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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이야?

업그레이드는?

혹시 상위 스킬을 또 업그레이드하려면 레벨 10이 되어야 하는 건가?

뭐,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시스템이 어떤 식으로 작동할지 아직은 함부로 예측하기 어려웠다.

산성 용액을 모두 발사한 나는 멀쩡해진 다리와 함께 전장으로 돌아갔다.

흘끗 뒤쪽을 돌아보니, 여왕은 더 이상 앞으로 나서지 않고 있었다.

아래로 내려와서 스스로를 위험에 노출시키기는 했지만, 여전히 뒤쪽에 머물며 개미들이 둥지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여왕이 함부로 나서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통로가 너무 좁아서 여왕의 덩치로는 직접 싸우기 어렵기도 했다.

여왕의 안전을 확인한 나는 천장에 매달린 채 최전선을 향해 나아갔다.

광전사 몬스터들의 작고 움푹 파인 눈은 상대적으로 몸의 아래쪽에 붙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놈들이 위쪽을 올려다보기가 쉽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다.

과연 나는 한창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최전선을 지나 그 뒤쪽까지, 은신 상태로 쉽게 전진할 수 있었다.

거꾸로 매달려 있는 내 아래에서는 개미들이 사납게 적들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개미들의 수가 너무 많다 보니, 미친듯이 날뛰는 광전사들도 쉽게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중이었다.

일개미들은 벽을 타고 접근하거나, 광전사들의 발 밑을 파고든 뒤 강력한 턱으로 다리를 잡아당겨 놈들을 넘어뜨리는 등 다양한 방식의 공격을 퍼부었다.

여왕이 치유 주문을 발휘한 뒤로 전장의 흐름이 완전히 뒤집히고 있는 게 느껴졌다.

나는 천장에 붙어서 통로 안쪽으로 더 깊이 들어갔다.

내가 후방을 교란하면 전선의 개미들이 더 쉽게 전진할 수 있을 터였다.

예상대로 광전사들의 후방은 내가 발사한 산성 용액 때문에 이미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몇몇 광전사들은 심한 부상을 입고 비틀거렸고, 다른 놈들은 거슬리는 울음 소리를 내며 팔에 달린 칼날을 마구 휘둘러 주위의 동료들을 공격했다.

나는 한동안 상황을 신중하게 관찰하다가, 몬스터들 중 한 놈의 등 위로 뛰어내렸다.

그리고 놈의 근육에 발톱을 단단히 박아 넣고 매달렸다.

여태까지 이 정도로 기괴하고 인공적인 모습의 몬스터는 본 적이 없었다.

마치 무자비한 살육 기계를 만들기 위해 신체 부위들을 아무렇게나 조립해 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이런 생물이 자연적으로 발생했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대체 어떤 끔찍한 지성이 이런 광기 어린 설계를 한 걸까?

어쨌든 이제 다시 한 번 주입 턱을 써먹을 때로군!

정신을 집중하자 마나가 흘러들어 턱에 에너지를 충전했다.

단단히 물기!

마나가 부여된 턱은 광전사의 살을 뚫고 들어가 등에 커다란 상처를 입혔다.

괴물의 체액이 솟구쳐 내 머리를 온통 적셨다.

광전사는 찢어지는 비명 소리를 내더니 필사적으로 나를 몸에서 떨어뜨리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놈을 단단히 붙잡고 계속 물었다.

단단히 물기는 광전사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을 때까지 놈의 등을 유린했다.

[단단히 물기 스킬이 레벨 5가 되었습니다.]

[레벨 11 네 개의 칼날 광전사를 처치했습니다.]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레벨 6이 되었습니다.]

경험치가 엄청나잖아!

레벨이 높은 적이라서 그런지 스킬 레벨들도 빠르게 오르고 있었다.

나는 멈추지 않고 방금 쓰러뜨린 놈의 바로 뒤쪽에 있는 광전사를 노렸다.

그 몬스터는 한창 바로 옆의 동료와 싸우는 중이었다.

놈이 칼날들을 크게 휘두르는 순간, 그 아래쪽을 파고들어 턱으로 다리를 물었다.

이번에는 날카로운 깨물기!

내 턱이 적의 다리에 깊이 박혔고, 날카로운 부분들은 대번에 뼈까지 닿았다.

다리를 물린 광전사는 즉시 물러났지만 나는 이미 놈의 뒤쪽 다리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깨물기!

[날카로운 깨물기 스킬이 레벨 2가 되었습니다.]

두 다리에 큰 상처를 입은 광전사는 더 이상 균형을 유지하지 못하고 쓰러지며, 뒤에 있던 다른 몬스터와 부딪혔다.

그러자 뒤에 있던 놈이 성난 포효화 함께 칼날을 휘둘러, 같은 편을 공격했다.

이놈들은 정말 서로 협력할 줄 모르는 괴물이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애초에 서로 협력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지도 않은 놈들이 왜 이렇게 잔뜩 모여서 위로 올라온 걸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서로 싸우는 광전사들의 다리들을 계속 물었다.

그러다 운 좋게 결정타를 먹이기도 했다.

[레벨 8 네 개의 칼날 광전사를 처치했습니다.]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레벨이 또 오르지는 않는군.

이제 몬스터들의 대열은 완전히 혼란의 도가니로 변해 있었다.

광전사들이 서로를 죽이는 속도가 개미들이 놈들을 쓰러뜨리는 속도보다 빠를 정도였다.

사실 여왕이 나타난 뒤로는 거의 일방적인 싸움이었다.

개미들은 수적인 우위를 이용해서 침략자들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나는 계속 교란 작전을 펼치며, 몬스터들의 다리를 물어서 쓰러뜨리거나 광란 상태로 만들었다.

그러면서 날카로운 깨물기의 스킬 레벨을 하나 더 올렸고, 운 좋게 막타를 한 번 더 쳐서 7레벨이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광란의 시간이 끝났다.

통로는 광전사들의 시체로 가득했다.

개미들도 많이 죽었지만, 처음에 내가 걱정했던 것만큼 피해가 크지는 않았다.

여왕의 치유 마법이 싸움 초반에 심각한 부상을 입었던 개미들을 십여 마리나 구했기 때문이다.

나는 지친 상태로 주위를 둘러봤다.

일개미들은 벌써 주위에 널려 있는 바이오매스들을 수확하기 시작했다.

시체를 잘게 잘라서 운반하거나 바로 먹어서 사교용 위에 저장하기도 했다.

광전사들의 시체는 모두 스무 구였다.

놈들이 어디서 온 건지, 그리고 왜 이 통로를 이용해서 위로 올라온 건지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혹시 원래 서식지에서 밀려나 식량과 안전한 장소를 찾으러 왔던 걸까?

이 괴물들은 내가 여태까지 본 중 가장 레벨이 높고 진화한 몬스터였다.

어떤 위협이 그런 놈들을 단체로 쫓아낼 수 있을까?

솔직히 내 마음 같아서는 이 통로를 무너뜨리고 싶었다.

또다시 광전사들, 혹은 더 위험한 괴물들이 둥지로 기어올라오는 걸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설사 내가 그런다고 해도 일개미들이 다시 길을 뚫겠지···

그때 뭔가 칭얼거리는 듯한 소리가 들려서 돌아보니 타이니가 내 다리들 중 하나를 잡아당기고 있었다.

무사했구나, 꼬마.

살아서 다시 보니 반가운데!

내 주의를 끄는데 성공한 타이니는 곧 주위에 널린 시체들을 돌아보며 눈을 빛냈다.

그리고 정말로 침을 줄줄 흘렸다···

야 임마··· 더럽게··· 그냥 먹어!

나는 다리로 타이니를 밀어서 시체 쪽으로 보냈다.

타이니는 나를 돌아봤지만, 나는 계속 밀었다.

그러자 녀석도 내 뜻을 이해했는지 바이오매스를 섭취하기 위해 달려들었다.

사실 여기 있는 바이오매스의 양만 놓고 보면, 이번 침략은 둥지 입장에서 큰 이득이었다.

많은 개미들이 변이할 수 있을 테고···

다음 세대를 부양하기 위한 식량도 넉넉하게 얻었으니까 말이다.

뒤쪽을 돌아보자 여왕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아마 식량이 확보된 걸 보고 방으로 돌아가서 알을 잔뜩 낳을 준비를 하는 중이겠지.

일개미들이 한동안 바빠지겠군.

나는 완전히 지친 몸을 이끌고 꾸역꾸역 네 개의 칼날 광전사들의 시체를 뜯어먹기 시작했다.

최대한 많은 바이오매스를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휴가

둥지 위쪽으로 돌아가기 전, 나는 광전사들의 시체로 배를 채우고 열 개의 바이오매스를 얻었다.

대단한 수확이었다!

이렇게 많은 바이오매스를 주는 걸 보면, 이 괴물들은 최소한 두 번 이상 진화한 놈들이 틀림없었다.

놈들과 싸우면서 레벨도 7로 올랐고 말이다!

덕분에 스킬 포인트도 넉넉했다.

게다가 광전사들의 코어도 두 개 손에 넣었다.

흡수하면 마나 최대치를 늘려주는 외에 추가 보너스가 없을까 기대했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그래도 하나당 4점이나 줘서, 두 개를 흡수하자 마나 최대치가 36이 되었다.

이번 단계에서는 코어를 얼마나 더 흡수해야 한계까지 성장할 수 있을까?

내 추측이 맞다면, 아마 레벨 10에서 다시 진화할 수 있을 터였다.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면 코어를 한계까지 성장시키기 전에는 진화하고 싶지 않았다.

매번 최고의 진화를 노린다!

그게 내 계획이다.

어쨌든 풍족한 수확을 자축하며, 나는 한동안 둥지 안에 머물며 쉬기로 했다.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싸웠을 뿐 아니라, 두 다리가 잘린 트라우마까지 있어서 휴식을 좀 취할 필요가 있었다.

마나 조작 스킬을 레벨 5까지 올린 다음 업그레이드하고, 모든 스킬 포인트를 다 쓸 때까지는 밖으로 나가지 않을 작정이었다.

나는 타이니를 데리고 빈 방으로 돌아와서 잠시 눈을 붙였다.

그리고 깨어난 뒤에는 마나를 모두 소진할 때까지 마나 조작 스킬을 연습했다.

코어가 업그레이드된 덕분에 전보다 더 여러 차례 연습할 수 있었다.

어서 스킬 레벨이 5까지 오르면 좋겠는데···

연습을 마치자, 이제 바이오매스를 사용할 차례였다!

모처럼 바이오매스가 넉넉하다 보니··· 오히려 선택이 어려웠다.

갑각을 +5로 업그레이드한다고 쳐도 여전히 포인트가 남았다.

방어력을 높일 뿐 아니라 고급 변이까지 가능할 테니 괜찮은 선택지였다.

혹은 재생 분비선을 +4로 만들고···

더듬이도 +4까지 올린다고 치면, 바이오매스 세 개가 남는데···

아우 고민돼!

결국 나는 고급 변이를 우선하기로 했다.

여태까지 모든 고급 변이를 할 때마다 엄청난 도움이 되었으니, 갑각 역시 마찬가지일 터였다.

[갑각을 +5로 업그레이드하겠습니까? 9 바이오매스를 소모합니다.]

그래!

[이 레벨에서는 고급 변이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엄청난 길이의 가능한 변이 목록이 내 머리 속에 펼쳐졌다.

그리고 이번에도 나는 그럴싸해 보이는 온갖 선택지에 정신을 빼앗겼다.

독 갑각, 나를 공격한 적을 중독시킨다고?

가시 갑각, 전신이 날카로운 가시로 뒤덮여?

공기 역학 갑각··· 이동 속도를 올린다··· 뭐야 이건?

특이한 능력과 보너스를 부여하는 선택지가 무수히 많았다.

예를 들어 경사 갑각은 외골격에 경사를 만들어서 관통 공격을 빗나가게 만들었고, 탄력 갑각은 마치 고무처럼 무딘 공격을 튕겨내는 용도였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일반적인 방어력 향상이었다.

좀 더 안정적으로 나 자신을 보호할 수단이 필요했다.

내 머리 속에 있는 이미지는 육중한 장갑차였다.

두꺼운 장갑으로 자잘한 공격 따위는 모두 튕겨내면서 전진하는 그런 존재 말이다.

마침 그런 이미지에 어울리는 선택지가 눈에 띄었다.

[다이아몬드 갑각. 외골격의 강도를 크게 향상시키고, 물리적인 피해에 대한 저항력을 높입니다.]

화려하거나 신박한 특성은 없지만··· 정확히 내가 원하는 방향의 선택지였다.

마법 공격이나 상태 이상에 대한 보호가 없다는 약점이 있기는 하지만, 설명을 보면 적어도 물리적인 보호 측면에서는 가장 뛰어난 듯했다.

다른 종류의 공격에 대해서는 천천히 해결책을 찾아도 되겠지.

지금 당장은 나를 상대로 한 거의 모든 위협이 물리적인 공격이니까···

이 업그레이드가 가장 유용했다.

[다이아몬드 갑각으로 결정하겠습니까?]

그래!

···으.

으아아아!!

제기랄!

주위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보니 정신이 분산되었던 지난 번과 달리, 조용한 방 안에 앉아서 겪는 변이 과정은 그야말로 고문에 가까웠다.

갑각은 내 온몸을 감쌌고··· 그 온몸에 불이 붙은 것처럼 느껴졌다.

미친 듯이 가렵고 뜨거운 느낌이 전신을 휩쓰는 동안, 나는 여섯 개의 다리를 모두 경련하듯 떨며 발버둥쳤다.

타이니는 그런 내 모습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망할 원숭이 자식!

왜 그렇게 편안해 보이는 거야!

그나저나 그새 또 커진 것 같은데···

겨우 변이 과정이 끝난 뒤, 나는 새로운 갑각을 감상했다.

색이 전체적으로 좀 진해졌고, 어두운 동굴 속에서도 몇몇 부위들이 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설마 정말 다이아몬드가 외골격에 섞이기라도 한 건가?

만약 그렇다면··· 내 갑각이 엄청나게 비싼 물건이 됐다는 뜻이잖아?

혹시 이것 때문에 인간들이 날 노리지는 않겠지?

보물 상자를 등에 지고 다니는 꼴이 아니라면 좋겠는데···

어쨌든 이제 다음으로 할 일은 식사다!

이번에는 좀 머리를 썼다.

배가 불러서 더 먹을 수 없게 되었을 때, 고기를 좀 잘라서 여기로 가지고 왔거든.

물론 내가 잠든 사이 다른 일개미들이 가져가지 못하도록 땅에 묻고 그 위에 엎드려서 자야 했지만···

나는 즐겁게 땅을 파고 버서커 모닝 세트를 꺼냈다.

그리고 타이니와 함께 식사를 시작했다.

땅에 묻어 놓은 탓에 흙이 좀 묻었지만···

몬스터가 몬스터 고기를 먹는 상황에서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다.

어차피 이러나 저러나 맛은 끔찍하고 말이다.

식사를 마치가 바이오매스 두 개가 더 생겨서, 모두 세 개가 되었다.

나는 즉시 바이오매스를 사용해서 더듬이를 +3으로 만들었다.

이제 공격과 방어 능력이 모두 전보다 높아졌지만, 나는 아직도 적들에 대한 감각의 우위를 중시했다.

앞으로도 언제나 적에게 발견되기 전에 내가 먼저 적을 발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서 상태창을 확인하니 다음과 같았다.

=====

레벨: 7 (코어)

힘: 31

강인함: 22

영리함: 25

의지: 18

HP: 50/50

MP: 3/36

스킬: 발굴 레벨 1, 향상된 산성 용액 발사 레벨 5, 잡기 레벨 4, 단단히 물기 레벨 5, 고급 은신 레벨 3, 날카로운 깨물기 레벨 3, 터널 센스 레벨 4, 마나 조작 레벨 4

변이: 초점 겹눈 +5, 더듬이 +3, 구속 산성 용액 +5, 다리 +1, 주입 턱 +5, 다이아몬드 갑각 +5, 재생 분비선 +1, 페로몬 분비선

종족: 성체 일개미 (포르미카)

스킬 포인트: 5

바이오매스: 0

=====

갓 태어났을 때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엄청난 성장이다!

미래의 발전을 위해 견고한 기반을 마련했다는 생각에 만족스러웠다.

고급 변이를 우선하고 코어 성장과 마나 조작 스킬에 집중하는 선택은 언젠가 반드시 빛을 볼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이제 마침내 둥지를 찾았으니 최소한 어느 정도 수준의 안전은 보장된 셈이다.

계속해서 아까와 같은 침략을 받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모든 바이오매스와 MP를 사용한 뒤, 나는 타이니를 데리고 둥지 안을 산책했다.

그러자 많은 일개미가 변이를 거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여기저기서 더 커진 턱이나 길어진 더듬이가 눈에 띄었다.

광전사들의 시체에서 나온 바이오매스를 모두 합하면 백 개도 넘을 터였다.

아무리 여왕이라도 그걸 전부 소화할 수는 없으니, 다른 개미들에게도 일정 부분 보상이 돌아간 모양이었다.

육아실에 들르니, 벽을 따라 새로운 번데기들이 늘어서 있었다.

번데기는 개미 유아기의 마지막 단계였다.

유충들이 저 고치 안에서 성장하면···

갓 부화한 일개미가 탄생하는 것이다.

더욱 인상적인 건 한쪽 구석의 거대한 알 무더기였다.

언뜻 봐도 수백 개에 달했다.

만약 둥지가 충분한 식량을 확보해서 저 알들을 모두 성체 개미로 키워낼 수 있다면, 아주 빠르게 두 배 이상 성장하는 셈이다.

그러면 나 자신의 안전에도 도움이 될 터였다.

우리 같이 힘내자고, 형제들!

타이니와 나는 유충들과 잠시 놀아준 뒤, 여왕의 방을 방문했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대로 여왕은 낮잠을 자는 중이었다.

지난 몇 시간 동안 벌어진 일 때문에 피곤했던 모양이다.

아마 그 정도 규모의 치유 주문을 쓰려면 모든 마나를 소진해야 했겠지.

그만한 양의 마나를 끌어내는 일이 정신적으로 얼마나 힘들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여러 마리의 개미들이 잠든 여왕의 주변에서 보초를 서고 있었다.

다들 여왕의 안전에 대해 노심초사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여왕이야말로 이 둥지의 그 어떤 개미보다 중요한 개체니까.

물론 나는 예외지만.

헤헤.

둥지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확인한 뒤, 나는 빈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MP를 모두 소진할 때까지 마나 조작 스킬을 연습하고 다시 휴식을 취했다.

이 세계에 개미로 태어난 뒤 이렇게 빈둥거려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엄청나게 편안하고 만족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스트레스가 많이 쌓여 있었나?

어쨌든 잠시라도 아무런 걱정 없이 쉬거나 놀 수 있다는 게 엄청난 사치로 느껴졌다.

그동안 뭔가가 날 죽이려 들지 않으면 내가 뭔가를 죽이려 들기만 했으니까 말이다.

이 던전 안에서는 바이오매스와 경험치를 두고 끝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환한 개활지부터 가장 깊고 어두운 동굴 속까지 예외없이 말이다.

던전의 몬스터들은 언제나 더 강해지기 위한 사냥에 나서야 했다.

그 길에 끝이 있기나 할까?

애초에 이 모든 몬스터들은 다 어디서 온 걸까?

그리고 왜?

나는 아직 이 세계에 대해 아는 바가 너무 없었다.

여태까지 어떻게 살아남고 성장도 했지만, 정보가 너무 부족했다.

인간의 사회라면 쉽게 구할 수 있는 종류의 정보 말이다.

역사, 지리, 과학···

대체 여기가 어디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에 대한 내용들.

내게는 미쳐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일들도 이 세계의 문명에게는 당연한 일이겠지.

인간과 의사 소통을 할 수만 있다면!

물론 인간들이 날 보자마자 머리통을 자르려고 들지 않아야 가능한 일이지만···

여왕은 여태까지 내가 본 몬스터들 중 가장 영리하고 우호적인 존재였다.

하지만 제대로 의사 소통을 할 수는 없었다.

혹시 여왕이 더 진화하거나 충분히 많은 바이오매스를 얻으면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길까?

개미 언어나 텔레파시, 뭐 그런 것 말이다.

나로서는 그저 기다려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빈둥거리는 생활이 이틀 정도 이어졌다.

눈을 뜨면 마나 조작을 연습하면서 MP를 모두 소모한 다음, 질릴 때까지 둥지 안을 산책했다.

그러자 두 번째 날이 끝날 무렵에는 내가 옆을 지나갈 때마다 여왕이 못마땅한 시선을 보내는 게 느껴졌다!

마치 집에서 빈둥거리는 아들을 걱정하는 엄마처럼 말이다.

아니··· 엄마!

며칠 좀 쉴 수도 있잖아요!

하긴 나를 제외한 나머지 일개미들은 정말이지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바쁘게 돌아다녔다.

둥지 밖을 정찰하고, 먹이를 찾아서 가져오고, 유충과 번데기를 돌보고, 둥지를 청소한 다음 잠깐 자고 일어나서 같은 일을 반복했다.

솔직히 그걸 보고만 있어도 피곤했다.

타이니도 줄곧 내 등에 늘어져 있다가, 기회가 될 때마다 낮잠을 청하며 휴가를 즐기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계속 빈둥거리다 보면 녀석도 배가 고프겠지.

사흘 때 되는 날, 마나 조작을 연습하던 중 새로운 메시지가 나타났다.

[마나 조작 스킬이 레벨 5가 되었습니다. 업그레이드가 가능합니다.]

드디어!

개미답게

가뭄에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얼마나 이 순간을 기다려 왔던가!

소중한 스킬 포인트를 쓰고 싶은 충동을 계속 억눌러 가면서 말이다.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마법 스킬을 배우는데 쓸 포인트를 낭비할까 봐, 그동안 아예 스킬 메뉴를 열어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제··· 드디어 때가 됐다!

나는 신이 나서 마나 조작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메뉴를 열었다.

[마나 조작 -> 마나 형성. 이 고급 스킬은 마나를 제어해 주문을 사용하기 위해 필요한 특정한 형태로 만드는 능력을 높여줍니다.]

좋아, 기대했던 그대로야.

당장 이걸로 업그레이드해!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나서 구입 가능한 스킬들의 목록을 확인했다.

마치 도박판에서 카드를 뒤집을 때만큼 떨리고 불안한 기분이었다.

제발 뭔가 좋은 게 나와라···

마침내 메뉴가 열리자, 수많은 새로운 선택지가 나타났다.

처음부터 존재했던 스킬들에 다양한 전투 스킬, 방어 스킬, 정신 스킬이 더해진 목록이었다.

너무 탐나는 게 많아서 고를 수가 없잖아···!

나는 다른 쪽에 정신이 팔리기 전에 서둘러 마법과 관련된 스킬들을 찾았다.

[강력한 마나. 짧은 시간 동안 상당량의 마나를 엄청난 강도로 방출하는 능력을 높여줍니다.]

[외부 마나 조작. 사용자의 몸 밖에서 마나를 제어하고 조작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합니다.]

[마나 감지. 몬스터 코어를 사용해서 마나를 축적한 개체를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이 세 스킬들은 모두 어떤 식으로든 마나 혹은 마법과 직접 관련되어 있었다.

사실 파이어볼 같은 스킬이 나오기를 바랐지만, 아무래도 거기까지는 갈 길이 먼 것 같았다.

그저 한 마리 개미에 불과한 나로서는 스킬 이름에 마나가 들어가기만 해도 감지덕지하며 전부 살 수밖에···

구입을 확정하자 마자 이제는 친숙한 부드러운 감각이 머리 속에 느껴졌다.

새로운 지식들이 쏟아져 들어와 마치 빈틈을 메우는 것처럼 내가 모르던 부분들을 채웠다.

이제 스킬 포인트는 하나밖에 없는데, 목록에는 너무 많은 환상적인 스킬들이 남아 있었다.

대체 뭘 선택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스킬 이름 하나가 내 눈길을 끌었다.

이건···

이런 스킬이 있을 줄이야.

[코어 공학. 사용자가 몬스터 코어의 구조를 피상적인 수준에서 조작할 수 있게 합니다.]

전투나 치유, 정찰, 마법 그 어느 방면에도 해당하지 않는 스킬이지만···

어쩐지 이 세계에서 내 미래를 좌우할 스킬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코어로부터 타이니를 재구성할 때, 특정한 스킬이 있으면 그 과정을 수동으로 진행할 수 있다는 시스템 메시지가 떴던 게 기억났다.

아마 진화를 수동으로 진행했을 때와 비슷한 방식이겠지.

해당 스킬이 정확히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잘 모르면서도, 난 코어 공학을 선택했다.

···

이제 그 동안 쌓였던 스킬 포인트를 모두 사용했다!

당장 마법을 사용할 수 없다는 건 다소 실망스러웠지만, 그래도 목록에 나온 모든 마나 관련 스킬을 구입해서 만족스러웠다.

아마 머지않아 마법을 쓸 수 있게 되겠지!

스킬 선택을 마치고 타이니를 돌아보니 바닥에 앉아서 졸고 있었다.

문득 녀석의 성체 형태와 거대 악어가 맞붙어 싸우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 몬스터들은 번개를 주먹에 두르거나 파이어볼을 토하기도 했지만, 지능을 가지고 마법을 쓰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런 능력을 얻는 또다른 방법이 있는 걸까?

어쩌면 진화 도중에 MP를 가지고 본능적으로 그런 효과를 낼 수 있는 능력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흠···

10레벨이 되어서 다시 진화를 하게 되면 나도 그런 능력을 얻을 수 있는지 한 번 봐야겠군!

스킬을 새로 얻고 나니 실제로 써 보고 싶어졌다.

물론 스킬을 구매하면 사용법에 대한 지식도 함께 생겼지만, 의식적으로 사용해 보는 것과 비교할 수는 없었다.

먼저 외부 마나 조작부터.

이게 제일 어려울 것 같으니까 말이지.

나는 천천히 정신을 집중한 뒤, 감각 기관이 아니라 정신으로 주위 환경을 느끼려고 시도했다.

내 정신이 밖으로 뻗어 나가는 건 아주··· 이상하다는 말로도 부족할 정도였다.

곧 공기 중의 가벼운 마나 흐름이 느껴졌다.

마치 강 속을 헤엄치는 물고기가 된 기분이었다.

공기 중의 희미한 마나 흐름은 내 코어 안에 들어 있는 밀도 높은 마나보다 훨씬 더 다루기 어려웠다.

10분 정도 마나의 흐름을 의지로 바꾸려고 시도하다가, 머리가 너무 아파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 어렵잖아!

이 스킬이 실제로 무슨 쓸모가 있을까 하는 의문마저 들었지만···

구입한 이상 마스터할 때까지 계속 도전할 생각이었다.

다음은 마나 감지였다.

내가 이해한 바로는 코어를 사용해서 쓰는 스킬인데···

우선 마나 조작 스킬을 연습할 때처럼 내 몸 속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몬스터 코어에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자 뜨거운 안개처럼 소용돌이치고 솟구치는 밀도 높은 마나가 느껴졌다.

나는 에너지 그 자체에 집중하기보다 정신을 확장해서 공간을 채웠다.

그리고 기다렸다.

서서히, 아주 희미한 메아리가 내 감각에 잡히기 시작했다.

마치 내가 손을 담그고 있는 웅덩이네 누가 조약돌을 던졌을 때처럼···

내 생각의 가장자리에 작고 희미한 파문들이 느껴졌다.

시간이 지나자 그 파문들이 점점 더 커지고 분명해졌다.

그리고 먼저 방향이, 그 다음에는 거리를 감지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건 여왕인가?!

잘은 모르겠지만 아주 가까운 곳에서 강력한 마나가 느껴졌다.

둥지 안에, 내 바로 아래쪽 어딘가에 말이다.

그렇다면 짐작할 수 있는 대상은 여왕밖에 없었다.

휴!

이 스킬 역시 정신력 소모가 상당했다.

나는 완전히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내 불쌍한 개미 머리가 욱신거렸다.

그래도 아직 테스트해볼 스킬이 하나 남았다.

나는 마지막으로 다시 코어에 집중한 뒤 에너지를 끌어냈다.

그런 다음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입을 향해 움직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바로 토해내는 대신, 더 많은 마나를 끌어냈다.

더 많이···

그리고 그렇게 모인 마나를 작은 공 형태로 압축했다.

더 이상 에너지를 억누를 수 없게 되었을 때, 나는 입을 벌리고 그 공을 토해냈다.

그러자 평소처럼 작은 연기가 피어나는 대신···

마나가 폭발하며, 순수하면서도 강력한 힘의 파동이 날아갔다.

펑!

거친 바람 소리와 함께 날아간 에너지가 벽에 부딪히자 사방에 먼지가 날렸다.

나는 깜짝 놀라서 몸이 굳었다.

이건 설마 그건가···

푸스 로 다?!

···

뭐가 됐든, 아주 마음에 드는 스킬이었다.

이 정도 위력이라면 실제로 적에게 타격을 줄 수도 있다!

.

몇 레벨 정도 올리면 아마 전투에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공격 준비 시간을 줄일 수 있을 터였다.

정신력을 거의 소진한 나는 낮잠을 한 번 더 자고 나서 뭔가 생산적인 일에 뛰어들기로 했다.

이대로 집 안에만 처박혀서 빈둥거리는 생활은 내게 어울리지 않았다.

자존심이 있는 개미라면 결코 그런 식으로는 행복해질 수 없었다.

우리는 일꾼이다!

둥지의 영광을 위해 일해야 한다!

그리고 레벨 업을 해서 진화를 하기 위해서도!

어쩌면 내 동기는 다른 동료들만큼 순수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과는 아마 훨씬 나을 터였다.

인간 지성의 도움을 받는 개미 둥지가 어디까지 번성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헌데 타이니가 뭔가 불만스러워 보였다.

녀석은 작은 박쥐 같은 얼굴로 계속 주위를 둘러보다가,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하자 시무룩해졌다.

배가 고픈 모양이지, 꼬마?

한숨만 더 자고 사냥하러 나가자, 오케이?

내가 땅에 엎드려서 낮잠을 청하자 타이니도 어쩔 수 없이 내 등에 기대어 누웠다.

그리고 우리는 잠이 들었다.

···

좋아!

내가 벌떡 일어나자 기대어 자고 있던 타이니가 놀라서 작게 소리를 지르며 사납게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힘을 아껴 둬, 꼬맹이.

오늘 할 일이 아주 많으니까!

우리의 아늑한 휴식처에서는 바깥의 시끄러운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아서, 조용하게 푹 쉴 수 있었다.

부드러운 흙으로 된 벽에는 발톱이나 턱 자국과 같은, 일개미들이 이 방을 만들었을 때의 흔적이 고스란히 보였다.

난 애초에 이 방을 왜 만든 건지 궁금했다.

일개미들은 들어오지도 않는데 말이다.

뭐, 덕분에 내가 잘 쓰고 있지만.

타이니가 잠이 덜 깬 눈을 부비며 내 등에 올라타자, 나는 재빨리 방을 나가 둥지 안을 가로질렀다.

언제나처럼 일개미들이 바쁘게 여기저기로 뛰어다니고 있었다.

양육실을 방문하니 여러 마리의 개미들이 새로운 알 무더기에 달라붙어, 청결 상태와 온도를 관리하는 중이었다.

저 많은 수의 다음 세대를 키우려면 엄청나게 많은 식량이 필요했다.

그리고 내가 그 일을 해결할 생각이었다.

둥지가 더 크고 강해질수록, 나도 안전해질 테니까.

그러면서 내 몫의 경험치와 바이오매스도 챙기고 말이다.

그럼 가자!

나는 타이니를 태운 채 둥지 밖으로 향했다.

둥지 입구가 있는 숲 속의 개미 언덕에 가까워질수록, 통로의 벽에 변화가 생겼다.

처음 이 세계에 왔을 때 위쪽 동굴에서 봤던 푸른 혈관들이 여기도 생겨나고 있었다.

입구에 가까워질수록 혈관도 두껍고 밝아졌다.

이 혈관들이···

둥지 아래쪽으로 자라고 있는 건가?

분명히 며칠 전만 해도 없었는데!

정확히 왜 그런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 푸르게 빛나는 혈관들이 살아 있는 생물처럼 자란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불편했다.

이건 대체 뭘까?

나는 정신적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현재로서는 답을 몰랐고, 앞으로도 어떻게 알아내야 할지 알 수 없는 문제였다.

그저 시간이 지나면 하나씩 알게 되기를 기대할 수밖에.

혈관에 대한 생각은 접어두고, 나는 오늘의 목표에 다시 정신을 집중했다.

둥지의 식량을 확보하는 일 말이다.

거대한 공동으로 나오니 기분이 상쾌했다.

오랜만에 밖에 나오니 환하고 좋구만!

....

너무 환한데?

주위가 전보다 훨씬 더 밝아져 있었다.

음...

일단은, 오늘 할 일에 집중하자.

몇 마리의 일개미가 언덕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아마 보초를 서는 중이거나, 정찰 나간 동료가 식량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모양이었다.

준비해 두라고, 친구들.

곧 운반할 식량이 잔뜩 생길 테니까!

나는 자신감에 차서 언덕을 달려 내려갔다.

그리고 나무와 키 큰 버섯들 속으로 들어갔다.

발 밑의 덤불이 며칠 전보다 더 무성하게 느껴졌다.

마치 점점 더 밝아지는 빛을 한껏 흡수해서 자란 것 같았다.

뿐만 아니라 나무 뿌리들과 버섯의 하얀 줄기들 사이로 나아가는 동안, 숲 전체에 이상할 정도로 활기가 넘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태풍이 지나간 직후의 열대 우림처럼 말이다.

사방에서 몬스터들이 으르렁거리고, 포효하고, 서로 싸움을 벌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야말로 숲 속에 몬스터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늘어난 몬스터들이 서로 마주치면 벌어질 일은 하나밖에 없었다.

싸움!

지금 내 주위의 숲 속에서는 그런 싸움들이 수도 없이 벌어지고 있었다.

강한 몬스터가 약한 몬스터를 잡아먹고, 그 경험치와 바이오매스로 더욱 강해질 터였다.

갑자기 왜 이렇게 몬스터의 수가 늘어난 건지 알 수 없었다.

아마 숲 속의 푸른 빛이 더 강해진 것과 관계가 있을지도···

어쨌든 몬스터가 많아졌다면 나로서는 좋은 일이었다.

나와 우리 둥지가 차지할 경험치와 바이오매스의 양도 늘어날 테니까!

나는 높은 곳에서 기회를 찾기 위해 나무 위로 올라갔다.

일단 나무 꼭대기 근처에 자리를 잡고 초점 시력을 이용해서 주위를 살폈다.

내 기억으로 아마 이쪽 방향에··· 그렇지!

주변의 다른 나무들에 비해 유독 커다랗게 솟아오른 나무 한 그루가 보였다.

주위로 길게 뻗은 가지들에 무성한 나뭇잎은 수많은 은신처를 제공했다.

이렇게 멀리서 봐도, 나뭇가지 사이로 작은 형체들이 빠르게 움직이는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나는 커다란 나무의 위치를 기억해 두고 아래로 내려간 다음, 개미 언덕으로 돌아갔다.

여전히 일개미들이 주위를 맴돌며 혹시나 있을지도 모르는 위협을 경계하는 중이었다.

어, 그래··· 수고한다.

잠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한 끝에, 나는 바닥에 먹이를 의미하는 페로몬을 뿌리며 아까 봤던 커다란 나무 쪽으로 향했다.

그렇게 수백 미터를 이동한 뒤 나는 다시 둥지로 돌아와서 페로몬을 한 차례 더 강화했다.

그리고 한 번 더.

같은 자취를 여러 번 강화하면 개미들에게 더 중요하고 흥미롭게 느껴진다.

그래서 더 많은 개미들이 이 자취를 따라올 가능성이 높아졌다.

과연 내 노력이 헛되지 않아서, 곧 둥지 안에서 몇 마리의 일개미들이 나타나더니 더듬이로 내가 만들어 놓은 길을 더듬으며 따라오기 시작했다.

잘했어, 친구들.

지금 이 선택을 후회하지 않게 해 준다고 약속하지.

나는 앞장서서 커다란 나무로 향했다.

그러면서 이번에도 자취를 강화했다.

바이오매스를 써서 페로몬을 강화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었다.

실제로 둥지의 인력··· 아니 개미력을 동원할 유일한 방법이 페로몬인 이상···

더 분명하고 강력한 신호를 보내서 다른 개미들이 더 빨리 반응하게 할 수 있다면 유용할 테니까 말이다.

지금은 세 차례나 강화한 자취로도 겨우 몇 마리의 일개미들을 끌어들였을 뿐이다.

만약 페로몬을 +3이나 +4로 업그레이드하면 훨씬 더 열광적인 반응을 얻을 수 있을 터였다.

바이오매스를 어디다 쓸지 결정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모든 선택지가 다 엄청나게 유용해 보이니까 말이다!

나는 걸음을 빠르게 놀려서 따라오는 다른 개미들보다 한참 먼저 목적지에 도달했다.

멀지 않은 곳에 아까 봤던 커다란 나무가 보였다.

그 나무 위에는 내가 예전에 봤던 작은 원숭이들이 엄청난 수로 모여 있었다.

내가 혼자라는 사실을 아쉬워하게 만들었던 불꽃 원숭이 무리였다.

타이니와 내가 나무 아래로 접근하는 모습을 본 원숭이들이 미친 듯이 괴성을 지르며 우리를 손가락질하기 시작했다.

놈들이 단체로 질러대는 엄청난 불협화음이 숲 속에 울려 퍼졌다.

반면 타이니는 자신들의 사촌과 만났지만 별 감흥이 없는 듯, 이를 드러내고 낮게 으르렁거릴 뿐이었다.

나는 계속 울부짖는 나무 위의 원숭이들을 올려다봤다.

목청 한 번 좋구나, 너희들.

어디 싸움도 그만큼 잘 하는지 한 번 볼까?

둥지 성장 전략

나는 눈 앞의 커다란 나무 밑동을 바라보며, 신중하게 턱을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근육을 풀었다.

이 주입 턱이 내가 생각한 만큼 힘을 발휘해야 할 텐데···

머리 위쪽에서 귀가 아프게 소리를 질러대는 원숭이 무리를 무시한 채, 나는 나무의 밑둥을 향해 다가갔다.

내가 나무에 가까이 가자 몬스터들의 도발은 점점 더 격해졌다.

원숭이 무리는 고작 한 마리의 적이 감히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했다는 사실에 잔뜩 화가 난 모양이었다.

분노로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린 채 소리를 질러대는 모습이 우스꽝스럽기까지 했다.

뒤를 돌아보자 세 마리의 일개미들이 내가 페로몬 자취를 마무리한, 나무로부터 오십 미터쯤 떨어진 위치에 도착해 있었다.

더 이상 페로몬이 이어지지 않자 녀석들은 이리저리 서성이며 대체 자기들을 여기까지 오게 한 먹이가 어디에 있는지 찾으려고 애썼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손님들.

음식 금방 나갑니다!

주입 턱!

내가 그렇게 생각하자 마자 코어에서 흘러나온 마나들이 내 몸을 거쳐 턱으로 모였다.

턱에서 느껴지는 에너지가 너무 엄청나서, 과연 이걸로 물어서 자르지 못할 게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단단히 물기나 날카롭게 깨물기 같은 액티브 스킬과 조합하면, 매번 물 때마다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무 위에 가득한 원숭이 몬스터들이 일제히 놀라서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쳐다보는 가운데, 나는 머리를 뒤로 젖혔다가 힘껏 앞으로 내밀며 턱에 모인 힘 전부를 나무 밑둥에 가했다.

날카로운 깨물기!

우직!

내 턱의 날카로운 부분이 기이한 던전 나무의 밑둥을 파고들자, 파편이 튀어서 내 갑각에 부딪혔다.

나는 코어에서 나오는 마나의 흐름을 끊지 않고, 계속 내 턱으로 들어가 위력을 강화하게 만들었다.

다시 한 번, 날카로운 깨물기!

우지직!

한 번 더!

우직!

마나가 엄청난 속도로 줄어들고 있었다.

이 턱에 실린 힘은 강한 만큼 말하자면 연비가 안 좋았다.

그래서 코어를 성장시키지 못한 몬스터에게는 무용지물이겠지만···

다행히 나는 코어를 여러 차례 강화했고, 앞으로도 계속 강화할 예정이었다!

우직!

나무 위의 원숭이들은 이제 완전히 꼭지가 돌아서 입에 거품을 물고 있었다.

이제야 내가 뭘 하려고 하는지 알아차린 듯, 몇 마리가 나를 막기 위해 아래로 내려오는 중이었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우직!

우지지지지직!

됐다!

나는 타이니를 등에 단단히 태운 다음 쏜살같이 달려서 나무로부터 멀어졌다.

그리고 충분히 거리를 벌린 다음에는 내가 한 일의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돌아섰다.

거대한 나무가, 충격에 사로잡힌 수많은 원숭이들과 함께, 천천히 기울어지고 있었다.

원숭이들은 완전히 공포에 질려서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놈들의 세계가 말그대로 무너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기들이 아직 그 안에 있는 채로···

넘어간다아아아아아아!!

우지끈.

점점 더 빠른 속도로 기울어지던 나무가 엄청난 소리와 함께 완전히 쓰러졌다.

나뭇잎이 서로 마찰하고 가지들이 부러지는 소리가 숲 속에 메아리쳤다.

그리고 분기탱천한 수백 마리 작은 원숭이들의 포효 소리가 이어졌다.

나를 따라온 세 마리의 일개미들은 미동도 하지 않고 서서, 한 무리의 부상당한 원숭이들이 마치 성난 악마들처럼 쓰러진 나무에서 뛰쳐나오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마 몬스터 개미인 녀석들의 눈에도 이건 상당히 신선하고 충격적인 장면인 듯했다.

둥지를 위하여!

나는 속으로 그렇게 외치며, 몰려드는 원숭이 몬스터들을 향해 마주 돌진했다.

역시 원숭이 몬스터인 타이니도 내 등에 탄 채로 무슨 기사라도 된 마냥 함성을 질러댔다.

작은 원숭이들은 내 커다란 덩치를 보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간혹 반격을 가하려던 놈들도 다이아몬드 갑각에 부딪히자 그대로 튕겨져 나갔다.

내 공격을 보고 정신을 차린 다른 개미들도 행동을 개시했다.

동료 개미가 싸우고 있다!

싸움!

먹이!

개미들 중 두 마리가 즉시 돌아서서 둥지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저 개미들은 겁에 질려서 도망치는 게 아니다.

개미들은 애초에 두려움이라는 걸 모르는 족속이다.

녀석들은 있는 힘껏 달려서 지원군을 부르기 위해 간 거다!

나머지 한 마리의 개미는 곧바로 내게 가세해, 턱으로 가장 가까이 있는 원숭이를 물었다.

그리고 치열하게 싸우기 시작했다.

이제 내 임무는 다른 개미들이 올 때까지 옆에 있는 이 친구가 죽지 않게 하면서 시간을 끄는 거다!

원숭이들은 미친듯이 끽끽거리며 내게 달려들어 주먹과 발을 휘둘렀다.

몇몇 놈들은 심지어 나뭇가지나 돌 같은 임시 무기를 들고 덤비기도 했다.

음하하하하하하!

가소로운 것들!

고작 그 정도로는 내게 상처 하나 입힐 수 없다!

새로 업그레이드한 다이아몬드 갑각은 원숭이들의 자잘한 공격을 완벽하게 막아냈다.

적진 한복판에서 몸으로 버티고 있지만, 내 HP의 숫자는 1도 줄어들지 않았다!

애초에 이 작은 원숭이 몬스터들은 근력이 약한 편이었다.

거기다 내 다이아몬드 갑각은 물리 피해에 저항력을 가지고 있으니, 놈들의 공격으로는 작은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나는 원숭이들 사이를 마음껏 날뛰며, 몸통 박치기로 놈들을 쓰러뜨리고 내 커다란 턱을 휘둘러 멀리 날려버렸다.

내가 그렇게 자신들을 가지고 놀다시피 하자 놈들은 더욱 분노해서, 여러 마리가 무리를 지어 사납게 덤벼들었다.

그리고 작은 주먹으로 있는 힘을 다해 내 머리통을 두들겼다.

···

그게 다냐?

간지럽지도 않군!

나는 옆에서 싸우는 동료 개미가 포위당할 때마다 그쪽으로 돌진해서 원숭이들을 한꺼번에 날려버리고, 어그로를 다시 내게 돌렸다.

솔직히···

이거 꽤 재밌는데!

그때 옆구리에 따끔한 통증이 느껴졌다.

아얏!

뭐지!

놈들이 드디어 스킬을 사용하기 시작한 건가?

재빨리 주위를 살피니 원숭이들 중 한 마리가 내 옆구리를 때린 주먹을 거두는 중이었다.

놈의 양 팔 주위로 노란 불똥이 튀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 작은 놈들도 전기 스킬을 쓴다 이거로군?

상태창을 확인하자 HP가 1 줄어들어 있었다.

흠···

진화 과정에서 강인함 능력치를 올릴 때, 나는 외부적인 방어력 뿐 아니라 내부적인 저항력도 높이기 위해 신경을 썼다.

하지만 이번에 업그레이드한 다이아몬드 갑각은 이런 원소 공격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충분한 저항력에도 불구하고 일부 피해가 내 방어를 뚫고 들어와서 HP를 깎았다.

이 공격이 성공하는 걸 보자 다른 원숭이들도 전기 에너지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놈들의 털가죽에서 작고 노란 불똥이 일며 에너지가 점점 더 쌓여갔다.

그러게 내버려둘 수는 없지!

나는 한층 더 사납고 난폭하게 날뛰며, 주위의 원숭이들이 전기 공격을 제대로 준비하기 전에 멀리 날려버렸다.

타이니도 내 등 위에서 으르렁거리나 고함을 지르다가, 때때로 너무 가까이 접근하는 원숭이가 있으면 주먹과 발로 때려서 물러나게 만들었다.

그래도 전기 에너지가 실린 주먹이 몇 차례 더 나를 때리는 걸 피할 수는 없었다.

전기 에너지가 다이아몬드 갑각을 관통하자 짜릿한 통증이 느껴졌고, HP가 몇 점 더 줄어들었다.

이런 식으로 피해가 누적되면 나도 곤란···

할 것 같냐!

재생 분비선!

차가운 감각이 몸 속을 흐르며, 전기 에너지가 입힌 몸 속의 피해를 모두 복구했다.

순식간에 HP가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왔다.

헛수고하느라 고생했다, 원숭이 놈들아!

타이니를 확인해 보니 녀석은 내 몸을 통해 전달된 전기 에너지에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타이니는 이 작은 원숭이들의 보다 진화한 버전이니, 전기 저항력도 훨씬 더 높을 터였다.

...사실 신나 있는 표정을 보면 전기가 흐른 걸 알아차리기나 했는지 의문이었다.

원숭이들을 때려눕히며 동료 개미의 상태를 확인하던 내 눈에 마침내 기다리던 장면이 들어왔다.

어느새 다른 개미들이 나타나서 전투에 뛰어들고 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내가 남겨 놓은 자취를 따라 점점 더 많은 개미들이 달려오는 중이었다.

이제 둥지의 진짜 힘을 보여줄 때였다!

지원군으로 온 개미들은 전장에 도착하자 마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싸움을 시작했다.

나는 다시 한 번 개미들의 일사불란한 협동성, 그리고 기이할 정도로 조용한 공격성에 놀랐다.

만약 인간의 군대라면...

이런 식으로 돌진할 때 우렁찬 전투의 함성을 지를 터였다.

그리고 얼굴 표정에는 영웅적인 희생 정신과 결단력, 승리에 대한 갈망이 드러나겠지.

그런 장면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격동하게 만들며, 엘프 여인들의 눈물을 자아내고···

영웅들이 전장에 뛰어들며 선보인 용기와 투지는 시와 노래로 만들어져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하지만 개미들이 전장으로 나아가는 장면은 전혀 달랐다.

일개미들은 아무런 소리도 전투 함성도 없이 적들을 향해 나아갔다.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자 마자 곧장 적을 향해 달려가서 싸웠다.

개미들의 차가운 눈에는 그 어떤 두려움이나 망설임, 환희나 승리감도 없었다.

하지만 내게는 그래서 더욱 영웅적인 행동으로 보였다.

일개미들은 이기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존재였다.

자기 자신의 안위는 돌보지 않고, 둥지를 위해서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목숨을 바쳤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 어떤 고결한 이상은 물론 부와 명예 같은 보상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개미들에게 있어서 둥지를 위해 싸우는 일은 당연한 임무이자 자신들의 역할이었고, 삶의 목적이었다.

장하다 일개미들!

설사 아무도 몰라준다고 해도···

적어도 나는 너희들의 헌신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일개미 만세!

둥지 만세!

내가 이 원숭이 토벌을 위한 십자군을 발족한 이유는 둥지의 일개미들을 성장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나무를 쓰러뜨린 뒤 원숭이들을 상대하며 시간을 버는 동안에도 놈들을 쓰러뜨리거나 부상을 입힐 뿐, 죽이지는 않으려고 애썼다.

맞다, 일개미들을 위해 경험치와 바이오매스를 아껴 놓은 것이다.

어차피 진화에 레벨까지 엄청 오른 내가 이 원숭이들을 잡아 봐야 별 이득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자원을 독차지하는 대신, 일개미들이 바이오매스를 얻고 레벨을 올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서 둥지에 기여하기로 했다.

둥지의 다음 세대를 양육하기 위한 식량도 확보하고 말이다.

개미들의 수는 점점 더 늘어나서, 이제 쉰 마리 정도가 싸움에 참여하고 있었다.

개미들은 무시무시한 턱과 산성 용액으로 원숭이들을 공격했다.

원숭이와 개미들이 뒤섞여 싸우는 위로 산성 용액의 비가 내리는 전장의 모습은 점점 더 혼란의 도가니가 되어가고 있었다.

고개를 돌리면 어디서나 몬스터들이 목숨을 걸고 싸움을 벌이는 중이었다.

일개미들은 원숭이들이 할퀴고 때리고 전기를 방출해도 굴하지 않고 달려들어 턱으로 놈들을 물어서 쓰러뜨렸다.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로군!

나는 계속해서 적진을 누비며, 다른 개미가 포위당하거나 위험에 처한 모습을 볼 때마다 뛰어들어 원숭이들을 물러나게 만들었다.

결국 오래지 않아 원숭이 무리는 모두 쓰러졌다.

놈들은 이제 둥지를 위한 연료가 될 터였다.

나는 지치고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전장을 둘러봤다.

일개미들이 원숭이들의 시체를 뒤치고 있었다.

이미 식사를 시작한 경우도 있었고, 고기를 둥지로 옮기기 시작한 친구들도 보였다.

일개미들은 언뜻 보기보다 영리했다.

둥지에 필요한 먹이의 양을 정확히 파악하고, 초과분은 절대 낭비하지 않았다.

시체를 처음 섭취하는 개체가 바이오매스를 얻기 때문에, 고기를 사교 위에 저장하면 양분은 몰라도 바이오매스는 전달할 수 없었다.

아마 그래서 일개미들이 그렇게 많은 양을 고스란히 둥지로 가져가는 모양이었다.

여왕이나 육아에만 전념하는 동료들도 바이오매스를 얻을 수 있도록 말이다.

어쨌든 지금은 당장 둥지에 필요한 양보다 훨씬 더 많은 식량을 확보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일개미들은 남는 먹이를 낭비하지 않고 스스로 섭취하고 있었다.

그렇게 내 목표가 달성됐다.

이번 싸움으로 많은 일개미들이 레벨을 올렸을 뿐 아니라, 변이를 통해 육체를 강화할 만큼 충분한 양의 바이오매스를 얻었을 터였다.

이렇게 둥지의 전력이 강해지면 앞으로 전투에서 더 효율적으로 싸울 수 있었다.

그러면 다시 더 많은 경험치와 바이오매스를 얻는 선순환이 계속 이어질 것이다.

나는 그 과정을 더욱 가속시킬 계획이었다.

각오해 두라고, 일개미 친구들.

이 버스에는 브레이크가 없으니까.

흐흐흐.

늑대 사냥

나는 사방에 넘쳐나는 먹이들 중 내 '몫'을 챙겼고, 타이니도 배를 채우게 했다.

내 작은 원숭이 친구는 놀라운 속도로 자라고 있었다.

거의 한 끼를 먹을 때마다 눈에 보이게 커질 정도였다.

아마 조금만 지나면 더 이상 내 등에 타고 다니기는 어려울 듯했다.

너도 이제 네 발로 걸어야지!

어쨌든...

내가 원숭이들을 먹어서 획득한 바이오매스는 세 개에 불과했다.

광전사들을 섭취했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나는 새로 얻은 포인트를 즉시 사용해서, 재생 분비선을 +2 그리고 페로몬을 +1로 만들었다.

재생 분비선은 이미 엄청나게 유용하다는 점을 확인했기 때문에 앞으로 우선해서 성장시킬 생각이었다.

또 앞으로도 이번처럼 일개미들을 데리고 싸우려면, 페로몬을 강화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 공을 덜 들이고도 개미들을 빠르게 원하는 장소로 이동시킬 수 있을 테니까.

둥지에 한동안 버틸 만큼 식량이 넉넉해졌기 때문에, 나는 다음 번 사냥을 나갈 때까지 마법 스킬을 연습하며 시간을 좀 보내기로 했다.

정말이지 몸은 하나인데 해야 할 일들은 너무 많았다!

둥지의 성장을 돕는 동시에 몬스터 코어를 더 찾아서 다음 번 진화를 하기 전에 내 코어를 한계까지 강화해야 하고, 모든 육체도 +5까지 변이시켜야 하고, 레벨 10까지 올려야 하고, 세 가지 기초 마법 스킬도 연습해야 하고···

바쁜 개미로구만!

싸움이 벌어진 장소를 떠나려고 하는데 일개미들 중 몇 마리가 부상을 당한 채 뒤쳐진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싸우는 내내 최선을 다하기는 했지만, 내가 모든 장소에 있을 수는 없다 보니 부상자가 나오는 걸 완전히 막지는 못했다.

우리편에 사망자가 없다는 건 기쁜 일이지만 개미들이 다친 것만 봐도 마음이 아팠다.

특히 갓 부화해서 덩치가 작은 한 마리는 다리를 세 개나 다쳐서 제대로 걷지 못하고, 둥지를 향해 몸을 끌다시피 하고 있었다.

다리의 반을 다쳐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와중에, 이 작은 개미는 원숭이 한 마리를 입에 문 채 둥지로 옮기려는 중이었다.

이런 미련한 녀석 같으니···

나는 재빨리 그 작은 개미에게 다가가 녀석을 턱으로 집었다.

걱정하지 마라, 꼬마야.

내가 집까지 데려다줄 테니까.

그때 배가 빵빵해진 타이니가 힘겹게 내 등 위로 기어오르더니 그대로 쓰러졌다.

이 녀석 너무 과식한 거 같은데...

등에 타이니를 태우고 원숭이 시체를 물고 있는 작은 개미를 턱에 문 채, 나는 둥지로 돌아왔다.

그리고 곧장 여왕의 방으로 향하자, 이미 여왕이 다친 일개미들의 머리에 더듬이를 대고 치유 에너지를 보내며 바쁘게 치료하고 있었다.

잘하고 있어요, 여왕님.

덕분에 둥지가 전력을 보전할 수 있게 됐군요!

여왕 앞에 작은 개미를 내려놓자, 여왕이 커다란 눈에 칭찬하는 듯한 빛을 띄운 채 나를 쳐다봤다.

그리고 앞다리 하나로 내 머리를 잠깐 토닥인 뒤 내가 데려온 개미를 치유하기 위해 움직였다.

확실히 여왕은 다른 개미들보다 훨씬 더 영리한 것 같단 말이야...

어쨌든 이제 마법을 연습할 시간이다!

이제 하나가 아닌 세 가지 스킬을 연습해야 하기 때문에, 마나 조작만 반복할 때마다 난이도가 높아졌다.

마나 형성은 훈련 방식이 상당히 단순했다.

그저 코어에서 마나를 끌어낸 다음, 예전처럼 그냥 뱉어내는 대신 몸 속에 가지고 있으면서 내 머리 속에 만드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떠오르는 간단한 기호나 모양대로 빚어내기만 하면 됐다.

아마 이렇게 형성한 마나를 다른 스킬들과 어떤 식으로든 결합해서 마법을 사용하는 거겠지.

외부 마나 조작 연습도 비슷하게 간단했다.

내 감각을 확장해서 주위의 공기 중에 존재하는 마나를 느낀 다음 그걸 움직이려고 시도하기만 하면 됐다.

하지만 말로 하면 간단한 이 두 가지 스킬의 연습은 정신적으로 몹시 가혹했다.

심지어 예전의 마나 조작 훈련보다 더 심했다.

아··· 머리 아파!

앞으로 매일 이런 훈련을 해야 한다면···

정신력을 모두 소모해서 사냥도 나가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난 번 진화할 때 접했던, 두 번째 뇌를 가지는 선택지를 재고하기 시작했다.

다음 번에 진화를 하게 되면 혹시 내 코어나 다른 부위에 뇌를 하나 더 만든 다음, 정신적인 부담을 나눌 수 있을지 한 번 생각해 봐야겠다.

그렇게 해서 훈련이 덜 힘들어지면 효율도 높아질 거라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었다.

사실 뇌가 하나 더 있으면 뭐 어때?

어차피 예전에는 둘 뿐이던 다리도 여섯 개로 늘었는데.

심지어 그래서 더 편리했다.

뇌가 몇 개냐 하는 건 사소한 문제에 불과하다.

아마도...

...

녹초가 될 때까지 연습을 했지만 스킬 레벨을 하나도 올리지 못한 나는 타이니를 등에 태우고 다시 둥지 밖으로 나갔다.

타이니 녀석은 언제쯤 실질적인 도움이 될까?

물론 작아서 귀엽기는 하지만, 얼른 커져서 써먹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

지금까지는 거의 뭘 먹을 때마다 자랐고, 처음 몬스터 코어로 재구성됐을 때와 비교하면 두 배에 가까운 크기였다.

그리고 더 많이 먹을수록 더 빨리 자라는 것 같았다.

이런 속도라면 아마 며칠 뒤에는 나보다 커질 터였다.

하지만 원래만큼 거대한 크기가 되려면 얼마나 더 걸릴지, 그건 알 수 없었다.

개미 언덕으로 이어지는 통로를 올라가는 길에, 나는 어쩐지 불안해하는 것처럼 보이는 몇몇 개미들과 마주쳤다.

밖에 무슨 일이 있나?

마침내 통로를 지나서 개미 언덕으로 나온 나는 곧바로 주위를 살폈다.

그리고 개미 언덕으로부터 멀리 떨어지지 않은 숲 가장자리에서 일개미들이 불안해 하는 이유를 발견했다.

두 마리의 거대한 늑대처럼 생긴 괴물들이 비늘로 뒤덮인 굵은 꼬리를 세차게 흔들며, 숲 속에서 나타났다가 다시 들어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놈들의 탐욕스러운 눈빛을 볼 때 호시탐탐 개미들을 잡아먹을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게 분명했다.

저 몬스터들은 어떻게 봐도 늑대 드래곤 유체들이 진화한 형태였다.

유체와 비교해서 덩치가 두 배 정도였고, 송곳니와 발톱은 물론 놈들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파충류의 꼬리도 훨씬 더 크고 무시무시해 보였다.

나는 늑대 드래곤 유체들이 그 꼬리를 휘둘러서 발톱 지네를 그야말로 박살냈던 장면을 떠올렸다.

놈들을 좀 더 자세히 관찰하니, 한 마리의 꼬리가 다른 놈에 비해 훨씬 더 크다는 점이 눈에 들어왔다.

단지 더 클 뿐 아니라 비늘이 금속으로 되기라도 한 것처럼 빛을 받아 번쩍였다.

혹시 고급 변이를 거친 꼬리일까?

아무래도 조심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그나저나 저 놈들이 왜 여기 와서 저러고 있는지···

며칠 전 우리가 습격했던 늑대 드래곤 유체들의 둥지와 무슨 관련이라도 있나?

아니면 단지 자기들보다 작고 약한 개미들이 잔뜩 모여 있으니 바이오매스가 탐나서 눈독을 들이는 걸까?

흠.

만약 놈들이 이 개미 둥지를 공격하려 든다면 죽여버리면 그만이다.

아마 순식간에 형제들이 몰려나와 놈들을 쓰러뜨릴 터였다.

사실, 놈들이 둥지에 눈독을 들이는 동안 나 역시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놈들을 살피는 중이었다.

내 안에 서서히 욕심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저 두 마리를 쓰러뜨리면 레벨 업을 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게다가 바이오매스도···!

진화한 몬스터 두 마리면 바이오매스가 다섯 개, 아니 어쩌면 그 이상 얻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더듬이 그리고 다른 신체 부위까지 변이시킬 수 있는 양이었다.

일단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자 좀처럼 떨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정신 똑바로 차리자!

욕심 때문에 비합리적인 선택을 해서는 안된다.

만약 내가 여기서 싸움을 벌인다면 둥지까지 휘말릴 수밖에 없었다.

내 행동 때문에 무고한 일개미들이 죽는 사태는 원하지 않았다.

그럼 저 두 스토커 놈들을 그냥 보내줘야 하는 걸까?

무슨 소리!

당연히 아니지!

나는 최대한 태연하게, 평범한 개미 몬스터를 가장해서 숲으로 이어진 페로몬의 자취를 따라 움직였다.

이 친구들은 도무지 일을 멈추는 법이 없었다.

내가 마법을 연습하거나 낮잠을 자는 동안에도, 일개미 부대는 항상 주위를 정찰하거나 먹이를 확보하기 위해 사냥을 나갔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자취를 따라 숲 속으로 들어간 나는 즉시 사냥꾼 모드로 전환해서 은신 스킬을 활성화했다.

그리고 수풀 속에 몸을 숨긴 채 다시 둥지 쪽으로 돌아갔다.

목적지는 마지막으로 그 늑대들이 모습을 드러낸 위치였다.

분명 놈들은 아직 숲 가장자리에 머물면서 개미 언덕을 관찰하고 있을 터였다.

개미들을 잡아먹고 싶은가 보지?

그럼 개미한테 잡아 먹히는 건 어떻게 생각해?

나는 속으로 키득거리며 주위를 둘러본 끝에, 내가 올라가기 딱 적당한 나무 한 그루를 발견했다.

재빨리 나무를 타고 올라간 나는 높은 위치에서 아래를 살폈다.

역시 위쪽에서 내려다보니 두 마리 늑대 드래곤의 모습이 훤히 드러났다.

그리고 시야를 확보했다는 건···

산성 용액을 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아무래도 개미 맛이 궁금한 모양이니, 내가 샘플을 좀 제공하기로 했다.

아주 화끈한 맛으로.

푸슝!

지글거리는 산성 용액이 아래쪽의 늑대 드래곤들을 향해 날아갔다.

아쉽게도 놈들이 내게 등을 보이고 있어서 얼굴을 노릴 수는 없었다.

그래도 첫 번째로 발사한 용액은 정확히 내가 의도한 대로, 늑대 드래곤 한 마리의 왼쪽 앞다리를 덮쳤다.

나는 지체 없이 두 번째를 발사했다.

푸슝!

이번에는 신중하게 겨냥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다리를 노리기는 어려웠다.

산성 용액은 두 번째 늑대의 옆구리를 맞췄다.

고정 산성 용액은 즉시 놈들의 털가죽을 태우는 동시에 끈끈하게 엉겨 붙었다.

첫 번째 사격은 매우 만족스러웠는데, 정확히 다리를 맞춘 덕분에 놈의 기동성이 제한되는 걸 기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조금 아쉬웠지만···

시간 제한 때문에 겨냥이 어려운 상황에서 아예 빗나갈 위험을 감수하기보다는 상대적으로 넓은 부위를 노릴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 늑대 드래곤들을 과소 평가할 생각이 없었다.

놈들은 한 눈에도 강력하고 민첩해 보였다.

긴 다리와 근육질의 몸으로 볼 때 정면 대결로는 쉽게 나를 압도할 터였다.

그래서 나는 산성 용액을 통한 기습을 최대한 활용해, 놈들의 민첩성을 제한하고 싸우기 전부터 피해를 입히고자 했다.

일단 갑자기 산성 용액을 뒤집어쓴 충격에서 벗어나자, 늑대 드래곤들은 빠르게 반응했다.

산성 용액이 살을 태우는 고통으로 울부짖으면서도 서로 떨어져서 숲 속으로 달려갔다.

다리에 산성 용액을 맞은 놈은 이미 속도가 조금 느렸다.

한쪽 다리가 원래대로 자유롭게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 마리의 몬스터는 도망치는 도중에도 계속해서 모든 감각을 총동원해 주위를 살폈다.

생긴 걸 보면 반은 늑대인 만큼, 아마 강력한 후각을 가지고 있을 터였다.

저 길쭉한 코를 괜히 달고 있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다.

다행히 내 은신 능력이 진가를 발휘했다.

나는 스킬의 이점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나무 위에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산성 용액이 날아온 방향을 대충 가늠할 수 있을 텐데도 불구하고, 두 마리의 늑대들은 내 위치를 찾아내지 못했다.

나무 꼭대기 근처의 가지 사이에 웅크리고 앉아서, 나는 가만히 기다렸다.

그러자 달아나던 늑대 드래곤들이 걸음을 늦추더니 다시 돌아왔다.

놈들은 낮게 으르렁거리며 내 자취를 찾아 주위를 어슬렁거렸다.

후후···

정확히 내가 계획한 대로다.

언덕 전쟁

적들이 친절하게도 속도를 늦춰 준 덕분에, 나는 어깨 너머로 놈들의 위치를 확인하며 내 꽁무니를 다시 한 번 신중하게 겨냥했다.

푸슝!

명중!

늑대 드래곤 한 마리가 얼굴에 산성 용액을 정통으로 맞고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놈의 눈과 코를 뒤덮은 산성 용액은 순식간에 굳어서 놈의 감각을 차단했다.

어떠냐 멍청한 강아지 놈아!

늑대 드래곤은 머리를 마구 흔들며, 앞발로 산성 용액을 털어버리려고 했다.

하지만 실패하자 얼굴을 근처의 나무와 흙에 마구 문지르기 시작했다.

미안, 늑대군.

내 고정 산성 용액은 그렇게 쉽게 떨어지지 않아!

하지만 마지막 사격은 결국 내 위치를 노출시켰다.

다른 한 마리의 늑대가 나무 위에 있는 나를 발견하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노려봤다.

그래서 어쩔 건데?

늑대 드래곤은 네 다리를 모두 굽히며 도약 준비를 했다.

하지만 내 예상과 달리, 위가 아니라 앞으로 몸을 날리며 꼬리를 세차게 휘둘렀다.

놈의 몸이 공중에서 회전하며 기이한 금속 질감이 느껴지는 꼬리가 나무를 후려쳤다.

그리고 놀랍게도, 두꺼운 나무 둥치가 그대로 부러졌다.

맙소사!

이게 말이 돼?

이 나무가 한 방에 부러지다니?!

기가 찾지만 어이없어 하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넘어간다!

늑대 드래곤의 꼬리치기 한 방에 내가 올라와 있는 나무가 쓰러지기 시작했다.

나무가 땅에 닿기 전, 나는 여섯 개의 다리에 최대한 힘을 줘서 점프했다.

충격에 휘말리지 않을 만큼 충분히 멀리 착지할 수 있기를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땅에 부딪힌 내가 몸을 굴리자, 불쌍한 타이니는 옆으로 튕겨져 나가 흙바닥에 처박혔다.

그래도 분한 듯한 소리를 내는 걸 보니 괜찮은 모양이다.

지금은 더 이상 내 작은 원숭이 친구의 안위를 걱정할 여유가 없었다.

반은 늑대 반은 드래곤인 커다란 몬스터가 언제 달려들어 무시무시한 꼬리로 내 머리통을 박살낼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빨리 일어선 나는 전혀 예상치 못한 광경에 놀랐다.

대체 이 녀석들은 어디서 갑자기 나타난 거지?!

내 눈 앞에는 여태까지 본 중 가장 악마처럼 생긴 토끼들이 늘어서 있었다.

짧고 검은 털에 붉게 이글거리는 눈, 커다란 근육질 몸통···

원래 귀여운 앞니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날카로운 송곳니가 굶주린 아가리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런 놈들이 열 마리도 넘었다!

숲 속에서 튀어나온 이 토끼들은 나보다 조금 작았지만 그래도 갓 부화한 개미들보다 컸다.

놈들은 깡총거리며 두 마리의 늑대 드래곤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자기들보다 훨씬 더 큰 몬스터를 마구 물어뜯기 시작했다.

몇몇 토끼들은 뒷다리로 뛰어올라 늑대들의 옆구리에 강력한 발차기를 날렸다.

이봐!

그 놈들은 내 사냥감이야!

아무래도 내가 늑대 드래곤들과 싸우는 소리를 듣고 바이오매스를 가로채기 위해 온 놈들 같았다!

이런 사태를 예상했어야 했는데···

지금 숲 속은 그야말로 몬스터로 가득했다.

어디서 싸움을 벌이든 불청객이 꼬이기 더 쉬워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고작 토끼 놈들에게 내 사냥감을 빼앗길 수는 없었다!

아무리 사악하게 생긴 토끼라고 해도 말이다!

토끼 무리는 이미 내 공격으로 약해진 늑대 드래곤들을 수월하게 몰아붙이고 있었다.

놈들이 사냥감을 가로챌 때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하지만 저 정도의 숫자를 상대로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둥지의 동료들을 소환해야 할 때였다!

재빨리 타이니를 등에 태운 뒤, 나는 식량을 의미하는 페로몬을 뿌리면서 개미 언덕을 향해 달렸다.

개미 언덕에 도착한 뒤로도 멈추지 않고 통로를 따라 내려가며 페로몬을 뿌렸다.

그리고 둥지 안에 도착하자 마자 다시 돌아가며 페로몬을 한 번 더 뿌려서 냄새를 강화했다.

동료 개미들에게 더 강한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서였다.

둥지 안까지 들어가서 페로몬을 뿌린 건 아래쪽에 있는 일개미들까지 끌어들여 빠르게 대규모 군대를 꾸리기 위해서였다.

최대한 많은 개미들이, 최대한 빠르게 필요했다!

개미 언덕으로 뛰쳐나온 나는 곧장 숲 쪽으로 뛰었다.

그러면서 페로몬 자취를 강화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몇 마리의 일개미들이 이미 냄새를 맡으며 자취를 따라가고 있었지만, 나는 전속력으로 녀석들을 지나쳐 달렸다.

등 뒤에서 타이니가 신나는 함성을 질렀다.

원래 장소로 돌아오니 혼돈 그 자체였다.

여전히 치열한 싸움이 계속되는 중이었고, 늑대 드래곤 두 마리의 상태는 좋지 않아 보였다.

놈들은 토끼들에게 여러 차례 물리는 바람에 전신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하지만 토끼들도 무사하지는 못했다.

어쨌든 이 늑대 드래곤들은 진화한 몬스터였고, 그만큼 강했다.

여기저기 발톱과 이빨에 찢겨서 넝마가 되거나 무시무시한 꼬리에 맞아 으깨진 토끼 시체가 널려 있었다.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우물쭈물하고 있으면 토끼들이 곧 늑대 드래곤 두 마리의 숨통을 끊을 기세였다.

돌격!

나는 마치 전차처럼 돌진해서, 체중과 속력을 이용해 앞을 가로막고 있는 토끼들을 날려버렸다.

그리고 심한 부상을 입고 있는 늑대 드래곤에게 달려들었다.

얼굴에 내 산성 용액을 뒤집어쓴 탓에 눈과 귀가 멀다시피 해서, 토끼들에게 제대로 반격도 하지 못하고 유린당하던 놈이었다.

내가 자비를 베풀어주마!

늑대 드래곤은 내가 다가가는 걸 눈치채고 몸을 돌렸다.

하지만 놈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나는 속도를 늦추지 않고 그대로 달려가 놈의 목을 턱으로 물었다.

단단히 물기!

내 턱에 목이 부러진 불쌍한 늑대 드래곤은 그대로 절명했다.

[레벨 4 크레비트 루푸스 드라코를 처치했습니다.]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크레비트 루푸스 드라코의 기초 정보가 잠금 해제됩니다.]

[크레비트 루푸스 드라코: 성장 중인 늑대 드래곤. 유생체가 진화한 형태로 더 크고 강력하며 특히 크게 높아진 힘 수치를 이용해 비늘로 뒤덮인 꼬리를 무자비하게 휘두를 수 있습니다.]

레벨이 오를 만큼 많은 경험치는 아니었다.

하지만 레벨이 낮은 걸 보니 예전의 나처럼 진화 대신 코어 압축을 선택한 놈일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들었다.

물론 당장 놈의 코어를 추출할 시간 여유는 없었다.

늑대 드래곤의 숨통을 끊자 마자, 벌떼처럼 달려드는 토끼들을 상대해야 했기 때문이다.

사실 놈들의 공격이 그렇게 두렵지는 않았다.

내 빛나는 다이아몬드 갑각이 모두 튕겨낼 테니까 말이다.

무려 시스템이 보장한, 엄청 단단한 갑각이라고!

하지만 몇몇 토끼들의 길다란 송곳니가 조금이지만 내 갑각을 뚫고 들어오자, 그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다이아몬드처럼 단단하다고 하지 않았어, 시스템?

설마 과대광고였던 거야?

토끼들의 송곳니에 찔린 곳마다 따끔거리는 통증이 느껴졌다.

나는 잽싸게 상태창을 열어서 피해가 얼마나 큰지 확인했다.

휴!

다행히 피해는 크지 않아서, HP는 겨우 4가 줄어 있었다.

하지만 토끼의 송곳니가 내 견고한 외골격을 뚫을 수 있다는 점은 충격이었다.

생각보다 공격력이 강하잖아?

일개미들이 상대하기 쉽지 않겠어!

하지만 그런 걱정을 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내 페로몬을 따라 도착한 일개미 무리가 곧바로 싸움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개미들은 눈에 보이는 대로 토끼에게 돌진해서 턱을 휘둘렀다.

이런 빌어먹을 일개미들 같으니···

어떻게 1초도 망설일 줄을 모르냐!

잘못하면 나 때문에 상당수의 형제들이 땅 속에 묻히게 될 판이었다.

제기랄, 그럴 수는 없지.

내가 도와야 해!

나는 말그대로 내게 매달려 있는 토끼들을 그대로 매단 채 개미들이 싸우기 시작한 위치로 움직였다.

타이니가 등 위에서 온 힘을 다해 작은 주먹을 토끼들의 얼굴에 휘둘렀다.

그렇게 큰 피해를 주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토끼 몇 마리를 내 등에서 떨어뜨리는 데 성공했다.

나이스 어시스트, 타이니!

동료들에게 합류하자, 언덕 너머로 더 많은 개미들이 줄지어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벌써 스무 마리 정도가 도착해서 적을 물어뜯고 있었다.

개미에게 물린 토끼들은 고통스럽게 울부짖으며 강력한 뒷다리를 휘둘렀다.

갓 부화한 일개미 몇 마리가 그 다리에 맞고 날아갔다.

내가 미처 도울 새도 없었다.

불쌍한 어린 개미들은 그대로 나가 떨어졌다.

심지어 한 마리는 날아가서 나무에 부딪히기도 했다.

녀석들이 여왕의 치료를 받을 때까지 버텨 주기를 바랄 수밖에.

전투가 끝나면 내가 직접 데리고 갈 테니 죽지 말아다오!

나는 전선에 뛰어들어 턱을 좌우로 마구 휘둘렀다.

단단히 물기! 단단히 물기!

내 강력한 턱에 물린 토끼 두 마리는 뼈가 부러지고 살이 찢어지는 큰 부상을 입었다.

나는 놈들의 마무리를 동료들에게 맡기고, 전장의 상황을 살폈다.

전투는 점점 더 치열해지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개미들이 싸움에 가세했지만, 검은 토끼 몬스터들은 미친듯이 날뛰며 송곳니가 닿는 곳마다 치명상을 남겼다.

고개를 조금 돌려 뒤쪽을 살핀 나는 산성 용액을 발사했다.

산성 용액은 나를 향해 몰래 다가오던 토끼의 가슴팍에 맞았다.

감히 나한테 은신 공격을 시도해?

산성 용액에 맞은 토끼 몬스터는 귀에 거슬리는 새된 비명을 질렀다.

토끼는 원래 조용한 동물이 아닌가?

하긴 그렇게 따지면 토끼는 원래 초식 동물이지···

그새 토끼들도 지원군을 불러온 게 분명해 보였다.

아까는 분명 열 마리 정도였는데, 지금은 적어도 스무 마리는 넘었다.

남아 있던 늑대 드래곤 한 마리가 낮게 포효하며 꼬리와 이빨로 주위의 토끼들을 공격했다.

놈이 토끼들을 상대하는 동안, 나는 다시 동료 개미들을 돕기 위해 주의를 돌렸다.

나는 전장을 누비며 나보다 작은 형제들을 위해 살아 있는 방패 역할을 했다.

그러다 보니 내 갑각에 작게 뚫린 상처들이 점점 더 늘어났다.

이 빌어먹을 토끼 놈들의 송곳니에 독이 없어야 할 텐데···

지금 상황에서 내가 중독으로 쓰러지기라도 하면 정말 큰일이니까 말이다.

단단히 물기!

나는 토끼 한 마리가 주위에 모여드는 일개미들에게 정신이 팔린 모습을 발견하고, 기회를 틈타 놈의 목덜미를 턱으로 물었다.

토끼가 미친듯이 발버둥치며 강력한 뒷다리로 내 머리 바로 뒤쪽의 가슴 부분을 강타했다.

그 충격에 순간 몸이 뒤로 밀려났지만, 단단한 갑각이 충격을 흡수한 덕분에 놈을 놓치지는 않았다.

이제 지옥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악마 같은 토끼 놈아!

우직!

내 턱이 서로 만나며 토끼의 목이 완전히 끊어졌다.

[레벨 3 덴스 상귀넴 레포리스를 처치했습니다.]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나는 주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투를 무시한 채, 방금 해치운 토끼의 시체를 먹기 시작했다.

[새로운 바이오매스의 원천을 섭취했습니다: 덴스 상귀넴 레포리스. 1 바이오매스를 얻었습니다.]

[덴스 상귀넴 레포리스의 기초 정보가 잠금 해제됩니다.]

[덴스 상귀넴 레포리스: 핏빛 이빨 토끼. 그림자에 대한 친화력으로 유명하며 강력한 송곳니로 물린 상대의 생명력을 흡수할 수 있습니다.]

잠깐, 시스템.

그림자와 친하고 길다란 송곳니로 생명력을 흡수한다면···

지금 얘들이 뱀파이어 토끼라도 된다는 말이야?

에이···

정말?!

상태창을 확인하니 지금까지 전투를 벌이면서 12HP가 깎여 있었다.

대부분 망할 토끼 놈들의 송곳니에 뚫린 상처로 인한 피해였다.

나는 재생 분비선을 활성화했다.

그러자 기분 좋게 차가운 느낌이 전신에 밀려와, 감각의 상처를 메우고 HP도 거의 완전히 채웠다.

주위에서는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고 있었다.

지원 병력이 계속해서 도착한 덕분에, 개미들의 수는 이제 50마리에 가까웠다.

수적인 열세를 감당하기 어려운지 토끼들의 패색이 점점 짙어졌다.

하하!

어떠냐, 저주받은 지옥의 토끼들아!

우리 둥지의 힘을 보아라!

주위를 살피자 갓 부화한 개미 세 마리가 토끼 한 마리를 상대하는 모습이 보였다.

개미들은 각자의 턱으로 놈을 붙잡고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다.

더 힘이 강한 토끼 몬스터가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자, 아직 어린 세 마리의 개미들은 다리를 넓게 벌리고 바닥을 꽉 붙든 채 필사적으로 버티는 형국이었다.

내가 도와주마, 꼬마들.

나는 앞으로 달려들어 턱으로 토끼를 힘껏 내리쳤다.

턱의 날카로운 끝이 놈의 가죽을 그대로 뚫고 들어갔다.

[레벨 2 핏빛 이빨 토끼를 처치했습니다.]

[경험치를 얻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