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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의 군단의 기원은 역사 속에 사라졌다. 널리 퍼져 있는 내용은 역사적인 사실보다 신화에 더 가깝다. 이는 대격변으로 많은 기록들이 소실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여기 티베리알 연방에서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는 부분은 세계가 격변하면서 던전의 가장 심부에 서식하던 몬스터들이 지상으로 쏟아져 나와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파괴하던 시절, 몇몇 사람들이 모여 심연의 군단을 설립했다는 것이다.

이 조직은 국가와 민족을 가리지 않고 자원자를 받아들였으며, 지상에서는 물론 던전 안까지 진출해서 몬스터들에게 효과적인 반격을 가하며 급속히 성장했다. 아무도 이들이 다른 인간 군대와 달리 몬스터의 군세를 상대로 연전연승한 비결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그리고 삼천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레기온은 주기적으로 던전을 감시하고 조사하는 독자적인 군사 조직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어떤 지역에서는 여전히 신뢰를 받으며 던전 출입을 엄격하게 감독할 독점적인 권한을 인정받고 있다.

- 학자 레셀란의 저서인 '대격변 이후 시대 주요 세력들의 기원, 제4장 심연의 군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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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릴리아 호민관은 차가운 눈빛으로 바닥에 앉아 있는 용병 포로들을 노려봤다.

용병들은 팔과 다리를 밧줄로 결박당한 상태였다.

포로들의 양 옆에는 두 명의 레기온 병사들이 검 손잡이에 손을 올리고 서서, 언제든 명령이 떨어지면 즉결 처형을 실시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너희들 말은 산성 용액을 뿌리는 소형 몬스터가 매복 공격으로 마법사의 방어막을 부쉈을 뿐 아니라, 야영지까지 쫓아와서 경계석을 뚫고 들어간 다음 십여 개의 코어들을 훔쳐갔다는 건가?"

마법사인 니스티나가 열성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전 심지어 그 놈을 보지도 못했어요."

아우릴리아가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어째서인지 몬스터가 너희 용병 놈들보다 영리하다는 말을 들어도 놀랍지가 않군."

"이봐, 말 조심하슈!"

용병들 중 덩치 큰 남자가 외쳤다.

"여기 첫 번째 개활지에 그렇게 영리한 몬스터가 있다는 소리를 누가 들어나 봤어?"

남자의 말이 맞았다.

보통 이 근처의 몬스터들은 영리함 수치가 극도로 낮았다.

몇몇 크고 위험한 형태로 진화한 놈들은 있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 다른 능력치를 모두 희생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건 그렇다 치고, 너희도 우리가 며칠 전에 보낸 던전 출입을 금한다는 공지를 받았을 텐데. 왜 레기온의 지시를 거역하고 숲에서 파티 사냥을 하고 있었던 거지?"

그러자 용병들은 앉은 채로 엉덩이를 들썩이며, 엄격한 표정의 호민관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아우릴리아는 속으로 욕설을 내뱉았다.

이 놈들은 무슨 어린애들인가?

"어··· 제 생각에는 통신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아요."

마법사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아무 소식도 받지 못했거든요."

"이 근처에 너희 말고 다른 사냥 파티가 하나도 없는데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개활지 전체를 독점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익에 눈이 멀어서 그런 건 보이지도 않았나?"

아우릴리아는 용병들 옆에 서 있는 레기온 병사 한 명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러자 병사가 성큼성큼 걸어 나와 여자 마법사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리더니, 덩치 큰 남자를 향해 돌아선 다음 가슴을 발로 걷어찼다.

덩치 큰 남자는 밧줄에 묶인 채 뒤로 넘어져서 가쁜 숨을 헐떡였다.

"우리를 이런 식으로 대우할 수는 없소."

용병들 중 또다른 전사가 항의했다.

"우리는 용병 조합의 정식 구성원이란 말이오."

"아니. 너희는 지나친 탐욕의 대가를 치르게 될 멍청한 쓰레기 용병들일 뿐이야."

아우릴리아가 뒤쪽에 서서 지시를 기다리고 있는 백인대장을 돌아봤다.

"이 놈들이 던전에서 수확한 모든 전리품을 압수하고 사냥 허가도 박탈하도록. 말을 듣지 않는 애새끼들은 장난감을 가질 자격이 없지."

명령을 내린 아우릴리아가 용병들을 하나씩 차례로 노려보며 말했다.

"만약 불평을 하거든 레기온의 '호의'를 좀 더 베풀어도 좋다."

그리고 아우릴리아는 고개를 흔들며 자리를 떠났다.

몇 시간 전 발견한 이 용병들은 호수에서 코어를 파밍한 뒤 야영지로 돌아오는 중이었다.

지역 용병들이 레기온의 권위에 도전하거나 반항하는 일은 드물지 않았다.

그리고 레기온은 최근 몇 년 동안 그런 시도에 단호하게 대처했다.

물론 그런 방침은 용병 조합이 여왕에게 달려가 레기온의 권한 남용을 비난하며 징징대는 결과를 낳았다.

사령관의 수많은 골칫거리들 중 하나였다.

아우릴리아는 야영지 한쪽에 만들어진 임시 훈련장에서 훈련병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는 티투스를 발견했다.

훈련병들은 실수를 할 때마다 사령관에게 꾸중을 들어가며 서로 대련을 반복하느라 녹초가 되어 있었다.

아우릴리아는 사령관에게 다가가 용병들의 기이한 증언을 전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왜 그 종족의 그렇게 영리한 개체가 던전의 이렇게 높은 층까지 올라왔는지 말입니다. 훈련병들 중 하나가 지상과 가까운 초소에서 봤다는 놈과 같은 개체일까요?"

티투스는 잠시 입을 다물고 방금 들은 이야기를 곱씹었다.

"그럴 것 같군."

마침내 티투스가 말했다.

"그런 개체가 둘이라면 너무 지나친 우연의 일치일 테니까. 하지만 만약 같은 놈이라면, 대체 어떻게 고작 개미 한 마리가 우리의 소탕 작전을 피해 여기까지 내려온 다음 더 강한 몬스터들 틈에서 살아남은 거지? 게다가 용병들의 말을 믿는다면 놈은 거의 인간 수준의 지성을 보여주고 있어."

호민관이 동의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낮은 진화 단계에서 그 정도 수준의 영리함을 보이는 몬스터에 대해서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알버튼 님에게 의논해야 할까요?"

그러자 사령관이 툴툴거렸다.

"나도 이렇게 특이한 표본을 연구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우리에게는 그런 한가한 일을 하고 있을 시간이 없네. 이 개활지의 몬스터를 최대한 소탕하고 나서 놈들의 둥지를 찾아내야 하니까. 만약 우리의 영리한 개미가 여기까지 왔다면, 둥지로 돌아갈 수도 있겠지. 그럼 나머지 놈들과 함께 죽일 수 있을 테고."

티투스는 잠시 훈련병들에게 소리를 지른 뒤 다시 이야기를 계속했다.

"우리는 전에도 인간에 가까운 지성을 가진 몬스터를 본 적이 있지. 주변 지역에서 목격한 새끼들의 수로 볼 때 그 빌어먹을 가라로쉬 놈이 최근에 이 가까운 곳까지 나왔던 게 분명해. 사냥조에게 주의하라고 당부하게. 가라로쉬가 이렇게 높은 층에서 얼굴을 내밀지는 않겠지만, 놈의 새끼들 중 레벨이 높은 개체가 나타날지도 모르니까."

티투스 사령관은 깊은 지하에서 몇 차례 가라로쉬와 마주친 적이 있었다.

그 거대한 고대 괴물은 리리아 지하의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존재로 유명했다.

그렇게 오래되고 강력한 몬스터들은 던전의 이렇게 높은 층까지 나오는 일이 불가능했다.

마나가 너무 희박해서 놈들의 강력한 코어를 지탱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괴물들은 오랜 세월동안 너무 많은 진화를 거친 끝에 시스템으로부터 직접 이름을 받을 정도였다.

가라로쉬의 두꺼운 가죽에 난 수많은 흉터들 중에는 지금 티투스가 어깨에 걸치고 있는 도끼에 의한 것도 여럿 있었다.

하지만 그 고대 악어는 영리하고 조심스러워서, 언제나 인간들이 자신을 잡기 위해 준비한 함정을 무사히 빠져나갔다.

"어쩐지 불길하군."

티투스의 말이 가라로쉬에 대해 생각하던 호민관의 상념을 방해했다.

"불길하다고 하셨습니까, 사령관님?"

티투스가 돌아서서 아래쪽의 숲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난 이 숲이 이렇게 밝게 빛나는 광경을 본 적이 없네. 스폰 지점들은 거의 우리가 죽이는 속도만큼 빠르게 몬스터들을 뱉어내고 있어. 아직 몬스터 웨이브는 시작도 되지 않았는데 말이야. 던전이 분명 평소와는 달라."

아우릴리아가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보다 마나 밀도가 빠르게 높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의미라고 보십니까?"

티투스가 고개를 흔들었다.

"모르겠네. 그저 마음에 들지 않을 뿐이야. 아무래도 이번 웨이브는 만만치 않을 것 같군. 아무래도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는 편이 좋겠어."

엄마는 거대 괴수

머리 아래에 뭔가가 느껴졌다.

딱딱했다.

그러니까··· 바위처럼?

다리 역시 돌처럼 무거웠다.

내가 얼마나 의식을 잃고 있었던 걸까?

나는 팔을 들어 기지개를 펴려고 했지만 어째서인지···

내 팔이 어디 갔지?

잠깐···

난 더 이상 팔이 없잖아!

그리고 모든 기억이 다시 쏟아져 들어왔다.

싸움, 개미들, 고릴라!

놈은 어떻게 됐지?

난 살아 있는 건가?

벌떡 일어나려 했지만 뭔가가 내 몸을 누르고 있었다.

뭐지?!

내가 아직 싸우는 중인가?

시야가 크게 흔들리더니 마침내 초점이 맞았다.

그리고 나는 내 위에서 다리 하나를 뻗어 나를 누르고 있는 거대한 몬스터를 볼 수 있었다.

으아!?

이게 뭐야?

날 잡아먹지 마!

난 맛없어!

생각이 진정될 때까지 조금 시간이 걸렸다.

아무 데도 다친 곳은 없는 것 같고···

이 다리는 내 등을 누르고 있지만 해치려는 의도는 없어 보였다.

나는 재빨리 상태창을 확인했다.

HP가 절반이나 있네?

분명 죽기 직전이었는데···

어···

레벨이 왜 이렇게 높아?

3레벨이나 올랐다고?

그 박쥐 고릴라를 죽여서 그런 건가?

그러고 보니 그 싸움이 어떻게 끝났는지 기억이 잘···

나는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거대한 몬스터를 다시 쳐다봤다.

···개미잖아?

그러니까, 거대 개미?

혹시···

여왕님?

몸 크기가 내 네 배는 훌쩍 넘을 듯한 거대한 괴물 개미가 다리로 나를 누른 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여왕이 천천히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커다란 한 쌍의 더듬이가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 더듬이가 내 몸에 닿자, 차가운 에너지의 파도가 밀려 들어왔다.

나는 깜짝 놀랐지만 곧 뭔가를 생각해냈다.

재생 치유 분비선을 사용했을 때와 똑같잖아!

날 치료해주는 건가?

상태창을 확인해 보니 HP가 10 더 회복되어 있었다.

좀 놀라운 일이었다.

여왕은 치유 마법을 쓰는군...

갑자기 등을 누르던 압력이 사라졌고, 나는 여섯 다리로 일어섰다.

여왕이 내게서 등을 돌리더니 턱으로 뭔가를 집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서서 내 앞에 커다란 덩어리를 내려놓았다.

이건···

그 고릴라의 팔이잖아?!

내 앞에 먹을 것을 내려놓은 여왕은 친근한 태도로 더듬이를 흔들더니, 나를 작은 방 안에 내버려 두고 밖으로 나갔다.

좋아···

우선 침착하게 이 상황을 파악해 보자.

*꼬르륵*

하지만 위장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나를 재촉했다.

대체 왜 이렇게 배가 고픈 거야?

일단 먹으면서 생각하자.

[새로운 바이오매스의 원천을 섭취했습니다: 푸그누스 풀구르 시미아. 1 바이오매스를 얻었습니다.]

[푸그누스 풀구르 시미아의 기초 정보가 잠금 해제됩니다.]

[푸그누스 풀구르 시미아: 번개 주먹 고릴라. 난폭하고 강력하지만 영리함이 상당히 부족한 이 몬스터는 번개에 강한 친화력을 가지며 마나를 전기로 변환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정말 전기 공격이 맞았군!

박쥐 고릴라는 아주 강력한 놈이었지만···

시스템의 말처럼 아주 멍청하기도 했다.

언젠가 그 정도로 강하면서 영리하기까지 한 몬스터와 마주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끔찍했다.

속임수가 통하지 않으면 난 빠르게 임종을 맞이할 테니까 말이다.

[1 바이오매스를 얻었습니다.]

[1 바이오매스를 얻었습니다.]

팔 한 쪽만 먹었는데 바이오매스가 두 개나?

이런 적은 처음인데?

강한 몬스터라서 그런가?

진화를 두 차례는 거쳤을 테니, 그만큼 더 많은 바이오매스를 주는 건가?

그리고 경험치도 많이 줬던 모양이다.

진화를 한 상태로도 3레벨이 한꺼번에 오른 걸 보면 말이다.

힘든 사냥이었지만 그만큼 이득이 크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었다.

만약 통째로 한 마리를 독차지할 수 있다면···

이런, 정신 차리자.

이 놈과 싸우면서도 죽을 뻔했으면서!

벌써 또다른 자살 행위를 계획하고 있다니!

어쨌든···

내가 어떻게 여기 온 걸까?

그리고 여기는 대체 어디지?

아까 그 거대 개미가 여왕이라면...

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둥지에 돌아온 것이다!

동료 개미들이 전투 도중 의식을 잃어버린 나를 여기로 데려와서 치료한 것 같았다.

내가 쓰러뜨린 고릴라의 시체도 가져온 모양이고···

그건 그 거대 악어도 죽였다는 뜻인데···

개미들이 해냈군!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그동안 내가 태어난 둥지로 돌아오기 위해 애쓰면서 많은 일을 겪었고, 몇 번이나 죽을 뻔한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이 세계에서 깨어난 뒤 마주친 거의 모든 생물들은 나를 죽이려 들었다.

내게는 긴장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마음 편히 있을 수 있는 장소가 절실하게 필요했다.

그리고 이제 그런 장소에 도착했다!

빨리 둥지를 살펴보고 싶어서 좀이 쑤신다!

나는 내가 깨어난 작은 방에서 서둘러 나가려던 도중, 바닥에서 뭔가가 부드럽게 빛나고 있는 걸 알아차렸다.

이게 뭐지?

몬스터 코어?

여태까지 내가 봤던 코어들보다 훨씬 더 큰데!

나는 그 커다란 코어에 가까이 다가갔다.

[호환 가능한 몬스터 코어를 발견했습니다. 코어를 강화하거나 몬스터를 재구성하겠습니까?]

그 고릴라의 코어인가?

둥지의 다른 개미들이 나를 위해 가져다 놓은 걸까?

그건···

그 개미들이 했다고 생각하기에는 좀 이상한 행동인데.

여왕인가?

여왕은 다른 개미들보다 좀 더 영리해 보였다.

여왕이 나에 대한 포상으로 이걸 여기 둔 걸까?

그리고 몬스터를 재구성한다는 선택지가 뭔지도 궁금했다.

진화할 때 추가적인 에너지를 얻으려면 내 코어를 강화하는 일이 중요하지만···

대체 이 선택지가 뭘 의미하는지 알아내고 싶은데···

그냥 뭔지만 확인하고 선택을 취소할 수 있을지도···

[몬스터를 재구성하겠습니까?]

···그래?

[아직 요구 스킬이 없기 때문에 수동 재구성은 잠겨 있습니다. 몬스터를 재구성합니다.]

잠깐!

안돼!

내 눈 앞에서 귀중한 코어가 점점 더 밝게 빛나더니 액체로 녹아버렸다.

그리고 그 액체는 다시 스스로 형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잠시 후 빛이 잦아들며, 작은 원숭이처럼 생긴 몬스터가 바닥에 앉아서 커다란 두 눈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뭐···

젠장.

이건···

어두운 회색 피부에 박쥐 같은 얼굴을 하고, 전신이 부드러운 검은 털로 뒤덮여 있는 작은 원숭이였다.

작은 원숭이는 호기심에 찬 눈빛으로 방 안을 둘러보더니, 엉거주춤 일어나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마치 아직 걷는 방법을 제대로 알아내지 못한 것 같은 동작이었다.

그러니까 내 코어는 사라지고, 원래 몬스터가 새끼 상태로 재구성되었다는 거지?

뭐하러 그런 짓을 하는데?!

그 코어로 내 자신을 강화할 수도 있었다.

그만큼 큰 코어라면 아마 무슨 보너스가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너무 아깝다···

사용해 보기 전에 재구성이 뭔지 알려줄 수도 있었잖아.

꼭 이래야만 했냐, 시스템!

내 고뇌를 전혀 모르는 원숭이는 아장거리며 걸어가서 벽을 만지다가, 결국 나를 향해 다가왔다.

왜 다가오는 거야?

나한테 뭘 원해?

훠이, 훠이.

잠시 망설이던 작은 몬스터가 해맑은 미소를 짓더니, 내 몸을 붙잡고 기어오르려고 바둥거렸다.

결국 내 배 위에 올라오는데 성공한 원숭이는 행복한 표정으로 내 등에 달라붙어 웃기 시작했다.

···

녀석이 너무 즐거워 보여서 일단 내버려두기로 했다.

어차피 저렇게 작은 녀석이 내게 무슨 해를 끼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설마 내가 재구성한 몬스터라서 나한테 무슨 충성심이라도 느끼는 건가?

몬스터를 재구성하는 과정에서도 시스템은 별다른 설명을 제공하지 않았다.

무슨 스킬이 있으면 내가 수동으로 몬스터를 재구성할 수 있다는 점 말고는···

수동으로 재구성하면 뭐가 좋은 건데?

이 미친 시스템은 알면 알수록 의문만 더 생겼다.

결국 나는 등에 예상치 못한 승객을 태운 채로 둥지 안을 탐험하기 위해 나섰다!

다른 개미들이 이 녀석을 잡아먹으려고 들지 않아야 할 텐데···

내가 깨어난 작은 방은 좁은 통로와 연결되어 있었다.

모퉁이의 커다란 바위를 돌아가자, 통로는 더 큰 동굴로 이어졌다.

그리고 몇 마리의 개미들이 동굴 안을 이리저리 오가는 중이었다.

다들 엄청나게 바빠 보였다.

처음에는 나도 모르게 몸이 굳었다.

여태까지 몬스터를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일은 언제나 곧 싸움이 벌어진다는 걸 의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굴 안의 개미들은 나를 완전히 무시한 채, 각자의 일을 하느라고 바빴다.

내가 같은 동족이라는 걸··· 같은 둥지 출신이라는 걸 알아볼 수 있는 걸까?

사실상 나 자신이 어떻게 생겼는지 처음으로 정확히 볼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자 기분이 묘했다.

눈 앞의 개미들은···

정말로 그냥 커다란 불개미처럼 생긴 모습이었다.

불개미들은 보통 지하로 파고드는 대신 높은 탑 형태로 둥지를 만들지만, 이 아래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터였다.

어쩌면 내가 처음 발견했던 그 커다란 공동이라면 탑 모양의 둥지를 만들 수 있을지도···?

눈에 들어오는 개미들 중 절반 정도는 갓 부화한 듯, 나보다 훨씬 덩치가 작았다.

갓 부화한 개미들이 여섯 개의 다리들을 바쁘게 놀리며 움직이는 모습을 보니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일단은 안전한 것 같군.

그럼 계속 탐험해 볼까!

조금 더 돌아다니자 이 메인 동굴에 좁은 통로로 연결된 두 개의 방을 더 발견했다.

이유가 뭔지 몰라도 그런 방들은 모두 텅 비어 있었다.

몇 마리의 일개미들이 그 안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등에 작은 원숭이를 매단 채 아래쪽으로 좀 더 내려가자, 오가는 개미들의 수가 훨씬 많아졌다.

그리고 머지 않아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십여 마리의 작은 유충들, 그리고 좀 더 커다란 몇몇 번데기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스무 마리도 넘는 일개미들이 달라붙어서 유충들을 돌보거나 먹이를 주고 있었다.

일개미들은 계속해서 하얀색 유충들을 어루만지며 상태를 확인했고, 몸을 깨끗이 해주거나 어미새가 아기새를 먹이는 것처럼 자신들의 사교용 위에서 먹거리를 꺼내 먹이는 중이었다.

이 동굴은 개미 몬스터의 다음 세대를 기르는 부화실이자 양육 공간이었다.

멋진데!

취미로 개미를 기를 때, 나는 일개미들이 둥지의 다음 세대를 돌보며 성체 개미로 키워내는 과정을 지켜보는 걸 가장 좋아했다.

이렇게 보니 이 세계의 몬스터 개미들도 지구의 보통 개미들과 생태가 유사한 것 같았다.

여왕이 낳은 알이 유충으로 부화하면, 일개미들이 번데기가 될 때까지 돌보는 것이다.

유충은 번데기 안에서 천천히 개미의 형태를 갖춘 뒤 부화한다.

그리고 잠시 외골격이 단단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어엿한 둥지의 일원이 된다.

내 등에 타고 있던 원숭이가 우리 앞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개미들을 보고 신기한 듯한 소리를 냈다.

그러게.

둥지 안의 개미들은 정말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한시도 쉬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주위를 좀 더 살피자 한쪽에 아직 부화하지 않고 있는 알들이 보였다.

아마 저쪽으로 더 내려가면 여왕을 만날 수 있다는 의미겠지.

과연 아래쪽 방에는 거대한 여왕 폐하께서 자신의 원래 업무에 집중하고 있었다.

둥지를 확장하기 위해 필요한 알들을 낳는 일 말이다.

여러 마리의 개미들이 주변에서 여왕의 몸을 깨끗이 하거나, 먹이를 가져다 바치는 모습이 보였다.

솔직히 나는 여태까지 본 개미들의 수가 너무 적어서 놀랐다.

아마 생긴지 그리 오래된 둥지는 아닌 것 같았다.

불개미 둥지의 인구는 최대 50만 마리까지도 늘어난다.

하지만 이 안에 있는 개미들의 수는 몇백 마리에 불과해 보였다.

여기저기 남아 있는 페로몬의 자취들이 내 더듬이를 끊임없이 자극했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런 페로몬들 중 몇 가지가 의미하는 바를 알 수 있었다.

식량은 이쪽으로, 알은 저쪽으로··· 등등.

이런 자취들 덕분에 일개미들은 언제나 자기가 어디로 가서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더 많은 개미들이 특정한 경로에 동참하면, 자취도 그만큼 강해졌다.

내가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자, 그 모습을 본 여왕이 내게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여왕의 등에 올라타 청소를 하고 있던 몇몇 개미들도 본의 아니게 내 쪽으로 이동했다.

나는 여전히 여왕의 모습에 조금 위축되지 않을 수 없었다.

여왕 개미는 정말로 거대했기 때문이다.

어···

안녕하세요···

···엄마?

무리 사냥

내 앞에 있는 이 거대한 몬스터는 나를 이 세계에 낳아준 어머니가 분명했다.

지금 내가 이 둥지 안에 들어와 있어도 개미들이 나를 갈기갈기 찢어 놓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 증거였다.

여왕, 그러니까 어머니는 내게 아직 상처가 남아 있는지 유심히 살폈다.

그리고 더듬이로 내 몸을 자상하게 어루만진 뒤 원래 있던 방으로 돌아갔다.

어···

좋은 분 같은데?

말이 나온 김에 내 HP를 확인했다.

바이오매스를 섭취해서 41까지 회복되어 있었다.

이 정도면 거의 다 나았다고 봐도 되겠군.

마침내 둥지를 찾기는 했지만···

이제는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여기서는 당장 내 목숨을 위협하는 인간들이나 몬스터가 없다 보니···

긴급하게 해야 할 일도 없었다.

이 세계에 오고 처음으로 경험하는 느긋한 시간이었다.

나는 여왕의 방을 나와서 일개미들이 오가는 길을 지나, 위쪽 동굴의 빈 방들 중 하나로 들어갔다.

도중에 아직 숨이 붙어 있어서 약하게 버둥거리는 지네를 운반 중인 두 마리의 일개미와 마주쳤다.

왜 지네를 산 채로 옮기는 거지?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그 이유를 깨달았다.

최후의 일격만 가하면 레벨을 올릴 수 있으니까···

저들은 어머니께 말 그대로 경험치를 배달하는 거였다!

여왕은 손가락 하나 까닥할 필요 없이 경험치와 바이오매스를 얻는 셈이다.

일꾼들이 죽기 직전의 몬스터들을 가져다 주니까 말이다.

좀 부러운데.

생각해 보면 납득이 가는 일이었다.

여왕 개미는 둥지의 심장이자, 과거요 미래였다.

여왕이 없다면 둥지는 애초에 존재할 수도 없고, 여왕이 죽기라도 하면 그대로 멸망할 터였다.

그러니까 둥지가 번성하려면 여왕의 레벨이 높아야 할 뿐 아니라, 바이오매스를 통해 강하게 변이할 필요도 있었다.

위험을 무릅쓸 필요가 없는 방식으로 말이다.

아마 여왕이 알을 낳는 기관 또한 바이오매스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을 터였다.

그러면 더 많은 알을 낳아서 둥지의 성장을 빠르게 만들 수도 있겠지.

나는 시간이 난 김에 마나 조작 훈련을 하기로 결정하고, 코어의 마나를 입으로 내보내는 과정을 반복했다.

내 입에서 마나 연기가 나올 때마다 등에 타고 있는 원숭이는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다.

녀석은 계속 웃음을 터뜨리며 손으로 마나 연기를 잡으려고 하다가 흩어버리곤 했다.

귀엽군.

그렇게 마나가 모두 소진될 때까지 연습을 하자 배가 고파졌다.

넌 어때 꼬마야?

너도 배가 고프니?

등에 타고 있는 작은 원숭이와 실제로 의사소통을 할 방법은 없었지만···

이 녀석도 자라려면 뭘 먹어야 하겠지?

내가 재구성한 몬스터라 그런지, 뭔가 제대로 키워야 할 것 같은 책임감 같은 게 느껴졌다.

나가서 식량을 좀 구해야겠군.

나도 둥지에 기여를 해야지!

나는 등에 아기 원숭이를 태운 채 다시 메인 동굴로 나간 다음, 더듬이로 페로몬 자취들을 살폈다.

그리고 '음식'을 의미하는 게 분명한 자취를 따라서 계속 나아갔다.

몇몇 다른 일개미들도 나와 같은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중간에 몇 차례 갈림길이 나왔지만, 나는 줄곧 위를 향해 똑바로 올라가는 통로를 택했다.

내 목적지는 전에 있던 커다란 숲이었다.

그래도 익숙한 곳에서 사냥을 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좁은 통로를 삼십 분쯤 나아가자 마침내 통로가 끝나고, 내게 익숙한 개활지가 나타났다.

주위를 둘러보니, 나는 개미들이 둥지를 만들면서 파낸 흙으로 이루어진 언덕 꼭대기에 서 있었다.

여태까지 겪은 일들 때문인지···

개미인 내가 정말로 개미 둥지의 입구에 서 있다는 사실이 뭔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몇 마리의 일개미들이 내 뒤를 따라 입구에서 기어 나왔다.

진화와 변이의 정도는 개미마다 각각 달랐다.

나는 둥지 안에서 나보다 더 많이 진화한 개미를 보지 못했다.

사실 나만큼 덩치가 큰 개미도 없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일개미 한 마리가 나처럼 많은 경험치와 바이오매스를 얻기는 어려울 테니까 말이다.

개미들은 무리 사냥을 하지만, 경험치는 직접 숨통을 끊은 장본인만 얻을 수 있었다.

게다가 이들은 가능하면 사냥감을 생포해서 여왕에게 데려가려고 할 터였다.

그런 상황에서는 각각의 개미가 진화를 할 만큼 충분한 경험치를 얻는 건 물론이고, 코어를 형성하는 일도 어려울 터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일개미들에게 불만이 있을 리는 없었다.

이들은 이타적인 본성을 가지고, 오직 둥지를 위해 헌신할 테니까!

나 역시 둥지에 기여할 마음은 있지만, 다른 개미들처럼 모든 걸 포기할 생각은 아니었다.

인간의 지성을 가진 나라면, 스스로를 위한 경험치와 바이오매스를 챙기면서도 둥지에 충분한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둥지를 나오자 몇 개의 페로몬 자취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 중 어느 쪽으로 가야 좋을지 고민하고 있는데, 일개미 하나가 서둘러 둥지로 돌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갑자기 새로운 냄새가 느껴졌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 냄새가 증원을 요청하는 의미라는 걸 이해했다.

이쪽으로 가면 사냥감이, 그리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동족들이 있다!

그 사실을 파악한 나는 내 자신의 페로몬 분비선을 사용하기 위해 잠시 집중했다.

전생에 가져본 적 없는 기관을 사용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처음 산성 용액을 발사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육체를 가지고 태어나면서 딸려온 본능 덕분인지 곧 방법을 터득할 수 있었다.

나는 통로 안쪽으로 증원 요청을 전달하기 위해 내가 맡았던 것과 같은 냄새가 나는 페로몬을 만들어서 뿌렸다.

그러자 오래지 않아 더 많은 일개미들이 입구로 나오면서, 증원 요청을 안쪽으로 전달했다.

이게 바로 지구에서 개미를 그처럼 번성하는 종족으로 만든 조직력이었다.

지구의 개미들은 어마어마한 협동성과 그칠 줄 모르는 식욕으로 작은 동물들의 세계를 지배했다.

어쨌든 증원 요청이 둥지 안으로 전달되는 걸 확인한 나는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증원이 필요한 장소로 달려가면서, 나는 빠르게 바이오매스를 투자해 내 능력을 조금이나마 향상시키로 했다.

만약 또다시 거대한 몬스터와 싸우게 된다면 최선의 상태로 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만 스킬 포인트는 나중을 위해 아껴 놓을 생각이었다.

일단 마나 조작을 마스터하고 나면 마법 기반의 스킬들을 살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어쨌든 나는 세 개의 바이오매스를 투자해서, 지난 번 싸움에서 다짐한 대로 재생 분비선을 한 차례 업그레이드하고 갑각도 +2로 만들었다.

지금으로서는 방어력과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성이 적합해 보였다.

바이오매스를 아꼈다가 턱을 +5로 만든 다음 업그레이드할까 잠시 고민도 들었지만···

그건 다음 기회로 미뤘다.

고통스러운 변이의 과정을 견디며, 나는 자취를 따라 달렸다.

언덕 위의 입구에서 쏟아져 나온 다른 개미들도 내 뒤를 따랐다.

등에 탄 미니 사이즈의 박쥐 원숭이는 뭘 알기나 하는지 신나서 소리를 질렀다.

이 원숭이를 데리고 어떻게 싸워야 할지 난감했지만, 뭔가 방법이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녀석이 최소한 죽음을 자초하지 않을 만큼 영리하기를 바랐다.

만약 원숭이가 어이없게 죽어버리면 몬스터 코어를 잃어버린 고통이 더 커질 테니까 말이다!

어떤 식으로든 널 써먹어 주겠어, 원숭이!

내가 투자한 코어 값을 해야만 할 거야!

다른 개미들과 함께 자취를 따라 달려가는 동안, 나는 우리가 공동의 벽 쪽으로 다가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와우.

그럼 호수로부터 엄청나게 멀리 떨어진 장소라는 말인데.

이 개미들은 얼마나 멀리까지 사냥을 다니길래 이 넓은 공동의 벽 부근에서 정중앙의 호수까지 오가는 거지?

잠시 후 공동의 벽에 뚫린 작은 동굴이 보였다.

수많은 개미들이 그 입구에서 북적거리고 있었다.

아, 우리가 다른 몬스터의 둥지를 침략하는 건가?

동굴 입구의 크기로 볼 때 안에 사는 몬스터가 그리 거대한 놈일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기꺼이 형제들을 돕기 위해 앞장서서 달려나갔다.

입구와 가까워지자 몬스터들이 서로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의 적들은 사납게 으르렁거리고 포효하며 날뛰고 있었다.

하지만 개미들은 기괴할 정도로 조용한 침묵 속에서 끊임없이 전진했다.

···너네 정말로 목숨 따위 신경도 쓰지 않는구나?

내가 빠르게 선봉에 서면 우리 쪽의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을 터였다.

나는 나보다 작은 동족들을 밀어내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자 한 무리의 드래곤 늑대 유생체들이 나타났다.

아마 이 동굴은 놈들의 둥지인 모양이었다.

드래곤 늑대 유생체들의 수는 무려 여덟 마리 혹은 아홉 마리였다.

놈들이 휘두르는 꼬리에 맞았는지, 이미 심각한 부상을 당한 몇몇 개미들의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나는 진화도 하지 못한 이런 몬스터들이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특히 서른 마리의 개미들이 내 뒤에 있는 상황이라면 말이다.

돌격!

전장의 분위기를 느꼈는지, 내 등에 타고 있는 작은 원숭이도 더 이상 웃지 않고 으르렁거리며 드래곤 늑대 유생체들을 노려봤다.

녀석은 내 등에 단단히 매달린 채 자세를 낮추고, 가늘고 뾰족한 목소리로 적들을 위협하려고 시도했다.

뭐, 네가 좀 더 크면 놈들에게 겁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아직은 무리인 것 같구나, 꼬마야...

갑각과 재생 분비선을 강화한 나는 자잘한 상처를 입는 건 신경 쓰지 않고 앞으로 나서서 적들의 어그로를 끌었다.

근처에 있던 드래곤 늑대 유생체 한 마리가 나를 향해 꼬리를 휘두르려 했지만···

단단히 물기!

내 쪽에서 먼저 달려들어 턱으로 꼬리를 물었다!

받아라!

깨물기!

내 강력한 턱이 두꺼운 근육을 파고 들어가 놈의 꼬리를 완전히 끊어버렸다.

하!

난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야!

늑대들 중 몇 마리가 내게 달려들어 이빨과 발톱으로 작은 상처들을 입혔다.

하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적진 한복판에 뛰어들어 혼란을 유발했다.

물기!

나는 또다른 늑대의 다리를 턱으로 물었다.

그리고 그대로 부숴서 적들의 기동력에 타격을 입혔다.

몇 차례 더 이어지는 드래곤 늑대 유생체들의 공격을 무시하고 놈들의 뒤쪽으로 빠져나간 뒤, 재생 분비선을 활성화했다.

예의 차가운 느낌이 즉시 몸 속에 퍼지며, 상처를 아물게 하고 HP를 회복시켰다.

적진을 돌파한 직후라 내 꽁무니가 드래곤 늑대 유생체들을 향하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 산성 용액을 발사했다.

푸슝!

푸슝!

푸슝!

푸슝!

지근 거리에서 발사한 산성 용액이 드래곤 늑대 유생체들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놈들은 타는 듯한 통증에 미친듯이 몸부림쳤다.

거기다 산성 용액이 굳어지며, 놈들의 움직임을 제한하고 속도를 상당히 저하시켰다.

내 대담한 돌파에 놀란 늑대들은 나를 공격하기 위해 몸을 돌렸고, 그러느라 다른 개미들에게 등을 보였다.

개미 군대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적을 압박했다.

수많은 개미들이 그야말로 서로를 밟아가며 드래곤 늑대 유생체들에게 달려들었다.

드래곤 늑대들은 개미 군대의 공세를 견디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졌다.

덕분에 개미들은 수적인 우위를 더 잘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전장을 돌아다니며 때때로 적을 물었지만, 대체로 다른 개미들이 알아서 싸우게 내버려뒀다.

다들 스킬 레벨이라도 올리라고 말이다.

하지만 나도 보상을 좀 챙겨야 하는데···

단단히 물기!

나는 심하게 부상당한 늑대를 발견하고 달려들어 마무리 공격을 날렸다.

[레벨 4 드래곤 늑대 유생체를 처치했습니다.]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한 마리 더!

[레벨 2 드래곤 늑대 유생체를 처치했습니다.]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다른 개미들이 내가 경험치를 차지한다고 불만을 가졌는지 모르겠지만, 설사 그랬다고 해도 티를 내지는 않았다.

그저 멈추지 않고 자신들의 임무를 수행할 뿐이었다.

나는 재빨리 내가 죽인 두 마리의 시체를 전장에서 끌어냈다.

내 몫의 바이오매스를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아직 진화하지 못한 놈들이니 그리 많은 양을 얻기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말이다.

그때 내 등에 타고 있던 작은 원숭이가 허기를 이기지 못하고 뛰어내려, 앙증맞은 송곳니로 늑대 시체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어차피 내게는 큰 소용이 없는 먹이였고 녀석이 그리 많은 양을 축낼 것 같지도 않아서, 별로 신경이 쓰이지는 않았다.

식사를 마치자, 예상대로 고작 두 개의 바이오매스를 얻을 수 있었다.

나보다 덜 진화한 사냥감을 먹으면 획득하는 바이오매스의 양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모양이었다.

만약 한 번 더 진화하고 드래곤 늑대 유생체를 먹는다면 4분의 1로 줄어들지도 몰랐다.

즉 진화를 계속 하면서도 충분한 바이오매스를 얻으려면, 점점 더 강한 몬스터를 사냥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매번 진화하기 전에 코어를 최대한 강화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 같은 진화 단계에 있는 몬스터들 중에서 강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작은 원숭이도 식사를 마치고 다시 내 등 위로 올라갔다.

계속 데리고 다니려면 아무래도 이름을 붙이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막상 이름을 붙이려고 하자 생각보다 어려웠다.

지금이야 작고 귀여운 동물에게 붙일 법한 이름도 어울리겠지만, 만약 녀석이 자기가 태어난 코어의 원래 주인처럼 거대한 모습으로 자란다면···

모르겠군···

타이니?

나쁘지 않은 이름 같았다.

지금의 녀석에게는 썩 잘 어울리고, 나중에 거대하게 자란다면 아이러니한 맛이 있을 테니 말이다.

어차피 내가 실제로 소리를 내서 녀석을 부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내 머리 속으로 부를 이름에 불과했다.

동굴의 싸움이 거의 끝났기 때문에, 나는 혼자 더 많은 사냥감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나머지 일개미들은 바이오매스의 원천인 늑대 시체들은 물론 다친 동료들도 둥지로 운반하고 있었다.

아마 여왕에게 치유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만큼은 영리한 모양이었다.

어쨌든 제법 성공적인 무리 사냥이었다!

내가 둥지에 합류한 이상, 앞으로는 이런 성공이 더 많아지겠지!

음하하!

타이니를 등에 태운 채, 나는 처음 따라왔던 페로몬 자취를 벗어나 멀리 돌아서 둥지 쪽을 향했다.

도중에 사냥감과 마주치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조금 전에 획득한 두 개의 바이오매스로 재생 분비선을 업그레이드할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바이오매스를 더 모아서 턱을 +5로 만들고 고급 변이까지 마치면 공격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할지도 몰랐다.

바이오매스를 아껴 두고 있다가 시도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둥지로 돌아가는 동안, 주위에서 상당히 많은 기척이 느껴졌다.

이 근처에는 유독 몬스터가 많이 돌아다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진화하지 못한 여러 마리의 몬스터를 사냥하느라 시간과 노력을 낭비할 생각이 없었다.

그보다는 한 차례 진화한 놈을 잡아서 충분한 바이오매스를 얻고 싶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런 놈을 발견했다.

개미 vs 거대 지네

관목 덤불 사이로 한동안 보지 못했던 몬스터가 미끄러지듯 움직이고 있었다.

바로 거대 지네였다.

놈의 크기로 볼 때, 진화 과정에서 근육의 밀도는 전혀 높이지 않고 양만 늘린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만큼 힘도 강할 터였다.

하지만 그래도 1대1로 붙어서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내가 선제 공격을 가할 수 있다면 말이다.

나는 덩치가 그렇게 크지 않을 뿐 아니라 고급 은신 스킬까지 가지고 있으므로, 거대 지네와 마주치면 열 번 중 아홉 번은 먼저 상대를 발견할 수 있을 터였다.

바로 지금처럼.

거대 지네는 수풀 속을 뱀처럼 헤치고 나아갔다.

나와 마찬가지로 사냥감을 찾는 모양이었다.

근처에 개미들의 페로몬 자취가 있다는 사실은 모르나 보군.

저러다 늑대 드래곤 둥지를 털고 돌아가는 일개미들과 마주치기라도 하면 목숨을 부지하지 못할 텐데 말이다.

거대 지네가 아무리 잘 싸운다고 해도 금방 개미들의 지원군이 몰려들 테니까.

뭐, 어차피 너무 늦었지.

이미 나와 마주쳤으니···

푸슝!

내가 쏜 산성 용액이 성체 발톱 지네의 몸통 중간 부분에 명중해, 다리 몇 개에 엉겨 붙었다.

푸슝!

놈이 반응하기도 전에 나는 한 발을 더 발사했다.

이번에는 좀 더 꼬리에 가까운 쪽에 명중해서 왼쪽 다리 몇 개를 휘감았다.

나는 딱히 산성 용액으로 치명상을 입히려고 애쓰지는 않았다.

물론 상대의 HP를 조금이라도 깎으면 좋은 일이지만···

그보다는 구속 산성 용액의 특성을 이용해서 커다란 지네의 움직임을 방해하려는 목적이 우선이었다.

거대 지네는 갑작스럽게 공격을 당해서 화가 났는지, 주둥이를 사납게 휘두르며 산성 용액이 날아온 방향으로 돌진했다.

하지만 놈의 걸음걸이는 굳어가는 산성 용액 때문에 이미 불편해 보였다.

완벽한 시작이다!

나는 거대 지네가 돌진하는 직각 방향으로 움직이며, 놈이 계속 방향을 바꾸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이 지네의 발톱이 유난히 무시무시한 모양을 하고 있다는 점을 파악했다.

아마 몇 차례 변이를 거친 결과겠지?

되도록 저 발톱과 정면 대결은 피하는 편이 좋겠군.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갑자기 방향을 바꿔서 지네를 향해 달려들었다.

등에 타고 있던 타이니가 떨어지지 않으려고 두 손으로 내 등을 꽉 붙들었다.

녀석은 전혀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듯, 가냘픈 목소리로 우리의 적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내가 다가가자 거대 지네는 민첩하게 반응해서, 깜짝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몸의 뒤쪽 절반을 들어올리더니 꼬리 끝에 달린 가시로 나를 찌르려고 들었다.

하지만 미리 예상하고 있던 나는 여섯 개의 다리를 모두 동원해서 놈을 향해 뛰었다!

휙!

지네의 꼬리가 내 머리 바로 위를 지나쳐 땅에 꽂혔다.

앞으로 점프한 나는 지네의 머리통과 발톱을 넘어 그 뒤쪽의 몸통 위에 올라탔다.

하하!

적의 몸에 달라붙는 건 내 새로운 필살기지!

나는 꼬리를 거두려고 하는 지네의 몸통 위를 빠르게 달렸다.

그리고 정확히 중간 부분을 턱으로 물었다.

단단히 물기!

거대 지네의 몸통은 너무 두꺼워서 턱을 아무리 벌려도 한 번에 끊기는 무리였다.

하지만 내 턱이 파고든 부분의 갑각에 금이 가며 부서졌다.

[깨물기 스킬이 레벨 5가 되었습니다. 업그레이드가 가능합니다.]

오호라!

당장 업그레이드해!

[깨물기 -> 날카로운 깨물기. 1 SP 소모: 업그레이드된 깨물기 스킬로, 물기 공격이 단단한 저항을 뚫고 들어가는 능력을 크게 높여주는 액티브 스킬입니다.]

대충 알겠다.

그러니까 같은 액티브 스킬이지만 단단히 물기와 달리 적의 방어를 관통하는 쪽에 특화된 공격인가 보군.

한 번 시험해 보자.

날카로운 깨물기!

그러자 내 턱에 다시 한 번 에너지가 모이며 액티브 스킬의 발동을 준비했다.

하지만 단단한 물기를 사용할 때와 달리 턱 전체에 고르게 에너지가 퍼지지 않고, 날카로운 끝에만 모였다.

턱의 끝 부분이 점점 더 밝아지더니 마치 단단한 다이아몬드처럼 빛났다.

나는 다시 한 번 턱으로 지네의 몸통을 공격했다.

그러자 내 턱이 단단한 갑각을 마치 종잇장처럼 뚫고 들어갔다.

내가 턱으로 몸 안쪽을 마구 헤집자, 지네가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거대 지네는 고통으로 몸부림치며, 몸을 비틀어 나를 떼어내려 했다.

그렇게 쉽게 떨어져 줄 수는 없지!

여기 계속 매달려 있어야 네 턱이나 발톱, 꼬리의 독침에 당하지 않을 테니까!

물기, 물기, 물기!

나는 세 차례 더 날카로운 깨물기를 사용해서 지네에게 상당한 피해를 입혔다.

놈은 나를 떨구기 위해 한층 더 격렬하게 몸부림쳤다.

결국에는 나도 버티지 못하고, 타이니와 함께 공중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몇 미터 앞쪽의 바닥에 떨어졌다.

아야!

등에 타이니가 매달려 있다 보니, 녀석이 다칠까 봐 몸을 굴려서 충격을 분산시킬 수가 없었다.

오히려 일부러 배 쪽으로 떨어져서 내가 모든 충격을 다 감당해야 했다.

고개를 뒤로 돌려보니, 타이니는 약간 어지러운 듯한 눈치였지만 특별히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네가 알아서 싸울 수 있게 되면 사냥이 훨씬 쉬워질 텐데!

프리미엄 몬스터 코어를 투자한 결과가 싸움에 방해만 되다니···

언젠가는 꼭 밥값을 하기 바란다, 꼬마야.

나는 속으로 그렇게 투덜대며 거대 지네 쪽을 쳐다봤다.

놈은 나를 공격하기 위해 다가오려고 애쓰는 중이었다.

하지만 구속 산성 용액들이 여러 개의 다리에 엉겨 붙었을 뿐 아니라, 내가 몸 속을 잔뜩 헤집어 놓은 탓에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푸슝!

또 한 발의 산성 용액이 날아가서 거대 지네의 얼굴을 정통으로 맞췄다.

이 공격으로 놈은 큰 피해를 입었을 뿐 아니라 사실상 장님이 되었다.

난 정정당당하게 싸울 거라고 말한 적 없어!

사실 그런다면 바보 짓이겠지.

그 뒤로는 어린애 장난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시력을 거의 잃어버린 거대 지네의 주위를 조용히 돌다가, 약한 부위를 물기로 공격한 다음 물러나는 과정을 반복했다.

결국 전신에 부상을 입은 거대 지네가 쓰러졌다.

[레벨 6 성체 발톱 지네를 처치했습니다.]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휴!

이번 싸움에서 난 피해를 거의 입지 않았다.

크고 위협적으로 보이는 몬스터가 실제로는 상당히 멍청해서, 제대로 된 작전만 쓴다면 쉽게 이길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셈이다.

놈들은 진화를 통해 능력을 고르게 성장시키지 않고, 육체적인 강함을 위해 가장 에너지가 많이 드는 두뇌 발달을 포기했다.

그런 측면에서 시작부터 인간의 지성을 가지고 있던 나는 사실상 치트키를 쓴 거나 다름없었다.

문득 왜 내가 그런 특혜를 누린 건지 궁금해졌다.

지구에서 인간으로 살던 나는 죽고 나서 영혼만 이 세계로 옮겨졌다.

하지만 왜?

무슨 목적으로?

그리고 내 영혼이 개미 몬스터의 몸 속에 들어갔다고 해도···

왜 일반적인, 그러니까 멍청한 개미 몬스터가 아닌 걸까?

왜 이 개미 몬스터의 육체는 처음부터 인간인 내 정신을 담을 수 있는 발달된 두뇌를 가지고 있었던 걸까?

납득이 잘 가지 않았다.

내가 우두커니 서서 그런 고민을 하는 사이, 타이니가 내 등에서 뛰어내리더니 거대 지네의 시체를 파먹기 시작했다.

야!

벌써 다시 배가 고프다고?!

넌 아무 것도 안 했잖아!

그건 내 먹이라고!

나도 서둘러 지네 시체를 먹기 시작했다.

얌냠냠.

나는 최대한 많은 양을 먹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나와 타이니 둘이서 달려들어도 거대 지네의 절반 정도를 먹는 게 고작이었다.

그리고 나는 네 개의 바이오매스를 얻었다.

같은 양을 먹어도 진화한 몬스터가 더 많은 바이오매스를 준다는 가설을 확인한 셈이다.

식량을 낭비하기 싫었던 나는 페로몬으로 흔적을 남기며 둥지로 돌아갔다.

그리고 개미 언덕의 꼭대기에서 다른 일개미가 나타나 내가 남긴 자취의 냄새를 맡을 때까지 기다렸다.

가자, 친구.

이쪽이라고.

나는 다시 페로몬을 뿌려서 자취를 강화하며 언덕 아래로 내려갔다.

그러자 곧 일개미가 알아서 지네 시체로 이어지는 자취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결국 지네 시체를 발견하고 지원을 요청해서 남아 있는 부분을 모두 둥지로 가져오겠지.

그럼 됐고!

나도 이득을 얻고, 둥지에도 기여한 보람찬 하루였다.

이제 둥지 안으로 들어가서 바이오매스를 사용한 다음 마나 조작 연습이나 해야지!

나는 통로를 따라 내려가서 다른 일개미들이 어린 유충을 돌보는 모습을 잠시 구경한 뒤, 빈 방들 중 하나로 들어갔다.

그리고 어느 정도 회복된 마나를 모두 사용할 때까지 스킬을 연습했다.

[마나 조작 스킬이 레벨 4가 되었습니다.]

드디어!

이제 조금만 더 노력하면 레벨 5까지 올릴 수 있었다.

마법을 사용한다는 꿈이 점점 더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럼 이제 턱을 강화할 차례다.

[턱을 +5로 업그레이드하겠습니까? 5 바이오매스를 소모합니다.]

좋아!

그래도 바이오매스 하나가 남는군.

이건 나중을 위해 일단 남겨둬야겠다···

[이 단계에서는 메뉴에서 고급 변이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머리 속에 메뉴가 펼쳐지자, 나는 그 방대한 양에 현기증을 느꼈다.

우선 모든 종류의 원소 업그레이드가 있었다.

번개 턱이라고?

물기로 전기 피해를 입힐 수 있다니 엄청 좋아 보이는데···

광포한 턱은 연달아 물수록 더 많은 피해를 입히고···

깨물 때마다 체력을 흡수하는 흡혈 턱도 있잖아?

좋아 보이는 선택지가 너무 많아서 고민하느라 눈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마치 사탕 가게에 온 기분이었다.

젠장, 시스템···

꼭 하나만 골라야 하는 거야?

나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여러 선택지를 주의 깊게 살폈다.

산성 용액을 업그레이드할 때에는 실질적인 피해보다 부가적인 유용성을 중시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턱을 좀 더 치명적인 무기로 만들 수 있는 선택지를 고르고 싶었다.

지난 번과 같은 이유로 원소 선택지를 모두 제외하고 나니, 내 목적에 부합하는 몇 가지가 남았다.

그리고 그 중 하나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주입 턱.

마나를 턱에 불어넣어 물기 공격력을 높일 수 있는 선택지였다.

지금 나는 스킬 연습을 할 때 말고는 마나를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는 지난 번에 싸웠던 번개 주먹 고릴라나 거대 악어처럼, 내가 가진 마나를 다양한 원소 속성으로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 짐작이 맞다면 주입 턱이야말로 엄청난 이점을 가진 선택지였다.

그런 이점을 누릴 때까지 아주 오래 걸리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단기적으로도 내가 가장 원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마나를 사용해서 공격력을 올릴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럼 주입 턱을 선택하지!

...

으아아아아아아!

내 얼굴!

얼굴이 너무 아파!!!

변이가 시작되자 얼굴 전체에 고통스러운 감각이 찾아왔다.

마치 철사들이 강제로 뚫고 들어와서 내 턱과 머리 안쪽을 연결하는 느낌이었다.

어째서 갈수록 심해지는 거지...

변이는 한참 지나서야 끝났다.

마침내 변이를 마쳤을 때, 나는 거의 안도의 울음을 터뜨릴 뻔했다.

물론 곧 개미는 눈물을 흘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말이다.

하지만 가슴이, 내 가슴은 울고 있었다.

강해지는 건 좋지만 변이의 과정은 너무 끔찍했다.

마나와 바이오매스를 모두 소비한 나는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아직 스킬 포인트가 남았지만, 스킬 업그레이드가 가능해지거나 혹시라도 마법 스킬이 나올 때까지 아껴두기로 했다.

낮잠 잘 시간이다!

더 이상 할 일이 없어진 나는 언제나처럼 꿈을 꾸지 않는 명정 상태로 들어갔다.

타이니도 잠시 주위를 기어다니는 듯하더니 곧 내 곁으로 와서 몸을 기댔다.

내 의식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녀석이 작게 코를 고는 소리가 들렸다.

···

···기상!

나는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정신을 번쩍 차렸다.

그다지 서두를 필요는 없었기 때문에, 우선 자는 사이 축적한 마나를 모두 소모할 때까지 마나 조작 스킬을 연습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조금 다른 방식의 훈련을 시도해봤다.

여왕, 그러니까··· 어머니가 더듬이로 나를 치유하는 모습을 보고 영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나는 코어의 마나를 끌어낸 다음, 몸을 통해 더듬이로 전달했다.

몇 차례의 시도 끝에 결국 더듬이 끝에서 빛나는 마나 연기가 빠져나오게 할 수 있었다.

훈련을 마친 뒤, 나는 여전히 행복하게 코를 골고 있는 타이니를 깨웠다.

···그냥 내 착각인가, 아니면 정말 녀석이 어제보다 좀 커진 걸까?

타이니가 다시 내 등 위에 올라타자, 나는 방을 나와 유충들이 있는 동굴로 향했다.

오늘은 그리 급한 용무가 없었기 때문에···

어린 친구들과 좀 놀아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개미의 하얀색 유충들은 아직 눈도 귀도 없는 존재였다.

그래서 고치를 만들 만큼 자라기 전까지 전적으로 일개미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작은 녀석들은 꽤 귀여웠다.

내가 더듬이로 간질거리자, 유충들은 재미있다는 듯 꿈틀거리며 달아나려고 했다.

나는 유충들을 이리저리 굴리기 시작했고, 잠시 후 타이니도 합세했다.

그러자 유충들은 신이 나서 온몸을 꿈틀거렸다.

헤헤헤.

···

뭐, 이 정도 놀았으면 됐다.

이제 둥지의 다음 세대들을 위한 먹거리를 구하기 위해 밖으로 나가볼까!

잠깐, 무슨 냄새가 나는데···

서둘러 부화실 밖으로 나가자, 일개미들이 잔뜩 흥분해서 달려가고 있었다.

공기 중에는 긴급 상황을 알리는 페로몬이 떠돌았다.

모든 개미들이 구원 요청을 받고 둥지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중이었다!

대체 저 아래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칼날의 폭풍

둥지 안은 혼잡했지만, 다른 개미들보다 크고 강한 나는 쉽게 길을 뚫을 수 있었다.

그래서 타이니를 등에 매단 채 서둘러 여왕의 방으로 내려갔다.

그러자 서른 마리가 넘는 일개미들이 여왕을 둘러싸고 보호하는 중이었다.

방 맞은편에는 둥지의 더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통로가 보였고, 수많은 개미들이 그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아마 그쪽에 긴급 사태의 원인이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호기심과 경계심이 반쯤 뒤섞인 채 다른 개미들을 따라 통로로 내려갔다.

대체 무슨 일인데, 얘들아?

터널이 무너졌나?

식량을 발견했나?

아니면 적이 쳐들어오기라도 했나?

몇 분 동안 통로를 따라 내려간 끝에 나는 답을 알 수 있었다.

뭔가가 거칠게 부딪히는 요란한 소음이 점점 더 커졌기 때문이다.

적이 쳐들어온 거로군!

둥지를 지켜야 돼!

나는 강한 충동과 책임감을 느끼며 속도를 두 배로 높였다.

어떤 놈들인지 몰라도 가만두지 않겠다!

감히 우리 둥지를 침략하다니!

마침내 전선에 도착한 나는 끔찍한 광경을 목격했다.

사방에 온통 부러지고 조각난 개미 시체들이 널려 있었다.

나와 함께 달려온 개미들은 그걸 보고도 전혀 두려운 기색 없이 적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런 희생 정신으로 적들을 막아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어렴풋이 보이는 적은 기괴하게 뒤틀린 형상의 괴물들이었다.

네 다리로 걷는 놈들의 발톱은 날카로웠고, 곱추처럼 구부정한 등은 그로테스크한 근육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리고 머리나 얼굴 같은 부위는 아예 없었다.

대신 가슴 한복판에 무시무시한 부리가 튀어나와 있었다.

팔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뼈인지 금속인지 알 수 없는 번쩍이는 칼날들이, 사지라고 하기에는 너무 짧고 굵은 신체 부위의 끝에 달려 있는 모습이었다.

놈들은 그 칼날들을 마구 휘둘러 개미들을 난도질했다.

아니 대체 저건 뭐지?!

여기보다 더 아래쪽 던전에서 올라온 건가?

···지옥에서 기어 나온 놈들처럼 생기기는 했군.

어쨌든 나는 길게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놈들이 계속해서 일개미들을 학살했기 때문이다.

내가 나설 수밖에 없다!

나는 앞을 가로막고 있는 개미들을 이리저리 밀치고 당기며 최전선으로 나아갔다.

저 흉물스럽게 생긴 놈들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는 알기 어려웠다.

통로가 좁다 보니 맨 앞에서 싸우고 있는 건 두 놈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뒤쪽 통로에 괴물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아무래도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 같았다.

타이니를 계속 등에 태운 채로 뛰어들 수는 없었다.

나는 마치 물에 젖은 개처럼 몸을 좌우로 흔들어서 타이니가 떨어지게 만들었다.

타이니는 불만스러운 듯한 울음 소리를 냈지만, 내 등에 타고 있으면 틀림없이 죽게 될 터였다.

이게 내가 녀석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최선이었다.

자···

그럼 이제 나랑 놀아보자, 못생긴 놈들아!

나는 둥지의 개미들이 더 이상 죽을 게 뻔한 자리로 달려가기 전에, 똑바로 적을 향해 돌진해서 놈들의 주의를 내게 돌렸다.

휙!

몸을 숙여 날아드는 칼날을 피했지만, 공격이 연달아 이어졌다.

휙!

휙!

휙!

내 앞에 있는 괴물 두 마리는 도합 여덟 개의 칼날로 통과할 수 없는 강철의 벽을 만들었다.

놈들이 칼날을 휘두를 때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몸을 숙이거나 뒤로 물러나야 했다.

젠장.

다치지 않고 가까이 다가갈 수 없다면···

다칠 수밖에!

좌우로 피하던 나는 앞으로 뛰어들어 기형 생물들의 칼날 사이를 뚫고 들어가려 했다.

내가 움직이는 순간 두 마리의 괴물도 곧바로 반응해서, 내가 빠져나갈 수 없도록 칼날을 아래로 휘둘렀다.

와라!

푹!

칼날 하나가 갑각을 깊이 파고들자 등에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

나는 이를 악물고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이 정도로는 나를 막을 수 없다!

무모한 돌격 끝에 나는 괴물들의 다리 옆으로 파고들었다.

덩치가 큰 괴물들은 좁은 통로 안에서 빠르게 몸을 돌려 칼날로 나를 공격하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나는 놈들이 돌아설 때까지 기다려줄 생각이 없었다.

단단히 물기!

가장 가까이 있는 다리를 턱으로 문 다음, 내 머리 부위의 강력한 근육으로 힘을 가했다.

뚝!

내 양쪽 턱이 서로 마주치며 괴물의 다리를 부러뜨렸다.

놈은 분노로 포효하며 균형을 잃었다.

괴물의 다리가 약하다는 사실을 확인한 나는 단단히 물기만 사용하기로 했다.

외골격이 아니라 살로 뒤덮인 이런 적에게 관통 효과가 있는 스킬을 쓰는 건 낭비였다.

나는 다른 몬스터를 향해 돌아선 뒤, 놈의 몸통 가운데 부분을 턱으로 물어서 깊은 상처를 남겼다.

하지만 만족스럽지 않아서 다시 물었다.

그리고 또 다시 물었다!

[단단히 물기 스킬이 레벨 4가 되었습니다.]

내 턱에서 놈의 체액이 뚝뚝 흘렀고, 몬스터는 고통으로 몸부림쳤다.

두 마리 모두가 내게 정신이 팔린 사이, 다른 일개미들이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개미들은 수로 밀어붙여 괴물들의 팔다리를 물고 바닥에 쓰러뜨렸지만, 그 와중에 몇 마리가 더 칼날에 부상을 입었다.

나 역시 단 한 번 찔렸을 뿐인데 HP가 12나 줄어 있었다.

그리고 방금 상대한 두 마리 뒤로 다른 두 마리의 몬스터가 나타났다.

그 뒤에는 또 두 마리의 몬스터가 대기하고 있었다.

대체 몇 마리나 되는 거야!

다른 개미들이 선두의 괴물 두 마리를 상대하는 동안 겨우 숨 돌릴 틈이 났다.

나는 이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기로 결정하고, 몸을 돌려 꽁무니를 통로 안쪽으로 향했다.

적들은 좁은 통로 안에서 겨우 몇 미터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굳이 조준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자세를 잡자 마자 산성 용액을 발사했다.

푸슝!

푸슝!

두 줄기의 산성 용액이 허공을 가르고 날아가 괴물들의 커다란 몸통에 명중했다.

산성 용액은 놈들의 피부에 닿자 마자 치익 하는 소리를 내며 살을 태우는 동시에 단단히 엉겨 붙기 시작했다.

이걸로 놈들의 칼날을 조금이라도 느리게 만들 수 있으면 좋겠군!

분노한 두 마리의 괴물이 칼날을 마구 휘두르며 이쪽으로 밀고 나왔다.

놈들은 심지어 아직 개미들과 씨름하고 있는 다른 두 마리의 같은 편까지 한꺼번에 베어버렸다!

칼날 하나가 내 바로 오른쪽에 쓰러져 있는 괴물을 베는 순간, 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앞으로 달려들었다.

적어도 같은 편에게 박혀 있는 칼날로는 나를 공격할 수 없을 터였다.

즉 칼날 하나만큼 빈틈이 생긴 셈이다.

나는 앞으로 달리다가 재빨리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칼날을 피하는 동시에 좁은 통로의 벽을 타고 천장까지 올라갔다.

천장은 괴물의 공격 범위를 완전히 벗어날 만큼 높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위쪽 두 개의 칼날이 아니면 나를 노릴 수 없었다.

즉 피해야 할 칼날이 절반으로 줄었다.

물론 거꾸로 매달린 상태에서는 나 역시 움직임에 제약을 받았지만, 그래도 이게 최선의 기회였다.

촤악!

내 정면의 몬스터는 같은 편에게 깊이 꽂았던 칼날을 그대로 당겨서 뽑아냈다.

그리고 온몸의 무게 중심을 옮기며 천장에 붙어 있는 나를 향해 번뜩이는 칼날을 휘둘렀다.

지금이다!

나는 거의 본능적으로 뛰어내리며 칼날을 피했다.

그리고 칼날이 붙어있는 괴물의 짧은 팔 부분에 매달렸다.

꿈틀대는 근육에 필사적으로 발톱을 박아 넣은 끝에 겨우 떨어지는 기세를 멈추고 괴물의 팔에 매달릴 수 있었다.

그런 다음 곧바로 놈의 어깨를 타고 등 위로 올라갔다.

푸슝!

나는 재빨리 또 한 발의 산성 용액을 옆에 있는 다른 괴물에게 발사했다.

산성 용액을 뒤집어쓴 몬스터는 좁은 통로 안에서 최대한 내 쪽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제야 날카로운 부리 뒤쪽에 달린 한 쌍의 작고 붉은 구슬 같은 눈이 보였다.

분노와 증오로 활활 타오르는 눈이었다.

놈은 소름 끼치는 비명을 지르며 위쪽 두 개의 칼날을 들었다가 나를 향해 힘껏 휘둘렀다.

날카로운 칼날이 휘파람 소리와 함께 바람을 갈랐다.

나는 필사적으로 몸을 굴려 칼날을 피하려 했지만···

콰직!

두 개의 칼날은 내가 매달려 있던 괴물의 몸통을 베어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다.

나 역시 완전히 피하지 못한 탓에 왼쪽 다리 두 개가 잘리는 큰 부상을 입었다.

너무 아프잖아!

놈이 같은 편까지 이렇게 인정사정없이 베어버릴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는데...

방심했다가 당해버렸다.

즉시 재생 분비선을 가동하자, 차가운 느낌이 몸 속을 흘렀다.

다리가 완전히 낫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될 터였다.

나는 고통을 참고 필사적으로 기어가서 몬스터가 칼날을 거두기 전에 그 팔을 타고 올라갔다.

칼날이 달려 있는 팔 부위는 두꺼운 근육질이라, 그냥 물어서는 파고들기 어려울 듯했다.

주입 턱을 시험해볼 때였다.

나는 턱을 크게 벌린 채 머리 속으로 새로운 업그레이드 기능을 사용한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코어의 마나가 내 몸을 타고 턱으로 전해졌다.

동시에 단단히 물기도 사용하자, 턱이 점점 더 밝게 빛나면서 푸른 마나 연기가 피어올랐다.

받아라!

우직!

연습으로 소진한 뒤 지금까지 재생된 마나의 절반 가량을 주입한 내 턱은, 몬스터의 두꺼운 팔을 두부처럼 파고들어 완전히 잘라버렸다!

맙소사, 이거 위력이 장난 아니잖아!

하지만 방금 공격으로 남은 마나의 절반을 써 버렸기 때문에, 단 한 번만 더 사용할 수 있었다.

칼날 하나가 떨어져 나간 적은 고통스럽게 울부짖었다.

나는 그 사이 필사적으로 남아 있는 다리들을 놀려서 놈에게 발톱을 박아 넣으며, 상대적으로 안전한 등 쪽으로 이동했다.

그사이 재생 분비선의 효과로 8 HP가 회복되었지만, 잘린 다리가 다시 생기지는 않았다.

절단면에서 뭉툭한 그루터기 같은 돌기가 자라났을 뿐이다.

심지어 그 돌기를 움직일 수도 있었지만, 온전한 다리가 되려면 한참 걸릴 터였다.

통로 안쪽에서는 더 많은 괴물들이 우글거리며 앞으로 나오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놈들은 칼날을 흔들며 날카로운 부리를 벌려 괴성을 질렀다.

이 멍청한 괴물들이 얼마나 더 있는 걸까?!

일단 이 놈까지 처치한 뒤에 후퇴에서 재정비를 해야겠다···

단단히 물기!

나는 매달려 있는 괴물의 등 부위를 물고 또 물어서 근육을 마구 파헤쳤다.

마침내 놈이 쓰러졌지만, 나는 메시지가 나타날 때까지 물기를 멈추지 않았다.

[레벨 14 쿠아토르 페룸 사에비시무스를 처치했습니다.]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레벨 5가 되었습니다.]

···

좋아!

진화를 할 수 있다면 지금 상황에 큰 도움이 되겠지만···

우선 안전하게 후퇴부터 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쓰러뜨린 적의 시체를 타고 넘어가서 동료 개미들이 싸우고 있는 전선으로 돌아갔다.

개미들은 처음 두 마리의 괴물에게 떼로 달려들어 숨통을 끊어버린 다음, 계속 싸우기 위해 통로 안으로 물밀듯이 밀려들고 있었다.

획득 가능한 바이오매스가 보이자 내 눈에 불이 들어왔다.

재생 분비선은 이미 써버렸지만, 몇 분 동안 짧은 식사를 하고 나면 HP가 좀 더 회복될 터였다.

잘린 다리가 금방 다시 생기지는 않겠지만 약간의 체력이라도 귀중한 때였다.

나는 비틀거리며 시체 쪽으로 다가가서 일개미 몇 마리를 밀어낸 뒤 고기를 뜯었다.

[새로운 바이오매스의 원천을 섭취했습니다: 쿠아토르 페룸 사에비시무스. 1 바이오매스를 얻었습니다.]

[쿠아토르 페룸 사에비시무스의 기초 정보가 잠금 해제되었습니다.]

[쿠아토르 페룸 사에비시무스: 네 개의 칼날 광전사. 이 몬스터의 상체에는 뼈와 금속이 뒤섞인 네 개의 칼날이 달려 있습니다. 싸움이 벌어지면 맹렬한 분노에 사로잡혀 힘이 강해지는 대신 흥분해서 적과 아군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합니다.]

납득이 가는 설명이었다.

이 괴물들은 그야말로 광전사였다.

잠깐도 망설이지 않고 같은 편까지 찌르는 걸 보면 말이다!

점점 더 많은 일개미들이 도착했고, 그 중 몇 마리는 싸움에 참여하기 위해 식사 중인 나를 타고 넘어갔다.

나도 빨리 식사를 마치고 싸움이 벌어지는 곳으로 돌아가야 했다.

나 없이 개미들끼리는 저렇게 무시무시한 괴물들과 대적할 수 없었다.

수가 아무리 많더라도 말이다.

다행히 적들은 쓰러진 같은 편의 커다란 몸뚱이 때문에 길이 막혀 애를 먹고 있었다.

덩치가 커다란 놈들이라 좁은 통로 안에서 움직임에 제약을 받았다.

광전사들이 다가오지 못하는 틈을 타서, 몰려든 개미들은 산성 용액으로 폭격을 시작했다.

여러 마리가 동시에 산성 용액을 쏘는 일제 사격이 연달아 이루어졌다.

[1 바이오매스를 얻었습니다.]

나는 전에 아껴 놓았던 하나까지 모두 세 개의 바이오매스를 소모해서 즉시 갑각을 +3으로 업그레이드했다.

적의 날카로운 칼날에 조금이라도 더 버티기 위해서였다.

물론 갑각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다고 해서 큰 차이는 생기지 않겠지만, 지금은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했다.

이 업그레이드 덕분에 HP 1 차이로 살아남을 수도 있었다.

워낙 급박한 상황이다 보니 변이 과정의 고통도 거의 느끼지 못했다.

지금은 간지러움 따위에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둥지가 공격받고 있으니까 말이다!

이제 점점 더 많은 개미들이 통로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둥지의 개미들 중 절반은 몰려온 듯, 거의 백 마리도 넘었다.

아마 나머지 개미들은 유충과 여왕을 보호하고 있을 터였다.

암, 그래야지!

어쨌든 이 정도 수라면 승산이 있을지도 몰랐다.

나는 고통을 참으며 겨우겨우 벽을 향해 움직였다.

그리고 네 개의 다리로 중간 정도까지 올라갔다.

아직 내 몸 속에는 산성 용액이 남아 있었다.

이걸로 전방에서 싸우는 개미들을 돕고 싶었다.

통로 저편에서는 계속해서 처절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가장 선두에 있던 괴물 네 마리는 쓰러졌지만 그 뒤로는 더 많은 놈들이 우글거렸다.

놈들은 광전사답게 피에 대한 갈망으로 울부짖었다.

한편 개미들은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점점 더 많은 수가 두려움 없이 돌진하는 중이었다.

나는 신중하게 꽁무니를 조준한 뒤 산성 용액을 발사했다.

푸슝!

다행히 광전사들은 상당히 큰 표적이라 명중이 어렵지 않았다.

나는 놈들의 가슴 부위를 노렸다.

푸슝!

푸슝!

세 발의 산성 용액은 각각 다른 세 마리의 괴물에게 날아갔고, 모두 부리가 있는 얼굴 부위에 명중했다.

놈들의 눈은 너무 작고 가슴 깊숙이 숨어 있어서 맞출 수 없었다.

하지만 타는 듯이 뜨겁고 엉겨 붙기까지 하는 산성 용액을 뒤집어쓴 광전사들은 완전히 흥분해서 네 개의 칼날을 마구 휘두르며 개미들은 물론 같은 편까지 베어버렸다.

멍청한 놈들!

내가 그 장면을 보며 기뻐하는데, 뒤쪽에서 소란이 느껴졌다.

나는 무슨 일인지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저건···

여왕이잖아?!?!

여왕의 은총

한 무리의 일개미들이 여왕을 빈틈없이 둘러싸고 있었다.

그 중 몇 마리는 여왕을 다시 안전한 둥지로 데려가기 위해 뒤로 끌어당기는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여왕은 좁은 통로에 거의 꽉 찰 정도로 거대했고, 그만큼 무겁기도 했다.

그래서 자신을 위험한 전장에서 끌어내려는 신하들의 시도를 쉽게 뿌리쳤다.

일개미들과 달리 고도의 지성이 엿보이는 여왕의 눈이 전장의 상황을 살폈다.

나는 침략자 몬스터들, 그리고 쓰러진 일개미들을 보는 여왕의 눈빛에서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

잠시 후 여왕이 성난 듯한 소리를 내자, 더듬이가 점점 더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나를 치료했을 때보다 훨씬 더 강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뭘 하려는 거지?

여왕의 더듬이에 너무 많은 마나가 집중되어 있어서 쳐다보고 있으면 눈이 아플 정도였다.

무슨 마법인지 몰라도 엄청 강력할 것 같았다!

마침내 여왕 개미가 큰 소리를 내며 더듬이에 모인 마나를 방출했다.

그러자 이루 말할 수 없이 거대한 에너지가 통로 안을 휩쓸었다.

눈부신 빛이 모든 개미를 감싸더니 몸 속으로 스며들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 육체가 마법을 흡수하면서 차가운 느낌이 전신에 퍼졌다.

특히 다리가 잘린 부분은 너무 차가워서 통증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서 무심코 쳐다보니···

맙소사, 잘린 다리들이 내 눈 앞에서 다시 자라나고 있었다!

처음에는 느리게 살이 차올랐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자라났다.

나는 탐욕스럽게 최대한 많은 치유 에너지를 흡수하려고 애썼다.

이내 통로 여기저기 쓰러져 있던 부상당한 개미들이 하나둘 다시 일어나서 싸움에 복귀하기 시작했다.

모두 놀라운 속도로 상처가 회복되고, 잘린 신체 부위도 다시 생겨나는 중이었다.

이건···

엄청난 마법이다!

대체 얼마나 많은 마나를 퍼부어야 이런 기적에 가까운 일이 가능한 걸까?

아무래도 여왕 개미의 능력에 대한 내 잠재적인 판단을 수정해야 할 것 같았다.

이런 종류의 강력한 마법에 충분한 에너지를 공급하려면, 아마 엄청나게 강력한 코어가 필요할 터였다.

물론 여왕은 일개미들이 바치는 전리품을 독차지할 수 있다는 이점을 가졌지만···

그 점을 감안해도 정말 인상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치유 마법 뿐 아니라 여왕의 존재 자체가 싸움에 나선 일개미들의 사기를 북돋는 듯했다.

개미들은 그 전보다 두 배는 더 사나워진 기세로 맹렬하게 싸웠다.

아마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여왕을 지켜야 한다는 본능의 발현일 것이다.

벽에 붙어 있던 나는 모든 개미들이 일제히 적을 향해 돌진하며 턱으로 물고, 꽁무니로 산성 용액을 뿌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부상을 당해서 이탈했던 개미들이 일시에 복귀하자 전세가 빠르게 바뀌었다.

내 다리는 거의 완전히 회복되었고, 몸 속의 산성 용액도 빠르게 다시 생겨나서 두 발 정도 발사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나는 난전에 뛰어드는 대신, 멀리 통로의 어둠 속을 겨냥하고 산성 용액을 두 차례 발사했다.

아직 뒤쪽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광전사들을 노린 공격이었다.

거의 사정거리의 한계에 가까울 만큼 멀어서 정확히 조준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어떤 놈들이든 맞기만 하면 고통스러운 산성 용액의 효과 때문에 후방의 광전사들이 앞쪽에 있던 놈들처럼 서로 싸우기를 기대하고 한 일이었다.

그러면 싸움이 훨씬 쉬워질 테니까 말이다.

[향상된 산성 용액 발사 스킬이 레벨 5가 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