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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길을 나서다

5화. 길을 나서다

아침 식사가 끝날 무렵 마차가 준비되었다. 이씨 노부인이 입을 헹구는 사이 주 부인이 시녀들을 살펴보기 위해 물러갔다. 나머지 네 사람은 이씨 노부인 옆에 앉아 반 시진 동안 담소를 나누며 웃고 떠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 부인이 들어와 준비를 모두 마쳤다고 알렸다.

어멈이 외투 꾸러미를 가져와 주인들에게 건네주었다. 이씨 노부인이 외투를 건네받는 운환에게 말했다.

“운환아, 네 외투 중 하나를 소난에게 주는 게 어떻겠느냐. 계절이 바뀌면 네 모친에게 옷을 몇 벌 더 지어 주라 이르마.”

운환이 웃으며 말했다.

“당연히 가져다줘야지요. 저는 옷이 많으니 괘념치 마셔요. 지금보다 더 많아지면 다 입지도 못할 거예요.”

이씨 노부인이 기분이 좋은 듯 주 부인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우리 집안 아이들은 마음 씀씀이가 넓구나. 자네가 아이들을 잘 가르친 것 같네. 암, 그래야지.”

주 부인이 먼저 외투를 입고는 이씨 노부인에게 외투를 입혀드렸다. 그리고 무언가를 찾는 듯 조심스럽게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소난에게 말했다.

“네 유모인 위 유모와 고소의 유모는 마차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너무 염려 말거라. 그들도 우리와 함께 갈 것이다.”

소난이 얼른 무릎을 굽혀 주 부인에게 감사 인사를 올렸다. 그녀는 마음을 들킨 것이 조금 민망한 듯 고개를 숙였다. 이씨 노부인이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동말이 소난을 부축하여 그녀가 마차에 오를 수 있도록 도왔다. 그리고 곧 뒤따라 마차에 올라 발을 내렸다. 소난이 발을 살짝 열어 창문 가림막을 통해 밖을 내다보았다.

마차가 산문을 지나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넓은 길을 향해 나아갔다. 소난이 발을 내리고 마차의 내부를 살폈다. 마차 내부는 그리 넓지 않았고, 사면이 남색 비단으로 둘러싸여 있어 소박해 보였다.

소난이 마차 내부를 꼼꼼히 살펴보는 동안 동말이 민첩하게 보따리에서 간식거리와 찻잔을 꺼내 마차 구석 칸에 정리해 놓았다. 그리고 보따리를 다시 묶어 방석 아래 공간에 집어넣었다. 일이 다 끝나자 그녀가 손을 탁탁 털며 휴 하고 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소난을 향해 웃어 보였다.

“아씨, 기대서 좀 쉬셔요. 앞으로 보름이나 가야 해요.”

동말이 말을 마치고 안타까운 표정으로 마차 벽에 두른 짙은 남색 비단을 어루만졌다.

“아씨, 이런 마차로 모시게 돼서 죄송해요. 노부인과 부인, 도련님, 다른 아씨들은 이미 몇 개월 전에 마차가 준비되어 있었는데 아씨 마차는 급하게 구하다 보니 이것을 타게 되었네요. 사실 이 마차는 원래 벽연(碧莲) 언니와 취연(翠莲) 언니가 타려던 마차예요. 주인님들 마차를 제외하면 그나마 이 마차가 제일 좋은 것이랍니다. 급히 준비하느라 어쩔 수 없어 이리 한 것이지 절대 아씨를 서운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니니 괘념치 마셔요.”

미안해하는 동말에게 소난이 웃어 보이고서 마차를 둘러보며 말했다.

“동말 언니, 너무 신경 쓰지 마. 이 마차는 내가 타본 것 중 제일 좋은 마차야.”

그 말에 동말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소난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당부했다.

“아씨는 너무 솔직하셔요. 앞으로는 이런 말들을 절대로 입 밖으로 내서는 안 돼요. 다른 노비들이 아씨를 우습게 볼 수도 있으니까요.”

소난이 쑥스러운 듯 미소 지으며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고개를 갸우뚱하며 동말에게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동말 언니, 벽연 언니와 취연 언니는 어떤 사람이라서 이런 마차를 탈 수 있는 거야?”

동말이 발을 걷어 바깥의 동정을 한 번 살펴보고는 다시 발을 내리고 소난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옆에 편안하게 기대앉아 대답했다.

“벽연 언니와 취연 언니는 노부인이 가장 아끼는 큰 시녀들이에요. 월례 은자가 일등(一等) 하녀들보다 더 많아요. 아마 두 배는 더 받을 거예요.”

동말의 목소리에서 부러움이 느껴졌다.

소난이 더욱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동말 언니는 몇 등이야?”

“저는 삼등이에요.”

동말이 기가 죽은 듯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럼 언니는 한 달에 은자를 얼마나 받아?”

소난의 물음에 동말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소난의 뺨을 살짝 꼬집었다.

“은자라뇨? 저는 삼등 하녀인걸요. 제가 어찌 은자를 구경할 수 있겠어요? 한 달에 오백 냥 받으면 많이 받아요. 나중에 아씨께서 크시면 제게 은자를 챙겨주셔요.”

“응! 내가 나중에 꼭 매달 은자를 챙겨줄게!”

소난이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하자, 동말이 소난을 품에 안은 채 등받이에 기대 누우며 웃었다.

“좋아요. 절대로 잊어버리시면 안 돼요. 나중에 아씨께서 부인이 되고 출세하시면 꼭 제게 매달 은자를 챙겨주셔야 해요!”

행렬의 선두에 있는 널찍한 녹나무 마차 안에서 이씨 노부인이 찻간에 반쯤 기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손 유모가 그녀의 옆에 공손하게 무릎을 꿇고 앉아 보고를 올렸다.

“…… 물어볼 수 있는 사람에게는 모두 물어 알아보았습니다. 부모의 관을 절에 맡긴 뒤로 하루도 빠지지 않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아침저녁으로 지장전에서 제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어젯밤 제단에 따라가 보니 누추하긴 했지만 갖춰야 할 예는 모두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관들이 가득한 전안은 비참하기가 이를 데 없었는데, 청명한 날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비가 오거나 흐린 날에는…….”

손 유모가 탄복하며 말을 이었다.

“하루도 빼먹지 않고 제사를 지내는 것이 정말 쉽지 않았을 터인데, 소난 아씨의 효심이 지극한 듯하옵니다.”

손 유모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씨 노부인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을 내뱉었다.

“여섯 살밖에 안 된 아이가 참으로 대단하구나. 타고난 천성이 인정 많고 의를 중시하는 듯하다. 귀한 신분에 속세를 혐오하는 유심대사가 그 아이 곁에서 종일 심경을 읽으셨다 하니, 필시 비범한 아이일 것이다. 앞으로 어떤 행운이 그 아이에게 깃들지 모르겠구나. 게다가 이리 인정 많고 의를 중시하니, 우리 고가가 일루의 희망을 품어 볼 만해…….”

이씨 노부인이 손 유모를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점점 더 가라앉는 이씨 노부인의 목소리는 거의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손 유모가 수파로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이씨 노부인을 달랬다.

“노부인, 그게 무슨 말씀이셔요. 고소 도련님께서 총명하시니 몇 년 후에는 고가에서 또다시 장원급제가 나올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가문의 영예가 아니겠습니까.”

이씨 노부인이 입을 열어 무슨 말을 하려다가 삼키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가 깊이 한숨을 내쉬고 쓴웃음을 지었다.

“우리 고소가 비록 우둔하지는 않으나, 제아무리 총명하다 한들 아비에 비할 수 있겠느냐. 고소는 성정이 순박하고 인정이 많은 아이니, 가문을 유지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거면 충분하지. 너무 총명하면 오히려 다치기 마련이야. 차라리 조금 모자란 것이 낫다.”

이씨 노부인의 목소리에 슬픔과 탄식이 담겨 있었다.

* * *

일행은 점심 즈음 노상 찻집에서 건량(干粮)을 먹으며 휴식을 취한 후, 반 시진 만에 다시 길을 나섰다. 여기서 시각을 지체하는 것보다 객잔(客栈)에 도착해서 편히 쉬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신시(*申時: 오후 세 시에서 다섯 시까지) 중반에 접어들었을 무렵, 고가 일행이 객잔에 도착했다. 객잔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주관사가 객잔 전체를 빌려 두었기 때문에 일행이 모두 머무르기에 무리는 없었다. 객잔의 주인과 하인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마차를 정리한 후, 따뜻하게 데운 물을 큰 양동이 가득 가져다주었다.

하녀들이 빠르게 움직여 각 주인의 세수와 탈의 시중을 들었다. 동말과 위 유모도 소난을 씻기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혔다. 위 유모가 소난을 안아 들어 침상 위에 눕힌 후 머릿수건으로 그녀의 머리를 싸맸다. 그러고는 소난의 머리를 잘 말려 양 갈래로 빗어 동그랗게 묶은 쌍계머리를 해 주었다.

그사이 동말은 허드렛일하는 하녀에게 물을 갈아달라고 하고는 몸을 씻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동말이 머리카락을 말려 좌계(*髽髻: 양쪽 귀 위로 틀어 올린 머리)를 하며 웃었다.

“유모는 이제 좀 쉬셔요, 제가 조금 이따가 아씨를 데리고 식사하러 갈게요.”

위 유모가 고마움 가득한 표정으로 동말에게 대답했다.

“고맙네. 동말이 자네가 우리 아씨 곁에서 요 며칠 고생이 참 많구먼.”

동말은 별일 아니라는 듯 명랑하게 말했다.

“노부인께서 직접 저에게 아씨 곁에서 시중을 들라고 하신걸요. 시녀로서 아씨를 성심성의껏 모시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위 유모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무언가 말하려고 하는데, 소난이 위 유모의 옷소매를 끌어당기며 자랑했다.

“유모, 이것 좀 봐. 이 옷은 동말 언니가 밤새 수선해 준 옷이야. 언니 바느질 솜씨가 유모 못지않게 꼼꼼해.”

위 유모가 소난의 옷섶과 소맷자락을 자세히 들여다보고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바느질 솜씨가 정말 꼼꼼한 편이네요. 하지만 동말이가 이 유모를 따라오려면 아직 한참 멀었어요.”

동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시큰둥한 표정을 짓자, 소난이 유모의 옷소매에 손을 넣어 작고 낡은 쌈지를 꺼내 손바닥 위에 올렸다.

“동말 언니, 이건 위 유모가 한 거야. 봐, 정말 예쁘지.”

동말이 소난의 손에서 쌈지를 들어 올려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한참을 들여다보던 그녀가 유모를 향해 무릎을 살짝 굽히고는 웃으며 말했다.

“유모, 제가 실례를 범했네요. 부에서 최고라는 수낭(绣娘)도 감히 따라가지 못할 바느질 솜씨예요. 앞으로 유모께서 바느질을 많이 가르쳐 주셔요.”

위 유모가 쌈지를 받아들며 대답했다.

“바느질법을 배우고 싶거든 언제든 말만 하시게. 내가 아는 기술을 모두 알려주겠네.”

소난이 훈훈한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며 웃었다. 그때 입구에서 가볍게 문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하녀의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난 아씨, 노부인께서 저녁 식사에 들라 하십니다.”

하녀의 부름에 동말이 서둘러 소난에게 신발을 신겨주고는 침상에서 안아 내렸다.

“유모는 후원(后院)에서 식사하셔요. 아씨는 제가 모실게요.”

위 유모가 살짝 머뭇거리자, 이번에는 소난이 나섰다.

“동말 언니가 하나부터 열까지 다 잘 가르쳐주니, 유모는 너무 걱정하지 마.”

소난의 말에 위 유모가 비로소 안심되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알았다고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