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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포도를 따다

10화. 포도를 따다

복덩이 손녀딸에 대한 소문이 매우 빠른 속도로 행화촌과 그 주변 마을에 퍼졌다.

유옥생은 이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가족들은 황금빛으로 물든 벼를 베어 집 마당에 한가득 쌓아놓았다. 유옥생은 가족들의 웃음 가득한 얼굴을 보고 더없이 기뻤다.

“올해 양식이 예년보다 1할이나 늘었구나! 세금을 내고 남은 것으로 우리 가족이 1년은 족히 먹겠어!”

유 어르신이 손가락 사이로 쌀알이 흘러나오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벼 한 줌을 쥐었다. 마당에 가득 쌓인 양식을 보는 그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아버지, 오늘 이렇게 좋은 날인데 술 한잔하실래요?”

유이림이 간들거리며 말했다.

하지만 유 어르신이 뭐라 입을 열기도 전에, 유 노부인이 손뼉을 치며 말했다.

“술은 무슨 술이냐! 지금 너랑 아버지 상태를 보고 말해야지. 몸도 성치 않은데 술 생각을 하고 있어? 안 된다!”

유 노부인이 화를 내며 말했으니 술을 먹는 건 불가능했다.

그러자 유대림이 웃으며 말했다.

“술 생각은 하지 말고, 농사일이 끝났으니 한동안 쉴 수 있잖아요. 제 기억으로 행화령(杏花嶺) 뒷산 골짜기에 자연 포도밭이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쯤이면 이미 익었을 겁니다. 내일 저랑 같이 가서 포도를 따다가 애들이나 실컷 먹여요.”

“포도 따러 가요! 아버지, 저도 내일 따라갈래요!”

곡식더미 옆에서 모래성을 쌓으며 놀고 있던 유지하가 고개를 내밀고 두 눈을 반짝였다.

유지추도 지기 싫어 침을 삼키며 말했다.

“저도 갈래요!”

“이 두 먹보들. 좋아, 내일 같이 가자꾸나!”

유이림이 말했다.

“대신 아침에 서둘러 갈 거야. 늦게 가면 다른 사람들이 다 따 갈 테니 말이다.”

“모두들 다녀오너라. 포도를 많이 따와서 우리 귀염둥이도 맛보게 해줘야지. 우리 손녀딸은 아직 한 번도 포도를 못 먹어 봤지?”

유 노부인이 유옥생을 안아 들고 다정하게 그녀의 코를 쓰다듬었다.

유옥생은 빙그레 웃으며 닭이 쌀을 쪼듯 고개를 끄덕였다.

진수란은 안채 입구에 앉아 화기애애한 모습을 보며 옅은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어머님, 볏단들을 햇빛에 말려야 하니, 저는 그냥 집에 남아 어머님을 돕겠어요.”

두견도 말했다.

“저도 집에 남아 도울게요. 포도는 사내들보고 따라고 하죠.”

“그러면 나는…….”

유 어르신이 뭐라고 말하려 할 때, 유 노부인이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당신은 안 돼요. 집에서 쉬세요. 그렇게 나이 들어서도 쉬지 않으니 원. 당신이 아직도 그렇게 젊은 줄 아세요!”

유 어르신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린 것들이 옆에서 몰래 웃어대는데 체면도 세워 주지 않는 나쁜 할멈 같으니라고.’

이때 유옥생은 말없이 있었지만, 머리를 빠르게 굴리고 있었다.

‘포도 숲, 뒷산, 골짜기…….’

그녀는 거기서 뭔가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 *

다음 날 이른 아침.

유대림과 유이림은 두 아들들을 깨워 뒷산에 갈 준비를 했다.

그 포도 숲은 주인이 없는 곳이라 누구나 따갈 수 있어서 늦게 가면 건질 게 없었다.

유옥생도 일찍 일어나 옷을 걸쳐 입고 어머니에게 양 갈래로 높이 머리를 땋아 달라고 했다.

그녀는 연화(*年畫: 중국 민화 중 하나) 속 어린아이처럼 뽀얗고 귀여웠다.

유옥생은 아버지네 일행이 광주리를 등에 지고 나가려는 것을 보고 뛰쳐나와 아버지의 다리를 부여잡고 말했다.

“아버지, 나도 가요!”

“아이고, 귀염둥이는 집에 있으렴. 숲에는 벌레가 엄청 많아서 물릴지도 몰라. 가만히 집에 있으면 아버지가 포도를 따올 테니 그때 맛있게 먹자. 착하지, 우리 딸!”

부엌에서 손녀딸의 목소리를 들은 유 노부인은 즉시 나와 그녀를 달랬다.

‘이대로 못 가는 건가?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하지…….’

유옥생이 고개를 들어 유 노부인을 바라보는데, 커다란 눈에서 눈물방울이 그렁그렁 맺혀 떨어질 듯 말 듯 했다. 그 모습이 어찌나 불쌍해 보이는지……. 단호한 유 노부인도 그런 귀염둥이 앞에서 힘을 쓸 수 없었다.

“귀염둥이야, 산길이 거칠고 해가 뜨거우니 집에서 기다리자꾸나…….”

“할미, 나 갈래요.”

유옥생은 몸을 돌려 유 노부인의 다리통을 잡고 그렁그렁한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 가자! 할미가 같이 가주마! 애미야, 광주리를 하나 더 갖다 주겠니? 부엌에 있는 작은 바구니는 귀염둥이에게 주고!”

옆에 있던 가족들은 말문이 막혔다.

귀염둥이에 대해서는 부처님이라 할지라도 원래 있던 원칙도 없는 것이 되었다.

결국, 거의 모든 가족이 같이 가게 되었다.

유 노부인의 엄명으로 집에서 쉬게 된 유 어르신은 집 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애처롭게 가족들이 멀어져 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 * *

행화촌 동쪽에 자리한 행화령은 그리 높지 않으며 소나무, 단풍나무, 많은 관목나무 등이 한데 어우러져 무성함을 자랑했다. 멀리서 보면 초록, 빨강, 녹색, 황금색이 섞여 한 폭의 자연 채색 비단 같았다.

뒷산 골짜기는 행화령 산자락을 따라 오솔길이 나 있었다. 그 길을 걷고 있노라면 코끝에서는 풀과 나무 그리고 흙 내음이 전해지고, 귓가에는 새와 벌레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머리 위로는 아침 햇살이 나무 그늘을 뚫고 끊임없이 금빛으로 반짝였다.

그 속에서 유옥생은 뛸 듯이 기뻤다.

뒷산을 돌아가면 바로 산골짜기였다. 그곳에는 커다란 포도 넝쿨이 관목들을 타고 자라 있었다. 푸른 나뭇잎 사이로 검은 자줏빛을 내는 포도들이 보일 듯 말 듯 했고, 공기 중에는 향긋한 포도 향기가 났다.

“일찍 와서 다행이네요. 아무도 없어요! 보아하니 우리가 제일 처음 온 것 같은데 얼른 땁시다. 잠시 후면 사람들이 와서 다 따 갈 거예요!”

유이림은 포도 숲으로 들어가 재빠르게 주렁주렁 열린 포도들을 따서 광주리 안에 집어넣었다.

두 남자아이가 제일 신났다. 그들은 포도를 따기는커녕 작은 손으로 포도를 따서 입에 집어넣기 바빴는데, 한 알을 베어 무니 포도즙이 입안 가득 퍼졌다.

“와! 진짜 달콤해! 큰 거 따서 우리 귀염둥이 주자!”

“기다려, 기다려. 이 포도는 아직 안 씻었어. 기다려 봐. 오라버니가 껍질 까서 먹여줄게!”

포도 맛을 본 뒤 꼬마 녀석들은 앞다투어 여동생에게 포도를 먹여주었다.

입을 벌려 오라버니들이 까주는, 별로 예쁘지 않은 포도를 맛본 유옥생은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

이 집에 태어난 이후 그녀는 한 번도 결벽증 증상이 나타난 적이 없었다.

유대림은 두 꼬마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너희들은 귀염둥이를 잘 돌보고 있거라. 아버지랑 숙부가 포도를 따서 올 테니!”

“귀염둥이는 내가 보고 있으마. 모처럼 나왔는데 너희들 모두 실컷 놀다 오렴.”

유 노부인은 손을 휘저어 보낸 후 귀염둥이를 위해 특별히 가져온 작은 바구니를 꺼내면서 말했다.

“귀염둥이야, 가자꾸나. 할미랑 같이 가서 포도를 따보자. 오늘 우리 귀염둥이, 신나게 놀게 해주마!”

노인과 아이가 포도 숲을 가로질러 가자, 조그만 유옥생은 마치 유 노부인의 꼬리처럼 보였다.

길이 고르지 않아 유옥생은 이따금 비틀거리며 걸었는데, 그 모습이 참으로 귀여웠다.

관목림의 낮은 곳, 지면과 가까운 곳은 모두 포도나무였다.

유옥생은 손을 뻗어 포도를 따려고 했는데, 힘이 약해 포도송이를 따지 못했다.

양손 가득 자주색 포도즙이 흥건한 그녀의 모습은 집안 식구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태양이 조금씩 높이 떠오를 때 즈음 가져온 광주리에 포도가 가득 찼다. 유옥생의 작은 바구니에도 몇 송이가 가득 담겼다.

이때 동네 사람들이 잇따라 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유 노부인 일행을 보고 웃으며 인사했는데, 특히 유옥생을 볼 때 더 큰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유, 귀염둥이도 따라왔구나!”

“네. 손녀딸이 놀기를 좋아해서 안 데려오면 난리가 나지요!”

“애들은 원래 다 놀기를 좋아하잖아요. 그래도 여기 숲은 조심해야 해요. 관목에 가시가 많으니까 찔리지 않게 조심해요.”

“잘 보고 있어요. 나도 안심이 안 돼서 따라 나왔지 뭐예요.”

유 노부인이 동네 사람들과 수다를 떨며 한눈을 파는 사이, 유옥생은 바구니를 끌면서 천천히 옆으로 가더니 결국 큰 나무 뒤에까지 갔다.

큰 나무가 작은 몸을 가리고 있었고 주위 관목들도 키가 커서 그녀의 모습을 완전히 가려주었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발각되지 않도록 조심히 휴대 공간에서 작은 약초 전용 삽을 꺼냈다. 이 삽은 그녀가 평소 휴대 공간의 약초밭을 정리할 때 사용하던 것이었다. 그녀는 큰 나무뿌리 부분을 삽으로 파서 작은 구멍을 만들고는, 자신의 휴대 공간 약초밭에서 영지버섯 한 송이를 골랐다.

이것이 바로 그녀가 오늘 해야 할 일이었다.

할아버지가 다치면서 가산을 탕진해 두 오라버니가 글방에 가는 일도 미뤄진 것은 물론 집안에 남겨둔 여분의 돈도 다 없어졌다.

유옥생은 가족들이 남몰래 한숨 쉬는 모습을 여러 번 봐 왔기에 마음이 아팠다.

지금 그녀가 꺼내 든 이 영지버섯은 50년산 정도로 이것을 팔면 20~30냥 은자는 벌 수 있었다.

당장 급한 불도 끄고 가족들도 안심시킬 수 있으니 이 정도면 충분했다.

그녀의 휴대 공간에는 더 좋은 약재들이 많았지만, 지금 꺼내기가 적절치 않았다.

이후의 일들은 그녀가 좀 더 자란 후에 명분을 만들어 집안의 생활을 계속하며 개선하면 되었다.

유옥생은 작은 손에 영지버섯을 들고서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었다.

“귀염둥이야? ……귀염둥이야? 아이고, 우리 집 귀염둥이가 사라졌어요. 어서 좀 도와주세요!”

그때, 유 노부인이 애타게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유옥생은 정신을 차리고 급하게 큰 나무 뒤에서 기어 나왔다.

“할미! 할미!”

그러자 유옥생을 발견한 가족들이 뛰어왔다.

“귀염둥이야, 어찌 큰 나무 뒤로 간 게냐. 산속은 위험해서 할머니 옆에 꼭 붙어 있어야 해, 알겠지? 할미 애가 탄다.”

유옥생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영지버섯을 유 노부인 앞에 들어 보였다.

“할미, 큰 버섯 예뻐요!”

가족들의 시선이 유옥생의 손에 있는 큰 버섯으로 향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안색이 일제히 변했다.

“이…… 이건…….”

유이림이 맨 먼저 다가와 큰 버섯을 자세히 들여다보더니 깜짝 놀라 말을 더듬었다.

“영지, 영지버섯이에요! 어머니! 형님! 이건 영지버섯이라고요! 제가 의관에서 본 적이 있는데 엄청 값이 나가는 거예요!”

주위에서 영지버섯이라는 말을 들은 동네 사람들이 포도 따는 것을 멈추고 모여들었다.

“정말이네! 진짜 영지버섯이야. 틀림없어!”

“어떻게 이런 곳에 영지버섯이 있는 게야? 귀염둥이야, 너 어디서 딴 거니? 이전에는 여기서 이런 걸 본 적이 없었어!”

“정말 운이 좋네, 이번에 목돈 좀 벌겠는데요!”

운이 좋다는 말이 다시금 나오자, 사람들의 마음속에 복덩이라는 말이 떠올랐고, 유옥생을 바라보는 눈빛이 또다시 달라졌다.

이전의 소문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떠나서 포도 따러 와서 돌아다니다 영지버섯을 캤는데 이것이 행운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