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novel

12

아카데미의 무기복제자 118화

36장 수인

나는 엘리시아가 백화점에서 물건 하나씩 가져오라고 했을 때, 직조와 공방을 이용해 가장 좋아 보이는 녀석을 가져왔다.

가격 같은 건 정확히 몰랐지만, 등급과 설명을 보면 어느 정도의 가치인지 대강은 짐작할 수 있었다.

문제는 가져와놓고 팔 곳이 없다는 거였다.

앙페르는 내가 가지고 왔다는 얘기를 듣고 거들떠보지도 않고 창고에 박아넣고 있었으니, 그대로 재고가 쌓였다.

그런고로.

나는 퀴니에를 로아흐 저택에 데리고 왔다.

퀴니에는 저택 정문 앞에서 중얼거렸다.

"...오랜만이네."

"퀴니에 선배, 저희 가문에 들른 적이 있습니까?"

"음, 아니."

퀴니에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오랜만이라는 건 무슨 뜻일까?

허나 퀴니에는 그에 더 이상 말해주지 않고 다른 말을 했다.

"들어가자."

정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서자 앙페르가 이미 저택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퀴니에는 앙페르에게 다가가 인사했다.

"로아흐의 가주님을 뵙습니다."

앙페르 또한.

"비에트 가주를 만나게 되어 영광이오."

...이럴 때마다, 퀴니에가 가주라는 사실을 실감한다.

프론디어보다 겨우 두 살이 많을 뿐이지만, 이미 그 위치가 너무도 달랐다.

"아들 녀석이 애물단지를 가져왔는데, 비에트에서 살펴보겠다 하니 한숨 놓았소."

"뭘요. 좋은 상품이 있으면 그에 맞는 대우를 받아야지요."

퀴니에는 그렇게 말하며 나를 슬쩍 흘겼다.

어차피 내 '보상' 때문에 전부 다 사줄 거지만, 앙페르한테는 저렇게 말해놔야 하니.

그런데 앙페르가 퀴니에를 가만히 보았다. 그의 시선이 누군가에게 저렇게 오래 닿는 것을 본 적이 없는데.

이윽고 앙페르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비에트 가주."

"예, 말씀하시지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오."

그렇게 앙페르는 싱겁게 말을 마쳤다.

그리고 몇 번의 대화를 나누고 앙페르는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남은 건 나보고 알아서 하라는 얘기였다. 나는 하녀를 불러 퀴니에를 안내하도록 시켰다.

하녀의 안내를 따라 걷자 저택의 우측 안쪽에 있는 창고의 문이 열리고, 안에는 이전에 내가 백화점에서 가져온 물건들이 쌓여 있었다.

퀴니에가 나를 보았다.

"그래서 어떤 게 네가 가져온 '애물단지'야?"

뭔가 뼈가 있는 말투였다.

나는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브랜드가 있는 거 전부입니다."

"...전부? 이 창고 안에 있는 브랜드 제품 전부?"

"예. 저희 아버지는 그런 걸 좋아하지 않아서."

명품은커녕 세이지폰도 안 갖고 다닌다.

차라리 내가 선물해드릴까? 앙페르와 앗지에한테.

...공중에서 칼로 반 토막 내지 않으면 다행인가.

"흐음, 일단 살펴보지."

퀴니에는 창고 안에서 물품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았다.

나나 숙련된 감정사만큼은 아니더라도 퀴니에의 보는 눈은 좋은 편이다. 박물관 때부터 지금까지 그 실력을 길렀으니 더욱 그렇겠지.

이것저것 집어보던 퀴니에의 눈이 서서히 변했다. 물건들의 가치를 확인한 것이다.

"프론디어."

"네."

"이거 전부 합쳐서 얼마에 팔 거야?"

"전부 살 겁니까?"

"전부 사라며. 그리고 살 만해. 모든 물품의 퀄리티가 뛰어나니까. 그것도 각 브랜드의 최고가들. 시간이 지나도 오히려 가격이 오를 만한 물품들도 있고."

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품의 주인이 나니까, 가격도 내가 결정해야 한다.

...하지만.

"가격은 퀴니에 선배가 알아서 정해주세요."

"...너 내가 상인이라는 걸 잊었어?"

"그러니까 정확한 가격을 매겨주시겠죠."

그리고 제대로 안 매기더라도 상관없다. 싸게 가져가도.

왜냐면 다 공짜로 갖고 왔거든. 엘리시아가 줬으니까.

"...하아. 어쩌다 이런 녀석한테 걸려서."

걸리다니. 누가 보면 내가 협박이라도 하는 줄 알겠다.

퀴니에는 엄지로 입술을 잠깐 꾹 누르더니, 말했다.

"좋아. 전부 합쳐서 800만 퀴르."

"...."

"이 이상은 못 올려줘."

내가 이전에 경매를 했을 때 당시, 비파강의 시작가가 500만 퀴르였다.

...이런 말하긴 뭐하지만, 저 제품들 중에 '전설' 따위는 당연히 없다. 좀 품목이 많기로서니 그렇게나 비싼가?

"...그렇게 좋은 제품들인가요?"

"넌 진위는 잘 가리는데, 가격은 모르는구나."

뭔가 심장을 찌르는 말이다. 그야말로 프론디어의 정체성 아닐까?

"여기 있는 거 대부분이 어마어마한 브랜드고, 시그니쳐 제품들이야. 게다가 기간과 수량을 제한시켜놔서 이미 수집가들이 찾아 헤매는 것들이고. 대부분 그렇게 한정시켜 놓으면 어딘가 하자가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것도 아니고. 퀄리티, 희소성, 브랜드. 이 삼박자가 다 맞는 제품은 드물거든."

과연 황족이 운영하는 백화점은 다른 건가.

게임 에티우스의 백화점에는 바닥도 천장도 없다더니,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좀 알겠다.

"아무튼 이 정도면 나 혼자 다 들고 갈 수도 없고, 사람을 불러야겠...."

거기서 퀴니에는 말을 멈췄다.

가라앉은 눈이 창고 밖을 향했다.

아 저 눈, 그간 많은 사람들에게 보아왔던 눈이다.

"메노소르포."

난 망설이지 않고 마법진을 펼쳤다.

렌조를 감지해 냈듯, 메노소르포는 자체의 특성도 있지만 범위 안에 들어온 존재를 파악할 수 있다. 이건 메노소르포뿐만이 아니라 거대 마법진이 대부분 갖고 있는 특징이다.

"...아는 사람인가요?"

메노소르포 안에 확실히 무언가 잡혔다. 저택 밖, 나무 위 높은 곳에서 누군가가 가만히 서 있다. 아마도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거겠지.

"응. 아마, 내 소문을 퍼트린 녀석."

그 말에 나는 눈가를 찌푸렸다. 그렇다면 보통 일이 아니다.

"요격할까요?"

메노소르포 안에 들어왔으니, 여기서 선제공격이 가능하다. 그러나 퀴니에는 고개를 저었다.

"됐어, 가만히 있으면, 저쪽에서 알아서 찾아올 테니."

"...그럼 위험하잖아요."

내 말에 퀴니에는 또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 있는 퀴니에의 눈빛은, 뭐랄까 긴장감 같은 게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귀찮은 얼굴이었다.

"그래, 차라리 너도 만나는 게 낫겠다."

그렇게 말하고는 퀴니에는 창고에서 떨어져 걸었다.

만나는 게 낫다니, 무슨 소릴까.

내가 퀴니에 옆으로 걸어가자, 퀴니에는 어느 먼 곳을 응시했다. 메노소르포에 누군가가 잡힌 그 방향이었다.

나도 시선을 따라가니, 정말로 나무 위에 누가 있었다.

그런데 메노소르포로 감지할 때는 실감이 안 났는데 나무가 진짜 높다. 와, 저기까지 어떻게 올라갔을까. 엘로디 수준의 부유 마법이 가능한 마법사인가?

"...이러고 있으면, 알아서 와."

"예?"

그 순간, 마치 퀴니에의 말에 응답한 것처럼.

나무 위에 앉아있던 누군가가 폴짝 일어섰다. 정말로 오는가, 나는 자연스레 긴장해 주먹을 쥐었다.

그런데.

바스락 바스락.

그 높은 나뭇가지 위에서, 녀석은.

열심히 아래 나뭇가지, 그 아래 나뭇가지로 조심스레 내려오고 있었다.

"...."

"...."

침묵이 좀 길다 싶을 때쯤 나무의 반 정도 내려오고 있었다.

"좀 걸리네요."

"그러네."

마침내 다 내려온 녀석은, 그렇게 조심스럽게 한 발 한 발 내려온 건 까맣게 잊어버린 듯 무서운 속도로 이쪽을 향해 질주했다.

...사족보행이었다.

"야! 퀴니에!!"

폴짝, 하고 단번에 저택의 담을 넘어서 여기까지 도달한 녀석은.

"옆에 새까만 놈은 누구냐!!"

고양이 귀와 꼬리를 한 남자애였다.

"...수인."

이 세계에서 수인을 만날 줄이야.

각종 신화를 차용하고 있는 게임 '에티우스'에서는 수인이 당연하다시피 있다. 그리스 신화의 '미노타우르스'도 크게 다르지 않고.

다만 수인은 인류에 비하면 아주 극소수다. 쉽게 말해 '종족'이라고 불릴 정도의 숫자가 되지 않는다. 대부분은 인간과의 혼혈이거나 '전설'의 자손들이다.

덕분에 다른 게임에선 흔하게 볼 수 있는 수인들을 에티우스에서는 목격할 때마다 게이머들 사이에 떠들썩하게 화제가 되었다.

그마저도 대부분의 수인은 사람들의 환상과 다르다. 말 머리를 하고 있거나, 다리가 말이거나, 손이 말굽이거나. 적대시하면 마물과 다를 것이 없는데, 지성이 있고 사람들을 공격하지 않으면 에티우스에서는 '수인'으로 통한다.

수인이 그만큼 간절한 게임이다.

"프론디어, 얘기해둘 것이 있어."

앞에서 수인이 열심히 따지고 있는데 퀴니에는 오히려 내게 말을 걸었다.

"뭐죠?"

"얘를 보고 '고양이'라고 말하면 엄청 화내. 고양이 귀와 꼬리처럼 보여도 엄연히 백호의 피거든."

"백호라니, 화가 나면 위험하겠네요."

"아니, 위험하다곤 하지 않았어. 그냥 얘기해 두겠다고."

...음?

나는 잘 이해가 안 갔지만, 그 사이 퀴니에는 수인에게 말했다.

"코라, 왜 여기까지 따라왔어?"

"내가 먼저 물었어! 저 새까만 건 누구냐고!"

그렇게 새까맣지 않은데.

새까만 건 오히려 머리색부터 부채, 옷까지 죄다 새까만 퀴니에다.

코라는 나를 보며 엄청 경계하듯 몸을 곧추세웠다. 뒤의 꼬리가 위로 뻗어있어, 엄청 화난 것 같았다.

"와, 진짜로 고양이 같...."

아. 나도 모르게.

그때 코라의 눈이 번쩍였다. 크앙! 하고 기묘한 외침과 함께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나를 보며 외쳤다.

"화염시!"

뭣이?

나는 놀라 소검을 꺼내 들었다. 화염시라면 엘로디가 사용하는 '폭풍시'와 동위의 마법이다.

백호의 수인이면서 '폭풍시'에 버금가는 마법을 사용한다고? 보통내기가 아니,

퐁-

코라의 손 앞으로 촛불 같은 것이 톡 튀어나와 팔랑거렸다.

그 불꽃은 꽃잎처럼 내게 날아왔다.

진짜로 바람이라도 불면 어디론가 날아가버릴 것 같은데, 기어코 내 앞까지 왔다.

"...."

나는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힘차게 베어버렸다. 혹시 몸에 닿으면 엄청난 폭발을 일으키는 무서운 녀석일까 봐.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혹시 뒤늦게 터지는 엇박자의 공격일까 봐 또 잠깐 긴장했다.

그래도 아무 일도 없었다.

"으으...."

앞에 있는 코라가 양손을 꾹 쥐고 부들부들 떨었다.

나는 뭔가 해야 할까 싶어서.

"...으아악?"

일단 아픈 척을 해보았다.

"야! 닥쳐! 놀리는 거지? 닥쳐! 야! 이 나쁜 자식아!"

그럼 어쩌라고.

왜 지가 쏴놓고 지가 억울한 척하는 건데.

하아, 퀴니에가 한숨을 쉬었다.

"코라, 말했잖아. 엉뚱한 시동어를 쓰면 마법이 제대로 안 나온다니까."

"엉뚱하지 않았어! 나는 화염시를 쓰려고 했단 말이야! 나올 거 같았다고."

...영창과 술식은 하지 않는데 시동어는 외치고 쓰는 화염시라.

퀴니에는 뭔가 본인이 부끄러운 듯 고개를 푹 숙이더니 말했다.

"프론디어, 소개할게."

"야! 퀴니에! 내 질문에 먼저 대답해! 쟤 누구냐고!"

여전히 퀴니에는 코라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내게 말했다.

"백호의 핏줄이지만, 그 힘과 순발력이 무지 뛰어나 전사의 자질을 태어날 때부터 갖추고 있지만."

그럴 것이다. 마법을 못 쓰는 걸로 봐서 저렇게 높은 나무를 맨 몸으로 올라갔다는 거니까.

그리고 난 퀴니에의 다음 말이 예상이 갔다.

"마법을 너무너무너무 쓰고 싶은, 마법사 지망생 코라야."

아카데미의 무기복제자 119화

37장 기억

퀴니에는 우리 셋이 로아흐 저택 안으로 들어갈 것을 제안했다.

안으로 들어가면 코라도 얌전해질 거라고.

반신반의했는데 정말이었다. 코라는 저택의 탁자 앞에 앉자마자 거짓말처럼 기죽었다.

"...그래서, 코라가 콘스텔에 소문을 퍼트린 범인이라고요?"

"그래. 아니 정확히는, 소문의 시발점은 코라였을 거야."

퀴니에는 단언했다.

하지만 난 잘 납득이 안 갔다.

복도 벽에 쓰여 있는 마법 대자보는 상당한 수준의 마법이었다. 퀴니에의 마력을 튕겨내고, 퀴니에 스스로도 해제하기 위해선 '에드윈' 정도는 필요하다고 말했었는데.

"...코라가 어떻게 그 정도 수준의 마법 대자보를 적은 걸까요?"

"물론 본인이 마법 대자보를 만든 건 아닐 거야. 하지만 코라는 콘스텔에서 인기가 많거든."

"...잠깐, 코라가 콘스텔에 다녀요?"

"아니. 그치만 종종 날 보러 놀러와. 귀와 꼬리는 숨길 수 있으니까."

퀴니에의 말에 코라는 흥, 하고는 고개를 돌렸다.

근데 귀와 꼬리는 숨겼다. 숨겼다기보다, 안 보이게 되었다. 날 싫어하긴 해도 숨기는 걸 보여주고는 싶었나 보다.

"투명 마법이야. 얘가 쓰는 건 아니고, 차고 다니는 아티팩트의 효과야."

퀴니에의 말을 듣고 보니 과연 코라는 왼팔에 팔찌를 차고 있었다.

퀴니에가 날 떠보는 듯이 말했다.

"너한테는 익숙하지? 투명 마법."

"...아, 그렇죠. 물론이죠."

나는 퀴니에가 무슨 소리를 하는가 했다가, 직조를 얘기한다는 걸 깨닫고 얼른 긍정했다.

그렇군. 내가 싸우는 걸 본 사람들은 투명 마법이라고 생각하고 있겠구나.

"그래서 인기가 많은 게 무슨 상관이죠? 애초에 인기가 왜 많나요? 이렇게 시끄러운 애가."

"야! 너 날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내가 너보다 나이가 얼마나 많은데!"

"뭐? 선배, 정말입니까?"

퀴니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이는 나보다도 많아. 백호의 핏줄이니까."

으흠, 하고 코라는 가슴을 내밀었다.

"그러니 존대를 사용하도록."

"싫다."

"방금 말 못 들었냐! 내가 너보다 연상이라니까! 서로의 연령에 따른 존중은 철저한 원칙으로 지켜져야 하는 거다!"

어쩌라고.

내가 지금까지 싸운 적 거의 모두가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 잠깐 우격다짐했던 로발드 리에프만 동갑이고, 그 다음이 엘리시아다.

하물며 황후 필리도 '필리 씨'라고 부르는 나한테 나이가 대수냐.

"그리고 퀴니에 선배도 너에게 존대는 안 하는 것 같은데."

"으음, 퀴니에는 괜찮다."

제멋대로 바뀌는 원칙이었다.

나는 퀴니에에게 시선을 돌려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래서 인기가 많다는 게?"

"코라가 누군가한테 부탁했겠지. 마법 대자보를 붙여달라고. 코라는 나한테 놀러 오는 거니까, 당연히 3학년들에게 인기가 많고. 콘스텔의 3학년 정도 되면 대자보에 그 정도 보안을 설치하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지. 혼자서 한 게 아니면 더더욱."

그 말에 나는 코라를 보았다.

코라는 나를 보고 있지 않았지만, 엄청나게 찔려 하는 얼굴로 눈을 연신 깜박이고 있었다.

퀴니에는 가늘게 눈을 뜨고 코라를 보았다.

"내 약점을 아는 사람은 정말로 얼마 안 돼. 프론디어 네가 아니면, 뭐 남는 사람이 거의 없지."

"...."

"...."

나는 말없이 코라를 보았고, 코라는 여전히 시선을 피했다.

그러다가 그 한참의 침묵을 못 이긴 듯이 눈을 꾹 감고 부들부들 떨다가,

"그렇다! 내가 그랬다!"

빠악!

나는 너무 당당히 외치는 코라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나도 모르게 한 거긴 하지만 후회 한 점 없었다.

코라는 뒤통수를 부여잡고 부들부들 떨다가 나한테 외쳤다.

"야! 이게 무슨 짓이야!"

"너야말로 뭔 짓을 한 거냐. 그 정보가 퀴니에 선배한테 어떤 의미인지 알 텐데."

"다, 다들 헛소문인 줄 알 테니까, 괜찮을 거라 생각했단 말이다! 그렇게 일이 커질 줄은 몰랐다. 아직도 대자보가 남아 있대서 나도 놀랐다. 지워지지도 않고.... 게다가 내가 말한 거랑 문구가 다르다."

문구가 다르다고?

나는 물었다.

"원래는 뭐라고 말했는데?"

"내가 말한 건 그저 '퀴니에는 사람 죽이는 거 무지 싫어한다' 정도였다. 당시에는 다들 떠도는 소문을 서로 이야기하면서 놀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같이 얘기하다가 그만.... 그런데 대자보에는 전혀 다르게 적혀 있었다."

나와 퀴니에는 서로 마주보았다.

"...말한 문구와 다르게 적혀 있지만, 그게 우연히도 더 진실에 가까워질 확률, 어떻게 보십니까?"

"말도 안 되지. 게다가 코라가 한 말은 내가 그냥 착한 사람이라는 어필 같잖아. 완전 엉뚱한 소리였는걸."

...엉뚱하진 않은데. 퀴니에는 무지하게 선인이다. 안 그러는 척 하는 것에 열심일 뿐이지.

"그러면 대자보를 적은 사람은 처음부터 진실을 알고 있었겠군요."

"그래. 그걸 코라의 말을 듣고 나서 한 것처럼 꾸민 거지. 여차하면 코라를 범인으로 몰기 위해서."

나와 퀴니에는 코라를 보았다.

"뭐, 뭐냐, 그 눈빛은?"

퀴니에가 말했다.

"코라, 그럼 얘기는 간단해. 네가 그 얘기를 꺼낼 때 누가 듣고 있었어? 아니, 그 중 누군가가 '마법 대자보'의 대한 얘기를 은근슬쩍 꺼냈을 거야. 그게 누구야?"

그렇다. 그놈이 범인이다. 코라가 '마법 대자보'를 모른다면, 그 얘기를 꺼내, 코라의 소문을 퍼트리자고 이야기를 유도한 녀석.

코라는 후후, 하면서 양손을 허리에 댔다.

"그건 간단하지. 그 녀석은 바로,"

그렇게 코라는 나와 퀴니에의 시선을 즐기는 듯하다가,

"...누구였지?"

멍청한 소리를 내뱉었다.

이 순간 난 진짜로 열받았다.

그러나 바로 다음, 코라의 표정을 보고 열이 조금 가셨다.

"...누구, 어라?"

코라는 미간을 찡그리고, 어울리지 않게 손을 입가에 가져가면서 자신의 머릿속을 뒤졌다.

"...기억이 안 나."

"허?"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흘러도, 코라가 범인을 생각해 내진 못했다.

* * *

코라와 퀴니에를 돌려보내고 나서 늦은 밤, 나는 잠시 생각했다.

...사실 1할 정도는, 아직 코라를 의심 중이다.

나에게 코라는 수수께끼 같은 캐릭터다.

뭣보다 본 적이 없다. 아스터로 플레이할 때는 한 번도.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3학년인 퀴니에와 아스터가 만나는 일은 많지 않다. 퀴니에를 만나는 건 그녀가 졸업한 후의 얘기니까.

실제로 이 세계의 아스터도 퀴니에는 거의 모를 것이다. '소악마'라는 별명만 들어봤겠지.

다만 수인이라고 하면 너무나도 드문 존재이기에.

게다가 저렇게 고양이 귀에 고양이 꼬리.... 아 호랑이였지 참.

아무튼 저렇게 수인다운 수인은 나도 게임하면서 본 적이 없기에, 코라의 존재감은 굉장히 선명하다.

코라를 실제로 마주하진 않았더라도, 어디선가 소문은 들어봤을 것도 같은데.

"프론디어 님."

"응?"

"전부 풀었습니다."

나는 셀레나가 건네준 용지를 살폈다.

고대어로 된 간단한 단어를 적어, 그 해석을 셀레나가 맞추는 연습이었다.

문제는 10문제 정도 되었고, 전부 정답이었다.

"잘했다. 정답이야."

"감사합니다."

셀레나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래도 그 눈가의 긴장이 풀리고, 입가가 아주 작은 호선을 그렸다.

...이제 좀 나도, 사람의 얼굴을 읽을 수 있게 된 것 같다.

"셀레나, 만곶에서는 뭐라 하지?"

"아주 기뻐하고 있습니다. 드디어 고대어의 완전 해석이 머지않았다고 하더군요."

음. 그런 생각을 하고 있군.

꿈을 너무 크게 가지면, 진짜로 꿈인 게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할 텐데.

"지금 만곶에서는 제가 전해준 고대어의 기초 지식을 갖고 해석에 응용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그렇군. 열심이네."

"...괜찮으시겠습니까?"

"괜찮아. 어차피 그거 가지고는 못 푸니까."

"예?"

셀레나가 놀라서 나를 보았다.

"설마, 혹시 제가 지금껏 가짜로 배워온 겁니까?"

"아니다. 다만 지금까지 배워온 걸로는 고대어를 해석할 수 없다. 지금까지의 기본 지식만으로는 고대어의 규칙을 발견할 수 없다. 서로 아무 연결점이 없으니."

굳이 말한다면 '사과'라는 단어만 배워놓고, '불'을 해석하려 드는 꼴이다. 자음과 모음의 아무런 관계도 없는데 그걸 맞추어내는 것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제가 이렇게 계속 배우게 되면, 그것까지 알게 되지 않습니까?"

"물론이지. 그때는 내가 너한테 말해줄 거다. 여기서부터는 만곶에 전하지 말라고. 만곶에다가는 내가 가르쳐주지 않는다 전해라."

나는 지금 셀레나에게 홀려 고대어를 가르쳐준다는 설정이다.

그러니 만곶이 전부 알 것을 걱정해 더 이상 가르쳐주지 않는다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언제까지고 통하진 않을 텐데요."

"조건을 걸겠지. 그 조건이 합당하면 고려할 것이다."

"...!"

셀레나가 내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하다가 눈을 크게 떴다.

나의 본의를 알아차린 것이다.

나는 고대어를 손에 쥐고 만곶을 흔들 것이다. 그들이 흔들리는지도 모르게.

그리고 내 계획에서 셀레나 본인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걸, 이젠 알겠지.

"...알겠습니다."

하지만 셀레나는 더 말 않고 다시 내가 적어둔 고대어를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아직 어느 편에 붙을지 정하지 못하고 있으니.

"그런데 고대어는 참 신기하네요. 너무 폐쇄적이고, 기록으로 남겨도 의미가 없고."

셀레나가 화제를 돌렸다. 나는 그것을 받아주었다.

"그렇지. 고대의 마법사들은 마법에 대한 지식이 퍼지는 걸 원치 않았다. 그래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한 '기록'은 필요했지만, 그것이 계속 이어지지 않길 바랐어. 그러니 시간이 지나면 해석할 수 없는 언어가 필요했다."

"아까운 일이에요. 기록했는데 사라진다니."

셀레나는 용지를 들어 가만히 보았다. 지금은 내 마나가 깃들어 있어 해석할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목소리도 소실되어 전혀 해석할 수 없게 되겠지. 셀레나도 지금은 무슨 뜻인지 기억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 까먹고 말 것,

"...지워진 기록."

"예?"

나는 무심코 중얼거렸다. 셀레나가 되물으며 나를 보았으나.

나는 어떤 생각이 닿아 답할 겨를이 없었다.

기록과 기억.

범인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코라.

퀴니에의 약점을 알고 있는 범인.

그리고 내가 모르는 '코라'라고 하는 존재.

"...."

나는 입을 다물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오싹한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하여.

* * *

퀴니에는 저택의 방 안에서 고민했다.

결국 중요한 문제가 남았다.

"범인은 어떻게 내 약점을 알고 있지?"

코라가 기억을 되찾아 범인을 찾아낸다고 해도, 이 의문을 해결하지 못하면 소용없다.

혹여 이 정보가 상당히 알기 쉬운 경로로 유통되고 있다면.

"어떻게든 범인을 만나 그 정보를 얻어내야 하는데."

퀴니에는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범인을 잡게 되면 고문이라도 해야 하는 건가. 그 생각에 벌써부터 기분이 안 좋아진다.

"범인이 알아서 말해주면 참 좋을 텐데."

그렇게 한숨을 내쉬고 창가를 보았다.

창 밖에 거꾸로 가면을 쓴 남자가 있었다.

"...허?"

가면은 웃는 얼굴이었고, 그 눈과 입이 그저 초승달을 붙여넣은 듯 단순했다. 그걸 뒤집어서 쓰고 있으니 너무도 기괴했다.

아니, 기괴한 것은 그게 아니라,

"당신 뭐야?"

왜 내 창 앞에 저딴 것이....

"안녕, 퀴니에."

놀러운 친구처럼 남자는 손을 들었다.

"누구냐고."

"아 모르겠어? 모르겠어? 진짜로?"

짜증이 솟는 말투였다.

남자 주제에 목소리 톤은 왜 저렇게 높은지.

"가면을 쓴 주제에 누군지 알아달라고 말하는 게 어처구니가 없네."

"아냐, 그럴 리가, 내 목소리만 듣고 알 텐데. 알았어야지. 알아야 하는데."

목소리만 듣고?

분명 인상에 남는 독특한 목소리지만, 퀴니에는 들은 적이 없다.

"들은 적이 없는 게 아니지."

그때, 마치 퀴니에의 속마음을 읽은 것처럼.

거꾸로 된 가면은 말했다.

"기억에서 지워진 거란다, 퀴니에."

아카데미의 무기복제자 120화

37장 기억(2)

"...지워졌다고?"

퀴니에는 부채를 펼쳤다.

경계를 위한 자세였다. 한눈에 봐도 이 남자 우호적이지 않다. 무엇보다 기억이 '지워졌다'니. 마치 이 남자가 일부러 기억을 지우기라도 했다는 듯이.

퀴니에 본인이 정말로 기억이 지워져 있는지는 둘째 치고, 누군가의 기억을 지우려 한다면 그 저의에 악행 외에 무엇이 있겠는가.

"무슨 소리죠? 제 기억에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만."

"아하하하. 그게 인간의 신기한 점이지.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도록 맞춰져 있다는 거. 분명 과거의 너라면 알고 있을 텐데 말이야. 지금 네 모습에는 심각한 모순이 있다는 걸."

"...과거의 저라고요?"

퀴니에가 되묻자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가면 안쪽에 무슨 얼굴을 하고 있는지 퀴니에는 알 수 없었으나.

"그래. 13년 전의 너 말이야."

그 목소리는 분명 한층 낮아졌다.

퀴니에는 섬찟한 한기를 느끼고 잠깐 입을 다물었다. 다시 열린 그 입술이 살짝 떨렸다.

"...그때는."

"그래. 너의 '시체 공포'가 시작된 날이지."

이 남자는 퀴니에의 과거, 약점을 알고 있다. 즉 콘스텔의 마법 대자보도 이 남자가 썼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보다도, 남자의 말을 허투루 흘릴 수 없게 되었다.

"이상하단 말야. 그 날의 '사건'을 겪고 공포를 갖게 된 네가, 어떻게 그 들짐승을 데리고 다니는 거지?"

"...들짐승? 설마 당신."

"그래. 코라 말이야."

코라, 코라가 왜? 그 아이의 이름이 지금 왜 나오지?

그 날의 사건과 코라가 무슨 관계가 있길래.

"이상하단 말이지. 퀴니에."

남자는 말했다.

"그놈이 대량 학살을 저지르는 꼴을 눈앞에서 봤잖아. 6살의 나이에."

"...!"

"주변의 인간들을 평등하게 찢어죽인 꼴을 보고, 바닥에 여기저기 널린 시체들을 보고, 상체는 여기에, 하체는 저기에 가 있는 우스운 꼴을 보고, 시체가 무서워졌잖아?"

"...개소리 마. 내가 공포증이 생긴 건 저택을 습격한 늑대 때문에."

남자는 퀴니에의 반론에 크크크, 하고 웃음을 흘렸다.

"그래. 그런 식으로 기억하고 있었구나."

그런 식이라니. 그게 아니면 뭔데.

코라가 사람을 죽여? 대량학살?

그딴, 그딴 개소리를 내가,

타타타탓-!

그때 퀴니에의 방을 향해 뛰어오는 발걸음이 들렸다.

사람이 뛰어온다기엔 너무 잦은 발걸음 소리. 이건.

"오, 완벽한 타이밍."

남자는 말했고, 퀴니에는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오지 마! 코라!"

벌컥!

방문이 열리고, 퀴니에는 다시 창가 쪽을 바라보았다. 분명 가면을 쓴 놈이 코라를 노린다고 생각했기에.

허나 놈은 없었다.

"어?"

남자는 도망쳤는지, 창 밖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퀴니에 괜찮아? 누가 왔었지?"

코라가 다가와 물었다.

퀴니에가 끄덕이자, 코라는 주변을 둘러보면서 그 코를 찡긋거렸다.

"퀴니에의 방 근처에서 낯선 냄새가 났어. 기분 나쁜 냄새야. 악취를 가리려고 더 악취를 만들어냈어. 처음엔 맡기 어려워도 눈치챈 다음부터는 아주 역겨운 냄새가 나."

코라는 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주위를 살폈다. 하지만 그의 특출난 눈으로도 남자를 찾진 못한 듯했다.

퀴니에는 그 모습을 가만히 보았다.

'코라가 학살을 저질렀다고?'

나는 그것 때문에 공포증에 걸렸고?

믿을 수 없어. 당연히 거짓말이다.

...다만 그 때 사건의 기억은 분명 희미하다. 분명 늑대가 습격한 것으로 머리 속에 그려지고 있었다.

그 이미지는 하얀 털이 수북한, 네발짐승의, 붉은 눈을 하고....

"퀴니에?"

"...!"

퀴니에는 코라의 목소리에 놀라 눈을 떴다. 코라가 그녀를 걱정스러운 듯 보고 있었다.

"퀴니에, 어디 다친 거야?"

"아, 아냐. 괜찮아."

퀴니에는 코라를 보았다.

13년 전의 일. 기억이 희미하다. 희미한 건지, 아니면 남자의 말대로 정말 지워진 건지.

...코라가 아냐. 그럴 리가 없어.

퀴니에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 * *

"흐음. 역시 날 기억하지 못하는군."

가면의 남자는 높은 나무의 가지 끝 위에 서 있었다. 뾰족한 가지 위에 발 하나를 딛고 균형을 잡았다. 그것이 외려 편하다는 듯.

"퀴니에가 가진 나에 대한 기억은 내가 지운 거지만, 그 과정에서 사건에 대한 기억에도 변화가 생긴 모양이야. 흥미로워."

남자는 마치 연구하듯이 중얼거렸다.

오늘은 13년 전의 사건 당시의 자신을 퀴니에가 기억하고 있는지 재확인하기 위해서 온 것이다. 기억을 없애긴 했어도, 퀴니에의 입장에선 너무 강렬한 충격이라 미처 지워지지 않았을 수도 있기에.

그런데 뜻밖의 재미있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 사건에 엄연히 존재하는 자신의 기억을 쏙 빼고 나니, 그 빈자리의 모순을 감추기 위해서인지 퀴니에의 기억이 알아서 재조정된 것이다.

"물론 코라마저 그 기억에서 삭제된 건 의외이긴 했지만."

어쩐지. 코라를 옆에 두고 있는 게 이상하다 싶더라니. 이대로면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

"코라를 먼저 제거해야지."

그리 어려울 건 없다.

그저 13년 전을 반복하면 될 뿐.

"때가 됐어, 퀴니에. 가주의 자리에서 물러날 때야."

남자는 이 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퀴니에가 다시 가문을 부흥시켜, 주변 가문들과의 관계까지 안정화할 이 때를.

"망각의 삶은 지쳤어."

중얼거리며 남자는 가지 끝에서 바로 아래 나뭇가지로 훌쩍 뛰어내렸다.

이제 코라를 없애고 계획대로만 된다면.

비에트 가문은 그의 것이 된다.

"응?"

문득 시선을 느껴 남자는 좌측을 보았다.

까악-

까마귀가 있었다.

까마귀는 그를 보고 좌우로 고개를 갸웃하다가, 푸드덕 하고 날아올랐다.

그걸 잠시 보다가, 남자는 다시 비에트 가문의 저택을 보며 풋 웃었다.

"그럼 또, 콘스텔에서 보자. 퀴니에."

* * *

[재수 없는 놈이었어.]

"그러네."

나는 창가에 앉은 까마귀에게 퀴니에의 상황을 전해 들었다.

셀레나에게 고대어를 가르치던 도중 어떤 생각이 닿아 그레고리에게 서둘러 일을 맡겼다.

수확은 충분하다 할 수 있었다.

"...기억이라."

아무래도 적은 타인의 기억을 지울 수 있는 것 같다.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추측이 맞아떨어진 모양인데.'

나는 '코라'라는 캐릭터를 알지 못한다. 그 정도로 희귀한 수인인데도 불구하고, 본 적도 없고 얘기를 들어본 적도 없다.

그러나 그게 이미 '코라'라는 존재가 게임 내에서 지워진 것이라면.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기에, 게임에선 처음부터 언급조차 되지 않는 거라면.

'주인공 아스터는 퀴니에와 제대로 된 접점을 가지는 건 졸업 이후.'

즉 코라가 그 이전에 모두에게 잊혀진다면, 당연히 플레이어도 코라에 대한 정보를 얻지 못할 것이다.

그렇기에 코라의 존재를 아무도 모른다. 플레이어조차도.

[놈은 코라를 죽이려는 것 같은데.]

"그러게. 개인의 기억을 지우는 건 그냥 할 수 있는 것 같지만, 그 존재를 모두의 기억 속에서 없애려면 죽여야 하는 조건이 필요한 것 같네."

내 말에 까마귀가 고개를 까닥였다. 그게 그레고리가 그러고 있는 건지, 까마귀의 반사적인 행동인지는 내 눈으로 구별이 가지 않았다.

[기억을 지우는 것만도 어마어마한 능력인데, 그 사람의 존재를 모두의 기억 속에서 없앤다고? 아무리 '살인'이라는 조건이 붙는다지만 그게 가능한가?]

그러게 말이다.

나는 그레고리의 말에 너무나 깊이 공감해 의자에 몸을 푹 눌렀다.

그리고 한숨처럼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신이지."

[신.... 놈에게 신력이 있단 말인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개인의 기억을 잃게 하는 건 그렇다쳐도, 모두의 기억에서 존재를 없애버린다?

그런 게 가능한 건 내가 알기로 하나뿐이다.

"망각의 여신, 레테. 아마 그녀의 신력일 거야."

[레테.... '레테의 강'의 그 레테인가?]

"그래. 사람이 환생하기 전에 레테의 강물을 마시면 이전 삶의 기억을 전부 잊는다고 하잖아."

어디까지나 게임 속, 그러니까 이 세계에서의 이야기지만.

죽은 사람이 레테의 강물을 마신다는 건, 본인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기억에서도 잊혀진다는 뜻이다.

흔히들 말하는 '두번째 죽음'.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의 기억에서마저 사라진다는 그것이다.

그래서 죽은 영혼이라도 환생은 백년이 넘는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레테의 강물을 마시고, 모든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도 현생을 사는 사람들의 괴리가 커지지 않도록.

[그러면 그 가면 쓴 남자가 사람을 죽이는 건.]

"그래. 신력을 이용해 레테의 강물을 마시게 하는 거지."

[무서운 신력이군.]

"그래도 약점은 있어. 약점이라기보단 한계 지점이랄까."

[뭐지?]

"너무 유명한 인간은 레테의 강이 통하지 않아."

[유명...? 아, 그렇군.]

사람들의 전승으로 오르내릴 정도의 업적, 문헌에 기록될 정도의 무훈,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영웅적 서사.

이들은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사라지지 않는다. 더욱 미화되고 신성화 되어 그 존재가 강력해진다.

사람이 기억을 잊은들, 그 기록과 역사의 증거들은 사라지지 않으니까. 오히려 화려하고 과장되게 쓰여진 기록들만이 남아 영웅을 더욱 강력하게 만든다.

"그래서 환생도 못해 영웅들은. 신의 자리에 오른다든가, 별자리가 된다든가 하는 얘기 들어봤잖아?"

[그렇지. '조디악' 말인가.]

테르스트 제국에서 지정하는 12명의 인간병기, 조디악.

지금은 그저 제국에서 가장 강력한 12명을 칭하고 있으나, 본래는 그 이름답게 사후 별자리에 오를 것이 예정된 사람들임을 뜻했다. 그들은 그만한 업적이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나도, 퀴니에도, 코라도 이렇다 할 업적이 없으니."

[전혀 막지 못한다는 거로군.]

그렇다.

아마 가면 쓴 남자가 코라를 노리고 있다면, 코라뿐만 아니라 퀴니에까지도 위험할 거다. 코라가 죽으면 우리의 기억에서 잊혀질 테니, 아무런 이변도 깨닫지 못한 채 퀴니에가 다음 타겟이 되겠지.

'하지만 퀴니에는 분명히 캐릭터로서 존재한단 말이지.'

남자가 코라처럼 퀴니에를 죽였다면 당연히 두 캐릭터 모두 다 내가 몰랐어야 정상이다. 둘 다 게임 내에서 지워졌을 테니.

즉 본래의 세계에서는, 남자는 코라를 죽이는 건 성공했지만 퀴니에는 실패했다는 얘기인데.

...아니면.

'놈은 애초에 퀴니에를 죽일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놈을 어떻게 할 거지? 가면은 쓰고 있지만 그 체구는 기억했다. 어디서 나타날지만 알면 눈대중으로 어림잡을 수 있을 텐데.]

"어디 나타나는지는 뻔해. 콘스텔이야."

놈은 십중팔구 콘스텔의 학생이다. 아니면 학생인 척을 하고 있거나.

코라의 떠벌림을 이용해서 퀴니에를 노리고 소문을 퍼트렸을 테니, 분명 평범한 사람처럼 퀴니에에게 접근했겠지.

[그럼 내일 퀴니에에게 물어보면 되겠군. 놈은 그녀와 가까운 사이일 테니.]

"말했잖아. 놈은 기억을 지울 수 있어. 퀴니에랑 대화를 한 뒤에도, 퀴니에 본인은 기억을 못할 수 있다고."

[귀찮은 놈이군.]

나는 잠시 생각했다.

놈은 분명 귀찮은 상대다. 한걸음 잘못 내디뎠다간 녀석에 대한 기억을 까먹고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

생각을 정한 나는 세이지폰을 들었다.

우선 보험 정도는 깔아두자.

나는 퀴니에에게 문자를 전송했다.

[선배. 안경을 구비해 주세요. 항상 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걸로.]

아카데미의 무기복제자 121화

37장 기억(3)

오전 9:52.

한 개의 이론수업이 끝난 3학년 교실.

퀴니에는 제 콧잔등 위에 걸친 안경이 영 어색한지 자꾸 만지작거렸다.

"어? 퀴니에, 안경 샀어?"

친구인 안느가 다가와 물었다.

"아, 응. 눈이 좀 나빠진 것 같아서."

퀴니에는 편한 거짓말로 얼버무렸다.

물론 퀴니에의 시력은 멀쩡하다. 이 안경은 프론디어의 말을 듣고 준비한 것이다.

"잘 어울리는데? 역시 얼굴이 되니까 뭘 걸쳐도 되네."

"됐어."

하나도 진심이 없는 것 같은 칭찬에 퀴니에는 손을 내저었다.

안경으로 보이는 풍경을 다시 확인했다.

'좀 눈앞이 거슬리긴 하네.'

퀴니에는 안경으로 보이는 풍경의 왼쪽 아래를 확인했다.

[9:52:32]

시, 분, 초까지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 항상 시야의 왼쪽 아래에 붙어있다.

'그래서 이 시간이 갑자기 훌쩍 뛰어버리면, 내가 기억을 잃었다는 거지?'

놈이 자신의 기억을 지우면 그만큼의 시간이 날아간다. 그러면 그녀의 눈으로 보았을 때는 시간이 훌쩍 지나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대체 누구인 거지?'

그 가면의 남자는 콘스텔의 학생일 확률이 높다.

정확한 목적이 무엇인지는 모르나, 퀴니에는 자신을 노릴 만한 이유가 그리 많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비에트 가문의 '재산'이거나, 가문 자체거나, 아니면 그녀로 인해 음습한 범죄들이 발각된 다른 가문의 복수심이거나.

'하지만 내 옛날얘기를 들먹이는 걸 보면 날 어떻게 하고 싶은 모양인데.'

그것도 그 사건의 범인이 코라라는 거짓말까지 치면서.

그 생각을 하면 또 머리가 지끈거리지만, 일단은 나중이다.

놈을 잡게 되면 모든 걸 알 수 있겠지.

'...그런데 이 안경.'

너무 티 나잖아.

퀴니에는 원래 안경을 쓰지 않는다.

놈을 만난 다음 날에, 평소에 쓰지도 않는 안경을 갑자기 쓰고 있는데 과연 접근할까?

게다가 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초까지 볼 수 있는 안경은 모델이 많지 않다. 서둘러 준비한 이 안경도 놈이 이미 알고 있을 수도 있다.

퀴니에는 내심 불안했지만 일단 성실하게 시계를 보고 있었다.

일단 퀴니에 본인이 다른 대안이 떠오르는 것도 아니니. 어쨌든 이 안경을 쓰고 있으면 놈도 경계해 쉽게 능력을 쓰진 못할 테지. 일단 그것으로 위안을 삼자.

딩— 동— 댕— 동—

쉬는 시간의 끝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이후 퀴니에는 수업에 집중하는 척하면서 시계를 확인했다. 쉬는 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오전 수업, 점심 시간, 오후 수업이 모두 지나도.

방과 후가 되어도 시계는 시간을 훌쩍 뛰어넘거나 하지 않았다.

역시나. 이 작전은 실패다. 놈은 접근하지 않는다.

부웅—

그때 퀴니에의 폰이 울렸다. 문자가 와 있었다.

반쯤 예상한 대로 프론디어였다.

[퀴니에 선배.]

꼭 인사하는 듯한 문자.

상황을 보고해달라는 거겠지. 퀴니에는 쓴웃음을 짓고 문자를 적었다.

'작전 실패야. 시계에 이상한 건 없었어.'라고 치는 와중에,

다음 문자.

[놈을 찾았습니다. 덕분입니다.]

"...응?"

찾았다고? 어떻게?

덕분이라니? 왜?

머리가 혼란한 와중에 또 문자가 왔다.

[선배, 그래서 하나 질문이 있습니다.]

이번엔 답하지 않았다. 프론디어의 말이 너무 이해가 안 가 머릿속을 정리하느라 바빴다.

그 사이 또 다음 문자가 왔다.

[코라가 오늘 온다는 건 거짓말인가요? 진심인가요?]

"뭐?"

더 이상한 얘기.

문자 내용을 보고 최대한 이해를 해본다면.

퀴니에가 오늘 누군가에게 코라에 대해 말했다. 그걸 알고서 그 진위를 프론디어가 묻고 있다는 건, 즉.

'나, 기억을 잃었어?'

뒤늦게 깨달은 사실에 소름이 돋았다.

* * *

전날 밤.

나는 퀴니에에게 문자를 보낸 뒤 그 내용을 그레고리에게 전했다.

[퀴니에에게 안경을?]

"그래. 기억을 잃게 한다면 그 동안의 시간도 잊어버릴 테니. 기억을 잃은 사람의 입장에선 시간이 건너뛰어진 것처럼 보일 테지."

기억을 잃게 할 수는 있어도 지나간 시간까지 어쩌지는 못한다.

항상 시계를 확인할 수 있다면, 기억을 잃는 것을 막진 못하더라도 자신이 기억을 잃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그렇지 않다.

"...라는 식으로, 퀴니에는 생각하겠지."

[뭐? 그럼 실제로는 다른가?]

"다르지. 놈의 능력은 기억을 송두리째 날리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만 그 기억에서 지우는 거니까."

그레고리의 보고에 따르면, 퀴니에는 자신이 가진 '시체 공포증'을 늑대의 습격으로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아마, 그 사건에서 사람을 죽인 건 코라가 맞을 거야.'

백호의 피를 이은 코라. 마음만 먹으면 사람 여럿 죽이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다.

다만 본인의 의지가 아닐 확률이 높다. 가면의 남자가 코라를 어떠한 작용으로 폭주시킨 거겠지. 마법이 되었든, 약이 되었든.

아무튼 퀴니에는 그 사건을 완전히 잊지 않았다. 즉 아예 기억이 날아간 게 아니라, 가면 쓴 남자와 코라의 기억이 없는 채로 재조정 되었다.

가면의 남자가 자신의 존재를 지우는 과정에서 코라까지 딸려온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시계를 보고 있어도 퀴니에는 위화감을 알아차리지 못할 거야. 기억 전부가 날아가는 게 아니고, 그 사람 본인만 기억에서 빠져나가고, 그 빈 공간은 생각이 알아서 맞춰가니까. 본인의 생각인데 본인이 의심한다는 건 불가능해."

[그럼 왜 퀴니에에게 안경을 구비하라 일렀지? 놈의 능력을 막는 데에 아무런 도움도 안 되잖나. 오히려 기고만장해져서,]

그렇게 말하다 말고 까마귀는 입을 다물었다.

그레고리 스스로 깨달은 것이다. 까마귀의 부리가 열심히 움직이다가 도중에 닫히는 건 꽤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나는 말했다.

"그래. 기고만장해져서 거리낌 없이 능력을 쓰겠지."

퀴니에의 방비는 가면 남자의 능력에 대한 잘못된 대처.

퀴니에가 착각하고 있다고 생각한 그곳에 미끼를 던진다.

"그놈, 스스로가 제법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자기 생각만큼인지 어떤지 확인해 볼까.

* * *

다음날 나는 계획된 대로 그레고리에게 지시를 내렸다.

아니, 내리려고 했다.

"...."

"왜 그래요, 프론디어 씨?"

까마귀를 쳐다보고 가만히 있는 나에게 아텐이 물었다.

여기는 교실.

내가 계획대로 움직이려면 그레고리에게 계속된 보고를 받아야 한다.

이 교실 안에서, 아텐의 옆에서.

'...에라.'

모르겠다.

"종이 울리면 계획대로 진행해. 수시로 보고하고."

[알겠습니다.]

내가 그레고리에게 말했고, 그레고리는 입을 열어 대답했다. 내 뜻을 알았는지 존칭까지 사용해 주면서.

"엇? 어?"

아텐이 나와 까마귀를 번갈아 보면서 놀랬다.

"까, 까마귀가 말을...?"

"음. 테이밍을 열심히 했지."

고도로 숙련된 테이머라면 동물에게 말을 가르칠 수 있게 된다.

특히 까마귀처럼 지능이 높은 개체에게는 보다 손쉬운 일이다.

근데 그건 정말로 엄청나게 수준이 높은 테이머가 하는 것이다. 그것도 상당한 시간을 들여서.

나 같은 경우엔.

"언제 테이밍 실력을 그렇게.... 아니, 말도 안 돼요. 이건 재능인가요? 신력?"

역시 이런 반응이 나온다.

나는 자신만만한 얼굴로 입가를 당겨 미소 지었다. 얼마 전에 셀레나에게 자연스러운 미소에 대해 배웠는데 잘된 건지 모르겠다.

"재능, 신력, 기타 등등. 네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두루두루 합쳐서 내놓은 궁극의 결과라고 할까."

나는 되는대로 지껄였다.

그런데 아텐은 손을 입가에 가져가 진지하게 미간을 모았다.

"재능, 신력.... 모든 걸 합친 궁극의 결과...."

아텐, 그렇게 진지하게 중얼거리지 마.

타인에게 듣고 있자니 엄청 쪽팔린 소리를 지껄였다는 걸 깨달았다.

"자, 이제."

나는 아텐을 보며 물었다.

"'바람 속삭임' 마법, 할 줄 알아?"

나는 대놓고 아텐을 사건에 끌어들이고 있었다.

아텐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바로 사용해 줘."

내 말에 아텐은 묻지도 않고 손을 펼쳤다.

나와 아텐, 그리고 그레고리의 목소리만이 서로 들리는 방음 마법. 바람 속삭임.

나는 그것을 확인하고 까마귀를 보았다.

"그럼 무언가 발견하면 바로 보고해. 급한 거라면 수업시간이라도 괜찮아."

[놈이 능력을 쓰는지 어떻게 확인할 수 있습니까?]

"...어제 전부 설명했잖아."

[죄송합니다. 기억이 애매합니다. 까마귀라.]

이 자식, 누가 봐도 아텐 들으라고 하는 질문이다. 실제로 아텐은 흥미와 호기심으로 눈을 반짝이며 까마귀를 주시하고 있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능력을 쓰는지는 확인할 필요 없어. 중요한 건 말의 내용이야."

퀴니에가 안경을 쓴 모습을 본다면 분명 놈은 접근할 것이다. 퀴니에가 자신의 능력을 착각했다고 믿고서.

물론 그게 사실이니까 믿지 않을 수도 없겠지.

퀴니에는 인기가 많다. 그만큼 다수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중요한 건 그 내용.

누가 '코라'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가.

'내가 코라를 모른다는 건, 게임에서 코라가 제거되는 건 거의 확실하다는 뜻이야.'

즉 놈은 퀴니에보다 코라를 먼저 노리고 있다. 코라가 놈의 계획의 최대 장애물이다.

"'코라'에 대해 묻는 녀석을 찾아. 언제 코라가 콘스텔에 또 놀러 오느냐 따위의 질문이라면 당첨이고."

[그렇군요. 과연 주인님이십니다.]

이 자식, 재미 들렸네.

딩— 동—

그리고 수업 종이 울리자, 까마귀는 깍듯이 제 고개를 숙였다.

[그럼 명을 받들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날아가는 까마귀를 보며 아텐의 눈은 이제까지 없던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레고리 녀석도 틀림없이 즐기고 있다.

나는 멍하니 날아가는 까마귀를 보던 아텐에게 물었다.

"아텐, 괜찮아? 무슨 상황인지도 모를 텐데."

"괜찮습니다. 중요한 일인 것 같으니까요. 프론디어 씨가 범죄를 저지르려는 것만 아니라면."

그렇게 말하고 아텐은 핫, 하고 놀라 나를 보았다.

"설마, 범죄에 가담한 건가요, 저?"

"아냐. 그럴 리가."

"그렇죠. 농담이었습니다."

그래. 그런 걸 농담이라는 거야.

아텐은 새로 '농담'을 배웠다.

"전 프론디어 씨를 믿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부담 주기'를 추가 습득.

* * *

그리고 잠시의 시간 뒤.

[보고합니다.]

방과 후가 되어서야 수확을 얻었다.

까마귀가 창가로 날아와 입을 열었다.

[퀴니에에게 코라의 위치를 묻는 녀석을 찾았습니다. 언제 오느냐는 질문까지, 노골적이었습니다.]

"좋아. 퀴니에는 뭐라고 대답했지?"

[오늘 온다고 답했습니다. 다만 사실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당시의 퀴니에는 분명 자신에게 접근하는 모든 이를 의심했을 것이기에.]

퀴니에는 코라에 대해 묻는 상대에겐 당연히 경계심을 가질 것이다.

때문에 거짓말을 했을 수도 있고, 놈을 끌어들이기 위해 오히려 진짜로 말했을 수도 있다. 자신이 기억을 언제 잃는지를 확인할 수 있을 거라 믿고 있을 테니.

아무튼 놈은 미끼를 제대로 물었다.

"그러면 묻고 나서 분명히 퀴니에의 기억을 잃게 만드는 뭔가를 했을 텐데. 그것도 확인했어?"

나는 그레고리에게 물었다.

코라에 대해 물어봤다면 당연히 이후 기억을 잃게 만드는 작업도 했을 것이다.

[...그것이.]

그런데 그레고리는 답지 않게 말을 멈추었다.

[제가 눈으로 확인해 본바, 녀석은 손가락으로 퀴니에의 팔을 건드렸습니다.]

"...그게 전부?"

[예.]

나는 눈가를 좁혔다.

즉 상대의 기억을 잃게 만드는 조건이, 고작 신체 접촉 잠깐이면 된다고?

'아냐. 짧은 기억이니까 비교적 조건이 간단한 것일지도.'

...그렇다 해도.

'신력'의 두려움을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아카데미의 무기복제자 122화

37장 기억(4)

남자는 퀴니에가 안경을 쓰고 있는 모습을 보고 확신했다.

퀴니에는 그의 능력을 착각하고 있다. 능력이 기억을 송두리째 삭제시키는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미 많이 봐왔다. 그들 대부분이 다 퀴니에와 비슷한 방어기제를 취했다. 그들이 기댈 수 있는 건 시간뿐이었다.

그러나 그런 걸로는 남자의 능력을 알아차릴 수 없다. 그의 능력은 기억 전체가 아닌, 기억 속에서 자신의 존재만 소거하니까.

"퀴니에, 오늘은 코라 안 와?"

방과 후, 남자는 당당히 퀴니에에게 물었다.

그 질문을 한 순간 퀴니에의 표정이 변했다. 뻔뻔한 질문이었으니, 당연히 그를 의심한다. 그러나 아직은 의심뿐.

"올 거야. 이따가. 집에 같이 돌아가기로 했거든."

답하는 퀴니에의 얼굴엔 도전적인 미소가 걸려 있었다. 해볼 거면 해봐, 라는 듯이. 아마 시간을 확인하고 보고를 할 속셈인 거겠지. 아마도 프론디어? 최근에 같이 있는 걸 봤으니.

"그래, 고마워."

남자는 퀴니에의 말을 듣고 그 옆을 지나갔다. 가면서 퀴니에의 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스쳤다. 이것으로 끝. 퀴니에는 자신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린다. 물론 보고도 할 수 없다.

'코라가 온단 말이지.'

물론 퀴니에의 말을 전부 신뢰할 수는 없다. 오히려 거짓말을 할 가능성이 더 높다.

하지만 퀴니에가 방금 보여준 겁 없는 미소, 자신의 능력에 대한 착각. 남자는 퀴니에의 말이 진실이라는 것에 걸어보았다.

뭣보다 확인한다고 해서 위험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여기가 좋겠군.'

남자는 콘스텔의 입구 근처의 건물 뒤편에 숨었다. 코라가 오길 기다리는 것이다.

물론 제대로 싸운다면 그는 코라를 이길 수 없다. 지금은 코라가 어울리지도 않는 마법을 익힌답시고 고군분투하는 모양이지만, 단순 격투가 되었을 때 코라의 신체능력은 인간과 비교 자체가 불가하다.

남자의 목적은 지금 당장 코라를 죽이는 것이 아니다. 코라가 콘스텔에 올 때까지 기다린 것도 그 때문.

여기서 코라가 올 때까지 기다려, 이전의 그 폭주를 유도하기만 하면.

"그럼 아르멜 드 비에트라고 부르는 게 맞아?"

[아니지. 하는 꼴을 보니 아직 가문으로 인정 받질 않은 것 같으니.]

"그럼 아직 아르멜 콜트 선배인가."

...뭐지 이건.

남자가 숨어 있는 건물 뒤편, 그 위에서 생각지도 못한 대화가 들려왔다.

남자는 위를 올려다보았다.

누군가 건물의 난간에 걸터 앉아, 까마귀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까마귀?

'설마, 그때 그!'

남자는 나무 위에 있었을 때 옆에 있던 까마귀가 떠올랐다.

그게 설마 평범한 까마귀가 아니었단 말인가?

게다가 말을 걸고 있는 인간은 프론디어였다. 퀴니에와 협력 관계를 맺고 있는 게 틀림없을 남자.

프론디어가 언제부터 테이밍을 익혔지? 테이밍한 동물이 말까지 하잖아?

"그래서, 아르멜 씨."

대화를 나누던 프론디어가 말을 멈추고 남자를 내려다보았다.

아르멜 콜트.

안경을 끼고 왜소한 몸집, 한눈에 기억하기 어려운 수수한 인상과 희미한 존재감.

언젠가 아르멜 드 비에트로 돌아가는 것을 꿈꾸는 남자에게, 프론디어는 물었다.

"그래서 당신은 뭡니까? 퀴니에 선배의 사촌이라든가, 오빠라든가. 출생의 비밀이라도 있는 겁니까?"

탓!

아르멜은 뒤로 풀쩍 뛰어 거리를 벌렸다. 그 모습을 프론디어의 나른한 눈이 지켜보았다.

아르멜은 식은땀을 흘리는 와중에도 씨익 웃었다.

"아, 프론디어구나? 놀랬네. 무슨 일이야?"

"안녕하세요."

프론디어는 건물 위에서 뛰어내려 착지했다. 비로소 같은 눈높이로 서로 마주 보았다.

멍청한 놈, 스스로 높은 곳에 있는 우위를 버리다니. 아르멜은 내심 웃었다. 역시 프론디어는 경험이 부족하다.

인더스에 보고 받은 얘기로는 꽤 화려한 전적을 세우고 있는 것 같지만 역시 반은 허풍-

"메노소르포."

아르멜의 생각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르멜은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한 마법진 안에 들어온 것을 느꼈다.

'그리지도 않고 마법진을 쓴다고?'

이게 무슨 마법진인지는 모르겠지만, 효과를 모르는 이상 계속 있는 것은 좋지 않다.

...한데, 대체 어느 방향으로 가야 이 마법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인가.

스슥-

아르멜이 자기도 모르게 발을 주춤했을 때.

쉬익-

콰과과과과광!

아르멜은 갑자기 쏟아지는 무언가에 놀라 발을 움직였다. 그도 얼마 가지 못했다.

눈치챈 순간, 그는 사방으로 땅바닥을 꿰뚫어놓은 창에 갇힌 꼴이었다.

'말도 안 돼.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창이 튀어나온다니! 창이 아니라 돌멩이가 튀어나온다고 해도 믿을 수 없다!'

아르멜은 눈앞에 요란하게 떨어진 창들을 살폈다. 한없이 진짜 같이 생겼으나, 하나하나가 그 전체를 빈틈없이 채우는 마나가 느껴졌다.

마법이다. 이토록 물질 같은 마법이라니. 그렇다면 방금의 마법진의 능력이 이것인가. 적어도 이 마법진 안에서의 마법은 실제와 같이 구현되는 건가.

"왜, 왜 이럴까? 프론디어. 굉장히 당황스럽네."

아르멜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프론디어에게 말했다.

프론디어는 고개를 갸웃했다.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저희 만난 적이 있나요?"

"...설마. 이렇게 얘기하는 건 처음인데? 넌 하도 유명하니까 얼굴을 알고 있을 뿐이야."

아르멜의 말에 프론디어는 웃었다.

가라앉은 눈이 잠깐 감기고, 다시 떴을 때에는, 그 웃음은 조소로 변했다.

"그러게요. 제 기억에도 없네요."

이 자식.

아르멜의 목에 힘이 들어갔다. 프론디어는 내가 범인인 것을 확신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바로 공격하지 않지? 실력에 자신이 없는 건가? 내 실력을 확인하고 싶은 건가?

그때 프론디어가 말했다.

"그런데 말이죠. 아르멜 씨의 계획이 정말 잘 되어서, 만에 하나, 정말로 비에트 가문으로 들어가 버리면."

프론디어는 말하면서 허리춤에 차고 있던 소검을 꺼냈다. 묘한 길이의 검이다.

아르멜은 답하지 않았다. 그저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을 일관했다.

그 얼굴을 보며 프론디어는 말을 계속했다.

"평민 권익을 향상시킨다던, 인더스에 계속 있어도 되는 겁니까?"

그 말에 아르멜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짓고 있던 표정 그대로 굳었다.

'이 자식 얼마나 알고 있는 거지?'

프론디어는 아르멜이 인더스의 멤버라는 것까지 알고 있다.

아르멜은 한 발 뒤로 물러섰다. 도망치려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경계의 자세를 위해 한 발을 뒤로 뺐을 뿐.

프론디어는 손을 들었다.

"농담입니다. 당연히 있어도 되죠. 이미 인더스에 속한 명문 귀족들은 많이 계시니까."

인더스는 지금껏 공익을 위한 일을 계속해왔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평민 귀족 가릴 것 없이 마을이나 도시 안에서 벌어지는 재난과 사고들을 수습하기 위해 힘을 쓰고, 가난한 이들에게 인더스의 이름으로 돈을 기부하는 등. 이미지를 키우고 지지하는 세력을 늘려갔다.

직접적인 은혜를 입은 귀족들은 적극적으로 인더스의 편을 들기도 했다.

다만 인더스는 그 누구도 규모를 추정할 수 없었다. 리더도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자신이 인더스라고 자칭하는 이들은 대부분 청렴결백했으나, 그 누구도 자신이 대표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겉으로는 평민들의 복지가 필요하다며 사람들을 설득시키고, 뒤로는 귀족들에게 안 좋은 이미지를 퍼트리고 사건 사고를 일으키게 만든다.

그리고 그 사건 사고를 일으킬 때의 가장 중요한 인물이 바로,

"아르멜 씨, 뒷처리 담당이시죠?"

"...!"

"인더스가 뒤에서 귀족들을 모함하거나 몰락시키는 사건을 만든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그러니 실수가 있거나 목격자가 있을 때, 그 사람의 기억을 지우는 것이 당신의 역할이죠?"

인더스가 사건에서 자신들을 숨기기 위해 가장 많이 쓰는 두 가지 방식.

하나는 세르프나 그레고리가 그러했듯 꼬리를 자르는 거고, 하나는 아르멜의 능력을 쓰는 거다.

아르멜의 활약 덕분에, 인더스는 지금껏 뒤에서 해온 짓들을 들킨 적이 없다.

물론 사건 조사를 하면서 의심의 화살이 향한 적은 있으나, 그 정도의 화살은 인더스가 아닌 수많은 단체나 귀족 가문에게도 똑같이 향해졌다.

다만 아르멜의 능력에는 문제가 있었다.

아르멜은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지운다. 사건에 대한 기억이 지워지는 건 아르멜의 기억을 지우면서, 덩달아 딸려오는 것.

그렇기에 아르멜은 누군가의 기억을 지우기 위해서는 사건에 관여해야만 한다. 실패 확률이 높다고 판단되면 인더스는 아르멜을 투입시켰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르멜은 몰랐다.

설마 인더스가 무너뜨리는 가문 중의 하나가, 자기 자신의 가문이었을 줄은.

"그러니까 묻는 겁니다, 아르멜 씨."

"...."

"당신은 누구죠? 인더스에 미쳐서 자기 자신의 가문까지 몰락시킨, '전' 비에트의 귀족이실 텐데."

그때까지만 해도 아르멜은 그래도 웃고 있었다.

그러나 이윽고 그 얼굴인 일그러져, 구겨쥐고 또 구겨졌다. 그 구겨진 얼굴은 다시 펴지지 않았다.

학생의 얼굴이라기엔 지나치게 주름 진 그 모습으로, 잔뜩 거칠어진 입술을 열어 아르멜은 말했다.

"나는 아르멜 드 비에트. 비에트 가문의 가주다."

남자라고 생각되지 않을 만큼, 쓸데없이 높은 목소리였다.

"...."

프론디어는 얼굴을 찌푸렸다.

예상은 했다.

퀴니에의 가문을 노리고, 지금 당장 퀴니에를 죽였을 때 그 가문을 차지할 수 있는 사람.

당연히 비에트 가문의 핏줄일 테고, 퀴니에 다음으로 가주가 되기 가장 쉬운 인물.

예상은 했는데.

'아주 미친놈이잖아.'

비에트의 이전 가주라고 한다면, 당연히 퀴니에의 아버지다.

인더스가 대체 이 사람 머릿속에 뭘 심어줬는지 몰라도, 자신의 가문을 초토화시키고 딸에게 자신의 기억을 전부 지우게 만들고 떠난다고?

프론디어는 물었다.

"모두가 기억을 잃었는데 어떻게 가문을 얻으시려고?"

"네가 스스로 말했잖나. 나는 모두의 기억에서 나라는 존재를 지웠다. 그러니 앞뒤 정황 따위, 나중에 만들면 그만이다. 타지에서 오래 살았다든가, 아니면 13년 전의 사건을 이용해도 되겠지. 겨우겨우 도망친 내가 다시 돌아왔다고 말이야."

코라의 폭주. 당시의 죽은 사람은 어마어마했다. 그리고 대부분 비에트 가문의 사람들이었다.

아르멜은 말했다.

"퀴니에만 죽으면, 폭주한 코라가 퀴니에를 죽이면 나는 가주의 자리를 되찾을 수 있다. 퀴니에를 죽인 코라를 내가 처단하면, 명분은 성립한다."

"폭주한 코라를 당신이 무슨 수로 죽인다는 겁니까?"

아르멜은 씨익 웃었다.

"놈을 폭주를 유도하는 약과 해제시키는 약, 전부 내 품에 있다. 폭주가 해제되면 코라는 알아서 죽을 것이다. 그 죄책감을 무시할 녀석이 아냐."

프론디어는 그 말에 잠깐 입을 다물다가 웃었다.

"잘도 떠드시네요. 저에게 그런 계획을 죄다 낱낱이 밝히다니."

"아, 물론이지."

아르멜은 웃었다. 그의 양손이 들렸다.

"네놈 또한 착각하는 게 있으니까──!"

그리고 그 양손이 뻗었을 때, 프론디어는 툭, 하고 멈췄다. 그 초점이 흐릿해졌다.

"까마귀를 보고서 알았지. 내가 퀴니에의 기억을 없애는 것을 관찰했구나. 허나 내 능력은 접촉하는 것이 조건이 아니다. 이름을 알고 있는 상대에게 마나를 닿게 하는 것. 그 정도면 충분하지."

다만 거리가 있는 상대, 그것도 긴 시간의 기억을 지우는 데에는 기하급수적으로 마나를 많이 요구하게 된다. 그러니 들킬 위험이 커진다. 게다가 그만큼 시간도 걸린다.

그러나 한 번 걸린 이상, 이 시간이 지나면 무조건.

"크흐흐. 기고만장하더니 네 놈 또한,"

거기서 아르멜의 말이 멈췄다.

무언가 이상했다. 잠깐 멈춘 듯한 프론디어가 다시 초점이 돌아오고, 고개를 좌우로 휙휙 흔드는 것이 아닌가.

이상하다. 분명 지금도 능력을 사용하고 있는데....

"아, 위험했다. 예상대로였지만."

프론디어는 그렇게 말하고, 아르멜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저 눈빛, 저 표정, 기억을 잃은 사람일 리가 없었다.

왜? 레테의 신력은 단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다. 애초에 인간이 신력을 거스를 수 있을 리가.

생각할 수 있는 건 한 가지.

온몸에 기를 불어넣고 들고 있는 소검에 오러를 깃들게 하는 프론디어를 보며, 아르멜은 섬뜩한 것을 깨달았다.

"네, 네놈! 프론디어가 아니─!"

탓!

그 말을 끝맺기도 전에, 프론디어의 칼날이 눈앞까지 도달했다.

아카데미의 무기복제자 123화

37장 기억(5)

내 칼날은 아쉽게도 아르멜에게 닿지 못했다.

아르멜은 몸을 뒤로 젖혀 칼날을 피했다. 너무 급하게 젖힌 나머지 균형이 무너졌다. 반쯤 넘어지다시피 옆으로 굴렀다.

다시 일어난 아르멜은 부릅뜬 눈으로 나를 보았다.

"너, 너... 프론디어가 아니지?"

놈은 칼날이 덮친 것보다, 자신의 능력이 통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기겁한 듯했다.

나는 말 없이 서 있었지만, 식은땀이 흐르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위험했어.'

태연한 척하고 있었지만.

아르멜의 말대로 나는 착각을 하고 있었다. 거리만 벌려놓으면 레테의 신력이 닿지 않을 거라는 판단이었다.

그리고 아르멜의 말대로, 설령 신력이 닿더라도 나에겐 통하지 않을 거라는 반쯤의 믿음이 있었다.

두 가지의 방비가 머릿속에 이미 들어있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잠깐 정신을 잃었잖아.'

레테의 신력이 나에게 '약간'은 통했다는 사실에 소름이 끼친다.

어느샌가 나는 프론디어와 나를 동일시하고 있었던 건가.

나는 일단 다 예상한 것처럼 미소를 지었다. 잘 통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 그래!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그 '인간늘보'가 이정도까지 성장할 리 없지! 분명 아무런 재능도 없이 노력도 하지 않는 무능아라고 들었는데 말이야!"

"하하하."

나는 웃었다. 소검을 든 채 한 걸음 다가갔다.

"아르멜 씨, 그런 말을 누가 믿겠습니까?"

"...!"

아르멜은 짐짓 표정을 굳히고 품속에 손을 넣었다. 그 품에서 나온 것은 수어 개의 단검이었다. 아니, 자루가 없으니 그저 칼날이라고 부르는 게 맞을까.

저 칼날은 본 기억이 있었다.

'퀴니에 선배의 부채에서 사출되는 칼날과 똑같이 생겼군.'

퀴니에는 그걸 부채에 수납하지만, 아버지는 직접 들고 싸우는 건가. 자루가 없더라도 손으로 쥔 부분은 칼날보다 폭이 좁았다. 다치지 않고 쉽게 잡을 수 있도록 가공되어 있었다.

"신력이 통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네놈을 여기서 죽이면 그만이지."

그리고 아르멜은 뚜둑, 하면서 목을 풀었다.

그런데 단지 근육을 푸는 게 아니었다. 뚜둑 하고 소리가 나는 곳마다 이전보다 확연히 신체가 커졌다. 목부터 시작해서 어깨, 팔, 허리, 다리, 발목까지. 그저 뼈 소리가 날 뿐인데 그 소리가 난 부위가 늘린 만큼 커졌다.

골격을 늘리는, 아니지.

"지금까지 골격을 줄이고 있었군요. 지금이 원래 몸입니까?"

"그래. 왜소한 체구여야 변장이 쉬우니. 나이를 속이는 데에 이만한 게 없지."

마법 같지는 않고, 그의 독자적인 기술인가. 아니면 인더스에서 배운 수법인가.

몸을 전부 푼 아르멜은 이미 나보다 키가 커져 있었다. 적어도 그 풍채만큼은 앙페르와 비슷했다.

차르륵!

아르멜의 쥔 수어 개의 칼날들이 한 번의 손짓으로 하나로 합쳐졌다. 호오, 재미있는 무기다.

쉭!

아르멜은 오른손을 휘둘러 칼날 하나를 나에게 던졌다. 속도가 대단치 않았기에 나는 소검으로 쳐냈다.

그사이 아르멜은 내게 접근했고, 방금 칼날을 던졌을 게 분명한 그의 오른손에 여전히 칼날이 있었다.

카앙!

서로의 칼날이 맞부딪혔다.

'그렇군. 칼날을 합치는 것도, 나눠서 쏘는 것도 자유자재라.'

마치 트럼프 카드를 손 안에 쥐고 쏘는 것 같다.

투척과 검술을 동시에 하는 것이다.

카앙! 카강!

나와 아르멜은 서로의 칼날을 몇 번 부딪혔다. 과연 가주인가. 이미 아르멜의 칼날에도 오러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였고.

"네놈! 정체가 뭐냐! 언제부터 프론디어 행세를 했지!"

"시끄럽네! 제가 프론디어라니까요!"

틀린 말은 안했다. 나는 프론디어다. 이 세상 모두가 그렇다고 말할 것이다.

그런데 프론디어 행세를 한 것도 맞다. 서로 성립할 수 없는 것 같은 두 문장이 묘하게 성립되고 있었다.

까아앙!

나는 양 손의 검으로 찔러들어오는 아르멜의 공격을 한 번에 쳐냈다. 위험하다고 판단한 아르멜이 빠르게 뒤로 물러섰다.

쌍검을 어느 정도 다뤄봤으니 알지만, 어설프게 사용하면 검을 한 손으로 든 것보다 위험하다. 왼쪽을 오른쪽이 방해하기도 하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아르멜 씨."

"뭐지?"

"역시 퀴니에 선배보다 약하네요."

나는 확신했다.

아르멜은 전투의 재능이 없다. 칼날을 던지는 것과 휘두르는 걸 함께 한다는 발상은 신선했으나, 그 발상만큼의 응용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내가 약자라서 잘 안다. 저런 식의 정석을 벗어난 방법을 사용하는 건, 그만큼 약하다는 뜻이다. 내가 온갖 수단을 다 긁어모아서 지금껏 대적해 왔듯이.

"네놈, 곱게 죽진 못할 것이다."

아르멜이 으르렁거렸다.

뭐 듣는 입장에서는 당연히 화를 낼 것이다.

'그럼 어떡할까.'

죽이려면 진작 죽일 수 있었다. 이렇게 만날 것까지도 없이. 아르멜이 폭죽을 막아내는 게 가능할까 싶기도 하고.

하지만 여기는 콘스텔. 게다가 아르멜은 아직 죄가 입증되지도 않았다. 죄가 있다고 해도 내 손으로 죽이는 건 상당히 켕긴다.

적어도 쓸데없는 짓을 못하게 발을 묶어놓으면, 그걸로 어떻게든 될 것 같은데.

'...그렇지.'

아르멜이 독특한 방법으로 싸우듯이.

나도 독특한 수 하나를 꺼내볼까.

탓!

아르멜은 다시 나에게 덤벼들었다. 다시 마주치는 칼날이 시끄러운 금속음을 내었다.

사실 아르멜과 나의 검술 실력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오히려 힘은 체격이 큰 아르멜이 나보다 강할 것이다.

다만 나는 아르멜보다 한참 강한 상대를 너무 자주 만나보았다. 적들은 물론이고, 뭣보다 앗지에와 훈련하면서 셀 수 없이 땅바닥을 굴렀으니.

그리고 무엇보다, 아르멜의 검술은 녹이 슬었다. 오랜 시간 전투를 하지 않았다는 게 눈에 보일 정도다.

휘익!

아르멜의 칼날이 좌우에서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나는 이 때를 기다렸다. 아르멜이 양손으로 동시 공격을 하는 순간을.

나는 검을 뻗었다. 아르멜의 칼날이 서로 교차하는 지점, 이쯤인가.

역시 아르멜은 이 기술을 맛본 적이 없다. 보고를 받았을 텐데 말야.

슥-

나의 소검과 아르멜의 양 칼날이 소리 없이 붙었다. 다음 순간 장작을 태우는 듯한 메마른 소리가 나고, 아르멜이 쥔 무기가 허공을 날았다. 겹쳐져 있던 칼날들이 허공에서 흩뿌려졌다.

'낙장'이었다.

"크윽!"

아르멜은 그제야 깨달았다는 듯 뒤로 물러섰다. 그래도 낙장에 당한 사람들 중 정신을 빨리 차린 축에 속했다.

나는 아르멜이 물러난 보폭을 쫓았다. 그리고 아르멜의 가슴팍을 향해 소검을 휘둘렀다.

소검은 아르멜에게 닿지 못하고 허공을 휘둘렀다. 아르멜을 나와 몇 번 검을 맞대는 동안 내 검의 길이를 파악하고 있었다. 그만큼을 물러났으니 칼날이 닿지 않는 건 당연했다.

그렇다. 칼날은 닿지 않는다.

주륵-

"허...?"

아르멜은 멈춰 서고 그제야 깨달은 듯했다.

피가 흘렀다. 가슴에 생긴 긴 자상으로 피가 번졌다. 교복을 적시고 밑으로 흘렀다.

목숨이 위험할 만한 정도는 아니나, 얕은 상처 또한 아니었다.

"아, 윽!"

쿵, 아르멜은 한쪽 무릎을 꿇었다. 갑작스럽게 생긴 상당한 양의 출혈. 어지러움과 피로가 몰려올 것이다.

"뭐지. 분명히 피했는데, 어째서."

그렇다. 아르멜은 칼날을 피했다.

그러나 나의 오러를 피하지 못했다.

나의 '닐 자크의 소검'은 오러를 담는 순간 그 길이를 늘린다. 검신이 길어지는 것은 아니고, 오러가 그 검의 위로 뻗는다.

거기다 나의 오러는 무색. 이렇게 정신없이 싸우는 와중에서 그 거리를 익히는 것은 쉽지 않다.

나는 메노소르포를 해제했다.

"그만하죠. 중상입니다."

"...."

아르멜은 빈손으로 땅을 훑었다. 시선이 나를 보는 와중에 흘끔흘끔 주변을 향한다.

손에 쥔 칼날을 전부 놓쳤으니, 근처에 뭐라도 떨어져 있으면 집어보려는 것이다. 그러나 뻗은 손조차도 힘겨워 떨리고 있었다. 저 상태로 움직이면 출혈이 심해질 뿐이다.

그때였다.

끼익, 건물의 뒷편 출구로 누군가 걸어나왔다.

예상대로 퀴니에였다. 완벽한 타이밍이었다.

"...아르멜 콜트."

퀴니에는 차갑게 아르멜의 이름을 불렀다. 드 비에트가 아닌, 콘스텔에서 불리는 이름으로. 그게 퀴니에가 정한 호칭이겠지.

"당신이 13년 전의 사건을 일으킨 범인이라고."

퀴니에는 부채를 펼쳤다. 이미 오라가 넘실거려 부채에 모여들고 있었다.

"...흐흐, 그렇다."

아르멜은 웃음을 흘리며 퀴니에를 보았다.

퀴니에가 눈가를 좁혔다. 그녀의 눈에 고민의 색이 짙어졌다.

"...정말로 기억이 안 나네. 조금도. 나의 아버지라는 작자를 눈앞에서 보고 있는데."

"물론이지. 내 능력은 완벽하다. 한 번 지워놓은 기억은 절대로 되돌릴 수 없지."

아르멜은 그것이 참으로 자랑스러운 듯 말했다. 웃기까지 하면서.

그렇게 말하는 아르멜이 무슨 심정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셀레나에게 들은 것이 있다.

-미소를 지을 때는 눈도 같이 웃어야 좀 더 그럴듯합니다.

적어도 아르멜의 지금 웃음은, 전혀 그럴 듯하지 않았다.

"당장에라도 쳐 죽이고 싶지만, 당신은 죗값을 치러야겠어. 인더스가 진실로 어떤 곳인지 밝혀져야 할 때야."

"나를 아무리 고문한다 해도 인더스의 정보를 얻어낼 수는 없을 거다."

"흥, 그렇게나 충성심이 깊어?"

"아니. 내가 아는 것 따위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지."

그렇게 말한 아르멜은 이 사이로 조소가 섞인 한숨을 뱉었다.

"인더스는 저들끼리도 진짜 윗대가리가 누구인지 모른다. 가장 최측근이라면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나는 아냐. 인더스 말마따나 정말로 평민인지, 아니면 몰락 귀족인지, 아니면 명문가인지, 혹은 황족인지조차. 게다가 그 규모마저 측정 불능이지. 세간에는 실제로 인더스가 아닌데 인더스를 자칭하는 녀석들이 설치고 있다. 평민이 받는 차별과 억압을 이겨내고 보호한다는 간판은 아무나 매달아두기 좋거든."

아르멜의 말대로, 인더스는 겉으로는 아주 깨끗한 단체이기에 멋대로 인더스를 자칭하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게다가 정작 인더스는 그에 대해 아무런 제재도 하고 있지 않으니 그 규모를 추산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구속을 하든 죽이든 마음대로 해라. 어차피 이제 나는 인더스에게 아무런 가치도 없는 몸이니. 인더스가 가장 잘하는 게 꼬리자르기다. 나와의 연결점이 거짓말처럼 사라지는 걸 볼 수 있을 거야."

크흐흐, 아르멜은 정말로 웃는 것인지도 모를 웃음소리를 흘렸다.

나와 퀴니에는 서로 마주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은 변함없었다.

나는 천천히 아르멜에게 접근했다. 그의 능력에 면역을 가진 건 나뿐이기에, 구속할 수 있는 것도 나뿐이었다.

아르멜의 능력은 원거리에서도 가능하다지만, 경계를 취하고 있는 퀴니에라면 손쉽게 막아낼 것이다.

녀석의 능력이 손 끝에서 나오는 건 확실하니까, 손을 주의해서 보면 될 일이다.

내가 아르멜의 등 뒤로 다가갔을 때.

"아! 퀴니에! 나 왔어~~!!"

...정말이지 지금 듣고 싶지 않은 최악의 목소리가 들렸다.

기묘하게도 나와 퀴니에, 아르멜 셋 모두가 퍼뜩 목소리의 방향으로 고개를 움직였다.

콘스텔의 입구를 지나쳐 걸어오는 코라가 보였다.

최악의 타이밍이었다.

아르멜이 했던 말이 귀를 다시 스쳤다.

-놈의 폭주를 유도하는 약과 해제시키는 약, 전부 내 품에 있다.

탓!

나와 아르멜이 거의 동시에 움직였다. 아르멜이 품 속에 손을 넣었을 때 나는 놈의 어깨를 눌렀고, 그대로 깔아뭉갤 생각으로 힘을 주었다.

그런데 갑자기 힘이 빠져 휘청였다. 아르멜의 어깨를 누르려던 손이 바닥을 짚었다.

아르멜이 내 품을 굴러서 빠져나왔다. 나보다 작은 몸이 되어서.

'골격 축소!'

아르멜은 이전의 왜소했던 몸보다도 더 작아져서는 품 속에서 칼날 하나를 꺼냈다. 그 칼날의 손잡이 끄트머리에 무언가 달려 있었다. 뭔가를 담아놓은 주머니 같은 것이.

쉭!

아르멜은 벌벌 떨리는 몸으로, 제대로 균형도 잡지 못하면서 코라에게 온힘을 향해 칼날을 쏘았다.

피해! 코라!! 퀴니에의 외침이 날아들었다.

코라는 그 말을 듣고 반사적으로 고개를 젖혀 칼날을 피해냈으나.

펑.

주머니는 공중에서 터졌다.

코라의 눈앞에서.

아카데미의 무기복제자 124화

38장 코라

"윽! 콜록콜록!"

코라는 기침을 뱉었다. 터진 주머니에서 나온 가루들이 허공에 흩뿌려졌다.

"뭐야 이게?"

코라는 자기 앞에 흩뿌려지는 붉은색 가루들에 인상을 찌푸렸다.

허나 그것도 잠시.

"아, 윽! 어억...!"

변화는 즉시 나타났다. 코라의 눈에 핏발이 섰다. 그는 양손 손가락에 힘을 바짝 세우고 제 몸을 감쌌다. 그 온몸에 서서히 백색의 털이 돋아나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보고 아르멜에게 다가갔다.

퍼억!

"크억!"

나는 놈의 면상을 한 번 후려치고 품을 뒤적였다. 물론 때리지 않아도 몸수색은 쉽게 할 수 있었다. 그냥 후려친 거다.

찾아보니 주사기가 나왔다. 안에는 이미 액체가 들어 있었다.

"...쯧."

코라를 분노하게 만드는 건 분말 따위로도 가능한데, 해독은 이 주사를 꽂아야 하는 건가.

나는 외쳤다.

"셀레나!"

"예!"

셀레나는 등장하자마자 곧장 내 앞에 섰다.

"엄호하겠습니다! 어서 대피를!"

"아냐! 이쪽으로 오는 학생들을 막아라! 이 근처로 아무도 오지 못하게 해라!"

"예?"

셀레나는 놀래서 나를 돌아보았다.

"그, 그 말씀은, 설마 저 괴물을 상대하겠다는 겁니까?"

역시 셀레나. 아무 말 않더니 코라에 대해선 이미 다 알고 있었구나.

"그래.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이쪽으로 하교하는 학생들을 돌려보내라. 호기심으로라도 오는 녀석들을 내쫓아. 교사들만 빼고."

"무모합니다! 프론디어 님! 코라가 어떤 수인인지 아시잖아요! 대피하시는 게 좋습니다! 제가 목숨을 다해 막을 테니,"

빠득.

나는 어금니를 깨물었다. 관자놀이에 힘줄이 솟는 걸 느꼈다.

셀레나는 그저 판에 박힌 말을 했을 뿐이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아무런 의미도 없고, 아무 진심도 담겨 있지 않다.

그녀는 그저 만곶에서 교육받은 대로 내게 충성심을 연기할 뿐.

그럼에도 나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네 목숨이 왜 여기서 다한단 말이냐!!"

"...!"

내 목소리에 가벼운 진동이 퍼지는 걸 느꼈다. 오러의 발현이었다. 셀레나는 놀라서 눈이 커진 채 입을 다물었다.

"가라. 내가 명령한 대로 움직여라. 시간이 없다."

"...알겠습니다."

그제야 셀레나는 달려갔다. 멀어지는 그녀를 확인하고 코라를 보았다.

코라는 스스로와 싸우는 듯이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그 체적은 점차 거대해질 뿐이었다.

나는 퀴니에에게 말했다.

"선배, 여기서 아르멜을 감시해 줘요. 어차피 저 상처로는 움직이지 못할 겁니다. 부채로 견제만 해주어도 괜찮을 겁니다."

"...저 아이, 네 호위지?"

퀴니에는 멀어지는 셀레나를 힐끗 보고는 말했다.

"저 애의 말이 맞아. 여기서 도망치는 게 나아. 코라가 완전히 변하기 전에."

"안 돼요. 그럼 13년 전과 똑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뭐? 너, 어떻게 그때 일을."

"그리고 이번엔 코라도 죽을 겁니다."

코라가 난동을 부려 학생들에게 피해를 입히고, 나아가 살인을 저지른다면.

코라에게 남은 길은 죽음밖에 없다.

애초에 인간이 아니라 수인이기에, 더욱 콘스텔 교사들에게는 주저함이 없을 것이다.

"그러면 너, 코라를 죽이지도 않고, 제압하겠다는 얘기야?"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아니었으면 나도 교사가 올 때까지 기다렸을 거다. 코라가 그냥 평범한 마물이었다면.

"말도 안 돼. 미쳤어. 그만둬, 무리야."

퀴니에가 나에게 다가오려 했으나 나는 손을 내밀어 제지했다. 눈앞의 코라는 이제 인간의 모습이 거의 없었다. 그는 말 그대로 백호가 되어, 네 발로 서서 섬찟한 마력을 내뿜었다.

"거기서 움직이지 마요. 아르멜이 상처를 입었다고 해도 방치하면 위험합니다."

"아니, 너는...!"

"괜찮습니다. 생각이 있으니까. 다만 한 가지 부탁이 있어요."

나는 걱정스러운 표정의 퀴니에를 보며 말했다.

"마스크 팩을 빌려줘요."

"...마스크 팩?"

"갖고 있죠? 변장하는 거."

"그렇긴 한데, 너 정말로 괜찮은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퀴니에는 아랫입술을 깨물고 잠시 나를 보다가, 마스크 팩을 꺼내 내게 건넸다.

"걱정 말아요. 무사히 돌아올 테니. 저도, 코라도."

나는 마스크 팩을 얼굴에 붙였다.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넥타이를 손에 쥐었다.

* * *

프론디어는 넥타이를 풀어 왼손에 쥔 채 나아갔다.

그 뒷모습을 퀴니에는 불안한 얼굴로 지켜보았다.

지금까지 프론디어는 아무 근거도 없는 짓은 하지 않았다.

퀴니에와 함께 팀을 이루었던 1학기 기말고사 때도 그랬다. 그는 언제나 다양한 수를 준비하고, 상대의 심리를 찌르는 것에 능했다.

그런 프론디어가 '생각이 있다'고 했기에 믿어보려 했지만.

'상대는 '백호'라고. 알고 있는 거야?'

프론디어가 코라에게 가까워질 때마다, 그가 사지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크흐, 크흐흐흐흐."

아르멜은 쓰러진 채로 낮은 웃음을 흘렸다.

"무리다. 코라의 분노를 잠재울 방법 같은 건 없어."

"...없다니?"

퀴니에가 부채를 겨눴다. 그 동작이 의미하는 바는 뻔했다. 대답하라는 것이다.

아르멜이 말했다.

"코라가 마신 가루는 분노를 일으키는 게 아니다. 이성을 없애는 거지. 놈은 '백호'의 야성으로 되돌아간 거다. 생각해 봐라. 그저 야생의 호랑이가 할 일이 무엇인지. 놈은 그저 짐승이 된 거다. 분노는 잠재울 수 없다. 그럴 생각조차도 하고 있지 않을 테니 말이야."

아르멜의 말에 퀴니에의 눈가가 흔들렸다.

프론디어도 이 사실을 알고 있을까?

"저놈은 죽이지 않고 제압하겠다고 지껄였지? 무슨 수법을 쓰든 통하지 않아. 조금 있으면 프론디어의 몸이 저 어금니에 꿰뚫릴 것이다."

아르멜의 말에 퀴니에는 프론디어를 보았다. 그리고 코라에게 시선을 옮겼다.

이미 코라는 완전히 백호로 변해 있었다. 그것을 정면으로 본 뒤에 퀴니에는 깨달았다.

13년 전의 일, 학살을 벌인 것은 코라라는 걸. 이성을 잃고 백호가 되어 사람을 해쳤다는 것을.

'...코라.'

물론 그것이 코라의 의지가 아니었음을, 인더스의 짓이었음을 이제는 안다.

그러나 코라는 어떨까. 모든 진실을 알게 된 뒤의 코라는.

프론디어는 말했다. 코라를 죽이지 않고 제압하겠다고. 그것이야말로 퀴니에가 마음속 깊이 바라는 일이지만, 그게 정말로 가능할까?

크르르르르-

프론디어가 접근하자, 코라는 그를 발견하고 낮게 으르렁거렸다.

아르멜의 말대로, 그 눈빛에는 이성 한 조각조차 발견할 수 없었다.

역시 무리다. 지금의 코라를 제정신으로 돌려놓는 건.

파앗!

그때, 프론디어의 오른손 안에 마나가 실처럼 엮이더니, 무언가가 생겨났다.

그 모양새는 가는 막대를 삼각으로 구부린 듯한, 보석 같은 광채를 내고 있었다.

"어?"

프론디어는 그것을 삼켜버렸다.

그와 함께 그가 쥐고 있던 넥타이가 빛을 발했다.

콰아아아-!!

직후, 프론디어는 돌변했다.

폭발적인 마나가 그의 몸에서 치솟는 것을 퀴니에는 느꼈다.

'뭐지 저건? 프론디어가 어떻게 저만한 마나를...?'

퀴니에의 생각이 채 끝나기도 전에.

프론디어는 목걸이를 부쉈다. 안에 담긴 검은 액체가 허공에서 프론디어의 오른손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그 오른손 안에, 찬란한 광택을 머금은 검 하나가 쥐어졌다.

'저게 뭐지...?'

처음엔 1학기 기말고사 때 보았던 그람인 줄 알았다.

허나 아니었다. 그람과는 다른 종류의 힘을 느꼈다.

게다가 저 생김새. 퀴니에는 보자마자 어떤 검을 떠올리고 있었다. 콘스텔의 학생은 물론, 문헌과 전설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결코 못 알아볼 수 없는 형태의 검.

하지만 도저히 믿어지지 않아서, 그것을 지금 프론디어가 쥐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납득이 가지 않아.

"...엑스칼리버...?"

그 중얼거림이 나오기까지, 꽤나 시간이 걸렸다.

* * *

코라가 폭주를 시작했을 때, 이미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변을 감지했다. 지금껏 단 한 번도 느낀 적 없는 거대한 압력이었다.

누군가는 대피하고, 누군가는 마력의 근원지로 향했다.

그러나 그 앞에서 셀레나는 학생들을 막아선 채 외치고 있었다.

"돌아가세요! 정문은 지금 위험합니다! 절대로 접근하지 말아주세요!"

"뭐야, 뭐가 있는 거야?"

"마물입니다! 선생님이 올 때까지 정문으로 가지 마세요! 어서 대피하세요! 이곳도 항상 안전하리란 보장은 없습니다!"

학생들은 마물의 위험을 잘 알고 있기에, 대부분은 군말 않고 지시에 따랐다.

그중에는 아텐도 섞여 있었다.

'...불안해.'

아텐은 셀레나의 말에 따라 후문으로 발길을 돌렸다.

다만 오늘 보여준 프론디어의 기묘한 행동이 마음에 걸렸다. 방과 후가 되어 나간 것은 아까였으니, 별일은 없겠거니 싶었지만.

그때, 공중을 가르는 새 한 마리.

[정문 위험! 정문 위험! 마물이 출현했다! 모두 후문으로 대피할 것!]

학생들 주위를 날아다니며 열심히 경보를 전하고 있다.

그건 까마귀였다. 멀리서도 착각할 리가 없는 새였다.

아텐이 그 까마귀를 가만히 보았다.

"...설마."

아텐은 후문으로 향하던 걸음을 멈췄다.

저 말하는 까마귀, 틀림없다. 프론디어가 테이밍한 새다.

정문의 위험을 알리는 새가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고, 그게 프론디어의 새라면.

프론디어는 지금.

"설마."

아텐은 깊은 고민에 잠겨 눈을 가라앉혔다. 이윽고 그녀의 걸음은 계단 위로 향했다.

정문으로 향하는 건 너무 무모한 짓이다. 옥상에서 상황을 살피는 것이 옳다.

개입하진 않을 것이다. 아텐은 눈이 좋은 편이니, 프론디어가 있는지를 확인할 뿐.

철컹.

옥상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 마력의 거대한 힘이 살갗을 스쳤다. 건물 안에 있던 것보다 흉포한 기운이 보다 여실히 느껴졌다.

아텐은 서둘러 옥상 끄트머리로 움직였다. 마나를 눈에 집중시켰다. 대치하고 있는 둘이 보였다. 하나는 하얀 털이 수북한 거대한 호랑이였고, 다른 하나는,

"어?"

콘스텔 교복, 새까만 머리카락, 오른손에 쥔 검, 나른한 눈동자.

호랑이의 앞에 서 있는 남자는,

"...프론디어가 아냐."

* * *

교사들 또한 마력을 느끼고 곧장 움직였다.

가장 가까이 있던 건 보건실에서 근무하는 말리아였다.

'이 느낌, 어디선가....'

굉장히 위험하고 흉포한 기운. 곧바로 대처하지 않으며 큰 사건으로 번질 수 있다.

그런 직감이 뻗는 것과 동시에, 묘하게 낯익은 느낌이 났다.

아주 오래전, 그리움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의 먼 옛날의 냄새.

"아, 말리아 씨!"

서둘러 가는 동안 다른 교사를 만났다. 제인이었다.

"서두르죠. 보통 일이 아닌 것 같으니."

"예. 요즘 사건이 끊이질 않네요."

제인이 가면서 투덜거렸다. 아닌 게 아니라 요즘 제인은 나날이 얼굴이 수척해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최근 사건들, 전부 5반의 학생들이었죠."

"5반이 아니고! 프론디어가 자꾸 휘말리는 거예요!"

제인은 정정했다.

하긴 프론디어 하나가 관계된 거지 다른 5반 대부분은 상관이 없다. 그나마 아텐 정도일까. 프론디어가 5반이라서 문제지.

"제발, 이번만큼은 프론디어가 아니길."

제인은 비는 심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런 와중에도 성실하게 마나를 끌어올려 대비를 해두고 있었다.

그리고 도달한 제인과 말리아는, 아주 이상한 광경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특히 말리아는, 눈을 비비고 다시 보기까지 했다.

"...어머."

자기도 모르게 입에서 나오고 마는 감탄사.

처음에 들어온 것은 물론, 거대한 몸집을 자랑하고 흉흉하기 짝이 없는 백호의 모습이었으나.

그와 대치하고 있는 남자의 얼굴을 확인하고 말리아는 잠깐 생각이 멎었다.

말리아가 시선을 빼앗긴 것은 쥐고 있는 검이 아니었다. 그 얼굴이었다.

──남자는, 앙페르였다.

아주 젊었을 적, 10년도 더 전의 얼굴로 백호의 앞에 서 있었다.

아카데미의 무기복제자 125화

38장 코라(2)

나는 아르멜과 퀴니에의 대화를 들은 뒤, 13년 전의 사건을 조사했다.

코라는 13년 전에도 폭주해 비에트 가문을 습격했다. 당시에 살아남은 사람은 사건을 일으킨 아르멜을 제외하면 오직 퀴니에뿐이었다.

임무나 파견 혹은 휴가 등 각자의 이유로 저택을 떠난 사람들을 제외하면 가문의 사람들은 모두 죽었다.

사건을 목격한 사람이 남지 않았기에, 아이러니하게도 코라가 지금껏 퀴니에 옆에 있을 수 있던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어떻게 퀴니에는 살아남았을까? 모두가 죽은 와중에, 어떻게 그녀만은 무사한가.

누가 코라의 폭주를 멈추었는가.

'앙페르가 있었어.'

나는 13년 전의 사건을 조사하던 중 기묘한 것을 깨달았다.

로아흐 가문은 비에트 가문과 애초부터 교류를 하고 있었다. 퀴니에가 가주가 되기 전, 즉 아버지인 아르멜이 가주였을 때.

당시에 앙페르는 황궁의 부름을 받고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퀴니에 입장에선 천운이라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곳에는, 어렸을 적의 프론디어도 같이 있었다.

비에트 가문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을 직감한 앙페르가 현장에 뛰어들었고, 코라의 폭주를 막았다.

지금의 나는 프론디어가 익힌 고대어의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에서, 그의 기억도 어느 정도 머릿속에 들어있다. 허나 당시의 사건은 기억이 확실치 않았다.

아마 너무 오래전 일이고 어릴 적이라, 프론디어 본인도 가물가물했던 거겠지. 당시 프론디어는 기껏해야 4살이었다.

앙페르는 코라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았다. 그는 해독제 따위 물론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코라를 어떻게 잠재웠는지, 이제는 알 수 있었다.

'이렇게 했던 거지, 앙페르.'

나는 가면을 써 젊었을 적의 앙페르로 얼굴을 바꾸고, 엑스칼리버를 들어 코라에게 다가갔다.

드래곤 하트를 먹고, 더미가 된 페넬로페의 천 거의 전부를 엑스칼리버에 쏟았다.

콰아아아아-!

엑스칼리버는 마나의 격류로 들끓어, 이미 태풍에 가까운 바람을 머금고 휘몰아쳤다. 쥐고 있던 손이 벌벌 떨렸다. 옷과 머리카락이 휘날려, 가면이 벗겨지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주위의 바닥이 쩌적, 하고 소리를 내며 균열했다. 내가 천천히 걸음을 옮길 때마다 돌가루들이 후두둑 떠오르다가 패일 듯이 가라앉았다.

손수건만 한 크기의 페넬로페의 천을 머금은 엑스칼리버가 방벽 앞을 일소했던 것을 떠올리면.

지금 이 엑스칼리버는 잘못 휘두르면 핵폭탄을 떨구는 것과 다름 없다.

크르르르-

나는 잔뜩 털을 곤두세우고 으르렁대는 코라를 마주했다. 지금의 코라에게는 이성 한 점 남아 있지 않다. 주사를 놓을 틈 따위는 없다. 나는 코라의 이성을 되찾게 하는 방법 같은 건 모른다.

그리고 아마 앙페르도 그런 방법은 몰랐겠지.

"코라."

나는 검 끝을 코라에게 향했다. 검에 담긴 모든 마력이 코라를 향했다.

나는 코라의 이성을 설득하지 않는다.

그의 본능, 백호로서의 야성에 고한다. 앙페르는 자신이 가진 그람과, 그 본인의 격으로 해낸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한참 부족하기에, 엑스칼리버의 힘을 빌린다.

"그 입 다물어라."

지금의 코라가 정말로 야성밖에 남아 있지 않다면,

힘의 논리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 * *

프론디어가 검 끝을 코라에게 향했을 때는 이미.

콘스텔의 모든 교사가 현장에 도착해 있었다.

옥상, 건물 뒤편, 등교길, 나무 위 등. 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일정 거리를 두고 프론디어와 코라를 지켜보았다.

물론 총장 오스프리트도 있었다.

'앙페르?'

그 또한 처음 프론디어의 얼굴을 보고 놀랐다. 콘스텔의 교사들 중에서 앙페르의 젊었을 적 얼굴을 아는 사람은 말리아와 오스프리트뿐이었다.

'아니, 그럴 리가 없지.'

당연히 젊은 얼굴을 한 앙페르가 진짜 앙페르일 리가 없기에, 오스프리트는 프론디어를 주시했다.

누가 감히 앙페르의 얼굴을 하고 그의 행세를 한단 말인가. 평범한 상황이었으면 목숨이 아까운 줄 모르는 정신 나간 놈이라 할 만했다.

허나. 지금 그에게는 젊었을 적 앙페르와 비견되는, 아니, 그보다 한층 더 강맹한 기가 뿜어져 나왔다.

정확히는 그가 쥐고 있는 검에서.

'...엑스칼리버.'

엑스칼리버를 쥔, 젊었을 적의 앙페르라. 상상도 해본 적 없는 그림이 눈앞에 현실로 등장했다.

오스프리트는 눈에 마력을 담았다. 남자는 상당히 고가의 가면을 쓰고 있었다. 쉬이 투시할 수는 없었으나, 오스르피트 정도 되면 대강의 윤곽은 보인다.

'...아니, 저 남자는.'

오스프리트의 표정이 변했다.

"...총장님, 어떻게 할까요?"

옆에 있던 교사가 말했다. 오스프리트는 고개를 저었다.

"뭘 할 것도 없다."

"...그 말씀은."

"곧 끝날 것이야."

그때 근처에서 누군가의 고함이 들렸다.

오스프리트가 슬쩍 내려다보니 쓰러져 있는 남자가 있었다. 이미 교사 말리아와 제인이 구속 중이었다. 근처에 부채를 들고 있는 퀴니에도 보였다.

"말도 안 돼! 이성이 없는 코라를 다루려 하다니! 놈은 백호의 핏줄이다! 그따위 억지가 통할 거라 생각하나!"

남자는 악에 받친 듯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오스프리트가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이성이 없으니까 저 방법이 통하는 게지. 저 백호, 보아하니 완전하지 않다. 아직 성체가 되지 못했어. 거기에 다른 피가 섞인 혼혈인 것 같군."

지금 코라의 본능은 끊임없이 고할 것이다.

눈앞에서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마나. 허튼 짓을 했다간 여지없이 죽는다. 기감이 뛰어난 수인이니 더더욱 잘 알겠지.

무엇보다,

저만한 크기의 마나가 곧 터질 것처럼 자신을 향하고 있다면, 진짜 백호라 해도 겁먹을 것이다.

저벅저벅.

앙페르의 얼굴을 한 남자는 천천히 걸었다. 그동안 백호는 가만히 있었다. 성난 소리도 멈추었고, 곤두선 털끝도 천천히 가라앉았다.

오스프리트는 남자의 행색을 살폈다. 콘스텔의 교복을 입고, 앙페르의 얼굴을 하고, 엑스칼리버를 쥐고 있다. 거기다가 느껴지는 엄청난 마나, 그리고 왼손에 쥐고 있는 빛을 발하는 천. 어느 것 하나 그냥 넘기기 어려운 것들이다.

'...특히 저 빛나는 천, 점점 크기가 줄어드는군.'

왼손에 쥐고 있던 천은 점점 줄어들어 이제 오스프리트의 눈으로는 잘 보이지 않았다. 그저 그의 왼손이 여전히 빛을 발하는 것으로 보아 아직 남아 있는 것이겠다만.

그런데 그 빛이 사라지고, 천이 완전히 소실되었다 싶을 즈음,

"크윽!"

남자는 비틀거렸다. 그가 쥐고 있던 엑스칼리버의 거대한 마나가 흔들거렸다. 그 모습에 백호가 다시 눈을 번뜩이고 털을 곤두세웠다.

허나.

푸욱-

남자는 백호의 목에 무언가를 꽂았다. 주사기였다. 주욱, 주사기의 액체가 밀려들어가고 백호의 초점이 흐릿해졌다.

쿵-

백호는 그 크기로 인해 쓰러지는 것조차 육중하고 무거웠다. 천천히 털이 줄어들었고 크기가 점점 작아졌다. 인간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뜻이었다.

오스프리트가 입을 열었다.

"남자를 보호해라. 이야기를 들어야겠다."

교사들은 일제히 움직였다.

백호를 잠재운 남자는 콘스텔 교복을 입었다. 왜 굳이 얼굴을 앙페르로 바꿨는지 몰라도, 전후 사정을 알아야겠지.

교사들은 남자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남자는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백호를 앞에 두고 있을 때는 세상 무서운 게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또한 백호를 잠재우기 위한 허세였나.

앞의 교사가 말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큰 사건이 일어날 것을 막았습니다. 손을 빌려드릴 테니,"

정황을 보면 남자는 백호를 진정시키기 위해 힘을 사용하고 탈력한 상태다. 교사들이 남자에게 친절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허나 남자는 오지 말라는 듯 손을 들었다. 그 피곤한 기색이 앙페르의 얼굴로 드러나니, 교사들은 내심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지금 앙페르의 얼굴밖에 모르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무 닮았다.

"제가 하죠."

그때 누군가가 프론디어 앞을 지키듯이 나섰다. 퀴니에였다.

"이분에게 가장 큰 도움을 받은 것은 저입니다. 제가 부축할 테니, 선생님들은 이만 물러나주세요."

"...음. 허나 퀴니에 학생. 우리도 상황을 알아야 하지 않겠나."

"제가 나중에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분의 상태가 좋지 않네요.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자, 잠시만, 학생."

그렇게 걸음을 옮기려던 퀴니에를 교사가 막아섰다.

퀴니에는 한숨을 내쉬었다. 깊이 가라앉은 눈으로 교사를 보았다.

"...지금은 방과 후잖아요."

"어?"

"방과 후, 라고요. 콘스텔의 선생님들."

"...!"

교사들은 그 뜻을 알고 표정을 굳혔다.

지금 퀴니에는 비에트의 가주로서 움직이고 있다. 학생의 신분이 아니다. 선생님이라 부른 것은 그저 예를 차린 것일 뿐.

"퀴니에 가주."

그때 옥상에 있던 오스프리트가 입을 열었다.

"왜요, 총장님."

퀴니에가 째릿하고 날카로운 눈빛을 쏘자, 오스프리트는 허허허, 하며 사람 좋게 웃었다.

"잘 보살펴주게."

"...."

퀴니에는 그에 대답 않고 프론디어를 부축했다.

부채를 펼쳐 휘익, 한 번 휘저으며 도약하자 그녀는 높이 날아올랐다.

주변의 교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둘은 그렇게 사라졌다.

* * *

프론디어는 퀴니에에게 부축받은 직후 정신을 잃었다. 퀴니에는 그를 저택으로 데리고 와 침대에 눕혔다.

코라가 생각났지만 그는 교사들이 맡아줄 것이니, 오히려 더 안전하다. 폭주하긴 했어도 주변에 심각한 피해를 입힌 건 아니니 괜찮을 거다.

다만 백호의 수인, 언제 폭주할지 모르는 위험성을 두고 교사들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모르겠으나, 지금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프론디어."

퀴니에는 침대 옆 의자에 앉아 프론디어를 불렀다.

프론디어는 곤히 자고 있었다. 의사의 진찰 결과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마나 소진과, 거기에 더불어 극심한 빈혈인 듯했다. 아마 웬만해서는 깨어나지 않을 것이다.

퀴니에는 그걸 알면서 프론디어를 불렀다.

프론디어에게 들려주고 싶지만, 아직 프론디어가 듣지 않았으면 하는, 그런 모순된 감정이 있었기에.

"나 기억이 났어."

퀴니에는 입을 열었다.

"13년 전의 일, 전부. 늑대는 사실 코라였고, 앙페르 가주가 코라를 저지했었지. 사실 내 아버지라는 아르멜은 여전히 기억이 안 나지만. 적어도 내가 무슨 기억을 바꿨는지 알았어."

떠올린 건 프론디어가 앙페르의 얼굴을 하고, 엑스칼리버를 손에 쥔 순간부터였다. 그 뒷모습이 너무나도 익숙해, 과거에 묻혀두었던 기억을 꺼내 올렸다.

"...그때 너도 있었어."

앙페르가 코라를 저지한 이후, 그 등 뒤를 쫄래쫄래 쫓아오는 어린 소년이 있었다.

당시의 퀴니에는 그저 울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소년은 기억한다.

앙페르는 코라가 완전히 잠든 것을 확인하자마자 소년을 안아 들고 그 눈을 가렸다. 어린아이에게 시체 따위를 보여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겠지.

그러나 프론디어는 앙페르가 눈을 가린 손가락 사이로, 퀴니에를 보고 있었다. 앙페르가 저택을 나가 시야에 완전히 사라진 순간까지, 프론디어와 퀴니에는 오래도록 눈을 맞추었다.

그 어린아이가 무슨 생각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울고 있는 그녀에게 어떤 공감이라도 느낀 것인지.

"너도 기억하고 있었구나."

퀴니에는 프론디어를 보았다. 4살과 6살. 그 어린아이들이 어느새 이토록 커져 다시 만났다.

프론디어는 그때를 기억해, 자신의 아버지와 똑같은 수법으로 폭주한 코라를 다시 잠재웠다.

쿡, 퀴니에는 손가락으로 프론디어의 볼을 한 번 눌러보았다.

"그걸 어떻게 기억했니? 4살짜리가."

게다가 그걸 실현시키기 위한 힘을 체득하고 있다니. 설마 그것도 퀴니에를 위해? 언젠가 폭주할 코라를 막기 위해서?

"후후, 말도 안 되는 소리지."

그렇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러니 이 가정은 어디까지나 퀴니에의 망상. 그랬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의 결과였다.

"프론디어. 고마워. 기억해 줘서."

자고 있는 프론디어는 대답이 없었다.

대답이 없을 걸 알기에, 퀴니에는 말할 수 있었다.

아카데미의 무기복제자 126화

39장 회의

수도 실레스터는 대륙 내에 가장 인구가 밀집된 지역이다.

물론 수도라는 것 자체만으로도 그렇지만, 마물이 바깥에서 언제 밀고 들어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국민들의 생각은 간결했다.

'황제가 있는 곳이 가장 안전하다.'

이 단순한 흐름으로, 그리고 또한 매우 올바른 흐름으로 수도에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이 수도의 가장 혼잡한 상가.

건물 사이에 틀어박힌 듯한 작은 주점의 은밀한 지하, 약속된 사람들이 모였다.

'평민 단체 인더스'의 모임이었다.

"뭐 이렇게 북적이는 곳에 사람을 불렀어요?"

점장의 안내에 따라 지하로 내려온 크라켄은 오자마자 불평을 쏟았다.

"요즘 숨죽이고 있으래. 최근 너무 설치긴 했어."

왼팔에 의수를 한 남자가 말했다. 그 의수는 거의 기계에 가까워, 끼릭끼릭 소리를 내며 자유자재로 움직였다.

"톰슨, 이게 숨죽인 거예요? 밖에 저렇게 사람이 많은데?"

"나무를 숨기려면 숲에 숨기라는 거지. 사람이 많은 곳이 오히려 사람을 찾기 어렵다잖아."

"나무를 뭣하러 숨기는데요. 뽑아서 숲으로 들고 갈 즈음엔 다 들킬 것 같은데."

톰슨은 풋 웃으며 숨을 내쉬었다. 크라켄은 관용어나 속담을 너무 모른다.

그때 옆에 있던 소녀가 말했다. 키가 성인 남자의 절반 정도 되는 어린 소녀였다.

"걱정 마요. 회의 장소는 매번 바뀌니까. 제가 항상 최적의 장소를 준비해둘게요."

"뭐, 키안 님의 능력을 의심하는 건 아니야."

크라켄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는 중앙의 탁자에 앉았다. 이미 모두가 그곳에 앉아 있었다.

"그럼 회의를 시작할까."

입을 연 것은 갑옷을 입은 남자였다. 전신이 빈틈없이 무장되어 있어, 얼굴이든 몸이든 그 안쪽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남자는 겉모습답게 목소리도 쇳소리가 나는 것처럼 불쾌했다.

크라켄이 주위를 휙휙 둘러보고 말했다.

"어? 리더는? 오늘 진행은 스카일러 씨가 해요?"

"회의하러 갔다. 이거 말고 다른 회의."

톰슨이 답했다. 크라켄이 양손을 깍지껴 머리 뒤에 붙였다.

"'조디악'은 참 바쁘네요."

크라켄의 행동에 별 개의치 않는 듯, 스카일러는 말을 속행했다. 움직일 때마다 갑옷이 서로 부딪혀 철컹철컹 소리를 냈다.

"아르멜이 당했다."

"병~신, 이셨네요."

크라켄이 즉답했다. 톰슨이 주먹 쥔 손으로 턱을 받치고 말했다.

"아르멜이 병신인 건 둘째 치고, 이제 뒷공작도 함부로 못 해. 기억을 지울 사람이 없어졌으니."

그 말에 키안이 보충했다.

"꼬리 자르기도 한계가 있어요. 죄다 '인더스의 짓이 아니다. 범인이 멋대로 인더스를 자칭한 거다' 이런 여론 조성이 언제까지고 먹히진 않아요. 특히 세르프 때는 위험했으니까요. 프론디어를 모함하는 거라면 일을 크게 벌이지 않아도 됐을 텐데."

톰슨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말했잖아. 그놈은 그냥 귀족 살해에 미친 놈이야. 귀족의 이미지를 망치는 게 뜻대로 안 되면, 제 눈으로 직접 죽는 걸 봐야 속이 풀리는 녀석이라니까? 제정신이 아니지."

"우리가 할 말은 아니네요."

키안이 가볍게 딴지를 걸었다.

스카일러가 크라켄을 보았다.

"크라켄, 그 세르프의 명함은 어떻게 됐지? 여러가지 시험을 해본다고 하지 않았나?"

"아, 이거요."

크라켄이 품에서 종이 다발을 꺼내 탁자 위에 놓았다. 세르프의 명함이었다.

"이거 못 써먹겠어요."

뚱한 크라켄의 표정에 톰슨이 고개를 갸웃했다.

"왜? 기껏 가져와놓고서는."

"일단 잘 안 통해요. 정신력이 강한 사람이라는 게 실력의 고하를 말하는 게 아닌가 봐."

"황궁의 기사들에게는 통했잖아?"

크라켄은 고개를 저었다.

"그레고리가 명함 준 녀석들, 대부분이 수습기사들이고 죄다 치졸한 범죄에 가담한 녀석들이었어요. 하긴, 뒤가 켕기니까 그레고리의 지시에 따른 거겠지. 더러운 녀석들."

"그것도 우리가 할 말은 아닌데."

옆에서 키안이 또 딴지를 걸었다.

크라켄은 말을 계속했다.

"완전히 저항 가능한 사람은 거의 없는데, 자기 몸을 묶어둘 정도는 웬만하면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렇게 버틸 수 있는 시간도 사람마다 달라요."

"하긴, 우리도 그랬지."

크라켄은 이 명함을 가져온 뒤 여기의 인더스 멤버들에게 각각 시험해 보았다.

톰슨은 완전히 기억을 잃었고, 크라켄은 저항은 했으나 못 움직였고, 스카일라는 강한 억제력을 느끼긴 했으나 일상적인 활동을 할 수 있었다. 키안은 아예 영향을 받지 않는 것처럼 행동했다. 본인 말로는 '영향을 느끼고 있다'고 했지만.

"봐. 내가 완전히 기억을 잃다니, 이게 실력 때문이라면 말이 안 되잖아? 내가 여기서 가장 강한데 말이야."

"톰슨 님은 정신이 빈약하다는 거 아닐까? 인내심이 너무 없다든가요."

"죽여 버린다? 크라켄?"

"거봐요."

톰슨은 크라켄을 보며 으르렁거리다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그러면 황제는 어때? 내가 조종 당하는데 황제라고 저항하리란 법도 없잖아."

그 말에 크라켄의 한쪽 눈가가 찌그러졌다.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 인간 형태가 살짝 풀렸다.

"황제한테 어떻게 명함을 주게요? 톰슨 님은 인내심이 아니라 지능이 빈약한 거였나?"

"새꺄, 가능성으로 얘기해 보자는 거지. 못할 거 뭐 있냐? 자꾸 그딴 식으로 말하면 진짜 한 번은 죽는다? 안 그래도 라이프 하나 줄었다며?"

클클, 톰슨은 웃었다. 크라켄이 눈을 번뜩이고 분명한 살기로 톰슨을 노려보았다.

지켜보던 스카일라가 철컥, 고개를 한 번 떨구고 말했다.

"명함이 바르텔로 테르스트에게 통할 것 같지도 않고, 통하면 곧바로 의식을 잃고 초점이 텅 비어 죽은 사람처럼 변한다. 그런 사람의 명령을 누가 듣나? 대번에 이상하다는 걸 깨닫고 역추적이나 안 당하면 다행이지."

"우리는 황제를 죽이는 게 목적이 아니에요. 바르텔로가 죽으면 다음 황제가 오를 뿐이죠. 우리는 '황제'나 '귀족' 따위의 좌석 자체를 치우려는 거예요."

카인의 보충 설명. 크라켄과 톰슨은 흥, 하고 콧김을 뿜었다.

크라켄은 명함을 쥐고 흔들었다.

"아무튼 이래서야 못 써먹어요. 누구한테 통할지, 얼마나 통할지도 모르는 마당에. 오러나 마나를 전혀 모르는 일반인에겐 반드시 통하는 것 같으니 그쪽으로 생각을 전환할 수밖에."

"게다가 이제 우리가 쓸 수 있는 명령은 '프론디어를 죽여라'뿐이고 말이지."

세르프는 죽었고, 녹음이게 저장된 음성은 한 가지뿐. 그레고리의 입장에서는 그 정도 명령이면 충분했겠지만.

크라켄이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왜 세르프는 살아 있을 적에 진작 이걸 안 써먹었는지 모르겠네요. 위를 공략할 수 없다면, 이런 명함 한 몇 백만 개 만들어서 밑에 사람들을 부리면 될 텐데."

"걔가 그거 한 장 만드는 데 얼마나 걸렸는 줄 아냐? 사흘이 넘게 걸렸다. 자는 시간 빼고 거의 전부를 쏟아부었을 때 그 정도였어. 그것도 최근에 줄인 거라더라. 원래는 일주일이 넘게 걸렸대."

톰슨이 말했다. 흐에, 크라켄은 그 말에 놀라 자신이 가진 명함 개수를 확인했다.

"...지금 한 300장 정도 있으니, 열심히 했군요."

"그 녀석도 충분한 장수가 채워지면 뭔가 해보려고 했을 것 같다만, 그게 뭔지 이제는 알 방도가 없지."

흐음, 탁자에 앉은 인원들이 모두 명함으로 시선이 향했다.

그들의 생각은 일치했다. 프론디어였다.

세르프를 죽이고, 크라켄의 목숨을 하나 날리고, 아르멜을 잡았다.

최근에 인더스 내에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들이 모두 프론디어와 연결되어 있었다.

크라켄의 눈이 가라앉았다.

"...정말이지, 죽이고 싶네요."

"안 돼."

키안이 즉답했다.

"언젠가는 그렇게 될 거야. 하지만 지금은 안 돼."

"알아요. 혁명의 제물이라는 거지? 그런데 정말로 그게 가능할까? 분명 상정한 것보다 강해지고 있어요."

"강해지는 게 문제가 아냐. 분명 놈은 뭔가 알고 있어. 그러지 않고서야 그렇게 매번 대응이 가능할 리 없어."

톰슨이 말했다. 그의 말에는 모두가 동의했다.

프론디어는 분명 그들이 생각한 것보다 인더스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이 혁명을 준비하는 동안, 마치 프론디어도 혁명에 대한 대비를 하고 있는 듯하다.

지나치게 많이 알고 있는 프론디어.

설마, 정보 유출?

"...인더스 내에 배신자가?"

"인더스를 배신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 텐데?"

"모르죠. 자기 목숨보다 대단한 뭔가를 원한다면 가능하죠.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 애들이 어디 한둘입니까? 저희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이 대화하는 동안, 크라켄은 자신의 머릿속을 점검했다.

'...만곶의 아이가 있었는데.'

바늘을 이용해 크라켄의 왼손을 분리시킨 여자. 분명 만곶에서 온 여자다. 그 전이 방식을 보면 틀림없다.

만곶이 프론디어에게 붙었다? 만곶이 고위 귀족과 손을 잡았다고?

'아니, 그럴 리가.'

그들 또한 프론디어에게 무언가 원하는 것이 있다. 업화의 만곶이 제국의 귀족을 선심으로 도와줄 리가 없지.

크라켄은 입을 열었다.

"프론디어 님에게 만곶이 붙었어요."

모두가 말을 멈추고 크라켄을 보았다.

크라켄이 미소 지었다. 초승달처럼. 여전히, 인간이 덜 돼먹은 미소였다.

"만곶이 프론디어에게 원하는 거, 저희에게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 * *

나는 반나절 가까이를 기절해 있다가 눈을 떴다.

다행히 다음 날 콘스텔에 등교할 수는 있었다. 코라가 일으킨 사건 다음 날 쉬는 건 너무 티가 나니까.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날 아는 사람들은 내가 또 사건에 휘말렸다고 의심할지도 모른다.

그 의심이 사실이기도 하고.

그래서 나는 아텐의 무지무지 의심스럽다는 눈길을 어떻게든 피할 수 있었다. 어쨌든 아텐이 본 건 내가 아니고 앙페르의 젊은 얼굴이었을 테니, 그저 모르쇠를 일관하면 아텐은 더 따지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뒤, 코라는 콘스텔의 관리 대상이 되었다.

관리 대상이라고 해도 그렇게 다를 것은 없었다. 그저 폭주를 제어하기 위한 보조 아티팩트와, 그마저도 뚫고 폭주를 하게 될 경우 콘스텔에 바로 전해지게끔 경보 마법을 걸칠 뿐이다.

코라는 폭주하지 않으면 특별히 말썽을 부리진 않으니까. 마법도 거의 실패할 뿐이고.

'왜 코라가 그토록 마법사를 하고 싶어 하는가 했더니.'

코라는 13년 전의 일을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아무래도 그 몸은 기억하는 모양이었다. 실제로 제정신일 때는 자신의 힘을 쓰는 걸 상당히 주저하고 있었다.

맨몸으로 싸우는 건 싫고, 퀴니에는 지키고 싶다. 그 결과가 마법이라는 건가.

'백호의 힘이 제대로 개방되면 마법도 가능할 텐데.'

코라는 아직 다 자라지 않았고, 반은 인간이다. 그가 백호의 힘을 진짜로 각성할지는 모르지만, 그때가 되면 오히려 걱정은 줄어든다. 완전한 백호는 오히려 본능에 지배될 일이 없기에.

...그리고 또 하나.

이건 코라가 관리 대상이 된 뒤의 추가 지시사항이었는데.

"여러분, 안녕하세요."

교사 제인이 아주 피곤한 얼굴로 들어왔다.

왜 제인은 볼 때마다 얼굴이 핼쑥해지는 것 같을까. 왜 교실에 들어올 때마다 나를 원망스러운 듯이 보는 걸까.

설마 내가 제인의 피로에 관여하고 있는 건가?

하하, 그럴 리가.

"저희 반에 전학생이 왔어요."

제인이 말하고 누군가가 들어왔다.

누군지 알고 있었는데, 보자마자 나도 제인처럼 피곤해졌다.

"코라라고 해요. 코라는 여러분들보다 어리지만, 특별한 사정이 있어 입학하게 되었답니다."

코라는 사실 나이가 더 많지만. 그런데 왜 이 반일까? 내가 있어서인가?

하하, 설마.

"음! 반갑다!"

코라는 자기 허리에 양손을 올리고 자랑스레 말했다.

저 자식이 며칠 전까지만 해도 끼쳤던 민폐를 생각하면 지금 당장 뒤통수를 후려갈기고 싶다.

"앞으로 너희들과 함께 공부하게 된 코라라고 한다! 내 실력을 따라오기엔 버겁겠지만, 부디 열등감을 갖지 않... 고...."

그렇게 기고만장하게 떠들던 코라가 나를 보았다. 나를 보자마자 눈이 번뜩 커지더니, 드높던 기세가 어디로 갔는지 수그러졌다.

"자,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코라는 허리를 꾸벅 숙여 정중하게 인사했다.

...설마 쟤.

'나한테 쫀 거야?'

기억은 없다 해도, 확실히 코라는 몸의 기억이 뛰어난 모양이었다.

아카데미의 무기복제자 127화

40장 개인 면담

코라가 전학생으로 오기 전.

나는 제인에게 자초지종을 이미 들었다.

"프론디어 학생에게 코라 학생의 보호 관찰 임무를 부여하겠어요."

제인이 짐짓 격식을 차리고 내게 말했다.

나는 말했다.

"이거 임무라기보다, 벌이죠?"

"네에."

제인은 시원스레 인정했다.

"건물 외벽을 부숴버린 거, 조만간 적절한 처벌을 내려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잘 되었어요. 듣자 하니 프론디어는 코라가 이미 어떤 학생인지 안다면서요?"

백호에 대한 얘기인가. 아마 퀴니에 선배가 알려준 모양이다.

"그럼 제가 코라가 폭주하지 않도록 하라는 건가요?"

"그게 가장 이상적이지만 힘들겠죠. 프론디어 학생은 폭주의 조짐이 보이면 주위 시민들을 대피시키는 일을 해주면 좋겠어요. 물론 프론디어 학생도 빨리 그 자리에서 벗어나고요. 폭주가 시작되면 콘스텔에 자동으로 경보가 울리도록 되어 있으니, 이쪽에 연락할 필요는 없어요."

확실히 코라의 폭주는 완전히 백호로 변하기까지의 시간이 꽤 걸린다. 그사이 시민들을 대피시키는 건 올바른 판단이겠지.

그리고 제인의 말로 미루어볼 때, 역시 다른 사람들은 내가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

퀴니에가 준 마스크팩의 도움이 컸다. 더불어 코라를 제압한 뒤에도 나를 데리고 이동시켜주었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음, 퀴니에의 성격에 또 나에게 무언가 요구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직 별다른 말이 없다.

"...그런데 말이죠, 프론디어."

"예."

제인은 무언가 생각하는 듯 하더니, 아니 원래부터 하던 생각을 말할까 말까 궁리하는 듯 하더니 결국 입을 열었다.

"백호로 변한 코라와 대치한 남자가 있었는데 말이죠."

오, 이 얘기를 꺼내는군.

나는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 사람, 앙페르 님의 젊은 시절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데, 혹시 프론디어 학생과 관련되어 있나요?"

혹시 이런 질문을 받을 것을 대비해 미리 대사와 표정을 연습해두었다.

너무 놀라지 않고, 눈은 살짝 커지고 눈썹을 당긴다. 나른함이 살짝 깨어나는 듯한 목소리로,

"...아버지요?"

좋아. 완벽해.

셀레나에게 OK 사인을 받았으니 문제 없을 것이다.

"음, 아니에요. 모르는 이야기라면 됐어요. 잊어주세요."

제인은 고개를 저었다. 연기는 잘 통한 듯했다.

"아무튼 코라 학생을 잘 신경 써줘요. 콘스텔에 몇 번 놀러왔다고 하는데, 학생이 되는 건 또 다른 적응이 필요할 테니까요."

"알겠습니다."

코라와 친분을 쌓는 것은 나로서도 원하는 바다. 백호라는 어마어마한 포텐셜, 놓칠 수 없다. 게다가 적이 된다면 무서운 변수가 될 테니.

제인이 또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참, 아시겠지만 코라는 좀 산만한 면이 있어요. 아직 예의범절에 익숙치 않고요. 조금 건방지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프론디어 학생이 잘 제어해 줬으면 좋겠어요."

"네, 알고 있습니다."

코라의 시끄러운 성격은 충분히 겪었다.

그 경험을 앞으로 콘스텔에서 매일 같이 겪어야 한다니, 그걸 생각하면 좀 피곤해진다.

* * *

그렇게 생각했으나, 상황은 전혀 반대였다.

물론 교실에 들어올 때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당당하게 떠들어대던 코라였지만, 나를 발견한 직후 금세 쪼그라들었다. 코라는 내가 여기 있는 줄 몰랐던 것 같다.

"그럼, 이런 빈자리가 없네요. 책상 하나를 가져와야겠어요. 맨 뒤에 앉도록 하죠."

"맨 뒤... 핫!"

코라가 그 말을 듣고 놀래서 제인을 보았다. 어딘가 간절한 눈동자가 살려달라고 말하는 것 같다.

...아마, 내 자리가 맨 뒤라서 그런가.

제인은 코라가 왜 이러는지 이해를 못하고 있었다. 코라의 갑작스럽게 소심해지는 태도 변화에도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다.

설령 알고 있다고 해도 코라와 나는 되도록 가까이 있어야 한다. 제인의 결정은 뻔했다.

빈 책상이 도착하고 제인은 말했다.

"그러면 맨 뒤로 가서 앉아요, 코라."

"...네."

이렇게 코라의 자리는 내 근처로 지정되었다.

이건 사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빙의하기 전 프론디어는 수업 시간 대부분을 잠만 자는 녀석이었고, 그래서 자리가 창가의 맨 뒷자리가 되었다. 구석에 박아두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전학생이 오면 빈 자리가 없는 경우 새 책상을 가져와 뒷자리에 앉히게 되고, 그럼 아주 높은 확률로 내 근처로 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 잘 부탁합니다."

그리하여 코라는 나와 아텐의 오른쪽 자리에 앉게 되었다. 나와 코라의 사이에 아텐이 있으니, 코라 입장에선 그나마 다행인 일일까?

"코라, 반가워."

나는 웃으며 손을 들었다. 사건이 해결된 이상 코라에게 악감정은 없다. 오히려 친하게 지내면 좋겠다. 코라가 아군이 되면 전투에서 듬직할 것이다. 제인의 부탁도 있고, 이럴 땐 이쪽에서 먼저 인사를 해야지.

"...네."

코라는 나와 눈도 못 마주치고 참새처럼 고개를 까닥였다.

아텐이 내게 엄한 눈을 향했다.

"프론디어 씨, 이 아이에게 무슨 짓이라도 했나요?"

"아무것도."

"정말요? 모습만 봐선 프론디어 씨에게 폭행이라도 당한 거 같은데."

"폭행이라.... 뒤통수를 후겨갈긴 적은 있는데."

내 말에 아텐이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너무했어요. 이렇게 어린아이한테."

걔 너보다 나이 많은데.

그리고 쟤가 날 무서워하는 건 그거 때문이 아닐 걸.

"괜찮아요? 전 아텐이라고 해요."

아텐이 코라에게 상냥하게 말을 걸었다.

어린아이라고 스스로 말해놓고 또 존대로 말하는 게 참으로 아텐답다.

"으, 응. 반가워."

코라는 나를 대할 때보다는 훨씬 좋은 반응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텐이 물었다.

"프론디어 씨가 무슨 짓을 했나요? 제가 혼내줄 수 있어요."

그야 뭐 황녀니까. 허세처럼 보여도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게 포인트인가?

그나저나 아텐은 아이들 대하는 게 능숙하구나.

"...잘 기억이 안 나."

코라가 내 눈치를 살피고 말했다.

"뭔가 아주 무서웠던 느낌이 있는데, 그게 뭐였는지 기억이...."

코라는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뭐지, 왜 저렇게 말하고 마는 거야. 오해 받잖아.

아텐이 나를 노려보았다.

"...프론디어 씨, 설마 애가 기억도 못할 정도로...."

정확히 내 예상대로 오해하고 있었다.

"그럴 리가 있냐. 쟤가 기억을 못하는 건 나 때문이 아니야. 쟤의 문제지."

나는 침착하게 말했다.

근데 말하기 어려운 내용을 다 삭제하고 나니까 굉장히 나쁜 놈처럼 말하고 있었다.

역시 아텐은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가해자는 늘 그렇게 말하는 법이죠."

"야! 그건 가해자가 기억을 못할 때 쓰는 말이야! 피해자가 기억을 못하는 게 아니고!"

"...!"

아텐은 그제야 깨달았다는 듯 눈을 크게 열었다.

...난 이제 이 둘하고 같이 다니는 건가.

물론 아스터에게 방해되지 않는 별개의 파티를 만들고 싶은 마음은 쭉 있었다.

그 결과가 이건가. 아 셀레나도 있었지 참. 내 곁에 있는 사람 중 가장 적에 가까운데, 가장 믿음직스럽다.

나 정말 괜찮은 걸까.

딩- 동-

그때 교실에 설치된 스피커로 알림음이 들렸다.

"응?"

교실 안의 학생들 모두가 이상한 듯 스피커를 보았다.

아직 수업 중이고, 제인도 있는데. 제인 또한 놀라진 않았으나 의아한 듯 침묵을 지켰다.

방송실 쪽에서 실수로 알림음 버튼을 눌렀나 싶었는데, 곧 음성이 들렸다.

[어, 진짜 그렇게 말하면 되나요?]

뭔 소리지.

스피커에서 상당히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 크흠. 방송실에서 안내 말씀 드립니다.]

그러다 곧 안내음성은 이윽고 제대로 된 문구로 입을 열었다.

[프론디어 드 로아흐 학생은 지금 바로 교장실로 와주시길 바랍니다.]

...나? 교장실?

교무실이 아니고?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프론디어 드 로아흐 학생은─]

그렇게 안내음성이 들리는 동안, 학생들과 제인의 시선이 나에게 모였다.

교무실도 아니고 교장실, 게다가 수업 중에.

"...다녀오세요, 프론디어."

"...네."

나와 제인은 미묘하게 구긴 비슷한 얼굴로 서로를 잠깐 보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을 나가는 동안 학생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드디어 프론디어가 사고를 쳤나?

마치 기다렸다는 듯한 목소리였다.

* * *

교장실.

나는 이 앞에 서고 나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 안에 있는 건 한 사람뿐이다.

콘스텔의 교장이자 총장. '조디악' 오스프리트.

사건이라도 터지지 않으면 콘스텔의 활동에 지독히도 관여하지 않는 오스프리트. 그가 이례적으로 방송 알림으로 학생 개인을 따로 불렀다.

근데 그게 왜 나일까.

나는 가볍게 심호흡을 한 뒤 문을 노크했다.

똑똑-

"프론디어입니다. 찾으셨다고 해서 왔습니다."

"들어오게."

오스프리트는 뜸 들이지 않고 말했다.

문을 열자 먼저 들어온 것은 교장실의 넓이였다.

그저 개인의 집무실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넓었고, 그 넓은 크기의 대부분이 책장으로 꽉꽉 채워져 있었다.

오스프리트는 그 책장 앞에 서서 책 하나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는 나를 보며 편안한 미소를 지었다.

"음, 잘 왔네. 문은 꼭 닫도록 하게. 늙은 몸으론 복도가 꽤 추워서 말이지."

...추워서라. 참 그럴듯한 변명이다.

"잠궈놓을까요?"

내가 묻자 오스프리트는 더더욱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럼 더 좋고."

철컥-

내가 문을 잠그자 방 내부가 마력으로 채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방음 마법인가요?"

"뭐, 그 비슷한 것이지. 다만."

오스프리트는 나에게 손을 내밀어 한 번 허공에 휘저었다. 무언가 바람 같은 것이 얼굴과 목 주변을 훑었다.

"내 마법으로도 말리아의 감각 공유는 막을 수 없네. 그래서 살펴봤는데 다행히 지금은 능력이 적용되어 있지 않군."

...방금 그걸로 나에게 적용된 마법과 능력을 체크한 건가.

"그토록 중요한 얘기인가요? 저희 어머니도 들으면 안 될 정도로."

"물론이지."

탁-

오스프리트는 한손으로 책을 덮었다.

그 표지에는 '아서왕 전설'이라 적혀 있었다.

...역시.

오스프리트는 빙긋 웃으며 나를 보았다.

"자네도 그렇지 않나? 우리의 뜻이 맞는 것 같은데."

"...그렇군요."

"그럼 앉지. 이야기가 길어질 테니."

오스프리트는 내게 의자를 권했고, 나는 어색한 걸음으로 앉았다.

차라리 내가 일반 학생이었다면 긴장을 덜 했을까.

'조디악' 오스프리트가 어느 정도의 인물인지 아는 나에게는 이 자리가 유독 무겁다.

오스프리트는 맞은편에 앉고는 말했다.

"자네는 앙페르의 아들이지? 그럼 본론부터 바로 꺼내는 게 좋겠군."

...진짜 아들은 아니지만, 자질구레한 형식들을 싫어하는 건 사실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오스프리트는 물었다.

"그 젊은 앙페르, 자네였지?"

참으로 단도직입적. 그야말로 본론.

오스프리트가 나를 호출할 때부터 예상한 것이긴 하나, 나는 아직 그의 속내를 모른다.

함부로 거짓을 말할 수도, 그렇다고 맞다 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

잠깐 말이 멎은 나에게 오스프리트는 말했다.

"물론 그렇다 해도, 아니라 해도 괜찮네. 거짓말을 해도 아무 상관 없다는 뜻이야."

오스프리트는 말하면서도 짓궂게 웃었다.

"단지 자네가 어떤 대답을 하느냐에 따라, 내 다음 말 또한 달라질 뿐이라네."

허허. 이 할아버지가.

나는 오스프리트의 미소에 따라, 같이 웃었다.

아무래도 나와 참으로 솔직한 대화를 나누고 싶으신 것 같다.

자아, 그럼 이제 뭐라 답할까.

아카데미의 무기복제자 128화

40장 개인 면담(2)

오스프리트가 나를 따로 보자고 할 정도면, 이미 어느 정도 확신을 하고 있을 것이다.

아마 마스크팩으로 감춘 내 얼굴을 본 거겠지.

퀴니에는 거의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을 거라고 자부했는데, 그 '거의'에 오스프리트는 속하지 않았나 보다.

"어떤가? 그저 대답만 해주면 되는 것이야."

오스프리트는 거짓말이어도 상관없다고 했다.

그건 거짓말을 간파할 자신이 있다는 것이거나 혹은, 이미 자기 안의 대답이 정해진 것일 터다.

어느 쪽이든 나는 여기서 거짓말을 하는 의미가 없었다.

그러나 먼저 해볼 만한 건 있었다.

"대답하기 전에 저도 한 가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말해보게."

"제가 어떤 대답을 하든 제 일상과는 무관한가요?"

내가 대답을 하면 그것이 대답으로 끝나는가.

아니면 오스프리트가 하려는 뭔가를 위해 나의 대답을 듣고 싶은 건가.

나는 후자라고 생각했고, 이 생각이 맞았다.

"...클클, 자네 보기보다 날카롭구먼."

오스프리트는 할아버지답게 웃었다. 묘하게 어울리는 듯 어울리지 않았다.

"최근에 어떤 계획을 준비 중이라서 말이야. 자네의 힘이 필요하네."

"...계획이 뭔가요?"

내 질문에 오스프리트의 선명한 눈빛이 나를 쏘았다.

"자네는 인더스가 어떤 곳인지 아나?"

...과연.

본래 게임보다, 그리고 내 생각보다 빠른 전개가 되었으나, 나쁘지 않다.

아니, 오히려 아주 좋다고 할 수 있었다.

"알고 있습니다."

"그건 어느 정도로 아는 것인가? 남들만큼인가?"

"거기 속하지 않은 사람 중, 저보다 인더스를 많이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클클클, 참으로 당돌하구먼. 마음에 드는 대답이야."

오스프리트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여전히 작은 미소를 띠고 있었는데, 내용을 알게 된 지금은 그 미소마저도 오싹하다.

"인더스를 정리할 것일세."

오스프리트는 잔잔히 말했다. 아무런 온도도 없는 어조였다.

나는 섬찟함을 느꼈으나 놀라진 않았다.

"...그렇군요."

"담담하구먼."

"말씀드렸듯, 인더스에 대해서는 많이 알고 있습니다."

좋아 좋아, 오스프리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면 왜 지금 계획을 세웠는지도 알고 있나?"

"놈들의 꼬리를 잡은, 아니, 곧 잡을 수 있을 거라는 판단이군요."

오스프리트는 내 말에 놀란 듯했다.

"자네는 정말로, 꽤 많이 알고 있구먼."

나는 바로 며칠 전 인더스의 기억소거를 담당하는 아르멜을 제압했다.

이제 인더스는 대담한 범행을 세우지 못하게 되었다. 적어도 실패 확률이 제법 있는 계획은 건드리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인더스는 두 가지 생각을 할 것이다.

게속 숨죽이고 있거나, '혁명'의 때가 왔다고 믿고 절차를 밟기 시작하거나.

전자를 선택하는 건 등신이고, 후자를 선택하는 건 미친놈이다.

그러니 인더스의 선택은 후자다.

"그리고 그 계획에 자네의 능력이 필요하네. 아 물론, 자네가 그 '젊은 앙페르'라면 말이야."

오스프리트는 웃으며 말했다.

역시 확신하고 있다. 그 정체가 나라는 걸.

"그래서 어떤가? 나는 충분히 이야기했다고 생각하네만."

그렇다. 도움이 되었다.

내가 어떤 대답을 해야할지.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호오."

"제가 그때 코라의 앞에 서 있었습니다."

나는 담담히 대답했고, 오스프리트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그러면 그 검도?"

"짐작하고 계시는 바로 그 검입니다."

오스프리트는 좀 전까지 '아서왕 전설'을 손에 들고 있었다.

물론 실제로 읽고 있었던 것이겠지만, 나에게 보여준 의도 또한 물론 있을 것이다.

이미 다 알고 있으니 허튼 소리 하기만 해라, 라는 무언의 압박이다.

"저는 엑스칼리버를 이용해, 코라의 폭주를 막았습니다."

"...허허."

오스프리트는 그에 만족한 듯 웃었다.

내가 시치미를 떼거나 부정하지 않는 것이 마음에 든 듯했다.

"지금까지 숨기고 있던 이유가 무언가? 자네는 콘스텔 내에서 평판이 안 좋은 것 같은데. 그만한 업적이 있으면서 왜 감추고 다니지?"

그래, 그런 질문이 나올 것 같았다.

여기의 방음 마법도 그런 의도가 포함되어 있겠지. 오스프리트 자신에게만큼은 허심탄회하게 얘기해 보라, 는 뜻이다.

그러나 그럴 수 없다.

내가 무기나 능력을 숨기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중 하나는 정체를 들킬 경우 너무 무력해지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상정한 것을 넘어서는 상황, 혹은 상대에 대처할 수 없다.

피나는 훈련으로 높은 성취를 이룬 검사를 이길 수 없고, 직관적인 재능을 뽐내는 천재적인 마법사를 이길 수 없다.

'강함을 증명하는 게 항상 좋은 일이 아니라는 건, 아스터로 플레이하면서 뼈저리게 알았지.'

게임의 주인공인 아스터 에반스가 그 재능과 유명세 때문에 얼마나 제약을 받았는지를 생각하면 더더욱 공개할 수 없다.

보다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각종 무기를 획득할 수 있는 프론디어의 포지션은 무척 유리하다.

"감출 수 밖에요.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니까요."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 그만한 마력은 어느 누구도 쉽게 가질 수 없네. 그 마력을 온전히 힘으로 방출한다는 건 더더욱 어려운 일이지. 나는 감탄을 하고 있는 것일세."

오스프리트는 내 말을 그저 겸손으로 받아들이는 듯했다.

그러니 여기서부터다.

내가 거짓말을 시작하는 지점.

"저는 그만한 마나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무어라?"

오스프리트의 눈가가 꿈틀했다.

"나를 포함한 모든 교사들이 자네가 발한 그 마력을 두 눈으로 보았네. 그런데 그만한 마나가 없다니?"

"그건 제 '검'의 마력입니다. 그래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라고요."

오스프리트는 내게 거짓말을 '허락'했다.

그건 오스프리트 자신 안의 확신으로 인한 허락.

코라의 앞에 대치한 젊은 앙페르가 프론디어 드 로아흐다. 이것을 확신하고 그 안의 논리를 구상해 갔을 것이다.

그러나 그 대단한 오스프리트조차도 모르는 것이 있다.

"지금 감정해 보셔도 좋습니다. 저는 그만한 마나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나는 양손을 들었다. 아무것도 감추고 있지 않다는 의미로.

물론 감추는 것이야 많다. 당장 넥타이로 걸고 있는 페넬로페의 천. 목걸이 '흑련'까지.

그러나 오스프리트가 정말로 내가 가진 마나 보유량이 그만큼이라고 믿는다면.

오스프리트는 결코 진실을 알아차릴 수 없다.

"...좋네."

오스프리트는 과연 미심쩍었는지, 자신의 손을 뻗어 내 어깨에 대었다. 아마 그라면 접촉하지 않고도 알아내겠지만, 내가 또 뭔가를 숨기고 있는지를 면밀히 체크하려는 듯했다.

물론 숨기고 있는 것은 많지만, 그건 내 마나가 아니다.

"...!"

오스프리트의 눈빛이 흔들렸다.

나의 마나량은 지극히 평범하다. 아니, 마나소진의 반복과 이전 렌조와의 싸움에서 사용한 드래곤하트의 영향으로 제법 커지긴 했으나, 그뿐.

콘스텔 1학년 학생들의 평균보다는 웃돌 테지만, 코라를 제압할 때의 마나에는 한참 못 미친다.

"...그렇군. 그만한 마나를 갖고 있지는 않아."

오스프리트가 손을 떼었다. 그의 얼굴에 고민의 색이 깊어졌다.

"그러면 정말로 엑스칼리버만의 힘이란 말인가?"

"그렇습니다."

당연히 거짓말이다. 엑스칼리버 본연의 마력은 대단치 않다.

엑스칼리버의 능력은 실로 단순하고 정직하다. 부여한 마력만큼 그 힘이 강해지는 것. 물론 단순히 마력이 그대로 힘이 되는 것은 아니고, 엑스칼리버 스스로가 마력을 더더욱 증폭시킨다. 마력을 부여할수록 그 힘이 기하급수적으로 강대해지는 것.

나는 직조로 만든 가짜 드래곤하트를 먹고, 가짜라는 부작용으로 인해 소실되는 몸을 페넬로페의 천으로 대체했다.

직조, 드래곤하트의 가짜와 진짜의 차이, 페넬로페의 천. 이 전부의 특성을 완전히 꿰고 있지 않는 한 간파하는 건 아무리 오스프리트라도 불가능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교장님께서 저를 높이 평가하는 것은 무척이나 영광입니다만, 저는 그저 아무것도 아닌 1학년 학생일 뿐입니다."

진실보다는 이 거짓말이 훨씬 자연스럽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인간늘보 프론디어. 그런 학생이 대체 어떻게 그만한 마나를 손에 넣었는지를 알아내는 것보다는.

사실 그게 아니었다, 프론디어는 대단치 않고 그저 검의 힘이었다, 이 거짓말이 훨씬 설득력이 높고, 무엇보다 안심된다.

내가 코라 앞에서 쥐고 있던 엑스칼리버, 함부로 휘두르거나 던졌다간 그거야말로 지옥도가 펼쳐졌을 것이다.

다니고 있는 학생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콘스텔을 궤멸시킬 수 있다는 생각보다는, 무기의 힘이라고 믿는 게 차라리 낫지 않겠는가.

"...그 말은 진심인가?"

"저에게 거짓말을 허락하셨잖아요? 물론 진심입니다."

나는 웃으면서 뻔뻔한 얼굴로 말했다.

그리고 거짓말과 진실을 떠나.

나는 오스프리트가 원하는 대답을 해줄 뿐이다.

내심 바라는 말을 듣고 나서 그걸 부정하는 것은 인간에게 쉽지 않다.

"그러면 그 검은 어떻게 얻었나?"

좋아. 오스프리트는 일단 여기까지의 말을 믿는 듯했다.

나는 답했다.

"빌렸습니다."

"빌렸다? 누구에게?"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일종의 액션이었다.

"분명 방음이 되고 있는 것이겠죠?"

"물론일세."

오스프리트의 대답에 나는 일부러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아스터 에반스입니다."

이번엔 정말로 놀란 듯 오스프리트의 눈이 커졌다.

미안하다, 아스터. 잠깐 이름 좀 빌리자.

"아스터 에반스... 그가 엑스칼리버를 가지고 있었다고?"

"그렇습니다. 꼭 비밀로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지금은 아니고, 나중에.

아스터는 언젠가 내가 갔던 호수로 가 엑스칼리버를 획득할 것이다.

오스프리트가 아스터가 정말로 엑스칼리버가 있는지 어떤지를 확인할 즈음엔, 이미 그 손에 쥐고 있을 것이다.

"어째서 아스터가 그걸 자네에게 주었지?"

"서로 주고 받은 게 있습니다. 저는 제 소중한 것 중 하나를 아스터에게 주었고, 아스터는 그 대신 엑스칼리버를 저에게 주었습니다."

"소중한 것이란?"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아스터에게 준 것 따위는 없다.

하지만 납득하기 좋은 거짓말이다. 돈을 주고 샀다고 하면 더 믿지 못했을 것이다.

"허어, 이것 참...."

오스프리트는 한숨을 내쉬었다. 머릿속으로 그려놨던 생각이 꽤 흔들린 모양이었다.

인더스 소탕 작전. 아주 마음에 든다.

그러나 나의 참여는 제한적이어야 한다.

나는 모든 능력을 다 쓸 생각도 없고, 오스프리트에게 그게 가능할 거라 생각하게 해주고 싶지도 않다.

그가 나의 '폭격'을 원한다면 그 뿐. 도와줄 수 있겠으나.

그 이상을 바란들 나로서는 해줄 생각이 없다.

내가 건넨 이 거짓말은 오스프리트와 나와의 선이다. 서로를 침범하지 않는 경계다.

"그러면 자네, 계획에는 참여할 겐가?"

"허락해 주신다면 그러고 싶습니다."

"그 엑스칼리버의 힘은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나?"

"물론입니다. 하루에 한 번뿐이지만."

"그거면 되네."

오스프리트는 내 뜻을 이해했다.

나에게 가능한 것은 오직 엑스칼리버를 휘두르는 것뿐.

나는 물었다.

"계획은 언제 시작합니까?"

"그것은 인더스가 언제 움직일지에 따라 다르지. 이 계획은 '역습'이 전제가 된다네. 허나 이번만큼은 인더스가 언제 움직일지 또한 쉽게 예측할 수 있지."

이번만큼은?

내가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 오스프리트는 다음 말로 내가 잠시 잊고 있던 것을 상기시켜주었다.

"곧 수학여행이잖나."

아카데미의 무기복제자 129화

41장 수학여행

수학여행.

콘스텔에서 정말 몇 안 되는 학창생활스러운 활동 중 하나다.

방학마저 개인 훈련으로 써버리는 콘스텔의 학생들에게는 다른 학교의 학생들보다 더욱 휴식이 중요하다.

콘스텔에 들어오는 학생들 대부분은 원대한 꿈을 품고 입학하기에, 대부분은 성실함보다는 제대로 쉬는 법을 익히지 못했을 확률이 높았다.

콘스텔의 관점에서는 이런 학생들을 억지로라도 쉬게끔 하는 것이 필요하다. 더불어 학생들의 견문을 넓힌다는 수학여행 본래의 취지도 중요하다.

"그러니까 거기 가서도 훈련하겠다든가 하는 생각은 하지도 마!"

루니아가 아스터를 보며 눈에 쌍심지를 켰다.

아스터는 볼을 긁적이며 시선을 피했다.

"원래 새로운 장소가 훈련하기에 가장 적절한 환경인데."

"안돼! 넌 좀 쉬어야 돼! 방학 동안에도 인턴하면서 오러를 습득하려고 그렇게 뛰어다녔는데, 입학한 뒤에도 별의별 사건에 다 휘말려들었잖아!"

루니아의 말은 정론이었고, 아스터도 실은 공감하고 있었다.

아스터는 최근에 쌓인 피로를 느끼고 있었다.

방학 때는 오히려 콘스텔에 있을 때보다 더 힘들었고, 입학한 뒤에는 허황된 소문에 휘말리기도 했고, 의식이 없는 로발드와 한바탕 싸우기도 했고.

사건은 끊임이 없지만 아스터가 쉴 틈은 없었다.

루니아가 홱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엘로디가 있었다.

"엘로디!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엘로디는 턱을 괴고 둘을 보고 있었다. 그 눈이 금세 반쯤 감겼다. 쟤는 내가 듣고 있는 거 어떻게 알았대?

"그치. 제대로 된 컨디션이 아니라면 훈련이 오히려 성장을 저해할 수도 있으니까. 그것도 익숙지 않은 환경이라면 더더욱."

엘로디는 아스터와 버금가는 재능에, 성장 속도도 뒤지지 않는다. 더불어 언제나 모범적인 모습을 지키기에 루니아는 일부러 엘로디에게 말을 건 것이다. 아스터를 설득하기엔 엘로디가 가장 적합하니까.

그에 아스터가 눈을 한 번 옆으로 두었다가 다시 엘로디를 보며 말했다.

"내가 제대로 된 컨디션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 베스트 컨디션일 수도 있지."

"아, 그래?"

엘로디는 손을 한번 휘저었다. 아스터의 주변에 가벼운 바람이 일어 그의 몸을 한 번 휘감고 지나갔다.

엘로디가 말했다.

"응. 정정해 줄게. 컨디션이 최악이야. 누적된 피로도 심하고, 근육통에, 자잘한 상처들이 아직 다 안 나았어. 로발드랑 싸웠을 때 생긴 상처지?"

"...너, 방금 그걸로."

그 손짓 한 번으로 몸 상태를 전부 체크한 거냐? 라는 숨겨진 뒷말.

엘로디는 그저 생긋 미소 지을 뿐이었다.

하지만 머릿속으로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사실 프론디어를 확인하려고 익혀둔 마법인데.'

마나소진을 반복하는 프론디어. 딱 봐도 무리를 하고 있기에 그의 상태를 점검하고 싶어서 이 마법을 익혀두었다.

...아니 꼭 프론디어만을 위해서는 아니고? 익혀두면 여러모로 쓸모가 있으니까. 그럼 그럼.

하지만 최근에는 만날 일이 없어 아직 확인을 하지 못했다.

상대방 허락도 없이 체크하는 것도 매너가 없는 짓이고. 방금도 허락을 받지는 않았지만 아스터가 도발한 것과 다름없었기에 세이프다.

무엇보다 프론디어의 옆에는 아텐이 있다. 프론디어의 몸 상태가 정말로 심각하다면 아텐이 먼저 조치를 해주겠지.

'...그래도 궁금한데.'

프론디어의 최근 행보는 엘로디나 아스터와 다를 것이 없다. 아니 테이번이라는 지옥을 굳이 걸어 들어갔으니 방학 동안에는 더 힘들었겠지.

거기다 최근의 사건에 말려든 것은 프론디어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사건의 중심에 서 있었으니 그 피로는 더더욱 심하겠지.

'화제를 프론디어로 돌리면 뭔가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이 말해주지 않을까.'

엘로디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한가지 문제가 있었다.

어떻게 화제를 프론디어로 돌리는가.

엘로디가 먼저 프론디어의 이름을 꺼내고 그의 최근 상태를 묻는다면, 그것은, 뭐랄까. 굉장히 하기 어렵다.

그런데 돌연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난 걔가 어떤지 궁금한데. 프론디어 드 로아흐."

엘로디는 자기 속을 들킨 것 같이 살짝 움찔하고는 목소리의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말한 남자는 로발드 리에프였다.

엘로디의 눈이 동그래졌다. 로발드의 입에서 프론디어의 이름이 거론될 줄은 전혀 생각도 못했기에.

"프론디어? 걔가 왜?"

루니아가 물었다.

"아니, 그 녀석 나랑도 잠깐 겨뤘어서."

"언제? 너 아스터랑 싸운 거 아니었어?"

"그건 의식을 잃었을 때고, 잃기 전에. 나는 그놈이 아텐 님을 협박한 줄 알았거든."

"...그러면 네가 그 헛소문을 믿고 바보같이 프론디어를 공격했다는 거네?"

"그렇지."

로발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당당해서 오히려 시원스러웠다.

하아, 루니아는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그래서 프론디어를 흠씬 두들겨 패서 걱정인 거야?"

"아니, 한 대도 못 맞췄다. 목덜미를 잡고 집어 던진 적은 있지만. 그건 데미지가 거의 없었을 거다."

로발드의 말에 듣고 있던 사람들의 눈빛이 조금 변했다.

설령 진심이 아니더라도 싸움에 있어서 천재라 불리는 로발드가 한 대도 못 맞췄다는 건 많은 것들을 의미하니까.

"근데 그 뒤로 의식을 잃고,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나처럼 의식을 잃은 학생들이 전부 프론디어를 죽이려 들었다며? 듣자 하니 그 전후로도 뭐 여기저기 끌려다닌 거 같고. 그 녀석 괜찮은 건가 싶어서 말이야."

엘로디는 로발드가 프론디어를 걱정하는 게 다소 의외였지만 어쨌든 바라는 대로 상황이 흘러가고 있었다.

크흠, 엘로디는 짐짓 헛기침을 하고는 말했다.

"프론디어의 상태를 아는 사람이 있을까? 물어보면 간단할 텐데."

"흐음...."

엘로디의 말에 듣고 있던 모두가 잠시 생각하는 듯했다. 그러다 그들의 시선이 한 방향으로 몰렸다.

셀레나였다.

"...엇, 예?"

여전히 꼿꼿한 자세로 앉아 있던 셀레나가 모두의 시선을 느끼고 움찔 놀라 물었다.

"셀레나는 프론디어의 호위잖아. 걔는 괜찮은 거야?"

"어, 네, 네. 특별히 다친 곳은 없어 보였습니다."

"그래? 휴식은 잘 취하고 있나 보네."

엘로디는 말하면서 다소 안도했다.

그런데 셀레나는 엘로디의 말을 듣고 오히려 무언가가 생각난 듯 고개를 기울였다.

"...휴식...."

셀레나는 만곶에서 설치해놓은 전이 마법으로 언제든지 프론디어의 곁에 도달할 수 있다.

프론디어가 위기 상황에 처하거나, 그가 직접 호출하는 경우 셀레나는 그 곁에서 호위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언제나 준비된 상태다.

때문에 셀레나는 프론디어의 하루 스케쥴을 대강 알고 있다.

'오전 오후는 콘스텔에서 수업을 듣고, 방과 후에는 개인단련실에서 단련하고, 저택에서는 최근 임무에서 복귀한 형님인 앗지에와 다시 훈련하는 것 같고, 밤에는 나한테 고대어를 가르쳐주고....'

...아니 가만, 진짜로.

"언제 쉬는 걸까요. 프론디어 님."

"어?"

중얼거리는 셀레나의 목소리에 엘로디가 놀라 되물었다.

"생각해 보니 쉬는 걸 본 적이 없네요. 저는."

셀레나가 프론디어를 처음 만난 것은 테이번에서다.

물론 당시에는 가장 위험하고 가혹한 환경이었기에 쉴 틈이 없었다지만, 콘스텔로 돌아온 뒤에도 어쩐지 프론디어의 고난은 딱히 나아진 것이 없어 보였다.

"그러면, 뭐 피곤해 보인다거나 그런 건 없어?"

"잘 모르겠네요. 항상 피곤한 얼굴이셔서."

그건 그렇다.

계속 그 얼굴이라 엘로디와 사이벨도 알아차리기 어려웠던 것이다.

듣고 있던 루니아가 어깨를 으쓱하고 말했다.

"...뭐, 이번 수학여행이 걔한테도 숨돌리기 정도는 되겠지."

루니아는 별거 아니라는 듯 태평하게 말했지만.

엘로디는 진심으로 그렇게 될 수 있길 바랐다.

* * *

나는 반의 학생들이 지켜보는 교탁 옆에 서 있었다. 제인이 불렀기 때문이다. 내 옆에는 코라도 서 있었다.

제인은 나를 옆에 두고 앉아 있는 학생들 전부를 둘러보며 말했다.

"프론디어 학생은 이번 수학여행에 여러분들과 함께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제인의 말에 학생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의문을 띄웠다.

난 솔직히 '프론디어 따위 있든 없든 알게 뭐냐'는 느낌이 나오지 않을까 했는데, 그래도 학생들이 궁금해하는 정도는 되었던 것 같다.

학생들 사이에서 약간의 소란이 생기는 동안 제인은 계속 말했다.

"프론디어는 봉사활동을 하게 되었답니다. 물론 여행지까지 동행은 하지만, 아마 수학여행 동안 마주칠 일은 거의 없을 거예요."

제인의 말에 소란이 좀 더 커졌다.

'뭘 했길래 봉사활동을 해?'라든가 '기물파손이라고 들었는데?'라든가 '벽을 날려 버렸다던데?' 따위의 속삭임이 들렸다.

개중에는 나를 불쌍하게 바라보는 학생들도 있었다. 조금 감동이었다. 내가 그래도 지금껏 평판을 높이려 한 노력이 의미가 있었던 걸까. 아니면 사실 프론디어가 그 정도까지의 평가가 바닥은 아니었나?

"그리고 코라 학생은 적극적으로 자원요청을 했기에 같이 봉사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자원 요청이라고 하지만 코라는 무지하게 불만인 얼굴이었다. 그야 자원 요청이 아니니까.

코라는 당시 아르멜이 던진 주머니 안의 가루를 흡입하고 폭주를 일으켰다.

즉 인더스 입장에서 폭주시키는 조건이 꽤 간단하다. 분말을 마시게 만들면 그만이니.

지금은 그 가루의 정체가 뭔지 경찰과 콘스텔에서 조사 중이니 곧 대책이 나올 테지만, 그때까지는 내가 코라를 보호, 감시해야 한다.

"그럼 자리로 돌아가요, 프론디어, 코라."

제인의 말에 나는 코라와 함께 자리로 돌아가 앉았고, 아텐이 옆에서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괜찮아요?"

"그럼. 차라리 잘 됐어. 수학여행은 귀찮기만 할 뿐이지."

오랜만에 프론디어다운 말을 한 것 같다.

아텐이 나를 들여다보았다.

"...정말로 봉사활동을 하는 거예요?"

"그럼."

거짓말이다.

나는 인더스 소탕 작전에 참여한다. 코라는 참여하는 건 아니지만 학생들 사이에 섞여 있는 것보단 내 옆에 있는 게 더 안전하다. 최대한 보호할 것이다.

제인이 설명을 계속했다.

"이미 소식을 전해 들으신 분들도 있겠지만, 저희 이번 여행지는 '크로폴'이에요. 남쪽의 유명한 휴양지죠."

크로폴은 호수를 낀 도시다. 다만 이 호수가 아주 거대해서 바다와 다름 없는 파도가 친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바다와 다를 것이 없다. 물이 짠 건 아니지만.

그래서 크로폴의 호수는 바다가 아니면서도 숙소와 시설이 갖춰진 곳을 '해수욕장'이라 부른다.

해수욕장이 완비된 휴양지로서 제대로 기능하는 건 크로폴이 거의 유일하다.

바깥의 마물이 득실거리는 이 세계의 특성상 바다는 인간이 점령한 지역이라 하더라도 사람들이 놀러오지 않는다.

방벽이 완비되어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사람의 심리상 진짜로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온 게 아니면 놀기가 쉽지 않다.

"크로폴까지는 공중 열차를 타고 갈 거에요. 열차 안에서 보는 경치도 도착하기까지의 좋은 감상이 될 거예요."

제인이 말하는 공중 열차는 정말로 열차가 공중에 떠서 가는 건 아니다.

다만 엄청나게 긴 거리의 양쪽의 절벽을 잇는 철로가 있다. 철로는 마력의 힘으로 구동되어 다른 지지대가 필요 없이 그저 긴 철로만 공중에 놓여 있다.

열차가 그곳을 지날 때는 정말로 열차가 혼자 공중에 떠서 가는 것처럼 보인다.

"저희 교사진들은 여러분들의 수학여행이 안전하고 쾌적한 여행이 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제인은 학생들을 둘러보며 그렇게 말했으나, 마치 나에게 말하는 것 같다.

실제로 나의 임무가 그렇다.

인더스를 소탕하는 동안 콘스텔의 모두가 그간의 피로를 풀고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콘스텔 학생들에겐 수학여행 중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평화를 유지할 것.

나 혼자서는 말도 안 되지만, 콘스텔의 교사들과 오스프리트가 나서면 충분하고도 넘친다.

나의 휴식은 글쎄, 그 다음이다.

인더스 소탕 작전이 끝나면 나도 다른 학생들처럼 쉴 수 있겠지.

그러길 빈다.

아카데미의 무기복제자 130화

41장 수학여행(2)

수학여행 당일.

콘스텔의 운동장에는 미리 준비된 다수의 버스 차량이 나란히 정렬해 있었다.

크로폴에 도착하기 위해선 공중 열차를 타야 하지만, 정작 열차 플랫폼까지 가기 위해서는 버스를 타야 한다.

콘스텔의 학생들은 각 반에 따라 순차적으로 버스에 탑승했다.

"...예?"

아텐이 버스에 발을 들이다 말고 뒤를 돌아보았다.

뒤에는 프론디어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옆에는 코라가 서 있었다.

"다음 버스?"

"응. 봉사활동은 별도행동이니까."

아텐이 그 말에 옆에 있던 교사 제인에게 시선을 돌렸다.

제인도 고개를 끄덕였다.

"프론디어 학생은 다음 버스를 기다린 뒤, 다른 교사 분들과 함께 갈 거예요. 제가 말씀드렸죠? 수학여행 동안에는 마주치기 어려울 거라고."

"그래도...."

"아텐 학생은 어서 타요. 크로폴에 도착하기까지는 꽤 바쁜 스케쥴이니까."

아텐은 등 떠밀리듯 해서 마지못해 버스에 올랐다. 그러면서도 불안한 얼굴로 프론디어를 보았다.

프론디어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고 있었다.

"걱정 마. 다음 버스는 금방이래."

"...알겠어요."

아텐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려 버스에 탑승했다.

다른 버스들과 함께 천천히 출발하는 버스를 보며, 프론디어는 가벼운 숨을 코로 내쉬었다.

그사이.

"아스터, 이거 봐! 위저뷰에 우리 소식이 떴어!"

2반의 버스 안에서는 루니아가 호들갑스럽게 옆자리에 있는 아스터에게 세이지폰의 화면을 보여주며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 뉴스에는 콘스텔의 수학여행 이야기로 연일 화제였다.

루니아는 화면에 눈을 빛내며 말했다.

"콘스텔의 학생들은 장차 유명한 프로가 되거나 높은 직책을 맡을 확률이 높으니까, 여행지로 지정된 지역에 관심이 엄청나대."

"그러고 보니 아는 선배한테 그런 얘기를 들은 것도 같고."

아스터가 그렇게 말하며 루니아와 같이 폰 화면을 보았다. 그의 말대로 콘스텔의 수학 여행은 매년 제국에서 큰 화제가 되곤 했다.

특히 공개적인 장소에서 콘스텔의 이름을 걸고 처음 얼굴을 비추게 될 1학년 학생들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뉴스뿐만 아니라 각종 매체에서 그들에 관한 얘기를 다루고 있었다.

"앗, 뭐야, 아하하! 아스터 니 얘기도 있네!"

"으윽."

커뮤니티에도 콘스텔에 대한 얘기가 퍼져, 아스터는 그들의 유명한 가십거리였다. 뛰어난 실력과 재능, 거기에 출중한 외모까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아스터는 조금 부끄러워져 눈을 돌렸다.

"엘로디 얘기도 있고, 어머 아텐 님도. 뭐야, 내 건 없나? 흐음...."

루니아가 입을 뾰족 내밀고 자기 얘기를 찾으려 이리저리 화면을 조작했다.

"...어머?"

그러다 묘한 것을 깨닫고 잠깐 손이 멎었다.

"왜? 네 소식도 올라왔어?"

아스터가 묻자 루니아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근데 프론디어 얘기가 있어."

"응?"

"그것도 꽤 많아."

아스터가 루니아의 폰을 다시 보았다.

거기에는 프론디어의 이름과 얼굴, 키나 몸무게와 같은 인적사항과 어느 가문인지까지 전부 드러나 있었다.

대부분은 프론디어에 대한 칭찬이 주를 이루었고 찬양에 가까운 글까지 보였다.

루니아가 뾰루퉁해지곤 말했다.

"뭐야, 얜 언제부터 크로폴에서 인기를 끌었대?"

"...뭔가 이상한걸."

"응?"

아스터는 루니아의 폰을 가만히 보다가 안 되겠다 싶었는지 자기 폰을 꺼내서 화면을 조작했다.

확실히 프론디어의 글이 많았다. 빈도수로 보자면 아스터나 엘로디 바로 다음 정도.

게다가 프론디어에 대한 칭찬 일색이라고 해도, 그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는 무작정이었다.

프론디어의 앞모습, 옆모습, 뒷모습, 온갖 각도에서 찍은 사진들과 이상할 정도로 많은 프론디어의 호명.

"엘로디, 프론디어가."

"응. 나도 봤어."

대각선 뒷자석에 앉은 엘로디는 아스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마침 게시글들을 확인 중이었다.

분명 이 갑작스러운 프론디어에 대한 정보 공개는 부자연스러웠다. 딱히 숨긴 것도 아닌 정보들 뿐이었지만.

'누군가가 크로폴 시민들에게 프론디어를 기억하게 만들고 싶은 건가?'

...아니 그나저나.

"...근데, 아스터."

"응?"

"프론디어 얘기를 왜 나한테 하는 거야? 걔 얘기를 듣고 싶으면 셀레나도 있잖아."

엘로디가 눈을 가늘게 하고 아스터를 보았다. 아스터는 고개를 갸웃하고 볼을 긁적였다.

"...그러게? 왜 그랬지?"

뭔가 명확한 이유를 들은 것보다, 지금 아스터의 반응이 엘로디는 더 마음에 안 들었다.

* * *

며칠 전.

콘스텔은 곧 있을 수학여행으로 분위기가 들떠 있었다.

언제나 수업과 훈련으로 지친 학생들에게 수학여행은 확실한 휴식을 보장해 준다. 콘스텔의 수학여행은 분명한 '여가'에 집중되어 있기에.

수학여행의 준비는 착실히 이루어졌다.

그에 따라 학생들의 분위기도 덩달아 밝아졌고, 콘스텔 안에는 학생들의 기대감으로 눈부실 듯이 밝다.

다만 그럼에도 언제나, 밝은 일상을 비춰주기 위한 조명 아래는 어두운 법이다.

"회의를 시작하지."

콘스텔에 회의실에서는 진중한 회의가 열렸다.

오스프리트의 회의 시작을 선언하자 중앙의 탁자 위가 푸르게 빛났다. 빛은 선의 다발로 얽히더니 점차 콘스텔에서 휴양지 크로폴까지를 표시하는 지도가 드러났다.

이번 회의는 모두가 서 있었다. 지도를 확인하며 모두의 아이디어를 종합해 계획을 수립하기 위해서였다.

"총장님이 웬일로 적극적이시네요."

제인이 살갑게 웃었다.

오스프리트가 말했다.

"나는 바퀴벌레를 싫어한다네."

비유적이었으나 전하는 바는 분명했다.

오스프리트는 고개를 들어 프론디어를 보았다.

"시작에 앞서, 먼저 이번 작전에서는 미리 언급했듯 프론디어 드 로아흐 군이 참여한다네. 그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지."

오스프리트의 소개에 프론디어는 고개를 숙였다.

모두가 교사인 이 자리에 교복을 입은 프론디어가 끼어 있는 것은 굉장히 이질적이었다.

어머니인 말리아가 프론디어를 힐끗 보고는 말했다.

"학생이 참여하는 건 위험할 텐데요."

"괜찮네. 프론디어 군은 아주 안전한 곳에 있을 것이야."

그에 말리아가 다소 안심했다.

이번에는 제인이 입을 열었다.

"총장님은 이번 수학여행 때 정말로 인더스가 움직일 것이라 생각하시나요?"

"가능성은 상당히 높네. 콘스텔의 학생들 대부분과 교사진이 중앙을 비우게 되는 시기이니. 인더스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은 분명한 일이야. 그것이 격한지, 완만한지는 두고 볼 걸세."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이번에 입을 연 것은 파스칼이었다.

"그러면.... 가장 취약한 위치는 이곳이겠네요."

파스칼이 탁자 위의 지도에 어느 한 곳을 가리켰다. 모두가 그 위치를 보고 미간을 좁혔다.

"공중 열차...."

깎아지른 절벽, 끝을 모르고 어둠을 내려놓는 낭떠러지. 그 긴 간극을 잇는 공중의 철도.

인더스가 콘스텔을 공격하려 든다면, 학생들이 이 열차를 지나는 순간이 가장 위험할 것이다.

"크로폴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공중 철도를 이용해야 해요. 저희가 완전 대응이 가능할까요?"

"방어마법은 완비되어 있어요. 어지간한 공격으로는 흠집 하나 낼 수 없을 겁니다."

"물론 대비는 선로 또한-"

교사들이 저마다 이야기를 나누었다. 열차를 지나는 동안 발생하는 외부 공격에 대해 완벽히 대처하기 위해.

그것을 가만히 듣고 있던 오스프리트가 입을 열었다.

"그래, 프론디어 군."

그가 돌연 프론디어를 불렀다. 모두의 시선이 프론디어에게 향했다.

"자네 생각은 어떠한가?"

이건 놀라운 일이었다. 그저 참여만 할 거라고 생각한 프론디어에게 오스프리트가 직접 발언권을 주었다.

프론디어는 천천히 말을 꺼냈다.

"방비는 확실히 되어야 할 것입니다. 다만,"

"다만?"

"공중 열차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모두가 프론디어의 말에 놀랐다.

교사 이사마야가 물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니, 콘스텔의 학생들이 평화롭게 지나가는 걸 그저 지켜볼 거라고요?"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허어, 이사마야는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파스칼이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죠?"

"놈들은 콘스텔 학생들이 죽는 걸 원하지 않습니다. 보다 궁극적으로는, 학생들이 다른 누군가를 죽이길 바라겠죠."

"...콘스텔 학생이 다른 사람을 죽인다고?"

"지금 놈들에겐 그게 가능할지도 모르는 아이템이 있습니다."

프론디어의 말에 모두가 눈을 크게 떴다.

"명함!"

프론디어는 고개를 끄덕였다.

"크라켄이 기껏 콘스텔에 침입해서 얻어낸 아이템입니다. 반드시 쓸 테죠. 하지만 이제 놈들이 할 수 있는 명령은 '프론디어를 죽여라'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콘스텔의 학생들은 얼마 전 사건 때문에 명함에 대한 경계심이 굉장히 높은 상태죠. 아마 이제 학생들에겐 통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반대로 하는 겁니다. 학생들이 아니라 크로폴의 시민들에게 명함을 뿌리는 거죠. 그 전에 크로폴의 시민들에게 제 얼굴을 익히게끔 해야 하겠지만요. 방법은 많을 겁니다. 누구나 세이지폰을 들고 있는 세상이니."

"...그러고 보니 프론디어 학생에 대한 이야기가 최근에 제법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파스칼이 말했다.

명함이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선 명함을 받은 사람들이 프론디어가 누군지 알아야 한다.

물론 폰에 정보들을 뿌리는 단발성 기억은 오래 가지 못하겠으나, 그 며칠이면 충분할 것이다.

"학생들이 크로폴에 도착하면 명함을 받은 시민들이 절 공격하려 들 테고, 그것을 방어하려다 다치는 시민들이 생길 수 있지요. 과잉진압이라며 목소리를 내는 바람잡이도 있을 테고요. 물론 정말로 중요한 건 그게 아닙니다."

"그렇지. 중요한 건 학생들의 발이 묶이는 거야."

말리아의 말에 프론디어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민들을 다치지 않게끔 제압하기 위해 저나 다른 학생들의 발이 묶이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선생님들이 나서겠죠. 그 몇 초에서 길면 몇 분 사이. 그 안에 놈들이 진짜 목적을 달성하려고 들 겁니다."

"진짜 목적?"

"확실하진 않습니다만. 아마."

프론디어는 그렇게 말하고는 고개를 들었다.

그는 고민하고 있었다. 이 말을 지금 해야 할 것인지. 올바른 타이밍인지.

인더스가 혁명을 위해 게임에서보다 빠르게 움직일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아르멜이 잡힌 뒤로 그들에게는 사건을 은폐할 수단이 부족해졌으니.

인더스의 계획이 수정되었으니 프론디어도 이제 낱낱이 알 수는 없으나, 알고 있는 정보를 토대로 인더스의 행동원리를 쫓아간다.

그렇게 되었을 때, 인더스의 혁명을 위한 첫 발판은 아마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총장님을 노릴 겁니다."

"...!"

회의실의 공기가 가라앉았다.

총장, '조디악' 오스프리트를 노린다.

프론디어의 이 말이 진정 사실이라면, 인더스는 그들의 생각보다도 훨씬 맛이 간 놈들인 것이다.

"...놈들이 어떻게 총장님을 노린다는 거죠? 그네들 따위가 감히."

이사마야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콘스텔 모두에게는 오스프리트에 대한 절대적인 지지와 신뢰가 있기에.

그것을 알지만, 프론디어는 일부러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놈들에게도 '조디악'이 있습니다."

아카데미의 무기복제자 131화

41장 수학여행(3)

"뭐!"

"아니, 무슨!"

이번엔 참지 못하고 목소리를 낸 교사들이 있었다.

말리아가 말했다.

"...프론디어, '조디악'은 제국에서 지정한 12명의 최고 강자들이야. 고위 귀족의 권력 이상의 것을 손에 쥐고, 제 본인의 힘이 무척이나 월등한 자들. 그들 중 누군가가 '인더스'라는 곳에 속할 이유가 있을까? 자신의 권력과 힘을 손에서 버리는 행동인데."

그렇다. 인더스의 겉으로 보이는 얼굴은 평민의 권익을 위한 단체.

때문에 교사들은 인더스의 행보가 평민들이 힘으로 귀족들의 자리를 위협하려는 난폭한 개혁 같은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조디악이라니. 이미 높은 자리에 앉은 조디악이 뭣하러 평민의 개혁을 도와준다는 말인가.

그에 프론디어는 말했다.

"인더스가 원하는 것은 '혁명'입니다. 현재의 계급구조를 엎어버리는 것이죠."

"그래. 그러니까 조디악은."

"인더스는 '모든 계급구조'를 엎어버리려고 합니다."

말리아는 프론디어의 말이 이해가 안 가 잠시 눈을 깜박였다.

그러다 그 눈을 크게 떴다.

"...그 말은 즉, 황제까지도?"

"예."

프론디어는 담담히 말을 이었다.

"황위, 귀족, 평민을 구분하는 모든 계급을 뒤엎어버리는 것이 그들의 목적입니다. 즉 제국의 무정부 상태를 이끌어내고 싶은 거죠."

그 말에 모두가 말이 잠시 멎었다.

프론디어의 발언은 상상 이상으로 거대한 것이었다.

그사이에도 프론디어의 말은 분위기를 모르고 계속되었다.

"모든 계급 체계를 뒤엎는다는 발상의 특성상,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황제가 아니라면 어느 누구든 가담할 확률은 있습니다. '조디악'이라 해도 말이죠."

파스칼이 물었다.

"인더스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뭐죠? 정말로 제국의 완전한 평등이라도 추구하는 건가요?"

그 말에 프론디어가 미소 지었다.

의도한 것이 아니겠으나, 그 나른한 미소는 회의실 안에 쌓인 긴장감을 다소 환기시켜 주었다.

"인더스에 속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스스로가 숭고한 일을 하고 있다고 믿고 있겠죠. 수뇌부들조차 말이죠. 하지만 '리더'는 그런 생각 따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면?"

"인더스의 리더는 자기 입맛에 맞는 계급을 다시 세우고 싶을 뿐입니다. 황제라고 칭하지 않으나 황제와 다름없고, 귀족이라 칭하지 않지만 귀족이나 다름없는 권력과 통치를 본인이 가져갈 생각입니다. 계급 철폐 따위, 그야말로 다시 계급을 세우기 위한 구실일 뿐이죠."

"...무정부 상태일 때 자신들이 주도해 정부를 세우려고 드는 것이군."

"네. 이미 물밑 작업은 거의 완료되었을 겁니다."

평민의 편이 된다든가 하는 슬로건, 이미지 향상을 꾀한 온갖 작업들이 모두 이를 위한 거였다.

"이봐요, 프론디어."

그때 교사 이사마야가 말했다.

"아까부터 조디악, 조디악, 하는데 당신은 그들 중 누가 정확히 인더스 회원인지 알고 있나요? 괜한 허세는 아니겠죠?"

"물론 알고 있습니다."

"...호오?"

프론디어는 눈동자를 굴린 뒤 재밌다는 듯이 얼굴에 약간의 유열이 있었다.

무언가, 왠지 무서운 소리를 뱉을 것 같다.

"흥미롭게도 교장선생님을 제외하면 제가 얼굴을 직접 마주한 유일한 조디악이군요."

"...조디악의 얼굴을 봤었다고요? 당신에게 그런 기회가,"

이사마야가 그렇게 말하다 말고 무언가를 깨달았다. 곧 그녀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있다. 프론디어가 마주했던 조디악.

'가짜 미스틸테인 사건'. 귀족회의.

"맞습니다."

프론디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인더스의 리더는 '조디악' 헬드레입니다."

덜컹!

누군가 놀라 탁자에 부딪혔다. 희미하게 떠는 이들도 있었고, 숨이 조금 더 빨라진 이들도 있었다.

조디악 헬드레.

조디악으로 불리는 이들은 모두가 다 궤를 달리하는 강자들이다. 허나 헬드레는 강하고 약하고를 떠나, '색깔'이 달랐다.

조디악의 자리에 오른 이들은 모두 마물과의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이들이다.

혁혁한 공을 세웠다는 것은 달리 말해, 수많은 마물을 죽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헬드레의 공은 어느 누구보다 지대하다 할 수 있었다.

그가 마물 전쟁 이전에 제국 내 최고의 위험인물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헬드레는 전쟁 이전에는 살육에 미친 범죄자였다. 현재의 시점에서 봤을 때 '혼돈의 식객' 렌조가 헬드레와 가장 닮았다.

마물을 몰아낸 뒤 제국이 헬드레에게 직접 '조디악'의 자리를 준 뒤로 헬드레는 잠잠해졌다. 모두가 그렇다고 믿고 있었다.

초로의 나이에 들어선 헬드레는 최근 들어서 '인자함'까지 갖추어가는 모양새였는데.

"...프론디어 드 로아흐."

그때 오스프리트가 묵직한 음성으로 말했다. '학생'이나 '군' 따위를 붙이지 않은 풀네임.

프론디어가 고개를 들고 그를 보자, 서늘한 음성이 들렸다.

"자네는 어떻게 그리 많은 것을 알고 있나?"

분명 지금 프론디어는 아는 것이 너무 많다.

마치 그 본인이 인더스의 회원이라도 되는 것처럼.

물론 여기 어느 누구도 그런 의심을 하는 사람은 없다. 그가 정말로 인더스라면 지금까지의 행보는 너무 이상하니까.

다만 이만한 정보를 어디서 얻었는지 정도는 듣고서 납득해야만 했다.

프론디어는 잠시 말을 멈추다, 천천히 말했다.

"저는 아주 오랫동안 인더스를 조사해 왔습니다."

그렇게 읊는 프론디어의 눈동자를 보고 오스프리트는 놀랐다.

그 눈빛에 담긴 어마어마한 시간의 흔적을 느낀 것이다. 수많은 시도와 실패의 반복, 후회와 포기를 겪어본 사람의 눈빛이었다.

"인더스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끝도 없는 자료를 조사했습니다. 안 가본 장소가 없고, 안 해본 짓이 없습니다. 그 전부를 일일이 설명해드릴 순 없습니다."

'...어? 가만.'

그 말에 가만히 뒤에서 듣고 있던 사서 아이넨이 무언가를 떠올렸다.

'...프론디어가 다른 사람처럼 변하기 시작한 게 언제부터였지?'

처음에 그 두각을 드러낸 것이 바로 '가짜 미스틸테인 사건' 때.

그 이전에 프론디어는 사람들이 알고 있는 미스틸테인의 이미지를 보며 '가짜'라고 말했었다. 그걸 사서인 아이넨이 시험해 보려 했고, 그 장소가.

'도서관!'

프론디어는 그 이전까지 도서관에 간 적이 없다. 그러나 미스틸테인 사건의 전날만큼은 달랐다. 사서 아이넨은 호사가에 정보 수집가라 기억력이 굉장히 뛰어나다.

방금 프론디어는 말했다. 끝도 없는 자료를 조사했다고.

설마 그때부터인가? 프론디어는 그때부터 이미 인더스의 냄새를 맡았나?

'그러면 수업 시간 때 미스틸테인에 대해 딴죽을 건 것이 일부러?'

프론디어가 정말로 미스틸테인의 원래 모습을 알고 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콘스텔에서 미리 그 이야기를 꺼내면서, 프론디어는 회의 때 미스틸테인을 안치해놓은 관을 부숴버린 기행에 대해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갖출 수 있었다.

아이넨은 회의 장소에 없었으니까, 프론디어가 그곳에서 정확히 뭘 했는지는 모른다. 헬드레와 이야기를 나눴는지 어땠는지조차.

그러나 그만한 기행을 벌였으면 헬드레가 어떠한 반응을 해올 것이 분명했다.

'프론디어는 헬드레에게 자신을 각인시킨 거야!'

그렇다면 왜?

아무리 그때부터 헬드레를 의심스럽게 생각했다고 해도, 프론디어가 스스로를 드러낼 필요는 없었을 텐데.

헬드레가 혹여 프론디어를 눈여겨보고, 어떤 행동을 가하게 되면,

'...오두막이구나!'

거기까지 생각이 나아갔을 때의 아이넨은, 이미 추위에 가까운 소름을 느끼고 있었다.

그 생각은 말리아도 비슷했다.

'프론디어 설마, 오두막에 혼자서 간 게 헬드레의 수하를 끌어들이기 위해서였어?'

당시의 프론디어의 행동은 나중에 들은 말리아도 이상하게 여겼다.

어렸을 적에나 엘로디와 함께 들렀던 오두막을 이제 와서 갈 이유가 없었는데.

그러나 그것이 만약 헬드레를 유인한 것이라면.

헬드레 본인이 움직이는 것이 어려울 것을 이용해, 그 수하를 끌어들인 거라면.

'그 수하가 세르프 다니엘이었구나.'

세르프가 프론디어를 찾아간 게 아니라, 프론디어가 세르프를 유인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세르프는 죽었다. 프론디어의 손에 의해.

어떤 과정으로 죽게 되었는지 모르나.

'프론디어, 뭔 짓을 한 거야?'

방금 프론디어는 말했다. 안 해본 짓이 없다고.

프론디어가 정말로 헬드레의 정보를 얻으려고 한 거라면, 세르프를 곱게 죽일 리가 없었다.

지금 프론디어가 갖고 있는 정보, 그중 상당한 양이 세르프가 토해낸 것이라면.

...무슨 고문을 했을지 짐작조차 안 간다.

한편.

'프론디어 학생은 테이번에 갔을 때 분명.'

제인은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프론디어가 방학 때 테이번에 가기로 된 것은 콘스텔 내에서 꽤 떠들썩한 뉴스거리였다.

제인이 아텐에게 그 이유를 전해 듣기로는,

'가져올 것이 있다고 했는데.'

가져올 것이 있다.

말그대로 해석하자면, 테이번에 뭘 두고 왔다.

처음에는 그게 물건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게 사실 물건이 아니라 사람이었다면.

'...그로벨에게 이야기를 들으러 간 건가.'

실제로 프론디어는 교도소의 그로벨과 면담한 기록이 있다. 담당 학생이기에 알고 있는 것이지만.

세르프가 용병으로 고용했던 그로벨.

혹여 그에게 인더스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 싶어서.

방금 프론디어는 말했다. 안 가본 곳이 없다고.

그 이유로 테이번에 갔단 말인가. 그 지옥을.

"...."

"...."

"...."

돌연 찾아온 회의실의 침묵. 그러나 의미 있는 침묵이었다.

파스칼이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고 어깨를 으쓱했다.

"뭐, 전 잘 모르겠지만, 어쩐지 다른 선생님들은 프론디어의 말을 납득하고 계신 거 같네요!"

그렇다. 파스칼의 말이 맞았다.

특히 아이넨, 제인, 말리아는 프론디어를 무슨 괴물 보듯이 보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총장 오스프리트가 빙긋 웃었다.

그는 시험하듯 프론디어를 불렀다.

"프론디어 군."

"예."

"저번에 했던 질문을 다시 해봐도 되겠나?"

"질문이요?"

프론디어가 되묻자 오스프리트의 미소는 더욱 짓궂어졌다.

"자네는 평판이 좋지 않을 텐데, 그 모든 걸 숨기고 있던 이유가 무언가?"

그건 프론디어와 오스프리트가 단둘이 있었을 때의 질문.

그러나 그 대부분의 내용은 서로 간의 비밀이었기에.

프론디어는 고개를 한 번 갸웃하고는 그때보다는 좀 더 단순하게 답했다.

"제가 약하기 때문입니다."

그 한마디.

교사들은 마치 자기 어깨에 무게가 실린 듯 몸을 낮추었다.

이것으로 명확해졌다.

프론디어의 지금까지의 기행. 그 모든 것을 한 줄기로 관통하는 논리가 있었다.

지금까지의 모습으로 볼 때 프론디어는 콘스텔 학생으로서의 분명한 재능이 있었다. 그것은 1학기 기말고사 때 모두가 보았다.

프론디어는 무능한 것이 아니다. 그저 숨을 죽이고 있었던 것이다.

인더스의 꼬리를 잡기 위해. '인간늘보'라는 멸칭을 기꺼이 감내하면서.

로아흐에서 파문될 거라는 이야기가 나돌기 시작할 때가 된 뒤에야, 프론디어는 움직였다. 인더스에게 자신이라는 미끼를 아주 오랜 시간 들여놓은 것이다.

수업 시간 마다 엎드려서 자고 있던 게 정말로 자고 있었던 것인지, 그 가린 얼굴 사이로 서늘한 안광을 감추며 때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이제는 알 수 없는 일이 되었다.

"그러면 프론디어 군. 그 인더스의 계획을 어떻게 저지해야 하나? 자네가 크로폴에서 습격을 당하면 인더스의 계획대로 될 텐데 말일세."

인더스의 속내는 알았다. 이제는 저지해야 할 차례.

그런데 프론디어는 이번엔 도리어 상쾌한 얼굴이 되어 말했다.

"아, 그건 간단합니다."

"간단하다?"

프론디어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크로폴에 가지 않으면 되는 일이죠."

아카데미의 무기복제자 132화

41장 수학여행(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