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 나포하시려고요?
펑! 퍼퍼펑! 펑!
희뿌연 연기와 함께 상대 비공정에서 불꽃이 번쩍였다.
"뭐, 뭐야?"
선두로 날아가던 비공정의 선장이 불꽃을 보고 눈을 깜빡일 때였다.
휭! 휘이잉!
쾅! 콰쾅! 쾅!
"으악!"
"크악!"
비공정이 미친 듯이 흔들리고, 사방에 비명이 난무했다.
충격에 넘어진 선장이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방금은 너무 순식간에 지나간 일이라 무슨 일이 일어난 지 알지 못했다.
난간을 잡고 갑판을 내려다보자, 거대 괴수가 발톱으로 선체를 할퀴고 지나간 것 같았다.
선수가 부서지고, 난간은 날아갔고, 화살을 쏘려던 궁수들은 사지가 잘린 채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선장은 처음 보는 괴이한 모습에 경악했다.
"선장님, 괜찮으십니까?"
일등항해사가 달려왔다.
"방금 우리가 무슨 공격을 당한 거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 선수 좌현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습니다."
펑! 퍼퍼펑!
그 순간 또다시 적 선체에서 굉음과 동시에 불꽃이 번쩍였다.
"헉! 또 온다!"
쾅! 콰쾅! 콰직!
우직!
좌현 프로펠러가 힘없이 날아갔고, 좌현 갑판이 통째로 찢어졌다.
비공정은 한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졌고, 갑판에 있던 강습병들과 궁수들이 지상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으아악!"
"사람 살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선장이 필사적으로 난간을 잡고 다른 비공정을 쳐다봤다.
그런데!
돛이 날아가고, 선체가 반으로 잘린 비공정들이 사방에서 추락하고 있었다.
그나마 자신들의 배는 공중에 떠 있으니 멀쩡한 편이었다.
"큭! 큰일 났습니다. 마석 엔진이 박살 났습니다."
"뭐?"
지금은 바람이 거의 불지 않았다.
그랬기에 마석 엔진과 프로펠러가 없다면 이 배는 움직이지 못 했다.
그때 상대편 비공정은 이쪽을 향해 다시 시커먼 포신을 내밀었다.
상대는 쉴 틈을 주지 않았다.
"이런 젠장!"
펑! 퍼퍼펑!
불꽃 번쩍이자, 선장은 눈을 감았다.
쾅! 콰콰쾅!
또다시 포탄을 맞은 비공정은 갈가리 찢겨 방향을 잃고 추락했다.
'저, 저게 대체!'
망원경을 보고 있던 라디프 공작은 경악했다.
10척의 비공정에서 쉴새 없이 포탄이 쏟아지고, 포탄에 맞은 비공정들은 종잇장처럼 찢기고 부서졌다.
전투용 비공정은 너무 약했다.
기간트 수송용도 아니었고, 그저 강습병들만 싣고 빠르게 날아가 상대 비공정에 올라타게 하는 용도였기에 튼튼하게 만들 필요가 없었다.
튼튼하게 만들수록 속도는 줄어드니까.
"후! 후퇴시켜! 저러다 다 죽는다!"
"이미 늦었습니다. 명령이 도달하기도 전에 끝날 겁니다."
참모인 레디치 백작이 고개를 숙였다.
"제길! 내 강습 부대가······."
50척의 강습 비공정 중에서 30척이 박살 나고 있었다.
라디프 공작은 힘들게 만든 강습병들이 지상으로 떨어져 죽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으니, 짜증이 치밀었다.
"참모! 대체 왜 저런 무기가 있다는 보고를 받지 못했나?"
"추밀원과 정보국에 우리 측 사람들이 전부 잘리고, 황태자의 측근들이 장악한 다음부터 정보의 수준이 현저하게 떨어졌습니다. 아무래도 그 영향이 아니겠습니까. 어쩌면 이번에 처음 선보이는 신무기일 지도 모릅니다. 호엘 삼황자 측도 전혀 모르는 것을 보면요."
"젠장! 내가 저 어린놈에게 당하다니!"
라디프 공작은 입술을 깨물었다.
베른 대륙의 식민지를 점령하는데, 너무 공을 많이 들였다.
그리고 자신이 식민지를 통합할 동안 큰 변화가 없을 거라는 예측이 완전히 빗나간 것이었다.
"지금 문제는 우리 기간트가 바로 아래에 있어 기사들 사기가 떨어집니다."
진군하는 기간트 머리 위로 비공정 잔해와 병사들이 떨어지고 있었다.
지금 추락하는 것에 날개는 없었다.
떨어진 병사들의 시신은 처참했고, 300미터 높이에서 떨어지는 강습병들은 너무 튼튼해서 문제였다.
제대로 맞으면 기간트 머리와 팔이 떨어져 날아가고 스쳐도 보호 장갑이 떨어졌다.
밑에 있는 기간트들은 하늘을 보고 피해야 했고, 제대로 대형을 잡고 나갈 수도 없었다.
지상군은 본격적으로 싸우기도 전에 사기가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영악한 놈! 이제 보니, 저걸 노리고 먼저 움직여 자리를 잡은 거군.'
라디프 공작이 치를 떨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렇다고 비공정을 더 보내도 같은 꼴을 당할 것 같았다.
"놈들이 다가올 때를 기다렸다가 우리가 직접 저 비공정을 잡는다. 다들 공격에 대비하라고 하고, 놈들이 접근하면, 사방에서 둘러싸 포위 공격하라고 해!"
"네!"
라디프는 먼저 움직여 상대의 의도대로 따라갈 생각이 없었다.
방금 적 비공정의 사정거리는 대략 300미터, 그 안으로 들어오면 그때 사방에서 밀어붙여 적의 공격을 분산시키고, 기함으로 격추할 생각이었다.
라디프는 첫 시작부터 저들의 비공정 10척을 나포하고 시작할 줄 알았다가 30척의 전투용 비공정을 잃곤, 다시 조심스러워졌다.
***
"으하하하! 앞에 걸리적거리는 것들을 모두 쓸어버려라!
드워프 포병대장 하버 족장이 소리쳤다.
"대포 앞으로!"
"대포 앞으로!"
드르르륵! 드르륵!
길고 시커먼 포신이 선체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발사!"
"쏴라!"
펑! 퍼퍼펑!
성인 머리통만 한 크고 시커먼 포탄이 날아갔다.
그리고 또 한 척의 적 비공정을 박살 냈다.
"재장전하라!"
"재장전!"
"기간트밖에 모르는 것들에게 드워프 대포의 무서움을 보여줘라!"
하버 족장의 명령에 60명의 드워프 포병대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드워프제 대포의 유효사정 거리는 500미터.
하지만 진정한 살상력은 300미터였다.
드워프제 대포는 300미터 안에 들어온 것은 D등급 괴수까지 타격을 입힐 수 있었다.
게다가 1분에 3발을 쏠 수 있었다.
"이거 정말 환상적이군!"
먼저 날아오던 적 비공정을 거의 박살 냈다.
저들의 비공정은 너무 약했기에 선체가 버티지 못했다.
포탄 몇 발에 갑판과 선체가 갈기갈기 찢어질 정도였다.
그랬기에 궁수들과 강습병들이 계속해서 지상으로 떨어졌다.
보니까 오크 강습 갑옷처럼 비행석을 많이 장착해 무게를 줄이고 늘려 지상에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는 낙하 장치도 없어 보였다.
좀 불쌍하긴 했다.
'강습병이라, 이건 나도 예상 못 했는데······.'
라디프 공작은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는 비행석을 가장 먼저 얻었고, 비공정도 가장 먼저 만들었다. 그리고 마르틴 국왕에게 비공정 2척을 건네 제국의 황제를 암살하려고 했다.
그때 이미 비공정이 노출됐기에 머지않아 다른 세력과 가디언 제국에서도 분명 비공정을 만들 거라고 예상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처럼 미리 신무기를 만들고 대비책을 만들었다.
그것이 저 강습병이고.
'그런데 이거 어쩌지? 우린 오크인데, 저쪽은 인간이네!'
오크 전사는 인간 병사 대여섯을 상대하는 괴물이었다.
강습 갑옷은 방어용이지 공격용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강습 갑옷을 입는다고 힘이 세지거나 공격력이 마구 올라가는 건 아니란 말이었다.
같은 인간들끼리 싸움에선 강력한 방어력이 있는 것이 당연히 좋겠지만, 오크에겐 큰 차이가 없다.
오크의 공격을 인간 병사들보다 조금 더 잘 막을 수 있을 뿐이지.
'역시, 안드레아스가 한 수 위야.'
안드레아스는 3미터 크기의 작은 비공정 전투용 마장기를 만들었다고 들었다. 그리고 윌리엄 사령관 측도 확인은 못 했지만, 비슷한 수준의 비공정용 전투 기간트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 성능과 숫자가 어느 정도인지는 아직 확인해 봐야 하지만, 오크 해병대에 위협적인 건 분명했다.
그래도 너희는 아니지!
"영주님, 저들의 비공정을 모두 격추했습니다."
당장 강습병의 실력을 확인할 순 없었다.
모두 추락했으니까.
우리에게 날아왔던 30척의 비공정이 추락하거나 선체 일부가 비행석 때문에 공중에 둥둥 떠 있었다.
상대를 보아하니, 더는 달려들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럼 우리가 가야지.
"고도를 높여라!"
대포를 탑재한 10척의 비공정이 고도를 높였다.
그리고 우리 신호를 받은 15척의 비공정이 우리 뒤로 붙였다.
우리가 고도를 높이며 접근하자, 거대 비공정과 주변을 지키는 비공정 역시 고도를 높였다.
망원경을 보고 있던 엘프 항해사가 소리쳤다.
"거대 비공정에 공성용 발리스타가 있습니다!"
"나도 봤어."
3미터 크기의 커다란 발리스타 화살에 제대로 맞으면 우리 비공정 선체도 뚫린다.
대포에 비하면 그 위력이 약하지만 여러 번 맞으면 위험할 수 있었다.
그래서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면서 공격하려 했는데, 라디프 공작도 그걸 알고 같이 고도를 높이는 거다.
"차라리 격추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아니야! 저걸 가지고 가면 가디언 제국과 싸울 때 분명 쓸모가 있을 거야."
"저 거대 비공정을 나포하시려고요?"
"그래! 생각보다 잘 만들었단 말이야."
원래 계획은 적 거대 비공정을 대포로 조지고, 안에 있는 기간트 50기와 함께 진군하는 기간트 위에 떨어트리는 것이었다.
그럼 적어도 100여 기의 기간트를 부술 수 있었다. 사기가 떨어지는 당연하고.
하지만 저걸 써먹을 때가 있어 보였다.
"저들의 지상군이 100미터 지점까지 접근했습니다."
아래를 내려다봤다.
우리 측 기간트는 약간 높은 언덕에 자리를 잡고, 길게 늘어서 대형을 잡았다.
일단 지키는 진형이다.
우리가 빨리 상대 비공정을 공중에서 제압해야 근처에 대기하고 있는 수송용 비공정을 움직여 적들의 후미에 기간트를 내려 앞뒤로 포위 공격을 감행할 수 있었다.
"시간이 없다! 정면 승부다!"
15척의 비공정은 거대 비공정 주변의 비공정을 공격하게 하고, 10척의 비공정은 직접 거대 비공정을 공격하기로 했다.
"가자!"
내가 탄 기함이 가장 먼저 저들의 거대 비공정을 향해 움직였다.
다른 비공정을 향해선 대포를 쏠 수 있지만, 거대 비공정은 쏠 수 없었다.
다시 써야 하니까!
그러니 피해가 생기더라도 오크 해병대와 함께 거대 비공정의 갑판에 상륙할 생각이었다.
"고도를 높이고, 전속력으로 전진하라!"
"전진하라!"
위이이이! 쿠쿠쿠쿠쿵!
마석 엔진이 굉음을 뿜고, 후미의 프로펠러가 힘차게 돌아갔다.
휘이이잉!
25척의 비공정이 고도를 높이며 적들을 향해 날아갔다.
'저 창날은 기간트 때문에 설치한 건가?'
조금씩 거리가 가까워지자, 거대 비공정의 모습이 자세히 보였다. 갑판이 매우 넓었기에 기간트도 충분히 올라탈 수 있었다.
그런데 갑판에 돛대가 없는 대신 곳곳에 날카로운 삼지창이 박혀 있었다.
뛰어내렸다간 왠지 아플 거 같은데?
저 창들은 괴수 부산물로 만들었을 것 같다.
그리고 육중한 기간트가 올라타면, 왠지 갑판에 구멍이 뚫릴 것 같았다.
그래도 갑판이 취약 지역은 분명하다.
그랬기에 위를 내주지 않기 위해 저렇게 필사적으로 고도를 높이지.
하지만 크기가 워낙 크기에 우리보다 더 빨리 고도를 높일 순 없었다.
쉐에엑! 쉐에엑!
위에서 접근하자, 3미터 길이의 커다란 화살이 아래에서 날아온다. 고도를 더 높여 중앙으로 내려갔다면 발리스타의 사정거리도 벗어날 순 있었지만, 지금은 시간이 없었다.
쉐에엑! 퉁!
커다란 화살이 선체를 스치며 지나갔다.
기간트도 정면으로 맞으면 쓰러질 정도였기에 선체가 뚫리거나 프로펠러가 망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비공정의 최대 약점은 좌우에 달린 프로펠러였다.
지금 적들이 노리는 곳도 그곳이고!
쉐에엑! 콰앙!
우측에 비공정 하나가 프로펠러에 맞으며 방향을 틀었다.
거리가 가까울수록 위력도 커지고 정확도도 좋아졌다.
콰앙!
"젠장! 우리도 맞았네!"
거대한 화살이 선수에 박혔다.
다행히 선체에 박혔기에 우린 계속 전진했다.
쉐에에엑! 쾅!
이번엔 우현 프로펠러를 박살 냈다.
우리 비공정이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다들 떨어지지 않게! 꽉 잡아!"
"쿠오오오크!"
쿵! 쿵! 쿵!
아래 갑판에 있는 대포가 선체를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무게 때문에 비공정이 거의 45도까지 기울었다.
하지만 우리 비공정은 멈추지 않았다.
"저놈들 갑판에 비상 착륙해!"
"네!"
촤르르르!
엘프 항해사가 비틀거리며 나는 비공정을 최대한 고정했다.
"착륙한다! 모두 꽉 잡아라!"
사실 착륙보단 추락에 가까웠다.
167. 백병전.
167. 백병전.
위이이잉!
쾅! 콰콰쾅!
우리 비공정이 저들이 좌현 갑판에 곤두박질쳤다.
거대 비공정의 선체에 구멍이 뚫렸다.
우리 비공정은 앞부분이 완전히 파손되어 날아갔고, 30도 각도로 박혀 있다가 선수가 부러지며 갑판에 착륙했다.
드워프제 비공정이 단단했기에 이 정도지 다른 비공정이었다면 아예 박살 났을 것 같았다.
아무튼, 우린 적의 비공정에 착륙했다.
"조심해! 화살이 날아온다!"
피슉! 피슉!
팍! 파팍! 팍!
갑판에 있던 적 궁수들 달려오며 우리 비공정을 향해 화살을 쏘았다.
궁수는 또 왜 이렇게 많이 배치했는지, 정신이 없었다.
"오크 해병대는 화살을 막고, 엘프 궁수대는 응사하라!"
"쿠오오오! 화살을 막아라!"
서리 족장인 호빌테와 서리 오크 해병대 30명이 갑판에 서서 날아오는 화살을 막았다.
강습 갑옷은 화살에 절대 뚫리지 않는다.
덕분에 우리 엘프들이 엄폐할 수 있어 곧바로 응사하기 시작했다.
피슝! 푹!
"크헉!"
엘프들은 정령의 힘이 없어도 타고난 궁수였다.
엘프가 쏜 화살은 정확히 병사들의 목과 가슴을 뚫었다.
'어디 나도 한 번 시험해 볼까.'
인형의 집을 열자, 비공정 뒤쪽으로 킹콩인형이 3미터짜리 강습용 전투 기간트를 꺼내왔다.
쿵!
이 작은 기간트는 비공정에 맞춰 새롭게 제작한 것이었다.
오크 갑옷처럼 비행석 낙하 장치를 이용해 무게 조종할 수 있었는데, 무게를 4단계로 조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등에 마석 배터리를 장착했는데, 기존 기간트 용은 너무 컸기에 판판하게 만든 마석 배터리를 새로 만들어 장착했다.
가디언 제국도 만들었다는데, 우리가 없으면 안 될 것 같았기에 시범용으로 만든 것이다.
그리고 좋은 건 나도 따라 해야지.
강습용 기간트에 올라타고, 추락한 비공정을 돌아 적들의 움직임을 살폈다.
궁수들이 화살을 계속 쏘고, 중앙에서 강습병들이 우르르 몰려나오고 있었다.
'그럼 시작해 볼까.'
현재 강습 기간트는 1단계 모드.
가장 무겁다.
인간의 힘으론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무게.
그랬기에 마석 배터리의 힘으로 움직여야 한다.
이 기체는 기사가 아니면 다루지 못한다.
착! 치이익!
2단계.
옆구리에 있는 버튼을 눌러 무게를 반으로 줄였다.
그리고 마석 배터리 출력도 반으로 줄었다.
이건 마석 배터리 효율을 위해서였다.
일반 병사들을 상대하는데, 기간트의 힘을 다 쓰는 건 낭비였다.
'한 번 더!'
착! 치이익!
3단계.
마석 배터리는 미약하게 돌고, 최소한의 마법진만 활성화된다.
쿵쿵쿵쿵!
궁수들을 향해 내달렸다.
내가 달려가자 화살이 일제히 나를 향해 겨눠졌다.
피슉! 피슉!
탱! 태태탱!
화살은 소용없는 짓이었다.
다다닥! 퍽! 퍼퍽!
"크헉!"
"으악!"
등 뒤에 검을 꺼낼 필요도 없다.
3미터 크기의 기간트라면 주먹과 몸통 박치기면 충분했으니까.
"저놈을 잡아라!"
"공격해라!"
2미터의 강습병들이 우르르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착! 치이익!
2단계로 바꾸고 등에서 검을 꺼냈다.
그럼 얼마나 단단한지 볼까.
앞으로 내달렸다.
촤악!
"크악!"
강습병이 일격에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이건 특별 제작한 검.
과거에 얼음 동굴에서 암 드로운의 배에 박혀 있던 드라우켄의 칼날 같은 긴 한쪽 어깨뼈를 얻었었다.
그걸로 몇 가지 아이템을 만들었고, 남는 것이 있었기에 이번에 2미터 길이의 검으로 제작했다.
그러니까 S급 괴수 부산물로 만든 검이었다.
거기에 기간트의 절반 출력이 더해지자, 강습 갑옷 정도는 무처럼 벨 수 있었다.
"죽여라!"
"그냥 밀어붙여!"
물러서지 않았다.
앞으로 내달리며 검을 휘둘렀다.
빨리 적들을 쓰러트리고 이 거대 비공정을 장악해야, 전투가 쉬워진다.
"이야!"
촤악! 촤악!
검에 닿는 것은 무엇이든 자른다.
강습병들을 반으로 가르며 앞으로 나갔다.
내가 지나온 자리엔 시체가 가득했다.
사실 3미터의 기간트를 만드는 것은 효율적이지 않았다.
기간트는 크고 강한 힘으로 괴수나 적의 거대 병기를 무찔러야 하는데, 작은 기간트는 마석 배터리도 많이 장착할 수 없었고, 출력을 높이는 마법진도 적었기에 작업용이 딱 적당했다.
게다가 확성 마법진도 없었기에 맨 목소리로 소리쳐야 했다.
하지만 비공정이란 새로운 전략 무기가 생겼고, 내 오크 해병대의 위협에 적들은 대응해야 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만든 것이었다.
'이거 제법 쓸 만한데······.'
하지만 지금 사용하다 보니, 움직이는 속도도 빠르고, 비행석으로 무게를 조절할 수 있으니, 잘만 쓰면 대수림에서도 충분히 통할 것 같았다.
물론 소형 괴수들에게만.
"쿠오오오오! 서리 오크의 힘을 보여줘라!"
"쿠오크!"
어느새 주변 궁수들을 모두 처리한 서리 오크 해병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내가 탄 강습 기간트가 효과적이긴 한데, 이 많은 적을 언제 다 죽이겠는가.
쾅! 콰콰쾅!
서리 오크 해병이 상대 강습병의 머리에 도끼를 찍었다.
부웅! 쩌억!
"크헉!"
인간의 공격을 막기 위해 만든 강습 갑옷은 오크의 힘과 괴수 부산물로 만든 도끼에 처참하게 찢어졌다.
서리 오크는 다른 오크족보다 크고 강했으며, 인간 병사 열을 상대할 정도였다.
"그대로 밀어붙여라!"
"쿠오오크!"
나와 오크 해병대 30명으로 몇 배의 인간 강습병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쾅! 콰아아앙!
그때 반대쪽 갑판에 드워프제 비공정 한 척이 착륙했다.
"쿠오오오크! 공격하라!"
비공정에서 오크 해병대가 우르르 내리며, 우현 쪽에서도 밀고 올라왔다.
쿠웅! 거대 비공정 옆구리에 우리 쪽 비공정이 또 한 척 붙었다.
"쿠오크! 쿠훌린이 왔다!"
"쿠아아아아!"
원조 오크 해병대까지 옆으로 붙었다.
그들은 강습 갑옷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었기에 순식간에 거대 비공정으로 뛰어들었다.
"저기다! 선미를 공격하라!"
가뜩이나 위력에서도 상대가 안 됐는데, 오크 해병대 숫자가 많아지자, 강습병들도 감당할 수 없었다.
베고 찔리고 쓰러지는 강습병들이 점점 많아지고, 선미 갑판을 향해 밀고 올라갔다.
그리고 저 멀리 날 괴이한 눈으로 쳐다보는 라디프 공작이 보였다.
"착륙시켜라! 기간트를 내려라!"
라디프 공작이 거대 비공정을 착륙시키려 했다.
이 비공정을 빼앗기면 안에 탄 기간트가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놔둘 순 없지.
"계속 밀어붙여!"
서리 오크 해병대는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잘 싸웠다.
강습 기간트처럼 마석 배터리도 없고, 강화 마법진도 없었지만, 타고난 힘으로 강습병들을 박살 내고 있었다.
저 정도면 3미터 기간트를 상대로도 충분히 싸울 수 있어 보였다.
고도가 낮아지는 속도보다, 우리가 밀고 올라가는 것이 더 빨랐다.
"쿠오크! 타일러여! 놈이 도망친다!"
쿠훌린이 소리쳤다.
라디프 공작이 강습병들의 보호를 받으며 도망치고 있었다.
선미에 붙어 있는 탈출용 비공정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서리 오크 해병대의 실전 훈련도 충분히 했고, 이 거대 비공정도 이제 내 것이었다.
"신경 쓰지 말고! 강습병을 모두 처리해!"
"선미를 장악해라!"
오크들은 강습병들을 들어서 던지고, 드디어 선미 갑판 위로 올라갔다.
"엘프들은 고도를 높여라!"
엘프 항해사들이 달려가 비행석 조정 밸브를 열기 시작했다.
150미터까지 내려온 비공정이 다시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라디프 공작은 탈출 비공정에 타고 이미 거대 비공정으로부터 떨어지고 있었다.
'후후! 그대로 보낼 줄 순 없지.'
여기서 라디프 공작을 놓치면, 나중에 잡기가 너무 힘들어진다.
그래서 괴조인형을 꺼냈다.
"끼이이이이아!"
쾅! 콰쾅!
거대한 발톱으로 소형 비공정을 마구 할퀴었다.
프로펠러가 부서지고, 선체가 찢어졌다.
괴조인형이 비공정을 높이 들고 날아가더니, 그대로 놓아버렸다.
비공정은 수직으로 곤두박질치더니······.
위이이이이! 콰아아앙!
진군하던 기간트들 머리 위로 떨어졌다.
순간 여러 대의 기간트가 쓰러졌다.
베른 대륙의 식민지를 모두 장악한 라디프 공작의 비참한 말로였다.
"쿠훌린! 선내에 남은 적들을 쓸어버려라!"
"쿠오크 알았다!"
그렇게 거대 비공정을 장악했다고 생각했다.
콰아앙!
파아앗!
굉음과 함께 갑판 위로 커다란 창날과 검날이 솟아올랐다.
"뭐야?"
이 비공정엔 기간트가 있었고, 그 기간트엔 이미 기사들이 타고 있었다. 그들은 비공정을 빼앗기자, 이판사판으로 선체를 공격하고 있었다.
촤아아악!
검날이 선미 바로 앞으로 튀어나왔다.
이러다 선미에 박히는 날엔 조종은 물 건너간다.
'아!'
좋은 방법이 생각났다.
"선수를 들고, 고도를 높여라!"
거대 비공정의 선수가 올라가더니 점점 기울어졌다.
"뒤쪽 해치를 열어라!"
"네!"
철컹! 끼이이이잉!
50기의 기간트가 탈 수 있는 만큼 거대 비공정의 해치는 총 세 군데였다.
좌우 선체에 하나씩 있었고, 선미 아래쪽에 가장 큰 해치가 있었다.
지금 그 해치를 열고 고도를 높이고 있었다.
"모두 꽉 잡아라! 선수를 더 늘어라!"
거의 45도 각도로 날아오르자, 안에 탄 기간트들이 뒤쪽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쿵! 쿠쿠쿵!
[으아아!]
창을 찌르던 기간트가 수백 미터 아래로 떨어졌다.
거대 비공정 안쪽엔 기간트가 흔들릴 것을 대비해, 천정에 양손으로 붙잡을 수 있는 손잡이가 있었다.
기간트의 힘으로 한번 잡아 놓고 고정하면 웬만한 충격과 흔들림에도 끄떡없었다.
하지만 기체가 45도까지 기울어지자, 손잡이를 잡지 않은 기간트들이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콰아아앙!
아래로 떨어진 기간트는 밑에서 진군하던 기간트 머리 위로 떨어졌다.
700기나 되는 기간트가 밀집대형으로 진군했기에 그 범위가 상당했다.
지금 거대 비공정은 그 머리 위에 있었다.
검으로 천장을 찌르던 기간트도 버티지 못하고 떨어졌다.
거대 비공정이 60도까지 기울어지자, 기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몇 대가 더 떨어졌지만, 다른 기간트들은 두 손으로 손잡이를 꽉 잡은 덕분에 떨어지지 않았다.
'드라우켄, 킹콩인형! 놈들을 떨어트려!'
드라우켄과 킹콩인형이 아래 갑판에 모습을 드러냈다.
킹콩인형은 기간트에 매달려 손가락을 하나씩 펼치기 시작했다.
[그, 그만!]
손가락이 펼쳐지자, 더는 버티지 못하고 기간트가 아래로 미끄러지며 떨어졌다.
[으아아아!]
쿠웅!
킹콩인형은 또 다른 기간트에 매달렸다.
그리고 드라우켄은 나무를 타던 발톱으로 선체를 타고 다니며 기간트를 발로 차기 시작했다.
쾅! 콰쾅!
[으악!]
[크악!]
40미터의 거대한 크기로 드라우켄이 움직이기엔 내부가 매우 비좁았지만, 그게 오히려 뒷다리를 뻗어 고정할 수 있어 안정감을 확보했다.
드라우켄이 기간트에 충격을 줘서 떨어트리자, 하늘도 문제였지만, 지상은 난리가 났다.
한쪽엔 이미 전투가 벌어졌고, 계속 밀어붙여야 하는데 하늘에서 기간트 폭탄이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40여 기의 기간트가 아래로 떨어지고, 난 비공정을 다시 수평으로 맞췄다.
조금만 더 지났다면 거대 비공정의 선체가 버티지 못하고, 찢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드라우켄에게 나머지 기간트를 제압하라고 시켰다.
그렇게 거대 비공정을 나포했다!
"쿠오오크! 이겼다!"
"쿠오크! 쿠오크!"
오크들이 가운뎃손가락을 펼치며 서로를 가리키고 함성을 내질렀다.
그들은 오늘 용감했고, 오크들 가운데 우뚝 솟은 자들이었다.
"다른 쪽 상황은?"
고개를 돌려 주변 비공정을 쳐다봤다.
이미 공중에서 전투는 끝나가고 있었다.
우리 오크 해병대가 적들의 비공정에 올라타면 순식간에 장악했다.
인간 강습병은 오크 강습병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기간트가 꽉 차 있는 이십여 척의 중형 비공정을 나포하자, 저들의 비공정은 덤빌 생각도 하지 못하고, 사방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지상을 쳐다봤다.
지상의 전투 상황도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하늘에서 비공정이 떨어지고, 기간트까지 떨어지자, 이미 사기가 바닥까지 떨어진 상태였고, 두 왕국의 지휘관과 각 영지의 지휘관들은 어떻게 하면 피해를 덜 볼지 서로 눈치를 보기 바빴다.
그래도 호엘 삼황자의 2군단과 바이마르 영지군의 기간트만 꾸역꾸역 앞으로 나가 싸우고 있었다.
고오오오! 휘이이잉!
그때 내 신호를 받은 아리칸의 비공정들이 저들의 후미에 착륙했다.
[어서 움직여라!]
[서둘러! 강하하라!]
기이잉! 쿵! 쿵!
250기의 기간트가 빠르게 후방에 내렸고, 적들을 향해 진군했다.
크루세이더 기사들과 아리칸 왕국의 기사들은 여러 전장에서 단련된 베테랑들이었다.
병력손해를 덜 보기 위해 후미에 있던 살루스 왕국과 윈데르 왕국의 기간트들은 최정예 기간트가 자신들에게 다가오자 경악했다.
우리 정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적과의 싸움은 유리하게 진행 중이었다.
그리고!
[테레니스 영지군은 좌측으로 물러난다!]
[샐리던 영지군도 좌측으로 물러나라!]
[브리드 기간트는 전장을 이탈한다.]
[펠리스 영지군도 좌측으로 이동한다.]
좌측 끝에 있던 테레니스 영지군의 기간트 50기가 갑자기 전장을 이탈했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샐리던과 브리드, 펠리스 영지의 기간트 80기도 좌측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168. 복수는 너의 것.
168. 복수는 너의 것.
기이잉! 쿠쿠쿵!
130기나 되는 남부 지방 영지군 기간트가 이탈하자, 2군단의 비숍급 기간트 1기가 달려와 앞을 막아섰다.
[뭐 하는 것이냐? 전투 상황에서 이탈은 탈영이다!]
[이건 우리 전쟁이 아니다! 비켜라!]
[이 지방 영지군 새끼들이 빠져서! 당장 안 돌아가! 모두 다 처형당하고 싶······.]
다닥! 쿠웅!
비숍급 기간트에 탄 장교는 끝말을 맺지 못했다.
테레니스의 룩급 기간트가 어깨로 밀어쳤기 때문이었다.
비숍급 기간트는 충격에 바닥에 쓰러졌고, 룩급 기간트는 해치를 향해 검을 찔렀다.
콰앙!
[크윽!]
[어서 이탈하라!]
그는 테레니스 영지군의 대표인 블리언 빈스 남작이었다.
[전투에 휘말리면 늦는다! 서둘러라!]
블리언 남작이 서두르는 이유가 있었다.
자신들을 향해 잘 알고 있는 문양의 기간트들이 달려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타일러 후작의 최정예인 하얀 악마 기사단이었다.
기이잉! 쿵 쿵!
곧 그들 앞으로 펠릭스 단장의 오리지널 기간트와 50기의 기간트가 무기를 겨누며 다가갔다.
[네놈들은 뭐 하는 것이냐?]
[반란군 주제에 탈영하는 거야?]
위이잉! 치익!
테레니스 영지군의 기간트 해치가 열리고,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접니다! 블리언!"
[응? 블리언 빈스?]
펠릭스 단장과 기사들이 블리언을 바로 알아봤다.
그들은 모두 타일러 밑에서 1년 반이나 대수림의 괴수를 잡으며 함께 싸운 전우였다.
[블리언, 너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바이마르 영지군이 강제로 우리 테레니스 영군을 동원했습니다. 그래서 기회를 봐서 전장을 이탈하는 중입니다."
[그럼 뒤에 다른 기간트들은 뭐야?]
"모두 라디프 공작의 압박이 심해 어쩔 수 없이 강제로 전장에 참여한 영지군들입니다. 타일러 대장이 사령관이라는 소문을 듣고 제가 이들을 설득했습니다."
[그래?]
펠릭스 단장이 블리언 남작에게 다가가 조용히 물었다.
[정말이야?]
"네, 세상에 죽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실 공중전에서 바이마르 영지군이 패배한다면, 우리가 질 거라고 다들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젯밤에 영지 대표들과 만약 공중에서 패하면 이탈하자고 이야기했습니다."
[하하! 잘했군.]
이미 하늘에서 비공정 대결에서 패배했고, 돌아가는 상황이 자신들이 이길 수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은 반란군이었다.
이름부터 꺼림칙하지 않은가. 반란군.
[알았다! 옆으로 물러서라. 자! 우리가 적의 측면을 친다!]
[하아!]
[가자!]
펠릭스와 하얀 악마 기사단이 움직이려 하자, 블리언이 기간트에 타고 소리쳤다.
[테레니스 영지군도 합류하겠습니다!]
펠릭스의 오리지널 기간트가 고개를 돌렸다.
[실력은 그대로냐? 우린 엄청나게 늘었는데?]
[저도 놀고 있진 않았습니다.]
[그래? 좋다! 테레니스 영지군의 합류를 허락한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블리언은 다른 영지군을 향해 움직였다.
[전장에서 이탈했다고 해도 여기서 가만히 있다간 나중에 반란군으로 몰릴 수도 있소. 하지만 지금 이들을 도와 반란군을 물리친다면, 황제 폐하께서 선처해 주실 것이오. 어떻소? 함께 싸우겠소?]
영지군의 지휘관들이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블리언 남작의 뜻을 안 펠릭스 단장이 움직였다.
[난 통합군 사령관님의 부관이요. 우리와 함께 싸운다면, 그대들의 공을 타일러 사령관께 보고하겠소. 그러니 다 함께 힘을 합쳐 반란군을 물리칩시다.]
[좋습니다!]
[우리도 함께 싸우겠습니다!]
그렇게 50기에서 순식간에 180기로 늘어난 펠릭스 단장의 병력이 측면을 공격했다.
[반란군을 제압하라!]
[공격하라!]
쾅! 콰콰쾅!
전면엔 1군단과 서부군이 버티고, 후미에선 아리칸 기간트들이 밀고 올라왔다.
거기에 발레리온의 기사단과 새로 합류한 180기의 기간트가 몰아치자, 포위된 삼황자와 연합군은 당황했다.
순식간에 기간트 숫자도 역전됐고, 사방에 적이 있었기에 사기가 더는 떨어질 때가 없을 정도로 떨어졌다.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아리칸 기사들의 힘을 보여줘라!]
마르틴 국왕의 룩급 오리지널 기간트가 소리쳤다.
아리칸의 기간트들이 미친 듯이 검을 찌르고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그들을 공격을 받은 살루스 왕국과 윈데르 왕국의 기간트들은 속절없이 쓰러졌다.
특히 오리지널 기간트가 많은 아리칸 왕국군이었기에 쓰러지는 열에 아홉은 두 왕국의 기간트였다.
[도망치지 마라!]
[숫자는 아직도 우리가 많다!]
호엘 삼황자가 소리쳤다.
하지만 이미 패닉에 빠진 두 왕국군은 살기 위해 뚫려 있는 쪽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사방이 막혀 있다면, 저들은 죽기 살기로 싸웠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타일러는 삼면에서 공격하고, 서쪽에 달아날 구멍을 만들어 놓았다.
두 왕국군이 아리칸 왕국군에 밀려 서쪽으로 도망치고, 중앙에 있던 남부 영지군의 기간트들은 하얀 악마 기사단과 조금 전까지 한 편이었던 또 다른 남부 영지군의 기간트에 밀려, 역시 서쪽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후미와 허리가 밀리자, 선두에 있던 2군단과 바이마르 영지군도 버틸 수가 없었다.
[젠장! 싸우란 말이다!]
룩급 오리지널 기간트에 탄 호엘 삼황자가 소리쳐 보지만, 이미 사기는 바닥이고, 여기저기 모인 병력이 말을 들을 리가 없었다.
[저기! 반역자 호엘 오르도가 있다!]
[공격하라!]
[반란군을 섬멸하라!]
게다가 전방에서 지키기만 했던 1군단과 서부군의 기간트들이 일제히 전진하기 시작했다.
긴 창을 든 레녹스 백작의 룩급 오리지널 기간트 비브르가 호엘 황자에게 달려왔다.
레녹스 백작은 바이마르 영지군을 지휘하는 기사단장이었다.
[호엘 황자님, 피하십시오! 이미 기세가 기울었습니다.]
[하아! 장인도 죽었고, 여기서 어디로 피하란 말이냐?]
[우선 바이마르 대영지로 가시죠.]
[비공정이 없으니, 거기도 얼마 버티지 못할 거네.]
[베른 대륙이 있지 않습니까! 라디프 공작께서 이미 그곳의 식민지를 모두 평정했습니다. 일단 그곳으로 가서 후일을 도모하시면 됩니다.]
호엘 황자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까 장인의 탈출용 비공정이 추락했으니, 분명 죽었을 것이다.
그러니 베른 대륙은 지금 임자 없는 곳이란 뜻이었다.
호엘의 룩급 오리지널 기간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일단 피하자! 부하들에게 말해라! 바란트 대영지가 아니라 바이마르 대영지로 후퇴하라고. 그곳에서 병력을 집결해 베른 대륙으로 가자.]
[네! 저하!]
레녹스 백작이 소리쳤다.
[후퇴하라! 전군 후퇴하라!]
후퇴 명령이 떨어진 순간 기간트들이 모두 서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2군단과 바이마르 기사들에게는 바이마르 대영지로 집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놈들이 도망친다! 쫓아라!]
연합군이 후퇴하자, 그 뒤를 통합군 기간트들이 무섭게 쫓았다.
서로 마주 보고 싸울 때보다 후퇴할 때 더 많은 병력이 상하는 법이었다.
두 시간 동안 벌어진 추격전에 발란트 영지 북쪽 평원은 부서진 기간트가 가득했다.
하지만 그 난리 통에도 무사히 전장을 벗어난 이들도 있었다.
기이잉! 쿵! 쿵!
[하악! 하악!]
[휴! 이제 좀 쉬시죠.]
호엘 삼황자와 레녹스 백작은 적들의 추격을 뚫고 작은 숲에 몸을 숨겼다.
룩급 오리지널 기간트 2기가 죽기 살기로 도망치자, 그들을 막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십여 기의 기간트를 부수고 겨우 포위망을 벗어났다.
[큰일입니다. 마석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젠장! 어디 가서 마석 배터리를 구한단 말이냐?]
[일단 발란트 영지로 가시죠. 발란트 영지 내에 기간트가 있지 않습니까.]
[사방에 적들이 쫙 깔려 있을 텐데?]
[하지만 방법이 없습니다. 아니면 밤까지 기다렸다가 우리를 쫓아온 기간트를 공격하고, 마석 배터리만 빼는 방법도 있습니다.]
[차라리 그게 낫겠군.]
두 사람이 탈출 방법을 의논하고 있었다.
'쯧쯧! 기껏 도망친 곳이 여기네.'
중형 비공정으로 룩급 오리지널 기간트를 쫓아 왔기에 추격이 어렵진 않았다.
마나를 보는 눈에 룩급 오리지널 기간트의 빛은 너무나 선명했으니까.
다른 사람은 다 놓쳐도 호엘 황자는 잡아야 했다.
다시 세력을 규합한다느니, 베른 대륙으로 가서 복수의 칼을 간다느니, 그런 귀찮은 일이 생길 수도 있었기에 여기서 뿌리를 뽑아야 했다.
게다가 룩급 오리지널 기간트가 2기나 있었다.
그걸 챙겨야 했다.
그리고 그와의 약속도 지켜야 했고.
"웨슬리, 준비됐나?"
[네!]
기이잉! 쿵!
웨슬리 슈나이더가 탄 룩급 오리지널 기간트 폴라드가 비공정에서 내렸다.
웨슬리 슈나이더는 내 자동인형 중에서 처음으로 오리지널 기간트에 탔다.
원래 살아있을 때도 룩급 오리지널 기간트에 탔고, 제국에서 열 손가락에 들어가는 기간트 실력자였다.
하지만 변변치 못한 가문에 줄을 제대로 서지도 못했기에 오리지널 기간트에 타지 못했고, 케니스 영주가 엄청난 금화를 들여 룩급 오리지널 기간트 비브르를 주고 데려온 기사였다.
그는 케니스 영지의 전진 기지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쳤고, 그의 사냥팀은 대수림 최고라는 명성이 자자했다.
하지만 부하들과 라디프 공작에게 뒤통수를 맞고 억울하게 죽었다.
"저들이 지쳐 있다곤 하지만, 룩급 오리지널 기간트가 2기네. 방심은 금물이네."
[네! 주군! 맡겨 주십시오.]
난 웨슬리 백작이 죽기 직전에 했던 약속을 잊지 않았다.
복수를 해주겠다고.
그리고 그 복수는 오늘 이루었다.
라디프 공작은 죽었고, 그의 기사들도 오늘 대부분 죽었으니까!
하지만 마지막 복수는 스스로 이룰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웨슬리의 뒤통수를 치고, 부하들을 죽이고, 그의 룩급 오리지널 기간트 비브르를 가져간 바이마르의 기사단장 레녹스 백작이 저기 있었다.
"그럼 다녀오게."
[충! 다녀오겠습니다.]
웨슬리의 기간트가 고개를 숙이고 숲으로 향했다.
함께 가고 싶었지만, 난 웨슬리(lv.13)를 믿고 그의 실력을 믿었다.
현재 자동인형 중에서 웨슬리의 레벨이 가장 높았다.
원래 가장 높았던 암 드로운은 분신인형으로 업그레이드가 됐고, 다음이 웨슬리였다.
하지만 그 역시 암 드로운처럼 너무 오래 정체 중이었다.
웨슬리는 인간형 마법인형 중에서 가장 마나량이 많았고, 생전 실력이 가장 뛰어났기에 진작 분신인형이 되어야 했지만, 계기나 사건이 없어서인지 자동인형에 머물러 있었다.
전생에도 그랬다.
사연 있고, 뭔가 계기가 있는 자동인형이 더 빨리 분신인형이 됐다.
짹은 고문을 받다가 죽음의 위기를 느끼다 분신인형이 됐고, 암 드로운은 너무나도 강한 여왕개미와 싸우면서 자신의 한계를 느끼고 그것을 극복하다가 분신인형으로 올라섰다.
난 이번이 웨슬리의 그 계기라고 생각했다.
그는 죽어가면서 복수를 원했고 내 꼭두각시가 되자마자, 자아를 각성해 초특급으로 자동인형이 됐다.
그만큼 복수를 열망한 것이 아닌가 싶다.
분신인형이 되면, 가장 좋은 것은 꼭두각시나 자동인형은 너무 큰 타격을 받아 운명의 실이 많이 끊어지면 레벨이 초기화되지만, 분신인형은 죽음의 위기 정도까지 버틸 수 있었다.
그리고 내 스킬을 빌려 쓸 수도 있고,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의식을 연결할 수 있었다.
물론 자동인형보다 독립성도 더 강해지고, 자아의식도 뚜렷해진다. 평범한 사람들 틈에서 자연스럽게 섞여 살 수 있을 정도였다.
'웨슬리, 이건 너의 복수다!'
기이잉! 쿵! 쿵!
웨슬리의 머릿속은 지금 어느 때보다 혼란스러웠다.
'복수란 말이지······.'
자아를 각성하고, 지난 몇 년간 정신없이 싸웠다.
괴수를 죽이고, 기간트를 쓰러트리고, 누군가를 구하고 누군가를 지키라는 명령에 항상 최선을 다해 싸웠다.
주군은 내게 맹목적인 복종을 요구했지만, 그건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것이 지금 내가 존재하는 이유라 생각했다.
하지만 가슴속 한구석이 뭔가 답답했다.
늘 풀리지 않은 실타래처럼 머리가 복잡하고, 억울하고, 뭔가 엉켜버린 마음이었다.
주군은 그걸 풀기 위해선 복수를 마무리 지어야 한다고 했다.
그 대상이 지금 저 앞에 있었다.
기이잉! 쿵! 쿵!
[이런! 들켰나!]
[삼황자님, 다행히 한 놈인 것 같습니다.]
[상대도 룩급 오리지널 기간트다! 조심해!]
[네!]
척! 취링!
두 오리지널 기간트가 검과 창을 겨눴다.
169. 담아두면 병 된다.
169. 담아두면 병 된다.
웨슬리는 상대 기간트를 보더니 눈을 똥그랗게 떴다.
창을 든 기사의 붉은 기체는 꿈에서 보던 기체였다.
난 매번 같은 꿈을 꾼다.
아니 그것이 꿈인지는 모르겠다.
눈을 감으면 붉은 기체에 내가 타고, 기사들과 괴수를 잡았다. 그리고 모닥불 앞에 앉아 기사들과 무언가를 먹고 마시며 떠드는 기분 좋은 꿈이었다.
그 꿈을 가져가버린 자가 눈앞에 있었다.
'그런가? 진짜 복수인가······!'
게다가 꿈에서 타던 붉은 기체를 복수의 대상자가 타고 있었다.
이건 주군의 명령이 아니라, 나를 위한 싸움이다.
오늘은 나를 위해 싸우겠다!
[으아아! 간다!]
기이이! 쿠쿠쿵!
웨슬리의 룩급 오리지널 기간트 폴라드가 달리면서 검을 높이 들었다.
[어딜!]
위이잉! 쿵! 쿵!
레녹스 백작의 오리지널 기간트 비브르가 긴 창을 찌르며 먼저 움직였다.
11미터의 두 거대 기간트가 서로를 죽이기 위해 달린다.
촤아악!
비브르의 창끝이 폴라드의 가슴을 향했다.
태앵!
폴라드는 검으로 창끝을 쳐내고 몸을 숙였다.
그리고 주먹으로 상대의 기체의 배를 때렸다.
콰앙!
[크윽!]
기체가 흔들리며 타고 있던 레녹스 백작에게 충격을 줬다.
폴라드가 검을 회수해 비브르를 찌르려고 했을 때였다.
[죽어라!]
부아앙!
호엘 삼황자의 룩급 오리지널 기간트 아메카가 폴라드의 손을 노리고 수직으로 휘둘렸다.
웨슬리는 뒤로 물러서야 했다.
[조심하시오! 보통내기가 아니요.]
[네!]
아메카는 원래 레녹스 백작이 타던 기체였다.
하지만 비브르를 얻자, 자신의 기체는 삼황자에게 주고 자신은 그동안 비브르에 타고 식민지에서 큰 활약을 했다.
같은 룩급 오리지널 기간트라도 자신에게 더 잘 맞고 싱크로율이 높은 기체가 있었다.
[제가 좌측을 맡겠습니다!]
[좋다! 내가 우측을 맡지!]
두 기간트가 좌우로 벌어지더니, 동시에 웨슬리를 압박했다.
기이잉! 위잉!
캉! 카캉!
찌르는 창과 휘둘리는 검을 웨슬리는 뒤로 물러서면서 막고 있었다.
둘이 하나를 몰아치니, 웨슬리는 정신없이 막기 급급했다.
촤악! 태앵!
비브르의 창끝에 폴라드의 어깨 보호 장갑이 떨어져 나갔다.
[놈이 당황했습니다. 계속 몰아치십시오!]
[좋다! 내가 다리를 공격하겠다!]
창은 상체를 검은 하체를 공격하자, 웨슬리는 더 정신이 없었다.
'왜 상대의 공격이 보이는데, 반응이 늦은 거지?'
분명 창이 찔러지면 검으로 흘려내거나 피하고, 검이 휘둘리면 막거나 쳐냈다.
하지만 두 기간트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콰앙!
검끝에 무릎 보호 장갑이 날아갔다.
'뭐가 잘못된거지?'
자아가 생기고 지금까지 이런 강자들과 홀로 맞서 싸워본 적이 없었다.
웨슬리는 자기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기간트를 보며 답답했다.
그는 아직 오리지널 기간트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나마 양산형 룩급 기간트 수준의 움직임으로 두 오리지널 기간트의 공격을 막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눈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수많은 실전을 통해 괴수의 움직임과 기간트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눈은 이미 생전의 실력으로 올라왔다.
하지만 기간트가 그의 눈을 따라가지 못했다.
부웅! 태앵!
휘둘린 검에 팔꿈치 보호 장갑이 날아가고.
곧바로 창끝이 해치를 노리고 날아왔다.
웨슬리가 급하게 마나를 흘려보내며 기체를 옆으로 틀었다.
캉! 치이익!
창끝이 해치를 스치고 옆구리로 빠져나갔다.
웨슬리는 검을 크게 휘두르고 뒤로 몇 걸음이나 물러섰다.
쿵! 쿵! 쿵!
[쳇! 아깝군. 끝낼 수 있었는데!]
방금은 해치가 뚫릴 뻔했다.
그럼 자신의 복수도 끝나고, 주군의 명령도 실행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 번만 더 몰아치면 끝난다! 가자!]
[네!]
두 오리지널 기간트는 쉴 틈을 주지 않았다.
쉐엑! 휘익!
탱! 태탱!
웨슬리는 다시 막기에 급급했다.
도움이 필요했다.
근처에 주군의 존재가 느껴지지만,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이건 나를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내가 어떻게든 싸워서 이겨내야 했다.
카앙!
'크윽! 암 드로운 경이라도 있었다면······.'
그때 자신의 스승이라고 할 수 이는 암 드로운의 모습이 떠올랐다.
막 자아를 각성해 아무것도 모르던 웨슬리에게 기사단장인 암 드로운은 걸음마부터 시작해 검을 쓰는 법, 동료들과 대형을 짜는 법 등을 가르쳐 주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암 드로운의 움직임과 비슷한 기간트 동작을 만들 수가 없었다.
그는 자신들처럼 마석 배터리의 마나를 받아들여 기간트로 흘려보내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아예 몸 자체에 마나가 항상 머물러 있었기에 반응 속도가 빨랐고, 움직임이 자연스러웠던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그런 움직임을 낼 수 없었다.
'아니지! 주군은 그걸 똑같이 하시잖아!'
그럼 자신도 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 순간 한가지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늘 몸에 마나가 머물러 있게 한다?
검이 찔러오자, 마석 배터리의 마나를 받아 팔과 몸으로 보내 막았다.
태앵! 쿵! 쿵!
이번에도 조금 늦게 반응했기에 힘에서 밀리며, 뒷걸음질 쳤다.
'마나를 늘 몸에 유지하면, 더 빠르게 반응할 수 있겠구나!'
[아깝군!]
[제가 뒤로 가겠습니다.]
뒤로 도망치지 못하게 붉은 기체가 뒤를 막아섰다.
웨슬리가 마석 배터리의 마나를 받아 온몸으로 흘려보냈다.
전과 다른 것이 있다면, 지금은 공격받지도 않았는데, 계속해서 마나를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만 죽어라!]
검과 창을 든 두 기간트가 동시에 달려들었다.
웨슬리는 기다리지 않았다.
검을 든 아메카에 자신도 달렸다.
[응?]
아메카가 검을 찔러왔다.
태앵!
하지만 이번엔 마나를 뿜어내고 있었기에 쉽게 쳐냈다.
그리고 곧바로 무릎을 들었다.
콰앙!
[크윽!]
무릎으로 해치를 가격당한 호엘 황자는 골이 흔들리는 충격을 받았다.
그때 뒤에서 비브르가 창을 찔렀다.
웨슬리는 무리하지 않고 기체를 뒤로 물러섰다.
기잉! 쿵쿵쿵!
자신이 필요할 때마다 마나를 기간트로 흘려보내는 것과 항상 마나를 뿜어내는 것은 마석 배터리와 본인의 마나를 몇 배나 빨리 소모하는 엄청난 단점이 있었다.
하지만 적이 움직이기 직전에 조금만 먼저 마나를 뿜어내 몸과 기간트를 긴장시킬 수만 있다면, 마나 소모량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었다.
'아! 이게 싱크로율이구나!'
지금은 불가능하지만, 이 방법을 알았으니 앞으로 수련하면 된다.
물론 안다고 해서 누구나 다 되는 건 아니었다.
[방금 저놈이 갑자기 빨라졌다!]
호엘 삼황자는 방금 상대의 움직임을 살짝 놓쳤다.
[같이 공격하시죠.]
두 기간트가 다시 좌우에서 공격하기 시작했다.
웨슬리는 마나를 폭발시켜 온몸으로 보냈다.
소모량은 몇 배나 늘어났지만, 점점 눈의 반응을 오리지널 기간트가 따라가기 시작했다.
'훗! 이제 끝났군.'
웨슬리가 오리지널 기간트 폴라드로 마나를 뿜어내는 모습을 보자,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저건 안다고 해서 다 따라할 수 없는 것이다.
웨슬리의 마나량이 특출나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이제 오리지널 기간트에서 마나를 운용하는 방법까지 깨달았으니, 그는 이제 한 단계 성장한 것이다.
태앵! 쿠웅!
[크윽!]
호엘 삼황자의 기간트가 쓰러졌다.
옆으로 쓰러진 기간트 해치를 향해 웨슬리의 기체가 발을 휘둘렀다.
쾅! 쾅!
호엘 삼황자의 기체가 공격당하자, 레녹스 백작의 기체가 달려와 사정없이 창을 찌르며 압박했다.
탱! 태태탱!
하지만 웨슬리의 기체는 여유롭게 다 막아냈다.
그리고.
촤악! 쩌억!
비브르의 어깨에 검이 찍혔다.
어깨 장갑은 부서지고 공격당한 어깨가 한 뼘 정도 내려앉았다. 한쪽 팔의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웠다.
호엘 삼황자의 기간트가 머리를 흔들며 일어섰다.
[죽어!]
호엘의 기체가 다시 합류했지만, 웨슬리의 기체를 몰아치진 못했다.
아니, 오히려 상처가 늘어났다.
텅! 퉁!
무릎 보호 장갑이 떨어져 나가고, 어깨와 팔목 장갑도 차례로 떨어졌다.
처음에 두 기사가 웨슬리를 몰아쳤을 때 상황과 똑같았다.
왠지 웨슬리는 지금 상황을 즐기는 것 같았다.
아니면 실전 연습을 하는 건가?
더는 떨어트릴 보호장갑이 없자, 웨슬리가 기체가 달려들었다.
[이야! 복수다!]
웨슬리의 기체가 호엘 삼황자의 기체를 발로 쳐서 넘어트렸다.
그리고 몸을 숙이고 레녹스 백작의 기체로 달려들었다.
[어딜!]
레녹스의 기체가 창을 찔렀지만, 웨슬리의 기체는 검을 올려치며 안으로 파고들었고, 어깨로 레녹스의 기체를 어깨로 받아버렸다.
콰앙!
[크윽!]
쿠웅!
레녹스의 비브르가 쓰러졌다.
그리고 웨슬리의 기체가 비브르의 가슴을 밟로 발았다.
[끝이다!]
쾅! 푸욱!
검이 비브르의 해치에 박혔다.
[크으윽!]
레녹스 백작이 죽었다.
[자동인형 웨슬리 슈나이더가 분신인형으로 업그레이드했습니다.]
그때 호엘 황자의 기간트가 일어서더니 몸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웨슬리는 바닥에 떨어진 비브르의 창을 들더니 힘껏 던쳤다.
휘익! 콰앙!
호엘 황자의 기체가 앞으로 쓰러졌다.
기체가 뚫리진 않았지만, 한쪽 다리에 손상을 입었기에 당장 달리긴 쉽지 않았다.
'드라우켄 잡아와!'
"크아아아아!"
드라우켄이 달려가 호엘 황자의 기간트를 잡았다.
난 웨슬리에게 다가갔다.
'어때 웨슬리, 좀 시원해?'
[네! 주군. 이래서 다들 복수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 담아두면 병 되는 거야!'
고생한 웨슬리를 위로했다.
이렇게 내 분신인형이 셋이 됐다.
그리고 오리지널 기간트 2기를 얻었고, 삼황자를 포로로 잡았다.
***
[동부 전선 통합 사령부]
"윌리엄 사령관님! 렌스크가 함락됐습니다!"
"시안 황자 저하는?"
"이곳으로 후퇴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아!"
윌리엄은 깊은 한숨을 내 쉬었다.
대도시 렌스크의 함락은 이베리아 평원을 빼앗겼다는 말이었다.
자신이 참모였던 젊은 시절에도 이베리아 평원은 빼앗기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이 총사령관이 된 지금에 이베리아를 빼앗기자,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가디언 제국군의 진격은 너무 빨랐다.
그리고 너무 강했다.
공중전에서 한 차례 맞부딪쳤지만, 결과는 패배였다.
겨우 10척끼리 붙은 소규모 전투였지만, 가디언 제국이 만든 강습용 마장기의 위력을 볼 수 있었다.
사실 성능은 자신들이 만든 강습용 기간트와 큰 차이는 없었다.
문제는 숫자였다.
저들은 중형 비공정 한 척에 강습용 마장기 10기가 배치되어 있었다.
가디언 제국이라고 해서 마구 기사들을 찍어 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강습용 마장기에 타기 위해선 기사가 필요했고 기사는 재능과 오랜 훈련을 통해 만들었다.
하지만 편법은 가능했다.
중형 수송기엔 10기의 마장기가 탑재되고, 10명의 기사가 있었다. 그리고 기사들은 지상에 내려오기 전엔 마장기에 타고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랬기에 가디언 제국은 3미터짜리 강습용 마장기 10기를 배치하고, 마장기 기사들이 타게 했다.
그러니까 공중에선 강습용 마장기에 타고, 강하할 때는 원래 타던 마장기에 타고 지상을 공격하는 것이었다.
그에 반해 아베르크 제국군은 수송용 비공정 한 척에 기껏해야 2, 3기의 강습 기간트를 배치했으니, 상대가 되지 않았다.
'무식한 놈들! 언제 저렇게 많이 만들었을까······.'
3미터의 강습 기간트라도 쉽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돈이 엄청나게 들어가는 일이었다.
괴수 부산물도 써야 하고, 생산 라인도 새로 깔아야 하고, 마석 배터리도 새로 만들어 대량 생산해야 한다.
그걸 가디언 제국이 해냈다는 말이었다.
그나마 타일러 후작의 비공정을 비슷하게 따라 만든 아베르크 제국의 비공정이 가디언 제국의 비공정보다 조금 더 빨랐기에 공중에서 크게 붙지 않고, 계속 피하면서 뒤로 물러날 순 있었다.
하지만 공중에서 밀리니 지상군이 버틸수 있겠는가.
게다가 지상군 병력 규모도 2배나 차이 났다.
'젠장, 예상보다 너무 빨리 밀리고 있어······.'
이틀 만에 국경 도시 3개를 넘겨줬고, 나흘 만에 이베리아 평원까지 밀렸고, 일주일 만에 동부의 대도시 렌스크까지 잃었다.
이 속도라면 한 달이면 수도까지 당도할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타일러 후작의 통합군이 삼황자와 연합군을 물리쳤다는 소식이 들어왔다는 것이다.
'사령부를 더 후방으로 물려야 하나?'
윌리엄 사령관이 고민에 빠졌다.
타일러 후작의 병력이 올때까지 어떻게든 저들의 진군을 늦춰야 했다.
"비공정이다!"
"서쪽에서 비공정이 날아온다!"
"응? 벌써?"
윌리엄이 급하게 지휘 천막 밖으로나갔다.
그리고 거대 비공정과 100여 척의 크고 작은 비공정이 날아오는 모습을 보았다.
'허! 저렇게 많다고?'
50척이던 비공정이 2배 이상 늘었다.
이건 모든 기간트 병력을 비공정에 싣고 날아온 거란 말이었다.
게다가 거대 비공정의 크기는 자신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컸다. 저렇게 큰 비공정이 공중에 떠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윌리엄 사령관은 고개를 흔들었다.
'타일러 후작, 그는 정말 괴물이군.'
무엇보다 저런 거대 비공정을 나포하고, 거의 2배나 되는 적들을 궤멸시킨 타일러 후작이 두렵게 느껴졌다.
타일러 후작이 왔으니, 이제 반격의 시작이었다.
'그가 제발 공왕 자리에 만족해야 할 텐데······.'
윌리엄은 깊은 고민이 생겼다.
170. 분명 뭔가 더 있는데······.
170. 분명 뭔가 더 있는데······.
[통합 사령부 지휘 천막]
"젠장! 대체 무슨 일이야? 전선에 있는 사람을 부르고?"
"난들 아나! 급한 호출이니까 우릴 불렀겠지."
다 들린다. 이놈들아!
상관들 들리라고 천막 앞에서 떠든 거겠지만.
지휘 천막 안으로 두 사람이 들어왔다.
"엔플드 준장, 슬라비 준장, 자리에 앉게."
"네!"
그들은 3군단과 4군단의 야전 지휘관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상관인 발리혼 중장과 말리가 중장은 이미 지휘 천막에 앉아 있었다.
난 천막 안쪽 사령관 침실에 있다가 윌리엄 사령관과 밖으로 나갔다.
"타, 타일러 사령관님?"
"어떻게 여기 계신 거지?"
날 바라본 지휘관들의 눈동자가 배로 커졌다.
비공정을 모두 숨겼기에 아직 전선에서 온 지휘관들은 내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윌리엄이 말했다.
"주목! 모두 타일러 사령관이 반란군을 격퇴한 소식을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 우리를 도와 가디언 제국을 상대하기 위해 비공정 60척과 기간트 500기를 이끌고 왔다."
"오오!"
"이제 우리도 반격할 수 있겠어!"
지휘관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기뻐했다.
계속된 패전 소식과 후퇴의 연속 속에서 유일한 승전 소식이었으니 기쁠 수밖에.
게다가 병력까지 왕창 이끌고 왔으니 반격의 기회가 왔다는 뜻이기도 했다.
윌리엄 총사령관이 주변을 둘러봤다.
"이제 올 사람은 다 왔나?"
"아직 시안 부사령관께서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냥 시작하지. 렌스크에서 오려면 시간이 걸릴 테니까."
"네!"
얼마 전 작전 참모로 진급한 커널 소장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먼저 현재 전선 상황을 설명하겠습니다."
내가 손을 들었다.
"말씀하십시오. 타일러 사령관님."
"다들 전선 지휘관들인데, 전선 상황은 누구보다 더 알고 있지 않겠소. 시간이 없으니, 그건 그냥 넘어갑시다."
"네?"
커널 소장이 윌리엄 총사령관을 슬쩍 쳐다봤다.
윌리엄이 고개를 끄덕이자, 다음 장을 넘겼다.
전선 사정이야 조금 전에 윌리엄에게 지겹도록 들었는데, 또 들을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이미 모든 전선에서 죽을 쑤고 있는데, 또 들어봐야 괜히 지휘관들에게 패배감만 더해줄 뿐이었다.
커널 소장이 지도를 가리켰다.
"지금 저들은 잠시 진군을 멈춘 상태로 여기 렌스크와 북부 도시 컨야드, 동남부에 크웰강 뒤쪽에 주둔해 있습니다."
밤이 되자, 가디언 제국군의 진군도 멈췄다.
그들도 잠을 자야 내일 다시 진군할 테니까.
하지만 아군은 방책을 만들어야 하고, 전선 위치를 짜고, 밤새 적들의 공격을 막을 준비를 해야 한다.
이게 공격군과 방어군의 차이였다.
"저들의 공군 비공정은 어디에 있지?"
"오늘 렌스크 상공에서 30척의 중형 수송기와 20척의 소형 비공정을 봤습니다. 그 때문에 동부군이 후퇴했습니다."
"소형 비공정?"
"마장기 2기를 탑재하고, 궁수 50명과 보병 50명을 태우고 움직이는 작은 비공정을 말합니다. 작은 도시나 마을에 병력을 내릴 수도 있고, 공중에선 우리 비공정을 향해 화살 공격을 퍼붓는 역할을 합니다."
"나머지 비공정은 어디 있나?"
"이곳 크웰강 건너 주둔지에도 30여 척의 중형 수송기가 있고, 소형 비공정이 20척이 대기 중입니다."
난 윌리엄 총사령관을 쳐다보았다.
"생각보다 비공정 숫자가 너무 적은데요?"
"그게 100여 기 정도가 전선이 아니라 카불 요새에 있소. 그중에 중형 수송기가 50척이고, 나머지가 소형 비공정이오."
카불 요새는 가디언 제국군의 국경 요새였다.
그럼 중형 수송기가 110척이란 소리였고, 그건 저들의 강습 마장기가 1,100기란 소리였다.
오크 해병대보다 강습 기간트가 500기나 많았다.
내 예상엔 강습 마장기를 상대하려면 오크 해병대가 적어도 셋은 필요할 테니, 전력 차는 더 벌어졌다.
"카불은 지도상으론 제법 떨어져 있지만, 비공정으론 하루면 전선으로 올 수 있소."
난 윌리엄 총사령관을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저들이 지금 비공정을 50기씩 나눠서 공격하는 데도 렌스크를 내준 거란 말씀입니까?"
"그렇소. 문제는 중형 비공정이오. 30척이면 강습 마장기도 300기고, 강하할 수 있는 마장기도 300기란 말이오."
"하늘에선 강습 마장기가 두려워 접근하지 못하고, 땅에선 언제 어디에 마장기가 내릴지 모르니 두려워하는 거네요."
"휴우! 맞소."
윌리엄은 순순히 인정했다.
"대책은요?"
윌리엄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때 3군단장인 발리혼 중장이 말했다.
"타일러 사령관님도 뾰족한 수가 없을 겁니다. 저놈들은 먼저 지상으로 밀어붙이고, 우리가 맞서면 비공정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비공정에서 언제 마장기를 내려 우리 뒤를 공격할지 모르는데, 전선을 계속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맞습니다. 저들의 비공정을 어떻게 하지 않는다면, 전선을 지킬 수 없고, 계속 후퇴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지휘관들도 같은 생각이었다.
난 윌리엄을 보며 말했다.
"그럼 안드레아스도 같은 생각을 하겠군요."
"······?"
"안드레아스도 자신들의 강습 마장기를 막을 방법이 없을 거라고 알고 있을 것이 아닙니까?"
"아마 그럴 거요."
"제 오크 해병대 숫자도 안드레아스가 알고 있겠지요?"
윌리엄 총사령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대충 짐작은 하고 있지 않겠소? 어차피 저들의 강습 마장기가 오크 해병보다도 훨씬 많으니, 이제 상관하지 않겠지만."
"오크 해병대를 막기 위해 만들어진 강습 마장기가 저들의 가장 큰 무기가 됐군요."
윌리엄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소. 우리도 강습 기간트를 만들긴 했지만, 다 합쳐봐야 150기 정도에 불과하오."
상대는 1,100기나 되는데, 150기면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가디언 제국은 그걸 알고 있었기에 여유롭게 중형 비공정을 나누어 진군할 수 있었고, 그것이 생각보다 빨리 이베리아 평원을 빼앗긴 이유였다.
그 순간 난 피식 웃어줬다.
윌리엄은 그걸 긍정의 신호로 봤나 보다.
기대감에 젖은 얼굴로 내게 물었다.
"왜? 방법이 있겠소?"
"네! 저들의 최대 장점이 이제 저들의 최대 약점이 될 겁니다."
"응?"
윌리엄과 지휘관들이 영문 모를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난 내 계획을 말해줬다.
윌리엄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저들이 대포의 존재를 미리 알고 있다면 아무 소용없는 작전이 아니오?"
"알고 있을 리가 없습니다. 여기 있는 지휘관들도 제가 어떻게 삼황자와 연합군을 궤멸시켰는지 모르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만······."
말리가 중장이 손을 들었다.
"가디언 제국의 정보력은 매우 뛰어납니다."
"그건 나도 알고 있소. 우리가 반란군과 전투를 벌일 때, 하늘에서 감시하던 가디언 제국의 비공정을 발견했소."
"뭐요? 거기까지 정찰 비공정을 보냈단 말입니까?"
"걱정하진 마시오. 격추했으니까."
내 괴조인형이 공중에서 갈가리 찢어발겼지.
난 윌리엄을 보며 말했다.
"단숨에 상황을 유리하게 끌고 갈 방법은 제 작전뿐입니다. 그리고 시간을 끌어봤자, 우리 전력만 더 노출될 겁니다."
"휴우! 지금 방법이 그것밖에 없겠군."
"일단 내일 우리가 먼저 움직이겠습니다. 십중팔구 안드레아스는 거대 비공정을 보고, 바로 공격하지 않을 겁니다. 조심성이 많은 사람이니까요. 우린 그걸 이용해 계속 밀고 갈 테니, 지상군은 일제히 총공격하십시오. 그럼 안드레아스는 비공정을 모아 한 번에 우릴 무너트리려 할 겁니다. 그리고 그것이 역전의 발판이 될 겁니다."
"좋소! 해봅시다."
"저희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지휘관들도 모두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반격의 시작이었다.
***
[가디언 제국군 사령부 카불 요새]
"충! 보고드립니다."
지도를 보고 있던 안드레아스 원수와 참모들이 전령을 쳐다봤다.
"말해 보게."
"아베르크의 비공정이 렌스크를 향해 진군 중입니다."
"진군?"
안드레아스가 하얀 턱수염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저들의 비공정이 몇 척이나 되나?"
"100기가 넘는다고 합니다."
"100기? 윌리엄 사령관이 백기를 던지는 건가?"
"정찰대의 보고엔 거대 비공정이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뭐라? 거대 비공정?"
안드레아스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타일러 후작이 벌써 남쪽의 연합군을 격퇴하고 왔단 말인가!"
다른 지휘관들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때 세르게이 대장이 말했다.
"원래 삼황자와 연합군 놈들은 여기저기 끌어모은 오합지졸이 아닙니까. 아베르크 제국군을 이기지 못한 게 당연합니다."
"기간트야 그렇지만, 거대 비공정까지 나포할 줄은 몰랐는데······."
안드레아스가 참모 라몬 아라곤 후작을 쳐다봤다.
"남쪽 전투를 정찰하러 간 우리 비공정이 왜 돌아오지 않는 건가?"
"거대 비공정이 이미 이곳에 있다면, 적들에게 들킨 것이 아니겠습니까."
"흠. 그렇겠군."
안드레아스 원수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저들의 다른 전력은 다 파악이 가능한데, 그 타일러 후작은 도무지 모르겠단 말이야. 엘프 차원에서 살아온 것도 그렇고, 탈로스 글론 연합 왕국과 전투도 불가사의하고, 오크 해병대도 그렇고. 이번엔 또 무슨 짓을 해서 2배가 넘는 비공정 전력을 이기고 온 거지? 거대 비공정은 왜 이곳 전장까지 가지고 왔을까?'
안드레아스가 생각이 많아졌다.
라몬 후작이 말했다.
"거대 비공정에 공성용 발리스타가 탑재되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걸 믿고 우리 비공정에 덤비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니야. 발리스타 12개로 우리 강습 마장기가 거대 비공정으로 넘어가는 걸 다 막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을 텐데······."
"그럼 오크 해병대를 거대 비공정에 잔뜩 태워서 우릴 상대하려는 게 아닐까요?"
"오크라······."
안드레아스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타일러 후작의 영지에 오크가 만 명이 넘는다고 했으니, 오크 해병대가 추가됐을 수도 있겠지."
세르게이 대장이 말했다.
"아무리 오크 해병대가 많아도 우리 강습 마장기엔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명색이 기간트가 아닙니까. 게다가 우리 강습 마장기는 1,000기가 넘으니까요."
"문제는 세르게이 대장이 아는 걸 타일러 후작이 모를 리가 없다는 거지."
"네?"
세르게이 대장의 의문의 1패였다.
안드레아스가 라몬 참모를 쳐다봤다.
"저들에게 강습 기간트가 몇 기나 있지?"
"최대 150기 정도일 겁니다."
"그거론 안 될 텐데······."
안드레아스의 생각이 길어지자, 참모가 말했다.
"일단 렌스크에 주둔한 비공정과 병력을 후퇴시킬까요?"
"그렇게 하게. 일단 놈이 무슨 자신감으로 덤비는지 그걸 알아봐야겠어. 그리고 우리 비공정을 모두 저들의 진군 방향에 집결시키게."
"네!"
***
[이베리아 평원 입구]
이곳 상공엔 가디언 제국의 비공정 200여 척이 집결해 있었다.
기함 콘도르 호엔 안드레아스 원수가 전선 지도를 보며 고민에 빠졌다.
"적들이 동시에 밀고 올라온다고?"
"그렇습니다. 이미 크웰강을 건너서 공격했고, 컨야드로 진군 중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저희 본대를 향해 저들의 비공정과 지상군이 동시에 진군하고 있습니다."
"대체 무슨 꿍꿍이지?"
안드레아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령관님, 뭘 망설이십니까? 비공정도 우리가 많고, 병력도 우리가 훨씬 많습니다! 그냥 밀어붙여야 합니다."
세르게이 대장이 말했다.
참모 라몬 후작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대로 두면, 애써 점령한 거점을 저들에게 빼앗기게 될 겁니다. 저들이 우리 눈을 속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윌리엄 사령관도 준비하지 못했는데, 그 짧은 기간에 타일러 후작이 뭘 더 준비했겠습니까?"
안드레아스는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뭔가 더 있는데······.'
찝찝했다.
"사령관님! 놈들의 비공정이 왔습니다."
이젠 싸울지, 아니면 후퇴해야 할지 결정해야 했다.
"중형 비공정을 30기 정도만 먼저 공격을 보낼까요?"
라몬 후작이 물었다.
안드레아스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 정도 병력은 적에게 그냥 갖다 바치는 꼴이야."
그때 또 다른 항해사가 다급히 들어왔다.
"사령관님! 괴수가 날아오고 있습니다."
"뭐? 괴수라고?"
안드레아스와 참모들이 급히 선미 갑판으로 올라갔다.
망원경으로 보자, 정말 무언가가 자신들 쪽으로 곧장 날아오고 있었다.
그건 몸길이가 15미터에 달하고, 날개를 펴면 60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괴조였다.
"대수림에나 있을 괴수가 어떻게?"
안드레아스는 눈을 똥그랗게 떴다.
"타, 타일러 후작이 타고 있습니다."
"뭐라?"
다시 망원경을 본 안드레아스는 경악했다.
타일러가 괴조의 등에 타고 조종하고 있었다.
"대수림의 괴조를 길들였단 말인가!"
"일단 몸부터 숨기십시오. 놈이 괴조를 이용해 사령관님을 노릴 수도 있습니다!"
라몬 후작이 말했다.
안드레아스도 순간 두려운 마음이 생겨 선미 갑판 아래 문으로 내려가 상황을 살폈다.
같이 내려간 라몬 후작이 말했다.
"타일러 후작은 안당고낙이라는 대수림 괴수를 탈 것으로 길들였지 않습니까. 아마도 새끼 괴조를 대수림에서 얻어서 키웠을 겁니다."
"저건 재앙급에 필적하는 괴수네. 인간이 길들일 수가 있겠나?"
안드레아스는 의문이었다.
하지만 눈앞에 타일러 후작이 타고 있으니,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아! 이제 보니 괴수를 믿고 있었군!"
171. 그건 반칙이 아닌가.
171. 그건 반칙이 아닌가.
안드레아스는 그제야 타일러가 저렇게 자신 있게 비공정을 끌고 나온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지금 자신들의 전력으로 저 괴수를 막을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괴조는 지금 상황에서 완전한 비대칭 전력이었다.
괴조는 순식간에 가디언 제국군 비공정 150미터 앞에 도착했다.
거긴 궁수들의 사정거리 밖이었다.
"끼이이이이아!"
"크윽!"
괴조가 괴성을 지르자, 근처에 있던 병사들이 귀를 막았다.
안드레아스도 지금은 머리가 하얘졌다.
수많은 전장을 누비던 백전노장도 인간의 명령을 듣는 괴수와 싸운 적은 없었다.
"사령관님, 뭘 하려는 걸까요?"
라몬 후작이 안드레아스를 쳐다봤다.
그는 지금 안색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괘, 괜찮으십니까?"
"큰일이다! 놈이 우리 비공정을 노리고 있다."
그 순간 괴조가 가까운 수송용 비공정을 향해 날아갔다.
"끼이아!"
"쏴라! 화살을 쏴!"
궁수들이 괴조를 향해 화살을 쏘았다.
탁! 타타탁!
하지만 괴조의 피부를 뚫을 순 없었다.
쾅! 콰직!
괴조가 발톱으로 선수를 할퀴자, 비공정 갑판이 뜯겨 나갔다.
"강습 마장기로 공격하라!"
10기의 강습 마장기들이 검과 창을 들고 달려왔다.
하지만 괴조는 날갯짓 몇 번에 뒤쪽으로 움직여 비공정의 약점인 프로펠러를 발톱으로 뜯어버렸다.
콰아앙!
"비공정이 기울어진다!"
"꽉 잡아라!"
갑판 위는 난리가 났다.
궁수들과 강습 마장기는 떨어지지 않기 위해 난간과 돛대를 붙들었다.
"끼이이아!"
괴조는 반대편 프로펠러까지 발톱으로 짓이겨 버렸다.
마지막으로 돛까지 찢어발기자, 비공정은 행동 불능이 됐다.
아무리 비공정에 강습 마장기가 많으면 뭘 하는가?
비공정이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었다.
괴조는 곧장 다른 수송기로 향했다.
사방에서 계속 화살을 쏘지만, 괴조를 막을 순 없었다.
"제길! 소형 비공정을 보내 위에서 공격해라!"
"하지만 비공정으로 괴조를 막을 순 없습니다."
"타일러 후작이 있지 않으냐! 괴조 말고 타일러 후작을 공격해! 그리고 강습 마장기를 희생하더라도 괴조의 등에 올라타 공격시켜라!"
"네!"
안드레아스가 명령했다.
두 번째 중형 수송용 비공정이 무력화됐을 때, 소형 비공정이 타일러와 괴수를 향해 공격했다.
"화살을 쏴라!"
"기사들은 창으로 공격해!"
위에서 화살을 쏘고, 강습 마장기들은 선수에서 창을 겨누고 있었다.
하지만 타일러는 상대해주지 않았다.
괴수는 곧장 위로 날아올랐다.
소형 비공정이 빠른 편이긴 하지만 괴조인형은 그보다 몇 배는 빨랐기에 잡을 수 없었다.
그러더니 다시 급강하했다.
위이이이잉! 콰앙!
또 다른 비공정의 프로펠러가 날아갔다.
시간이 갈수록 하나둘 비공정이 타격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뒤쪽에 아베르크 비공정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젠장! 우리 비공정을 무력화시키려고······."
안드레아스는 이제야 타일러 후작의 속셈을 알 것 같았다.
"후퇴해야 합니까?"
안드레아스는 고개를 흔들었다.
"놈은 우릴 끝까지 따라올 거다! 그럼 피해는 더 커질 거다!"
안드레아스가 이를 악물었다.
"그럼 어찌합니까?"
"소형 비공정을 더 동원해라!"
"네!"
소형 비공정 20여 척이 추가로 괴조를 쫓았다.
그 사이 안드레아스는 필사적으로 방법을 생각했다.
그때였다!
"저들의 지상군이 움직입니다."
"뭐라?"
갑판 난간으로 달려가 망원경으로 평원을 바라보았다.
본진을 향해 수백 기의 기간트가 전진하고 있었다.
예상보다 병력이 많은 것을 보니, 타일러 후작이 이끌고 온 병력이 추가된 듯 보였다.
그리고.
'크루세이더 기사단?'
아리칸 왕국의 크루세이더 기사단의 깃발이 펄럭였다.
주변을 살폈지만, 마르틴 국왕의 퀸급 기간트 우가스는 보이지 않았다.
안드레아스는 당황했다.
'마르틴 국왕은 어디 있는 거지? 대체 무슨 짓을 꾸미는 거냐?'
20여 년 전 마르틴 대공은 난생처음 자신에게 뼈아픈 패배를 안겨준 사람이었다.
뛰어난 방책을 펼쳤음에도 퀸급 기간트와 하나 된 크루세이더 기사단을 막을 수 없었다.
강력하고 용맹스러운 무력이 치밀한 작전과 계산을 뛰어넘을 수도 있다는 교훈을 남긴 전투였다.
그 크루세이더 기사단이 또다시 이곳 전장에 모습을 드러냈기에 안드레아스는 식은땀까지 흘렸다.
'글론 탈로스 연합군이 실패했구나!'
그들의 병력이 훨씬 많았기에 아리칸 왕국을 무너트리진 못하더라도 발목은 잡을 수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자신의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다.
'타일러 후작이 수작을 부렸나?'
안드레아스가 다시 공중을 쳐다봤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려 놓는다고 하더니, 괴조 하나 때문에 200여 기의 비공정 대형이 흐트러졌다.
게다가 수송용 비공정만 골라 프로펠러를 망가트리니, 벌써 여러 척의 비공정이 발이 묶였다.
'이대론 좋지 않다!'
항상 시간은 자신의 편이었는데, 이번엔 아니었다.
지상군은 가디언 제국이 우세했지만, 공중에서 자신들이 당하는 모습을 계속 보게 된다면, 사기가 떨어질 것이다.
그리고 비공정이 후퇴해도 사기가 떨어질 것이고.
지상군을 물려도 뒤를 공격당하게 된다.
왠지 전면 총공격을 강제당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전 비공정을 총공격시켜라!"
"네? 한번 공격시키면 물러설 수 없습니다."
"괴수 하나로 이 많은 비공정을 막을 순 없다. 저 괴수가 우릴 공격하기보단 방어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수송 비공정으로 거대 비공정을 나포하라! 공성용 발리스타를 이용하면 그래도 저 괴수를 타격할 수 있을 거다!"
"네!"
라몬 후작이 명령했고, 사방에 명령이 전달됐다.
그래도 그 짧은 시간 대처 방법을 생각해 냈다.
"속도를 높여라!"
"적들을 공격해라!"
가디언 제국의 비공정이 일제히 전진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괴조도 비공정을 따라가며 공격하기 시작했고, 소형 비공정 30여 척은 계속해서 괴조를 추격하고 있었다.
"괴수라니! 그건 반칙이 아닌가······!"
안드레아스는 괴조를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기간트가 만들어지고 300년.
인간의 전쟁에 괴수가 개입한 적은 없었다.
대수림에서 전쟁이 벌어질 때도 괴수는 곳곳에서 출몰했지만, 괴수는 지능이 떨어졌기에 기간트들이 힘을 합쳐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인간이 조종하는 괴수는 저렇게 영약하다.
'하아! 내가 너무 오래 살았나?'
산전수전 다 겪고, 이제 공중전이었다.
겨우 적응했다 생각했는데, 괴수라니!
하지만 아직 방법은 있었다.
거대 비공정을 장악하고, 그것을 이용해 괴조만 잡는다면 병력에서 압도할 수 있었다.
지금 가디언 제국의 비공정엔 1,000기가 넘는 마장기가 있었다. 그러니 저들의 비공정을 장악하고, 그 병력을 진군하는 기간트 후방에 내리기만 하면 전장을 지배할 수 있었다.
그리고 거대 비공정을 공격하면, 타일러 후작은 그걸 방어하기 위해 날아갈 것이다.
그때 괴조 위에 있는 타일러 후작을 소형 비공정으로 들이받거나 강습 마장기가 뛰어들어 괴조나 타일러 후작을 공격한다면 상황을 유리하게 수습할 수 있었다.
'그래! 타일러 후작만 잡으면 된다!'
안드레아스의 눈빛이 반짝였다.
***
'지금쯤 똥줄이 타겠지?'
그동안 괴조인형을 최대한 숨긴 이유가 결정적일 때 쓰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지금이 그 시기였다.
어차피 라디프 공작을 죽일 때, 괴조는 세상에 완전히 드러났다.
그러니 오늘 최대한 괴롭혀 주자.
다음엔 괴조에 대해 방비도 할 테니까.
콰앙!
저들의 비공정을 한 척씩 무력화시켰다.
여섯 척이 표류하자, 가디언 제국의 비공정이 일제히 전진했다.
'걸렸구나!'
안드레아스가 깊게 생각할 수 없게 정신없이 흔들어야 했다.
장기전으로 가게 된다면, 또 어떤 작전으로 우릴 괴롭힐지 몰랐다.
그러니 여기서 단숨에 전선 상황을 역전해야 했다.
"가자! 괴조!"
성사긴 놈들이 쫓아오긴 하지만, 괴조보단 빠를 순 없었다.
위아래를 오가며 최대한 저들의 수송용 비공정을 공격했다.
그렇게 3척의 수송용 비공정을 더 무력화시키고, 우리 기함인 거대 비공정을 향해 날아갔다.
이제 곧 전면전이 벌어지기에 준비해야 했다.
"끼이이아!"
난 거대 비공정 선미 위에 멈췄다.
그리고 아래로 뛰어내렸다.
투웅!
킹콩인형이 날 안았다.
곧바로 선미 갑판으로 올라갔다.
에테나가 말했다.
"소형 비공정이 먼저 접근합니다. 발리스타를 쏠까요?"
"그냥 무시해!"
"네!"
괴조인형은 거대 비공정 위쪽을 방어하게 했다.
괴조와 소형 비공정들이 뒤엉키며 먼저 전투를 시작했다.
그리고 곧 중형 비공정이 이쪽으로 몰려왔다.
기함을 먼저 장악하기 위험이었다.
"드워프 비공정을 좌우에 배치하라!"
"네!"
신호수들이 거울과 깃발을 이용해 열심히 명령을 전달했다.
마석 무전기가 아직은 개발되지 않았기에 한번 명령을 내리면 다시 명령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총 20척의 비공정이 좌우에 배치했다.
"발리스타는 중형 비공정의 프로펠러만 노려라!"
"네!"
사방에서 중형 비공정들이 기함을 향해 몰려왔다.
발리스타는 위쪽에서 접근하는 중형 비공정만을 공격했다.
거대 비공정 갑판엔 거대한 창이 깔려 있었기에 위에서 접근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저들은 좌우로 접근했다.
"드워프 비공정에 공격 명령을 내릴까요?"
"기다려!"
지상을 내려다보니, 이미 지상군은 가디언 제국의 진영까지 올라가 싸우고 있었다.
지금 우리 아래쪽엔 아무것도 없는 것을 확인했다.
위이잉!
그때 중형 비공정 한 척이 드워프 비공정을 사이를 유유히 통과해 거대 비공정 좌현에 붙었다.
쿠웅!
"갈고리를 걸어라!"
"어서 넘어가라!"
갈고리가 난간에 걸리고 비공정이 고정되자, 널빤지가 놓이고 강습 마장기 10기와 창을 든 50여 명의 병사가 거대 비공정 갑판에 뛰어 올라왔다.
"선미를 장악하라!"
"가자!"
쿵쿵쿵!
"놈들을 막아!"
강습 기간트 20기가 달려갔다.
지금, 이 비공정 갑판엔 150기의 강습 기간트가 모두 배치되어 있었다.
위이이잉! 쿵!
이번엔 우현에 비공정이 붙었고, 역시 10기의 강습 마장기와 병사들이 넘어왔다.
쿵! 쿵! 쿵!
"공격하라!"
"와아아아!"
"강습 기간트를 보내!"
사방에 수송용 비공정이 붙었다.
우리가 겁을 먹고 덤비지 않은 거로 생각한 중형 비공정들은 신나게 거대 비공정에 다가와 병력을 내리고 있었다.
벌써 10척이 차례로 붙었고, 그보다 배나 많은 비공정이 접근했다.
"지금이다! 놈들에게 지옥을 보여줘라! 공격하라!"
"공격 신호를 보내라!"
좌우에 있던 20척의 비공정에서 일제히 포문이 열렸다.
드르륵! 드르륵!
시커먼 포신이 가디언 제국의 비공정을 겨눴다.
'난 지금 이때가 제일 좋더라!'
아무것도 모르고 '저게 뭐야?' 하며 눈알을 굴리고 있을 때!
펑! 퍼퍼퍼펑!
20척의 드워프 비공정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쾅! 콰콰콰쾅!
지척에서 맞은 포탄은 모든 것을 뚫어버린다.
D급 괴수도 전면으로 맞으면 타격을 입는데, 3미터의 강습 마장기가 포탄에 무사할 리가 없었다.
접근하던 비공정에 구멍이 뚫리고, 갑판은 아비규환이 된다.
적 비공정으로 넘어갈 준비하던 기사와 병사들은 시커먼 포탄에 휩쓸려 사지가 날아가고 마장기는 부서졌다.
펑! 펑! 펑!
드워프 포병대는 8개의 대포를 계속 쏘아댔다.
대포는 내 인형의 집에 아직도 많았다.
그랬기에 추가로 10척의 드워프제 비공정에 대포를 장착했고, 드워프들은 인간 병사들을 조수로 두고 한 척에 30명씩 배치되었다. 대포 하나당 드워프 포병 3, 4명과 인간 2, 3명이 한 조를 이루었다. 드워프가 워낙 베테랑이었기에 인간들은 포탄을 나르고 대포를 밀어 올리는 심부름만 하고 있었다.
펑! 퍼퍼퍼펑!
야속한 대포는 계속 쏘아졌다.
"크악!"
"으악!"
갑판은 초토화되고, 프로펠러는 박살 났다.
동력을 잃은 비공정은 하나둘 이탈하고, 그래도 버티는 놈들에겐 다시 한번 대포가 쏘아졌다.
퍼퍼퍼펑!
순식간에 20여 척의 비공정이 침묵했고, 추락하거나 기울어져 전선을 이탈한다.
그리고 병사들과 강습 마장기가 지상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저들의 강습 마장기에도 낙하 장치는 없는 게 확실했다.
떨어지자마자, 땅이 움푹 파일 정도였다.
위이이잉! 쿵!
이미 한 차례 포격이 사방을 휩쓸었지만, 일부 비공정은 기어이 거대 비공정 옆에 붙었고, 강습 마장기와 병사들이 넘어왔다.
"죽어라!"
"선미를 장악하라!"
갑판에 먼저 넘어온 강습 마장기와 병사들은 이미 정리된 상태였다.
한꺼번에 병력이 모아서 달려들어야지. 10기씩 차례로 넘어와 봤자, 각개 격파당할 뿐이었다.
이제 와 포기할 수 없었는지, 비공정이 다시 접근했다.
'불나방이 따로 없군.'
펑! 퍼퍼퍼펑!
다시 대포가 쏘아지고, 저들의 비공정은 온몸으로 대포를 맞았다.
그리고 비틀거리는 상태로 거대 비공정이 아니라, 드워프 비공정 옆으로 붙었다.
하지만 이미 포탄에 갑판은 초토화되고 살아남은 강습 마장기와 병사는 몇 명 되지 않았다.
"넘어가라! 강습 마장기가 넘어가면 끝이다!"
기이잉! 쿵! 쿵!
3기의 강습 마장기가 드워프 비공정에 올라탔다.
그런데!
"쿠오오오오! 놈들을 죽여라!"
"쿠오크! 쿠오크!"
그들을 기다리는 건 오크 해병대 30명과 엘프 궁수들이었다.
오크 해병대가 사방으로 달려들어 강습 마장기를 공격했고, 비공정 아래로 던져 버렸다.
그리고 병사들은 두려움에 자기 비공정으로 넘어가다가 화살에 맞아 죽거나 역시 지상으로 떨어졌다.
그렇게 50기 가까운 중형 비공정이 순식간에 침묵했다.
이건 엄청난 전과였다.
강습 마장기 500기가 사라진 것이었고, 또 지상군 마장기 역시 500기가 사라진 것이었다.
기사들을 공중과 지상으로 나눠 쓰는 건 좋지만, 기사가 죽으면 공중과 지상 양쪽 다 손해였으니, 이건 저들의 최대 장점이 곧 단점이 되는 셈이었다.
"에테나! 이제 저들은 달려들지 않을 거야! 드워프 비공정을 움직여 저들의 중형 비공정을 격추하라고 신호를 보내!"
"네!"
전장의 바람은 이미 우리 쪽으로 불기 시작했다.
172. 일등공신.
172. 일등공신.
"끼이이아악!"
"응?"
운명의 실타래가 끊어지는 느낌에 비공정 위를 올려다보았다.
"괴조가 당하고 있어요!"
에테나의 다급한 목소리도 들렸다.
"허! 지독한 새끼들!"
소형 비공정 두 척에서 뛰어든 강습 마장기 4기가 괴조인형 위에 올라타 공격하고 있었다.
앞서 십여 기가 지상으로 떨어지거나 비공정 위로 추락했다.
몇 명은 창에 찔려 즉사하기도 했고.
하지만 기어이 강습 마장기들이 괴조인형의 등에 올라 피부를 마구 찌르고, 날개를 찢고 있었다.
괴조인형이 위험했다.
'괴조인형이 좀 더 활약하면 좋겠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인형의 집으로!
애써 올린 레벨을 초기화할 순 없지.
괴조인형이 사라지가 공중에 떠 있던 강습 마장기들이 추락했다.
역시 낙하 장치 같은 건 없었다.
"크헛!"
"으아악!"
쿵! 쿵! 콰직! 푸욱!
운이 좋은 둘은 갑판에 떨어졌지만, 운이 나쁜 둘은 날카로운 창 위에 떨어져 몸이 둘로 나뉘었다.
물론 갑판에 떨어진 강습 마장기는 강습 기간트들이 달려가 처리했다.
인형의 집을 열었더니 괴조 인형과 연결된 실이 거의 절반이나 잘렸다.
오늘 무리하긴 했지.
난 슬쩍 서쪽 하늘을 쳐다봤다.
날렵한 지휘 비공정이 보였다.
'윌리엄도 충분히 봤겠지?'
괴조인형을 이렇게 대 놓고 보여준 이유는 적을 혼란스럽게 하고, 안드레아스에게 총공격을 강제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 결과 저들은 불나방처럼 내게 달려왔고, 저들의 장점인 강습 마장기 기사를 절반 이상 죽였다.
그리고 괴조인형의 위력을 제대로 보여준 또 하나는 윌리엄 총사령관에게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약속은 잘 지키는 양반이지만, 완전히 믿을 순 없지.'
그동안 보아온 윌리엄 사령관과 시안 황자의 약속은 대체로 믿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공왕의 자리는 황제만이 줄 수 있는 자리였다.
시안 황자가 황태자를 죽이고, 쿠데타에 성공해 황제가 되었다면, 일은 쉽게 끝났을 거다.
하지만 황태자는 진짜 반역자였고, 병환으로 몸져누웠던 케인 황제가 건강을 찾았다.
황태자는 숙청됐고, 시안 황자는 자기 피 한 방울 안 흘리고, 거의 유일한 후계자가 됐으니 손해는 아니었다.
문제는 케인 황제가 나와 윌리엄, 시안 황자와 한 약속을 지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케인은 역대 황제 중에서 그래도 무난한 축에 속했지만, 권력을 나누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니 환갑이 넘어서도 황자들에게 자리를 넘겨주지 않았고, 오히려 세력을 비슷하게 나눠줘서 서로 경쟁하게 하여, 자신이 황제 자리에 더 오래 앉을 수 있도록 뒤에서 조종했다.
황태자의 나이가 이미 마흔이 넘었으니, 조바심이 날만도 했다.
그러니 이렇게 비대칭 전력인 내 힘을 제대로 더 보여줘야, 윌리엄과 시안 황자가 적극적으로 황제를 설득할 것이 아닌가!
'이런 개고생을 하는데, 공왕 자리는 얻어야지.'
날 사냥개로 봤다간 정말 사납게 거기를 물리는 수가 있다는 일종의 경고였다.
전방으로 고개를 돌려 전장을 살폈다.
가디언 제국의 주력인 중형 비공정은 아직도 많았지만, 우리 드워프 포병들이 열심히 싸워주고 있었기에 숫자가 계속 줄어들고 있었다.
저들의 중형 비공정은 우리 중형 비공정보다 조금 느렸다.
그러니 도망친다고 해도 곧 뒤를 잡히고 드워프 대포에 허물어졌다.
쿠웅!
에테나가 뒤를 가리켰다.
"비공정 한 대가 뒤에 붙었습니다."
"그래?"
사방을 감시 중이었지만, 거대 비공정 하부를 돌아서 왔는지 비공정이 접근하는 것도 몰랐다.
"저기다!"
"타일러 후작을 죽여라!"
강습 마장기 10기와 병사들이 내가 있는 선미 갑판을 향해 달려왔다.
하지만 선미 갑판 앞엔 강습 기간트가 대기 중이었다.
에테나가 기간트 기사들에게 명령했다.
"기사들은 후미에 적을 소탕하라!"
"네!"
강습 기간트 30기가 적들을 향해 달려갔다.
중형 비공정 한 척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아무래도 이것이 최후의 공격인 것 같다.
"헉! 타일러님! 저기 중형 비공정이 3척이 이쪽으로 돌격해 옵니다!"
"뭐?"
에테나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좌현 45도 방향에서 3척의 중형 비공정이 이 거대 비공정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미친! 자살 특공대야?"
마장기가 10대나 있는 묵직한 비공정이었다.
그런 비공정이 3척이나 갑판에 떨어진다면, 구멍이 뻥 뚫릴 수도 있었다.
그리고 선체를 공중으로 띄우는 비행석 장치도 상당히 손상될 수 있었고, 재수 없으면 추락할 수도 있었다.
"발리스타를 쏴라!"
발리스타가 거대 화살을 쏘았다.
쉐엑! 쉐엑!
쾅! 쾅!
하지만 선체에 박혔다.
"프로펠러를 쏘란 말이다!"
쉐엑! 퍼엉!
3미터의 화살에 프로펠러를 맞은 비공정 하나가 기울어지며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2척은 계속 날아왔다.
"하드 스타보드!"
"하드 스타보드!"
촤르르르르르!
엘프 항해사가 우현으로 키를 최대한 돌렸다.
그러자 메인 프로펠러가 맹렬히 회전하며 배를 우현으로 크게 선회시켰다.
하지만 거대 비공정은 속도가 너무 느렸다.
그때였다!
펑! 퍼퍼펑!
드워프 비공정 두 척이 앞을 막고 대포를 쏘기 시작했다.
"좋아! 계속 쏴라! 떨어트려!"
쾅! 콰쾅! 쾅!
포탄에 맞은 한 척이 화염에 휩싸이며 지상으로 급강하했다.
이제 남은 건 한 척!
펑! 펑!
콰앙!
"됐다! 맞았어!"
마지막 비공정의 프로펠러가 손상됐다.
하지만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두 드워프 비공정 사이를 지나 기어이 좌현 갑판으로 곤두박질쳤다!
"꽉! 잡아라!"
"충격에 대비하라!"
위이이이잉! 쾅!
콰콰콰쾅! 쿠쿠쿵!
45도로 박힌 중형 비공정은 기어이 좌현 갑판 끝에 추락했고, 좌현 메인 프로펠러를 셋이나 박살 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한쪽 갑판을 5미터나 휩쓸면서 구멍을 뚫고 곧장 지상으로 추락했다는 것이다.
정중앙에 박혔다면, 정말 큰일 날뻔했다.
'휴우! 역시 어서 내 비공정을 완성해야 해!'
난민 기지에서 만들고 있는 초거대 비공정을 하루빨리 완성해야 했다.
그 비공정은 갑판까지 괴수 부산물로 만들고 있었기에 기간트가 치고받고 싸워도 쉽게 부서지지 않았다.
"타일러님! 놈들이 후퇴해요."
에테나가 소리쳤다.
나도 안다. 보고 있었으니까.
안드레아스가 계속 들이받아 주면 좋겠지만, 공중에선 승산이 없다는 것을 알아챈 것 같았다.
그러니 저렇게 도망치지.
에테나가 물었다.
"추격할까요?"
난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지금 상태론 힘들어."
좌측의 메인 프로펠러가 셋이나 부서졌다.
가뜩이나 속도도 느린데, 지금 상태론 놈들을 쫓을 순 없었다.
그리고 괴조인형도 상처를 치료하고 운명의 실을 더 연결해야 했기에 당장 쓸 순 없었다.
'중형 비공정이 30여 척이라······.'
지금 저 멀리 후퇴하는 가디언 제국군의 중형 비공정 숫자를 대충 셌다.
그럼 오늘 저들의 중형 비공정과 강습 마장기를 70%나 줄였다는 뜻이었다.
소형 비공정은 60여 척 정도 달아났지만, 큰 위협은 아니었다.
그러니 전투는 대승이었다.
"모두 기함 주변으로 집결하라고 해!"
"네!"
공중에선 우리가 승리했다.
하지만 지상은 아직도 전투 중이었다.
후퇴한 안드레아스가 지금도 한 가지 모르는 것이 있었다.
자신들의 비공정에 마장기가 가득 있었지만, 120여 척의 우리 비공정엔 기간트가 한 대도 없었다.
지상군에 기간트와 기사가 한참 부족한 상황에서 비공정에 기간트까지 태울 순 없었다.
그랬기에 처음부터 우린 비공정에 기간트 싣기는 포기하고 지상을 밀어내기 위해서 총력전을 벌였다.
하늘은 150기의 강습 기간트와 일부 병력만 추가됐고, 나머진 오로지 오크 해병대, 드워프 포병대, 엘프 항해사와 궁수들만으로 싸운 것이었다.
난 지상의 상황을 다시 살폈다.
저들의 비공정이 후퇴하자, 사기가 오른 우리 기간트가 가디언의 마장기를 조금씩 밀어붙이고 있었다.
특히 아리칸의 크루세이더 기사단의 활약이 컸다.
다만 아직도 마장기 숫자가 기간트보다 더 많았기에 계속 밀어붙일 수 있을 진 미지수였다.
"저들의 후방에 기간트를 내릴 준비를 해라!"
에테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우린 기간트 없는데요?"
"나도 알아. 우리 기사들도 속을 수 있게 진짜로 후방에 병력을 내리는 척을 하란 말이야."
"그럼 지금 싸우고 있는 가디언 제국의 기사들이 속을까요?"
"우리가 속게끔 만들어야지!"
"네!"
우리 비공정이 차례로 고도를 낮췄다.
그리고 저들의 후미 쪽으로 이동했다.
그러자 바로 효과가 나왔다.
"오오! 타일러님 저들이 후퇴합니다!"
마장기가 썰물처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모두 다 후퇴한 것은 아니었다.
가장 앞쪽 대열에 선 마장기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은 몰려드는 기간트를 필사적으로 막았고, 뒤쪽에 마장기가 후퇴할 시간을 벌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장렬히 전사했다.
적이지만, 진짜 기사들의 모습이었다.
[이겼다!]
[적들을 몰아냈다!]
[와아아아아!]
승리의 함성이 20여 년 만에 이베리아 평원에 다시 울려 퍼졌다.
"자! 시간이 없다! 드워프 비공정에 우리 기사들만 태우고 남쪽 크웰강으로 이동한다."
"또요?"
"그래, 서둘러야 해! 북쪽 도시 컨야드까지 가야 하거든."
오늘 전장을 두 군데나 더 돌아야 했다.
***
[이베리아 평원 렌스크 시]
이틀 사이로 주인이 두 번이나 바뀐 도시는 의외로 평화로웠다.
가디언 제국은 이곳을 쉽게 장악했고, 이제 자신들의 도시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하루 만에 빼앗길 줄은 몰랐을 것이다.
다시 제 주인을 찾은 아베르크 제국 공군 본부 착륙장에 비공정이 내려앉았다.
"어서 오시오! 타일러 사령관!"
"고생하셨습니다."
윌리엄 총사령관과 시안 황자까지 마중을 나왔다.
그리고 마르틴 국왕과 각 군단장도 보이고.
난 북부 도시 컨야드에 주둔했던 가디언 제국군까지 몰아내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러니 저리 마중까지 나온 것이지.
윌리엄 총사령관이 말했다.
"일단 다들 안으로 들어갑시다."
우린 회의실로 들어갔다.
커널 대령이 현재 전선 상황을 설명했다.
"지금 가디언 제국군의 비공정은 모두 카불 요새까지 후퇴했습니다. 그리고 저들의 본대와 남부의 병력 역시 국경 도시를 모두 포기하고, 카불 요새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침략당한 영토를 거의 회복한 것이 아닙니까!"
"맞습니다."
"오오! 놈들을 막았다!"
"와아아!"
지휘관들이 일제히 환호했다.
단 이틀 만에 전선 상황이 역전됐다.
세 군데 전선에 벌어진 전투는 모두 아베르크 제국군이 승리했고, 가디언 제국군은 도시에서 농성할 생각도 없이 그대로 국경을 넘어 가디언 제국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윌리엄 총사령관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열심히 싸워주었네! 하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싸워준 타일러 사령관께 감사하오. 이번 전투의 일등공신은 당연히 타일러 사령관이오."
"맞습니다!"
"저들의 비공정을 격파하고, 빈 비공정으로 저들의 눈을 속였으니, 당연히 일등공신입니다!"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난 그냥 가만히 환호를 받았다.
말로만 하는 칭찬 따위는 내게 어떤 감흥도 주지 못했다.
난 눈에 보이는 이익을 원했고, 그건 이 전쟁이 끝나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전쟁은 이미 끝났다.
윌리엄 총사령관이 지휘관들을 진정시키고 말했다.
"우리가 대승을 거뒀지만, 아직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오. 저들이 병력을 국경에 집결시키고 있으니, 대비해야 할 것이오."
"타일러 사령관님의 불을 뿜는 비공정도 있으니, 이대로 공격해 저들의 비공정을 몰아붙이고, 카불 요새를 점령해야 합니다. 그리고 저들의 수도까지 계속 밀어붙여야 합니다."
"맞습니다. 지금 우리 군은 기세가 높습니다. 이참에 가디언 제국으로 진군해 저들의 영토를 가져와야 합니다."
지휘관들은 여기서 만족하지 못했다.
이미 내가 저들의 비공정과 강습 마장기 전력 70%를 줄였기에 더는 하늘에서 끌려다닐 필요가 없었다.
이대로 가디언 제국의 국경을 넘어 공격한다면, 계속 밀어붙일 수 있었고, 잘만 하면 가디언 서부 일대의 도시와 영토를 가져갈 수 있었다.
그때 마르틴 국왕이 손을 들었다.
"우리 아리칸 왕국의 비공정과 기사들은 그만 돌아가 보겠소."
"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가디언 제국군이 물러갔으니, 전쟁을 그만하겠다는 말이오."
윌리엄 총사령관과 지휘관들이 일제히 마르틴 국왕을 쳐다보았다.
173. 제 전쟁은 여기까지입니다.
173. 제 전쟁은 여기까지입니다.
마르틴 국왕은 차분히 말했다.
"우리 아리칸은 탈로스 글론 연합군의 공격을 받았을 때, 제국의 기사들과 병사들이 우리 왕국을 함께 지켜준 고마움을 기억하고 있소. 그래서 동맹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제국을 도운 것이오. 이제 가디언 제국과 큰 전투에서 이겼고, 저들을 국경 밖까지 몰아냈으니, 우리가 할 일은 끝난 것 같소."
3군단장 발리홀 중장이 말했다.
"가디언 제국의 병력은 아직 저희와 비슷합니다. 여기서 아리칸의 병력이 빠진다면, 우리가 유리할 것이 없습니다. 아니 불리해질 겁니다."
"맞습니다. 이번에 한 번만 더 도와주신다면, 동맹으로 그 은혜는 잊지 않을 겁니다."
4군단장 말라기 중장도 아리칸 왕국이 더 싸워주기를 바랐다.
"아베르크의 공군 비공정이 있지 않소. 하늘에서 몰아치고, 국경을 건넌다면 누가 아베르크 제국군을 막을 수 있겠소. 기사들도 지쳤고, 우린 이미 할 만큼 했소."
하지만 마르틴 국왕은 더 싸우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 같았다.
윌리엄 총사령관은 마르틴 국왕이 아니라 날 쳐다보았다.
설득해 달라는 뜻이겠지.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마르틴이 슬쩍 입을 열었다.
"정 우리 아리칸 기사들과 비공정을 쓰고 싶거든 대가를 지급하시오."
"대가요?"
"이번에 제국에서 나포한 가디언의 중형 비공정 20척과 비행석을 주시오."
마르틴 국왕의 말을 들은 윌리엄과 지휘관들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비공정이야 자신들도 많았으니, 상관없었다.
하지만 비행석이 어떤 물건인가.
지금은 마석보다 귀한 물건으로 비공정을 만드는 핵심 재료였다. 그리고 앞으로도 비행석의 활용도는 무궁무진했고, 언제 엘프 차원에 갈 수 있을지 몰랐기에 한정적인 자원이기도 했다.
윌리엄 총사령관이 물었다.
"비행석을 얼마나 원하십니까?"
"많은 양을 바라진 않소. 한 상자면 적당할 거요."
"상자 크기는요?"
"기간트용 마석 배터리 10개를 보관하는 상자에 비행석을 가득 채워주시오. 그럼 우리도 전투에 참여하겠소."
윌리엄은 짧은 한숨을 쉬고 날 쳐다봤다.
난 아예 다른 곳을 쳐다봤다.
윌리엄은 생각에 잠겼다.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겠지.
"비행석은 제가 바로 결정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황제 폐하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그럼 허락을 받으시오. 그리고 비행석을 가져오면 그때 전투에 참여하겠소."
마르틴 국왕의 이야기가 끝나자, 내가 손을 들었다.
"저희 발레리온 영지군도 그만 병력을 물리겠습니다. 제 전쟁도 여기까지입니다."
"뭐요?"
윌리엄과 지휘관들이 날 쳐다봤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타일러 사령관께서도 그만 싸우신단 말입니까?"
"아니 됩니다. 아직 저들의 비공정과 강습 마장기가 우리보다 많습니다. 타일러 사령관님의 병력이 꼭 필요합니다."
지휘관들은 당연히 만류했다.
윌리엄 총사령관이 날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타일러 사령관 대체 왜 그러시오?"
"약속대로 제국을 지켰으니, 그만 병력을 물리겠다는 말입니다."
"약속이라니요?"
"저와 분명 약속하셨습니다. 제국을 지킬 때까지 싸우기로. 그리고 제국을 지키면 제게 주기로 하신 것이 있지 않습니까? 그걸 먼저 받아야겠습니다."
윌리엄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아직 전쟁이 끝난 것이 아니지 않소. 그리고 이대로 가디언 제국군을 놔둔다면 오래지 않아 다시 국경을 넘을 것이오. 그럼 제국을 지킨 게 아니지 않소."
"그럼 윌리엄 총사령관께서 생각하는 제국을 지키는 시점이 언제입니까?"
"그거야······."
"카불 요새를 점령하면 끝입니까? 아니면 가디언 제국의 서부를 얻으면요? 그것도 아니면 가디언 제국을 완전히 멸망시켜야 제국을 지키는 겁니까?"
윌리엄 사령관이 입맛을 다셨다.
난 시안 황자를 쳐다봤다.
"황자 저하도 약속을 지키지 않으실 겁니까? 분명 제게 제국을 지키면 공왕의 지위와 영지의 독립을 약속하셨습니다. 전 제게 주어진 병력보다 2배나 많은 삼황자와 두 왕국 연합군을 격퇴했습니다. 게다가 650기밖에 없던 기간트 병력을 500기나 살려서 데려왔습니다. 그것뿐입니까? 어젠 가디언 제국의 비공정 전력을 70%나 줄였습니다. 물론 강습 마장기도 70%를 줄였고요. 그리고 지상군 전투에서도 비공정으로 저들의 눈을 속여 병력을 물리게 해, 전황을 유리하게 만들었습니다. 더 이야기해 볼까요? 크웰강 전선에선······."
"그만하시오. 충분히 들었소."
시안 황자가 말했다.
지휘관들 역시 이제야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었다.
"약속을 들어주기 전엔 저희 발레리온 영지군과 비공정은 전투에 나서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가디언 제국을 공격하는 것은 약속에 없던 것이니, 협상을 다시 하시죠."
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마르틴 국왕도 따라 일어섰다.
"한 달 정도 이곳에 주둔하겠습니다. 그때까지 약속을 지키지 않으시면 제게도 생각이 있으니 알아서 하십시오."
최후통첩하고 지휘 천막을 빠져나왔다.
날 따라 밖으로 나온 마르틴 국왕이 말했다.
"타일러 경, 정말 괜찮겠소?"
"뭐가 말입니까?"
"나야 비공정과 비행석을 받지 않아도 그만이지만, 경은 어쨌거나 아베르크 제국 소속이지 않소. 잘못하면 제국을 적으로 돌릴 수 있소."
"저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계속 싸울 의미가 없습니다. 그리고 가디언 제국의 힘을 줄이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들이 완전히 망하는 것은 우리에게 좋지 않습니다."
마르틴 국왕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무슨 말이오?"
"지금이야 강한 적과 싸우고 있으니 힘을 합치고 있지만, 아베르크가 가디언 제국까지 점령하게 되면, 대륙에 그들을 막을 수 있는 세력이 없습니다."
"그건 그렇겠군."
"그리고 제국의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서 지금의 군벌과 황족, 귀족들이 또 치열하게 싸울 겁니다. 인간의 욕심은 끝도 없으니까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저나 아리칸 왕국이 타겟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자신들의 비리를 덮기 위해 눈을 밖으로 돌리려는 수법은 정치인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아! 무슨 말인지 알겠소."
마르틴 국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우리가 가디언 제국을 공격하더라도 카불 요새와 서부 일대를 가져가는 정도로 마무리 지어야 합니다."
"그럼, 전투 참여 전에 협상을 다시 해야겠군."
"네. 저도 딱 거기까지만 도울 겁니다. 그 정도만 해도 가디언 제국이 다시 회복하려면 최소 20년은 걸릴 테니까요."
"하하! 타일러 경이 이젠 정치도 잘하는구려."
"계속하다 보니, 조금 늘긴 하는 것 같습니다."
마르틴이 피식 웃었다.
"저들이 황제의 답변을 받아오는데, 얼마나 걸리겠소?"
"길어야 보름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디언 제국은 방비를 더 철저하게 할 것이고, 그만큼 아베르크의 병력 피해는 더 커지니까요.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으려면 더 서두르겠죠."
황제도 분명 전황을 보고 받으면 가디언 제국의 땅이 욕심나겠지.
아직 어떤 황제도 성공하지 못했던 가디언 제국의 땅을 대거 차지할 기회였으니까.
"시간도 남았는데, 한잔하는 게 어떤가?"
"전 비공정을 수리하러 가야 합니다."
"응? 저 거대 비공정 말인가?"
"네."
"사람이 어떻게 일만 하고 사나? 가끔 좀 쉬어야지."
"일단 수리가 마무리되면 한잔하시죠. 제가 아리칸의 야영지로 가겠습니다."
"쩝. 알았네."
난 마르틴 국왕과 헤어져 비공정 착륙장으로 향했다.
지금 헬가우스 호는 공군 기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번에 나포한 중형 비공정 안에서 가디언 제국의 마장기를 챙기고 있었다.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은 그 멀쩡한 마장기를 인형의 집으로 빼돌리는 일이었다.
"충!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오랜만이군. 블리언 남작."
타일러의 동생 블리언 남작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절 찾으셨다고요?"
"그래. 펠릭스 단장에게 이야기는 들었다. 결정적인 순간에 우리를 도왔다고."
"네. 저희는 강제로 전장에 끌려온 겁니다. 라디프 공작이 병력을 내지 않으면 영지를 공격하겠다고 했습니다. 바이마르 영지는 가깝고, 수도는 머니 어쩔 수 없었습니다."
"나도 알아. 테레니스 영지와 이번에 협력한 남부 영지들은 피해가 없을 거야. 이미 윌리엄 총사령관에게 보고했다."
"알아주시니 감사합니다."
블리언이 살짝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개리 경의 건강이 좋지 않다고 들었다."
"그렇습니다."
"자네가 곧 테레니스의 영주가 되겠군."
"솔직히 영주가 되고 싶진 않습니다. 저도 발레리온 영지로 가고 싶습니다."
"뭐?"
난 블리언을 빤히 쳐다봤다.
"하루도 대장님과 전우들을 잊어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함께 한 시간은 비록 1년 반 정도지만, 제 인생에서 그때만큼 즐거웠던 적이 없습니다."
"허! 대수림에서 괴수를 잡는 게 뭐가 즐겁다고."
"대장님과 그리고 동료 전우들과 함께했기에 즐거운 거 아니겠습니까. 아무래도 테레니스 영주의 길은 제 길은 아닌 것 같습니다."
"배부른 소리 하지 마라. 난 편하게 살고 싶어서 이렇게 싸우는 거야. 너도 편하게 살아."
"그러지 말고 저도 데려가 주십시오."
난 고개를 흔들었다.
"정 나를 따르고 싶다면, 일단 테레니스의 영주가 돼라! 그리고 기사를 양성하고 기간트와 병력을 늘려."
"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인재가 아니라 세력이다. 테레니스는 윈데르 왕국과 트와이트 대마경과 붙어 있는 변경백이니, 병력을 늘려도 의심을 받지 않을 거다."
블리언은 예상밖에 대답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머지않아 난 제국에서 독립해 나만의 왕국을 만들 것이다. 그때가 되면 아베르크 황제와 권력가들이 어떻게 나올지 모른다. 그때 내가 필요한 것은 세력이다."
"하지만 제가 어떻게······."
"물론 혼자선 할 수 없겠지. 그래서 내가 널 따로 부른 것이다. 날 따라와라!"
"네? 네!"
난 블리언 빈스를 데리고, 거대 비공정으로 올라갔다.
***
"네? 바이마르 대영지를 장악하라고요?"
블리언이 경악했다.
"전에 나포한 바이마르 비공정 20척을 주겠다. 그리고 펠릭스 단장과 하얀 악마 기사단을 붙여주마. 지금 당장 테레니스 기간트 병력을 태우고 바이마르 대영지로 가라. 그리고 단숨에 영지와 기간트 공방을 장악해라."
"그래도 괜찮을까요?"
"물론이다. 너와 테레니스 영지군은 반란군을 제압하는 것이다. 그러니 대의는 너희에게 있다. 가서 바이마르 대영지를 장악하고, 귀족과 반란자들을 모두 색출해 수도로 보내라. 그럼 황제도 그 공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너무 커지는 스케일에 블리언이 마른침을 삼켰다.
"지금 제국 남부에서 테레니스 영지의 기간트 병력을 능가할 영지는 없다. 그러니 황제도 제국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라도 바이마르를 점거한 테레니스에게 대영지의 소유권을 넘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나도 뒤에서 힘을 써주마. 그러니 영지를 점령하거든 테레니스의 병력을 추가로 바이마르 대영지로 옮겨서 도시와 사회 전반을 완전히 장악해야 한다."
"그런 큰일이라면 직접 하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난 피식 웃어줬다.
"내가 움직이게 되면 영지는 장악할 수 있겠지만, 그걸 지키기가 쉽지 않다."
발레리온과 바이마르 대영지는 거의 제국의 끝과 끝이니까.
하지만 테레니스 영지는 바이마르와 기차로 사흘 거리다. 비공정을 이용하면 하루면 도착할 수 있지.
지금이야 동부 전선이 다급해 전 병력을 다 이끌고 왔지만, 곧 가디언 제국과 국경이 안정되면 바이마르는 분명 이번에 공을 세운 누군가에게 넘어갈 것이다.
십중팔구는 시안 황자 측이나 바이마르 연합군을 물리친 1군단장, 서부군 사령관 쪽에 넘어갈 가능성이 컸다.
내게 공왕의 자리를 넘겨주는 마당에 남부의 대영지까지 넘겨줄 리도 없고.
다른 놈 좋은 일 시킬 바에야 그래도 날 따르는 블리언에게 넘기는 게 좋지 않겠는가.
그래서 블리언을 따로 부른 것이었다.
"한번 해 보겠습니다!"
블리언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 그리고 나중엔 그곳을 스스로 지켜야 해!"
"알겠습니다."
난 블리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블리언 남작, 난 자네를 믿는다. 대수림에서 전투를 기억해라. 이 세상은 대수림과 같다. 힘이 없으면 당하는 것이다."
"네! 맡겨주십시오."
"좋아! 지금 당장 움직여!"
척!
블리언이 내게 경례했다.
그날 밤 블리언과 테레니스 영지군.
그리고 펠릭스와 하얀 악마 기사단은 남부의 대영지 바이마르로 이동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