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화. 창피함을 알다
심모는 정신을 가다듬고 훤친왕세자에게 말했다.
“약을 쓰면 안 된다고 한 적도 없잖아요. 그리고 제가 약을 썼다고 어떻게 증명하실 건데요?”
심모는 시치미로 일관하리라 생각했다.
훤친왕세자는 기가 차 웃었다. 그는 이미 심모가 할 말이 없을 때 이렇듯 시치미를 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난 여태껏 누군가의 증명이 필요한 적이 없었다. 내가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이지.”
심모는 자신을 웃음거리로 만들었으니 가볍게 넘어갈 생각일랑 하지를 말라는 듯한 그의 눈빛을 읽을 수 있었다. 하나 이미 예상했던 바였다. 그냥 넘어갈 것이었으면 이렇게 찾아오지도 않을 일이었다. 심모는 고개를 들고는 분노하며 말했다.
“사내가 되어서는 계속 이렇게 여인 하나를 상대로 창피하지도 않으세요?”
“창피하다?”
그는 웃으며 심모에게 말했다.
“사내 열 명이 온다 해도 기도 안 차는데, 너는 지금까지 몇 번이나 날 피 보게 한 줄 아느냐? 네가 사내들보다 못한 것이 무어란 말이냐. 그리고 내 사전에 창피함이라는 말은 없다!”
심모는 놀란 듯했다.
훤친왕세자는 갑작스런 그녀의 이런 반응을 이해하지 못해 그저 그녀가 입술을 깨물며 또박또박 말하는 것을 듣고 있었다.
“세자야, 세자야의 사전에 창피함이라는 이 세 글자가 없다는 것은 그 사전이 형편없다는 뜻이에요. 아니, 이렇게 없는 거 없는 대단한 훤친왕세자께서 여태껏 이토록 낡은 사전을 쓰고 계시다니요.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아무래도 사전을 하나 새로 바꾸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녀의 말투는 꽤나 진지했다.
훤친왕세자는 할 말을 잃고 가만히 서 있었다.
창밖에서 지키고 서 있던 진목은 심모의 말을 듣고는 풋 웃어버렸다. 알고 보니 심가 댁 아가씨께서는 바보인 척도 이리 재밌게 소화를 하시는 분이었다. 역시 세자야의 적수라고 할 수 있었다.
훤친왕세자는 심모를 바라보며 사악하게 입꼬리를 올려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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