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1화. 불신
창밖에는 가을비가 쉬지 않고 내리고 있었다. 빗방울이 포도 잎을 때리며 내는 솨솨 소리에 방 안은 더 춥게 느껴졌다. 임근용은 비단 상의를 단단히 여미고 눈을 내리깐 채 은비녀를 들고 촛불의 심지를 고르고 또 골랐다.
육함은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촛불 아래에서 그녀의 피부는 윤기가 흘렀고 표정은 평온해 보였다. 하지만 살짝 앙다문 입술이 그녀의 솔직한 감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분노한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아주 불쾌해하고 있는 건 확실했다. 육함이 입을 열지 않으면 그녀는 절대 먼저 입을 열지 않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이 일은 해결해야 했다. 육함이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내가 당신을 속여서 화났소?”
임근용은 손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며 전혀 거리낌 없이 솔직하게 말했다.
“네.”
그녀가 이렇게 직설적으로 나오자 육함은 어떻게 말을 이어야할지 몰라 잠시 침묵했다가 입을 열었다.
“지금 당신한테 가장 중요한 일은 배 속의 아이를 잘 기르는 거요. 난 당신을 위해서 그랬소. 당신한테도 말했지만 들으려 하지 않았잖소.”
임근용이 냉담하게 웃으며 그의 말을 이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이런 얄팍한 속임수를 쓰셨다는 거군요. 차라리 처음부터 허락하지 말지 그랬어요. 해 줄 수 없는 일을 해 주겠다고 약속하면 안 되는 거죠.”
이번 일은 육함이 약속을 어긴 것이 너무 확실해서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그가 한참 후에 다시 입을 열었다.
“가게를 여는 일이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오. 반루가에 있는 가게들 중에 뒷배가 없는 집이 하나라도 있는 줄 아시오? 더구나 경성에는 업종별로 오래된 업계 규율 같은 것도 있어서 장사가 평주랑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힘들 거요. 가게를 열고 싶다고 해서 내 마음대로 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열었다고 해서 버틸 수 있는 것도 아니오.”
임근용은 계속 그를 응시하다가 그가 불편해하는 것 같자 평온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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