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4화. 막다른 길
처마 밑에는 한능부와 한능번, 두 형제만 남게 됐다.
동생은 초라한 모습으로 차갑고 딱딱한 백옥 바닥에 꿇어앉아 있는데, 형님은 그의 뒤에 서서 동생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형제는 같은 생각이라도 하고 있는지,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
둘은 한 번도 시정잡배들처럼 서로를 노려보거나 언쟁을 해본 적이 없었지만, 몇 번이고 서로의 의견이 어긋나곤 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도부동불상위모(道不同不相爲謀)라 하였으니,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를 달리 하는 사람과는 서로 의논하지도 말아야 했다.
잠시 후, 아까 침궁 안으로 통보하러 들어갔던 어린 내관이 밖으로 나와 방긋 웃으면서 한능부에게 말했다.
“왕야, 폐하께서 알현을 윤허해 주셨습니다.”
“고맙네, 공공.”
한능부는 미소를 머금고 말함과 동시에 한능번을 슬쩍 쳐다봤다. 그 눈빛에는 경시와 이미 대세는 기울어졌다고 말하는 듯한 오만이 배어 있었다.
훤칠한 모습의 한능부가 성큼성큼 침궁 안으로 들어섰다.
한능번은 그의 뒷모습을 보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까지 계속 고개를 숙이고 미동조차 하지 않던 한능번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가볍게 흩날리던 세설(細雪)은 천천히 거위 깃털 같은 대설로 바뀌어 어지럽게 쏟아졌다.
한능번의 머리, 눈썹, 어깨 위로 얇디얇은 눈꽃들이 쌓여 층을 이루자, 얼핏 보면 백발 무성한 노인으로 변한 것 같았다.
그러나 한능번은 미동 없이 여전히 그 자리에 꿇어 있었다.
눈은 점점 더 펑펑 내렸다. 황제의 부름을 받은 대신들은 하나둘씩 서둘러서 침궁에 도착했다가 그 앞에서 꿇어앉아 있는 한능번을 자연스레 보게 됐지만, 어쩔 수 없이 그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대신들은 한능번을 곁눈질하지 않고 바로 침궁으로 들어갔으나, 한능번은 이대신들의 동정 혹은 조롱이 섞인 눈빛을 민감하게 느끼고 있었다.
‘저들이 저런다 한들, 내가 뭘 어찌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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