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0화. 제왕비
“정말 잊었나 보군.”
기 마마는 이를 앙다물고 답했다.
“잊지 않았습니다.”
“그럼 다행이군. 나와 왕야는 초야를 잘 치렀으니, 지도궁녀의 교육은 필요 없다는 뜻이네. 왕부의 인력을 놀릴 필요는 없으니 저들에게 계속 향료 관리를 맡기도록 하지. 아무리 재산이 많아도 놀고먹으면 사라지는 것은 한순간 아니겠는가?”
기 마마가 입을 헤 벌렸다.
‘듣고 보니 그럴 듯한데?’
‘아, 아니지! 이렇게 홀랑 넘어가면 안 돼!’
“마마, 이는 엄연히 다른 일이옵니다.”
강서의 음성이 조금 차가워졌다.
“아니, 이는 일맥상통한 일이네. 정 못 믿겠다면 자네가 직접 왕야께 물어보시게. 내 말이 틀린지.”
기 마마가 마지막 발악에 들어갔다.
“사내는 바깥일을 하고, 여인은 집안일을 관장하는 것이 도리입니다. 왕부의 일은 왕비마마의 관할이온데, 어찌 이런 일을 왕야께 말씀드리겠습니까?”
“그걸 아는 자가 왜 나와 갑론을박을 하려는 건지 모르겠군.”
말을 마친 강서는 소매에서 비수 한 개를 꺼내 탁상에 소리 나게 올려놓았다.
수수하고 작은 비수였지만, 규수가 몸에 지닐만한 물건의 느낌보다는 병기에 가까웠다.
기 마마가 움찔 놀라며 딸꾹질을 했다.
‘새신부가 왜 저런 흉기를 몸에 지니고 있는 거지?’
강서는 손가락으로 비수를 어루만지며 그냥 지나가는 투로 말했다.
“나는 성격이 그리 관대하지 않아. 만약, 내가 주관하는 일에 다른 사람이 끼어든다면 작은 충동이 들곤 하지…….”
참혹한 전쟁터와 같은 황실에서 연왕부는 그녀와 아근의 유일한 안식처이다. 이곳에서만큼은 다른 사람의 참견이나 간섭은 용납할 수 없었다.
할 말을 잃은 기 마마는 눈만 끔벅끔벅거렸다.
군자는 말로 하고, 소인은 손을 쓴다는 말도 모르는 것인가?
주나라의 왕비가 비수로 아랫사람을 협박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 얘기인가? 이 일이 알려진다면 사람들이 연왕부를 어찌 생각하겠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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