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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레이드 (5)

이동식 요새.

6대의 포탑이 쏘아내는 포화를 견뎌내는 '주시자의 눈'.

'만일 그렇다면, 어딘가에 공략점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이 계획은 시작되었다.

정찰조의 전투로 얻은 정보로 알 수 있는 것은, '주시자의 눈은 거대한 눈을 뜨고 빔을 쏜다.'와 '공격 받으면 몸체를 하강한다.' 두 개가 끝이었다.

그렇기에 다양한 가능성을 고려해 전략을 수립했고, 결과적으로 내가 점쳤던 가능성 중 하나가 먹혀들게 되었다.

"아래는...."

미니맵.

사방에 푸른색 점이 가득하다.

길을 건너 용산구청으로 달려가는 것들이 있는 반면에, 요새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퍼져있는 바바리안 부족들과 대치하고 있는 것들도 있었다.

"믿고 맡기면 되겠지."

뭐, 여기까지 왔는데 믿어야지 어쩌겠어?

장진아 외 3인.

바바리안으로 전직한 저 부족민들은 우리와 '주시자의 눈'의 싸움을 보고도 도망가지 않고, 시킨 대로 전투에 방해되지 않게 다른 이들을 잘 막고 있는 듯 보였다.

요새 아래에 이상한 나무토막을 박는다 싶었는데, 그것이 나름 결계 역할을 해주고 있는 모양이다.

"...그래야죠."

조금 뜸들이다가 대답을 한 이하린.

그리고 요새 담장 위에 있던 이하린은 어느새 다시 사라져 있었다.

다시 주시자의 눈의 몸속으로 향한 것인데.

"뭐, 잘 해내겠죠."

믿음 말고는 당장 줄 수 있는 게 없다.

기기기기긱-

저 큰 눈알이 요새만 본다는 것은 반대로 생각하면 요새의 공격이 놈에게 그만큼 위험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저것만 깨면 끝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쉼 없이 쏘아지는 포화에도 잔기스 하나도 용납하지 않는 '주시자의 눈'에게 몇 가지 의문이 들었다.

우리의 예상대로 눈 속에 장기 같은 건 없었고 오롯이 검은색 액체로 가득 차 있었다.

더 들어가면 죽을 것 같아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갈 순 없었지만, 육안으로 보이는 것만큼은 정확하게 확인하고 온 이하린이다.

위이이이잉―

투타타타타타타타탓-!!

이동식 요새.

포탑들을 이용해서 전과 동일한 방식으로 주시자의 눈을 공격한다.

허나, 이번에는 그 반응이 달랐다.

기기기기기기기기기기긱-

기기기기기기기기기기긱-

기묘한 소음.

마치 비명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상한 소리가 세상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좋은 소식이다.

단 한 번도 비명을 내지른 적 없던 '주사자의 눈'이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으니.

쿠구구구구궁-

소리뿐이 아니라 몸을 뒤틀며 전신으로 고통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하, 하린이가 안 나오는데요?"

그리고 좋은 소식에는 나쁜 소식도 따라오는 법.

놈의 몸속을 헤집고 탈출하기로 했던 이하린이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

짧은 고민에 빠진다.

"1분."

아직도 이하린은 반응이 없다.

그리고 주시자의 눈이 스스로 회복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이 적기를 놓칠 수는 없는 법.

"일단 시작하시죠."

"별일이 없어야 할 텐데...."

묵묵히 앉아있는 나.

걱정하면서도 냉정함을 유지하고 있는 강소현.

철컥-

포탑 조종 핸들에 달린 버튼을 누르고.

피슈우우우웅-!!

'주시자의 눈'을 향해 미사일이 날아간다.

그동안 계속해서 막혔던 공격이다.

기껏해야 주시자의 눈이 조준하던 레이저를 빗나가게 하는 정도의 위력뿐이었기에.

지이이이이잉-!

놈은 그것을 무시한 채 붉은색 빛을 모으기 시작했다.

여느 때처럼 방향 전환 이상의 효과는 없을 것이라 판단했을 테니까.

쿠우우우웅-!!!

쿠우우우웅-!!!

도합 네 발의 미사일이 주시자의 눈에 도착했고.

기기기기기기기기기기기기기긱-

기기긱, 끼기긱, 끼릭-기끼기기긱, 끼기긱, 끼릭-

기기기기기기끼기기긱, 끼기긱, 끼릭-

끼기기긱, 끼기긱, 끼릭-

놈은 전보다 더 괴상한 비명을 쏟아낸다.

우리가 노린 곳은 '뒤통수'.

적은 괴물이다.

어떤 능력을 지녔는지도 정확하게 모르고, 놈이 어떤 약점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공격이 막히면 막히는 선에서 최선을 찾아 공격하기로 하나의 규칙을 정했다.

약점은 어그로를 끄는 자의 뒷면에 있는 사람이 찾기로 했다.

그리고 우리의 레이드는 고작 첫 번째 레이드임에도 모두가 성공적으로 제 역할을 마쳤다.

그 결과 '주시자의 눈'의 몸속으로 미사일을 박아 넣을 수 있었고.

'원하는 지점'을 미사일로 타격할 수 있는 고정 포탑은 성공적으로 마무리 일격을 박아 넣었다.

쿠구구구구궁-!

주시자의 눈은 하늘에서 바닥으로 서서히 추락하고 있었다.

"하, 하린이는 어쩌죠?"

강소현은 여전히 이하린이 걱정된다.

"그러게 말입니다. 죽진 않았는데...."

나도 마찬가지로 이하란이 걱정된다.

미니맵의 파란색 점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긴급 탈출 스크롤도 사용되지 않았으며 마석 통신기를 통한 구조 요청도 없다.

만나 지 얼마나 됐다고 저런 위험한 임무를 선뜻 맡아주고 목숨을 걸고 저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건지....

내 머리로는 도저히 이하린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

그래도 나름 나의 계획에 맞춰 따라와준 사람이다.

그래도 이제부터 나와 함께 살게 될 새로운 동료다.

그러니까.

콰아아앙-!!!

주시자의 눈을 더 열심히 공격해 이하린을 구해내야 한다.

끼기기기이이이익-!

주시자의 눈.

놈은 괴물이다.

그것도 시체 거인을 통해 제약당하고 있던 괴물이다.

놈도 보통은 이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놈이 최후의 발악을 시작했다.

눈앞에 레이저도 모을 수 없고, 뒤통수에 달린 작은 눈알들은 이하린의 단검에 모두 당해 버렸다.

몸속에는 어딘가 생긴 틈을 헤집고 들어간 불청객이 들어 있으며.

눈앞에는 자신의 몸속에 미사일을 박아 넣은 정체불명의 요새가 자리하고 있다.

'주시자의 눈'도 더 이상의 여력은 없다.

쿠구구구궁-

놈이 택한 방식은 가장 단순하지만 위협적인 그런 방식이었다.

"옘별."

요새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어, 어쩌죠?"

그리고 우리를 뒤덮은 그림자는 점점 작아지고 있었고, 눈앞에 보이는 '주시자의 눈'은 점점 커지고 있었다.

쿠구구구구구궁-!

8개에서 6개로 줄어버린 다리.

5m 높이의 벽 세겹으로 둘러진 담장.

그 안에 각종 설비들까지 들어 있는 내 요새에 20m가 넘는 구체가 충돌하려 한다.

'요새 축소화'.

물론 내게는 이 상황을 타계할 방법이 있다만.

위잉-

철컥, 철걱.

요새 담장.

대문을 중심으로 배치된 포탑들.

마시 공간을 초월한 것처럼 그것들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

그리고 나는 이 상황이.

변화하는 요새의 모습이 너무나도 이상하게 느껴진다.

철컥.

철그럭-

담장과 포탑은 기계적인 모습으로 서로 맞물려 축소하고 있지만, 집 내부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아니, 그냥 외부만이 공간이 외곡된 것처럼 줄어들고 있었다.

즉, 요새 축소화가 된 후에도 집 내부의 공간은 넓고 멀쩡한 상태로 유지되고 있다는 소리다.

이게 무슨 미친 소린가 싶겠지마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떠오르질 않는다.

전체적인 외견, 표면의 크기가 줄어들지만 내부는 그대로인 것을 어찌 설명한단 말인가?

일전에 봤을 때는 요새가 변한 후에 탑승한 게 다였기에 이런 디테일한 것들은 느끼지 못했었다.

뭐, 나머지 감상은 놈을 해치우고 나서 해도 될 것이다.

콰아아아아아앙-!!!

요새가 작아지는 짧은 틈에 주시자의 눈이 충돌하려 들었고, 아마 이대로 반쯤은 부딪히지 않을까 싶었던 순간.

"이준 씨, 나머지는 부탁해요!"

강소현이 소리치며 요새 위로 뛰쳐나갔다.

파칭-!

파칭-!

파칭-!

담장 너머로 보이는 강소현.

그녀들 둘러싼 수십 겹의 보호막이 부서지고, 강소현은 아래쪽으로 날아가 버렸다.

강소현도 나름의 무리라는 걸 한 모양이다.

"이, 이준 씨. 쿨럭-!!"

너무 순간적이라 정확히 그녀가 뭘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피를 토하는 모습을 보면 요새를 지키기 위해 상당히 큰 희생을 했다는 것만은 변함없는 사실일 것이다.

애초에 요새는 만전의 상태가 아니었다.

일전에 피해를 입어서 그런지 축소화를 쓰면서도 한쪽으로 기울어 있었으니까.

강소현이 아니었다면 더 큰 피해를 입었을지도 모른다.

"조금만 잘게요."

어차피 내가 들을 것이라 생각했는지 강소현이 작은 목소리로 그리 말하고는 쓰러졌다.

털썩-

강소현이 쓰러짐과 동시에 주시자의 눈에게도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촤르르르륵―

바닥에 처박힌 주시자의 눈.

놈에게 난 상처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 액체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고, 그것이 이태원 대로를 물들인다.

냉정하게 현 상황부터 분석해보자.

강소현은 축소화한 요새와 '주시자의 눈'과의 충돌을 막고 쓰러져 버렸다.

이하린은 주시자의 눈 몸속에 있다.

미니맵의 점이 남아있는 것을 보면, 살아 있기는 한 것 같은데 무슨 일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바바리안 부족들은 요새를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퍼져 있다. 요새 아래에 박힌 나무토막의 힘을 이용해 결계든 뭐든 활용하고 있는 것 같고.

뭐, 요약하자면 저들은 다 제 할 일을 훌륭하게 마쳤다는 얘기다.

끼리리릭-

끼기긱-

이제부터는 나의 몫이다.

생후 2개월의 고양이도.

재난 속에 우연히 마주쳤던 수의사도.

식인종에게 도망쳐 숨을 곳을 찾던 남매도.

먹을 것을 구하러 찾아온 바바리안 부족도.

기대 이상을 보여줬으니, 이제는 내가 보여줄 차례다.

또각, 또각.

나는 집사다.

또각, 또각.

집사라는 게 뭔지 잘 모르겠었는데.

이제 와서는 명확하게 알 수 있을 것 같다.

내 집.

내 고양이.

내가 사랑하는 장소.

그리고 그 장소에 의탁한 사람들.

그런 것들을 지켜주는 것이 바로 집사가 아닐까?

또각.

포탑이 있던 담장에서 요새의 조종실까지 다섯 걸음.

머리가 차가워진다.

그런데 여전히 가슴은 뜨겁다.

집이 위협당한 집사.

그래서 그런지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차오른다.

그리고 그 분노는 고스란히 힘이 되어 돌아왔다.

콰지직-!

작아진 요새.

조종실에 생겨난 핸들에 손을 얹는다.

위이이이잉―

그것에 능력치, 아니, 집사의 힘이 깃들기 시작했다.

일전에 확인했던 요새 축소화의 새로운 힘.

포탑에 '능력치'를 담는다.

허나, 이걸로는 모자라다.

아직 요새에는 숨겨진 기능이 하나 더 있다.

"로라, 힘을 보태줘."

로라 역시도 나의 요새를 강화해줄 수 있다.

하지만 이걸 쓰면 로라에게 무리가 간다.

내가 아닌 로라에게 무리가 가기에 끝까지 아껴두고 있었다만, 놈을 잡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기에 이번만큼은 로라의 손을 빌리기로 했다.

'신성의 조각'.

애초에 놈을 잡고자 한 이유가 거기에 있었으니까.

『캬오오-!!』

어깨에서 쓰러진 듯 자던 로라가 일어나서는 힘차게 소리치기 시작했다.

부우우웅-

금빛 신성.

이름을 붙이자면 그럴 것이다.

금색 장막이 나를 둘러싼다.

그리고 그 힘이 더해져 요새를 향해 전해진다.

금빛 신성과 집사의 힘이 더해진 요새.

위이이이잉―

그리고 포탑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고정 포탑의 핸들은 요새가 축소되면서 조종실로 옮겨져 왔고, 나는 그것을 힘껏 당겼다.

그리고 포탑에서 나아간 것은 총알 따위가 아니었다.

콰지지지지지지지직-!!!

굉음을 뿜으며 나아간 것은 금빛 섬광.

총구에서 나가는 것은 흡사 빛의 물줄기였다.

레이저나 광선 같은 말로 표현하기에는 너무나도 신성했으며, 아름다웠다.

그것이 주시자의 눈을 향해 쏟아진다.

고정포탑 두 대.

그리고 자동포탑 네 대.

도합 여섯 대의 포탑이 쏘아내는 금빛 물결은 폭포처럼 놈을 뒤덮기 시작했다.

끼리릭-! 끼기기기기기긱-!!

끼기기기긱-!!!

괴성.

비명을 질러댄다.

주시자의 눈. 괴물같이 생긴 놈이 생명체라도 되는 양 끔찍한 소리를 토해낸다.

위이이이잉―

콰지지지지지지지직-!!!

전에는 몰랐으나 금빛 물결에 휩쓸린 주시자의 눈을 통해 지금은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놈에게는 외피가 있다.

아니, 있었다.

요새를 공격하던 거대한 눈알과 그것을 덮고 있던 검은색의 울퉁불퉁한 피부.

그것들이 허물어져 버렸다.

파스스스스―

숫제 가루가 되어 휘날리고 있었다.

반쪽이 요새의 포화로 날아 가버린 주시자의 눈.

남은 반쪽은 20m 크기의 반구의 형체다.

그래도 괴물이라 크기는 무지막지했다.

남은 반쪽은 검은 액체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중앙에는 지름 1m 크기의 눈알이 하나 있었고, 그 옆에는 이하린의 형체를 한 고치가 하나 있었다.

풍덩-!

그리고 고치는 다시금 검은색 피 속으로 사라졌다.

순간적이라 정확히 보지는 못했지만, 이하린의 고치를 끌어당긴 것은 1m짜리 눈알인 것 같다.

아마도 저것이 본체겠지.

『냐아!』

이제는 요새로는 안 된다.

그런 느낌의 의지가 전해져 온다.

나도 안다.

그냥 느낌이 그렇다.

끼리릭-!

기기긱-!

놈은 영악하다.

이하린이 들어 있는 고치를 제 몸속에 끌어당긴 채, 요새를 향해 자리하게 만들었으니.

어차피 이미 다된 밥이다.

놈은 알몸이나 다름없다.

또각, 또각.

요새를 나와 묵묵히 걸었다.

고정 포탑의 금빛 포화가 쓸고 간 놈의 몸을 향해서.

푸슈우우욱-!

여기저기 뚫린 구멍에서 검은색 피가 뿜어져 나오고 그것들은 바닥을 물들이고 있다.

허나, 그것들은 나를 피해 간다.

아니, 내 몸을 둘러싼 금빛 장막을 피해갔다.

또각, 또각.

주시자의 눈의 몸속에는 아직도 검은 액체가 가득하다.

로라가 아니었다면, 몸이 타들어가면서 저곳을 헤엄쳐 가야 했을지도 모른다.

『키야오오!』

로라가 함성을 내지른다.

부우웅-!

칠흑같은 어둠.

그 안을 금빛 장막이 밝히고.

불투명한 검은색 액체 사이로 하나의 인형과 그 뒤에 숨은 괴물이 보이기 시작한다.

또각, 또각.

물속, 아니 검은색의 찐득한 핏속을 걷고 있음에도 내 구두굽 소리는 균일하게 울려 퍼진다.

또각, 또각.

괴물의 몸속을 청아하고 맑은 소리 구두굽 소리로 가득 채워 나가며 걷는다.

기기기기기기끼기기긱, 끼기긱, 끼릭-

끼기기긱, 끼기긱, 끼릭-

그것을 거부하려는 듯, 놈이 비명을 질러댄다.

끼기기긱-

핏발이 잔뜩 서 있는 눈알이 나를 노려본다.

그 옆에는 이하린이 유형하듯이 떠다니고 있었다.

아니, 떠다니는 방패처럼 놈이 제멋대로 휘두르고 있었다.

다행이다.

그래도 뭐라도 믿는 구석이 있다 싶었는데, 가까이에서 보니 이하린은 무사한 것 같다.

오러를 숨겼던 것처럼, 정체 모를 것들을 잔뜩 담은 봇짐을 짊어지고 왔던 것처럼.

뭐라도 있었나 보다.

끼기기긱, 끼리릭-

끼이기기긱

눈꺼풀도 뭣도 없는 주시자의 눈.

놈이 나를 바라본다.

철봉도 포탑도 없다.

뭣도 없는 건 나도 마찬가지지만, 내게는 고양이와 집사라는 정체성이 있다.

지이이잉-

방패로는 쓸모가 없다 느꼈는지 주시자의 눈의 본체가 이하린을 내팽겨 치더니 눈앞에 붉은빛을 모으기 시작한다.

지이잉―

종소리 같은 공명음이 내 몸속에서 울려 퍼진다.

『냐아!』

옆에서는 로라의 맑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와 동시에 나를 감싼 금빛 장막이 두터워지고, 내게는 로라의 의지가 전해져 왔으니.

한낮 미물의 공격은 이 금색 장막을 뚫지 못할 것이다.

또각, 또각.

곧게.

주시자의 눈.

그 본체를 향해 걷는다.

놈의 눈앞에는 붉은빛이 가득 모여들고 있다.

그 너머에 있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허나, 두려움 따위는 없다.

로라를 믿고 그저 나아갈 뿐.

콰지지지지지직-!

굉음을 토해내며 빛이 나를 향해 쏘아진다.

또각.

또각.

빛이 내 몸을 가로막는다.

조금 더뎌졌어도 나는 묵묵히 걷는다.

지이이이익-

걷다 보면 뒤로 밀려나기도 하지만, 계속 걸었다.

놈의 체력도 무한한 것은 아닐 테니.

끼기기긱- 끼리릭-

비명.

공포에 젖은 놈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붉은색 빛은 점점 사라져간다.

끼기기긱-

끼리릭-

핏발 선 눈알.

흔들리는 동공.

시작은 경험치였다.

레벨 10을 만들어 로라에게 금빛 신성을 얻어주려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놈은 생각 이상으로 강했다.

강소현은 탈진해 쓰려졌으며.

이하린은 저 검은색 핏속에서 떠나니고 있다.

몬스터 웨이브.

시체 거인.

그동안 만난 적들은 나약했다.

조금 고되긴 했어도 어떻게든 클리어할 수 있었다.

허나, 주시자의 눈.

놈은 달랐다.

또각, 또각.

너무 안일했다.

허나, 모든 것은 결과로 증명하면 될 일이다.

아직까지 아무도 죽지 않았으며, 지금 놈을 죽인다면 우리의 행위는 값지게 남을 것이다.

이하린은 용맹하게 놈에게 쐬기를 박을 기회를 만들었으며, 강소현은 요새를 놈으로부터 지켜준 영웅이다.

로라는 놈을 잡을 수 있게 길을 만들어준 위대한 고양이고.

나는 이 괴물을 죽인 집사가 될 것이다.

끼기기기긱-!!!

주시자의 눈.

놈의 동공이 커진다.

고작 이게 끝이냐?

콰지직-!

단단한 눈알을 붙잡으며 묻는다.

그리고는 마음속으로 생각한다.

으드득-

나는 집사다.

다시금 나의 정체성을 되새긴다.

마력.

오러.

힘.

기존의 '능력치'라는 것이 마나라는 것에서 유래한 것은 맞지만, 표출되는 방식은 저마다 다 다르다.

아마도.

나의 경우는 이럴 것이다.

'집사력'.

병신 같은 이름이지만, 이 이상 나에게 어울리는 것도 없겠지.

콰지끈-!!!

내 두 손이 놈을 부순다.

끼리리릭-

끼기긱-

끼리리리릭, 끼기긱, 기긱, 기....

콰직-!!!!

비명이 멎었다.

그리고 눈앞에서 수많은 메시지가 떠올랐다.

「주시 대상이 되었습니다.」

「최초의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최초로 레벨 10을 달성했습니다.」

「당신의 위업이 세계에 기록됩니다.」

「신성의 조각이 로라에게 깃듭니다.」

「인벤토리에 마지막 보상이 지급되었습니다.」

'주시자의 눈'을 죽이고 나타난 메시지들.

그리고 내게 그것들을 확인할 여유 따위는 주어지지 않았다.

-치지직

-자, 장진아에요. 더 이상 버티기 힘듭니다.

다급하게 울려오는 마석 통신기.

지지직-

그리고 요새 바로 아래에 설치되었던 토템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콰직-!

-치지직

-끄아악, 지, 지금 요새 쪽으로 대피 중입니다!!!

요새를 기준으로 남쪽과 서쪽은 안전하다.

하지만, 북쪽과 동쪽.

이태 초등학교와 식인종들이 점령한 경리단길의 방향은 푸른색 점들이 잔뜩 찍혀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과 대치하는 것은 고작 네 명의 사람이다.

방향 당 한 명이 담당하고 있는 것을 고려한다면, 북동쪽을 막고 있는 실제 인원은 둘.

요새 아래에 쓰러진 강소현.

그리고 내 앞에 둥둥 떠다니는 이하린.

둘 다 상태가 안 좋다.

대신이라 하기는 뭐하지만.

『키야오오!!!!』

로라가 얻은 '금빛 신성' 덕분에 무언가 타개책은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40. 식인종

습관성 미니맵 관찰 증후군.

아포칼립스가 온 뒤에 내가 얻은 질병이다.

질병이라 하기는 조금 이상하긴 하다만, 굳이 병으로 표현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SNS, 자극적인 쇼츠 매체들.

혹은 24시간 유튜브로 재생되는 뉴스.

나는 그런 것들에는 관심이 없었고, 그런 것들에는 중독될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살았다.

그런 것들은 내 의지로 보지 않은 수 있었으니까.

허나, 미니맵은 달랐다.

한 번 띄워 놓으면 눈앞에 계속 떠 있다.

이걸 끄면 내 주변 상황을 알 수 없어진다.

의지로 끌 수는 있지만, 이걸 끄면 생명의 위협에 그대로 노출될 수도 있었으니.

아포칼립스가 온 세상에서는 통신도 뭣도 없다.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 사람간의 대화와 '미니맵'이라고 볼 수 있지.

그러니 이것을 꺼둘 수는 없었다.

그리고 보이는 것을 무시할 수도 없었고.

그덕분에 전투중에도 주변 상황을 대략적이나마 파악할 수 있었다.

장진아, 윤설, 윤솔, 박정수.

요새 아래에 이상한 주술적인 토템을 박아 넣고는 동서남북으로 갈라져 버린 바바리안 부족.

그리고 전투가 시작되자 모여들기 시작한 파란 점들.

싸우는 와중에 자세히 분석할 수는 없었지만, 대로변에 모여든 점들은 두 가지 양상을 보였기 때문에 대략적으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첫 번째 집단.

주시자의 눈의 어그로를 우리가 끌어주는 사이 대로를 건너 용산구청 쪽으로 달려간다.

무임승차하는 느낌이라 조금 괘씸하기는 한데, 특별한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면 주시자의 눈을 잡을 생각도 못했을 테니 이해는 한다.

용산구청이 안전지대일 수도 있다는 것은 뭐, 여기저기 다 알려진 사실이기도 하니까.

지금이 아니면 넘어갈 수 없으리라 판단했겠지.

두 번째 집단.

이 새끼들은 좀 문제가 많다.

일단 대로를 건너는 사람들이 많았을 때만 해도 별다른 제스처 없이 멀찍이서 관망만 하고 있었는데, 한입충짓으로 날먹을 하려는 무리가 아닐까 싶었다.

허나, 뚜껑을 따 보니 웬걸, 놈들은 '주시자의 눈'에는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우리가 지치길 기다렸으며, 요새가 축소화를 쓴 직후부터 몰려들기 시작했으니까.

남은 가능성은 식인종들인데....

"흐아아아압-!!!"

"꺄아악!"

미친듯이 소리를 지르며 요새를 향해 뛰어 오는 네 개의 점을 보아하니, 적은 식인종이 맞는 모양이다.

-치지직.

-요, 요새로 바로 가면 되죠? 이제 결계가 깨져서 버티기가 힘듭니다!!

파앗-

「이준(Lv.10) 32세 / 보유 포인트: 18,469,820p」

「클래스: 집사 / 집사력: 10」

「칭호: 최초의 각성자」

「각인: 불사자 각인(Lv.1)」

「스킬: [방어 설비 건설], [주거지 건설], [요새화], [고양이 관리], [설계도]」

장진아 일행을 쫓아 요새를 향해 돌격 중인 식인종들을 상대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을 사용하기 위해 상태창을 열었다.

[요새화]

[긴급 복구: 1,000,000p]

[요새가 입은 피해를 24시간 전의 상태로 되돌린다. 쿨타임: 120시간]

[방어 설비 건설]

[감시 카메라: 1,000,000p]

[유도탄 미사일 포대: 1,000,000p]

[12발의 유도 기능을 가진 미사일을 발사하는 포대. 미사일: 50,000p]

우우웅-!

급한대로 대문 감시카메라와 미사일 포대를 건설한 뒤 나머지 것들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조금 비싸긴 한데, 주시자의 눈을 잡고 포인트가 1천만 단위로 올라버려서 딱히 별 감흥은 들지 않는다.

우웅-!

푸른빛을 뿜는 큐브들이 대문 위에 있는 자동 포탑 사이로 나타났다. 타이머가 뜨지 않은 걸로 보아 금방 지어지지 않을까 싶다.

위잉- 철컥-!

소리를 들어보니 지어지는 모습도 제법 멋질 것 같다마는 내게 미사일 포대가 지어지는 것을 구경할 시간은 없다.

주거지 건설, 설계도 등의 것들은 당장 필요하지 않으니 넘어가고.

[고양이 관리]

[소원: p%34xp을 %$$^@@로 구현한다.]

이것도 지금은 뭔지 모르겠으니 넘어가자.

"로라야, 신성의 조각. 그게 대체 뭐야?"

마지막 남은 것은 '신성의 조각'.

『냐아~! 냐아아-! 나아!!!』

흠....

뜻을 이루는 힘이라.

몹시 애매한 말이다.

『나아!!!』

내(집사) 뜻을 이루는 힘이라.

이것도 몹시 애매한 말이다.

'이 망한 세상을 원래대로 돌려라!'

『냐아...』

아직 그런 것은 할 수 없다고 한다.

'아직'이라는 것을 보면 언젠가는 가능할지도….

-치지직.

-끄윽-! 이, 이제 더는 안 돼요!!!

장진아, 윤설, 윤솔, 박정수.

바바리안 부족들 넷과 요새의 거리는 50m,

거리만 보면 가깝지만, 그들을 둘러싼 푸른 점 때문에 사실상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무리다.

대충 소리만 들어도 안다.

저들이 몸을 바쳐 시간을 벌었다는 것을.

-치지직.

-소, 솔아!!! 솔이가!!!

작은 소망.

'다른 이들을 요새 안으로 데려와줘. 가능하면 회복도 시켜줬으면 좋겠어.'

이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키야오오-!!』

가능하단다.

『냐아!』

타다다다닷-!

담장 위로 뛰어 오른 로라.

로라의 주위로 금빛 물결이 몰아치기 시작한다.

휘오오오오―

바람처럼 스쳐가는 금빛 물결이 마당이 있던 곳으로 모여들었고.

순간, 금빛 섬광이 짧게 번쩍이고 요새 마당에 여섯명의 사람이 나타났다.

"끄아아아악-!!!"

양팔을 모아 머리를 감싼 장진아.

"소, 솔아!!"

피투성이가 된 윤솔과 그런 그녀를 부여잡고 울고 있는 쌍둥이 누나 윤설.

지익, 지이익.

피묻은 손가락으로 바닥에 알아먹지 못할 글자를 적어대는 남자까지.

[박정수 이곳에서-]

뭔, 유언을 적고 있어....

또각, 또각.

"다들 정신차리시죠."

"어어...?"

"이, 이게 뭔, 소, 솔이부터 어떻게 해 주세요!! 어? 왜 몸이...…."

블링크.

텔레포트.

비슷한 기술은 많을 것이다.

허나, 지금 일어난 이 현상은 기술이나 스킬 따위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런 일이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기적.'

그렇게 불러야겠지.

"동생분도 멀쩡합니다. 다들 상태 점검이나 좀 해보시죠."

멍하게 고장나버린 네 명의 바바리안.

전신이 피투성이지만, 저들의 몸에는 단 하나의 상처도 남아있지 않았다.

"-이이이익!!!"

바바리안들이 멍하게 자신의 몸을 점검하는 사이.

"이익-!!!, 허억... 허억…."

강소현도 정신을 차렸는지 일어나서 괴성을 질러대고 있었고.

콰직.

콰지지직-!

강소현의 옆에는 고치가 널브러져 있었는데, 이하린도 마찬가지로 회복했는지, 몸을 감싸고 있던 고치를 부수고 일어났다.

나비의 우화.

그리 불러야할 것 같은 모습이다마는 나타난 것은 나비가 아닌, 이상하게 변한 인간이었다.

"아, 아저씨!"

한쪽 눈알이 검은색으로 변한 이하린.

동공은 또 하얀색이 되었다.

"다들 회포는 나중에 풀고, 당장 미니맵부터 보시죠."

궁금한 것도 많고 저들이 제대로 회복되었는지 확인도 하고 싶은데, 상황이 상황인지라.

냉정하게 상황 파악부터 하게 만들었다.

콰아아앙-!

콰아아앙-!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요새로 수많은 공격들이 날아들기 시작했으니까.

쐐애애액-

퍼억!

화염구부터 시작해서, 화살은 기본이요.

"형님!! 저놈들 틀어 박혀서 안 나오는 뎁쇼?"

급기야 요새를 둘러싸고 포위망을 만들기까지 시작했으니.

"아직 붙지 말라신다! 다들 거리 벌리고 진입조는 대기하고!"

계속해서 뭔가 공격들이 날아들지만, 내 요새는 거뜬하다.

"저거 왜 이렇게 안 부서져? 큰 거 한 방 가자!!"

요새 앞에 모여든 식인종 무리들을 보고 나서 드는 생각이 하나 있다.

일망타진.

사람을 처먹는 쓰레기들이 저들이다.

바바리안 부족은 동료를 먹혔고 그 동료의 능력은 식인종들에게 흡수당했다.

그리고 흡수한 능력으로 식인종 무리는 이하린 이하준 남매를 사냥하러 왔었고.

세상이 망했고, 망한 세상에 자리잡은 괴물들.

괴물들과 싸워서 승리하면 커다란 보상이 주어진다.

나처럼, 강소현처럼, 이하린처럼.

능력이 되면 괴물과의 전투로 힘을 키우고.

바바리안 부족들처럼.

능력이 안 되면 안 되는대로 자신의 할 일을 찾는다.

망한 세상에서도 정도(正道)로 걸어가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요새를 둘러싼 저들처럼 사도(邪道)를 걷는 자들이 있었다.

21세기 첨단 문명의 삶에서는 악인에 대한 처벌이 고작해야 몇 년의 옥살이었다면, 아포칼립스가 온 세상에서는 죽음일 것이다.

"이준 씨, 이게 대체 뭔… 200명 이상이네.... 수가 너무 많은데요?"

"미친, 좀비 웨이브는 왜 안 일어나?"

깨어난 강소현과 이하린.

저들도 멸망에 적응한 인간인지라, 곧장 현 상황에 대한 브리핑을 시작했다.

좀비 웨이브는 일어나지 않고 있다.

저 식인종들이 뭐라도 했겠지.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또각, 또각.

"일단 다들 쉬고 계시죠."

미니맵 끝단.

멀찍이 서 있는 푸른 점들이 대체 언제쯤 다가올 것인지가 문제지.

콰아아앙-!

요새를 둘러싼 놈들도 애가 닳았는지 요새가 흔들릴 정도의 공격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아저씨! 언제까지 구경만 할 거예요?"

"이준 씨, 요새 벽에 금이 갔는데."

강소현, 이하린.

둘은 나를 알기에 걱정하지 않는다.

조금 보채기는 한다만.

"...."

바바리안 부족민들.

저들은 조금 불안해 보인다.

허나, 그들도 나를 봤기에 굳이 그 마음을 말로 꺼내지는 않았다.

콰지직-!

"여, 열렸다!!!"

축소화된 요새의 벽이 뜯겨 나갔다.

그리고 아직도 구경하는 점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어찌나 신중한 놈들인지....

멀찍이 서있는 놈들은 끝까지 올 생각이 없어 보인다.

"아, 아저씨 벽이 허물어졌는데요?"

이하린이 조종실로 다가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검은색 눈알, 흰색 동공은 어느새 사라져 있었고 그녀의 눈은 원래 모습을 되찾아 있었다.

확인은 나중이다.

그리고 그녀가 가진 의미 없는 걱정에 대답은 필요 없다.

우우웅-!

대문 위에 있는 향상된 자동 포탑.

그 사이로 미사일 포대가 완성되었으니까.

"와, 저건 또 뭐래요. 아저씨도 생각이 있겠죠 뭐."

뭐, 일망타진까진 무리여도 장기말 정도는 줄일 수 있겠네.

[긴급 복구: 1,000,000p]

화면에 손을 얹자.

지이이이이이잉-

기이한 울림이 들려온다.

콰과과광-!!!

그리고 시간이라도 역행한 것처럼 요새가 본래 모습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무너진 벽이 다시 조립된다.

소멸되었던 요새의 다리가 솟아나고 있다.

부서진 잔해가 근처에 있다면 그것들이 달라붙어 본래 모습을 찾고, 소멸되어 찾을 수 없는 부분은 새 살이 돋아나듯이 자라난다.

그리고 요새는 여전히 축소화된 상태 그대로였다.

축소화가 풀린다면, 요새 밑에 놈들이 들이닥칠 수도 있어서 제법 고생을 했을지도 모르는데.

"밀어붙여!!!!"

"혀, 형님, 저거 다시 고쳐졌는데...."

그런 걱정은 덜었다.

다가오던 놈들이 복구된 요새를 보고 당황하기 시작했고, 나는 포탑을 사용 모드로 바꾸었다.

위이이이잉―

위이이이잉―

그러고는 곧장 조종실로 들어갔다.

감시 카메라.

그것은 요새의 전면을 커버하고 있었다.

그리고 찍은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화면이 필요한 법. 조종실의 의자 주위로 수많은 모니터가 생겨나 있었다.

의자의 팔걸이 쪽에도 작은 모니터가 하나 생겨 있었는데, 미사일 포대의 작동 콘솔이 아닐까 싶다.

이건 당장은 아껴둔다.

투타타타타타타타타탓-!

투타타타타타타타타탓-!

쏟아지는 포화.

"크어억-!!! 저, 저도 데려가 주십쇼!!"

"튀, 튀어!!!"

놈들도 나름 강해졌고 믿는 구석이 있었는지, 총알 세례에 맞고도 살아있는 놈들이 제법 있었다.

그런 놈들은 고정 포탑으로 조준해 직접 마무리해주면 그만이다.

고정 포탑에 달린 소형 미사일까지 곁들여 주니.

콰아아앙-!!

사방이 외마디 비명조차 없이 사방이 고요해졌다.

250여 명의 식인종 집단.

그것들을 섬멸하는 데에는 5분도 채 안 걸렸다.

그들은 약했다.

주시자의 눈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미, 미친.... 아저씨 나 여기서 살기로 한 거 맞죠?"

"볼 때마다 느끼는데, 진짜 집사만 한 사기 직업도 없는 것 같네요."

동료들의 감탄.

"조금 더 지켜보시죠."

아직 피날레가 남아 있다.

미니맵의 끝자락.

멀찍이서 구경 중인 파란색 점 20여 개.

놈들은 아마도 식인종의 대장일 것이다.

혹은 대장의 직속 부하라든가.

그들을 향해 미사일 포대의 폭격 지점을 설정했고.

피유우우우우웅-!!!

피유우우우우웅-!!!

엄청난 속도로 열두 발의 미사일이 하늘 위로 발사되었다.

#41. 별천지 이세계 (1)

"큰형님, 저거 보셨습니까?"

"새꺄, 나도 눈이 있는데."

곽성룡은 눈앞에 보이는 광경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사람을 먹고 자란 자신의 수족들.

그들은 아포칼립스 속의 인재요, 사람을 먹고 사람을 해치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귀중한 존재다.

일부 잡것들이 섞여 있다고는 하나, 그들조차도 멸망 이후에 빠르게 인간성을 버려버린 인재임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헤에, 혀, 형님. 언제 먹을 수 있습니까?"

문철두, 대식가 협회에 가입한 그는 폭식자라는 직업으로 전직했다.

"어휴, 이 미친놈."

잦은 인육 섭취로 바보가 되어 버린 문철두.

"저, 저기 이상한 양복 입은 놈을 먹으면 엄청나게 강해질 것 같은데...."

곽성룡과는 혈육보다 진한 인연이 있다.

함께한 세월이 있으며, 이제는 떼 놓을 수 없는 사이가 되어 버렸다.

"젠장."

그렇기에 곽성룡은 '식자재 감별' 스킬을 신뢰했다.

그동안처럼 좋은 능력을 지닌 먹잇감을 만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신중한 그였기에.

조직원 반수를 데리고 요새를 치러 왔다.

그조차도 의미 없는 일이 되어버렸지만.

투타타타타탓-!

요새에서 흩뿌려지는 총알에 다진 고기처럼 변해버리는 조직원들.

콰아앙-!

살아남은 자들은 거대한 포탑의 총포와 작은 미사일의 폭격을 맞아 산산조각 나버렸다.

"빼자. 어차피 아랫것들은 금방 모인다."

후퇴라고는 해본 적 없던 사내에게서 후퇴라는 단어가 나왔다.

"혀, 형님! 피하셔야 합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도망갈 시간 따위는 주어지지 않았다.

피슈우우우웅-

잡졸들을 폭사시키던 작은 것이 아니었다.

한 발 한 발이 사람보다 큰.

진짜 전쟁에서나 봤을 법한 그런 것들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매우 빨랐다.

알아챈 사람이 두 명뿐이 없었을 정도로.

"큰형니이이임-!!!"

그중 하나는 바보가 된 문철두였다.

바보가 되었던 그는 위기를 앞두고 제정신을 되찾았다.

퍼억!

그가 곽성룡을 밀치고는 몸을 부풀렸고―

콰아아아아앙-!!!!

직후 열두 발의 미사일이 그들이 있던 장소를 쓸어 버렸다.

쿠구구구궁-!

그들이 숨어 있던 폐허.

그곳은 텅 빈 공터처럼 변해버렸다.

건물 잔해도, 사이사이로 튀어나온 철근도, 좀비와 고블린의 시체도 없다.

지이익-

지이이이익-

"끄으으윽...."

그 안에서 한 남자가 일어섰다.

"크, 큰형님!!!"

또 다른 한 남자가 일어났고.

"처, 철두야!!!!!!!!"

마지막 한 남자는 주검이 되어 있었다.

아포칼립스.

그와 함께 새로이 전성기를 맞은 조직 폭력배.

그들은 무법자였다.

원하면 뺐고, 취하고자 하면 취했다.

처음에야 모두가 각성해서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마저도 요령이 생겼다.

이대로 이 세계에 군림하는 왕이 될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들에게 감당할 수 없는 더 큰 폭력이 찾아와 버렸다.

지이익-

30여 명의 측근과 함께 있던 곽성룡.

그가 으스러진 다리를 끌고 주변을 둘러본다.

'정식이, 창기, 인성이, 인철이, 문철이, 자환이, 국성이, 창식이.'

아홉 명의 측근.

그리고 그 측은을 보필하던 나머지들.

그들은 시체조차 찾을 수 없다.

그래도 그가 가장 사랑하던 식구.

문철두의 시체만은 남아 있었다.

몸의 뒤편은 새까맣게 타버리고 사라져 버렸지만, 얼굴만은 그대로다.

털썩-

곽성룡이 문철두의 시신 옆에 쓰러졌다.

'내 죽어도 네 복수는 꼭 해주마.'

곽성룡 눈에서 피눈물이 흐르고.

그가 문철두의 얼굴을 부여잡았다.

얼굴만은 예전 그대로였다.

지이익-

지익-

곽성룡, 그가 뭉개진 다리를 꾸역꾸역 일으켜 문철두의 시신 앞에 섰다.

피눈물은 멎어 있었다.

"혀, 형님 제가 부축해―"

그 옆에는 곽성룡의 왼팔 강두식이 서 있다.

"됐다. 철두나 챙겨 와라. 장례는 치러 줘야지."

타오르는 분노.

그와 별개로 그들은 냉정했다.

"빨리 여기서 뜨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