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가족 (2)
임근용은 황 이낭이 오공자가 오지 못한다고 했던 말에 관심이 생겼다. 왜 못 온다는 걸까. 임 삼노야가 그를 앞세워 손님 접대를 하고 있지 않았나? 아니면 서자라도 귀하신 몸이라서?!
임근용은 자신의 어머니를 저지할 수 없어서 오씨와 마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강산은 변하기 쉬워도 사람의 본성은 변하기 어렵다 했던가. 그녀가 도씨의 행동을 갑자기 바꾸는 건 아주 어려운 일이었고 현실적이지도 않았다.
황 이낭은 도씨의 성격에 이미 익숙해진지 오래라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찔러대는 그녀의 말에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순종적으로 눈을 내리깔며 가볍게 말했다.
“부인의 말씀이 맞습니다. 나중에 오공자를 보내 부인의 가르침을 받게 하겠습니다.”
도씨는 또 화가 났다.
그녀는 시집을 온 지 3년이 지나서야 임근음을 낳았고, 이어서 2년 동안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도씨는 주변의 압박 때문에 하는 수 없이 황 이낭의 피임약을 끊었다. 황 이낭은 팔자가 좋은 탓인지 바로 아이를 가졌고 단번에 득남했다.
임역지가 막 태어났을 때 임 삼노야는 도씨가 직접 아이를 양육했으면 하고 바랐다. 하지만 도씨는 좀 늦어지긴 했지만 아들을 낳을 수 없는 몸은 아니었기 때문에 이걸 핑계로 그들의 음모에 말려들어 서자를 적자로 키우게 될까 봐 죽자사자 반대했다. 도씨는 모자를 떼어 놓을 수 없다고 둘러대며 황 이낭이 스스로 아이를 기르게 했다.
이어서 그녀 역시 임근용을 품었다. 그때는 성별을 몰라 임 삼노야도 더는 강요하지 못했는데 낳고 보니 어째 또 딸이었다.
도씨는 굴하지 않고 이를 악물며 계속 낳으려 하였지만, 운이 따라주지 않는 탓인지 그렇게 또 7년이란 세월이 지나가 버렸다. 그리고 그녀는 시집온 지 14년 만에 마침내 임신지를 얻었다.
그러는 동안 황 이낭 모자 두 사람이 임 삼노야를 완전히 휘어잡았다. 비록 첩을 총애해 정처를 내칠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는 항상 그들을 보호했다.
그 후 형님들은 도씨를 뒤에서 비웃었다. 도씨는 형님들이 이런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녀는 아이를 양자로 삼아 키우겠다고 했어야했다. 그리고 어떻게든 아이를 끝까지 물고 늘어지면 황 이낭을 다스릴 수 있는 약점을 하나 손에 쥐는 셈이었다. 그 아이가 잘 자라든 말든 그건 그녀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애석하지만 뒤늦게 후회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녀가 아무리 후회한다 해도 되돌릴 수는 없었다. 도씨는 그들의 입지가 날로 커져 가는 데도 아무것도 할 수 없어 화가 나 죽을 지경이었다!
도씨는 일단 화가 나면 사람을 거들떠보지 않고 굳은 얼굴로 성질을 부리며 말을 하지 않았다.
임근용은 급하게 그녀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오씨를 향해 입으로 신호를 보냈고, 도씨는 그제야 씩씩거리며 말했다.
“일어나게.”
황 이낭은 또 다시 순종적으로 눈을 내리깔고 일어서서 임근용을 다정하게 바라보았다. 임근용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날 그런 눈으로 보지 마! 난 임 삼노야가 아니라 그렇게 추파를 던지는 꼴은 못 봐주겠으니까.’
임근용이 고개를 들고 웃으며 말했다.
“시간이 거의 다 돼서, 우리는 빨리 할머니에게 가야 해. 이낭도 같이 갈 건가?”
황 이낭의 신분으로는 같이 간다 해도 시녀들처럼 곁에 서서 도씨를 모시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예전에 황 이낭은 옷을 잘 차려입는 것을 좋아했다. 도씨가 사람들 앞에서 그에 대해 몇 번 꾸짖은 이후, 임 삼노야는 당시 외아들이었던 임역지의 체면과 애첩을 아끼는 마음에 희생을 감수하며 도씨와 협상을 했고 그 이후로 황 이낭을 이런 자리에 가지 못하게 했다.
그것이 오랫동안 자연스럽게 습관이 되어 임근용은 황 이낭이 여기 와서 그저 얼굴을 비춘 것뿐이고 아마 따라가지는 않을 거라 예상했다. 그래서 이런 질문을 했던 것이다.
황 이낭이 웃으며 말했다.
“비첩이 오랫동안 부인을 모시지 않았잖아요. 그저께 삼노야께서 비첩을 나무라시더군요. 부인께서 관대하셔서 비첩이 그동안 예의를 너무 몰랐지요.”
이건 도씨를 모시고 따라가겠다는 뜻이었다.
도씨도 임근용과 생각이 같아서 그녀가 따라가지 않을 줄 알았다. 도씨는 그녀의 말을 듣고 잠시 멍해졌다가 곧 냉소하며 말했다.
“마음대로 하게. 하지만 몸이 좋지 않으면 바로 돌아가서 쉬게. 또 내가 자네한테 모질게 군다고 착각하지 말고.”
그녀는 “또”라고 말하며 이를 꽉 깨물었다. 이건 황 이낭이 앞뒤 다르게 뒤에서 임역지에게 험담을 할까 봐 걱정돼서 하는 말이 아니겠는가?
‘도채령(陶采苓)은 그렇게 비열한 인간이 아니야, 여태껏 그런 짓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어!’
“부인!”
황 이낭이 눈을 깜빡이고 입가에 부드러운 웃음을 지으며 느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들이 모두 부인의 성격이 무섭다고 하지만, 비첩은 부인이 너그러운 분이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부인의 은혜는 전부 마음에 새겨두겠습니다. 비첩, 진심으로 부인을 모시고 싶습니다.”
그녀는 도씨 모녀가 오늘 임역지의 일을 덮어주면 장남가와 차남가 그리고 손님들 앞에서 도씨를 받들겠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었다.
도씨는 천성이 대쪽 같아서 줄곧 남에게 굴복하려 하지 않았다. 상대가 부드럽게 나오면 받아들이지만 강하게 나오면 반발하는 사람이었다. 황 이낭이 이렇게 순순히 복종하며 그녀에게 찾아와 납작 엎드리자 도씨는 할 말을 잃었다. 그녀는 눈만 껌뻑이다가 갑갑해하며 오씨를 끌고 가 버렸다.
임근용은 임신지의 통통한 손을 잡고 일부러 뒤에서 천천히 따라갔다.
황 이낭도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움츠리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미소를 짓더니 임근용에게 말을 걸었다.
“넷째 아가씨는 아직 육 대부인을 못 보셨지요? 육 대부인께서 선물을 많이 챙겨 오셨다고 들었는데, 어떤 것은 해외에서 온 희귀한 물건들이라 처음 보는 것들도 있대요. 그 사촌 공자가 정말 잘 생겼다더라고요. 임, 육, 오 세 집안의 자제들 중에서 그분이 일등이래요.
듣자니 전에 노태야와 다른 어르신들께서 번갈아 가며 질문을 하였는데, 그분이 전혀 어려워하지도 않았대요. 이름이 뭐였더라? 육함이었던 것 같은데요? 오씨 가문 이공자랑 동갑이래요.”
임근용은 심장이 갑작스럽게 빨리 뛰기 시작해 하마터면 숨을 쉬는 걸 다 잊어버릴 뻔했다.
‘죽었다 다시 살아나서, 나를 버린 원수를 또 만날 때까지가 이렇게도 짧다니!’
그녀가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긴 했지만 황 이낭이 반복해서 그 이름을 말하니 원한이 뼈에 사무치는 것 같았다.
“넷째 누님!”
임신지가 임근용의 손을 뿌리치며 불만스러운 듯 입을 삐죽 내밀고 불평했다.
“아파! 너무 꽉 쥐어서 아프잖아.”
임근용은 잠시 자제력을 잃었다.
그녀는 퍼뜩 놀라 정신을 차리고 손에 힘을 뺀 뒤 임신지의 손을 가져다 입술에 대고 살살 불며 웃었다.
“누나가 이렇게 호호 불어줄게, 넷째 누나가 힘이 세지?”
임신지는 금이야 옥이야 하며 길러진 편이긴 했지만 자신의 두 누나들에게는 관대한 편이었다. 그는 조금 아팠지만 임근용이 호호 불어주자 금세 아무렇지 않아 했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돌을 차고 놀면서 걸었다.
임근용은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그녀는 때로는 미운 마음이 들었고 또 때로는 냉소했다. 사람을 미워하는 것 역시 힘이 많이 드는 일이었다. 그러니 그 모질고 악독하며 신의를 저버린 사람은 정말로 그녀가 미워할 가치도, 신경 쓸 가치도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계속 그를 미워하고 있었다.
임근용은 자신의 이상한 모습을 감추기 위해 황 이낭의 말을 따라 했다.
“그래? 그 사촌 오라버니가 정말 그렇게 대단한가? 이낭은 그걸 누구한테 들은 거야?”
‘아주 좋아, 목소리가 차분하니 감쪽같을 거야.’
황 이낭이 도씨에게 족제비라고 불리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녀는 오래전부터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임근용의 행동거지를 모두 눈여겨보고 있었다. 그런 황 이낭에게 어떤 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이번 사건은 황 이낭에게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기회나 다름없었다. 지금 삼남가에 적자(嫡子)가 생겼고 임근음은 곧 괜찮은 시댁으로 시집을 갈 예정이었다. 임역지도 이제 컸으니 앞으로 부인의 힘을 빌려야 할 일이 아주 많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계속 부인과 대립하는 건 의미가 없었다. 삼노야도 부인의 그 불편한 성격을 골치 아파했다.
황 이낭은 삼부인 앞에서 자신들 모자를 위해 좋은 말을 해 줄 유능한 사람이 필요했다. 그렇게 천천히 관계를 호전시켜야 했다. 아들에게 도움이 될 수만 있다면 그녀가 부인에게 몇 번을 짓밟힌들 그게 무슨 대수겠는가?
삼부인이 가장 아끼는 것이 바로 이 세 명의 친자식이었다. 셋째 아가씨는 나이가 있어 속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내년에 시집을 갈 예정이라 힘을 들여 끌어들인대도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다.
나이가 어리고, 아직 미혼인 데다 성격이 유순하고 선량한 임근용이 의심할 여지없이 가장 적합한 대상이었다!
황 이낭은 밑바닥에서부터 발버둥 치며 올라온 사람이었다. 천진난만한 임역지처럼 오늘 임근용이 도와주었다고 비위만 잘 맞추면 나중에도 계속 도와주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임근용이 뜻밖의 선심을 베푼 것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쩌면 체면 때문에 육씨 가족이 임씨 가족을 괴롭히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혹시 다른 문제가 생겨 삼부인을 괴롭힐까 걱정이 되어서였을지도 모른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사람이면 누구나 감정과 욕망을 가지고 있는 법이니 임근용이 앞으로 계속 자신들을 도와주게 만들려면 반드시 그녀의 비위를 맞춰 주어야 했다.
그리고 지금 황 이낭은 이 넷째 아가씨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을 찾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아가씨들은 모두 좋은 부군에게 시집가고 싶어 하지 않던가?
임씨와 육씨 두 가문은 조상 대대로 각 세대마다 반드시 혼인을 한다는 약속을 했다.
이것에 관한 전고가 있는데, 일찍이 임씨, 육씨 두 집안의 선조가 시험을 보러 상경을 하던 중이었다. 육씨 가문의 선조가 가는 길에 교상사(*绞肠痧: 콜레라)에 걸려 거의 죽을 뻔했는데 임씨 가문 선조의 도움으로 살 수 있었다.
이로 인해 서로 동향인 것을 알게 된 두 사람은 그 이후 과거 시험에도 나란히 합격했다. 그들은 절친한 친구가 되어 대대로 사돈을 맺어 두 가문의 인연을 이어가기로 약속했다.
이번 세대에서는 육함이 육씨 가문의 결혼 적령기 자제들 중에 가장 뛰어났다. 임근용의 용모와 성정 역시 임씨 가문의 적령기 여자들 중에서 제일이었다. 하지만 남녀 간 혼사에서 어찌 이것만 고려한단 말인가.
그보다 더 많이 보는 것이 바로 부모의 능력이었다. 삼남가의 신선놀음이나 하는 임 삼노야와 성질이 고약한 삼부인을 생각해보면, 재권을 장악한 장남가의 다섯째 아가씨나, 총애받는 차남가의 쌍둥이 자매인 여섯째와 일곱째 아가씨가 임근용보다 더 우세했다.
임근용이 육함에게 시집가려면 아마 꽤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