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동승
소육랑은 읍에 도착한 후, 바로 동창에 의해 의관으로 끌려갔다.
의관은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모두 그 명의를 찾아 진료를 받으러 온 것이었다.
두 사람은 대열의 맨 뒤에 서 있었다.
동창은 까치발을 하고 앞을 쳐다봤다.
“너무 늦은 건 아니야. 기다리면 진찰받을 수 있을 것 같네.”
“차비는 이따가 줄게.”
소육랑이 말했다.
동창은 가슴을 두드렸다.
“우리가 같은 고향에서 동문수학한 세월이 얼마인데, 무얼 그리 사양해? 참, 배고팠지?”
그는 집을 급하게 나오면서 음식을 먹지 못했다. 소육랑은 더욱 먹은 것이 없었다.
그는 넓은 소매 속에서 작은 봇짐을 꺼냈다. 예쁘게 생긴 옥수수 만두 세 개가 나왔다.
“만두는 어디서 났어?”
소육랑은 어쩐지 만두가 낯이 익었다.
동창이 말했다.
“자네 집 부뚜막에서 가져왔지. 내가 갔을 때 금방 쪄 있더구만?”
소육랑의 눈썹이 비틀렸다.
“몇 개 남겼나?”
동창은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세 개밖에 없는데 뭘 남긴단 말인가? 자네가 직접 만든 만두가 몇 개인지도 모르나?”
소육랑은 입을 오므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말문을 열었다.
“왜 그녀에게 하나도 남겨주지 않았지?”
동창은 놀랐다.
“그 악처를 말하는 것인가? 그 여자에게 남겨서 뭐 하려고? 자네에게 해악을 끼친 게 아직도 부족하다던가? 게다가 그 여자도 자네가 만든 음식은 먹지 않을 텐데!”
동창은 만두 하나를 들고 한 입 베어 먹었다. 눈이 번쩍 뜨였다.
“소형, 오늘따라 왜 이렇게 맛있게 만들었어?”
그때 소육랑이 대열을 나가자, 동창은 어리둥절해졌다.
“소형, 어디 가? 곧 자네 차례인데!”
소육랑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앞으로 걸어갔다.
동창은 뒷골목까지 줄지어 서 있는 장사진을 보며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러다 어쩔 수 없이 뒤에 서 있던 부인에게 부탁했다.
“부인, 뒷간에 갔다 올 테니 좀 봐주시오. 금방 돌아오겠소!”
그는 소육랑을 따라잡았다.
“무슨 짓이야?”
“계화고를 사려고.”
소육랑은 골목을 지나 이기(李記)의 점포로 갔다.
이기(李記)는 전통 있는 점포라서, 줄을 서는 사람이 의관만큼 많았다.
동창은 다급해졌다.
“미친 겐가? 진짜 그 악처에게 계화고를 사주다니! 장 의원님이 반나절만 진료하고 간다는 걸 알기는 아는 것인가? 계화고를 사고 나면 치료는 물 건너간 것이나 다름없네!”
소육랑은 고집이 셌기 때문에 일단 결정한 일은 아무도 말리지 못했다.
한 시간 후, 소육랑은 이기(李記)의 계화고를 샀다.
“장 의원이 아직 안 갔길 빌어야지!”
동창은 소육랑을 잡아끌고 의관으로 갔다.
그러나 그들이 의관 문 앞에 다다랐을 때, 줄을 서던 장사진은 온데간데없고 구경하는 백성과 엄숙한 장병들만 둘러싸여 있었다.
동창은 옆에 있는 중년 남자를 보며 물었다.
“좀 묻겠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이오? 줄을 서던 병자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이오?”
중년 남자가 말했다.
“아유, 말도 마시오! 방금 어떤 미친 자가 칼을 들고 의관으로 뛰어 들어갔소. 의원이 자기 어머니를 죽였다고 칼을 휘둘렀는데, 안에 있던 사람들이 다 칼에 베였어. 쯧쯧, 문 앞에 서 있던 부인 보았소? 그 부인이 마지막으로 들어갈 때 그 미친놈이 뛰어들었지 뭔가! 그래도 그 부인은 운이 좋았지, 금방 뛰쳐나와서 살았지만 넘어져서 머리가 깨졌다네.”
그 부인은, 아까 그들 뒤에 있던 부인이 아니던가?
만약 그들이 가지 않았다면, 마지막에 들어간 사람은 바로 소육랑이었을 것이다.
소육랑의 다리로는 절대 뛰어나오지 못할 테니, 칼에 베인 사람 중에는 그도 포함됐을 것이다.
* * *
돌아가는 길에,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날이 점점 어두워졌다. 마차는 삐걱거리는 바퀴 소리를 내며 고요한 오솔길을 갔다.
읍의 마차는 이 시간에 마을로 들어가기를 거부했다. 그들은 엽전 스무 개를 꺼내 노새가 끄는 수레 한 대를 빌렸다. 수레는 제대로 된 칸 없이, 간단한 검은 덮개가 덮여 있어 앞뒤로 바람이 새어 나왔다.
두 사람의 손발은 차갑게 얼어서 뻣뻣해졌다.
갑자기, 한 줄기 여윈 그림자가 소육랑의 시야에 들어왔다.
소육랑은 시선을 멈췄다.
갈림길이 나왔다.
앞은 마을로 가는 길이었고, 서쪽은 장터로 가는 길이었다.
장터로 통하는 좁은 길목에서, 고교는 묵직한 바구니를 등에 메고 숨을 헐떡이며 걸어가고 있었다.
석양은 이미 저물고 있었다. 마지막 황혼 속에서, 그녀의 마른 몸이 드러났다.
그녀가 손을 들어 땀을 닦자, 손목을 묶은 면포가 보였다. 면포에는 피가 묻어있었다.
“멈춰주시오.”
소육랑이 말했다.
마부는 수레를 멈춰 세웠다.
“무슨 일인가?”
동창은 영문을 몰라 묻다가, 저편에서 걸어오는 고교를 발견했다.
고교는 그들을 발견하지 못하고 그저 평범한 노새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눈도 들지 않고 수레 옆을 지나갔다.
“올라와.”
소육랑이 입을 열었다.
고교는 깜짝 놀라며 그제야 고개를 돌려 노새에 타고 있는 소육랑을 보았다. 옆에는 낮에 봤던 그 동창이 앉아 있었다.
동창은 여전히 혐오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소육랑에게 그녀를 상대하지 말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올라와.”
소육랑이 다시 한번 맑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분명 열여섯, 열일곱 정도의 소년인데도, 그는 나이에 맞지 않게 침착한 기개가 있었다.
고교는 잠시 망설이다가 올라갔다.
그녀는 소육랑의 맞은편에 앉고, 등에 있는 바구니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소육랑이 바구니를 보고 물었다.
“장에 갔다 온 것이오?”
고교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닭 두 마리를 팔고 쌀과 밀가루를 좀 사 왔어요.”
그리고 다른 일도 했고.
소육랑은 무언가 알아차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봤지만, 한 글자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반면에 동창이 고교를 보는 눈빛은 이상했다. 이런 바보 악처가 장사를 했단 말인가?
고교는 그의 예측을 눈치채지 못한 듯, 소육랑에게 물었다.
“오늘 읍에 가서 의원님을 만났나요?”
“맞다! 다 너 때문이다! 네가 계화고를 사 오라고 떠들지만 않았어도, 장 의원님의 진료를 놓치는 일은 없었을 텐데!”
동창은 계화고를 사는 바람에 재난을 피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아……. 아쉽네요.”
고교는 눈을 내리깔며 속삭였다.
그녀는 입으로는 안타깝다 말했지만, 하나도 안타까워 보이지 않았다. 설마 그녀가 이미 의원의 일을 알고 있었을까?
그럴 리가 없지. 그녀의 안 좋은 성격으로 볼 때, 소형을 구했다는 것을 알았다면 이렇게 침착할 리가 없었다. 지난번 소형을 구했을 때도 혼인을 강요하지 않았던가. 또 한 번 그를 구했으니, 이번엔 하늘의 별도 따다 달라 했을 것이다.
동창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계화고는 내가 다 먹었네! 네 잇속만 차리게 할 순 없지!”
고교는 침착하게 말했다.
“네.”
결국 동창은 주먹으로 솜을 때린 꼴이 되었다.
세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때, 매우 고급스러운 마차 하나가 정면으로 달려왔다.
그것을 보자, 동창의 마음이 들떠 옷자락을 단정히 여미며 입을 열었다.
“저기 좀 봐! 학장님(院长)의 마차야!”
“무슨 학장님?”
고교가 물었다.
“천향 서원(天香书院)의 학장님! 소형이 3일 뒤에 시험 볼 서원의 학장님이야! 학장님은 경성(京城) 사람으로, 경성 4대 천재 중 첫 번째 분이셔. 학식이 풍부하고 고금에 정통하지. 20년 전 과거 시험 성적을 지금까지 뛰어넘는 자가 없었어. 그에게 한마디 지적받는 게 10년 동안 성현을 공부하는 것보다 나아! 내가 그의 제자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학장님은 이미 여러 해 동안 제자를 받고 있지 않고 있어. 나도 서원에 들어 온 지 반년이나 되었는데, 아직까지도 학장님의 얼굴을 뵌 적이 없어.”
동창은 쉴 새 없이 떠들었다. 너무 흥분해서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사람과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도 잊어버렸다.
* * *
마차 안.
흰색 원복을 입은 학장은 공손하게 앉은 자세였다. 그 옆에는 무명옷을 입은 노인이 있었다.
노인의 왼팔에는 면포가 감겨진 채였는데, 품에는 우산을 하나 안고, 얼굴에는 어디서 얻은 건지 모를 큰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학장은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감히 묻지도 못했다.
그는 공손하게 읍했다.
“저에게 말도 않고 어찌하여 갑자기 산을 나가시는 겁니까? 제가 사람을 보내 드릴까요?”
* * *
마을로 가는 길은 좋지 않았다. 특히 소육랑과 고교의 집으로 가는 길은 너무 울퉁불퉁해서 바퀴가 빠지기 쉬웠다.
노새는 마을 입구에서 멈췄다.
“소형.”
동창이 먼저 노새에서 내려 소육랑을 부축하며 소육랑의 짐을 들어줬다.
소육랑은 똑바로 선 후, 고개를 돌려 고교를 한 번 쳐다봤다.
고교는 바구니를 등에 업은 채 가볍게 마차에서 뛰어내렸다.
소육랑은 시선을 돌려 동창에게 말했다.
“배웅은 이만 되었으니, 먼저 가게.”
날은 이미 어두워졌고, 마부도 좀 귀찮아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 나는 이만 갈게. 3일 후 시험 잊지 말구. 그날 서원은 쉬지 않으니, 나는 자네를 데리러 올 수 없다네. 자네 혼자 와야 한다는 거 잊지 말게나.”
“그러지.”
소육랑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봇짐을 들었다.
등롱 하나 없는 밤길은 걷기 쉽지 않았다. 고교는 옆에서 묵묵히 소육랑을 기다리며 미동도 하지 않았다.
동창은 차갑게 그녀를 쳐다보더니, 소육랑을 끌어당겨 작게 속삭였다.
“소형, 삼 일 후 시험 잘 봐야 해. 합격하면 서원에 들어갈 수 있으니, 더 이상 악처가 괴롭히지 못할 거야! 다리를 치료하는 것도 조급해하지 마. 내가 장의원의 소식을 계속 물을 것이니. 아, 그리고 계화고는 혼자 먹어. 악처에게 주지 말고!”
고교는 바구니를 업고 시장에서 돌아올 때까지만 하더라도 온몸이 땀으로 흥건했다. 하지만 노새에서 바람을 맞으니 땀이 금방 말랐다. 빨갛게 익은 얼굴도 하얗게 얼어붙어, 달빛 아래에서 창백해 보였다.
소육랑의 안광이 그녀를 스쳤다. 동창은 몇 마디를 더 하고 싶었으나, 소육랑이 말을 끊었다.
“알겠으니 이만 돌아가게나.”
동창이 입을 벌렸지만, 소육랑은 더 이상 그를 상대하지 않았다. 한 손으로 봇짐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지팡이를 짚으며 몸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고교는 발걸음을 내디뎌 그를 따라갔다.
고교와 그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걸었다. 너무 가깝지는 않았지만, 넘어지면 바로 부축할 수 있는 거리였다.
그러나 소육랑은 길이 익숙했기 때문에, 집으로 갈 때까지 부축해야 할 일은 생기지 않았다.
날은 이미 어두워져서 집집마다 문이 닫혀있었고, 설응향만 나와서 목욕물을 붓고 있었다. 설응향은 잠시 문 앞에서 멍하니 무언가를 바라보았다.
“향아, 안 들어오고 뭣 하는 게냐? 뭘 그리 보는 게야?”
설응향의 시어머니가 집안 병상에 누워 쉰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
설응향은 우두커니 눈을 깜빡거리다 대답했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분명 잘못 본 게 분명하다. 소육랑이 어떻게 그 바보랑 같이 걸어간단 말인가? 그들은 비록 부부지만 원수보다 못한 사이였다.