만에 슝하고 날아온 카타나.

테러도 식후경이라고 한국에서 그녀한테 밥 한끼 대접한 뒤, 나는 테러 계획을 최종적으로 설명했다.

"알았습니다. 싸우다가 너무 격해지거나 승패가 결정날거 같으면 빠진다."

"네 맞습니다. 애초에 테러 자체가 쉽지 않은만큼, 너무 무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나는 카타나에게 그렇게 설명했다.

특히 혹시나 좀 밀린다 싶으면 적당히 신호주면 내가 끊겠다고. 여기서 갑자기 생사결을 할 수는 없잖아.

그런 내 걱정을 읽었는지, 카타나는 드물게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제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차피 저도 제 실력을 증진시킬 겸, 대련은 언제나 환영이니까요. 오랜만에 검을 다시 강적에 맞서 휘두를 수 있겠네요."

허리춤에 찬 일본도를 슥 천으로 닦으며 그렇게 말하는 그녀.

하긴, 검술 하나로 일본 최대 빌런조직인 삼협파를 세우고 협회도 무찌른 그녀인만큼, 실력 하나는 보장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럼 이제 슬슬 출발할까요?"

그런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

나는 떠나기전 마지막으로 가면과 옷매무새를 확인하고 카메라도 다시한번 챙겼다.

카타나또한 도복을 정갈하게 갖춰입고, 늘 그랬듯 검은 머리를 깔끔히 뒤로 묶은 모습.

좋아, 이제 가자.

나는 그렇게 그녀의 손을 잡고 테러 장소로 향했다.

대한민국 1위 빌런과 일본 1위 빌런의 테러 콜라보, 드디어 시작되다.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하구만.

...스타더스 반응은 좀 무섭긴 한데, 하여튼.

그렇게 나는, 방송을 킬 준비를 했다.

오랜만에 테러 한번 달려봐야지.

***

A급 히어로 스타더스, 신하루.

그녀는 최근들어 약간의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다.

"....."

갈수록 늘어나는 빌런들.

특히 뭔가 이들의 방향성이, 어느 한쪽을 가르킨다는 방향이 들었다. 지금까지는 다 상대가능 했지만, 과연 나중에도? 무언가 큰게 올 것만 같은 느낌.

근데 그보다도.

그녀가 불안감을 느끼는 따로 있었다.

'...에고스틱, 얘는 대체 언제오는거야..."

바로 해가 바꾸었는데도, 아직도 에고스틱이 오고있지 않다는 것.

"...금방 온다며."

'...뭐, 다음번에는 금방 다시 볼 수 있을겁니다.'

그래.

그는 분명 그렇게 말했었다.

자신을 향해 웃으며, 마치 당연하다는 듯. 곧 다시 볼게 확실하다는 듯.

그렇게 그는 떠났고.

수개월이 지나고 해가 바뀌었지만, 그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물론.

"..."

최근들어 에고스틱에 대해 떠올릴 때마다 드는, 흐릿한 감정과 두통.

대체 왜 이런 감정이 드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에 대해 생각할때면 가슴 한구석이 답답했다.

특히 혼자 갑자기 눈물을 흘린 몇달 전 이후로. 계속.

뭔가 놓친, 잊어버린 기분.

어딘가 아련하게 심장이 두근거리는 느낌.

당장이라도 그를 눈앞에서 보면 깨달을 것 같은 이상한 감정.

결국 그 모든 것들은, 에고스틱을 보고 싶다는 단 하나의 생각으로 귀결되었다.

그녀는 몰랐지만, 오직 감정만은 남았기에.

"음...."

...사실 늘어나는 빌런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역설적으로 빌런을 보고 싶어하는게 이상하긴 했지만. 그녀는 에고스틱은 특별하다는 말로 스스로를 정당화했다.

하여튼 결론은, 최근들어 에고스틱 생각이 전보다 자주 난다는 것.

이제는 자신도 모르게 집 벽 한쪽에 증거용으로 걸어놓았던 에고스틱의 망토를 서서 만지작거리며 대체 언제 오나...라고 한숨 쉴 정도까지 되었다. 물론 다시 정신차리고 나서 그러고있는 자신을 발견한 뒤 황급히 스스로 떨어지기는 했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스스로를 볼때마다 에고스틱은 빌런인데... 라는 생각에 자꾸 멈칫하게 되긴 했지만. 그녀는 애써 무시했다. 자신은 그냥 담당 빌런한테 관심을 가지는 것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거라고. 아마도.

'정말?'

"..."

...마음의 소리가 때때로 반문할 때도 있었지만, 어쨌든 그건 그거고. 그녀는 한편으론 주어진 일들은 또 완벽하게 다 처리하고 있었다. 빌런이란 빌런은 싸그리 다 무력화시킨 후 수용소로 보내버리고, 일도 철저히 하고. 협회장이 그녀덕에 협회가 굴러간다고 칭찬할 정도로.

...물론 짬짬히 에고스틱 팬카페에 들어가 그의 동향을 알아보는 시간이 전보다 늘기는 했지만. 그녀는 이것도 업무의 한종류라고 애써 정당화했다.

그렇게 팬카페에서 그의 팬이 쓴 예측글도 읽어보고, 일렉망고니 보라망고니 드래곤망고니 별 웃기지도 않는 글에는 비추를 꾹 눌러주면서.

하루하루 달력만 보며 살아가던 어느날.

[안녕하세요 여러분. 에고스틱입니다!]

드디어, 마침내 그날이 왔다.

"스타더스씨!"

"네. 알고있습니다."

그녀는 다급히 소식을 전하는 협회 직원 앞에서 간신히 표정관리를 하며, 출격할 준비를 했다.

드디어. 드디어 그를 볼 수 있구나.

마지막으로 본 게...

"....."

순간 그녀의 앞에 노을과 옥상, 탁 트인 하늘이 떠올랐으나. 이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미처 그녀가 인지하기도 전에.

마지막으로 본 게... 공원. 그래, 마지막으로 본 건 공원이었지. 용을 탄 그가 내린 공원. 그곳에서 마지막으로 본 이후로 보는거겠네...

자기도 모르게 어째서인지 가슴이 아리긴 했지만, 그녀는 애써 떨쳐냈다. 그래. 하여튼 드디어 에고스틱을 보는구나.

'....'

거기에 방송을 살짝 봤을때 그의 근처엔 아무도 없어보여 신하루는 자기도 모르게 가슴이 약간 뛰었다. 이번에는 드디어, 그가 혼자 온거같다. 다른 여... 빌런들 없이.

그렇게 신하루는 약간의 희망과 기대를 품고 날아갔다.

...그때까지는 그녀는 기분이 좋았었다.

그때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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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어느 도심.

높은 건물들이 드문드문 서있고, 차들이 바쁘게 도로를 지나치는 그곳에서.

한 남자가, 그 풍경을 탁 트인 하늘 위에 서서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이 화면을 통해 나오고있었다.

바람에 펄럭이는 검은색의 망토, 머리에 씌워진 마술사 모자, 그리고 표정을 반쯤 가리는 하얀 가면까지.

현재 대한민국에서 제일 인기있고, 한번 나왔다하면 화제의 중심인 그.

바로 에고스틱이, 오랜만에 방송을 켰다.

"해가 바뀌고 찾아뵙는군요. 안녕하셨습니까 여러분. 에고스틱입니다!"

카메라를 향해 씨익, 특유의 웃음을 지어보이는 그.

저번 방송 이후 무려 수개월간 사라졌다가 드디어 오늘에서야 갑자기 틀어진 방송인만큼, 사람들의 열기는 그야말로 뜨거웠다.

그의 방송이 진행되고 있는 에고스트림 페이지의 채팅창이, 눈으로 읽기 힘들정도로 빠르게 채워질만큼.

*

[텐련 드디어왔네 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시즌 524번만에 망고스틱 개같이 등장ㅋㅋㅋㅋㅋㅋㅋㅋㅋ]

[드디어 시발!!! 믿고 있었다고 망끼얏호우~~~~!!!]

[아ㅋㅋㅋㅋㅋ 오늘 다 뒤졌다 치킨 딱대ㅋㅋㅋㅋㅋㅋㅋ]

[아니 망고야 이제 에고스트림 멤버가 몇명인데 왜 테러를 안해!!! 형 나 미치는거 보고싶어?]

[에고스틱 방송을 경건하게 맞는법 1)티비를 튼다 2)맥주를 딴다 3)치킨을 시킨다 이게 야스지ㅋㅋㅋㅋㅋㅋ]

[자택근무라 바로 방송 볼 수 있는 승리의 자택충은 개추ㅋㅋㅋㅋㅋ]

[망고방송=보고있으면 그냥 시간 녹음ㅋㅋㅋㅋ]

[올해들어 처음으로 가슴이 뛰네 아ㅋㅋㅋㅋ 이게... 사랑?]

[이 방송을 도입부만을 보고 병이 나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방송을 켜 에고스틱의 얼굴을 본 그시각, 비로소 내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

그런 사람들의 뜨거운 반응을 아는지 모르는지.

에고스틱은 여전히 의뭉스러운 미소를 지은 채, 하늘에 떠서 망토를 펄럭이며 말을 이을 뿐이었다.

"네! 여러분, 다들 격한 환영 감사드립니다. 아무래도 상당히 오랜만에 하는 테러인만큼, 이번에는 정말로 큰걸 준비해 왔습니다!"

짜잔.

팔을 벌리고는 그렇게 말하는 그.

당연히 채팅창은 그의 말에 더욱 바쁘게 올라왔다. 다들 당장이라도 그가 무엇을 할지, 누구를 데리고 오는건지 궁금해하는 분위기.

그러나 에고스틱은 당장 보여주지 않았다.

단지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지은채, 당연하다는 듯 이렇게 말할뿐.

"그러나 역시, 좋은 테러에는 좋은 상대가 있어야 비로소 빛나는거겠죠?"

"그러니 기다리겠습니다. 저의 히어로, 스타더스. 그녀가 오기까지."

"자. 빨리 와주시길."

그는 씨익 웃으며 말을 마쳤고.

그 시각.

한 쪽 하늘에서, 누군가 날아오고 있었다.

금빛으로 반짝이는 노란 머리를 휘날리며 날아오는 스타더스, 그녀가.

***

그가 드디어 왔다.

그 소식은, 신하루 그녀가 곧바로 날아가게 하기에 충분했다.

빌런이 나타났다는 소식에 히어로로서 바로 뛰쳐나간걸까.

아니면 에고스틱, 그였기에 누구보다 빠르게 날아간걸까.

그녀로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두근. 두근.

그의 저번 테러 이후, 자유의 여신상이 나오던 티비 프로를 보다 느꼈던 이상한 감정.

그만 생각하면 뛰는 가슴, 무언가를 잊은듯한. 그 느낌.

그 이상한 감정이 왜 생기는지, 대체 이것의 정체가 뭔지.

그를 만나면, 깨닫게 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

그렇기에 신하루는 날았다.

에고스틱, 그를 보기 위해서.

찬 바람을 가르고,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협회 건물에서 한참을 떨어져있는 에고스틱이 등장했다는 그곳으로.

그렇게 해서 그녀는, 드디어 만날 수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스타더스씨."

"...에고스틱."

찬 바람이 휘몰아치는 허공.

그곳에서, 두 사람은 만났다.

*

[드디어 스타더스도 왔네 캬ㅋㅋㅋㅋㅋㅋ]

[에고스타! 에고스타! 에고스타! 에고스타! 에고스타! 에고스타!에고스타! 에고스타! 에고스타! 에고스타! 에고스타! 에고스타!에고스타! 에고스타! 에고스타! 에고스타! 에고스타! 에고스타!에고스타!]

[그냥 에고스틱이랑 스타더스 둘이 같이 있으면 그날 방송 끝임ㅋㅋㅋㅋ 미친 케미]

[정실은 스타더스라는건 고구려의 수박도에도 기록된 사실]

[헉 지금 스타더스 찬양하는 채팅 계속 지워지는데 뭐임? ㄷㄷㄷㄷㄷㄷ 모두 숨어!]

[이 채팅창 그 해커 여자애가 관리하지 않음?ㅋㅋㅋㅋㅋ]

[아 그래도 스타더스는 정실읍읍]

*

그렇게 채팅창에서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무슨 대화를 나누던 말건.

스타더스는, 조용히 자신 앞에 그를 응시했다.

"에고스틱...."

"네 접니다. 계속 부르시네요. 그렇게 애타게 안부르셔도 어디 도망 안갑니다. 하하!"

그렇게 농담을 던지며 웃는 그.

그러나 스타더스는. 신하루는, 웃을 수 없었다.

"....."

그의 앞에 서서.

비로서. 그의 웃는 얼굴을 보자.

휘몰아치는, 어떤 감정들.

여러 시간이 흐르고. 네가 나를 위해주던 그때, 있지. 그때 순간 순간들이 모여서.

난, 네가.....

그녀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나.

...끝이 아닐겁니다.

시간이 되돌아가도. 결국 우리 둘이니까.

언젠가 다시, 이렇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날이 올겁니다.

그러니까

울지 마세요.

어째서인지.

지금 그녀의 앞에 있는 에고스틱, 그의 웃는 모습을 보자 어째서인지 드는 벅차오르는 애틋한 감정.

왜인지, 대체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신하루는, 그의 앞에서 심장이 뛰는걸 느꼈다.

그의 옆에 서고 싶다.

그와 함께하고 싶다.

그가 나만 바라보게 하고 싶다.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감정들.

그러나 분명하게. 선명하게 떠오르는 그런 감정들.

그러나 그녀는 일단은 꾹 눌러담았다.

...그래. 지금은 히어로와 빌런으로써 만난거니까. 다른 생각은 하면 안된다. 이 이상한 감정은, 일이 다 끝나고서 말하면 되겠지.

그러나.

그녀를 향해, 나는 이렇게 마음이 복잡한데. 혼란스러운 감정에 너의 눈을 마주치는 것도 힘든데. 자신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그저 웃고있는 그의 얼굴에.

신하루는, 서운한 마음에.

자기도 모르게 그에게 톡 쏘듯 묻고 말았다.

"...왜 안왔어?"

"네?"

"금방 온다더니, 왜 이제야 왔어?"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애써 서운한 마음을 눌러담아. 그걸 날카로운 추궁인척. 그에게 그렇게 톡쏘듯 말할 수밖에 없었다.

"...하하, 제가 그랬었나요?"

...그리고 그런 자신의 말에,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는 듯 웃으면서도.

그녀만이 눈치챌 수 있게, 당황한듯 말을 돌리며 슬쩍 눈치를 보는 그를 보며.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살짝 웃었다.

***

해가 바뀌고, 처음으로 일으킨 테러.

하늘 위에서 방송을 키고 스타더스를 부를때만 해도.

나는 상황이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금방 온다더니, 왜 이제야 왔어?"

"...하하, 제가 그랬었나요?"

나를 향해 차가운 눈길로 그렇게 쏘아붙이는 스타더스.

그런 그녀에게, 나는 일단 웃으며 그렇게 답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땐 정말 금방 만날 줄 알았지. 실제로 만나기도 했을거다. 종말 이후로 다 없던 일이 돼서 기억에 날아가서 그렇지.

그러나 그런 말을 할 수 있을리 만무. 별 수 없이 이렇게 얼무버릴수밖에 없던 것이다. ...아니, 그리고 이걸 진짜 꼬집을 줄을 몰랐네. ...화난건 아니겠지?

일단 나는 그렇게 화제를 바꾸며, 슬쩍 채팅창을 봐봤다.

*

[금방 온다더니 왜 이제야 와? 헉... 이거 연인 사이에 하는 대사 아닌가요?]

[헉 둘이 사이 뭐야뭐야]

[벌써 들린다 쏟아져나올 열애설들이... ㅋㅋㅋㅋ]

[스타더스X에고스틱 조합은 ㄹㅇ 인정이지ㅋㅋㅋㅋ 둘이 사이 발표하면 대한민국 전국민은 무수한 축하를 날려줄 것]

[A급 히어로 스타더스 S급 히어로 애플망고 히어로커플 탄생ㄷㄷㄷ 대한민국 안전지대화 캬ㅋㅋ]

[안된다 이놈아! 에고스틱은 달빛망고가 국룰이라고 ....!!!]

[아닌데? 일렉망고인데? 개소리ㄴㄴㄴ]

[아니 왜 또 싸움나는데 아ㅋㅋㅋ 근데 누가봐도 망고스타가 맞는데 왜자꾸? 이상한 말들을?]

[팩트)저건 걍 누가봐도 히어로가 빌런이 테러예고해서 미리 대비해놨는데 안나타나서 상대하려고 준비해뒀던게 다 물거품되서 화난거잖아 연애는 무슨 과몰입ㄴㄴㄴ]

[그런?가?]

*

....다행히 자기들이 알아서 북치고 장구치며 납득하는 모습이었다.

하여튼 이게 중요한건 아니지.

나는 다시 스타더스를 바라봤다.

"....푸흡."

그때, 살짝 얼타는 나를 보더니 약간 웃는 그녀.

"...아니, 왜 웃으십니까?"

"그냥. 웃겨서."

"....참 나. 빌런을 보고 웃다니. 당황스럽네요. 하."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피식 웃었다.

...다행히 아까 그건 장난이었나보다. 아니, 히어로가 빌런한테 장난을 친다는건 말이 안되니까 도발이라고 해야할까. 하여튼.

나는 그렇게 미소짓는 그녀를 보며, 나도 모르게 똑같이 미소지어 보인 것이다.

오늘따라 웃는 그녀의 얼굴에, 시선을 뗄 수 없기도 했고....

'...내가 미쳤나.'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상념을 잠시 털어냈다.

정신차려. 프로페셔널한 빌런이 이러면 안돼지. 전문가답게 행동하자 전문가답게.

...그래도, 오늘따라 신하루를. 아니, 스타더스를 직접 보자 묘한 기분이 들기는 했다. 스타더스는 미소지을때 제일 아름답기도 했고.

하여튼 그렇게 스타더스와 난, 잠시 서로를 마주보며 웃고있었다.

*

[분위기 모야모야 둘이 뭐함? (´,,•ω•,,`)]

*

...물론 채팅창을 보고 빠르게 정신을 차렸지만 말이다.

아니, 몇초 보지도 않았는데 호들갑은. 이거 눈치보여서 테러 제대로 하겠어?

하여튼, 나는 웃으며 본격적으로 테러를 시작할 준비를 했다.

어째 요즘들어 직감이 불길해서 은근 걱정했는데, 웃고있는 스타더스 보면 분위기가 좋아보여서 다행이였다. ...사실 테러가 분위기가 좋은게 이상하긴 한데. 아무튼.

그렇기에, 나는 걱정없이 다음 순서로 일을 진행할 수 있었다.

"자! 크흠, 어쨌든간에 이제 테러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가 되었군요. 여러분, 놀라지 마세요. 어렵게 모셨습니다!"

"응...?"

그렇게 고개를 갸우뚱하는 스타더스를 보며.

나는 잠시 순간이동 했다.

근처 건물 옥상으로.

"아, 드디어 제 차례인가요?"

"네 카타나씨. 당신의 실력을 보여주세요. 아 그리고 아셨죠? 상황이 안좋다 싶으면..."

"네 알겠습니다. 최선을 대해보죠."

나를 향해 옅게 웃으며 대답하는 카타나.

나는 그런 그녀를 향해 웃어주며, 그녀의 손을 맞잡은 뒤 그대로 다시 스타더스 앞에 나타났다.

"자 소개합니다! 일본에서 여기까지 와주신 제 오랜 친구, 일본 빌런 랭킹 1위 카타나입니다!"

"...안녕하세요."

카메라를 보며 살짝 고개를 숙이는 그녀.

막상 방송 앞에 서니까 긴장했는지, 약간 굳은채 떨면서 내 손을 좀더 쎄게 쥐어잡는 카타나였다. 그래서 나도 긴장하지 말라고 손을 꾹 눌러줬다.

그리고.

"...하?"

그러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보더니.

아까까지만 해도 미소를 짓던 스타더스의 얼굴에서, 그대로. 빛이 사라졌다.

갑자기 어두워지는 분위기.

뭔가 아까보다 요동치는 불길한 감각과 탄식하는 직감.

....어라. 이게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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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카타나를 소개한 이후.

채팅창은 그야말로, 광기로 물들었다.

*

[???????? 누나가 왜 거기서나와????]

[상상도 못한 정체 ㅅㅂㅋㅋㅋㅋㅋㅋㅋ]

[망고스틱X카타나 한일콜라보 실화냐? 진짜 에고스틱은 전설이다....]

[저 일본여자가 누군데??]

[정보)카타나는 일본의 S급 빌런으로 일본 최대 규모의 빌런조직 삼협파의 리더이며, 일본 정부와 협회에 대한 신뢰도가 저 끝으로 추락해서 요즘 일본대중이 실질적인 히어로로 취급하는등 제일 좋아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삼협파가 협회를 먹었다는 소문이 도는 이때 사실상 일본 실세라 봐도 됨ㅇㅇ]

[고마워요 설명충웨건!]

[ㄹㅇ이제는 하다하다 국제적으로 노네ㅋㅋㅋㅋ]

[카타나 저 여자가 일본에서 우리나라 망고급으로 핫하지 않음? 왜 여기서 나와 본국에서도 얼굴 잘 안비추는 사람인데ㄷㄷ 인맥보소 ㅅㅂㅋㅋㅋㅋ

[매력을 주체하지 못해 다른 나라 빌런들마저 홀리는 망고... 그는 도대체?]

[아니 근데 ㅈㄴ이쁘네 요즘 빌런들은 원래 이럼? 에고스트림부터 시작해서 ㄹㅇ 말안됨]

[나는 번역기를 통해 당신과 소통할 수 있습니다. 우리 나라의 빌런 카타나가 왜 저기에 있습니까? 굉장히 당황스럽습니다. 하지만 즐거운.]

[かたなちゃんかわいいwwwwwww]

[어어 채팅창에 갑자기 일본어 왜이리 올라옴 멈춰!]

*

다 읽을 수도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올라오는 채팅창.

그러나 나는, 거기에 신경 쓸 틈이 없었다.

"....."

아까까지만 해도 내 앞에서 웃고있던 스타더스.

그랬던 그녀의 표정이 그림자에 가려진 채, 주위에 심상치않은 기운이 퍼지기 시작했기 때문.

어느 정도나면, 카타나도 무언가 이변을 눈치채고 고개를 갸웃거릴 정도로.

공기가 무겁게 짓눌렸다.

"....하하."

그러나 그런 상황속에서도 나는 일단 웃어봤다.

아니,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야. 내가 뭔 잘못을 한거지? 난 분명 직감이 시키는대로 다 했다. 근데 왜 분위기가 이 모양이 됐다는 말인가. 누가봐도 지금 스타더스 심기가 심상치 않아보이는데. 외국 빌런을 데려와서 그런가? 그 가능성이 제일 유력하다. 쓰읍. 어떡하지.

'아니지, 오히려 좋은거 아닌가?'

그때, 난 생각의 방향을 바꿨다.

위기는 곧 기회. 지금 스타더스가 화났다는건, 오히려 더욱 싸움에 진심으로 임한다는 소리다. 즉, 그만큼 능력이 더 성장할 수 있다는 소리.

'....카타나가 좀 걱정되긴 하는데.'

뭐, 카타나도 일본 빌런들 중에 원탑 먹은 이니 스타더스와 충분히 호각으로 붙을 수 있을거다. 정 안되면 도망치라 하면 되고.

그렇게 빠른 시간안에 머리속으로 판단을 마친 나는, 다시 활짝 웃으며 카메라를 보고 말했다.

"네! 다들 예상하셨다시피, 오늘은 제 오랜 친구 카타나씨가 특별히 절 위해 싸워주셨다 하셨습니다. 일본 제일의 검술 실력을 한번 보여주시죠, 카타나씨!"

"...네, 알겠습니다."

그런 내 말에 카타나는 어색하게 로봇처럼 고개를 삐꺽 끄덕였다.

....잘 할 수 있겠지?

벌써 가지 말라는 듯 긴장된 시선으로 나를 보는 카타나에게 응원을 건내준 쥐, 나는 손을 놓고 순간이동으로 현장을 빠르게 도망쳤다. 아까부터 스타더스 주위의 공기가 점점 더 무거워지고 있다고...

이제는 내 손을 떠났다. 내가 할 수 있는건 응원뿐...!

그렇게 내가 떠나서, 근처 건물 위 옥상의 숨겨진 곳으로 자리를 잡은지 얼마나 지났을까.

-콰아아아아앙.

내가 떠나온 곳에서, 갑자기 굉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시작된 거 같다.

***

'....짜증나.'

짜증난다. 그게 스타더스의 머리속에 드는 생각이었다.

...에고스틱 오랜만에 테러를 한다더니, 어디서 일본인 여자를 데리고 온 것도. 그녀랑 손을 꼭 붙잡고 있는 것도. 친구라고 지칭하는 것도 다 짜증났다. 화난건 아니다. 그냥 단순히 짜증이 났을 뿐이다.

이미 웃음은 지워진지 오래. 그저 눈앞에 아찔하게 저 여자와 손을 잡고있던 에고스틱의 모습이 계속해서 보일 뿐이었다.

....하, 진짜. 어이가 없어서. 둘이 무슨 사이길래 손을 잡고 나타나? 테러하면서?

물론 이성적으로 생각했을때, 당연히 순간이동으로 데리고 온거니 손을 잡을 수 밖에 없었던 거지만... 그래도 스타더스는 화가 났다.

왜인지는, 스스로 알지도 모른 채.

'....그래.'

그녀는 잠시 심호흡을 한 뒤 생각했다.

그녀가 화가 난건, 에고스틱이 다른 빌런을 데리고와서다. 그것도 외국 빌런을 한국으로 데리고 와? 이건 아니지. 히어로라면 분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거다.

'....그러니, 일단 저 눈앞에 있는 여자를 처리하는게 합리적이지.'

그렇게 스타더스는 냉철하고 이성적이게 결론을 내렸다. 카타나라는 저 빌런을 박살낸 후, 한국에서 쫓아내기로.

그리고.

...에고스틱을 어떻게 할지는, 하. 조금있다 생각하자.

그녀는 냉소적으로 웃으며 그렇게 생각했다.

".....그럼 잘 부탁합니다."

그때, 아래쪽에서 들리는 목소리.

어느새 에고스틱이 떠나고, 지상으로 내려와있는 카타나라는 여자.

검은묶은 머리가 뒤쪽에서 휘날리고, 도복을 입은 채 일본도를 꺼낸 그녀를 보며.

스타더스는 진지한 표정으로, 주먹을 쥐었다.

그렇게 그녀의 주먹에 노란색 빛이 뿜어져 나오고, 카타나가 바람처럼 날카롭게 그녀를 향해 칼을 든 채 뛰어오르며.

굉음과 함께, 허공에서 격돌이 시작되었다.

...이 여자는, 일단 여기서 무조건 쓰러트린다.

스타더스의 그런, 굳은 다짐과 함께.

***

에고스틱의 요청으로 스타더스와 싸우기 이전.

카타나는, 미리미리 스타더스에 대해 알아보았다.

"흐음...."

신체 강화 능력에 날아다닌다라...

전형적인 물리파 능력자다. 다만, 이때까지 카타나 그녀가 맞서왔던 그 어떤 물리적인 공격을 쓰는 상대보다 강력한.

그렇다 하더라도, 원거리 공격수단이나 특별한 능력이 없다면.

카타나는, 검을 든 자신이 이길거라고 확신했다.

"흡."

그렇게 다시 서울의 도심.

카타나는 검을 들고,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엄청난 속도로 하늘을 쏘아다니며, 스타더스를 압박하는 그녀.

스타더스와 카타나. 둘 정도의 능력이 되면 싸움은 더이상 일반적인 전투의 느낌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범인은 눈으로 쫓을 수도 없는, 현란한 무예와도 같이 보이는 둘의 풍경.

*

[와 ㅅㅂㅋㅋㅋㅋ 대체 둘이 얼마나 빠르게 날아다니면 뭐 카메라에 보이지가 않냐?]

[뭔가 여기저기서 노란 빛이 번쩍하고 막 칼이 반짝이는데 하도 순식간에 지나가서 뭐 안보임ㅋㅋㅋㅋㅋ]

[카타나 ㄹㅇ 지리네 검술원툴인줄 알았더니 무슨 동에번쩍 서에번쩍 사방에서 나타나냐 와ㅋㅋ]

[둘이 서로 피해를 주고 있기는 한거냐? 하도 빠르게 지나가니 뭐가 보여야지ㅋㅋㅋㅋ]

*

랭킹은 아직까지도 A급이나, 실질적으로 이제는 웬만한 S급 능력자들보다도 강한 스타더스.

그리고 자신의 검술과 능력 하나로 수많은 이들을 아래로 모았으며, 자국 최대 규모의 빌런 연합을 만들어 협회를 박살낸 카타나.

특히, 스타더스도 카타나를 봐줄 생각이 없었고.

카타나또한, 이 기회에 자신의 능력을 한 단계 성장시킬 생각으로 진지하게 임하고 있었던 만큼.

둘의 승부는, 그야말로 피튀기는 혈전이었다.

'...역시, 상대는 정면승부는 꺼리는군.'

그시각, 카타나.

그녀는 바람을 가르는 속도로 허공답보를 하며, 그렇게 생각했다.

검기를 두른 채 빠르게 휘둘러지는 길고 날카로운 그녀의 검은, 스타더스가 접근하기 힘들게 하였다. 특히 카타나의 반사신경으로는 스타더스가 어디에서 오던 전부 검을 휘둘러 막아낼 수 있으니.

반면 스타더스는 오직 주먹만으로 승부를 보니, 공격만 전부 검으로 막아낼 수 있다면 카타나에게 유리한 상황.

그러나 능력을 응용해서 지상에서 하늘로 높이 뛰어오른 뒤, 다시 건물의 벽을 차서 그 힘으로 날아다니는 카타나와 다르게 스타더스는 스스로의 능력으로 자유롭게 날아다닌다는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역시 스타더스에게 유리한건 아니었다.

"...답답하네."

하늘.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스타더스는 조용히 생각했다.

벌써 싸움이 시작된지 몇십분이 지났지만, 애매한 상황.

상대의 검을 피하며 공격하려다보니, 공격을 성공시키가 쉽지 않았다. 실제로 아직까지도 압박만 했지 직접적인 타격은 못했고.

스타더스 그녀가 압도적으로 강했으면 모를까, 서로 실력이 비슷한 상황에서 검은 위험요소. 공격을 하려다 오히려 그녀가 베일수도 있다.

그렇게 아직까지는 카타나의 공격을 피해가며 해결책을 궁리하는 상황. 카타나의 검을 피하는건 별 문제가 아니였만, 자유롭게 자신을 공격할 수 있는 카타나와 다르게 그녀를 공격하기가 까다로운 자신이 불리한 상황이었다.

그렇게 저 어떡해해야 검을 피해 공격을 넣을건지 스타더스가 고민하며 전투를 계속하던 그때.

'...잠깐, 내가 저 검이 뭐라고 그렇게 겁을 먹고있지?'

순간 스타더스의 머릿속에, 그런 생각이 번득였다.

***

"휴...."

도복을 펄럭이며, 뒤로 묶은 머리가 허공에 흔들리는걸 느끼며.

팟-.

카타나는 계속 스타더스를 압박해가며, 틈을 찾고 있는 중이었다.

...딱 한방. 딱 한방만 스타더스에게 공격을 성공시킨다면 카타나 그녀의 승리였다. 애초에 상황은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 스타더스가 그녀의 검을 피하는데 바쁜 와중이라면, 언젠가는 틈이 보일거다. 그리고 그 틈을 찌르면 되는거고.

물론 카타나 그녀도 스타더스의 공격을 한방만 맞으면 끝이라는건 똑같았지만... 카타나가 누구인가. 단신으로 수천명을 쓰러트린 적도 있는 그녀 아닌가. 애초에 틈을 보이지 않는데 전문인 사람이였다.

그렇기에 카타나는 상대의 틈을 노리며, 계속해서 허공을 날았고.

그리고, 그때.

"흐아앗-!"

자신을 향해 올곧은 주먹을 뻗으며, 스타더스가 직선으로 자신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찾았다, 틈.'

카타나는, 차분히 숨을 가다듬었다.

상대가 갑자기 어째서 저러는 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기회다. 저 주먹을 검으로 흘려 무게중심을 흐트린다음, 측면을 찌르면 끝.

'....생사결도 아니니, 적당히만 하면 되겠지.'

그런 판단을 하며, 카타나는 검으로 주먹을 흘려보낼 준비를 했다.

갑자기 스타더스의 주먹에서 강렬한 빛을 내며.

'...? 무슨!'

"에잇!"

콰아아아아아아앙.

그대로 방향을 꺾더니, 카타나 그녀가 아닌 검 자체만을 향해 비스듬히 주먹을 날리며.

당황한 카타나가 무엇을 하기도 전에, 강렬한 빛과 함께 일본도를 박살내기 전까지는 말이다.

쨍그랑-!

그렇게, 카타나의 검은 허공에서 산산조각났다.

카타나는 당황했다.

*

[내일 국뽕티비 영상제목 예상)[충격][공포]대한민국 히어로의 K-펀치는 일본도도 이긴다? 1000년역사의 일본 검술이 한국의 압도적 주먹 앞에 무릎을 꿇다! '오늘부터 검을 버리고 태권도를 배우기로 결정했습니다.' 일본 검도 관장이 눈물을 흘리며 그렇게 얘기한 까닭은?]

[ㄴ어질어질하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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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장창.

스타더스와 카타나의 치열한 대결은, 순간 스타더스가 카타나의 검을 깨버림으로서 끝이 나는 듯 했다.

카타나가 깨져버린 일본도를 보고 당황하는 사이, 빠르게 카타나에게 주먹을 날리는 스타더스.

"큭."

이에 재빨리 남은 검자루를 땅에 던진채, 카타나는 날렵하게 몸을 뒤로 날렸다.

이내 그대로 근처 건물들 몇개의 벽을 발로 차가며 뒤로 쭉 쭉 이동하더니, 옥상에 손을 얹고 겨우 멈춰선 그녀.

하얀 도복과 머리카락이 흔들리는 채, 그녀는 한숨을 삼켰다.

"후우...."

그리고 그렇게 검 하나 없이 무력해보이는 카타나를 향해, 주먹에 강렬한 노란 빛을 내며 날아오고 있는 스타더스.

*

[이대로 끝?????]

[칼잡이를 상대하는 법 (1)칼을 박살낸다 (2)끝 ㄷㄷㄷㄷㄷ]

[망고야 방송 시작한지 한시간도 안되게 끝나게 생겼는데??? ]

*

그렇게 채팅창마저 싸움이 이렇게 허무히 끝난다는 것에 당혹스러워하는 와중에.

옥상에 서있는 카타나는, 조용히 심호흡을 하더니 검집이 있던 장소에 손을 뻗을 뿐이었다.

"여기서 쓰게 될 줄은 몰랐는데...."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처럼 보임에도, 태연하게 그렇게 말하는 그녀.

그렇게 그녀는, 텅 빈 검집에 뭐가 있는 것처럼 손을 뻗었다.

그리고

*

[?????]

[뭐임?????]

*

그녀의 옆, 텅 빈 그곳에서.

푸른 빛으로 빛나는 칼이, 마치 투명한 검집안에 있는 것처럼 빠져나왔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칼이 허공에서 푸른 빛으로 '생겨나고' 있었다.

그렇게

푸른 빛으로 빛나고 있는, 신비한 기운이 느껴지고 있는 심검(心劍)을 꺼내, 카타나는 자신의 옆으로 팔을 뻗었다.

그러자 펄럭-하고 불기 시작하는 바람.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네.'

카타나는 자신의 손 안에 요동치는 푸른 기운으로 이루어진 검을 제어하며, 그렇게 생각했다.

일본의 S급 빌런 카타나. 수십 계파로 날뛰던 일본의 빌런들을 전부 검술 하나로 평정하고, 삼협파를 세워 협회마저 압박에 성공해 사실상 일본 정상에 오른 자.

즉, 그녀는 일대일 전투상황에서는 져본 적이 없다는 소리다.

'....오늘 이렇게까지 힘을 쓰게 될 줄은 몰랐는데.'

카타나는 숨을 가다듬으며 홀로 조용히 생각했다.

예상외로, 이 스타더스라는 히어로는 너무 강했다. 자신이 찾아본 그녀의 예전 영상 속 모습보다도 훨씬. 마치 능력이 진화한 것처럼.

지금까지 자신이 일본에서 맞서온 적수들 중에서도, 제일 강했던 이. 아니, 그보다도 더 강한 것같은 스타더스의 모습에.

카타나는, 이 타국 땅에서. 자신의 전력을 한번 다해보기로 결정했다.

...오늘의 일은, 그녀에게도 깨달음을 줄 것 같았으니.

"흐읍!"

그렇게 푸른 검을 꺼낸 그녀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스타더스에게 그대로 검을 휘둘렀고.

쉬이이이이이잉-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윽...!"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싸한 직감과, 찢어지는 바람의 소리, 앞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에너지에.

스타더스는, 빛나고 있는 팔로 자신의 앞을 급히 가로막았으며.

이내, 카타나의 검에서 뻗어져나온 푸른빛 검강이 스타더스와 충돌했고.

퍼어어어어어어어어엉.

하늘에서, 무슨 폭탄이 터진 것마냥 엄청난 굉음이 울려퍼졌다.

그렇게 하늘에 흐트러진 자욱한 연기.

채팅창이 어떻게 된거냐고 아우성치는 와중에.

연기가 걷히며

"하아... 하아..."

"...흐읍."

이를 악물고, 카타나를 바라보는 스타더스와.

검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조용하고 차분히, 푸른 검을 스타더스에게 겨누는 카타나의 말과 함께.

카타나의 푸른 검강이 휘날리고, 스타더스의 노란 빛이 번쩍이고, 채팅창은 빠르게 불타던 그 순간.

"하하,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입니다 여러분!"

실시간으로 영상을 보던 사람들의 귀에는, 익숙한 웃음기 섞인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조용히 화면에 사라져있던 에고스틱이, 다시 입을 열기 시작했다.

***

"역시."

카타나의 검이 부러진 이후.

나는 푸른빛의 심검을 꺼내 스타더스와 맞서 싸우고 있는 카타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카타나의 최종 무장, '푸른 혼의 심검'.

굉장히 오글거리는 말이지만, 원작에서 실제로 나왔던 비술이다.

정확히는 내부자의 배신으로 그녀의 동료들이 다 쓰러져가던 순간 꺼내들은 비장의 무기.

'...애초에 저 검 자체가 쉽게 부러지지 않는 소재라고 해서, 솔직히 여기까지 오게 될 줄은 몰랐는데.'

애초에 카타나는 어지간한 상대는 그냥 검으로 다 박살내니 굳이 저 심검을 꺼낼 필요가 없다. 대인전에서는 필요없기도 하고.

그러나 지금처럼 검이 무식하게 박살나는 순간이면, 저걸 꺼낼 수 밖에 없겠지.

지금의 카타나는 스타더스와 동급.

아마 굉장히 치열한, 대등한 싸움이 가능할거다.

원작에서는 검을 한번 휘둘러 건물을 베는 기염을 토한 카타나니까.

'...이제 슬슬 코앞인데, 이정도 상대는 붙여줘야 스타더스도 빠르게 성장하겠지.'

월광교가 괴물의 군단을 끌고 올 날도 머지 않았고, 슬슬 세계가 파탄나는 모습이 보이는만큼 나는 좀 스타더스의 능력 성장에 신경이 많이 쓰이는건 당연. 빨리 강해져봤자 나쁠건 없음으로, 지금 좀 몸도 멀쩡하고 카테달도 정상적으로 굴러갈 때 최대한 스타더스를 성장시킬 생각이었다.

'특히, 이제는 점점 할 것도 많으니까....'

슬슬 원작 중반부를 넘기며 네임드 빌런들이 하나 하나 나타나, 걔들도 신경써야 한다. 특히 중후반부 메인 빌런들이 보여준 포스와 대중의 공포를 생각하면, 에고스트림 멤버들이 슬슬 여론 장악을 위해 나서야 할 필요가 있다는 소리.

즉, 그때가 되면 지금처럼 스타더스에 신경을 많이 못 쓸 수도 있으므로 미리미리 할 수 있을때 성장시켜 두는 것이다.

'...그리고, 성장도 완료되면.'

슬슬 은퇴하고 쉬면서 다른 일에 집중해야겠지. 스타더스를 직접 못보는 건 아쉽지만, 스타더스 성격에 오히려 좋아할테니 상관없다. 이제 에고스틱 신경 안써도 된다고 두다리 쭉 뻗고 잘자지 않을까.

"그건 그때가서 생각하고..."

지금은 스타더스에 집중할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저쪽에서 둘의 전투를 찍고있던 카메라를 염동력을 써 내 앞으로 데리고왔다. 전투 해설이나 하자. 물론 해설하는 척 하면서, 사실상 스타더스 띄우는게 주가 되겠지만.

나는 그렇게, 카메라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하,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입니다 여러분!"

자, 입좀 털어볼까.

싸움이 막을 내리기 전까지.

***

"그리고 여기서... 아! 이걸 스타더스가 막아버리내는데 성공합니다! 카타나의 저 검광을 막아낸 사람은 없다고 들었는데, 이걸 스타더스가 막아내네요!"

*

[캬ㅋㅋㅋㅋㅋㅋㅋㅋ]

[ㄹㅇ카타나 진짜 말로만 들었는데 ㅈㄴ 쌔긴 하네ㅋㅋㅋㅋ 근데 별먼지도 대단하네]

[전체적으로 지금 누가 이길지 안보이나? 엄청 치열하네]

[크으 스타더스 맨몸으로 일본 원탑의 공격 다 막아내는거 봐봐 주모 여기 한잔더!!!]

[근데 ㄹㅇ 에고스틱이 하나하나 다 해설해주니까 확실히 훨씬 재밌네 아까 뭔가 2프로 부족하다 했는데 망고가 없어서였네ㅋㅋㅋㅋㅋ]

[에고스틱 근데 왜 자기는 안싸우고 뒤에서 해설만함?? 괘씸하네 직접 싸우는 망고 보여줘!!!]

[어허 망고가 이제 직접 싸우다가는 스타더스 한방에 뻗고 협회로 납치됩니다... 그리고 읍읍]

[근데 카타나는 대체 무엇을 위해 여기서 별먼지랑 현피뜨고 있는거임?? 진짜모름]

[어허 에고스틱이 부탁했다잖아요... 원래 망고가 부탁하면 다들 들어주는게 '상식'이잖아??]

[한국에 이어 일본마저 홀리는 세계로 뻗어져나가는 망고의 매력 쉣ㄷㄷ]

[심지어 둘이 꽤 친해보이던데 HOXY? 헉....]

*

그렇게 채팅창도 아까전보다 더 활발해지는걸 힐끔 보며, 나는 계속 설명을 이어갔다. 물론 가끔 쓸모없는 채팅이 올라오긴 했는데 뭐, 그게 중요한게 아니니.

스타더스와 카타나의 싸움은 꽤나 치열하게 진행됐다.

카타나는 나한테 이번 기회에 벽을 넘고 싶다고 말했던만큼, 확실히 모든걸 다 쏟아붓는단 느낌. 그리고 스타더스는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째서인지 전에 나랑 싸울때보다 훨씬 더 분노하며 격하게 싸우는 느낌이였다. ....무서워요.

그렇게 시간이 조금 더 지나고.

둘의 싸움도 갈수록 치열해져 근처에 가면 바람때문에 눈도 잘 안뜨일 무렵.

마침내, 길고 길었던 싸움의 끝이 보였다.

"...에잇!"

"....!!"

스타더스가, 카타나가 방심한 틈을 타.

또 아까처럼 카타나의 심검에다가 주먹을 날린 것.

심검이 무슨 물질로 이루어진 것도 아니고, 에너지로 만들어진 건데 저기에 겁도 없이 주먹을 가져다대는 스타더스의 모습에 나는 깜짝 놀랐으나.

그건 기우였다.

-쨍그랑!

"....어라?"

*

[????????????????]

[뭐임 저게 깨지기도 하는 거였음???]

[별먼지펀치! 별먼지펀치! 별먼지펀치! 별먼지펀치! 별먼지펀치! 별먼지펀치! 별먼지펀치! 별먼지펀치! 별먼지펀치! 별먼지펀치! 별먼지펀치! 별먼지펀치!]

[주먹은 심검을 찢어ㄷㄷ]

[별끼얏호우~ 스끼얏호우~ 이게 K-히어로지 캬ㅋㅋㅋㅋㅋㅋㅋ]

*

스타더스가, 그냥 별빛의 주먹을 꽂아 푸른 심검마저 박살낸 것.

여기까지는 정말 전혀 생각해 본적이 없는지, 카타나의 눈이 휘둥그래진 채 공중에서 순간 중심을 잃던 그 순간.

나는 비로소 순간이동을 했다.

뒤에서 카타나를 안아주듯 받쳐준뒤, 오늘의 테러를 여기서 끝내기 위해서.

사실 카타나야 심검을 또 소환하면 되니 싸움은 계속겠지만, 벌써 시간도 꽤 됐고 너무 격해져서 이쯤 끝내는게 맞았다.

대충 카타나 손잡고 방송종료 멘트 친 뒤, 집 가면 되겠지. 상황 끝!

나는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했었다.

...그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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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심 위, 세찬 바람이 불어오는 하늘.

-와장창!

카타나의 푸른 심검마저 주먹으로 박살내버린 스타더스는 확신했다. 자신의 승리라고.

"....."

물론, 카타나도 가만히 당하던건 아니었다.

금새 정신을 차려, 또 다른 심검을 허공에서 꺼내 맞서 싸우려던 그때.

휘익.

"하하, 아쉽지만 여기까지네요!"

"....에고스틱."

마치 뒤에서 카타나를 껴안듯, 받혀주며 등장한 그.

이내 그의 품으로 비교적 작은 체구의 카타나가 쏘옥 안기며.

순간이동으로, 둘은 스타더스 그녀로부터 어느정도 거리를 유지하고 물러났다.

"카타나씨, 괜찮으십니까?"

"....네. 괜찮아요."

이내 카타나를 여전히 받히듯 뒤에서 안은 채, 그렇게 묻는 에고스틱.

그리고 마치 그게 자연스럽다는 듯, 카타나는 덤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심검을 소환하는걸 그만두었다.

*

[방종의 시간인가]

[안돼! 여기서 끝낸다고??????]

[더줘 더줘 더줘 더줘 더줘 더줘 더줘]

[아니 오늘은 망고 별로 나오지도 않았잖아 ㅡㅡ 이게 맞는거임????]

[둘이 싸우는 것만 보다가 정신차리니 한시간 뚝딱ㄷㄷ]

[이정도면 스타더스 판정 승 아님? ㄹㅇㅋㅋ]

[カタナちゃん韓国から戦ってるとニュースから今見て来たけどもう終わっちゃ意味ないじゃんwwwww]

[소름돋는 사실) 오늘 방송 끝나면 망고 얼굴 또 3개월동안 못봄ㄷㄷㄷㄷㄷㄷ]

[이런건 현실이 아니야!!!!!!!!]

*

그렇게 채팅창이 벌써 방종이냐고 활활 불타는 동안.

스타더스의 관심은, 그게 아닌 다른데 가있었다.

아주 연인처럼 꼭 껴안고 있는 둘.

...그래, 안다. 넘어지려는 카타나를 에고스틱이 받힌거니까, 저런 자세가 나올 수 있다는걸.

그러나 머리로는 이해해도, 가슴은 다르게 생각하는 법.

스타더스의 가슴은, 그 둘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요동쳤다.

'...내가 왜이러지.'

사실 따지고보면, 둘이 그러던말던 알 바 아니었다. 빌런이 누구를 껴안든 뭘하든 자신에게 중요한게 아니지.

그런데, 그런데.

왜.

가슴이 쿡쿡, 누가 찌르듯이 아픈거지.

그녀가 그렇게 어두워진 표정으로 둘을 바라보고 있을때.

드디어 서로 떨어진 둘은, 이내 스타더스를 마주봤다.

...여전히, 서로 손은 꼭 잡은 채.

"네! 하아, 카타나씨를 부르면 쉽게 이길 줄 알았는데, 역시 스타더스씨는 못당해내겠네요. 물론 카타나씨가 전투를 더 이어나가면 어떻게 될 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타국땅에서 카타나씨를 더 고생시키는 것도 옳지 않은 일이니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여전히 웃으며, 뭐라뭐라 말하는 에고스틱.

그러나 스타더스에게 그 말은 들리지 않았다.

그저, 아까부터 에고스틱과 카타나가 붙잡고 있는, 서로의 손에 가있을뿐.

"..."

"그럼 오늘의 테러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다들 안녕히 계시길!"

그렇게 에고스틱의 마지막 한마디가 울려퍼졌고.

이내 여전히 미소지은 채, 카메라를 보던 그는 그걸 살짝 조작하더니 다시 고개를 돌려 스타더스 그녀 쪽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카타나랑 손을 맞잡은 채로.

"하하, 스타더스씨. 다음에는 지지 않을거니...."

그렇게 자신을 향해 말하던 그는, 그녀의 표정을 보더니 순간 멈칫했다.

...솔직히.

스타더스는, 자신이 왜 화가 나는 건지도 알 수 없었다.

에고스틱이 뭘 하던 말던 자신이 무슨 상관인가. 애초에 그와 나는 서로 빌런과 히어로의 관계일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데.

다만.

에고스틱이, 카타나의 손을 꼭 붙잡은 모습이.

지금은, 기억 속에 잊혀진 어떤 장면이 무의식중에 떠올라서인지.

깊고 깊은, 인지도 못하는 속마음 속에서는.

저게, 내가 잡고있어야 할 손인데 라는 생각이 떠올라서인지. 빼았긴듯한 상실감이 들어서인지.

어째서인지, 잘 모르겠지만.

스타더스는. 신하루는, 자기도 모르게 눈시울이 살짝 뜨거워 지는걸 막지 못했다.

"스, 스타더스씨...?"

갑자기 자신이 이상하게 나오자, 당황하는 에고스틱의 얼굴을 보며.

...그러면서도 여전히 카타나의 한쪽 손을 잡은 에고스틱을 보며, 자기도 모르게 서러워져서.

분명, 어떤 약속을 했던거 같은데. 그걸 어긴 에고스틱이 미워서.

스타더스는, 자신도 모르게 두 손의 주먹을 꽉 쥔채.

그를 향해 쏘아붙였다.

"...이, 나쁜놈."

...그게,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뭐가 나쁜건지는, 하루 그녀도 스스로 대답할 수 없었지만.

아무튼 에고스틱은 나쁜놈이었다.

....나쁜놈.

***

나는 오늘, 기분이 좋았다.

일단은 카타나와의 테러를 성공적으로 마쳤다는게 컸다. 특히 몇시간만에 스타더스가 벌써 괄목할만한 성장을 한게 보여서 더더욱. 일단 카타나가 하도 이곳저곳에서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는 공격형식을 해서, 스타더스의 반사신경에도 큰 도움을 준 느낌.

그래, 그때까지는 난 그렇게 긍정적이게 생각했었다.

"네! 하아, 카타나씨를 부르면 쉽게 이길 줄 알았는데, 역시 스타더스씨는 못당해내겠네요. 물론 카타나씨가 전투를 더 이어나가면 어떻게 될 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타국땅에서 카타나씨를 더 고생시키는 것도 옳지 않은 일이니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탁 트인 하늘.

오랜 전투의 여파인지 차분해 보이는 겉과는 다르게, 숨을 헐떡이고 있는 카타나를 끌어안은 채.

나는 카메라를 보며 방종 멘트를 날렸다.

오늘은 이정도면 정말 충분했다. 카타나도 심검까지 써서 스타더스와 맞섰으니, 솔직히 말 다했지.

"그럼 오늘의 테러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다들 안녕히 계시길!"

*

[망바~]

[다음에 올때는 꼭 일렉트라 눈나 데려와줘 전기쥐 못본쥐 한참됐다....]

[ㄹㅇ 에고스트림 멤버들 왜이리 꽁꽁 숨기고 안보여줌 좀 테러 자주해!!!]

[나는 꿈이 있다 망고스틱이 저번 용과망고 테러처럼 직접 테러하는 걸 자주보는 꿈이...]

[ㅅㅂ 신개념 빌런한테 보고싶은 테러 내용 요청하는 사람들ㅋㅋㅋㅋ 이게 대체 뭐냐고ㅋㅋㅋ]

[근데 오늘 테러도 재밌었지 않음? 그냥 ㅈㄴ현란해서 눈이 쉴틈이 없던데ㅋㅋㅋㅋ]

[그리고 카타나 ㅈㄴ 예쁨ㅋㅋㅋ]

[망고x카타나 이거 히트임 한일망고ㄷㄷㄷ]

*

그렇게 여전히 자기들끼리 재밌게 놀고있는 채팅창을 보며 분위기가 좋은걸 확인한 뒤, 나는 망설임없이 방송을 껐다.

좋아, 이제 스타더스한테 작별인사를 건내고 가면 되겠지.

"하하, 스타더스씨. 다음에는 지지 않을거니...."

그렇게 스타더스한테 말을 건낸 나는.

순간, 멈칫하고 말았다.

"..."

고개를 숙인채, 주먹을 쥐고있는 그녀.

그리고.

스타더스 주위로 느껴지는 심상찮은 분위기.

'....뭐, 뭐지.'

거의 살기에 가까울정도로 느껴지는 싸한 분위기에,

나는 반사적으로 카타나의 손을 더 세게 움켜잡았다.

그리고 카타나 역시, 긴장한 모습.

왼손을 허리춤에 걸친 채, 언제든지 심검을 뺄 준비를 하고있는 그녀였다.

...지금이라도 순간이동을 해서 도망쳐야하나?

그런 생각을 순간 하게 될 정도로 심상치않은 분위기.

그러나, 나는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된건진 모르겠는데, 여기서 내뺐다가는 진짜 큰일이 날 수도 있다.

그래서 난, 조심스럽게 스타더스를 다시한번 불렀다.

"스, 스타더스씨...?"

그리고 그때.

다시 고개를 든 그녀.

빛에 반사돼 반짝이는 그녀의 푸른 눈과... 물기?

순간 그 모습에 뇌가 굳은 나에게.

스타더스는 약간 울먹이며, 나한테 작은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나쁜놈."

"....."

...무슨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나쁜놈인거 같다.

그렇게 나도, 카타나도 침묵하고 있는 동안.

이내 손으로 눈을 슥슥 닦은 그녀는.

"..."

나를 다시한번 쏘아보더니.

이내 고개를 돌려, 내게 등을 보이더니.

쉬이이이이잉.

바람과도 같이 빠르게 사라졌다.

그리고.

"...뭐, 뭐죠?"

"글쎄...."

나랑 카타나만이 당황스러운 감정으로, 한동안 허공 위에 서있었을 뿐이었다.

...스타더스가, 지금까지 빌런을 앞에 두고 먼저 가버린적이 있던가...?

***

[에고스틱, 일본의 S급 빌런 카타나를 데리고 테러를 하다? 전국민이 본 스타더스와 카타나의 대결 요점정리, 그리고 세계로 뻗어나가는 에고스틱의 영향력에 대해서 오늘! 밤 9시, 연예가중계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그날 밤.

테러 끝난 이후, 사람들은 또 오늘의 일로 하루종일 떠들어댔다.

다들 스타더스가 정말 강해졌다, 카타나도 강하다 이런 이야기.

특히 일본에서 카타나는 착취와 무능의 상징인 협회와 정부의 대항마로 그녀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상황에서, 뜬금없이 한국에서 나와 함께 테러를 했다는 소식에 일본에서도 영상을 많이 봤다고 한다. 이로 인해 내 이름이 일본에서 꽤 많이 퍼졌대나 뭐래나. 쟨 대체 카타나랑 어떻게 친해진거냐고.

그렇게 나름 좋은사람들의 반응중 의외였던것 중 하나를 꼽자면, 은근 한국 1위 빌런과 일본 1위 빌런이 결탁한 것에 대해 별 위기감이 없어보인다는거랄까. '든든하다'라는 의견도 있던데, 대체 뭐가 든든하다는건지 모르겠다.

근데 하여튼 그건 그렇고.

사실, 그것들이 지금 나한테 중요한게 아니었다.

"오빠, 거실에서 왔다갔다 뭐해요?"

"아니..."

내가 신경쓰고있는건 단 하나.

'...나쁜놈.'

나를 향해 정말 속상해보이는 얼굴로, 거의 눈물까지 글썽거리며 화냈던 스타더스였다.

대체, 왜 그렇게 화낸걸까.

".....음."

...짚이는게 너무 많아서 딱 하나를 특정할 수가 없다는게, 제일 큰 문제였다.

***

그날 밤.

신하루의 집.

"--------으으으!"

펑. 펑.

신하루는, 배게에 얼굴을 묻은 채 손으로 침대를 펑 펑 두들기고 있었다.

"....내가 미쳤지, 진짜 왜 그랬을까?"

그렇게 중얼거리는 그녀의 눈에 글썽거리는 눈물.

'....나쁜놈, 훌쩍.'

"으으으으으---!!!"

내가, 내가 거기서 내가 왜그랬을까...? 미쳤나봐 진짜....

그렇게 신하루는 그날 밤, 잠들기 전까지 계속 침대를 뻥뻥 찼다.

쪽팔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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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아...."

협회, 스타더스의 사무실.

언제나처럼 그곳에 앉아있던 신하루는, 약간 피곤한 얼굴을 한 채 머리를 부여잡고 있었다.

'....나쁜놈.'

"하아..."

내가 왜 그랬을까, 왜 그랬을까...

며칠전에 있었던 에고스틱의 테러.

또 어디서 새로운 빌런을 끌고 온 그와 맞서 싸우다가, 마지막에 괜히 울컥해가지고...

다 잊고 일에 집중하려고 해봐도, 계속 머릿속에 떠오르던 그 순간에 그녀는 계속해서 소리없는 아우성을 하게 됐다.

....히어로가, 빌런 앞에서 울컥해가지고 괜히 욕한다음 도망친다?

거기다가 찔끔 눈물까지 흘린거같다?

...심지어 그걸, 다른 누구도 아닌 에고스틱 앞에서 했다?

".....으으."

그때의 일을 생각하던 스타더스는, 다시 약간 귀를 붉혔다.

....진짜 그때 미친거 같다, 미친거 같아.

[스타더스. 몸은 어떤가. 괜찮은가? 이상이 있다면 바로 연락하게.]

그때, 컴퓨터의 협회내 메신저를 통해 오는 알림.

확인해보니 협회장이 보낸 것이었기에, 그녀는 대충 괜찮다고 답장을 해서 보냈다.

...저번 카타나라는 빌런과의 싸움 이후, 확실히 협회장이 조금 더 그녀의 몸상태를 걱정하는 느낌.

이상한 일도 아니다.

아마 사실 따지고보면, 그 카타나는 빌런이 지금까지 스타더스 그녀가 상대해온 적들중 제일 강한 편이었으니 말이다.

'....카타나라는 그 여자가, 생각보다 강한 능력자였구나....'

싸울때 까지만 해도 몰랐으나.

나중에 들은 바로는, 그 카타나는 빌런은 세계적으로도 손에 꼽힐 정도로 강한 능력자라고 한다.

...솔직히, 그때 그 여자랑 싸울때는 분노에 휩싸인채 무아지경으로 싸워서 제대로 기억도 안나서인지.

스타더스는, 카타나가 그녀가 지금까지 싸워왔던 빌런들과 큰 차이가 없다고 느꼈었다. 특별히 강한 것 같지도 않았고.

다만.

"그렇게 강하나...."

나중에 협회장과 뉴스에 나오던 내용을 보면, 카타나라는 빌런은 상당히 강했나 보다. 애초에 일본 능력자 랭킹 1위라고 하니 뭐.

그래서 일본에서도 그런 카타나와 대등하게 맞서싸운 자신이, 상당히 화제라고 하기도 하고.

'하긴...'

...자신은 그녀와, 딱히 생사결을 하고 싸운건 아니었다. 카타나라는 여자도 자신을 막 기필코 이 자리에서 죽이겠다는 마음가짐보다는, 마치 대련을 하듯 움직였었지. 스타더스 그녀도 일단 이 카타나는 제압만 하려고 했지 죽이려 한건 아니었고.

특히 중간에 에고스틱이 막았었으니까 그렇지... 어쩌면 생사결로 싸웠으면 또 달랐을지도...

멍하니 그런 생각을 하던 스타더스는, 또 문득 그날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고 말았다. 카타나와 거의 껴안고 손까지 잡던 에고스틱과, 그걸 보고 울컥해서 쏘아붙인 자신....

"으으으으...."

볼이 붉어진 그녀는, 쪽팔린 마음에 이상한 소리를 내다가, 결국책상에 엎어졌다.

...내가 그때 왜 그랬을까. 뭐에 씌였나...

하지만.

차가운 책상의 감촉을 느끼며.

그녀는 조용히, 생각했다.

...그때는.

왜인지는 몰라도, 정말로.

그 카타나라는 빌런 여자와 껴안고, 손을 잡고 있는 에고스틱을 보며.

그녀는 정말,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아팠었다.

"왜지...."

...그래.

다른 빌런이랑 결탁한 에고스틱을 보고 그랬었던걸꺼야. 대한민국이 위험하다는 뜻이니까. 빌런세력의 위험성이 더욱 증가했다는 걸테니까 히어로로써 당연히 그럴 수 있지. 그리고 에고스틱도 나쁜놈이 맞잖아? 그러니까 그런걸꺼다.

...그래, 그런걸꺼야.

.....

"..."

정말, 그거 하나 때문일까.

"....."

단지 그거 때문에, 기분이 나빴던게 맞는걸까.

신하루는, 대답할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당신이, 저를 완성시킵니다.

...쿨럭, 저한테 하나 빚지신 겁니다.

나머지는 제가 맡도록 하죠.

다른, 이유가.

있는게 아닐까.

그렇게.

신하루는.

서울 한복판, 드높게 새워진 협회 건물 상층에서.

홀로 자신의 사무실에 엎드린 채.

그렇게 가만히.

가만히, 홀로 깊은 생각에 빠졌고.

'....그래.'

이내 그녀는, 다시 약간 눈시울이 붉어진 얼굴로.

결론을 내렸다.

"....이건, 다. 에고스틱 때문이야."

나한테는.

나보고는, 자기만의 히어로라고 해놓고서.

대놓고 앞에서 막, 다른 사람과 그러면.

당연히 히어로로써, 기분 나쁠수도 있는거 아니야?

그래. 그녀가 이상한게 아니다.

아마 자신처럼 아치에너미가 있는 히어로들은 다들 그럴거야.

그리고 빌런이면, 숙적인 히어로만 신경쓰고. 히어로한테만 그래야지. 그게 상식 아니야? 그래. 그게 상식일거다.

...심지어, 차라리. 자기 입으로 가족이라고 말한 에고스트림 동료면 몰라.

처음보는 다른 이미 유명한 빌런 데리고와서, 나랑 싸우게 해놓고. 자기는 막 걔랑 손잡고 그런 짓 다하면.

...담당 히어로로써, 숙적으로써, 아치에너미로써.

좀 서운할 수도 있는거 아니야?

그래. 그런, 거다.

"....그래. 잡아서 어디 감금해두는게 역시 맞아...."

자꾸 자신의 히어로를 안보고, 다른 곳만 보는 빌런은. 벌을 줘야지. 일단 가둬놓고 내 옆에 두는게 맞다. 그래, 빌런은 잡아야지.

그렇게 책상에 엎드려있던 스타더스는, 살짝 붉어진 눈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렇게 한동안 잠을 제대로 못해서 피곤해진 머리와, 쌓인 스트레스, 혼란스럽고 서운한 마음이 합쳐져.

그녀는 결국, 그런 결과를 도출해냈고.

[상대 기습하는 법]

[상대 기절시키는 법]

[순간이동하는 능력자 가둬놓는 법]

[도망치는 상대 붙잡는 법]

...이내, 한동안.

그녀의 인터넷 검색기록은, 상당히 '전문적'이 되었다.

오직, 단 한명만을 위해서.

***

[네 다인씨. 어차피 다음주에 하루랑 만나기로 했으니, 그때 한번 은근슬쩍 물어볼게요.]

"그래. 늘 고맙다 설아야."

[뭘요. 오히려 제가 고맙죠. 이번에 다인씨가 저한테 카타나씨 소개시켜준 덕분에, 이번에 양국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할 수 있었거든요.]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는 이설아.

...하긴, 이설아가 대한민국 정치계를 움직이고. 카타나도 이제 음지에서 일본 협회랑 정부를 장악한 상황이니. 둘이 만나면 사실상 그게 정상회담인가...?

뭐 친해졌다고하니 다행이지만.

[그리고 그 안티 에고스틱 방송...이라고 해야하나? 다인씨가 만든 그 방송국 있잖아요.]

"어."

나는 그때 이설아가 하는 말에 귀를 귀울였다.

내가 기자하나 섭외해서 만든, 에고스틱 비판 전문 방송국.

나중에 이설아와 얘기하다보니 말 나와서, 그녀한테 방송국을 완전히 매각했었다. 나보다는 이설아가 지분같은거 관리하는게 나을거 같아서 말이지. 난 신경쓸 틈이 없기도 했고.

[이번에는 그 대충 일본 빌런 데리고 온거 가지고 대충 에고스틱이 나라를 팔아먹었다 그런 컨셉으로 가고 있기는 한데...]

"어, 잘하고 있는데 왜?"

[...그게 지금 항의를 너무 받아서, 저희 방통위 쪽에도 막 프로그램 폐지 청원이 올라오고 있어요.]

"....음. 그런 억까에 굴할 수는 없지. 계속 하라 그래."

내 빌런의 정체성을 의심하는 이들에게는, 계속 세뇌시킬 수밖에 없다. 아니, 일본 빌런 데리고 왔으면 욕을 해야지 쇼라고 감탄하면 어떡해. 난 내가 틀렸다 생각하지 않는다. 계속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게 내가 빌런인 이유를 설명해야지.

사실, 빌런중의 빌런으로 인정받아 카테달까지 들어가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이상 무슨 의미가 있긴 싶다만... 어쨌든 계속 하고는 있다.

[...그게 될 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알았어요.]

그렇게 납득한 이설아와 몇마디를 더 나누다.

마침 PMC 얘기가 나왔다.

[아 그리고 저도 PMC 애들 한번 만나볼까 하는데, 어때요? 그래도 나름 제 그룹 타이틀 달고있는 애들인데 너무 신경 안쓴거고 같기도 하고요.]

"아, 좋지. 이제 슬슬 애들도 거의 능력 완성 끝났으니까 이제 현역에 실습 내보낼 때 됐거든. 그럼 그건 그때 얘기하자."

[네. 그럼 다인씨도 푹 쉬세요. 하루건은 만나고나서 또 연락드릴게요.]

"응 알았다. 고마워."

뚝.

그렇게 이설아와의 전화도 끝나고.

나는 한숨을 쉬며 휴대폰을 내려놨다.

"뭐해? 이거 먹을래?"

"음? 아, 고마워."

그때 아이스크림 바를 빨면서 내쪽으로 오던 최세희가 내게 아이스크림을 휙 던졌고.

나는 그걸 공중에서 잡아서 뜯었다.

....망고맛 아이스크림이었다.

"아니, 이거 말고 다른 맛은 없어?"

"없어. 저번에 서자영이 싹다 이걸로 시켰었잖아."

"...."

"근데 이거 맛있는데? 왜."

그렇게 노란 망고바를 할짝이며 말하는 최세희였다.

...망고스틱 보유국이니까 망고스틱을 집에 쌓아둬야한다는 논리로 어디서 망고맛 하드를 잔뜩 사온 서자영 덕분에, 냉장고에 마르지 않는 이 망고스틱들.

나는 차가운 바를 입에 가져다댔다.

시원하고 달달하니 맛있긴 했다.

그렇게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나는 생각에 잠겼다.

...카타나는 일본으로 돌아갔다.

스타더스와 싸우는 과정에서 나름의 깨달음을 얻었는지, 꽤나 만족한 모양. 좋은 시간이었다고, 기회되면 언제든 오겠다고 말할 정도였으니.

그렇게 카타나를 배웅해준 뒤.

나는 그보다는, 다른 생각을 하고있었다.

바로 스타더스. 그녀가 마지막에 왜 그랬냐에 관한 것.

"..."

나쁜놈이라...

그래. 나는 나쁜놈이 맞다. 애초에 빌런이 나쁜놈이 아니면 더 이상한거지.

하지만... 그날 보인 스타더스의 반응은 아무래도 이상했다. 마치... 서운함에 삐진 느낌같다고 해야될까.

그리고.

'....나쁜놈.'

그 말을 들은 나도, 심장이 덜컹거렸다.

...사실, 언제부턴지 모르겠는데. 굳이 따지자면 자유의 여신상도 안터지고 엑스 마키나의 죽음이 발표된 날 즈음인가.

이상하게 스타더스가, 전보다 눈에 더 밟히기도 했다.

그래서 왜 운거야.

나는 한숨을 쉬며, 소파에 등을 기댔다.

...이설아가 다음에 스타더스랑 만날때 알아본다고 했으니, 그거나 믿어야지.

나는 그런 말을 들으며, 티비 소리를 라디오 삼아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아이스크림을 할짝이며.

덩쿨마녀도 슬슬 오랜만에 보러가야 되는데, 언제가지...

[...전 회장이 마침내 구속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고....]

....순간 귀에 어째 구속이라는 단어가 들리자 쎄함이 느껴지기는 했으나, 그냥 넘겼다.

순간이동이랑 제일 관련없는게 구속인데 뭐.

"...야, 근데 세희야. 좀 춥지 않냐?"

"아니? 따뜻한데. 네가 아이스크림을 먹고있어서 그런거 아니야?"

"그런가?"

....쎄한 이유가 그거때문이었나?

나는 아이스크림을 할짝이며 그렇게 생각했다.

등록된 마지막 회차입니다

스타더스에게 테러를 하고 난 이후.

나는 집에서 푹 쉰뒤, 여러 일들을 처리하느라 바빴다.

특히 최근들어, 예전과는 달라진 점으로는.

"흡!"

"이야, 이걸 피해?"

나도 우리 에고스트림 멤버들이랑 함께 대련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근데, 갑자기 왜 너도 능력 테스트 한다는 거야? 지금까지는 우리 코칭만 해줬잖아."

집 앞 숲속.

공중에서 나한테 번개 공격을 몇번 날려주다가, 내려오며 묻는 최세희에게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그냥. 혹시 모르니까."

....정확히는 어제 구속 어쩌구 하는 뉴스를 본 다음에 기분이 쎄해져가지고 그런 거지만.

하여튼, 예전부터 슬슬 나도 능력을 강화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있었다. 앞으로 점점 사회가 혼란해질텐데, 미리 미리 대비는 해놔야지.

하여튼, 그런 생각으로 난 내 회피능력을 시험해봤다. 최세희가 번개를 던지면, 내가 그걸 순간이동으로 피하는 식으로.

그리고 결과는.

"....존나 잘 피하는데?"

"그러냐?"

"어. 아니, 막판에는 나름 진심으로 휘둘렀는데 어떻게 한대도 안맞냐."

능력 사용만으로 은근 체력 소모가 컸는지 혀를 내두르며 그렇게 말하는 그녀.

이내 나와 그녀가 함께 지상에 착지하자, 기다리고 있던 하율이가 우리한테 수건과 물을 건내줬다.

"고생했어요 세희언니, 다인오빠."

"고마워 하율아."

감사인사를 건낸 나는 물을 한모금 마셨다.

적당히 목을 추릴 정도로 마시고 앞을 보니, 땀을 닦고있는 최세희가 보였다. 아직 날씨가 쌀쌀한데도 무슨 여름처럼 땀을 흘리고 있는 그녀. 아마 이럴줄 알고 미리 얇은 옷을 입고 온 듯 하다.

"하아... 죽겠다..."

"제가 힐해드릴게요. 두분 다 기다리세요."

"어. 고마워어..."

이내 하율이의 손에서 빛이 번쩍하며.

우리 둘에게, 뭐가 포근하면서도 따뜻한 기운이 몸에 스며들어갔다.

"어휴. 이제야 살겠다. 고마워."

그렇게 말하며 씨익 웃는 최세희.

나또한 아까보다 더 가벼워진 몸에 힘을 쭉 늘어트렸다. 역시, 하율이가 최고다. 사실 하율이 정도의 힐러한테 피로회복을 받고있는게 좀 언벨러스하긴 하지만... 본인이 만족하니 됐나.

그렇게 어느정도 테스트를 끝낸 우리는, 집까지 얘기를 나누며 걸었다.

"아니, 근데 정말 너 순간이동 엄청 잘한다니까? 무슨 제 6의 감각이라도 있는줄. 더이상 뭐 훈련은 안해도 될거같은데?"

"맞아요 다인오빠. 저도 보는데 정말 신기했어요."

"그래?"

나는 잠시 아까의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하늘에 떠서, 최세희가 10만볼트 날리는걸 다 피하던 순간.

대충 짚어보면 순간이동의 에너지 소모가 극심해서 그렇지, 컨트롤 자체는 나름 잘되는 것같다. 하긴 나름 오래 쓰긴 했으니.

물론 방금도 최세희랑 공방 끝나고 나니까 머리에 현기증이 핑 도는 사소한 문제가 있기는 했지만... 그나마 하율이가 힐해준 덕에 어느정도 괜찮긴 했다.

"...그래도 순간이동은 틈틈히 좀 더 능력 유지를 위해 가끔 연습해야겠어. 이게 또 오래 안쓰다보면 감각이 무뎌지더라."

적당히, 어느정도 거리 이동할 스택만 쌓아놓고 훈련하면 되겠지.

"하긴, 그건 맞지. 내가 그래서 늘 주기적으로 능력 쓰는거야."

최세희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답했다.

...그게 아니라, 그냥 번개로 다 박살내는걸 좋아하는거 같은데.

어쨌든, 순간이동은 됐고... 결국은 무력인가.

나는 내 다른 능력, 염동력을 떠올려봤다.

염동력은 뭐 총기나 무기 띄워서 사용하는게 제일 맞다. 애초에 좀 약해서.

결국 그럼 피지컬로 남은건 베히모스인가.

나는 가슴에 손을 얹고, 베히모스를 깨웠다.

뀨잉잉--?

환청과 함께 깨어나는 듯한 녀석.

나는 그렇게 안쪽 옷에 방탄슈트처럼 붙어있던 검은촉수같은 녀석을 꺼냈다.

이내 허공을 향해 주먹을 쥐자, 공중에 떠서 내 주먹을 휘어잡는 녀석.

그렇게 마치 두꺼운 검은 거병의 팔같은걸 낀 모습이 된 나는, 근처를 향해 주먹을 날려봤다.

파앙-!

굉음과 함께, 쓰러지는 옆에 있던 나무.

...음 미안하다. 그래도 이미 얘 친구들도 원래 훈련의 여파로 많이들 쓰러져있으니 괜찮을꺼야.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때, 최세희는 흥미롭다는 듯 내 팔에 붙은 검고 커다란 베히모스-검틀렛을 바라보았다.

"뭐야. 이제 드디어 그 검은... 무언가도 써먹게?"

"써먹기야 원래부터 써먹긴 했고, 이제 슬슬 얘도 좀 다양하게 전투에 활용하는 법 찾아보게."

뀨잉~

나는 다시 검은 촉수를 해제시킨 뒤 가슴팍에 앝게 방탄조끼처럼 둘러놓았다.

내가 한은그룹 지하 실험실까지 들어가서 챙겨온, 한은그룹 지식의 결정체 베히모스.

평소에는 별로 쓸 일이 없어서 방탄조끼 신세인 비운의 생체병기이지만, 이제 슬슬 얘도 몸처럼 컨트롤 할 방법을 배워야겠다.

왜냐하면.

"..."

최세희와 하율이와 떠들며 숲을 걷다가, 나는 문득 하늘을 바라보았다.

...본격적으로 세계관이 막장이 되는 중후반부. 드디어 튀어나올 네임드 빌런들과 월광교 게이트 사건까지 생각하면... 내 몸 하나 잘 간수할 정도는 되야겠지.

그렇게 저택 앞까지 도착한 뒤.

동생을 보러간 하율이와 헤어지고, 최세희와 나는 저택 한쪽편으로 같이 걸어갔다.

"휴, 바로 샤워해야겠다. 너도 할거지?"

"당연하지."

"그럼 끝나고 같이 저쪽에서 바나나 우유나 마시자. 콜?"

"좋지."

"오케이. 십몇분후에 내려와라."

그렇게 최세희와도 헤어진 뒤.

나는 잠시 선선한 바람을 느끼며, 앞으로를 생각했다.

...능력을 어느정도 파워업 하겠다고 새삼스럽게 생각한 이유.

따지고보면, 오늘이 드디어 그 날이어서이기도 하다.

바로, 원작 분위기를 완전히 뒤집는 그 사건.

바로 월광교 게이트 사건의 신호탄이, 오늘 터지기 때문

나는 그 생각을 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아마, 예상대로라면 몇시간 뒤려나.

***

어두운 밤하늘.

하늘에 열리는, 거대하고 푸른 포탈.

그리고, 다닥다닥 붙어 전 하늘에 열리는 게이트들.

그곳에서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괴수들.

사람들의 비명과 함께 불타는 도시들.

그리고 그 중심에서, 광소하는 노인.

인간 시대는 끝났다.

이제 새로운 신이 우리를 구원하실 것이다-!

그렇게 이세계에서 찢어진 차원의 틈을 타, 전 세계를 공격하는 괴수들의 습격...

"...."

최세희와의 훈련을 마치고 돌아온 뒤.

씻고 나온후 같이 근처 벤치에 앉아 음료수를 마시며 수다떨다가, 다시 거실로 돌아와서.

나는 소파에 앉아, 티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

아마도, 전세계 어디에선가 뜬금없이 포탈이 하나 열릴거다.

그리고 거기서 괴물 몇마리가 튀어나오겠지.

단순히 빌런의 초능력 중 하나라 생각하고 넘길 수도 있지만, 능력자들 중 특히 강한 몇몇은 그 모습을 보고 느낄거다.

이건, 단순히 평범한 능력이라기에는 느껴지는 기운이 너무 이질적이라고. 어쩌면 더 큰 사건의 전초전이 될 수도 있을거라고 예측할 수도 있고.

물론 그런 생각은 그냥 단순한 망상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넘길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카테달은 다르겠지.'

그래.

나는 저번 카테달에서 미리 경고를 했었다.

차원의 경계가 무너져, 다른 차원에 사는 괴수들이 넘어올 수 있다고.

하여튼 오늘 결판이 나겠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티비를 봤고.

그렇게 기다리기를 몇분.

마침내, 속보가 떴다.

[실시간 글로벌 소식입니다! 현재 프랑스 상공에서 기묘한 무언가가 떠있다고 하는데요, 한번 보시죠!]

"....."

그리고 뜬 화면.

드디어 직접 보게 된 게이트.

[

......

]

그것은, 확실히 기묘한 광경이었다.

사람 키 2배 정도의 크기의 원이, 하늘에 떠있는 광경.

그러나 그것은 기묘하게도, 하늘에 떠있다기 보다는 마치 하늘이 '깨져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포탈 너머로 보이는 우주.

아니, 정확히는 우주같은 무언가라고 해야할까. 새까맣고 보는 것만으로도 기묘한, 안쪽에 작은 별빛들이 이 보이는 그런 광경이었다.

그리고 그 포탈 주위를 도는 푸른 기운들.

내가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을 때, 계속해서 앵커의 말이 들려왔다.

[네. 그리고 현지 언론에서 전한바에 따르면 이곳에서 2개의 괴수가 튀어나왔다고 하는데요, 다행히 사상자가 나오기 전에 히어로들이 진압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오는 죽어있는 괴수들의 사진.

푸른색에 보라빛, 검은색이 섞여 이루어진 마치 도마뱀같은 그것들.

누가봐도 지구의 생명체가 아닌 그것을 띄운 채, 앵커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현지 협회는 이 일을 빌런의 소행으로 규정한 뒤 해당 능력을 사용한 빌런을 찾고있다고 전했습니다. 한편 네티즌들은 '신기하다' '무섭다'등의 반응을 전했으며...]

그렇게 끝난 뉴스를 보며.

나는 티비를 껐다.

"휴우...."

결국, 원작대로 흘러가는구만.

나는 한숨을 쉬며 눈을 비볐다.

저건 당연히, 월광교가 저지른 짓일거다. 아마 슬슬 차원의 구멍을 내는 법을 연구중이겠지. 오늘이 첫 성과일거고.

물론 어차피 쟤네가 없어도 결국 열릴 게이트긴 하니. 그나마 다행인건 아직도 수십개월 남긴 했다. 미리미리 대처하기에는 충분하다는 소리.

"...역시, PMC 애들 성장시키는걸 더 빨리 해놔야겠네."

내가 최대한 막아도 어차피 어느정도는 뚫리게 되어있다. 그때가되면 대한민국 땅을 전부 스타더스가 지킬 수 있을리가 없겠지. 원작에서도 그렇고.

즉, PMC 애들을 키워서 괴수 처리는 이쪽이 도와주게 해야한다. ...슬슬 얘네도 이설아를 통해 어떻게 스타더스와 연결시켜야되나.

그렇게 미래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던 나는.

문득 스타더스를 떠올리고는, 다시 마음이 좀 초조해졌다.

...그래, 월광교에서 게이트 열리는건 다 좋다 이거야. 어차피 어느정도 계획이 있긴 하니, 이건 플랜대로 가면 된다.

다만, 그 보다 더 훨씬 중요한게 있으니.

"... "

아직도 저번 테러에서 스타더스가 보여준 그 울먹이는 모습이 신경쓰인다는 큰 문제가 있었다.

...이설아가 곧 만난다고 했으니, 그것만 기다리는 수밖어에 없으려나.

"씁..."

아 신경쓰여.

아니, 월광교보다 이쪽이 더 직감적으로 불안하다고...

등록된 마지막 회차입니다

대한민국 어딘가, 숨겨져있는 비밀스러운 곳.

빛이 희미하게 들어오는, 텅 빈 교회같은 어두운 그곳에서.

뒷짐을 서고 조용히 창 밖을 바라보고 있는 노인을 향해, 푸른 기운이 감도는 사제복을 입은 남성이 고개를 숙인채 말을 전했다.

"...교주님, 실험은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신이 계신 그곳의 통하는 차원과 문을 이국의 선교자들이 열어내었습니다."

그렇게 구체적인 수치와 결과를 상세히 전한 그.

허공의 화면에 비춰 괴수의 모습과 외차원에 대한 사세의 설명이 끝나고.

이내 다시한번 고개를 숙인 뒤, 물러간 그.

이내 조용히 눈을 감은 채 그 얘기를 듣기만 하던 노인, 월광교주는.

이내 뒷짐을 지었던 손을 푸른뒤, 갈라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래... 드디어 그날이 다가오는구나."

월광교주, 천월황은 자신의 주먹진 손을 들어올린 채 조용히 말을 이었다.

드디어, 이 비루한 세계를 정화할 순간이 조금씩 다가오고 있다.

이 어긋난 신을 섬기는 이들을 심판하고, 구세계를 무너트릴 새로운 신이 이 우주에 강림하는 순간.

세계는, 자신들의 진정한 신이 누구인지. 월광의 의미가 무엇인지, 뼛속깊이 깨닫게 될것이니.

"크흐흐. 크흐하하하. 크하하하하하하!"

그렇게.

마치 마른 기침을 터트리듯, 광기어린 노인의 갈라진 웃음소리가 텅 빈 교회를 가득 울렸다.

"쿨럭, 쿨럭. 그래... 심판의 날이 다가온다. 그때가 되면, 과연 아해들이 어떻게 발버둥칠지, 기대가 되는구나...."

그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손을 펼쳤고.

그렇게 갈라진 노인의 손에는, 검은색의 작은 구체가 마치 주위의 것들을 빨아들이듯, 블랙홀처럼 웅웅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실험은 성공했다.

지금은 단 하나지만. 곧 있으면, 세계 모든 곳에 차원의 연결통로를 만들 수 있겠지.

그리고 그때가 되면, 모든 이들이 외차원의 심판앞에 무력하게 짓밟힐 것이다. 그를 배신하고 떠난 무녀도, 그녀를 데리고 간 씹어먹어도 시원치않을 그 놈도 전부. 예상하지 못한 순간 쓸려나가겠지.

결국 마지막에 웃는 것은, 달의 신의 인도를 받은 우리 월광교가 될 것이다.

"크흐흐. 크하하하하하!"

아무도, 자신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상상도 못하고 있을 것이다. 차원의 통로도 못알아본 채, 멸망이 찾아오고 있다는 것도 상도도 못한채 무력하게 심판의 날에 죽어나가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월광교주는 홀로 텅 빈 교회 안에서.

홀로, 비릿한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었다.

***

[프랑스에서 열린 포탈에서, 괴수들이 튀어나와 큰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능력들과는 이질적이어 보이는 이 사건에 대해 프랑스 협회 측은 '엄정히 조사하겠다'라고 밝혔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영국 협회측이 올린 sns글도 화제가...]

"아. 저게 다인씨가 말한 그 차원의 통로인가 뭔가인가?"

유성기업 건물 최상층, 회장실.

그곳에서 뉴스를 틀어 보던 이설아는, 월광교의 비밀 병기를 한방에 알아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월광교라는 놈들이 지들끼리 준비한다던 그거겠구나."

긴 하늘색 머리카락을 늘어트린채, 월광교주가 들었으면 뒷목을 잡았을만한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조용히 중얼거리는 그녀.

이내 그 사건의 모습의 확대 사진을 보던 이설아는, 잠시 팔짱을 낀 채 생각에 잠겼다.

사진속에 보이는, 하늘에 떠있는 다인씨가 말했던 일명 포탈. 차원문의 모습.

마치 막 포토샵을 배운 어린 아이가 하늘사진에 원모양으로 우주를 합성해 놓은 것처럼, 이질적인 풍경에.

그녀는 잠시 침묵에 잠겼다.

'...그러니까. 결국 저런게 전국 곳곳에 생긴다고 했었지?'

다인씨에 말에 의하면, 저것들은 월광교가 뚫어낸 외차원의 문. 나중되면 언젠가 저런것들이 전세계를 뒤덮을거라 말했었다. 그리고 사방에서 튀어나오는 괴수들. 히어로 몇명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할정도로 많이 나온다 했었지.

'그래서 그가, 예전부터 히어로들의 수를 늘려야한다고 했었고.'

앞으로 사회가 더 혼란해질 만큼, 강한 초상 능력자들이 더 많이 필요하다고 했었다. 스타더스나 섀도우워커, 그리고 자신 셋이서 괴수들의 습격을 다 막을 순 없을테니.

그래서 다인씨가 1차적으로 준비했던게 그 PMC.

벌써 어느정도 훈련이 마무리되어서, 이제 슬슬 실전 연습만 남았다고 했었다. 그리고나서 2기생을 뽑는다고 하고.

그렇게 이설아가 잠시 생각에 잠겨있을 그때.

때마침, 비서가 노크소리와 함께 일정을 알렸다.

[이설아 회장님. 지인분과 약속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아, 그래요. 이제 슬슬 가야겠네요."

그래. 오늘은 오랜만에 하루를 만나기로 한 날.

이설아는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늘 빈틈없이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그녀였지만, 몇 안되는 자신의 소중한 친구를 위해서라면 늘 시간을 내는 그녀였다.

그리고...

'다인씨의 부탁도 있었으니까 말이지.'

그가 일으켰던 저번 테러에서, 스타더스. 하루가 왜 표정이 그리 안좋았었는지. 지금은 괜찮은지 좀 슬쩍 물어봐달라는 그의 말도 있었고하니.

그렇게 이설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하루가 기다리고 있을 곳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