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novel

22화 진흉(眞凶): 진짜 범인



22화 진흉(眞凶): 진짜 범인

목판을 확인한 영은 다시 소매로 들어갔다. 장문봉은 작게 한숨을 쉬곤 함께 온 하 씨 집안 모자에게 물었다.

“너희들은 이 사건의 피해자로서 내게 하고픈 말이 있느냐?”

장문봉의 말에 하 씨의 아들은 털썩 무릎을 꿇으며 소리쳤다.

“대인! 저와 제 아내 그리고 어머니께서는 절대 그런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 독은 분명 다른 사람이 쓴 것일 것입니다, 제발 저희의 억울함을 풀어주십시오!”

장문봉은 하 씨의 부인에게도 질문을 던졌다.

“너는 어찌 생각하는가?”

“대인, 우리 집 며느리는 언제나 효심이 지극했습니다. 저는 정말이지 며느리가 제 남편을 독살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시어머니인 하 씨의 부인까지 울며 그리 대답하자, 듣고 있던 포 씨도 함께 눈물을 그치지 못했다. 이들의 모습에 장문봉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리 끈끈한 가족 간의 믿음을 보니, 본관이 절차 외의 심문을 진행한 것에 보람을 느낀다. 뇌홍!”

“예!”

뇌홍은 크게 대답하며 다가왔다. 호위를 가까이 부른 장문봉이 그에게 몇 마디 귀엣말을 했다.

“이 일은 위험하니 반드시 조심하여 진행하도록 하라.”

“알겠습니다.”

뇌홍은 다른 호위들과 함께 급히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모두 무슨 일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저 이 상황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궁금함을 참지 못한 오관이 결국 입을 뗐다.

“장대인, 혹시 진범을 알아내신 것입니까?”

“잠시 후면 알게 되실 것입니다.”

오관의 질문에 장문봉이 웃으며 짧게 대답하자, 서생 무리도 덩달아 흥이 올랐는지 소리를 죽여 가며 다시 떠들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장대인이 진범이 누군지 알아낸 것 같지?”

“정말 대단하군! 어디서 알게 된 것인지, 전혀 모르겠는데 말이야.”

“그러니까 장청천이라 불리는 것이겠죠.”

명상은 턱을 괴고 앉아 장문봉을 지긋이 바라보며 황홀한 얼굴로 말했다.

“장대인의 저 진지한 표정 정말 너무 멋있다. 관리들은 하나같이 기름에 절인 것 같은 뚱뚱한 사람들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멋진 관리도 있었다니…. 정말 대단해!”

“진짜 범인은 누굴까?”

그런 명상의 말을 흘려들으며 명호가 중얼거렸다.

명상은 장문봉의 외모에, 명호는 사건에 온통 집중하고 있는 동안, 명미는 말없이 장문봉의 소매에서 나왔던 영을 떠올렸다.

영은 세상 만물에 존재하는 신령한 기운이다. 예를 들어 여방원에 누군가 묻어 두었던 작고 오래된 물건들에도 급이 낮지만, 영이 깃들여있다. 자신의 의지를 가진 영들은 이런 영들에 비해서 급이 높았다.

‘장대인과 함께하는 저 영은 자신의 의지를 가진 것이 확실해 보이는 급이 높은 영이야. 저런 영이 어떻게 장대인과 함께 하는 것일까? 장대인은 영력도 없는 범인(凡人)으로 보이거늘….’

명미 일행이 차를 두어 번쯤 비웠을 때쯤 드디어 급한 발소리와 함께 기다리던 사람들이 돌아왔다.

“대인, 잡았습니다!”

들고 온 자루를 보이며 뇌홍이 보고하자 장문봉은 별일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진범을 보이거라.”

“예!”

뇌홍은 호위들에게 명하여 수집한 증거물들을 뒤쪽으로 옮겼다. 그러는 와중 몇몇 호위들은 대당(大堂)에 있던 포 씨와 그의 가족들도 뒤로 이동하게 했다. 그러자 금세 커다란 빈 공간이 대당에 생겼다.

주변을 둘러싼 사람들이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자루에 뭐가 있긴 있어? 납작하게 눌린 것이 사람이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사람은 못 들어가지, 설마 귀신인가?”

귀신이란 소리를 들은 사람들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귀신이라니, 그런 소리 마시오!”

“정말 귀신일 수도 있는 거 아니야? 하 씨 집안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들이 없고, 포 씨가 한 일도 아니라면 귀신이 한 게 아니고 뭐겠어?”

누군가 이 사건이 귀신의 소행이 아니냐고 의심하자, 사람들은 소름이 돋았다. 그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이 일제히 자루로 쏟아졌다.

뇌홍이 자루를 묶고 있던 끈을 풀었다. 그러길 잠시.

꿈틀꿈틀.

자루가 조금씩 움직이더니, 이윽고 얇은 백사 한 마리가 쓱 하고 나왔다.

“배, 뱀! 뱀이다!”

“아니 무슨 뱀이…!”

명상이 소름이 끼치는지 또다시 명미의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뱀이 있어!”

“범인이 뱀이라고?”

명호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고개를 내미는 사이, 명미는 인상을 쓴 채 생각에 잠겼다.

대당이 소란스러워진 와중에 오관은 뱀을 보곤 당황한 얼굴로 장대인에게 물었다.

“장대인, 뱀이라니 이게 무슨 의미입니까? 하 씨를 죽인 것이 이 뱀이란 것입니까? 분명 그의 몸에는 다른 상처가 없다고 말씀을 드리지 않았습니까?”

“뱀독에 의한 중독이 꼭 물려야만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장문봉이 계속 말을 이었다.

“뇌홍, 이 백사를 어떻게 잡았는지 오대인에게 고하라.”

“알겠습니다.”

뇌홍이 목소리를 높여 고하기 시작했다.

“명령을 받은 저는 하 씨의 집에 당도하여 부엌을 살피던 중 창틀 위로 작은 틈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바로 물을 끓여 창틀에 올리고 수증기를 위로 올려 보냈습니다. 이렇게 몇 번을 반복하자 틈에서 이 뱀이 기어 나왔습니다. 그렇게 잡아 온 것입니다.”

장문봉이 오관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오대인, 이제 아시겠지요?”

곁에 있던 영평현령은 창백하게 변한 얼굴로 뭔가 깨달은 듯이 중얼거렸다.

“포 씨가 뜨거운 탕면을 창가에 두자, 그 증기를 쐰 뱀이 더워서 움직인 것인가? 그러다가 뱀이 탕면 속으로 독액을 흘렸다는 말인가?”

억울한 판결을 내렸었다니! 영평현령은 정신이 혼미해져 움직일 수가 없었다.

“사실인지 아닌지 증명하는 일이 남았다.”

장문봉이 다시 한 번 말했다.

“닭 한 마리를 가져와 뱀에게 물리게 한 다음, 닭이 하 씨가 죽었을 때와 같은 모습인지를 확인하도록 하라.”

장문봉의 말이 떨어지자 뇌홍은 뱀을 사로잡을 방법을 생각했다. 그는 뱀이 자신을 물기 전에 빠른 손놀림으로 머리를 낚아채려고 했다. 뱀을 잡아 올 때도 같은 방법을 사용했기에 그는 이번에도 쉽게 잡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뇌홍이 뱀을 잡으려던 순간, 뱀이 갑자기 꼬리를 휘두르며 방향을 바꿨다. 뱀은 날카로운 독니로 뇌홍의 손가락을 물려고 했다. 크게 당황한 뇌홍은 자신도 모르게 뱀을 쳐버렸고, 이에 뱀은 반대편으로 날아가고 말았다.

“아앗!”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고 있을 때, 뱀은 무방비한 상태였던 다른 호위의 몸 위로 날아가고 말았다.

“으아악!”

놀란 호위는 몸을 미친 듯 흔들었고, 그 바람에 뱀은 또 다시 한 쪽으로 날아갔다.

하필 뱀이 날아간 곳은 별실이 있는 곳이었다. 높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뱀은 불행히도 대나무 발 너머로 날아가 별실 안으로 떨어졌다.

“꺄악!”

명상이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오자, 대당에서 판결을 보고 있던 명성이 깜짝 놀라 외쳤다.

“상아?”

그때, 명성의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악!”

‘이 목소리는 명호 아닌가? 명호까지 있었던 거야?’

명호가 닭똥 같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별실에서 뛰쳐나왔다. 명성이 그를 보고 크게 외쳤다.

“명호야! 이 사고뭉치들! 대체 언제부터 와있었던 거야!”

그때, 명상이 소리를 지르며 별실을 가리켰다.

“명현… 명현 언니가 안에 있어요!”

그 말에 명성의 온몸이 얼음물이라도 뒤집어쓴 듯 차갑게 굳어버렸다.

이때, 뇌홍은 상황을 파악하고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화살보다 빠르게 움직인 그는 도를 휘둘러 대나무 발을 내리쳤다.

“뱀은 어디 있…!”

그러나 그는 차마 뒷말을 이을 수 없었다.

별실에선 단정하게 앉은 소녀가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녀가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자, 뇌홍은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수려한 그녀의 눈썹 아래에 자리 잡은 아름다운 눈망울은, 마치 깊은 산에서 흐르는 계곡의 물처럼 맑았다.

물결이 생동하듯 소녀의 눈망울에는 생기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갓 피어난 연꽃처럼 청초한 소녀의 주변으로는 마치 봄이 온 듯 따스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소녀의 아름다움은 주변의 모든 이들을 매혹했다.

“….”

그토록 어수선하여 시끄러웠던 사방이 순식간에 정적에 휩싸였다.

백옥처럼 순결해 보이는 소녀의 아름다움이 드러난 순간, 마치 주변의 모든 것이 암막에 휩싸인 듯 빛을 잃었다. 오직 소녀만이 이 공간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것 같았다.

“저기에 있어요!”

명상이 지른 고함에 잠시 모두를 휘감았던 정적이 깨어졌다. 뇌홍도 그제야 정신을 차리곤 그녀가 가리킨 곳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뇌홍의 몸이 다시 한번 굳었다.

작은 뱀이 다반(*茶盤: 차 다기를 올려놓는 쟁반)에 놓인 떡 위에 꽂혀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머리 정중앙이 젓가락에 꿰뚫려서 말이다.

뚝 뚝-.

뱀에게서 흘러나온 피는 아래로 흘러 떡을 적시고 있었다. 뱀은 아직 살아 있는 듯 꼬리를 천천히 양옆으로 움직였지만, 이내 움직임이 멈추었다.

뇌홍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놀란 얼굴로 명미를 바라보며 물었다.

“낭자, 이 뱀을… 낭자가 죽였습니까?”

* * *

명미가 일어나 단정히 예를 표했다.

“뱀이 날아 들어와 놀란 마음에 경황없이 손에 있는 것을 휘두른 것 이온데, 그것이 우연히 맞은 모양입니다. 저 때문에 판결이 지체된 것이지요? 정말 죄송합니다.”

‘그 말을 지금 믿으라는 것인가? 이렇게 차분한 태도로, 놀라서 경황없이 휘둘렀다고? 웃기는 소리!’

뇌홍은 속으로 별생각을 다 했지만,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그때, 대당에 있던 장문봉의 목소리가 뇌홍의 귀에 들렸다.

“낭자가 무사하면 되었다. 백사는 죽었으나 독은 아직 사용할 수 있으니 실험을 계속한다. 뇌홍, 백사를 가져오라.”

“알겠습니다.”

뇌홍은 백사의 머리에서 젓가락을 뽑고 대당으로 돌아갔다.

판결을 위한 심리는 계속되었지만, 조금 전 있었던 소란으로 인해 사람들은 전처럼 판결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방금 보았던 천하절색의 눈빛이 계속 아른거렸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뉘 집 낭자이기에 이토록 마음을 흔드는 미색을 가졌단 말인가!

명상이 날듯이 다가와 명미를 살폈다.

“언니! 괜찮아? 뱀한테 어디 물린 건 아니지?”

“현아!”

명성과 명호도 뒤이어 바로 별실로 뛰어 들어왔다. 세 사람은 모두 놀란 얼굴로 명미를 둘러싸곤 다친 곳이 없는지 살펴보았다.

“응, 난 괜찮아.”

명미는 멀쩡한 손을 위아래로 보이며 말했다.

“봐, 괜찮지? 물리지 않았으니 모두 걱정하지 마.”

“천지신명님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명상은 큰 재난에 휩쓸렸다가 목숨을 건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만약 현 언니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다면 자신은 분명 아버지께 혼쭐이 나, 다리몽둥이가 적어도 세 번은 부러졌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