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이부인, 위씨
지온이 이풍당에 도착했을 때, 지씨 가문의 이부인은 마침 포씨 유모의 보고를 받고 있었다.
“정말 그리 하겠다 했단 말인가!”
이부인, 위씨(魏氏)는 삼십 대로 보이는 외모를 갖고 있었다.
둥그런 얼굴에 눈썹이 길고 미간이 널찍한 것이 보기에도 복이 많은 관상이었다.
위씨 부인은 확실히 복이 많았다.
위씨는 한미한 가문의 여식으로 그녀가 지씨 집안과 정혼을 할 적엔 지씨 가문이 아직 흥하지 못한 때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도 지씨 가문에 시집오지 못했을 터였다.
운이 좋게도 위씨 부인이 정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아버지가 연이어 높은 관직으로 영전(*榮轉: 전보다 더 좋은 자리나 직위로 옮김)을 하며 단번에 천자를 보필하는 신하가 되었다.
더욱 운이 좋았던 것은, 지씨 집안의 장남이 단명한데다 뒤를 이를 아들이 없어, 차남인 위씨 부인의 남편이 가문의 주인이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모든 것이 위씨 부인이 원하는 대로 되었지만, 딱 한 가지 그녀를 괴롭게 하는 일이 있었다. 딸이 열다섯 살이 되었는데, 여전히 딸의 혼사가 확실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그녀의 골칫거리였다.
위씨 부인의 시아버지가 맺은 혼약은, 사돈이 될 집안의 수준이나 혼약을 맺을 상대가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운 혼약이었다.
그러나 혼약을 맺을 당시엔 대노야가 살아있을 때였기에 그 혼약은 가문의 적장녀인 지온의 것이었다.
그 때문에 위씨 부인은 왜 자신의 딸인 지서에게 이런 기회가 돌아가지 않는 것인지를 통탄하며 이를 악물고 바들거렸다.
그 후,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대노야 역시 세상을 뜨자, 그녀의 마음이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시아버님과 유 노태사님은 서로 술을 마신 후 혼약서를 쓴 까닭에 정확하게 몇째 손녀를 혼약자로 정할 것인지 정하지 않았어. 이름을 적은 것도 아니고 거기다 적장녀인 지온은 일곱 살에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고 있으니, 우리 딸 지서가 유씨 집안에 시집가도 되지 않겠는가?’
그러나 유씨 집안은 그리하는 것을 반기지 않으며 대답을 미루었고 그렇게 애타는 시간만 보내고 있을 때, 적장녀인 지온이 돌아왔던 것이다.
그리고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느낌이었던 위씨 부인은 곧 큰 기쁨에 휩싸였다.
지온이 가문 밖에서 자라며 고약한 성품을 가지게 되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지서와 지온을 유씨 일가 앞에 데려다 놓으면, 그들이 누구를 선택할지는 뻔했다. 역시, 그들은 지서를 선택했다.
유씨 집안의 인정을 받자 몇 년이나 위씨의 속을 끓이게 했던 고민도 끝이 보이는 듯했다.
이제 위씨 부인의 관심은 오직, 지온의 손에서 증표를 가져오는 것뿐이었다. 그래야만 지서의 혼사가 완벽하게 마무리가 될 터였다.
포씨 유모가 말했다.
“큰아가씨께서 그리 말했습니다. 제가 듣기론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위씨 부인과 옆에 있던 위씨의 동서가 서로 시선을 맞췄다. 둘은 의심했다.
지온의 성격이 어떠한지 그녀들도 보지 않았던가?
‘자신의 말만 옳다 우기며 다른 이들의 말은 뭐라 해도 듣지를 않던 고집스런 아이가, 이리 갑자기 마음을 비울 수 있단 말인가?’
그녀들의 생각을 읽은 듯, 포씨 유모가 조금 전 있었던 대화들을 자세하게 들려주었다.
“제 생각엔 큰아가씨께서 상황을 받아들이신 것 같습니다. 이제 큰댁엔 대부인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분은 아가씨가 출가한 사이에 들어온 계모이니 아가씨가 그분을 의지하려 해도 쉽지 않겠지요. 그러니 앞으로 아가씨의 미래는 모두 노야와 부인께 의지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유씨 집안 역시 지서 아가씨를 택하겠다고 한 상황이니 큰아가씨께서도 이러한 상황을 받아들이실 수밖에 없으셨겠지요. 아니 그렇습니까?”
위씨의 동서인 장씨(張氏)가 웃으며 동의했다.
“제 생각도 그런 것 같습니다, 둘째 형님. 본래 아버님께서 혼약을 하실 때 누구라고 정하지도 않으셨잖아요. 유씨 가문에서 지서를 마음에 들어했으니, 그 혼약은 지서의 것이지요. 그것이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지온이 인정했다는 것은 이러한 상황을 받아들였다는 것이고요. 좋은 일입니다.”
그러자 위씨 부인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으면 좋겠네. 이대로 계속 난리를 부리다간 집안이 흔들리겠어. 내가 숙모가 되어 그 아이를 홀대하는 것이 아니야. 누가 제대로 배우지 못하여 유씨 집안 눈밖에 나라던가? 이 혼약은 아버님께서 생전에 정하신 것이네. 이러다 두 가문 사이의 인연이 끊어지기라도 하면 아버님께서도 얼마나 마음이 좋지 않으시겠나? 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안 그런가, 동서?”
입으론 그렇다 하는 장씨 부인이었지만 사실 그녀의 속마음이 어떨지 누구도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이야기하고 있을 때,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어머니!”
들어온 이는 열네댓 살쯤 되어 보이는 소녀였다.
가느다란 어깨와 여리여리한 허리에 이목구비가 시원한 미소녀였다. 그러나 피부가 조금 까무잡잡한 게 흠이었다.
위씨 부인의 표정이 부드럽게 바뀌었다.
“지서야, 동생과 놀아주지 않고 어찌 나온 것이냐?”
지씨 가문의 둘째 아가씨, 지서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위씨 부인의 옷깃을 쥐며 애교를 부렸다.
“제 이야기를 하고 계셨으면서, 저는 듣지도 못하게 하시려고요?”
그 말에 두 부인이 까르르 웃음을 지었다.
장씨 부인이 말했다.
“너도 밖에서 들었지 않니? 이제 안심하거라. 네 사촌 언니가 드디어 철이 든 모양이야.”
지서가 예쁜 눈썹을 아래로 휘며 여전히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저는 어쩐지 이상합니다. 큰언니는…… 언니가 어떤지 저희 모두 보았는데 갑자기 이리 이해를 했다 하니, 혹시 또…….”
지서가 뒷말을 흘렸지만, 두 부인들은 지서가 하고자 하는 말을 알아챘다.
‘혹시 또 기회를 잡아 난리를 부리려는 것이 아닌가?’
큰아가씨, 지온은 집으로 돌아온 후 울거나 난리를 피웠고 그도 아니면 목을 매는 것 말고는 달리 한 일이 없었다.
얼굴만 그리 아름다우면 무엇 하랴? 어리석고 바보 같은 행동만을 해대는 것을.
이 혼사를 원한다면 스스로 가진 것이 무엇인지를 떠올려 봐야 하지 않겠는가? 부모는 모두 세상을 떠났고, 외가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겨우 있는 것이라곤 생면부지의 계모 한 사람뿐인데, 계모가 지온을 위해 혼처를 알아봐 줄 수 있겠는가? 더구나 유씨 집안 역시 그녀를 좋게 보지 않는 마당에 말이다.
“그 아이에겐 다른 방법이 없다.”
위씨 부인이 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우리가 훼방을 놓은 것이 아니라 유씨 집안에서 그 아이를 원치 않았던 것이야. 그러나 넌 신경 쓰지 말고 시집갈 준비나 하고 있거라.”
지서는 자신의 어머니를 믿었기에 조신하게 대답했다.
“알겠어요, 어머니.”
그때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큰아가씨!”
포씨 유모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보시지요, 오지 않았습니까.”
위씨 부인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곤, 붙잡고 있던 손을 놓으며 딸을 보내려 했다.
그러자 지서가 제 어미의 소매를 붙들며 말했다.
“어머니, 저도 남아있겠어요.”
위씨 부인이 대답하기도 전에 지서가 다시 강조하며 말을 덧붙였다.
“언니가 정말 계속 난리를 부리려고 한다면, 앞으로 저도 언니를 상대해야 하니까요.”
딸의 말이 옳다고 생각한 위씨 부인이 대답했다.
“알겠다. 대신 이곳에 남아있되, 그 아이와 다투어선 안 된다. 그 아이는 밖에서 오래 자라며 강호의 물이 많이 들었지만, 넌 아니야. 넌 지씨 집안의 둘째 아가씨고 제대로 된 세가의 규수다.”
위씨 부인이 마지막 말을 유독 강조했다.
제대로 된 세가의 규수.
그것이야말로 유씨 가문이 지온을 버리고 지서를 선택한 이유가 아니던가.
“예, 어머니.”
지서가 얌전하게 대답하자, 그제야 위씨 부인이 자리를 정돈하고 앉으며 포씨 유모에게 말했다.
“큰조카를 들라하게.”
이윽고 지온이 천천히 안으로 들어와 두 부인을 향해 예를 올렸다.
“지온이 숙모님들을 뵙습니다.”
지서가 지온을 향해 예를 갖췄다.
“큰언니를 뵈어요.”
지온 역시 웃으며 지서와 마주 인사를 했다.
“지서도 있었구나.”
눈앞의 지온을 보던 위씨 부인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지온이 집으로 돌아온 후 여러 날 동안, 지온의 부족한 예의범절을 얼마나 많은 이들이 보았던가? 전에는 지서가 아무리 인사를 해도 한 번을 받아주질 않았다.
더구나, 행동은 또 언제 저리 얌전해졌단 말인가? 걸음걸이며, 인사를 하는 모습이 예법에 딱딱 맞는 것뿐 아니라 자태가 얼마나 우아하고 고운지 빼고 넣을 것도 없이 완벽했다.
저 정도의 몸가짐은, 선생을 초빙하여 그리 오래 가르친 지서도 비교하면 부족할 정도였던 것이다.
‘이게 어찌 된 일이야? 기둥에 박고 며칠 실성하더니 갑자기 상태가 되레 좋아지기라도 한 것인가?’
“큰숙모님?”
정신을 차린 위씨 부인은 지온이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온의 평온한 눈빛 속에서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 여유 있는 모습이 보이자 오히려 위씨 부인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그리 예를 차릴 것 없다, 어서 앉거라.”
“감사합니다.”
지온 역시 마다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리에 앉았다.
그리곤 차를 따라 천천히 마시기 시작했는데, 그 모습이 꼭 가볍게 놀러와 다향(茶香)을 즐기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렇게 찻잔이 비워지길, 여러 잔…….
“흠! 흠!”
위씨 부인이 가벼운 헛기침을 흘렸다.
지온은 반응이 없었다.
“커허엄!”
위씨 부인의 헛기침이 다시 울리자 드디어 지온이 반응을 보였다.
지온은 위씨 부인을 걱정스러운 듯이 바라보았다.
“숙모님, 어디 편찮으신지요? 그렇다면 참지 마시고 꼭 의원을 만나시어요.”
위씨 부인은 뒷목을 잡고 넘어갈 것 같았다.
‘누가 몸이 안 좋단 말이야! 제게 눈치 주는 것도 모르고!’
위씨 부인은 안색을 굳힌 채 침묵했다.
그녀의 기색을 살핀 장씨 부인이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지온아, 다쳤던 것은 어떠하냐?”
지온이 그제야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고는 이마를 만지며 웃음을 지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해요, 큰숙모님. 절 보시자마자 다친 것부터 물어 오시니, 소녀는 참으로 감동하였습니다.”
“…….”
장씨 부인이 슬쩍 위씨 부인을 곁눈질하며 생각했다.
‘그러니까 지금 저 아이가 둘째 형님이 예의상 보여야 할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 것이 고까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단 말이 아닌가? 하긴, 말은 청산유수로 해놓고 모양은 갖추지 않으면 너무 성의가 없는 것이지.’
지온이 말을 이었다.
“본래도 크게 다친 것은 아니었던지라, 며칠 쉬는 동안 모두 나았습니다. 보세요, 머리카락을 내리니 흉터 하나 안 보이지요?”
얼굴색 하나 바뀌지 않고 자연스럽게 머리를 박은 이야기를 꺼내는 조카 때문에 부인들은 정신이 혼미해졌다.
‘스스로 기둥에 머리를 박은 이야기를 하면서도 조금도 부끄럽지 않단 말인가?’
‘당시 수치와 분노로 자진(自盡)하려던 것은 본인의 선택이 아니던가?’
지서가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큰언니께서 벌써 나은 줄도 몰랐어요. 저희는 큰언니가 내내 방에만 계시고, 사람들도 안 만나셔서 무슨 일이라도 생기는 줄 알았지 뭔가요?”
위씨 부인이 지서를 향해 눈을 홉떴다.
‘조용히 있으라니까, 왜 굳이 입을 열어서는!’
저러다 지온이 또 발작이라도 해서 일이라도 치면 어쩐단 말인가? 지온의 평판은 상관없다지만, 지서는 명문가로 시집을 가야 하잖은가!
그러나 지온은 예상치도 못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지서, 네가 이해해 주면 좋겠다. 이런 일로 체면을 잃은 언니가 방에 숨어있는 것 말고 달리 할 수 있는 게 있었겠니?”
지서는 당연히 지온의 감정을 건드리려 고의로 입을 열었던 것이었다. 이미 지온에게 반격할 준비를 하고 있던 지서는 지온이 그리 대답을 해버리자, 목구멍까지 차있던 비웃음과 조롱이 콱 막혀버리는 것을 느꼈다.
서로 시선을 맞추는 위씨 부인과 장씨 부인의 눈 속에 의혹이 가득했다.
‘본인의 이야기를 하는 게 맞는 것인가? 어찌 이리 다른 사람 이야기하듯 하는 것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