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수사
도망가는 것도 잽싸네!
모두 배가 아플 정도로 웃었다.
방금 할머니는 모든 힘을 다해 욕을 퍼붓고 있었기에, 사람들은 할머니가 끝까지 강경한 태도로 맞설 줄 알았다. 하지만 그녀는 분노에 휩싸여 판단력을 잃지 않았다.
그녀는 세 명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먼저 오 씨를 꼼짝 못 하게 만든 다음, 기회를 틈타 오 씨를 밖에 가둬버렸다!
이런 일을 겪어 본 적이 없던 오 씨는, 땅에서 돌을 주워 문에 던지려 했다.
그러나 돌이 문짝으로 날아가기도 전에, 번쩍이며 빛나는 낫이 휙 날아와 문짝에 꽂혔다.
돌을 든 오 씨의 손은 깜짝 놀라 순식간에 굳었다.
만약 낫이 반 치만 빗나갔어도, 그녀의 손이 잘려 나갔을 것이다.
넋이 나간 오 씨가 손에 쥐고 있던 돌이 땅에 떨어지면서 오 씨의 발등을 찧었다.
“악!”
오 씨가 비명을 질렀다.
문에 던지려고 고른 돌이 작았을까?
그녀는 특별히 가장 큰 것을 골라 들었다. 그 큰 돌이 발 위로 떨어지자, 오 씨는 아파서 눈물이 났다.
순식간에 날아온 낫 때문에, 오 씨의 발도 빠르게 찧었다. 구경하던 사람들은 눈을 떼지 못했다.
마을에서 이런 소란은 좀처럼 보기 힘들었다.
모두가 일제히 고개를 돌려 고교를 봤다. 고교는 작은 바구니를 메고 침착하게 걸어오고 있었다.
작고 여린 몸은 무해했으나, 차가운 눈빛은 살기를 뿜었다.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츠리면서 그녀에게 길을 터줬다.
아무도 그녀가 어떻게 낫을 던졌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만약 문에 던지지 않았다면, 누군가의 뒤통수에 던져졌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모두 뒤통수가 시려왔다…….
류 씨가 제일 먼저 반응했다.
“고교, 너 때마침 잘 돌아왔어! 빨리 문 열어서 저 미친년 좀 끌어내! 저년이 네 할머니한테 한 짓을 좀 봐!”
피식.
고교는 차갑게 웃었다.
“돌을 든 것도, 그걸로 발을 찧은 것도 누군지 안 보였어요? 어르신의 눈이 안 좋은 건 그렇다 쳐도, 아직 젊은 둘째 아주머니의 눈이 그렇게 안 좋을 줄은 몰랐네요?”
류 씨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계집애가 도대체 왜 이러는 거지?
그녀가 처음에 대순을 끌어당기고 이순을 발로 찬 것은 모두 멍청해서 벌어진 일이라고 해도, 이렇게 사람들 앞에서 오 씨가 눈이 멀었다고 욕하는 것은 고씨 집안과의 사이를 완전히 틀어버리는 행동이었다.
“이 계집애가! 감히 할머니를 욕하는 것이냐?”
오 씨는 소매를 걷어 올렸다. 걸음을 힘껏 내디디려고 했으나, 다친 발이 아파 걷지 못했다.
주 씨는 얼른 시어머니를 부축했다.
“어머니, 조심하셔요!”
오 씨는 아프고 화가 나서 손가락으로 고교를 가리키며 욕을 하기 시작했다.
“이 짐승만도 못한 년아! 차라리 물에 빠져 죽지 그랬어!”
이때, 소육랑이 다가왔다.
소육랑과 고교는 최근 들어 자주 붙어 다녔다. 두 사람의 사이가 좋아졌다는 소문은 일찍부터 마을에 퍼졌지만, 그는 그 소문에 대해서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때문에 마을의 적지 않은 사람들이 고교가 일방적으로 따라다니는 것일 뿐이라고 추측했었다.
“육랑, 자네 고모와 고교가 하는 짓 좀 봐, 어머니의 연세가 이렇게 많은데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주 씨가 소육랑을 나무랐다.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육랑은 뜻밖의 말을 꺼냈다.
“연세도 있으시니, 자중하셔야죠.”
주 씨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괜찮아?”
소육랑이 고교에게 다가가 물었다.
“괜찮아요.”
고교가 고개를 저으며 문에 꽂힌 낫을 뽑았다.
소육랑이 문을 향해 외쳤다.
“고모님, 저희가 돌아왔습니다.”
문이 삐걱거리며 열렸다.
소육랑과 고교는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
마을 사람들은 서로 마주 보며 웅성거렸다.
방금 제대로 본 게 맞는 것인가?
소육랑이 저 바보 계집과 말을 나눴다.
게다가 괜찮으냐고 묻기까지 했다. 두 사람의 사이가 진짜로 좋아졌단 말인가?
소육랑은 방으로 들어가면서 문을 닫았으나, 세게 닫지 않아 안의 소리가 바깥으로 들렸다.
“앞으로 이런 일이 생기면 관청에 고하세요. 제가 직접 관아에 가서 상소문을 올릴 것입니다.”
따라 들어오려 했던 세 사람은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이런 일도 관청에 고할 수 있단 말인가?
소육랑이 저렇게 당당하게 말하는 걸 보면…… 진짜로 관청에 고할 수 있는 일이겠지?
저 절름발이의 마음이 이렇게 검을 줄이야!
“어머니, 셋째 집의 재산은…….”
주 씨가 작게 속삭이며 일깨웠다.
사실 고교의 분가에는 아무도 모르는 음모가 있었다.
고씨 집안은 셋째의 토지와, 올케가 시집올 때 가지고 온 혼수를 몰래 빼돌렸던 것이다.
만약 진짜로 관아에 가게 된다면 이 일을 들킬 수도 있었다.
오 씨는 이를 악문 채, 어쩌지도 못하고 두 며느리와 초라하게 돌아갔다.
소란을 일으킨 당사자들이 모두 떠나자, 구경하던 사람들도 모두 흩어졌다.
고이순도 집으로 돌아갔다. 고소순은 마을을 한 바퀴 돌다가 다시 고교의 집으로 향했다.
* * *
고교와 소육랑은 안채 의자에 앉아 있었다.
할머니는 두 사람 앞에 있는 나무 걸상에 다리를 꼬고 앉아 해바라기씨를 까먹고 있었다.
소란에 대한 해명 따위는 전혀 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마을 사람들이 고교와 소육랑에 대해 생각했던 것과 다르다고 느낀 듯이, 두 사람도 할머니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할머니는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뭘 물어도 확실하게 대답하는 법이 없었다.
반응도 느렸기에 고교는 그녀가 정말 치매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 오 씨를 대하는 그녀의 태도는 그야말로 고수 같았다.
“그동안 저를 속인 것입니까?”
고교가 물었다.
할머니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시고모를 대하는 태도가 그게 뭐야?”
게다가 아직도 연기를 해?
아니, 연기를 하는 것 같지는 않다.
고교는 진지한 얼굴로 고소순을 불렀다.
“따라와.”
고교가 방문을 닫았다.
“말해봐, 오늘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고소순은 할머니를 어떻게 돌봤는지 자세하게 설명했다.
할머니는 정말 기억을 하지 못했다.
그녀가 고교의 집에서 깨어났을 때, 스스로 이 집안사람인 줄 착각하고는 고소순에게 이렇게 물었다.
“저 불효자들 중에 누가 내 손자야?”
고소순은 누나의 당부를 잊지 않고 있었다.
할머니가 나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릴 수는 없었으나, 누나와 매형이 그녀의 친손자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하여, 멀리서 찾아온 매형의 고모라고 둘러댔다.
고교도 할머니가 치매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몰랐기에, 미처 고소순에게 변명할 말을 준비해 주지 못했다.
“그랬더니 왜 매형이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것처럼 보이냐고 묻더라고, 그래서 우리 매형은 데릴사위라고 말했지! 그랬더니 또 데릴사위면 왜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느냐고 할머니가 물어봐서 내가 매형과 누나는 분가했다고 말했어.”
여기까지 듣던 고교의 이마에 주름이 졌다.
누가 살림을 도맡아 한단 말인가?
그녀와 소육랑은 가끔 함께 밥을 먹을 뿐, 줄곧 각자 알아서 살아왔다.
그러나 고소순 이 바보가 할머니의 꾐에 넘어가서 모든 것을 술술 불었다.
어쩐지 할머니가 고씨 집안에 대해서 말할 때 거리낌이 없더라니, 모두 다 고소순의 입에서 나온 말을 듣고 알게 된 내용들이었다.
“그럼 왜 내 말에는 대답을 안 하는 거지?”
고교는 할머니의 반응이 느리다고만 생각했다.
“누님이 효도를 안 한다고, 상대하고 싶지 않대!”
“……”
밀전 몇 개 덜 먹인 거 가지고 불효라고?
고교는 안채로 들어갔다.
소육랑은 이미 할머니와 이야기를 끝내고 있었다. 소육랑이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르나, 할머니의 기세는 조금 꺾여 있었다.
“싸웠더니 졸려 죽겠네. 먼저 잘 테니 밥이 되면 부르렴!”
할머니는 콧방귀를 한번 뀌고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방으로 돌아가 잠을 청했다.
고교가 소육랑을 쳐다보자, 소육랑은 잠시 멈칫하다가 말을 꺼냈다.
“그때 그 의원님의 말에 따르면, 1년 동안 약을 먹어야 한다고 했어. 하지만 회복이 빠르면, 전염성은 한 달이면 없어진다고 들었어.”
할머니가 계속 머무르는 것에 대해서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전염성이 없어질 것이라는 말속에는 고교의 허락을 구하려는 뜻이 있었다.
고교는 그에게도 다른 사람에게 연민을 표할 때가 있다는 것을 미처 몰랐다.
아마 할머니를 보면서 일찍 죽은 그의 형이 생각났을 테지.
“그럼, 일단 고모님을 여기에 머무르게 해요.”
고교는 한숨을 흘렸다. 원래도 내쫓을 생각은 없었으니, 그의 부탁을 들어줘도 괜찮을 것이다.
그녀의 신분을 고모로 하는 것에 대해 두 사람은 동의했다. 현재로선 그게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 * *
그들의 결정은 정확했다.
그날 밤, 한 무리의 병사들이 청천촌에 침입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문둥산에서 도망친 병자를 수색했다.
마을에서 외지인은 할머니뿐이었다. 그녀가 최근에 마을에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병사들은 곧바로 고교와 소육랑의 집으로 쳐들어왔다.
병사들이 찾아왔을 때, 부부는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고, 할머니는 이미 배불리 먹고 방에서 불을 쬐고 있었다.
저녁밥은 푸짐했다. 말린 고기 배추볶음, 파계란 전, 버섯탕과 목이버섯 무침 한 접시, 술안주로 화생 한 접시까지 있었다.
물론, 술을 마시는 사람은 없었다.
말린 고기와 파계란 전의 냄새가 확 풍기며 병사들의 코를 자극했다.
“무슨 일이신지요?”
소육랑이 물었다.
병사들이 다시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이 집에 할머니 한 명이 왔다고 들었는데, 어디 있소?”
소육랑은 병사들을 데리고 할머니의 방으로 향했다.
“저의 고모님이십니다. 며칠 전에 소현(苏县)에서 오셨어요.”
소육랑이 말하면서 앞으로 걸어가, 할머니가 미처 숨기지 못한 그릇을 가져갔다.
“또 밀전을 훔쳐 먹다니요. 연세가 많으니 이렇게 단 음식을 많이 먹으면 안 된다고 제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흥.”
할머니는 밀전을 훔친 것을 들키자 원망스러워하며 얼굴을 돌렸다.
병사들은 나병 환자의 초상화가 없었으나, 상부에서 말한 특징에 따르면 환자는 얼굴과 손등에 이미 나병 증상이 나타났고, 안색이 누렇고 정신이 온전치 못하다고 했다.
눈앞의 할머니는 도망친 나병 환자와 나이는 맞아떨어졌으나, 그 외의 특징은 전혀 달랐다.
붉은 혈색에 정신도 맑았다. 나병이라기엔 너무 멀쩡해 보였다.
나병은 치료할 수 없는 병이었다. 약으로 증세를 늦출 수는 있었지만, 열흘이라는 짧은 시간 내에 회복할 수는 없었다.
병사들의 의심은 반쯤 사라졌다.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할머니를 대하는 소육랑을 보자, 할머니가 병사들이 수색하고 있는 나병 환자일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대장은 쉽게 방심하지 않았다. 대장은 부엌에 가서 난로 위의 약첩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 약은 누구 것이오?”
소육랑이 대답했다.
“제 것입니다. 다리를 다쳐 의관에서 타온 약입니다.”
“약봉지를 보여주시오.”
고교가 약봉지를 가져왔다.
대장이 한 봉지를 뜯자, 안에 삼칠(三七)이 들어있는 것이 보였다.
삼칠은 흔히 볼 수 있는 혈액과 멍을 없애주는 약재로, 무예를 배우는 이들 사이에서는 낯설지 않은 약재였다.
그 외에 홍화(红花)가 있었는데, 상처에 자주 쓰이던 약재였다.
이 두 가지 약재는 확실히 나병 환자를 치료하는 약들이 아니었다.
“이름이 뭐요?”
대장이 물었다.
“소육랑입니다.”
소육랑은 정색하며 말했다.
“만약 나리들께서 제 신분에 대해 의심이 간다면, 천향 서원의 학장님을 찾아 제 호적을 알아보셔도 됩니다.”
남자는 눈살을 찌푸렸다.
“천향 서원의 학장님이라면, 성이 여(黎)씨인 그분을 말하는 것이오?”
“맞습니다.”
관차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소육랑을 대한 태도가 조금 공손해졌다.
일반적으로, 호적을 조사하기 위해서 굳이 학장에게 물을 필요까지는 없었다. 소육랑이 특별히 그의 이름을 꺼냈다는 건, 그들에게 자신이 학장님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소육랑은 학장님의 제자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았지만, 그의 권세를 빌어 위세를 부리는 것에 거리낌은 없었다.
뻔뻔해지니, 부담도 되지 않았다.
여 학장(黎院长)의 이름은 쓸모가 있었다. 관청의 관차들은 의례적인 질문을 몇 개 한 후, 병사들을 철수시켰다.
그러나 병사들은 멀리 가지 않고, 한 사람을 잠입시켜 이웃인 설응향의 집으로 들어갔다.
“옆집의 할머니가 정말 소육랑의 고모인 게 맞소?”
“네.”
“언제 왔는지 아시오?”
“바로 며칠 전에 온 걸로 알고 있어요.”
“열흘 전이라고 들었소만?”
병사가 설응향의 눈동자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물었다.
설응향은 정색했다.
“옆집에 사는 나도 처음 들어보는 소린데, 누구한테 들으신 겁니까?”
병사는 설응향의 품에 안겨있는 한 살짜리 아들을 번뜩이는 눈빛으로 쳐다보다가 떠났다.
설응향의 등은 식은땀에 흠뻑 젖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