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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쐐애애액!

당군악은 하늘을 날았다.

검선만 날아다니나?

허공에 뜨는 거야 신선이라면 누구나 한다.

속도가 문제지.

당군악은 속도도 빠르다.

독령으로 움직이는 흑암철 주괴 몇 개를 발판 삼아서 태주가 알려준 장소로 날았다.

'중국이라···,'

처음 태주와의 영혼 연결을 통해 지구의 지식을 습득했을 때, 중국이란 국가를 알았다.

강호와 비슷하지만 다른 세상이다.

언어와 땅의 형태가 같긴 해도 발전해온 역사가 조금씩 다르다.

'다중 우주의 세상이라더니.'

다중 우주라는 건 대체 뭘까?

각자 독립적으로 만들어진 건가?

아니면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에서 갈라져 나온 것일까?

신선조차 이해할 수 없다.

그건 지구의 과학도 마찬가지.

엿볼 수는 있지만 절대 가까이 다가갈 수 없다.

태양계도 벗어나지 못하는 판에.

'우주의 운행과 만물의 조화를 주재하는 천지신명께선 알고 있으려나.'

어찌 됐든 당군악에게 지구의 중국은 별 의미가 없다.

자신의 나라도 아닌데.

더구나 등선해서 속세의 연도 사라졌고.

오히려 태주가 사는 삼한 제국이 염려될 뿐.

이런저런 생각으로 날아가던 와중에···,

'다 왔군.'

태주가 수많은 비욘드 마수들을 목격했던 도시.

'여기가 무한인가?'

온통 자욱한 안개였다.

동시에 그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감췄다 하면서 제 존재를 증명하는 비욘드 요괴들.

'흐음.'

요괴도 요괴지만, 그보다 더 심상찮은 것이 바로 안개였다.

신선의 눈으로도 안쪽을 꿰뚫어 볼 수가 없었다.

술법 같기도 하고, 혹은 마법이거나,

둘 중 뭐든 선기의 권능에 비할만하다는 건 틀림없다.

그러니 태주도 물러났을 터.

영리한 판단이다.

알지 못하는 것을 섣불리 건드릴 필요는 없지.

'안에 뭐가 있길래···,'

바로 그때!

"크르륵!"

당군악을 발견했는지 포효를 지르며 달려드는 비욘드 익룡 무리들.

"감히 미물 따위가!"

스피릿!

두터운 강기를 두른 흑암철 주괴가 빛살처럼 쏘아졌다.

채앵!

비욘드 강기 보호막이 흑암철 하나에 깨어졌다.

"죽여주마!"

암기가 충분치 않으니 독기방사로.

츠츠츠츠츠,

당군악의 몸 주위에서 농밀한 독기가 발산됐다.

치칙, 치지직!

익룡의 날개가 먼저 녹기 시작했다.

"크롸롸롸롸!"

놈의 입에서 뜨거운 브레스가 분출됐지만.

팟팟팟팟.

흑암철을 발판삼아 움직이는 당군악의 보법은 너무나도 빨랐다.

"오냐! 온 김에 다 죽여버리겠다."

츠피피핏!

몇 개 안 되는 흑암철이 허공에서 난무했다.

독기도 진득했다.

슈우우웃, 쿵쿵, 쿵쿵쿵쿵!

익룡들이 흑암철에 적중당하고 독기에 날개가 녹아 속절없이 추락했다.

그러자 안개 속에서 줄을 지어 나오는 비욘드 비행 마수, 익룡.

이왕 이렇게 된 거, 최대한 숫자를 줄여놓고 선계로 돌아간다.

빠직,

흑암철 주괴가 세로로 길게 쪼개졌다.

한 덩어리당 10개로 늘어났다.

츠피릿! 채챙, 꽈득, 콰지직!

단 한 자루도 빗나감 없이 적중했다.

그러나,

"···이런!"

갑자기 문제가 생겼다.

암기가 모자라서?

아니다.

힘에 부쳐서?

힘이야 남아돈다.

그럼?

'하필 돌아갈 때가···,'

지구 차원이 자신을 밀어내고 있었다.

허락된 시간이 끝났다.

결정해야 할 때.

무시하고 계속 있느냐, 아니면 돌아가서 후일을 도모하느냐.

'가야겠군.'

일단은 돌아간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기다려라.'

최대한 많은 신선을 보내주마.

'이럴 줄 알았으면 비욘드 결정체를 챙기는 건데,'

거울 게이트 발생기에 장착될 에너지원으로.

그러나 시간이 없다.

어쩔 수 없이 태주가 확보한 걸 써야 한다.

당군악은 싸우는 와중에도 스마트폰을 들어 태주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곧 돌아간다고,

비욘드 엘리트 결정체는 사용하지 말고 선계로 보내달라고.

그걸 이용해 신선들을 보내주겠다고.

이윽고,

한창 비욘드 익룡들에게 암기를 날리던 당군악의 신형이.

스팟!

순식간에 사라졌다.

※ ※ ※

선계(仙界).

귀곡과 갈홍, 검선이 선계 카페에 모였다.

그런데 표정이 썩 좋지 못했다.

용왕을 꼬시기 위해 전력을 기울였다.

영화와 드라마도 무료로 보여주고, 때마다 간식도 챙겨주고.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영 넘어올 기색이 없다.

여의주 이야기를 꺼내기만 하면 실실 비웃으며 딴청만 피워댔다.

"교활한 용 새끼로다."

"우리가 말려들고 있어."

용왕 놈이 여의주를 인질로 삼아 신선들과 밀당하는 중.

끌려가는 건 당연히 신선들.

"자고로 몸에 비늘이 난 것들은 상대하지도 말란 소리가 있지 않소."

"그런 말도 있었나?"

"원래 비늘 있는 생선은 제사상에 올리지 않는 법이오."

"내 그럴 줄 알았어."

용왕도 용왕이지만,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다.

"슬슬 독선이 돌아올 때가 됐소."

"흐음, 정말이오?"

"내가 갔다와서 아오."

"난감하군.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지구로 많은 신선이 건너가기 위해 세운 여의주 확보 계획이다.

독선이 그걸 좋아할까?

즉시 중단하라며 엄포를 놓을 것이 분명하다.

"더는 못 기다리겠소. 당장 담판을 지으러 갑시다."

"좋소!"

그리하여 멀티플렉스 1층에서 용왕을 만났지만.

"욕심이 지나치군. 아무리 다른 세상의 문물이 신기하기로서니 여의주에 비할까? 더 이상 무리한 요구를 하면 우린 용궁으로 돌아가겠소."

씨알도 안 먹혔다.

"용왕, 제발 부탁이오. 여의주야 여분이 몇 개 있지 않소?"

"허어, 그게 당신들과 무슨 상관인지, 여의주는 선조께서 남기신 유산이란 말이오. 그리고 여분은 하나 말고는 없소."

용왕은 속으로 피식 웃었다.

이들이 여의주를 가지고 뭘 하려고 하는지 이미 알고 있다.

지구로 가는 차원 문을 열려고 한다는 걸 말이다.

"독선도 그대들이 지구로 넘어가는 걸 썩 좋아하지 않는다고 들었소만,"

"오, 오해요! 그도 지구로 가는 걸 좋아하오. 지금도 넘어가 있는데···,"

"그런가?"

짐짓 고민하는 척하는 용왕.

여의주?

보물이지만 그걸 내어줘도 용궁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순순히 줄 순 없지.'

애를 살살 태우며 철저하게 벗겨 먹는다.

자신이 만족할 때까지.

선계의 모든 물건을 탈탈 털어서 용궁으로 가지고 갈 생각.

"그건 그렇고, 제천대성은 어디 있소?"

"그놈은 왜?"

"예전에 우리 용궁을 거하게 털었지. 아직 사과도 받지 못했고, 놈이 머리를 조아리고 사과를 하면 여의주, 생각해보리다."

"···."

난처한 표정의 검선.

원숭이가 용궁과 악연이 있다는 건 안다.

허나 사과하고 말고는 제천대성의 마음에 달려있다.

제삼자가 어떻게 강요하나?

"그건···,"

"안된다는 말이군. 쯧쯧, 대화가 되리라 생각했는데, 실망이오."

"하아,"

그때였다.

"내가 사과하면 되는 거요?"

어느새 나타난 제천대성.

"···응?"

용왕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사과해 보아라."

"내가 잘못했소."

"뭘?"

"용궁의 보물인 여의봉을 강제로 빼앗아서···, 한 번만 용서해주시오."

"말로만?"

"그럼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무릎을 꿇어라. 그리고 내 발치까지 개처럼 기어 와라."

"···."

제천대성은 안색이 굳어졌다.

개처럼 기라고?

요괴 신분만이라면 모르겠지만 자신은 투전승불이다.

여래 얼굴에 먹칠하는 셈.

하지만 현재 자신은 선계의 일원.

공동체가 계획한 일을 외면할 수 없다.

그래서 이빨을 악물었다.

'나만 희생하면 끝나.'

천천히 굽혀지는 제천대성의 무릎.

그때였다.

"지금 뭐 하는 건가!"

당군악이었다.

검선과 귀곡, 갈홍이 기겁했다.

"헉! 독선?"

"···언제 돌아왔소?"

"그, 그게 어찌 된 일인가 하면···,"

반면 여전히 여유로운 용왕.

칼자루는 자신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그대가 독선인가? 이제야 얼굴을 보는군."

당군악은 대꾸도 하지 않았다.

"잠시만 기다리시오. 원숭이 사과만 받고 나서 여의주 문제에 대해···."

"됐고, 무슨 일인지 알 만하니까."

"응? 알고 있다고? 그럼 말이 잘 통하겠군. 여의주가 정 필요하다면···,"

"필요 없소."

용왕의 말을 단번에 끊으며

"썩 꺼지시오. 앞으로 선계에 용궁의 인사들은 출입 금지요."

그러고 난 후 제천대성을 노려보며.

"자존심도 없나? 누가 시키는 대로 다 할 건가?"

"하아, 나야 굴러들어온 외부인이라."

"외부인은 무슨! 그대는 우리 식구야. 내가 그깟 여의주 때문에 식구를 팔아먹을 신선으로 보이나?"

"아···,"

제천대성이 입을 떡 벌렸다.

식구라고?

"저자가 외부인이지. 감히 선계 식구들을 괴롭히는."

용왕이 같잖다는 표정으로 빈정거리듯 말했다.

"여의주가 필요 없나 보군. 내 선계를 딱하게 여겨 하나 내어주려 했건만···."

"그깟 용놈 내단 따위를 가지고 얻다 쓴다고? 그리고 왜 아직 여기 있느냐? 꺼지라는 말 못 들었나?"

이렇게 되자 검선이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도, 독선, 내, 내가 잘못했소. 그러니 제발 한 번만 참아···,"

"여의주가 없어도 상관없소. 다른 에너지원이 있으니까."

"···어?"

"우리 신선들이 모두 지구로 넘어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단 말이지."

"저, 정말이오?"

"내 말 못 믿소?"

"오!"

검선은 신이 났다.

그러고는 매서운 눈초리로 용왕을 보며,

"씨발, 추잡한 늙은 이무기 새끼야!"

"···뭐?"

"귓구멍이 막혔나? 당장 꺼지라고!"

"이, 이놈이?"

"어쭈? 칼춤 한번 춰주랴? 원한다면 그렇게 해주지."

제천대성도 참지 않았다.

귀에서 여의봉을 꺼내 들면서,

"우리 식구들 말 못 들었어? 뒈질래? 그때의 추억을 떠올려줘?"

"···."

용왕은 눈알만 데굴데굴 굴렸다.

상황이 전혀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갔다.

"자, 잠깐, 독선, 진정하시고 내 말 좀···."

왜지?

진짜 여의주가 필요 없나?

아니면 허세를 부리는 건가?

< 필요 없어! > 끝

ⓒ 꾸찌꾸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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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여의주는 필요하다. >

폐허 도시 무한의 중심부.

오랜 시간 동안 잠에 빠져있던 한 존재가 슬며시 눈을 떴다.

'···흠?'

자는 와중에 가디언들이 사라지고 있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잠을 깨고 나니 더 확실해졌다.

'그냥 사라질 리는 없을 테고···, 아!'

누군가가 침입했다.

침입한 것도 모자라 자신의 둥지를 지키고 있는 충직한 가디언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대체 어떤 놈이?'

여긴 마법진과 가디언을 이용해 철저하게 방비한 곳.

가디언 한두 마리면 되는걸, 수천 마리나 만들었다.

인간은 절대 들어오지 못 한다.

이렇게까지 한 이유는?

아주 오래전, 교활한 인간들이 사용한 무기에 의해 원천의 기운마저 손상을 당할 정도로 심각한 피해를 봤다.

순차적으로 떨어지는 10여 발의 수소 핵미사일.

그 대폭발을 온전하게 몸으로 견뎌내야 했다,

인간이 만든 과학 무기는 실로 무서웠다.

신격에 근접한 자신이라 비록 죽지는 않았지만 손상된 힘을 회복하기 위해 잠을 자야만 했다.

하지만 잠을 자게 되면 무방비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래서 가디언을 만들었다.

신격의 권능으로 직접 마수에서 가디언으로 진화시킨 생명체.

그래서 죄다 해츨링급 드래곤 하트를 품었다.

심지어 개중에 일부는 성체 드래곤으로 탈바꿈할 수도 있다.

그렇게 만든 가디언 몇몇은 자신의 둥지를 지키고, 또 몇몇은 중국 전역으로 퍼져나가 인간들에게 복수를 실행했다.

그래도 만족하지 않았다.

수면 도중에도 잠시 짬을 내어 더 많은 가디언들을 만들어냈다.

그 기간이 벌써 100년을 넘었다.

어쨌든 간에 드래곤 급 힘을 갖춘 가디언들인데···, 혹시 침입한 것이 인간의 군대인가?

'아니야. 군대라기엔 너무 조용해.'

그렇다면?

정체불명의 존재는 정신을 집중했다.

이미 권능으로 변한 마법 주문.

가디언 한 마리의 눈을 통해 침입자를 관찰했다.

'···인간이구나.'

그럴 리가?

게다가 노인이었다.

허공에서 비행 가디언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설마 나와 같은 영혼 포식자인가.'

영혼 포식자.

영혼 연결자가 자신이 가진 한계를 넘어서면 영혼 포식자가 된다.

같은 영혼을 잡아먹고 신격을 획득하게 된다는 의미.

자신도 그렇게 신격을 획득했다.

'최소 영혼 연결자, 아니면 포식자겠군. 그것 말고는 없어.'

영혼 포식자라면 더 크기 전에 제거해야 한다.

'아무래도···,'

나가봐야겠다.

그런데 바로 그때!

스팟!

"응?"

갑자기 사라진 인간.

'···도망쳤구나.'

이렇게 존재감마저 확실하게 사라졌다면, 아마 텔레포트 주문일 터.

'약해빠졌어.'

영혼 포식자는 아니다.

기껏해야 연결자일 터.

그러면 그렇지.

존재는 픽, 하고 비웃었다.

'감히 영혼 연결자 주제에 분수도 모르고.'

그나저나 잠이 깨버렸으니···.

'손상된 힘은?'

얼추 회복된 것 같다.

그럼?

'슬슬 활동을 시작해볼까.'

100년이 넘게 흘렀다.

그동안 지구가 어떻게 변했는지 매우 궁금했다.

그리하여 존재는 잠에서 깨어났다.

※ ※ ※

선계 멀티플렉스.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덩그러니 선 용왕.

꺼지라는 협박이 있었지만 조금만 시간을 달라고 해서 남았다.

독선은 동료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느라 자신은 안중에도 없었고

"호오, 내 예상이 맞았어. 어째 불안불안하더니."

"독선이 보기엔 어떻소. 제천대성 같은 대 요괴가 출현한 것이 맞는지?"

"난 대 요괴가 아니래도 자꾸 그러네! 손 씻었소. 건실한 사업가요!"

"그래, 건실한 대 요괴라고 해두자."

독선은 침중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비욘드 요괴들을 지배하는 놈이라면 거의 제천대성 급 맞을 거요."

"그럼 우린 언제 넘어가나? 어서 가서 처리해야지."

"태주에게서 짝퉁 여의주가 배송되어 오면."

"총 몇 개요?"

"3개."

"최소 3명 이상은 갈 수 있겠군."

"불순물 때문에 정제해야 하오."

"그야 어려운 일은 아니지. 선약정이 있으니까."

신선들의 대화를 엿들은 용왕은 점점 표정이 불안해졌다.

'···짝퉁이지만 지구에도 여의주가 있다고?'

자신은 용이다.

참인지 거짓인지 판별할 수 있는 능력 정도는 갖추고 있다.

허세인 줄 알았지만 진짜였다.

용왕은 심히 당황했다.

여의주 말고도 대안이 있다니.

그것도 짝퉁 여의주가.

아니, 왜 진짜를 두고 가짜를 쓰려고 하지?

이전까지는 칼자루는 용왕의 손아귀에 있었다.

그래서 신선들은 갖은 알랑방귀를 뀌면서 온갖 친한 척을 다 해왔다.

여의주, 여의주, 노래를 부르면서 노골적으로 욕망을 드러냈다.

물론 은근히 그걸 즐겨왔고.

그런데 대안이 있다고?

완전 나가리 신세인데?

'이, 이대로 쫓겨나면 선계로 다시 오지 못한다는 말이잖아.'

그럴 순 없다.

이미 지구 문물이라는 신묘함과 편리함에 정신과 육체가 완전히 젖어 들었다.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접한 흥미진진한 이야기, 톡 쏘는 콜라와 팝콘, 주선이 말아주는 시원한 소맥과 고소한 치킨, 달콤한 아이스크림, 간간이 놀러 오는 천인들을 만나는 것도 즐겁고.

아직 배가 고프다.

허기가 질 정도로.

아예 맛을 보지 않았으면 모를까.

스마트폰도 만져보지 못했다.

자동차 운전대도 못 잡아봤다.

멋들어진 옷과 신발, 필기감 좋다는 만년필도, 째깍째깍 기분 좋은 초침의 아날로그 시계도,

못해 본 것이 너무 많다.

밀당을 통해 비싼 가격에 여의주를 넘겨 한꺼번에 다 해보려던 참이었는데.

'허어, 이럴 줄 알았다면 빨리 넘겨버릴걸···,'

순간!

신선들과 용궁 관리들이 멀티플렉스 위층에서 떠들썩한 소리와 함께 내려오고 있었다.

여의주 때문에 의기양양한 용궁 관리.

허리를 바짝 숙이고 아첨하는 신선들.

"영화와 드라마를 보니 어떻소? 지구에 가면 우리가 영화에서 본 배우들 실제로 볼 수 있다니까!"

"커험!"

"하지만 지금은 무료기간이라 계속 보려면 코인이 필요할 텐데."

"별로 재미도 없더군. 솔직히 내용이 너무 천박해서···, 뭐, 신선들 수준에선 재밌긴 하겠소. 막장과 막장은 서로 통하니까."

용왕은 기겁했다.

'그런 말 하면 안 돼.'

상황이 바뀌었어.

진짜 쫓겨난다고.

"선계 전용 스마트폰은? 용궁에도 상시 문만 설치하면 거길 통해 네트워크를 연결할 수 있지."

"그럼 하나 줘 보던가."

"물건은 독선이 가지고 있어서···,"

"쯧쯧, 주지 못할 거면 말을 하지 마시오. 제 것도 아닌 걸 가지고 생색은···,"

용왕은 절망했다.

필사적으로 눈짓을 했지만 관리들은 용왕을 보지도 않았다.

'그렇게 건방지게 말하지 마.'

제발···,

공손하게···,

"이 시계가 바로 롤렉스 서브마린이요. 이름부터 용궁 관리들에게 잘 어울리는군. 하지만 다소 비싸서···,"

"흥미 없소."

"그러지 말고 여의주 팔아서 시계 하나씩 마련하자고 용왕에게 건의해봅시다."

"허허, 염치가 없군. 여의주 갖고 싶으면 천도라도 가져오던가. 우린 속세의 물욕에 매몰되지 않소이다. 우리가 신선인 줄 아시오?"

아아아!

끝났다.

그 와중에 신선들이 당군악을 발견했다.

"어?"

"헉!"

"···도, 독선?"

"갑자기?"

나쁜 짓을 하다 들키기라도 한 것마냥 얼굴이 붉어지는 신선들.

하지만 당군악은 신선들에게 뭐라고 하지 않았다.

대신 서늘한 음성으로 용왕에게,

"당신 부하들만 봐도 알겠군. 선계에서 어떤 짓거릴 해왔는지."

"그, 그게···,"

"우릴 가지고 논 거나 마찬가지야. 신선들이 그렇게 만만해 보였나?"

"그 부분에 대해선 내가 사, 사과를···,"

"아직 안 갔소? 지금까진 실컷 논 대가는 요구하지 않을 테니 빨리 선계를 떠나시오."

"···흥분하지 마시고 우리 차분하게 이야기해봅시다."

"내가 지금 흥분한 것 같은가? 얼굴 보기 싫으니 빨리 용궁으로 돌아가시지?"

"···,"

용궁 관리들은 어리둥절했다.

용왕님이 왜 저렇게 저자세로 나오지?

신선들도 안절부절못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용왕을 화나게 하면 여의주는 무슨 수로?

그래서 독선을 말리려는 찰나.

검선이 나서서 신선들을 불러 모았다.

"쯧쯧, 멍청하게 굴지 말고 이리 모여보시오. 그대들에게 이야기할 것이 있으니."

"응?"

"무슨?"

"독선이 지구에 가서 무슨 일이 있었냐 하면···,"

설명이 이어졌다.

동시에 점점 펴지는 신선들의 안색.

"정말?"

"여, 여의주가 필요 없다고?"

"아니, 진작 이야기해 주지 그랬소."

"에잉! 난 그것도 모르고 손바닥 하도 비벼대느라 손금이 다 날아갔어."

그리고 신선들의 싸늘한 눈빛이 용왕과 관리들에게 향했다.

"어디서 비린내 안 나나?"

"안 나긴! 여기 생선들 천진데."

"저 게놈 새끼 표정 보시오. 집게발 부러뜨려 줄까!"

"어라? 썩은 동태 눈으로 노려보네? 눈깔의 먹물을 쫙 뽑아 버릴라."

"그동안 우쭈쭈, 우쭈쭈해 주니 뭐라도 되는 줄 알았지?"

"솥에다 한꺼번에 집어넣어 해물탕 만들기 전에 꺼지라고."

흉흉한 기세에 황급하게 멀티플렉스를 빠져나가는 용왕과 용궁 관리들.

"소금 뿌려라!"

"오늘부터 대청소야, 상영관에 찌든 비린내 빼려면."

"제기랄! 그동안 헛고생했네."

그들이 멀티플렉스를 완전히 빠져나간 걸 확인하자.

"갔소?"

"갔군."

"한 명 따라가 봐야 하나?"

"이제 슬슬 꼬시면 넘어올지도."

"어허, 좀 더 애를 태워야 하오."

"지금은 내버려 둡시다. 일주일 정돈 지나서 당근을 내밀어야지. "

신선들이 돌변했다.

그 모습에 고개를 갸웃하는 제천대성.

"용궁과 완전하게 인연을 끊을 작정 아니었소?"

"왜 연을 끊어?"

"그동안 놈들에게 당한 걸 생각하면···,"

"에이, 조금 당해주면 어때서? 실리를 챙겨야지."

"암! 곧 있으면 거의 공짜로 여의주를 가져다줄 텐데."

"용궁 보물창고엔 여의주 말고 다른 건 없나?"

"명색이 보물창고 아니오. 당연히 더 있겠지."

"흐흐흐, 창고 먼지까지 쓸어옵시다."

"···."

제천대성은 소름이 돋았다.

이게 다 연기였다고?

궁금한 건 하나 더 있다.

"그런데 대안이 있는데 굳이 여의주를 가져올 필요가?"

"무슨 소리! 무조건 필요하오."

"어디다 쓸 생각인지?"

"태주 대협에게 보낼 거요."

"맞아. 지구에 별의별 놈들이 다 튀어나오는데, 얼마나 고생이 많을까. 여의주라도 먹여서 몸보신이라도 시켜줘야 안 되겠소?"

"아!"

인간이 천도도 모자라 여의주까지 먹는다?

대체 얼마나 강해질지 상상이 안 된다.

※ ※ ※

태주가 구례로 돌아온 건 밤늦은 시각.

일단 자택 지하 수련실에 가서 짐 덩어리들부터 내려놨다.

"당분간 여기서 지내세요. 나오지 마시고."

"포, 폴리모프 반지가 있어서 밖으로 나가도···,"

"괜히 들킬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뉴서울로 돌아가시던가."

"끄응!"

진짜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다.

죽음 위장.

황제는 그것이 신의 한 수라고 생각했겠지만 웃기는 소리지.

"사람들이 폐하의 죽음을 믿어줄 거라 생각하세요?"

"···믿지 않을까? 피 묻은 옷가지하고, 스마트폰에 무기까지 뒀는데."

"겨우 그 정도로? 그리고 사람들은 이미 예방주사를 한번 맞았습니다."

"예방주사라니?"

"승전식 기억나시죠?"

황제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당연하지. 그때 얼마나 재미있었는데."

"그때 폐하의 와병에 베팅했던 사람들 어떻게 됐는지 아시잖아요."

"어···,"

"그 꼴을 보고도 사람들이 섣불리 움직일까요?"

"흐음."

"그리고 어차피 피라미들이잖아요. 황권에 맞설 정도로 강력한 조직이 있다면 모를까, 제정원과 군부 정보기관 뒀다가 뭐합니까? 인력을 투입해서 발본색원하면 끝나는 건데."

"···."

태주는 황제가 왜 이러는지 짐작이 갔다.

그저 유희일 뿐이다.

그러니까 과거 승전식이 문제였다.

마인에게 당한 부상으로 죽을 줄 알았던 황제가, 자신의 건재함을 알리며 나타났을 때 사람들은 경악했다.

황제는 짜릿했을 것이다.

또한 그걸 발판삼아 황권을 위협하던 세력들을 숙청하면서 자신의 권력을 강화했고.

그 뽕맛을 잊지 못한 거다.

덕분에 여러 사람 고생하는 거지.

사실 황제의 계획대로 이루어질지도 의심된다.

바보가 아닌 이상, 증거도 변변치 않은 죽음을 진짜 믿는다고?

"어쨌든 폐하께서 벌인 일이니, 마무리도 알아서 하세요."

"아, 알았네."

바빠 죽겠구만.

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다.

지구에선 무한의 비욘드 마수들을 토벌해야 하고.

선계는 천인들을 위한 신도시 아파트를 건설해야 하고.

그중 하나를 처리하기도 힘든데 황제까지 저러면···,

그래도 차근차근, 서두르지 말고.

독선이 돌아갔으니 곧 멈췄던 배송이 다시 재개될 터.

선계로 보내줄 물건부터 정리해두자.

'결정체부터 보내야겠네.'

요즘 지구보다 선계에서의 결정체 쓰임이 많다.

비욘드 결정체, 엘리트 결정체, 모조리 보낼 예정.

'신선들을 맞이할 준비도 하고.'

비욘드 결정체 3개면 최소 3명 이상의 신선들이 올 수도 있다.

그러나 독선은···,

'아마 안 올지도.'

그가 떠나기 전 보낸 메시지.

자신이 다시 오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신선들을 보내주겠다고 했다.

하긴, 영혼 합쳐짐 때문에 함께 싸울 수도 없으니까.

'그럼 누가 올까?'

검선은 당연히 포함될 것이다.

'혹시 제천대성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선계에서 검선과 비견되는 존재는 제천대성뿐.

그 둘만 해도 어딘가?

만약 검선과 제천대성의 지구 동시 강림이 실현된다면···,

'무한의 비욘드들은 흔적도 없이 소멸하겠군.'

순간!

찌르르르,

머릿속에서 울리는 배송신호.

'바로 뜨네?'

서둘러 결정체들을 공유창고에 집어넣고.

이제 선계에서 제작한 거울 차원 게이트 발생기가 오기만을 기다리면 된다.

그리고 이틀 후,

삼한 제국이 발칵 뒤집혔다.

황제와 금수호 비서관 사망 소식이 언론을 통해 속보로 전해졌기 때문이었다.

이게 통해?

진짜 사람들이 믿는다고?

< 그래도 여의주는 필요하다. > 끝

ⓒ 꾸찌꾸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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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보다 잘 낚인다. >

<(단독) 황제 폐하 서거! 제국의 기둥이 무너졌다.>

<제국을 위해 비욘드 마수를 토벌하시려다 변을 당하신 걸로 알려져.>

<금수호 비서관도 끝까지 폐하의 곁을 지켜.>

<제국민들 충격에 휩싸여, 믿을 수 없다. 하늘이 무너진 것 같은 심정.>

<황궁 내무부, 아직 확인되지 않는 사실이라며 성급한 보도 자제 요청.>

.

.

.

언론들은 처음엔 반신반의했지만 결국 서거 쪽으로 결론을 냈다.

└ 에이, 설마 황제 폐하께서 돌아가셨을 라고, 저번 승전식처럼 뿅하고 다시 나타나실걸?

└ 아니야. 이번엔 조금 심상치 않아.

└ 증거 동영상도 있어. 비욘드 쌍두마룡 사체하고, 머리에 꽂힌 검, 피 묻은 옷가지.

└ 하아, 큰일이네.

└ 그나저나 쌍두마룡에게서 나온 결정체는 없나? 누가 가져간 거야?

└ 지금 이 상황에서 결정체 얘기는 왜 해?

국만 여론도 거의 서거 쪽으로 굳어지는 분위기.

그러나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황가, 즉 황후와 황자들은 묵묵부답이었다.

대체 기사는 어디서 흘러나온 거지?

금방 밝혀졌다.

구례까지 태주를 찾아온 제국 정보원 문경식 차장.

"우리가 터뜨린 겁니다. 시나리오 짜서."

그러면 그렇지.

아무리 기다려도 입질이 안 오니 황제가 직접 나선 모양.

"뒤치다꺼리하시느라 고생이 많으셨겠어요."

"···."

참 여럿 고생한다.

"이런 일까지 벌여놓았는데···, 성과는 있습니까?"

"의외로 많이 낚였습니다. 만선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시나리오를 꽤 잘 썼나 봅니다."

"사람은 믿고 싶은 사실만 믿죠. 폐하의 서거를 바랐던 사람들이 어디 한둘이겠습니까?"

"그래도 결과는 좋으니까."

"맞습니다. 저도 조금 놀랐습니다. 그리고 황후님이나 황자, 황녀님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기도 하고요."

자기 가족들에게도 함정을 판 황제였다.

하지만 걸려들 리 있나?

예전에 크게 데인 경험이 있는데.

"회장님에게도 누군가 찾아올지도 모릅니다. 미리 알려드리려고."

"저한테?"

"현재 폐하의 서거로 제일 몸이 단 사람들이 있습니다."

"일본계 독립 세력인가요?"

"네. 특히 후지 그룹 인수는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무효화하고 싶을 겁니다. 절박하니까요."

이대로는 자력갱생이 불가능한 일본 독립국.

그들의 소원은 삼한에서 이룬 자본과 기술, 설비를 일본으로 온전하게 옮겨가는 것.

"첫 출발점이 이주 시한 연장입니다. 이미 제국 의회를 중심으로 법안 발의에 착수했습니다."

"벌써요? 폐하가 서거하시자마자 움직였다는 말이네요."

"네. 6개월의 시한은 너무 짧으니까요. 3년으로 늘리려고 발악하는 중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입질이 왔다.

문경식 차장이 돌아간 다음 날.

구례 태주의 자택에 방문한 사람.

제국 의회 의원이자 일본계 국민들의 지도자, 일본 독립조직에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판단되는 인물, 6선 의원 기무라였다.

"안녕하십니까. 김태주 회장님. 처음 뵙겠습니다."

태주는 그를 자택 서재로 안내했다.

"어서 오세요. 바쁘실 텐데."

태주 맞은 편에 앉은 기무라 의원.

"그런데 왜 오셨는지?"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후지 건설과 후지 철강, 그리고 후지 중공업을 다시 츠치다 회장에게 돌려주십시오."

오!

빙빙 둘러댈 줄 알았는데,

"잘못된 일은 바로잡아야죠. 회장님도 충분히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이해 못 해요. 그리고 겁은 안 나시나? 제가 누군질 모르시는 것도 아니고."

"제 뒤엔 수천만 명의 일본계 국민들이 함께합니다. 그리고 전···, 할복도 불사할 수 있다는 심정으로 왔습니다."

죽음이 두렵지 않다는 의미.

결의가 대단해 보였지만···,

사실 안 죽일 줄 알았을 것이다.

자신의 성향은 충분히 파악했을 테니까.

"그런데 뭐가 잘못된 일인지 모르겠네요.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인수된 건데."

"후지 그룹은 정치적 희생양입니다. 서거하신 황제 폐하께서 우리 일본계 국민들을 숙청하시기 위해 일을 벌였다는 건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럼 부실 공사나 탈세는 없던 일이란 말인가요?"

"일부 잘못이 있다는 건 인정하지만···, 그게 후지 그룹이 망해야 하는 이유로 충분치 않습니다."

여기까지다.

"그럼 절 따라오세요."

"어, 어딜?"

"소개해 드릴 사람이 있어서, 그분에게 직접 이야기 하는 것이 더 빠를 겁니다."

"누, 누구에게?"

태주는 서재에서 지하 수련실로 내려가는 계단으로 기무라를 안내했다.

계단으로 내려가니.

수련실 바닥에 일이삼백이와 함께 뒹굴뒹굴 구르던 황제와 금수호.

"어? 김회장, 내려왔는가? 자네도 심심했던 모양이군."

"손님 받으세요."

"손님이라니."

"따질 게 있어서 왔답니다. 후지 그룹 계열사 돌려달라던데요? 이야기 나눠보세요."

"뭐라고? 어떤 새끼가, 감히?"

황제와 금수호를 목격한 기무라 의원은 기절초풍했다.

"···폐하?"

"기무라? 너 이 새끼 아직 삼한 땅 안 떠났어?"

"사, 살아계셨습니까?"

"그럼 살았지, 죽었겠냐? 수호야."

"네!"

"이 새끼 묶어서 내 앞에다 꿇어 앉혀."

멍하니 입을 벌리며 넋이 나간 기무라.

"어어어, 왜, 주, 죽은 척을···,"

"왜긴, 너 같은 새끼 잡으려고 그런 거지. 이게 바로 죽척 스킬이야!"

하나는 낚았고.

기무라뿐인가?

또 누군가 왔다.

삼한제국 정부 경제부총리 왕천수.

삼한에서 가장 성공한 중국계 제국민.

전 세계 중국계 자본을 등에 업고, 정부 부총리직까지 승승장구하며 올라온 인물,

"조선과 해운 분야만 상장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조선소와 항만, 추가 건설이 필요하니 투자를 받으셔야죠."

"우린 투자받을 필요가 없습니다만."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닙니다. 국가 기반 산업을 한 개인이 소유하는 건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요?"

"지분의 분산이 필요합니다. 국민들과 이익을 나누시죠."

"국민? 어떤 국민요? 혹시 중국계 자본?"

웃기시네.

잘 차려진 밥상에 어떻게든 숟가락을 얹어보겠다는 수작인데.

"주식 상장이 싫으시면 선박 제조에 들어가는 금속을 민간에 푸시는 게 어떻습니까?"

"흑암철 말씀인가요?"

"네, 귀중한 자원입니다. 흑암철 독점을 푸시면 조선과 해운으로 진출하는 기업이 더 늘어날 테고, 그로 인해 삼한제국이 누리는 경제적 효과는 수천 조 이상에 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기어코 나왔다.

경제적 효과.

"제가 만약 안 하겠다면 어쩌시려고?"

"···독점 규제법으로 제제가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조곤조곤 이야기하니 확 패버릴 수도 없고.

"법으로 가겠다는 말이네요. 황제 폐하께서 안 계시니 이렇게 나오는 겁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폐하께서 건재하셨을 때도 이런 우려를 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래요? 그럼 확인해보죠."

"···네?"

태주는 왕천수 경제부총리도 지하 수련실로 안내했다.

"넌 또 뭐야?"

"폐, 폐하?"

당연히 경악했고.

"부총리께서 티제이 그룹 지분과 흑암철을 민간에 팔라고 하던데요?"

"누구 마음대로!"

"폐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잖아요. 독점이 우려된다고,"

"뭐? 내가 언제 그랬어? 수호야, 저 새끼 잡아 와."

"···히익!"

왕천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부들부들 떨었다.

"돈벌레 새끼야! 중국계 자본이 끼어들었지?"

"아, 아닙니다. 저, 전 그저 독점을 타파해보려고···,"

"웃기지 마라. 이게 무슨 독점이냐? 그럼 특허 같은 것도 사라져야 맞겠구나. 네 말대로라면 그것도 독점이니까."

"어어어···,"

의외로 잘 낚이고 있었다.

군부에서도 사람이 찾아왔다.

슈페리어 익스퍼트급 각성자, 계급은 대령.

"폐하의 서거로 삼한제국이 혼란스럽습니다."

"글쎄요, 국가 시스템은 여전히 잘 돌아가는 것 같은데."

"곧 이곳저곳에서 터질 겁니다. 안타깝게도 황자와 황녀분들은 제국을 이끌어갈 능력이 없습니다만."

"그래서요?"

"구국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무슨 뜬금없는 헛소리야?

"회장님!"

"네?"

"제국의 황제가 되어주십시오. 우리가 밀어드리겠습니다."

와!

쿠데타 세력까지 튀어나올 줄 몰랐다.

"군사 반란을 모의하시겠다?"

"회장님을 황제로 옹립해 충심으로 모시겠습니다. 통치나 실무적인 일은 저희가 맡겠습니다. 그저 군림만 해주십시오."

"주도 세력은?"

"아직은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전 전령으로 왔을 뿐입니다."

황당하다.

자신을 황제로 만들어 놓고 실제 권력은 지들이 휘두르겠다는 의미.

"내가 반대한다면?"

전령으로 찾아온 대령이 달래듯이 말했다.

"부디 함께해주십시오. 가만히 계셔도 됩니다. 저희가 다 정리해서 삼한의 황권을 손에 쥐여 드리겠습니다."

태주는 고민하는 척하다가 말했다.

"먼저 허락받아야 할 사람이 있으니까, 그분과 대화를 나눠보세요."

"지인이십니까? 예를 들어 백서연 사장님이나···,"

"지인은 맞아요. 그분께 허락받는 것이 먼저입니다."

"하하하! 그럼 만나보죠. 누구라도 설득할 자신이 있습니다."

이 사람도 황제에게 데려가서,

"이 새끼는 또 누구야?"

"허어어억! 폐, 폐하?"

태주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저보고 군부 쿠데타 합류해서 황궁을 접수하라네요."

"쿠데타? 이 미친 새끼가···, 가만? 쿠, 쿠데타? 자넬 황제로 옹립하겠다는 말이지?"

"그렇다는데요? 구국의 결단이랍니다."

일순 황제의 눈빛이 달라졌다.

"흐음, 구국이라···, 그거 좋은 생각이군."

"···?"

"이참에 하지 그러나?"

"뭘요?"

"쿠데타 말이야. 나도 지원해줌세.""

아니, 이 양반이 미쳤나?

인상을 찌푸리면서 노려보니.

"···노, 농담이야."

그러고는 대령의 멱살을 잡고,

"이 바보 같은 새끼야! 꼬시려면 확실하게 꼬셨어야지!"

"으어···,"

"제대로 못 꼬신 게 너의 가장 큰 죄야! 수호야, 이 새끼도 묶어."

"후우, 네네, 묶어야죠."

황제는 신이 났다.

숨어있던 제국의 위협 요소들이 제 발로 찾아와주니

태주도 다소 귀찮긴 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최소한 심심하지는 않으니까.

어부가 통발을 놓고 물고기 들어오길 기다리는 기분을 알 것 같다.

그나저나 신선들은 언제 지구에 올까?

그때까지 무한 비욘드 마수 밀집지대를 내버려 둬야 하나?

사실 황제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저 예상보다 강한 비욘드가 있어서 잠시 물러나는 게 좋다는 말만 했다.

제국, 아니 세계 전체가 나선다 해도 놈들을 토벌하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만약 늦어져서 무슨 일이 생기면···,'

혼자라도 해봐야지.

※ ※ ※

선계(仙界).

슬슬 지구에서 배송이 올 때가 됐다.

신선들은 바짝 긴장했다.

먼저 멀티플렉스 앞마당에 집채만 한 거대한 솥, 태상노군의 보패 선약정부터 설치했다.

귀곡이 당군악에게 물었다.

"독선, 공유창고 반짝임 지속 시간이 얼마라고 했소?"

"초반엔 극히 짧았지만 요즘은 꽤 많이 늘어서 약 20분 정도 반짝이오."

"20분이라, 노군, 선약정의 연단 시간을 빠르게 하려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선기를 불어넣어야지. 그럼 빨라져."

신선들이 이러는 이유.

선계와 지구 간의 배송 간격 때문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의미.

다음다음 배송에 보낼 게 아니라, 이번 배송에, 공유창고 반짝임이 끝나기 전에 바로 만들어 보낸다.

배송이 오자마자 정제 작업을 시작해 농축과 성형, 발생기 장착까지 완료한 후, 공유창고에 집어넣는 식으로.

시간 싸움이다.

그래서 다들 긴장하고 있었다.

하루라도 빨리 지구에 넘어가야 하지 않겠나.

"대체 비욘드 결정체는 언제 오는 거요?"

"허허, 재촉한다고 배송이 빨리 오나? 다 때가 되어야···,"

바로 그때!

찌르르르···,

"떴다!"

"떴어?"

"시작합시다."

당군악은 서둘러 공유창고에서 태주가 보낸 큼지막한 비욘드 결정체 3개를 꺼내 선약정 안에 넣었다.

"크기하고 형태는 이미 설정해놨으니 가열하기만 하면 될 거요."

작업반장 귀곡 선인의 지시 아래 선계의 모든 신선들이 선약정에 달라붙었다.

우우우우웅!

선기가 주입되자 파르르, 떨리기 시작하는 새까만 금속 솥.

"다들 힘내시오!"

"···끄응, 아직 멀었나?"

"이제 시작이오, 신선이 인내심이 없어!"

칙칙칙칙!

솥에서 김이 올라왔다.

불순물이 빠져나가는 현상.

10분이 흘렀다.

"됐나?"

"조금만 더!"

"끄응!"

"손만 슬쩍 올리고 게으름피우지 마시오."

"독선, 공유창고는?"

"아직 반짝이오."

지이잉! 찡! 찡!

치칙! 치치치칙!

선약솥이 굉음을 내며 진동했다.

"시간은?"

"5분 남았소."

"젠장!"

그때였다.

파아앗!

칙칙, 소리가 멈추고 장엄한 빛이 선약정을 감쌌다.

"됐다!"

"연단이 끝났어."

"서둘러!"

귀곡은 솥뚜껑을 열었다.

동시에 진하게 농축되어 크기가 주먹만큼 줄어든 비욘드 결정체.

넣을 땐 3개였지만 지금은 단 하나.

그리고 그걸 미리 만들어둔 발생기에 장착해서,

"빨리 공유창고에···,"

귀곡에게 받은 발생기를 공유창고에 집어넣는 당군악.

순간!

핏! 하며 빛이 꺼졌다.

"휴우, 간발의 차이군."

"하마터면 못 넣을 뻔했어."

"그럼 일주일 안에 지구로 넘어갈 수 있는 건가?"

"아마 더 빠를지도."

곧 지구로 간다.

그런데 누가 가지?

예상 인원 3명.

검선과 제천대성은 결정됐고, 독선은 넘어가지 않을 거니까, 나머지 한 자리가 남았다.

"내 미리 경고하겠는데, 지구로 가서 처놀 거면 넘어갈 생각은 하지도 마시오."

"맞아. 인당 비욘드 괴수 천 마리씩은 잡아야지."

"결정체 가지고 오면 몇 마리 잡았는지 알겠네."

"···걱정 붙들어 매시오! 싹 쓸어올 테니."

"그리고 우두머리 잡는 것도 잊지 말고."

천 마리야 금방 잡는다.

중요한 건 지구에 가서 뭘 하고 놀지, 미리 계획을 짜두는 것.

또한 다른 신선들도 기대감에 부풀었다.

선발대가 비욘드 마수들을 잡아서 결정체를 확보하면 자신들에게도 무조건 기회가 온다.

그래서 비욘드 마수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다.

소중한 에너지원들이니까.

< 생각보다 잘 낚인다. > 끝

ⓒ 꾸찌꾸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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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셋은 넘어갔지만 하나는···, >

삼한에 폭풍이 휘몰아쳤다.

제정원은 제국의 혼란을 꾀하는 비밀 조직들을 주워 담듯 검거했고, 군부도 숙청의 피바람이 불었다.

의회가 발의하려고 했던 일본 독립 세력 강제 이주 시한 연장 법안은 상임위를 통과하지도 못했으며, 기무라는 의원직을 사퇴했다.

사람들이 깨닫기 시작했다.

황제가 죽지 않고 뒤에 숨어서 이 모든 일들을 조종하고 있다는 걸.

황후들과 황자, 황녀들이 숨죽였던 이유가 있었다.

이 일과 관련한 자들은 모두 공포에 떨었다.

60년 동안 절대 권력을 행사한 패도의 황제.

대체 어디에 있을까?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이유가 뭐지?

또 무슨 일을 꾸미고 있길래.

"커헉!"

쿵!!!

황제가 삼백이가 휘두른 앞발에 맞고 지하 수련장 벽에 가서 처박혔다.

"니아앙?"

"제, 제기랄."

"니아아아···,"

비웃는 듯한 삼백이.

분한 눈빛으로 노려보는 황제.

한심한 표정으로 한숨을 푹 쉬어대는 금수호.

"어휴."

저럴 줄 알았다.

수련장에 처박혀 있느라 심심했던지,

황제는 영물이라 말이 서로 통하는 일이삼백이에게 고양이 상태에서 한번 붙어보자고 제안했다.

고양이 상태라면 이길 줄 알았나 보지?

아무리 크기가 작아져도 본체의 힘이 어딜 가나?

"쯧쯧, 그러게 왜 되지도 않는 대련을 하셔서는···, 크기가 작아서 만만할 줄 알았습니까?"

"닥쳐! 너도 같이 덤벼!"

"니앙!"

"제가 왜요? 전 아직 오래 살고 싶습니다만."

"네가 나보다 오래 살 것 같으냐?"

"바보짓만 안 하면 아주 오래오래 살 것 같은데요?"

"니아?"

할 말 없다.

그래도,

"아무튼 넌 나보다 오래 살 일 없을 거야."

"허허, 폐하께서 무슨 염라대왕이라도 되십니까? 사람이 가진 천수를 좌지우지하게?"

"난 사후세계는 믿지 않는다."

"그럼 뭘 믿는데요."

"전통을 믿는단다. 아주 옛날, 부여라는 나라에 존재했던 순장이라는 풍습 말이다."

"···."

"순장을 부활시켜야지. 넌 내가 죽으면 함께 무덤으로 들어갈 거야."

으드득!

금수호는 이빨을 깨물었다.

언젠가는 반드시 황궁을 탈출하겠다고 다짐했다.

바로 그때!

벌컥,

수련장 문이 열리면서,

"폐하."

"니앙!"

삼백이가 폴짝 뛰어서 태주 품에 안겼다.

"아까 쿵! 소리가 나서요, 무슨 일입니까?"

"···으음, 별거 아니네."

별거 아니긴,

가슴팍에 고양이 앞발이 찍혀있는 게 보이는데.

"이제 슬슬 황궁으로 돌아가셔야죠. 벌써 며칠째입니까?"

"조, 조금만 기다려주게.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라서."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 폐하께서 건재하다는 사실 말입니다."

"그거야 그렇지만,"

우물쭈물하면서 눈치를 보는 황제.

"이틀 정도만 더···, 이번에 들어가면 당분간 다시 나올 수 없을 것 같아서 말이야."

"그러세요. 대신 전 자리 비울 겁니다. 필요한 거 있으시면 서연씨에게 연락하시고."

"알았네."

태주는 다시 중국으로 가 볼 생각.

아직 처치하지 못한 비욘드들이 많다.

당연히 무한은 제외하고.

거긴 자신으로서도 조금 버거운 곳이다.

솔직히 자존심이 상한다.

지구에서 일어난 일을 왜 신선들에게 기대야 하나?

그들 덕분에 이만큼 컸으면 혼자서 처리해도 될 일을.

그래서 미안하기만 하다.

신선들은 지구로 놀러 오면 되는 것이다.

그저 편하게 지내다 가길 원했다.

고매한 선계의 신선들을 그깟 비욘드 마수 레이드에 동원하다니.

'그래도 맞이할 준비는 해야지.'

힘도 키워서 한 단계 더 성장하고.

혼자서도 잘 할 수 있게끔.

가까운 안휘와 강서성으로 먼저 가 보자.

비욘드 결정체도 확보하고.

※ ※ ※

원래 드래곤은 신(神)에 가장 근접한 생명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런 이유로 주신(主神)이 드래곤에게 명한 건 중간계의 균형자로서의 역할.

신이 직접 개입할 수 없는 상황에 드래곤이 대신 나서는 식이다.

반면 신과 가깝다는 특성은 드래곤의 한계이기도 하다.

가장 근접해 있지만 정작 신이 될 수 없는 존재.

수천 년, 심지어 만년까지 살 수 있는 긴 수명을 가졌음에도 언젠가는 결국 죽는다.

불멸의 권능은 애초부터 허락되지 않았다.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아둔하고 허약한 영혼과 육체의 벌레들이지만, 어이없게도 끝없이 성장하는 놈들이다.

놈들에겐 한계라고는 존재하지 않았다.

심지어 신격까지 획득하여 불멸을 영위할 수도 있다.

인간들에게 드래곤이 사냥당하는 일도 일어난다,

벌레만도 못한 인간에게 그런 치욕을 당한다고?

온당치 않은 일이다.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그래서 미테란 대륙, 블랙 드래곤 고룡이자 주신의 심부름꾼, 파타갤라온은 이 형벌 같은 속박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다 우연히 연결된 다른 세상의 같은 영혼.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도 까무러칠 일인데 같은 영혼이라니.

그것뿐인가?

자신의 같은 영혼은 드래곤이 아닌 인간이었다.

감히 인간 따위가 드래곤과 영혼이 같다고?

파타갤라온은 분노했다.

주신의 눈을 피해 금단의 마법인 차원 이동술을 창조해냈다.

그 후 또 한 번의 영혼 연결이 이루어진 틈을 타, 놈이 사는 세상으로 넘어갔다.

그런데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

영혼의 합침.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무시무시한 에너지.

몸이 터져나가는 듯했다.

물론 극복해냈다.

자신은 드래곤이니까.

폭발하는 에너지를 제어하고 같은 영혼을 성공적으로 흡수했다.

그런데 예상치도 못한 일이 일어났다.

순식간에 격이 상승한 것이다.

그제야 파타갤라온은 깨달았다.

영혼의 합침, 아니 영혼 포식.

그것이 신(神)을 향한 길임을.

또한 다른 차원의 영혼 연결자들도 이런 식으로 신격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음을,

두 번째로 포식한 같은 영혼이 바로 여기, 지구.

그러나 뜻하지 않은 사고로 거의 100년 이상 잠을 자야만 했다.

지금은 얼추 힘도 다 회복되어 활동에 들어갈 시간.

이제 뭘 할까?

'오랜만에 유희나 해야겠군.'

벌레들이 세운 문명이지만 이것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새롭고 재미있었다.

하지만 빌어먹을 공산당 놈들 때문에 제대로 즐겨보지도 못했다.

순순히 자신의 지배하에 들어왔다면 중국은 세계 최강국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그 알량한 권력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제 땅에다 핵무기를 날려?

다 자업자득이지.

'일단 중국은 망해버렸으니···,'

어디로 갈까?

폴리모프 마법을 이용해 인간의 형상으로 변신해서.

도착한 곳은 타이 왕국.

왕정 체제의 국가였다.

하지만 매우 열악한 나라.

'다른 곳은···,'

가까운 PC방을 찾았다.

현재 지구에서 강대국에 속하는 국가는 모두 3개.

삼한 제국과 유럽 제국, 그리고 아메리카 공화국.

이 세 나라 중 하나를 골라 지도자의 영혼을 잡아먹을 생각.

인간 세상에서 권력을 가지는 건 매우 중요하다.

뭐든 알 수 있고, 할 수도 있고, 어디든 접근 가능하니까.

영혼 포식의 권능은 굳이 같은 영혼이 아니더라도 가능하다.

어떤 영혼을 포식해도 된다.

격의 상승은 없지만 포식한 영혼으로 행세할 수 있다.

모습과 행동, 기억까지도 똑같은 인간이 되는 것.

'아메리카 공화국은 제외해야겠군,'

왕이 존재하지 않는 국가라 절대 권력을 행사하기 어렵다.

'그럼 유럽이나 삼한인데···, 응?'

희한하게도 각 제국의 황제들이 최근에 죽어버렸다.

죽은 이유도 심상치 않다.

'그건 나중에 알아보기로 하고.'

유럽 제국은 황제가 사망한 후 정상적인 승계 절차를 거쳐서 율리안 황태자가 황위에 올랐고, 삼한은 황태자도 없어 후계가 정해지지 않았다.

그럼 선택은 하나밖에 없다.

당연히 유럽 제국으로 가서 율리안을 삼켜야지.

※ ※ ※

유럽 제국의 황제 율리안은 야심한 밤임에도 불구하고 잠을 자지 못했다.

자신의 침소에서 서성이고 있을 뿐.

"후우···,"

정상적인 절차로 황위에 올랐지만 아버지께서 이루신 권력을 되찾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버지가 제국을 어떻게 통치했나?

유럽에서 가장 강한 마스터,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절대적인 물리력.

물론 나중에 각성자가 아닌 것으로 밝혀졌지만,

하지만 자신은 그에 미치지 못했다.

심지어 각성자도 아니었다.

다행히 아버지에게 오러심공을 전수 받아 마스터급 각성자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지만 문제는 재능.

전대 황제, 아버지의 발끝도 못 따라갔다.

황권을 위협하는 세력도 그걸 잘 알고 있고.

'인챈트 마법 공학만 내 손에 넣었어도···,'

대체 빈센트 그놈은 어디로 간 거지?

사하라 초원 지대에서 놈이 잠시 거주했을 거라 여겨지던 지하 벙커가 마지막 단서, 그곳마저도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고.

"제기랄! 뭐 하나 제대로 풀리는 게 없어."

그때였다.

스으으윽!

"헉!"

갑자기 생겨난 그림자.

누군가가 자신의 거처에 침입했다.

"누, 누구?"

"아직 애벌레구나. 벌레도 되지 못한."

율리안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무슨?"

"걱정하지 마라. 다 잘 될 거야. 오히려 고마워해야지. 넌 나의 일부가 될 테니까."

"으어어어,"

그리고 어둠이 율리안을 덮쳤다.

※ ※ ※

태주는 며칠째 옛 중국 땅 안휘성 마수 밀집지대에서 사냥 중이었다.

혼자 왔기 때문에 홀가분했다.

신경 쓸 일도 없고.

스우우우웅!

미리 준비해온 흑암철 주괴와 암기 10만 개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암기의 먹구름.

만천화우를 시전하기 전의 준비과정.

만천화우는 그 자체로 이미 완성된 무공이다.

그러나 태주에겐 완전치 않았다.

한번 시전하고 나면 독령이 바짝 마른다.

개인의 역량이 문제.

독령으로 제어할 수 있는 암기의 숫자도 늘려야 하고, 만천화우의 유지 시간도 더 길어져야 한다.

먼저 독령을 싹 비워낸다.

다시 차면, 또 비우고, 채우고, 비우고.

확실히 효과가 있다.

독령이 성장하는 것이 느껴진다.

스우우웅!

독령이 제어할 수 있는 암기의 숫자도 이제 11만 개.

점점 늘어나는 지속 시간, 비욘드 마수도 잡아냈고.

하지만 아직 충분치 않다.

'다음은 강서성으로 가 볼까?'

순간!

찌르르르,

머리에서 울리는 배송 신호.

"오!"

배송이 왔다.

하지만 아직 발생기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빨라야 다음 배송.

뭐, 그때까진 계속 힘을 기르면 되니까.

그런데?

"···어?"

공유창고에 들어있는 은빛, 직육면체의 금속 물건.

'발생기네?'

발생기가 왔다.

편지도 들어 있었다.

태주는 편지부터 읽었다.

내용은?

'···와! 엄청난 집념이구나.'

공유창고가 반짝이는, 그 짧은 시간에 비욘드 결정체를 정제하고 박아넣어 배송을 보냈다고?

정말이지 신선들에겐 불가능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어쩔 수 있나?

응답해 줘야지.

쐐애애애액!

만리비검을 타고 날아가,

안개가 짙게 깔린 폐허 도시 무한의 경계 지역에서.

화아아아악!

태주가 영혼 매개 거울 차원 게이트 발생기를 작동했다.

지이잉,

생겨나는 거울 게이트.

치칙! 치치치치치치치···,

빛의 사슬이 태주를 옭아맸다.

"흡!"

발생기에 장착된 에너지원이 강해서 그런지, 예전과 달리 잘 끊어지지 않은 사슬.

그렇지만,

"흐읍!"

요 며칠 태주도 성장했기 때문에,

후두두둑!

어렵지 않게 끊어내고야 말았다.

※ ※ ※

선계(仙界).

과연 게이트가 언제 열릴까.

이것이 신선들의 초관심사.

검선과 제천대성이 당군악의 좌우에서 거들먹거리며 발걸음을 옮겼고, 그 뒤를 귀곡이 따라갔다.

이들이 넘어갈 대상자들.

당군악이 심사숙고해서 선정했다.

무력으로서 따라올 자가 없기에 전투 전담으로써의 검선과 제천대성.

머리 좋은 귀곡은 무한의 비욘드 무리가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한 조사를.

검선이 제천대성에게 물었다.

"원숭아, 수련은 많이 했느냐?"

"열심히 연습했소."

"그래, 확인해 보자꾸나."

제천대성이 정신을 집중하자,

우끼기기긱!

배달을 멈추고 몰려드는 분신들.

"자, 후원이 1만 원 들어왔다, 그럼?"

"인사만 하면 되오."

"후원 보낸 이의 닉네임도 호명해야 해. "

검선이 이기어폰으로 움직이는 스마트폰 카메라 렌즈를 향해 분신들이 꾸벅 인사했다.

"3만 원 후원은?"

"공중제비 3바퀴."

휙, 휘리릿!

분신들이 허공에서 3바퀴를 돌고 착지했다.

"5만 원은?"

"···춤을 추면 되오."

"맞다. 하지만 오와 열을 맞춰서 절도 있게, 하나라도 동작이 틀리면 안 돼. 5만 원 후원은 그만큼 컨텐츠에 만족했다는 뜻이고, 나름 성의를 최대한 표시한 거니까."

"명심하겠소."

당군악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허어, 저자들을 그대로 보내야 하나?'

수련했다더니 비욘드 때려잡는 연습이 아니라 라이브 방송 후원 리액션 준비였다.

"마지막으로 10만 원 이상은?"

"세 파트로 나눠서 한쪽은 인사, 한쪽은 공중제비, 나머지는 춤."

"박자가 착착 맞아야 하느니라."

"걱정하지 마시오."

환장하겠다.

이미 정해진 걸 물릴 수도 없고.

그런데 바로 그때?

"음?"

표정이 달라지는 당군악.

"느낌이 왔소?"

"그렇소. 슬슬 준비하지."

우르르르, 신선들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고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존재들이기에 절대 가까이 오지 말라고 당군악이 미리 단속해뒀기 때문이다.

"열렸어?"

"곧 열린다네."

"이제야 넘어가는군."

화아아아악!

지이잉,

게이트가 열렸다.

후두두둑!

다소 강한 빛의 사슬이지만 당군악은 단번에 끊어냈다.

동시에 자신도 멀찍이 물러났다.

발을 헛디뎌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면 큰일이니까.

"그럼 다녀오겠소이다."

"잘들 놀고 계시오."

"이만,"

검선과 제천대성, 귀곡이 차례로 게이트를 통해 넘어갔다.

"갔네."

"갔구만."

"후우, 난 언제 가나?"

"곧 기회가 오겠지."

"난 검선이 제일 얄밉소. 벌써 두 번이나···, 어?"

주선이 멍하니 입을 벌리며 손가락으로 게이트를 가리켰다.

"무, 무슨?"

"오!"

"저건?"

"서, 설마?"

예상 인원 3명이었다.

3개의 비욘드 결정체를 압축해서 에너지원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3명이 넘어갔다.

그런데 아직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게이트.

즉, 누구든 또 넘어갈 수 있다는 의미.

"저저저!"

"내, 내가···,"

"어림도 없소."

곤륜 선인이 운룡대팔식으로 하늘 위로 솟구쳤다.

"어딜!"

삼봉 선인이 제운종으로 곤륜의 발목을 잡아챘다.

그 틈을 노려 빠르게 달려 나가는 매화 선인, 그러나 쿠르르릉! 난데 없이 나타난 흙벽에 막혀 좌절됐고.

"놓으시오! 바지 벗겨진다고."

"아악! 누가 내 머리채를 잡아?"

"으악! 거, 거긴···,"

우당탕탕, 달려 나가고 막히고, 잡아끌고, 뿌리치고, 그 대환장의 난장판에서.

저벅저벅,

누군가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게이트로 걸어갔다.

"···어?"

"자, 잠깐,"

"멈추시오!"

황천계의 지배자.

죽음과 전생을 관장하는 신(神).

바로 염라였다.

"씨발!!!"

"아, 안 돼!"

염라는 신선들의 절규를 무시하고 게이트를 넘었다.

스우웅!

그리고 게이트가 닫혔다.

※ ※ ※

지구로 당도한 염라.

'흠, 여기가 지구인가?'

저 멀리 보이는 폐허의 도시.

앞으로 달려 나가는 태주 대협과 검선, 제천대성, 귀곡.

자신도 발을 옮기려는 순간!

"응?"

드드드드드드득!

지축이 흔들렸다.

"아!"

우우우우우우···,

주위의 기운이 소용돌이쳤다.

마치 세상이 망하기라도 할 것처럼.

점점 가혹하게 변하는 주위 환경.

'안 되겠군.'

아직은 때가 아니다.

자신이 강림한 탓에 지구의 질서가 흔들리고 있었다.

스팟!

결국 염라가 사라지고 말았다.

그가 지구에 머무른 시간은 고작 5초도 안 됐다.

※ ※ ※

다시 선계.

졸지에 염라에게 기회를 빼앗긴 신선들은 망연자실했다.

"뒤통수 세게 맞았군."

"이럴 줄은 몰랐어."

"과연 교활한 황천계요."

"두목이 저러는데···"

그 순간!

스팟!

선계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염라.

"헉!"

"허허,"

"뭐야?"

"왜 다시 왔소?"

신선들의 의문에 염라가 답했다.

"쫓겨났네. 아직은 때가 아닌가 봐."

부들부들,

몸을 떨며 분노하는 신선들.

"씨발! 이럴 거면 왜 들어갔소?"

"당장 물어내!"

"책임지시오!"

"새치기는 지구에서도 사형이야!"

염라는 그저 머리를 긁적일 뿐이었다.

< 셋은 넘어갔지만 하나는···, > 끝

ⓒ 꾸찌꾸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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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한대전(1) >

태주는 영혼 매개 거울 차원 게이트 발생기를 작동하고 나서 잠시 뒤로 빠져있었다.

지이이잉.

게이트에서 넘어온 3명의 존재들.

'오셨구나.'

먼저 이번이 두 번째 지구 방문인 검선.

"염치없지만 또 왔네. 너무 자주 온다고 타박만 하지 말아주시길."

"오세요. 또 오세요. 계속 오세요."

"그러고 싶지만···, 한 번 더 오면 신선들이 날 찢어 죽이려고 할걸?"

"에이, 그럴 리가."

"진짜라니까."

귀곡 선인도 왔다.

"몸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머리 쓰는 것도 못지않게 중요하다오."

"당연한 말씀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언제 오시나 많이 기다렸습니다."

"···정말이오?"

"거짓말 아닌 거 잘 아시잖아요."

"확인차 물어본 거지. 사실 내가 필요 없다고 할까 봐 조마조마했거든."

"설마요!"

그리고 제천대성.

일전에 천도 복용으로 임시 등선했을 때, 서로 인사를 나눈 적 있다.

그때 다짜고짜 사과부터 해와서 조금 당황했었는데.

"또 뵙겠습니다. 요괴들은 제가 다 알아서 처리할 테니 염려 붙들어 매시고 편안하게 즐겨주시길."

그러더니 자신의 가슴팍에 난 털을 부욱 뜯어서,

후욱!

요기를 불어넣고는 태주에게 내밀었다.

"아무리 요괴들이 하찮다 해도 그 수가 제법 많으니 곤란한 일이 생기면 이걸 사용해주십시오."

"···이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직 무한창고에 많이 있어요."

"넣어두십시오. 혹시 모르니까요."

어쩔 수 없다.

챙겨두는 수밖에.

태주는 검선에게 물었다.

"이번에도 라이브 방송을 하실 거죠?"

"아, 안 되는가? ···역시 무리겠지? 내가 분수도 모르고 너무 설쳐댔군."

검선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러나 태주는 신선놀음을 방해할 생각이 없다.

오히려 권장했으면 했지.

"천만에요. 마음껏 하세요. 다만 쌓인 후원금은 꼭 챙겨가시라고."

"맞다. 후원금! 깜빡 잊었군. 감사하네."

"그런데 제천대성님은 방송 안 하세요?"

"···어, 지구에서 쓸 스마트폰이 없어서."

"하나 드릴까요? 계정 가입까지 다 완료된 것이 있는데."

"헉!"

제천대성은 놀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검선에 의지하지 않은 자체 독립 방송이라니.

못할 것이 있나?

선계에서 가장 많이 연습한 것이 영상 촬영이다.

"주, 주시면 감사히 쓰겠습니다."

"네! 여기."

반면 검선은 못마땅한 표정,

강력한 경쟁자가 생겼다.

제천대성은 지구에서도 엄청난 팬을 보유한 유명인사.

'쯧쯧, 개나 소나···, 아니 원숭이로군. 아무튼 이놈보다 시청자 수가 적으면 망신인데.'

하지만 걱정 없다.

원숭이가 하면 얼마나 한다고,

게다가 초보 아닌가?

그러자 귀곡 선인도.

"난 없소?"

"왜 없겠습니까? 당연히 있죠."

"흐흐흐, 나도 방송이나 해 봐야겠군."

태주도 독자적으로 움직일 예정이다.

물론 방송할 생각은 없다.

촬영하는 스마트폰이 3개일 텐데, 굳이?

찍히고 싶지 않아도 찍힐 수밖에 없고.

"자, 갑시다. 빨리 처리하고 놀아야지."

말이 끝나자마자 태주와 귀곡, 검선과 제천대성이 앞으로 달렸다.

그런데 바로 그때!

드드드드드드득!

지진이라도 난 것마냥 흔들리는 지표면.

우우우우우우웅!

대기가 흔들린다.

폭풍이 밀어닥쳤다.

해가 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늘이 어두워졌다.

발걸음을 멈추는 태주 일행.

뒤를 돌아보니.

"응?"

"뭐야?"

"···염라?"

체구가 제법 커서 멀리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대추빛 붉은 얼굴에 시커먼 송충이 눈썹, 수북한 검정 수염.

스팟!

다행히 염라는 금방 사라졌다.

"지금 땅이 흔들리고 하늘이 어두워졌던 현상이 염라 때문인가?"

"아마도 그럴 거요."

"저 양반 하나 넘어왔다고 세상이 이렇게 돼?"

"그야 염라니까."

"근데 왜 우린 아무 일 없소? 내가 염라보다 못한 게 뭐 있다고!"

검선은 어리둥절한 표정.

귀곡 선인이 한심하다는 듯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검선이야 칼질 잘하는 거 빼면 뭐가 남소?"

"···없지."

"나도 남들보다 머리가 좋아 진식이나 술법에 통달한 신선에 불과하고, 원숭이는 사고나 치고 다니는 대 요괴, 그게 우리의 전부요."

"···."

기분 나쁘지만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허나 염라는 법칙의 주재자지. 그가 있어 저승이 있고 지옥이 존재하며 인간의 혼백이 환생한단 말이오."

"흐음."

"그래서 문제가 생긴 거요. 지구에도 엄연히 질서가 있는데···,"

"다른 세상의 법칙이 지구의 법칙과 충돌한 거다?"

"그렇소. 우리가 쑥쑥 넘어가니 자기도 괜찮은 줄 알았나 보오."

염라는 단순히 강하다, 약하다로 판단되어선 안 되는 존재.

한마디로 그는 한 세계의 신(神)이다.

격이 다르다는 말.

"법칙의 충돌이라, 지구에 문제없을지 모르겠군."

"아무리 짧은 시간이라고는 하나···, 문제가 생길 수도 있을 거요."

"무슨?"

"그야 나도 모르지. 뭐, 세상이 잘못될 만큼의 큰일은 아니겠지만."

"휴우, 비욘드 요괴가 아니라 염라가 지구를 멸망시킬 뻔."

태주도 고개를 갸웃했다.

염라가 그 정돈가?

선계에서 봤을 땐 그저 사람 좋은 털북숭이 아저씨처럼 보였는데.

"그런 의미에서 태주 대협과 독선도 염라에 비견될 만하지."

"네? 전 그냥 인간입니다만."

"그대들의 능력으로 차원의 법칙에 개입했잖소. 물건과 물건이 서로 교류하고, 덕분에 선계의 존재가 세상으로 넘어올 수 있었고,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인가?"

"아···,"

검선과 제천대성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태주와 독선, 그 둘이 없었다면 이런 세상이 있다는 걸 알지도 못했을 것이다.

"어쨌든 이제 시작합시다."

안개가 짙게 깔린 폐허 도시 무한.

스윽, 스윽, 스으윽.

안개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가 감췄다 하는 비욘드 마수들.

스스스스슷!

검선이 강기의 무형검을 만들어냈다.

더불어 이기어폰으로 움직이는 스마트폰도.

제천대성도 몸을 털었다.

부르르르,

우수수수,

떨어지는 털이 분신체로 변신했다.

동시에 분열 시작.

펑! 펑펑펑! 펑펑펑펑펑펑!

간접적으로 불러내는 분신보다 더 크고 더 강한 그들.

태주도 다른 방향으로 달려 나갔다.

쑤슝! 쓔슈슈슈슈슛!

무한공간에서 암기가 쏟아져 나왔다.

하늘엔 먹구름이 두텁게 만들어졌다.

※ ※ ※

그 시각.

삼한 제국 뉴서울 황궁 언론 브리핑실.

갑자기 기자 회견이 예정됐다.

중대 발표를 하려는 모양, 그러나 내용이 무엇인지 사전에 알려지지 않았다.

황궁 대변인의 본격적인 발표 전, 기자들이 현 시국에 대해 질문하고 있었다.

"기무라 의원이 전격 사퇴한 배경에 정부의 개입이 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글쎄요. 한 가지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정부는 선출직 의원을 사퇴시킬 권한이 없습니다."

"후지 그룹 부도 및 인수 과정에서 특혜가 있었다는 것에 대해서도 한 말씀 해주십시오."

"자꾸 썰만 가지고 이야기하지 말고 정확한 취재 팩트가 있으면 기사로 쓰세요. 물론 허위보도에 대한 책임은 지셔야 할 겁니다."

"현재 일본계 국민에 대한 처우가 너무 가혹한 건 아닙니까? 민족 차별이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차별이라뇨?"

"갑자기 일본 열도에다 나라를 만들어 독립하라고 쫓아내면···,"

"독립은 그들의 선택입니다. 누가 칼 들고 독립하라고 협박한 것도 아니고."

황궁 대변인은 민감한 질문들이 나오자 강한 어조로 반박했다.

사실 기자들은 이런 질문은 하고 싶지도, 할 생각도 없었다.

진짜 중요한 질문을 하기 위한 예열과정이라고나 할까.

"저어···,"

기자 한 명이 손을 들었다.

"말씀하세요."

대변인이 질문해도 괜찮다는 제스처를 취하자,

"···폐하께서 서거하셨다는 사실이 맞습니까?"

"왜 그런 질문을 하시죠?"

"어어, 루머인지 모르겠지만 폐하께서 살아계신다는 말이 돌고 있습니다."

"그런가요?"

"네, 그래서 이 기회에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황궁 대변인은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사실 오늘 발표할 부분도 그에 관련된 겁니다."

"···네?"

"발표를 시작하겠습니다."

조용해지는 회견장.

"먼저 폐하께서 비욘드 마수를 정벌하기 위해 중국 땅으로 가신 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금수호 비서관도 동행했고요."

"···아! 그럼 어, 어떻게?"

"저 대신 직접 설명해 주실 분을 모시겠습니다."

벌컥!

회견장 뒷문이 열렸다.

"모두 일어나 주십시오. 황제 폐하께서 입장하십니다."

벌떡, 벌떡, 벌떡···,

경악한 표정으로 일어나는 기자들.

진짜였다.

금수호 비서관이 앞장을 섰고, 그 뒤를 황제 류태현이 따라오고 있었다.

촤촤촤촤촤촥!

연속적으로 터지는 플래시.

황제가 살아있다.

금수호 비서관도.

삼한이 또 한 번 발칵 뒤집어질 대사건.

누군가는 이미 스마트폰으로 속보를 전송했고, 인터넷에선 실시간으로 기사가 올라갔다,

황제가 카메라 플래시를 온몸으로 받으며 회견장 단상에 섰다.

형형한 눈빛으로 좌중을 돌아본 후, 천천히 입술을 뗐다.

"다들 놀란 것으로 안다. 당연하다. 죽었다고 여겼던 자가 살아 돌아왔으니 그럴 만도 하지, 하지만 이래야만 하는 필연적인 이유가···,"

그때였다,

띠링, 띠링, 띠링···,

회견장 사방에서 울리는 스마트폰 알림음.

기자들이 슬쩍 곁눈질로 폰 화면을 확인했다.

"어?"

"헉!"

"으음."

"···정말?"

기자들은 황제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저 스마트폰에만 눈을 고정하면서,

"링크 떴어?"

"어! ···그런데 3개인데."

"3명이 동시에 방송한다고?"

황제는 당황했다.

아니, 죽은 줄만 알았던 삼한의 황제가 다시 돌아왔다는데 반응이 왜 이래?

기자뿐만이 아니었다.

황궁 대변인도, 금수호도, 스마트폰만 바라봤다.

'내 생환보다 더 놀랄 일이 뭐가 있다고?'

어처구니없다.

자신은 아예 관심 밖이었다.

"수호야, 무슨 일인지···,"

"자, 잠깐만요."

스마트폰을 꺼내 확인하는 금수호.

"뭐냐? 말을 하라고."

"무한···,"

"무한 뭐? 무한동력? 무한리필? 무한도전?"

황제의 재촉에 금수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굳이 말하자면 무한대전이겠네요."

"응? 무한대전이라니?"

"호북성 무, 무한에서 비욘드 마수 레이드 라이브 생방송이랍니다."

뭐라고?

※ ※ ※

메가 로마.

유럽 제국의 황궁이 있는 도시다.

매일 매일 빠지지 않고 열리는 황궁 어전 회의.

당연히 율리안 황제도 참석했다.

유럽 제국도 입헌 군주제를 채택하고 있어 의회도 존재하고, 총리도 있다.

예전엔 알렉스 카이사르의 강력한 전제 정치로 의회와 내각은 황제의 꼭두각시나 다름없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율리안은 선황에 위세에 미치지 못하는 나약한 황제.

의회의 입김은 더 강해졌고, 정치 권력 지형에서 총리의 지분도 커졌다.

총리대신, 프란츠 울리히는 유럽 최고의 마스터급 각성자.

알렉스 황제가 죽은 이상 자신보다 강한 각성자는 없다고 항상 자부해왔다.

그래서 근위 각성군의 규모를 확장하겠다는 율리안 황제의 뜬금없는 말에 프란츠 울리히는 황당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근위 각성군은 오직 황제의 명령만 듣는 군사 조직.

황권 강화를 도모하려는 의도.

하지만 의회와 내각이 그걸 받아들일 리 있나.

"폐하, 각성자 상비군을 유지하는 데 엄청난 예산이 소모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계시리라 믿사옵니다. 게다가 근위 각성군이라니요? 황가의 권위는 무력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부작용이 일어날까 두렵습니다."

프란츠 울리히 총리는 단호한 어조로 율리안 황제의 결정을 반대했다.

돌려 말했지만 협박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가 말한 부작용이 뭐겠나?

자꾸 이러면 황권 제한할 수도 있다는 의미.

"총리 개인의 뜻인가?"

"국민의 뜻입니다."

"언제 국민들에게 물어보기라도 했고?"

"전 의회를 책임지는 총리입니다. 그리고 의회는 국민들에 의해 선출되지요."

"그렇군."

프란츠 총리는 내심 율리안 황제를 비웃었다.

'애비의 발끝에도 못 미치는 쭉정이 주제에···,'

현재 유럽의 황가보다 자신의 세력이 더 강하다.

지금 열리는 어전 회의에도 자신의 각성 경호원들을 데리고 참석했다.

현재 프란츠 울리히의 권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알렉스가 황제였을 땐 꿈도 꾸지 못했지만,

율리안도 피식 웃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율리안을 집어삼킨 파타갤라온.

기세등등한 프란츠를 노려보며 스산하게 읊조렸다.

"그럼 의회만 사라지면 되는 건가?"

"···네?"

"총리부터 시작하지."

"무, 무슨?"

순간!

서걱!

"끅?"

프란츠의 몸통에서 목이 분리됐다.

알렉스 황제 사후, 가장 강하다는 유럽의 각성자가 말이다.

율리안 황제가 어떤 식으로 손을 썼는지 그 누구도 보지 못했다.

빛이 반짝였고, 바닥엔 이미 프란츠의 목이 데굴데굴 굴러다녔다.

"이, 이런!"

"초, 총리님!"

"왜, 왜?"

율리안은 멈추지 않았다.

그저 손을 들어 허공에서 한번 휘저으니 누군가의 목이 떨어졌다.

서걱, 서걱, 서걱···,

툭! 툭! 툭···,

저항도 불가능했다.

순식간에 어전 회의 중인 고위 관료들과 의회 의원, 군부 인사들, 절반이 죽어 나갔다.

"으아아!"

"사, 살려···,"

"제발! 제, 제발!"

율리안이 무심한 어조로 말했다.

"반대하는 자, 또 없나?"

대답이 나올 리 없었다.

"명심, 또 명심하라. 화근은 혀뿌리에서 나오는 법, 무너진 황가의 권위를 바로 세우기 위해 짐은 무슨 일이든 할 것이다."

공포에 부들부들 떠는 유럽 제국의 관리들.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언제 저렇게 강해졌지?

아니면 원래 강했던 걸까.

바로 그때!

띠링!

어전 회의장에서 울리는 스마트폰 알림음.

"누구냐? 누가 스마트폰 소릴 내었는가?"

그나마 용기가 있는 관리 한 명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죽은 프란츠 총리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 네가 대신 확인해보아라."

관리가 율리안 황제의 명에 따라 스마트폰을 확인했는데.

"···?"

멈칫!

얼어붙은 듯 스마트폰만 멍하니 쳐다봤다.

"뭐냐?"

"지, 직접 보셔야 할 것 같사옵니다."

"이리 가지고 오너라."

그리고 율리안으로 변한 파타갤라온은 눈을 부릅뜨면서 경악하고야 말았다.

프란츠는 누군가의 라이브 채널을 구독하고 있었던 모양.

지금 방송이 시작됐다는 알림음이었다.

그런데 제목이···,

'호북성 무한 비욘드 마수 밀집지대 레이드 라이브 방송?'

진짜?

장난하나?

이건 생각할 필요도 없이 새빨간 거짓말이다.

'누가 감히 내 둥지를 거짓 방송의 소재로 삼는단 말인가?'

파타갤라온은 링크를 타고 라이브 방송 채널로 들어갔다.

동시에 목격하고야 말았다.

'어어어···,'

중국 땅 무한.

수천 마리의 가디언과 마법진으로 철통같은 방어를 해둔 자신의 둥지.

그곳이 유린당하고 있었다.

한 명의 노인에게 말이다.

'대체 뭐지?'

파타갤라온은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지구에 자신보다 강한 존재가 있었다고?

'그때 그 노인은 아니야.'

자신이 저기 있었다면?

'이길 수 있을까?'

자신할 수 없었다.

유럽 황궁 관리들도 스마트폰을 꺼내, 몰래 확인했다.

순간!

누군가의 입에서 나온 한마디.

"···제, 제천대성."

뭐?

무슨 말도 안 되는···.

< 무한대전(1) > 끝

ⓒ 꾸찌꾸찌

=======================================

< 무한대전(2) >

검선의 강기 무형검이 무한의 하늘을 수놓았다.

지상엔 수십만 마리의 제천대성 분신체들이 발 디딜 틈도 없이 빼곡하게 모여 명령만 기다리고 있었다.

"원숭아!"

"왜 그러시오?"

"쉬엄쉬엄하거라. 방송이 너무 빨리 끝나면 시청자들이 실망할지도 모르니."

"적당히 조절하겠소."

하지만 검선의 속내는 다르다.

원숭이가 너무 나대면 자신의 방송에 문제가 생긴다.

될 수 있으면 놈이 튀지 않는 것이 최선인데.

방송은 자신이 주가 되어야 한다.

원숭이는 방송을 맛깔나게 만드는 양념에 불과해야 한다.

그렇게 계획하고 왔다.

어쨌든.

"자, 슬슬 시작해볼까?"

안개 가득 낀 폐허 도시 무한의 경계에서,

검선과 귀곡, 제천대성이 생방송 시작 버튼을 눌렀다.

띠링!

[라이브 방송을 시작합니다.]

망해버린 중국 땅은 금지(禁地)였다.

각성자의 힘으로도, 현대 과학의 무기로도 어찌할 수 없는 국가 재해급 비욘드 마수들이 곳곳에 깔린 땅.

지금까지는 그저 정찰기를 보내 비욘드 한 마리마다 식별 번호를 붙여 놈들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것이 최선.

게다가 정찰조차 안 되는 호북 무한은 중국에서도 미지의 영역.

무한에 뭔가 있다는 심증은 있었지만 그게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다.

그런데 무한 비욘드 마수 레이드 라이브 방송이라니.

일단 제목만으로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반신반의했다.

접근하기도 힘든 무한에서 비욘드 레이드라니.

강하기로 소문난 삼한의 황제도 비욘드를 상대하다가 죽었다.

맞다.

이건 낚시 방송이 분명하다.

하지만 라이브 방송의 주체.

그가 누군가?

바로 기절초풍한 무력으로서 지구에서 가장 강한 영혼 연결자로 확실시되는 너튜브 스트리머 동빈이었다.

또한 최단기간 20억 뷰를 기록한 사하라 초원 게이트 괴수 레이드 영상의 주역이고.

그의 채널을 구독하고 알림 설정까지 한 시청자들이 제일 먼저 채널에 입장했다.

띵, 띵, 띵, 띵, 띵···,

물밀듯이 들어오는 시청자들.

- 동빈러브님이 채널에 입장하셨습니다.

- 흥미찐찐님이 채널에 입장하셨습니다.

- oldsun님이 채널에 입장하셨습니다.

- 찰진동빈궁뎅이님이 채널에 입장하셨습니다.

- user78478님이 채널에 입장하셨습니다.

.

.

.

검선이 신이 난 목소리로 시청자들을 환영했다.

"어이쿠! 형님들, 그동안 잘 있었소? 새로운 컨텐츠로 만나 뵙게 되어서 얼마나 기쁜 줄 모르겠구려."

└ 와! 동빈님 맞구나!

└ 또 오셨다.

└ 여기 무한 맞아?

└ 위치 정보 떴다. 확실해. 중국 땅 무한이야.

└ 영감님! 이번에도 기대 많이 하고 있습니다.

"단단히 준비하고 왔소. 기대해도 좋을 거요."

방송이 시작도 안 했는데 후원이 쏟아져 들어왔다.

띵띵띵띵···,

"허허허, 왜 그리 급하신지, 아직 보여준 것도 없는데."

흐뭇하다.

이미 성공한 거나 마찬가지인 라이브 방송.

그때!

채팅창에 누군가가 쓴 글 하나가 올라왔다.

└ 근데 라이브 채널이 이거 말고도 더 있어.

└ 응? 더 있다고?

└ 잠깐, 지금 확인하고 있···, 헉!

└ 뭐야? 뭔데 호들갑이야.

└ 제천대성이다. 씨발! 이게 꿈이냐?

└ 제천대성? ···손오공?

채팅창이 난리가 났다.

└ 미친! 제천대성이 여의봉을 들고 근두운에 탔다아아아아!!!

└ 구라치지 마!

└ 거짓말이면 내 손모가지 건다.

└ 어, 어디? 채널 이름이 뭐야?

그 여파는 검선의 라이브 채널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다.

- 오타황제님이 채널에서 나가셨습니다.

- 흥미찐찐님이 채널에서 나가셨습니다.

- 버프주세욤님이 채널에서 나가셨습니다.

- 풀소유님이 채널에서 나가셨습니다.

- 동빈러브님이 채널에서 나가셨습니다.

.

.

.

이렇게 되자 다급해진 검선.

"아, 아니, 왜? 나, 나가지 마시오."

그도 채팅창 글을 읽었다.

제천대성 출현.

아뿔싸!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다가왔다.

"나, 나가지 말라니까, 워, 원숭이보다 자, 잘할 수 있소! 믿고 보시···,"

그러나 시청자들은 들어온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빠져나갔다.

"아아아."

검선의 눈빛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등선 이전과 이후를 통틀어서, 그가 겪었던 수많은 위기 중에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위험했다.

그래도,

'포기하면 안 돼.'

여기서 굴복할까 보냐?

그럴 거면 애초에 시작도 안 했다.

검선의 얼굴이 결의로 가득 찼다.

'해보자. 원숭아!'

휘리리릿!

이기어폰으로 시전하는 스마트폰이 하늘을 날았다.

검선이 만들어낸 강기의 무형검이 찬란한 빛을 뿌리며 셀 수도 없는 숫자로, 이곳저곳에서 존재감을 과시했다.

원숭이 이름값은 인정한다.

하지만 방송은 이름이 다가 아니다.

세련된 진행과 현란한 카메라 워킹, 그리고 적절한 리액션.

이 모든 것이 조화롭게 이루어진 종합 예술이다.

감히 요괴 따위가 신선의 컨텐츠 장악력을 따라올 리가,

일단 영상은 어떻게 찍을 건데?

한 손엔 카메라 들고, 또 한 손은 여의봉 들고···,

이러면 촬영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

그렇지만,

"···제길!"

깜빡 잊었다.

원숭이 새끼는 혼자가 아니었다.

"끼기기기긱!"

100여 마리의 분신체로 이루어진 스마트폰 촬영팀.

카메라를 든 분신체를 손으로 받쳐 올려서 높이 세우고 촬영하고 있었다.

본체 제천대성의 움직임을 중심에 놓고, 최적의 거리와 각도에서 영상에 담아냈다.

사실 처음엔 제천대성도 당황했다.

'방송이라,'

그로선 처음 해보는 시도.

'잘할 수 있을까?'

요괴들 때려잡는 거야 일도 아니다.

편하게 다리 꼬고 누워서 길어진 여의봉으로 툭툭 두드리기만 해도 끝난다.

문제는 방송.

검선의 이기어폰을 무슨 수로 당해내지?

하지만 곧 묘안이 떠올랐다.

자신은 단수(單數)가 아니다.

특별하게 요기를 많이 불어넣은, 최정예 분신 100마리에게 스마트폰 촬영이라는 가장 중요한 임무를 맡겼다.

"가자!"

여의봉을 꼬나쥐고 무한으로 진입하는 제천대성.

그 뒤를 따르는 분신체 촬영팀.

"우끽!"

방송을 막 켰을 땐 사람이 거의 없었지만···,

검선의 채널에 입장하기 어려웠던 소수의 시청자들이 제천대성의 라이브 채널에 입장했다.

└ ?

└ ??

└ 뭐야?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게 맞아?

└ 흐음, 전에 봤던 벌거숭이 황금 원숭이와는 달라. 이 원숭이는 갑옷을 입었네.

└ 머리도 봐.

└ 긴고아?

└ ···찐 제천대성이라고?

└ 에이, 말도 안 되지.

└ 여의봉도 있네. 저건 또 어디서 만들어 온 거야?

그리고 커뮤니티에 소문이 돌았다.

앞다투어 입장하는 시청자들.

채팅창에 글이 마구마구 올라왔다.

└ 오오! 손오공이다! 분신들도 왔다.

└ 지, 진짜 제천대성이 실존 인물이라고?

└ 분장이겠지.

└ 크크크, 그걸 믿었냐? 순진하기는,

└ 여의봉도 소품인가?

└ 나도 그렇게 생각함. 의외로 분장이 정교하네.

└ 맞아. 거의 똑같아. 꼬리 움직이는 거 봐봐.

하지만 제천대성이 근두운을 소환하자,

└ 어?

└ ···저, 저거?

└ 설마?

└ 미친!

└ 맞아?

└ 근두운이다! 근두운이야.

└ 세상에!

근두운 등장.

채팅창이 폭발했다.

스웅!

높게 띄울 필요가 없다.

지면에서 1미터 정도만 띄웠다.

어차피 지상에서 싸울 생각.

본격적인 전투에 나서기 전, 제천대성은 슬쩍 고개를 돌려 스마트폰 화면을 확인했다.

└ 씨발, 누가 분장이라고 헛소리했어?

└ 뭐라고 할 말이 없다. 실제 제천대성이라니.

└ 내 이럴 줄 알았어. 그전에 나타났던 황금원숭이는 예고편이었던 거야.

└ 손오공! 만세!

└ 제천대성님이 날 보셨어!!!

└ 사랑합니다!

└ 죽어도 여한이 없다.

제천대성은 히죽 미소를 지었다.

'내가 이렇게 인기가 많았나?'

뭐, 짐작은 하고 있었다.

자신을 모티브로 한 2차 저작물을 선계에서 지겹도록 찾아봤으니까.

그러나 실제로 체감하는 기분은 남달랐다.

이렇게 기분 좋을 수가.

검선이 왜 방송에 목을 매다는지 이해가 됐다.

그러나,

'이크!'

곁눈질로 본 검선의 표정.

질투로 가득 찬 눈빛,

안 되겠다.

자중해야지.

귀곡도 다 계획이 있었다.

이기어폰으로 생생하고 박진감 넘치는 영상을 만들어내는 검선, 원래부터 인기가 있었던 제천대성.

자신은 그 둘에 비할 바가 아니다.

하지만 검선과 제천대성을 동시에 화면에 담아낸다면?

자신의 채널에만 죽치고 앉아있어도 둘 다 볼 수 있으니 옮겨 다닐 필요가 없다.

이것이 귀곡의 경쟁력이다.

방송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폐허 도시 무한에서 그 실체를 드러내 보이는 비욘드 마수들.

사람들이 숨죽였다.

└ 맙소사!

└ ···한 놈이 아니네?

└ 너무 많다.

└ 뭐, 뭐야? 대체 몇마리야?

└ 저게 다 비욘드?

└ 으음, 하, 하늘을 봐.

└ ···씨발!

└ 저런 것들이 무한에 있었다고?

실로 압도적이었다.

침입자가 쳐들어오자 안개 속에서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각양각색의 변종 용들.

시청자들은 경악했다.

무한에 뭔가 있을 거라는 소문을 들었지만 이런 건 상상도 못 했다.

한 마리만 출현해도 국가 하나를 멸망시킬 수 있는 마수가 바로 비욘드 아닌가.

└ 하아, 욕이 저절로 나오네.

└ 자, 잡을 수 있을까?

└ 제목이 레이드잖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찍고 있겠지.

└ 으음···,

하지만 시청자들의 우려도 잠시.

비욘드들은 나오자마자 삭제됐다.

파사사삭!

퍽퍽퍽퍽!

검선의 무형검이 비행 비욘드 마수를 반으로 갈랐다.

땅으로 떨어지기 전에 조각조각이 났다.

└ 후우, 다행이야.

└ 믿고 있었다고!

└ 역시 동빈님이시다. 무한을 뒤집어 놓으셨어.

└ 흐흐, 내가 채널을 안 떠난 이유가 있었지.

└ 시원시원해.

제천대성도 마찬가지.

길어지고 두꺼워진 여의봉이 위에서 밑으로 떨어지자.

콰직!

단 한방에 납작해진 지상의 비욘드 마수.

└ 그래! 이거지!

└ 와! 제천대성의 전투를 실시간으로 보고 있는 내가 승리자다.

└ 강기 보호막은 그냥 비닐하우스 수준이네.

└ 크크크, 여의봉을 누가 당해?

그러다가.

└ 가만! 저기 저 사람은 누구지?

└ 음? 그러네. 누가 또 있었어.

└ 낯이 익어. 어디서 본 사람이야.

└ 누구더라···, 젊어 보이는데,

└ 암기다! 암기를 날리고 있어.

└ 호, 혹시?

└ ···김태주 회장?

태주도 비욘드 마수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우우우우우우···,

무한공간에서 빠져나온 각종 암기들이 먹구름을 만들어냈다.

처음부터 전력을 다하기로 마음먹었다.

만만히 보다가는 큰일 난다.

사하라 초원에서 상대했던 이계의 무지성 괴수들과는 차원이 다른 놈들.

이계 괴수들이야 지능이 없고 오직 파괴 본능에 따라 행동했던 놈들, 그래서 그냥 힘으로 찍어누르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반면 여기 비욘드 마수들은 지능이 있다.

심지어 굉장히 영리하다.

지휘하는 놈들도 있고, 협력 행동도 한다.

또한 강기 보호막.

이걸로 인해 만천화우의 암기 공격을 한 번 정도 버틴다.

지금도 그랬다.

콰콰콰콰콰콱!

열대우림의 스콜처럼 내리는 암기의 폭우.

정확하게 비욘드 마수의 몸통에 꽂혀 들어갔다.

그러나 놈들은 도망치지 않았다.

"캬아아악!"

하늘에서 공격하는 놈.

푸아아앗!

땅 밑에서 솟구치는 놈.

"크렁!"

암기를 허용하고도 태주 가까이 근접해서 달려드는 놈.

츠파파팟!

원거리에서 비늘이나 발톱, 가시를 쏘아대는 놈.

가만히 서서 만천화우를 시전하다간 당할 수도 있다.

끊임없이 움직여야 한다.

태주가 당군악과의 영혼 연결로 습득한 무공들이 폐허 도시 무한에서 화려하게 펼쳐졌다.

혼원무상독령공의 독령을 바탕으로 시전하는 만천화우는 기본.

비폭일섬, 환영미리보, 표홀질풍보, 금정신법, 혈인독장, 탈백지, 파독수, 암향추혼, 혈접···,

갖가지 무공 초식들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보는 재미가 있다.

가히 눈이 부실 정도였다.

이러다 독령의 기운이 마르면···,

상관없다.

자신에겐 우군이 있으니까.

검선의 무형검이 슬쩍 거들어주기도 했고, 제천대성이 파견한 분신체들이 태주 가까이 얼쩡거리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귀곡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바닥에 진법을 깔아두고는 그 안에 서서 자신의 선기를 태주에게 보내줬다.

든든했다.

믿을 수 있는 아군들이 3명씩이나.

저 안에서 어떤 놈이 나와도 자신이 있었다.

피피피핏! 핏핏핏핏!

암기의 꽃이 하늘하늘 내렸다.

그걸 피할 수 있는 비욘드가 몇이나 있을까?

즐비하게 널브러진 비욘드 사체들.

제천대성의 분신들이 작업을 시작했다.

삼삼오오 조를 짜서 죽은 비욘드의 몸속에서 마나 결정체를 뽑아내 한구석에 쌓기 시작했다.

비욘드 결정체의 산이 높게 높게 만들어졌다.

※ ※ ※

강호 무림 인간계 동쪽 바다.

깊숙한 심해에 위치한 용궁.

고래 백경 장군이 근심으로 가득 찬 용왕에게 고했다.

"3명이 갔습니다."

"진짜 넘어갔다고?"

"네."

"검선, 귀곡, 제천대성···, 염라는 넘어갔지만 다시 돌아왔다고 들었습니다."

"허허."

여의주가 필요 없다던 독선의 호언장담은 거짓이 아니었다.

짝퉁 여의주 3개로 3명, 아니 그 이상 넘어갈 수 있단 말이다.

문제는 그 짝퉁이 3개뿐이 아니라는 사실.

그들이 넘어간 다른 세상, 지구에 수천 마리가 넘는 요괴들이 있다고 했다.

죄다 짝퉁 여의주를 품은 놈들.

'진품 여의주는 필요가 없겠어.'

어떡해야 하나?

여의주 가치를 올리려고 하다가 똥값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용궁 관리들도 시무룩한 표정들.

"더는 선계로 못 가는 건가요?"

"하아, 보던 드라마 결말이 궁금해 미치겠습니다."

"시원한 맥주와 치킨도,"

"네트워크만 연결되면 용궁에서도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있다던데···,"

용왕도 마찬가지다.

이제 선계는 지루했던 감옥이 아니다.

누구나 가길 원하는 상위계 핫 플레이스였다.

저러니 황천계도, 천계도, 환수계도, 환장하면서 달려들지.

오직 소외된 곳은 용궁뿐, 이래서는 왕따 신세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백경 장군."

"네."

"자네 선계에 접촉하고 있는 신선이 있나?"

"있습니다. 주선하고 이야기가 제법 잘 통합니다."

"하긴, 자네 별명이 술고래였지."

"···."

"부탁할 게 있네. 황룡을 붙여 줄 테니 함께 승천해서 천계로 가주게."

용궁에 용이 한 마리뿐인가?

여러 마리 있다.

"가서 은밀하게 주선을 만나서 독선과 접촉해보게. 더 이상 값 떨어지기 전에 여의주 팔아 치워야겠어."

"넘어올까요?"

"그야 자네 역량에 달렸지."

"후우,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밀당도 정도껏 해야 했었다.

후회스럽지만 어쩔 수 없다.

지금이라도 바로 잡아야지.

< 무한대전(2) > 끝

ⓒ 꾸찌꾸찌

=======================================

< 무한대전(3) >

귀곡도 놀고만 있진 않았다.

신선이라는 존재가 본래 호풍환우를 자유자재로 하는 데다가 술법, 기문진식까지 통달한 그였다.

폐허 도시 무한의 짙은 안개.

이것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건 누가 봐도 알겠다.

하지만 문제도 되지 않았다.

더 큰 힘으로 사라지게 만들면 되니까.

허공에 그려지는 귀곡의 술법진.

천천히 사라지는 안개.

무한이 맑아졌다.

도시에 가득 모여있던 수많은 비욘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젠 숨지도 못하는 놈들.

태주, 검선, 제천대성이 무한의 마수를 썰어댔다.

아무리 지능이 뛰어난 비욘드 마수라도, 어마어마한 물리력에, 콘크리트 건물까지 가루로 만들어 보이는 극악의 강기 보호막을 둘렀다고 해도 이 3명에겐 제대로 된 저항도 하지 못했다.

검선과 제천대성은 초 집중상태.

마수 레이드하랴, 스마트폰 확인하랴, 후원 리액션하랴···.

그런데 우습게도 무한의 비욘드 토벌이라는 기본적인 목표에 충실하게 임하는 사람은 태주뿐이었다.

'참나, 대단들 하시네.'

제사보다 제삿밥에 관심 있다고, 검선과 제천대성의 주목적은 얼마나 더 많은 시청자를 확보하느냐에 있었다.

비욘드 마수 토벌이라는 애초의 목적은 사라졌다.

그러나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방송을 위한 것이든, 토벌을 위한 것이든, 비욘드 마수가 삭제되고 있는 건 어차피 똑같다.

'이 정도면 오늘 안에 끝나겠구나.'

분신들도 바쁘게 움직였다.

비욘드 결정체를 가져가는 것 또한 주요 목표니까.

이미 결정체의 산이 3개나 쌓였다.

압도적인 힘에 질렸는지 비욘드 마수들이 주춤주춤하면서 물러났다.

'어쭈? 도망가려고?'

무한 비욘드들은 여기서 전멸시켜야 한다.

단 한 마리라도 빠져나가면 곤란하다.

전략을 수정해야겠다.

큰 덩어리는 검선과 제천대성이 맡고.

자신은 주변 정리 위주로.

태주는 만리비검에 올라탔다.

전장 전체를 조망하면서 따로 떨어져 나간 비욘드 마수들만 집중 공략했다.

귀곡 선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이 무한에서 제대로 정신이 박혀있는 자는 태주 말고 없었다.

"쯧쯧, 신선이나 원숭이나, 독선도 참 딱하군. 어찌 저런 것들을 믿고···,"

카메라로 찍어 줄 가치가 없는 것들이다.

지들이 알아서 찍는데.

이럴 거면 태주 대협의 활약상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훨씬 나은 선택.

비록 검선과 제천대성의 시청자 숫자엔 비할 바 못 되지만 귀곡의 채널도 사람이 꽤 많았다.

그 둘의 모습을 한 화면으로 다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에.

귀곡은 방송 대상을 변경했다.

지금부터 그가 주로 찍는 대상은 태주였다.

└ 와! 김태주가 저렇게 강했어?

└ 현란하다, 현란해. 동빈하고 제천대성에 전혀 꿀리지 않는데.

└ 참! 너희들 속보 봤냐?

└ 무슨 속보?

└ 삼한의 황제가 살아 있었다던데?

└ 어쩌라고.

└ 뭐, 살아있든 말든···,

검선과 제천대성의 경쟁이 점점 가속화됐다.

각자의 스마트폰 화면을 염탐하기 위해 온갖 술법이 펼쳐졌다.

시청자 숫자와 반응을 체크하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 제천대성은 슬며시 미소를 지었고, 반면 검선은 안색이 굳어졌다.

숫자가 꽤 차이가 난다.

'이대로는 안 돼.'

원숭이의 인기는 자신도 따라가지 못할 정도.

역전의 발판을 만들어내야 한다.

좀 더 자극적으로, 화끈하게!

검선은 무형검을 거둬들이고 신검합일(身劍合一)을 펼쳤다.

쐐애애액!

신검합일.

검과 한 몸을 이룬 검선.

마치 대기권을 돌파하는 로켓처럼 거대한 마수의 몸체를 관통하고 지나갔다.

스파파파파파!

강기 쇠꼬챙이가 날아가는 경로의 모든 비욘드 비행 마수가 폭죽처럼 터져나갔다.

퍽! 퍽! 퍽! 퍽! 퍽!

아예 공중에서 분해되어 비욘드 결정체만 쏙쏙 지상으로 떨어졌다.

대체 인간인가?

고전 영화에 나오는 슈퍼맨도 이 정도는 아닐 터.

띵띵띵띵띵···,

검선의 퍼포먼스에 후원 알림음이 쉴새 없이 울렸다.

시청자들도 소폭 늘어났다.

'됐어.'

한편.

제천대성의 귀에도 검선 채널 후원 터지는 소리가 분명하게 들렸다.

마수를 잡는 도중에도 천리안과 순풍이를 펼쳐, 보고 듣는 걸 게을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검선의 이기어폰 스마트폰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의 채널에 시청자들이 몇 명이나 있는지, 어떤 글이 올라오는지 자세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그건 아마 검선도 마찬가지 일터.

그렇게 서로의 폰을 감시하고 있는 중.

"제기랄!"

불안하다.

위협적이다.

확실히 검선은 검선.

시청자들이 어떤 부분에서 열광하는지 파악하고 있었다.

검선의 시청자들이 늘어난다.

후원도 폭발했다.

그와 반대로 자신의 채널은 현재 성장이 정체된 상황.

딱히 보여준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분신 황금원숭이 군단이야 이미 예전에 컨텐츠로 활용된 것이라 새롭지 않았고, 근두운과 여의봉도 슬슬 식상해지기 시작했다.

'어떡하지?'

제천대성은 점점 초조해졌다.

쏟아지는 후원도 서서히 줄고 있다.

'···자만했군.'

부인할 수 없는 팩트였다.

알량한 이름값에 기대어 컨텐츠 발굴을 경시한 결과.

방법을 짜내야 한다.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

결국 분신에 기댈 수밖에 없다.

부르르르르,

다시 추가로 분신을 소환하려고 몸을 털어대는 제천대성.

파팡! 팡팡팡팡!

몸에서 빠진 털들이 분신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분열이 아니다.

그 반대, 융합이다.

서로 몸을 합치는 분신체들.

100,000이 50,000이 되고, 25,000이 되고, 25,000이 12,500, 6,250, 3125···, 분신 수가 동시에 몸이 점점 거대해졌다.

'유지 시간이 짧아 거대 분신은 금방 사라지겠지만···,'

시청자들의 호응을 끌어내기 위해선 이게 최선.

융합, 융합, 또 융합.

결국 하나의 거대 황금원숭이가.

"쿠오오오오오!"

폐허 도시 무한에 강림했다.

쿠쿵, 쿠쿵, 쿠쿵!

무자비한 거대 황금원숭이의 돌진.

비욘드 마수에게 뛰어올라서 짓밟고, 두 손을 모아 내려찍고, 아예 들어 올려서 허공에서 찢어버리고.

띵띵띵띵띵···,

제천대성의 스마트폰도 후원 메시지로 귀가 따가울 정도였다.

"끽?"

"우끼긱!"

"끼기기!"

분신 촬영팀이 기쁨에 겨워 환호성을 질렀다.

다른 분신들도 연신 공중제비를 돌았다.

거대 황금원숭이는 제로투 댄스를 췄다.

실로 적절한 후원 리액션 아닌가.

"···와."

솔직히 태주는 어이가 없었다.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 하지?

시청률 싸움에 비욘드 등 터진다는 말이 어울릴까.

이번 비욘드 레이드를 준비하면서, 태주도 기대했던 부분이 있다.

독령을 더 키우고, 만천화우의 숙련도도 높인다.

만약 지구에 또 이런 위협이 생긴다면 혼자서 충분히 처리할 수 있게끔.

매번 신선들에게 신세를 지려고 하니, 미안해서 그랬다.

아무튼 처음 세운 계획은 제천대성과 검선이 처리하고 남은 비욘드들만 주워 먹으려고 했는데, 그 정도면 충분하리라 생각했는데···.

'이게 뭐야?'

몇 마리 잡아보지도 못했는데 무한의 비욘드들이 거의 전멸각이다.

'난 뭐 잡으라고?'

둘이서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해 먹는 중이다.

심지어 옆으로 새어 나오는 마수들도 없었다.

부스러기 하나 흘리지 않고 얄미울 정도로 깔끔하게 먹어 치웠다.

검선은 신검합일로 비행 비욘드를 꼬챙이로 줄줄이 터뜨리다가 한 마리 도망가면 즉시 무형검을 날려 대가리에 꽂았다.

제천대성은 거대 황금원숭이를 앞세우고 무한을 밀어버렸다.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진짜 불도저처럼 밀었다.

새어 나가는 놈들?

분신이 큰 거밖에 없나?

작은 분신도 엄청나게 많다.

절대 도망가지 못했다.

무리에서 떨어진 놈들도 개떼처럼 달려들어 잡아 찢었다.

'몇 마리 잡아보지도 못하고 구경만 하다 끝나겠어.'

여유가 없다.

마음이 급해졌다.

손가락만 빨게 생겼다.

'이 양반들은 적당히라는 걸 몰라.'

서둘러야 한다.

그리하여 태주도 안개가 사라진 폐허 도시 무한의 한복판으로 뛰어들었다.

※ ※ ※

너튜브 라이브 방송은 전 세계를 강타했다.

스마트폰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너튜브에 접속해서 라이브 방송 채널에 접속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서버가 견뎌낼 재간이 있나?

결국 다른 라이브 방송은 모두 중단하고 3개만 열어뒀다.

사람들 반응은 각양각색.

진짜 저 사람들 정체가 뭐지?

공략 불가능한 비욘드 마수를 저렇게 쉽게?

심지어 놀면서 하는 방송.

후원이 쏟아지면 리액션도 하고, 주요 댓글 질문은 대답까지 해줬다.

아아아!

정말이지, 무슨 말로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제천대성이 실존 인물이었나.

또한 동빈이라는 이름도 수상하다.

옛 설화에 나온다는 신선 중 한 명이 바로 검선 여동빈.

그렇다면 저 사람은 신선?

제천대성도 나온 판에 신선이라고 못 나올 이유가?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전설 속 대상들도 분명 존재할지도 모른다.

이 와중에 간과했던 한 사람.

바로 태주였다.

재천대성과 검선이 진짜라고 치자.

하지만 그들은 신화에서도 거의 신(神)의 경지.

그런데 김태주는?

그는 인간 아닌가?

어떻게 인간이 신적인 존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

심지어 서로 잘 아는 사이 같다.

뭐, 당사자들이 직접 밝히지 않는 한 정확한 진실을 알 도리는 없으니까.

그저 즐기자.

중국이 정화되고 있다.

인류의 위협이 막 사라지기 직전이다.

그러나 즐기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유럽 제국 율리안 황제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파타갤라온.

황궁 심처에서 스마트폰 화면만 바라보면서 전전긍긍했다.

'···가봐야 하나?'

마음만 먹으면 1초 만에 무한으로 갈 수 있다.

자신의 둥지에 텔레포트 마법진을 깔아두었으니.

'가서 뭘 한다?'

놈들을 이길 수 있으면 또 모를까.

물론 김태주 회장 하나라면야 상대 가능하다.

그러나 신선이라 짐작되는 저 노인과 제천대성은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없다.

'아직 힘들구나. 턱없이 모자라.'

두어 번의 동일 영혼 포식이 더 필요하다.

자신과 같은 영혼은 하나가 아니다.

다중우주에서도 여럿 존재한다.

영혼 연결이 이루어질 때 다른 세상으로 건너가 동일 영혼을 포식하면 된다.

자신이 포식한 동일 영혼은 셋.

마지막이 바로 지구의 영혼이었다.

그래서 신선과 제천대성이란 존재에 대해 익히 잘 알고 있다.

전설이나 신화 속에서 거의 신으로 묘사되는 그들.

분하지만 아직 그들에게 미치지 못한다.

저 원숭이, 제천대성만 해도 그렇다.

몸을 털어 만든 분신만으로 오랜 세월 키워온 자신의 가디언들을 학살하고 있다.

저 신선은 또 어떻고?

그의 검을 몸으로 받아낼 수 있을까?

절대 불가능.

상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

현재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

유럽 제국 율리안 황제 행세를 하며 조용하게 몸 사리고 있어야 한다.

저들은 자신이 누군지 알 방법이 없다.

아니, 존재 자체를 모를 것이다.

그저 비욘드 마수라 부르는 가디언만이 전부인 줄 알겠지.

기다리다가 영혼 포식의 기회가 오면···,

'신?'

자신이라고 못 되라는 법 있나?

※ ※ ※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검선과 제천대성의 치열한 경쟁으로 그 많던 비욘드 마수들이 결정체만 토해내고 다 으깨졌다.

본능적인 두려움에 뿔뿔이 흩어졌던 비욘드 패잔병도 검선과 제천대성이 악착같이 쫓아가 잡았다.

"내가 이겼다. 원숭아!"

"천만에, 최종 시청자 수를 보시오. 자릿수가 다른 데."

"후원을 말하는 거다. 애송아! 시청자들이 주머니를 여는 것이 쉬운 줄 아느냐?"

"흐흐흐, 그럼 후원 금액이 얼만지 확인해봅시다. 난 자신 있소."

"이, 이 새끼가···,"

귀곡이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

"거, 방송이나 종료하고 싸우시오. 에잉, 사람들 보기 부끄러워서 같이 다니지도 못하겠어."

그러고는 태주를 보며,

"멍청한 바보들은 내버려 두고 우린 할 일이나 하러 갑시다."

"하하, 네, 그러시죠."

먼저 바닥에 떨어진 비욘드 결정체를 주워 담았다.

무한공간이 엄청나게 커진데다 빈 곳도 많아서 충분히 담을 수 있었다.

"거참, 봐도 봐도 신기한 법술이로다. 어찌 그 많은 짝퉁 여의주가 죄다 들어가는지."

그러고 나서 허공에 술법 기문진을 연신 그려가며 무언가를 찾는 귀곡.

츠츳, 츠츠츠츳!

"어디 보자. 냄새를 찾아볼까."

"두목이 없을지도 모르겠어요. 이 난리가 났는데 안 나타난 걸 보면···."

"설마! 비욘드 요괴들이 한군데 모여있을 놈들이 아니지 않소. 분명 지배하는 새끼가 있을 거요."

태주도 동의했다.

"지배자가 있다고 치면, 아직 이 도시에 아직 숨어있거나, 혹은···,"

"도망쳤겠지. 허나 도망쳤다고 해도 놈이 남긴 흔적은 찾을 수 있을 거요."

츠츠츠츠츠츠츠!

허공에 그린 귀곡의 기문진이 땅으로 내려왔다.

그러자 땅바닥에 선명한 빛의 길이 그려졌다.

그 길을 따라가는 두 사람.

한참을 걸어가니,

"이쪽이로군."

"아무것도 없는데···, 아! 숨겨져 있군요. 저 앞이죠?"

"역시 영민하시오."

귀곡이 손을 들어 문양을 그렸다.

순간!

스르르륵!

눈앞에 나타나는 거대한 원형 돔 건물.

"찾았소."

폐허 도시 무한에서 하나 남은 온전한 건물이었다.

"축구 경기장 같네요."

"···축구? 쩝, 안 좋은 기억이 떠오르는군."

무슨 기억인지 잘 모르겠지만.

태주와 귀곡은 원형 경기장 안으로 들어갔다.

잔디가 깔린 운동장.

중앙에 파인 깊은 구덩이.

귀곡이 구덩이 안을 살펴보더니 탄성을 질렀다.

"호오, 이런 요망한 것을 봤나?"

"네?"

"이동 술법진이 깔려있소."

"아!"

"이걸 이용해 튀었구먼."

텔레포트, 그런 건가?

아무튼 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도망친 것이 분명하다.

"잠시만 기다려주시오."

"이동 술법진을 파괴하시려고요?"

"그럴 필요가 있나. 놈이 남긴 흔적인데 남겨둬야지. 숨겨진 축구 경기장도 원래대로 되돌려 놓을 거요."

"그럼···?"

"내버려 두면 반드시 다시 오겠지. 그때를 대비해 이 주위에 몇 가지 기문진을 그려두려고, 신선의 법술이 어떤 건지 똑똑히 알려주겠소."

일종의 덫을 설치하겠다는 의도.

그래서 놈이 멋모르고 텔레포트 마법진으로 이곳에 도착하면?

쥐새끼처럼 걸려드는 식으로 말이다.

< 무한대전(3) > 끝

ⓒ 꾸찌꾸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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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넌 이제 호구 된 거야. >

라이브 방송이 끝났다.

무한의 비욘드들은 깔끔하게 정리됐다.

실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거대한 중국 땅을 멸망시켰던, 공략 불가능의 비욘드가 불과 몇 시간 만에?

사람들은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했다.

고민해봐야 답이 나올 리도 없고.

그래서 즐기기로 했다.

라이브 방송이 남긴 여파.

비욘드 마수 토벌도 토벌이지만···,

- 지구에 신선과 제천대성이 나타났다. -

이 한마디로 게임 끝.

감히 누가 상상이나 했겠나?

상상에서나 볼법한 신화가 현실화됐다는 걸.

특히 손오공, 제천대성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 인기가 하늘을 찌를 정도.

무조건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각국 정부에서 촉각을 곤두세웠다.

국가 재해급 비욘드 마수를, 그것도 수천 마리를, 개미 짓밟듯 사냥했다.

심지어 카메라 앞에서 춤도 춰가며 놀았다.

대체 그들은 어떤 존재들이지?

인류의 위협으로 작용하지는 않을까?

한편, 신문사를 비롯한 방송사들은,

- 가만히 있을 거야? 또 엉덩이로 기사 쓰려고? 취재 안 해?

- 사진하고 코멘트 한 줄이라도 따오면 무조건 승진이다.

- 모든 시간대 비워둘 수 있어. 1분 인터뷰라도 건져와.

- 출연료? 백지수표 준다고 해.

- 어디 있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 너희들이 알아서 찾아야지.

어디로 가면 찾을 수 있을까?

찾을 방법이 있다.

그들과 함께 비욘드 레이드에 나선 '사람'이 있다.

일단은 사람이다.

지구인이면서 사는 장소가 특정된 인물.

바로 김태주였다.

그가 있는 곳에 저들이 있을지 모른다.

아니, 확실히 있을 것이다.

※ ※ ※

구례에 수많은 인파가 몰려왔다.

모든 숙박업소가 매진됐고, 식당들은 자리가 없어 긴 줄이 생겼다.

구례가 북적이고 있었다.

상인들은 즐거운 비명을 질러댔다.

그리하여 구례 시청에서 열린 대책 회의.

이정학 부시장과 백서연 사장이 긴급회동을 가졌다.

"백사장님은 방송 보셨습니까?"

"봤죠. 그거 안 본 사람이 누가 있다고."

"정말이지 깜짝 놀랐습니다. 신선, 제천대성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시는 회장, 아니 시장님이시라니."

"호호호, 맞아요. 이번엔 확실히 나오셨더라고요."

백서연은 더없이 만족했다.

전에 사하라 초원 생방송 때는 회장님의 분량이 매우 적었다.

모습은 거의 안 나오고 그분이 펼쳤던 무기들만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무한 라이브 방송은 달랐다.

회장님 비중이 엄청나게 커졌다.

신선, 제천대성에도 전혀 꿇리지 않았다.

그를 모시는 자신이 자랑스러울 정도로.

"근데 김태주 시장님은···?"

"잠시 자리를 피해 계세요. 저조차 전화기 꺼두고 외출을 삼갈 정도인데요."

"후우, 알만합니다. 저도 그런걸요."

"힘드시죠?"

"어쩔 수 없잖습니까. 회장님을 모시는 사람들의 숙명 같은 건데."

갑자기 몰려든 수많은 사람 때문에 구례 시청도 비상사태.

이정학 부시장도 정신이 없었다.

"지금도 사람들이 몰리고 있나요?"

"구례로 오는 모든 교통편이 매진됐다고 합니다."

"난리네요."

"반짝하는 분위기가 아닙니다. 느닷없이 구례 전입신고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추세고요."

인구 폭발의 조짐이 보인다는 의미.

구례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로 발돋움하는 순간.

그래서 이정학은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시청 앞 광장에 조형물 하나를 설치할 생각입니다만,"

"어떤 거요?"

"김태주 시장님과 신선님, 그리고 제천대성의 모습이 잘 표현된 동상 말입니다."

"아!"

"물 들어왔을 때 노를 저어야죠. 관광 명소가 되기에 충분하지 않습니까?"

백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회장님이 제일 돋보여야 합니다. 우리가 예산을 지원할게요."

"하하하,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그건 그렇고,

"치안엔 문제가 없나요?"

"왜 없겠습니까? 사람이 많아지니 여기저기서 잡음이 생기는 중입니다. 파주도 야단이 났답니다."

"조심해야 해요. 이러다가 큰 사고라도 나면···,"

"당연하죠. 우리도 예의 주시하고 있습니다."

"티제이 길드원들을 지원해 드릴게요."

"그래 주시면 감사하죠."

방심하면 안 된다.

김태주 회장이야 걱정할 것 없다.

비욘드 마수도 때려잡는 분이신데, 그분을 어떻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지구상에 아무도 없다.

하지만 티제이 그룹으로 확장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구례 바이오 단지, 회사 본사, 그리고 학교와 마을.

비교적 취약한 표적.

티제이에 원한을 가진 사람들이 매우 많기 때문이다.

당장 인수합병 과정에서 마찰을 일으켰던 후지 그룹, 더불어 일본계 제국민들.

언제 어느 때라도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항상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

※ ※ ※

지금은 사퇴해버린 기무라 전(前) 의원과 후지 그룹의 전(前) 회장 츠치다 쇼헤이가 모처에서 만났다.

"후우,"

"제기랄!"

그들도 라이브 방송을 봤다.

신선과 제천대성은 그렇다 쳐도···,

인간인 김태주가 그렇게 어마어마한 놈이었다니.

물론 원래 강했다는 건 알고 있다.

그런데 저 정도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나마 있던 희망도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이제야 알겠군. 황제가 왜 갑자기 죽음을 위장하면서까지 이런 짓을 벌였는지."

"김태주에게 삼한제국을 바칠 작정입니다. 황태자를 폐위시키고 다시 책봉을 안 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군부와 정계 재계를 숙청하는 건 그 사전작업을 하는 셈이지."

"우리 일본계도···,"

6개월의 시한이 거의 다가온다.

삼한에서 이룬 모든 부를 눈 뜨고 빼앗길 판.

그나마 현금은 괜찮다고 해서 땅이나 건물 같은 부동산을 시장에 내어놓았지만 팔리지 않았다.

사람들이 사줄 리가 있나?

가치가 떨어지고 떨어져 헐값이 될 때까지 기다릴 것이다.

즉 알몸으로 일본 땅에 쫓겨나게 생겼다.

"칙쇼! 이건 망신 주기야. 개 같은 황제 새끼!"

"김태주, 그놈이 더 문제입니다."

"차라리 할복하는 게 낫겠어. 명예는 지킬 수 있게끔."

하지만,

"절대 혼자 죽지 않겠습니다."

"내 생각도 같네. 죽을 때 죽더라도 우리의 결의는 보여줘야지."

"흐흐흐, 전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죽어도 일본의 정신은 사라지지 않는다.

똑똑히 보여준다.

꺾이지 않은 대일본의 혼을.

일본은 신(神)이 없나?

황조신 아마테라스가 자신들을 보우해주실 것이다.

※ ※ ※

무한 비욘드 레이드가 끝난 후,

태주는 뉴서울 황궁으로 갔다.

구례엔 갈 수가 없었다.

파주도 마찬가지였다.

백서연도, 정연희도 전화 통화로 당분간 구례와 파주로 오지 않는 게 좋겠다고 전해왔다.

전 세계 기자와 방송인들이 죄다 삼한과 파주로 몰려왔다.

남녀노소,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도 다 모였다.

거기 가면 제천대성과 신선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면서.

그래서 미리 금수호에게 연락하고 황궁으로 피신해온 상황.

물론 역용으로 다니면 문제없다.

시내를 활보한들 누가 알아봐?

하지만 황궁으로 온건 그 용건만은 아니었다.

검선과 귀곡, 제천대성도 함께 왔다.

사람들 눈에 들키지 않도록 귀곡과 검선은 역용과 축골공을, 제천대성은 술법을 이용해 인간의 모습으로 변신해서.

황제는 안절부절못했다.

금수호는 사시나무처럼 몸을 벌벌 떨었다.

"기, 김회장, 이, 이분들이 저, 정말?"

"네, 검선님과 귀곡 선인, 그리고 제천대성님이세요."

"···라이브 방송에서 본 모습과는 달라서 말이야."

바로 그때!

"황제라는 놈이 의심은···,"

"쯧쯧, 강호나 지구나, 권력자들의 의심병은 어디 가지 않지."

스륵, 스르르륵,

본모습으로 돌아가는 세 사람.

"억!"

"오오오오!"

황제와 금수호가 달려와 호들갑을 떨었다.

"만나 뵙게 되어서 평생의 영광입니다."

"이, 이런 일이 올 줄이야···, 함께 사진 찍어도 되겠습니까?"

"뭐, 어려운 것 없다. 찍자꾸나."

비록 무한 레이드 생방 때문에 자신이 계획한 황제 생환 프로젝트가 묻혀버렸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황제라는 직위?

신선과 제천대성이 눈앞에 나타났는데 그딴 게 중요해?

그 와중에 태주는 자신이 온 이유를 밝혔다.

"이 세분이 한동안 뉴서울에 머물 예정이라서요."

"오! 어디에?"

"일단 백두 호텔에 숙소를 잡긴 했는데···,"

백두 그룹 정욱철 회장에게 연락하자 곧바로 최고급 스위트룸을 예약해줬다.

"허허, 그런 누추한 곳에? 차라리 황궁에 계시는 것이 낫지 않을까?"

"출입하기 번거롭잖아요."

"그렇군."

태주가 할 말은 따로 있다.

"아무튼 이분들이 워낙 자유로운 영혼들이시라, 현대 국가의 엄격한 법과는 다소 맞지 않을 수 있어서···."

사고를 칠지도 모른다는 말을 완곡하게 표현한 것.

그래서 뒷수습을 좀 해달라는 의도였다.

이미 한번 경험했던 금수호가 말했다.

"걱정하지 마시게. 내가 잘 알아서 처리할 테니."

이건 됐고.

"동빈님은 신분증이 있는데, 귀곡님과 제천대성님은 마땅한 신분증이 없어서."

"당장 만들어드리겠습니다."

"주소는 우리 집으로, 이름은···?"

그러자 검선이 끼어들며 말했다.

"난 동빈을 그대로 쓰면 되고, 귀곡이야 이름만 살짝 바꿔서 김기국, 어떠시오, 귀곡?"

"마음에 드오."

"그리고 원숭이는···,"

잠시 고민하던 검선이,

"김요괴가 좋겠어."

제천대성이 발끈했다.

"김요괴? 성씨는 상관없소만, 자꾸 날 요괴라고 할 거요?"

"네가 요괴가 아니면 뭐냐? 무한에서 날뛸 때도 요괴들과 구분이 안 될 정도였는데."

"···씨발."

"얼씨구? 지구 욕은 또 어디서 배웠대?"

태주가 나서서 정리했다.

"김오공으로 하시죠."

"하하하, 마음에 듭니다. 역시 태주 대협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분들 은행 계좌도 만들어주세요. 후원금이 들어왔는데 돈을 인출할 수가 없어서."

"무조건 해드려야죠. 사실 저도 후원과 구독, 좋아요 눌렀습니다. 제 닉네임이 '금비서가 왜 이래?'입니다."

"오! 구독자였군. 반가워."

"나는?"

"하하, 세분 모두 했습니다."

용건이 끝났다.

세부적인 절차야 황제와 금수호 비서관이 알아서 해줄 테니.

태주는 따로 할 일이 있었다.

뉴서울 온 김에 티제이 그룹 뉴서울 지점과 공장도 들릴 생각.

"자, 그럼 이제 놀아볼까? 원숭아, 허둥대지 말고 나만 따라다녀라."

"흥! 나도 드라마 많이 봤소. 혼자 놀 수 있소."

"쯧쯧, 이론만 바싹하면 뭘 해? 실전은 전혀 다르단다. 촌놈아!"

"지도 촌놈이면서···, 한번 오면 삼한 사람 되는 건가?"

"하아, 이 새끼가, 불쌍해서 지구 구경시켜줬더니, 귀곡, 그대는?"

"난 도서관이나 가볼까 한데,"

"어휴, 지구에 와서도 먹물 냄새 풀풀 풍길 거요?"

"남이사!"

이들이 선계로 돌아갈 때까지 있다가 구례로 가야지.

아무래도 가까이 있는 게 마음이 놓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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