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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자신감

9화. 자신감

심요는 수가 놓인 손수건을 팔락거리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정말 자기가 잘난 줄 아나 봐. 누가 언니 걱정을 해? 시집가겠다는 언니 때문에 누군가 피해를 당할까 봐 그게 무서운 거지!”

심모는 끝까지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고 되려 미소를 지었다. 아무리 심모의 화를 돋우려고 해도 되지 않으니 심요는 화가 머리끝까지 올랐다.

“피해를 당해도 나를 받아주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 세상의 일이라는 거, 아무도 장담 못 하는 거 아니겠어?”

심수와 심하는 옆에 서서 심모와 심요가 주거니 받거니 다투는 것을 들으니 흥미진진했지만, 심모의 마지막 말을 듣고 파르르 떨리는 얼굴을 감출 수 없었다. 큰언니가 언제 저렇게 당당해졌는지 속으로 놀라고 있었다. 대패한 심요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붙어 서 있던 두 사람을 노려보았다. 심수는 그런 그녀의 눈 밖에 날까 봐 웃으며 심모를 보고 말했다.

“큰언니, 정말…… 자신만만해 보여.”

뻔뻔하다고 말하려니 요조숙녀의 언사로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심모는 그런 말을 하는 동생들을 쳐다보며 웃었다.

“내가 평생을 큰 몸집으로 살다가 갑자기 살이 빠지니 너무 자신감이 넘쳤나 봐. 며칠 지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겠지.”

“그런 거라고?”

심하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 되물었다. 심하가 느끼기에 심모의 자신감은 겉이 아닌 저 깊은 속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것 같았다. 언니의 변화된 모습이 어찌 된 영문인지 알 수 없었다.

심모는 다시 심하를 보았다. 나이는 자매들 중 가장 어렸지만, 그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교활함과 깊이 감추어진 음흉함은 나이를 뛰어넘고 있었다. 이 나이 또래 중 이렇게 많은 속셈을 가지고 분란을 일으키면서 사람을 힘들게 하는 사람도 드물 것 같았다. 그러나 심모는 미소를 띠며 말했다.

“하가 믿어지지 않는 모양이구나. 두고 보면 내가 하는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 알게 되겠지.”

말투는 온화하기 그지없고 봄바람 불 듯 부드러웠지만, 말속에는 범접하기 어려운 단호함이 느껴져 누구도 대꾸하지 못했다.

“나야 언니 말을 믿지.”

심하는 변한 얼굴빛을 얼른 숨기고 다시 웃어 보였다.

“믿지 않아도 상관없어.”

심모는 그렇게 말하고는 몸을 돌려 가버렸다. 그녀가 멀어지자 심하가 말했다.

“큰언니 너무 많이 변한 것 같아. 못 본 지가 두 달도 채 안 되었는데 아주 딴 사람처럼 느껴져.”

“확실히 변했어. 이젠 전처럼 만만하게 보아서는 안 되겠어.”

심수도 말하며 심요를 바라보았다.

“오늘은 넷째 동생이 큰언니한테 진 것 같은데?”

생각만 해도 분한데 면전에서 바른 말을 하니 심요는 화가 났다.

“내가 큰언니보다 못하다는 거야?”

심요의 목소리를 들은 심수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 아니야.”

심요는 분해서 발을 동동 굴렀다. 당황했던 심수의 얼굴에 한 줄기 빛이 반짝 지나갔다.

심모는 발걸음을 옮겨 침향원을 향했다. 그 뒤를 자소가 바짝 따르며 참지 못하고 물었다.

“아가씨, 왜 외출을 하시려고 하세요?”

그 한마디에 심모는 넘어질 뻔했다. 왜 외출을 하냐니? 당연히 기도드리러 간다는 핑계로 놀러 나가는 것인데 그걸 물어봐야 아는 건가. 심모는 아무 말 없이 계속 앞을 향했다.

“소인은 아무래도 아가씨께서 안 나가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너무 위험합니다.”

계속 집 안에만 있으면 아무 일도 없을 텐데 한 번 나갔다가 온 뒤로 하늘이 뒤집어지고 그 목숨이 달아날 뻔했으니 자소가 자신의 외출을 걱정하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밥 먹다 목에 걸렸다고 계속 밥을 안 먹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어?”

심모는 곧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자소는 입만 움직일 뿐 대꾸는 하지 않았다. 사실 밥을 안 먹으면 죽을 수도 있지만, 외출 안 한다고 죽는 건 아니니 그 두 가지는 비할 바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아무튼, 자소는 아가씨가 외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대부인과 심요, 그들도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도가 댁 아가씨가 호전되어야만 아씨께서 문밖 출입을 할 수 있을 텐데.’

자소는 또 걱정이 되었다. 도가 댁 아가씨가 지금이라도 당장 자리를 훌훌 털고 생생해져서 아가씨의 어려움이 해결되면 좋겠지만 또 그렇게 돼서 아씨의 바람대로 외출하게 되는 것을 바라는 건 아니었다. 당분간 두고 볼 일이었다. 그렇게 앞뒤로 걸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눈앞에 한 사람이 나타났다.

“공자세요?”

자소가 말했다. 자소도 심랑지가 심모를 향해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심모를 찾고 있는 것 같았다. 심모는 심랑지를 불렀다.

“오라버니!”

늘 듣던 이 한마디에 좀 전에 정신을 놓고 그녀를 엄마라고 불렀던 게 생각난 심랑지는 어색하여 얼굴이 붉어졌다. 그는 가볍게 헛기침을 하고 말했다.

“살 잘 뺐어. 엄마랑 닮았다.”

그녀는 아버지의 말을 그대로 따라 하는 오라버니를 보고 풋 하고 웃었다.

“앵무새가 따로 없네.”

아들이 아버지를 닮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심랑지는 이 말에 대꾸하지 않고 말을 돌렸다.

“어렵게 뺀 살이니 다시 예전처럼 돌아가면 안 된다.”

심모가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겠어요, 오라버니. 다시 살 안 찔게요. 그런데 오라버니도 나한테만 뭐라고 할 상황이 아닌 것 같아요. 악록서원에 들어가게 되었으니, 아버지도 저리 기대가 있으신데 오라버니도 실망시키시면 안 돼요.”

이렇게 와서 충고랍시고 하는 게 아니었는데…… 심모가 양 허리에 손을 얹고 있는 것을 보니 속이 답답해져 오며 후회가 되었다. 그래서 어렵게 대답했다.

“내가 최선을 다해 볼게.”

심모가 말했다.

“해본다고만 하지 말고요.”

“…….”

대체 누가 오라비이고 여동생인지, 여동생이 이리 기세등등할 수가 있나? 조금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모르고 있을 때 사과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라버니, 저 때문에 오라버니의 혼사가…….”

심랑지의 눈빛이 잠시 어두워졌지만, 얼른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이가 댁 둘째 아가씨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난 모르는걸. 뭐, 무르겠다면 무르는 거지. 아쉬울 것도 없어.”

그러나 혼사가 엎어지는 것은 사실 오라버니의 자존심과 집안의 체면이 많이 상하는 일이었다.

“나중에, 그 아가씨보다 훨씬 좋은 분 꼭 만나게 되실 거예요.”

심모는 확신에 차서 말했다. 그 말에 심랑지가 웃었다.

“네가 찾아줄 테냐?”

심모는 얼굴을 들고 어깨를 으쓱했다.

“안 될 거 뭐 있어요?”

그 자신만만한 모습에 심랑지의 웃음소리가 더 커졌다.

‘왜 저렇게 웃지? 내 말이 안 믿기는 모양이야.’

심모가 말하려고 입술을 막 떼려 할 때 자소가 옷소매를 잡아당겼다.

“아가씨, 친구가…… 없으시잖아요.”

“…….”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대놓고 말할 필요는 없잖아.’

지금 친구가 없다고 해서 앞으로도 계속 없을 거라는 뜻은 아니었다. 한바탕 웃고 나니 심랑지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바람이 많이 부니 얼른 방으로 들어가거라. 나도 이만 가 보마.”

걸어가는 심랑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심모의 입꼬리가 초승달처럼 올라갔다.

‘비록 이 시대의 삶이 조금 고생스럽기는 해도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오늘과 같은 즐거움이 있고 나를 사랑하고 아껴주는 아버지와 오라버니가 있는걸.’

심모는 눈을 들어 머리 위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도씨 아가씨, 반드시 빨리 나으셔야 해요.’

* * *

하늘이 그녀의 기도를 들어준 것인지 도군옥의 병세가 정말로 호전되었다. 더 신통한 일은 그냥 조금 나은 정도가 아니라 그렇게 오래 앓아왔던 병이 하룻밤 만에 엄청나게 좋아졌다. 침상에서 내려오지도 못하던 사람이 아침에 자리를 털고 일어난 것이다. 아가씨의 병을 맡아 보던 태의도 당최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혀를 내둘렀다.

“기이하도다. 긴 세월 의원 경력에 이리 기괴한 병증은 처음이로세.”

순국공부는 윗전부터 아랫것들까지 이상하다는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설마 큰아가씨의 병이 계속 호전되지 않았던 것이, 섣달 추운 날씨에 물에 빠진 것 때문이 아니라 정말 훤친왕세자 때문이란 말인가? 이 댁 아가씨의 병증은 뭇 사람들의 큰 관심사였기에 이렇게 호전되었다는 소식을 숨길 수도 없었다.

이렇게 한바탕 바람이 온 경도를 구석구석 쓸고 지나간 후 훤친왕세자의 극처 사주를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대개 그런 말을 들으면 믿을 가치가 없는 헛소리라고 생각했지만, 이번에는 증거가 눈앞에 있으니 믿지 않으려야 믿지 않을 수 없었다.

훤친왕세자가 어떤 소문에 시달리는지 심모는 관심도 없었다. 그저 걱정하던 문제가 해결되었고 골칫거리가 사라졌다는 것만은 확실해졌다. 정말 온몸이 가벼워졌다. 두 시녀는 걱정거리가 사라지자 그제야 억눌러 놓았던 진심을 털어놓았다.

“우리 아가씨 참 재수도 없으셔. 훤친왕세자를 대신해서 이렇게 오랫동안 누명을 쓰시다니, 다행히 하늘이 아가씨를 불쌍히 여겨서 어지러운 것들을 바로잡아 모든 것이 바로 돌아왔으니. 그동안 얼마나 억울하셨어요?”

자소의 이야기를 듣고 반하도 말했다.

“제가 비록 훤친왕세자를 뵌 적도 없고 그럴 일도 없겠지만 소녀는 앞으로 아씨께 누명을 씌운 그분을 좋게 생각하지는 못할 것 같아요. 거기다 우리 공자를 때리기까지 했잖아요. 분명 평생 혼인도 못 할 거고 혹시라도 간다고 해도 박색과 결혼할걸요!”

두 시녀가 그녀를 대신해 분개하며 혼례도 치르지 못할 것이라고 저주하는 것을 듣고는 심모가 눈을 흘기며 말했다.

“그렇게 심하게 욕할 것까진 없잖아?”

그들은 조금도 심하지 않다는 듯이 대답했다.

“아가씨께서 고생하신 거 생각하면 욕 몇 마디는 정말 잘 봐준 거죠. 더 이상 봐줄 수 없을 정도로 너그러운 거예요.”

그런 다음 둘은 심모에게 외출하자고 꼬드겼다. 온 집안이 아가씨 때문이라고 몰아붙였는데, 이제 아가씨 잘못이 아니라는 사실이 모두 밝혀졌으니, 그동안 숨어서 아가씨를 욕했던 사람들을 보고 싶었다. 얼마나 자신의 행동을 부끄러워하는지도 볼 겸 나가서 동네라도 두어 바퀴 거닐자고 했다. 심모는 침소를 나서 영서원으로 문안을 드리러 갔다. 영서원에서는 다들 모여 기뻐하고 있었다. 넷째 아들의 부인까지 와 있었다. 심모가 방에 들어서는데 그녀의 기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 일에 결국 답이 나왔네요. 그 댁 아가씨 병증은 우리 심모와 아무 상관이 없으니 순국공부가 우리 심씨 집안을 탓하면 안 되는 거죠. 계속 잡고 늘어지면 우리 바깥어른께 한번 다녀오시라고 할게요.”

어사대(御史台)에서 일하는 노부인의 넷째 아들은 문무백관(文武百官)의 언행을 살피는 것이 그의 직무였다. 대부인도 기뻐하며 말했다.

“훤친왕부에서 혼사를 물러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이 일이 얼마나 오래 갔겠어요. 며칠만 빨리 회복했더라면 황제께서 호부시랑 직책을 다른 이에게 넘기지 않으셨을 텐데.”

호부시랑은 심균이 부친상 전에 맡으려던 자리였다. 그러다 임용장을 받기 직전에 선친이 세상을 떠서 놓친 자리였다. 대부인은 줄곧 심균이 그 직위 맡기를 기다려왔는데 어제 그 일이 틀어졌다는 말을 듣고 속을 얼마나 태웠는지 몰랐다.

지금은 더더욱 아쉬웠다. 그리고 훤친왕 집안이 원망스러웠다. 특히 사과하러 순국공부에 찾아가서 문전박대를 받은 것이 몇 차례이던가. 비록 심가의 가세가 하늘을 찌를 정도는 아니나 그녀 자신 역시 엄연히 이춘제후(宜春侯) 가의 적녀가 아니었던가? 태어나서 한 번도 그런 모욕을 당한 적이 없었다.

노부인도 애석했지만, 그녀는 더 멀리를 내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부처를 믿고 운명을 믿는 사람이었다. 점괘에 따르면 몇 년의 고생 뒤에 심균이 출세가도를 달린다 하지 않았던가. 이번 임용이 없던 일이 되었으나 분명 다른 좋은 일이 생길 것이다.

결국, 이번 일로 온 도성이 시끌시끌하니 짐작건대 황제의 귀에도 들어가리라. 훤친왕세자의 일로 심균의 일이 틀어져 버렸으니 황제도 뭔가 느끼는 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하고 노부인은 웃으며 말했다.

“이번 일이 원만히 잘 해결되었으니 난 안심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